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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의 소리] 고궁 휴관안내등 관광객배려 신경쓰길

    지난 월요일 조경 견학차 창덕궁에 갔다.돈화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입구에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만 단체로 관람할수 있다는 문구와 단체 입장 시간안내 표지만 있었다.휴관일에 대한 안내사항은 없었다.낭패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어볼 관리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단체 입장시간이 되면문을 열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기다렸다.그때 주변의 주차 관리원이 오늘은휴관일이라고 말해서 돌아섰다.필자 외에 일본인 관광객 네 사람도 아무 안내 없이 닫혀있는 돈화문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만큼 관광자원으로서 가치를 지닌 창덕궁에 사소한 휴관 안내 표지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분은 분명히 고쳐져야 한다. 최현[서울시 서대문구 연희3동]
  • [義烈 독립투쟁](4)송학선 의사

    일제에 맞서 국권수호와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의병·독립군·광복군·의사·열사 가운데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의외로 많다.신돌석(申乭石)의병장을 비롯해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洪範圖)장군,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李奉昌)의사 같은 분이 그런분들이다.1926년 순종(純宗) 승하 직후 창덕궁 금호문(金虎門) 앞에서 조선총독 사이토를 처단하려 했던 송학선(宋學善)의사 또한 그러한 인물 가운데한 분이다. 1893년 서울 천연동에서 출생한 송 의사는 13살 때 보통학교를 1년 다닌 것 외에는 별다른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또 극심한 가난 때문에 어려서는가족이 흩어져 방랑생활을 하였으며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구상점·사진관 등을 전전하며 호구(糊口)를 해결하기도 하였다.말년에는 영양실조로 각기병까지 걸려 고생한 송 의사였지만 조국에 대한 애정은 배운 사람 못지않았다. 1926년 ‘금호문 의거’로 체포된 후 일본인 판사가 “피고는 어떤 주의자(主義者)인가,사상가(思想家)인가?”라고 묻자 송의사는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총독을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답변하였다.송 의사는 사상·주의는커녕 배후세력이나 후원자조차 없었다.굳이 송 의사를 평가하자면 순수한 애국심에서비롯한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송 의사의 의거는 1926년 4월 26일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승하가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대한제국의 마지막 임금으로 망국의 쓰라림을 경험한순종의 승하 소식은 많은 조선인들에게 망국의 슬픔을 절감하게 했던 것이다.이 소식을 접한 백성들은 전국 곳곳에서 머리를 풀고 엎드려 궁성을 향해망곡(望哭)하였으며 서울에 거주하던 백성들은 창덕궁으로 몰려들어 통곡하기도 하였다.고종 승하후 3·1의거를 경험한 일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군경(軍警) 총동원 채비를 갖춘 채 창덕궁 일대에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평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안중근(安重根)의사를 흠모해오던송 의사는 사이토 총독을 처단키로 결심하고 의거에 사용할 칼을 구입,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그러던 차에 4월 26일 순종이 승하하자 송 의사는 사이토가 조문차 순종의 빈소가 있는 창덕궁을 찾을 것으로 확신하고창덕궁 입구에서 처단키로 작정하였다.이튿날 송 의사는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앞에서 군중들 틈에 끼여 사이토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사이토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장소를 바꿔 돈화문 서쪽 금호문 앞에서 사이토를 기다리고 있던 송 의사는 오후 1시 10분경 고관 차림의 일본인 3명을 태운 자동차가 창덕궁으로 들어가자 그 중 1명이 사이토일 것이라고 판단하였다.얼마후 그들이탄 자동차가 금호문으로 나오자 송 의사는 비호같이 자동차에 뛰어 올라 왼쪽에 앉은 자의 오른쪽 가슴과 왼편 허리를 찌른 후 다시 중앙에 앉아 있는자의 가슴과 배를 찔렀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송 의사는 차에서 내려 인근 재동(齋洞) 방면으로 내달렸다.현장을 목격한 일경들이 추격하여 송 의사를 에워쌌으나 이들은 송 의사를붙잡기는커녕 오히려 육탄전에서 여러 명이 중상을 입었다.