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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TV 모스트원티드 VJ 한별, 유쾌한 그를 만나다

    MTV 모스트원티드 VJ 한별, 유쾌한 그를 만나다

     처음 보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순간 움찔하며 경계심을 품는데 아뿔싸 한 발 늦었다. 까불거리는 인상의 한 남자,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칭찬으로 ‘선빵’을 날린다. 잘 생겼다는 말에 잠시 어지러워하는 틈을 타, 급기야 기자에게 파고들어 말을 건다.순식간에 당했다.  어느 순간 기자는 길거리에서 처음 본 이 친구와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사람보다 더 낯선 카메라가 모습을 찍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건 그와 한참 얘기를 나누고 나서다.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얘기하고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틀어주는 케이블TV 음악 프로그램의 카메라다. 낯선 이와의 거리감을, 카메라에 대한 당혹감을 한방에 없애는 재주를 지닌 이 친구,그는 VJ 한별(본명 손한별·24)이다.  ●친근함이 무기  한별은 지난 2008년 7월부터 MTV ‘모스트 원티드’의 진행자로 마이크를 잡았다. 웃는 낯으로 누구에게나 살갑게 구는 이 친구를 최근 신사동 가로수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와하하’하는 웃음으로 시작해서 ‘낄낄’거리는 수다로 끝났다.  이 친구 한별, 외국물을 오래 먹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학을 전공할 정도로(현재 휴학중) 영어에 능통하다.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 등 영어권 스타들이 내한하면 인터뷰를 도맡아했다. 다른 리포터들에게 ‘까칠’하게 대하던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도 한별의 웃음 앞에선 유순해졌다. 결국 갤러거는 장난삼아 용돈까지 주며 그와의 인터뷰를 매우 유쾌해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아서 남들보다 개방적인 것 같아요. 해외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호주에 있었고, 홍콩에서도 몇 년 살았어요. 심각한 거 보다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냥 재미있게 살려고 하고, 그냥 즐거운 게 좋아요.”  ●오랜 외국 생활…‘빠다’ 냄새는?  방송에 대한 확고한 뜻이 있어서 VJ활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어쩌다 보니 프로그램을 맡았고 그냥 놀 듯이 방송일을 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외국물 먹고 겉 멋 든 ‘빠다 냄새’ 나는 철없는 교포의 얘기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친구, 제법 바르게 살아왔다. 군 생활을 제대로 마쳤다는 게 마음에 든다. 공군 모부대 통번역병으로 을지포커스훈련 등에서 막중한 임무를 소화해냈다. 대학교에서는 장학금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스스로 돈을 벌고 있지만 쓸데없는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멋쟁이 아이템인 ‘지포 라이터’도 없다. 횟집 상호가 새겨진 300원짜리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간다.  “아버지가 되게 ‘짠’(검소한) 분이세요. 뭐든 스스로 해야 한다고 배우고 자라왔구요. 군대요? 아무리 외국생활을 했어도 팔다리 멀쩡한 한국 남자라면 안 갈 이유가 없잖아요.”  군대를 다녀온 뒤 그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모 교통방송 프로그램에서 VJ로 발탁된 것.이후 그 경력을 살려 MTV 모스트 원티드의 진행자 자리도 꿰찼다.면접장에서도 심사위원들과 친근하게 실컷 떠들고 웃고 나온 친숙함이 합격의 비결이다.  ●인터뷰의 달인  이 친구, 길에서 인터뷰를 할 때도 친구처럼 다가간다. 어디까지나 인터뷰 당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자신은 들러리라는 점을 늘 명심한단다. 한별은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대본도 없는 100% 리얼 프로그램이라 한별이 직접 시민들을 섭외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 20번 정도 시도해야 1~2팀 할까말까다. 그중 가장 힘빠지게 하는 곳은 압구정과 강남.  “압구정은 죽어도 안 돼요. 4시간동안 5명 하면 잘 풀리는 거예요.그래서 가기 싫어요. 괜히 도도하게 비싸게 구는 애들이 많잖아요. 또 강남은요, 유동인구는 되게 많은데 다들 지쳐있어요. 표정이…. 회사·학원 다녀와서 ‘오늘 하루 겨우 끝났구나.’ 이런 느낌이랄까. 우울한 거리에요.”  그 반대인 곳은 명동하고 홍대!  “거긴 다 ‘룰루랄라’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저도 더 들뜨게 돼요.”  ●원래는 록밴드 보컬리스트  인터뷰하기 가장 편하다는 홍대앞은 한별에겐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한동안 록밴드 ‘래빗 펀치’의 보컬로 활동하며 가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음악에 관해서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그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주는 멤버들을 찾기 힘들어 팀을 해체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 멤버들에겐 ‘차라리 빠지는 게 낫겠다.’고 말을 해왔어요. 재능은 작은 부분이라 생각해요. 음악에선 특히 그렇죠. 나머진 노력으로 채울 수 밖에 없거든요.”  솔로가 된 한별은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 친구 대단한 야심가다.  “팀 해체 후에 제가 먼저 기획사를 계속 알아보고 다녔어요. 보다 넓은 무대에 서려면 아무래도 회사에 소속된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전 원래 음악하는 사람이니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거든요.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 그 심장이 터져 죽어버릴 거 같은 쾌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음악적 욕심이 대단한 이 친구는 훗날을 위해 하루에 1~2곡씩 꼬박꼬박 만들고 있다. 방송일과 병행하기 때문에 하루 수면시간이 4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방송 활동을 위해 쏟는 시간이 아까울 법도 하다. 음악의 길을 걷고 싶다는 그에게 방송활동은 방해물이 아닐까. 하지만 음악적으로 더 크기 위한 ‘전략’이란다.   ”음악만으로 뜰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니까요. 아무리 음악이 좋다고 하더라도 특히 제가 추구하는 록으로는 성공문이 좁으니까요. 그래서 방송일도 하고 있는 거고, 인맥 쌓으려고 CF 같은 것도 찍고 있구요.”  먼저 다른 방면에서 이름을 알린 뒤 그 명성을 이용해 자신이 추구하는 장르에 도전한다는 한별의 방식. 너무 일찍 세상과 타협한 비겁한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했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잘게 쪼개 사는 까닭은 돈벌이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는 것.이 친구는 그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치열하게 젊은 날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아파트와 인간의 군상-소설 3選] 미션에 빠져 집을 좇는 사람들

    대출 2000만원을 끼고 마련한 6000만원 정도에 햇빛 잘 드는 창문 있는 집이 필요하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손가락질 받지 않고 키울 수 있는 동네에 집을 갖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치매를 겪고 있지만 본능은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시절 봤던 호수가 내다보이는 소박한 집을 꿈꾼다. 내 집 마련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목표물들이다. 한겨레 창비신인소설상을 받고 등단한 김윤영이 택한 자신의 첫 장편소설의 주제는 바로 많은 이들을 웃게 하고, 한숨짓게 만드는 부동산이다. 제목도 기가 막히다. 최근 인기를 얻었던 한 드라마의 제목을 패러디한 듯 ‘내 집 마련의 여왕’(자음과모음 펴냄)이니, ‘풍속소설’을 자처하며 의도적으로 본격문학을 비틀고자 하는 의도도 숨어 있겠다. 집이라는 것이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달뜬 욕망의 표상이면서도, 한편으론 가족 단위를 이뤄주는 안락한 보금자리로서 간절한 현실임을 여실히 확인시킨다. 작가는 이를 ‘솔(Soul) 하우스’라고 이름붙인다. 부모 없는 형제들과 치매 노인의 솔 하우스, 장애아들을 가진 가족의 솔 하우스 등, 형태는 다르지만 소박한 욕망이 진지하게 펼쳐진다. 작가 김윤영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임수빈’은 이러한 다양한 욕망과 좌절을 함께 안겨주는 ‘집의 문제’와 연신 맞닥뜨린다. 사실 소설의 구성은 허술하다면 허술하다. 미션을 해결하면 새로운 미션이 연이어 등장하고, 과거의 미션을 통해 만들어진 인연이 새 미션에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는 식이다. 일본 만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나선형 과제 해결 구도’다. 실어증 딸과 기억상실증 남편까지 등장, ‘솔하우스’에서 다시 만나 각각 말과 기억을 되찾기도 한다. 실제로 김윤영의 ‘…여왕’은 금기를 건드렸다. 부동산이라는 소재와 주제가 그러하듯 헛기침하며 점잔빼는 문학으로서는 차마 다루지 못했던 것들이다. 다만 르포 소설입네 하며 최소한의 소설적 형식도 갖추지 못한 삼류 글들만 나돌아다니는 현실에서 ‘…여왕’의 극사실적인 현실 묘사는 소설의 본령이 달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윤영은 “돈 냄새가 나면 일단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순문학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현실적인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면서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 싶다.”며 문학적 위악(僞惡)의 역할을 자처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현장 행정] 당일 처리 85%… 주민의 ‘효자손’으로

    [현장 행정] 당일 처리 85%… 주민의 ‘효자손’으로

    “아, 아… 안녕하십니까. 광진구 중곡3동 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광진구청에서 ‘찾아가는 현장민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니, 생활현장에서 느끼는 불편사항이나 구 행정에 관한 애로사항 등을 지금 현장 차량으로 나오셔서 말씀해 주시면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16일 오후 2시 광진구 중곡3동 주택가. 2.5t 트럭을 개조한 현장민원 차량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막다른 골목 끝에서 반백의 한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리 오라는 뜻으로 연신 손짓을 했다.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거주했다는 김모(80) 할머니는 “보일러 연통이 빠져서 가스 냄새가 진동을 해. 머리가 아파. 근데 구청에서 연통도 연결해 주나? 이거 고치려면 5만원은 들 텐데…. 아휴, 돈이 겁나서 사람 못 불러.” 걱정스러운 낯빛을 보이던 할머니는 곧 도와드리겠다는 직원의 말을 전해 듣고는 환한 함박웃음을 띄었다. 10여분 뒤 현장민원 차량이 200여m 떨어진 인근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얼마 전 민원 차량에서 거주자우선 주차문제로 도움을 받았던 주민 한 명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청소·수리 등 가려운 곳 긁어줘 광진구가 지난 9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찾아가는 현장민원실’ 사업이 구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효자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주3회(월·수·금)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는 이 사업은 직접 주택가를 찾아가 불편사항을 접수·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존 민원해결 방법이 주민들의 전화나 방문을 통해 이뤄진 반면 이 사업은 먼저 현장을 찾아가 의견을 묻고 불편사항을 처리해 주는 적극적인 민원해결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 고객은 구청을 찾기 힘든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인터넷과 전화 등에 익숙하지 않은 구민 등이다. 처리분야는 ▲각종 민원상담 ▲청소 ▲도로보수 ▲가로정비 등 다양하다. 이 때문에 차량 안에는 현장에서 언제든 고장난 시설 등을 수리할 수 있는 삽, 망치, 커팅기, 소독기 등 각종 장비는 물론 소형 냉장고와 전기주전자도 갖춰져 있다. ●주택가 방문해 신속히 불편 해결 민원해결 실적도 눈부시다. 구는 9~11월 3개월 사이 203건의 불편사항을 접수, 이중 198건을 해결했다. 처리율만 97.5%에 이른다. 처리기간별 비율을 살펴보면 3시간 안 71%, 3시간 이상~하루 14%, 7일 안 2%로 나타났다. 당일 처리비율만 85%. 그만큼 신속하다는 의미다. 민원차량 기동대는 감사담당관 기동순찰팀의 이정현 팀장과 박상삼, 김병철 주임 3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장 민원실을 운영한 지 4개월이 된 지금. 처음에는 남의 일처럼 스쳐 지나가던 구민들이 입소문이 퍼지자 인사도 건네고 소소한 상담을 하는 일도 늘었다. 그만큼 주민들의 일상속에 동네 반장처럼 친근하고 든든한 존재로 자리잡은 셈이다. 정송학 구청장은 “출퇴근 시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청개구리 소/김춘옥

