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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파병 지상논쟁 / 전문가 6인 5대 핵심 쟁점 점검

    보내야 하나,보내지 말아야 하나.최선의 국익은 무엇인가.이라크 전투병 파병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찬반 논쟁이 격화일로다.오는 24일 이라크 현지 조사단 출국 등 파병에 대한 결단의 시간은 가까워지고 있지만 득실을 판단할 정보를 쥔 정부나 정치권은 아직까지 국민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파병 찬성론에 선 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류길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목진휴 국민대 교수와 반대론에 선 김재홍 경기대 교수,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로부터 핵심 논란사항에 대한 의견을 들어 서면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1.美 이라크戰 정당성 논란 ●김재홍 이라크전은 미국의 입맛에 맞는 정권 수립을 위한 일방적인 침략 전쟁이다.석유자원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전략도 배경이 됐다.미국이 내세운 전쟁 명분은 거의 거짓으로 드러났다.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WMD)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전쟁을 위한 각종 정보 왜곡 등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서항 후세인 정권의 교체가 가장 큰 목적이고,석유자원 문제도한몫 했다고 본다.그렇다고 일각의 주장처럼 미국의 일방적인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기는 곤란하다.9·11테러 이후 새로운 국제 관습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목진휴 테러에 대한 응징이다.물론 9·11 테러가 없었다면 이라크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정욱식 기본적으로 제2의 산유국인 이라크를 손안에 넣어 석유시장을 통제하고 친미 정권을 수립하려는 것이다.후세인 독재라는 ‘악’이 미국의 식민통치라는 더 큰 악으로 대치된 것에 다름아니다. 2.전투병 파병 국익 득실 ●정욱식 전투병을 파병하면 미국의 이라크 점령 계획에 우리가 일조하는 것이 되고,이는 세계 평화의 위협적 존재인 미 신보수주의자들의 재기에 기여하는 어이없는 결과로 이어진다.안보의 가장 큰 목적은 국민의 생명 보호다.한국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보내는 것은 안보의 가장 큰 원칙을 무시한 것이다.국가와 기성세대 스스로가 ‘정의’를 저버림으로써 미래 세대의 가치관 혼란을 가중시키고 이는 유무형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게 된다. ●백학순 장기적으로 실(失)이 많을 수밖에 없다.사상자가 늘면서 수렁에서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극단적으로 말해 미국의 대리인 또는 용병으로 가는 우리 군대의 활동과 실체가 아랍권에 두드러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아랍권 전체와 우리 한국이 종교·문화적으로 대치하는 양상이 된다.명분없는 전쟁 뒤치다꺼리에 무슨 득이 있겠는가. ●김재홍 파병의 명분으로 한·미동맹을 들고 있는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직접적인 외세의 공격을 받았을 때로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경우가 다르다.파병을 하지 않는 것이 상호방위조약의 취지를 살리는 것이다. ●이서항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 관계이다.동맹이라하면 필요할 때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류길재 굳건한 동맹관계없이는 한국이 국제사회에 존재할 수 없다.싫든 좋든 파병은 불가피한 상황이다.파병 반대론자들은 한·미동맹 관계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또 파병시 중동국가들과의 향후 관계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국제정치를 모르는사람들의 생각이다.시간이 지나면 관계는 복원된다. ●목진휴 한·미동맹관계와 함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보내야 한다.전후 복구 과정에서 적극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부분들은 국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일각에선 ‘침략전쟁’ 운운하는데 어차피 전쟁 이후 치안 문제를 논하면서 국가간의 도덕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3.파병하지 않을 경우 전망 ●이서항 한반도 안보의 가장 중요한 축인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하루 아침에 동맹관계가 없어지거나 무효화되지는 않겠지만 관계는 점차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김재홍 일각에서는 미국의 파병 요청을 우리가 거부할 경우 양국 관계가 매우 껄끄러워질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양국간의 관계가 이 문제 하나로 모든 것이 헝클어질 만큼 단순한 관계는 아니다. 미국도 파병문제와 주한미군 재배치 등 다른 한반도 관련 현안들과 연계하지 않는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목진휴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당장 부시가 재집권할 경우 우리 정부에 대한 엄청난 압박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경제적인 분야가 하나고,또하나는 북한핵 문제가 될 것이다. ●류길재 미국 행정부가 한반도 정책을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만큼 파병을 거부할 경우 이를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미국과의 군사적인 관계가 변질될 수밖에 없다.미국은 한반도 정책을 미국의 국가 이익에 맞게 자의적으로 집행할 것이다. ●정욱식 중요한 것은 주권국가로서 국제평화와 이라크 사태 종결,국익의 관점에서 정책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가장 중대한 문제는 미국에 대한 심리적 종속과 근거없는 불안감이다.한국은 50년 전과 정치 경제 군사 분야에서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4.베트남전과 상황 비교 ●이서항 베트남전과 맞비교는 곤란하다.베트남의 경우 게릴라전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던 반면,현재의 이라크는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난 상황이다.얼핏 보기에 파견의 형식이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유사성을 띠고 있지만,상황은 그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류길재 여건으로 관찰하자면 지금은 베트남전 당시보다도 파병여건이 더 나쁘다고도 볼수 있다.당시는 돈을 받고 파병했다.경제적 이득을 꾀하고자 하는 배경도 있었던 것이다.지금은 거의 유일한 이유가 미국과의 동맹관계 때문이다. ●목진휴 일단 파병이 이뤄졌을 경우 현지에서 빨리 철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점은 비슷하다.또 이라크 국민들이 과거 월맹처럼 대응한다면 상황은 정말 유사해질 수도 있다.하지만 후세인 독재정치가 끝나고 후세인이 제거된다면 상황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본다. ●백학순 베트남전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다.베트남은 민족주의와 이념이 뒤섞인 전쟁이다.이번 이라크전의 경우 이라크인들의 입장에선 종교 전쟁이다.선과 악의 전쟁인 것이다.미국을 악으로 보는데,미국의 대리자로 나선 우리 군을 어떻게 보겠느냐.베트남전 못지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미 국민들도 이같은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부시 대통령이 지난 7일 의회에 이라크 비용 870억달러를 요구하는 연설을 한 그 다음날 이라크 전쟁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들이쏟아져 나왔다. ●김재홍 베트남전때는 양국이 처음부터 파병을 놓고 협상이 있었다.파병 조건과 비용 부담 등 모든 조건을 따졌다.하지만 지금은 동맹만 내세우면서 파병을 요구하고 있다.이는 절차적으로도 앞뒤가 안 맞는다. 5.파병여부 결정시 고려사항 ●김재홍 국내에서 거세지고 있는 파병 반대 여론을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국회와 언론 등이 바로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따라서 야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파병 지지 시사 발언은 정부간 협상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본다.파병을 하더라도 유엔의 모자를 반드시 써야 하고,비용 역시 유엔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는 것도 전략적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백학순 파병은 반대한다.하지만 파병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게 우리 입장이란 것도 인정한다.문제는 협상이다.정부는 북한 핵문제와 연계시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안된다.한·미동맹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미국은 우리의 파병 여부와 상관없이 협상을 통한 대화 해결로 북핵정책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정부는 대신,파병 규모,재정 분담 문제,그리고 향후 주한 미군의 주둔 비용 등을 협상테이블에 올려야 할 것이다. ●정욱식 ‘편협한 국익론’에 앞서 ‘이라크 비극의 해소’ 관점에서 봐야 한다.이라크인들의 고통을 덜면서도 한·미간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 모색될 수 있다는 것이다.미국이 강조하는 ‘치안유지’나 ‘테러세력 척결’과는 다른,전후 복구 역할에 중점을 둬 ‘이라크 전후 복구 지원단’을 구성해 식수와 의약품을 지원하고 상하수도,병원,학교,전기시설,도로 등을 재건하는데 주력하자.이라크인에게 환영을 받으면서도 한·미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서항 파병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꽤 많다.현재 한·미 당국간에 협상중인 미2사단 이전 등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도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또 파병부대 주둔지 선정문제,배속부대와의 지휘권 문제 등 미세한 문제까지 우리측에 최대한 유리하도록 적극 협상을 해야 한다.이런 협상을 위해서는 가급적 신속한 결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리 김수정 조승진기자 crystal@
