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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간다 ‘민주국가 만들기’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독재국가 우간다가 국가 이미지 개선과 홍보를 위해 영국 홍보회사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고 BBC 인터넷판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년째 집권하고 있는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 정부가 영국의 ‘힐 앤드 놀튼’사에 손을 뻗치게 된 것은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우간다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회계예산의 절반을 해외 원조에 의존하는 우간다로서는 해외 홍보를 통한 국가 이미지 개선이 절박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간다 정부는 전날 국가 이미지 향상에 67만 5000달러를 쓸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은 최근 야당을 인정해 ‘들러리 세우는’ 다수당 정치만으로는 미흡하다며 우간다에 제공해오던 1000만달러 원조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역시 비슷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19년동안 정당 활동을 인정하지 않다가 최근 들어 야당을 인정하는 등 개혁에 앞장서는 듯한 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나 인권운동가로도 활동하는 팝스타 봅 겔도프는 무세베니가 종신 대통령이 되려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힐 앤드 놀튼 사는 인권을 억압해 많은 비난을 샀던 인도네시아와 터키의 국가 홍보를 맡아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박정희 논쟁 마침표를 찍자”

    “박정희 논쟁 마침표를 찍자”

    “진보 진영의 대표적 원로학자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오늘의 세태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런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흠집내기 위해, 또는 박정희 시대의 피해망령에 사로잡혀 외눈으로 그 시대를 보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중앙일보 5월17일자 사설 ‘유신반대학자의 박정희 평가’) “국가 발전에 기여한 긍정적 업적은 애써 무시하고 부정적 측면만 부각시켜 편협하고 균형 잃은 역사 인식을 확산시키며 정략적 목적을 추구하는 과거사 규명 행태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문화일보 5월16일자 사설 ‘박정희 과거사와 두 원로학자의 평가’) 백 명예교수가 자신이 편집인으로 있는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기고한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다룬 신문 사설의 일부다. 진보학계의 ‘어르신’인 백 명예교수의 글이 자못 새로웠던 모양이다. 여기에 정치권의 과거사규명법에까지 글의 해석을 확장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백 명예교수의 글은 두 사설의 취지와 다르다. 글의 핵심은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을 도식적으로 구분한 뒤 산업화세력은 경제개발에, 민주화세력은 민주주의에 기여했다는 기존의 이분법을 깨는 데 있다. 외려 민주화세력도 경제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의 화두로 꼽히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산업화세력의 경제발전 방식은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외려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살린 민주화세력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백 명예교수는 “기사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소위 유력신문이라는 곳에서만 너무 편향적으로 기사를 썼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글 가운데 박정희의 공과를 인정하자는 취지의 내용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기에 언제까지 ‘박정희는 악이었다.’라고 주장할 것이냐. 차라리 ‘그래 공도 있다.’라고 인정해주고 넘어가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일종의 접근법이나 방법론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라고 명확한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전화를 걸어 온 곳은 동아일보뿐이었고 동아일보 기자에게는 (글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실제 ‘박정희 향수’에 대해 그는 글의 말미에서 “기본적인 제반권리에 대한 무관심, 인간의 고통과 고난에 대한 무감각,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잘 살아보세.’라는 걸인의 철학 이상의 어떠한 개인적 또는 공동체적 철학에 대한 무지 등을 고스란히 내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정희의 공이라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고, 그나마도 지금 시대에 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박정희를 빨리 털어내는 게 낫다는 주장인 셈이다.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는 백 명예교수 외에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이자 ‘야생초 편지’로 유명한 황대권씨의 ‘지금도 계속되는 박정희 패러다임’, 상지대 경제학과 조석곤 교수의 ‘박정희 신화와 박정희 체제’도 함께 실려 있다. 황씨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으로 ‘획일주의’와 ‘경제지상주의’를 꼽으면서 “얼치기 자본주의 문화로 바꿔버린 박정희의 만행은 그가 이룩했다는 경제 기적 열개를 갖다 붙여도 보상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참여정부’임을 내세워 획일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경제지상주의에는 여전히 묶여 있는 노무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 교수는 ‘뉴라이트’ 진영의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의 ‘선택적 친화력’(초기 경제발전과 권위주의 정부는 친화성이 있다는 주장) 논리를 반박했다. 그는 경제개발의 성공조건이 ‘동원능력’에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강력한 산업정책’을 ‘권위주의’로 바꾼 뒤 권위주의를 또다시 독재로 연결시키는 등 이중적으로 논리를 비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발전개념을 인간의 실질적인 자유를 확산시키는 과정으로 보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을 끌어댄 것도 이제 성장률 몇%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자는 의도로 읽힌다. 두 신문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도 백 명예교수의 글을 인용해 ‘박정희 공도 있다’는 내용의 기사만 실었을 뿐 그 글의 본래 취지나 황태권·조석곤씨의 주장을 다룬 곳은 없었다. 박정희 바로보기를 막고 있는 것은 공이든 과든 어느 한쪽만 부각해 현실정치 문제에 끌어다 붙이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6회 광주인권상 수상한 印尼 빈민운동가 와르다 하피즈

    6회 광주인권상 수상한 印尼 빈민운동가 와르다 하피즈

    “빈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인도네시아 모든 활동가들의 영광입니다.” 5·18 25주년을 맞아 18일 제6회 ‘광주 인권상’을 수상한 인도네시아 도시빈민협의회(UPC) 사무총장 와르다 하피즈(51·여)는 “5·18 민중항쟁 이후 광주와 한국의 인권발전은 아시아 인권활동가들이 추구하는 표본이자 목표”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날 오후 5·18문화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5·18 이후 한국은 산업화 등 경제·정치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며 “이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25년 전과 다른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통해 아시아 발전에 기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미얀마 군사독재, 인도네시아 아체지역의 정부군과 반군간 분쟁으로 인한 인권문제,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인권옹호를 위한 연대 구축 등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또 “광주시민들이 5월 항쟁기간 동안 보여줬던 공동체의식과 민주화 열정에 감동받았다.”며 “상금 5만달러는 교육시설을 세우거나 펀드를 조성, 빈민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93년부터 인도네시아 모슬렘 여성운동의 지도자로서 남녀평등과 빈민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왔다.1997년 인도네시아 도시빈민협의회를 결성, 정부의 강제철거에 맞서고 빈민의 인권을 지키는 등 저항운동에 나서 수하르토 독재정권이 물러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광주인권상은 1991년 5·18유족회가 5·18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시상하던 ‘5월 시민상’과 1980년 당시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한 고 윤상원 열사를 추모해 제정한 ‘윤상원 상’을 통합해 제정한 상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비교섭단체 릴레이인터뷰] ① 한화갑 민주당 대표