    [엄마와 읽는 동화] 청개구리 소/김춘옥

    옛날 옛날에, 아기 청개구리와 엄마 청개구리가 살았대. 아기 청개구리는 엄마의 말을 늘 반대로 듣는, 말 안 듣는 청개구리였지. 그런데 어느 날, 엄마 청개구리가 병이 나서 죽게 되었어. “아가야, 내가 죽거든 개울가에 묻어라.” 엄마 청개구리가 죽으면서 말했지. 이번에도 아기 청개구리가 반대로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아기 청개구리는 이번만큼은 엄마의 말을 잘 듣기로 했어. 엄마를 개울가에 묻은 거야. 이제 청개구리들이 왜 비가 오면 우는지 알겠니? 에이, 그것도 모를까 봐요. 엄마 무덤이 비에 떠내려갈까 봐 우는 거죠. 그래서 내가 엄마 말을 잘 들으라는 말이죠? 얌전히 지내면서 토실토실한 소로 자라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엄마, 나는 이 축사 안에서 다른 소들처럼 얌전하게 있다가 고기소로 팔려가는 게 싫어요. 축사 바깥의 풀밭을 마구 뛰어다니는 게 좋고, 울타리를 쿵쿵 치받는 게 신난다고요. 가능하면 울타리를 넘어도 좋고요. 앗,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 새벽에 우리 축사에 불이 환하게 켜졌어요. 바깥에는 트럭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서 있네요. 주인아저씨가 다가와 억센 손으로 내 목을 그러잡았어요. 튼튼한 밧줄로 입 주위를 한바퀴 돌리고 양쪽 뿔까지 몇 번 돌려 단단히 묶었어요. 숨이 막힐 것 같아요. “왜 이래요? 엄마, 살려줘요!” “아가야, 아가야!” 엄마도 목 밧줄이 난간에 묶인 채로 소리를 쳤어요. 난 엄마를 돌아볼 틈도 없이 바깥으로 질질 끌려나왔어요. 주인아저씨가 나를 억지로 트럭에 태웠어요. “네 뜻대로 살아라!” 트럭이 떠나는데, 엄마 목소리가 따라 왔어요.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였어요. “내 생각대로요? 아니면 내 생각과 반대로요?” 입이 단단히 묶여서 또렷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어요. 내가 평소에 청개구리처럼 말을 잘 안 들어서 엄마가 거꾸로 말한 걸까요? 아니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 걸까요? 엄마한테 다시 물어봐야 하는데 트럭이 출발했어요. 어느덧 트럭이 우시장에 도착했어요. “자, 어서 내려! 이 놈의 소!” 주인이 내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며 다그쳤어요. “음, 여기에 매어두면 되겠군.” 주인은 내 고삐를 먼저 와 있던 소들 사이에 맸어요. 그리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어요. 새삼 엄마가 보고 싶어졌어요. “음메에.” 나는 목청을 돋우고는 하늘을 향해 크게 외쳤어요. 엄마가 내 소리를 들었을까요? “그놈 울음 한번 우렁차군.” 그때였어요. 턱수염이 부스스한 아저씨가 내게로 다가왔어요. 나를 살펴보고 뿔도 만져보았어요. 나는 은근히 기분이 상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노려보았어요. “얘야, 얼른 고개를 들어. 농부들은 소가 고개를 숙이면 사람을 치받을 자세라고 싫어한단다.” 옆에 있던 늙은 소가 낮게 속삭였어요. “제가 바라던 바라고요.” “잘 봐, 저 사람은 농부란다. 땀을 흘려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논이나 밭을 가는 일이요? 그러면 내가 고기소로 죽지 않을 수도 있단 말예요?” “아무렴, 너 같은 수소는 역시 쟁기질을 하는 게 제격이야. 농부에게 팔려간다면 더없는 축복이지, 암.” 늙은 소의 말은 솔깃했어요. “성질이 보통 아니군.” 턱수염도 순하지 않은 내가 오히려 마음에 드는 가 봐요. “이 놈의 아비는 힘이 대단했지요. 싸움소로 이름을 날렸던 당찬이의 새끼라니까요.” 저쪽에 가 있던 주인이 다가오며 말했어요. 턱수염이 날 살피는 걸 보고 있었나 봐요. “자, 이만하면 어떻소? 굳이 중개료까지 지불할 건 없잖소.” 턱수염이 만 원짜리 지폐 뭉치를 주인에게 내밀었어요. “좋소, 아주 좋은 놈을 고른 거요.” 주인이 돈을 다 세고 나더니 고삐를 풀어 턱수염에게 건냈어요. 나는 마침내 다른 주인에게 팔린 거였어요. 턱수염의 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지요. 집 뒤 언덕배기엔 산으로 이어진 밭이 넓게 퍼져 있었어요. 축사는 집 옆에 붙어 있었는데, 내가 살았던 곳보다 훨씬 작았어요. 다른 소들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나 혼자 이 축사에서 살 모양이었어요. “오늘은 편히 쉬어라.” 턱수염이 나를 축사 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바닥에는 짚을 새로 깔았는지 보송보송하고 상쾌했어요. “안녕? 난 민수야. 앞으로 잘 지내자.” 아이가 다가와 먹이를 여물통에 넣어 주었어요. 다음날부터 힘든 날이 시작되었어요. 난 쟁기를 끌며 턱수염과 언덕배기 밭을 갈았지요. 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했어요. “우시장에서 말이야.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우린 좋은 팀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언덕배기 밭을 모두 갈자, 턱수염이 아주 기뻐했어요. 나도 처음으로 뭔가를 했다는 뿌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여름이 되자, 아이는 나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어요. 향기롭고 싱싱한 풀을 맘껏 뜯어 먹을 수 있었지요. 때때로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가곤 했어요. 앞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는 비릿한 냄새도 섞여 있었고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어요. “올해는 땅을 좀더 넓혀야겠어.” 턱수염이 언덕배기 밭을 모두 갈아엎은 후에 말했어요. 밭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숲에 밭을 좀더 만들고 싶었나 봐요. “장마가 지면 흙이 흘러내리지 않을까요?” 아이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이 정도는 괜찮아.” 턱수염은 곧 사람들을 불러다가 나무들을 잘라버렸어요. 그리고 나와 함께 쟁기질을 해서 밭을 더 넓혔어요. 그리고 밭농사는 작년보다도 훨씬 잘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여름이 다시 지나고, 가을이 또 다시 지나고, 겨울도 지났을 때였어요. 이제 턱수염이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트랙터를 샀던 거예요. 트랙터는 나대신 밭을 척척 갈아엎었어요. 나는 이제 축사에서 여물만 축내게 되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까 내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어요. 그저 고기소로 팔려 갈 날만 기다리는 소가 된 기분이었지요. 여름이 되자, 아이는 여전히 나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어요. 마음이 불안하니까 전처럼 풀도 맛있지가 않았지요. ‘고기소로 팔려 가기 전에 도망을 칠까?’ 나는 앞산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자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렸어요. 산으로부터 물이 계곡을 타고 무섭게 흘러내렸어요. 급기야 불어난 물이 새 밭에 산사태를 일으켰어요. 밭은 흙더미로 변하고 곳곳에 나무뿌리며 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지요. “아이고, 이를 어쩐대요? 올해 농사를 망쳤으니.” 밤새도록 턱수염의 방에서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설핏 잠이 들었다가 누군가가 깨우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어요. 이른 새벽이었어요. “쉿! 조용히 따라와.” 나는 아이가 이끄는 대로 조용히 따라갔어요. 우리는 들판을 가로질러 어둠을 뚫고 계속 걸어갔지요. 이 들판은 눈을 감고도 걸어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아이와 내가 언제나 함께 쏘다니던 곳이었으니까요. “자, 어서 가.” 앞산 입구에 도착하자 아이가 고삐를 풀어주었어요. 그리고는 내 목을 꼭 껴안더니 살며시 놓아 주는 거예요. “바보야, 아빠가 널 팔 거래. 난 네가 죽는 걸 볼 수 없단 말야. 사실은 벌써부터 널 사려는 사람이 있었어. 물론 나 때문에 팔지 못했지만….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어. 어서 가.” 아이가 나를 막 떠밀었어요. 나는 그대로 거길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 어디로 가지?’ 나는 캄캄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한참을 걸어가다 나무 밑에서 잠시 멈추었지요. 아, 바람이 불기 시작하네요. 어느 여름날 들판에서 풀을 먹다가 맡았던 비릿한 냄새가 나요. 바람을 따라 가봐야겠어요. 쏴아아, 쏴아아.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와요. 그런데 며칠 낮밤 소리를 따라 가다 보니 갑자기 앞이 탁 트였네요. 드넓고 파란 물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요. 내려가는 길에는 계단처럼 층층으로 밭이 있고요. “이랴, 쏴아아! 워워, 쏴아아!” 밭에서 할머니는 쟁기를 끌고 할아버지는 쟁기를 밀고 있어요. 할머니가 마치 나처럼 앞에서 끌고 할아버지는 농부처럼 뒤에서 밀며 사이좋게 쟁기질을 하고 있어요. 정말로 평화롭고 즐거운 풍경이에요.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어요.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한 식구처럼 맞아 주셨고요. 이제 생각해 보니, 엄마는 나에게 내 생각대로 살라고 말했던 거 같아요. 날 청개구리로 여기지 않았던 거죠. ●작가의 말 요즘 소들은 축사에서 편안하게 자라 고기소로 대부분 생을 마감합니다. 과연 축사의 소들은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생각해 봤을까요. 우리 어른들도 아이들이 축사처럼 잘 만들어진 세상에서 얌전히 살아가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아무 탈 없이 자라 엘리트가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경계선을 넘어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아이들, 그들의 무모한 열정, 낯선 꿈들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길 원하며 글을 씁니다. ●약력 단국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아동문학을 전공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박물관 가는 길’이 당선돼 등단했다. 저서:‘내일로 흐르는 강’ ‘달빛계로 가다’ ‘작은 나라’ 등
  • “그림은 미쳐야 해… 조급해하지 말고”

    “그림은 미쳐야 해… 조급해하지 말고”

    지팡이를 짚고 앉은 노()화가는 작품 하나하나의 의미와 주제를 설명했다. 그림은 5분 이상 보아야 한다고,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주는데 그림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고 살짝 질타하면서 말이다. ‘가장 한국적인 현대화가’ 이만익(71)이 12월 3~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개인전 ‘휴머니즘 예찬’을 연다. 진한 윤곽선에 단순화된 인물과 토속적인 색채로 역사·설화·문학 등을 통해 ‘한국의 정한’을 표현했던 그는 최근 전 세계의 고전문학과 음악 등으로 주제를 넓혔다. 개인전을 앞두고 신사동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나한테 비엔날레 가자는 사람이 없더라고.”라며 농담처럼 주제의 폭을 넓힌 이유를 말했지만, 곧이어 “틀에 묶이지 않고 그리고 싶은 것은 자유롭게 그린다.”고 덧붙였다. 작가 이만익의 성장과정은 한국 미술의 역사이자 성장과 같다. 1938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8살인 서울 효제초등학교 2학년 때 미술반에서 수채화를 배웠다. 경기중 3학년 때인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현 대한민국미술대전·이하 ‘국전’)에 입선했으나 중학생 신분이 논란이 됐고, 이후 국전 출품 자격이 ‘대학 3학년 이상’으로 수정됐다. 미군부대에서 구해 온 타이프 용지에 스케치를 하던 그는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고 안국동 앙가주망 화실에서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일가를 이룬 박서보, 김창렬, 윤명로 등과 저녁마다 그림을 그렸다. 1959년부터 국전에서 3회 연속 특선을 한 이 작가는 35살 되던 해 아내를 처가에 ‘버린’ 채 10년간 미술교사 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들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렘브란트나 루오같은 서양 유명화가처럼 되고 싶은 생각에 파리에 가서 처음으로 서양 대가들의 그림을 봤는데 다 자기 세계와 개성이 있더군요. 독자성을 못 가지면 인정받지 못 하는데 서양화를 그리니 남의 냄새가 나서….” 원근법처럼 기존에 익혔던 서양 미술기법을 모조리 버리고 그림을 평면화해서 ‘manik’이란 사인이 없어도 이만익의 그림임을 알아볼 수 있는 화풍을 이루기까지 이 작가는 ‘죽을 고비’라 할 만큼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 작가는 뮤지컬과 영화제의 포스터 작업, 1988년 서울올림픽 미술감독 등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뮤지컬 제작자 윤호진씨와의 친분으로 ‘명성황후’를 그려 뮤지컬 포스터로 썼는데, 미국 링컨센터에서 공연할 때는 이 포스터가 뉴욕의 지하철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그는 그림 ‘명성황후’에 대해 “수억 원을 줘도 안 판다고 기사가 나는 바람에 팔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다. 뮤지컬 원작자인 이문열씨가 사겠다고 했으나(요즘 추세에 견줘 작은)90호짜리라 팔지 않았다.”며 껄껄 웃었다. 원래는 포스터를 팔고 남은 돈의 반만 받겠다는 조건으로 그렸다. 이 작가는 ‘명성황후’의 미국 공연이 끝난 뒤 제작자로부터 150만원을 받았다고 전했다. 혼자 그림을 그릴 때 음악을 들으면 기가 빠져나가는 듯해서 시를 외운다는 노작가는 “조금 더 나다운 멋진 그림을 몇 개 더 그려봤으면 한다.”고 앞으로의 소망을 밝혔다. 그리고 미술계 대선배로서 미술학도들에게 “미쳐야 한다. 자기를 만드는 데 조급해선 안 된다.”란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우리는 정말 스스로 생각하고 사는가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북극 빙하가 녹고,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결정적인 원인을 늘어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탄소 배출을 제한하고 태양열 같은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는 데 온갖 돈을 쏟아붓는다. 과연 이런 행동은 옳은 방향인가. 사랑에 빠진 상대가 멍청이인 것을 알지만 헤어나질 못하는 여성이 있다. 이성이 자리한 대뇌피질은 “녀석을 차버려!”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감정 중추인 변연계는 소리친다. “그래도 저이는 진짜 귀엽잖아!” 결국 그냥 사귄다.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면서. 그런데 이게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의 소비를 촉진하는 힘이었다면, 어떤 상관관계로 풀어낼 수 있을까. ●보고 듣는 대로 믿는 현대인 꼬집어 독일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학자’로 불리는 빈스 에버르트는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이 지금처럼 생활한다면 수년 뒤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환경론자의 히스테리는 정당한가. 진정 친환경 제품을 이용하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까. 휴가철에 여행가방을 들지 않고, 해외로 벗어나지 않는 독일인은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없는 것인가. 유전자 변형 토마토를 생산하는 기업은 인류의 건강에 해악을 저지르고 있는가. 비만이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꼭 벗어나야할 ‘악의 축’으로 규정한다면, 다이어트 팁을 ‘먹는 양을 줄이고 운동해라.’가 아닌 ‘다른 부모를 찾아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에버르트는 이런 질문들은 던지고 다소 황당하면서도 유머스럽고 기발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조경수 옮김, 이순 펴냄)를 완성했다. “여러분은 스스로 생각합니까.” 책 첫머리부터 저자는 뜬금없이 질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하며 그럴싸하게 ‘당연하지. 생각하지 않는 그 순간은 나 자신은 내가 아닌거야.’라는 대답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생각하고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생각’은 ‘언제 천장 페인트칠을 했더라?’거나 ‘괴델의 정리가 뭐였지.’라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판단과 주장을 만들어내는 사고 행위이다. 하지만 정보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인간은 그 사고를 대체로 ‘아웃소싱’한다. 확인되지 않는 소문과 각종 음모론, 감언이설 등에 접하며 사고의 오염을 겪는다. “인간은 특별히 잘 듣지도 못하고, 냄새를 잘 맡지도 못하고 털도 별로 없으며, 날카로운 발톱이나 맹수같은 이빨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토끼만큼 증식했다. 수레바퀴와 천연두 백신을 발명했고 심지어는 전기로 창문을 올리는 장치마저 고안해냈다. 사고는 우리의 진화적 지위이다. 그런고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토록 적다는 사실이 나는 매번 놀랍다.” 저자는 책을 통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들은 대로 되풀이하며, 본 대로 믿어버리는 무감각에 강력한 전기 자극을 주어 사고 세포를 되살리고자 한다. ●논리적이면서도 유머 가득한 풍자 앞서 말한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구 역사를 보면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 않았을 때도 이미 엄청난 기온 변화가 있었다. 1만 5000년 전 빙하가 녹은 것은 네안데르탈인들이 고기를 불에 구워먹기 시작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 탓이 아니다. 기후 변화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이산화탄소만 꼽을 수는 없다. 사실 기후 연구도 결코 정확한 과학이라 하기 힘들다. 저자는 세계 기후 보고서 13장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기후 모델은 연계된 비선형적인 카오스적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기후 시스템의 장기적 예측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환경 오염이 안전한 수준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험에 가입할 때든, 세상을 구할 작정이든, 어떤 경우에도 간과하기 쉬운 세목을 꼼꼼히 읽어라.”는 저자의 말은 영향력있는 학자들의 말이라도 비틀어보고 따져보는 과정을 가져보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기, 종류, 추가사항 등을 캐묻는 커피 주문이 귀찮아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저자는 “평범한 일상에서는 결정권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뭔가 결정한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유로 80센트를 내고 얻는 것은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빈스, 톨, 프라푸치노, 캐러멜, 로우팻, 디카페인’으로 규정되는 자아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책은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 기발한 전략으로 가득하다. 물론 과학자답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논거로 주장을 뒷받침한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정작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잊어버린 엘 고어 같은 사람들이 짜증난다.”거나 “전 재산을 침대 밑에 보관하고 빨리 돈을 꺼내줬던 할머니가 홈뱅킹의 최초 형태” 등 톡톡 튀는 내용으로 재미를 더한다. 마치 해학 넘치는 시사 스탠딩 쇼를 글로 옮겨놓은 듯.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서울광장] 이재오보다 윤리위/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재오보다 윤리위/진경호 논설위원

