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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완 국민대회 자동해체

    [타이베이 AP DPA 연합] 대만의 구시대 최고 권력기관으로 국민당 독재의상징이었던 국민대회(國民大會)가 국민당,민진당,신당 등 주요 3당의 협의하에 마지막 남은 입법 권한을 입법원에 이양함과 동시에 차기 총선을 통한대회 구성을 포기하는 헌법개정안을 24일 밤 통과시킴으로써 자동 해체됐다. 국민대회는 대만의 국민당 정부 수립 이후 상당 기간 대륙 출신 종신직 국민당원로들로 대부분 구성돼 총통 선출과 헌법 개정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유지,독재정권의 제도적 장치 기능을 했었다. 그러나 90년대 초부터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에 밀려 구성원 수와 권한이 대폭 줄어든 국민대회는 이날 밤 입법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실무적 입법기관 역할을 해 온 입법원으로 이양하고 5월6일 실시할 예정이던 국민대회 대표 선출을 포기하는 헌법 개정안을 마지막 제3 독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로써 대만 국민당 독재의 한 제도적 장치로 그 상징적 잔재였던 국민대회는 국민당의 실권과 함께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 칠레 소설가 에드바르즈 세르반테스 문학상 수상

    [알칼라 데 에나레스(스페인) AP 연합]소설가 호르헤 에드바르즈(69)가 24일 스페인어권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을 칠레 작가로는 최초로 수상했다. 에드바르즈는 이날 최초의 근세소설로 평가받는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데 세르반테스의 고향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국왕으로부터 직접 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소감 연설에서 “상을 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면서 “내가상을 탄 것은 우연일 뿐”이라고 말했다. 칠레 외교관 출신인 에드바르즈는 지금까지 7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편의 단편소설,에세이 등을 썼으며 그중 70년대 쿠바에서 보낸 외교관 생활을 바탕으로 쿠바정부를 비판한 소설인 ‘페르소나 논 그라타(비우호적 인물)’가가장 유명하다. 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집권 시절 유럽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그는 칠레의독재와 칠레인의 삶을 묘사한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고 최근작인 ‘엘 수에뇨 데 라 이스토리아(역사의 꿈)’는 피노체트 정권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76년 제정된 세르반테스 문학상은 16세기 작가 세르반테스가 당시 문학에남긴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스페인어 문학발전에 기여한 작가에게 수여돼왔으며, 지금까지 옥타비오 파스(81), 바르가스 로사(94) 등 유명 작가들이이 상을 받았다.
  • LA서 訪美 첫 기자회견

    김영삼(金泳三·YS)전대통령의 ‘어조’가 부드러워졌다.지난 21일부터 미국 방문에 나선 그는 22일 첫 도착지인 LA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정상회담 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얼마전까지 현 정부를 ‘독재정권’이라며 독설을 퍼붓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김전대통령은 “최근 발표된 남북정상회담은 94년 7월 김일성(金日成)북한주석의 사망으로 연기된 합의를 계승하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이어 “내가 재임중 추진하려 했던 일이 유보상태에 있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축하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총선결과에 대해서는 “공천 파동만 없었다면 야당의 과반수 의석이 가능했었다”면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공천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이어 “과거에도 경상도·전라도의 골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깊게 파인 적은 없었다”며 ‘지역감정’이 심화된 데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차기 대권주자는 영남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발언에대해서는 “그런 표현은 아니었다”고 해명한 뒤 “이번 선거에서 여야 관계없이 30대가 많이 당선된 것은 한국 정치사상 처음있는 일로 세대교체가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전대통령은 “대통령을 5년 했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았고,고난의 시기는 길었지만 영광의 시기는 너무 짧았다”고 회고한뒤 “인간은 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수기자 **
  • ‘경무대 진격’ 白雲虎씨 40주년 맞아

    1960년 4월 19일 오후 4시30분쯤 서울 종로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景武臺)앞. 서울대·건국대 등 10여개 대학 900여명의 학생들은 “독재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무대로 향했다.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경찰은 시위대들이 접근해오자 무차별 사격을 시작했다.200여명의 학생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당시 학생 시위대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건국대 법학과 4학년 백운호(白雲虎·63·현 4·19회 이사)씨.그는 4·19혁명 40주년을 하루 앞둔 18일 당시의빛바랜 사진을 보며 ‘그날’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백씨는 “4월 혁명은 부정과 부패,비리 등 사회악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와통일을 염원하는 순수한 젊은이들이 민주주의 발전의 틀을 다진 역사적 의거였다”고 평가했다.그는 “이제 4·19세대는 역사의 전면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지만 4월 혁명 정신은 후세들에게 계승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씨는 “4월 혁명은 내 삶을 이끄는 방향타였다”고 지난 40년을 회고했다. 백씨는 4월 혁명 이후 민주당 정권 때인 61년 간부후보생 13기로 경찰에발을 들여놓았다.63년에는 ‘4·19혁명 청년 지도자상’으로 건국포장을 받았다.92년 6월 퇴임할 때까지 청와대 경호업무와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장을 지냈다.97년부터 99년까지 한국 BBS중앙연맹 사무총장을 맡아 불우 청소년과자매결연을 하는 등 사회봉사 활동에도 힘썼다. 백씨는 “경찰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4월 혁명 동지들의 모임에 참석하지못하고 학생들의 시위를 막는 등 4·19 혁명 당시와 반대의 처지에 있기도했다”면서 “하지만 마음만은 항상 동지들과 함께 했다”고 말했다.9살때부모와 함께 함경남도 원산에서 내려온 백씨는 “최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등 통일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면서 “역사는 결국 발전하는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박록삼기자 youngtan@. *'麗水 선거살인'’40년만에 진상규명. 지난 60년 ‘3·15부정선거’직전 경찰의 사주로 발생한 ‘선거살인 제1호’사건은 범인들이 대상자를 착각해 다른 사람을 살해한 것이라는 사실이 40여년만에 밝혀졌다.당시 범인들은 경찰이 지목한 사람과얼굴이 닮은,엉뚱한사람을 테러해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마산 3·15부정선거 규탄데모의 불씨가 되었고,다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었다. 제4대 정·부통령선거 6일전인 1960년 3월9일 오후 7시 30분경 곤봉,철봉,맥주병으로 무장한 괴한 7∼8명이 민주당 여수시당(黨) 사무실에 들이닥쳤다.이들은 당시 사무실 앞길에서 마이크를 가설중이던 민주당 여수시장 재정부장 김용호(金容鎬·당시 32세)씨와 선전부장 김봉채(金鳳彩·당시 49세)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재정부장 김씨는 피습 5시간 뒤 뇌진탕으로 절명했다.사건후 민주당은 김씨의 장례를 ‘민주당장(葬)’으로 치르기로 결정하고 자유당과 정부측을 공격하였다.사건 다음날인 10일 저녁 당시 조광범(曺光範) 여수경찰서장은 주범 정인석(鄭仁石·당시 22세)을 체포하고 관련자 2∼3명을 수배중이라며 “범행동기는 사감(私感)같다”고 밝혔다.그러나 4·19후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 이 사건은 조 서장이 깡패들에게 돈을 주고 사주한 것으로밝혀져 5·16후 조 서장은 7년형을 언도받았다. 한편괴한들이 당초 습격대상으로 지목한 인물은 당시 여수시당 선전부장신영길(辛永吉·75·한국장서가협회장)씨였던 것으로 밝혀졌다.신씨는 “2월29일밤 모 인사가 집으로 찾아와 피신하라고 일러줘 5만원을 들고 부산으로피신했는데 현지에서 김씨의 피살소식을 들었다”면서 “괴한들이 나와 얼굴이 비슷한 김씨를 나로 착각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며 숨겨진 비화를공개했다.1956년 제3대 정·부통령선거 당시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구호를 기획한 주인공인 신씨는 “4·19희생자에 준하는 당국의 예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씨의 부인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김씨의 묘소는여수시 미평동에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사설] 4월 민주혁명 40주년 아침에

