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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통화내역 조사 남발 우려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보안조사 요청으로 국정원이 외교부와 NSC간 갈등설을 보도한 국민일보 기자의 통화기록을 조사한 사실은 경악스러운 일이다.이는 언론·통신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고 프라이버시의 중대한 침해이며,권력남용이다. 통신보호법 13조 2항은 ‘국가안전보장 위해(危害) 방지를 위해 정보수집이 필요한 경우’로 조사범위를 한정하고 있다.국정원이 조사후 ‘비밀문건 유출이나 외교기밀의 누설없이 개괄적 사항만 제보된 것으로,보안사고 조사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데서 보듯이 NSC의 요청은 당초부터 무리한 요청이었다.불리한 기사에 대한 감정적 반응,지켜야 할 최소한의 국가 안보조차 제대로 판단 못하는 무능함은 물론 안보를 빙자해 국민 자유를 쉽게 침해하던 과거 독재정권의 발상과 행태가 참여정부하에서 답습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통화조사 의혹이 제기됐을 때 청와대는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났다.거짓은 만악(萬惡)의 출발점이다.29일 ‘국정원이 조회 결과를 청와대에 전달하지 않았으며 NSC에 조사대상이 아니라는 결과만 통보했다.’는 발표도 쉬 믿기 어렵다.청와대가 기자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난 두 사람을 집중 조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검찰이 기자의 통화내역을 수시로 조사해 온 사실이 드러났었다.언론인이 이럴진대 일반 국민의 자유는 더 쉽게 침해될 우려가 높을 것이다.유사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선 자의적으로 운용되기 쉽거나 통신조사를 쉽게 허용하는 법규정을 개정해야 한다.아울러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리비아, 무기대신 경제 선택”FT, WMD포기 분석기사 게재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영국의 권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27일자에 리비아가 영국,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WMD 개발 계획을 포기하고,국제사회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 분석기사를 게재했다. 신문에 따르면 리비아 태도 변화의 첫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것.리비아의 슈크리 가넴 총리는 “우리 같은 소국이 미국 같은 강대국에 맞서며 무기를 개발하려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더라.”고 말했다.비슷한 처지의 북한이 기아에 허덕이는 것도 목도했다. 둘째는 WMD를 갖고 있어도 실제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지금까지 핵 무기를 사용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이스라엘도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용 가능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셋째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인한 국가발전의 후퇴다.특히 최근 주변국인 이집트와 튀니지에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리비아 지도부의 생각을 바꾸도록 했다는 것이다. 리비아가 안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국제사회로의 재진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때 접근한 것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다.블레어 총리는 2002년 9월 리비아 지도자인 무아마르 카다피에게 친서를 보낸다.블레어 총리는 친서에서 ▲짐바브웨의 독재자 무가비 지원 ▲WMD 개발 등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카다피가 무가비 지원을 중단하자 블레어는 WMD를 포기하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선하겠다고 ‘당근’을 제시했다.이후 리비아 정보기관과 영국의 비밀정보기관 MI6,미국의 CIA가 런던과 로마 등지를 오가며 협상을 벌였다. 그렇다면 과연 부시 행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카다피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까?이 신문은 이라크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미 리비아가 국제사회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마쳤다고 주장했다. 이도운기자 dawn@
  • “실미도 캐묻자 의사당 발칵 보안사 끌려가 혹독한 고문”71년 국회추궁 강근호군산시장

    “군사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 군과 관련된 일은 성역으로 이에 대한 발언은 절대 금기사항이었지요.대정부 질문을 통해 실미도 사건의 진상을 추궁하자 국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개봉 19일 만에 관객 500만명을 넘어서는 영화 ‘실미도’의 돌풍을 지켜보는 강근호(사진·70) 전북 군산시장의 감회는 남다르다.실미도 사건이 발생했던 1971년 8월 23일 제8대 의원이었던 그는 국회에서 실미도 사건을 처음으로 거론했기 때문이다.당시 그는 37세의 나이로 군산·옥구지역에서 야당인 신민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공화당 고병만 후보를 600여표차로 누르고 국회에 진출했다. 패기만만한 초선의원이었던 강 시장은 그해 9월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8·23 난동 사건’이라 불리던 실미도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이 ‘특수범인가,특수군인가’ 따져물었다. 강 시장이 실미도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들의 실체를 공식 거론하자 의사당은 소란의 도가니가 됐다.여당 의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노골적으로 발언을 방해해 10여 차례 대정부 질문이 중단되기도 했다.다음날 답변에 나선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는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이 사건의 주동자들이 군 특수부대 요원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 여파로 정래혁 국방장관이 사임하고 오치성 내무장관의 불신임안이 처리되는 ‘10·2 국회 파동’을 불러왔지만 강 시장도 유신이 선포된 이듬해 보안사령부 안전가옥으로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다 실신하기도 했다.그 때의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 지금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실미도 사건은 남북분단과 냉전논리가 빚은 역사적 비극입니다.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될 것입니다.” 강시장은 “영화표를 구해놓았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아직 영화관을 찾지 못했다.”면서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에 피가 끓어오른다.”고 회고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 [시론] 군림하는 사법서 봉사하는 사법으로

    사법개혁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서 스스로에게 항상 이런 질문을 한다.국민에게 법률이란 무슨 의미며,사법이란 어떤 존재일까.사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안고 있고,가장 중요한 개혁의 요체는 무엇일까. 각자 자신이 처해있는 위치와 입장에 따라 다른 답변을 할 수 있다.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국가가 제공하는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일까 고민해 본다. 그동안 사법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위에서 군림했다.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어느새 국민들은 법률을 두려워하고,법률을 이용하는 데 불편해한다.또 법률을 통해 자신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법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지 못한 역사는 너무나 뿌리깊다.일제의 식민지 지배 때부터 법률은 통치자를 위한 도구였다.해방 이후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면서도 마찬가지였다.그러면서 자연스레 법률은 무섭고도 불편한 것이 돼버렸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민주화의 물결은우리 사법을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사법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법으로 바꿀 것을 요청했다.