    아스팔트. 1970~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지독함과 척박함, 열기가 묻어나는 이 단어에 잘 어울리는 정치인이 이재오다. 신념, 소신, 강직 이런 것보다는 악, 깡, 독이 더 어울리는 게 이재오다. 뭐든 뿌리를 뽑는 쪽보단 물면 안 놓는 쪽에 가깝다. 행동대장, 군기반장, 전사…. 그가 완장을 찼다. 국민권익위원장. 1990년 2850만원을 주고 산 은평구 구산동 후미진 골목 끝 23평짜리 단층집의 주인으로 20년을 살아온 그와, 국민들의 고충을 덜어 주고 공직사회의 구린 냄새를 씻어내는 곳의 책임자라는 자리는 궁합이 맞아 보인다. “고위공직자 2000명의 청렴도를 조사해 순위를 발표하겠다.” “청렴도가 낮은 공공기관은 어떻게든 조치하겠다.” “감사원 검찰 경찰 국세청과 반부패기관 연석회의를 갖겠다.” 취임 20일도 안 됐건만 ‘어사 이재오’를 외치며 쏟아낸 말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하다. 사실 그는 권익위의 전신인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의 역대 위원장 13명과 비교해 정치적으로 가장 무겁다.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성진 전 법무장관 등 중량감 있는 인사도 몇 있었으나 다들 ‘전직’이었던 반면 그는 ‘살아있는 권력’이다. 어디까지 올라설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이 무겁고 무섭다. 아침 6시40분 출근해 오전 일과를 후다닥 마치고는 ‘민생현장’으로 달려가는, 이 힘 세고 부산스러운 위원장을 맞은 권익위는 어떤 표정일까. “업무 협조가 잘 되죠. 그런데 얼마나 계실까요.” 영악하다. ‘권익위를 위한 이재오’보다 ‘이재오를 위한 권익위’가 될 가능성과 후유증을 경계한다. 하긴 내년 7월이면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열린다. 지방선거의 여파와 맞물려 당이 들썩일 시점이다. 그가 강 건너 불 보는 구경꾼으로 남을 리 만무하다. 물론 그가 갈 곳 없어 권익위를 택한 것은 아닐 게다. 오히려 고르고 고른 자리인 듯하다. 권익위원장에 임명되기 한 달 전인 9월1일 시사월간지 ‘신동아’에 실린 인터뷰가 정황증거다. “장관할 생각 없다.”면서도 “서민의 고충을 해결하고 공직자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권력이 깨끗해지는 데 이바지하는 역할을 해야죠.”라고 했다. 고충 해결. 부패 척결. 권익위원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행보로 고픈 배를 채운다면, 나 이재오는 강도 높은 사정으로 아픈 배를 달랜다! 더 할 나위 없는 구도다. 2인자를 넘어 국정 동반자로서의 위상까지도 넘볼 수 있다. 경제 대통령 이후의 화두가 될 공산이 큰 ‘깨끗한 정치’를 선점할 수 있다! 정치인 이재오의 손익을 떠나 공직비리 척결은 당위(當爲)다. 다만 이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이 구호로 되지 않는다고 했듯 비리 척결도 말로 되지 않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교왕과직(矯枉過直)이다. 의욕이 지나치면 일을 그르친다. 이재오가 떠난 권익위, ‘지속 가능한 비리 척결’을 위해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 2000명 남짓한 고위공직자의 등록재산 심사를 행정안전부 윤리담당관실의 10명도 안 되는 인력이 맡고 있는 게 공직자 재산등록제도의 현주소다. 1993년 도입 이후 16년 동안 연인원 2만명 이상을 조사하고도 검은 돈을 발견해 옷을 벗긴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제도다. 우리도 싱가포르의 부패조사청(CPIP), 미국의 정부윤리청(OGE)처럼 독립된 부패방지기구를 가질 때가 됐다. 공직자윤리위 업무를 권익위로 이관해야 한다. 실세라면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나.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국민 아버지’ 최불암 “배우 되기 전에 인간이 돼야… 너무 도덕적인가… 허허…”

    ‘국민 아버지’ 최불암 “배우 되기 전에 인간이 돼야… 너무 도덕적인가… 허허…”

    양복 윗도리의 왼쪽 소맷부리에 덧댄 천에 슬쩍 눈길이 간다. “이거 40년된 옷이야. 재가 떨어져서 덧댔지. 그냥 입고 나왔지만 전혀 못입을 것도 아니잖아? 모양도 나쁘지 않고…. 허허허” ‘국민 아버지’ 최불암(69)이 지난해 ‘식객’ 이후 1년 남짓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26일 시작한 SBS 특별기획 ‘그대 웃어요’(극본 문희정·연출 이태곤)를 통해서다. 우리 사회의 한창 어려웠던 시기를 겪으며 몸에 밴 탓에 평소 집에 있을 때 전기를 자꾸 끄다가 자녀들에게 한소리 듣는다고 빙긋 웃는 모습에 극중 강만복이라는 캐릭터가 겹쳐 보인다. 만복은 물 한방울 허투루 흘러도 난리를 치고, 신발짝 닳게 왔다갔다 하지 말고 그냥 집에 있으라고 호통을 치는 노인네다. 암을 앓고 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에겐 목청 큰 잔소리꾼일 수도 있다. 서울 목동에서 그를 만났다. ●철저한 코믹드라마속 돈에 집착하는 수전노役 “내 역할은 돈을 지키는 노예, 수전노야. 구두쇠나 노랑이라고도 할 수 있어. 물질에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은 모습이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역설적으로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아끼며 사느냐, 그런 것이 잘 표현됐으면 하지. 경제가 좋아지려면 국민들에게 이런 면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 만복은 이북 출신으로 고생 끝에 재벌 집안에 운전기사로 들어가 평생을 바친다. 회장이 세상을 뜬 뒤 재벌 집안이 몰락하자 그 식솔들을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게 한다. ‘그대 웃어요’는 한지붕 두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치관의 충돌을 풍자적으로 다루게 된다. “만복을 대표하는 또 다른 성격은 바로 의리야. 모든 것을 아껴쓰자는 것 말고도 사람의 도리와 의리를 지키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잘 살펴보면 은혜를 갚아야 할 경우가 많아. 은혜를 모르면 짐승이라는 말도 있잖아. 은혜라고 하면 젊은 세대들에게는 촌스럽게 느껴질까? 허허허.” ‘그대 웃어요’는 철저하게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는 드라마다. 1990년대 본의 아니게 짧은 유머 ‘최불암 시리즈’의 주인공이 돼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코믹 연기는 1999년 시트콤 ‘좋은 걸 어떡해’, 2004년 영화 ‘까불지마’ 등에서 이따금 접해봤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막장이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많다고 하더라고. 윤리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작품들도 있다고 하고. 이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고 해서 출연을 결심했지. 너무 웃기는 게 흠이야. 겉으로만 요란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고민도 많이 해. 이유 있게 웃겨야지 엉터리로 웃기면 안 돼. 리얼하게 연기해서 진실이 진실을 찾아가는, 재미있으면서도 페이소스가 있는 웃음을 만들어야지. 힘든 시기에 안방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도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시대의 문제를 고쳐가는 것도 드라마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설명. 마냥 웃기고 새콤달콤함만 전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TV를 보면 걱정스러운 점이 많아. 나는 좋은 방송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고 생각해. 드라마도 유유한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인간상을 만드는 데 영향력을 보태야지. 시청률이 좋지 않더라도 그런 좋은 영향을 주면 결국 다 보게 돼 있어. 너무 도덕 교과서적이고 훈장 같은 소리인가? 허허허” 최근 들어 연기 활동이 예전만큼 왕성하지는 않다. “한번에 욕심을 내면 안 돼. 몸과 컨디션, 제작 여건도 맞아야 하지. 그런데 쉬고 싶어서 쉬었더니 한없이 게을러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 연기를 잠시 쉬는 순간이라고 해도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개인 운동부터 집안 대소사, 그리고 사회 활동까지. 워낙 우리 시대 아버지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까닭에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을 비롯해 각종 관광이나 문화 행사 등의 봉사, 홍보 활동이 이어진다. “쉬다보면 후배들에게 죽어도 내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남겨야 하는 정신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사명적으로 밀려와. 나이를 들다 보니 그런 생각이 생기는 것 같아. 마침 이 작품 제의가 들어왔지.” 그래서 오랜 만에 젊은 후배들과 만나고 있는 게 반갑단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이민정, 정경호, 이천희, 최윤정 등과 함께 하고 있다. 먼저 칭찬이 앞선다. “캐릭터 분석이야 당연히 하고 나오는 것이겠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 정말 능력이 있어. 잘해. 보기 싫은 모습은 없어. TV나 인터넷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유연한 것 같아. 하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숙달되면 안돼. 깊이 있게 심연의 연기가 나올 수 있도록 많은 작품에서 만나 가르치고 경험시켜 주고 싶어.” ●“후배들 정말 능력 있어… 사회 보는 눈은 키워야” 젊은 시절에 다른 사람의 연기를 많이 접하며 공부하고, 특히 사회를 보는 올바른 눈을 가지기 위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연기자는 남의 집 안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가는 사람이야. 느낌이 나쁘면 시청자가 받아들이지 않지. 안방에서 대우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격을 만들어야 해. 인기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나라를 걱정하고 역량껏 봉사하라고 말하지. 나라가 없는데 한류 스타가 나올 수 있겠냐는 거지. 국민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고.” 행복한 가을이다. 촬영을 하며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기 때문이다. 들판에 나갔더니 누런 냄새가 나고, 밤송이가 열렸는데 아직 따지 않았더라며 웃는다. “(연기는) 워낙 하던 일이라…. 건강은 나쁘지 않아. 하지만 작품 초입이라 밤을 새고 그러면 다음날 휘청휘청하고 그래. 나이가 있어서 어렵구나 느껴요. 순발력과 기억력도 떨어지고…. 하지만 이러한 것을 극복해나가는 재미도 있지. 허허허”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SBS 제공
  • [테마 스토리 - 서울] (13) 리모델링 옛 서울역사

