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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이웃돕기 모금함속의 사랑

    매년 연말이면 소외된 이웃돕기 행사가 여기저기서 벌어지지만 모아진 성금이 제대로 쓰이는지에 대한 문제가 자주 제기됐다.이런 연유로 성금을 투명하게 집행할 법정모금단체가 98년 1 1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강영훈 전 국무총리)라는 기구로 출범되었다.사랑 희망 나눔을 활동주제로 세개의 붉은 열매를 상징물로 정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전국 각 시·도별로 지회가 설치됐고 중앙회의 총괄 아래 운영되고 있다. 오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서울시 지회에서 근무하게 된 필자는 지난해 12월 1일부터 2000년 1월 30일까지 희망2000년 이웃돕기 모금 캠페인 일환으로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의 협조로 각 지하철 역사 매표창구 앞에 입식 모금함 158개를 설치하였다.모금함의 개당 제작비가 10여만원 이상 소요된 것이기 때문에 모금액 실적에 적잖게 신경을 썼는데 결과는 미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함을 열 때마다 따뜻한 이웃들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만나는 것 같아 작은 감동을 맛보곤 했다.10원짜리,50원짜리,100원짜리,500원짜리 동전에서부터 1,000원짜리가 두세번 접힌 채로,또는 고액권이 광채를 띠듯 들어있었다.어떤 곳에는 깨끗한 봉투 안에 고액권 몇장이,또다른 곳의 모금함 속엔남자친구의 선물을 사려던 돈이,신입사원 동료들이 한끼 식사비를 모은 돈이,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젊은이의 헌혈증서가 들어있어 모금함을 여는 순간순간이 곧 감동의 순간이었다. 역무실에서 집계하는데 한 직원이 뼈있는 한 마디를 했다.“부패한 정치꾼들은 이런 걸 보면서 반성해야지.서민들에게 만원 이만원이 적은 것이 아닌데 이 돈이야말로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이 아니겠어요” 그렇다.모금함 속의 한푼 한푼은 그야말로 순수한 돈이다.누가 독려를 했다거나 종을 치면서 호소했다거나 자선을 요구하지도 않았다.모금함에 시민들이 순수한 십시일반의 사랑을 넣은 것이다.예쁘게 접은 리본을 단 종이지갑에 500원을 넣은 낯 모를 어린이의 코묻은 돈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유수 대기업체나 독지가의 거액 성금도 자선사업에 쓰이기는 마찬가지겠지만 모금함 속의 작은 정성은 이웃들과의 직접적인 사랑의 교감에서 우러난 것이어서 보다 더 따뜻하다.그리고 잘사는 동네를 끼고 있는 지하철 역사보다 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인근역의 모금함 속에 두배 세배 많은 성금이들어있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러나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모금함 속에 쓰레기가 들어있다는 사실이다.다 쓴 지하철표,광고지,심지어 담배꽁초까지 들어있다.어떤 곳은 모금함이 파손된 경우도 있고 통째로 없어져버린 곳도 있었다.이같은 현실을 보면서 아직도 먼 시민의식을 탓하게 되지만 그래도 따뜻한 이웃이 더 많은 사회에서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을 갖게 되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한 끼의 먹거리와 연탄 한 장에 신경쓰며 온몸을 웅크리고 있을 내 이웃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자선모금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는 계기였다.또 자신들의 일처럼 모금함을 지켜주고 동전을 세어주는 등 모든 협조를 해준 지하철 역무원 여러분의 태도에서도 진정한 이웃사랑의 따뜻함을 느꼈다. 趙 炳 洙 서울시민공동모금회 사무국장
  • 부시 “클린턴시대 종말의 서곡”

    [디모인(미 아이오와주) 최철호특파원] ◆빌 브래들리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른 앨 고어 부통령은 민주당 선거본부에서 인사말을 통해 자신에게 “코커스 사상 최대의 승리”를 안겨준 아이오와 주민에게 감사를 표하고 “우리는 이제야 싸움을 시작했다.더욱 나은미래를 위한 투쟁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브래들리 전 의원은 고어 부통령이 획득한 높은 지지율을 축하하면서 자신은 “좀 더 겸손하다”고 말하고 도전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다짐. ◆조지 부시 주지사는 선거본부에서 “우리는 기록적인 승리를 이룩했으며이렇게 높은 지지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오늘 밤은 클린턴시대 종말의 시작”이라고 선언.공화당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는 1988년 봅 돌전 상원 원내총무가 얻은 37%가 최고였다.부시 주지사는 디모인 북쪽에 위치한 에임스와 페리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는 등 이날 저녁 7시 투표 개시 2시간 전까지 캠페인을 벌였다. ◆양당 후보들은 코커스가 열리기 전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동원,지지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코커스에 반드시 참석해 지지표를 던져 줄 것을 호소.고어 부통령 진영은 ‘표끌어내기’ 운동을 전개한 노조측의 지원을 받았으며일부 공화당 후보들은 교회신자 등 자원봉사자들을 이용해 지지자들을 코커스에 끌어냈다. ◆예상외로 선전한 스티브 포브스 회장은 투표결과에 만족을 표시하면서 “우리는 보수주의 후보로서 8일 후 예비선거가 열리는 뉴 햄프셔로 향하게 됐다”고 말했다.이날 코커스에서 5%대 지지율로 저조했던 상원의원 존 매케인 후보나,고어에 큰 표차로 뒤진 브래들리 후보는 모두 뉴햄프셔에서 강세를보이고 있고,특히 매케인 후보는 뉴햄프셔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어 부시진영으로선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 ◆이번 당원대회 결과,민주당에서는 47명의 대의원중 고어 부통령이 30명,브래들리 전 의원이 17명을 확보하게 되며 공화당에서는 총 25명중 부시 주지사가 10명,포브스가 8명,키스가 4명,바우어가 2명 그리고 매케인이 1명의 대의원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hay@ *[특파원 수첩] 아이오와 코커스 미국 중부시간 24일오후 7시 아이오와주 전역에서는 누구를 2000년 대선 주자로 선출할 것인가를 정하는 코커스(당대의원선출대회)가 시작됐다.선거본부가 차려진 주도 디모인시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애임스마을. 한 민주당 선거구에서는 주민 100여명이 교회지하에 모여 누구를 대선주자로 뽑을 것인가에 대해 주민 개개인의 지지선언이 이어졌다. 한 여성주민은 “고어가 돼야 민주당 전통을 이어 아이오와 농부들에게 유리할 것이다”고 선언했다.민주당원의 경우 이처럼 주 전체 2,131개 선거구(Precinct)에 참석한 주민들이 저마다 자기가 선호하는 후보가 누구인 지를밝히며 이견이 있는 사람들과 토론을 벌인다.그러면서 군 당원대회,이후 주를 대표해 전당대회에 보낼 대의원을 선출한다. 공화당은 비밀투표로 지지의사를 밝힌다.토론이 없는 경우도 있다.결과는누가 얼마만큼 지지를 받았느냐에 따라 나타난다.후보경선이니 경선결과 승복여부니 하는 ‘진기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그저 후보는 뽑히는 것이란 단순 과정을 보여준다. 선출과정이 있기까지 후보들은 먼이곳까지 찾아와 유권자들과 눈을 맞추지 않으면 인기를 얻을 수 없게 돼있다.원래 코커스(Caucus)란 말 자체가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도란도란 모여 추장을 뽑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상명하복과는 거리가 먼,저마다의 의견이 존중되는 과정임에 틀림없다.민주주의,혹은 국민이란 단어는 실체가 없는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이처럼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국민구성원임이 피부로 느껴진다.코커스 과정은 토론과 설득,이해와 수긍장면이 가득했다.투표자 매수,돈봉투,다른 당원끼리 치고받는 몸싸움 등 우리에게 ‘친숙한’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180만 아이오와 유권자중 10%밖에 참석치 않고 전국 지지도와 차이가 나는 선거란 비판도 있지만몰려든 세계의 언론인들은 비판보다 장점을 더 많이 보고 있다. 최철호 워싱턴 특파원디모인(
  • [작은 것부터 실천을] 동전 활용

    ‘10원짜리 동전은 땅에 떨어져도 줍지 않는다’ 경기 호전으로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거스름 돈 등으로 받은 10원짜리 동전이 또다시 가정의 서랍이나 저금통 등에서 잠자는 신세가 되고 있다. 버스,지하철,기차 등 대부분의 공공교통 요금도 100원 단위로 부과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10원짜리 동전을 쓰는 일은 흔치 않다. 서울 종로3가 버스정류장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이미자씨(47·여)는 “하루 종일 장사를 해도 10원짜리로 물건 값을 치르는 손님은 손가락으로 꼽을정도”라고 말했다. 정부의 환경보호 정책에 따라 백화점,식료품점 등에서 1회용 봉투를 10∼20원에 판매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 10원짜리를 준비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차영희씨(37·여)는 “10원짜리 동전을 내고 1회용 봉투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때문에 거스름돈으로 내줄 동전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10원권이 이처럼 천대를 받고 있지만 구리 65%,아연 35%인 동전 한 닢을 만드는 데 액면가의 4배인 40원이 든다.반면 1만원권 지폐 한 장의 제조가격은90원이다. 10원권이 시중에 나오지 않을수록 한국은행은 10원권을 더 많이 발행해야한다.한국은행은 지난해 모두 152억의 혈세를 들여 10원짜리 동전 3억8,000만개(액면가 38억원)를 새로 만들었다.올해에도 이미 3억4,000만개를 발주한상태다. IMF(국제통화기금) 한파가 몰아쳤던 98년 1억개를 제조한 데 비하면 4배 가까이 늘었다.당시 너나없이 10원짜리 동전을 사용하자 한국은행은 오히려 많은 양을 회수했다. 10원권의 발행잔액(한국은행이 발행한 총 금액에서 환수한 금액을 뺀 차액)도 99년 1월 418억원에서 올해 1월 463억원으로 늘었다.발행잔액의 증가는수요 증가를 의미하지만 10원짜리의 특성상 서랍 속에서 잠자는 양이 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동전 다시 쓰기운동’을 펴고 있는 한국은행 발권기획팀 이경태 팀장은“동전식 공중전화,불우이웃 돕기,자동판매기 등 10원짜리 동전을 사용할 기회는 많다”면서 “조금만 신경쓰면 수십억원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고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2)

