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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그리운 정론직필/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열린세상] 그리운 정론직필/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는 듯하다. 인간이기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알려고만 하다가 불행으로 치닫는 옛이야기들이 많다. 에덴동산 이야기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신처럼 지혜로울 수 있다는 호기심에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는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는 롯의 아내가 호기심 때문에 뒤돌아봄으로써 소금기둥이 된다. 하지만 그 같은 성경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호기심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그에 비하여, 그리스 신화인 판도라 상자 이야기는 인간이 호기심을 신에게 부여 받음으로써 지적문명을 이루었다고 다소 긍정적으로 말해준다. 또한 인간이 호기심을 누르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잘 묘사하고 있다. 바로잡을 사항도 있어, 그 주요대목을 간추려본다. 신체적 열세인 인간을 도와주려고 프로메테우스는 태양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준다. 그때부터 인간은 신처럼 만들고 생각하게끔 되었지만, 제우스는 분노한다. 금지규정을 어긴 프로메테우스를 징계하고, 수혜자인 인간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좀 묘하게. 제우스는 흙으로 빚은 여자 판도라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다른 모든 신들은 자기의 특징을 선물한다. 헤라는 호기심을 주고, 헤르메스는 열면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금빛 상자를 준다. 그 상자의 소유만으로도 즐거운 판도라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다. 헤르메스가 그렇게는 말했어도, 속내는 빨리 열어보고 그 소중한 선물에 대한 감사표시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또한 강력해진다. 오직 여느냐 마느냐의 고뇌에 지치고 허덕이다가, 마침내 이럴 바에는 끝내야 한다는 충동이 판도라를 휘감는다. 상자가 열리자 인간에게 불행과 재앙을 초래하는 해악한 존재들이 튀어나와 날아가기 시작했다. 상황을 깨달은 판도라는 안간힘을 내어 마지막으로 나오는 존재를 밀어 넣고 상자를 닫는다. 그 가둔 것이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책에서는 희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자 안에 갇히면 바깥세상에 없으므로, 그건 맞지 않다. 어느 영문판에 의하면 인간에게 해악을 정확히 알려주는 존재를 가두게 되어 세상에 희망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판도라의 행위로 인간은 불을 갖는 대신에 죄악과 불행에 시달리는 벌을 받게 되었지만, 다행히 그 때와 강도를 모르게 되었다. 호기심으로 인간의 운명이 바뀌어졌다. 작금의 떠들썩한 보도도 호기심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가짜 학위 사건으로 시작되는 변양균-신정아의 행위는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그렇게 큰 비중으로 다룰 문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이유가 있다면 조그만 정부의 흠집이라도 큰 호재로 보는 언론이 있고, 그 기사에 환호하는 관중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의도된 화살이 과녁에 맞을 때 관중들은 전율한다. 게다가 그 의도가 동지의식을 나타내주어 더 환호하게 만든다. 요즘 들어 부쩍 신문들은 호기심과 집단의식을 자극하며 여론을 몰아간다. 신문사와의 호불호로 기사의 색채가 너무 차이난다. 일부 신문은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나타내어 기관지란 느낌도 든다.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서 약한 인간의 밑바닥 모습까지 들추어내는 기사에는 월간지 또는 주간지 같다는 느낌이다. 그런 여론몰이에 사법기관도 장단을 맞추는 듯하다. 같은 편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만큼 기사의 한 줄이 주요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또한 과거와 달리 언론은 전가보도처럼 알 권리를 자주 내세운다. 군사독재시절보다 지금이 언론자유가 없다는 신문도 있다. 그 기준의 혼란에는 현 정부의 어설픔과 기득권층의 자기보호가 깔려 있는 듯하다. 어떻든 언론사의 의도에 따라 선악이 달라지거나 표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언론은 모름지기 어느 층을 대변하든 정의로워야 한다. 정론직필의 사명감이 그립다. 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 “文革은 민주주의 발전의 극단”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도널드 창(曾蔭權) 홍콩 행정장관이 “민주주의는 문화대혁명 같은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발전과 통치 효율’을 언급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는 “문혁(文革)은 민주주의 발전이 극단으로 치달은 경우”라고 주장했다. 문혁에 대해 부정적일 뿐 아니라 직선제 도입 등 홍콩에서 높아져가는 민주화 요구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됐다. 그는 “사람들이 극단으로 가게 되면 예컨대 문화대혁명 같은 상황에 이를 수 있다.”면서 “인민들이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게 되면 정부로선 인민을 통치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권력을 장악한 인민들이 이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통념상) 민주주의라고 여겨지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이어 “미국처럼 민주주의가 지나치게 활발하면 정책시행도 어렵게 된다.”면서 “민주주의가 반드시 효율적인 정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바로 민주화 운동가와 지식인, 정치인들로부터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중국 공산당 정부도 문혁을 결코 민주주의라고 한 적이 없는데 홍콩의 행정수반이 문혁을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칭송하느냐.”“역사 인식과 민주주의 가치관이 의심스럽다.” “정부 독재를 꿈꾸는 것 아니냐.”“역사공부를 더 해야 한다.” 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문혁은 무정부주의이고 우민(愚民)주의였지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등의 지적도 잇따랐다. 그러자 창 행정장관은 “일반인의 분노를 야기할 만한 나쁜 예를 들었다.”며 실수를 시인했다. 행정장관실도 보도자료를 통해 “홍콩의 상황에 가장 잘 맞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창 행정장관은 직선제 도입 일정을 밝히는 ‘정치체제 발전 녹서(綠書·Green Paper)’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현재 의견수렴 절차가 진행 중이다. jj@seoul.co.kr
  • [女談餘談] 그녀들의 귀환/이순녀 국제부 기자