    [테마 스토리 - 서울] (13) 리모델링 옛 서울역사

    “여러 번 자동차에 치일 뻔하면서 나는 그래도 경성역으로 찾아갔다.…경성역 홀에 한 걸음 들여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 돈이 한푼도 없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이상의 ‘날개’ 중) 서울 중구 봉래동의 옛 서울역사(사적 284호). 사람냄새 사라진 서울의 옛 관문은 공사를 알리는 가림막에 싸여 비스듬히 얼굴을 내민다. 한국 근현대사와 많은 사람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르네상스풍 건물은 멍한 표정이다. 바로 옆 유리로 치장된 새 서울역사는 매끈해 보인다. 낯설기만 한 유리건물은 표정이 없다. ●1900년 7월 남대문정거장 첫선 옛 서울역사 1층의 어두컴컴한 홀은 번창했던 이전 세월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고, 2층 대식당은 휑하니 빈 공간을 드러낸다. 이런 옛 서울역사에선 2011년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8월 말 기공식을 갖고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건물에서 연일 기계 굉음이 울려퍼진다. 세월의 아픔과 생채기를 간직한 만큼 할 말도 많겠지만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1928년 경성공연을 위해 도착한 무용가 최승희, 역에 도착해 살충제를 맞는 농촌출신 귀경객들, 지금은 일부 해체된 서울역 고가도로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귀성전쟁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가림막에 파노라마칠 뿐이다. ●KTX 신역사 건설로 ‘은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발을 디뎠고, 한때 데이트장소로 각광받았던 이곳은 1900년 7월 남루한 남대문정거장(경인선)으로 첫 모습을 드러냈다. 1925년 일본인의 설계로 준공된 뒤 경성역이라 불리다 광복 이듬해부터 서울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0년 대학생들의 집회와 항쟁 등에서 서울역은 ‘민주’를 실어날랐다. 2004년 KTX신역사 준공 뒤 옛 서울역사는 기능을 접었다. 한때 노숙인들이 진을 치고 있어 음산한 모습까지 연출했던 이곳은 앞으로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같은 문화공간의 역할을 맡게 된다. 바로 옆 매끈한 유리건물을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옛 서울역사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시작하는 얼굴이자 문의 역할을 했다.”며 “복잡하게 얽힌 길 위에 서 있으면서 얽힌 흐름을 하나의 정리된 복합체로 만들었지만 지금의 새 역사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2030] 내겐 너무 특별한 가을별미

    [2030] 내겐 너무 특별한 가을별미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전어구이, 향긋한 자연송이, 오동통한 대하찜, 잘 익은 오곡백과 등 각종 별미가 군침을 돌게 하는 가을.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일과 연애가 안 풀려 괴로운 20, 30대도 푸짐한 가을 밥상과 마주하면 잠시나마 시름을 잊는다. 2030이 추억하는 가을 별미를 들어봤다. 박성국 오달란 유대근기자 dallan@seoul.co.kr 직장인 장모(28)씨의 가을 별미는 대한민국 모든 예비역들의 추억이자 악몽인 ‘전투식량’이다. 장씨는 전투식량 중에서도 비빔밥을 잊지 못한다. 제대 이후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인터넷 쇼핑을 통해 ‘전투 비빔밥’을 구입해 먹는다. 전투식량은 군대에서 지급하는 휴대용 식품으로 뜨거운 물만 부으면 한끼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는 간편식이다. 장씨는 “7년 전 군대에 있을 때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진지공사를 위해 산에서 천막을 치고 2주 동안 생활을 했다.”면서 “하루에 한끼는 꼭 전투식량이 나왔는데 그땐 질려서 쳐다보기조차 싫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군대음식이라면 치를 떨었던 장씨는 제대 후 1년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뭔가 하나 빠진 것처럼 싱겁고 입 안에서 겉도는 그 맛이 간절해졌다고 한다. 장씨의 별미는 직장 동료에게도 인기다. 야근 간식으로 컵라면, 피자 대신 전투식량을 챙겨먹기도 한다. 여성동료들은 회색 봉투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단 5분 만에 완성되는 비빔밥을 보면서 신기해 한다. 장씨는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전투 비빔밥’이 생각난다.”면서 “밥보다는 추억을 먹는 재미에 해마다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년차 영업사원 박모(30)씨는 입사한 첫해 가을, 부장님이 사준 전어 회무침을 잊지 못한다. 입사 전에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전어였는데 부장님이 팀원들 기를 살려주겠다며 회사 근처 횟집으로 데려가 전어 회무침을 사준 것. 파, 미나리 등 싱싱한 야채와 뼈째 잘게 썬 전어, 칼칼하면서도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회무침을 상추와 깻잎에 싸서 입에 넣은 뒤 소주 한 잔까지 털어넣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박씨는 그날 전어를 먹으면서 자신이 직장인이 됐음을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올 정도로 맛있다고 하지만 백수 시절에는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라 잔뜩 군기가 들어있었던 박씨. 부장님이 어깨를 두드리며 소주를 권하고, 처음이라 낯설고 힘들 텐데 많이 먹고 기운내라며 회무침 접시를 자신의 앞쪽으로 밀어주는 선배들 때문에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고 한다. 박씨는 “그날 밤 팀원들과 둘러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나눠먹었던 전어의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나에게 가을 전어는 ‘정’이란 이름으로 각인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정모(26)씨는 무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면 학교 앞 닭갈비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그는 “일주일에 평균 3번은 찾아가서 점심에는 닭갈비 볶음밥을 먹고 저녁에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 한 접시를 안주삼아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인다.”고 전했다. 정씨의 머릿속에 ‘가을=닭갈비’ 공식이 자리잡게 된 건 풋풋한 연애의 추억 때문이다. 정씨는 6년 전 같은 과 동기였던 여자친구와 춘천 여행을 떠났다. 그는 “5월 축제 때 용기내서 고백해 연애하기 시작했는데 사귄 지 100일을 기념해 처음 둘이서 놀러간 곳이 춘천이었다.”면서 “여자친구 손을 꼭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었다.”며 웃었다. 정씨는 당시 점심을 먹기 위해 춘천교대 앞 닭갈비 골목을 서성이다가 조용한 가게로 들어가 먹었던 닭갈비의 맛보다 연애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이어트 끝에 찾아온 식탐 직장인 박모(32)씨는 8월 달력을 뜯자마자 지난 여름 내내 졸라맸던 허리띠를 풀어볼 생각에 한껏 들떴다. 가을이 제철인 음식들을 찾아 부지런히 인터넷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식가임에도 지난 한철 내내 맛집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은 박씨다. 8월 마지막 토요일에 5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린 그는 웨딩사진과 식장에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100일 동안 몸을 가꿨다. 여자친구와 함께 다이어트 식단을 철저히 지키고 매일 1시간30분씩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했다. 갈수록 탄탄해지는 복근과 등 근육은 만족스러웠지만 식생활은 고역이었다. 소금 안 친 닭가슴살과 소스없는 샐러드와 두부, 오븐에 구운 생선 반토막과 잡곡밥 반 공기가 그동안 먹어온 음식이다. 박씨는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고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에서 손을 떼니 세상 사는 낙이 없었다.”면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었다는 곰이 된 기분이었다.”며 고달팠던 기억을 떠올렸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그는 이제 먹는 행복만 남았다며 즐거워했다. 박씨는 “가을인 만큼 기름진 전어부터 시작할 생각”이라면서 “이번 주말에 인천 소래포구에 가서 전어 회, 구이, 매운탕 등 풀코스 만찬을 즐길 예정”이라고 벌써부터 입맛을 다셨다. 예전엔 서비스 안주로나 내놓던 전어 값이 천정부지로 뛴 게 불만이지만 음식은 제철에 먹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씨는 “두번 결혼할 일은 없으니 다이어트 생각은 접어두고 ‘식신 본능’에 충실하겠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신모(31·여)씨는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 늘었다. 여름 내내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4kg을 감량했지만 가을이 되면서 입맛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걷다가 음식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흐르고 점심을 먹고 이까지 닦은 뒤에도 달콤한 디저트 생각에 지갑을 들고 매점으로 향하기 일쑤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라도 하면 대학시절 도보여행 때 섬진강에서 맛 본 다슬기 수제비 생각이 간절해진다. 대학교 3학년 때 신씨는 혼자서 무작정 도보여행을 떠났다. 남도의 가을 정취에 취해 섬진강 줄기를 거닐던 중 마을 어귀에서 커다란 가마솥에 수제비를 끓여먹던 아주머니들이 가을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신씨에게 “체력도 약한 아가씨가 밥은 챙겨먹고 다니는 거냐. 와서 한 그릇 들고 가라.”며 수제비를 권했다. 섬진강에서 갓 잡은 다슬기로 국물을 우려내 푸른 빛깔이 도는, 생전 처음 맛 보는 수제비였다.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면 다슬기 알맹이를 쏙쏙 빼먹는 맛과 재미는 덤으로 따라 온다.”며 신씨는 다슬기 수제비 예찬론을 늘어놨다. 그는 “속풀이에 최고인 다슬기 국물에 남도 아주머니의 따뜻한 인심까지 더해져 지상 최고의 만찬이었다.”면서 “다슬기는 살도 찌지 않는 다이어트 음식이니 주말에 전문음식점을 찾아가서 배불리 먹어봐야겠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먹어라 올해 유난히 잦은 야근에 시달리고 있는 컨설턴트 장모(34·여)씨는 당분간 주말마다 ‘몸보신 여행’을 하기로 했다. 격무와 더위에 시달린 몸을 호강시킬 겸 골드미스인 친구들과 함께 가을음식 주산지로 1박2일 여행을 나서기로 한 것. 가장 먼저 맛볼 음식은 추어탕이다. 행선지는 전북 남원으로 정했다. 장씨는 “미꾸라지 추(鰍)자가 가을(秋)과 물고기(魚)가 합쳐진 만큼 가을의 대표적 보양식”이라며 추어탕 예찬론을 늘어놨다. 그는 “소설 태백산맥에 보면 가을 추어탕은 여름 개장국만큼 어르신들 보양식으로 쳐준다는 대목도 있다.”고 덧붙였다. 남원을 택한 이유는 원조 남도식 추어탕으로 유명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를 통으로 우려내 맑고 가벼운 서울식 추어탕과 달리 남도식은 크고 통통한 미꾸라지를 갈아 넣고 된장과 들깨가루를 듬뿍 풀어 걸쭉하고 구수한 맛이 특징이다. 산초가루가 들어가 독특한 향미를 낸다. 장씨는 “아삭한 우거지도 아낌없이 들어가서 씹는 맛이 일품”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남원에서 추어탕을 먹고 난 뒤 그 다음 주말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 태안반도에서 ‘대하’를 정복할 요량이다. 큰 전골냄비에 굵은 소금을 자작하게 깔고 그 위에서 대하가 선홍색으로 익어가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장씨는 시장기가 돈다며 입맛을 다셨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쫀득한 살이 입속에서 녹아 사라진다는 대하회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추어탕이나 대하나 모두 단백질 덩어리니까 더위에 축 처진 피부 미용에도 좋을 것 같다.”는 게 장씨와 친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믿는 은행원 유모(28)씨는 9월 말이면 새로 출하된 햅쌀 구매에 바빠진다. 자취생인 탓에 평소 전자레인지로 데워먹는 인스턴트 쌀밥 먹는 게 고작이지만 가을이 되면 최고급 백미를 먹는 호사를 누린다. 막 거둬 도정한 햅쌀은 맛이 워낙 좋기 때문에 밥과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는 게 유씨의 생각이다. 고혈압을 앓고 있는 유씨는 올해엔 한 가지 사치를 더 하기로 했다. 유기농 농산물만 취급하는 생활 협동조합을 통해 송이버섯을 공동구매하기로 한 것. 유씨는 “가을에 향이 정점에 오르는 송이가 성인병이나 당뇨, 고혈압 등에 좋다고 해서 올해는 큰 맘 먹고 15만원짜리 한 박스를 구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은행 근처 서점에 들러 얇은 요리책 한 권도 사두었다. 그는 4년째 교제 중인 여자친구도 집으로 초대해 만찬을 대접할 계획이다. 거창한 음식을 사주기보다 소박하지만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하면 감동을 갑절로 느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윤기가 잘잘 흐르는 흰쌀밥에 송이버섯 전골이면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면서 “건강식으로 원기를 보충해서 남은 2009년도 잘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다.
  • [엄마와 읽는 동화] 애꾸눈 누렁이/류근원