  • 말말말˙˙˙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사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은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야당과 언론의 최소한의 감시와 비판마저 허용하지 않겠다는 발상이며,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자유를 말살하려는 반민주적 독재정치·오기정치의 발로이다. -한나라당 김영선 대변인의 ‘언론탄압·야당탄압 기도를 중단하라’는 논평에서-
  • [2002 선거 대해부] 정치세대별 지지성향 분석

    6·13 지방선거와 월드컵 열풍이 지나간 지난 6월은 다가오는 12월 대선 구도에도 커다란 여진을 남기고 있다.이번 조사에서도 드러난 바와 같이 ‘정치세대’가 대선의 핵심 변수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 조사 중 대선후보 가상대결 지지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지지도는 33.4%인 반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의 지지도는 21.1%로 나타나,지난 3월 민주당 경선을 계기로 등장한 이른바 ‘노풍(盧風)’이 잠잠해졌다.또한 응답자의 19.7%가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과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대표 및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대표 등 제3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6월 대선구도의 변화는 민주당의 참패로 나타난 6·13 지방선거를 통해 이미 예고된 바 있었다.그러나 12월 대선과 관련 ‘이-노 역전 현상’의 중요성은 노풍의 핵심 진원지로 알려진 소위 ‘386세대’에서 이 후보의 지지도가 노 후보의 지지도를 앞섰다는 점이다.이에 따라 이번 대선 과정에서 노풍과 함께 급격히 부상했던 세대갈등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사실 ‘386세대’라는 표현은 87년 당시 민주화를 이끈 주역이며,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연령층을 표현하는 일종의 정치적 세대 개념이다.연령대와 달리 정치적 세대는 동일한 정치사회화 과정을 거친 연령층,즉 특정한 정치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연령층을 의미한다.물론 정치적 세대는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연령층에 걸쳐 분포한다.정치사회화는 일반적으로 18세를 전후해 이뤄지기 때문에,모든 개인이 18세 전후에 경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정치적 세대가 구분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경우 커다란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볼 때 대략 6가지 유형의 정치적 세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먼저 ‘건국세대’이다.이들은 1959년 이전에 18세를 맞이한 사람들로 45년 해방 과정의 격동과 한국전쟁을 경험한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시기에 정치사회화가 이뤄진 세대이다.다음으로‘4·19세대’는 60년에서 71년 사이 18세를 맞이한 연령층으로 4·19와 5·16의 파장 아래 정치사회화를 경험한 세대이다.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시기인 72년부터 79년 사이 18세를 맞이한 ‘유신세대’는 4·19세대와 달리 유신이라는 암울한 독재정치 시절에 정치사회화가 이뤄졌으며,흔히 ‘긴급조치세대’라 표현되기도 한다.한국 민주화의 주역으로 평가되는 ‘광주세대’는80년부터 86년 사이 5공화국 시대에 정치사회화가 이뤄진 세대로 광주민주화 운동의 유산을 껴안고 살아야만 했다.광주세대에 이은 ‘6·10세대’는 87년에서 91년 사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치사회화가 이뤄졌으며 6·10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얻은 민주화의 봇물 속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했다.마지막으로 ‘민주세대’는 92년 이후 18세가 된 세대로 3당 합당과 정권교체를 의미있는 첫 정치적 경험으로 삼고 있다.이들은 실질적인 민간정부의 통치시기에 정치사회화가 이뤄졌으며,사회적으로 정보화세대를 대변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선거는 지역주의적 선거로 점철돼 왔다.이런 측면에서노풍과 함께 이번 대선 과정에서 부각된 세대별 혹은 연령별후보지지 양상은 한국 정치가 진일보할 수 있는 계기로 평가된다. 세대별 후보지지 양상은 출신지를 떠나 이념적·정책적 성향에 따른 후보선택을 의미하며,따라서 지역주의가 극복되고 있다는 징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별 후보지지 경향은 비록 잠복된 형태였지만 지난 15대 대선에서도 발견된다.15대 대선 직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5대 대선 당시 이회창·김대중 후보 이외의 제3후보에 대한 지지에서 세대효과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유신세대를 축으로 광주세대,6·10세대,민주세대는 제3후보를 상대적으로 높게 지지한 반면,4·19세대와 건국세대의 상대적 지지도는 매우 낮았다.이 후보의 경우 유신세대와 건국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5공세대와 6·10세대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도를 나타냈다.그러나 김 후보의 상대적 지지도는 건국세대 105.8,4·19세대 111.0,유신세대 91,광주세대 94.6,6·10세대 97.6, 민주세대 96.8인 것으로 나타났다.당시 세대효과가 수면위로 부상하지 못한 것은 김후보가 모든 세대에 걸쳐 고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세대현상이 부상한 것은 노 후보의 지지양상이 15대 대선 당시 김 후보의 세대별 지지도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김 후보와 정치적 역정을 함께 한 건국세대와 4·19세대는 잠재적인 이념적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를 지지했지만,정치적 동질성을 광주세대이후 세대에서 찾는 노 후보에 대해서는 이들이 동질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결국 건국세대와 4·19세대에서 노 후보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따라서 노 후보가 당면한 과제는 6월 정국을 통해 다시 잠재화된 노풍을 어떻게 되살리느냐,즉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고 있는 광주세대와 제3후보로 지지를 선회한 6·10세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의 경우 지난 대선보다 세대효과가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고있다.즉 건국세대와 4·19세대에서 이 후보에 대한 상대적 지지도가 높아진 반면,유신세대,5공세대,6·10 세대의 지지도는 거의 현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15대 당시 평균적인 지지를 보였던 4·19세대의 상대적 지지가 높아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15대와 비교해 이 후보가 아쉬운 부분은 평균적 지지를 보였던 민주세대가 현재는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는 점이다.당시 이 후보의 참신성과 대쪽 이미지는 상당 부분 사라진데다 보수성이 보다 뚜렷해진 결과이다. 결론적으로 세대별 후보지지 양상은 이번 대선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지방선거 결과와 이번 조사의 세대별 지지양상을 종합해 볼 때 16대 대선은 여전히 지역주의적 투표가 힘을 발휘하겠지만,민주화 이후 세대가 주요 변수로 등장하는 최초의 선거가 될 전망이다. 이번 조사에서 ‘세대현상’은 노풍의 퇴조 및 이-노 반전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 구도를 뚜렷이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물론 이회창 후보는 민주세대를 제외한 모든 정치세대에서 노무현 후보를 포함한 다른 후보자 모두를 앞서고 있다.또한 노 후보의 경우 민주세대에서만 1위를 고수하고 있을뿐이며, 6·10세대와 4·19세대에서는 정몽준 의원,박근혜 의원,권영길 대표를 포함하는 제3후보의 전체 지지율보다 낮아 노풍의 퇴조가 실감난다.그러나 연령이 높을수록 이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크게 증가하는 반면,노 후보의지지율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대별 대선후보 지지현상은 세대별 ‘상대적 지지도’를 살펴볼 때 보다정확히 파악된다.상대적 지지도란 특정 후보에 대한 전 국민의 지지율에 비해 특정 세대에서의 지지율이 높은지 낮은지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 세대지지율을 전체지지율로 나눈 값에 100을 곱한 수치이다.예컨대 A후보의 전체지지율이 40%이고,특정 세대의 지지율이 80%일 때 상대적 지지도는 200이다.상대적 지지도가 모든 세대에서 100에 근접하는 경우 세대별로 고른 지지를얻고 있는,즉 세대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무응답층을 제외한 상대적 지지도를 살펴보면 이회창 후보의 경우 건국세대155.7,4·19세대 135.7,유신세대 114.6,광주세대 87.4,6·10세대 72.1,민주세대 61.0이다.즉 건국세대와 4·19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있으며,광주세대와 6·10세대,민주세대에서는 상대적 지지도가 낮은 것이다. 반면 노무현 후보의 상대적 지지도는 건국세대 63.9,4·19세대 67,유신세대73.3,광주세대 107.7,6·10세대 104.9,민주세대 156.1로 민주세대에서만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노풍의 주역인 광주세대나 6·10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노 후보를 더 크게 지지하지는 않는다는점이다. 세대효과는 물론 연령효과를 동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연령효과를 고려한다면 광주세대에 비해 노 후보에 대한 상대적 지지도가 높아야 할 6·10세대에서 왜 그렇지 않은 것일까.6·10세대의 경우 제3후보에 대한 상대적 지지도가 높은 반면 광주세대는 어떤 후보에 대한 상대적 지지도도 높지 않다는 점이다.광주세대는 암울했던 5공통치를 경험했고 군부통치의 종식과 민간정부로의 이행이라는 민주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일부 야당 및 재야 정치권과 정치적 목표를 일정부분 공유했다.반면 6·10세대의 경우 정치적으로 훨씬 자유로웠으며 야당의 분열을 경험했고,기존 정치권에 대한 회의가 상대적으로 높다. 세대 특유의 정치적 경험은 양자의 이념성향과 여야성향 등에 영향을 주었다.광주세대는 이념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밝힌 응답자가 32.2%인 반면,진보적이라는 응답자는 38.7%였다.