    [비교섭단체 릴레이인터뷰] ① 한화갑 민주당 대표

    지난 4·30재보선 이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으로 재편되면서 정치권 합종연횡설이 나도는 등 어느 때보다 소수정당들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단독 인터뷰를 게재한 데 이어 나머지 비교섭단체 대표들도 별도로 만나 정국 운영 방안 등에 대한 견해를 차례로 들어본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요즘 사람 만나는 게 즐겁다고 한다.4·30재보선에서 목포시장 선거 승리 등 전통적 텃밭인 호남에서 당의 건재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감도 생겼다. 당 대표실에 걸려 있는 소나무 그림을 보면서 조선시대 문인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를 줄줄 외는 모습에서 여유도 엿보였다. 그러나 현실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금방 진지한 모습으로 변했다. 한 대표는 11일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끝까지 남아 민주당을 지키겠다.”면서 항간에 떠돌던 열린우리당과의 합당설 등을 거듭 일축했다.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혼자서 가겠다는 의지가 묻어났다.“여건 형성 여부가 관건”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대권도전 가능성도 내비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합당이나 합종연행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책적 연대는 가능하다. 정책이 맞는 정당과는 언제든 좋다. 그러나 연대 상대를 정해놓고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 사안에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당 등에 대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생각은. -정치이야기 나눈 적 없다. 지난해 10월 재보선 이후 만나려고 했는데 정치 떠난 사람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 올 초 전당대회 이후 만났다. 당시 DJ는 ‘민주당만 한 정당이 한국에 있느냐.’면서 민주당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재확인해 주었다. 물론 민주당 스스로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향후 민주당의 진로는. -중앙이나 지방 선거가 있으면 뛰어들 것이다. 지지를 확신한다. 과거 여당 같은 기반을 구축해 서서히 키워갈 작정이다. 조급성을 버리겠다. 당장 열매를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후배에게 열매가 돌아가도 좋다는 생각으로 임할 것이다. 물론 내부 혁신을 해야 한다. 외부인사 영입 등으로 체제를 확실하게 갖춰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하겠다. 현 정부로부터 국정운영에 참가해 달라는 요구가 있으면. -당대 당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차츰 기울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 보람을 찾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지난해 총선 뒤 민주당 의원 중 여당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도 갈 사람은 가라는 입장이다. 사정하지 않는다.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뿌리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는 끝까지 민주당을 지키겠다. 지난해부터 한나라당이 ‘서진정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과거 ‘동진정책’이 있었는데 영남권에서 반발했다. 서진정책은 호남쪽에서 점령당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위한 점령은 환영한다.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한다는 의미에서도 평가받을 만하다. 이것은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게 한다. 물론 우리 지지표가 떨어져나가는 현상도 일어나겠지만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있다. 당 대표로서 자신을 평가하면. -다른 것은 몰라도 민주당을 살려보겠다는 의욕은 강하다. 한화갑이 있어 민주당이 지금 버텨가고 있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이런데서 많은 점수를 받고 싶다. 소수당의 애로사항은. -과거 여당대표였을 때는 자리도 첫번째고 축사도 제일 먼저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사람은 같은데 뒤로 밀렸다. 처음엔 겸연쩍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존재를 위해서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지방선거 뒤엔 대선국면이다. -민주당도 후보를 낼 것이다. 가족수가 적다고 호주가 없는 곳은 없다. 정치하는 사람이 국민과 국가 위한 봉사준비는 당연하다. 향후 대권 전망은. -꼬리를 물고 계속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큰 당 소속 사람이라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불합리한 것이다. 자질을 놓고 논해야 한다. 또 열린우리당이 정권 재창출을 자신하고 있는데 현 상황에서 이것은 그들만의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시에는 나를 비롯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결정적인 요소가 없을 것이다. 개헌론이 활발하다. -필요성에 공감한다.4년 중임제든 내각책임제든 어느 것이든 좋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각책임제를 선호한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표로서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과거에는 10석이었는데 독재시대 때 야당의 진입을 막기 위해 늘어난 것이다. 독재시대의 산물이다. 출석부에 이름은 있는데 출석을 부르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인정받지 못한 난민] “민주화 이룬 한국… 난민문제엔 후진국”

    [인정받지 못한 난민] “민주화 이룬 한국… 난민문제엔 후진국”

    “한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고 굳게 믿었는데 난민 문제에 있어서는 후진국인 것 같습니다.” 휴일인 지난 24일 오후 서울 대학로.20여명의 미얀마인들이 사진과 그들의 주장이 담긴 게시판을 걸어놓고 고국의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등에서 활동하는 ‘정치적 난민’들이다. 이들은 “과거 한국처럼 군사독재에 허덕이는 미얀마의 민주화 쟁취를 위해 한국에 망명해 싸우는 우리들의 신분을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에 ‘정치적 난민’ 지위를 신청한 미얀마인 9명이 우리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 불허와 함께 강제 출국을 통보받은 것은 지난 3월 말. 이들은 강제 출국되면 미얀마에 입국하자마자 군사정권의 비밀경찰에 붙잡힌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들은 정치적 난민이라기보다 한국 내 장기체류를 원하는 불법 입국자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국정부 “민주화운동 경력 증명하라.” 미얀마인 마웅저(37)는 2000년 5월 난민 지위를 신청한 뒤 5년 동안 한국 정부의 허락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그는 법무부로부터 “난민협약 제1조(정치적 이유로 자국에서 ‘충분하고 근거있는 공포’를 당하는 경우)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난민 인정 불허 통지를 받았다. 마웅저는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7월이면 당장 한국 땅을 떠나야 한다. 미얀마는 아직 군사정권 치하에 놓여 있다.1990년 아웅산 수치 여사의 NLD가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군부는 정권을 이양하지 않았다. 마웅저는 고등학생이던 88년 미얀마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을 때 ‘전국학생연맹’이라는 지하 학생운동단체에서 일했다. 그는 동료들이 하나 둘 비밀경찰에 붙잡혀가던 94년 10월 한국으로 도망쳐 왔다. 그는 미얀마에 NGO(비정부기구)를 만들어 민주화운동을 이끌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마웅저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모든 과정을 설명했지만 ‘당신의 민주화운동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미얀마와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 운동을 겪었던 한국의 경험을 배우려고 이곳에 왔지만 기대와 달리 난민 인정이 너무 까다롭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모아(31)는 미얀마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투사’였다고 한다. 민주화 항쟁을 탄압하는 군사정권을 피해 94년 8월 브로커를 통해 한국 산업연수생 자격을 얻었다. 모아 역시 “군사독재를 무너뜨린 민주화 경험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99년 NLD 한국지부를 만들어 현재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모아도 지난 3월 ‘정치적 박해의 사유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난민 자격을 얻지 못해 7월 마웅저와 함께 추방될 처지에 놓여 있다. 모아는 “미얀마로 쫓겨나면 공항에 대기하고 있는 비밀경찰에 곧바로 붙들려갈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난민 신청자 급증… 인정요건 애매모호 국내 난민 신청자는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1994∼2002년 9년간 166명이었던 난민 신청자가 2003년 83명, 지난해 145명으로 늘었고 올들어서는 넉달도 안돼 100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난민 인정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선정 요건도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미얀마 난민 신청자들은 지난 5년간 심사과정에서 단 한번도 적절한 통역을 제공받은 적이 없다. 또 직책의 유무를 중시하는 등 적용기준도 들쭉날쭉이다. 마웅저, 모아와 함께 난민 신청을 했던 19명의 미얀마인들 중 NLD 한국지부 간부 3명만 ‘투쟁 주도자’라는 이유로 2003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한국에 망명한 ‘줌마족’ 12명이 한꺼번에 난민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해 10월 발간한 국내 외국인 난민 인권실태 조사보고서에서 “법무부가 독립적인 난민인정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즉흥적인 심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난민 신청자들을 위해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 황필규 변호사는 “미얀마인들의 난민 지위 인정기준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법무부에 면담 내용 열람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국가안전보장 등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법무부 “무조건 인정해주긴 어렵다.” 하지만 정부는 망명 근거가 부족한 외국인의 난민 신청을 무조건 인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출입국관리소 난민실 이인숙 주사는 “이번에 허가받지 못한 미얀마인들은 불법체류 상태로 오랫동안 머무르다 뒤늦게 난민 지위를 신청한 것”이라면서 “이들은 불법체류자로 강제출국될 것이 두려워 난민 자격을 신청했을 뿐 정치적 난민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정부가 난민 제도를 악용하는 외국인들까지 보호할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장기체류 수단으로 악용 우려” “난민 지위를 악용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난민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법무부는 국제 난민협약에 기초해 선의의 난민 신청자는 보호해야 하지만 협약을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온정을 베풀 수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 출국관리과 김판준(49) 사무관은 “우리나라 난민 지위 인정은 난민협약 제1조에 명시돼 있는 ‘인종·국적·종교·정치적 견해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라는 기준에 따라 적용되고 있다.”면서 “단 국내 장기체류의 방편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가려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무관은 미얀마인 9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들은 난민협약의 다섯가지 박해 사유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으며, 대개 한국에 몇년 동안 머물렀던 사람들이라 장기 체류의 수단으로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3년 난민지위가 인정된 NLD 한국지부 간부 3명과 이들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집회나 시위에서도 전체 참여자가 아니라 주동자 일부만 처벌하는 것처럼 한국지부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들과 단순 구성원과는 분명 차이가 있지 않으냐.”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법무부도 올해 난민 신청자가 급증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반응이다. 법무부는 지난 2월부터 난민법 제·개정 연구위원회를 구성, 향후 방향을 모색 중이다. 김 사무관은 “인권단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독립적인 난민 지위 인정기구에 대해 법무부도 나름대로 위원회를 만들어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달라.”고 덧붙였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색안경 벗고 우리 처지 이해를” “직책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간부들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것 같아 함께 투쟁해온 동료들에게 미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아웅 미엔트 스웨(42) 회장은 “함께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동료들이 결국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강제로 출국당하게 돼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애석해했다. 그는 2003년 부회장, 총무 등 2명의 한국지부 간부들과 함께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면 회장이라는 직책은 늘 바늘방석이었다. 스웨는 “2000년 5월 난민 지위를 신청한 21명의 동료들은 모두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쳤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직책의 유무로 민주화 운동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웨는 한국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난민 지위를 신청한 이유를 묻자 “입국 초기에는 다들 미얀마의 민주화에만 주목했지 각자의 신분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못했다.”면서 “1999년 한국지부의 한 간부가 불법체류자로 몰려 강제출국당하고 나서야 신분 확보가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 동료들이 미얀마에서의 박해 사유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한국정부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5년간 우리 동료들이 자기 처지를 설명할 수 있었던 기회는 겨우 15∼20분에 걸친 4∼5차례의 면담밖에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스웨는 “미얀마가 민주화되면 우리는 반드시 한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한국인들도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한 만큼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고 우리의 절박한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에콰도르 의회, 대통령 축출

