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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유서 경영까지 독점”… 「제1의 족벌왕국」 현대

    ◎공개안된 부의 실체를 벗긴다/상호출자로 내부지분율 국내 최고/정주영씨 16개사·5남은 8개사 주식 소유/기업공개전 증자… 2천억 부당이득 경제·사회의 발전으로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기업을 공개,소유와 경영을 분리해가고 있으나 현대그룹은 정씨일가가 경영과 소유를 독점하고 있는 「정씨왕국」이다.공개된 계열사들도 법규상 최소한의 요건만 겨우 갖추었을 뿐 내막적으로는 가족들이 대부분의 지분을 갖고 절대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형식상 명예회장으로 경영2선에 물러나 있는 것처럼 돼있는 정주영회장을 그룹내에서는 아직도 임직원들이 「왕회장」으로 부르고 있으며 계열사에 노사분규가 있을때마다 노조원들이 회사대표는 제쳐두고 그룹본부에 몰려와 정명예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할 정도로 그룹경영에 관한 정명예회장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현대그룹의 소유와 경영집중현상은 국내어느재벌보다 심각하다. 공정거래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현대그룹이 지난 4월말 현재 친인척과 임원등 특수관계인의 지분및 계열사상호출자를 통해 소유하고있는 내부지분율은 67.8%나 된다. 현대그룹의 계열사에 대한 내부지분율이 이같이 높은 것은 정회장개인과 아들·형제의 지분은 기업공개등의 형태로 낮춰놓았지만 계열사간 상호출자를 통해 정회장가족이 계열사의 지분 50%이상을 확보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의 이같은 지분율은 일본 대기업들의 내부지분율(20%안팎)은 물론 삼성 대우 럭키금성등 여타 국내재벌들의 내부지분율(23∼53%)과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현대그룹이 소유형태와 관련,여전히 족벌경영체제를 고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룹총수인 정주영회장만해도 현대중공업(53.7%),현대자동차(1.6%)현대철탑산업(45%)현대엔지니어링(21.8%)현대산업개발(5.6%)현대종합상사(1.0%)현대해상화재(1.8%)현대건설(9.2%)인천제철(2.8%)현대전자(1.3%)현대정공(0.2%)현대강관(0.2%)등 17개 계열기업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고 차남 정몽구씨는 현대강관 현대정공 현대산업개발 현대엔지니어링등 9개계열사의 주식을 0.1%에서 29.3%까지 갖고 있다. 3남 정몽근씨가 금강개발등 5개사의 주식을,5남 정몽헌씨가 현대전자등 8개사,6남인 정몽준씨가 현대중전기등 3개사,7남인 정몽윤씨가 현대화재해상등 4개사,8남인 정몽일씨가 현대석유화학의 주식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 89년에도 국정감사석상에서 정주영회장과 정몽헌 정몽구씨등 일가 8명이 현대목재 현대정공 금강개발 현대화재해상보험등을 기업공개하면서 공개직전에 대규모 무상증자를 실시,모두 2천1백억원의 자본이득을 취한 것으로 밝혀져 기업윤리가 문제되기도 했었다. 현대그룹은 소유집중뿐아니라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정주영회장의 아들들이 회장이나 사장으로 대거 포진하는 족벌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남 정몽필씨의 사망으로 사실상 장남인 정몽구씨가 현대정공회장으로 현대자동차서비스 인천제철 현대산업개발 현대강관 현대중장비산업등 6개사를 거느리고 있고 3남 몽근씨가 현대백화점의 운영주체인 금강개발산업의 회장으로 있다. 또 현대전자산업사장인 5남 몽헌씨가 현대전자와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등 3개사를 관장하고 있으며 정치입문과 함께 현대중공업회장에서 물러난 6남 몽준씨는 새로 창간될 현대신문의 대주주로 등록돼있다. 7남 몽윤씨는 현대화재해상보험사장으로,8남 몽일씨는 국제종합금융전무로 각각 경영일선에 나서고 있다.
  • 여야,힘겨루기 오래 가진 않을듯/파행 국감과 정국 전망

    ◎「당근과 채찍」의 강온책 구사할듯/여/선거법등 협상고지 확보를 겨냥/야 정태수 전한보그룹회장의 증인채택문제로 30일 중단된 국정감사는 민주당이 1일 의원총회를 통해 남은 기간 국감전면거부를 결의하고 민자당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여당 단독으로 국감을 진행키로 결정함으로써 결국 정상운영에 실패했다. 선거법협상·예산안처리등을 앞두고 파워게임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 이번 사태는 나머지 일정은 물론 향후 정국구도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정치선전효과 노려 ○…민자당은 민주당측의 이번 국감전면 보이콧 사태를 야권통합 이후 세과시를 위한 정치적인 공세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측이 일단 국감거부쪽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쉽게 되돌아 설 수 없을 것이며 통합야당의 선명성 부각이라는 현실적 필요가 민주당을 더욱 강경쪽으로 몰아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민자당은 정씨가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청문회 같은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켜 정국을 불투명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남북한유엔동시가입으로형성된 여당의 정국주도분위기에 흠집낼 가능성을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특히 수서사건이 정치적 이슈로 재등장,야당측의 청와대관련의혹 주장을 더욱 증폭시킨다면 국내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까지 발전할 공산이 크다는게 민자당지도부의 솔직한 심정이고 보면 증인채택문제에 대한 민자당의 입장은 단호할 수밖에 없다. 민자당은 비록 민주당이 국감을 보이콧하면서 일시적인 공세를 펴고 있으나 6,7일의 여야대표연설과 대정부 질문등 가장 중요한 국회일정이 남아있는 만큼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증인채택문제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민자당 분위기는 1일 열린 총무단·상임위원장단 연석회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정략적 차원의 정치공세일뿐』『국감실적 저조를 만회하기 위한 속셈』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주당측의 국감보이콧을 맹비난했고 증인채택불가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민자당은 이같은 강경자세에도 불구,국정의 가장 큰 책임이 여당에 있는만큼 이유야 어떻든 국정감사가 반쪽으로진행된다는 국민들의 비난여론에 상당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국감의 정상운영을 위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며 바로 이점에서 민주당의 국감보이콧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현실적 고민이 있다. 결국 민자당은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는 강온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번 국감보이콧이 국감이후의 나머지일정,즉 예산안처리·선거법협상·14대총선등에는 어떠한 차질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민자당의 확고한 입장이다.따라서 이번사태가 거여와 강야간의 파워게임양상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위해 우선 초반에 기선을 제압한뒤 남은 정기국회 일정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첨예한 대결 불가피 ○…민주당이 전면국감거부라는 극약처방을 선택한것은 결국 여야간의 긴장을 고조시켜 짧게는 선거법·정치자금법협상과 예산심의과정에서의 우위를 확보하자는 의도때문이다. 또 길게는 정기국회이후 전개될 선거정국에 대비해 강야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동시에 선거용이슈를 개발해 정치선전효과를 노리는 다목적용으로 볼수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현단계에서 「왜 국감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는가」하는 점을 최대한 홍보하는 한편 국감포기에 대신하는 자체적인 국정조사활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예상되는 국정감시기능 포기에 대한 비난을 상쇄시키는데 당력을 집중하고있다. 민주당은 이번 국감에서 정치이슈화하려다 민자당의 증인채택거부로 난관에 부닥친 한보특혜,골프장및 호화별장,근로자블랙리스트작성,재벌에 의한 농축수산물매점매석및 제주어업허가독점문제등 4개사안에 대해 관련상임위합동조사반을 구성,2일부터 자체조사활동을 벌여 정치쟁점화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과정에서 민주당은 그동안 증인채택이 거부된 정태수전한보그룹회장등 48명의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가능한한 청문활동을 벌여 이결과를 백서로 발간해 대정부공격용으로 사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같이 민주당이 끝내 타협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6공비리조사활동을 벌이겠다는 의도는 남은 정기국회기간중 여야의 첨예한 대결이 불가피한 예산심의·추곡수매문제·선거법협상등에서 최대한 여당의 양보를 끌어내기위한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 정치적이슈개발에 실패한 국정감사와 거대여당의 두꺼운벽에 대한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국면전환용으로 국정감사를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이같은 정치적대응이 얼마만한 효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라 하겠다.
  • 북한,시리아에 미사일 공장/이스라엘지