    [엄마와 읽는 동화] 애꾸눈 누렁이/류근원

    인삼밭을 다녀오신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대문 밖에서 무겁게 날아왔어요. “어휴, 이놈의 산돼지들 때문에 고생고생 지은 인삼 농사 다 망치겠어.” 아버지는 대문 안 외양간의 누렁이를 한참동안 바라보셨어요. “누렁아, 어쩔 수 없다. 네 운명이려니 생각하렴.” 이상한 일이에요. 아버지는 요즈음 누렁이만 보면 뜻 모를 말과 함께 혀까지 쯧쯧 차시거든요.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해. 누렁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환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덕 너머 인삼밭으로 향했어요. 가시철조망 아래로 땅을 파고 들어온 산돼지들의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거였어요. “어휴, 이럴 수가? 정말 아버지 가슴속이 새까맣게 타고도 남겠다.” 환이는 타달타달 인삼밭을 뒤로 했어요. 근처 인삼밭을 지키는 사냥개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무섭게 터져 나왔어요. “우리도 저런 사냥개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환이가 마악 대문을 들어설 때였어요. 안방에서 부모님이 주고받는 소리가 흘러나왔어요. “그래서 결정했소. 누렁이를 팔아서 인삼밭을 지킬 사냥개를 사기로.” “그래도 정이 흠뻑 든 누렁이인데.” “지금 팔아야 그나마 제값을 받을 수가 있다는구먼. 땀 흘려 가꾼 인삼밭을 지킬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어요.” 순간 환이는 귀를 의심했어요. 잘 못 들었나 싶어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한번 쑤셔도 보았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소. 인삼밭을 지키기 위해선……. 내일 소장수가 올거요.” 환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양간 앞에 섰어요. 누렁이가 얼굴을 흔들어 댔어요. 잘랑잘랑 워낭소리가 바람을 타고 집안을 날아다녔어요. “아, 아버지의 어쩔수 없다는 말이 누렁이를 판다는 뜻이었구나. 누렁이, 불쌍해서 어쩌지?” 환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누렁이의 워낭 소리도 밤 이슥토록 잘랑잘랑 들려왔어요. 이튿날, 소장수가 누렁이를 보러왔어요. 소장수와 눈길이 마주치자, 누렁이는 허둥지둥 뒷걸음질을 쳐댔어요. “허허, 겁이 꽤 많은 황소로군. 고개 좀 이리 돌려 보거라. 허허, 이리 돌려 보라니까.” 소장수는 누렁이의 코뚜레를 잡고, 인정사정없이 흔들다가 깜짝 놀랐어요. “아니, 무슨 황소가 이래? 허허, 애꾸눈이잖아? 소장수 30년에 애꾸눈 황소는 첨 보네.” 소장수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어댔어요. 아버지는 깜짝 놀라 허둥거리셨어요. “하하, 애꾸눈이면 어떻습니까? 힘만 세면 최고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힘이 좋아도 눈 하나론 논밭에서 제구실을 못하는 법이죠. 잘 아실 텐데?” “그, 그, 그런 것은 못 느꼈는데요. 논밭을 다른 집 황소보다 몇 배 더 잘 갈아요. 이웃 마을에서도 누렁이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허허, 그렇게 시치미를 떼시면 흥정이 어렵겠는데요.” 환이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쾅쾅 뛰기 시작했어요. 제발 흥정이 깨지라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요. 그러나 흥정이 어렵다는 소장수의 말에 아버지는 금세 한풀 꺾이고 말았어요. “다른 황소보다 조금 낮게 잡아야 되겠습니다.” 두 분 사이에 몇 번 실랑이가 오가는 듯하더니, 이내 만족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어요. “잘 쳐드리는 것입니다. 우선 계약금으로 이걸 받으시고, 나머지 돈은 일주일 후 황소를 실어가는 날 드리도록 하지요.” 두 분은 연신 만족한 웃음을 흘리시며 대문 밖으로 나갔어요. ‘흑, 아무리 말을 못 알아듣는 동물이라지만. 누렁이 앞에서 그렇게 무서운 소릴 주고받으시다니.’ 갑자기 아버지가 미워지는 환이에요. 그러나 잠시 뿐이었어요. ‘따지고 보면 다 내 탓인걸 뭐.’ 환이는 힘없이 외양간으로 들어갔어요. 그때까지도 누렁이는 외양간 모서리에 머리를 틀어박고 있는 거였어요. “누렁아, 나야. 고개를 이리 돌려봐, 응? 다 내 탓이야, 미안해.” 고삐를 잡아당겼지만, 누렁이는 막무가내였어요. 꿈쩍도 하질 않는 거예요. 환이는 뒷동산 언덕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2학년 때였어요. 텔레비전에서 먼 나라 용감한 투우사를 보게 되었어요. 멋진 칼을 찬 투우사가 소를 눕히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는 거였어요. 환이도 멋진 투우사가 되고 싶었어요. 빨간 보자기를 준비하고, 지게작대기를 칼로 대신해서 송아지인 누렁이 앞에 섰어요. “자, 누렁아. 덤벼, 덤벼 보라구. 어서!” 그러나 누렁이는 눈만 멀뚱멀뚱 뜬 채, 오히려 환이를 이상스레 바라보는 거였어요. 지게작대기로 꾹꾹 찔러도 슬슬 피해 다니기만 하는 누렁이였어요. 그때 환이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가는 게 있었어요. ‘그래, 누렁일 화나게 만들면 나에게 덤벼들 거야. 히히히.’ 환이는 누렁이 꼬리에 성냥을 팍 그어댔어요. “우우우! 우우우!” 누렁이는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어요. 뜨거움을 못 참고, 날뛰던 누렁이는 나뭇가지에 그만 오른쪽 눈을 찔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오른쪽 눈은 영원히 뜨질 못하게 되었어요. 환이는 너무나 무서워 영원한 비밀로 감추고 말았어요. 그 후로 누렁이는 이상스레 변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나아갈 때는 얼굴을 이리저리 번갈아 돌리며 나아가는 것이었어요. 논밭을 갈 때도 행동이 굼뜨고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얼마나 구박을 받았는지 몰라요. “미안해, 누렁아! 날 용서해줘!” 환이는 맞은 편 산에 대고 수없이 메아리를 날렸어요. 이튿날부터 환이는 누렁이를 데리고 산언덕으로 향했어요. 잘 드는 톱으로 누렁이의 코뚜레를 잘라냈어요. 시냇가에서 누렁이의 엉덩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똥딱지를 깨끗하게 닦아 주었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어요. 소장수가 누렁이를 데려가기로 약속한 하루 전날, 환이는 누렁이를 데리고 인삼밭으로 향했어요. “누렁아, 미안해. 부모님 몰래 인삼을 캐서 널 줄게. 내 마지막 선물이야, 맛있게 먹었음 좋겠어.” 인삼밭이 환이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눈에 익은 울타리가 아니었어요. “헉, 저, 저, 저럴 수가! 가시철조망이 주저앉아 버렸잖아!” 어미 산돼지와 새끼들이 가시철조망을 무너뜨리고, 인삼밭을 마구 파헤치고 있는 거였어요. “야, 이 나쁜 놈들아. 저리 가지 못해!” 환이는 돌멩이들을 주워 산돼지들에게 쉬지 않고 던져댔어요. 갑자기 어미 산돼지가 몸을 휙 돌리는 것이었어요. “아, 아, 안 돼! 아버지, 어머니!” 그때였어요. 환이 앞으로 무엇인가 휙 지나치더니 쿵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는 거였어요. “음머어! 음머어!” 산자락 하나가 무너져 내릴 듯한 누렁이 울음소리가 터졌어요. 산돼지들은 숲 속으로 허둥지둥 꽁무니를 빼고 말았어요. 누렁이의 애꾸눈 밑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어요. 부딪칠 때, 산돼지의 송곳니에 찔린 게 분명했어요. 환이는 옷을 찢어 누렁이의 피를 닦아주기 시작했어요. “누렁아, 고마워. 너 아니었음, 너 아니었음……. 미안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달려왔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나 놀라셨는지 얼굴이 하얘졌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을이 내릴 때까지 가시철조망을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누렁아, 고맙구나. 많이 아팠겠다. 자, 가자.” 잘랑잘랑 워낭 소리가 환이의 귀에는 누렁이의 울음소리로 들려오는 거였어요. 서쪽하늘엔 누렁이의 핏빛 같은 노을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요. 누렁이와의 마지막 밤이 되었어요. 환이의 방으로 달빛이 환하게 스며들었어요. 밤 이슥토록 누렁이도 잠을 못 이루고 있었어요. 이따금씩 워낭 소리가 잘랑잘랑 들려왔어요. 환이는 귀를 막고 말았어요. 그랬더니 워낭 소리가 종소리보다 더 크게 환이의 가슴을 마구 흔들어놓는 거였어요. 환이는 살며시 방문을 열고, 외양간으로 향했어요. 마당으로 숨이 막힐 듯 쏟아져 내리는 달빛, 달빛. 누렁이는 하염없이 보름달만 쳐다보고 있는 거였어요. “누렁아, 우린 내일이면 헤어져야 해. 사랑해!” 환이는 누렁이의 목을 끌어안고, 울지 않으려 입술을 꽉 물었어요. 누렁이의 긴 혀가 환이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 쏟아져 나오는 꽃향기, 상큼한 풀잎 냄새……. 환이는 무엇엔가 쫓기는 모습으로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어요. 이튿날 누렁이를 싣고 갈 트럭이 왔어요. 환이는 팔려가는 누렁이를 차마 볼 수 없어 마당에 나올 수가 없었어요. 소장수의 웃음소리가 무섭게 들려왔어요. “자, 나머지 돈입니다. 누렁이를 싣고 가겠습니다.” “저, 저, 미안합니다. 누렁이는 팔지 않겠어요. 계약 위반금을 달라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안 파신다니요? 누렁이 값을 잘 쳐드리는 건데, 이거야 어디 원 쩝쩝.” 한참 후, 트럭은 털털털 소릴 내며 돌아갔어요. 환이는 얼마나 놀랐는지, 방문을 쾅 열어젖뜨렸어요. 누렁이에게 맨발로 달려갔어요. “누렁아, 우리 아빠 최고지?” 누렁이가 음머어!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잘랑잘랑 워낭 소리도 ‘그래그래’ 라고 들려오는 거였어요. ●작가의 말 애꾸눈 누렁이는 개구쟁이 시절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누렁이는 죽고 없지만, 아직까지도 제 가슴 속에 살아있답니다. 밤 이슥토록 잠 못 이룰 때에는 음머어 소리도 듣고, 잘랑잘랑 워낭 소리를 아직도 듣고 있답니다. 누렁이에게 미안한 마음, 아무리 퍼내도 샘물처럼 줄지 않고 있어요. 혹시 누렁이가 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밤하늘도 많이 쳐다본답니다. ●작가 약력 충북 충주 출생. 1984년 아동문학평론 동화 추천완료. 계몽아동문학상, 새벗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톨스토이 문학대제전 아동문학대상,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주요 동화집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 ‘눈자니 마을의 동화’ 등. 충남 보령 개화예술공원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 동화비가 세워져 있음. 현재 경기 화성시 비봉초등학교 교장
  • ‘국가대표’ 새 편집본 ‘묘수’인가 ‘악수’인가?

    ‘국가대표’ 새 편집본 ‘묘수’인가 ‘악수’인가?

    지난 6일 7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가대표’가 오는 10일 새롭게 편집된 완결판(부제 ‘못다한 이야기’)을 공개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제작사인 KM컬쳐에 따르면 이번 ‘완결판’은 현재 상영버전에 담지 못했던 15분 분량의 추가 장면들이 삽입되거나 재편집됐다. 또한 올림픽 경기 장면 등의 컴퓨터그래픽도 보완된 일종의 감독판이다.KM컬쳐 관계자는 “완결판은 묻어두기엔 아쉽고 관객들에게 보여주지 못해 아까운 장면들을 살뜰히 전하고자 하는 김용화 감독의 노력이 있었다.”며 “함께 울고 웃었던 관객에게 전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재편집, 디지털 상영관을 통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일반적으로 영화제 출품 및 상영 등을 위해 일회적으로 감독판이 상영된 적은 있지만 이처럼 상영 중인 영화의 또 다른 버전이 극장에 함께 걸린 적은 없었다.이러한 소식을 접한 영화 팬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영화를 본 700만 관객을 우롱하는 ‘상술’이 아니냐는 것이 이들의 주된 주장이다.네티즌들은 “그럼 내가 본건 뭔가? 미완성품인가?”, “감동의 순간들이 돈 냄새로 바뀌는구나.”, “지금 수정하면 1천만은 채우겠지 심보인가.” 등의 의견을 보이며 이번 ‘완결판’ 상영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아이디 ‘다솜97’은 “개봉 중인 영화를 재편집해서 공개하는 건 이미 700만명이 본 영화를 감독과 제작사 스스로 부정해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만약 공식팬카페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면 DVD 출시 전 팬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정 스크린 관람을 하면 될 일이다. 이런 식이라면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상업적 이유로 의심 받아도 할말이 없다.”고 덧붙였다.또한 아이디 ‘열씨미’는 “재미있게 본 영화라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재미있게 본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서 상영한다고 하니 그 15분의 완성도를 보기 위해 또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바로 유혹이자 배신인 것”이라고 성토했다.반면 제작사 측의 이번 ‘국가대표 완결판’ 상영을 옹호하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아이디 ‘매스매스’는 “10번도 넘게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사람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1stGoodMan’도 “조금 수정되니까 욕하고 그 전의 작품성까지 폄하할 필요는 없다. 디지탈 상영관만 제한적 개봉이라니 보기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라고 자제를 당부했다.이처럼 영화 팬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가운데 이번 ‘국가대표 완결판’이 1000만 관객을 향한 ‘국가대표’의 묘수가 될지 악수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사진제공 = KM컬쳐서울신문NTN 조우영 기자 gilm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태백 매봉산·귀네미마을 고랭지 배추밭