    ◈창 달린방-안은영◈8.숨쉬는 아이성당에서 결혼 축하 곡이 흐른다. 해우,미라의 운동화 끈 묶어준다. 미라:(힘없이)엄마가 거울을 모조리 갖다버렸어. 해우:(미라 쳐다보고 무관심하게)그래?미라:(한숨)거울 보는 엄만 엄마가 아니야. 해우:(장난스럽게)엄마가 아니라니,엄마가 두 개니?세개?미라:(웅크리며)연극대본 보면서 거울 앞을 왔다갔다 하는 엄만 늘 뻔데기같았어. 해우:(운동화 끈 다 묶고)다 됐다.(미라 옆으로 앉는다)미라:(잡풀 뜯어서 연못가에 던지며)엄마는 거울에 꿈이 숨겨져 있대. 해우:(양손으로 잡풀 뜯어서 하늘 위로 날리며)꿈?머리 위를 빙빙 도는 꿈말이니?미라:엄만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꿈을 키워간대.어릴 때 거울 앞에 날 앉히고 머리 땋아주면서 꿈이 뭐냐고 묻더라. 해우:(관심 가득한 얼굴로)뭐라 대답했어?미라:내 꿈은 원래 있던 거야.있었어도 고쳤어야 했어.(잡풀,쥐어 뜯어 연못에 던진다.그러나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해우:(미라 머리 위에 떨어진 풀 떼어내면서)꿈을 고쳐?미라:엄만 내 생일만 되면 연필 한 타스를 선물하면서 꼭 극작가가 되어야한대. 해우:작가? 폼 난다. 미라:서랍에 연필이 가득 채워지고 서랍문을 열고 닫기가 힘들어질수록 엄마거울도 점점 늘어갔어. 해우:(풀물이 밴 손냄새 맡고)근데 거울을 왜 몽땅 치우신거야?미라:깨질까봐. 해우:그래 유리는 깨지기 쉽지. 미라:(연못 가까이 가 들여다보며)아니 꿈이 깨질까봐.아-여기로 빠지고 싶다.저 속은 따뜻할 거 같지 않니?(해우를 끌어당기며)여기로 들어가면 쟤네처럼 웃고만 살 수 있을텐데.(뒤로 물러나 앉으며)엄마 꿈은 거울에 있었나봐. 해우:배우라 생각하는 것도 틀리다. 미라:(연못에 손 담그고)아무도 몰라주는 배우였지.몇 줄 안 되는 대사를 밤새 연습하는 엄만 항상 빨간눈으로 날 봤어. 해우: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거지. 미라:(손바닥에 물 담아 밖으로 뿌리며 흥분해서)엄마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어. 해우:흥분됐겠다. 미라:(바지에 손 닦고)나도 처음엔 떨리는 내 가슴이 흥분인 줄 착각했는데피가 마를 것만 같은 염려였어.대사를 엉터리로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어.어쩔 땐 멍하니 무대에 서서 진땀만 흘리고 아무 말도못했어.극이 끝나면 엄만 며칠을 울면서 매일 전화에다 대고 미안하다,죄송하다 죽음 앞에 선 토끼 마냥 뜀박질을 해댔어. 해우:너무 간절하면 엇나가기 쉽잖아. 미라:아니 소질 없이 욕심 하나로 버틴 거지. 해우:(다리 쭉 펴고)욕심?미라:내가 이름난 극작가가 되면 엄만 주연이 되서 누구보다 무대를 빛낼 수 있대.거울 앞에 날 앉히고 내 꿈을 직접 만든거야.난 꿈이란 건 누군가 만들어 주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하는 정답쯤으로 알았던 거야. 해우:(집게손가락 연필로 풀 휘저으며)어렸으니까. 미라:(잡풀 뜯어 자기 머리 위로 올려 날리면서)아니.난 내가 뭘 원하는지도모른 채 거울한테 복종당했어. 서랍에 연필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질 때쯤 난더 이상 아무런 꿈도 이룰 수 없는 걸 알았어. 엄마가 원하는 극작가는 덩그러니 형체만 있을 뿐이구. 해우:넌 뭐든지 잘 할 수 있어. 미라:밤새 토끼 눈으로 거울 앞을 왔다갔다 하는 엄마에게 서랍 통을 던졌어.그제서야 거울도 보호받게 된 거야. 해우:(미라 머리 위의 풀 털어 주면서)보호?미라:엄만 절대 깨질 수 없는 곳에 거울,아니 꿈을 숨겼겠지. 결혼식 때 쓰인 풍선이 해우와 미라의 머리에 내려앉는다. 해우,미라 풍선을 치면서 깔깔댄다. 9.거미줄 뜯어먹기해희,전구를 갈아 끼운다. 전구에 빛 들어온다.흔들리는 전구 빛이 방안을 왔다갔다 한다. 해희,해우 눈이 부신 듯 눈살을 찌푸린다. 해희:(앉으며)성당 안나간 지 오래됐다.결혼식 구경도 하고싶어. 해우:지겨워. 해희:왜?너 결혼 축하 곡 듣는 거 좋아하잖아.미라랑 눈감고 감상하던 니가 웬일이니?해우:발 치워!그리고 미라 얘긴 그만 해. 해희:(신이 난 얼굴로 해우에게 바짝 다가가 앉으며)싸웠니?해우:(등돌리고)그만 하라구. 해희:나도 미라 같은 애 싫더라.귀티가 줄줄 흐르는 게 사람 기를 너무 죽여. 해우:출근 안 해?해희:(시계보고 놀라서)아침빵 돌려야 되는데.(가방 들고 일어서며)미친 것도 아닌데 병원에 가두는 잘난 의사때문에 내가 늘 정신이 빠지는 것 같다니까. 해우:미친사람 덕에 밥 먹고 살면서 투덜대긴. 해희:기분좋은 발레리나 신경 긁지 마라. 해우:발레리나?주제에. 해희:(급히 나간다)해우:(씽크대 서랍을 뒤지고 부탄가스 꺼내며)꼭꼭도 숨겼네. 차츰 제자리를 찾는 전구. 해우:(벽에 기댄 채 까만 봉지에 얼굴을 쳐 박고)으으으으….(호흡 점점 빨라지다 스르르 방바닥에 웅크리고 누우며)으으으으….(가늘고 힘없는 목소리로)엄-마. 부탄가스통끼리 부딪쳐 쇠소리 난다. 10.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정신병원 매점해희:(빵과 우유를 셈하면서 낡고 작은 냉장고에 넣으며)열 여섯 열 일곱…. (앉아서 장부 뒤적거린다)잠시초코파이 아줌마:(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으며)니 묵어라. 해희:벌써 주사 맞았어요? 초코파이 아줌마:(두리번거리며)201호 처녀가 또 의사한테 먹혔다구. 해희:(요구르트를 단숨에 빨고 못 믿는 말투로)에이,의사 선생님이요?초코파이 아줌마:(바지 끌어올리며)그 놈은 영계만 보면 환장을 하구 설쳐. 해희:(빵 뜯어먹다가 가슴치고)캑캑!헛소문 많잖아요. 초코파이 아줌마:그 처년 퇴원하기 틀려 먹었데이,쯧쯧. 해희:아줌마만큼 건강해지면 병원 나가죠.병원은 병고쳐주는 곳이잖아요. 초코파이 아줌마:세상으로 못나가게 수갑채운다.누가 모르는 줄 아나.난 멀쩡 혀.미친년들한테 섞여 살란 께 골치가 아퍼 죽겠다. 해희:아줌마도 머리 아프시다고 뒹굴고 약 먹고 그러셨잖아요. 초코파이 아줌마:(못들은 척)그 처녀,인제 뱅실도 좋은데로 옮기긋지?어?해희:(걱정스런 얼굴로)이상한 말 쏟고 다니지 마요. 초코파이 아줌마:미친년들뿐인데 내가 누구한테 말을 한담. 해희:내가 보기에도 아줌만 멀쩡해. 초코파이 아줌마:(기분 좋아서)맞다,맞다.(한참 까르르 웃다가 겨우 웃음참고)머,멀쩡하제?마,맞제?(바닥에 뒹굴고 웃으며)마,맞제?해희:그만 해요. 초코파이 아줌마:(웃다가 의자와 같이 넘어지며)마,맞나,안맞나?해희:(초코파이 아줌마 일으키며)괜찮으세요?초코파이 아줌마:(웃음이 멈추지 않아 배를 쥐어짜며)아,아이고 배야,해희:밥을 안드시니까 힘도 없죠?초코파이 아줌마:약 탄 밥을 내가 와 묵노. 해희:약이요?초코파이 아줌마:(웃음 딱 멈추고 주위를 째려보면서)간호사년들끼리 짜고약 탄 거 몰랐나?해희:아줌만 의심병만 고치면 돼. 초코파이 아줌마:(해희에게 귓속말)밥 묵으면 이 병원서 썩어 죽는다. 해희:그래서 초코파이만 드세요?초코파이 아줌마:그럼 나보고 뒈지라꼬?해희:(시계보고)내일 봬요.밥에 독약 같은 건 없어요. 초코파이 아줌마:그냥 가는기가?해희:(가방 메고 장난스럽게)아줌마도 우리 집 가시게요?초코파이 아줌마:약속이 틀리네 오늘이 우리 만난 지…(손가락 셈하며)오늘이 그날인디. 해희:그날이요?초코파이 아줌마:까먹었나?해희:뭘요?초코파이 아줌마:내 새끼 찾아야 되는데.내는 여 있으믄 안 된다. 해희:그래서 탈출이라도 하겠다구요?초코파이 아줌마:(주머니 이곳 저곳을 뒤적거려 초코파이를 꺼내주며)이거다 묵어라.모잘라나?(해희의 가방 안에 초코파이 넣으며)됐제?해희:다 뭐예요?초코파이 아줌마:니 줄라꼬 간식 안 묵고 숨캤다. 해희:아이 잃어버렸어요?초코파이 아줌마:와?니가 찾아 줄라꼬?(손가락 셈하며)딱 니만 하것다. 해희:(혼잣말)엄마도 날 찾고 있을까?초코파이 아줌마:(해희의 가방빼앗아들고)어여 가제이. 해희:(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 초코파이 아줌마의 머리에 감아주며)내가 봐도 아줌만 환자 아니야. 초코파이 아줌마:(웃음 참으며)아무도 몰라보겠제?해희:(속삭이듯)집 가서 밥 해 줄게요. 11.거미줄 뜯어먹기해희와 초코파이 아줌마가 팔짱끼고 들어온다. 해우:(엎드려 잡지보다가 빼꼼 올려보고)누나왔어?늦었네. 해희:젖 드러내고 있는 거 봐서 뭐해.그림의 떡이지. 해우:(잡지 덮고 일어서며 비꼬듯)누구야?초코파이 아줌마:(해우의 손을 잡고)잘 생긴네. 해우:누구냐구?해희:(망설이다가)그냥 아는 분. 초코파이 아줌마:(해희의 가방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주며)어여 묵어,니 선물. 해우:(초코파이 쳐서 바닥에 떨어뜨리고) 미친 여자 아니야?해희:손님이야. 해우:(어이없어)환자옷 입고 여기까지…. 초코파이 아줌마:(초코파이 줍고)뱅원에서 일하는 아줌마여.옷이 편해서 빌려 입은기다.그자?해희야.맞제?해우:누나가 말하던 초코파이 아줌마야?초코파이 아줌마:(반가워서)니,내 아나?해우:당신이 미쳤다는 것도 알아요. 해희:멀쩡해,니가 보기에도 미친 것 같으니?잃어버린 자식 있는데 찾아야 된대. 초코파이 아줌마:밥 안 묵었제?(씽크대로 가서 그릇을 뒤적거리며)창문 열자,해희야.답답다. 해우:정신병원에나 돌아가요.여긴 창문 같은 건 없으니까. 해희:아줌마,제가 할게요.밥해서 같이 먹어요. 초코파이 아줌마:(사방을 둘러보면서) 답답해서 우째 사노?그래서 니가 허옇게 얼굴이 뜬 기가?둥근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해희,해우,초코파이 아줌마. 해희:아,참!(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들고)주인집 갔다올게. 해우:안그래도 낮에 변태새끼 몇 번이나 왔다갔어.누나가 언제 쉬는 지도 모르는 띨띨한 놈.그 띨띨이,아줌마 친구하면 되겠다. 초코파이 아줌마:(방긋 웃으며)누군데?내 친구 소개시켜 준다꼬?해희:아니예요. 초코파이 아줌마:내도 같이 가자.내가 친구가 어딨노?소개 시키 도. 해희:식사하세요. 초코파이 아줌마:(실망해서)와?니 애인이가?주인남자,방문 열고 들어온다. 주인남자:냄새 죽인다. 초코파이 아줌마:누고?주인남자:(간드러지게)희야 왔어?초코파이 아줌마:(해희,해우 번갈아보고)희야가 누고?(해희 어깨 치면서)야!니다,해희 니 찾는갑다. 초코파이 아줌마:(정중하게 인사하고)식사 좀 하실랍니꺼?해우:(숟가락을 집어던지듯 상에 내려놓으며)방 값 줘서 보내. 초코파이 아줌마:주인인갑네. 해희:(흰 봉투 주인남자에게 준다)주인남자:(봉투 안에 든 돈 셈하며 씩 웃고)맞네.(간드러지게)앞으로는 날짜지켜. 해희:월급이 늦게 나와서요.죄송해요. 초코파이 아줌마:(흥분해서)하여튼 그 정신뱅원은 똑똑히 된 데가 한군데도없다카잉. 주인남자:같은 직장인가봐. 초코파이 아줌마:(당황해서)아,예 지,지는 의삽니더.바,바빠서 월급도 제때못주고 내가 미안 합니더. 주인남자:희야 월급 챙기랴,환자 보랴 수고가 많습니다. 초코파이 아줌마:약 묵고 주사 맞는 기 힘들지 다른 거는.(놀라 입 틀어막고머리 매만지며)아픈 데 있으믄 말 하이소,내가 봐줄께예. 해우,어이없는 웃음.해희,재미나서 웃음. 주인남자:(설거지하는 초코파이 아줌마 보고 조심스럽게)친척?해희:아,예. 주인남자:(간드러지게)희야,난중에 커피 한 잔 하자구. 초코파이아줌마:해희야,주인님 초코파이 드시라 캐라.
  • [발언대] 장애인부부 운영 ‘시온의 집’ 어린이에 관심을