    독립영웅의 딸로 태어났다. 두살때 국부로 추앙받던 아버지를 정적의 손에 잃었다. 열여섯살에 인도로 떠난 뒤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정치와 경제, 철학을 공부하며 학자의 길에 몰두했다. 그러나 1988년 잠시 들른 고국땅에서 군부가 시위대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포를 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명망있는 총리의 딸로 태어났다. 스물여섯살때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부친이 처형되자 부친이 창당한 정당의 중앙위원이 되어 반정부 운동에 앞장섰다. 두 차례 총리로 재임하며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지도자라는 호칭을 얻었다. 미얀마(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와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지도자인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나이는 수치 여사가 62세로 부토 전 총리보다 여덟살 많지만 둘 다 부친의 정치적 영향력을 물려받았다는 점, 외국 유학파 출신이라는 점, 군부정권에 맞서는 정당의 지도자라는 점 등이 판박이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부토 전 총리는 2005년 여성세계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정치적 자유를 잃고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도 비슷하다. 수치 여사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반복적인 가택연금에 시달리고 있다. 부토 전 총리는 페르베스 무샤라프 현 대통령이 무혈쿠데타에 성공한 98년 런던으로 망명해 10년 가까이 외지에서 머물고 있다.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군부정권에 의해 수족이 묶이고, 언로가 막혔던 그녀들이 다시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수치 여사는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민주화시위에서 변함없는 영향력을 드러냈다. 유엔 특사가 수치 여사를 면담하는 등 국제 여론이 악화되자 미얀마 군부는 마지못해 그녀에게 대화를 제의하며 유화책을 펴고 있다. 부토 전 총리도 장기집권을 노리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권력분점 제안에 따라 오는 18일 망명생활을 접고 귀국할 예정이다. 그녀들의 귀환이 폭력과 독재로 얼룩진 두 나라에 평화와 민주주의의 새 기운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이순녀 국제부 기자 coral@seoul.co.kr
  • [정책선거 원년으로] 범여권, 中·러 연계개발 주력… 이명박은 대운하

    [정책선거 원년으로] 범여권, 中·러 연계개발 주력… 이명박은 대운하

    국토개발·건설과 관련된 역대 대통령 선거의 단골 공약은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완화’다. 국토개발·건설 분야에서는 각 후보의 정책 비전이 드러나는 편이라 ‘큰 그림’이 많이 제시된다. 그러나 대선 때마다 반복적으로 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해소책이 제시됐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국토개발공약은 다른 정책분야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17대 대선 후보들의 국토개발·건설 관련 공약을 전체적으로 비교해보면, 범여권 후보들은 중국횡단철도(TCR)나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계, 한반도 상생경제, 항공우주 7대 강국, 한반도 시대, 환황해 경제권과 환동해 경제권, 한반도의 국제 물류 중심지화 및 세계적 관광지대화 등 한반도 전체를 중심에 두고 있다. 대륙을 연결하며 국토개발의 시야를 넓히는 가운데 발전의 근거를 찾는다는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국토개발·건설 공약은 ‘대운하 건설’로 종합되고 있어 국내 개발 차원에 시각이 머물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孫·鄭·李의 장기계획´ 실현성 제고 과제로 국토개발과 건설 이슈는 국가발전의 견인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각 후보의 공약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비전이다. 그래서 국내 차원의 균형발전과 분산을 강조하던 데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과 사회·경제적 발전의 원동력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정동영·이해찬 후보의 공약이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 여부를 놓고 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득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한반도의 국제 물류 중심지화 및 세계적 관광지대화를 내세웠지만 다른 후보에 비해 구체성이 더 떨어진다. 지역밀착형 노동중심 혁신 클러스터 구축 공약은 노동 공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 공약과 달리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인 지역의 발전을 어떻게 촉발시키고 기여할 것인가를 구체화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만 지역경제발전협의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갖춰져야 할 운영원리를 제시해야 하는 게 과제다. ●이명박 외엔 교통공약 찾아볼 수 없어 역대 대선에서 후보들은 물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규모 교통시설 건설, 대도시 교통난 해소, 대중교통 활성화 등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17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는 이런 교통분야의 공약을 아직까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명박 후보만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해서 광역교통 연합체인 수도권 광역교통 행정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다. 이런 공약은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나왔던 공약이었고, 수도권 집중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없이는 미봉책 수준을 넘지 못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다른 후보들은 교통분야 역시 민생분야임을 깨닫고 정책생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오수길 한국디지털대 교수 ■후보별 공약 점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건설 공약은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만약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공약 실현 과정 내내 시비가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공약으로, 사회적 통합을 결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당 내에서도 ‘내수시장 위주의 공약’이라거나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토목공사’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재검토 또는 수정을 시사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명박, 대운하 사회통합 미흡 이명박 후보가 최근에 밝힌 재개발 및 재건축 완화, 용적률 상향조정, 전매제한 단축 등의 입장, 그리고 수도권 광역도로망 및 광역철도망의 조속한 완성 등의 공약은 경부운하 건설을 통해 국가 전체를 균형 있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균형’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수도권 위주의 국토개발과 건설을 지속하려는 것이라면, 현재까지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이 상당부분 성공한 것으로 보는 것인지, 시장원리에 따라 어차피 균형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이명박 후보의 공약은 그래도 상당부분 구체성을 갖추고 있는데, 여권 후보들의 공약은 아직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들 모두 이명박 후보의 공약에 대해 ‘토목공사’로는 국가발전을 이뤄낼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나름대로 각자의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실현가능성은 불분명한 상태다. 경제개발의 원동력을 남북 공동의 국토개발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후보들이 내세우는, 남북이 공동으로 나서야 하는 새로운 국가발전의 비전은 정치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로드맵과 병행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장기적인 사회·경제적 편익까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여권 후보들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비용이나 예상치 못할 위험들을 고려하면, 그에 따른 편익이 훨씬 높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프라 구축 등에 들어갈 비용의 조달 방법, 정치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국내 정치적 합의과정과 남북의 합의과정에 대한 로드맵도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나아가 세계경제체제에 편입된 이상 안정적인 일자리는 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다른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설득도 비전 제시와 함께 이뤄질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여권, 공약 구체성, 실현 가능성 결여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후보는 토목공사가 아니라 창조적 국토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포털로서의 광역수도권, 글로벌 물류 및 대일 비즈니스 포털로서의 광역영남권, 동북아 브레인 포털로서의 광역중부권, 대중 비즈니스 포털로서의 광역남부권 등 광역대도시권의 건설을 주장한다. 인천, 태안-안면, 새만금, 압해-화원, 광양-남해, 부산-진해 등 6대 개방특구 조성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공약을 ‘개발독재시대형 토건국가 중심’의 정책이라고 규정하고,‘삶의 질 성장을 위한 지속가능발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마련한 것이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7대 공약’인데, 개발독재 시기의 건설 분야와 이후 성장한 제조업 분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것은 ‘항공우주 7대강국 도약’ 비전이다.‘AIR-7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헬기를 포함한 중소형 대중항공기를 독자적으로 개발·운영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대중항공의 동북아 거점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해찬 후보는 ‘한반도 시대’를 추진하기 위한 4대 전략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경제공동체 형성, 한강·임진강·서해안 평화공동수역 조성,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등을 내세운다. 이 가운데 한반도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핵심과제로는 개성공단 3단계 조기완공, 북한 4대 경제특구 활성화, 북한 고속도로망 건설추진, 남북한 연계 관광사업 추진, 남·북·중·러 북방경제협력체제 구축 등을 제시하고 있다. 개성공단을 모델로 남포, 평양, 신의주를 특구로 개발하고 북한 동해안의 금강산, 원산, 단천, 나진·선봉이 개발되면, 미국-일본-남북한-러시아가 연결되는 환동해경제권이 완성돼 동해안 일대의 발전이 일어난다는 구상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경의선과 동해선을 개통, 대륙횡단철도와 연결해 21세기 철의 실크로드를 만들어 아시아와 유럽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고, 중국·몽골·러시아·중앙아시아와의 직교역을 활성화하며, 러시아 석유와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한반도종단 수송관으로 연결해 활용하고, 또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국제물류중심지로서의 한반도를 건설한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한정된 국토와 환경용량을 소모하는 방식의 경제성장은 영원할 수 없고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는 한반도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고 비판하며,‘생태적 경제 비전’을 제시한다. 이와 관련되는 것이 ‘노동중심 혁신 클러스터’라 할 수 있다. 울산 자동차산업, 포항 제철산업, 광양 석유화학산업, 창원 기계산업, 대구 섬유산업, 수원 반도체산업 등 지역경제의 핵심 축으로 특화된 공단들에 주목한다. 기존의 지역단위 노사정위원회를 발전시켜 노사정-금융-대학이 참여하는 지역경제발전협의체를 가동하고 특화된 공단의 지역경제적 특성을 살려 지역밀착형 노동중심 혁신 클러스터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손학규 “본고사 찬성 아니다”… 교육분야 입장 밝혀와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통령 경선 후보 측은 11일 ‘손 후보가 본고사 부활을 찬성한다.’는 본지의 보도<11일자 4면>와 관련, 자료를 보내와 “본고사든 수능시험이든 대학이 결정할 수 있는 자율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손 후보 측은 ‘기여입학제 찬성’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으며, 국민정서상 도입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일관성있게 유지해왔다.”고 밝혔다. 자립형 사립고 설립 자율과 관련해 “자립형 사립고 설립 자율은 지방에 국한된 것”이라면서 “자사고만을 의미하지 않고 대안학교와 특성화고 등을 지방에 설립할 때 규제를 적극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 피노체트 자녀 5명 감옥행