    태백 매봉산·귀네미마을 고랭지 배추밭

    옳거니.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하늘 아래 첫 생명이다. 구름도 한 번에 넘지 못할 높다란 언덕배기에 자리잡았다. 하얗게 뭉텅이진 구름 또한 지친 다리쉼 하기에는 이왕이면 녹색의 생명으로 가득한 산등성이가 눈요기에도 충분했겠다. 그렇지. 우리네 흰 옷 입은 백성들이 사시사철 밥상 위 한 자리에 끼고 살았으리라. 쏟아지는 젓가락 세례 받아가며 밥상 한복판에 놓이는 호사는 제대로 누리지 못했어도, 어느 한 구석에라도 없으면 영 서운한 마음으로 입맛 쩝쩝 다시게 만들기도 했다. 강원도 태백의 배추밭이다. 하늘 아래 산등성이 한 가득 고랭지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무리 낮은 곳도 해발 700m 이상일 정도인 태백이기에 어디를 가도 배추가 무성하다. 특히 이 중에서도 매봉산(면적 110만㎡·높이 1303m)과 귀네미 마을(면적 65만 3700㎡·높이 1200m)은 눈이 시리도록 짙은 초록의 배추가 푸른 하늘, 흰 구름과 어우러진 채 끝없이 펼쳐져 장관이다. 이 덕분에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아마추어 사진작가, 데이트하는 젊은 연인, 아이 손잡은 부모들로 북적인다. 고랭지 배추는 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달말부터 시작해 다음달 말 수확이 끝나면 이 경관을 보기까지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배추는 우리네 삶과 뗄 수 없는 채소다. 그래서 시인 황말남은 “…/푸른 배추 잎사귀 주름치마 새끼끈 동여매고/ 뿌리째 싹둑 잘린 몸이라니/ 죽지 않고서는 필 수 없는 꽃”(‘피어라 꽃’ 중)이라고 노래하며 아예 꽃으로 대접했다. 매봉산과 귀네미 마을의 우르르 무더기 이뤄 펼쳐진 배추밭의 배추들이 여느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하나 이미 시인이 얘기했듯 배추는 김치의 원형. 한국인의 삶에 밀착된 만큼 일상의 보람, 소박한 먹을거리의 기쁨, 노동의 고단함 등 희로애락 성정들과 맞닿는다. 너른 산등성이를 가득 채운 배추밭에서 풍겨 나오는 배추 냄새는 비릿한 풀내음인 듯 맵고 쌉쌀하게 코끝을 간지럽힌다. 정겨운 삶의 냄새다. 이 곳이 엄연한 현실의 공간임을 일깨워 준다. 게다가 매봉산 배추꽃밭과는 또 다르게, 귀네미 마을은 여기에 실향(失鄕)의 안타까움까지 보탰다. ●귀네미마을 새달 배추농사 체험 프로그램 귀네미 마을은 1988년 새로 만들어졌다. 하장댐이 만들어지면서 마을이 통째로 물에 잠기자 서른 여섯 가구가 집단으로 보따리를 싸서 새 고향삼아 찾아온 곳이다. 고향 잃은 이의 억척스러움으로 만들어낸 탓일까. 30여 가구 모여 사는 골짜기 양쪽 산등성이 비탈마다 배추밭이 빼곡하고, 그 중간 중간 채 치우지 못한 바위 무더기가 보였다. 20년 전 배추밭을 일궜던 실향민 노동의 신산함을 느끼게 해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밭일을 나가던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극구 이름을 알려 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산꼭대기까지 일일이 손으로 일궜으니 그 고생을 어떻게 말해.”라며 21년 전 귀네미 마을에 들어와 겪은 고생을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배추 농사에 들어간 돈 안 빠질 때도 있다.”고 푸념하면서도 “고랭지 배추로 김치를 담가 놓으면 아삭아삭해서 쉬 물러지지도 않고 맛있다.”고 배추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평생을 흙 일구던 이들도 ‘부가 가치 창출’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귀네미 마을은 다음달부터 배추농사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할 예정이다. 빈 집 몇 곳 고치고 쓸고 닦아 민박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한데 평생의 농투성이가 갑자기 장사꾼 흉내를 내려니 영 쉽지 않은가 보다. 아직 가격을 제대로 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구체적 프로그램도 아직 없다. 배추 뽑기, 김장 담그기, 산나물 뜯기 등 기본적인 내용들만 생각 중이다. 귀네미 마을 배추밭이 사람의 억척스러움과 위대함이 물씬 풍긴다면, 차로 10분 남짓 떨어져 있는 매봉산 배추밭은 거대한 풍력발전기 8대가 어우러져 낯선 이국적인 느낌이다. 1300m가 넘는 높은 곳이지만 차가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다만 버스는 다닐 수 없어 관광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봉산 아래쪽인 삼수령에서 승용차 편을 이용해야 한다. 삼수령은 태백시내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임계·강릉 방향으로 가는 중에 있다.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라고 해서 삼수령(三水嶺)이다. 매봉산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과 비교하면 귀네미 마을은 훨씬 한적하다. 취향껏 찾아야겠지만 태백에 왔으면 두 곳 다 둘러볼 일이다. ●고원 자생식물원 ‘해바라기 축제’ 삼수령에서 태백 시내 쪽으로 5분 남짓 내려오면 왼쪽 황연동에 구와우(九臥牛)마을이 있고, 여기에서 거대하게 무리지어 있는 해바라기를 만날 수 있는 ‘고원 자생식물원’이 있다. 이달말까지 ‘2009태백해바라기 축제’가 열린다. 입장료가 5000원이다. 지난 14일에는 전체 5분의 1인 ‘1만평에만’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이렇게 들판 가득 피어난 해바라기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짊어지고온 인파가 몰려 있었다. 게다가 오는 25일 즈음이면 산등성이 10분 남짓 넘어가면 있는 4만평 들판에도 해바라기가 활짝 피게 된단다. 동양 최대 해바라기 꽃밭을 자처하고 있다. 해바라기답게 일제히 한 쪽에 등돌리고, 한 쪽을 쳐다 보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하지만 이 곳은 식물원이라기보다는 문화예술공동체에 가깝다. 건축디자이너 김남표 대표이사의 다양한 작품을 비롯해 작품활동을 위해 서울대 미대 교수직을 벗어던진 서용선 화가의 설치미술을 볼 수 있음은 물론, 뮤지컬 배우들의 연습 공간이기도 하고, 여러 화가들이 참여한 ‘갤러리 할’의 전시회도 즐길 수 있다. 글 사진 태백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여행 Tip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남원주, 제천 방향으로 들어서면 중앙고속도로다. 제천 나들목 영월 방향으로 나오면 38번 국도가 있다. 자동차전용도로라 거의 막힘이 없다. 서울에서 300㎞ 남짓이다. ▲먹을거리 해바라기축제가 펼쳐지는 구와우마을에 순두부집이 있다. 간판도 없는 식당이지만 담백한 순두부와 밑반찬으로 곁들여지는 강장, 된장이 아주 맛있다. 평일이면 지역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곳이다. (033)552-7124/ 7220. 태백은 한우도 유명하다. 태백한우골(033-554-4599)과 태성실비(033-552-5287), 한우마을(033-552-5449) 등이 현지 사람들이 많이 가는 식당이다. 200g에 2만 1000원이다. ▲묵을 곳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 시계 안으로 들어서면 처음으로 맞아 주는 곳이다. 함백산 등성이에 있어 객실에 모기, 에어컨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오투(O2) 리조트가 있다. 스키장과 골프장을 갖추고 있다. 예약문의 (033)580-7777. 또한 태백산도립공원에 있는 태백산민박촌은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콘도형식이라 취사도 가능하다. 예약은 홈페이지(minbak.taebaek.go.kr)에서 가능하다. [다른 기사 보러가기] ☞프랑스 교도소 자살방지책은 ‘종이잠옷’ ☞익명으로 블로그에 ‘추녀’라고 함부로 썼다간… ☞“얘야 공무원보다 대기업 가라” ☞[김 전대통령 서거] 국장 어떻게 치러지나 ☞“먼 길 달려왔는데 7번째 연기라니…” ☞비위판사는 사표 맘대로 못낸다 ☞“뚜껑 나이트클럽 안된다”
  • [Let’s Go]고래관광 명소 울산 장생포

    [Let’s Go]고래관광 명소 울산 장생포

    그날 하늘도 꼭 이 모양이었지. 해가 번쩍거리다가 이내 비 뿌릴 듯 먹구름이 끼는 그런 날씨였으니까. 바다 역시 잠잠하나 싶더니만 4~5m짜리 파도를 쿠르릉거리며 진양 5호를 하늘 위로 헹가래쳐 올리곤 했고. 그래도 모처럼 20m는 훌쩍 넘어섬 직한 큰 참고래를 발견했으니 머리카락이 바짝 곤두서는 거야. 밥도 선 채로 먹는 둥 마는 둥 했지. 울렁이는 파도 탓에 조준은 쉽지 않았고 이 녀석은 빗나간 작살포에 도망치지도 않은 채 약 올리듯 근처를 맴돌았으니 이제는 돈보다, 피곤함보다 호승심(好勝心)이 훨씬 컸지. 그렇게 눈에 핏발 선 채로 계속 쫓았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던가? 바다 위에서 큰 몸집을 드러낸 이 녀석과 눈이 딱 맞은 거야. 눈알이 희번덕거리는 게 무섭기도 하고, 그만 쫓아오라는 애절한 눈빛 같기도 하더구먼. 그냥 눈 딱 감고 화약 장전한 작살포를 쾅 소리와 함께 날렸지. 명중~! 정확히 등에 꽂혔고, 내친김에 한 방 더 장전해서 등에 작살을 꽂았지. 한 마리면 만선(滿船)이었지. 돌아오는 바닷길에 쿨럭거리는 붉은 피가 기다란 띠를 이루고…. 하, 그런 시간이 또 올까. 몇 남지 않은 왕년의 고래잡이 포수(砲手) 손남수(73)씨의 무심한 눈은 바다로 한 번, 하늘로 한 번 정처를 두지 못하고 흔들렸다. 한반도 최초-혹은 인류 최초라고도 하는-고래잡이 지역, 울산 장생포에는 이제 고래가 없다. 그저 먼 바다와 고래의 꿈을 꾸는 허리 굽은 노인이 있고, 그 노인의 영화(榮華)와 무용담을 전설처럼 듣고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고래잡이 나갈 때마다 경건하고 성대하게 제사 모시던 신위당은 굳게 문 잠겨 있다. 혹은 열 가지가 넘는 맛을 한 몸에 담고 있다는 고래 고기가 식객의 술안주로 흥청거리고 있거나. 다시 올 수 없는 청춘과 다시 탈 수 없는 포경의 기억은 그래서 더 애잔하다. 당시 울산 바닥에서는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받던 직업이 고래 포수였다. 1950~60년대 당시 집 두 채는 살 수 있을 정도의 거액인 50만원 정도의 계약금을 받고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6년 포경은 금지됐고 이제는 고래잡이배를 탔던 기억이 남은 사람조차 4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장생포 청년회장 김상철(42)씨는 “장생포는 1980년대 초반 인구 3만명이 넘을 정도로 번성했었는데 이제는 2000명도 채 되지 않는다.”면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인 포수들은 고래잡이가 금지된 뒤 다른 지역에 나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라고 장생포의 영욕을 얘기했다. ●‘고래신화의 메카’로… 여행선 주말예약은 필수 울산시는 이달 초 고래 관광을 시작했다. 포경 자체가 금지된 상황에서 전설처럼 혹은 신화처럼 남아 있는 고래를 ‘현실의 고래’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자 울산 장생포를 ‘고래신화의 메카’로 만들기 위한 일환이다. 이를 위해 울산시 남구청에는 아예 ‘고래관광과’를 만들었다. 고래바다 여행선은 주 3회(수, 토, 일) 운항한다. 한번 출항할 때 정원은 107명이다. 주말 예약은 벌써 다음달까지 꽉 들어찼으니 예약은 필수다. 8월 말까지는 휴가성수기인 만큼 수~일요일, 5일 내내 운항한다. 3시간 정도 울산 앞바다를 돌고 나오는데 2만 5000원이다. 예약은 홈페이지(http://whale.ulsannamgu.go.kr) 또는 고래관광과(052-226-3404~6)에서 가능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고래들이 과거 장생포를 놀이터처럼 들고 나던 참고래떼 또는 7~8m짜리 밍크고래가 아닌 참돌고래떼라는 사실이다. 또한 고래를 볼 수 있는 확률이 절반에 채 못 미친다는 점이다. 고래관광과 문종현 계장은 “단순히 고래를 직접 볼 수 있느냐만이 아니라 참고래떼의 길을 따라가 본다는 의의와 함께 울산의 고래 관련 역사와 문화를 함께 둘러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고 대부분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선사시대부터 고래를 잡았다? 선사시대부터 이 언저리에서 고래를 잡아왔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는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는 울산 바로 옆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대곡천변에 있다. 반구대암각화를 보려면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2~3㎞ 들어갔다가 또 걸어서 1㎞ 남짓을 걸어야 한다. 공식적으로는 100m 남짓 바깥에 줄을 쳐서 대곡천 옆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며 망원경을 설치해서 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요령껏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는 모습, 호랑이, 멧돼지, 산양을 잡는 모습 등을 손이 닿을 만한 2~3m 높이까지 빼곡하게 그려 놓았다. 다만 최근 장맛비가 계속되면서 물에 잠긴 날이 많아 형태를 제대로 못 보기 십상이다. 대곡천의 물이 마르는 갈수기, 그중에서도 그늘 드는 오전이 아닌 오후에 가야 암각화의 그림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장마가 끝나가는 이즈음이 적기라고 할 수 있다. 장생포에 가기 전 반구대암각화를 보고 암각화전시관에 들러 역사와 문화 등을 알고 가면 훨씬 재미있고 알찬 고래 관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짙은 심해의 내음이 한가득~ 고래고기 고래잡이는 금지됐다. 다만 그물에 ‘걸려진’ 고래는 검찰의 고래 검시를 거친 뒤 선주가 처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띄엄띄엄이나마 고래 고기가 유통되는 배경이다. 장생포 사람들은 그래서 고래를 ‘로또’라고도 부른다. 고기 그물에 ‘우연히’ 걸리기만 하면 한번에 2000만원 남짓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일부러 고래가 지나는 길에 그물을 친다는 소문까지 있다. 고래고기는 우네(배), 막찍기, 갈빗살, 내장 수육, 육회, 오배기(꼬리), 잇몸 등 부위에 따라, 조리 방법에 따라 현저히 다른 맛을 선사한다. 게다가 부위별로 찍어 먹는 소스도 초장, 고추장, 젓갈, 소금, 부추김치, 새콤달콤한 소스 등 각기 다르다. 소설가 이순원은 자신의 소설 ‘첫눈’에서 고래 고기의 맛을 ‘고기 맛에 알게 모르게 배어 나오는 어떤 허무함이거나 쓸쓸함’이라고 표현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야 고래가, 고래 고기가 울산의 어느 여고 음악선생과 엇갈리는 사랑으로서 만남과 헤어짐의 모티브이기에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를 일이지만, 현실 속의 고래 고기는 ‘꽤’ 맛있다. 8월 초순이면 현대자동차니, 현대중공업, 미포조선 등 울산을 출렁거리는 공장들이 일제히 하계 휴가에 들어가 조용해질 것이다. 물론 출근 자전거 물결 등 울산 특유의 활력을 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일 수 있지만 한적한 시간에 전설과 신화를 좇아 떠나 보는 것도 짜릿한 일이겠다. 글ㆍ사진 울산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여행가방 ▲ 가는 길 반구대암각화를 본 뒤 장생포로 가자. 서울에서 가면 경부고속도로 언양 나들목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언양읍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경주 방향으로 9㎞쯤 올라가면 오른쪽에 반구대암각화 안내판이 나온다. ▲ 먹을거리 울산에 왔으면 문화 체험 차원에서라도 고래 고기를 먹어야 한다. 처음 대하는 사람은 약간 비릿한 냄새에 고개를 내저을 수도 있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기 어렵다. 장생포 고래관광선을 타는 곳 주위로 고래 전문점 13곳 등에서 고래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울산시내에서도 ‘고래세상’(052-227-9234) 등 고래 고기를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이 있다. 또 울산에서는 시청 옆에 위치한 시어머니-며느리-딸-며느리 등 4대가 이어져온 ‘함양집’(052-275-6947)의 전통 비빔밥을 꼭 먹어 줘야 한다.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국그릇 모두 정감 넘치는 놋쇠다. 육회 또는 볶음고기를 놓고 야채 나물이 먹음직스럽게 둘러져 있다. 탕국으로 나오는 한우 고기국물 맛이 비빔밥과 최상의 조화를 이룬다. 묵채와 파전도 맛있다.
  • “첨단기기도 속이는 위폐… 五感으로 찾아”