    김포공항 부근에서 조그만 매점을 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닭장같은 삶터를 떠나 가끔 등산을 가는데 지난주엔 천마산을 택했다.등산을 마치고 그동안 꼭 한번 찾고 싶었던 남양주 수동면 가곡리 ‘시온의 집’을 가기 위해서였다. 시외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겨우 찾아간 ‘시온의 집’은 허름한 슬레이트지붕의 건물이었다.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네댓살된 어린이들이 내 품에안겨 떨어질 줄 몰랐다.그런데 반겨 맞아주는 원장 부인을 보고 나는 깜짝놀랐다.작은 체구의 30대 부인은 스테인리스 보조기구에 의지한 채 자신을추스르기도 어려운 장애인이었다.그러나 부지런히 움직이며 일을 하는 모습이 정말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더구나 외출중이라는 원장님 역시 하반신 장애라니 나는 할 말을 잊었다.높낮이가 각기 다른 보잘것없는 방이었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부인의 살림솜씨를 보여줬다.안방 침대에는 뇌종양을앓고 있는 어린이와 하반신 마비로 괴로워하는 어린이가 있었는데 원장 부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주물러 주고 있었다.그러자 아이는통증이 가라앉았는지 잠이 들었다.마치 마술사 의사선생님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작은 봉투를 내밀었더니 원장 부인은 오히려 의아해하며 다들 살기 어려운 때를 걱정하며 미안해했다.그러나 간절한 내 뜻을 들은 뒤에야 감사하게 받아주었다. ‘시온의 집’은 정식으로 인가가 나지 않아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못하고 있다는 이곳의 사정을 들으니 우리나라 복지법의 융통성 없음에 답답해졌다.원장 부인은 그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중이라고 자원봉사자 아주머니가 일러주셨다.우리 사회가 이나마라도 유지되는 것은 이런 분들의 덕분인 것 같다.부끄러운 마음을 숨기고 ‘힘내세요’라고 인사를 했더니 “아직 힘 많아요”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더욱이 계약기간이 지나면 시설을 비워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돌아나오는 길에 주머니돈을 털어 아이들 과자 몇 봉지를 사주었다.마석까지 십리길을 나오는 동안 등에서는 땀이 흐르고 등산가방이 출렁거려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뿌듯하기만 했다.50평생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허술한 국내 복지법이 보완돼 이런 진정한 봉사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돌아가기를 새천년에는 기대해본다.김홍[서울 강서구 화곡동]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II)