    칠레의 독재자 고(故)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자녀 5명이 부패혐의로 체포돼 수감됐다. 5일 BBC 등 외신들은 칠레 법원이 피노체트의 딸 세명과 아들 두명을 2개 교도소에 나눠 수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피노체트의 부인 루시아 히리아르트(84)는 고혈압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 뒤 구속적부심을 신청했다. 피노체트 일가족은 피노체트가 집권했던 1973년부터 90년 사이 정부자금 2700만달러(약247억원)를 외국 은행 계좌로 불법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카를로스 세르다 판사는 “피노체트 일가가 워싱턴 DC에 소재한 리그스 은행에 정부 자금을 은닉했다는 혐의에 대해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피노체트의 전 개인 비서 모니카 아나니아스, 변호사 구스타보 콜라오 등 관련 용의자 17명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피노체트 독재시절 활동한 퇴역장성도 최소한 3명 이상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산티아고 고등법원은 이미 2005년 6월 피노체트의 탈세혐의에 대해 면책특권을 박탈한 바 있다. 미첼 바첼렛 대통령은 “법원의 판결을 조용히 기다릴 것”이라면서 “칠레에서 법 위에 군림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피노체트 일가의 변호사인 파블로 로드리게스는 “체포명령이야말로 불법”이라면서 “항소과정에서 판결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노체트 전 대통령은 1973년 유혈쿠데타로 사회주의 성향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한 뒤 90년까지 철권 통치로 군림했다. 민정 이양 이후 독립적 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군부 통치기간 3197명의 시민이 정치적 이유로 살해되거나 실종됐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이 시기를 배경으로 배우 시고니 위버가 등장한 영화 ‘진실’을 만들기도 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부토 파키스탄 정계 복귀 길 열렸다

    오는 18일 망명 10년만에 귀국하는 파키스탄 전 총리 베나지르 부토의 정계 복귀 길이 열렸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그녀의 부패혐의를 말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르면 3일(이하 현지시간) 부토가 연류된 부패사건과 관련된 정치인들의 일괄 사면을 허가하는 내용의 법령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AP 통신이 2일 전했다. 사실상 정치적 해금조치다. 무샤라프가 부토에게 손을 내민 것은 국민적 인기가 높은 그녀를 국내에 불러들여 정정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포석이다. 부토와의 권력분점 협상도 재개해 ‘적과의 동침’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무샤라프는 부토가 차기 총선에서 승리하면 그녀와 권력을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3일 AP가 전했다. 부토는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 지도자로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총리의 딸이다. 총리였던 아버지가 모하메드 지아 울 하크 육군참모총장의 쿠데타로 실각하고 1979년 처형되자 반정부 운동을 벌였다.1981년 체포돼 3년간 옥살이를 한 뒤 1984년 유럽으로 망명했다. 하크 대통령이 계엄령을 풀자 1986년 4월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1988년 8월 하크대통령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고 실시된 11월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인민당이 최다 의석을 획득함에 따라 총리로 취임했다. 이후 군부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민주화개혁을 시도했으나 군부와 야당의 견제로 좌절됐고 91년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1992년 정권 퇴진,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반정부시위를 주도해 1993년 10월 재집권했다.1997년 부패사건에 연루돼 사임한 뒤 다시 망명길에 올라 두바이와 런던에서 지금까지 망명생활을 해왔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미얀마 또 봄날은 간다