    “첨단기기도 속이는 위폐… 五感으로 찾아”

    “100달러 위폐는 원화보다도 훨씬 정교하기 때문에 사람 눈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2억원이 넘는 최첨단 기기도 위폐를 90%밖에 걸러낼 수 없습니다. 돋보기로 확인하고 손으로 쳐서 소리를 듣고 지폐를 흔들어서 냄새도 맡습니다. 가장 중요한 10%는 사람의 오감(五感)으로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은행은 27일 신도섭(45) 수신서비스센터 차장이 위폐 감별 능력의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HSBC은행에서 아시아 최초로 외화 위폐감별사 인증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신 차장이 위폐 감별 공부에 빠진 것은 어릴 적부터 외국 동전을 만지면서 생긴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돈에 대한 관심이 그를 은행원의 길로 이끌었고 20년간 돈을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외화 위폐 감별 업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외국 홈페이지를 일일이 찾아 외국 돈에 대해 공부하면서 위폐를 어디까지 구분할 수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하고 싶어 매일 퇴근하면 외화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2년 전 위폐 감별을 위해 외국에 매년 30억원을 지급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 회사를 설득해 홍콩으로 3차례나 연수를 떠났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신차장은 최근 HSBC가 실시한 최종 테스트를 통과해 ‘위폐감별사인증서’(Certificate of Achievement)를 받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블로그에 글 하나 썼더니 100달러가…⑥

    블로그에 글 하나 썼더니 100달러가…⑥

    “저는 미국에서 성공한 블로거도 아니고, 수익도 변변찮은데….”  인터넷에서는 영어가 가장 경쟁력 있는 언어다 보니 광고 등으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벌어들이는 파워블로거들도 압도적으로 미국인이 많다.  ‘신문과 블로그의 빅뱅’ 시리즈를 위해 명성과 수익 면에서 파워블로거라 불리는 많은 이들과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인터뷰를 하기 어렵다는 답장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뉴욕에서 어렵게 연락이 닿은 고수민(38)씨는 본인 스스로 파워블로거가 아닌 듯하다고 했지만 이미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라 불리는 블로그 세상에서는 유명인이었다.  ‘뉴욕에서 의사하기(ko.usmlelibrary.com)’란 블로그를 2007년 11월부터 운영 중인 고씨는 “미국 파워블로거들은 광고의뢰 같은 비즈니스로 연결되지 않거나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면 이메일을 아예 안 보는 것 같아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메일이 오고 바쁘겠어요.”라며 기자를 위로했다.  고씨처럼 의사 블로거로 맥루머스닷컴(MacRumors.com)을 운영했던 아널드 김은 1년 전 아예 내과 의사직을 그만두고 블로거로 전업했다. 이메일을 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아널드 김은 최근 개인 블로그에 “지난 1년간 매우 바빴으며 의사를 그만둔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웹사이트 편집과 프로그램을 도와줄 두 사람을 새로 고용해 앞으로는 이메일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씨는 현재 뉴욕시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부속 몬티피오레 의료 센터 재활의학과 전공의 3년차로 근무 중이다. 흔히 레지던트라 불리는 전공의 과정은 많은 의학 드라마에서 희화화해 즐겨 다루는, 대부분 의사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라고 입을 모으는 때다. 하지만 고씨는 이 전공의 과정만 세 번째 밟고 있다.  그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2000년부터 미국 의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2005년에 미국으로 이주했어요. 미국행을 준비하는 의사들을 위한 웹사이트에 글을 올렸는데 인기가 많았죠. 덕분에 미국 의사 고시 준비학원에서 강의하게 됐고 이때 자료를 활용할 생각을 못했는데 아는 선배가 블로그에 올리라고 하더군요.”라고 설명했다. ●블로그로 한 달 최고 1700달러 광고수입 올려  고씨는 “블로그를 소개한 선배가 ‘인기만 있으면 한 달에 몇백 만원은 쉽게 번다.’라며 꼬였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2007년 인터넷에서는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에 관한 논쟁과 월드컵의 인기로 블로그에 관련 글을 썼다가 광고 수익으로 한 달에 500만 원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고씨가 블로그를 1년 반 이상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소통의 즐거움’이었다. 정보를 주고 사람들로부터 댓글과 같은 피드백을 받는 보람 때문에 블로그에 180개가 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부수적으로 돈을 버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라며 고씨는 자세하게 그간 수입 내역도 설명했다.  2007년 11월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는 하루 방문자가 수십 명 수준이었는데 12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화면에 노출되면서 하루 방문자가 10만, 20만 명으로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글 하나를 썼는데 10만 명이 읽었고, 다음날 블로그에 달린 구글 애드센스 계좌에 100불이 생겼더라고요. ‘별일이 다 있네!’라고 생각했죠.”  애드센스란 구글이 만든 광고 프로그램으로 웹 사이트 방문자가 광고를 클릭하면 광고 게시자로부터 받은 광고비를 구글이 웹 사이트 제작자와 나눠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고씨는 지난해 1월에는 최고 1700달러(한화 약 210만 원)짜리 수표를 구글로부터 받았다. 한국의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자는 제의도 쏟아졌다.  고씨가 블로그에 글 하나를 쓸 때 평균 투자하는 시간은 6시간이다. 의학 관련 포스팅을 할 때는 특히 조심스러워서 관련 논문 등을 꼼꼼하게 찾아 점검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글을 올리는 횟수가 점점 줄었고 1년 전 부터는 일주일에 평균 한편씩 블로그에 쓰고 있다. 비례해서 광고 수익도 줄었다. 지난해 2월에는 700달러로 수입이 반으로 줄었고, 3월에는 400달러로 떨어졌다. 이후에는 한 달 평균 400달러 정도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록하다가 지난 5월에는 40~50달러로 확 줄어들었다. ●남들과는 다른 시각 제공한 글로 블로그 인기 끌어  고씨가 블로그에 쓰는 글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미국에서의 의사생활, 영어공부, 자동차다.  처음 고씨가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의사 블로거가 몇 명 없었지만 지금은 몇십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양깡’이란 필명으로 유명한 비뇨기과 의사 양광모씨가 의사 블로거의 시조 격인데, 양씨는 ‘닥블(docblog.kr)’이란 의사들의 그룹 블로그도 만들었다. 물론 고씨도 닥블에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의사들이 블로그 세계에 뛰어들도록 독려하는 양씨는 의사 블로거의 사회적 책임 또한 강조하고 있는데, 고씨도 양깡의 주장에 동의한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한 의사의 ‘유도를 해서 허리 통증을 이겼다.’라는 블로그 내용이 올라 인기를 끈 적이 있어요. 이처럼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개인적인 경험을 의사들이 인터넷에 쓰면 국민 건강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고씨가 미국에서 의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환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점점 모순된 한국의 의료제도가 눈에 들어왔다.  의대에 다닐 때 교수가 절대 알려주지 않았던, 개업의가 사채를 쓰고 링거와 물리치료로 먹고 살며 대학병원은 장례식장과 주차장, 매점으로 돈을 버는 현실이 그를 미국으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의사들의 현실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한국과는 제공하는 의료의 질이 다른 만큼 많은 환자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보다 의사의 수입이 높지는 않다.  한국에서 개인병원 부원장으로 있다가 미국에 온 고씨는 미주리주에서 내과 전공의로 1년 6개월, 뉴욕에서 재활의학과 전공의로 3년 과정을 마치고 올해 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졸업 후에는 미주리주의 병원에서 일할 예정이다.  바쁜 전공의 과정과 병행한 블로그 활동으로 지난해 말에는 다음에서 주는 블로그 기자상도 받았다. 상금은 기부금으로 쓰였다. ●악플 때문에 정치적으론 중립적인 글만 써  블로그계의 스타인 파워블로그들에게는 ‘악플’이 숙명적으로 따른다. 고씨는 지난해 1월 미국의 의료제도에 관한 글을 쓰면서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미국 의료제도가 하도 ‘지옥’이라고 하기에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자 글을 썼어요. 미국 의료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이 아닌데 졸지에 옹호하는 사람으로 매도되더군요.”  고씨는 좋아하는 차에 비유해 한국과 미국의 의료제도를 비교했다.  미국의 의료 제도에 쓰이는 비용은 에쿠스급에 서비스는 그랜저급이라면 한국은 엑센트급의 돈을 들이고 아반테급 서비스를 받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이제 누적된 모순이 한계에 달한만큼 아반테급의 돈을 들여서 아반테급의 서비스를 받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악플은 지울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제는 광우병이나 한국 의료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정치적인 글들은 중립적으로 쓰려고 한다. 대신 하고 싶은 말들은 모아서 책으로 낼 생각이다. 조만간 고씨의 이름으로 ‘우직하게 제대로 영어공부하기(가제)’란 책이 출간된다. 그동안 블로그에 올라왔던 독자들의 댓글과 수기 등도 반영된 ‘소통’의 결과물이다.  의사 블로거의 가장 큰 장벽은 시간이다. 환자들을 제대로 진료하기도 어려운데 일일이 블로그에 댓글을 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레지던트로 바쁜 고씨 역시 가족과의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병원에서도 블로그 활동이 알려지면서 일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줄까 봐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덕분에 최근 있었던 수련 중 전기진단학 일제고사에서 전미 재활학과 의사 중 3등이란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환자들에게 ‘도둑놈’ 소리 안 듣고 신나게 일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고수민씨. 앞으로도 그의 정열적인 블로그에서 계속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서울신문 뉴욕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관련기사 보러가기] 신문과 블로그의 빅뱅 ① 한국언론 첫 트위터 창업자 인터뷰신문과 블로그의 빅뱅 ② 19살에 미국가서 유력일간지 기자로 신문과 블로그의 빅뱅 ③블로그도 뭉쳐야 산다 신문과 블로그의 빅뱅 ④ 100년 신문사의 승부수 신문과 블로그의 빅뱅⑤ 접시닦이가 세계최대 도시 블로그 만들다
  • 블로그에 글 하나 썼더니 100달러가…

