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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대선후보 심층분석] 박근혜 쟁점행적(하)

    [2012 대선후보 심층분석] 박근혜 쟁점행적(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양날의 칼로 다가온다. 박 후보는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유신체제라는 역사의 굴레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적으로 ‘박정희의 딸’인 동시에 공적으로 유신체제를 뒷받침했던 퍼스트레이디로서 독재체제 미화와 찬양에 앞장섰던 역사적 사실 역시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다. ‘새마음운동’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새마음운동은 충효 정신을 바탕으로 물질적·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으로 유신체제의 국민정신개조 운동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박 후보는 1975~79년 청와대 외부 단독일정 보도 137건 가운데 64건이 새마음운동과 관련된 것일 정도로 공을 들였다. 1978년 구국여성봉사단 총재와 새마음봉사단 총재가 된 박 후보는 자선 구호모임 중심의 활동을 한 육영수 여사와 달리 시도별·직능별·연령별 지부를 만드는 등 조직 운동을 벌였다. 1979년에는 77~78년 각종 새마음갖기운동대회에서 한 박 후보의 격려사를 묶은 ‘새마음의 길’ 영문판까지 나왔다. ●“새마음운동, 유신체제 국민개조” 이번 대선 후보군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박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고 난 뒤에 청와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지 않느냐. 유신 한가운데 그 기간 동안 청와대 안주인은 박근혜였다.”면서 “임명장도 주고 정치적 행위를 했다. 나이가 어리지도 않아 20살 훨씬 넘었다. 유신통치의 장본인이었고 그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새마음운동 이후 10년이 지나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기념사업회 활동으로 다시 공식 석상에 등장하기 시작한 1989년에도 박 후보의 역사관은 일관성을 유지했다. 박 후보는 당시 MBC 인터뷰에서 “5·16이 말하자면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믿고 있다. 나라가 없어지는 판에 민주주의를 중단시켰다 하는 얘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이해가 안 된다. 나라가 있어야 민주주의도 있는 거니까.”라고 밝혔다. 유신체제에 대해서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청문회에서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80개가 훨씬 넘는 나라들이 독립을 하거나 새로 탄생을 했다. 그 많은 나라들이 이른바 군사독재 정치를 겪었다. 그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만이 개발에 성공을 한 나라”라고 말했다. “두 개의 대법원 판결이 있다.”는 인혁당 사건 관련 발언은 이전에도 등장한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토론회, 미국 방문 시 교포언론 간담회 등을 통해 “(인혁당 판결은) 두 개의 판결이 차이가 나니까 둘 중에 하나는 잘못된 것이다. 내가 사과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달 24일 박 후보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후보의 과거사 첫 사과였지만 진짜 역사관이 바뀌었는지, 대통령 후보로서 정치공학적인 셈법인지는 아직도 알 길이 없다. 퍼스트레이디 활동은 최태민씨 논란으로도 이어진다. 최씨는 1974년 육영수 여사 사망 직후 박 후보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고 1975년 3월 6일 청와대에서 박 후보를 만나 여러 조언을 한 뒤 측근이 됐다. 최씨는 그해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고 스스로 총재에 취임했다. 구국선교단이 이듬해 구국봉사단으로, 1978년에는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공개된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수사자료’에 따르면 그는 박 후보를 등에 업고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했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돼 있다. 수사자료에는 최씨가 44건의 비리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 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도 언급돼 있다. 김재규도 10·26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이 최씨 문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10·26을 일으킨 한 요인이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80년대 육영재단·영남재단·정수장학회를 맡으면서 대외적으로는 침묵하던 시절에도 최씨가 등장한다. 박 후보는 83년 1월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는데 이때 최씨도 육영재단에 다시 합류했다. 이후 박 후보는 1990년 11월 15일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동생인 근령(서영으로 개명)씨에게 넘겼다. 이 과정에도 최씨가 연관돼 있다. 1986년부터 육영재단에서는 최씨와 딸 순실씨의 전횡에 대한 지적들이 나왔다. 최씨는 94년 사망했지만 최씨의 가족들이 구설에 올랐다. 순실씨의 남편 정윤회씨는 1998년 정치에 입문한 박 후보의 입법보조원을 맡았으며, 2004년에는 비서실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 후보는 이런 의혹에 대해 2007년 당내 후보 검증위 청문회에서 “(최씨와 관련한)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제가 아는 한 실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최씨가 이런 비리가 있다고 공격하고 저와 연결해 ‘주변 사람이 나쁘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는 식으로 공격하는데 이는 음해성 네거티브”라고 일축했다. ●‘최태민 수사자료’ 44건 비리혐의 박 후보의 친인척 관리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기 때문에 박 후보의 친인척은 다른 대선 후보들보다 많은 편이다. 4촌 이내 친인척만 40명이 넘는다. 박 후보의 가장 가까운 핏줄인 여동생 근령씨와 남동생 지만씨도 부담이다. 육영재단 문제로 갈등을 빚은 근령씨는 박 후보와 의절한 상태다. 근령씨도 2008년 부실운영 등으로 인해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이때 지만씨와 근령씨가 소송을 벌이며 대립하기도 했다. 근령씨의 남편인 신동욱씨는 자신에 대한 청부살해 미수와 5촌 살해사건의 배후가 지만씨라고 주장해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만씨와 부인 서향희 변호사는 2004년 결혼했다. 박 후보는 지만씨가 결혼하자 미니홈피에 “(서 변호사는) 동생과 아주 잘 어울리는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을 중심으로 올 들어 ‘만사올통’(만사가 올케로 통한다)이라는 논란이 야기됐다. 서 변호사가 박 후보의 영향력을 이용해 법률 자문을 맺었고 특히 2009년부터 3년간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 고문변호사를 지냈으며, 지만씨가 친구인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이 검찰에 연행되기 두 시간 전에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박 후보가 올 6월에는 “(지만씨) 본인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직접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서 변호사 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나 어떤 면으로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벌써 문제가 됐을 것이다. 알아보니 검찰에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촌 오빠인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친박연합’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3500만원을 받고 시의원 공천을 준 혐의로 구속됐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베네수엘라 사회주의국가 건설 박차… 민심이반·건강 ‘변수’

    베네수엘라 사회주의국가 건설 박차… 민심이반·건강 ‘변수’