그러나 6·10세대의 경우 자신의 이념성향이 보수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1.5%에 그쳤고,진보적이라는 응답자는 과반수를 상회하는 무려 51.7%에 달했다.여야성향의 경우 광주세대는 ‘여도 야도 아니다’라는 응답자가 38.6%인 반면,6·10 세대는 52.9%에 이른다.결국 양 세대의 이러한 정치적 경험의 상이성은 비록 양 세대가 노풍의 핵심적 진원지였지만 엇갈린 결과를 빚고 있다.즉 광주세대가 지지 유보층이나 무응답층으로 선회한 반면,확고한 여야 성향을 갖지 않는 6·10세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방문 등으로 손상된 노 후보의 참신성을 제3후보에서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한편 광주세대나 6·10세대와 달리 민주세대에서 노풍이 여전히 지속되고있다.이는 다른 무엇보다 세대별로 현 김대중 정부에 대한 평가가 상이하기 때문이다.민주세대는 김대중 정부에 대해 ‘못했다.’는 응답자가 41.0%인반면 ‘잘했다.’는 59.0%로 유일하게 김대중 정부의 업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권력형비리로 인해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다른 세대와 달리 민주세대의 상당수는 김대중 정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무응답층은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해 떠도는 이른바 부동층일 수도 있고 속마음을 드러내기 싫어서 침묵하는 유권자들일수도 있다.또 정치에 대해 모르거나 아예 정치에 무관심한 계층일 가능성도 있고,새로운 제3의 후보를 기대하는 그룹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 침묵하는 이 무응답층의 상당수가 12월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투표한다는 사실이다.그래서 무응답층의 존재는 선거결과를 예측하는 데 일정한 제약요인인 동시에 선거전을 흥미있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실제 무응답층의 증감 현상과 주요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도 변화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른바 노풍(盧風)이 잦아들면서 무응답층이 증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앞으로도 후보들은 절대적 지지계층이나 반대계층보다는 무응답층에 포함된 잠재적 지지계층이나 부동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무응답층에 대한 분석은 후보들의 선거전략이나 앞으로의 행보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KSDC 여론조사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정몽준(鄭夢準) 의원,박근혜(朴槿惠) 의원,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대표 등 다섯 명의 예비후보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는 설문이었기 때문에 무응답층을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총 1501명의 표본 중 25.6%인 384명이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았다는점은 대통령 선거전의 초반이라 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많은 유권자가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384명의 무응답 표본은 특별히 몇 가지 부분에서 응답 표본과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인구통계적 측면에서 응답 표본에 비해 남성보다 여성이 많고,광주와 전북,충북 등 읍·면 농촌지역 인구,저소득층,중졸 이하 저학력층,대학 재학생의 상대적 비중이 크다. 무응답 표본은 응답 표본보다 정치적 관심도나 투표 참여율이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투표 당일이나 투표일 1∼3일 전에 후보선택을 결정한 비중도 무응답층이 응답층보다 높다. 무응답자들이 지방선거에서 투표대상을 선택할 때 대선후보들의 영향력을 응답자들보다 덜 받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흥미있는 대목이다. 무응답자들의 투표성향은 통계적 방법으로 예측해 볼 수 있다.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선택하는 유권자들은 대개 중요한 몇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기 때문에 특정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유권자들이 공유하는 특성을 알 수 있다면,역으로 그 특성을 근거로 유권자의 선택을 예측할 수 있다. 즉 고향이 어디이고,나이가 어떻고,지난 선거에서 어떤 정당이나 후보를 선택했는가 등 여러 요소를 근거로 지지하는 후보를 밝히기 꺼려하는 유권자의 선택을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후보의 양자 대결을 가정한 판별분석을 통해 무응답층을 이회창 지지그룹과 노무현 지지그룹으로 분류할 경우,384명의 무응답 표본 가운데 노무현 후보 지지가 246명(64.1%),이회창 후보 지지가 138명(35.9%)이었다.무응답 표본의 약 3분의2가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과 유사한 특성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무응답층이 이른바 노풍(盧風)의 부침과 밀접하게 연결된 계층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회창,노무현,정몽준,박근혜 등 4명의 후보 그룹으로 분류할 경우에는 정몽준 의원이 최대의 수혜자로 384명의 무응답 표본 중 무려 53.4%나 되는 205명의 분류를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노무현 후보가 25.5%,이회창 후보가18.8%,박근혜 의원이 2.3%를 각각 차지했다. 최근 월드컵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속히 부각되는 정몽준 의원이 무응답층에서 만큼은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에 상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다른 측면에서 보면 무응답 표본의 상당수가 제3의 후보를 기대하는 집단일 수 있다는 추측에 신빙성을 더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번 KSDC의 면접조사에서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히지 않은 무응답 표본은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무관심층이나 부동층으로 보이지만 실제 노무현후보에서 정몽준 의원으로 이어지는 ‘바람’과 깊이 관련된 집단이다. 올 대통령 선거의 판도를 크게 요동치게 할 중요한 정치세력이고,궁극적으로 12월 선거결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층이기도 하다. 결국 무응답층의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분석이 선거전의 판세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 6월의 문화인물 조지훈 시인

    문화관광부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1920∼1968)을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본명이 동탁(東卓)인 조지훈은 1920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운 뒤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했다.1939년 ‘고풍의상’‘승무’,1940년 ‘봉황수’로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주로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우아하고 섬세한 민족정서를노래한 그는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을 내 ‘청록파'로 불리게 됐다.‘풀잎단장’‘조지훈시선’‘역사 앞에서’등 그의 시집들은 모두 국어의 보석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시작(詩作)말고도 민속학과 역사학을 두 기둥으로 한 한국문화사에 몰입한 그는 ‘멋의 연구’‘한국문화사서설’‘한국민족운동사’등 한국학 명저를 남겼다.일제와 자유당 독재정치를 겪으며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지조’를중시했으며,시집 ‘역사앞에서’와 ‘지조론’등은 이러한 그의 성향을 담았다. 민족문화연구소는 6월15일 오전10시 연구소 강당에서 ‘지훈문학상'시상식을,22일 오후 영양 문화센터에서 ‘지훈문학 강연회’‘문학의 밤’행사를 각각 갖는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축출된 차베스 대통령 복귀

    [카라카스(베네수엘라) 외신종합] 12일 군 일부의 사임압력에 밀려 축출됐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이 14일 이틀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차베스는 이날 대통령궁에서 TV로 생중계된 재취임 행사를 통해 부통령인 디오스다도 카베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대통령직을 정식 인수했다. 카베요 부통령이 앞서 몇시간 전 서명했던 차베스의 대통령직 인수령은 이날 오전 4시30분(한국시간 오후 5시30분) 발효됐다. 카베요 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이 이제 자신에게 “허용된 역할과 권한을 계속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으며,차베스 대통령은 눈물을 머금은 채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아직 어리둥절하다.지금도 이번 사태를 받아들이려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차베스는 “우리는 이번의 반혁명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면서 “피와 고통을 가져온 이번 사태가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그는 또“나는 평화를 촉구한다.나는 안정과 이성,그리고 국가 통합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차베스는 앞서 대통령궁에 복귀한 뒤 “베네수엘라는 독재정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우리는 전세계인에게 어제와 오늘의 훌륭한 모습(일)을 보여줬다.”면서 “나는 이같은 사랑을 다시 느끼게 돼 기쁘다.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항상 여러분들과 함께 했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페드로 카르모나 임시대통령은 13일 군 특수부대의 압력으로 취임 27시간만에 사임을 발표하면서,의회가디오스다도 카베요 부통령을 대통령 권한대행에 임명했다고 말했다. 군의 한 대변인은 이날 라디오 방송을 통해 추가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군부가 카르모나 임시대통령을 설득시켜사임토록 했다고 말했다.