    “저는 미국에서 성공한 블로거도 아니고, 수익도 변변찮은데….” 인터넷에서는 영어가 가장 경쟁력 있는 언어다 보니 광고 등으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벌어들이는 파워블로거들도 압도적으로 미국인이 많다. ‘신문과 블로그의 빅뱅’ 시리즈를 위해 명성과 수익 면에서 파워블로거라 불리는 많은 이들과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인터뷰를 하기 어렵다는 답장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뉴욕에서 어렵게 연락이 닿은 고수민(38)씨는 본인 스스로 파워블로거가 아닌 듯하다고 했지만 이미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라 불리는 블로그 세상에서는 유명인이었다. ‘뉴욕에서 의사하기(ko.usmlelibrary.com)’란 블로그를 2007년 11월부터 운영 중인 고씨는 “미국 파워블로거들은 광고의뢰 같은 비즈니스로 연결되지 않거나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면 이메일을 아예 안 보는 것 같아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메일이 오고 바쁘겠어요.”라며 기자를 위로했다. 고씨처럼 의사 블로거로 맥루머스닷컴(MacRumors.com)을 운영했던 아널드 김은 1년 전 아예 내과 의사직을 그만두고 블로거로 전업했다. 이메일을 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아널드 김은 최근 개인 블로그에 “지난 1년간 매우 바빴으며 의사를 그만둔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웹사이트 편집과 프로그램을 도와줄 두 사람을 새로 고용해 앞으로는 이메일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씨는 현재 뉴욕시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부속 몬티피오레 의료 센터 재활의학과 전공의 3년차로 근무 중이다. 흔히 레지던트라 불리는 전공의 과정은 많은 의학 드라마에서 희화화해 즐겨 다루는, 대부분 의사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라고 입을 모으는 때다. 하지만 고씨는 이 전공의 과정만 세 번째 밟고 있다. 그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2000년부터 미국 의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2005년에 미국으로 이주했어요. 미국행을 준비하는 의사들을 위한 웹사이트에 글을 올렸는데 인기가 많았죠. 덕분에 미국 의사 고시 준비학원에서 강의하게 됐고 이때 자료를 활용할 생각을 못했는데 아는 선배가 블로그에 올리라고 하더군요.”라고 설명했다. ●블로그로 한 달 최고 1700달러 광고수입 올려 고씨는 “블로그를 소개한 선배가 ‘인기만 있으면 한 달에 몇백 만원은 쉽게 번다.’라며 꼬였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2007년 인터넷에서는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에 관한 논쟁과 월드컵의 인기로 블로그에 관련 글을 썼다가 광고 수익으로 한 달에 500만 원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고씨가 블로그를 1년 반 이상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소통의 즐거움’이었다. 정보를 주고 사람들로부터 댓글과 같은 피드백을 받는 보람 때문에 블로그에 180개가 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부수적으로 돈을 버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라며 고씨는 자세하게 그간 수입 내역도 설명했다. 2007년 11월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는 하루 방문자가 수십 명 수준이었는데 12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화면에 노출되면서 하루 방문자가 10만, 20만 명으로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글 하나를 썼는데 10만 명이 읽었고, 다음날 블로그에 달린 구글 애드센스 계좌에 100불이 생겼더라고요. ‘별일이 다 있네!’라고 생각했죠.” 애드센스란 구글이 만든 광고 프로그램으로 웹 사이트 방문자가 광고를 클릭하면 광고 게시자로부터 받은 광고비를 구글이 웹 사이트 제작자와 나눠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고씨는 지난해 1월에는 최고 1700달러(한화 약 210만 원)짜리 수표를 구글로부터 받았다. 한국의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자는 제의도 쏟아졌다. 고씨가 블로그에 글 하나를 쓸 때 평균 투자하는 시간은 6시간이다. 의학 관련 포스팅을 할 때는 특히 조심스러워서 관련 논문 등을 꼼꼼하게 찾아 점검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글을 올리는 횟수가 점점 줄었고 1년 전 부터는 일주일에 평균 한편씩 블로그에 쓰고 있다. 비례해서 광고 수익도 줄었다. 지난해 2월에는 700달러로 수입이 반으로 줄었고, 3월에는 400달러로 떨어졌다. 이후에는 한 달 평균 400달러 정도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록하다가 지난 5월에는 40~50달러로 확 줄어들었다. ●남들과는 다른 시각 제공한 글로 블로그 인기 끌어 고씨가 블로그에 쓰는 글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미국에서의 의사생활, 영어공부, 자동차다. 처음 고씨가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의사 블로거가 몇 명 없었지만 지금은 몇십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양깡’이란 필명으로 유명한 비뇨기과 의사 양광모씨가 의사 블로거의 시조 격인데, 양씨는 ‘닥블(docblog.kr)’이란 의사들의 그룹 블로그도 만들었다. 물론 고씨도 닥블에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의사들이 블로그 세계에 뛰어들도록 독려하는 양씨는 의사 블로거의 사회적 책임 또한 강조하고 있는데, 고씨도 양깡의 주장에 동의한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한 의사의 ‘유도를 해서 허리 통증을 이겼다.’라는 블로그 내용이 올라 인기를 끈 적이 있어요. 이처럼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개인적인 경험을 의사들이 인터넷에 쓰면 국민 건강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고씨가 미국에서 의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환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점점 모순된 한국의 의료제도가 눈에 들어왔다. 의대에 다닐 때 교수가 절대 알려주지 않았던, 개업의가 사채를 쓰고 링거와 물리치료로 먹고 살며 대학병원은 장례식장과 주차장, 매점으로 돈을 버는 현실이 그를 미국으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의사들의 현실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한국과는 제공하는 의료의 질이 다른 만큼 많은 환자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보다 의사의 수입이 높지는 않다. 한국에서 개인병원 부원장으로 있다가 미국에 온 고씨는 미주리주에서 내과 전공의로 1년 6개월, 뉴욕에서 재활의학과 전공의로 3년 과정을 마치고 올해 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졸업 후에는 미주리주의 병원에서 일할 예정이다. 바쁜 전공의 과정과 병행한 블로그 활동으로 지난해 말에는 다음에서 주는 블로그 기자상도 받았다. 상금은 기부금으로 쓰였다. ●악플 때문에 정치적으론 중립적인 글만 써 블로그계의 스타인 파워블로그들에게는 ‘악플’이 숙명적으로 따른다. 고씨는 지난해 1월 미국의 의료제도에 관한 글을 쓰면서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미국 의료제도가 하도 ‘지옥’이라고 하기에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자 글을 썼어요. 미국 의료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이 아닌데 졸지에 옹호하는 사람으로 매도되더군요.” 고씨는 좋아하는 차에 비유해 한국과 미국의 의료제도를 비교했다. 미국의 의료 제도에 쓰이는 비용은 에쿠스급에 서비스는 그랜저급이라면 한국은 엑센트급의 돈을 들이고 아반테급 서비스를 받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이제 누적된 모순이 한계에 달한만큼 아반테급의 돈을 들여서 아반테급의 서비스를 받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악플은 지울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제는 광우병이나 한국 의료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정치적인 글들은 중립적으로 쓰려고 한다. 대신 하고 싶은 말들은 모아서 책으로 낼 생각이다. 조만간 고씨의 이름으로 ‘우직하게 제대로 영어공부하기(가제)’란 책이 출간된다. 그동안 블로그에 올라왔던 독자들의 댓글과 수기 등도 반영된 ‘소통’의 결과물이다. 의사 블로거의 가장 큰 장벽은 시간이다. 환자들을 제대로 진료하기도 어려운데 일일이 블로그에 댓글을 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레지던트로 바쁜 고씨 역시 가족과의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병원에서도 블로그 활동이 알려지면서 일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줄까 봐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덕분에 최근 있었던 수련 중 전기진단학 일제고사에서 전미 재활학과 의사 중 3등이란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환자들에게 ‘도둑놈’ 소리 안 듣고 신나게 일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고수민씨. 앞으로도 그의 정열적인 블로그에서 계속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서울신문 뉴욕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후원: 한국언론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2일 TV 하이라이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무더위와 함께 시작되는 땀.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땀 때문에 고민, 땀이 부르는 각종 피부병과 냄새 때문에 한 번 더 고민. 땀은 왜 생기는 것인지, 피부에 독이 되는지 약이 되는지, 어떻게 하면 냄새를 없앨 수 있는지, 땀과 관련된 다양한 고민들. 시원하게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30분 다큐(KBS2 오후 8시30분) 대학 진학을 미루거나 대학을 그만두고 ‘알바’로 살아가는 젊은이가 많아지고 있고, 십년 넘게 일했던 회사에서 가뿐히 정리되고 파트타임을 구하는 중장년층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소위 ‘알바의 고수들’ 그들에게는 분명한 알바철칙, 알바철학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바의 고수들을 만나본다.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준수를 집으로 초대해 닭백숙을 해주며 사위라도 된 듯 오버하는 용여와 선경.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됐다며 배 아파하던 희정은 최은경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한편 댄스 페스티벌에 나가게 된 준수와 친구들. 은경은 무대 위에서 멋진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준수가 멋있어 보이는데…. ●태양을 삼켜라(SBS 오후 9시55분) 정우는 장 회장이 골치 아픈 일이 있다며 사람 목숨을 운운하자 놀란다. 수현은 상미와 밥을 먹다가 태혁을 언제 만난 거냐는 상미의 물음에 졸업연주회 때라는 말과 함께 태혁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도 털어놓는다. 한편 수현은 제주도에 도착했다가 자신을 기다리는 정우를 만나게 된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하룻밤에도 수차례 잠에서 깨는 9개월 민기. 엄마는 잠이 든 민기의 눈치를 살피다 품에서 내려놓는다. 그런데 바닥에 눕히기가 무섭게 민기의 울음보가 터진다. 도대체 민기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함께 영유아 아이들의 수면습관에 대해 알아본다. ●YTN 초대석(YTN 낮 12시35분) 많은 사람들이 단기간에 돈을 버는 재테크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 100세 시대에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해 자산관리를 하는 것이다. 조기 은퇴가 많아진 요즘 미래에셋 강창희 고문과 함께 재테크 열풍에 대한 생각과 노후를 보람 있게 사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 “기분이다~”…술 취해 돈 뿌린 상속男

    “기분이다~”…술 취해 돈 뿌린 상속男

    만취해 1억원에 달하는 돈을 길거리에 뿌리던 남성이 붙잡혔다. 이름이 제임스 B. N.이라고 알려진 맨체스터에 사는 50대 영국인은 최근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팔마 데 마요르카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술에 흥건히 취한 채 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는 만취한 상태로 웃으면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 뿌리는 중이었다. 경찰은 이 남성을 붙잡아 공항 구치소에 구금했다. 그의 지갑에는 현금과 여행자 수표 등 한화 약 1억원에 달하는 5만 2000유로가 들어 있었다. 조사 결과, 행인들에게 뿌리려 한 돈은 본인의 것이 맞았으며 얼마 전 상속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은 “남성은 술에 취해 냄새가 진동했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서 “다음날까지 보호하다가 다시 비행기를 태워 맨체스터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무기수들이 보내온 편지

    세상에 널린 게 신문이다.지하철 선반 위에는 역 입구 등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신문이 나뒹군다.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라 방송이다 인터넷이다 해서 옛날 위세만 못하다. ‘공짜인데 좀 받아가면 안되나.’란 뜻을 얼굴에 나타낸 이들에게 손사래를 치고 출근길 서두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잉크 냄새 싫어.’ ‘에이 그렇잖아도 골치 아픈데.’ ‘공짜가 다 무어냐.’ 등등의 짜증이 얼굴에 스치는 건 물론이고.  그런데 ‘한순간의 실수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 무기수들에겐 이 신문이 간절한 그리움과 희망으로 가슴에 선명한 잉크 자국을 내는 모양이다.어떤 이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신문을 펼치던 모습을 떠올리며 애틋해 하고.  서울신문사가 SK에너지와 법무부 교화위원 등의 후원을 받아 전국 46개 교도소에 수감 중인 무기수 333여명에게 무료로 서울신문을 구독하게 하고 있다.지난 달부터 시작해 1년 동안 계속 구독할 수 있도록 했다.현재 무기수는 1150명 정도로 알려져 3.5명 가운데 1명꼴로 서울신문을 통해 바깥 세상 소식을 접하는 셈이다.  신문을 읽으며 창살밖 세상을 향한 간절함을 달래던 무기수들이 꾹꾹 눌러쓴 감사의 편지가 여러 통 전달됐다.어떤 이는 정말 정갈한 글씨체를 자랑했고 다른 이는 맞춤법은 엉성하지만 진솔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가슴을 친다.모두 다섯 통에 담긴 수인들의 마음을 간추려 봤다.   ●’신문 접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님 대하듯’  대구교도소에서 14년을 복역 중이며 현재 우량수 사동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서모 씨는 정갈한 서체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그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라 하는 이곳에서 이런 글을 드린다는 것조차 부끄럽지만 특별히 고맙고 감사한 마음 전해드리고 싶어 용기를 내어본다.’며 글을 열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선친께서 애독자이셨는데 귀사의 신문을 접할 때마다 마치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을 대하는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게 신문이라고 설명한 서 씨는 ‘음지에 (귀사 신문을) 무료배포하여 주심으로 희망과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도록 하여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끝으로 귀사의 모든 가족분들과 더불어 애독자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마무리했다.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인 백모 씨는 ‘신문은 봐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핑계로 계속해서 후에 구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서울신문사에서 후원을 해준다며 구독을 하겠냐는 말에 감사히 구독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고 털어놓았다.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힌 그는 ‘큰 힘은 못되겠지만 이곳에서 나름 서울신문을 선전하겠다.’면서 ‘기회가 허락한다면 후에는 제 돈을 드려서(들여서) 구독하겠다.’고 약속했다.  세상과 단절된 지 벌써 13년이 되고 있다고 한 같은 교도소의 조모 씨는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고 글을 연 뒤 ‘서울신문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와 기쁘면서도 당황스럽다.이 행운이 9월 광주에서 열리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의 행운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고 적었다.이어 ‘저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이 행운을 누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스포츠 신문만 정독하다시피 했다고 밝힌 역시 대전교도소의 변모 씨는 ‘스포츠를 제외하고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 제 자신이 경제나 정치 기사까지 눈여겨 보는 게 문득 신기하기까지 하더라.’고 적었다.그는 ‘이곳에선 사회와 단절돼 세상 일에 조금만 게을러도 문외한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라며 ‘’버블 세븐’ 같은 곳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 서울신문사에 조건없이 감사의 글을 드리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읽을 때마다 정말 속이 꽉 찬 신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칭찬도 빠뜨리지 않았다.   ●’고아라 여유 없는데 출소 때까지 볼 수 있었으면’  무기수가 아닌 이도 어떻게 알았는지 편지를 보내왔다.청송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며 아직 1년을 더 지내야 출소한다고 밝힌 이모 씨는지난달 22일 쓴 편지에서 ‘아직 많지 않은 나이라 앞으로 많이 배우고 싶고 또 알고 싶은 것도 많이 있다.’며 ‘고아로 자라왔기에 남들보다 배우지도 못해 부끄럽기도 하지만 염치불구하고 부탁하고자 펜을 들었다.’고 썼다.출소 후에 사회 적응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다는 그는 ‘지금 갇혀 지내는 이 시간 그 누구보다 사회 실정을 알아야 함에도 누구의 손길조차 받지 못해 마음에 상처가 많이 남아있다.’며 ‘이곳에 있는 저에겐 더없이 중요하고 필요한 신문을 1년이라도 구독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신문사는 지난 1일부터 이씨가 신문을 받아볼 수 있게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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