    ◆이슬털기-편혜영고양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니.그는 짧은 대답을 마치고 운동화의 끈을 여덟 개 구멍에 천천히 넣어 X 자 모양으로 만든 후에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는 듯이 현관에서 발을 몇 번 굴렀다.오랫동안 물청소를 하지 않은현관에서 뿌옇게 잔먼지가 일었다.남편이 먼지를 없애기 위해 손사래를 치면서 현관을 나섰다. 남편이 아파트 단지까지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실은 한 번도 본 적이없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의 츄리닝 바지춤에서 부석거리는 잔모래가 떨어지거나,바지 끝에 풀섶 이슬이 묻어 있거나,저 아파트 앞으로는 8차선 도로공사를 하고 있어,라거나,아파트 외벽이 이만큼이나 높아졌어,팔을 벌리며설명하는 것을 듣고는 짐작했을 뿐이었다. 산책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도 남편은 곧잘 베란다 창을 통해 새로 시공 중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남편은 지은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는,좁은 마당에 쥐가 들끓어 고양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아파트 단지를끔찍하게 여겼다. 베란다 창문을 뚫고 들여오는쥐며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남편은 쥐새끼는 소리라도 안 내는데 저 놈의 도둑 고양이 새끼가 질러대는 소리는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투덜거렸다. 고양이들은 아파트 마당을 소리없이서성여 대다가, 발정기가 되면 길고 끊이지 않는 소리로 암컷을 불러 대곤했다.그 소리는 부쩍 떨어진 기온으로 잔뜩 냉랭해진 아스팔트 위로 길게 솟구쳐 올랐다.야생에 사는 쥐는 스스로 독초를 먹는다는 거야,부엉이나 올빼미가 얼씬하지 못하도록 내성을 기르는 거지.아파트 마당에다가 먹고 죽지 않을 정도로 쥐약을 뿌려야겠어,결국 쥐약을 먹은 쥐를 잡아먹다가 고양이가 죽게 될꺼야,그러면 저 지겨운 소리를 안 들어도 될테지,남편은 시선을 이제 반 너머 지어지고 있는 길 건너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편이 시선을 거둘 줄 모르는 아파트는 최신 설계에 따라 시공 중이며 아파트 내부는 입주자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높은 층에 살꺼야,베란다를 아주 넓게 하고,창은 아무 소리도 새어들지 않게 5mm 유리를 두장 쯤달겠어.남편은 밤이면 철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보여 괴괴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꿈에 부푼 아이처럼 유리에 입김을 불어 조감도를 그리기도 했다.저 아파트 말이야,35평 분양가가 1억 4천이라는 거야,어디 급전쓸 데 없을까? 그는 꼭 내게라고 할 것 없이 베란다 유리창에 바짝 붙어 서서 시선을 여전히 주공 아파트 단지에 고정한 채 말했다.나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몸 속에 켜켜이 쌓이는 독약을 어쩌지 못하고 자꾸 쓴 침만 삼켜대는 쥐를,그 쥐를 먹고 고통스러워 할 고양이를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그러나 아파트 공사는 중단된 지 두 달이나 되었다.남편은 그것을 모르는 걸까.산책을 나갔다 오면 어김없이 저 아파트 말이야,마치 그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온 사람처럼 얘기를 했다.오늘은 저기 뒷동의 외벽이 유난히 높아 보이는 거야,어쩐지 퇴근 무렵에 인부들이 유난히 몰려 있더라고.현장 사람들이그러는 데 석달 정도면 외관 공사는 마무리 될 것 같다는군,석달이면 말이야. 나는 이미 8층에 사는 반장 여자를 통해,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인부가 하나떨어져 죽었는데,회사측에서 보상액을 턱없이 낮게 책정하는 바람에 임금 노동자들이 반발하고,노동쟁의까지 일으키는 바람에 일손을 놓고 있다고,게다가 회사 간부가 계약자들한테 받은 착수금을 갖고 해외로 도망쳐서 회사측에서는 더할 수 없이 자금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그런데도,나는 남편의 말에 간혹 대거리까지 해가며 짐짓 그 사실을 모른 척 했다. 수정이 나를 부르러 왔다.마당에 상청이 다 마련되었다고 했다.울었는지 수정의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병풍을 친 마당에는 조상상과 망자를 위한 상이 따로 놓여 있었다.무녀는 도사중의 영력으로 임신하여 ┌欲屛? 제석님네 맏딸아기가 아들을 낳아 남편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리를 하고 있었다.맏딸아기가 찾아가자 곧 제석이 중노릇을 파하고 큰 법당은 헐어내어 몸채 팔간을 짓고 큰 장삼은 뜯어내어 홑이불이 제격이며 목탁은 쪼개내어 장종지로 쓰고 장죽장은 분질러서 부지깽이로 쓰시어어,하는 긴 소리의 사설이 이어졌다.소리가 끝나자 무녀가 관중과고인을 상대로 재담을하기 시작했다.주발 뚜껑을 땡땡 치면서 염불도 하고,업도 불러들이고,바라춤을 추기도 했다.마당에 둥굴게 모여 구경을 하던 마을 사람들도 무녀와 하나가 되어 신나게 춤을 추었다.고인들도 아까의 오열을 잊고 일어나 어느 샌지 흐흐 웃음을 흘리며 덩더쿵,사람들과 함께 춤을추었다.수정도 박수로 박자를 돕고 있었다.나도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다가 수정을 따라 박수를 쳤다.춤은 사람들의 웃음 속에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춤을 추고 난 후에 무녀가 천막을 친 기둥에 무명 한 끝으로 쌀 담은 주발을 묶어 맨 후 나머지 헝겁에 일곱 개의 매듭을 만들었다.무녀는 신칼을 들고 서서 고풀이 무가를 잠시 불렀다.불쌍하신 최씨망제,최씨망제가 새앵전에 매애치인하안으을 고오로로 푸우러러 가시오오,축원한 후 고를 들고 춤을 추며 너울지게 흔들어서 하나씩 매듭을 풀어갔다.왠일인지 고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저승까지 가져간 한을 뜻한다는 고를 풀기 위해 애쓰는 무녀를 보자,아직 예 남아 있는 그의 영혼이 저 고를 놓지 않는가 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은이도 왔구나. 누군가 어깨를 툭,치며 알은 체를 했다.강호 선배였다.나는 반가운 마음보다 강호 선배가 왔으면 은미도 오지 않았을까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가까이에 은미는 보이지 않았다. 예정일이 언제니,배가 많이 나왔다,은미도 임신해서 못왔어. 강호 선배는 내가 왜 두리번거렸는지를 알아채고 말했다.은미와 강호선배는 작년에 결혼을 했다. 강호 선배 어디 있었어요?수정이 다가왔다.아까 수정이 그의 방 문앞에서 만난 사람이 강호 선배였던듯,수정과 강호 선배는 오랜만일텐데도 안부 인사가 없었다.아직도 무녀가 쩔쩔매며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잡고 있자,그의 큰 누이가 나가 고를 푸는 것을 도왔다.드디어 첫 번째 고가 풀렸다.사람들이 와아,길게 환호성을 질렀다. 첫번째가 풀리니 나머지는 쉬웠다.무녀가 모두 풀어진 고를 든 채 염불로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식구들을 축원해 주었다. 드디어 고가 풀렸다고,정말로 그가 생전에 한이라도 남기고 갔으면,다 풀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덩달아 박수를 쳐대다가 나는 다시 배를 잡고 허리를 구부렸다.뭔가가 뭉클,아랫도리로 쏟아지는 느낌이 났다. 나는 다시 그의 방으로 왔다.수정은 강호선배를 내보내고,마당에서 아까 나를 부축했던 아주머니를 찾아 데리고 왔다.아주머니는 내게 밑에 뭐시 묻었소? 라고 물었다. 나는 축축한 팬티를 벗어 보았다.피가 섞인 끈적끈적하고 맑은 점액 덩어리가 묻어 있었다. 이슬이라요,이것이.아가 나오기 전에 자궁이 벗개지면서 쪼께 피가 나는 것이요,배 많이 아프요? 곧 아가 나올 수도 있겠어라요.나는 몸을 활처럼 휘고 잠깐 누워 있었다.마당에서 다소 느린 흘림 장단이 들려왔다.나는 이미 사라져버린 진통을 털고 문을 열었다.수정이 바람도 찬데,나오지 말라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덮어 주려고 하였으나,나는 마당으로 나갔다.영혼으로라도 그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며칠 전,그는 잔뜩 신이 나서 임신 4개월 밖에 안 된 주제에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사겠다고 남대문 시장을 돌아 다녔다.나는 아기를 가졌다는 말 이후로 몰라보게 달라진 그가 환멸스러워서 모든 것이시큰둥해 있었다.그게 그거인 좁은 시장통을 몇 바퀴 도는 동안 너무 지쳐 버려서 세 시간쯤이 되자 아무 옷이나 사 버렸다.커다란 테디 베어가 조악하게 프린트된 옷이었다.순면도 아니어서,갓난아기에게는 도무지 입힐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나는 아기의 배냇 저고리가 담긴 비닐 봉투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아기 지울꺼야,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마침 도착한 좌석 버스를 탔다.그가 버스를 타려는 나를 잡았으나 있는 힘껏 그의 팔을 뿌리치고 재빨리 뒷좌석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버스는 바로 출발했다.눈을 떴을 때 그가 지하보도로 느릿느릿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점점 어두운 구멍 속으로 빠져 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 때문에 충분히 불행하다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나쁜 공기처럼 늘 우리 곁을 떠돌게 마련인 죽음의 신에게 음울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곧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정말 그가 죽어 버렸다.횡단보도에서 유아들을 태운 12인승 미니 버스에 치이던 날 같이 있던 성우선배는 이상하다고,건너 편에 선 나를 보고 길을 건너던 기환이가,갑자기 판화처럼 멈추어 서더라고,그리고는 가깝게 다가오는 노란색 버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고,신호등도 없는 횡단보도여서 사람들은 기환의 곁을 빠르게 걸어 지나갔다고,그런데도 기환은 조금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고 그의 학생증 사진을 확대해서 만든 영정 사진 앞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그가 죽자 없던 입덧이 생겨났다.입덧이라니.터무니없었다.이미 내 자궁은 내게 음식 냄새를 거부할 만한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수술은 봄날의 낮잠처럼 짧고도 평온한 것이었다.얇은 가운만을 걸친 채 벌린 다리가 수술대의 차가운 난간에 가끔씩 부딪쳤다.그럴 때마다 나는 언젠가 과학잡지에서 보았던,혈관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의 얇은 살갗을 가진 16주된 태아가 씨앗같은 눈을 감고 있는 사진을 떠올리며 몽롱하게 마취되어 갔다.4개월 된 태아의 죽음에는 암울한 흑백 사진도,값싸고 아린 만수향내도 나지 않았다.눈물도 아까울 만큼 수술은 금방 끝났다. 나는 우욱,먹은 것을 토해내고 질질 침을 흘렸다.대학 병원 전체가 장례식장인 듯 어딜가나 전을 지지는 기름내와 비릿한 육계장 냄새,만수향내가 났다. 포르말린 냄새가 지독해서 물도 마시지 못하다가 그의 하관식 날,나는 정신을 잃었다. 굿을 시작하면서 안방의 병풍에 걸려 있던 그의 한 벌뿐인 양복을 내려 마치 산 사람이 입은 것과 꼭 같이 만들어서 가마니 위에 펼쳐 놓고 이를 말아 일곱 매듭을 묶어 세웠다.그 위에 술을 만드는 누룩을 놓고 다시 사람 모양으로 오린 넋을 놋쇠 주발 속에 넣어 뚜껑을 덮은 다음 그 위에 바가지를 덮었다. 무녀가 신칼로 솥뚜껑을 두드렸다.저승문을 두들겨 여는 것이라고 했다. 선배가 가려나 보다. 나직하게 한숨짓는 목소리로 수정이 말했다. 나는 그가 가는 길은 어딘가,혹 그가 죽은 후,마음 속으로 그의 무덤 곁에묻었던 우리의 4개월 된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은 아닌가,아득하게 눈을 돌려 영혼이 올라간다는 바닷길이 있는 쪽을 보았다가,먼 하늘에 돛대도 없는 쪽배인 듯 조금 차 오른 상현달을 보았다.무녀가 그의 옷을 넣어 만든 영돈을 쑥물,향물,청계수 순서로 빗자루에 묻히어 머리로부터 아래로 씻겨가기 시작했다.진양조의 긴 소리가 이어졌다.나야아 시러어어어 에에 헤이이이히로오 넋이로오오고나아아아 넋이이로오고나아.장구와 징만으로 된 진양조의 가닥이 슬프게 들리는지 그의 작은 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그의 어머니가 손을 맞대고 빌면서,부디 이승에서 맺힌 원한풀고 맑은 물로 깨끗이 씻겨 극락왕생하소서 기구하는 짧은 소리를 했다.망자는 마르고 깨끗해야 환생할 수 있는데 망자의 원한이 이슬이 되어 젖어 있기 때문에 이를 씻겨 주어야만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해서 이슬털기라고 한다는,씻김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 꿈에 선배가 나타난대,그의 어머니도 여러 번 꿈을 꾼 모양이야,아무래도 선배가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굿할 날을 받았다는 거야,실은 우리가 떠나보내지 못한 걸텐데 말이야.수정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나도 선배의 꿈을 꾼 적이 있어,꿈에 선배가 얼마나 인상을 쓰고 있던지 무서워서 잠이 깼어,그 눈이 얼마나 무서운지,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나도 딱한 번,꿈 속에서 그를 만났다.꿈 속의 그는 나를 등지고 서서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었다.뒷모습에 불과한 남자의 영상을 그라고 생각한 것은,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사내가 멈칫 걸음을 멈추고,이내 서서히 돌아섰기 때문이었다.나는 돌아서는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이 깨었다.지은아,가자,난선배 넋도 풀고,빚진 것 같은 내 마음도 풀고 와야겠다.너한테 수술하라고 다그친 게 내가 아니니.아무래도,선배가 그것 때문에 넋을 놓고 죽어 버린것 같아서 말이야.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수정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무녀가 솥뚜껑을 연 후에 신칼로 바가지를 쳐서 독에 담긴 물 위로 떨어지게 하였다. 넋이 담긴 주발을 다시 한 번 쑥물 향물 비누 맑은 물로 씻기고 바가지 위에 얹어 놓았다.바가지는 배가 되고 독안의 물은 저승으로 가는 강이 된 것이다.망자는 쪽박 배를 타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것이다.천천히 무녀가 신칼로 바가지를 돌리자 무녀를 돕던 다른 무녀가 아,배삯을 내야 저승으로 가지,하고 소리를 질렀다.그의 누이와구경꾼 몇이 바가지 속에 돈을 놓으니 쪽배는 금방 속력을 내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저승으로 가버렸다.그는잠깐이라도 들렀던가,다시 빠른 속도로 떠나 버렸다. 진통은 언제라도 내게 닥칠 수 있다는 기미를 팬티에 흘려 놓고 사라져 버렸다.사방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처럼 때없이 닥치는 진통으로 나는 미처 내게닥친 진통이 몇 분 간격인가를 헤아리지 못하다가,진통은 20분이 채 못되는시간꼴로 한 번씩 오는 것을 깨달았다.만약 여기서 아기를 낳는다면…나는갑자기 두려워져서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이미 새벽세 시가 가까워오고 있었고,긴 산책 후 돌아와서는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지는 남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주지 않는 남편을 잠깐원망하며 나는 어두운 방에 오도카니 앉아 치마 아래로 이슬이 비친 팬티를 벗어 버리고 몽골한 새 팬티로 갈아 입었다.그 때,진동으로 해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남편이었다.자다 깬 듯 졸려운 목소리였다. 이왕 간 거니 어쩔 수 없쟎아,조심해서 있다 오라구. 굿이 끝나는 대로 출발할 생각이예요. 재촉하려는 뜻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나는 지레 그렇게 대답했다.아니야,한숨도 못자고 운전하는 당신 친구도 생각하라구.다만 몇 시간이라도 좀 자 둬. 나 때문에 깬 거예요?미안해 할 필요 없어,산책을 안갔다 와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어.당신,산책을 안 나갔어요?좀 의심스럽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래,고양이 죽이는 일도 지겨워,사방에 쥐약 뿌리는 짓을 몇 번 했더니 어제는 드디어 죽은 고양이를 네 마리나 보았어,당신 생각대로 신축 아파트 공사장 따위는 가지도 않았다구.애기가 저 고양이 소리를 안 듣게 되서 기분이 좋아.난 좀 자야겠어,당신도 좀 자두지 그래.남편이 선하품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나는 밤이슬 젖은 풀섶을 뒤적이며 쥐는 죽지 않을 만큼,종내는 고양이가 죽을 만큼의 쥐약을 흩뿌리고 있었을 남편을 떠올려 보았다.어이없고 황당한 마음 한켠으로 고양이 소리 따위에 마음 속에서 확확 불길이 치솟는 그의 마음을 몰랐던 것 같아 안쓰러워지기도했다. 무녀가 대바구니 속에 쌀이며 망자의 옷,넋을 담고 지전으로 장식한 넋상자를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쌀을 천 위로 뿌리면서 신칼을 들고 소리를 했다.안방에서는 그의 작은 누이가 무명천으로 만든 질베의 한 끝을 잡고 마당에서는 동네 아주머니가 한 끝을 잡고 있었다.무녀가 신칼과 넋상자를 다리 위로 조금씩 움직여 닦으면서 염불을 했다. 가족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저승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넋상자를 질베 밑으로 넣어 한 바퀴 돌린 후 망자가 편히 저승에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은 후 마당 쪽에서부터 베를 걷어 안방에서 들고 가족들 축원을 잠깐 했다.이제 망자는 극락으로 천도했고,자손들 발복하게 축원도 했으니 한 번 놀고 가자면서 무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장단을 맞추며 춤을 추었다. 춤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수정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선배며 후배들을 만나고 있는 모양이었다.사람들이 하도 많아서이기도 했지만,사람들마다 춤사위가 워낙 커서 나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발을 구르고 크게 팔을 내두르는 손짓에 슬쩍배가 맞았다.팽팽한 고무줄처럼 바짝 조여 있던 배가 약하게 떨려 왔다.무녀가 굿상의 음식을 조금씩떼어 바가지에 담고 있었다.왼손에 바가지 오른손에는 빗자루에 손대를 들고 마당에 서서 굿에 따라든 잡귀에게 풀러 먹인 후 대문을 활짝 열고 바깥에다 버렸다.나는 가늘게 밑에서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통증에 잠깐 휘청였다. 마당 가운데 그의 옷 넋을 태우기 위한 불꽃이 길게 퍼져 올랐다.벌써 저편으로 연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불꽃 속에 그의 옷가지며 책들을 던져 넣었다.그의 누이가 누런색 곰인형을 들고 나오더니 거리낌없이 불길 속에 던져 버렸다.인형은 솟아오르는 불기둥 근처에 떨어져 타박타박,날라오는 불씨에 조금씩 타고 있었다.나는 허적이며 인형을 향해 손을 뻗쳤다.인형은 태우지 마세요,말은 입속에서만 크게 울렸다.사람들 몇이 춤을 추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그 때,몸이 찢겨지는 듯한 통증이 다시 아래로부터 솟아올랐다.진통은 아까보다 더 지독한 것이었다.나는 휘청거리는 것으로는 막지 못하고 바닥에 스러져버렸다.초겨울 바람에 잔뜩 얼어 있던 땅이 임부복을 입고 있는 내 몸에 닿자,나는 진통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다시 한번 몸을 웅크렸다.아슴하게 사람들이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진통은 멈추지 않았다.누런 곰인형은 여전히 날아드는 불씨에 조금씩 타 올라 이제는 불꽃을 내뿜는 전설 속의 용처럼 온통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아랫도리로 뭔가가 뭉텅,빠져나오는 느낌이 들면서 원피스가 따뜻하게 젖어갔다.왠일인지 흙바닥이 더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다리 사이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나는 따뜻하게 젖어가는 땅 위에서 혼몽하게 정신을 놓칠 것만 같아서,이를 꽉 물고 내게로 다급하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누군가,어째야 쓰까나,양수가 터져 버렸네,크게 소리를질렀다.자꾸만 감기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안아 일으키려는 얼굴을 바라보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지,그 사람의 얼굴 뒤로 보이는 달은 아까보다 조금 더 차오른,상현이다.
  • 이근안 수사 임양운 3차장 일문일답