    대규모 시위로 촉발된 미얀마 사태가 꼭 2주일째를 맞은 2일 민주화 함성으로 가득했던 옛 수도 양곤은 정적만 감돌았다고 BBC 등 외신들이 이날 전했다. 10만명이 모여 들끓던 양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또 한번의 좌절 때문인지 시민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짙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들은 “시위가 끝났나?”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손으로 ‘X’를 그으며 “끝났다.”고 잘라 말해 절망감이 그득히 묻어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군사정권이 단행한 야간 통금령은 1주일째 풀리지 않았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일 제네바 유엔유럽본부에서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회의를 개최,“미얀마 당국이 폭력을 최대한 자제하고 추가 폭력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모든 정치범도 지체없이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특사가 평화적 사태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이날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최고 지도자인 탄 슈웨 국가평화개발평의회(SPDC) 의장과 면담했으나 10분만에 끝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대화내용도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거리 시위가 늘 성공적인 민중봉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정권의 불안정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강제진압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일깨워준다.”고 밝혔다. 방송은 이번 민주화 운동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독재정권 타도의 5대요인을 제시했다.5대요인은 1. 대중시위 확산과 다양한 사회·경제단체 참여 2. 명확한 구상을 가진 야당 중심의 세력 결집 3. 메시지 전파를 위한 미디어 이용 능력 4. 군정 내부에서의 쿠데타와 개혁파 출현 등 정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체계 5.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 국가들로부터의 외부압력 등이다. 이같은 분석에 따르면 군사정권에 맞선 이번 미얀마 시위는 실패로 끝난 1988년 88사태를 되풀이할 것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영국 더 타임스는 미얀마 반체제 인사들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운영하는 ‘버마의 민주 목소리(DVB)’ 방송 보도를 인용, 만약의 사태를 우려한 슈웨 의장의 부인과 딸, 사위가 싱가포르로 피신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양곤의 폐쇄된 경마장이나 대학건물 등에 감금된 승려 수천명이 북부 감옥으로 이송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AP통신은 실제 시위로 빚어진 참상이 알려진 것보다 더하다고 보도했다. 또 “시민들이 정부가 운영하는 화장터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다.” “두들겨 맞아 숨진 승려의 시체가 강물에 떠다녔다.”는 등의 소문마저 나돌아 민심이 흉흉해졌다. 재미 반정부 단체인 ‘버마를 위한 미국운동’은 지난달 27일 양곤 시내에서 군인들이 자동소총을 갈겨 100명이 숨졌으며, 양곤 북쪽에 있는 탐웨 마을의 한 고교에서도 총을 쏴 학생 1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미얀마, ‘이 한 장의 사진’/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지난주 가장 큰 뉴스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승려와 민간인을 미얀마 군부독재정권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추석 다음날인 26일 옛 수도 양곤에서 수만명의 승려와 시민들이 가두시위를 벌였고, 미얀마 군·경은 최루탄과 실탄을 발포하여 적어도 1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서방의 외교소식통 등에 따르면 사망자의 수는 수십명에서 이백여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독재정권에 맞서서 미얀마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와 이를 무력으로 탄압하는 현장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금요일인 28일자 조간에 일제히 실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진은 양곤에서 로이터가 전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경찰과 군대를 피해 고개를 숙이고 달아나는 민간인을 곤봉을 든 경찰과 자동소총을 겨눈 군대가 쫓는 장면을 담고 있다. 붉은 색의 커다란 철제 시설물과 변전시설을 에워싼 철망을 배경으로 시위대가 잃어버린 샌들이 흩어진 도로의 오른쪽 하단에 일본인 기자인 나가이 겐지가 쓰러진 채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있고, 그의 바로 옆에는 한 병사가 그를 향하여 자동소총을 겨누고 있다. 나가이 기자는 바로 이 장면에서 가슴을 관통한 한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로이터가 전한 ‘이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에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남녀노소의 민간인이 대나무 방패와 곤봉을 든 경찰과 자동소총을 겨누는 군대를 피해 달아나는 장면은 폭압정권의 실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달아나는 시위대 군중 속의 한 남자가 달려오는 곤봉을 든 경찰이나 자동소총을 겨눈 군인이 아닌 길바닥에 쓰러진 기자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돌아보는 모습도 보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사진은 28일자 조간에 일제히 실렸다. 그러나 이 사진을 1면 머리로 실은 다른 신문과 달리 서울신문은 국제면인 16면에 게재하였다. 게다가 카메라를 든 채 도로에 쓰러진 기자의 모습과 그 기자를 향해 자동소총을 겨누고 있는 미얀마 병사의 모습을 담은, 가장 극적인 사진이 아닌 이미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이는 기자를 병사들이 지나쳐서 시위대를 향해 쫓아가는 모습이 담긴 연속 촬영의 다음 장면의 사진을 게재하였다. 이 장면도 물론 중요하지만 긴박한 현장의 생생한 순간을 담은 가장 극적인 사진은 분명 아니다. ‘이 한 장의 사진’에 대한 28일자의 사진 설명도 미흡하였다. 서울신문의 사진설명은 “미얀마 반정부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27일 군·경이 옛 수도 양곤 중심부에서 수천명의 시위대에 발포, 해산하는 과정에서 부상당한 한 남자가 길위에 누워 있다.”고 전했다. 같은 사진을 게재한 한 조간은 “오른쪽에 쓰러진 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사람이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다. 그는 결국 숨졌다.”고 현장상황을 인적 사항과 함께 전하며 쓰러진 사람의 생사를 확실하게 보도하였다. 물론 또 다른 조간은 같은 사진에 대해 “오른쪽에 부상당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 시위자가 힘없이 길 위에 누워있다.”는 잘못된 사진설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서울신문은 29일 토요일자 지면에 나가이 겐지가 카메라를 든 채 쓰러져 있고 미얀마 병사가 자동소총을 겨누는 극적인 장면의 사진을 다시 게재하고 상세한 정황 설명과 함께 “아무도 안 가는 곳 누군가는 가야” 한다고 했던 나가이 겐지의 기자정신을 기리는 도쿄특파원의 박스기사를 11면 톱으로 실었다. 금요일자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 후속보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감이 든다. 나가이 겐지 기자와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모든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긴박한 상황에서도 ‘이 한 장의 사진’을 촬영한 기자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 [미얀마 유혈사태 확산] 亞대표 富國서 세계 최빈국으로