    베네수엘라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은 골리앗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중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지도자 우고 차베스(58)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4선에 성공해 ‘20년 집권의 꿈’을 이뤘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차베스 대통령이 54.66%의 득표율로 엔리케 카프릴레스(40·득표율 44.73%) 야권 통합 후보를 누르고 임기 6년의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1998년 처음 대통령궁에 입성한 차베스는 2019년까지 보장된 임기 동안 자신이 내세운 ‘베네수엘라식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2009년 국민투표로 헌법에서 연임 제한 규정도 없애 ‘종신 대통령’의 길도 열어 뒀다. 이날 밤 11시 30분쯤 자신의 상징인 붉은색 셔츠를 입고 수도 카라카스의 대통령궁 발코니에 등장한 차베스는 “오늘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최고임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막판까지 추격해 온 ‘젊은 피’ 카프릴레스를 따돌린 차베스의 승리는 남미 최대 석유 수출국으로 군림하며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를 빈민층에 퍼준 포퓰리즘 정책이 여전히 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야권의 급성장으로 차베스는 가장 어려운 싸움을 벌였다. 이번 선거는 변화를 요구하는 ‘베네수엘라의 두 얼굴’을 드러내 차베스의 집권 4기가 험난할 것임을 예고했다.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데다 야권 후보와의 득표율 격차도 2006년 대선의 26% 포인트에서 9% 포인트까지 대폭 줄어 민심 이반이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부정부패, 살인 등의 강력 범죄 급증, 보도 통제 등 국가의 기본적인 병폐를 다스리는 데 실패했다는 국민들의 분노가 반영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반(反)차베스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무원칙적인 기업 국유화와 규제, 외환 통제 등의 ‘독재 행보’가 중산층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국유화 조치가 은행, 식료품, 보건 분야 등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건강 이상은 그의 향후 집권을 가름할 주요 변수다. 1년 3개월간 암 치료를 받아온 차베스는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종양 2개를 제거하느라 3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사망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그가 “암에서 해방됐다.”고 선언한 데 대해 의사들은 “암의 완치를 판별하려면 최소 2년은 지나야 된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글로벌 시대] 혼란의 중동, 모순 속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혼란의 중동, 모순 속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독재자들을 쫓아낸 ‘아랍의 봄’은 이슬람 세계와 서구의 관계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는 더욱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고, 서방세계와의 대립과 긴장은 더 커졌다. 지난달 리비아 벵가지에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피살 당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50여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 이슬람 비하 영화에 대한 반발로 무장 공격과 시위 등이 이슬람 세계를 덮은 것이다. 사태는 잠잠해졌지만 갈등의 골과 충돌 위험성은 더 커졌다. 이슬람 비하 영화가 계기가 돼 촉발됐지만 그 원인과 연원은 깊고 오랜 역사를 가진 까닭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출범 이후 내걸었던 ‘새로운 중동정책’에도 회의가 높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6월 이집트 카이로 방문에서 미국과 이슬람 간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미군의 이라크 완전 철수, 아프간에서의 단계적 철군 등도 이뤄졌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여전히 이스라엘에 기울어져 있고, 분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이란 핵무기 개발 의혹을 둘러싸고 미국의 무력 공격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 이슬람권의 반미 감정은 오히려 커졌다. 오바마는 집권 초 국제연합 안보리 결정에 따른 팔레스타인 사태 해결, 이스라엘 정착촌의 추가 건설 중지 등 긍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중동 각국에 대한 정치·군사적 간섭은 그치지 않았다. 오바마의 정책도 부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바마는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와 전략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아랍의 봄을 지원하고 이끌었다. 이 지역 국민들도 자유와 안정,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높았었다. 그러나 아랍의 봄은 혼란과 갈등, 충돌과 불신을 더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일부 중동 맹방들에 대한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상호 지지도도 감소했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미국의 능력과 역할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오바마의 중동정책은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우선, 이집트와 리비아 등에서 독재자들이 쫓겨났지만, 대신 이슬람 세력의 영향력이 커졌다. 냉전 이후 미국 중동정책의 제1 교두보였던 이집트는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인 이슬람형제단이 권력을 잡았다. 지난 6월 말 취임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미국에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닌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과 이란을 방문해 친선을 다지는가 하면 16차 비동맹회의에 참석하는 등 전임자와는 전혀 다른 국제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상태다. 아랍의 봄은 나날이 커지는 이슬람 중산층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다. 또 이슬람 세계에 만연해 있는 빈곤과 부패, 빈부 격차와 경제·정치적 모순도 국민들의 기대를 어그러뜨리고 있다. 리비아의 경우 국가가 무장세력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장한 민병세력들이 각지에 난립해 중앙정부는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도 못하고 각 지역 세력도 통제하지도 못하고 있다. 아랍의 봄을 열었던 이슬람 세계의 평등과 민주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과 힘은 오히려 반미주의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이슬람과 서구세계와의 화해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오바마의 이상은 빛이 바래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생각과 지향점을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서구와, 서구식 민주주의 및 언론자유를 강조하는 서구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슬람 세계 사이에서 그 같은 이상이 좌초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슬람의 오랜 역사와 전통, 드높은 자존심과 평등의식을 미국과 서구세계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사태에서 보듯 문명의 충돌은 결코 빛바랜 명제가 아닌 듯하다. 서로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이해의 심화는 국제화된 세계 속에서 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최근 뜨겁게 벌어진 동북아시아의 영토 분쟁도 이슬람과 서구의 충돌처럼 역사와 가치관, 자존심과 문화가 막후에서 작용하고 있다.
  • [열린세상] 대선 후보들의 ‘힐링’ 시대정신/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대선 후보들의 ‘힐링’ 시대정신/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그시대의 소명, 즉 시대정신에 가장 잘 부합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규범적 기대를 담은 얘기이긴 하지만 민주화 이후 우리 대선 결과를 보면 시대정신과 당선자들과의 관련성이 제법 있어 보인다. 오랜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문민정부를 연 김영삼 대통령,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 대통령, 탈권위 민주주의의 실현을 꿈꿨던 노무현 대통령, 경제 살리기의 기대를 모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러하다. 물론 이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의 유혹과 함정에서 빠져 국민과 소통하는 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전근대적인 측근 비리에 걸려들어 불행한 임기말을 맞아야 했다. 그럼에도 선거 때마다 표출된 유권자들의 기대와 의지의 집합체가 시대정신으로 모아져 시대정신에 가장 걸맞은 후보를 선출하고, 그것이 다음 선거로 면면히 이어지면서 나름의 정치발전을 이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해 18대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시대정신에 가장 잘 부합하여 당선될 후보는 누구일까. 후보들이 내놓고 있는 비전이나 공약들은 우리 사회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시사해 주고 있다. 지금 대선과정에서 나오고 있는 화두들은 경제민주화, 복지, 민생, 일자리 창출, 정의, 역사 인식, 통합, 소통 등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서 불행과 불운 그리고 부당하게 처지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계급, 계층보다는 개개인)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따뜻하고 성숙한 자세와 연결되어 있다. 강함보다는 부드러움, 강한 추진력보다는 따뜻한 카리스마, 말하기보다는 들어줌, 분열보다는 화합, 자랑보다는 겸손, 남성적인 것보다는 여성적인 것이 부각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공감과 힐링이 대세이고 시대정신인 셈이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 후보 세 명의 목소리가 부드러운 낮은 톤인 것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 대선의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강하고 날카로운 톤과 비교가 된다. 세 명의 후보는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스스로 고통을 당하거나 또는 다른 이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 주는 일들을 유난히 많이 해 왔다. 세 후보 모두 무엇을 추진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병마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힐링’의 시대정신을 가지고 대선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나름대로 유익하고 즐거운 선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무엇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우리 사회의 잘 고쳐지지 않는 차별적 사회문화를 기적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당선과 버금가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 특유의 소외된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치유능력도 기대된다. 또 박 후보의 내면 성찰과 반성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진심어린 치유의 기회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갈등과 반목 끝에 미완으로 남긴 민주주의 실험을 완결시킴으로써 민주 진영의 실망과 좌절의 상처를 치유할 소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경제 발전을 사회문화적 정신과 가치 수준이 못 따라가는 사회문화적 지체 현상을 겪고 있다. 문 후보를 통해 정치와 경제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인권 존중, 약자 배려, 경청과 관용, 언론 자유와 같은 성숙한 민주주의 가치 실현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안철수 후보는 제도권 정치에 대한 좌절과 환멸 그리고 무기력감 등을 치유하고 시민들에게 정치적 활력소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대 그리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생각들을 가지고 시민들과 소통함으로써 시민들의 의식과 가치관, 생각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치유 능력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안 후보의 당선은 의식혁명을 통한 정치 개혁, 경제 민주화의 달성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의식 변화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결국 지금 대선 후보의 시대적 지향점은 권력을 탐하는 제왕적 대통령을 경계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겸손한 대통령을 추구해야 할 일이다. 권력을 탐하는 자는 망하고 권력을 치유하는 자는 흥할 것이다.
  • “이슬람 폭력 용납 못해…이란核 반드시 막을 것”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최근 미국의 이슬람 모독 영화로 촉발된 이슬람 국가들의 폭력 시위를 비롯, 시리아 사태, 이란의 핵 개발 등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유엔 등 국제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24일 자국의 핵 개발 의혹에 대해 제재를 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등 유엔총회 무대에서 미국과 이란의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다. CNN·AP통신 등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전 유엔총회에서 30분에 걸친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의 반이슬람 영화로 인해 발생한 리비아 벵가지 소재 미 영사관 습격 사건으로 숨진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 대사를 애도하며, 반이슬람 영화와 함께 중동 지역에서 격하게 발생한 폭력 사태에 대해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문제가 된) 비디오는 무슬림만 모독한 것이 아니라 미국도 모욕했다.”며 “어떤 말도 무분별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어떤 비디오도 영사관 공격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의 미래는 스티븐스 대사를 죽인 사람들이 아니라, 스티븐스 대사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폭력과 불관용은 유엔 등 국제사회 어디에서도 자리를 차지할 수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사태의 심각성을 언급한 뒤 “시리아에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일반 사람들을 계속 지지하고 도울 것”이라며 “독재자보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핵 개발 의혹으로 국제사회와 마찰을 빚고 있는 이란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싶지만 시간이 제한적이다.”라면서 “이란은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이 평화로운 것임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고, 유엔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준수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이란 정부는 시리아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해외 테러 집단들을 지원해 왔다.”고 비난한 뒤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압박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리비아 사태 등에도 불구하고 중동 등에서의 미국 역할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탈(脫)박정희도, 국민통합도 실천이 관건이다