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송 의사는 결국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일경 5,6명은 칼을 빼들고는 달려들지도 못한 채 한참 서서 송 의사를 바라보다가 돌멩이를 집어던졌다고 한다(‘동아일보’,1926.5.2).송 의사는 일경 수 명과 대치 와중에도 의연한 기개를 잃지 않았다. 한편 송 의사가 처단한 자들 가운데 사이토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그들은경성부 평의원 다카야마 다카유키(高山孝行)·사토 도라지로(佐藤虎次郞)·이케다 조지로(池田長次郞) 등 3인이었다.이들 가운데 칼을 맞은 다카야마는 즉사하고,사토는 중상을 입었다.또 육탄전 와중에 송 의사의 칼을 맞은 조선인 순사 오환필(吳煥弼)과 일본인 기마경찰 1명도 중상을 입었다. 일제에 피체된 송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 거사 이듬해인 1927년 5월 19일서대문형무소에서 34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송 의사의 의거는 비록 목표로삼았던 사이토를 처단하지는 못했지만 그 반향은 실로 대단했다.3·1의거 이후 급격히 활성화되었던 한민족의 독립운동은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일시 소강상태에 빠져 있었다.또 일부 조선인들은 사이토의 교활한 ‘문화정치’ 전략에 일시적으로 말려들어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상황이었다.바로 이러한 때 서울 한복판에서 한 순박한 애국청년의 의거를 계기로 조선민족은 다시 민족의식을 회복하게 되었고 비록 3·1의거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이는 다시 6·10만세 의거로 불타오르게 된 것이다. 1962년 정부는 송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하였다.송 의사피체 후 보도된 신문기사에는 가족으로 부모와 동생 2명만 언급돼 있을 뿐처자에 대한 얘기는 없는 것으로 봐 의거 당시 송 의사는 미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현재 송 의사 관련 기념사업회나 추모모임이 없는 것은 물론 보훈처에서 유족의 근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나라를 위해 목숨을바친 순국선열이 가신 지 한 세기도 채 못돼 벌써 잊혀지고 있으니 안타깝고 부끄러운 노릇이다. 채영국 독립기념관 연구원·문학박사*의거 현장 금호문 앞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좌우에는 작은 문 두 개가 있다.오른쪽으로는 단봉문(丹鳳門),현대그룹 사옥쪽인 왼쪽으로는 금호문(金虎門)이 있다. 바로 이 금호문 앞이 송학선 의사가 조선총독 사이토를 처단하려 했던 현장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왕조 궁궐 가운데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멸망을 지켜본 궁궐이라고 할 수 있다.이는 조선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이곳에 기거하면서 망국을 맞았기 때문이다.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은 순종은 황제 즉위 후 덕수궁에서 이곳 창덕궁으로 옮겨 기거하고 있었다. 1910년 8월 ‘한일병합’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일제는 순종을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시킨 후 ‘이왕(李王) 전하’ 혹은 창덕궁에 기거한다고 해서 ‘창덕궁 전하’라고 부르곤 했다. 일제는 ‘망국의 임금’인 순종을 위로한다는 미명하에 망국 이듬해인 1911년부터 인근 창경궁에 동물원·식물원을 조성하면서 궁궐을 훼손하였다.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송 의사의 의거 현장인 금호문 앞 일대는 창덕궁 관광객들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현재 이곳에는 송 의사의 의거현장임을 알리는 표지석은 물론안내판 하나도 서 있지 않다.창덕궁 관계자는 “최근 일본인 관광객이 부쩍늘었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사이토총독 어떤 인물인가 일제하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처단 대상으로 지목했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일본 해군대장 출신으로 제3·5대 조선총독을 역임했다.재임기간은 10년 1개월로 역대 조선총독 가운데 중임한 사람은 사이토가 유일하다.1856년 일본 이와테(岩手)현에서 태어난 사이토는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25세인 1882년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이후 해군에서 승승장구,41세인 1898년에는 해군차관,1906년에는 49세의 나이로 해군의 수반인 해상(海相)에 올라 8년여 동안 자리를 지켰다.이어 1919년 8월부터 두 차례나 조선총독을 역임했고,1932년 5월 일본 내각의 수상에 취임하였다. 일본 군국주의 체제하에서 정치엘리트로 내각 수반직에까지 오른 사이토는두 얼굴을 지닌 대표적인 인물이었다.