    ‘아시아 리더 국가에서 세계 최빈국(最貧國)으로.’ 군부독재 45년을 거친 미얀마가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미얀마는 세계적인 쌀 생산지답게 1960년대엔 필리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부국(富國)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인당 평균 소득이 200달러에 불과하다. 반세기 만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떨어졌다. 철권통치를 앞세운 군정의 잇따른 정책실패가 경제파탄을 자초했다. 미얀마 군부의 민주화 운동 탄압에 반대하는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의 경제제재가 국민생활을 더 궁핍하게 만들었다. 미얀마는 1962년 네윈이 군사쿠데타로 집권하면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주요 산업을 모두 국유화했다. 사회주의 정당 말고는 정당활동도 모두 금지했다. 외부세계와도 철저한 고립화·폐쇄화 정책을 펴서 주요 소득원인 쌀수출 급감 등 경제난도 불러왔다. 네윈은 1988년 최소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뒤 물러났다. 그러나 ‘얼굴’만 바뀌었을 뿐 군부독재는 지속된다. 현 집권 군부세력의 부정부패는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켰다. 지난해에는 물가폭등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서민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1.7㎏에 3000차트였던 닭고기 값이 한 해 만에 5500차트로, 야자유는 1.7㎏에 1250차트에서 2300차트로 두 배 가까이 뛰는 등 국민들은 생필품값 폭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정부 재정적자가 심해지자 군정은 나라 살림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세금을 올렸고 중소기업들이 잇따라 몰락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군정이 또다시 천연가스값을 4배나 올리고 기름값도 인상하면서 대규모 시위대가 19년 만에 다시 거리로 나서게 됐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미얀마 유혈사태 확산] 中, 국익과 국제여론 사이 고민

    미얀마 반정부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최우방인 중국의 대응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국가 이익과 국제 여론을 저울질하며 미적거리는 형국이다. 중국은 미얀마 20여곳에서 해저유전과 가스전 개발사업을 벌이고, 군사정권 출범 이후 14억달러어치 이상의 무기를 제공하는 등 미얀마 최대 교역국이자 오랜 동맹국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미얀마 군부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도 중국이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애초 “미얀마 사태의 조속한 안정을 희망하지만 이번 일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 논의에 대해서도 “현지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가 27일 시위대에 발포를 가해 일본인 사진기자 등 10명이 사망하면서 국제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중국도 당혹스러운 눈치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8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미얀마 사태 해결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같은 변화의 조짐을 뒷받침한다. 중국 정부는 미얀마에 외교부 당국자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을 파견, 군부 핵심인사들과 만나 더 이상 희생자를 내지 않도록 자제를 촉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으로선 미얀마 군부의 강제진압으로 인한 주변 정세 불안과 국제적 비난을 모른 척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가뜩이나 중국은 수단 다르푸르 사태로 인권문제에 대해 국제사회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이날 “중국이 회유를 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인 압박을 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회의적으로 전망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미얀마의 민주항쟁 여파가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중국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너무도 슬픈 내 조국 버마…”

    “너무도 슬픈 내 조국 버마…”

    “지옥이다/군부독재정권은 사탕을 개에게 던졌다/개가 빨아먹어 녹아 없어지는 사탕처럼, 군인이 빨아먹어 버마가 녹아 없어지고 있다/여기가 지옥이다/단결은 어디 있고, 평화는 어디 있나/두려워 숨어 있나/서로 껴안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그래야 싸울 수 있다(‘따야 민 카익’의 시 ‘어디에 있나?’ 중에서).” 그의 시어는 거칠다. 에둘러 가지 않는 직설이다. 꾸밈도 은유도 없는 날것이다. 시인 고 김남주와 젊은 시절 김지하의 언어를 닮았다. 그에게 현 군부독재 버마(군사정권이 개칭한 국호 ‘미얀마’ 대신 옛 명칭 ‘버마’를 고수하는 민주인사들의 뜻을 존중해 ‘버마’로 표기)는 김남주와 김지하가 목숨 걸고 싸웠던 과거 한국의 판박이다. ●필명‘따야 민 카익’뜻은‘군정을 무너뜨리다’ 필명 ‘따야 민 카익’, 본명 쩌모르윈(37).27일 밤 서울 구로동 한 호프집에서 만난 그는 “내 조국 버마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침통해했다. 유혈사태까지 발생한 버마 국내의 참극에 마음이 상할 만큼 상해 있었다.“군사독재국가여도, 그 때문에 내가 나라 밖으로 떠돌고 있어도, 난 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이젠 왜 버마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고통스러워했다.“스님에겐 아들이라도 손을 모으고 예를 갖추는 게 버마 사람들인데, 군인들은 스님들을 개머리판으로 때리고 있다.”며 버마로부터의 전언을 아프게 토해냈다. 쩌모르윈은 국내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5명의 버마 시인 중 한 명이다. 모두 민주화운동을 하다 한국으로 몸을 피한 경우다. 윈 포 마웅과 나잉윙 아웅은 버마에서 시집을 내며 정식으로 등단했고, 얀나이툰은 한국 문학계간지 ‘실천문학’에 시(‘아내를 위한 시’)를 발표했다. 쩌모르윈은 자신의 시를 버마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 소식지에 실어 ‘동지들’의 마음을 위무했고, 지난해 11월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인 모임(공동대표 유종순)’과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들 모임(대표 임동확)’이 마련한 ‘버마 혁명시인들의 시낭송회’에 초청받아 시를 낭송했다. 지난달 27일엔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자들의 무사석방을 요구하는 호소문에 버마 작가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쩌모르윈의 시는 조국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무기’와도 같다. 필명 ‘따야 민 카익’마저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겠다(‘따야=별’,‘민 카익=왕을 무너뜨리다’)는 다짐으로 지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 집회를 조직했고, 먹고 살기에도 벅찬 박봉의 상당 부분을 떼어 버마 내 민주화운동 지원자금으로 보내 왔다. 최근엔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CD로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태국의 미얀마난민촌에 보내고 있다.“시 쓰고, 노래하고, 노동해서 돈 벌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이라고 쩌모르윈은 설명했다.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 ‘8888항쟁’(1988년 8월8일에 정점에 이른, 버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민중 총봉기) 당시 쩌모르윈은 17살이었다. 총을 쏘며 뒤쫓는 군인들이 무서워 그는 수 년 간 국경지대로 도망다녔다.NLD 멤버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사와 간호사 일을 잃었고, 모든 생계활동이 봉쇄됐다. 쩌모르윈은 4500달러를 빌려 브로커에게 주고 97년 8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한국행을 택한 이유로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또 극복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대와 실제는 달랐다.2000년 난민 인정 신청을 접수한 그에게 한국 정부는 출국통보를 내렸다. 그와 동료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쩌모르윈은 “한국에 오래 있고 싶어서 난민 신청한 게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지 난민 인정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한국 정부만큼은 우릴 이해해줄 줄 알았다.”며 섭섭함을 나타냈다. 그는 태권도 도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먼저 일하던 공장에서 한국인 노동자의 폭행위협이 무서워 뛰쳐나온 이후 8개월 만에 얻은 일자리다. 쩌모르윈은 “한국은 버마만큼이나 공포스러운 곳”이라고 했다. 버마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한국에선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다. 버마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는 단속과 검거의 대상일 뿐이다. “버마가 민주화되지 못하면 숨 쉬고 살 수 없듯, 한국에 머물지 못하면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 인권 앞에선 버마인도, 아프리카인도, 한국인도 없습니다. 인간만이 있을 뿐입니다.” 쩌모르윈과 만나는 내내 그의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어댔다. 그때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버마어로 무언가를 빠르게 설명했다. 뉴스도 인터넷도 접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버마 정황을 세세히 전하고 있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사설] 미얀마 유혈사태 국제사회가 막아야