    ◎스커드 C형 이란과 합작 건설 【예루살렘 AP 연합】 시리아와 이란은 중거리 지대지미사일을 공동 생산키로 결정했다고 이스라엘의 한 신문이 1일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하레츠지는 믿을만한 미국 소식통들을 인용,북한측이 시리아에 건설하기로 약속한 C형 스커드미사일 생산공장에 이란이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C형 스커드미사일은 당초 소련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사용한 B형 스커드미사일 보다 사정거리가 길고 정확도가 높은 무기이다. 하레츠지의 보도내용은 군사전문가 제브 쉬프의 주장에 바탕을 둔 것인데 제브 쉬프는 과거 독점적인 내용의 주장을 종종 펴 정확히 적중한 바가 있는 안목있는 군사전문가이다. 한편 하레츠지는 수십기의 C형 스커드미사일이 올 여름초 북한으로부터 시리아로 선적됐으며 조만간 북한측으로부터의 두번째 무기선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 소,「사기업특위」 출범/고르비 포고령

    ◎시장경제 정착의 법적 틀 마련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사기업 육성 및 시장경제 도입 가속화 방안을 강구할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고 소관영통신 타스가 26일 보도했다. 타스는 이날 공개된 대통령 포고령을 인용,이같이 전하면서 28명으로 구성된 특위가 기업 확장을 위한 법적·재정적 기본틀 마련등에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고르바초프에 의해 과도기 경제구조 조정 대강 마련을 위촉받은 4인 「국가경제위」에 소속된 급진 경제학자 아르카디 볼스키는 『특위 구성이 가히 혁명적 결정』이라고 지적하면서 『시장경제 구조 정착을 가속화 시키는 성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 특위는 서방의 기업 활동 촉진 방안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한편 국제 경제권과의연계 활성화및 독점 규제를 통한 공정 경쟁 강화 방안 등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포고령이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르바초프는 특위에 금융,보험계및 사기업 협동조합 지도자들과 함께 「코페라치브」(소특유의 협동조합식 사기업)계 중진들을 포함시켰다고 타스는 덧붙였다. 소련에는 사기업이 존재하고 있으나 재정난과 함께 법령 미비및 경제 정책 집행상의 관료주의적 타성등 장애 요인이 적지않아 경영 침체가 계속돼왔다.
  • 반도체 칩 법으로 보호한다/내년부터 시행

    ◎개발자 독점권리 10년간 보장/무단복제·양도자엔 5년이하 징역 반도체의 새로운 집적회로를 독자적으로 배치설계한 창작자에 대해서도 배타적이며 독점적인 권리가 10년동안 보장된다. 정부는 27 「반도체 집적회로의 배치설계에 관한 법률안(반도체칩보호법안)」을 마련,경제장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배치설계권자는 그 권리를 등록 이후 10년간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타인에게 전용이용권·통상이용권을 줄 수 있으며 질권도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남의 배치설계를 ▲무단으로 복제하거나 ▲그 배치설계에 의해 반도체 집적회로를 만들거나 ▲무단복제및 무단제조한 집적회로를 양도·대여·수입하는등 창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면 그 손해를 물어주거나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비영리 목적의 교육·연구·분석및 복지향상을 위해 이용할 때는 배치설계권을 인정하지 않도록 했다. 또 ▲국가안보등을 위해 배치설계의 국내 이용이 꼭필요하거 나▲제3자가 통상적인 상거래시의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설계권자와 협의가 안 돼 상공부에 통상이용권을 신청하는 경우등은 설계권자의 의사에 반해 상공부장관이 통상이용권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이는 자유스러운 경쟁을 유도하는 한편 권리자의 권리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강제실시권의 도입이다. 상공부 당국자는 ▲우리 반도체 산업의 생산능력과 시장규모가 세계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고 ▲우루과이 라운드(UR)협상에서 집적회로의 배치설계권을 보호하자는 국제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세계 20여개국이 같은 성격의 법을 마련하는등의 여건을 감안해 이 법안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재벌기업 농산물 수입 막을 방안 없나”/24일(국감중계)

    ◎고추수입 수요 봐가며 신축 대응/세모 「한강불법조선소」 이미 고발 ○“중간상부터 규제” ▷농수산위◁ 농수산물유통공사와 한국냉장(주)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중간상인 폭리억제등 유통구조개선대책 ▲일부 재벌기업의 무분별한 농수산물 수입억제대책 ▲농산물 비축창고 확보방안등을 집중 추궁. 정일영의원(민자)은 고추가격 상승추세에 따라 농수산물 유통공사측이 고추 1만t 수입계획을 세운 것과 관련,『지난해보다 고추 재배면적이 8천㏊나 늘어 생산량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고추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악덕 중간상인들의 매점 매석 때문』이라면서 『고추수입 결정을 하기전에 이들 중간상인에 대한 규제대책부터 세워야 한다』고 질타. 이재근의원(민주)은 『현대상사·대우·해태·삼미·쌍용·효성물산등 일부 재벌기업들이 농산물 해외공급자의 국내 대리점 역할을 독점하며 수입을 부채질하고 있다』면서 『비축농산물의 수입을 위해 각 재벌이 외국공급자를 대신해서 입찰하는 현재의 방법을 개선,유통공사가 직접 해외업체와 거래해 경쟁입찰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촉구. 이에 대해 신대진유통공사사장은 지난해 국내 농산물의 수매실적 부진과 관련,『땅콩등 일부 밭작물의 경지면적이 줄어든데다 작황도 나빠 정부수매가보다 산지가격이 높아 정부수매에 농민들의 호응이 적었다』고 해명하고 고추수입에 대해선 『수급상황과 가격동향을 점검해 나가면서 신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답변. ○직업병 예방 촉구 ▷노동위◁ 대전지방노동청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직업병예방대책과 현재 쟁점이 되고있는(주)현대화학노조설립방해사건등을 집중 추궁. 『대전지방노동청은 현대석유화학의 노조설립 방해사건에 관해 어떠한 보고를 받고있으며 서산군청이 노조설립 신고서를 반려하기전 노동청과는 사전협의가 없었는지』를 추궁. 이상수의원(민주)은 『대전 유림택시노조가 단체교섭을 상급단체인 택시노련 대전시지부에 위임했다가 공동교섭 개시전에 조합원 합의에 의해 번복하고 개별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용자측이 이를 거부했다』며 『상급단체에 대한 교섭권한 위임여부는 조합원의 총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측에서 일방적으로 위임철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근거는 무엇이냐』고 질타. ○“국산 왜 안쓰나” ▷교체위◁ 부산체신청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전화가입자 증가에 따른 시설확충과 인력관리문제등을 중점추궁. 정정훈의원(민자)은 『부산체신사업본부산하 전화가입자가 2백97만5천6백25명인데 이중 절반가량이 기계식전화를 그대로 사용해 첨단시대의 전화사용에 불이익을 입고있다』며 『낡은 전화를 언제 전자식으로 대체할 것이냐』고 추궁. 정상용의원(민주)은 『77년부터 국산전자 교환기개발에 착수,85년 실용화에 성공했는데도 부산체신청에서는 외국산 전자교환기 3종류를 지난 89∼91년사이 75∼6백% 이상 늘리면서도 국산개발품을 40%밖에 늘리지않은 이유는 무엇인가』고 추궁. ○“즉시 철거 재촉구” ▷건설위◁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대한 감사에서 김영도의원(민주)이 오대양사건 당시 권력유착시비를 불러 일으켰던 (주)세모가 한강변에 불법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논란을 빚었으나 정부당국이 불법사실을 이미 고발조치한 것으로 드러나 문제는 일단락. 이날 감사에서 김의원은 『세모가 지난 89년 6월2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496 하천변에 임시 선박검사소를 설치토록 1천2백11평의 하천점용허가를 받았으나 당초 허가조건을 어기고 1백여평의 사무실과 8백여평의 조선소를 불법으로 세웠다』고 주장. 김의원은 당초 서울지방국토청의 허가조건이 ▲사무실용 컨테이너 2개 ▲배를 끌어올리는 레일과 도르래 ▲이동식 화장실만을 가설,검사하지 않을 때는 철거토록 되어 있으나 세모가 불법고정시설을 세워 홍수시 유수의 흐름을 방해하고 오물을 배출,한강수질오염을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 이에 대해 황주연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은 『세모가 설치한 불법시설물을 90년 상반기 하천실태조사에서 적발,서울시에 5차례에 걸쳐 고발조치및 철거를 시행하도록 촉구했고 관련 공무원의 문책도 요구했다』면서 『이에 따라 서울시가 지난 8월2일 이미 고발조치했다』고 답변. 황청장은 이어 『세모측에 대해서도 즉시 철거를 재촉구하겠으며 불응시는 선박검사소 허가취소 조치를 취하겠다』고 부연. 또 원주지방국토관리청 감사에서 정웅의원(민주)은 『87년에 준공된 서울∼춘천간 경춘국도는 고속화도로로서의 구실을 다하고 있다고 보느냐』며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경춘국도 구간중 교문리 4거리와 도농3거리에 교토체증 해소책으로 입체 고가도로를 건설할 계획은 없느냐』고 질문. 정의원은 또 『지난번에 끝난 세계 잼버리 대회장은 숙영지 시설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데 국토의 효율적인 관리면에서 숙영지를 원상복구시킬 용의가 없느냐』고 추궁.
  • 러시아공 최고회의/옐친에 “정면 도전”