사이토는 3·1의거 후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이 가장 고조되어 있을 때 조선총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총독 취임 후 소위 ‘문화통치’라는 슬로건 아래 문관(文官)총독제허용,헌병경찰제 폐지,지방자치제 실시,산미증산계획 등을 내걸었다.그러나이러한 사탕발림식의 제도는 그의 재임기간 내내 거의 실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강화된 무단통치로 나타났다.즉 문관출신 총독은 해방이 될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임명된 적이 없고,경찰은 이름만 바뀐 채 이전보다 더 늘었으며 증산된 쌀은 한국인의 입으로 들어가는 대신 모두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한편 사이토는 부임 초부터 한국 독립운동가들로부터 처단 대상으로 지목됐었다.경성(현 서울)에 부임하는 날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64세의 노 투사 강우규(姜宇奎)의사로부터 폭탄세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24년 5월에는만주의 독립군단인 참의부(參議部) 대원들이 압록강을 순시하는 그와 그의일행을 공격,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결국 귀임 후 1936년 2월 26일 소위 ‘2·26사건’때 후배 청년장교들에게 암살당했다. 채영국 연구원
  • 청계천 3∼5가 주차난 해소

    불법 주·정차로 교통체증을 빚고 있는 청계천 3∼5가 지역의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한 개선사업이 다음달부터 본격화된다. 서울시는 13일 화물차량 주차공간이 부족해 무단 주·정차가 성행,교통혼잡과 물류비용 상승을 초래해온 청계천 3∼5가 일대에 대한 주차난 개선사업안을 확정,다음달부터 공사에 들어가 오는 10월 완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상지역은 청계천 3∼5가와 종로∼청계천∼을지로를 잇는 세운상가 일대,돈화문로,배오개길,훈련원길 등이다. 사업안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앞으로 400여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노상주차공간이 들어선다.이와 함께 200대 가량의 화물차를 종묘공원 주차장등에 주차시켰다가 택배센터의 연락을 받고 청계천 일대 상가로 가 물품을수송하는 체제가 도입된다. 또 세운상가 부근에 화물운송용 손수레 길이 설치되고,종로4가와 청계4가를 잇는 배오개길에는 이륜차 횡단로가 설치되는 등 보행을 방해하는 손수레와이륜차의 교통 및 주차시설도 정비돼 보행환경이 크게 개선된다. 이밖에 세운상가와 대림상가에는주차장과 건물을 직접 연결하는 화물전용엘리베이터가 4군데 설치되고 노상주차장 주차발권기 운영,안내표지판 정비,버스 승·하차 안전구역 설치 등도 이뤄진다. 시는 이번 주차개선사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공사가 끝난 뒤 11월부터시·구청 특별단속반을 가동,불법 주·정차를 근절할 방침이다. 한편 시는 동대문,남대문,영등포시장 부근 등 도심의 다른 유통상업지구도대거 정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재순기자
  • 날마다 축제… 흥겨운 5월

    가정의 달인 5월의 서울은 온통 축제와 문화이벤트,행사들로 뒤덮인다.서울시와 각 구청들이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하고 알찬 문화예술 행사를 대부분 무료나 저가로 마련, 가족단위의 향유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는 내·외국인들이 다시 찾고 싶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경복궁 광화문 대학로 명동 등 4대문안 역사·문화 탐방로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다. 종묘공원 국악정에서는 ‘전통연회의 장’이 열려 사물놀이,택견,민요공연이 펼쳐지고 돈화문에서는 ‘궁중생활의 장’을 통해 수문장 연출극과 상황극 ‘금군’을 선보인다.또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는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강강수월래 및 전래동요 등 우리 문화와 놀이를 배우는 ‘문화체험의 장’이 마련된다.‘젊은 향연의 장’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록·포크송 콘서트가,‘세계민속의 장’ 정동로타리에서는 외국어대의 12개 나라 민속공연 등이 열린다. 시는 이밖에 5월 한달동안 다양한 청소년대상 이벤트를 펼치며 각 자치구들도 구민의날 등을 맞아 풍성한 축제행사를 주민들에게 선사한다. 성북구는 개청 50주년을 맞아 4일부터 11일까지를 ‘아리랑 축제’ 기간으로 정하고 선잠제 봉행과 무료영화상영,기념공연,체육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관악구는 1일 구민의 날을 맞아 관악산 1,2광장에서 관악산제와 철쭉아가씨 선발대회,구민노래자랑 등으로 짜여진 ‘관악산 철쭉제’를 갖는다. 강남구도 1,2일 이틀간 로데오거리 일원에서 ‘압구정문화축제’를 열며 종로구는 3일부터 9일까지 구민의날 행사를 갖는다. 이밖에 서초구는 2일 구민걷기대회를,강서구는 각 동별 경로잔치를,중랑구는 14일 구민의날 행사를 각각 치른다.