    올해도 그때처럼 진달래가 산녘마다 지천으로 피어났다.접동새 울음소리가끊인지는 오래됐지만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와 함께 4·19는 다시 찾아오고 어언 40주년을 맞는다.올 4·19의 감회는 남다르다.40주년이란 연대기적의미와 함께 4월혁명이 추구했던 민족통일을 향한 본격적인 남북대화가,그것도 정상회담의 형식으로 예비된 까닭이다.4·19는 자주·평화·민주의 통일3대원칙을 제시했었다. 이 원칙은 그로부터 10년 뒤 7·4남북공동성명에도 나타나고 80년대 통일운동의 기본원칙이 되었으며 지금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햇볕정책의 기조가되고 있다. 4·19공간의 통일논의가 비록 군사쿠데타에 의해 일과성(一過性)으로 역사속에 매몰되고 말았지만 분단 반세기의 어느 시기보다 활기차고 실천적으로전개되었다.연면히 흐르는 민족 양심의 발로였다.그러나 4·19공간의 통일논의는 일부 급진세력과 이상주의자들에 의해 과격성과 조급성을 띠게 되고 중립화통일론 등 이상론이 제기되면서 극우보수세력에 빌미를 주게 되었다. 이같은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면서 40년 만에 다시 전개되는 남북대화 공간을 보다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여전히 분단을 전제로 해야만 존립할 수 있는 세력이 있고,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거부하는 냉전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지나친 조급성이나 이상론은 자칫 이러한 세력에 또다른 빌미를주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19정신의 실천은 민주주의 건설과 민족통일의 성취로 모아진다.민주주의건설은 그동안 피맺힌 민주화투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수평적정권교체도 이룩했다.그러나 민족통일은 이제 첫걸음을 시작했다.걸음마단계다.정치권은 물론 학생,노동자,언론,지식인 등 모든 사회주체들이 차분하고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독일의 경우 첫 양독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도 통일은 20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에야 가능했다.남북정상회담이 통일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국민적합의와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 배경이다.언론은 선정주의적 보도행태와 발목잡기식 보도를 지양하고 지식인들은 지나친 이상론을 배제해야 한다.학생들의 조급성도 대사를 그르치기는 마찬가지다.40주년을 맞게 되는 ‘4·19교훈’은 또다른 측면을 남긴다.이른바 ‘4·19주역’들이 군사정권의 나팔수가되거나,이론가로 변절하면서 4월혁명정신을 크게 훼손시켰다는 사실이다.진정한 주역은 희생자·부상자들인데 그들이 흘린 피를 팔아 출세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한 자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이뤄지지 않았다.이로 인해 7,80년대 민주화운동의 경력을 내세워 독재·부패세력에 기생해온 정치인·관료·언론인 등이 양산되는 풍토가 조성되고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졌다.진정한 4월혁명 정신의 계승을 위해서는 반4·19적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다시는 “진달래는 다시 피어 무엇하리”란 시인의 개탄이 나오지 않도록하자.
  • “무가베 독재 종식” 정치투쟁 비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20년 독재가 흔들리면서 짐바브웨의 갈등과 혼란이 갈 수록 악화하고 있다.법치(法治)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가장 우려되던 폭력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고 있다.두달 넘게 계속된 흑인들의 백인 농장 무단점거에서 15일 백인 농장주가 처음으로살해됐다.또 최근 인기가 치솟고 있는 야당 ‘민주변화운동(MDC)’당의 간부 2명은 반정부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집권여당 지지자들이 던진 화염병에 차가 불타면서 사망했다. 짐바브웨의 흑백분쟁은 지난 2월 백인들의 농장을 땅이 없는 흑인들이 무단점거하면서 시작됐다.80년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짐바브웨는 독립 당시부터 백인들이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한 것이 큰 문제가 됐었다.당시 영국은 백인들의 땅을 흑인들에게 분배해주기로 했다.그러나 불공정한 분배로 무가베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며 이를 중단했다.지금도 짐바브웨 토지의 75%를 소수의 백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짐바브웨 독립 후 20년간 잠복해 있던 토지 분배 문제는 무가베의 장기집권과 그에 따른 부정·부패 만연 및 경제 악화로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하면서다시 불거졌다. 무가베는 지난 2월 국민들이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백인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땅이 없는 흑인들에게 나눠주는 대신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는 헌법개정을 국민투표에 붙였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이와 함께 노조를 기반으로 탄생한 야당 MDC는 정당한 보상을 바탕으로 한백인 토지의 흑인 분배를 주장,백인 농장주들의 지지와 함께 무가베 정권에염증을 느낀 국민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어 무가베 정권을 위협하고 있다.무가베는 이런 위기 타개를 위해 “백인 농장 무단점거는 모든 것을 빼앗긴 흑인들이 정당한 항의 표시”라며 흑인들의 무단점거를 부추겼다. 법질서는 간 데 없고 폭력만이 판을 치게 된 짐바브웨의 갈등의 본질은 토지 소유를 둘러싼 분쟁에서 촉발됐지만 이제는 무가베 정권 축출을 위한 정치투쟁으로 바뀌었다. 유세진기자 yujin@
  • 유고 10만명 反정부 시위

    [베오그라드 AP AFP 연합] 유고슬라비아연방 야당 및 반정부 인사 등 10만여명은 14일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퇴진 및 조기선거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야당 연합체인 ‘변화를 위한 동맹’ 주도의 이번 시위는 지난해 8월 이후최대규모이며 지난 1월 주요 야당들이 상호 이견을 접고 공동전선을 펼치기로 한 이후 첫 대규모 시위로 기록됐다.‘슬로보(밀로셰비치)는 즉각 떠나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베오그라드 중심부 공화국광장에 운집한 시위대는 먼저 옛 세르비아공화국의 애국가인 ‘신이여 우리에게 정의를‘을 합창한 뒤밀로셰비치 대통령의 독재 종식 및 퇴진을 촉구했다.
  • [대한시론] 4·13 총선이 남긴 숙제

    4·13 총선거의 결과가 나왔다.선거에 대한 감회나 평가는 각자,각 당의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어떻든 국민의 선택이고 결단이란 점에서 일응 겸허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다만 선거를 통해 나타난 우리의 모습이예쁘냐,그렇지 못하고 미흡하냐 하는 것은 별문제이다.따라서 그 점을 두고우리의 진로를 진지하게 모색해 나름대로 제언하고 싶다. 먼저 총선연대가 벌인 낙선운동에서 제시된 낙선대상자가 상당수 낙선되었다는 점이다.이 점에서 우리의 정치구도는 그래도 계속 노력해가면 개선될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다음에는 정당별 당선 수에서 여당과 야당,양당 구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철새정당’이나 색깔시비의 지역정당이 쇠락해 가고 있다.그런데 한편으로 혁신·진보정당의 좌절은 50여년의 보수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는 풍토에서 아직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고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안타까운 현상은 지역정서와 지연 연고의식이 일부 지역에서 더욱 거세게 나타났다는점이다.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관점에서 논구되어야 할 것이지만,먼저 대통령과 여당 지도자에게 한마디 한다.어떻게 하든지 ‘지역 패거리주의’를 돌파하기 위해 보다 솔직하고 과감하며 성실한 대국민 접근과 견실한 정책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이 난제를 풀지 못하면 한국의 정치발전은 있을 수 없다.이유가 어떻든 지역주의의 망국병을 뿌리뽑는 노력이 각계 각층으로부터 전개되어야 한다.이 운동이야말로 향후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이 담당해야 할 몫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번 선거는 부패 보수기득권 세력이 총선연대와 386세대,인터넷으로 나타나는 네티즌의 목소리,개혁을 발목잡는 부패세력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새 세대의 각성,외국 비판세력의 재벌 구조문제 제기 등에 대항해 생사를걸고 총력전으로 도전했던 싸움이다.물론 끝난 싸움은 아니지만,그들은 과거 독재하에서 얻은 특권과 특혜,재산과 사회적 지위 등 유리한 점이 개혁의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버릴까봐 결사적으로 자기편을 지원했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50여년 뿌리를박아 온 독재하의 부패구조에 도전해정권을 교체하여 개혁을 추진하는 정권의 정치구도 재정비로서 의의가 있다. 이 점에서 김대중 정부는 선거에서 승리했느냐,패했느냐 하는 것을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다.다만 김대중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이며,구독재정권처럼 불법을 자행하는 무리수는 자제했다고 본다.과거의 선거판을 보면 이 점은 알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향후 정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이다.국민에게 직접 국정을 알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정부라는 것을 체감토록 하여 개혁을 위한 재정비로서 정계개편에 나서야 할 것이다.변화된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대응해야하는 것이다.기존틀이나 기득권 세력의 현상고착 등 올가미에 걸려들어서는안된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일반적 징후와 현상은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구시대 우민정책의 잔재가 건재하다는 점이다.이를 그대로 놓고서는 21세기 정보기술혁명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 시민의식이 근대 이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내버려둔 채로 일부정치말썽꾼의 눈치나 보고 비위를 맞추려고 해선 안된다. 지금 내외정세는 남북정상회담에까지 이른 시대이다.그런데 일부 이승만시대나 박정희시대에 써먹던 색깔론이나 호전적 무책임한 강경책이 애국 반공인양 멍텅구리 짓을 하는 것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그러한 정치색맹으론 21세기 정치에선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국민이 알고 소리높이 외치도록 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우리 나름의 성숙도와 함께 구시대 구세력의 잔재가 건재함을보여주었다.우리의 그러한 한계를 시인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우리 정치가 제모습을 찾는 것은 개혁의 성패여부에 달려있다. 한상범 동국대교수 법학.
  • 페루 大選 결선투표 ‘새국면’