    ◎경제정책 실패·권력독점 비난/“일부장관 사임,내각재 구성” 촉구/「실라예프 경제방안」도 불신임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소련 러시아 공화국 최고회의는 20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경제를 잘못 이끌고 있다고 비난하고 쿠데타 실패 이후 확대된 그의 권력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옐친 대통령의 권위에 정면 도전했다. 대의원들은 옐친 대통령이 심장병으로 연이틀 최고회의에 불참한 것에 언급,지난달 쿠데타 실패이후 축적돼온 그의 권력에 대한 의문제기를 회피하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대의원들은 또 경제 재건과 파산 상태에 빠져있는 농업부분의 재정립등에 대한공화국 정부의 노력이 불만족스럽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자질이 부족한 장관들을 사임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 결의안은 『최고회의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장관들을 경질한다는 관점에서 내각구성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루슬란 카스불라토프 최고회의 의장대행은 이에 대해 옐친 대통령에 대한 집중공격은 내각 총사퇴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옐친 대통령이 최근 잇따라 발표한 대통령령에 대한 논의를 이번 회기의 의제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표결을 강행,이를 통과시켰다. 진보적 인사들은 정부를 옐친 대통령의 직속기관으로 종속시키는 한편 옐친에게 장관들의 임명과 경질을 가능케 한 포고령을 반민주적이라고 비난했다. 최고회의의 이같은 분위기는 쿠데타 저항의 영웅으로 대중적 이미지를 구축하고있는 옐친 대통령에 정면 도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모스크바 AP 연합】소련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는 20일 이반 실라예프 총리의 식량공급과 경제위기 대처방안 등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최근 소련경제를 이끌어갈 공화국간 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실라예프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가했다. 러시아 최고회의 대의원들은 이날 실라예프가 이끌고 있는 공화국 정부가 농업을 활성화하고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이 「불만족스럽다」고 선언한 결의문을 찬성1백34,반대19,기권5표로 채택했다.
  • 스웨덴 집권사민당 총선 참패/59년 집권 막내려… 칼손 내각 해체

    ◎보수계 중도 우파 연정 들어설듯 【스톡홀름 AP UPI 연합】 북지국가를 추구해온 스웨덴의 집권사회민주당이 15일 의회선거에서 참패,59년 집권의 막을 내렸다. 인그바르 칼손 총리는 16일 자신이 이끄는 사회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중도­우익정당들에게 패배함에 따라 테이지 페터슨 국회의장에게 사표를 줄,수리됐으며 이에따라 사회민주당정부는 해체됐다. 칼손총리는 또 이날 국회의장이 과도정부의 수반으로 남아줄것을 요청했다. 이날 부재자투표를 제외한 집계결과 부수당·중도당·기민당·자유당등 비사회주의계열 4개정당이 3백49개 의석중 과반수선에서 불과 5석 미달하는 1백70석을 차지한 반면에 사회민주당과 좌익당은 종전의석에서 모두 21석이 줄어든 1백54석에 불과한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보수당의 칼빌트 당수가 비사회주의계열 정당을 기반으로 연정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며 25석을 차지한 신민주주의당이 보수계 중도우파연정구성의 열쇠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극좌를 표방해온 녹색당은 1석도 얻지못했을 뿐아니라 의회진출이 필요한 4%의 득표도 하지 못해 의회에서 축출될것으로 보인다. ◎“고인플레속 무거운 세금”에 염증/봉급의 60%가 「복지세금」… 근로의욕 “실종”/「사회민주」 한계 노정… 체제조정 불가피(해설) 사민당의 참패는 가난한 사람이 없고 소득격차가 적은 복지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엄청난 공공부문 지출을 통한 비효율적인 국가독점체제를 유지해온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지나친 세금과 각종 경제규제에 대한 국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셈이다. 사실 스웨덴의 경제는 최근 들어 침체일로를 걸어왔다.근로자 평균급료의 60%를 세금으로 거둬가기 때문에 근로의욕이 땅에 떨어졌고 실업률은 3.1%로 지난해의 2배이자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상태로 전락했으며 인플레율은 9%로 유럽최고를 기록해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는 실정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제규제가 심하고 수지타산 뿐 아니라 근로자들의 휴식까지도 신경써야하기 때문에 투자의욕이 위축돼 지난해에만 8백억크로네(약 10조원)의 자본이 해외로유출됐을 정도다. 스웨덴경제를 멍들게한 또하나의 요인은 실업수당등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회복지비용이다.당연한 결과로 경제성장은 최근 5년간 유럽최저수준에서 맴돈데 이어 올해는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이같은 여건에서는 ▲세금감면 ▲기업규제완화 ▲경쟁체제 촉진 ▲전국민의 30%에 해당되는 공무원들의 급료삭감 ▲병원 탁아소 양로원의 사유화등 보수계 야당들이 내건 선거공약이 먹혀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집권 사민당도 이같은 분위기를 인식한 나머지 지난해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누진소득세를 일부 경감하고 지난 7월에는 각종 경제규제 완화와 국가지원금 축소 의무가 수반되는 EC(유럽공동체)에의 가입을 신청하는등 뒤늦게나마 체제보완을 시도했으나 이미 떠나가버린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가 표현하듯 사회복지를 정부가 책임지는 사회민주주의가 어느정도 단계까지는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최근 몰락의 길을 걷고있는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윤추구동기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할 경우 일정한계 이상의 도약이 불가능함을 이번 스웨덴 총선결과는 우리에게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있다.
  • 동양정밀 주가 조작 혐의/5일간 16.4% 급등… 매매 심리 착수

    증권거래소는 14일 법정관리 신청 이후 대량거래가 이루어지며 주가가 이상급등한 동양정밀공업 주식에 대한 매매심리에 착수했다.지난 2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동양정밀공업의 주식은 5일 연중최저수준인 6천3백50원까지 하락했으나 10일까지 거래량이 평소의 2배 가까이 늘어나며 주가도 16.4%(1천40원)이나 급등하는 이상매매현상을 보였다. 증권거래소는 이 회사가 법정관리 신청 이후 수원지법으로부터 회사재산보전처분 결정을 받은 지난 11일까지 이같은 사실을 공시하지 않고 내부정보를 독점했던점을 중시,내부자들이 시세조종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일 기술 독점에 대응/한미,기술동맹 추진/김 과기처 밝혀

    【워싱턴=김호준특파원】 한미양국은 차세대 반도체 칩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예상되는 일본의 독점적 우위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기술동맹」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실무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강구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김진현과기처장관이 12일 밝혔다.
  • 대학들의 정상화 진통(사설)