  • “시민 행정개선 노력 위로금 지급”

    ◎엉터리 도로표지판 믿고 운전하다 범칙금/1심 패소 崔顯永씨 항소심서 승소 판결 “돈에 연연하지는 않습니다.잘못된 행정을 바로 잡게 돼 기쁠 뿐입니다” 불합리한 도로표지판 때문에 범칙금을 부과받은 한 시민이 구청을 상대로한 재판에서 1년여만에 이겼다. 서울지법 만사항소6부(재판장 申暎澈 부장판사)는 24일 崔顯永씨(38)가 서울 종로구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구청은 崔씨에게 정신적 시간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3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경남 창원의 건설회사 직원인 崔씨는 지난 해 1월7일 하오 1시20분쯤 아내(36)를 승용차 태워 서울 종로 우정국로 공평동쪽에서 안국동 로타리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안국동 로타리 전방 140m와 40m 지점에 설치된 파란색 도로표지판에는 좌회전은 광화문,우회전 돈화문,직진은 안국동으로 적혀 있었다.직진할 생각이던 그는 그러나 10m 전방에 와서야 직진 차선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당황한 崔씨는 급히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 노란색 안전지대로 대피했다.사고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교통경찰관은 다짜고짜 3만원짜리 ‘딱지’와 벌점 10점을 부과했다.기가 막혀 참을 수가 없었다.그냥 가자는 아내를 뿌리치고 종로구청을 찾았지만 담당자는 “도로표지판은 방향을 안내할 뿐 차선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신호등과 노면 표시는 제대로이지 않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崔씨는 결국 소송을 냈고 지난해 9월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며칠 뒤 崔씨는 문제의 표지판 직진 화살표에 빨간색 X표가 추가된 것과 신호등에 ‘안국동 직진금지’라는 보조신호판이 설치된 것을 알게 됐다.용기를 얻은 崔씨는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도로표지판은 주위의 교통신호기의 지시내용과 틀리거나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 「타임캡슐」 오늘 묻힌다/하오3시 필동 남산골공원 광장에 매설

    ◎창덕궁∼돈화문로∼종묘공원 어가행렬도 「서울 천년 타임캡슐」이 정도 6백년 기념일인 29일 하오 매설된다. 서울 정도 6백년 기념사업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타임캡슐 매설은 오늘날의 시민생활 및 서울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문물 6백점을 캡슐에 담아 4백년 뒤인 서울 정도 1천년에 후손에게 유산으로 전하는 사업이다. 타임캡슐 매설은 하오 3시 중구 필동 남산골공원 광장 1천5백여평에서 시민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시민 공모를 통해 채택된 캡슐광장은 분화구 모양으로 시간의 영속성을 의미하고 있다. 캡슐은 보신각종을 본뜬 모형이며 실물·축소모형·마이크로필름·영상기록 형태로 수장된다.실물은 한복·유아복 등 섬유류,신용카드·전화카드·식기세트 등 화학제품류,서울 2000년 도시계획·토지매각제도·농수산물유통구조·교통지도 등 기록류,수지침·토큰 등 금속류,전자제품류,씨앗류,약품류 등 2백50개 품목이 보관된다. 또 식생활관습·일간지·공직자재산등록양식·낙찰계·신장기증자명단·입시참고서·과외실태·대형교통사고·한강교량설계도·재개발사업·유행농담집·북한핵·올해 히트상품 등 1백4개 품목은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져 수장된다. 이밖에 경찰관복장·양식·중식·개소주·가정의례·복덕방·서울야경·대학로·오렌지족·서편제 등 2백46개 품목은 영상자료로 보관된다. 29일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문무 백관들과 함께 입성한지 6백돌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서울에서는 서울의 과거를 돌아보는 조선조 한양입성 어가행렬이 하오 2시부터 3시30분까지 창덕궁∼돈화문로∼종묘시민공원간 1.2㎞에서 화려하게 재현된다. 한편 이날부터 12월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천도과정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삶을 되돌아본 뮤지컬 「서울사람들」이 공연된다.