    미얀마에서 반정부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군사정권의 기름값 대폭 인상으로 촉발된 민생 시위는 승려들이 가세하면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야간통행금지와 시위금지 조치에도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군사정권은 그제 병력을 투입해 강제진압에 나섰다. 미얀마 정부는 부인하고 있으나 진압 과정에서 적어도 4명 이상이 숨지고 100명이 넘는 부상자를 냈다고 한다. 또한 옛 수도 양곤에 있는 사원을 덮쳐 승려들을 다수 연행했다. 평화적인 비폭력 시위대에 총을 쏘아대는 군사정권의 야만적인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압정에 못 이긴 수십만명이 거리에 나서 독재자를 퇴진시켰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군에 의해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1988년의 유혈사태를 기억한다. 당시 군부는 시위대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며 학살에 가까운 진압으로 국제사회를 경악케 했다.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정당이 80% 이상의 의석을 얻었으나 군정은 민정 이양 약속을 어겼다. 이번 미얀마 시위는 5000만 국민들의 가슴 속에 억눌려 있던 장기 군사독재에 대한 불만이 유가 인상을 계기로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19년 전의 불행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유엔이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선진 8개국 외무장관들도 폭력을 비난하고 대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미얀마에 경제·군사적 영향력을 지닌 중국이 나서야 한다. 중국은 지난 1월 유엔 안보리의 미얀마 제재안을 “내정간섭”이라며 거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군부를 지지하는 듯해서는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라고 할 수 없다. 유혈사태 확산을 막아야 한다. 나아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80년 민주항쟁 경험이 있는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 미얀마軍 시위대에 발포 최소10명 사망

    미얀마 승려들의 반정부 시위가 집회 금지 및 야간 통금령 속에서도 거세지는 가운데 군사정권이 사원을 급습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26일 유혈진압으로 4명이 사망한 데 이어 27일 시위진압과정에서 적어도 10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했다고 요미우리신문 등 외신들이 전했다. 승려들이 이끄는 민중 시위대와 군사정권간의 충돌이 격화하면서 미얀마 사태는 3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1988년 민주화운동 때를 재연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에 몰아친 검거선풍 군사정권은 이날 새벽 양곤 북쪽 모에 카웅과 느웨 키야 얀 등 주요 불교사원에 실탄을 쏘며 급습, 승려 200여명을 끌어갔다고 AFP·교도 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7만여명의 시위군중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발포로 일본 영상전문 통신사인 ‘APF 뉴스’ 소속의 사진기자(50) 1명을 포함한 외국인 2명 등 이날 하루만 최소 10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까지 전국적으로 시위에 참가한 승려 1500명이상이 구금됐고, 군경은 자동소총 등으로 발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정부가 이메일까지 통제한 가운데 전체 인구의 1%도 안되는 인터넷 인구가 국제사회에 상황을 중계하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하기도 했다. 제2의 도시인 만달레이의 한 시민은 “군사정권은 꼭두각시 언론들을 통해 승려들이 시민들을 선동한다고 비난, 유혈사태에 대한 구실을 찾고 있다.”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88년 유혈사태가 재연될까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가한 승려는 “자금 등 많은 것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있었으나,(집회에 필요한) 식수 제공만 받아들였다.”면서 “국민들은 박수갈채로 우리를 환영했으며, 동료들이 매우 행복해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알렸다. 유혈사태 이후 양곤 시내는 상점이 철시하고 인적이 끊겨 쥐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시민들은 집에서 단파 라디오로 외국 언론의 보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자주색 혁명 불붙었다 “자주색 혁명(saffron revolution) 깃발 올랐다.” 영국 인디펜던트 등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이번 시위를 이렇게 일컬었다. 정치에 거리를 뒀던 승려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45년에 걸친 군사독재 종식을 외치며 시민혁명을 이끌고 있음을 지칭한 것으로 이번 사태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으리라는 점을 나타낸다. 자주색은 특유의 자주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을 상징한다. 이들은 파탄에 빠진 민생경제를 살려내려면 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민심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유가 인상으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이후 지금까지 최소 500여명이 미얀마 군경에 체포,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는 이날 미얀마 군사정권측에 평화적인 시위자들에게 폭력행사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얀마 당국에 유엔 특사의 입국 허용을 촉구했다. 안보리 이사국들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브라힘 감바리 전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을 미얀마 특사로 파견할 것을 밝힌 데 대해 환영했다. 유엔은 경제제재 등을 위협했지만 중국의 반대로 실효성 있는 설득방법이 없는 상태다. 왕광야(王光亞)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우리는 (미얀마에 대한) 제재가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가진 선진7개국 및 러시아 등 소위 G8은 “미얀마 군사정부 지도자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國名은 미얀마? 버마?