    어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부친 박정희 체제의 그늘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규정하고,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국민대통합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의 사과가 아니더라도 박정희 체제 18년이 남긴 고도 압축성장의 빛과 반민주 독재의 그늘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뚜렷한 명암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의 다짐이 아니더라도 박정희 체제가 남긴 아픔과 상처는 진정한 사회 통합과 새로운 시대 진입을 위해 반드시 치유하고 가야 할 역사적 과제다. 그런 점에서 박 후보의 사과는 박정희 체제 공과에 대한 논란의 종지부가 아니라 그 체제가 잉태한 그늘을 거두어 내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과거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 했고, 지난 7월에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했던 박 후보가 새삼 헌법가치 훼손과 정치발전 지연이라는 표현으로 보다 진전된 사과의 뜻을 밝힌 데는 최근의 민심 동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본다. 지지율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추석 전에 과거사 논란에 대해 전향된 자세를 보일 필요성을 느꼈을 법하다. 과거 그 어떤 발언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인혁당 사건 피해 유족들이 환영의 뜻을 유보한 것도 결국 그의 사과에 정치적 득실에 대한 계산이 담긴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박 후보는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는 윈스턴 처칠의 경구를 인용하며 여야 각 후보와 정파가 과거사 논쟁보다는 다음 정부의 정책 과제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것을 호소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화해시킬 진정한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며, 이는 긴급조치 9호와 같은 반헌법적 사건이나 장준하 의문사와 같은 의혹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보듬는 작업들이 이뤄질 때 가능한 일이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치유는 결코 선거 때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정치 공방의 소재가 돼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야당도 긴 역사적 안목에서 균형 잡힌 과거사 정리에 동참하는 지혜를 내보이기 바란다.
  • [글로벌 시대] 나쁜 국가, 착한 개인/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나쁜 국가, 착한 개인/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한·중·일 3국의 영토분쟁이 심상치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은 주로 영토분쟁 때문에 발발했다. 굳이 남북 간의 긴장고조를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현재 동북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전쟁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나친 민족주의와 이로 인한 케케묵은 역사인식, 선거를 앞둔 각국 정치 지도자들의 표를 의식한 단견,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한·중·일의 경제적 역동성과 세계사의 위상 고조,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대한 한·일의 입장과 중국과의 미묘한 관계 등이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요 원인일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에 대한 해석, 현재에 대한 상호견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주도권 문제가 모두 동시에 얽히고설킨 매우 복잡한 상황이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분쟁은 거의 예외 없이 인접 국가들 간에 벌어진다. 그리고 분쟁이 발발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의 몫이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전쟁터로 불려나가 죽거나 죽이는 처참한 상황이 발생한다. 전사자들은 국가가 예를 갖춰 추모할 뿐만 아니라 많이 죽인 자는 영웅으로 추앙되기까지 한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우리에게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무조건적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해야 하는 대상인가? 존 로크에 따르면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 보장하는 장치 혹은 수단이다. 과연 그럴까? 어떤 국가도 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형성된 적이 없다. 무수한 전쟁을 거치면서 영토의 확장과 축소를 거듭해 온 결과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수단을 넘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권력이 되어버렸다. 국가 속의 개인은 국가 권력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따라서 국가의 명령이나 권위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행위는 금기시되고, 더 나아가 강제적 법적 구속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이런 체제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개인은 국가란 이름 앞에 주눅이 들어 스스로 저항을 포기하고, 국가의 명령을 준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구성된 주체’로 전락했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가 각 개인의 행복과 일치하는가? 나라를 빼앗긴 상황의 한 개인을 가정해 보자. 집에는 돌봐야 할 가족이 있지만, 찾아야 할 국가도 있다. 가족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독립운동에 뛰어들 것인가? 둘 다 한꺼번에 수행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가치는 개인의 가치와 상충하기 마련이다. 나아가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국가 혹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엄청난 범죄를 무수히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나쁜 개인으로 돌변해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범죄의 공범자가 된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 스탈린의 공산일당독재정치, 일본의 군국주의, 유신독재 등에서 우리는 이런 경우를 헤아릴 수 없이 목격해 왔다. 나쁜 국가나 체제에서 착한 개인으로 남기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정말이지 어렵다. 나치 정권하에서 독일의 평범한 국민은 절대다수가 나치를 지지하고, 나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애국이고 충성이라 믿었다. 그리고 나치의 이름으로 형언할 수 없는 범죄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질렀다. 이들 각 개인은 가정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였다. 유신독재의 추종세력들 중에도 개인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우선 우리 스스로가 국가나 체제를 절대시 혹은 신성시하는 생각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다음으로 우리의 무사유 특히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 때문이지 않을까? 공약이 난무하는 대선을 앞두고 그리고 한·중·일 3국의 영토분쟁과 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정치, 언론과 여론의 편협하고 과열된 반응을 지켜보면서,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의 역할 회복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 ‘사기꾼 마호메트’ 영화 한편에… 리비아·이집트 극렬 反美시위

    독재 정권을 끌어내린 아랍 민주화 혁명의 심장부 리비아, 이집트에서 반미 시위로 미국 외교 공관이 잇따라 공격을 받으면서 새 정권을 우방으로 끌어오려던 미국의 중동 외교가 암초에 걸렸다. 이번 사태가 미국, 이스라엘 대 범무슬림 지역 간 외교 갈등으로 비하할 가능성도 커졌다.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를 모욕해 이번 반미 시위를 촉발한 것으로 알려진 영화가 이스라엘 태생 미국인이 제작하고 유대인들의 자금 지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밋 롬니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엇갈리는 대응을 하고 있다.”며 비난 공세에 나섰다. ●아프간 정부 “영화 접속 금지” 11일(현지시간)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무장 시위대가 난입해 J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미 대사와 영사관 직원 3명이 사망했다. 이에 앞서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시위대 3000명이 카이로 주재 미 대사관을 둘러싸고 극렬한 반미 시위를 벌였다. 이집트 최대 이슬람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은 14일 전국의 이슬람 사원 앞에서 추가 시위를 갖자고 촉구해 중동 전역에 반미 시위가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해당 영화에 접속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반미 시위의 불을 댕긴 것은 이스라엘 태생의 미국인인 부동산 개발업자 샘 바실(56)이 만든 ‘무슬림들의 순진함’이라는 두 시간짜리 영화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이 영화의 14분짜리 예고편은 아랍어로 번역돼 유튜브를 통해 중동권으로 퍼졌다. 영화는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사기꾼으로 묘사하고 마호메트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갖거나 대량 학살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대인 100여명 영화제작비 지원 바실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교의 결함을 전 세계에 알리면 내가 태어난 땅, 이스라엘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슬람교가 혐오스러운 종교란 걸 보여 주고 싶었다.”며 영화제작 배경을 밝혔다. 바실은 영화 제작 비용으로 500만 달러(약 5600만원)가 들었으며 100명 이상의 유대인 기부자들이 재정 지원을 해줬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만든 영화의 파장이 외교공관에 대한 테러사건으로까지 비화되자 캘리포니아주에서 활동하던 바실은 현재 도주한 상태다. ●국제사회 “극악무도한 공격에 큰 충격” 미국은 폭력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중동 내 반미 감정이 확산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11일 “이런 종류의 폭력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폭력 시위를 비난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2일에는 리비아 새 정권과의 우호 관계를 견지해 갈 것임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흠집 낼 기회를 잡은 롬니는 정부의 초기 대응을 “수치스럽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이번 폭력 사태에 정부가 혼재된 시그널을 주고 있다.”며 공격했다. 유엔,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비난도 쏟아졌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2일 “극악무도한 공격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리비아 정부에 각국 외교 인력 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해 줄 것을 촉구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유신체제로 정경유착·재벌 탄생… 결국 외환위기 대재앙 불러”