    지난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부정시비로 혼돈에 빠져든 페루의 정치상황이 제2라운드를 맞게 됐다. 늑장 개표로 조작시비를 불러일으켰던 페루의 선거관리위원회(ONPE)는 12일밤 “97.68%의 개표가 완료된 현재 후지모리 후보가 49.84%,야당후보인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는 40.31%의 지지를 얻었다”고 밝혔다. 해외유권자 등록서류가 도착해야 나머지 개표를 할 수 있으나 남은 표중 0. 05%를 추가하는데 불과,개표결과에 관계없이 2차투표로 들어간다.결선투표는국가선거위원회(JNE)의 결정으로 오는 5월 말이나 6월 초에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의 발표가 나온 뒤 톨레도 후보는 수도 리마 쉐라톤 호텔 광장에 몰려든 수만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국민의 목소리가 이겼다.결선투표가 있을것이다”며 헌법을 어기고 출마한 뒤 부정선거를 자행한 후지모리 독재를 종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지모리 1차 투표 당선’을 발표할 것으로 점쳤던 정치 분석가들은 10년철권통치를 하고서도 권력연장을 시도한 후지모리가 국내 시위가 확대되고미국 등의국제 압력이 거세지자 우선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고 있다. 2차투표로 갈 경우 상황은 전혀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다. 부정선거의 재연가능성과 함께 국제사회의 압력 강도,톨레도의 인기상승 등이 맞물려 복잡한양상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톨레도는 2차투표의 전제조건으로 공정한 언론매체 접근,국제·국내 선거감시단 활동 보장,개표 실시간 공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단 시간과 상황 자체는 톨레도편이다.톨레도 진영에는 이미 5명의 중소야당후보들이 연대,‘남미 민주화’운명이 달렸다며 후지모리를 공격하고 있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동양인 후지모리는 ‘중국식 독재자’라는 정서가 커가고 있다.9일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지모리 대통령의 전 부인 수자나 히구치도 톨레도와 나란히 서서 후지모리 비난대열에 끼었다. 대 마약 정책상 페루를 전략적 요충지로 여기는 미국 정부도 후지모리 견제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백악관과 국무부가 부정선거를 우려한 성명을 내고 제재조치를 취할 움직임을 보인데 이어 12일 미 하원은 “국제선거감시단이 부정이라고 판단한 경우 대 페루 정책을 재검토 한다”는 ‘결의안 43호’를 승인했다. 또한 미국은 12일 페루가 대통령선거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국무부의 한 관리는 “지난 9일 실시된 페루 대선 1차 투표에서과반수 획득 후보가 나오지 않아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 데 대해 미국 정부는환영한다”고 말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톨레도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페루 군부도 톨레도편에서기 시작했다고 전망한다.톨레도는 12일 존 해밀턴 주 페루 미 대사를 만난데 이어 군 고위급인사를 만나 정국 안정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따라서 2차 투표시 후지모리 진영의 부정선거를 위한 운신의 폭이 좁아질것이며 후지모리가 3선 대통령 자리에 다시 앉는다 하더라도 그의 정치적 입지나 국제적 위상은 급추락할 것이 자명하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발언대] ‘4·13’임시정부수립 참뜻 되새겨 올바른 투표를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제81주년이 되는 날인 동시에 제16대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다. 국회의원 선거일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겠지만 1919년 3·1운동의 결과인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현행 헌법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 제1조에서는 반만년 동안 답습한 전제군주제에서과감히 탈피해 역사 속에서 한 번도 경험하거나 시도하지 못했던 ‘민주공화제’를 채택하고 제5조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음을규정하고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귀중한 권리를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수많은 호국영령들과 상이용사 등 국가유공자들이 피와 땀을 흘렸고 독재권력에 빼앗기지않기 위해 4·19혁명 등에서 큰 희생을 치러 왔음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또한 임시정부 헌장 제6조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소중한 권리의 대가로 당연한 교육·납세 및 병역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정강에서는 임시정부의 법령을 어기는 자는 적으로 간주함을 천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헌장 제2조에서는 정부와 의정원을 두는 등 통치기구를 민주화했으며 제3조에서는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이 일체 평등함을 규정하고제4조에서는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서신 주소이전 신체 및 소유의자유권을 확인하는 등 민주헌법의 훌륭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돼 주권행사를 할 수 있게 기틀을 마련한날임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연찮게도 국회의원 선거가 겹치는 뜻깊은 날이다. 이 날을 정부에서는 주권행사가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오히려 투표율이 저조할 것으로 걱정까지 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참뜻을 오늘의 실정에 맞게 훌륭히 계승하고 앞으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후보를 찾아 투표하는 것도 81번째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에 할 수 있는 뜻깊은 일일 것이다. 이용원[수원보훈지청장]
  • 짐바브웨 무가베 20년독재 무너지나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20년 독재가 흔들리고 있다.장기집권에따른 부패 만연과 비효율적 국정 운영으로 인플레가 50%를 넘는 등 경제는파탄에 이르러 전국민의 3분의2가 최저생계 수준에도 못미치는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2월 집권기간을 12년 연장하기 위한 헌법 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무가베 대통령이 예상 밖의 패배를 당한 것도 이처럼 국민들의 불만이극에 달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짐바브웨 의회가 12일 자정을 기해 임기가 만료됨으로써 자동 해산됐다.새 총선이 불가피해진 것이다.아직 총선 날짜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무가베 대통령은 5월말쯤 총선을 치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짐바브웨 사회와 정국은 심각한 불안 양상을 보인다.무가베대통령은 국민들의 불만 무마를 위해 백인이 소유한 토지와 농장을 몰수,땅이 없는 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겠다고 밝혀 흑인들의 백인농장 점거를부추기고 있다.이에 따른 충돌과 끊임없는 폭력,반정부 시위 등으로 사회 불안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짐바브웨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점은 무가베의 집권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당의 인기를 곤두박질치게 만들고 있다.반면 노조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야당 민주변화운동(MDC)당은 날로 인기를 얻고 있어 총선이 실시되면 ZANU-PF가 패배할 것이란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무가베와 ZANU-PF가 한번 잡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데 있다.150석의 의석 가운데 147석을 차지하고 있는 ZANU-PF는 야당인 MDC를 탄압하는데군과 경찰을 동원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집권당이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무가베를 다시 권좌에 앉히기 위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란 추측도 나돌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 4·13총선 D-5/ 후보 前科 공개 각당 반응