    대학들이 정상화를 위한 진통을 겪고 있다.대학신문들이 이념적 편향성 시비로 대학당국과 마찰을 빚는 일이 잦아졌으며 외부단체의 교내집회 차단 움직임으로 갈등도 빚고 있다. 교수들의 제작참여 제안이 학생들에 의해 거부되어 2주째 학보가 정간상태인 숭실대에 이어 최근 외대에서도 학보의 사설을 교수와 학생이 공동집필하자는 제안이 학생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정간상태에 돌입했다.이미 「명지」「상명」등도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대학언론에서 일고 있는 이같은 마찰은 확대일로에 있음을 예견케 한다. 한편 고대에서는 지난 6일 하오 학내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민가협주최의 운동권집회가,교직원및 경비원에 의한 출입통제로 제한을 당했다.외부인의 학내 진입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학내에서 진출한 시위학생들의 교문앞 시위는 부근주민 60여명의 「못살겠다」는 반대시위에 부딪쳐 몸싸움을 겪었다. 대학에서 일고 있는 이런 갈등과 마찰들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학원정상화를 위한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마련한 결의들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대학교육협의회는 『외부집단의 불법교내집회를 금지할 것』을 권장하고 있고 또 『학보 교지에 대한 지도교수 또는 심사기구의 전문적인 지도』도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권장내용은 그밖에도 많이 있지만 「대학언론」문제와 「학내집회」문제는 그중에서도 매우 심각한 항목에 속한다. 이 두가지 문제는 이번 기회에 확고하게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대학의 학보는 총학장을 발행인으로 하고 지도교수가 주간이나 편집책임을 지는 대학언론이다.학생들이 독점하거나 발행권을 장악할 수 없다.법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실질적으로도 또한 관행적으로 그래왔다.그것을 특정 이념에 편향된 운동권이 「장악」하여 왔기 때문에 학보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운동권의 특정목적에만 「복무」하는 매체로 전락되었던 것이다.그때문에 교수·학생등 대부분의 대학인들에게서 외면당해 왔으며,불법이념의 보급에만 기여를 해오는 결과를 낳았다. 대학내에서의 외부인 집회 또한 대학을 황폐화시키고 고통받게 하는 중요 원인이 되어 왔다.어떤 훌륭한 명분도 대학 본연의 목적에 상처와 방해를 주는 집회를 정당화할 수 없다.황차 운동권의 극렬한 시위의 기지를 제공하기 위한 장소로 학교가 이용될 수는 더욱 없다. 대학은 스스로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다소 어려움이 있고 갈등도 심화되겠지만 지금 지키지 못하면 점점 더 힘들어진다.특히 절대다수의 학생을 보호하는 것도 그 길이고 많은 학생이 그것을 원한다.대학당국과 교수들의 용기와 성숙한 신념만이 극복하고 성취할 수 있는 성과임을 우리는 알고 있으므로 격려와 성원을 보낸다.
  • 재벌,「기업가 정신」어디갔나/레저산업… 재테크… 수입 치중

    ◎호텔·언론등 서비스업에 눈독/30대 기업서 골프장 5백만평/외국경쟁 제품 “제살깎기” 수입 과소비 등으로 국제수지가 적자를 보이고 물가가 불안해지는등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재벌마저 소비성 산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술혁신과 새 제품개발로 경쟁력을 키워 세계 유수기업들과 겨루어보겠다는 생각보다 레저산업·유통업·신용카드업 등 돈벌이가 좋은 곳에 열을 올려 과소비풍조를 조장하고 있다. ▷레저산업◁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수익성이 보장되고 부동산투기의 매력까지 겹쳐 재벌이 시도 때도 없이 군침을 삼키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8월말 현재 여신관리대상 30대 재벌이 갖고 있는 골프장,호텔,스키장,휴양시설 및 유원지는 50여곳으로 그룹당 최소한 한두개씩은 레저관련 업체를 갖고 있다. 30대 재벌이 운영중인 골프장은 9곳으로 규모만 5백여만평에 이르고 있다. 삼성그룹이 중앙개발 소유의 안양골프장(18홀)과 동래골프장(삼성종합건설·18홀)을 운영하고 있고 럭키금성그룹이 경기도 광주에 곤지암골프장(희성관광개발 소유·18홀)을 건설중이다. 럭키는 이외에 경기도 남양주군 수동면에 20만평 규모의 골프장을 추가로 건설하려다 당국의 규제로 포기한 바 있고 곤지암골프장도 당초에는 36홀 규모로 계획했었다. 또 한진이 경기 여주에 36홀 규모의 한일골프장(한일레저 소유)을,쌍용이 용평골프장(쌍용양회 소유·18홀),대림이 제주시 오라동에 오라골프장(오라관광 소유·18홀),두산이 강원도 춘성에 춘천골프장(두산산업 소유·27홀),한일합섬그룹이 경남 양산에 통도사골프장(원효개발 소유·36홀),라이프그룹이 경주에 경주조선골프장(경주 조선호텔 소유·36홀)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 금호그룹은 경기도 용인에 광주고속 소유로 아시아나골프장(77만평·36홀)을 세웠다가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판정받아 최근 광주상공회의소에 매각하기도 했다. 그나마 정부가 지난 89년 재벌의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해 재벌의 골프장·스키장등 레저분야의 진출을 막았기 때문에 이 정도이다. 당시 정부의 규제조치로 삼성그룹의 중앙개발이 추진했던 호암골프장(경기도 용인),한국화약그룹의 태평양플라자(강원 춘성),코오롱건설의 선힐골프장(경북 월성)등 5개 골프장의 건설이 중지됐었다. 골프장과 함께 재벌이 소유하고 있는 호텔도 전국에 30여곳이나 된다. 호텔신라·조선호텔(이상 삼성) 동해관광호텔·다이아몬드호텔(〃 현대) 힐튼호텔·경주보문호텔(〃 대우) 제주 KAL호텔·서귀포 KAL호텔(〃 한진) 쉐라톤워커힐(선경) 서울프라자호텔(한국화약) 설악파크호텔(동아건설) 호텔롯데·크리스탈호텔·부산 호텔롯데(이상 롯데) 제주하얏트·부산하앗트(〃 한일) 신양파크호텔(금호) 코오롱호텔(코오롱) 서울리베라호텔·유성리베라호텔(이상 우성건설) 경주조선호텔(라이프) 등이 모두 재벌소유다. 이밖에 삼성의 용인자연농원,쌍용의 용평스키장,롯데의 잠실롯데월드,한일의 부산 한일 레저스포츠센터,코오롱의 서울 서초동 코오롱스포렉스 등 굵직한 휴양시설들도 모두 재벌이 갖고 있다. 레저산업에 진출하려는 재벌의 꿈믄 지난해 삼성그룹이 관계회사인 (주)보광을 통해 강원도 평창군의 임야 2백13만평을 임직원 명의로 사들였던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당시 삼성그룹은 이 땅을 임직원명의로 사들였다가 5·8부동산대책이 있기 전인 지난해 4월3일 고 홍진기씨(전 중앙일보 회장)의 유족들이 대주주로 있는 (주)보광으로 명의이전했다. 국세청조사 결과 삼성그룹과 (주)보광이 계열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삼성의 부동산투기 혐의가 없는 것으로 처리됐지만 삼성이 이 지역에 골프장·스키장·연수센터 등을 포함한 대규모 종합위락단지를 건립하기 위해 매입했다는 사실은 땅을 사들이기 전 삼성측이 주거래은행에 레저단지 건립계획을 알리면서 부동산 취득 승인여부를 문의했던데서 증명되고 있다. ▷외제수입◁ 대기업들은 레저산업 진출외에도 수입개방 추세에 편승,가구·기계·자동차·술에서부터 자사제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상품까지 수입해 팔고 있다. 기업경영이라기보다 단순히 돈만 벌겠다는 이같은 상혼은 내 제품보다 남의 것을 들여와 유통마진만 먹어도 장사가 된다는 잘못된 기업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지난 2월10일 수입다변화 품목으로 지정돼 수입이 금지된 일제 프린터기 4백대(시가 3억원)를 미제처럼 속여 수입하려다 부산세관에 적발된 적이 있다. 또 최근엔 삼성전자와 금성사·대우전자 등 가전3사가 유통시장 개방분위기에 편승해 외제냉장고 등 전자제품의 수입·판매를 추진중이다. 외제승용차만 해도 한성자동차는 물론 올 상반기에 대당 수입가격이 1억5천만원이 넘는 독일제 벤츠 1백3대를 들여와 팔았다. 한진그룹의 (주)한진도 같은 기간 스웨덴제 고급승용차 볼보를 1백1대나 수입해 팔았고 동부그룹의 동부산업은 프랑스제 푸조 76대를 들여왔다. 또 금호가 이탈리아제 피아트 40대를,효성물산이 독일제 폴크스바겐 35대를 들여와 국내에 판매했다. ▷서비스산업◁ 언론사나 증권·보험 등 비제조업분야도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다. 통일그룹이 세계일보를 창간하고 한국화약그룹이 경향신문을 사들였으며 대우그룹은 부산매일일보(구 항도일보)를 인수했다. 또 현대그룹은 1천억원을 투자해 일간지인 현대문화신문의 창간을 서두르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도 대우·럭키·현대·극동건설·쌍용·태평양화학·한진·한국화약·대림·한일그룹 등 재벌들이 대부분 증권사를 장악하고 있다. 카드사(삼성 위너스카드,럭키 엘지카드),백화점(현대·삼성·롯데),보험(동부·동아건설·동양·삼성·쌍용·한국화약·한진·현대) 등도 이미 대그룹들의 차지가 돼버린지 오래다. 재벌들은 이밖에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기관에도 주식보유한도 8% 이내에서 대주주로 참여,금융기관을 사금고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을 보면 삼성이 삼성생명을 통해 상업은행(7.15%),조흥은행(6.8%)등 7개 은행의 대주주로 있으며 현대가 신한·서울신탁은행,럭키금성은 한일·제일·신한은행,대우는 한미·신한은행,쌍용이 조흥·한미은행에 1.04∼7.15%까지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같이 서비스·레저산업 등 비제조업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연구개발투자에는 인색하다. 89년 현재 매출액대비 국내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2.14%로 88년 일본(3.19%)과 89년의 미국수준(4.7%)에도 못미치고 있다. 기술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는한 우리기업이 소니나 혼다사와 같이 양질의 상품을 만들어내기는 요원해 보인다. ◎제조업을 일으켜야 산다/전문가 진단 정부가 제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융·세제상의 지원을 아끼고 있지 않지만 대기업들의 생각은 딴 데가 있다. 여신관리를 받지 않는 주력업체제도만 해도 재벌들이 중복투자가 분명함에도 석유화학업종을 주력기업으로 내세워 여신관리를 받지 않고 은행돈을 쉽게 끌어쓸 수 있다는 이점을 노리고 있다. 김적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미국등 주력수출시장에서 전자·자동차 등 주력상품이 고전하면서도 대기업들이 기술개발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생각은 않고 중국이나 소련·동구 등에 눈을 돌리는 것은 문제』라며 『대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술개발가 제품경쟁에 나서지 않는한 국제수지 적자 해소는 물론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희갑 의원(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88올림픽 때만 해도 일본기업인들이 한국경제의 발전상을 보고 일본이 뒤처지지 않을까 매우 두려워했다』며 『그러나 요즘 만나면 몇년새 한국의 경제가 일본과는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뒤처져 있어 한국경제는 이제 한물갔다는 표현을 쓴다』고 말했다.
  • “공산주의 사망” 공식 조종/소 최고회의의 「당활동 정지」 의미