    “유신체제로 정경유착·재벌 탄생… 결국 외환위기 대재앙 불러”

    5·16 군사쿠데타, 10월 유신과 관련한 논쟁이 뜨겁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다. 박 후보는 5·16 군사쿠데타와 10월 유신에 대해 ‘구국의 결단, 불가피한 역사적 선택’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홍사덕 전 의원은 지난달 29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해 유신을 한 것’이라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근대화의 토대를 완성했다는 경제적 성과를 놓고는 평가가 갈린다. 이런 가운데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유신체제가 정경유착은 물론 1997년 외환위기를 불렀다고 비판하면서 진보·보수 간 논란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 박정희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시켰으며, 일부 헌법의 효력을 중지한다는 제1항을 시작으로 모두 4개 항의 ‘특별선언’도 발표했다. ‘10월 유신’의 시작이었다. 올해는 10월 유신과 유신헌법 공포 40주년이 되는 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 등 진보 성향의 4개 역사 단체는 ‘역사가, 유신 시대를 평하다’를 주제로 오는 14~15일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연합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유신체제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학)는 ‘8·3 사채 동결 조치와 재벌의 탄생’을 설명하고 있다. 박 교수는 “유신체제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면 성립과 유지가 어려웠다.”면서 박정희 정권과 기업의 유착 고리를 “1972년 긴급조치 14호로 발효된 8·3 사채 동결 조치와 500억원의 산업합리화 자금 방출”에서 찾았다. 이론상으로는 고리사채의 성행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대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특혜였다. 정부는 사채 동결 조치에 따른 자금난 해소로 2000억원의 특별 금융채권, 200억원의 긴급 금융, 500억원의 합리화 자금 등을 방출하면서 8%의 금리를 적용했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19%, 사채금리가 36.5%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특혜였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런 특혜 금리로 기업은 연간 1500억원의 자금 지원 효과를 얻었다. 특히 이 특혜는 중소기업이 아니라 전체 사채의 60%를 끌어다 쓰던 대기업과 공기업에 집중됐다. 1971년 대기업의 타자본 의존도는 79.5%로 중소기업의 67%보다 12.5% 포인트나 높았다. 위장 사채까지 활용한 부실 기업을 정리하지도 않고 정책자금을 마구 쏟아부었다. 정책자금이 방출되면서 조선, 석유화학, 방위산업, 철강, 석탄, 자동차 등 중화학 공업을 하는 공기업과 대기업만 100% 혜택을 보았다. 대마불사식의 기업지원 정책은 대기업의 서열을 바꾸었고, 재벌의 탄생을 이끌었으며, 결과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위기를 초래했다고 박 교수는 규정했다. 박 교수는 “8·3조치는 부실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그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면서, 기업을 유신을 지탱했던 경제적 토대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전남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박진우씨는 유신체제의 시작이 1971년 경기도 광주대단지 폭동부터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박정희가 1962년부터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농촌은 빈곤에 빠지고 급격한 이농이 발생한다. 1960년대 초반 연 19만명에서 1960년대 후반 연 50만명으로 이농 인구가 급증한다. 도시 인구의 비중이 1960년대 29.9%에서 1970년 41.2%로 증가한다. 농촌을 떠난 농민들은 서울 청계천 주변 등 대도시의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게 된다. 정부는 위생 문제를 내세워 청계천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1969년부터 광주로 대규모 강제 이주를 실시했다. 열악한 생활환경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광주 이주민들이 폭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1971년 8월 10일에 발생한 광주대단지 폭동이다. 이는 시민 저항의 신호탄으로, 그해 8월 16일 서울대 교수의 대학자율화 운동과 8월 26일 인천 부평시장 노점상 500여명과 노점철거반의 투석전으로 이어졌다. 3일 전인 8월 23일에는 북파부대원들이 벌인 ‘실미도 사건’이 벌어졌다. 도시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자 박정희 정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같은 해 10월 15일 위수령을 발동하고, 12월 6일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 8·3 긴급경제조치 등이 10월 유신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1970년대 강남개발이야말로 2012년 ‘토건족’의 모태이자 ‘부동산 불패신화’의 근원이 됐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강남개발은 도시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의 도로용지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면서 “박정희 정권은 1970년 평당 5100원에 산 강남의 토지 약 18만평을 1년 뒤인 1971년 5월에 1만 6000원에 매각해 20억원의 정치자금을 조성했다.”고 했다. 특히 잠실아파트 단지 등 대단지의 연안공유수면 매립 사업을 진행하면서 매립면허를 내주는 과정에서 정치자금을 거뒀다고도 주장했다. 4대문 안의 명문 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이전해 ‘강남 8학군’이 탄생하게 됐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강남 이주를 촉진하기 위해 강북지역 개발 억제책도 실시해 ‘강북=낙후지역’이라는 인식도 생겼다. 특히 잠실지구 개발과정에서는 구획정리를 하면서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강남개발 과정에서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정권 담당자들이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직접 투기에 가담했다.”면서 “결국 한국이 땀흘리는 사람의 사회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통해 지대를 추구하는 ‘짜릿한’ 사회로 변질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은 없었다.’는 식의 인식에 대해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겸 역사문제연구소장은 “왜곡된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국 경제의 좌표와 과제를 제대로 설정할 수 있다.”면서 “유신체제가 왜 붕괴했나 생각해 보자. 명확하다. 국민이 저항했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박정희의 업적이 친일행적, 유신독재, 인권탄압, 민주주의 억압 등의 실정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수준에서의 경제성장이었다.”면서 “박정희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면 더 이상의 경제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파이를 키워야 분배가 가능하다.’든지 ‘선 경제성장, 후 민주화’, ‘경제성장은 독재 덕분에 가능했다.’는 명제들은 모두 착시이거나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오히려 경제발전이 질적 변화를 보인 것은 민주화 운동이 확대된 1980년대 이후”라면서 “박정희 시기 무역적자가 233억 달러였던 반면 재임 기간이 4분의1 정도에 불과했던 김대중 시기에는 846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21년만에 소말리아 민선 대통령 모하무드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대학 강사 출신의 정치 신인이 소말리아의 새 대통령이 됐다. 1991년 독재자 무하마드 시아드 바레 전 정권이 붕괴한 뒤 소말리아에서 연방정부 대통령이 선출된 것은 21년 만이다. 주인공은 2011년 평화발전당(PDP)을 창당하며 정계에 입성한 하산 셰이크 모하무드(56). 모하무드는 10일(현지시간) 소말리아 의회에서 열린 대선 결선투표에서 샤리프 셰이크 아흐메드 전 과도정부 대통령을 190대79라는 압도적인 표 차로 누르고 승리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당초에는 아흐메드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했다. 25명의 후보가 겨룬 1차 투표에서도 모하무드는 60표를 얻어 아흐메드(64표 획득)에 뒤졌으나 결국 역전극을 이뤄냈다. 이변을 만든 건 부정부패의 핵심 배후라는 의혹을 받아 온 아흐메드 전 대통령에게서 돌아선 민심이었다. 투표를 앞두고 각계에서 분열과 부패를 초래한 정치권의 변화와 새로운 얼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미나 모하메드 압디 의원은 “모하무드야말로 소말리아의 고질적인 무정부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아흐메드가 이끄는 과도정부에서 조직적인 횡령과 공금 착복 등이 벌어졌다며 부패상을 고발했다. 1981년 소말리아 국립대를 졸업하고 인도에서 석사학위를 딴 모하무드는 유니세프(1993~1995년) 등 여러 국제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했다. 하룻밤 새 아웃사이더에서 승자가 됐지만 모하무드 대통령은 과도정부 체제 수습과 해적, 테러, 대규모 난민 등 숱한 난제를 앞두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책꽂이]