이러한 요구가 정부 단위에서 구체화된 것이 93년의 대법원 사법제도발전위원회,95년의 세계화추진위원회의 사법개혁논의,99년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활동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에도 국민은 사법을 여전히 두렵고 불편한 존재로 받아들였다.기존 문제점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탓이었다. 오히려 이같은 논의는 법조인 수만 증가시켰을 뿐 구조적인 문제점을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그래서 이번 사법개혁위원회는 국민들에게 불편한 사법구조를 개혁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민에게 군림하는 사법은 권력자가 사법을 장악하고,법률가들이 이에 협조하는 단계에서 출발했다.이후에는 법률가들이 스스로 폐쇄적인 단위를 이뤄 권력자의 요구 없이도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으로 발전해왔다. 이것은 군부독재시절에는 청와대나 중앙정보부의 막강한 힘으로,소위 민주화된 시대에는 검찰이나 법원의 관료화로 나타나게 됐다. 법률가 스스로 폐쇄적인 단위 구성을 형성하는 것은 이제 너무나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일상적으로 국민들을 만나면서도 국민의 요구보다는 자신이 속한 조직 이익을 우선시하기에 이르렀다.지난 여름에 발생한 ‘대법관 제청파문’이 바로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사법개혁의 핵심은 국민들로부터 멀어진,관료화된 사법을 국민을 위한 국민의 사법으로 만드는 것이다.이를 위해 대법원 구성을 국민의 요청에 맞게 다양하게 바꿔야 한다.법조일원화를 통해 풍부한 사회·공익활동을 경험한 검증된 변호사를 법관으로 임명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재판 과정에 참여,법치주의를 몸소 실천하는 배심제·참심제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특히 형사재판에서 피의자,피고인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그리고 제대로 된 법률가를 양성하는 제도를 도입,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은 획일적이고 관료화된 사법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구성하고 견제·감시할 수 있는 투명하고도 공정한 국민의 사법부를 만드는것이다. 김인회 변호사 사법개혁위 전문위원
  • 감사원사무총장 이례적 閣議배석/일부선 “중립성 훼손” 문제제기

    정치적 중립성과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갖는 감사원의 사무총장이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과거 군사독재시절에는 감사원장이 직접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적은 있었으나 YS,DJ정권 시절에는 독립성을 감안해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실질적 독립론’을 들고 나오며 김종신(金鍾信) 사무총장으로 하여금 이례적으로 국무회의 배석하도록 지시했다.“감사원의 중립성·독립성이 형식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면서 “국무회의에 참석해 행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정책감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전 원장의 생각이다. 전 원장이 주장하는 ‘실질적 독립론’은 ‘정책감사’와도 맥이 닿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감사원측의 국무회의 배석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감사원장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 출신인 이각범(李珏範) 정보통신대 교수는 12일 “만약 검찰총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한다면 검찰의 수사권 독립이 이뤄지겠느냐?”면서 “국무회의 배석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정방지대책위원인 고려대 이필상(李弼商) 교수는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입장을 견지하면서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것은 정책감사에 대한 순수한 의지로 받아들이고 싶다.”면서 “하지만 전 원장은 먼저 대통령이 부르면 수시로 보고하는 데에서 벗어나 정기보고 체제로 전환하는 등 감사원의 독립적 위상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
  • 한나라 “나 떨고 있니?”/구속 김영일 前총장 입 걱정 ‘검찰 돈 출구조사’ 초긴장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한여름,한나라당은 혹독한 겨울.”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는 11일 여야의 정치계절을 이렇게 구분지었다.그러면서 “군사독재 시절에도 야당이 혹독한 겨울을 맞으면 독재정권 역시 이른 봄 한기속에 같이 있었다.”고 개탄했다.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어쩌자고 이런 정치계절을 만들어냈는지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홍 총무의 이날 기자간담회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형평성에 집중됐다.그는 “4대 그룹이 한나라당에 500억원을 줬다고 자백하고,노 캠프엔 단 한푼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결과”라며 꼬집었다.이어 “정부는 성역 없는 수사라고 얘기하지만 노 캠프는 성역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따라서 “어떤 결과도 국민들을 설득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홍총무 수사 형평성 집중 제기 이런 ‘넋두리’는 한나라당의 위기를 상징한다.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사무총장을 맡은 김영일 의원이 구속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특히 검찰이 ‘출구조사’란 이름으로 전 지구당을 뒤질까봐 한나라당은 초긴장하고 있다.총선에서 발목이 묶이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최병렬 대표는 “검찰이 김영일 의원의 신병을 확보할 경우 우리당에 대한 검찰의 출구조사가 본격화돼 총선이 매우 어렵게 된다.”고 우려했다.게다가 김 의원이 입을 열 가능성도 걱정되는 대목이다.이상득 사무총장은 “김 의원이 굳게 입을 다물겠다고 다짐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하지만 어느 누구도 장담못할 일이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인사는 “대선자금의 큰건은 다 터졌다.”고 말했다.더 이상의 큰 ‘악재’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또다시 예상치 못한 악재가 불거질지 모르는 형편이다. 한나라당은 위기 타개책으로 1월 임시국회 소집을 추진키로 했다.강금실 법무부 장관 등을 상대로 편파수사를 집중 추궁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위기타개책으로 1월국회 추진 홍 총무는 “국회 소집을 하더라도 방탄국회를 연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 정권이 감옥에 보내고 싶은 사람들을 웬만큼 처리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그러나 단독국회 소집에는 난색을 표시했다.민주당 유용태 원내대표,자민련 김학원 총무와 상의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도 물고 늘어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박진 대변인은 “썬앤문게이트의 몸통이 노 대통령임이 밝혀졌지만 비리핵심인 노 캠프의 감세청탁 95억원 수수 여부는 어둠속에 가려져 있다.”며 “특검은 노 대통령을 직접 조사해 낱낱이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딘’ 성토장 된 美민주 후보토론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전이 ‘반(反) 부시’가 아닌 ‘반(反) 딘’의 양상으로 변질됐다.4일 아이오와 존스턴에서 치러진 민주당 후보 토론회에서 부시 행정부를 성토하기보다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를 겨냥한 뼈아픈 말들이 쏟아졌다. 딘 후보가 “왜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의 어젠다에 끌려다니냐.”고 질타하자 조지프 리버맨 상원의원을 비롯한 다른 후보들은 잡아먹듯이 달려들었다.리버맨 후보는 후세인이 생포된 뒤 미국이 더 안전하지 않다는 딘 후보의 발언에 “살인광이자 잔인한 독재자가 권좌보다 감옥에 있는 게 어떻게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존 케리 상원의원은 딘 후보가 오사마 빈 라덴의 유죄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것과 관련,“당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딘 후보는 빈 라덴이 9·11테러에 책임이 있지만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유죄를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 정치생명을 건 미주리 출신의 리처드 게파트 하원의원은 노동문제를 거론했다.“하워드 당신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고 중국과의 협정에도 찬성했다.