    미얀마의 공식 영어 국명은 ‘미얀마 연방(Union of Myanmar’이다.1988년 쿠데타로 집권한 현 군사 정부가 이듬해 영국 식민지때부터 불리던 버마(Burma)라는 국호를 미얀마로 바꾸고, 수도 랑군(Rangoon)도 양곤(Yangon)으로 변경했다.하지만 국호를 바꾼 지 19년이 지났음에도 서구에서는 여전히 미얀마와 버마가 혼용되고 있다. 특히 쿠데타 정권의 인권탄압과 독재정치 행태 등을 강력히 비난해온 미국과 영국 등지에선 버마란 국호를 고집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1991년부터 정부가 공식적으로 미얀마로 표기하고 있으나 1983년 버마 아웅산테러를 기억하는 세대들은 아직도 버마라는 이름을 더 친숙하게 여기고 있다. 미얀마의 수도를 여전히 양곤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현 수도는 양곤에서 북쪽으로 320㎞떨어진 산악도시 네피도(Naypyidaw)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은닉자산 찾기 사업/육철수 논설위원

    돈의 팔자도 사람의 운명만큼이나 기구하다. 누가 갖고 있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팔자가 천차만별이어서다. 돈이 처음 생길 때부터 검거나 흰 게 따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깨끗한 돈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검은 돈은 나라를 거덜내기 다반사니 돈도 주인을 잘 만나야 가치있는 법이다. 세계은행과 유엔이 며칠 전 ‘은닉자산회복 이니셔티브(StAR)’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가동한다고 밝혔다. 개발도상국의 부패한 독재자들이 해외로 빼돌린 자산을 찾아내서 해당 국가의 빈곤퇴치와 사회개발을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이른바 돈의 팔자를 바꿔주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마침 검은 돈의 비밀계좌가 많은 스위스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이 사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호응한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사실 스위스의 은행과 은행원들은 고객의 비밀보호를 위해 입이 무겁기로 정평이 나 있다.1930년대 독일의 나치정권이 유대인들의 재산 몰수를 위해 본국과 주변국의 은행들을 샅샅이 뒤졌는데, 스위스의 은행들만 계좌확인을 거부했다.1982년 이탈리아에서 체포된 스위스 은행원의 일화도 유명하다. 은행원 2명이 당시 로마에서 해외예금 유치활동을 벌이다가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됐다. 한 명은 비밀계좌 예금주의 신원을 밝힌 덕분에 풀려났으나, 다른 한 명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가 감옥에 갔다. 그러나 석방된 은행원은 스위스에 돌아가 국내법에 의해 벌금형을 받았고, 복역 후 귀국한 은행원은 영웅대접과 함께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국경을 넘어 신뢰를 쌓은 스위스 은행들에 세계 도처에서 단골고객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검은 돈의 유입인데, 이를 막을 방도가 없었다. 스위스가 1998년 ‘돈세탁 방지법’을 제정해 검은 돈의 차단막을 강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법이 생길 무렵에 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독재자 트라오레가 예치했던 390만달러,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돈 7억달러를 각각 그 나라 정부에 반환했다. 스위스 은행들이 독재자와 범죄자들의 검은 돈을 골라내는 데 이렇게 적극적이니, 돈의 진짜 주인을 찾아주는 StAR 프로그램의 성공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美 테러와의 전쟁 6년 성과있나

    MBC ‘W’는 9·11 테러 6주년을 맞아 7일 오후 11시50분 ‘테러와의 전쟁 6년, 세계는 안전해졌나’를 내보낸다. 지난 6년 동안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국제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미국·영국·파키스탄·이라크 등 4개국 동시 취재를 바탕으로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지난 7월 미국 정보기관의 NIE(국가정보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국제적 대테러 노력으로 알카에다의 능력을 크게 제한시키기는 했다. 하지만 알카에다는 현재 빠르게 부활하고 있다. 또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휴대전화로 지역 테러단체들과 긴밀히 연계할 수 있게 되면서 프랜차이즈식 조직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또한 무차별적 대테러 전쟁은 오히려 테러 세력을 키우는 꼴이 됐다. 미국 편에 선 아랍 독재정권들에 대한 반감과 반무슬림 정서는 이슬람 세계를 더욱 급진적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알카에다의 은신처로 지목되고 있는 파키스탄은 연일 계속되는 테러와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 이라크는 테러리스트 양성소로 변모한 지 오래다. 최근 이라크에서는 자살폭탄테러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말까지 1년 동안 발생한 건수가 최소한 540건에 이른다. ‘W’는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는 테러리스트 단체의 움직임과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빚어낸 참혹한 실상을 들여다본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짐 캐리, ‘진지하게’ 아웅산 수치 여사 석방 촉구