    ●내겐 너무 쉬운 사진(유창우 지음, 위즈덤스타일 펴냄)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에다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의 확대까지 겹쳐 이제는 누구나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찍는다. 찍다보면 욕심이 나게 마련. 그런데 기계장치에 대한 설명과 암호 같은 부호들에 그만 떡하니 막혀버린다. 일간지 사진기자인 저자는 동호회급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어려운 말을 쏙 빼놓고 어떻게 사진을 즐길 수 있을지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1만 5000원. ●법은 어떻게 독재의 도구가 되었나(한상범 지음, 삼인 펴냄) 헌법학자이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을 지낸 저자가 한국 땅에서 독재를 가능케 했던 법의 문제를 다룬다. 보통 초대 헌법 기초자로 꼽히는 유진오를 두고 사민주의적 요소를 적극 도입했다는 평이 내려지는데, 저자는 그보다는 일제의 잔재가 잔뜩 끼어있다고 보는 쪽이다. 계엄 상황에서 견제 없이 군부의 독재가 가능하도록 한 점, 예산 편성권이 정부에 있다고 명시한 점 등을 꼽는다. 1만 3000원. ●마하티르(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지음, 정호재·김은정 옮김, 동아시아 펴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다면, “IMF의 식민지가 되느니 굶어죽겠다.”고 선언한 인물이 있었다. 그 말레이시아 정치지도자 마하티르 총리가 쓴 자서전이다. 일본의 침체에 대해서도 서구의 비판이 민감해져 일관성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할 정도니 아시아적 가치의 대표적 옹호자답다. 22년간 독재하에서 일본과 한국을 배우자는 동방정책을 내세웠고, 이를 통해 가난한 농업국가를 신생공업국으로 변모시켰다. 2만 8000원. ●독부 이승만 평전(김삼웅 지음, 책보세 펴냄) 근현대사 주요 인물들 평전을 펴내고 있는 저자의 이승만 평전이다. 다른 평전과 달리 ‘독부’(獨夫)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잔적(殘賊)은 일부(一夫)에 불과하다, 일부를 죽였단 말은 들었어도 왕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는 맹자의 말에서 따왔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유학자 심산 김창숙이 이승만에 대해 평가한 말에서 따왔다. 2만원.
  • 리비아 민간인 공격주도 ‘카다피 오른팔’ 세누시, 트리폴리 구치소에 구금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처남이자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카다피의 오른팔’ 노릇을 해온 압둘라 알세누시(62)가 5일(현지시간) 북아프리카 모리타니에서 리비아로 송환돼 트리폴리 구치소에 구금됐다고 AFP가 보도했다. 세누시는 지난해 리비아 반정부 시위 당시 민간인 공격을 주도하는 등 카다피 정권의 각종 범죄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1988년 런던발 뉴욕행 팬암 103기를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공중 폭발시켜 미국인 탑승객 259명 전원과 현지 주민 11명이 사망한 ‘로커비 테러사건’과 1996년 아부 살림 교도소에 수용된 1200명을 몰살시킨 대학살 사건에 모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누시는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해외로 도주했으나, 지난 3월 모리타니에서 아프리카 투아렉족 추장으로 변장하고 입국하다 위조 여권이 발각돼 체포됐다. 리비아 검찰은 “세누시 송환은 모리타니 법원의 결정과 무함마드 울드 압델 아지즈 모리타니 대통령의 승인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면서 “통상적인 건강진단 뒤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안철수 불출마 종용] 野 “신종 쿠데타 드러나” 與 “친구통화 정치적 이용”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측 인사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불출마를 종용했다는 금태섭 변호사의 주장에 6일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에서는 금 변호사의 폭로와 관련, ‘불법사찰’, ‘공작정치’라며 새누리당과 박 후보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새누리당에서는 “친구와의 대화를 마치 새누리당이 당 차원에서 정치공작한 것처럼 말하는 태도야말로 구시대적이고 정치공학적 행태”라고 맞받았다. ●민주 “구태·공작정치에 부활”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사실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며, 새누리당이 유신 잔당의 집결지이자 용서할 수 없는 불법행위에 근거해 집권하겠다는 신종 쿠데타 세력임을 드러낸 일”이라고 비난했다. 박 대변인은 그러면서 “민주당은 이런 불법·구태 정치, 독재망령 정치의 종식을 위해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것이고 전 국민의 의지를 모아 반드시 대선승리를 이뤄 내겠다.”고 밝혔다. 김관영 민주당 의원은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새누리당 쪽으로부터) 안 원장 관련 유언비어를 기사로 게재해 달라는 보도 청탁이 있다는 사례가 민주당에 제보됐다.”면서 “새누리당이 정보기관으로부터 제보받은 사찰 정보를 이슈화하는 정치 공작을 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광주에서 경선에 참여하고 있던 민주당 후보 측에서도 곧바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문재인 후보 측 진선미 대변인은 “유신독재 시절 자행됐던 공작정치의 부활이며, 헌법질서 파괴 및 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드는 엄중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安 유언비어 기사청탁 제보” 새누리당은 정준길 공보위원의 언행이 당 차원과 무관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상일 대변인은 브리핑을 갖고 “원외 당협위원장으로 불과 얼마 전에 공보위원으로 임명된 정 공보위원이 당을 대표해 누구를 협박하거나 불출마를 종용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그러면서 금 변호사를 향해 “안 원장에 대한 검증이 이어지자 물타기를 하기 위해 친구 간의 사적 통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입장이 나오기까지는 두 시간 남짓이 걸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방에 대해 우리가 따로 언급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다만 안철수 원장 쪽에서는 최근 여러 가지 ‘검증’ 얘기가 나오면서 수세에 몰리고 있으니까 판을 한번 바꿔 보자는 차원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황비웅·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특정 언론사에 기사 몰아주지 말라” 총리실 어이없는 취재통제