이같은 협정으로 노동자들이 얼마만큼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지 아느냐.”고 질타했다.노조의 후광을 업은 그로서는 딘 후보가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 점을 강조해야 했다. 리버맨 후보도 보호무역의 벽을 쌓는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원의 극단주의를 거절해야 한다고 강조,딘 후보와 부시 대통령을 한통속으로 몰았다.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은 딘 후보가 중산층의 세금부담을 덜어줄려는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 청중이 딘 후보에게 “당신은 미국의 적보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노여움이 더 큰 게 아니냐.”고 묻자 딘 후보는 “노여움이 아닌 희망에 근거해 경선에 나섰다.”고 즉답을 피했다.대신 다른 후보들에게 “최종 승리자를 지지할 것을 다짐하느냐.”고 질문,동의를 얻는 등 선두주자로서의 여유를 보였다. 반면 딘 후보가 부시 대통령을 이길 수 있다고 보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딘 후보만 즉각 손을 들었을 뿐 나머지는 ‘노’라는 표정을 지었다.이날 토론회에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사령관과 인권운동가 알 사프턴 목사는 참석하지 않았다.한편 공화당 전국위원회 에드 길레스피 의장은 “이처럼 비열하고 신랄하며 상호 반감을 가진 민주당 경선은 처음 본다.”고 꼬집었다. mip@
  • 기고/ 공정한 노사규칙 당사자가 합의해야

    속칭 ‘노사관계 로드맵’으로 불리고 있는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 방안’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그 중에는 각자의 입장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지만,잘못된 선입관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 않다.더구나 ‘잘된 것은 내 탓,못된 것은 전부 네 탓’이라는 경도된 자세로 본질을 호도하려 든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아울러 이 시점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당장의 갈등·진통보다는 이를 핑계로 대화 자체를 거부하려는 배타적·부정적 시각이다. 1987년 이른바 ‘민주화 대투쟁’ 이후 최근까지 수차례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사관계법·제도는 국내 노사단체는 물론 국제노동기구(ILO),국제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로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었다.노사문제에 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지식정보화·세계화 등 외부 환경의 급변과 산별체제 진전·고용형태 다양화 등 노동환경 변화에 대한 탄력적 대응에도 법은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국내외 기업가 등 재계의 계속된 법개정 요구가 이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변화하는 제반 환경에 대응하고 보편적 국제노동기준(Global Standards)에도 부합하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규범의 마련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특히 법이 ‘도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고 노사관계 당사자로부터 배척·무시당하는 현실을 시정함으로써 ‘공정한 법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율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고,이를 바탕으로 국가발전을 도모하자는 의견에 대해 노사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우리나라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로 ‘노사관계상의 갈등’을 지적하고 있는 마당에,달면 삼키고,쓰면 뱉는다는 식의 계산법으로 불합리한 법·제도에 안주하려는 의도가 아닌 바에야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이고 공정한 규칙(rule)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당연히 이해관계 당사자 사이의 진지한 논의와 합의를 통해야 한다. 그러나 그 논의의 방향과 단초(端初)를 마련하는 작업은 노사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중립적전문가 집단이 맡아야 할 몫이다.특히 지난 5월 초 구성된 선진화연구위원회의 연구위원 중에는 10명의 노동법학자 외에 5명의 노동경제·노사관계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선진화 방안’은 노사관계에서 자율성과 책임성,고용에서 안정성과 유연성이 조화·균형을 이루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그 안에서 종래 우리 법제가 앓고 있던 고질적인 종양들을 포괄적으로 진단하면서 나름대로의 치료방향과 함께 구체적인 시술방법들도 제안하고 있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노사간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으로 입장이 나뉘어질 수밖에 없겠지만,궁극적인 평가는 국가발전과 공익이라는 관점에서 내려야 할 것이다.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은 고사하고 자연권적 노동기본권조차 무시하는 3류 국가라는 비아냥거림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잘못된 관행도 시정해야겠지만 그런 관행이 나오도록 만든 ‘개발독재의 폐해’와 그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원죄부터 되짚어야 할 것이다. 지난 9월 초 중간보고가,그리고 12월 초 최종안이 제출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아직까지 본격적·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노사관계 당사자 사이의 진지하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진행되고,이를 통해 ‘대승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다만 합의가 쉽지 않은 사안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보다 심도 있는 대화와 타협을 위한 여유가 필요하다고 노사관계 당사자들이 판단한다면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정부에서 법개정안을 마련하는 작업도 이에 따라 상당 기간 연기되어야 마땅하다.그러나 그러한 협의기간의 연장이 무한정하게 주어질 수 없는 것은 우리 경제·사회의 현실이 너무나 절박하다는 것은 논의의 당사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문무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씨줄날줄] 카다피와 김정일

    미국의 전폭기들이 1986년 4월15일 리비아의 트리폴리와 벵가지를 폭격했다.공격 목표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였다.미국은 공격 전에 카다피 거처를 알아내기 위해 스파이 위성과 정보원 등을 이용했다.그러나 사막에 비밀로 만들어진 거처를 자주 옮기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기 어려웠다.미국은 국방부에 있는 ‘초능력 특수부대’를 동원했다. 베일에 가려 있는 초능력 특수부대가 카다피의 거처를 알아냈다고 한다.미국의 전폭기들은 카다피의 비밀 거처들을 폭격했다.카다피의 입양 딸이 죽고 두 아들은 부상했다.그러나 근처 텐트에서 자던 카다피는 무사했다.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카다피가 국제 테러에 연루돼 있다는 이유로 그를 제거하려 했다.미국은 카다피를 악명 높은 독재자로 불렀다.서방 언론들은 그를 ‘악의 화신’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슬람의 눈으로 보면 카다피는 민족주의 지도자라는 평도 있다.카다피가 1967년 영국 유학 때 런던의 최대 카지노에 들렀을 때의 일화가 있다.리비아 석유상 가바즈이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도박하는 것을 보고 카다피는 가바즈이에게 “우리들의 돈을 훔쳐 한다는 짓이 기껏 도박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그 2년후 카다피는 혁명으로 정권을 잡았다.그때 나이 27세였다.혁명정부 각료들의 평균 나이는 더 적은 25세였다.34년 동안 집권하고 있는 카다피는 엄격한 이슬람 금욕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카다피는 미국·영국과의 9개월 비밀협상 후 대량살상무기(WMD)를 완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세계는 카다피의 WMD 포기를 환영하고 있다.카다피가 이끄는 리비아는 이라크·이란·북한과 함께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되고 있다.테러지원국 중 리비아와 이란은 외교적 압력으로,이라크는 무력 공격으로 제압당했다.세계의 관심은 이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쏠리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카다피같이 정권을 보장받으며 WMD를 포기할까,아니면 저항하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같은 비극을 맞을까.다른 선택으로 체제 유지를 위한 핵개발을 서둘지도 모른다.어떤 선택을 하든 미국의 압력은 강화될 것이다.카다피의 굴복은 미국의 패권적 일방주의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이창순 논설위원