  • 현대·유공/돈화문주유소 쟁탈전

    ◎계동사옥 코앞 위치… 유공과 이전계약/유공 “불공정 거래” 계약파기 통보/현대 “합의깬 이상 법적수단 동원” 미륭상사를 사이에 두고 전개되던 현대정유와 유공의 「정유대리점 쟁탈전」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 대상은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 바로 앞에 있는 돈화문 주유소.이 주유소는 그동안 유공과 거래해 온 곳.정유사업에 뛰어든 현대로서는 코앞에 있는 이 주유소는 당연히 「접수대상 1호」.그룹 최고위층의 「특명」도 떨어졌다. 그래서 지난 달 12일 현대정유측은 자사 계열인 강남 신사주유소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유공측과 이 주유소 이관 계약을 체결했다.이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며칠 뒤 유공과 거래하던 미륭이 돌연 거래선을 현대정유로 바꾸면서 양측의 분쟁이 시작됐다.입간판의 철거를 놓고 몸싸움이 벌어졌고 송사도 빚어졌다.급기야 유공측은 돈화문 주유소의 이전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공문을 현대측에 보낸데 이어 지난달 30일 주유소의 현대정유 상표를 지우고 다시 유공상표를 내걸었다. 이번에는 현대측이 발끈했다.『유공측이 미륭건에 대한 보복으로 쌍방의 합의를 깬 만큼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대응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반면 유공측은 『현대와 미륭간의 부당한 계약체결로 상호간의 신사협정은 이미 깨졌고 이를 전제로 합의한 돈화문 주유소 이관계약도 원인무효』라고 응수하고 있다.
  • 궁궐:3/“경복궁 싫다”태종이 창덕궁 창건(서울 6백년만상:40)

    ◎임진왜란·인조반정·순조때 대형화제/세임금 폐출된 곳… 후원으로 비원 조성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태종은 서울 천도를 결심한다.태종은 경복궁은 창건때부터 좋지 않은 일이 잇따라 정궁을 다시 지으려했다.그러나 선왕 태조가 창건한 경복궁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조준등 중신들의 반대여론에 밀려 이궁으로 지은 것이 창덕궁이다. 정궁은 아니면서도 가장 많은 임금이 정사를 살폈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리는등 수많은 궁중 비사를 간직한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태종 4년(1404) 10월 경기·충청·강원에서 군병력과 승려 농민들을 동원,공사에 들어간 창덕궁은 이듬해 10월 완공됐다.규모는 경복궁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태종은 창덕궁에 든지 6년만에 거처를 경복궁으로 옮긴뒤에도 계속해서 정전과 누각을 지어 12년에는 정문인 돈화문을 건립했다.그리고 세종 원년(1419) 인정전이 완공돼 비로소 궁궐의 모습을 갖출 수있었다. 단종과 연산군이 폐출되는 비사를 간직한 창덕궁은 임진왜란발발로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피란에서 돌아온 조정은 경복궁의 터가 불길하다고해 가장 먼저 창덕궁 중건에 착수,광해군 원년(1609)에 완공했다.이후 창덕궁은 경복궁이 중건(1867)될때까지 「조선의 정궁」으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경운궁에 거처하던 광해군은 창덕궁이 완공된 뒤 「선왕의 상중」이라고 이런저런 핑게를 둘러대며 궁에 들기를 꺼려했다.그러나 마지못해 창덕궁으로 이어한 뒤 20일만에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당시 이의신이라는 술사의 말에 의존하던 광해군은 창덕궁에서 노산군(단종)과 연산군이 폐출됐기 때문에 창덕궁에 들기를 꺼려했던 것으로 「광해군 일기」는 전하고 있다. 중건 5년만에 중신들의 성화에 못이겨 창덕궁에 든 광해군은 8년뒤 인조반정으로 노산군·연산군과 마찬가지로 창덕궁에서 쫓겨나는 비운을 맛봐야했다. 광해군은 창덕궁을 창건하면서 조성됐던 후원을 재정비했는데 이곳이 오늘날의 비원이다.비원은 북악에서 뻗어나온 완만한 산기슭 6만여평에 정자와 연못을 만들어 이룩한 조선조 정원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비원 연경당 뜰에는 괴석들이 석분에 담겨 눈길을 끄는데 이들 석분은 광해군 일기에 『기화·이목·괴석을 널리 모아 동산을 만들고 정자를 지어 소요해 그 화려함이 일찍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해군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조반정이 있던날 창덕궁엔 두번째 큰 불이 나 인정전등 몇 전각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됐다.