    총선을 엿새 앞둔 7일 후보자들의 전과가 모두 공개되자 여야는 선거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면서 이를 판세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차별화 전략을구사했다. 각 당은 처음 예상과는 달리 입후보자들의 파렴치성 전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음에 따라 전과기록 공개가 선거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상대당 후보의 ‘죄질’을 쟁점화하며 첨예한 공방을펼쳤다. ◆민주당 상대당 후보 전과에 대한 공격보다는 당 소속 후보들의 전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국관련 전과가 ‘민주화 운동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한민주 전과’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훈장’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특히 야당이 시국 관련 전과를 가진 후보들을 ‘주사파’ 등으로 공격하자이들의 수형생활과,한나라당 후보들의 병역·납세상의 문제점들을 대조시키는 데 주력했다.민주당 김한길 선거대책위 대변인은 “우리 당이 민주화를위해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정당임이 입증됐으며,민주 전과가 아닌 분들도 공권력의 상처내기 억지·조작이 대부분”이라면서 “8일 민주 전과 35명의 공동회견을 갖고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은 “우리 당 민주화 인사들이 독재와 싸우다 차가운 감방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많은 한나라당 후보들은 정권과 재벌의 비호속에서 부자(父子)가 병역을 면제받고 탈세로 치부하고 있었음이 재확인됐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파렴치범’으로 분류되는 전과를 가진 후보가 없자 안도하는분위기다.상당수 전과기록 보유자들이 시국사범으로 나타났으므로 큰 문제가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또 전과자 수에서도 민주당에 비해 적은 것으로 드러나자 ‘전과공개 공포’에서 일단 벗어난 모습이었다. 이에 따라 병역,납세,전과 공개로 인해 후보 개인의 자질검증쪽으로 기운선거분위기를 다시 ‘DJ대 반DJ’ 구도로 몰아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타고 민주당의 386세대 후보 중 일부 시국사범 연루자들을 ‘주사파’로 공격하면서 후보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원창(李元昌)선대위대변인은 “북한을 찬양숭배하고 폭력에 의해 공산혁명을 주창한 이른바 ‘주사파’ 5인방이 국회 진출을 꾀하고 있다”면서 “사상전향 검증이 안된 상태에서 이들이 국회로 진출하면 국가안보에 위협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정권이 전과공개를 미루면서 야당을 흑색선전으로 몰아붙이려던 시도가수포로 돌아갔다”면서 여당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자민련 양적으로나,질적으로나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당초 민주당이 전과공개 정국을 주도하면 야당측이 일방적으로 당할것으로 걱정했다가 평상심을 되찾는 모습이다.자민련 후보중 반사회범죄가많다는 점은 차치한 채 민주당이 수적으로는 많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오히려 역공을 가하고 나섰다.특히 시국사범을 겨냥,색깔론 시비로 몰아가며 보수정당으로의 위상을 부각시킨다는 방침이다. 변웅전(邊雄田)대변인은 “국기를 뒤흔든 주사파 등의 시국보안 사범이 가장 많은 민주당의 정체성과 이념적 노선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공격했다.이규양(李圭陽)수석부대변인은 “햇볕정책도 좋고 대북정책도 좋지만 운동권출신 급진인사들의 국회 진출은 안된다”고 거들었다. ◆민국당 소속 후보 가운데 폭력,혼빙간음,사기 등의 전과자가 포함된 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다른 당 후보의 전과전력에 대해선 칼끝을 들이댔다. 김철(金哲)대변인은 “민주당은 주사파 등 친북성(親北性),한나라당은 뇌물수뢰 등 친금성(親金性),자민련은 빠찡꼬 등 친잡성(親雜性)”이라고 공격했다.특히 한나라당에 대해선 “명백한 부정부패 비리전과를 정치적 속죄양인것처럼 일괄 강변해선 안된다”고 비난했다.타당 후보의 경우 상대적으로 우세한 사회적 공신력과 자금력 등을 동원,금고 이상의 중형을 받지 않았다고주장하면서 벌금형을 포함한 전과의 전면 공개를 촉구했다.하지만 민국당은전과 후보에 대해 자체 심사를 거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탈당을 요구하는 등 강경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군소 정당 민주노동당,한국신당,청년진보당 등 군소 정당들도 이날 소속후보들의 전과내역에 대한 소명에 나섰다. 민주노동당은 “우리 당 후보들은 대부분 시국사범들로서 어디에 공개해도부끄럽지 않은전과”라고 말했다.청년진보당도 “90년대 초반 공안정국 조성을 위해 당국에 의해 급조된 청년운동 조직 사건으로 전과를 갖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박대출 오일만 박준석 이지운기자 dcpark@
  • 인니 과거청산 제대로될까/부패‘동티모르잔학행위처벌거센요구