    ◎「계급없는 사회」 구현 74년 실험 실패 확인/동구공당 몰락이 종주국에 “부머랭 효과” 공산주의의 장송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지난 74년간의 공산당지배의 「종언」을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소련의 연방최고회의는 29일 공산당의 활동을 소련전역에서 정지시키기로 결정했다.최고회의는 공산당의 주도세력이 지난 19일 발생한 쿠데타의 모의및 실행에 연계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공산당 활동의 정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연방최고회의가 공산당해체를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소연방 최고재판소가 공산당 활동을 종식시킬지 여부를 결정할수 있도록 자료들을 제출하도록 명시했다고 보도,공산당의 공식해체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소련 공산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 했던 보수파의 쿠데타로 스스로 종말을 재촉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로 의식의 변화를 가져온 소련시민들의 자유의지가 보수화를 거부한 것이다. 쿠데타에 대한 시민저항이 공산당의 몰락을 가져왔지만 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함께 공산당은 이미 변화하기 시작했다.고르바초프는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당을 정부및 의회기구와 분리시키는 개혁을 단행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따라 89년 소련의 최고 입법기관인 인민대표회의 대의원 선거가 소련 역사상 처음으로 복수경선에 의해 실시됐다.다음해인 90년에는 공산당중앙위원회가 스스로 공산당의 권력독점 포기를 선언했으며 지난달에는 당중앙위 전체회의가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는 새 당강령을 채택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체제내에서의 개혁을 희망했다.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청산하면서도 사회주의 건설을 추구했다.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불행히」도 사회주의에 대한 소련인들의 환상이 한낱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1917년 볼셰비키혁명과 함께 등장한 소련 공산주의의 74년간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그러나 공산주의의 등장은 화려했었다.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의 해방과 계급없는 풍요로운 사회,이른바 「지상낙원」의 건설을 선언했었다. 공산주의의 환상은 한때 지식인들의 희망이었다.그들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여 자체 모순을 일으킬때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그러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몰락하기 전 먼저 스스로 종언을 고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공산주의는 이제 무너지는 레닌동상과 함께 희미한 「전설」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소련 공산당의 해체는 소련 한나라의 국가이념이나 체제 붕괴 이상의 의미가 있다.이는 한때 지구의 절반을 지배할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가졌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가치개념의 붕괴를 의미하는 세계사적인 대변혁인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공산주의의 몰락은 자체의 본질적 모순과 한계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카터 전미대통령의 안보담당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박사는 『소련의 변화는 추악한 역사의 한 장이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고 있다.부시 미대통령은 『소련 공산당의 죽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대소긴급지원을 선언했다.강대국간의 경쟁은 숙명적이지만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화된 소련은 미국과의 화해의 시대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의 새로운 시작은 어느 한 지도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보수파의 쿠데타를 저지시킨 시민의 힘에 의해 창출되고 있다.역사의 한 발전단계가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혁명」의 와중에 있는 모스크바거리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다.
  • “독재의 기둥” KGB 수술대에 오른다

    ◎「공포의 위상」 어떻게 바뀌나/개혁물결 반영,권한축소 불가피/휘하 30만 병력 국방부 배속 방침/총원 70만명에 한해 예산 49억 루블 소요 소련 공산독재정권의 「칼과 방패」로 무자비한 철권을 휘둘렀던 「비밀경찰」KGB가 역으로 철퇴를 얻어맞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쿠데타실패 직후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개혁파 인물인 바딤 바카틴 전내무장관을 임명,KGB에 개혁바람을 예고했다.고르바초프는 28일 KGB 최고지휘부인 콜레기움(협의회)의 해체를 명령하고 KGB 휘하의 30만 국경경비대 병력을 국방부 통제하에 두도록 지시했다. 실무국장단과 부의장 7명이 포함된 협의회를 없애 개혁파 바카틴의장이 전적인 지휘권을 갖도록 했으며 본연의 정보활동외에 월권의 근거였던 군사조직을 또한 없애버린 것이다.거기다 진보적인 인사들로 조사단을 구성,KGB 고위층의 지난 쿠데타 개입여부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KGB 활동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조사단은 오는 10월 중순까지 이 악명높은 「비밀경찰」의 실상을 적기하면서 새롭게 정립해야 할 국가보안위로서의 역할을 제시할 예정이나 KGB의 권위실추와 권한축소는 자명해보인다. 바카틴 신임의장은 『지금까지의 KGB는 거대한 독점 그 자체로서 일대 절단의 수술이 필수적이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피력하고 있다. KGB는 총 소속인원이 70만명으로 추정되고 공식적인 예산만도 49억루블(한화 약22조원)이다.이 기관의 활동영역을 미국과 대비시켜 보면 CIA의 해외정보활동,FBI의 국내중요범죄 수사,정부기관 동향파악,관세및 국경수비 그리고 일반시민에 대한 사찰권을 포괄 보유해왔다. 군·공산당과 함께 소련독재의 3대 기둥의 하나인 KGB는 지난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 창설된 「체카」를 원조로 삼고 있다.혁명정부를 주도하고 있던 레닌은 국내외로부터의 반혁명 음모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기구로 체카를 설치,그해 12월 출범시켰다.「바퀴를 조이는 나사못」이란 뜻의 체카는 처음 23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첫 책임자는 테러 예찬론자로 폴란드태생인 펠릭스 제르진스키였다. 체카는 출범한지 1년이 채안된 1918년 8월 레닌에 대한 저격사건을 계기로 반혁명분자들을 정식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됐다.그후 1919년 말까지 「혁명의 수비대」라는 기치아래 1백만명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재판없이 처형했다. 소련은 신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 차관을 얻기 위해 1922년 2월 체카를 폐지하고 내무인민위원부(NKVD)소속으로 국가정치보안부(GPU)를 설치한다.GPU의 책임자는 제르진스키가 그대로 맡았고 기구도 그대로였으며 23년 소련 헌법이 채택되자 GPU는 합동국가정치보안부로 바뀌지만 실체는 변동없이 똑같았다. 이 기구는 스탈린의 폭압정치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강화된 권한을 부여받고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도맡았다.스탈린 시대의 이 기구 총책인 베리야가 53년 총살당한 뒤 54년 KGB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렀다. 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KGB의 변화가 시작되었으나 89년 동구의 민주혁명 때까지만 해도 위성국 정보망의 상부조직으로서 공산독재체제의 유지에 전력을 기울여왔다.국내사찰요원 4만명,해외공작요원 2만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요원들은 동구민주화 이후에는 외국의 군사비밀과 경제기술분야 스파이활동에 중점을 두어오면서 서방원조식량의 소련내 배급을 감독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KGB는 90년 5월 합법성을 원칙으로 하고 인권및 자유를 존중한다고 선언했으나 크류치코프 전임 의장은 「서방의 소련전복 기도」를 여러번 경고하는 등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보인 뒤 이번 쿠데타에 주도자로서 참가했다.쿠데타 주도혐의로 기소된 13명 가운데는 크류치코프 의장 외에 3명의 KGB 고위인사가 더 연루되어 있다. KGB 일부에서는 이번 쿠데타에의 참여도 및 연루자들은 이 기구 전체로 보아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쿠데타와 상관없이 KGB의 권한축소를 통한 위상재정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민주화와 「비밀경찰」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 「한국 현대사 재조명 학술토론회」 지상 중계