이에 따라 인조 25년 6월 (1647) 광해군이 공들여 지었던 인경궁의 전각을 헐어 창덕궁 재건공사를 시작,그해 11월 복구공사는 완료됐다. 이후에도 크고작은 화재가 발생했으나중창은 없었다.그러나 순조 3년(1803)12월에 또 다시 대형화재가 발생,인조반정때 실화를 면했던 인정전등 주요전각이 모두 소실됐다.이듬해 완공된 인정전은 국보 2백25호로 지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번에 걸친 대화재로 중건과 재건을 거듭한 창덕궁은 19세기에 접어 들면서 역사의 거센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 순종 장례식 비디오테이프 첫 공개

    ◎돈화문서 출발 훈련원영결식뒤 장지로/4분40초짜리 16㎜촬영… 일군이 앞장서/미 남가주대서 보관 조선왕조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의 장례식 과정을 상세하게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9일 국내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 비디오테이프는 서울시 산하 서울학연구소가 올해초 실시한 사료탐사 과정에서 미국 남가주대내 한국전통문화관에 보관중인 것을 입수한 것이다.이 테이프는 교포신문 신한민보사 사장 김운하씨가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아 도서관에 기증한 것.활동사진으로 촬영된 것을 복사한 이 필름의 원 촬영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당시 국내활동이 자유로웠던 미국인이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상영시간은 4분40초이고 제목은 「융희황제의 장례식」으로 돼 있다. 테이프는 순종의 장례일인 1926년 6월10일 장례행렬이 돈화문앞에서 출발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맨앞에는 말을 탄 일본경관이 섰으며 그뒤로 일본 해군군악대와 기병·보병등이 따르고 혼백을 모신 신련(신련)과 수백개의 만장이 보인다.행렬후미에는 상복을 입은 수많은 백성들이 울며 뒤따른다. 장례행렬은 단성사앞과 하랑교(당시 청계천에 있던 다리중의 하나)를 지나 황금정3정목(현 을지로 3가)에서 왼쪽으로 돌아 영결식장인 훈련원(현 동대문운동장)에 이른다.훈련원에서 영결식을 거행한 뒤 동대문과 청량리를 지나 유택인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의 유릉에 도착한 모습들을 세세히 담고 있다. 사료팀 관계자는 『장례식 당일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3·1운동과 유사한 형태의 6·10만세운동이 전개되는등 순종의 장례일은 민족사적 의미가 있다』며 『이번에 발견된 장례식 장면이 당시의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창덕궁/왕조의 숨결 심처 곳곳에/내전 전각들엔 왕가의 위엄서려

    ◎지형맞게 조경… 비원자연미 일품/옥류천일대 출입통제… 관람시간도 시간별 제한 모처럼 바람 쐬러 시내 바깥에 나갔다가 교통체증에 기분전환은 고사하고 울화만 뻗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 시내 안에도 기분전환의 바람을 속에 품고있는 장소가 많다.고궁탐방은 구태의연해 보이지만 고궁 문턱을 넘어서면 생각이 차츰 달라진다.비원이 뒤에 들어앉아 있는 창덕궁은 시외나들이의 차선책으로 찾았던 마음을 열렬한 경배자의 그것으로 바꿔놓는다.조선왕조는 사라졌지만 오백년동안 가꿔지고 가다듬어졌던 왕궁의 바람은 매혹의 마력을 안고 있다. 고궁의 매력은 역사적 배경에서 먼저 솟아난다.창덕궁은 잇대어 자리한 창경궁과 함께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궐로 불려졌다.태종 초년에 창건되었으나 초기의 임금들은 대부분 경복궁에서 정사를 보아 이궁에 머물렀다.그러나 성종과 연산군은 주로 이곳에서 지냈으며 임진왜란으로 정궁인 경복궁은 물론 창덕·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린 뒤 1609년(광해군1)창덕궁이 가장 먼저 복구,중건돼 경복궁이 1867년(고종4) 중건되기 까지 2백50년 넘게 조선왕조의 법궁 자리에 있었다.