  • 후세인 내년 7월 이후 재판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법처리와 관련,세가지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공정하고 공개적인 재판,이라크인이 참여하는 재판,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재판이다. 앞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GC)가 설립된 지 7일밖에 안된 전범 특별재판소에 후세인을 세울 것이라고 밝힌 것과는 미묘한 대조를 보인다.물론 미국은 이라크에서 재판이 열리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그러나 과도통치위원회에 후세인을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재판소의 규정은 통치위원회가 국제 재판관을 포함,5명으로 재판부를 구성할 수 있게 했다.그러나 통치위원회는 미국 주도로 세워졌기 때문에 누가 재판부에 지명되더라도 재판의 공정성 시비가 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통치위원회는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 협정이나 국제조약상의 합법적 기구가 아닌데다 이라크인으로만 재판부를 구성해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견지,미국의 생각과 거리를 두고 있다.이라크 정치지도자들은 현재내년 봄에 재판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16일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 내 ‘인민재판’이 되어서는 곤란하며 걸프전쟁을 일으킨 쿠웨이트 침공과 쿠르드족 학살 등 과거 후세인의 모든 죄상을 법정에서 밝히고 대테러 전쟁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선 국제전범을 다루는 재판을 바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 재판이 언제,어디서,어떻게 열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그러나 ‘이라크에서 정의를 실천할 사법 시스템의 발전과 모든 범죄 행위의 공개’ 등을 거듭 강조,재판이 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뉴욕타임스와 CNN 등은 후세인 재판이 내년 7월 이라크 과도정부가 설립된 뒤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CNN은 미군이 적어도 6개월 동안 이라크에서 후세인을 보호할 것이며 재판은 이라크 과도정부가 수립된 뒤 국제 기준에 맞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국무부는 피에르 리처드 프로스퍼 전범담당 대사가 내년 초 바그다드를 방문,이라크인들과 법정 구성을 위해 논의할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과도정부 이후 재판을 열려는 배경에는 사형 판결을 이끌어 내려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현재 이라크에서의 미 군정은 사형을 금지하고 있다.영국이 사형 판결을 내리는 국제동맹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도정부가 수립되면 사형제도 여부는 이라크의 몫이고 군정을 위한 국제동맹은 법적 효력을 잃게 된다.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이 사형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는 대신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잔혹한 독재자”라고 강조했다. 반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후세인의 사형 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후세인을 재판하는 어떠한 법정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국제형사재판소(ICC)는 사형제도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이 ICC의 참여를 거절한 것은 사형금지뿐 아니라 재판 대상이 2002년 7월1일 이후의 범죄로 한정,과거 후세인의 인권 유린 등은 기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mip@
  • “북한 건설적으로 포용을”동아시아포럼 참석 마하티르 前 말聯총리

    아시아의 ‘쓴소리’ 모하마드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16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미국 등 서구 강대국 주도의 안보 정책과 시장개방 정책에 대해 예의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동아시아포럼(EAF) 창립총회 참석차 방한한 마하티르 총리는 “건설적인 포용정책으로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마하티르 총리는 또 “일률적인 세계화는 공평한 개방이 아니며 빈곤 국가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세계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시아적 가치’의 수호자로 불리고 있는데. -‘아시아적 가치’는 2차대전 후 아시아의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97∼98년 이 지역 금융 위기는 ‘아시아적 가치’로 생긴 게 아니라 ‘탐욕’이라는 서구적 가치 때문이다. 서구적 가치는 생산 자체보다 외환 매매를 통한 시세차익을 통해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다.외환조작을 통한 돈벌이다.돈 자체가 목적이다.하지만 ‘아시아적 가치’는 건전한 생산활동과 무역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정직한 시스템이다. 아시아 지도자로서 북한과의 협력방안에 대한 견해를 밝혀 달라. -북한을 우선 건설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이를 통해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접촉 포인트를 설정하고 북한을 이해해야 하고 문제의 근원과 해결책을 포용정책을 통해 찾아가야 한다.말레이시아는 미얀마에 대해서도 그런 정책을 취한다.북한을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의에 초청하고 싶은데,다른 나라 생각은 모르겠다. 선제공격 정책 등 미국을 비롯한 초강대국의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는데. -초강대국이 예방적 조치,즉 선제 공격을 한다면 우리는 독립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우리 같은 약소국은 늘 공포에 떨어야 할 것이다.선제공격 정책은 또 다른 이름의 침공이다.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한 예다. 반(反) 세계화 및 반 신자유주의,반 신제국주의 대변인으로 불리는데 -나는 절대 반 세계화론자가 아니다. 반대하는 것은 강력한 부자 국가들이 이해하고 해석하는 세계화다.각 국가는 모든 면에서 능력의 차이가 있다.일률적인 세계화는 공평한 개방이 아니고,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빈곤국가도 이득을 얻는 세계화라야 한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것으로 안다.민주주의와 개발독재는 상충되지 않는가. -민주주의는 실천도 어렵고 한계도 많다.무정부 상태와 구분이 힘들 때가 있다.영국은 너무 많은 자유가 산업 쇠퇴를 불러왔다.서구 국가를 따라잡아야 한다.민주주의는 국민이 정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경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선거를 통해 22년간 총리로 재임했다.만약 여러분들이 나를 독재자라고 생각한다면,정부내 자리 하나도 맡지 않고 자발적으로 퇴임한 최초의 독재자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는 ‘룩 이스트(look east)정책’을 취했는데. -모델의 부정적인 측면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예컨대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우리와 달리 IMF 방식을 따랐다.그로 인해 향후 한국이 경제발전의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한국의 재벌문제도 부정적인 요소다.반면 시장경제를 채택하되 정치는 개방하지 않는 중국의 경우 경제발전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할수 있다고 본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정치스승 ‘도이’ 여사 뜻이어 사민당을 꼭 일으킬겁니다”/日사민당 신임 당수 후쿠시마 미즈호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 총리관저를 나서는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사민당 당수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자그만 키에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이기에 비장함은 더했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로부터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통보받은 지난 9일 오후였다.