    ◎“단절의 정치사,발전의 정치사로 바꿔야”/과거·현재 연결되는 「통일사고」 필요/민의 권력통제 넓어질때 정치발전/개방화시대·통일 대비한 경제력 제고가 과제 48년 남한단독정부수립이후 현재의 제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행정부·사법부·입법부의 수장을 지낸 현대사의 주역들이 대거 참가,현대사를 조명하는 학술토론회가 27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대강당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원장 이현재)이 주최한 이번 학술토론회에는 강영훈 남덕우 김정렬 유창순 백두진 전 국무총리와 이재형 정래혁 전 국회의장,이일령 전 대법원장등 전직 3부요인과 박동서 임종철 황성모 한배호 윤천주교수등 모두 40여명이 참석했다. 「건국이후 정치발전의 흐름」이라는 제1주제토론에서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보는 시각」이라는 제목으로 발제강연을 한 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43년동안 9차례의 헌법개정과 6개 공화국이 출몰한 현상을 통해 야당 또는 재야정치세력은 물론 국민들이 그동안 헌정사를 단절의 시각에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전총리는 그러나 『단절이란 말은 민주정치가 일보도 진전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이룩한 사회·경제발전을 단절의 시각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하고 『경제발전과 국민교육의 향상을 민주정치발전의 필수적 단계라 할때 우리의 민주정치발전은 돌연변화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강총리는 또 『현대사를 보는데 있어서 선택의 중요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중시하고 현실을 부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과거와 미래가 통일되는 장으로 보는 경험주의적 시각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용이니,반민주·반민족으로 지탄해오던 시대에서 이제 벗어나야한다』고 말했다. 또 『완전한 이상,규범의 현실화는 아니더라도 현실속에 실현된 이상이 가시화되면서 양자간의 시각차가 좁혀지고 상호보완관계로 발전될때 단절의 정치사는 발전의 정치사로 개편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동서 서울대교수는 「각 공화국을 통한 정치변화과정을 중심으로 본 건국이후 정치발전의 흐름」이라는 발제논문에서 『정치발전이란 정치의 책임성향상이며 이는 유권자의 정치참여와 당면문제에 대한 공개정도와 집단토론등의 절차등 민에 의한 권력자의 권력행사 통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역대공화국은 다같이 자유민주주의를 제시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일관성을 갖고 있었다고 전제하고 각공화국을 참여,공개,집단토론과 결정및 성과등 4개 항목으로 평가했다. 박교수는 제6공화국의 경우 선거에서의 공권력의 개입이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도 과다한 돈의 지출과 여야간의 불균형등이 미해결로 남아 있다고 보았다.또 정부의 정보독점과 사생활의 보호문제,하류계층에 대한 복지의 신장,행정의 민주화등이 미해결로 남아있는 반면 정치민주화·복지신장·북방정책의 진전·유엔가입 등은 업적으로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건국이후 경제발전의 흐름」이라는 제2주제토론에서 「한국 경제정책의 발자취」라는 제목의 발제강연을 한 남덕우 한국무역협회 명예회장은 『제1·2공화국에 해당하는 50∼60년대는 경제원조에 의한 전후복구및 긴급물자공급을 통한 민생안정에 주력한 시기로 체계적·지속적인 개발노력불능으로 장기적인 공업화의 기반구축에 이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또 제3·4공화국에 해당하는 60∼70년대는 전반기는 경공업,후반기는 중화학공업육성에 초점을 맞춘 대외지향적인 양적성장기로 개발당시 저생산­저소득­저저축­저투자­저생산의 악순환상태로 민간의 자율적인 성장을 기대하기에는 여건이 미비했으나 양적성장으로 공업화구축 산업구조 고도화 국민소득의 획기적 증대라는 성과를 올렸다고 설명했다.그러나 80년대 들면서 정부주도의 경제운영방식에 한계가 드러나 경제 각분야에서의 개혁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을 뿐아니라 정치적 민주화과정에서 분출되는 욕구를 적절히 소화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성장·형평·능률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새로운 인식,시장경제체제를 존중하는 경제운용방식으로의 전환,국제화·개방화시대에의 대응력,통일의 경제적 과제도 있다고 주장했다. 임종철 서울대교수는 「건국후 경제발전」이라는 발제논문을 통해 제1·2공화국을 시장체제지향기로,제3·4공화국을 명령경제기로 보고,제5·6공화국은 앞선 두시기의 혼합체제기로 보았다.
  • 소 공산당 영욕의 74년사

    ◎노동자에 의해 무너진 「노동자천국」/억압과 부패의 철권통치… 인민불만 누적/고르비의 개방정책 이후 급속한 몰락의 길 지난 1917년부터 74년동안 소련 그 자체로 모든 것 위에 군림했던 소련공산당이 모든 것을 잃고 이름마저 없어질 신세로 전락했다. 소련공산당은 공포와 억압 정치로 소련을 이끌어왔다.소련공산당이 소련이란 국가를 창출해 낸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 1917년의 역사적 사실이다.마찬가지로 이후 70여년간 계속된 「소련공산당이 곧 소련이다」는 정치체제와 통치방식이 오늘날의 소련 위기와 소련공산당의 궤멸을 초래했다고 역사는 증명한다. 소련공산당은 이 명칭 그대로의 이름(CPSU)을 1952년에야 갖게 됐지만 그 연원은 93년전인 1898년에 발족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LDP)이다.1903년 제2차 당대회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을 지도자로 하는 볼세비키(다수파)가 멘셰비키(소수파)를 누르고 당 주도권을 잡았다. 1905년 1월 20만여명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차르의 동궁앞에 몰려와 시위를 벌였으나 1천여명이 학살되는 데그쳤다.그러나 1917년 10월26일 레닌이 주도하는 노동자와 병사들이 페테르스부르크궁에 입성하면서 세계사 최초로 노동자농민의 소비에트연방 정권이 탄생했다.혁명의 성공과 함께 볼셰비키조직은 러시아사회민주당을 「전러시아공산당」으로 바꿨는데 이때 레닌은 이를 「이 시대의 지혜,명예,그리고 양심」이라고 불렀다. 1921년부터 28년까지 신경제정책(NEP)을 통해 일부 사기업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서 공산당은 산업과 문화,그리고 사고까지 통제·지배하는 중앙집권의 틀을 잡았고 이를 위해 「적색테러」를 일삼았다. 이같은 철권통치는 24년 레닌사망을 전후해서 당내부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막후 권력투쟁 과정에서 심화된 뒤 스탈린의 집권기간동안 최고에 달했다.스탈린은 집권후 당의 권한을 무한정 강화하면서 당의 이름으로 정적 뿐만 아니라 일반 「인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갔다. 2천만명이나 사형·유형·감금 당하는 암흑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흐루시초프 당제1서기가 발렌코프 총리와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지만 당에 힘의 바탕을 둔 흐루시초프가 4년만에 전권을 장악,소련정치무대에서의 공산당의 위치를 분명히 했다.흐루시초프는 스탈린시대의 공포정치를 다소 완화하려고 했으나 64년 궁정쿠데타를 통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뒤를 이어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당서기장은 코시긴 총리,포드고르니 최고회의의장과 3두체제를 형성했으나 곧 당의 브레즈네프가 독주,통치권을 휘둘렀다. 소련공산당의 공인 당사는 『소련공산당의 역사는 영웅적 투쟁의 도정이며 노동계급과 사회주의,그리고 공산주의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다』고 시작되지만 소련의 실상은 공산당 고위 특권계급에게만 무한한 혜택을 주는 「당주의」의 병폐가 만연했다.이를 위해 공산당은 전국의 어느 기관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당세포를 무조건 배치시켜 개개인의 일상과 의식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82년 브레즈네프의 사망으로 KGB의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가 당서기장으로 선출됐고 개혁의지를 드러내긴 했으나 84년에 사망했다.후임자 체르넨코도 별다른 실적없이 병사했는데 85년3월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서기장에 선출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듬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노선을 선언한 다음 개혁이념과 정책을 실천해갔다.소련식 사회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 몰린 탓이었다. 강압적 중앙통제의 계획경제와 사유재산의 부정은 생산성의 저하만 가져왔다는 점이 확실해지면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꾀했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이 갖고 있는 해악에서 벗어나고자 권력의 분산을 시도하기에 이른 것이다.90년2월 고르바초프는 1당독재의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공산당을 주축으로 개혁을 진행시키고자 했고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한다고 되풀이 천명하다가 강경 공산주의자의 쿠데타란 역습을 당한 것이다.이 역습으로 고르바초프와 그의 개혁노선은 지금까지의 「공산당」이란 울타리를 뛰어넘도록 강요당했다. 역사는 진정한 소련의 개혁을 위해 탈공산당 및 초공산주의를 지시하고 있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발족 ▲1903년=레닌볼셰비키당 창당 ▲1917=10월혁명,레닌 소비에트정부수립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 수립 ▲1924년=레닌 사망,스탈린 당권장악 ▲1953년=스탈린 사망 ▲1956년=흐루시초프 당제1서기,스탈린격하연설 ▲1964년=흐루시초프 실각,브레즈네프·코시긴·포드고르니집단지도체제 시작 ▲1968년=「브레즈네프독트린」발표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 ▲1985년=체르넨코 사망,고르바초프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개혁 선언 ▲1990년=공산당일당독재 포기 ▲1991년=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 사임 및 공산당해체 촉구
  • 올 밀수 4백억… 작년비 67% 증가