    *”수하르토 단죄” 지금도 시위 열기 후끈.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78)이 3일 검찰의 3차 소환에도 불응할 것이 확실해지자 그의 단죄를 요구하는 시위로 인도네시아 열도가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30일 수하르토가 부패 혐의 수사를 위해 검찰에 출두하라는 소환을 또다시 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카르타 곳곳은 시위장으로 변했다. 검찰청 앞에는 수백명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다루스만 총장! 당신은 수하르토를 법정에 세울 용기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과거의 다른 검찰총장들처럼 겁장이인가’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내걸고 수하르토를 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수하르토의 저택 앞에서도 대학생 수백명이 ‘모든 부패의 근원’ 수하르토를 법정에 세워 처형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시위와 구호에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정서가 담겨 있다.32년의 독재 끝에 인도네시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고서도 자신은 160억달러라는 엄청난 재산을 빼돌려 97년 세계 6위의 부호에 오른(포브스지 추정) 수하르토를그대로 두고서는 부패로얼룩진 과거를 청산할 수 없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수하르토의 아들딸 6명까지 합하면 수하르토 일가는 400억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8년5월 경제난에 따른 대규모 시위로 물러난 수하르토는 곧이어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그의 측근이었던 하비비 전대통령은 정권 말기 증거 불충분으로 수사를 종결시켰다.그러나 지난해 10월 압둘라만 와히드가 새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부패 혐의에 대한 조사가 재개됐다.공식 혐의는 그가 운영하던 자선단체를 통해 수백만달러를 유용했으며 퇴임 직전 파산 직전의 부실은행들에 수십억달러의 국고를 유출시켜 권력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하르토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검찰은 수하르토가 지난달 14일에 이어 30일 두번째 소환에도 불응하자 즉각 3일다시 출두하라고 세번째 소환령을 내렸다.수하르토가 세번째 소환에도 불응하면 강제구인하거나 수사팀이 수하르토의 자택을 방문해 수사를 벌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경미한 뇌졸중과 장출혈로 두차례 입원했던 수하르토는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검찰측 수사에 응할 수 없으며 수사는 당연히 중단돼야 한다는 게 변호인쪽 입장이다.그러나 수하르토는 28일 손녀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이때 수하르토는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지도 않았고 측근들과이야기를 나누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검찰은 수하르토의 건강이 실제로 안 좋다 해도 고개를 젓거나 끄덕여 가부를 표할 수만 있다면 수사가 가능하며 수하르토가 죽을 때까지 조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검찰은 한편 수하르토의 측근인 목재재벌 모하마드 하산을 28일 부패 혐의로 구속시키는 등 ‘수하르토 목조르기’를 단계적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돈을 앞세워 법망의 허점을 파고드는 수하르토의저항이 거세 수하르토를 단죄하려는 인도네시아의 과거청산 노력은 여전히진통을 거듭하고 있다.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위란토 사법처리 공정성에 의문. 위란토 전 인도네시아 안보장관이 과연 동티모르 잔혹행위로 국제전범재판소 법정에 설까.그 여부는 5월중 시작될 위란토 전장관 등 33명의 군고위 장교들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사법처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인도네시아 정부가 특별조사팀을 구성하고 인권 관련 법안을 제정하는 등 국제사회의 감시를 의식,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국제 인권단체들은 와히드 대통령이 벌써부터 위란토의 사면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엔은 2월초 동티모르 인권유린 사건 책임자들을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해야 한다는 국제 인권단체들의 요구를 물리치고 사법권을 인도네시아 정부에주어야 한다고 밝혔다.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2월 중순 인도네시아를 방문,“인도네시아 정부가 동티모르 유혈사태 책임자들을 공정하게 재판하지못한다면 국제전범재판소 설치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자리에서 3개월 안에 재판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도네시아는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인권관련새 법을 제정중이며 조간만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유엔 동티모르 과도행정기구(UNTAET)의 세르히오 비에이라 데 메요 수석행정관은 이날 “인도네시아가 조만간 동·서 티모르에 조사팀을 파견할 계획을 알려왔다”고 밝혔다.그는 조사와 관련해 양해각서를 작성중이며 최대한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판의 일부가 동티모르에서 열릴 것에 대비,동티모르의 사법체제를 정비중이라고 밝혔다.현재 인도네시아에서 공부한 54명의 변호사를 확보,이중 12명을 판사와 검사로 임명했고 이번 주 12명을 추가가 임명할 계획이다.UNTAET는 또 자체적으로 동티모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절차를 밟고있다.현재 동티모르 수용소에는 관련자 69명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유엔 인권조사기관과 인도네시아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해 8월 독립투표를전후해 최고사령관이었던 위란토 장관의 지휘를 받은 인도네시아군과 민병대가 유혈사태와 방화 등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수십만명을 서티모르로 내몰았다며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요구했다. 김균미기자 kmkim@
  • 특파원 수첩/ 美 ‘푸틴의 러시아’ 기대반 우려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블라디미르 푸틴이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러시아를보는 미국의 시각에는 우려와 기대가 반씩 섞여 있다.공식적으로 러시아정부에서 이름이 거론된지 8개월만에 대통령이란 최고 자리에 오른 푸틴에 대해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가운 눈매에 무엇인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띤 그의 얼굴에서 경제적 가난과 사회적 병리현상에 찌든 러시아의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엿보는듯 하다가도 동시에 옛 소련 시절 권력에 맹종하면서 잔인성을 보여준 KGB의그늘도 느끼고 있다. 러시아가 어디로 흘러가겠느냐는 이제 52%의 국민적 지지를 받은 48세의 젊은 푸틴이 휘두를 권력의 향배에 전적으로 달렸기에 미국은 그의 미세한 언행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26일 대통령직에 당선되던 날 클린턴 대통령도 일단 당선축하 인사를보낸 뒤 러시아의 민주주의 신장과 국제사회와의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기를기대한다고 촉구하면서 이같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전달했다.또 당선 직후 그가 경제개혁과 법치 회복,부패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에 대해 일단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러시아가 보여주고 있는 혼란스런 모습에서 그가 무슨 일을 하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합된 국가 행정권력이다.미국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것도 바로 이 점.혼란을 추스리고 국가의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추구할 권력의 정비 와중에 흔히 보았던 독재와 권력전횡이 동전의 앞뒤처럼 언제든함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문제,자유로운 언론의 보장 등 민주주의가 신장되지 않은 국가권력의집중현상은 혼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또하나의 나치즘,파시즘의 등장이요,옛 소련의 재등장보다 더 세계가 원치 않는 것이다.미국으로선 당장 푸틴이 제대로 권력을 정비,당장 어려운 경제를 회복시키고 협력의 파트너로 등장하도록 협조한다는 방침이나 CIA가 러시아를 알듯 KGB 출신으로 미국을 알고 있는 그가 미국을 어떻게 대할지는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다. hay@
  • [사설] 푸틴시대, 러시아의 앞날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권한대행이 투표자의 과반수가 넘는 지지로 당선됐다.40대의 젊은 지도자를 선택한 러시아의 새로운 앞날과 변화를 세계는 기대와 우려 속에 주목하고 있다. 푸틴 대행의 당선은 이미 예상됐던 결과였다.지난해 8월 옐친 전대통령에의해 총리로 임명되기 전까지 대중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푸틴이 불과 7개월여 만에 강한 추진력과 젊음으로 대권을 잡게 된 것이다.지난 9년여의 옐친 통치기간에 극심한 정치·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던 러시아 국민들이 젊은 푸틴의 강력한 지도력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푸틴 당선자는 해결해야 할 어려운 과제들이 많다.국내적으로는 옛소련 해체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개혁과정에서 초래된 혼란과 부패를 추방하고 경제난을 해소하는 일이 당장 시급할 것이다.그가 약속한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는 크지만 그의 능력과 수단은 아직미지수다.옛소련의 국가안보위원회(KGB) 출신이라는 경력과 체첸전쟁의 강행이강력한 독재통치 우려까지 나오게 만든다.러시아가 그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법과 질서를 되찾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착실히 진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푸틴 시대의 개막은 대외정책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지난해 12월 옐친 대통령의 전격적인 사임 이후 권한대행을 맡아왔기 때문에 대외정책의 큰 줄기는 그대로 유지하겠지만 머지않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러시아의 힘을 나타내려 할 것이다.푸틴 권한대행 주도로 지난 1월 채택된 러시아의 ‘신 국가안보개념’이 미국 중심의 일극(一極)주의 견제를 목표로 대통령의 안보정책에 대한 권한을 대폭 강화시킨 것도 이러한 우려를 크게 만들고 있다.오는 11월의 미국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러시아의 경쟁의식은 더욱 가속화될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러시아의 대외정책 변화는 동북아정세 및 한반도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끼칠 수 있다.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가 해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 남북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푸틴 시대에도 러시아의 이러한 한반도 정책에 변화는 없을 것으로기대한다. 올해로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 10주년을 맞는다.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은 궁극적으로 러시아의 국익과도 부합한다.한국과의 경제협력은 러시아의 경제회복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푸틴 시대 개막을 계기로 한·러 관계가 더욱가까워지기를 바란다.아울러 정부는 러시아의 변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주의깊게 지켜보며 적절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 [푸틴의 러시아] (1)어디로 가나

    신 러시아의 탄생이냐,아니면 스탈린주의의 복귀인가.26일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47세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직무대행이 대권을 거머쥐면서 인구1억5,000만 ‘젊은 러시아’의 진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전격 사임한 옐친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된 푸틴은 ‘강한 러시아’부활의 메시아로 각광받으며 소연방 해체이후 자존심을 구길대로 구긴 러시아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많은 러시아인들은 푸틴의대통령 당선으로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는 부패,범죄와 경제 혼란 등 ‘러시아병’을 특유의 추진력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그가 유세기간 중 ‘글로벌 러시아’를 내걸고 외국인 자본 유치에 힘쓰겠다고 약속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할 수도 있다고 밝힌 점은 서방세계와대립하지 않는 외교정책,자유주의적 민주개혁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의 공약과 달리 러시아에 현대판 스탈린주의 독재체제가 시작됐다는 개탄도 강하다.공산당의 주가노프 당수가 29.44%로 선전한것은 이같은푸틴의 독재성향을 우려한 반(反) 푸틴 ‘항의 표’가 몰린 것이란 분석이지배적이다. 푸틴의 사고는 KGB경력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그런 그가 다원주의적 경쟁적 정치시스템을 얼마나 용인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국립 페테르부르크대 재학중 KGB에 특채된 후 17년간이나 엘리트 정보원 코스를 밟아온 푸틴은 틈만나면 KGB를 옹호,소비에트 체제에서 최상의 훌륭한 시스템이었다고 주장해왔다. 그의 실용주의에 기초한 개혁마인드를 존중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러시아의 장래를 어둡게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엄청난 인기를 얻고 출발했지만 이익세력들의 세력다툼끝에 결국 실각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푸틴을 지지한 세력은 소비에트 시절의 국부를 가능케했던 군산(軍産)복합체.국유산업의 부활과 부흥을 주장하고 있는 이들과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신흥세력 중산층의 자유경제 개혁의 요구는 상충될 수 밖에 없다.그 때문인지 푸틴은 유세기간 러시아 재건을 위한 명확한 처방책을 내놓지못했다. ‘수수께끼같은 인물’푸틴의 정치성향과 외교정책은 곧 있을 각료 인선을통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98년 KGB의 후신 연방보안국(FSB) 국장에 취임한 이후 벼락 출세 가도를 달려온 정치 신인 푸틴은 자신의 진용을갖춰놓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러시아 대외부채 협상전문가인 미하일크라시야노프 제1부총리 등이 현재까지 드러난 측근들.따라서 과거 옐친대통령의 충성세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KGB 친구들은 그가 갖고 있는 몇안되는 재원들이다. 푸틴의 방향에 대한 기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푸틴호’의 항해 기상도는 양호하다.96년 옐친이 1차 투표에서 35.28%를 얻는데 그치고 결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달리 그는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출발한다.게다가 지난 해 12월19일 총선에서 푸틴의 ‘통합당’은 공산당에 이은제2당으로 선전, 자유주의 세력들과 연립할 경우 의회내에서도 순조롭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깨끗한 정부,부패척결을 내세우고 등장한 푸틴이 크렘린내 가신그룹을 포함한 정재계 기득권 세력의 지원으로 권좌에 오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러시아를 재건시킬지,아니면 러시아 10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독재체제로 이끌어 갈 지 주목된다. 김수정기자 crystal@. *푸틴 당선 각국 반응. [워싱턴·베이징·런던 AFP AP DPA 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직무대행의 대통령 당선에 대해 27일 중국은 적극 환영했으나 미국 등 서방은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향후 그의 행동이 중요하다며 유보적 반응을 보였다. ◆미국 미국행정부는 푸틴이 대통령으로서 러시아의 민주적 변화를 얼마나정력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지금까지 푸틴의발언에 대해서는 일단 옳은 방향을 잡고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26일 저녁 CNN과의 회견에서 “러시아인들이 민주적이고합헌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선거를 치르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총리는 27일 저녁 푸틴 대통령 당선자와전화 회담을 갖고 조속한 정상회담을 촉구했다.오부치총리는 회담에서 축하의 뜻을 전달하고 “주요국(G8)정상회담에 앞서 될수 있으면 빠른 시기에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푸틴대행은 “진심으로 일본과의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완전한 정상화가 최종 목적”이라고 말해 평화조약의 체결을 중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비쳤다.푸친대행은 일·러 정상회담과 방일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일본 관방장관 및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은 26일 “푸틴 당선자가 옐친의 노선을 계승할 것이라는 점에서 푸틴의당선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중국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27일 푸틴과 러시아 국민들에게 보낸 성명에서 푸틴의 대통령 당선을 개인적으로나 중국 인민을 대표해서나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장 주석은 이 성명에서 “푸틴 당선자가 중·러 관계 발전을 위한 긍정적 노력을 기울여왔음을높게 평가하면서 개인적으로나 업무상으로나 우호적 관계를 맺을 용의가 있으며 양국간 전략적협력관계의 확대 및 심화를 계속 함께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 언론들은 27일 푸틴의 당선을 조심스레 환영하면서 푸틴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심판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서방 정치인들은 이 강력한 지도자를 열렬히 환영하고 있으나 푸틴이 대통령으로서의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보기 전까지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 특별기고/ YS·李총재의 ‘下野’ 독설