  • “테러전력 독재국 불용”

    [도쿄 황성기특파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8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묶은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말하고 “이들을 다루기 위해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혀 강경 방침을 재천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에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정상회담 뒤 일본총리 관저에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부시 대통령은 북한·이란·이라크 등과의 대화 의지를 배제하지 않았으나 “투명하지 않고 테러리즘의 전력이 있는 나라들,자국민들을 굶기면서 독재정치를 펴는 나라들을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이 나라들로부터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강경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 등 ‘악의 축’으로 지목된 국가에대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모든 선택 방안을 검토중”이라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이 문제를 검토,논의하기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악의 축’ 발언에 대해 한국·일본 등 동맹국 내부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들(동맹국)은 이해하고 있다.”고 이를 일축했다.부시 대통령은기자회견 모두 발언을 통해 고이즈미 총리를 “위대한 개혁자로 일본을 지도할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고 평가,고이즈미 정권이 추진하는 구조개혁에 지지를 표명했다. 경제 분야에서 부시 대통령은 “일본 경제의 강인함이 전세계에 중요하다.”며 일본 경제의 조기 회생 필요성과 ‘고이즈미의 개혁’에 대한 전면 지지를 표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부실 채권 처리의 가속화와 금융 조치를 포함한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한 결의를 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도쿄의 메이지(明治) 신궁을 참배했다.고이즈미 총리는 외국의 국가원수와 함께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헌법상의 정·교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따라 동반 참배를 단념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을 수행중인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17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테러와 연계를 가져온 나라로 과거 한국의 각료들을암살하기 위한 양곤사태(아웅산 테러사건)를 일으킨 적도 있다.”고지적,북한의 테러 연계 문제를 정식 언급할 것임을 시사했다. 라이스 보좌관은 이어 “북한이 악의 축 국가로 분류된 것은 알 카에다 조직과의 연계성 때문이 아니라 북한이 전제적 억압체제이고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는 나라이기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7일 NBC방송 ‘언론과 만남’ 프로에 출연,“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너무 늦기전에 과거를 돌이켜보고 북한 주민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김 위원장에게 과거의 정책과 결별해 ‘큰 기회’를 포착하라고 촉구했다. marry01@
  • 김일성 스위스에 금괴계좌說

    1994년 사망한 북한 김일성(金日成) 주석 명의로 스위스의 한 은행에 80억달러(약 10조4,000억원) 상당의 비밀계좌가 개설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는 1일 1970년 9월11일 스위스 최대 은행인 스위스유니온은행에 순도 99.99%의 금괴 940t이 김일성 주석의이름으로 예치됐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측에 비밀계좌 예치증서 사본을 제공한 마르코스전 대통령의 측근은 “이 계좌는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비밀계좌의 안전을 위해 차명으로 개설했다”고 밝혔다. ●왜 김일성 차명계좌인가= 마르코스의 측근은 마르코스가 20여년간의 독재정치중 마련한 금괴 4,000∼5,000t 가량을스위스 은행에 가명,차명 혹은 재단명으로 예치하는 과정에서 “안전판 마련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제 3세계 독재자 이름을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만일 김주석과 합의 하에 만든 것이라면 1970년 계좌 개설 당시 북한과 필리핀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금괴 찾을 수 있나= 이 측근은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법적 상속자’로서 이를 인출하는 것도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마르코스가 설립한 각종 재단의신탁 관리인들중 일부가 생존해 있어 계좌 비밀번호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마르코스 망명 후 필리핀 정부가 해외은닉재산 반환을 위해 구성한 ‘선한 정부 구현위원회(PCGG)’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설 땐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금괴의 출처·규모= 마르코스가 해외에 은닉한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 대부분은 이른바 ‘야마시타의 금’에서 유래된다.일제가 2차대전을 일으켰을 때 조선·필리핀군사령관을 지낸 야마시타 도시유키(山下奉文)는 아시아 일대에서 약탈한 금을 곳곳에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필리핀지방의원으로 일하면서 보물지도를 입수,‘금부자’가 된마르코스는 그 자금으로 1965년 대통령이 된 뒤 본격적 금찾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미기자 eyes@
  • 푸틴 ‘강력한 러’ 구축 성공

    ‘강한 러시아 건설’을 통치 제 1목표로 내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49)이 26일로 대통령 당선 1주년을맞았다. 지난해 3월 대선 승리 후 5월 취임한 푸틴은 활발한 외교활동과 권력기반 강화를 통해 ‘강력한 푸틴 시대’를 열었다.최근 여론조사 결과 그의 인기는 당장 대선을실시해도 재선될 수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푸틴은 ‘강한 대통령과 강력한 러시아’라는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취임 이후 지방분권화 경향을 통제하고 국가두마(하원)를 완전히 통제,크렘린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대외적으로도 유럽 각국,북한과 일본 등을 종횡무진하며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목소리를 높였다.최근에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망(NMD) 구축에 강력히 반대,세계질서의 다극화를 추구하는 외교노선을 분명히 했다. 한편 ‘소비에트식 독재정치의 부활이 아니냐’는 서방의우려에도 불구, 체첸 반군에 대한 강공과 구소련시대의 국가(國歌) 부활을 통해 러시아인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과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성공적전환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아직도러시아의 많은 시민단체와 언론들은 정부의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푸틴 정부에 비판적 논조를 높였던 독립언론NTV는 붕괴 위기에 처했다. 또 ‘구소련시대의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사이의 어중간한상태’에 놓인 러시아 경제의 전면적 개혁에 나서지 못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다.옐친 시절 사유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유착,산업전반을 장악한 이른바 올리가르흐(과두산업재벌)를 척결하지 못한 점은 러시아 경제 재건에 큰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동미기자 eyes@
  • [대한광장] 한국정치의 사망과 도둑공화국

    우리 정치는 평가나 비평의 대상이 못되는 것 같다.문제는 있지만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을 때 평가나 비평이 가능한 법인데 일상으로접하는 정치는 오직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그러나 지금은 비난도 힘겹다.나는 육두문자를 제외하고는 우리 정치를 비난할 수 있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따지고 보면 독재정치에도 일정한 원칙과기준은 있는 법이거늘 이렇게 원칙없고 엉망인 정치,이렇게 국민을능멸하는 전망없는 정치를 동서고금을 통해 듣고본 적이 없다.그래서한국정치는 죽었다. 시야를 조금 넓혀보면 재미있는 대비가 눈에 띈다.사회는 점점 민주화되고 있는데 정치는 뒤로만 가는 현상이 분명하지 않은가.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나가는 단계에 있다.성과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재벌개혁과 금융개혁 등 경제개혁이나 여러 분야의 사회개혁이 추진되고 있다.행정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북관계는 더욱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거꾸로 가는것은 유독 정치뿐이다.그러니 정치가 사회 민주화의 흐름에 순응한다면 얼마나 많은 발전이 가능할까 하는 상상을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정치가 독재정치인 것 같지는 않은데 독재정치보다 더 나쁜 점수를 받고 있다.독재정치보다 무능하고 독재정치보다 더 미운 짓만골라서 하기 때문이다.언감생심 우리 정치에 철학이라고 할 것까지는없더라도 이렇다 할 기준이나 원칙이라는 것이 있는가. 우리 정치의앞날에 비전이나 전망이라는 것이 있는가.우리 정치의 방법에 협상이나 토론이나 타협이라는 것이 있는가.아니면 국민들의 불편한 마음을조금이나마 헤아리는 알량한 배려라도 있는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속된 말로 생산성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날이면 날마다 죽어라고 싸움질만 하는 저질 3류영화를 언제까지 계속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현 정부 출범 후 두 차례의 정치제도개혁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자체가 별로 변한 것은 없다.반면 정치행태는 한없이 나빠졌다.정당은 있지만 국회는 없고 정쟁은 있지만 토론은 없다.정치의 대리인들인 정치가들의 목소리는 크되 정작 정치의 주인인 국민들은 없어져 버렸다.두 번째의 제도개혁에서는 그나마도 시민운동단체들의강력한 저항에 걸려 선거법 일부가 개정되고 선거구가 대폭적으로 줄어들었다.정치권 혼자서는 개혁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것이입증된 셈이다. 그 사이에 권력형 비리니 의혹사건이니 해서 몇차례 조사과정이 있었다.