    8년째 정정불안이 계속돼 온 에콰도르에서 대통령이 또 바뀌었다. 에콰도르 의회는 반정부 시위가 일주일째로 접어든 20일(현지시간) 직무유기 등의 이유로 루시오 구티에레스(48) 대통령을 축출하고 심장병 학자인 알프레도 팔라시오(66) 부통령을 새 대통령에 취임시켰다. ●8년새 대통령 3명 물러나 1997년 이래 구티에레스를 포함한 대통령 3명이 전부 의회 결의나 쿠데타로 임기중 물러나는 진기록을 세웠다. 구티에레스는 시위대로 둘러싸인 대통령궁에서 군용 헬기편으로 빠져 나와 키토 국제공항에서 출국을 시도했으나 시위자들이 공항 주변을 봉쇄, 출국에 실패했다. 브라질 정부는 구티에레스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에콰도르 주재 브라질대사가 21일 밝혔다. 앞서 검찰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린 구티에레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군부도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경찰은 무력진압을 포기했다. 의회는 구티에레스가 대법원을 해산하고 독단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위헌이라며 ‘대통령직 포기’를 위해 헌법 조항에 따라 그를 해임했다고 밝혔다. 구티에레스는 지난해 12월 부패 등으로 자신을 탄핵하려던 야당의 계획이 무산된 뒤 대법관들이 다시 조사하려 하자 이들을 면직했다. 이어 대법관 31명 가운데 27명을 자신에 동조하는 인물로 교체했다. 이후 법원은 구티에레스뿐 아니라 1997년 부패 혐의에다 ‘정신적 결함’으로 탄핵돼 망명중인 압달라 부카람 전 대통령에게도 면죄부를 줬다. 구티에레스는 대법관 해임과정에서 귀국을 바라는 부카람과 뒷거래를 했다는 거센 비난까지 샀다. 시민과 학생들은 13일부터 에콰도르 전역에서 구티에레스의 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구티에레스는 15일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시위가 격화되자 하루 만에 비상사태를 풀고 문제가 된 대법원도 해산했다. 시위대는 20일 의사당 건물로 난입, 창문과 의자 등의 기물들을 부쉈다. 이에 구티에레스 지지자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의사당으로 몰려와 유혈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빅토르 우고 로세로 합참의장은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위 진압을 책임진 경찰청장도 에콰도르 국민과의 대치에 방관자로 있을 수 없다며 사임했다. ●측근비리·부정부패에 국민들 외면 육군 대령 출신인 구티에레스 대통령은 2000년 하밀 마와드 전 대통령을 축출한 군부 쿠데타 당시 배후의 핵심인물이었으나 전면에 나서지 않고 2002년 대선에서 승리, 이듬해 1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초긴축적인 경제정책과 친미정책으로 6%의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가족들과 측근들의 비리로 지지기반은 급격히 무너졌다. 미국은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고 에콰도르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고 말해, 구티에레스 정권을 외면했다. 팔라시오는 1년 6개월 남은 구티에레스의 잔여기간만 대통령직으로 남아 차기 선거를 준비할 예정이다. 그는 의회에서의 취임 직후 기자들에게 “독재와 오만은 끝났다.”고 말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볼턴, 노대통령과 면담 무산되자 화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차기 유엔대사로 지명된 존 볼턴 전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이 지난 2003년 초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의 면담을 추진하려다 이뤄지지 않자 토머스 허버드 당시 주한대사에게 크게 화를 내며 통화하던 전화기를 내던지듯이 끊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또 볼턴이 그해 6월31일 서울방문 중 연설을 통해 “북한은 지옥과 같은 악몽”이며 “김정일은 참주적 독재자”라고 지칭했던 것에 대해 허버드 대사가 “고맙다.”고 말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허버드 전 대사가 볼턴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를 진행 중인 상원 외교위에 보낸 ‘석명서’를 통해 밝혀졌다고 주간지 뉴스위크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허버드 전 대사는 볼턴이 인준 청문회에서 자신의 “고맙다.”는 발언을 왜곡하자 이를 시정하기 위해 외교위에 석명서를 보냈다고 밝히고 “당시 ‘고맙다.’는 말은 그 연설에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들도 있었는데 이를 바꿔달라고 요청한 것을 받아들인 데 대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허버드 대사는 볼턴 차관이 노 당선자와의 면담을 요청했던 그 전 주에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노 당선자를 만났기 때문에 면담을 주선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당초 19일 실시될 예정이었던 볼턴 지명자에 대한 인준 투표는 볼턴의 과거 ‘부적절한’ 행적과 관련한 폭로가 잇따르면서 다음달로 연기됐다. 볼턴의 인준이 자꾸 꼬여가자 백악관도 신경이 곤두서 있다. 스콧 매클렐런 대변인은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을 근거 없이 공격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워싱턴 정가의 추한 면”이라고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dawn@seoul.co.kr
  • “역사왜곡 민간차원 대응이 효과적” 서중석 성균관대교수

    “역사왜곡 민간차원 대응이 효과적” 서중석 성균관대교수

    중국에는 일본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는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일본 역사왜곡 문제가 터지면서 안 그래도 바쁜 몸이 더 바빠진 사람이 있다.‘한국현대사 1호 박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 교수. 여기저기서 그를 모시려는 손짓도 늘었다. 연이은 모임과 회의에 지쳤는지 인터뷰 자리에 앉으면서도 “회의부터 줄여야 돼.”라면서 웃는다.‘학자는 연구논문으로 말한다.’는 지론 때문인지 인터뷰 내내 쑥스러워하면서도 역사문제를 거론할 때는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얘기는 마침 20일 출범식을 가진 ‘동북아 바른 역사기획단’에서 풀어 나갔다. 기획단은 일본 역사왜곡에 대한 민관합동 대응기구다. 먼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등 기존 기관과 단체를 놔두고 또 하나의 단체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이슈가 터질 때 취해지는 일종의 ‘오버액션’이 아니냐는 것이다. 서 교수도 “고구려연구재단 발기인대회 때부터 그런 주장을 했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동북아 혹은 동아시아 연구재단’하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해놔야 중국·일본측 연구자들도 끌어들일 수 있고, 또 역사문제는 무엇보다 민간 연구자들간 교류가 핵심인데 일이 생길 때마다 국가기구를 만든다면 외국에서 뭐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대답을 묻자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동북아 균형자론’ 긍정적 평가 이어서 이게 정말 역사전쟁이냐고 물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모두 껍데기는 ‘역사학’이지만 속 내용은 결국 ‘정치학’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서 교수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고 답했다. 논리에는 논리로 대응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는 역사학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미 역사학의 문제를 넘어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을 옹호했다. 중국에는 일본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는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중·일 ‘공동’의 역사인식은 가능할까. 알려진 대로 서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5월 중 한·중·일이 함께 만든 역사교과서 부교재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연세대 백영서 교수는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동아시아사로 통합됐다기보다 서로 분리된 채 한·중·일 3개국의 역사를 모아 놓은 삼국지 같았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이런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한·중·일 3개국 국민 모두에게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서 교수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이는 역사왜곡사태 와중에 얻은 가장 큰 수확물로 한·중·일 시민사회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점을 꼽는다는 데서 잘 드러났다. ●한·중·일 시민사회 수준 한단계 올라서 서 교수는 역사교과서 사태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빈사상태에 빠져 있던 양심세력들이, 중국에서는 사회주의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제약받던 민주시민의식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과 한국사람들도 왜 일본 우익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일본에 강하게 대응하면 반중·반한 감정만 생긴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외려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강하게 대응해 일본에 일정 정도 충격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일본 자신을 위해 좋고 한국과 중국에도 좋다.”고 말했다. 얘기를 최근 사학계의 논쟁점 가운데 하나인 대중독재론으로 돌렸다. 일단은 부정적이었다. 서 교수는 “그 논리를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면서도 “어떤 한 사건이나 일화가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으로 한국사를 들여다 본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박정희 향수를 예로 들었다. 서 교수는 60년대 경제개발의 원인으로 ▲한·일수교, 베트남파병 등으로 해외차관 도입이 쉬웠고 ▲50년대 대거 배출된 한글세대로 산업예비군이 풍부했는데다 ▲50년대말부터 미국 유학파들이 귀국하면서 이들이 기술관료로 행정부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를테면 자본+노동력+테크노크라트 3박자가 완비됐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박정희시대 경제개발을 박정희 개인의 지도력 덕분이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낮은 수준의 역사인식”이라는 비판이다. ●한국현대사는 功·過 양 측면 모두 봐야 그러나 최근 뉴라이트니 뭐니 해서 한국 현대사 서술에 이의를 제기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꼈다. 대신 “한국의 현대사 자체가 공이다, 과다라고 딱 잘라 나눠 말하기 어려울 만큼 역동적인 시간이었다.”면서 “양 측면을 모두 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역사서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은 잊지 않았다. 올해 서 교수의 연구초점은 해방공간에서의 좌파·민족주의 그룹인 여운형·김규식·김구 등이다. 조봉암과 이승만에 이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박동선 ‘이라크 게이트’ 파문