그는 곧바로 거리로 나가 자위대 파병에 반대하는 연설을 토해냈다. 이튿날 의원회관에서 만난 후쿠시마 당수는 예의 활기찬 표정을 되찾고 있었다.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미안하다.”면서 입술화장을 잊지 않는다.여성다우면서,기자를 의식않는 일상생활 속의 소박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어제는 일본 역사에 특기할 날이었어요.(파병으로)사람을 죽이거나 살해될 수 있어요.잘못된 정치적 선택입니다.더욱이 파병은 2005년 헌법개정을 향한 디딤돌이에요.일본 사회 전체의 큰 문제입니다.(저지하기 위한)국민운동을 펼겁니다.”변호사 출신이라 그렇겠지만,막힘없고 알기 쉬운 분명한 말로 파병반대의 논리를 설명해준다. ●파병 막기 위해 국민운동 펼칠 것 과거 중의원,참의원 더해 250석에 가까운 거대 정당(옛 사회당)시절이라면 파병을 막을 수 있었을까,지금의 12석(11월 9일의 중의원 선거에서 6석 획득,참의원 6석)은 초라해도 너무나 비참하다.총선 참패 후 도이 다카코 당수가 사임하고,간사장(한국정당의 사무총장격)이었던 그가 바통을 물려받았다. “사민당은 노동조합의 지지,도이 당수의 인기에 너무 의존했어요.노동,시민,지역운동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어야 했으나 그런 일상활동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선거에서 평화헌법,이라크 파병반대를 호소했지만 불황속에서 유권자들은 연금이나 고용문제가 더 관심이 있었던 셈이에요.덧붙이자면 자민,민주 양당제로의 재편,사민당 때리기도 작용했고요.” 뼈아픈 분석이다. 중의원 400석중 공산 9석,사민 6석의 결과를 두고 정치평론가들은 “겉치례만 하고 실제로 노력을 해오지 않은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퇴조는 당연하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해오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사민당이 미래가 있고,기대할 수 있고,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미군)기지반대 운동,탈 원자력운동,환경운동을 열심히 하는 당원이 있고,그런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국회에 비록 12석밖에 없지만,지방의원이 1300명,당원이 3만명,총선 비례대표 투표해 준 300만명의 유권자를 위해 사민당의 존재는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사민당 추락 北납치문제 빼놓을 수 없어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인 2005년 개헌안 제출을 공약했다.제1야당 민주당은 헌법을 새로 만들자는 ‘창헌(創憲)을 내걸고 있다.개헌에 반대하는 세력이라고 해봐야 사민,공산당에 불과하다.원내 소수파인 그들의 힘만으로 개헌을 막기는 힘들어 보인다. “(군대보유 등을 규정한)헌법9조와 전문은 소중한 것이에요.바꿀 부분이 아닙니다.여론조사를 보더라도 9조 개정에 대해서는 반대가 많아요.”평생 ‘호헌(護憲)’을 지켜온 도이 전 당수.그로부터 당권을 물려받은 후쿠시마 당수가 정치 스승의 신념을 지켜낼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얘기를 돌려본다.사민당의 인기급락에 불을 지핀 북한문제.과거 친북 노선을 견지하며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를 부인해 온 사민당이 작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납치시인으로 역설적으로 가장 피해를 봤다.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통하지 않지만,만약 납치문제가 없었다면 사민당이 이렇게까지 추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웃으면서)희생자가 있었으니까,그런 (납치)문제가 제기된 것은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납치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다른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 관계를 푸는 사민당의 묘안이라면 무엇일까.“납치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국교 정상화교섭 과정에서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선(先)교섭론을 편다.납치해결 없이는 국교정상화 없다는 강경론과는 선을 긋는다. ●교수·변호사등 1인10역의 ‘파워우먼' “장기 비전으로 볼 때 한국,북한,일본 사이에 국교가 없는 것은 부자연스러워요.북한이라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교류가 필요해요.독일도 그랬지만 사람,돈,물건의 유통을 해야 합니다.교류하지 않으면 상대가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고,그래서불안도 더 커지는 거예요.어떻게 하면 북한사회를 민주화하고,연착륙시킬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그건 국교정상화와 병행시켜 나가야 해요.” 북한사회를 바꾼다?사민당 당수로선 의외의 표현이다.진의를 되물었다.“북한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보도되는 범위에서 생각하면 독재정권이 인권침해를 낳는거예요.인권상 이유에서,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적인 것을 묻겠다고 하자,“좋다”고 한다.도쿄대학 법학부 동창생인 남편과는 입학식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외동딸(17)과의 3인가족. 그녀는 일본에서 가장 바쁜 여성 중 한명이다.사민당 당수 외에,각슈인(學習院)여자대학 객원교수,변호사,주부,어머니 등등 1인10역 이상을 해내고 있다.20권 가까이 책을 써냈으며,지금 2권의 책을 집필 중이다. 특히 일본 정부의 전후보상과 관련된 소송의 변호사로서 식민지시대를 경험한 한국의 할아버지,할머니와 많이 만났다.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는 좌우명의 소유자.지난 9일의 어두운 표정.그 하루 뒤의 활기찬 표정이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내년 여름의 참의원 선거에서 “1석이라도 더 늘리고 싶다.”는 후쿠시마 당수는 장기집권 체제에 들어간 고이즈미 총리를 “사람들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따끔하게 꼬집는다. marry04@ ▲47세▲도쿄대학 법학부에 진학할 때까지 고향인 미야자키 현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32살 때 변호사 등록을 한 뒤 남녀평등,환경,외국인차별을 다루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 ▲1998년 정계에 들어가 그해 참의원에 첫 당선 ▲지난 해 비서월급과 관련된 의혹으로 사퇴한 쓰지모토 기요미 전 의원의 뒤를 이어 간사장에 기용된 뒤,1년여만에 당수 자리에 올랐다 ▲취미는 영화감상
  • 후세인 잡혔다/美軍, 고향 티크리트서 생포 체념한듯 아무 저항없이 응해

    |바그다드·워싱턴 외신|사담 후세인(66) 전 이라크 대통령이 이라크전 개전 9개월 만인 13일밤(현지시간) 고향인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은신중 미군 수색부대에 의해 생포됐다. ▶관련기사 2·3·4면 폴 브리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은 14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후세인이 티크리트에서 도피중 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교외의 농가 지하실에서 체포됐다고 공식발표했다.체포 과정에서 교전은 없었으며 후세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고 브리머 행정관은 밝혔다. 브리머 행정관은 바그다드 최고행정부 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 서두에서 “우리는 그를 체포했다(We got him).독재자는 죄수가 됐다.”고 짤막하게 발표,기다리던 기자들과 참석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브리머 행정관은 “후세인이 제거됨으로써 그를 추종하는 게릴라들은 저항을 포기할 것”이며 “이라크는 경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급속히 발전할 것이고,이라크의 미래는 밝다.”고 선언했다. 리카르도 산체스 이라크 주둔 미군 최고사령관은 ‘붉은 새벽’이라고명명된 이번 작전으로 후세인을 체포한 직후 “DNA 테스트를 통해 그가 후세인임을 100% 확인했다.”고 밝혔다. 산체스 사령관은 이와 함께 체포될 당시 머리를 산발하고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후세인의 모습과 신원확인을 위해 그의 치아검사를 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 화면을 공개했다.산체스 사령관은 후세인이 체포될 당시 100달러 지폐로 미화 75만 달러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산체스 사령관은 미군이 은신처를 습격할 당시 후세인은 은신처로 사용중인 건물의 지하실 땅을 2m 깊이로 파고 들어가 숨어 있었으며 “미군이 삽을 이용해 땅을 파고 그를 끄집어냈다.”고 말했다.후세인은 체포될 당시 턱수염을 더부룩하게 길러 위장했으며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으나 일체 저항의사를 보이지 않았다고 그는 밝혔다. 미군은 후세인을 체포한 즉시 턱수염을 깎고 사진을 찍은 뒤 DNA테스트를 통해 그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산체스 사령관은 밝혔다. 후세인 체포 소문이 전해진 뒤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 전역에서 시민들이 거리 곳곳에 몰려 나와 환호하고 춤을 추면서 그의 체포를 자축했다.