고관대작의 부인들이 연루된 고급옷 로비사건,2,000억원 대의불법대출이 문제가 된 정현준게이트,정권 실세의 개입 여부로 청문회가 진행된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1,000억원이 넘는 안기부의 국고횡령스캔들 등등.그러나 어느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정권이국민을 두려워하거나,투명하거나,유능한 정권이라는 조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만 충족시켰더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만 살아 있었어도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을 것이다.정권은 무능하고 정치는 죽었음이 재확인된 셈이다. 안기부예산의 횡령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이다.알려진 대로 안기부공개예산 6,000억원중 15%인 1,000억원대의 자금을 여당선거에 전용한 것이라면 이완용에 필적할 사건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들 언어로 ‘이적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이것은 단순한 예산전용이 아니라 국고횡령이라는 범죄행위이며,더 정확하게는 국민혈세를 도둑질한 대역죄에 해당한다.어떻게 이런 도둑놈의 발상이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렵다.그런데 이번에도 흐지부지될모양이다.정부와 검찰,여당과 야당이 하는 일들이 도무지 일관성이없고 미덥지가 않다.권력집단의 미필적 공범관계라는 말로밖에는 설명이 어렵다.무능한 정부와 죽은 정치가 다시 국민들 가슴에 못질을하려는 것인지. 국고를 1,000억원 이상 도둑질 당했으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나라.오직 ‘도둑공화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무능한 정부와 죽은정치가 도둑질을 조장하는 셈이다.이런 도둑공화국에서 ‘개혁’은무엇을 하자는 것이고 ‘상생’은 또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인가.죽은정치의 부활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대화 상지대교수·정치학
  • 구국의 뜻 되새기자/ 독립유공 이젠 이념의 굴레 벗어야

    일제하 항일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가운데는 명백한 독립운동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못한 경우가 상당수 있다.그 이유는대개 두 가지로 압축된다.첫째,조선공산당 등에 가입해 좌익활동을 했거나또는 해방후 월북한 자 둘째,건국후 간첩죄 등의 죄명으로 실정법상 처벌을받은 자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당국의 미포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독립유공자 포상은 일제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포상인만큼 해방 이후의 행적을 이유로 포상에서 배제한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다.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인 경우 좌익활동이 독립운동의 방편이었을 경우 이를이념에 구애없이 포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최근 남북한 관계개선을 계기로 ‘이념의 굴레’에 묶인 독립유공자에 대해 적극적인 포상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1의거 10년 뒤인 1929년 11월 발생한 ‘광주학생의거’의 주역으로 의거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그로 인해 최종선고에서 징역 4년의 최고형을받은 인물로 장재성(張載性)이란 인물이 있다.4·19후 민주당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건국훈장을 주기로 결정했다.그러나 5·16후인 1962년 3월 1일 당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주무부처였던 내각사무처는 돌연 장씨에 대한 국민장(3등급·현 독립장)서훈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내각사무처는 서훈취소 이유로 신원조회 결과 장씨가 “해방후 조선공산당에 가입,활약하다가 1948년 2월 월북,공산당 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가 남파된 후 체포돼 7년형을 받고 복역중 6·25 후퇴시 피살된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동일한 사안에 대해 정권마다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한 잣대가달랐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장재성이 반공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면 죽산 조봉암(曺奉岩)은 정치적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일제 당시 3·1의거 참가 등으로 3차례에 걸쳐 8년여동안 옥살이를 했고,해방후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 부의장을 지낸 조봉암은 독립유공 공적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도 공이 적지않은 인물이다.그러나그에 대한 독립유공 포상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유공자가 달고 있는 ‘빨갱이’ 꼬리표와는 또 다르다.죽산에게는‘간첩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다.이승만정권 시절 진보당을 창당,급진적 정치노선을 표방했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승만을 위협하기도 했던 죽산은 ‘국가변란’을 기도한 간첩혐의로 59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그러나 그가 이승만의 정적으로 몰려 ‘정치재판’에서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증거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한편 죽산 사후 그의 동지 및 유족들은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왔으나 아직까지 그에 대한 사면·복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에 대한독립유공 포상 역시 한 발자국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보훈당국은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자로서 형을 받은 자는 그 서훈을 취소한다’는상훈법에 의거,그에 대한 포상을 거부하고 있다. 보훈당국으로선 실정법에 의해 사형집행을 받은 자가 사면·복권이 안된 상태에서 포상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그러나 문제는 독립유공자 포상제도가 공적 자체보다는 이념의 굴레와 정치적 잣대에 휘둘려 왔다는 사실이다.현행 독립유공자 포상제도가 적잖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보훈처 관계자들 역시 일부 수긍하고 있다.통일시대를 맞아 독립유공자포상과 관련,일대 정책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하겠다.지난 95년광복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이데올로기 문제로 포상에서 제외됐던 이동휘(李東輝)선생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이 실시된 것이 그 첫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분단후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호전되면서 해방후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출신 인사들에 대한 포상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임꺽정’의 저자이자 1927년 결성된 민족 단일조직인 신간회(新幹會) 부회장을 지낸 벽초 홍명희(洪命熹·내각 부수상 역임),국어학자 출신으로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돼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이극로(李克魯·조국전선 의장 역임)선생 등이 대표적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정치학자는 “통일시대를 앞두고 민족사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독립유공포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남북간 역사적 동질성을 모색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23년 黃鈺사건 주도 金始顯의사. 생전에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24년간 감옥살이를 한 초인적인 애국지사가있다.감옥생활 가운데 16년은 일제하에서 였으니 독립유공 공적이 결코 적지 않다.의열단원 출신으로 1923년 소위 ‘황옥(黃鈺)경부사건’의 주모자로체포된 김시현(金始顯)의사가 그 주인공이다. 김 의사는 거듭된 거사-투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해방을 맞은,몇 안되는 지사형 애국지사다.그러나 김 의사에 대한 독립유공 포상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유족측은 “보훈처가 지나치게 신중을 기한 나머지 서훈이 지연되고 있다”며 보훈당국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김 의사에 대한 포상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김 의사의 공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해방후 김 의사와 관련된 정치사건의 ‘전과딱지’가 김 의사의 독립유공 포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김 의사는 1954년 1월 이승만 대통령 암살미수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나중에 무기로 감형됨)를 받고 복역중 4·19혁명으로 풀려났다.평소 의협심이 강했던 김 의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짓밟고 독재정치를 펴자 동지유시태(柳時泰)와 함께 그를 처단하려다 미수에 그쳤다.이 일로 구속된 김의사는 4·19의거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석방되었으며,특별사면(1960.6.25)까지 받았다. 김 의사의 아들 김봉년(金峯年·78)씨는 “부친이 당국으로부터 특별사면을받은 만큼 그 사건과 관련해서는 원인무효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후지모리 대통령 3選… 野선 “무효”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61)이 28일(현지시간) 야당후보가 불참한가운데 실시된 결선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선거부정을 이유로 선거에 불참한 알레한드로 톨레도 야당후보(54)가 ‘선거 무효’를 선언,비폭력적인 반정부 운동에 나섰고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더욱 격렬해지면서 페루 정국은 혼미상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들은 페루 경찰이 수만명의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공포탄을발사,이중 수십명이 공포탄에 맞아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결선에 대한 국내외 비난여론이 고조됨에 따라 후지모리 대통령은 집권 이후 최악의 위기에 봉착,어떻게 대응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있다. 