    ‘코리아 게이트’의 주역 박동선(70)씨가 사담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거액을 받고 로비스트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 관리들을 상대로 이라크 지원 로비를 벌인 혐의로 미국 검찰의 수배를 받아 다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뉴욕 맨해튼 연방지검의 데이비드 켈리 검사는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갖고 유엔 ‘석유·식량(Oil for Food)프로그램’을 둘러싼 비리 2건을 적발, 박씨 등 4명을 기소하거나 인도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박씨에 대한 체포영장이 이미 발부됐다고 덧붙였다. ●美체포영장… 한남동 집서 잠적 석유·식량 프로그램은 지난 1990년 쿠웨이트 침공으로 경제제재를 받고 있던 이라크로 하여금 석유를 수출하게 허용하고 그 대금으로 식량과 의약품 등을 구입하도록 하자는 인도적인 취지로 시작됐다.96년부터 2003년까지 600억달러가 이라크에 지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박씨는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93년 200만달러를 받아 유엔 고위관리를 매수, 또다른 로비스트 ‘CW-1’과의 만남을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검찰은 유엔 고위관리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박씨와 각별한 사이며 함께 북한도 방문했던 모리스 스트롱 유엔 대북특사를 지목하는 듯한 보도를 내놓고 있다. 만약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스트롱 특사로 확인될 경우 유엔은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 검찰은 아난 총장의 아들 코조 아난이 프로그램 검수를 맡았던 스위스 업체 ‘코테크나’에서 거액의 보수를 챙긴 혐의를 조사하다 박씨의 연루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AFP는 보도했다. ●유엔·아난 총장 길들이기 지난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도록 미 의회에 로비를 벌인 코리아 게이트로 주목받았던 박씨는 78년 사면을 조건으로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32명의 전·현직 의원에게 85만달러를 선거자금으로 제공했다고 증언해 박 정권과 미국 사이를 결정적으로 벌어지게 만들었다. 당시 그는 워싱턴의 사교 모임인 ‘조지타운 클럽’을 만들어 이 곳에서 로비를 펼쳤다. 유죄가 확정될 경우 박씨는 최고 징역 5년형에 처해질 것으로 보이며 지난 연말 워싱턴에서 귀국해 한남동 자택에 머무르다 미 검찰의 추적 사실이 보도된 14일 이후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까지 자신을 런던에 본사를 둔 무역컨설팅업체 파킹턴사 회장으로 소개하고 시베리아 가스관, 파나마 운하 확장, 체르노빌 원전 보수사업 등에 관여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언론은 미 검찰의 수사가 조지 부시 행정부와 최근 들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엔과 아난 총장을 길들이기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관련기관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2일 입국한 뒤 9일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그 뒤 14일 오전 귀국한 뒤 출국하지 않고 국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기고] 일본우익의 ‘선물’/하종문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

    2001년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은 0.039%의 채택이라는 참패에도 굴하지 않고 4년 후의 ‘복수’를 공언했다. 이후 고이즈미 내각의 각료를 비롯한 우파 정치가는 노골적으로 새역모 편들기에 나섰다. 게다가 소위 납치 사건 이후 일본 사회에 몰아친 ‘북한 때리기’ 광풍은 새역모와 일본의 우익들에게 애국심과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절호의 찬스로 비쳤다. 우리가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동안 새역모의 복수극 준비는 빈틈없이 진행되었다. 4월5일 새역모가 펴낸 후소샤 역사교과서는 재차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했다.4년 전에 137군데의 수정을 거친 누더기 교과서로도 검정에 합격했듯이, 이번에도 120여 군데의 오류가 지적된 함량미달의 교과서였다. 마치 월드컵처럼 4년 뒤에도 우리는 또 후소샤 교과서 등장이라는 뉴스를 봐야 할 것인가? 4년 전의 상황과 비교해 보자. 먼저 한국 정부의 경우,2001년에는 1998년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 ‘과거사는 청산되었다.’고 밝힌 것이 결정적으로 정부의 발목을 붙잡았다. 들끓는 국민감정에 떼밀리듯이 주일대사의 소환이나 재수정의 요구 같은 강공책을 뒤늦게 내놓았지만 그 효과는 그다지 없었다. 성급한 미봉책으로 탄생한 한·일역사공동위원회가 역사화해에 기여한 바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올해는 조금 다른 듯하다. 검정 발표 이전에 독도 문제로 양국 관계는 경색 국면으로 접어든 지 오래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대일 신 독트린이나 대통령의 담화에서 나와 있듯이, 인류보편적인 원칙이 한·일관계의 새로운 틀로서 천명된 바 있다. 그 구체적 실천의 장으로 주어진 것이 바로 역사교과서 문제이다. 따라서 분리 대응이라는 원칙이 결코 역사교과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의지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문부과학성의 생색내기 검정을 통해 2001년도 수준에 턱걸이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일본호의 우향우가 너무 심각하다. 문제가 되는 기술내용에 대한 재수정 요구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일본 정부의 명확한 대처방안을 따지고 촉구할 일이다. 독도 문제와 마찬가지로 역사교과서 문제는 ‘역사 주권’을 위협하는 도발이라는 확고한 인식과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시민사회의 대응도 짚어야 한다. 독도 문제는 뒤틀린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지만, 우리의 정당한 ‘공분’의 표출이 결코 다케시마를 노리는 일본의 우익과 같을 수는 없다.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내셔널리즘을 선동하는 일군의 한국인들은 작년 내내 친일청산 반대를 부르짖는 대열에 서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2001년은 국경과 민족으로 갈라진 한·일 양국의 ‘좋은 타자’를 발견하는 기회였으며, 그 결과 새역모의 참패를 이루어냈다. 바람직한 한·일관계와 동아시아의 미래를 걸고 벌어질 올해의 싸움은 ‘한국’이라는 틀에 시선을 가하고 그 외연을 넓히는 일과 결부되어야 한다. 지난 시절의 군사독재가 일본 보수정권과의 야합에서 자양분을 얻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현해탄을 사이에 둔 좋은 일본인과의 연대는 우리 내부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청산하는 작업은 패자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모한 갈등과 대립으로 내몰려야 했던 보통 사람들의 해원이기 때문이다.4년 만에 새역모는 또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
  • ‘反 무바라크’ 시위 대학가 확산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장기독재에 맞서 비상계엄 폐지와 연임반대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대학가로 확산, 이집트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5일(현지시간) 카이로와 나일 삼각주 지역의 대학 5곳에선 1만여명의 학생들이 ‘집권연장과 권력세습 반대’ 등을 외치며 비상계엄의 즉각적인 폐지를 촉구했다. 지난달 31일 이집트 보안당국이 가두시위를 금지한다고 발표하자 야당 연합체인 ‘키파야 운동’과 이슬람 정치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 대학가 시위를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파야는 ‘이제는 충분하다.’는 뜻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상징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이로의 이슬람 대학인 알-아즈하르에선 4000여명이 승리를 상징하는 ‘V’자를 그리며 코란을 들고 교내를 행진했다. 카이로의 다른 대학인 아인 샴스와 헬완에서도 1000여명이 정치개혁 등을 촉구했다. 나일 삼각주 지역의 카프르 알 셰이크와 만수르 대학에서는 2000여명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5선 연임을 반대했다. 앞서 4일에는 카이로의 아메리칸대학에서 400여명이 실질적인 민주개혁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교내 시위를 묵인하고 있으나 대학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내로의 진입은 막고 있다. 보안당국은 지난달 31일 가두시위에서 200여명을 연행,60여명을 구금했다. 야당과 학생들은 비상계엄의 철폐와 대통령의 연임제한, 무바라크의 9월 대선출마 포기, 유엔 감시하의 선거실시, 차남인 가말의 권력세습 반대 등을 요구했다. 이집트 정부는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암살 이후 24년째 비상계엄을 실시하고 있으며 테러 수사뿐 아니라 반정부 시위 등에도 계엄법을 적용, 대내외 반발을 사고 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교황 서거]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