  • [씨줄날줄] 장준하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못난 조상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며 일본군을 탈출해 6000리 길을 걸어 임시정부를 찾았던 장준하(1918∼1975)선생의 좌우명이다.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일제는 물론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 세력과의 투쟁에 모든 것을 바친 그에게 오늘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그에게는 ‘못난 후손’이요,미래 세대에겐 ‘못난 조상’이 아닐까 두렵다.유신독재에 결연히 맞서며 양심적 지식인의 전범을 보여준 그가 추락사한 지 28년이 지났건만 오늘의 우리는 그 ‘죽음의 비밀’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의문사 후 조국을 떠났던 그의 맏아들 호권씨가 얼마전 영구 귀국해 ‘긴급조치시대의 재야 대통령’ 장준하를 다시 기억하게 하더니,그의 죽음과 관련해 새로운 자료들이 확보됐다는 보도다.사망 직후 상처부위가 직접 드러나는 사진 10장과,호권씨가 사고 2∼3주 뒤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부근 사고현장을 답사하며 시간·거리·지형 등을 기록한 메모지 3장 등이다.이에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 관계자는 20여년간 ‘전설’처럼 내려오던 사체 사진이 그의 유품박스에서 발견됐다며 진상규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17일 오후 약사봉에 등산갔다가 하산길에 벼랑에서 실족 추락사했다.젊은 시절 중국땅 수천리를 맨발로 누비고도 끄떡없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유족 및 민주인사들은 줄곧 정치적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이후 여러 차례 진상조사가 시도됐고,국민의 정부 들어 대통령 직속의 제1기 의문사진상규명위가 본격 조사에 나섰다.그러나 제1기 의문사위는 지난해 9월 “장 선생의 실족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당시 동행자가 중앙정보부원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관련자들이 부인하고 있고 진술의 신빙성에도 이견이 있어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판정을 내렸다.이제 그의 사인을 규명하는 일은 제2기 의문사위의 몫이다.이에 새로운 자료들이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더불어 역사적 진실을 더이상 덮어둘 수 없다는 관련자들의 양심고백이 뒤따르기를 진정으로 고대한다.그렇지 않고선“보다 새로운 빛이 되어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잠시 숨은” 그의 죽음의 비밀을 밝히는 일은 후손들의 짐으로 남게 된다. 김인철 논설위원
  • 짐바브웨 “英연방 탈퇴”/“인권탄압” 회원자격정지 연장에 반발

    인권탄압국으로 악명높은 짐바브웨가 영국연방의 제재조치에 대항,‘탈퇴’를 전격 선언했다.영국을 포함,구 영제국에서 독립한 총 54개국으로 구성된 영국연방은 7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아부자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짐바브웨에 대한 현 회원자격 정지 조치를 무기한 연장키로 합의했다.의장을 맡은 올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짐바브웨가 인권회복과 민주적 정치개혁의 성과를 보이지 않는 한 회원자격 정지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그동안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으면 영연방을 탈퇴할 것이라고 위협해왔던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결국 영연방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탈퇴를 선언했다.무가베 대통령은 이날 공보부를 통해 배포한 성명에서 “자격정지 연장 결정을 취소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없다.”며 “짐바브웨는 그만둘 것”이라고 밝혔다. 짐바브웨 정부 역시 성명에서 “(탈퇴선언 직후부터)짐바브웨는 영국연방을 탈퇴한 효력을 갖는다.”고 발표했다.앞서 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자메이카 등3국의 대통령이 무가베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영연방에 남을 것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짐바브웨에 대한 영연방의 제재조치가 시작된 때는 지난해 3월부터다.연방 회원국들은 20년 이상 장기 독재하고 있는 무가베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온갖 부정과 폭력을 동원해 재집권하자 1년간 회원국 자격을 박탈키로 결정했었다.이같은 조치는 영연방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로,무가베 정부가 구성국 자격을 정지당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야당과 언론에 대한 탄압을 멈추지 않자 또다시 무기한 연장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실업률 70%,인플레율 400%라는 최악의 경제상황을 겪고 있는 짐바브웨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될 경우,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무가베 대통령이 이에 반발하며 고립을 자처하고 나서자 영연방측은 “실망스러운 소식”이라며 “이같은 결과를 원하지 않았다.”고 당혹해하고 있다.무가베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영연방의 압력과 제재수단을 사실상 제거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가고싶은 고국 땅이건만 ‘자수서’와 바꿀순 없었소”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씨

    ‘이승만 대통령의 장학생’에서 유신 치하의 망명객에 이어 5·6공화국의 ‘국사범’으로 아직도 일본을 떠돌고 있는 ‘통일운동가’. 그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은 정경모(79)씨다.10여년 전 민족주의자 고(故) 김구·여운형·장준하 등이 저승에서 나누는 대화 형식을 빌려 반민족행위자들을 통렬하게 꾸짖은 ‘찢겨진 산하’(거름 펴냄)로 국내에 알려진 그의 삶은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이승만 장학생' 에서 ‘국사범'으로 최근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한 ‘해외 민주인사 한마당’ 행사에 송두율 교수 등과 함께 초청돼 귀국을 준비하다 ‘자수서’를 내라는 정부 제안에 “비굴한 형식을 거치느니 거부하겠다.”며 끝내 귀국을 포기해 화제가 됐다.초청인사 50명 중 입국을 거부한 두 사람이 정씨와 그의 부인이었다.일본 도쿄에서 작은 학숙(學塾)을 세워 제일교포 2세들과 일본인에게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다 건강이 안 좋아져 지금은 요코하마(橫濱)시 히요시(日吉)에 사는 그를 히요시역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준법서약서’ 안 써도 된다고 해서 관계자를 만났더니 자수서를 쓰라고 해.차라리 여기서 그대로 살다가 꺼졌으면 꺼졌지 그런 수모는 받아들일 수 없었어.내가 자수서를 쓰면 문익환 목사를 부인하고 나를 파괴하는 거야.” 정씨의 귀국을 막고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다.89년 문익환 목사와 방북해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났고,그전에도 문 목사의 방북을 준비하러 평양에 갔었다.95년엔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와 함께 방북했다. “방북 당시 문 목사와 허담씨가 서명한 ‘4·2 공동성명’은 남북화해의 초석이었어.거기에 놀란 노태우 정권이 당황해 ‘남북기본합의서’(91년 12월)를 내놓았는데 ‘4·2성명’을 계승한 거야.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발표한 6·15 성명도 당시 성명에서 연유한 것이지.그런데 어찌 ‘실정법을 어긴 죄인임을 자인하고 깊이 반성한다.’는 자수서를 내미는가 말이야.” ●판문점 통역일로 문익환목사와 인연 그가 문익환 목사를 사주해 방북을 권유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문 목사와의 인연은 50년 전에 맺어졌다.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씨는 경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 미국 에모리대학으로 유학을 가 화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당시만 해도 환전이 불가능해 친분이 두터웠던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학비를 대주기도 하고 송금도 도와주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장면 주미 대사가 “당신 같은 사람은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조국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권유해 미국 국방부 직원이 돼 도쿄 극동군최고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유학파’로 같은 일을 하러온 문익환을 만났다.두 사람은 정전협정이 논의되던 판문점에서 통역장교로 함께 일했다. 통역일은 정씨의 인생을 180도로 바꾸었다.좌익이 데모하는 게 보기 싫어 유학을 갈 정도의 보수적 학생이었던 정씨는 중국의 펑더화이 사령관 등을 만나면서 한반도 정세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비롯한 동북아 현대사 서적을 탐독하며 ‘미국의 정체’를 파악했다.