반정부 시위는 현지의 여론조사기관인 컴파니아 페루아나 데 인베스티가시온(CPI)이 25% 개표결과를 토대로 전망한 결과,후지모리 대통령이 전체 유효표의 76.8%를 획득,3선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AP통신에 따르면 26.9% 개표결과,후지모리 대통령이 50.3%를 득표했고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54)는 16.2%를 얻었다.32.4%는 무효표로 판정됐다.최종결과는 2∼3일뒤에 공식 발표된다. 수만명의 반정부 시위대는 28일 밤 늦게 리마 시내 에서 ‘독재타도’와 ‘부정선거 무효’ 구호를 외치며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이중 수백명의 대학생이 대통령궁을 향해 돌진하다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경찰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시위대가 정부 건물에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건물에 불을 지르는 등 시위 수위가 격렬해지고 있다. 결선투표 불인정을 선언한 톨레도 후보는 “후지모리가 페루의 민주주의를고사시켰다”면서 “이제 독재정치를 끝내야 한다”며 후지모리 정권을 상대로 ‘비폭력 반정부 운동’을 선언했다.그는 후지모리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고 군부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후지모리 대통령은 “이번 선거가 공정했음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주기구(OAS)소속 국제선거감시단은 투·개표 컴퓨터의 조작가능성과 선거요원들의 비전문성 등을 이유로 결선연기를 요청했으나받아들여지지 않자 선거결과 불인정 및 감시업무 철수를 선언했다. 미국 등 여러 국가들도 선거강행에 유감을 표시했다. 특히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27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공정한 공개 자유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이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 이라며 경제 제재를 시사했다. 미국이 남미 인접국들과 대(對)페루 제재 조치의 수위를 논의할 계획이라고밝혀 머지않아 국제사회의 대페루 제재조치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 후지모리 정권 일지. ■1990.7 후지모리,대통령에 취임. ■1992.4 친위쿠데타로 의회 해산 및 사법부 봉쇄■1992.11 하이메 살리나스장군 주도 군사쿠데타 진압. ■1993.12 대통령 연임 보장하는 새 헌법 제정. ■1995.7 대통령에 재선에 성공. ■1999.12 후지모리,3선 연임 출마 선언. ■2000.4 대선 1차투표에서 후지모리 49.8%,톨레도 40.2%의 득표율 기록,5월28일 결선일정 확정. ■2000.5.28 결선투표서 3선에 연임에 성공. ◆ 3연임 후지모리는 누구. 28일 결선투표에 반대하는 시위군중을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진압하고 기어코 3선 연임 대통령 타이틀을 거머쥔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jimori)페루 대통령.일생일대의 정치생명을 내건 대도박판 한가운데에 섰다. ‘대통령은 한차례 연임할 수 있다’는 헌법을 무시하고 지난해 12월 3선출마를 선언했을 때부터 그의 정치도박은 시작된 셈.일본인 이민 2세로 대학총장까지 역임한 그는 지난 90년 ‘캄비오 90(개혁90)’이라는 신당을 급조,같은 해 실시된 대선에서 여당후보인 페루의 저명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됐다. 그의 10년 재임기간동안 보여준 통치스타일은 한마디로 ‘철권통치’.냉정하고 강단있게 일을 처리,‘사무라이 대통령’이라고도 불렸고 그 이면에는‘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도박수가 있었다는 분석이다.첫번째 도박판은 지난 92년 일으킨 친위쿠데타.리마 거리에 탱크를 진주시키고 의회를 해산,이후 95년 유엔사무총장 출신인 하비에르 데 케야르에 맞서 연임에 성공했다. 96년 12월 ‘투팍아마루 혁명운동(MRTA)’이 페루주재 일본대사관관저에서인질극을 벌였을 때도 5개월 만에 무장병력을 침투시켜 인질사건을 해결했다.후지모리는 특히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식 경제개발계획에 지대한 관심을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정치적 격랑기때마다 교묘하게 고비를 넘겨온 후지모리가 피플파워를 이끄는 톨레도 후보와 미국등 국제사회의 압력을 어떻게 맞서나갈지 미지수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천수이볜의 타이완](상)향후 진로와 과제

    [타이베이 김규환특파원] 18일 실시된 타이완(臺灣) 총통선거에서 야당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49)후보 당선은 51년 동안의 국민당 통치를 종식시키고 정권교체를 통해 새 시대를 연 역사적인 쾌거다.21세기를 맞아 타이완인들의 독립 의지,민주정치 열망 등 ‘바꿔 열풍’이 국민당의 장기독재·부패정치를 청산하고 민주정치의 새 판을 짠 것이다.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패해 중국대륙에서 타이완이라는 작은 섬으로 쫓겨온 국민당은 51년 동안 일당 독재정치속에서 타이완을 ‘아시아의 4룡(龍)’으로 부상시키는 경제적 성공을 일궈냈다.그러나 국민당이 민주정치에 재갈을 물리고 개혁을 외면한 끝에 집권세력내에서 부정부패와 ‘헤이진(黑金·검은 돈) 정치’,성(性)스캔들 등 각종 스캔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으며,반사적으로 개혁과 독립의 목소리가 타이완인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타이완에서 개혁과 독립의 목소리가 커지면 중국은 “타이완이 독립하려는움직임을 보이면 무력으로 응징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고 이에 불안을 느낀 타이완인들은 ‘안정’을 내세운 국민당에 몰표를 던짐으로써 스스로 개혁의 날개를 번번이 접어야 했다.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국민당의 장기집권과 각종 부패스캔들에 염증을 느낀 타이완인들은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에 지지를 보냄으로써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마련했다.97년 12월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진당은 23개현중 13개 의석을 휩쓴 반면 국민당은 8개 의석을 확보하는데 그쳐 국민당의 민심이반을 절실하게 예고해 줬다. 이번 선거에서 천의 승리요인은 장기집권의 국민당 부패에다 천의 민주화의지,청렴성 및 개혁성향 등이 젊은층과 서민층을 파고든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18일 천이 당선후 처음으로 행한 대중연설에 몰려든 30만명 이상의 타이완인들이 ‘까이거(改革)’를 소리 높여 연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안정희구 세력들의 분열도 천의 승리에 일조(一助)했다.집권 국민당의 롄잔(連戰)후보와 국민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쑹추위(宋楚瑜)후보가 ‘안정’을 모토로 내걸어 안정세력이 롄과 쑹으로 나뉘어지며 적전분열(敵前分列)의 모습을 보여줬다.총통선거를 사흘 앞둔 15일 중국 주룽지(朱鎔基)총리의 위협발언도 오히려 타이완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득표에 도움을 줬다.주총리의 위협발언 이후 탕베이(唐飛)타이완 국방부장(장관)이 즉각 “싸움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두려워하지도 않는다(不求戰 不懼戰)”고 단호한 의지를 밝혀 타이완인들의 동요를 막아 준 것도 ‘호재’였다. 그러나 천의 타이완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타이완 정치대 우둥야(吳東野)교수는 “천당선자는 양안관계의 긴장완화·정치개혁 등 만만찮은 과제를 안고 있다”며 천의 당선을 노골적으로 저지하려던 중국의 강경노선을 누그러뜨려 양안관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천정부 성패의 가장 큰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천의 득표율이 40%에 미치지 못해 안정을 우선시하는 하는 듯한 나머지 60% 이상의 타이완인들을 천의 개혁노선에 어떻게 동참시킬지,선거전에서 드러난 ‘헤이진’을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도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경제적숙제도 있다.중국의 무력위협으로 연일 곤두박질하던 주식시장의 주가가 증시안정기금의 유입으로 가까스로 진정된 점을 감안하면 천이 주식투자자들에게 ‘안정속 개혁’의 확신을 어떻게 심어주느냐도 큰 문제다. khkim@. *타이완 정국 우리정부 시각. 타이완(臺灣)의 정권교체에 대해 정부는 매우 절제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타이완의 양자관계를 넘어 한·중과 중·미,남·북 관계 등 동북아시아 전체의 세력 구도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는 19일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한국과 타이완간의 실질적 관계 발전 기대 ▲중국과 타이완 양안관계의 평화적 해결 기대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라는 기본입장을 담은 논평을 발표했다. 정부 당국자는 “타이완 선거는 ‘중국 내부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에구체적인 언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주(駐)타이완 한국대표부의 윤해중(尹海重)대표를 통해 18일 타이완의 제10대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후보가 승리해 50년 만의첫 정권교체를 이룬 것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부는 타이완 독립을 주창해온 천후보의 당선으로 중국과 대만 관계가 악화되고 미국의 개입이 확산돼 동북아 전체에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각국언론의 분석에는 동감하지 않는다.정부 당국자는 “중국 정부나 타이완 당국이나 서로 조심할 것”이라면서 “어느쪽도 파국은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박태준(朴泰俊)국무총리도 지난 17일 한국에 주재중인 중국언론사 특파원들과 회견한 자리에서 중국측의 무력사용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중국과 타이완측이 대화를 통해 서로 유익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답변했다. 천후보의 당선으로 오히려 한국과 타이완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있다. 한국과 단교한 국민당 정권이 바뀌었고,천당선자가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천당선자는 한국의 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받은 바 있다. 경제계에서는 반도체 부품 수출입 등 양측간 경제통상 관계가한층 두터워질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는 5월20일 열리는 천후보의 총통 취임식에 특사를 보내지 않을 방침이다.그 대신 한·타이완 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손세일(孫世一)의원등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도운기자 dawn@