    김영삼씨는 대통령 재임시절 군사정권과 쿠데타의 역사를 종식시킨 역사적정치인이면서 동시에 격변기에 국민경제를 도탄에 빠뜨림으로써 나라를 망친무능 정치인이다. 그런데 퇴임후 김영삼씨는 자신의 긍정적 치적(治績)조차도 다 까먹는 독설과 망발의 언행을 보여왔다. YS가 DJ에 대해 유달리 개인적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아는 사실이지만,대통령 퇴임후 그가 DJ에 대해 쏟아낸 독설들은 일반국민의상식과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엊그제 이회창 총재의 대통령 하야 운운에 대해 맞장구를 치며 김대중 대통령을 ‘독재자’로 폄하,하야를 거론한 것은 이런 독설의 정점이다.물론 야당총재가 주권자인 국민의 뜻으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통령직에 취임해 있는 현직 대통령에게 하야 운운한 것은 국헌을 문란케 하는 망언이다. 하야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신종 관권선거’니 대통령과 정부의‘선거개입’이니 하는 야당의 비난도 잘 뜯어보면 과거에 그들이 수십년 동안 대규모로 저지른 불법적 관권선거 행각들을 현 정부에 뒤집어씌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현재의 정부·여당도 과거 자기들처럼 그런 짓을 할거라고 무리하게 역추정(逆推定)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강한 대여(對與) 투쟁을 연일 촉구하는 YS의 정치감각과 심리는국민의 의식과 정반대로 뒤집히고 꼬여 있는 것 같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대통령과 정부가 유약할 정도로 너무 민주적이라고 걱정하는 마당에 YS는 틈만나면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방해 왔다. 또 국민의 70% 이상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만족하고 대통령의 계속적인 건투를 비는 마당에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것도 민심과 동떨어진 것이다.YS는 자신이 망친 나라경제를 살려낸 DJ에 대해 강한 질투심을 표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김 청산을 주장하는 이회창 총재는 YS의 지원을 받는 자기모순적인 행동을보여 왔다. 이회창 총재는 국민 앞에 책임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현직 대통령의 청산에 앞서 먼저 전직 대통령 YS부터 청산해야 할 것이다.나라 망친 전직 대통령과의 관계도 청산하지 못하는 야당총재가,경제를 살려낸 치적으로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하야를 운운하는 것은 정말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3김 청산을 주장하는 이회창씨와 YS가 현직 대통령을 임기 전에 퇴진시키기위해 맺고 있는 이른바 ‘삼·창동맹’은 국민이 볼 때 역겨운 것이다. 특정지역의 반(反)호남·반(反)DJ 정서를 자극하여 선거를 이기겠다는 얄팍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삼·창동맹’과 하야망언을 국민은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간의 과격한 대여투쟁과 정치왜곡으로 이회창씨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기피정치인 제1호’가 되어 있다.하야망언과 ‘삼·창동맹’은 일시적으로 특정지역의 배타적 지역감정을 선동하여 선거에서 약간의 덕을 볼지는 몰라도 이회창 총재에 대한 국민의 기피심리를 더욱 확산시키는 부작용이훨씬 더 큰 점에서 이총재 개인에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이총재는 이런 정치행각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YS도 자신을 위해 자중해야 한다.어떤 민심조사에서든 YS는 국민적 분노의‘표적 1호’로 나타난다.자신의 신변안전을 위해서도 YS는 DJ비방과 정치간여를 그만두어야 한다.필자는 민심조사 중에 주민들이 격렬한 욕설과 함께 YS를 ‘광인’으로 규정하는 소리를 들었다.YS의 하야망언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YS를 총선에 이용하고자 부지런히 상도동을 드나드는 정치인들도 이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黃 台 淵 동국대교수·정치학
  • 4·13총선 D-20/ 여야 총선 앞두고‘진흙탕 싸움”

    민주당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 이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23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하야(下野)’를 거론하고 나서자 ‘국가 위기 선동행위’라며 발끈했다. 청와대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이며 가치없는 얘기는 일축하는 것이 좋다”고 공식 대응은 삼갔다.정치 논쟁에 대해청와대가 일일이 맞대응하기보다는 당에 일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전대통령이 집권했던 15대 총선때만 해도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몇십억원씩 지원했었다”면서 “그런 잠재의식속에서관권선거 운운하는 것 같은데 청와대는 이번 선거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먼저 한나라당 이총재와 김전대통령(YS)을 ‘나라를 망친 사람’이라며 김대통령 하야 거론의 부당성을 지적했다.이어 무책임한 정치선동은정치불안,나아가 국가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져 국민들이 불행해진다는 점을집중 부각시켰다. 민주당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국가위기를 선동하는 얘기이자 헌정을 파괴하는 발상”,“YS와 이회창씨의 대통령 흔들기를 위한 헌정파괴 및 삼창(三昌)동맹”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정대변인은 “이번 선거는 나라를 망친 ‘YS당’이 이회창을 내세워 두번째 나라를 망치려는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주장했다.이어 “마치 멀쩡한 집에 불을 지른 방화범들이 불을 끈 소방관에게 이제 불은 그만 끄고 물러가라고 하는 꼴”이라며 ‘대통령 하야론’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김한길 총선기획단장은 “이회창 총재는 YS의 지침에 따라 전위대 노릇을하고 있다”면서 “득표의 득실을 떠나 두 분의 이런 행태는 국민들로부터냉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거들었다.그는 “한나라당이 제1당이 될 경우 곧바로 대통령 하야 주장이 나와 우리 경제가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했다. YS는 개인의 명예회복을 위해,이총재는 정권쟁취를 위해 나라의 불행은 생각지도 않는다면서 ‘YS-한나라당’연계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김영삼(金泳三·YS)전대통령이 23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하야(下野)’를 주장하고 나섰다.전날 민주당이 김 전대통령을 겨냥,“과연 국내에 살자격이 있는가”라고 공격한 데 대한 반격이다.하지만 총선정국의 와중에서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본격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겠다는 예고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다만 총선 전부터 정치적 행보를 본격화할지는 불투명하다. 김 전대통령은 이날 “재임 2년 동안 독재와 거짓말로 국민을 괴롭혀 온 김대중씨가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있는데 이제는 하야해야 한다”고 말했다고조찬을 함께 한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이 전했다.김대통령의 하야 문제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전날 언급한 것이어서 ‘사전조율’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한나라당은 사전조율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YS가 총선과 다음 대선을 겨냥,정치적 영향력을 늘리려는 생각에서 한 발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전대통령은 민주당이 아들의 병역 의혹까지 거론하며 직격탄을 날리자몹시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김대통령을 로마시대의 폭군 ‘네로’에비유하기까지 했다. 박의원은 “김 전대통령이 하야라는 말을 할 때에는 앞으로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본격적인 정치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계획’이 총선 전에가시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그러나 박의원은 “특정 정당과 연계할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한나라당이나 민국당과의 연대 가능성은 부인했다.김전대통령은 한식인 다음달 5일쯤 선영이 있는 거제도를 방문하면서 정치 행보를 재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자민련은 “정부기구를 선거운동에 동원하는 등 잦은 무리수를 두는민주당과 김대통령도 문제지만 전직대통령임에도 고장난 브레이크처럼 정도(正道)가 아닌 길을 마구 달리는 것도 묵과할 수 없다”고 양비론을 폈다. 민국당 김철대변인은 “지금과 같이 관권선거가 계속된다면 이회창 총재의 말대로 될 수 있다”며 관권선거 의혹제기에 가세했으나 “그런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이회창씨가 문책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석기자 pjs@
  • [천수이볜의 타이완](상)향후 진로와 과제