그러던 정씨는 1970년 박정희 독재 정권에 환멸을느껴 일본으로 망명을 감행했다. 정씨에게 송두율 교수 입국이 오버랩되는 건 당연하다.송 교수를 둘러싼 파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인텔리티까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국정원 능력을 과소평가한 거지.모든 자료를 다 갖고 있다가 증거를 들이미니 그때마다 시인할 수밖에.차라리 황장엽씨의 폭로 등 모든 것을 털고 귀국하는 게 나았을 거야.” 내친 김에 국가보안법의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았다.“국정원의 입장은 이해해.하지만 실정법 위반 이전에 문 목사와 나의 방북 의미를 생각해야 돼.그리고 늙으면 고향에 묻히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고.자수서에 이름 석자 써넣으면 고국에 갈 수 있지만 살아온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잖아.” ●‘장길산' 일본어 번역 내년7월 마무리 화제를 바꿔 황석영씨의 소설 ‘장길산’의 일본어 번역에 대해서 물었다.황씨는 86년에 “제 작품 번역은 선생님 이외에는 해낼 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이미 ‘한씨 연대기’ 등을 통해 황씨에게 매료된 상태였고 ‘장길산’을 읽느라 전철역을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선뜻 동의는 했지만,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일역 등으로 짬을 못내다가 밀입북했던 황씨가 귀국해 구속된 93년부터 ‘마음의 빚’에 눌려 번역을 시작했다.94년 1권 번역 출간에 이어 1년에 1권꼴로 9권을 번역한 상태다.내년 7월이면 완역한다.(정씨는 ‘장길산’ 일역 관련 일화 등을 최근 창비사가 낸 ‘황석영 문학의 세계’에 ‘황석영과 나’라는 글에서 밝혔다.)꼿꼿하게 원칙을 지켜온 삶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나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만해 한용운 선생 빼고 독립선언문 쓴 33인이 모두 넘어갔잖아.그런 지조를 지킨 ‘최후의 1인’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일제와 싸울 수 있지 않았겠어.” 인터뷰를 마칠 즈음 갑자기 비가 내렸다.댁까지 바래다드리겠다는 기자의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는 평생 신념을 지키며 산 올곧음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요코하마 이종수특파원 vielee@
  • 이라크 “외국민간인 공격이 더 효과적”/무차별테러 ‘광풍’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테러 공격이 미군을 직접 노리던 것에서 탈피,미국을 지원하는 동맹국들의 외교관이나 기업인 등을 노리는 무차별 테러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30일 한국 기업 오무전기의 직원 2명이 피격돼 첫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이들 민간 목표물이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진압작전을 강화한 미군보다 훨씬 손쉽게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데다 미국의 입지를 곤경에 빠뜨리는 데도 더 효과적이라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손발 자르려는 저항세력 지난달 12일 나시리야에 주둔하던 이탈리아군을 겨냥한 자살폭탄테러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 목표가 미군에서 미국 동맹국,특히 민간목표물로 확산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이스탄불의 영국 공사관을 겨냥한 자폭테러가 벌어졌고 29일 스페인 정보장교 7명과 일본 외교관 2명의 목숨을 앗아간 데 이어 급기야 한국인 최초의 희생자를 불렀다. 이라크에 파병했거나 앞으로 파병할 예정인 미 동맹국들의 민간인을 겨냥한 무차별 테러는 이들 나라에서 철군 또는 파병을 철회하라는 분위기를 조성해 이라크전으로 인한 부담을 줄이려는 미국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미국이 많은 동맹국들에 파병 및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은 미국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이라크 전후처리를 동맹국들에 떠넘기려는 데서 비롯됐다.이라크 저항세력은 바로 이같은 미국의 ‘손발’을 아예 잘라버려 미국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그에 따른 미국민들의 불만을 고조시켜 전쟁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입지를 없애겠다는 정치적 계산에서,미군에서 동맹국들로 공격 목표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 시절이 더 좋았다는 이라크인들 영국 BBC방송은 1일 ‘당근이 이라크의 치안을 대신할 수 없다’라는 제목 아래 ‘헤바’라는 가명의 한 40대 이라크 여인의 말을 빌려 “사담 후세인 시절이 훨씬 좋았다.차라리 후세인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이라크 국민들의 심정을 전했다. 이라크전쟁 전 초등학교 교사이던 헤바는 바트당원이었던 교장이 쫓겨나면서 교장으로 승진,전쟁 전보다 수입이 18배로 늘었다. 소수이긴 하지만 헤바처럼 먹고 산다는 측면에서만 보면 이라크전쟁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믿기 힘들 정도로 나아지게 만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바가 후세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일상의 삶이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그녀는 “후세인 시절에는 먹고 살기는 힘들었지만 범죄도 없었고 성전(聖戰)이나 폭격 같은 것은 상상하지도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불안하다.”고 말한다. 헤바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후세인이 그립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안정됐던 후세인 독재 시절의 치안에 대한 향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난제 산적한 이라크로의 조기 주권 이양 미국은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이라크 치안을 이라크인들의 손으로 떠넘기려 하고 있다.내년 7월1일 이라크 과도정부를 출범시키겠다는 등 주권 조기 이양 계획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우선 이라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시아파 종교지도자 알리 후세이니 시스타니가 즉각적인 조기선거를 요구하며 미국의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달 29일 이라크주둔 미군 사령관 리카르도 산체스 중장의 발언은 이같은 미군의 어려움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준다.워싱턴 포스트가 3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산체스 중장은 현재 이라크 경찰 중 일부가 미군이나 그 동맹국들을 겨냥한 테러 공격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또 미군에 고용된 이라크 민간인들이 여러 군사정보를 이라크 저항세력에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라크 저항세력은 공격 목표의 움직임을 사전에 입수,치밀한 준비를 거쳐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맥락에서 오무전기 직원들에 대한 공격도 한국인임을 사전에 알고 감행한,한국인을 직접 겨냥한 테러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세진기자 yujin@
  • [씨줄날줄] 촛불시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다.촛불은 차우셰스쿠 대통령 정권의 탱크와 총칼 앞에 꺼질듯 가물거렸다.그러나 그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하나 둘 늘어난 촛불은 ‘요원의 불빛’이 됐다.악명높았던 독재자 차우셰스쿠 대통령은 마침내 1989년 12월 시민들에게 쫓겨나 처참하게 죽었다.부쿠레슈티뿐만 아니라 불가리의 수도 소피아에서도,프라하와 바르샤바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다.촛불은 동구(東歐)혁명의 작은 횃불이 되었다.촛불은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희망의 빛이었다. 촛불은 약한 바람에도 꺼질 듯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우며 불을 밝힌다.그 ‘희생’이 강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한다.아무리 약한 존재라도 희생을 각오하면 강한 힘을 낸다.촛불시위에는 그래서 감동이 있다. 촛불시위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감동을 주고 있다.지난해 11월말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서울시청앞 광장으로 모였다.미군 궤도차량에 희생된 신효순·심미선양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월드컵때 붉게 물들었던 서울시청앞 광장과 광화문 일대는 촛불의 바다로 바뀌었다.한국의 촛불시위는 비폭력 평화시위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시위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다시 열렸다.촛불시위는 청주에서도 부안에서도 있었다.부안의 촛불시위는 특히 의미가 깊다.‘민주광장’으로 불리는 부안 수산업협동조합앞 광장에서 다시 평화적인 촛불시위가 열렸기 때문이다.경찰은 117일 동안 계속돼 왔던 수협앞 광장 촛불시위를 지난 11월19일 이후 원천 봉쇄해 왔다. 부안의 촛불이 원전센터 건립을 둘러싼 부안 주민과 정부의 갈등을 해소하는 희망의 빛이 될 수 없을까.부안 주민들의 분노가 촛불 속에 용해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경찰 계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화된 부안 사태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정부와 부안 주민들의 폭력적 충돌이 이번 수협앞 광장 촛불시위로 끝나기를 기대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폭력적 충돌이 계속된다면 세계인들에게 주고 있는한국 촛불시위의 감동이 사라질 것이다. 이창순 논설위원