    “특정 언론사에 기사 몰아주지 말라” 총리실 어이없는 취재통제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실 국장이 핵심 간부회의에서 특정 언론사의 취재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주문을 하는 등 취재 활동의 통제 의도를 보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총리실 잇단 비판기사에 화났다?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실의 이종성 공보기획 비서관은 지난 5일 열린 정책의제관리회의에서 “특정신문에서 이러이러한 기사를 많이 쓰고 있다. (특정 신문에) 기사가 몰리지 않도록 해 달라.”며 사실상 관련 국·실을 질책하면서 보도 통제를 주문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특히 언론의 취재를 지원하는 공보기획 비서관인 그가 이 같은 주문을 한 것은 직분을 망각한 처사라는 비판도 높다. 정책의제관리회의는 매주 국정 전반의 주요 현안을 발굴하고 대처 방안을 논의·조율하는 자리다. 육동한 국무차장(차관)이 주재하고 국정운영1실장, 국정운영2실장, 사회통합정책실장 등 총리실 핵심 간부 7명이 참석하는 수뇌 회의여서 ‘G7회의’로도 불린다. 이 국장은 이날 총리와 함께 국회에 출석한 최형두 공보실장 대신 참석했다. 이 국장이 먼저 이 자리에서 특정신문의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논의 도중 서울신문과 출입 기자의 이름이 참석자들에 의해 거론됐다. 이 국장은 이날 “다른 언론사의 몇몇 기자들이 기사가 특정사에 몰린다고 이의를 제기했다.”면서 공적개발원조(ODA) 관련 기사 등을 예로 들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언급된 신문에 인포메이션을 주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로 이해했다.”면서 “총리와 장관을 직접 모시는 공보비서실의 공식 의견인 만큼 귀담아 듣고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처음에는 왜 ODA 기사를 거론하는지 의아했는데, 최근 해당 신문이 ‘국민 우롱하는 성범죄대책’ 등 총리실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1면에 싣고 ‘세종시 영상회의 도청 위험’, ‘제주 영어도시 축소 검토’ 등 공보실이 피곤해하는 기사들을 단독 보도한 사실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총리실 “공식입장 아니다” 이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김황식 총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공보기획관의 말은 간부들에게 김 총리의 의사나 입장으로 이해될 때가 많다.”면서 “군부 독재시대에나 있을 법한 ‘누구에게 기사 주지 말라’는 식의 통제 관행이 혹여 김 총리나 임종룡 총리실장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질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최 공보실장은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사후 보고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총리실의 한 간부는 “공보실장에게 보고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식 핵심 간부회의에서 보고됐다는 게 의아스럽다.”면서 “그렇다면 월권행위로 징계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치인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총리실의 ‘MB계 실세’로 통하며 현 정부 초 인수위원회와 청와대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데스크 시각] ‘네 탓’만 있는 시리아 해법/이순녀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네 탓’만 있는 시리아 해법/이순녀 국제부 차장

    봄에 시작된 싸움은 다음 봄에도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여름이 지나고, 또다시 가을을 맞았지만 싸움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1년 반이 흐르는 동안 2만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10배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조국을 등졌다. 시리아 유혈사태가 끝모를 나락으로 치닫고 있다. 2010년 말부터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의 여파로 지난해 3월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무차별적으로 탄압하는 정부군에 맞서 시위대가 무장하면서 내전으로 비화됐다. 도미노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튀니지를 비롯해 이집트, 리비아, 예멘은 모두 해가 바뀌기 전 정권교체를 이뤄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시리아는 아직도 피의 보복으로 얼룩진 시간을 역주행하고 있다. 시리아 사태가 이렇게 장기화되리라고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도, 반군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군은 알아사드 대통령이 튀니지의 벤 알리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처럼 민주화 세력에 무릎을 꿇거나 아니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사례처럼 서방의 군사 개입으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반면 알아사드는 다른 독재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더 강하게 밀고 나가면 머지않아 시위가 진압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쪽의 예상은 모두 틀렸다.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 전까지 얌전한 샌님처럼 보였던 알아사드 대통령은 1982년 화학무기를 사용해 반정부 시위대 2만명을 학살했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독재자 아들의 본색을 드러냈다. 어린아이까지 무참히 살해되는 혹독한 내전의 와중에도 부인과 함께 해외 호화쇼핑을 즐기는 후안무치하고 잔인한 면모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반정부 시위가 종파 간 분쟁으로 변질되고, 국제적인 대리전 양상으로 확산되면서 알아사드의 계산도 어긋나고 있다. 아버지는 대학살로 시위를 무력화했지만 지금 반군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민들의 희생만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달에만 5440명이 사망했고, 반정부 시위 이후 지금까지 숨진 희생자는 2만 5000명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고향을 떠나는 난민의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달에만 10만명이 탈출했고, 전체 난민 수는 23만 5000여명에 이른다. 접경국인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는 물론이고 터키, 그리스를 거쳐 북유럽까지 건너 가는 난민들도 적지 않다.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는데도 이를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답답하기만 하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얽혀 일치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0월과 지난 2월 시리아 제재안을 채택하려 했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최근에서야 중국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러시아도 방향 선회를 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네 탓’하기에 바쁘다. 종파에 따라 갈린 시리아 주변국들의 태도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란은 시아파의 분파인 알아사드 정권을,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수니파인 반군을 각각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공공연하게 자기 편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열린 유엔총회에서 “주변 국가들이 시리아 정부와 반군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충돌이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하기까지 했다. 최후의 카드라고 할 수 있는 서방의 군사 개입은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알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은 오히려 “서방이 군사 개입하면 화학무기를 살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평화적 해법이 우선이지만 언제까지 무고한 시민들이 더 희생되어야 하는지 우려스럽다. coral@seoul.co.kr
  • 英, 무바라크 불법자금 은닉 모른척?

    영국이 이집트 독재정권의 재산 은닉을 눈감아 줬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영국 정부가 지난해 2월 반정부 시위로 퇴진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자국에 수백만 파운드 규모의 부동산 및 사업자산을 보유하도록 허용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일(현지시간) 폭로했다. 무바라크뿐 아니라 그의 차남 가말과 정부 인사 등 지난해 3월 영국 재무부가 금융 제재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집트 주요 인사 19명의 자산 일부도 동결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은 무바라크 정권이 이집트에서 빼돌린 불법자금을 추적, 환수해 주기로 약속했던 터라 이집트인들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가디언과 BBC 아랍어 방송, 친중동계 신문 알하야트의 공동 취재 결과, 지난 6월 이집트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런던 첼시와 나이츠브리지에 호화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런던 도심에 등록한 사업체도 여럿 있었다. 차남 가말이 설립하고 2001년까지 책임자로 있던 런던 투자회사 메드인베스트 어소시에이츠의 자산도 동결되지 않았다. 해당 회사는 지난 2월 해체됐으나 자산은 해외로 빼돌려진 것으로 보인다. 역시 영국 재무부의 제재 리스트에 포함된 아흐메드 엘마그라비 전 관광장관의 부인 나그라 엘가잘리는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디자인 회사 설립까지 허가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집트 정부는 현재 무바라크 정권의 자산 환수를 미루고 있는 영국 재무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무바라크 퇴진 3일 뒤 이집트 과도정부는 공금 횡령, 부동산 은닉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무바라크 정권 주요 인사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환수해 줄 것을 서방국들에 요청했다. 당시 스위스 정부는 무바라크 하야 30분 만에 자산을 동결시킨 데 반해, 영국은 37일간이나 시간을 끌었다. 이를 두고 영국 정부가 이집트 지도부에 불법자금을 역외로 빼돌릴 시간을 준 것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때 스위스 정부는 5억 파운드(약 9000억원)의 자산을 동결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공직열전 2012] (34) 문화체육관광부 (상) 고위공직자