    서울지검 임양운(林梁云)3차장은 18일 “박처원(朴處源)전 치안감이 받은 10억원의 사용내역과 성격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본우 전 경무관은 박씨에게 전달한 돈의 성격을 알고 있었나 몰랐다고진술했다.김우현 전 치안본부장이 봉투를 건네면서 박씨에게 주라는 말만 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근안 전 경감에게 돈을 줬다는 부분에 대해 시인하고 있나극구부인하고 있다.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계좌추적을 하고 있다. ■박씨는 돈을 건네받기 전에 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했는데 돈을 찾아가라는 말 이외에는 명확하게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김씨는 전낙원씨로부터 수표로 받은 돈을 왜 통장에 입금시켜 전달했나확인되지 않고 있다.유일하게 얘기를 해 줄 수 있는 김씨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다. ■박씨에게 전달된 통장의 명의는박모씨로 돼 있다.가명 여부를 확인중이다. ■김씨가 전씨로부터 돈을 받은 시점과 이를 박씨에게 건네준 시점에 차이가있나 확인해 보지 않았다. ■이근안씨는 반제동맹 사건과관련해 피해자인 박충열씨의 고문에 대해 시인하고 있나 대체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박씨에게 돈을 전달한 김모 경감은 이 돈의 성격을 알았다고 했나 박씨가나중에 10억원이 건네진 사실을 말했다고 했다. 주병철기자 bc
  • 구본우씨가 ‘10억 배달’… 김우현씨 지시 받아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 전 경감의 도피행적을 수사중인 서울지검강력부(文孝男 부장검사)는 18일 김우현(金又鉉) 전 치안본부장이 구본우(具本禹)전 치안본부 대공1부장을 통해 박처원(朴處源) 전 치안감에게 10억원을 건넨 사실을 밝혀냈다.박 전치안감도 치안본부 대공분실 소속 김모 전경감을 내세워 돈을 받았다. 검찰은 17일 구씨와 김씨를 소환,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구씨는 검찰에서 89년 11월 말쯤 김우현씨의 지시로 박씨의 부하였던 김씨에게 봉투 하나를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김씨도 구씨로부터 봉투를 건네받아박씨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봉투에는 10억원이 입금된 통장과 도장 한 개가 들어 있었으며,박씨는 이를 넘겨받아 자신이 운영하던 현대비교문화연구소 여직원을 시켜 통장의 명의를 자신의 이름으로 바꿨다고 검찰은 말했다. 검찰은 박씨가 10억원 중 일부를 이씨에게 지원했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이날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이씨와 박씨의 금융계좌를 추적하고 있다.이씨의 부인 신모씨가 박씨로부터 지난 97년12월 1,500만원을 받았다는 진술에 대해 박씨가 전면 부인함에 따라 이 부분도 확인하고 있다. 주병철기자 bcjoo@
  • [대한광장] 전문대가 중요한 시대

    17일은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수능이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쉬우면 쉬운대로,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시험을 보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마음을 졸인다.이 날의 성적으로 학생들의 앞날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태어나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책가방을 메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15년여동안 책에 있는 많은 지식을 달달 외워서 이날 하루 다 토해내야 한다.그러나 외우기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무슨 소용이랴.지금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할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인 것을…. 20세기 초에 시대가 변하는 줄 모르고,서당에서 사서삼경이나 달달 외우고,양반족보나 내밀면서 에헴 에헴 헛기침이나 해대던 양반네들은 망하지 않았던가.지나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일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아니,알려고도하지 않았을 것이다.21세기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같다.과외,돈봉투 등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에 들어가고 대졸이력서를내세워 연줄이나 대려고 하는 사람도 어리석은 조선조말 양반네들과 다름없지 않을까.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능력을 키워야 살 수 있는 시대에 18살때의 성적으로 인생의 승부를 정하려 하는 것은 너무 낡은 고정관념이다.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관습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고등교육이 중요하다.하지만 온 국민이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사실 갈 수 있는 예산이 없다.그래서 2년제 고등교육기관인‘전문대’가 발전해야 한다. 대학을 못 들어간 학생들이 할 수 없이 가는 전문대는 이미 고등교육기관이 아니다.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패배감에 짓눌려 기회와 희망을 상실한 학생들이 가는 전문대는 소용이 없다.무언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희망찬 학생들이 당당하게 가는 전문대라야 한다. 고등교육정책이 비교적 잘 돼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를 보자.4년제 주립대가 30개,2년제 주립 전문대가 107개 있다.이 전문대에 140만명의 학생이 다닌다.4년제 주립대의 경우 정부예산이 학생 한명당 1만7,000달러부터 8,700달러이다.그러나 전문대의 경우에는 3,660달러이다(1997년도 기준).저렴한 예산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기 위해 정부가 전문대를 적극 권장한다. 등록금 부담도 다르다.주립대의 경우엔 학생이 부담하는 등록금이 4,200∼2,000달러 정도다.전문대의 경우는 일반대학의 10분의 1 정도인 360달러다.이처럼 전문대 등록금을 파격적으로 줄여 많은 학생들이 전문대를 가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있다.캘리포니아주의 4년제 주립대 대학생 50만명 가운데 60%가 주립 전문대 출신이다. 플로리다주도 10개 주립대 학생 19만8,000명 가운데 80%가 28개 전문대 출신이다.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등록금이 없거나,고교시절 철이 없어 공부를 하지 않아 전문대에 들어간 학생들이 뒤늦게라도 재정적 여유가 생기거나 더 공부하고 싶으면 4년제 일반대학에 편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다.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미국에는 입시경쟁이 심하지 않다.이처럼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대학에도 가고 전문대에도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기 때문에 미국의 고등교육은 경쟁력을 지닌다. 지금은 교육경쟁력이 곧 나라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지식기반사회이다. 나라와 국민의 관심을 대학입시와 대학경쟁력에만 쏟지 말아야 한다.전문대가 활성화돼야 한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패배자들을 키워서는 안된다.우리나라가 필요한 전문인과 기술자를 배출하기 위해서 전문대의 발전을 보다 강도높게,시급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趙璧 미시간공대 교수·기계공학]
  • [‘안전死角 유흥업소’] 1. 구멍뚫린 행정감독체계