    27년간 재임, 가톨릭 사상 세번째로 장수한 교황으로 기록된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사를 완전히 새롭게 쓴 인물이다. 비(非) 이탈리아계 교황의 선출은 1523년 네덜란드 출신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5년 만에 그가 처음이었다. 공산 국가인 폴란드에서 교황이 나온 것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는 선출 당시 58세로 최근 123년 동안 추대된 교황 중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했다. 교황은 취임 이후 교회 업무뿐만 아니라 세계 문제를 자신의 일로 여겨 104차례에 걸쳐 각국을 방문, 인권문제·이념갈등 해소 등을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사목 순방은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횟수가 많아 거리로 환산할 경우 지구를 27바퀴 돈 것과 맞먹는다.‘행동하는 교황’으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 교황은 지난 세기 가톨릭이 저지른 과오를 머리 숙여 사죄하고 다른 종교와 화해를 모색해 성(聖)과 속(俗) 모두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을 듣고 있다.8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바티칸에 안주하며 바깥 세상과 거리를 두었던 전임 교황들과 달리 뛰어난 친화력을 발휘했다. 수요일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해온 그의 강론을 듣기 위해 바티칸에 온 순례자는 무려 1780만명에 이른다. ●그늘진 유년기 취임 34일 만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뒤를 이은 그의 발탁은 당시 파격적이었다. 바티칸 내부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던 그는 추기경들의 8번에 걸친 투표 끝에 78년 10월16일 제264대 교황에 선출됐다. 교황은 1920년 5월18일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군장교 출신의 양복사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그의 유년기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9세 때 어머니가,12세 되던 해에는 의사였던 형 에드문트마저 성홍열(猩紅熱)로 각각 사망,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구멍난 옷을 기워 입히고 헝겊 조각으로 만든 공을 차며 아들과 축구를 할 정도로 다정다감했다. 동시에 집중력과 강인함을 길러주기 위해 차가운 방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는 엄격한 면도 있었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보이티야는 다른 폴란드인들과 달리 반유대주의적 시각을 갖지 않았다. 당시 바도비체에는 20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거주했다. 보이티야는 이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렸고 이는 훗날 교황이 유대교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 바탕이 됐다. 그는 교황으로서 유대교 성전과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아우슈비츠 기념관을 최초로 방문해 유대인을 “우리의 형제들이여….”라고 지칭, 가톨릭과 유대교의 오랜 반목에 마침표를 찍었다. ●재능있는 사제 젊은 시절 보이티야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일 뿐 아니라 스키, 산악 등반, 카약, 수영 등 모든 운동에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38년 아버지와 함께 크라쿠프로 이주해 야젤로니안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시 낭송, 노래, 연극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극단에서 활동했으며 한때 전문 배우를 꿈꾸기도 했다.39년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 대학 문을 닫자 강제이주와 징집을 피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40년부터 4년 간 채석장에서 일했고 이어 화학공장 공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41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신의 종으로 살라.”는 부친의 평소 가르침을 따라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46년 사제 서품을 받고 48년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듬해 크라쿠프에서 보좌신부로서 본격적인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제로서의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58년 크라쿠프 부주교,64년 주교,67년 추기경 자리에 올랐으며 78년 마침내 교황으로 선출됐다. ●‘세계의 양심’ 구심점 그의 교황 선출이 공표되자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유리 안드로포프 의장은 앞으로 상당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평신부 시절부터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교황은 취임 이후 조국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적극 지지해 공산정권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는 구소련 몰락과 냉전종식의 기폭제가 됐다. 당시 사제들은 교황의 비밀 메시지를 사제복에 숨겨 투옥돼 있던 노조 지도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 인권 침해를 일삼는 칠레의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같은 독재자들을 공개적으로 비난, 반정부 운동을 고취시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서방국가도 예외는 아니었다.81년 첫 미국 방문에서 교황은 미국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를 강력히 경고하는 한편 제3세계의 빈곤을 외면하는 이기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2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도 미국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수주의의 기둥 교황의 피임과 낙태, 안락사에 대한 거부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산업국가가 이같은 ‘죽음의 문화’를 조장한다고 비판하면서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에 반대해 원성을 샀다. 성경 교리를 들어 여성의 사제 서품을 허용하지 않아 교회 안팎에서 독재적이라는 비난도 잇따랐다. 81년 3월 바티칸 광장에서 한 터키인으로부터 복부와 양손에 총격을 받아 중태에 빠졌다. 당시 KGB가 배후 조종을 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암살 동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교황은 83년 이 터키인이 복역중인 감옥을 직접 방문, 그를 용서하는 자비를 베풀어 세계인을 다시 한번 감동시켰다. ●쇠약한 말년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두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긴 교황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깨 골절, 대퇴골 교체수술, 종양 제거수술 등을 받았다. 말년엔 암살 후유증에다 파킨슨씨병, 무릎 관절염 등으로 거동은 물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한 세월을 보냈다. 감기에 따른 호흡곤란 등의 합병증으로 고령에도 불구, 기관 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빠르게 기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건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임설에 시달려야 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이집트 ‘키파야’ 유혈충돌 위기

    시민혁명의 도미노 바람이 이집트에 까지 미칠까. 이집트 정국이 야당의 ‘키파야 운동’, 즉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 집권 저지 운동으로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를 맞고 있다.‘키파야’는 아랍어로 “충분하다.”는 뜻으로, 무바라크의 24년간 집권은 ‘이제 충분하며 더이상 추가 연임은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7일 무슬림형제단 주도의 대규모 민주개혁 시위에 당황한 정부가 시위 불허를 공언했지만 무슬림형제단 등 반정부 세력은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하며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이집트 경찰은 29일(현지시간) 민주 개혁운동 세력과 이슬람 단체의 의사당 앞 시위를 불허하는 등 정치개혁 시위에 대해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키파야 운동’은 30일 예정대로 의사당 앞 시위 강행 의사를 밝혔다. 시위가 강행되면 수도 카이로는 물론 알렉산드리아, 만수라 등 주요 도시에서 충돌은 불 보듯 뻔하다. 자칫 유혈시위까지 우려되는 형국이다. 야권은 오는 9월 대선을 앞두고 5월 집권당인 국민민주당(NDP)이 무바라크나 그의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41)를 후보로 세울 계획이라며 독재종식을 외치고 있다.1981년 이후 통치해 온 무바라크가 24년동안 계엄령도 해제하지 않은 채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이집트 당국은 당초 지난 4개월동안 야당과 시민운동단체의 소규모 개혁시위를 묵인해 왔다. 그러나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무바라크 대통령이 지난달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 뒤로 야당의 가두 집회가 대규모로 확산 중에 있자 강경대응으로 방향을 바꿨다. 옛 소련지역 및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일고 있는 시민혁명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키파야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내 가장 영향력 있는 이슬람 정치운동 단체로 사실상 최대 야당이다. 심화되는 빈부격차 등 경제적 불평등의 확산을 틈타 평등한 이슬람국가 건설을 주장하면서 반 무바라크 운동을 확산시켜왔다. 이석우기자 yeekd@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키르기스스탄 野지도자 쿨로프

    키르기스스탄의 새 내무장관에 25일 임명된 펠릭스 쿨로프(56)는 이날 함께 대통령 권한대행에 임명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56) 키르기스스탄 인민행동 대표와 함께 이 나라의 권력 공백을 메울 선두주자로 꼽힌다. 대중적 지지도에 부통령, 보안장관 등을 역임한 경력, 대표적인 야당을 이끌어 온 조직력 등 대권 접수에 유리한 점을 고루 갖췄다는 평이다. 그는 집권 14년 만에 24일 물러난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부통령 등을 지내며 옛 소련에서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을 초장기부터 이끌어 왔다. 아카예프가 장기 집권, 독재로 흐르자 알 나미스(위엄)당을 창건, 그에게 도전했으나 2000년 선거에서 패배했고 그뒤 부패 혐의로 기소돼 수감됐다. 당시 미국은 “정치적 탄압”이라며 그를 옹호했다. 24일 성난 군중들이 수도 비슈케크의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를 장악한 지 3시간여만에 또다른 시위대가 교도소를 습격, 수감 중이던 그를 석방시킨 것도 상징적이다. 그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날 밤 긴급 소집된 하원이 질서 회복을 위해 쿨로프를 내무장관에 임명한 것도 그에게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분석이다. 지난 1993년 ‘솜’이라는 화폐단위 출범을 주도했으며 비슈케크 시장을 지내는 등 수도 일대에서 높은 인기를 누려왔다. 그는 이날 시위대에 의해 풀려난 지 1시간 만에 정부 청사 앞에서 아카예프의 하야를 촉구했고 이를 야당이 장악한 국영TV가 생중계했다. 그외 손꼽히는 인물로는 건설부 장관을 지낸 카디르베코프가 있으나 비타협적인 태도가 약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바키예프는 2002년 남부에서 6명의 시위대가 경찰 총격에 희생된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것이 전력 시비를 낳을 수 있다. 외신들은 쿨로프와 바키예프 둘 중의 한명이 대권을 거머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적절한 협력관계 구축에 실패할 경우 자칫 남북으로 갈린 내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위기감 또한 커지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옛소련독립국 ‘피플파워’ 도미노