  • [대한시론] 김대통령 취임 두돌에 부치는 글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의 당선은 헌정 50년 만의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이었다.그러나 암울한 시대가 끝난다는 감격도 한순간에 그치고,김 당선자는 취임도 하기 전에 파국에 부닥친 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김대중 대통령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그의 경제파국 수습의 국정수행 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군사정권 이래 고질병이 되어 온 정경유착이 불러온 파국을 그 파국의 원인행위를 제공하는 데 책임을 지는 개인이나 당파가 수습할 수 있었겠는가? 솔직하게 사태를 봐야 한다. 다음에 김대중 정부는 민족의 통일이란 숙원을 정치도구로 이용해온 것을지양하고 대북정책에 일단 전기를 마련했다.통일과 안보를 빙자해서 못된 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시대 절대절명의 민족의 과제가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은 말길(언로)을 트기 시작하고 국민이 눈치를 보는 비열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는것이 아니라,원색적 비방까지도 마구 해대는 부작용도 있다.그런데도 역대독재자와 달리 용케 참아내는 김대통령을 본다.일부에선 오히려 그런 자세가 약하고 자신이 없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나 걱정도 한다. 여기서 나는 김대중 정부의 취약점을 내 나름으로 살펴 제언한다.김대통령이 취임 이래 경제파국을 수습하느라고 개혁을 미룬 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구시대 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방해에 대해 본다.대선에서 패한 구시대의 집권세력의 일부는 야당이 될 마음의 준비를 꿈에도 해보지 못했다.그러다가 대선에서 엉뚱하게 당했다는 감정의 응어리가 맺혀있는 듯하다.그래서 야당으로서 정도를 일탈해 룰이 없는 훼방꾼 정치를하고 있다.대통령 취임식날에 총리인준을 국회에서 부결시키는 것으로 출발해 사사건건 물어뜯기다.결국 야당 스스로 국회에서 정치갈등을 조정 해소할 여지를 거세해 버렸다고 할까? 우리는 세계화-지구 단위의 시장구조의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선 독점재벌의 정경유착의 부패구조를 청산해야 한다.그런데 이 개혁의 대상이 되는 재벌이 거대한 괴물같은세력으로서 개혁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고 있다.경제위기에서 재벌을 죽이면 재벌이 차지한 경제와 고용인도 피해를 본다는 볼모를 잡고 버티면서 기득권을 고수하려고 한다.그들의 돈이 국민과 국가의 돈이란 점을 까맣게 잊었다는 듯이 독재시절의 단꿈을 되살리려고 한다는 인상을 준다.여기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너무나 신중하고 관대한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유화적이어서 오히려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주의할 점은 정권이 야당으로 바뀌면 제일 먼저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됐던 독재시대의 구관료나 기득권층,독재정치의 해택을 본 부류들이 그대로 그 지위와 권익을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김대통령은 정치보복을 안한다는 입장에서 부패 기득권층에게 관대하게 대해 오고 있는지 모른다.그렇지만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먼저 범법과 비리로 이득을 본자들이 심판을 받지 않는 역사가 그대로 존속한다면 누가 법과 정의를 위해자기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투쟁하겠는가?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해방후 친일파를 그대로 놔두어 나라꼴을 우습게 만든 일을 상기하라.다음에 그렇게심판을 모면한 부패 기득권세력이 김대중 정부의 관용에 감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까? 오히려 현정부의 나약함을 비웃으며 그들의 시대가 다시 오기를위해 날뛰는 것을 본다.이러한 판국이 되면 서민들은 “김대중 정부와 구정권이 무엇이 다른가? 지금도 정부는 부패세력의 편이고,구정권때부터 ‘정권에 줄서기’를 잘해 빌붙어 먹은 자들의 세상이 아닌가”하고 자조하고 절망하게 된다.필자는 그런 말을 한두번 들은 것이 아니다. 여기서 김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하겠다.대통령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형편과 과제를 보다 솔직 대담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충심으로 협조를 구하라. 구시대의 부패구조와 연고 파벌주의에 대해선 다른 묘책은 없다고 본다.대통령의 충정과 성의를 보이며 정면 돌파를 시도해야 한다.우리 정서로 봐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아주 중요하다.인간적으로 가혹한 말이 될는지 모르지만 대통령은 개인적 미련을 털고 앞장서서 뛰어야 한다고 권한다.김대통령은 이미 자기 한 몸을 겨레를 위해 던진 분이지만,이 시점에서 각오를 선명하게 행동으로 보이며 국민이 따라오라고 해야 한다. 한상범 동국대 교수 법학
  • 종교계 고문근절운동 본격 나선다

    지난 89년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의 밀입북 사건 수사과정에서 반인권적인 고문이 저질러졌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종교계가 진상규명과 고문근절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각 종교계는 최근 연일 대책회의를 갖고 향후 고문근절 운동방향에 관해 논의하면서 종교간 연대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9일 정기총회를 열어 사형제도 폐지서명운동을 결의하고 고문피해 사례 추적과 고문방지 대책에 대한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이와관련,가톨릭농민회와 천주교 인권위원회도 조만간 고문에 관한 입장표명과 함께 고문근절 운동에 나설 것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구체적인 성명이나 행동대책을 내고 있진 않지만 곧 교계내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고문피해 사례 수집과 범 교단 활동지침을 마련키로 했다.특히 KNCC는 고문 피해자들의 피해상황을 생생하게 알림으로써 일반인들의 고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방침이다. 불교 인권위원회도 아직 뚜렷한활동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다른 사회단체등과 연대해 나간다는 내부적인 입장을 세워놓고 있다. 한편 오는 25일 오후 6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는 지난 89년 국민대 학생 때 고문을 당한 김정환씨의 사례와 후유증을 드라마로 재현하는 이벤트가 열린다.KNCC와 고문피해자들이 공동주최하는 이날 행사는 불교 가톨릭등 각 교계가 모두 참여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앞서 ‘제2의 이근안 정형근을 심판하는 제사회단체 연석회의’는 지난 13일 성명서를 내고 ▲정형근 의원 즉각 사법처리 ▲고문 가해자 처벌에 공소시효 배제 ▲과거 독재정치권하의 고문피해자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고문 가해자들의 배후조종자 색출 엄벌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고문조작사건의 진상규명위원회를 즉각 설치할 것 등을 요구했다.연석회의는 각 종교와 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고문대책 모임의 구성을추진하고 있다. 김성호기자
  • [사설] 정형근의원의‘상습적 색깔론’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4일 부산집회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직접 겨냥해서 또 다시 ‘색깔론’을 들고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정씨는 ‘언론문건’의 핵심이 김대통령이라느니,공산당이나 빨치산의 전형적인 선전선동 수법이라느니 입에 담기 어려운 막말을 해댔다.국민회의는 정씨의 색깔공세에 대해 과거 군사독재정치의 용공조작·거짓말·지역감정을 총동원한구시대적 공작정치라고 비난하고,정씨를 ‘청산돼야 할 민주주의의 공적(公敵) 1호’라고 성토했다. 정씨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당사자인 국민회의 성토보다는 “군사독재 시절의 대표적 공안검사가 현 정부의 언론탄압을 운운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는 한 재야단체의 물음 속에 더욱 적실(的實)하게 담겨 있을 법하다.국민들은 과거 정씨가 김대통령에 대한 집요한 색깔공세로 출세의 가도를 달려온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정씨는 이번에도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의방북사건과 ‘이선실 간첩사건’을 거론하면서 김대통령에 대한 ‘색깔론’을 재탕했다.심지어 서경원씨 사건때 김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싹싹빌어 위기를 모면했다”는 모독성(冒瀆性)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회의는 정씨를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할 것이라고 한다.실정법상 고소밖에 방법이 없으니 그렇겠지만 정씨에 대한 고소가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정씨는 안기부 수사국장 때 서경원 전 의원과 서씨의 비서 방양균(房良均)씨를 고문한 혐의로 두 사람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그러나 정씨가 회기중 의원 불체포 특권을 내세워 버티는 바람에검찰 수사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정씨는 이번 ‘언론문건’ 사건과 관련해서도 이강래(李康來) 전 정무수석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다.검찰은 정씨에게 출두를 요구하고 있으나 정씨는 검찰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정씨는 의원 면책특권을 내세우다가 검찰에 대한불신을 거부 이유로 덧붙였다.정씨에게 쏠리고 있는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벗어나보려는 안간힘으로 읽혀진다. 그럼에도 정씨는 이번 ‘여론문건’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문건작성자가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로 밝혀진 마당에 정씨가 버틴다고 검찰이 손을 쓰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정씨의 발언들은 이미 의원 면책특권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게 국민들의 판단이다.따라서 검찰은 정씨의 신병을 확보,엄정한 수사를 통해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힘과 함께 검찰을 우습게 봐왔던 정씨의 작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그렇게 함으로써 무책임한 폭로나‘색깔론’에 기대는 정치인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역사에 남겨야 한다.