여기서 인조반정,장희빈,사도세자 뒤주참사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 경복궁이 일사불란한 직선 구도의 위용을 펼치는 데 반해 창덕궁은 곡선의 은밀함이 천천히 깊어지는 형세이다.같은 구중궁궐이라도 창덕궁에선 나선형의 심처로 이끌려가는 기분이다.그리고 창덕궁의 구중심처는 왕의 침전인 평지의 내전이 아니라 표고 90m미만의 동산에 조성된 10만평의 후원인 비원이다. 창덕궁은 근 15만평에 이르러 5대궁궐중 제일 넓지만 지세가 굴곡지고 경관 또한 한결같지 않아 탐방객들을 늘 깨어있게 한다. 이런 취향에 맞게 창덕궁은 정문인 돈화문이 한가운데에 있지않고 남서쪽 모퉁이에 나있다.정전인 인정전과 내전일곽인 희정당 대조전 등의 초입은 일제시대인 1912년 일반에 공개되면서 많은 변형과 훼손이 가해진 곳이다.그러나 돈화문은 광해군,선정전은 인조,인정전(국보 225호)은 순조 때 각각 재건돼 오늘에 이른다.내전 건물들은 19 17년 화재이후 다시 지었고 19세기 때의 3분의1규모에도 미치지 못한다.그러나 전각과 전각이 원래의 특징인 복도구조로 쭉 연결된 외관은 답답한 가운데서도 왕의 처소다운 위엄을 느낄 수 있다. 건물군 뒷쪽에 계단형식으로 정원을 꾸민 화계가 나타나면서 비원이 열린다.비원은 부용지,연경당,반도지,옥류천부근 등 대충 4구역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가장 깊숙한 곳인 옥류천 부근은 출입금지되어 있다.창덕궁의 건물들이 인위적인 대칭구성에서 벗어나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도 속에 놓여 있듯이 비원도 여기저기를 손질해 인공적으로 꾸민 게 아니라 동산의 자연미를 살려 드넓고 다양한 풍치의 정원을 일으켜 세웠다.관상수를 부러 가져다 심지 않았고 나무에 전지를 하지 않았으며 따로 꽃밭도 만들지 않았다.인조 때부터 세워진 28개동의 누정이 1백여종의 나무 사이사이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길잡이◁ 창덕궁·비원은 3년동안 일반에 폐쇄된 뒤 79년부터 안내원의 인솔하에 제한관람하게 되어있다.9시부터 1시간단위로 하오4시까지 입장하며 이와따로 외국어안내가 중간중간 있다.비원까지의 주관람로는 2.2㎞로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입장료 1천8백원(어린이 9백원).
  • 손달용 전치안본부장/20억대 부도 해외도피

    전 치안본부장 손달용씨(60·화성전자 대표·서울 종로구 운니동 98의 78)가 20억여원의 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서울 종로경찰서는 4일 소형 TV 제조업체인 (주)화성전자(서울 중랑구 망우3동)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돈화문지점(지점장 육영진)이 『손씨가 지난달 28일자로 만기도래한 9천5백20만원의 당좌수표를 결제하지 못해 3차 부도를 냈다』며 고발해옴에 따라 손씨를 부정수표단속법 위반혐의로 입건하는 한편 손씨의 소재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손씨가 (주)화성전자에 이어 설립한 도시가스 공급업체 (주)화성도시가스(강원도 원주시 단계동)도 같은 날인 지난달 28일 10억2천6백만원의 부도를 낸 점으로 미뤄 손씨가 사업 부진으로 자금난에 몰리자 고의로 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피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 영등포전화국등 15개 교차로/내일부터 좌회전 금지

    ◎사고위험 횡단보도 14곳 폐쇄/대학로등 12곳 야간주차 허용/서울시경,교통체계 대폭 개선 서울시경은 8일 날로 심화되는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당산역 및 영등포전화국 로터리 등 15개 교차로의 좌회전을 금지시키고 부족한 주차공간 마련을 위해 대학로 등 12개 가로에 시차제 주정차(하오9시부터 다음날 상오7시)까지를 허용하는 시내 교통체계를 대폭 개선,10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시경은 좌회전 금지에 따른 우회전운행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산역 로터리 등 9개 교차로에 U­턴을 허용키로 했다. 시경은 또 횡단보도가 밀집돼 소통에 지장을 주거나 사고위험이 있는 미아국교 앞 등 14개소의 횡단보도를 폐쇄하는 한편 교통정체가 심한 영등포로터리∼서울교 남단까지 가변차선을 설치,내년 1월부터 운영키로 했다. 