    ‘피플 파워’의 도미노 현상인가.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에 ‘시민혁명’ 바람이 매섭다.2003년 11월 그루지야의 ‘장미혁명’과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에 이어 24일 키르기스스탄에선 ‘레몬혁명’으로 14년을 집권해온 아스카르 아카예프 정권이 무너졌다. 이들 국가 모두 부정선거로 시민혁명이 촉발됐으나 보다 근본적인 배경은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었다. 독재화 성향이 짙은 카자흐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주변 독립국가연합(CIS)에로 시민혁명이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 진영은 발빠르게 정국 수습책을 내놓았으나 전국에서 약탈과 방화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주민간 유혈극으로 5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하는 등 정국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부패로 얼룩진 독재의 말로 이날 권좌에서 쫓겨난 아카예프 대통령은 한때 개혁의 기수로 불렸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창했지만 예의 독재자처럼 그도 권력욕에 사로잡혔다. 그는 2000년 대선에 출마했던 펠릭스 쿨로프 전 부총리를 구속시켰고 2002년에는 야당 의원의 구속에 항의하던 시위대에 발포,6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후 가족 일가의 독재 체제를 강화, 국민과 야당의 불만이 고조됐다. 결국 지난 13일 총선에서 영구집권을 위해 선거 부정을 자행, 자신의 아들과 딸을 포함해 75석 대부분을 집권당이 차지하자 국민들의 분노가 일순 폭발했다. 그루지야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와 우크라이나의 레오니트 쿠치마가 걸은 길을 답습한 것이다. 아카예프는 쇼핑센터를 경영하는 부인 등 가족의 비리가 드러난 데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서 염증을 느낀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카예프 “사임한 적 없다” 키르기스스탄 의회는 25일 야당 지도자인 쿠르만베크 바키예프를 임시 대통령겸 총리로 지명, 바키예프가 사실상 차기 지도자로 부상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바키예프는 이날 비슈케크 중앙광장에 모인 군중에 “마침내 우리에게 자유가 왔다.”며 “새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회 연설에서 상황을 신속히 개선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하원은 시민들에 의해 석방된 쿨로프를 내무장관에, 상원은 이셴바이 카디르베코프 야당 의원을 의장에 지명했다.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3개월안에 치러야 하는 현행 헌법에 따라 6월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카자흐스탄에 머무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아카예프는 25일 자신이 사임했다는 보도를 부인하면서 야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비난했다. 카바르 통신에 이메일로 보낸 성명에서 아카예프는 “유혈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나라를 떠나 있는 것”이며 곧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가 사임했다는 소문은 교활하고도 모략적인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키르기스스탄은 그루지야나 우크라이나와 달리 외교정책의 향배보다 경제회복과 부패청산이 최대 관건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와 달리 개혁의 구심점이 약한 데다 야당이 서구식 민주화에도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아 ‘미완의 혁명’에 머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플 파워 확산 우려하는 주변국 주변국들도 이를 바라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으나 혁명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일 비교적 공정한 선거를 치른 몰도바도 후유증이 없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언론을 통제, 사태 추이를 일절 보도하지 않으면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투르크메니스탄과 벨로루시는 피플 파워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현 정권의 영구집권을 위해 종신 대통령제를 구축했거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동시에 피플 파워의 여파는 2008년 임기가 끝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크렘린 일각에선 대통령 3선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제2의 독립’으로도 불릴 수 있는 CIS의 피플 파워 바람이 모스크바에 닥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황장석기자의 아시아 창] 애연가 설 자리 없는 싱가포르

    ‘벌금 국가’로 악명 높은 싱가포르가 오는 10월부터 새 흡연규제안을 시행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싱가포르는 이미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1000싱가포르달러(62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새로운 안은 그동안 규제 대상이 아니던 버스정류장과 공중화장실, 수영장 등도 금연구역에 포함시켰다. 싱가포르 정부는 올해 말까지 선술집(pub)과 나이트클럽, 디스코장 등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며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밀집된 호커센터와 커피숍까지 규제를 확대할지 여부도 결정할 방침이다. 싱가포르 환경청(NEA)은 1월 중순부터 한달 동안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617명의 응답자 가운데 80% 이상이 정부 계획에 찬성했다고 밝혀 올해 말이면 이들 장소도 금연구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관광객들이 싱가포르에서 가장 많이 사가는 기념품이 ‘싱가포르는 벌금도시(Fine City)’라는 슬로건이 인쇄된 티셔츠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싱가포르의 벌금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리에 침을 뱉거나, 껌을 들여오거나 팔면 62만원의 벌금을 물리며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 변기 물을 내리지 않거나 아무데나 담뱃재를 떨어도 마찬가지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거나 마시다 걸려도 같은 금액을 내야 한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면허 없이 행상을 하면 31만원, 당국의 허가없이 공공장소에서 연설을 하면 124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이번 흡연규제는 그야말로 싱가포르 벌금시리즈의 최종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강성교를 불법으로 정해 국민의 안방까지 규제하는 정부에 대해 싱가포르인들은 대학생 일부를 제외하곤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뒤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 가문이 이끄는 국민행동당(PAP)의 독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인구 460만명 도시국가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는다는 사실이 불만을 상쇄한다. 국가권력에 대한 복종을 최우선시하는 교육체계와 각종 벌금도 ‘Fine City’를 통제하는 수단이다. surono@seoul.co.kr
  • 조작된 공포/폴 토드·조너선 블로흐 지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보기관들의 부정적 이미지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조작과 공포’다. 이들은 정보를 왜곡하고, 적대국의 경제적 위협이나 테러 같은 ‘표적’을 과장함으로써 공포심을 조장해왔다. 그러나 냉전이 사그러지면서 예산이 축소되고 권한도 크게 약화돼 쇠퇴의 길을 걷는가 하더니 다시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분기점은 9·11테러다.9·11 이후 정보기관들은 그야말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새로 제정된 테러리즘 관련 법안들을 토대로 정보기관들은 시민운동과 환경운동, 반세계화운동까지 감시하기에 이른다. ●시민운동·환경운동까지 감시 ‘조작된 공포’(폴 토드·조너선 블로흐 지음, 이주영 옮김, 창비 펴냄)는 냉전 종식, 그리고 9·11 이후 세계 정보기관들의 역할 모델에 주목하고,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정보활동의 변화양태를 날카롭게 분석한 책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각국 정보기관의 어두운 과거를 고발하면서 공포와 조작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이스라엘 등 전통적으로 강력한 정보기관을 갖고 있던 나라들은 물론, 아직까지 생소할 수도 있는 시리아·파키스탄·미얀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제3세계 국가의 정보기관까지 총망라해 정보기관들의 활동과 조직규모, 예산 등 객관적 사실들과 서로 협력과 경쟁, 반목해온 각국 정보기관들의 비사도 서술했다. 책에 따르면 9·11 이후 미국에선 국토안보부가 신설되고, 연방재난관리국이 확대 개편되었으며, 애국법·반테러법이 제정되었다. 유럽연합에선 ‘반테러 로드맵’이 한층 진전되었고, 이스라엘은 슬그머니 팔레스타인과 테러조직 사이의 연계설을 쟁점화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는 ‘테러와의 전쟁’을 체첸 분리주의자 탄압의 명분으로 삼았다. 결국 9·11은 냉전 종식으로 엄청난 감량을 감당해야 했던 이들 정보기관들에 돌파구를 마련해준 셈이었다. 미국 국가안보기록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한 폴 토드,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활동에 참여했으며 현재 영국 런던 지역의회 의원으로 있는 조너선 블로흐가 공동 집필했다. 저자들은 지금을 ‘감시의 시대’로 명명하면서, 전지구적 차원의 위성감시 시스템인 에셜론(Echelon)에서부터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최신 감시기법들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발달로 감시능력이 더욱 강화된 정보기관의 모습을 살펴본다. ●첨단 정보시스템 무기로 기업과 개인까지 표적 책에 따르면 미 국가안보국(NSA)이 기획·조정하는 전 지구적 감시시스템인 에셜론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주로 국제 전자통신네트워크상의 암호화되지 않는 이메일, 팩스, 전화를 감시·도청하는 데 이용된다. 개인 관련 키워드를 검색어로 해서 수백만개의 메시지를 검색하고, 다양한 분류단계를 거쳐 데이터베이스화한다. 에셜론이 이전의 첩보시스템과 다른 점은 비군사적 표적, 이를 테면 정부나 단체, 기업과 개인이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보를 토대로 미국 언론들은 에어버스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관리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폭로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에어버스사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그 계약은 이후 미국 기업 보잉사와 맥도널더글러스사의 차지가 됐다. 미국 항공기회사 레이시온이 톰슨-CSF 컨소시엄을 제치고 아마존 유역의 감시시스템 구축 사업체로 선정된 것도 역시 NSA의 작품이었다. 각국 정보기관은 국내의 사회운동, 반정부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악행을 마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정치와 경제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아프리카 지역의 끔찍한 학살전쟁 배후에는 아프리카의 광물과 석유자원 등 경제적 이권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꾀한 미국·프랑스 등 서방 강대국의 정보기관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훈련케 한 것도 미국 정보기관이었다. 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에 의한 표적 암살도 고발한다. 아울러 산업과 경제정보가 정보기관의 중요한 활동 영역으로 자리잡으면서 정보기관들이 거대기업들과 손을 잡고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추악한 모습도 폭로한다. 그리고 권력의 사유물이 되어버린 시리아·이라크·파키스탄·미얀마의 정보기관들의 음모 등도 상세히 파헤쳤다. ●정보 오용과 왜곡의 결과는 끔찍한 참극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는 거짓으로 판명된 정보 때문에 큰 전쟁이 개시되는 것을 목격했다.’며 정보기관의 왜곡된 정보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환기시킨다. 당시 문제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느냐였다. 하지만 공식주장은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에서 ‘무기개발 계획이 존재한다’로, 이어 ‘무기개발과 관련된 움직임이 있다’로 후퇴를 거듭했다. 정보기관은 단순한 말바꿈으로 끝날 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수십만명의 목숨이 희생되는 참극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정책결정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본래부터 애매모호한 절차가 오용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월드이슈-중동에 이는 변화의 바람] 외세 개입… 민주화의 봄 ‘산넘어 산’