    짐 캐리, ‘진지하게’ 아웅산 수치 여사 석방 촉구

    ’웃기는’ 남자 짐 캐리가 자못 진지해졌다. 그동안 몇 편의 영화에서 그답지 않은 진중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지만 짐 캐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할리우드 최고의 코미디 배우다. 익살스런 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 그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짐 캐리는 ‘인권행동센터(Human Rights Action Center)’와 ‘버마(미얀마)’를 위한 미국의 캠페인(U.S. Campaign for Burma)ꡑ을 도와 11년째 가택 연금 상태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유튜브(YouTube.com)’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서 “군부정권의 탄압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수치 여사는 현대의 간디, 혹은 만델라에 비교될 정도의 영웅이지만 미국인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른다.”고 밝히고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라는 의미의 ‘웅산 히어로(unsung hero)’는 쉽지 않은 그의 이름과도 비슷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1988년 군사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항쟁을 무력 진압하며 최소 수천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미얀마 군부는 1990년 총선에서 83%의 지지를 받은 NLD(민족민주동맹)를 인정하지 않고 이 동맹을 이끄는 아웅산 수지 여사를 가택연금하는 등 군사 독재를 지속해 국제 여론의 비판을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인의 관심에서 벌어져 가고 있다. 수지 여사는 현재 미얀마의 양곤시에 장기간 자택연금 상태에 있다. 수지 여사는 지난 1991년 군부 독재정권과 맞서 비폭력 민주화 운동을 이끈 노력을 인정 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 = 배우 짐 캐리(왼쪽)와 아웅산 수치 여사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myungwlee@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독재정권식 통제… 홍보처 폐지를”

    “독재정권식 통제… 홍보처 폐지를”

    “모든 언론에 재갈을 물려 통조림 기사를 만들려고 한다.”(한나라당 정병국 의원) “국정홍보처가 아닌 국정혼란처고, 취재지원 선진화가 아닌 취재지원 후진화다.”(민주신당 전병헌 의원) 24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놓고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을 향해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지난 2∼3일 청풍리조트에서 정부기관의 정책홍보관리실장 44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합숙 워크숍에서 왜곡된 언론교육이 이뤄졌다고 지적하면서 공방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독재정권식 언론통제’로 규정하며 이의 백지화와 국정홍보처 폐지를 요구했다. 민주신당 의원들도 동조했지만 김 처장의 해임과 국정홍보처 폐지에는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정책홍보실장 44명 왜곡된 언론교육” 한나라당에선 기자 출신 의원들이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다. 전여옥 의원은 “공무원과 기자의 접촉을 차단하고 실효성 없는 브리핑을 내세우는 정책은 정부의 언론 죽이기”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심재철 의원은 “국가청렴위가 ‘언론이 국가기관의 비리를 취재하면 대외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언론의 취재에 협조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홍보처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정책홍보관리실장 합숙 워크숍에서 국정홍보처에서 만든 교육자료에서 정부당국의 천박하고 왜곡된 언론 의식을 강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성토했다. 그는 “기자의 ‘인적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촌지처리’와 ‘접대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입시키는 등 언론 이해를 위해서는 촌지·접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교육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국정홍보처가 교육하는 게 아니라 대행사가 우리에게 한 것”이라며 “사실 관계와 의견을 구분해 달라.”고 반박했다. ●범여권도 비판 수위 높여 민주신당 우상호 의원은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친노’(親盧)로 분류되는 이광철 의원도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부족했던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재윤 의원은 “상식적인 정보접근 시스템과 취재관행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라면서도 “취재 사각지대가 생기거나 취재를 비효율화하는 문제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중립적 입장을 취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금감원,취재봉쇄 유리벽 설치 추진

    정부의 ‘취재 지원 선진화방안’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23일 현장 조사차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을 방문했다. 이주영 정책위원장을 단장으로 5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이날 브리핑룸과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유리벽이 설치될 장소 등을 둘러본 뒤 정부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 정책위원장은 “소위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취재를 제한하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구식 의원은 “선진화 방안은 5공 때와 같은 잔인한 언론통제”라며 “국회 차원에서 각종 제도적 장치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동행한 박찬숙 의원 역시 “금감원은 정부기관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며 “(선진화 방안은)투명성을 막는 오만한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감위·금감원 기자단은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으로 취재원과의 접촉이 차단되고 이는 곧 정보의 차단으로 연결된다.”며 “국민의 알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우려를 전달했다. 이에 이 정책위원장은 “언론을 일방적인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전략”이라며 “24일 개최되는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입법·제도적 장치를 통해 (선진화 방안을)막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보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감원은 청와대 정책보좌관 출신의 김용덕 금감위원장이 취임한 뒤 정부의 ‘취재지원혁신안’에 따라 기존 기자실을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로 분리해 공사를 마쳤다. 브리핑룸은 1주일에 1번 정례브리핑 때만 사용되기 때문에 브리핑룸은 사실상 ‘죽은 공간’이다. 거의 사용되지 않는 브리핑룸이 신설되면서 금감원 공보실 직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은 턱없이 좁아지고 불편해졌다. 금감원은 앞으로 3층에 위치한 기자실과 직원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완전히 봉쇄하는 출입통제문을 설치할 예정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혁신의 시각으로 ‘박정희 보기’

    혁신의 시각으로 ‘박정희 보기’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간 화해 무드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양자간 갈등을 서로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대립으로 볼 것이 아니라, 포스트 민주화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사회발전모델 창출을 둘러싼 경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간의 화해를 강조하는 움직임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 왔다. 지난달 11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장준하 선생 부인을 찾아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대표적 진보지식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정희를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 표현했고, 이병천(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참여사회연구소장은 한국이 제3세계 독재국가들 중 유일하게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박정희 체제 때문이라 평가한 바 있다. 조 교수는 최근 출간한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역사비평)에서 “산업화의 장점과 민주화의 장점을 선택해서 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문제는 ‘박정희 정권의 붕괴’와 ‘민주 정부의 위기’를 함께 교훈으로 삼으면서, 신보수적 모델과 반박정희 모델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 설명했다. 조 교수는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스스로를 극복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보수 내부에 박정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어야 한다.”면서 “지금 박정희는 오로지 개발주의·반공주의·국가주의 이미지만 가진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를 향한 주문은 더 매섭다. 그는 “과거에는 독재권력이 지닌 정책의 문제점을 사후적으로 비판하는 ‘편한’ 위치에 있었지만, 이제는 정책의 현실성을 비판당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면서 “박정희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중을 먹고 살게 하는 모델을 창출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 계승측과 반대측이 화해가 아닌 상호 경쟁을 통해 새로운 대안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시점임을 강조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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