    ◎정부의 근절조치 배경/금괴·보석류서 참깨·냉동홍어까지 손뻗쳐/마약과 상승작용,“퇴폐풍조 위험수위” 판단 정부가 밀수를 근절하기위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23일 청와대에서 김영일 사정수석비서관주재로 총리실,대검,관세청,경찰청,상공·농림수산부관계관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밀수근절대책회의는 최근 날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밀수를 범정부적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병폐중의 하나가 호화·사치·향락 풍조의 만연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따라서 이를 확실하게 추방해야만 국민계층간의 위화감을 줄일 수 있고 불법외화유출은 물론 관련산업에 대한 타격을 막음으로써 국가경제를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밀수는 마약·퇴폐향락행위와 함께 사회를 뿌리째 흔드는 「망국병」이며 이같은 사회악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 호화사치향락행태를 더욱 증폭시킨다는 분석이다. 최근 밀수동향을 살펴보면 지난해 밀수적발 건수는 2천6백90건에 금액은 5백12억원으로 전년대비 34%나 증가했다. 이 수치는 최근 3년간 연평균증가율 23%를 웃도는 것이다.금년들어서는 7월말현재 1천2백36건에 4백3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7%라는 엄청난 증가추세를 보였다. 최근들어 급증하고 있는 밀수의 유형을 보면 ▲어선을 동원하여 중국·대만 등으로부터 참깨·냉동홍어 등 농수산물을 밀반입하거나 ▲정상적인 무역거래를 가장하여 중고기계류등 수입금지품을 위장수입하는 경우 ▲첨단전자제품 부품이나 녹용등 보약재를 은닉 반입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밀수품목도 종전에 많았던 금괴·보석 등 귀금속류나 직물·의류는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기계기구류,가전제품및 농수산물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수입자유화조치와 함께 국민들의 밀수품에 대한 경각심이 무디어진 틈을 타 캠코더(소형비디오촬영기),대형TV 등 일제 밀수전자제품이 백화점 등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중에서 판매중인 밀수품적발상황을 보면 가전제품이 전체의 76%를 차지하고 있고 카메라의 경우 국내시장은 연간 1천8백억원 규모인데 이 가운데 30%를 밀수품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청와대가 밀수관계기관및 부처대책회의를 직접 주관한 것은 밀수단속부서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미흡하고 각기관의 정보독점욕에 따른 단속체계가 정립되지 못한 탓에도 있지만 그보다도 차제에 밀수근절을 통치·사정차원에서 과감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노태우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수있다. 지난해 5·7특별담화이후 청와대에 특명사정반을 설치,1년남짓 가동함으로써 고위 공직사회의 기강을 상당수준 확립했던 경험에 비추어 이번에 밀수문제에 대해 청와대사정당국이 발벗고 나선 것은 밀수근절을 위한 정부의지가 어느때보다 확고하다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다만 특명사정반처럼 청와대안에 밀수근절기구를 두지 않는것은 사안의 성격상 검찰 주관아래 「밀수근절대책실무협의회」를 설치,관련부처들이 효과적인 협력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때문이다. 이날 회의는 밀수단속체제강화와 함께 일부 품목에 있어 턱없이 높은 관세율의 합리적인 인하및 적기수입이 이루어지지 않아 밀수를 유발하는 사례가 없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도 병행해나가기로 했으며,첨단기술개발및 국산품품질향상을 위한 지원을 확대해나가는 방안을 관계부처에 촉구키로 했다.
  • 서비스산업 미·일보다 크게 낙후

    ◎대외경제정책연 조사/생산성 미국의 30%에도 못미쳐/시장개방대비 경쟁력 강화시급 소득증대와 여가확대로 외식산업·건강·금융등 서비스산업에 대한 수요는 크게 늘고있으나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은 미국과 일본등 선진국은 물론 국내제조업체에 비해서도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우루과이라운드(UR)의 타결 등으로 국내서비스 시장이 개방될 경우에 대비,서비스 산업의 경쟁력강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1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유진수박사가 조사,발표한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생산성변화와 국제비교분석」에 따르면 국내서비스산업이 매년 규모는 커져왔으나 생산성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있다. 정부와 민간 비영리생산자를 포함한 전체 서비스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70년 43.7%에서 89년 47%로 높아졌다. 반면 89년 현재 국내 서비스산업 종사자 한사람이 생산한 부가가치를 1백으로 보았을 때 미국의 경우 4백78(87년 기준),일본은 2백99(88년 기준)로 나타나 국내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이 이들 나라에 비해 매우 낮고 서비스의 질도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이에반해 서비스 1단위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임금)은 미국의 1.7배,일본의 1.26배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또 자본 1단위 투입에 따른 부가가치 생산성도 89년 현재 미국의 58%(87년 기준),일본의 49%(88년 기준)에 불과했다. 국내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은 제조업에 비해서도 크게 낮아 71년부터 88년까지 자본과 노동투입요인을 제외하고 기술개발,경영혁신 등의 요인에 의한 생산성은 연평균 1.85%가 증가해 제조업의 2.21% 증가 보다 낮았다. 다시말해 국내 서비스산업은 양적증가에 비해 질은 물론 생산성도 형편없이 낮다는 얘기다.따라서 서비스시장이 개방될 경우 선진기법을 갖춘 외국기업들에 의해 시장이 잠식당할 소지가 높은 것이다. 서비스산업의 업종별 생산성은 창고·통신업의 경우 71년부터 88년까지 연평균 4.93%의 증가율을 보인 반면 도·산매,음식숙박업은 같은 기간 0.17%,금융·보험·부동산업은 0.41%의 증가에 그쳤다.음식·숙박업이나 도·산매업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업체 규모의 영세성이 주원인이며 보험업과 부동산업은 이들 분야의 자본활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반면 운수·창고·통신업이 높은 생산성증가를 보인 것은 통신분야에 있어 첨단설비가 도입되고 항공운수업이 발전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연구결과 서비스시장이 개방되면 경험이 풍부하고 선진기법을 갖춘 외국기업들의 국내시장점유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서비스산업이 소비산업이라는 인식에서 탈피,재화산업을 지원하는 금융·유통·정보산업 등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외국서비스산업의 지출에 대비,현재 제조업을 기준해 만들어져 있는 「독점규제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서비스산업도 포함,보완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됐다.
  • M·L주의 포기한 개혁의 주역/고르비 집권에서 실각까지