    [월드이슈-중동에 이는 변화의 바람] 외세 개입… 민주화의 봄 ‘산넘어 산’

    미국의 이라크 침공 2주년(20일)을 맞는 요즘 중동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왕정과 독재로 점철된 과거의 중동 정세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라크에선 사상 첫 선거로 새 정부가 곧 구성되며 내전의 상처로 얼룩진 레바논에선 ‘피플파워’가 넘친다. 팔레스타인은 선거로 첫 자치정부 수반을 뽑는 등 민주적 개혁을 통해 이·팔 평화협상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라크 침공으로 안팎의 비난을 받던 부시 행정부가 그렇게 고대하던 민주주의의 흔적이 곳곳에서 읽혀진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도 자유로운 선거방식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동유럽에 확산된 ‘민주화의 봄’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다. 들불처럼 번지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같은 변화가 자칫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이라크 총선을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비유했다.2기 집권의 목표를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규정한 부시 대통령과 신보수주의자(네오콘)에게는 의미심장한 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내부로부터의 혁명같지는 않다. 이라크나 레바논, 팔레스타인 모두 미국과 시리아, 이스라엘군의 점령하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 통치기반이 무너지거나 허약한 정권에서만 변화가 시작됐음을 뜻한다. 체코의 ‘벨벳혁명’ 등과 달리 변화의 진원지가 폭발적이지도 않다. 자생력이 부족해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이라크의 경우 변화의 주도세력은 미국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뒤 선거에 의한 정권을 탄생시켰지만 수니파와 시아파, 쿠르드족 사이의 갈등이 더 커 이라크 민주주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중동의 모델’로 삼으려 하지만 지배구조가 확고한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파급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정파간 반목으로 정정 불안 레바논은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사건으로 반시리아 열풍이 불었다. 결국 친시리아계인 오마르 카라리 총리가 사임하고 시리아군이 일부 철수하자 미국은 레바논 국기에 그려진 삼나무에 빗대,‘백향목 혁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대규모의 친시리아 시위를 주도하면서 카라리 총리는 10일 만에 복귀했다. 이는 레바논에서의 ‘민주화의 봄’이 친시리아와 반시리아로 양극화, 사상누각으로 끝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리아가 철군한 배경에도 ‘피플파워’보다는 미국과 프랑스 등의 압력이 더 컸다. 시리아 철군 이후 야기될 권력공백은 레바논을 다시 내전의 수렁에 빠뜨릴 수도 있다. 일각에선 하리리의 암살 배후가 시리아가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야세르 아라파트의 죽음이 발단이 됐다. 지난 1월 선거로 아바스 정권을 출범시켜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재개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하마스도 7월 팔레스타인 총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무쟁투쟁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겨냥, 일정 지분을 확보하려는 정략적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정권유지를 위한 임시방편적 개혁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복수 후보가 출마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그러나 파라오에 버금가는 그의 권력에는 이상 징후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당이 대선 후보를 낼 수 있다고 했지만 정당의 적법성 여부를 집권당이 심사한다.50년간 일당 독재체제의 여파로 야당 후보의 이미지는 약하고 개표과정에서 조작 등 선거부정의 여지는 충분하다. 진보적 야당인 ‘알 가드’의 아이만 누르 대표가 창당서류 위조 혐의로 체포된 것은 이집트의 민주개혁이 무늬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한다. 입헌군주제인 요르단은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정부에 이관할 계획이다. 부시 행정부에 인권 및 민주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사우디아라비아는 단계적인 지방선거를 실시하고 쿠웨이트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할 방침이다.3년전 계엄통치를 끝내고 해외 망명인사들의 입국을 허용한 바레인은 더 개혁하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국가 예산지출의 감시와 검열받지 않는 언론의 자유, 독립적인 사법기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경찰과 보안군 등에 대한 개혁은 아직 요원하다. 부시 대통령이 ‘자유의 확산’이라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생존전략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동지역의 변화가 민주개혁으로 이어지려면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분쟁 끊이지 않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지역은 ‘세계의 화약고’라 불릴 만큼 다양한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민족·종교 갈등이 수그러지지 않고 있고 세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의 대립은 중동 분쟁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13세기 무렵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마찰이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갈등이 시작된 것은 유대인들이 1897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조국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뒤 1948년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권은 4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에서 점진적으로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 사후 온건파로 분류되는 마무드 아바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오르면서 양측은 지난달 휴전에 합의하는 등 해빙 무드를 맞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이 휴전에 반대하고 있고 동예루살렘 지배권,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문제 등 난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이스라엘은 또 1967년 골란고원 점령 이후 시리아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으며,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을 공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과의 휴전 합의를 계기로 아랍국가들과의 외교관계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종교적으로 중동지역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이슬람의 80% 이상이 수니파지만 이란과 이라크 등 일부 국가는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한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나뉘게 된 것은 창시자 마호메트의 후계자 승계 문제 때문이었지만 현재 두 종파의 갈등 원인은 종교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라크의 경우 오랫동안 수니파가 집권해오다 이라크전 이후 시아파에 정권을 내준 뒤 수니파가 새 정부 수립에 반대하면서 테러행위를 주도하고 있다. 강대국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별로 반목과 협력을 반복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른바 ‘자유의 확산’ 정책에 따라 이라크전을 벌이고 이란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원유 수급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비판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짙어가는 레바논 내전 암운 레바논이 시리아 군대의 철수 문제로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 시리아의 지원을 받아온 이슬람 시아파 세력과 이스라엘을 등에 업은 기독교 마론파,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온 이슬람 수니파 등이 이뤄온 세력균형이 깨져 또다시 내전에 휩싸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 탄생때부터 갈등 배태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로 급류를 탔지만 갈등의 씨앗은 레바논 탄생과 더불어 배태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시리아 영토였던 레바논 땅에 진주한 프랑스군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던 마론파를 중심으로 이슬람 수니파·시아파 등을 규합해 독립국가 건설에 나섰다. 1943년 레바논 독립을 앞두고 마론파는 이슬람 진영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총리는 수니파, 의회 의장은 시아파 몫’이라는 권력분배안을 마련했고 의회 의석은 인구 구성 비율에 따라 기독교와 이슬람 진영을 6대5 비율로 나눴다. 그런데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끊임없이 몰려들면서 이슬람교도가 증가하자 마론파와 이슬람 진영간의 갈등이 고조됐다. 급기야 1975년 내전이 발발했고 마론파를 지원하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진영을 지지하는 시리아가 개입하면서 15년간 계속된 내전은 10만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1990년에야 끝났다. 마론파와 이슬람 진영의 의회 의석수를 같게 하는 등 새로운 권력분배안도 마련됐다. 외국군도 철수키로 했지만 시리아를 등에 업은 역대 레바논 정권은 시리아의 철군을 반대했다. ●시리아 철군싸고 양진영 세대결 최근 베이루트는 마론파가 이끌고 수니파 등이 가세한 반시리아 시위대가 세를 과시하면 시아파 정치조직이자 무장단체인 헤즈볼라가 친시리아 시위로 맞서는 등 ‘장군 멍군’ 행태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 8일 친시리아 진영이 50만여명을 동원하자 반시리아 진영은 14일 100만명가량을 불러모았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인구는 불과 37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19일 테르예 로에드 라르센 유엔 중동특사가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게 보고하는 시리아의 구체적 철군안 내역과 하리리 암살사건 조사를 마친 유엔 진상조사단의 결과보고서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시론] 반대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션 헤이스 헌법재판소 연구원