    [공직열전 2012] (34) 문화체육관광부 (상) 고위공직자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던 전후로 한국 영화의 극장 점유율은 지난달 27일 77.7%로 경이적이었다. 8월 중반에 끝난 런던올림픽에서는 금메달 순위로 세계 5위다. 사흘에 한번꼴로 세계적인 발레·클래식 콩쿠르에서 한국인들이 1~3등을 수상하고 있다. 문화·예술·체육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 꽝꽝 뛰는 가슴을 한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문화체육관광부 곽영진(55) 제1차관이다. 행시 25기로 문화부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된 정통 관료다. 군부독재가 끝난 1988년 그는 ‘월북작가 해금’ ‘금지가요 해제’ ‘영화 소재 다원화’ 같은 정책을 완성했다. 21세기 한류의 토대를 24년 전에 깐 셈이다. 강직한 선비 스타일로 ‘독일 병정이란 별명으로 불렸지만 2006년 사행성 논란으로 사회를 발칵 뒤집은 게임 ‘바다이야기’의 후폭풍을 헤쳐 나오면서 변했다는 후문이다. 게임 활성화 정책이 시장에서 왜곡된 것인데 강도 높은 검찰 조사에도 곽 차관을 포함해 문화부 공무원 중 단 한 명도 사법 처리되지 않았다. 정치 바람을 타지 않는 부처였는데 2008년 정권 교체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전 정권에서 잘나갔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들이 무더기로 물을 먹었다. 그러나 적게는 3개월, 많게는 2년 정도 지난 뒤 능력 있는 관료답게 이들은 권토중래했다. 조현재(52·행시26) 기획조정실장과 강봉석(58·7급 공채) 종무실장, 신용언(55·행시 29) 관광산업국장, 나종민(49·행시 31) 대변인, 방선규(53·행시 28) 문화예술국장 등이다. 조 기획조정실장은 내부에 적이 없을 정도로 유연하고 조정 능력이 뛰어나지만 돌파력과 추진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1년 서울신문의 공직인맥열전에 ‘공인된 차세대’로 소개된 신 관광산업국장은 2008년에 이어 ‘재수’(再修)하고 있다. 업무 장악력이 좋고 후배들이 좋아한다. 국정홍보처 출신답게 방 문화예술국장은 정무적이고 인적 네트워크의 깊이를 파악할 수 없는 문어발식 인맥을 자랑한다. ‘가난한 천재’로 불리는 비고시 출신인 강 종무실장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포항제철고를 나와 공무원이 된 뒤 뒤늦게 한양대에 진학했다. 인사계장-과장을 지낸 조직통으로 ‘강봉석 사단’이 있다는 음해가 나돌아 피해를 봤다. 1급 승진 1순위인 문화정책국장 재직 중 정권이 바뀌자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튕겨 나갔다. 나 대변인은 1997년부터 출국하는 내외국인에게 1만원을 내도록 출국세를 신설해 ‘관광기금’을 조성했다. 월간 100만명의 외국 관광객 시대를 연 토대는 결국 출국세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문화부의 ‘차차기’ 차관 물망 1위는 나 대변인과 행시 34회의 선두주자인 오영우(47) 정책기획관이다. 오 정책기획관은 업무 욕심이 많아 후배들한테 눈총을 받는데 기획통으로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한다. 국립외교원에 교육 파견 중인 김기홍(53·행시 32) 이사관은 2년 6개월의 최장기 체육국장으로 2018년 평창올림픽을 유치한 정부 실무 책임자다. 문화부 여성 1호 국장에는 박명순(49·행시 34)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운영단장이 있다. 문소영·오상도기자 symun@seoul.co.kr
  • [부고] 베트남전쟁 참상 전세계에 알린 종군 사진기자 맬컴 브라운 숨져

    독재정권에 맞서 가부좌를 튼 채 분신한 스님을 촬영한 사진(위)으로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종군 사진기자 맬컴 브라운(아래)이 28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81세. 브라운은 1963년 베트남의 고승이었던 틱꽝득 스님이 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 조치에 맞서 자신의 몸을 불태우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응오딘지엠 전 베트남 대통령의 퇴진과 군부 쿠데타의 도화선을 마련했다. 친미 성향의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원했던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주요 신문의 1면에 이 사진이 실리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자 베트남 정책을 재평가했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월요 인포 그래픽] 찬란한 중동의 古都, 전쟁의 불꽃 앞에 스러지다

    [월요 인포 그래픽] 찬란한 중동의 古都, 전쟁의 불꽃 앞에 스러지다

    혈안이 된 권력 다툼 앞에 세계인의 유산이 덧없이 무너지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작은 로마’(팔미라) ‘향기로운 도시’(다마스쿠스) ‘지중해의 하얀 신부’(트리폴리)…. 별칭만큼이나 찬란한 문명을 품은 중동의 고도(古都)들이 역사책에서 자취를 감출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봄부터 중동·북아프리카를 뒤흔든 내전과 소요 사태가 인류 최초의 문명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싹튼 수천년 역사의 유적들을 앗아가고 있다. 18개월째 내전을 치르고 있는 시리아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만 6곳에 이르는 중동의 박물관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시리아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심장부로 바빌로니아인,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등 수많은 민족들이 서로 이 땅을 차지하겠다고 전투를 벌였다. 이 때문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온갖 종교와 인종을 공유하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소중한 유산을 일궜다.”고 말했다. 특히 5000년 역사의 도시 다마스쿠스, 알레포는 도시 자체가 유적이다. 이런 도시를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군사 기지, 무기 저장고로 전락시키며 잔혹하게 파괴하고 있다. 도심 깊숙이 파고들어 시가전을 벌이고 유적을 은신처나 방패막이로 삼으면서 수천년간 난공불락이었던 성(城)과 요새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십자군 전쟁 때도 함락된 적 없는 알레포성의 철문은 정부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부서져 나갔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영국군 장교 TE 로렌스가 “세계에서 가장 경이롭고 완벽하게 보존된 성”이라고 감탄했던 십자군 요새 ‘크라크 데 슈발리에’도 정부군의 폭격을 맞아 내부 교회 등이 파손됐다.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굳건했던 12세기 요새 ‘알마디크성’은 지난 1월 심한 폭격으로 성벽에 구멍이 뚫리는 수모를 당했다.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 중동에서 가장 화려한 로마 시대 문화를 꽃피웠던 팔미라도 정부군의 제물이 됐다. 유적지에 탱크 등 군용차량을 대놓는 것은 물론이고 지하에는 참호까지 판 것으로 알려졌다.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아파메아의 로마 시대 모자이크화 12점은 전쟁통에 도둑맞았다. 도굴꾼들이 불도저를 끌고 와 모자이크가 박힌 신전 벽과 바닥을 무참히 떼어 갔다. 인터폴까지 수색에 나선 상태다. 정부군 탱크는 1850m에 걸쳐 있는 로마 시대의 도로에 늘어선 기둥까지 공격했다. 혼란 속에 도굴꾼들만 신이 났다. 요르단, 터키 등 인접국 미술시장에서는 시리아에서 유출된 유물들이 넘쳐난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25개에 이르는 지역 박물관들은 약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마랏 알누만의 모자이크 미술관에서는 북부 고대 도시에서 출토된 작품 다수를 도난당했다. 전 국토의 문화유산들이 비상사태에 놓이자 지난 5월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모든 분쟁 당사자들은 시리아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해 달라.”고 촉구했다. 인터폴도 시리아 문화유산이 위험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이는 시리아만의 재앙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반정부 시위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독재를 종식시킨 이집트는 소요 기간 동안 유물 1000여점을 도난당하는 상처를 입었다. 이집트 역사를 축약한 12만 점의 유물을 보관한 카이로 이집트박물관은 지난해 1월 도굴꾼들에게 유물 18점을 빼앗기고 70여점을 훼손당했다. 아시아까지 세력을 떨쳤던 아크나톤 왕의 석회 석상과 투탕카멘 왕 금박 목재 석상 2개 등이 사라졌다. 같은 달 고대유적지 다흐슈르의 보관소도 파괴됐다. 이집트 고·중왕국 시기 왕족과 귀족들의 묘지로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가 유명한 곳이다. 지난해 8개월간의 리비아 내전은 북아프리카 최고의 로마 유적, 렙티스 마그나를 위험으로 몰아넣었다. 무아마르 카다피군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습을 피하려고 로켓, 탱크 등 무기와 군수품을 숨기며 렙티스마그나를 ‘방패’로 내세웠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일부 언론은 이에 나토군이 렙티스마그나와 페니키아인들의 무역항 사브라타를 폭격했다고 전했다. 1만 4000년 전 작품인 세계문화유산 아카쿠스산 암각화도 파손됐다. 도굴꾼들은 실크에 특수 화학물을 묻혀 벽화를 옷감에 찍어 가는 수법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적으로 전쟁 중의 문화재 파괴는 민간인 학살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두 이슈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에마 컨리프 영국 던햄대 교수는 “사람이나 유물의 희생 어느 한쪽만 봐서는 안 된다. 인류의 기반이자 후대의 자산인 문화재의 재앙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 후세인 전미외교협회 중동 선임 연구위원은 “국민을 대량 학살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아버지도 모스크를 폭격했다. 국민들을 쉽게 죽이는 정부는 문화유산을 보호하지도 못한다.”고 비난했다. 국제사회는 2차 세계 대전의 상흔을 반성하며 1954년 전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헤이그 협약을 맺었다. 현재 126개국이 가입돼 있다. 하지만 군사 행위 시 문화재 보호 의무와 처벌 조건을 강화한 제2의정서 가입국은 63개국에 그치는 등 실질적인 구속력은 없다. 심우찬 국방부 군법무관은 “제2의정서에 가입하면 군부대가 유적지 근처를 통과하거나 인접 지역을 숙소, 식량 배급 등을 위해 이용하는 것마저도 처벌을 받게 돼 군사작전에 크게 제한을 받는다.”고 말했다. 주요국들이 가입을 미루는 이유다. 이 때문에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세계 최대 불상인 바미얀 석불 폭파, 2003년 이라크전 때 자행됐던 이라크 유적 파괴, 약탈이 대표적인 예다. 한마디로 문화유산은 ‘파괴되면 그만’인 게 현실이다. 이 교수는 “문명국가임을 자인하는 미국조차 이라크전 때 문화재를 파괴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면서 “이런 마당에 민주사회에 도달하지 않은 국가들에까지 이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만큼 인류의 문화유산을 고의로 약탈, 파괴하면 전범처럼 엄정하게 단죄하는 국제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기동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 위원장은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정권이나 종파 등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켜 정당성을 훼손하거나 무역을 제재하는 것도 방법”이라면서 “무엇보다 각국 정부와 비정부기구(NGO) 등 민간이 평소에 문화재 보호 의식을 키우고 전시 대비 문화재 보호 전략을 마련하는 등 예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Weekend inside-변협 60년 영욕사] 공급과잉에 변호사 1인당 月 1.8건 수임… “먹고살기 빠듯”