시경은 이와함께 중곡 및 압구정 교차로는 각각 상오7시부터 9시까지와 하오10시부터 다음날 상오7시까지 시차제로 좌회전을 금지하고 전농동로터리 등 5개 로터리의 신호를 직진·좌회전 동시신호로 바꾸며 밤시간의 차량통행이 한산한데도신호기를 운영,불편을 주고있는 중부시장앞 등 91개소는 자정부터 상오6시까지 황색점멸 등으로 처리키로 했다. ▷좌회전 금지◁ ▲당산역 로터리 ▲영등포전화국 로터리 ▲옛 영등포경찰서 앞 ▲여의도 동로고수부지 입구 ▲홍릉 가스주유소 ▲광업진흥공사 광장로터리 ▲청구성심병원 ▲모래내 설렁탕집 ▲서부세무서 로터리 ▲신월동 동아생명 ▲서울고 로터리 ▲양재전화국 로터리 ▲서초 삼호아파트 로터리 ▲무학여고 앞 ▷시차제 주정차◁ ▲돈화문로 ▲배오개길 ▲대학로 ▲훈련원로 ▲마른내길 ▲한강로 ▲강남대로 ▲도산대로 ▲도봉로 ▲의주로 ▲시흥대로 ▲언주로 ▷횡단보도 폐쇄◁ ▲미8군 6호정문 ▲의료보험공단 ▲망원동 노노식품 앞 ▲도봉산 갈비집 ▲강동경찰서 ▲강동 미주식당 ▲강동 대화합판 ▲강동 우리식당 ▲강동 현대컴퓨터 ▲미아국교 ▲석관로터리 ▲면목동 민속관광 ▲동1로 주택은행 ▲면일국교
  • 한주 시작… 회의 러시… 차량 총출동/대도시 교통체증도 “월요병”

    ◎평소50분거리 2시간 걸려/도심 평균시속 8㎞… 걷는게 빠를 판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의 교통체증이 극심한 월요병을 앓고 있다. 한 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8∼9시 사이에는 평소때의 러시아워보다 교통체증현상이 갑절이나 더 심해 도심으로 진입하는 차량들이 30∼40분씩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발이 묶이는 정체현상이 다른 날보다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차량등록대수가 1백만대를 넘어선 서울의 경우 이같은 현상이 매주마다 되풀이 되고 있다. 월요일 아침 서울시내 13개 주요 간선도로는 평일의 평균시속 18.7㎞보다 차량속도가 크게 떨어지면서 평균시속이 10∼13㎞밖에 안돼 성인남자가 걸어 갈 때와 같은 속도의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도심을 관통하는 돈화문로(돈화문∼충무로),흥인문로(동대문∼광희동),남대문로(남대문∼종각) 등지의 교통체증은 거의 한계점에 이르러 평균 시속이 8.5㎞정도밖에 안된다. 회사원 김모씨(42ㆍ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는 『평일에는 도심에 있는 회사까지 40∼50분이면 갈수있으나 월요일에는 1시간20분∼2시간까지 걸린다』고 말했다. 또 부산의 경우 자동차 보유대수는 23만여대밖에 안되지만 도로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아 교통월요병이 중증이다. 부산시내 평소 러시아워 주행속도는 평균21㎞정도이나 월요일 아침 가야로 사상로 대청로는 차량속도가 7∼8㎞밖에 안되고 가야로에 있는 신암삼거리∼주례삼거리 사이의 4.4㎞구간을 통과하는데 보통 1시간씩이나 걸린다. 차량보유대수가 6만대를 넘어선 광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월요일 러시아워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교통난이 심한 송정방면과 화정ㆍ농성 등지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유일한 도로인 광주∼송정간 고속화도로의 경우 월요일 아침마다 양동시장∼돌고개∼한전앞까지의 5백m밖에 안되는 거리에는 차량정체현상이 30∼40분씩 일어나고 있고 대성국민교앞 4거리도 3백∼4백m씩 차량이 줄을 잇고 있는 형편이다. 이밖에 대구의 경우도 도심 남북과 동서를 잇는 도로와 외곽지대에서 도심으로 통하는 진입로마다 차량이 막혀 월요병이 심하게 번지고 있다. 이처럼 대도시교통이 월요병을 앓는 까닭은 관공서나 큰 회사들이 도심에 집중되어 있는 구조적인 원인이 가장 크다. 또한 대부분의 직장에서 한 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에 가종 회의를 열고 있는 실정이어서 많은 운전자들이 회의에 지각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밖에도 월요일이 아닌 주중에는 출장ㆍ파견ㆍ회합 등의 일이 많아 회사원들이나 공무원들이 일터로 바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월요일 아침에는 대부분 직장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도심진입 차량대수가 평일보다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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