    씨랜드 참사가 있은 지 꼭 4개월만에 호프집에서 54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다시 발생했다.희생자 대부분이 고교생인 이번 사고 역시 단순 화재사건이 아닌 ‘인재’(人災)였다.미성년자 출입과 불법 영업을 묵인한 경찰과 구청,소방점검을 겉치레로 한 소방서,업주의 빗나간 상혼 등이 어우러져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대형 참사에 무방비로 노출된 유흥업소의 문제점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인천시 중구 인현동 27번지 동인천역 인현상가 주변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물 좋은 동네’로 알려져 있다.상가 2층 호프러브는 중고교생들이 교복을 입고 마음놓고 들어가 술을 마시고 놀 수 있는 단속의 무풍지대였다. ■경찰 주변 상인들과 학생들은 “호프집에 미성년자들이 드나들어도 경찰과구청은 제대로 단속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더욱이 업주가 경찰관 등에게 돈 봉투를 건네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들도 나타나 관청과 유흥업소와의유착관계가 고착화돼 있음을 뒷받침해준다. 호프러브는 지난 7월15일부터 무허가로 영업하다가 지난 14일 식품위생법(무허가 영업)과 청소년보호법(시간외 영업) 위반 혐의로 경찰에 적발됐다.22일에는 구청이 영업장 폐쇄 처분을 내렸으나 업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영업을 계속해 왔다.구청이 제대로 감시를 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지난해 9월에는 학부모들의 진정으로 검찰이 단속에 나섰으나 가벼운벌금형에 그쳤고 불법 영업은 계속됐다. 동인천역 부근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이모(40)씨는 “근처에 파출소가 2곳이나 있고 수시로 경찰 순찰차가 유흥가를 돌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술집에는10대들이 넘쳐났다”고 말했다. ■구청 관할 인천 중구청은 화재 발생 4일 전인 지난 27일 영업장 폐쇄 여부를 확인했다.그러나 형식적인 점검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중구청 식품위생계 직원(28)은 31일 “영업을 하지 않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고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주변 상인들은 “단속이 나오면 안에서 문을잠그고 술을 판다는 사실은 상인들이 다 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화재로 희생자 대부분은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졌다.하지만 이에 대한구청의 사전 규제는전혀 없었다. 호프집 벽과 천장을 꾸민 동굴 모양의 장식물은 불이 붙으면 지독한 유독성물질을 뿜는 우레탄 재질이다.대형 유리창문을 나무 판넬 등으로 멋대로 막았다.그러나 구청은 무허가 건물이란 이유로 무분별한 증·개축에 대한 제재를 아예 하지 않아 화를 불렀다. ■소방서 소방시설에 대한 점검도 형식이었다.인현상가는 지난 6월8일 올들어 처음 소방점검을 받았으나 이상이 없는 것으로 기록됐다. 지하 1층 노래방에 있는 2∼3개와 2층 호프집에 있는 4∼5개의 소화기는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특히 소화기 한 개는 본사 취재진의 확인 결과,작동조차되지 않았다. 아울러 이 상가 건물은 지난 85년 6월과 11월에 착공 및 준공 허가를 받았다.지은 지가 오래된 낡은 건물로,화재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었지만 소방서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업주 이 호프집은 평일에도 오후 6시 이전에 가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삐끼’ 5∼6명이 학생들을 유인하며,두시간 간격으로 주인이 물갈이를 한다며 손님을 내보내도 끊임없이 10대들이 몰려든다. 김경운기자 kkwoon@ *인천참사 희생 왜 컸을까 ‘소규모의 화재에 희생자는 메가톤급’ 30일 밤 인천에서 발생한 화재가 규모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희생자를 낸이유는 무엇인가. 현장을 조사한 관계자들은 건물 내부구조의 불합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대형참사를 일으켰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첫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비상구가 없다는 점이다.건축법상 연면적이 300평 이상인 경우 비상구를 설치토록 돼있으나 화재가 난 건물은 260여평으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내부 수리중인 지하 노래방에서 난 불은 급속히 계단을 타고 2층 호프집으로 올라와 입구가 봉쇄됐으나 비상구가 없어 희생자들이 탈출할 길이 없었다.불이 날 당시 지하에는 시너와 페인트에서 나온 휘발성 증기가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어 삽시간에 큰불로 이어질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호프집 내부장식이 화를 불러일으켰다.호프집은 최근 내부장식을 새로 꾸미면서 창문쪽을 나무 판넬로 막은데다 각종 음향시설을 설치,창문쪽으로의 탈출이 불가능했던 것.대부분 학생들이 창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데다 나무 판넬에 불이 급속도록 번져 접근이 힘들었다.반대편 주방에 있는 창문도 사람이 빠져나갈 수없을 정도로 작아 안에 있던 학생들은 ‘독안에 든 쥐’와 다름없었다. 더욱이 이 업소는 지난 22일 무허가로 적발된 뒤 단속에 대비,문을 걸어잠근 채 영업을 해와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밝혀졌다.60평 규모의 호프집에무려 120여명이 밀집돼 있었던 것도 탈출을 어렵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3층에서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도 굳게 잠겨있어 일부 학생들은 옥상으로의탈출을 시도했다가 되돌아왔다.때문에 호프집에 있던 학생들은 연기와 불을피해 안쪽으로 밀려들어 엉켜있다 질식돼 숨지거나 중상을 입었다. 호프집에 있던 120여명 가운데 대다수가 희생됐던 것과는 달리 3층 당구장에 있던 학생 14명은 건물 뒤편쪽으로 나있는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려 전원이 목숨을 구했다. [특별취재반] * 생존자가 전하는 '그때' “호프집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하나 밖에 없는 문으로는 오히려 불길이밀려 들어왔고,실내등은 모두 꺼져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인천 호프집 화재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은 1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가 건물 2층 호프러브에서 겪은 악몽의 순간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화상을 입고 인하대 부속병원에 입원한진상오군(16·계산공고 1년)은 “눈깜짝할 사이에 검은 연기가 가득 차면서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고 발을 구르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면서 “빠져나갈통로도 없어 아이들이 바닥에 엎드리거나 우왕좌왕하다 쓰러져 갔다”고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길병원에 입원한 김경호군(17·인암고 1년)은 “갑자기 역겨운 냄새가 나면서 검은 연기를 들이마시고는 정신을 잃었다”면서 “맥없이 쓰러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호프집의 통유리로 된 창문은 개·폐장치가 아예 없고,나무판으로 가려져 있어 깨뜨리고 뛰어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진화를 했던 한 소방관은 “비상계단만 있었어도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호프집 실제주인 따로 있었다 ‘호프러브(라이브Ⅱ)의 실제 주인은 누구인가’ 참사를 빚은 인천시 중구 인현동 호프집의 명목상 사장은 김모씨.그러나 실제 소유주는 정모씨(37)인 것으로 알려졌다.정씨는 ‘대리 사장’을 내세워불법영업을 계속해 왔다.대리 사장들은 그동안 정씨 대신 미성년자들을 출입시킨 혐의 등으로 여러차례 벌금형을 받았다.정씨는 지난 30일 숨어서 끝까지 화재현장을 지켜본 뒤 잠적했다. 정씨는 평소 검은색 크라이슬러를 타고 다니며 재력을 과시했다.그가 움직일 때는 2∼3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동행했으며 종업원들과 청년들은 ‘회장님’으로 부르며 깍듯이 모셨다.정씨는 평소 본명 이외에 1∼2개의 가명을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상인들은 “정씨가 10여년 동안 이 일대에서 호프 집 등을 운영하며수억대의 재산을 모았다”고 말했다.지난해에는 맞은편의 4층 건물을 사들였다. 맞은편에는 지하 콜라텍,1층 PC방,2층 노래방,3층 테크노바를 꾸몄다.화재건물의 호프 러브와 지하 노래방을 합쳐 청소년들에게 풀코스의 ‘유흥’을제공해 온 셈이다.옆 건물의 ‘라이브 Ⅰ 호프’도 운영하고 있다. 상인 C씨(36)는 “주변 상인들 사이에 동인천과 신포동 일대에서 꽤 알아주는 건달이라는 얘기가 파다하지만 보복을 당할까봐 정씨에 대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 [문명자 회고록] 비화3共의 실세들(9)陸여사와의 만남

    박정희가 5·16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것은 1961년 11월 13일의 일이다.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도착한 박정희는 검은 색 선글라스를 낀 깡마르고 까무잡잡한 모습이었다.당시 박정희는 바지선도 세우지 않은 후줄근한 차림으로 마치 서울에 처음 올라온 촌사람처럼 잔뜩 경직된 모습이었다.주미대사관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처음으로 그와 악수를 나누면서 내가 말했다. “박 의장님 반갑습니다.그런데…”하니까 옆에 있던 정일권 주미대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문명자 입에서 무슨독설이 나오는가 싶어서였을 것이다.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했다. “색안경을 끼고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만난 것은 큰 실례인데요.자신감이없어 그렇게 한 것 아닙니까?” 정일권 대사가 아연실색해 도중에 내 말을 막으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박정희가 내게 되물었다. “문명자 기자님이라고 그러셨죠? 고맙습니다.제가 깜빡했습니다.그렇게 실례가 됩니까?” “미국에서는 그렇습니다.내일부터는 벗으십시오”.박정희는정일권에게 물었다.“문 기자는 경상도분입니까?” 내가 대답했다.“네,대구입니다” 65년 5월 박정희는 존슨의 초청으로 세번째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육영수여사를 처음으로 동반하고 왔다.그때 주미대사관에서 뷔페형식으로 점심식사가 있었는데 육 여사의 통역관겸 비서인 나은실이 나를 찾아왔다. “육 여사께서 문 기자님을 뵙고싶어 하십니다.잠시 같이 가실까요?” 그것이 나와 육 여사와의 첫 만남이었다.육 여사는 듣던 대로 아주 조신한인상의 여성이었다. “말씀 듣던 거와는 다르네요” “어떻게 다릅니까?” “여성이 기자직에 있는데다 더구나 정치기사를 쓰신다고 해서 저는 ‘문명자기자’ 하면 아주 험상궂고 무서운 분이라고 상상했어요” 쿠데타 직후부터 그 때까지 그의 남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나의 기사를 봤다면 그 편에서 그렇게 상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다 싶었다.육 여사가 또 물었다. “결혼하셨어요?” “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육 여사의 방을 나왔다.그런데 나은실이 뒤쫓아와 나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열어보니 200달러가 들어 있었다.당시 특파원들의 체재비 포함 한달 월급이 200 달러였으니 당시로선 큰 돈이었다.나는다시 육 여사에게 갔다. “저,이 돈 못 받습니다” “이러시면 안되는데….200달러 밖에 안되는 걸요.아이들 선물이라도…” “안되는 건 바로 접니다” 나는 육 여사에게 돈 봉투를 돌려주고 방을 나왔다.이 작은 ‘사건’이 육여사에게 나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긴 듯 했다. 66년 존슨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나는 수행기자로 서울에 갔다.그 때 나는돈암동 언니집에 묵었는데 육 여사의 비서 나은실로부터 전화가 왔다.육 여사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취재일정이 바빠 못가겠다고 했더니 나은실이 물러서지 않았다.그녀가 계속 강권하기에 내가 쏘아붙였다.“내가 그 분 보좌관이요?”.안되겠다 싶었던지 나은실이 “잠시 기다리라”고했다.잠시후 육 여사가 직접 전화기에 나왔다. “문 기자님,좋아하시는 근대된장국을 끓여 놓을테니 오세요,우리 같이 점심 먹어요” 하는 수 없이 나는 취재일정을 마치고 청와대로 갔다.가서 보니 육 여사의접견실은 온통 핑크색이었다. “이 방이 원래 온통 핑크색입니까?” “아니예요,미세스 존슨이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번에 핑크룸으로 바꾸었어요” ‘참 세심한 여성이구나’ 싶었다.그러면서도 한 마디 찔러 보았다.“청와대에 오래 계실랍니까?” 육 여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게 어디 우리집입니까?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만 거처하는 곳이지 이곳은 영원한 우리집이 아닙니다” 그 때 나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육 여사는 내가 일어서려고만 하면 버튼을 눌러 “차 좀 가져오세요”,“수박 좀 가져오세요”해가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보니 이날 저녁 나는 박정희 가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나는 식탁에서 듬뿍장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어머,딩기장이 있네요?”하자 육 여사가 내게 물었다. “딩기장이라니요?” “햇보리로 만든 듬뿍장을 우리 고향에서는 딩기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러자 박정희가 불쑥 말했다.“경상도 사람 아니면 그 맛 모르지” 육 여사가 웃으며 말했다.“두 분은 통하시네요” 이날식사초대에서 나는 박정희에게 ‘대통령각하’라는 말은 한번도 하지않았다.박정희를 부를 때는 주로 경상도에서 친근한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보이소’ 또는 ‘으요,으요’를 사용했다.그랬더니 박정희가 말했다. “거,수십년만에 으요!,으요! 소리듣네”.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육 여사가 의아해 하며 남편에게 물었다.“으요!,으요!가 뭐예요?” “경상도 사람이 아니면 이해 못하지”.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면서도 대중앞에 서면 박정희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했다.내성적이면서도 더할 나위 없는 독종.이것이 내가 관찰한 ‘인간 박정희’의 면모였다. 74년 8·15,육 여사가 피격,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 가엾은 여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박정희의 독재를 다시한번경고하는 뜻에서 박정희에게 영문으로 된 애도전보를 보냈다.“육 여사에 대한 나의 애도를 받아주십시오.생전에 육 여사가 내게 얘기한 ‘청와대는 우리의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합니다.지금이야말로 귀하는 대한민국을,국민을 위해 사임할 때입니다.문(Moon)”정리 정운현기자 jwh59@
  • [기고]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의 당위성