    [Weekend inside-변협 60년 영욕사] 공급과잉에 변호사 1인당 月 1.8건 수임… “먹고살기 빠듯”

    서울 종로구의 한 상가건물 4층 한쪽 귀퉁이, 16㎡(5평) 남짓한 공간. 변호사 A씨의 법률사무소다. 간판도 없고 직원도 없다. 칸막이 한 개로 옆 도매상회와 분리돼 있을 뿐이다. 달동네 ‘복덕방’ 같다.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9년째. A씨는 한때 법조타운인 서초동에서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번듯한 사무소도 있었다. 민사소송을 전담하며 돈도 꽤 벌었다. 주위의 부러움도 샀다. 하지만 3여년 전부터 변호사 수가 급증하고 크고 작은 로펌에 밀리면서 수입이 뚝 떨어졌다. A씨는 직원을 줄이고 임대료와 관리비가 싼 변두리 지역을 전전했다. 판검사나 로펌 소속 연수원 동기들 사이에서 “A변호사 망했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다 끝났다.’는 생각과 수치심에 자살을 두 번 시도했다. A씨는 “두 번째로 손목을 그었다 병원에서 깨어나던 날 내 처지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지금의 상가건물에 ‘무늬만’(?) 사무소를 열었다. A씨는 “요즘도 수임 건수가 적어 버티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초심을 되찾았고 그 마음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늘고 수임 건수는 줄고 지난 20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1952년 8월 협회 인가 당시 변호사 수가 200여명이던 변협은 2010년 등록 변호사만 1만명을 돌파했다. 외형은 커졌지만 속은 까많게 타들어 가고 있다. 로스쿨 도입, 국내외 로펌 등 대내외 상황 변화로 변호사업계에 일고 있는 지각 변동 때문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변호사 사무실만 열면 떼돈(?)을 벌던 시절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사법연수원 수료생이나 기존 개인 변호사들은 오늘도 A씨처럼 ‘살길’을 찾아 떠돌고 있다. 변협의 ‘역대 변호사 사무소 개업자 수 현황’에 따르면 1990년 1983명이던 변호사 수는 2000년 4228명, 2008년 8877명에 이어 지난 8월 기준 1만 1702명까지 늘었다. 10여년 사이 3배 가까이 폭증했다. 더구나 올해는 사법연수원생 1000여명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시험 합격자 1450여명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판검사 임용 수는 제한돼 있다. 대부분 구직 전쟁에 내몰리고 그중 대다수가 실직 상태에 처하게 된다. 경기도교육청이 최근 6급 계약직 법률 전문가 1명을 채용하는 데 로스쿨 졸업자 10명, 사법연수원 수료생 1명 등 11명이나 응시했다. 지난 3월 계약직 공무원 1명 채용 때도 21명의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가 응시했다. 정태원 변협 대변인은 “넘쳐나는 공급량에 비해 시장 수요는 증가하지 않았다.”면서 “수요량은 인구수, 사회·산업적 구조와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사실상 변호사 수요가 증대할 만한 사회적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임 건수는 급감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2011년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수임 건수는 1.8건이다. 건당 최소 500만원을 웃돌던 수임료도 최근 평균 200만~300만원으로 떨어졌다. 서울 광진구에서 활동하는 이모 변호사는 “명예를 좇으려면 법원이나 검찰, 돈을 좇으려면 변호사를 하라는 말은 이미 과거가 됐다.”며 “보통 1년 이상 걸리는 민사 사건을 건당 200만원 받고 몇 건 수임했는데 먹고살기도 힘들다. 주변에는 개인 회생을 신청하는 변호사도 적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지방 변호사들의 사정은 더 눈물겹다. 월 5만원의 변협 회비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정 대변인은 “지방 변호사들을 흔히 ‘영일만’ 친구라고 부른다.”면서 “영일만은 ‘지난달 0건, 이달 1건’을 의미하는데 소송 사건이 적어 한 달을 공치는 변호사도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B변호사는 “수입이 없어 월 얼마를 번다고 말하기도 창피하다.”면서 “직원이랑 자장면 시켜 먹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국내외 로펌도 개인 변호사 생존 위협 국내외 로펌도 개인 변호사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로펌은 변호사 수에서도 압도적인 데다 보통 전문 분야가 나눠져 있어 해당 분야에 특화된 변호사가 소송을 전담한다. 그러나 개인 변호사는 특정 분야의 소송만 맡았다가 관련 수임이 들어오지 않으면 존립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에 전문화가 어렵다. 법무법인 ‘더 펌’의 정철승 변호사는 “부동산, 금융, 의료 등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부티크 펌’이 많아 로펌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개인 변호사의 사정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법률 시장이 개방되면서 영국, 미국 등 해외 굴지 로펌들도 속속 상륙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13개의 외국법 사무소 중 3개 사무소가 법무부 설립 승인 및 변협 등록을 마쳤고 10개 사무소는 법무부 설립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 가운데 영국 로펌들은 ‘싹쓸이 수임’으로 유명하다.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영국 로펌이 진출하면서 자국 로펌이 초토화되기도 했다. 개인 변호사들의 설 자리가 더 축소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변호사의 존립 근간이 흔들리면서 변협도 대외 메시지보다는 구성원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변협은 출범 이후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당시 고문 대책 공청회 개최, 1987년 6월 항쟁 때 호헌 반대 성명 발표와 거리 투쟁 등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는 양심적 목소리를 내며 인권 옹호의 최전선에 섰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호사 일자리 창출 등 변협 소속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함몰돼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신영무(69) 변협 회장도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국회의원 1명당 입법보좌관 1명 채용 ▲행정부의 법제과장 등 5급 이상 직책에 변호사 채용 등 일자리 마련을 촉구했다. 변협 소속의 한 변호사는 “변협이 공적이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이익 추구에 앞장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변협의 정 대변인은 “변호사의 사명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다.”면서 “변호사 사무실이 없어지고 있는데 사회 정의를 구현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변호사들도 “처음엔 다들 사회 부조리를 바꿔 보겠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 정의는 남 얘기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변호사가 많이 배출돼 시장이 포화 상태”라면서 “법학 지식만 달달 외워서는 안 되고 힘들더라도 자기만의 특화 분야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지숙기자 truth17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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