    [타이베이 김규환특파원] 18일 실시된 타이완(臺灣) 총통선거에서 야당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49)후보 당선은 51년 동안의 국민당 통치를 종식시키고 정권교체를 통해 새 시대를 연 역사적인 쾌거다.21세기를 맞아 타이완인들의 독립 의지,민주정치 열망 등 ‘바꿔 열풍’이 국민당의 장기독재·부패정치를 청산하고 민주정치의 새 판을 짠 것이다.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패해 중국대륙에서 타이완이라는 작은 섬으로 쫓겨온 국민당은 51년 동안 일당 독재정치속에서 타이완을 ‘아시아의 4룡(龍)’으로 부상시키는 경제적 성공을 일궈냈다.그러나 국민당이 민주정치에 재갈을 물리고 개혁을 외면한 끝에 집권세력내에서 부정부패와 ‘헤이진(黑金·검은 돈) 정치’,성(性)스캔들 등 각종 스캔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으며,반사적으로 개혁과 독립의 목소리가 타이완인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타이완에서 개혁과 독립의 목소리가 커지면 중국은 “타이완이 독립하려는움직임을 보이면 무력으로 응징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고 이에 불안을 느낀 타이완인들은 ‘안정’을 내세운 국민당에 몰표를 던짐으로써 스스로 개혁의 날개를 번번이 접어야 했다.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국민당의 장기집권과 각종 부패스캔들에 염증을 느낀 타이완인들은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에 지지를 보냄으로써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마련했다.97년 12월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진당은 23개현중 13개 의석을 휩쓴 반면 국민당은 8개 의석을 확보하는데 그쳐 국민당의 민심이반을 절실하게 예고해 줬다. 이번 선거에서 천의 승리요인은 장기집권의 국민당 부패에다 천의 민주화의지,청렴성 및 개혁성향 등이 젊은층과 서민층을 파고든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18일 천이 당선후 처음으로 행한 대중연설에 몰려든 30만명 이상의 타이완인들이 ‘까이거(改革)’를 소리 높여 연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안정희구 세력들의 분열도 천의 승리에 일조(一助)했다.집권 국민당의 롄잔(連戰)후보와 국민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쑹추위(宋楚瑜)후보가 ‘안정’을 모토로 내걸어 안정세력이 롄과 쑹으로 나뉘어지며 적전분열(敵前分列)의 모습을 보여줬다.총통선거를 사흘 앞둔 15일 중국 주룽지(朱鎔基)총리의 위협발언도 오히려 타이완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득표에 도움을 줬다.주총리의 위협발언 이후 탕베이(唐飛)타이완 국방부장(장관)이 즉각 “싸움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두려워하지도 않는다(不求戰 不懼戰)”고 단호한 의지를 밝혀 타이완인들의 동요를 막아 준 것도 ‘호재’였다. 그러나 천의 타이완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타이완 정치대 우둥야(吳東野)교수는 “천당선자는 양안관계의 긴장완화·정치개혁 등 만만찮은 과제를 안고 있다”며 천의 당선을 노골적으로 저지하려던 중국의 강경노선을 누그러뜨려 양안관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천정부 성패의 가장 큰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천의 득표율이 40%에 미치지 못해 안정을 우선시하는 하는 듯한 나머지 60% 이상의 타이완인들을 천의 개혁노선에 어떻게 동참시킬지,선거전에서 드러난 ‘헤이진’을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도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경제적숙제도 있다.중국의 무력위협으로 연일 곤두박질하던 주식시장의 주가가 증시안정기금의 유입으로 가까스로 진정된 점을 감안하면 천이 주식투자자들에게 ‘안정속 개혁’의 확신을 어떻게 심어주느냐도 큰 문제다. khkim@. *타이완 정국 우리정부 시각. 타이완(臺灣)의 정권교체에 대해 정부는 매우 절제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타이완의 양자관계를 넘어 한·중과 중·미,남·북 관계 등 동북아시아 전체의 세력 구도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는 19일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한국과 타이완간의 실질적 관계 발전 기대 ▲중국과 타이완 양안관계의 평화적 해결 기대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라는 기본입장을 담은 논평을 발표했다. 정부 당국자는 “타이완 선거는 ‘중국 내부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에구체적인 언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주(駐)타이완 한국대표부의 윤해중(尹海重)대표를 통해 18일 타이완의 제10대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후보가 승리해 50년 만의첫 정권교체를 이룬 것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부는 타이완 독립을 주창해온 천후보의 당선으로 중국과 대만 관계가 악화되고 미국의 개입이 확산돼 동북아 전체에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각국언론의 분석에는 동감하지 않는다.정부 당국자는 “중국 정부나 타이완 당국이나 서로 조심할 것”이라면서 “어느쪽도 파국은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박태준(朴泰俊)국무총리도 지난 17일 한국에 주재중인 중국언론사 특파원들과 회견한 자리에서 중국측의 무력사용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중국과 타이완측이 대화를 통해 서로 유익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답변했다. 천후보의 당선으로 오히려 한국과 타이완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있다. 한국과 단교한 국민당 정권이 바뀌었고,천당선자가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천당선자는 한국의 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받은 바 있다. 경제계에서는 반도체 부품 수출입 등 양측간 경제통상 관계가한층 두터워질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는 5월20일 열리는 천후보의 총통 취임식에 특사를 보내지 않을 방침이다.그 대신 한·타이완 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손세일(孫世一)의원등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도운기자 dawn@
  • [타이완 51년만의 정권교체]”모든 당 참여 초당적 연정구성”