    60∼70년대 신문을 뒤적이다 보면,독립운동가 누구누구 혹은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대서특필한 기사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의 힘겨운 삶은 바로 ‘일제 잔재의 청산’ 여부와‘사회정의’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다.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수준은 지난 시절 민주화를 위해 몸바쳐 애쓴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70년대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선생의 부인은 편지봉투 풀칠을 해서 삶을 이어갔다고 하고,지금 병상에 계신 송건호선생은 자식들 학교도 제대로 못보냈다고 한다.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식을 민주화의 제단에 바친 이한열·박종철군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늘도 여의도 시멘트바닥에서 독재정권 하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사인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농성을 하고 있다.70∼80년대의 수많은 이름없는 민주화 투사들이 오늘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최고의 교육이다.불의와 타협하고 편법과 부정을 능사로 여기며 살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잘 먹고 잘 살아간다면 그것을 보는 후대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양심과 정의,공동체를 위해 애쓴 사람들이 곤곤한 삶을 이어간다면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기피할 것이다.오늘날민주화운동은 과거의 민족운동이 그러했듯이 이렇게 초라하고 빈궁한 삶으로 우리에게 형상화돼 있다.공동체를 위해 힘쓴 이들,그리고 공권력의 부당한행사로 희생된 사람과 그 가족들의 하루하루가 힘겹고 곤궁한 만큼 오늘 우리사회의 부패와 부정,비민주성과 인권침해의 뿌리는 깊고 넓다. 이 세상에서 우연이란 없고,거저 얻어지는 것도 없다.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그리고 씨랜드 피해자들은 자신들만 억울한 사람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사람을 이토록 무시하고 외롭게 만드는 사회에서,자신과 가족의 번영과 행복을 도모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생각하는 소시민들에게 사회비리의 총알은 비켜가지 않는다.그것은 공무원이 부정부패로 얼룩진 하수도 매설공사의 도면을 없애버리면,도면없이 땅을 내리찍는 포크레인에 의해 매설된 수도관이 터지고,전선이 끊어져 인근주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추가적인 예산지출을 요구해 국민들에게 세금부담을 지우는 것과 같다.우리는 지금 30년의 군사독재가 저질렀던 공권력의 범죄,민주화 운동의 소중한 기억을 지워버린 대가를 매일 지불하고 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30년동안 권력과 돈의 단물을 누려온 사람들의 기득권 유지보전을 위한 ‘정치’전략이라면 민주화운동 기념관은 우리사회의 정의와 양심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 그동안 무시·왜곡돼온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집결하기 위한 ‘정치적’ 몸부림이며,결집된 기억을 사회 공유의 자산으로 만들어 후대에 전수함과 동시에 민주화의 전통을 오늘에 재활성화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기억투쟁’이며,의로운 일을 하다가 고초를 당하고 불의의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한풀이굿’이다. 일제하의 민족운동이 국민국가건설 운동이었다면,분단 이후 민주화운동은진정한 ‘국민’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비록 70∼80년대 민주화운동이 국가를 책임지는 세력이 되지는 못했지만,20세기의불행한 역사를 청산한 새로운 국민국가의 도덕적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점에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념관 하나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정도의 민주주의와 자유·인권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상징이 필요하고,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반민주·비인권적 상황에 대항할 수 있는힘의 원천이 필요하며,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어떤 삶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교과서가 필요하다.박정희기념관보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이 먼저 건립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 어느 퇴직교장의 제자찾기/42년 교직마감 조응현씨

    42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접고 지난 30일 명예퇴직한 서울 상계동 상원초등학교 조응현(曺膺鉉·61) 전 교장이 옛 제자들을 애타게 찾고 있다.교단을떠나는 여느 선생님의 ‘제자찾기’와는 사연이 좀 색다르다. 교사시절(77년부터 81년까지) 담임을 맡았던 숭례초등학교 등 3개교 5개반제자들이 구입한 주식의 배당금을 재투자한 돈 4,016만원을 되돌려주려하기때문이다. 당시 조교사는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봉투를 접거나 폐품을 팔고,용돈을 아껴 모은 돈으로 해태제과,모나미 등의 주식을 구입했었다.주식은 학생들이 졸업할 때 나눠줬고 매년 나오는 배당금을 관리한 것이다. 조전교장은 “어른이 되면 배당금을 되돌려주겠다고 한 약속을 20년 만에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전교장이 찾는 제자는 ▲77년 서울 종암동 숭례초등학교 6학년 7반 졸업생 52명 ▲78년 숭례초등학교 6학년 6반 39명 ▲79년 삼양동 미양초등학교 5학년 9반 41명 ▲80년 미양초등학교 6학년 7반 71명 ▲81년 청운동 청운초등학교 6학년 1반 63명 등 모두 266명.배당금은 작게는 20만원에서 170만원까지.연락처는 (02)3421-9681. 78년도 숭례초등학교 6학년 6반 졸업생 최우석(崔祐碩·34·제일제당 대리)씨는 “선생님이 남겨주신 배당금을 나눠갖기보다는 무엇인가 좋은 일에 사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공직비리 혼쭐내는 시민단체 “활빈단”

    공직자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시민단체 ‘활빈단’의 기이한 행태가 단연화제다.이 단체는 지난 2월 대전 법조비리 때는 추상 같은 권부인 대검과 대법원을 찾아 “몸의 때를 잘 씻으라”며 때밀이수건 3,000장을 전달해 판·검사들의 머리를 젓게 했다. 경기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 부부에게도 ‘훈계성’ 책자와 때밀이수건을 주었다.임 지사는 지난달 16일 이 단체 회원들이 인천구치소로 면회가 ‘청백리열전’을 건네자“나는 필요없다”고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부인 주혜란(朱惠蘭)씨는‘신사임당일대기’등 3권의 책은 마지못해 받았으나 때밀이수건은 얼굴을 붉히며 거부했다. 이 단체는 지난 5월 검찰총장 부인 옷로비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국무총리실에 “장관 부인들에게 전달해달라”며 ‘몸뻬’18벌을 보내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또 지난달에는 경기도청과 인천시청,정부 대전청사,충남도청,대전시청을 잇따라 찾아 촌지 거절봉투와 목민심서 구절을 딴 부패추방 액자를 전달했다. 이들의‘튀는’ 행동에 당사자들은 “누구 염장 지르냐”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한다며 격려를 보내기도 한다. 활빈단은 이달 하순에는 봉천동 등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의 집 3채를 빌려1박2일 동안 고관 부인과 재벌 부인 등을 대상으로 ‘고통체험’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지난 3월 서울세관 파주감시소장을 지내다 명예퇴직한 뒤 이 단체를 이끌고있는 홍정식(洪貞植·49)단장은 “마나님들이 에어콘도 없는 곳에서 모기에뜯기는 고통을 한번쯤 체험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 “2,000명의 고관 부인에게 초청장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1회용 봉투·백 사용 크게 줄었다

    지난 2월22일 시작된 1회용품 사용 억제제도가 효과를 거두고 있다.환경부가 최근 1회용 봉투 및 쇼핑백을 공짜로 주지 못하도록 한 매장면적 10평 이상 판매업소 3,790곳을 골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회용 봉투 및 쇼핑백 사용량이 61.6%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 등 대형 매장 232곳은 1회용 봉투가 65.5%,쇼핑백이 64.8% 등 평균65.5%가 줄어 월 1,376t의 쓰레기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50평 이상 매장2,036곳은 봉투가 57.6%, 쇼핑백이 54.4% 줄어 감소율이 평균 57.5%로 집계됐다.10∼50평의 소규모 매장 1,522곳은 봉투가 51.4%,쇼핑백이 44.4% 줄어평균 51.3%의 감소율을 보였다. 쓰레기 양은 월 1,745.9t 줄었으며,1회용 봉투 및 쇼핑백을 만드는 데 드는돈도 월 17억4,374억원이 절약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평균치를 전체 규제대상 8만5,843곳으로 환산하면 월 5,139t씩 연 6만1,668t의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월 67억원씩 연 804억원의봉투 제작비와 연 100억원의 쓰레기종량제 봉투 제작 및 쓰레기 처리비도 절약할 수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6개 대형 패스트푸드 업체의 매장 907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1회용컵,접시,아이스크림 용기를 회수해 재활용함으로써 쓰레기가 평균 25.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따라 회수된 1회용품 제작비 4,300만원과 쓰레기종량제 봉투 제작비 5,200만원 등 월 5,630만원씩 연 6억8,000만원을 아낄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환경부의 1회용품 억제시책은 쓰레기 및 1회용품 제작비 감소는 물론 장바구니 제조업 등 대체산업 활성화와 종이로 만든 도시락 용기,여러 번 쓸 수있는 컵 및 접시,전분 이쑤시개 등 대체품 매출을 늘리는 효과도 낳고 있다. 또 전국 232개 시·군·구별로 20ℓ 짜리 쓰레기종량제 봉투 5개씩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쓰레기종량제 봉투 속에 포함된 비닐봉투가 평균 7∼8개에서4개로 줄어 매립장 또는 소각장에서 처리되는 쓰레기가 친환경적으로 바뀌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이르면 오는 11월부터 매장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판매업소에서 1회용품을 무상 제공할 수 없도록‘자원의 절약 및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할 방침이다. 환경부 심재곤(沈在坤) 폐기물자원국장은 “1회용품 줄이기 성패는 소비자들의 의식에 달렸다”면서 “장바구니와 쇼핑카트 사용 활성화 등 건전한 쇼핑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 화성군 前계장 비망록 내용