    ◎85년 서기장 피선·90년 대통령으로/신사고로 세계냉전의 흐름을 바꿔 집권 6년5개월만에 실각된 고르바초프는 세계정세의 흐름을 냉전에서 데탕트로 바꿔놓은 장본인. 체르넨코가 서거함에 따라 러시아혁명(1917년) 이후에 출생한 최초의 소련지도자로서 지난 85년3월11일 54세의 나이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고르바초프는 집권직후부터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신사고외교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및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을 추진,사회주의혁명 70년의 낡은 유물들을 몰아내기 위한 일대운동을 전개했다.총성없는 「제2의 러시아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사유재산제를 도입하는 등 소련경제를 철저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시키고 공산당 권력독점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는 등 국내에서의 엄청난 정치·경제적 변화를 주도했다. 국제적으로도 지난 88년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동유럽개혁 불간섭을 선언,동구전역을 휩쓴 민주화물결의 불을 댕겼다.독일통일도 고르바초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지난달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조인하는 등 미소관계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까지 화해의 대기운을 몰고온 것도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거나 최소한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지난해 6월 노태우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소수교를 맺고 지난 4월 방한했는가 하면 북한에 개방압력을 꾸준히 가하는 등 한반도의 해빙무드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있다. 이같은 국제무대에서의 빛나는 업적으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는 격찬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같은 급속한 개혁추진과정에서 정치·경제적 대혼란이 불가피하게 수반돼 인기가 곤두박질쳤다.식량위기 등 극심한 경제난에 따른 불만이 극에 달했다.지난달 런던에서 서방선진7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는 등 서방세계로부터 대소경제지원을 얻어내기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국내에서는 오히려 구걸외교라는 비난을 사기도했다.발트3국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독립요구에 따른 연방해체위기로 골머리를 썩이면서 러시아공화국 등 9개공화국과 신연방조약 체결을 추진,20일 조인할 예정이었다. 급진개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있는 보수파와 더딘 개혁속도를 못마땅해하는 개혁파의 협공 속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자신에게 도전한 보수파의 거두 리가초프를 제거하는데 성공하는 등 위기를 맞을 때마다 번번이 승리를 이끌어내 간간이 나돌던 실각설을 비웃으며 정치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60세로 지난 31년 남부 러시아의 프리볼노예에서 출생,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78년 농업담당서기로 당중앙위에 진출,80년 정치국원이 됐다.헌법을 개정,지난해 5월 임기5년의 대통령직에 선출돼 공산당서기장과 겸직하던중 1년 남짓만에 도중하차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돼버렸으나 고르바초프라는 이름은 세계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고르바초프 연보 ▲31.3.2 러시아공 프리볼노예에서 출생 ▲50 모스크바대 법학과 입학 ▲52 공산당 청년조직(콤소몰)에 가입 ▲78 공산당 농업담당 서기 ▲80 정치국정위원 ▲85.3.11 공산당 서기장 ▲85.8 핵실험 일방중지 선언 ▲85.11 레이건과 제네바에서 제1차 정상회담 ▲86.10 레이캬비크에서 레이건과 2차 정상회담 ▲87.12 워싱턴 방문,INF 폐기협정서명 ▲88.9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89.5 북경방문,최고회의 의장 피선 ▲89.10 몰타정상회담,냉전종식선언 ▲90.3.15 5년임기의 초대대통령 취임 ▲90.5 워싱턴방문,미소정상회담,전략핵감축합의 ▲90.6 샌프란시스코한소정상회담 ▲90.10 한소수교 ▲90.10.15 노벨평화상 수상 ▲90.12 모스크바서 한소정상회담 ▲91.4.16 방일 ▲91.4.19 방한 ▲91.7.26 소련공산당 중앙위서 마르크스­레닌주의 포기,신강령안채택 ▲91.7.30∼31 모스크바서 미소정상회담,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조인
  • 이념 자유화/경제 사유화/정치 다원화/군대 국유화

    ◎중국,「신4화」 배격운동/전국에 공작소조… 「물든 당원」 엄벌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공산당은 지난 10여년간에 걸친 개혁·개방정책으로 생겨나고 있는 ▲이념의 자유화 ▲경제의 사유화 ▲정치적 다원화 ▲군대의 국유화등 이른바 「신4화」가 중국의 사회주의체제를 위협하는 당면과제로 인식,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급 당조직내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공작소조(실무대책반)을 설치,운영키로 했다고 홍콩 스탠더드지가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경소식통을 인용,이같은 「신4화」움직임이 자본주의로 나아가려는 위험한 생각으로 현 사회주의 중국정권을 위협하는 최대의 당면과제로 간주,철저히 배척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스탠더드지는 중국지도부가 소련의 자본주의화에 자극받아 지난7월초 「신4화」방지를 위한 공작소조결성을 결정했으며 그 범위는 중앙당으로부터 각 지역당과 말단의 공장 당조직까지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스탠더드지가 인용한 소식통은 이 공작소조의 기능 및 역할은 당정치국상무위원 교석이 서기직을 맡아이끌어 가고 있는 막강한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기능 및 역할과 유사한 것이나 그 주임무가 당내 「신4화」추세의 확산을 저지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에따라 「신4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판명된 당원들은 각급 공작소조의 엄중한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 공작소조는 또한 「사회주의 정치교육」을 통해 당의 세포조직을 강화하고 당원들에게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고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어 중국지도부는 소련을 자본주의 경향으로 돌아서게 한 주원인도 자산계급 자유화,경제시장화,정치다원화 및 군대의 국유화 등 「4화」풍조 때문인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소식통은 당내의 이같은 결정과 병행하여 당중앙통일전선공작부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지도노선을 강력히 비난하는 내부문서를 8개 민주당파에 회람시켰다고 밝혔다. ◎“사회주의체제 고수” 결의 표명/“개방 틈타 들어온 「자본주의 불순물」”/당내 권력투쟁서 보수파 득세 입증 중국공산당이 최근「신4화」노선을 적극 배격해나가기로 결정한 것은 소련·동구등 전세계의 탈공산화 움직임에 아랑곳없이 현 사회주의체제를 기필코 수호해 나가겠다는 결의의 표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여년간에 걸쳐 등소평이 주도한 4개 현대화(경제·농업·국방·과학기술)와 함께 개혁·개방정책을 적극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 사회 곳곳에 자본주의적 요소가 적잖이 스며들었다고 보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건을 6·4천안문사태로 간주하고 있다. 등소평은 당초 경제부문에만 개방·개혁정책을 적용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일부 도입함으로써 국가 현대화를 달성하자는 생각이었다.그러나 정치부문에까지 개혁·개방물결이 스며들어 급기야는 천안문사태등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자 이른바 4항원칙(공산당 영도,사회주의노선,프롤레타리아독재,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을 줄곧 강조해왔다. 이같은 4원칙을 엄격히 지켜오고 있음에도 국외에서는 탈공산화바람이 거세게 불고 국내에서도 자유화불씨가 사그러들지 않자 『이번에 「신4화」배격운동을 펼치게 된 것으로 볼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당내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권력투쟁에서 보수파가 확고한 우위를 차지했음을 말해주고 있다.천안문사태 직후 주도권을 잃은 개혁파는 올해들어 추가화·주용기등 개혁파의 부총리 등용,조자양 심복들의 정계복귀,개혁위주의 8차5개년계획채택 등으로 다시 보수파를 압도하는 듯했으나 지난7월1일 당창건70주년을 계기로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당시 강택민당총서기는 기념사에서 『중국공산당은 결코 권력독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자본주의식 경제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등 보수파의 완전승리를 선언하는 듯한 연설을 했다. 개혁파를 이끌어온 등소평 역시 사회주의체제 위협에 대해서는 보수파와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그는 최근 『오늘날 사회주의 운명은 십자로에 서있다.중국공산당의 운명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다만 그는 공산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경제를 현대화해야 하고 그러자면 개방·개혁이 절실하다고 보는 반면 보수파에서는 개혁·개방보다는 사회주의 방식으로 경제건설을추진해나가자는 것이다. 「신4화」배격운동으로 중국의 개혁정책은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다.그렇다고 현재와 같은 대외지향적 경제정책이 또다시 자력경생방식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그러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중국경제는 이미 국제경제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과거로의 회귀는 중국경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당분간은 적어도 동구사회주의권 붕괴의 도미노위협이 사라질때까지는 집안단속을 철저히 할 것이지만 멀지않아 경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다시 개혁파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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