    *천수이볜 총통당선자 인터뷰.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 당선자는 18일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하나의 국가 속에 다른 체체를 유지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방식에 의한 중국의 통일방안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빠른 시일 안에 모든 당이 참여하는 초당적 연합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나라를 확고하게 지키는것은 우리의 단순한 과제가 아닌 의무”라며 “이같은 결심은 결코 흔들리지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 총통 당선자는 그러나 타이완이 독립을 추진할 경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중국측 위협을 의식,“타이완해협의 안정과 평화는 양안 국민들의 공통된 소망”이라며 중국과의 대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양안문제의 우호적 해결과 상호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나 주룽지(朱鎔基) 총리,왕다오한(王道涵) 해협양안관계협회장등 중국측 고위대표의 타이완 방문을 환영하며 자신도 아무 전제조건 없이중국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타임지와의 단독회견에서 “5월20일 취임 전에라도 당과 출신 지역을 초월한 초당적인 연합내각을 가능한 한 빨리 구성해 양안문제 등 현안을해결해나갈 계획”이라며 국민당 등과의 연합 의사를 밝혔다. 천 총통 당선자는 “미국과 일본,가능하다면 싱가포르 등을 방문해 안보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천 총통 당선자는 “이번 선거는 51년간의국민당 일당지배에 종지부를 찍고 타이완의 새로운 미래를 선택한 국민들의역사적 결정이었다”며 “용감한 타이완 국민들이 사랑과 희망으로 두려움과악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선거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제는 개혁을 신속히 추진하고 1년여 동안 치열하게 벌어진 선거전 과정에서 빚어진 국론분열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리덩후이(李登煇) 총통을 만나 국내 및 국제적인 현안들에 대해 조언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리 총통은 타이완의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타이베이(臺北) 김규환특파원·김균미기자. *천수이볜은 누구.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며 타이완에 새 시대를 연 천수이볜(陳水扁·49)은민주화를 향한 지치지 않는 결의와 뛰어난 머리를 바탕으로 한 효율적 행정처리로 국민당 일당독재를 끝낼 인물로 일찍부터 꼽혔다.여기에 그의 부인위수전(禹淑珍·46) 여사가 정치적 테러로 하반신마비가 돼 국민들 사이에정치적 신념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른 비극적 인물로 각인됐다. 51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탕수수농장 일용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초등학교과 국립타이완대를 수석졸업하는 등 명석한 두뇌로 빈곤을 벗어나대학 4학년때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의 정치 입문은 79년 민주화시위를 주동한 반체제잡지 ‘포모사’ 발행인의 변호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됐다. 81년 타이베이 시의회 의원에 뽑혀 야심만만한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탈바꿈했으나 85년 펑라이다오(蓬萊島)라는 반체제잡지 제작에 참여한 혐의로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출소 후 활동을 재개,89년과 92년 입법의원 선거에 연속 당선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94년12월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돼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1세기의 젊은 지도자 100명’에 선정됐다. 타이베이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타이베이의 윤락산업에 철퇴를 가하는가하면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범죄율을 크게 낮추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그의 타협할줄 모르는 강경한 자세는 동지들로 하여금 그에게등을 돌리게 만드는 한편 많은 적을 만들어 98년 재선에 실패하는 또한번의좌절을 맛봤다. 지난해 홍콩의 ‘아시아위크’가 선정한 ‘차세대의 아시아 정치인 20인’에 오르기도 한 그는 98년의 실패를 자신의 외곬수적인 단점을 고치는 교훈으로 삼아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는 타이완 독립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이 중국과의 전쟁을 부르는 말썽꾼이 아니라 평화주의자임을 내세우는 타협안을 들고나와 마침내 첫 정권교체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냈다. 76년 부유한 의사의 딸이었던 위 여사와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뤼슈롄 부총통 당선자. 타이완의 첫 여성 부총통뤼슈롄(呂秀蓮·56)은 타이완 민주운동과 여권운동을 최일선에서 이끌어온 강성(强性) 여성투사. 천수이볜(陳水扁)의 국립타이완대 선배로 대학을 수석졸업한 뒤 미 하버드대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귀국 후 타이완의 야당 결성 운동에 참여,과격 민중노선을 대표하는 잡지인 메이리다오(美麗島)의 발간에 참여하면서 타이완 민주화 및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79년12월 ‘메이리다오 사건’에 연루돼 계엄통치 시절이던 이듬해 1월 군법재판소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복역하다가 85년 병 보석으로 석방됐다.독신인 그는 석방 후에도 85년 민진당 창당에 관여하고 메이리다오지 부사장직을 역임하면서 민주화운동에 적극참여했으며 페미니즘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를 이끌어왔다. 98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타오웬 현장에 당선됐으며 총통부 국정 고문직도 맡고 있다.영어와 타이완 현지어에 능통하며 부패 일소와 외교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타이완의 유엔 재가입 및 중국의 타이완 침공시 독립 선포를 주장하는 한편“타이완은 부패 공직자들의 천국이 되서는 아니다”는 일갈로 국민당의 오랜 부패에 싫증을 느낀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유세진기자. *51년 통치 끝난 국민당. 19일 오후 타이베이시의 국민당 중앙당사 앞에는 이틀째 총통선거 패배에격분한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당간부들의 차량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등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국민당의 롄잔(連戰) 후보가 참패하고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후보가 총통에 당선, 1949년 중국대륙에서타이완(臺灣)으로 밀려난 이후 처음으로 야당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51년만에 야당으로 밀려난 국민당은 중국 현대사의 영욕(榮辱)을 대변하고있다.49년 중국대륙의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蔣介石)가 휘하 군대와국민당 정부관료,200여만명의 피란민들을 이끌고 타이완섬으로 옮겨온 이후타이완은 그와 그의 후계자가 통치해 왔다. 1912년 쑨원(孫文)에 의해 중국본토에서 창당된 국민당은 삼민(민족·민주·민생)주의를 바탕으로 청나라 제정(帝政)을 무너뜨리기 위한 혁명조직으로출발했다. 25년 쑨이 사망하고통치권을 물려받은 장은 각 지역을 분할 통치하던 군벌에 대한 북벌(北伐)을 개시했다.28년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했으나,30년대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과 대적했고,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치열한 국공내전을 벌였다. 49년 12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섬으로 넘어와 계엄령을 선포하고 행정·입법·사법부 3권을 장악, ‘일당 독재’정치를 폈다.철저한 반공주의를 내걸고 54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에 서명,미국으로부터 군사·경제원조를 받아 경제발전에 주력해 고도성장을 이뤘다.경제는 성장했지만 타이완인들의 기본권과 언론자유는 보장받지 못하고 크게 제한돼 왔다. 급기야 71년 10월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중국에뺏기고 유엔에서 축출되는 외교적 수모를 맞본데 이어,세계 각국이 중국과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국제사회의 ‘고아’신세가 됐다. 75년 장 총통이 사망하자 아들인 장징궈(蔣經國)가 총통에 올랐다가 88년 1월 숨지자,내성인(內省人) 출신의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에 취임했다.리총통은 복수정당 허용 등 민주화 작업을 추진했으며,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비껴나는 업적을 쌓았다.리 총통은 타이완성 주석직의 롄을 행정원장(총리)에 발탁하고 99년 3월 당내 최대 라이벌이던 쑹을 축출,국민당 총통후보로 그를 선출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의 참패로 ‘양지에서만 자라온’ 국민당은 피할 수없는 분열 위기를 맞게 됐다.중국시보(中國時報)·연합보(聯合報) 등 현지언론들은 “쑹 후보가 이날 신당 창당을 선언함으로써 국민당내 쑹 지지자의신당 이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천 당선자도 안정의석 확보를 위해 국민당·건국당 등과의 연정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이베이(臺北) 김규환특파원 hay@. *타이완 주요 정치사건일지. □1945년 일본의 50년 식민통치 종식. □47년 타이완인 봉기를 국민당 군대가 무력진압,수천명 희생. □49년 12월 장제스(蔣介石) 총통 국민당 국공내전서 패하자 망명정부 수립. □55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 체결. □71년 유엔이 유엔대표권을 박탈하고 중국을 인정. □75년 장제스 총통 사망. □79년 미국,중국과 외교관계수립.미 의회는 타이완에 방위용 무기공급 약속. □88년 장징궈(蔣經國) 총통 사망으로 타이완 출신 리덩후이 총통 승계. □93년 중국과 싱가포르서 첫 대화.유엔 가입 시도. □94년 총통 직선제 도입. □95년 리 총통 미국 방문.중국이 보복으로 수차례 군사훈련 실시,양안 긴장 고조. □96년 3월 리 총통의 재선을 막기 위해 중국이 타이완을 겨냥해 한차례 미사일 발사,두차례 모의 전쟁연습.미국은 인디펜던스호와 니미츠호 등 항모 2척 타이완 해역에 급파. □2000년 3월18일 제10대 총통선거.민진당 천수이볜 후보 당선. □2000년 5월20일 천수이볜 당선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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