    “당신이 군수야, 뭐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일이지 웬 말이 많아” 청소년 수련시설인 씨랜드 불법 인·허가 과정에서 부당압력이 행사됐다는사실을 확인시켜준 화성군 전 부녀복지계장 이장덕(李長德·40·여·민원계장)씨의 비망록이 공개됐다. 이씨가 지난 3일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제출한 이 비망록에는 즉각 허가를 내주라는 강호정(姜鎬正·46)사회복지과장과 씨랜드측의 압력으로 인한 번민이가감 없이 적혀 있다. 이씨가 진입도로 미비 등 여러가지가 조건에 맞지 않아 허가할 수 없다고 버티자 회유와 협박은 집요하게 계속됐다. 다음은 비망록 내용. ■97.12.19=씨랜드 인·허가건으로 대리인인 박재천씨가 험상궂은 3명과 함께 사무실로 찾아왔다. ■12.22=박재천이 또 찾아왔다.박재천은 강호정과 함께 벌을 받아야 마땅한사람이다. ■98.1.3=강 과장이 오늘 퇴근하지 못하더라도 씨랜드 인·허가건을 끝내라고 지시했다. ■1.8=박재천 등이 군수님을 만나겠다고 한다기에 권영호(전 사회복지과 직원)씨가 그러라고 했단다. ■1.9=씨랜드 허가 관련시설보완기간 연장신청을 결재하지 않았다. ■1.30=과장이 불러서 가보니 박재천이 내게 전달하라고 했다며 배 상자 안에 5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주었다.받기 싫다고 했더니 받아서 직접 돌려주라고 했다.박재천의 농협 계좌번호를 확인해 곧바로 송금했다.굶어 죽어도그런 돈을 받고 싶지 않다. ■8.20=청소년 수련시설 등록 전 사전 영업행위에 대한 과태료 부과 결재를올렸더니 강 과장이 사인을 해주지 않았다.등록도 하지 않고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수차례씩이나 영업행위를 하는 자에 대해 무슨 법의 보호가 필요하겠는가.7월15일 현지출장을 나가 영업행위를 중지하라고 했음에도 7월22일 또영업하고 있었다.씨랜드건에 대해 과장이 이상하게 과민반응을 보인다.음식점 영업도 무허가로 하고,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우린 그건으로 인해 그동안 많은 고통을 겪어왔다.차라리 과장이라는 제도가 없으면 어떨까 하는생각도 해본다. 화성 김병철기자
  • [외언내언] 격려금 관행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로 찾아가 출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해마지않는 것이 연극계의 미풍이다. 서로 직업이 비슷한 처지의 측근들은 음료수나 가벼운 선물을 사오기도 하지만 긴 연습기간과 제작상의 고생스러움을 감안하여 금세 시들어버리는 꽃다발보다는 ‘화분대’나 ‘꽃값’으로 10만∼20만원을 내놓기도 한다. 가물에 콩나듯이 정·재계인사가 초대되는 경우에는 단원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회식비 명목으로 100만원을 내놓거나 공연이 끝난후 뒤풀이를 책임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사교의 폭이 넓은극단대표나 몇몇 배우에 한한 일일뿐 일상사는 아니다. 격려금이란 문자 그대로 어려운 여건에서 좋은 무대를 꾸며준 연극인들에게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정·재계 인사들이 내놓는 격려금이란 자신이 ‘연극 애호가’임을 과시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뇌물’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손숙(孫淑)환경부장관이 러시아 연극공연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받은미화2만달러(약 2,400만원)의 격려금 파문이 확산되더니 장관 취임 한달만에 물러났다. 각 신문은 그가 무대 위에서 공손히 절하며 격려금을 받는 사진과 함께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이 아니고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받은 대가성 없는 돈이라 하더라도 공직자의 신분에서 거액의 격려금을 받은 일은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쨌든 격려가 왜 하필 돈봉투인가. 선배의 공연에 가고 싶어도 10만∼20만원의 격려금을 준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공연장 주변의 불만은 자주 있어왔다. 또한 관행이라면 널리 어디서나 누구나 누려온 일이어야 하는데 그런단체가 “도대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한국연극협회에 등록돼있는 극단은 서울에만 102개 단체, 막상 연극을 공연하는 단체는 30개 미만이다. 1년에 한번이라도 막을 올리기 위해 극단대표들은 기업의 협찬을 얻거나 관련부처의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그러나 협찬금 규모란 기껏해야 팸플릿·포스터나 플래카드 제작, 단체 초대권을 구입하는 데 그치는 일이 허다하다.이번 파문으로 인해 어려울때 위로해주는 격려금 관행이 어느 정도 얼어붙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격려금에 연연하기보다,극단은 당당하게 기업에 지원을 요청하고 기업은 문화예술 지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가 아쉽다. 스스로 즐거워서 자청하는 것이 아니라 권유에 의한 부담스러운 관행은 고쳐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李世基 논설위원 sgr@]
  • [발언대] 정치인 축·부의금 유권자가 배격해야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혼례실태 조사 결과 1인당 평균비용 추정액이 7,539만원으로 나타났다.이를 기준으로 혼례비용을 산출하면 25조2,858억원에 달한다.그 중에는 친지,이웃들의부조금이 상당수 포함됐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경조사에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또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선거법은 지난 98년 5월31일부터 국회의원,지방의원,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이런 선거에 입후보하려는 사람들은 주례,행사 찬조금,축·부의금을 할수 없도록 규정했다.다만 평소의 지면과 친교가 있는 자에 한해 1만5,000원이하의 경조품만을 제공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인과 친분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경조사에 정치인이 부조금을 내지 않은 것에 대해 오해를 하기도 한다.또 몇몇 정치인은 사직당국의 눈을 피해 이름을 쓰지 않는 부조봉투를 내며 구두로 이름을 밝히거나 경조사 장소를 피해가며 부조금을 전달하는 등 여러가지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검은 돈을 유권자가 과감히 배격해야 한다.깨끗한 선거풍토,투명한 정치자금의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개개 국민들이정치인에게 초청장·청첩장·행사안내장 등을 보낸다면 유권자 스스로가 과거 우리 주변에 만연했던 금권 타락선거를 조장하는 주체가 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또한 이 기회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결혼식장 사용료,드레스료,사진촬영료,신혼여행경비 등 혼례비용의 과다사용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어느 선진국가에서 과도한 혼수비용을 우리처럼 사용하고 정치인에게 청첩장을 보내며 손을 벌리는 곳이 있단 말인가. 미풍양속을 벗어난 자기과시형 허례허식은 버리는 것이 국가경제를 위해,건전한 정치문화 발전을 위해 유익한 길이 될 것이다. 박귀석 [경기도 오산시 오산동]
  • <검찰 洪斗杓사장 구속 안팎>

    20일 홍두표 (洪斗杓·64)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대한 구속은 말 그대로 ‘전격적’이었다. 경찰청 전 정보국장 박희원(朴喜元) 치안감이 알선수뢰 혐의로 구속된 지 하룻만의 일이다.검찰은 19일 밤 10시40분쯤 박 국장의 구속 수감과 때를 맞춰 홍사장을 임의동행 형식을 빌려 비밀리에 연행,15시간의 조사 끝에 구속했다. 검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의 한결 날카로워진 칼날에 대해 정·관계 등에서는 ‘제2의 사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검찰은 최근 한달 동안 박규석(朴奎石)해양수산부 차관보,강정훈(姜晸薰)조달청장,박동수(朴東洙) 금융감독원 검사1국장 등을 비롯,이수휴(李秀烋)·이정보(李廷甫) 전 보험감독원장 등 전·현직 고위 관리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검찰 관계자도 “지금까지의 사정(司正)이 기간을 정해 놓고 몰아치기식으로 했다면 이제는 요란을 떨지 않고 전방위에 걸쳐 쉼없이 진행하는 ‘지속형’”이라고 털어놓았다. 홍사장의 경우도 이같은 수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특별히 언론계를 지목한 것이 아니라 최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홍사장의 혐의가 포착됐다는 것이다. 홍사장은 한국방송공사(KBS) 사장 시절인 96년 12월 63빌딩 양식당 ‘가버너스 챔버’에서 최순영(崔淳永)신동아그룹 회장으로부터 100만원 짜리 수표 100장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홍사장은 최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장소와 시기 등을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은 없었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최회장은 당시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홍사장에게 전화로 점심약속을 제의했다.삼성그룹 출신인 홍사장이 KBS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KBS 직원의 퇴직적립금 등 사내기금이 삼성생명쪽으로 쏠리고 있는데다 KBS 사장직을 연임하는 등 실세로 부각되고 있어 알아둬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는 게 최회장의 진술이다. 최회장은 홍사장과 점심을 하며 “언론의 보도가 기업에 중요하다.퇴직금을 우리쪽에 더 많이 넣어달라”는 등의 얘기를 나누었다.점심식사를 마칠 즈음 최회장은 100만원짜리 헌수표 100장이 든 봉투를 홍사장에게 건넸다.검찰은 이들 수표는 이미 세탁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계좌추적을 포기할 수밖에없었다.최회장은 이수휴씨 등에게도 세탁된 헌 수표를 건넸다. 검찰은 결국 최회장의 자백을 통해 홍사장의 혐의를 입증했다.63빌딩 양식당의 종업원이 당시 최회장과 홍사장이 만난 사실을 적은 쪽지도 수사에 보탬이 됐다. 박홍기기자 hkpark@
  • [오늘의 눈] 공무원과 돈

    이달 들어 과천 관가의 화두는 두가지였다.하나는 현직 조달청장을 비롯해옛 재무부 고위관료를 지낸 보험감독원장 및 전 은행감독원장의 수뢰혐의구속.다른 하나는 줄지은 젊은 관리들의 관가이탈 현상이다.예산청 과장이언론사 논설위원으로,금감원의 한 과장은 학계나 기업진출을 위해 사표를 냈고,재정경제부의 한 서기관은 기업으로의 전직을 고려중이다. ‘자의’건 ‘타의’건 관직을 떠나는 사건(?)들이 잇따르자 한 관료는 “‘철옹성’으로 여겨지던 재경부를 비롯한 엘리트 경제관료들의 이미지가 실추하는 반증”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물론 10년 이상의 고참 서기관과 과장이 보따리를 싸는 배경은 단적으로 말하기 힘들 정도로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다만 이들 사건들은 적지 않이 돈 문제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 관리들은 돈의 유혹에 끌릴 정도의 박봉에 시달리며 유혹의 대상이 될 만큼 권한은 여전히 강하다.그리고 유혹에 넘어가는지를 지켜보는 눈은 그 어느때보다 날카롭다.아차하면 망신살을 사기 십상이다.한 경제부처 고위 관리는 “여전히 동창이나 동향 인연으로 기업사람들이 돈봉투를 가져와 처리에 고심한다”고 토로할 정도이다. 사표를 낸 젊은 관리가 금융감독원 출신의 자기 부하보다 연봉 1,000여만원이 적은 데 불만을 토로한 것은 들어둘 만한 대목이다.30년 이상 관직생활을 한 1급(차관보)이 5,100만원,국장이 연간 4,700만원의 월급만으로 살기는어렵다.부유한 출신 또는 약사와 의사 부인을 얻거나 조건없이 자금을 후원해 주는 든든한 동창생이 있어야만 관리생활을 순탄하게 한다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산하기관에서 알아서 식사대금을 치러주던 과거의 관행도 줄고 있다.반면지위가 높아질수록 늘어나는 각종 부조금과 술자리 등 판공비 수요가 커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선배 고위관리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현실에서 젊은 관리들이 고민한다고 정부가 공무원 월급을 현실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공무원사회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는 잡무축소 등으로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야간식당 운영,각종 부조금 안받기 운동 등 비업무용 자금수요를 줄이는조치들을 마련하면어떨까 싶다. 이상일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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