    [시론] 반대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션 헤이스 헌법재판소 연구원

    필자를 포함해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이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낸 한국인도 사랑한다. 한국인들은 정열적이고, 멋지다고 할 정도로 복잡다단한 민족이다. 무엇보다 주류 사회, 다수 의견에 도전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국회나 언론 매체에서도 첨예한 의견대립은 쉽사리 발견된다. 거리 집회 참가자들은 물론 택시 기사들도 정부와 정치인에 대해 찬·반 목소리를 높인다. 활발한 반대의견 덕택에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뿌리내렸다.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의 큰 걸음은 주류 사회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됐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과 한국인은 혁명가의 피와 정신을 물려받았다. 이들은 사회보편적 원칙에 항거할 줄 아는 저항가다.”라고 표현했다. 저항이 쉽지 않던 과거에도 한국인들은 일제 식민주의에 항거, 독립을 이뤘고 무자비한 독재자를 몰아냈다. 결국 아시아 지역에서 몇 안 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성과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또 주류 사회에 대해 강력히 도전하는 정신, 용기가 변화의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정신이 사법부나 교육 현장까지 닿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다. 예를 들어 하급 판사가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판결을 내놓는 일이 심각할 정도로 드물다. 박사과정 학생이라도 지도 교수에게 다른 의견을 피력, 충돌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법원과 학교는 자유로운 사고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이다. 법원은 자유를 수호하고, 학교는 젊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주류 사회에 반대하는 도전 정신을 존중하고 증진시켜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도 반대할 줄 아는 것은 생각과 실천, 배움의 출발점이다. 만일 반대가 없다면 이런 것들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밀턴은 1644년 저작 ‘아레오파기티카’에서 “갖가지 주장이 이 땅에 활개치고 다니도록 허용하라. 진리가 그곳에서 함께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의 힘을 의심해 다른 의견을 내놓지 못하도록 막는 행위는 어리석다. 진리가 거짓과 투쟁하게 놓아둬라. 자유롭고 공개된 대결에서 진리가 거짓에 패배하는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사상의 시장(市場)’이라 불리며 경제학의 자유시장 이론의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이론의 근본 정신은 시장이, 자유로운 사상 교류를 통해 무엇이 진리인지 진단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특정 사상이 경쟁에서 이겨 수용될지 여부를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연방 대법관 홈즈도 이 이론에 적극 동조했다. 그는 “우리가 열망하는 절대 선(善)은 자유로운 사상 교류 속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진리를 판단하는 최고의 잣대는 시장 경쟁 속에서 승리해 보편적 이념으로 받아들여질 힘을 지녔는가다. 진리는 다양한 사상이 표방하는 열망을 안전하게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법부와 교육계에도 주류 사회에 반대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활발한 반대 의견 개진을 허용하는 것은 헌재는 물론 국가 전체에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소속 연구관들에게 다양한 반대 의견을 개진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런 정신이 사법기관과 교육계에도 전반적으로 확산되길 희망한다. 우리는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문화를 강력히 비판한 풀브라이트 미국 상원의원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우리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도 반드시 고찰해야 한다. 우리는 반대자들의 목소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환영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것들이 말도 안 된다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멈춰 버리고 행동은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 션 헤이스 헌법재판소 연구원
  • [열린세상] 조건부 체제보장으로 북핵 해결을/홍현익 美 듀크대 초빙교수·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미국이 대북 강경 태도를 완화했지만 북한이 핵 보유 및 6자회담 참가 조건 미비를 선언함으로써 한반도 안보정세에 새로운 난기류가 조성되었다. 북핵문제의 직접 피해자로서 한국은 북한 및 미국과 각각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미 갈등을 외교적으로 풀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제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우리는 어떠한 정세 판단 하에 어떤 정책을 펴야 할 것인가? 먼저 북한의 지도부는 1인 독재체제를 고수해 왔고 국민을 기아상태에 내몰 정도로 국가운영에 실패해 왔다는 점에서 체제 유지 명분을 제대로 주장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기보다 100배 이상 강한 초강대국과 정면 대결을 서슴지 않겠다며 역사에 전례없는 무모함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핵 무장이 협상용 발언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정당방위 수단을 갖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그토록 수호해야 한다고 주창해 온 한민족의 안전과 평화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더구나 북한이 우리와 약속하였고 우리가 지키고 있는 한반도비핵화 약속을 명백하게 어긴 것이다. 이렇게 북한의 책임은 크다. 이 시대 유일 초강대국이자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의 부시 행정부 역시 오류를 범했고 이를 지속하고 있다. 부시 정권은 그간 한국·중국·러시아 정부의 요청이나 국제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양자 대화나 협상보다는 대북 압박과 강경책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다. 북한의 핵 보유를 초래하고도 적절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고농축우라늄계획에 대해서도 증거를 밝히지 않고 의혹만 제기하면서 6자회담의 진전을 막아 왔다. 법정에서 검사가 피고의 죄를 입증하지 못하면서 피고에게 자백하라고 압박하는 격이다. 더구나 검사 미국은 적법한 재판을 거치지 않고 피고 이라크에 중형을 직접 집행했으나 아직도 이라크의 죄를 입증하지 못한 상태이다. 더구나 부시행정부는 악화된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느긋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핵 보유는 일본의 핵 무장을 유발하여 미·일동맹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고 한국 역시 핵 개발의 유혹을 받게 될 것이며 미국은 이를 막을 명분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동북아 정세 악화는 물론이고 북한이 이를 테러집단에 수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북한을 회담장으로 유인할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은 초강대국의 책임있는 자세로 보기 어렵다. 미국이 대응책으로 강구중인 대북 경제제재는 북한 정권보다는 주민에게 더 피해를 입힐 것이다. 만일 무력제재가 실현되어 북한이 사생결단의 각오로 저항할 경우도, 북한이 붕괴하는 동시에 한국·일본·중국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고 미국 역시 막대한 전략적 손실을 볼 것이다. 이처럼 대북 무력제재는 사실상 시행할 수 없는 대안이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북한이 회담에 돌아와 협상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이라는 것을 자각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대북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그러나 북핵문제를 자신의 생존과 직결시키고 있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굴복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미국이 관용을 베풀어 방법과 절차에서는 양보하되 내용에서는 핵 폐기를 얻어내는 형태로 문제가 해결되도록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서구가 1975년 헬싱키협정으로 소련이 갈구하던 유럽의 국경선 현상 유지를 인정해 주면서 인권조항을 삽입시켜 중장기적으로 소련의 해체를 유도했던 교훈을 되새길 시점이다. 즉 미국이 북한의 체제보장을 약속하는 양보를 먼저 행하되 이를 북한의 핵 폐기와 긴밀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북한이 그 과정에서 위반할 경우 한국·중국·러시아·일본의 지지 하에 북한을 강력히 제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 형태로 북핵문제는 6자간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우방 미국은 존경받는 초강대국의 명성을, 그리고 한반도는 평화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홍현익 美 듀크대 초빙교수·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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