  • [이경형 칼럼] ‘옥쇄정치’는 下手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비리 특검법 거부에 맞서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단식 투쟁에 들어갔다.한나라당 의원들은 26일부터 등원을 거부하고,전국적으로 장외 투쟁에 나섰다. 과거에도 야당 총재나 재야 인사의 단식 투쟁은 심심찮게 있어 왔다.그러나 당시에는 반민주-민주 대결 구도에서 소수 야당이 국회 다수당을 장악한 독재 권력에 항거하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치는 처절한 싸움이었다.그래서 국민들도 극한 투쟁을 벌이는 야당의 ‘옥쇄(玉碎)정치’에 소리 없이 공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한나라당이 결행한 국회 보이콧에 이은 단식·장외 투쟁은 뭔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물론 국회가 재적 의원 3분의2가 넘는 찬성으로 특검법을 정부에 넘겼는데도 검찰이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노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것 자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이유가 옹색하다는 점은 인정된다. 한나라당은 국회 의석(272명)의 절반을 훨씬 넘는 149석을 가진 그야말로 거대 야당이다.한나라당이 하기에 따라서는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시시콜콜히 견제할 수 있고,필요하면 입법 권능을 통해 정부의 정책 집행방향을 수정할 수도 있다. 다른 야당은 특검법의 재의결 추진을 찬성한다는 의사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재의 자체를 거부하고,의원직 사퇴서를 일괄 작성하여 당 지도부에 제출하는 등 극한 투쟁을 펴는 것은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재의결을 추진할 경우 다시 재적 3분의2 찬성을 이끌어 낼 자신이 없다는 것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 처리,이라크 추가 파병,카드사 위기,부안 사태 등 산적한 국정 현안을 내팽개치고 장외 투쟁을 벌이는 것은 결국 그들 스스로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원내 과반수 제1당의 정치적 행태가 겨우 민생을 볼모로 하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서야 누가 공감을 하겠는가. 설령 최 대표의 주장대로 노 대통령이 “가장 도덕적인 것처럼 포장을 해왔지만 모두 거짓이었고,추악한 본색이 드러날까봐 특검을 거부했다.”고 치더라도 ‘단식 투쟁’으로 풀 일은 아니다.지난번과 같이 다른 야당 의원들을설득하여 3분의2 찬성을 얻어 특검법을 재의결하는 노력을 폈어야 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의 하나는 문제를 푸는 방법이 너무나 극단적이라는 것이다.노동 현장의 분신 자살,위도 방폐장 건설 대결,농업 개방 등 자유무역협정 체결 문제 등에서 보듯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거나 견해가 확연하게 다를 때는 우선 힘으로 본때를 보여야 돌파구가 생긴다는 것이다.이 같은 ‘미신’이 지금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다. 한나라당이 펴고 있는 등원 거부,단식 등 극한 투쟁은 시청 앞 노동자 시위 때,쇠파이프·화염병이 진압봉과 어지럽게 교차하는 잘못된 시위 문화와 한치도 다르지 않다.차라리 옥쇄는 할지언정 굴복은 하지 않는다는 과거 왕조시대의 선비정신을 이런 식으로 계승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적대감,높은 자와 낮은 자의 불신,권력자와 백성간의 괴리 등 모든 분열적인 요소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전부가 아니면 전무(全無)’의 극한 정치 문화와도 무관치 않다. 흔히 정치를 대화의 산물,협상의 결과물이라고 하는데도 우리 정치 현실이 힘의 대결,기(氣)싸움처럼 변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단식,장외 투쟁과 같은 ‘쇼크 정치’는 단기적으로 대단히 효과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정치를 더욱 황폐화시킬 뿐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하루빨리 대화 채널을 가동하여,국민을 더이상 짜증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제작 이사 khlee@
  • [시론] 韓·美 군사현안 해법

    지난 17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과 용산기지 이전에 대한 합의가 형성되지 않아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가 개진되고 있다. 양국 정상간의 용산기지 조속 이전 합의에도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고,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이라크 파병 결정에 사의를 표하면서도 3000명 규모의 재건지원부대 파견 구상에 대해 평가를 유보했으며,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중요성과 대북 억지력 확보에 병력 수보다 우수한 화력이 관건임을 강조해 주한미군 감축을 시사했다. 국가간에 전략과 국익이 일치하기는 어려우므로 양국간 견해 차가 있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잘못된 합의보다는 추가 협의가 낫다.또한 견해 차가 주로 미국의 억지에 의한 것이므로 정부의 이견 유지가 돋보인다.게다가 추후 협의가 예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라크 사태가 악화하고 미국 대선이 다가옴에 따라 우리의 협상력이 커질 것이므로 조만간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우리는 미국이 국제 여론의 압도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명분없는 침략을 행하여 이라크문제가 발생한 것임을 간과할 수 없다.또한 사담 후세인이 제거되었으므로 독재에 의한 선량한 피해자들인 이라크인들이 자치를 하도록 조속히 철수하는 것이 순리이다.미국은 저항세력이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단정하지만,그중 상당수는 미국의 공격에 희생된 수천의 사상자 친족과 조국의 독립을 희구하는 애국자들일 것이다.따라서 우리가 일제침략의 과거를 잊고 치안유지 명목으로 전투병을 파견한다면 충돌은 불가피하고 결국 남의 침략전쟁에서 총알받이가 되는 격이 될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파견 병력 중 희생자가 발생하면 반미시위의 발발로 한·미 관계가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더구나 미국은 대북 문제와 주한미군을 거론하기만 하면 한국정부의 양보를 얻는다는 것을 차후에도 이용하려 할 것이다. 특히 최근 부시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다자문서로 안전 보장을 검토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은 이라크사태의 악화로 신보수주의자들의 위상이 추락한데다 대선 승리를 위해 북핵보다는 이라크와국내 경제를 챙겨야 한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파병으로 한·미 관계를 발전시키면 미국이 북핵이나 주한미군 문제에서 선처할 것으로 계산하는 듯하나,전투병 파병은 오히려 신보수주의자들의 재득세로 대북 강경책 재개를 유발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용산기지 이전문제도 미국이 기지내 미군 7000명 중 14%에 해당하는 1000명의 잔류 병력을 위해 81만평 부지의 30%에 해당하는 28만평을 요구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연합사와 유엔사까지 이전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정부가 후자를 수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이는 소아적인 대미 의존자세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평가된다. 우리가 국익을 극대화하는 가운데 초강대국 미국과 중장기적인 우호관계를 수립하는 길은 원칙에 입각해 우호적인 태도로 미국을 대하는 데 있다. 평화 애호국으로서의 한국의 명예를 지키면서 이라크인들과 미국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이라크인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 및 건설을 지원하는 것이므로 이를 관철해야 한다. 또한미국의 세계 전략상 기정사실인 미군의 일부 감축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오히려 이를 대미관계 개선과 자주국가 이미지 향상,대북 자주성 회복,동북아 다자 안보 협력 구축,그리고 조속한 자주 국방력 배양의 계기로 선용해야 할 것이다. 홍 현 익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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