  • 하비비 下野說 불구 11월까지 갈듯

    국제평화군의 동티모르 파견을 수용한 B.J.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운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비비는 8월의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허용키로 결정,독립을 반대하는 군부의 압력을 받아온데다 독립투표이후 이어진 유혈폭력사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조기사임설에 시달려왔다. 더구나 총선에서 야당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에게 참패,오는 11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있다.대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하비비가 18년간의 독재정치 끝에 지난해 하야한 수하르토 대통령의 후계자였다는 점에서 대중적 인기,특히 엘리트층으로부터의 인기는 밑바닥이다. 일차적인 관심은 하비비가 오는 11월 대통령선거 때까지의 과도기간중 온전히 권좌에 머물수 있을지 여부다.가장 큰 변수는 동티모르,아체,이리안자야등의 독립움직임을 극력반대해온 군부의 동향. 현재 군지도부는 일단 하비비 체제 유지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한 인상이다.최고 실세로 꼽히는 위란토 국방장관이 12일 군부 군부 대변인이 하비비 결정에 대한 지지성명을 냈다. 군부로서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동티모르 주둔이 결정된 시점에서,하비비 외 다른 대안을 무리하게 내세우기 힘들 게 됐다.따라서 11월 선거때까지는 불안하지만 하비비 대통령체제가 유지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김수정기자 crystal@
  • 金대통령 캐나다 행보/”국내정치 혼란 국민힘에 의해 극복될 것”

    [오타와 양승현특파원] 미국 방문을 끝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5일 상오(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오타와에 도착,2박3일간의 국빈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크레티앵 캐나다총리는 6일 새벽 국회의사당 총리집무실에서 20여분 동안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특별동반자관계를 심화·발전시키기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캐나다측 듀도와 의전장의 안내로 총리집무실에 도착,입구에 서있던 크레티앵총리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한차례 회담을 한 구면인 탓인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북 포용정책,양국경제협력 등을 주제로 회담에 들어갔다. 캐나다측은 한국의 원자력사업에 캔두형 원자로를 가진 캐나다의 참여를 요청했으며,한국측은 시장원칙에 따른 공정한 처리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김대통령과 크레티앵총리는 특히 ‘인간 안보(Human Security)’측면에서 환경보전의 필요성을 비롯,인류의복지와 인권향상을 위한 양국간 협력에전폭 공감했다.이어 국무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45분여 동안 확대정상회담을가졌다.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공식수행원이,캐나다측에서는 외무·통상장관 등 7명이 참석했다. ■한국전 참전용사 접견 및 전몰용사 기념관 헌화 정상회담에 앞서 김대통령은 국회의사당 2층 코먼웰스룸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를 접견했다.김대통령은질다 몰가 상원의장의 소개로 캐나다측 의회 영접인사들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뒤 코먼웰스룸으로 입장,미리 설치된 연단 앞에 서서 참전용사들로부터 환영인사를 받았다.김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참전용사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열망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밑거름이 됐다며 이들을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고든 스트라디 회장과 레 피터 총무 등 참전용사회 임원들과 악수를 나눈뒤 의사당 3층에 있는 전몰용사 기념관으로 이동,헌화했다. ■공식환영식과 국빈오찬 김대통령과 이희호(李姬鎬)여사는 5일 밤 총독관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따뜻한 환영을 받았다.김대통령은환영식에서 “캐나다 방문을 통해 국가간 협력의 모범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 두나라는 앞으로 돈독한 우정을 바탕으로 태평양을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양국 우의를 강조했다. 이어 김대통령 내외는 총독관저 볼룸에서 르블랑 총독내외가 주최한 국빈오찬에 참석,연설했다.소접견실에서 크레티앵총리 내외와 인사를 나눈 김대통령 내외는 총독내외의 안내를 받으며 오찬장으로 이동했다. 김대통령은 오찬 답사에서 “우리 두나라가 과학과 문화·교육 등 다양한분야에서 손을 잡을 때 새천년엔 평화와 번영을 향한 보다 많은 기회를 얻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포간담회 김대통령은 5일 오전 오타와 샤토로리에 호텔에서 캐나다 교민 200여명과 간담회를 갖고 교민들을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자신의 자유메달 수상에 관해 설명하는 가운데 “한국에서 다시 독재정치가 나타나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다”면서 “정치가 약간 혼란스럽지만 결국은 국민의 힘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조국이 잘되면 체면이 서고 희망을 갖게 된다”면서 “한국은 48년 건국 이래 지금과 같이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며 자부심을 고취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국내의 경제회복 과정을 설명하고 “나는 임기중 경제를반드시 개혁해 (한국이) 세계 일류국가가 되는 기초를 만들어놓겠다”고 말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 [외언내언] 5·1절과 북한근로자

    5월 1일은 국제노동절이다.국제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근무제 실시를 주장하면서 벌인 파업을 기념하고 세계 노동자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됐다.북한은 해마다 국제노동절(5·1절)을 공휴일로 정하고 근로자들의 사기앙양을 위한 각종 행사를 벌이고 있다.올해에도 5·1절을 앞두고 각종 선전매체를 통해 북한의 노동계급은 먹고,입고,쓰고,사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과 혜택을 받고 있으며 세상에 부러울 것이없는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는 오직 북한 노동계급만이 지니는 최대의 영광이라는 선전을 되풀이하고 있다.그러나 북한내 각급 사회계층의 주도세력인 노동자들이 처하고 있는 실상은 그네들의 선전과는 판이한 상황이다.그동안 북한의 노동자들은 독재정치의 희생물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허울좋은간판 아래 기계 같은 노동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의 노동실태는 철저한 불평등권리와 의무체계를 부과하고 있으며 직업선택의자유는 물론 강제노동 폐지조약과 결사의 자유를 포함해서 국제노동기구의 160개 항목에 이르는 노동기준 가운데 어느것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북한근로자들은 경제난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으며 통치자에 대한 충성심만을 강요받고 있어 사회일탈현상에 주도적인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노동자의 지상낙원을 약속했던 북한땅의 오늘날 근로자 실태는 노동자의 기본적 생존권마저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어 사회주의 체제의 허구성과 노동정책의 기만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북한 근로자의 실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남한 근로자들에 대해 파업과 반정부 투쟁을선동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망각한 자가당착이며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4월 23일자 노동신문은 논평을 통해 민주노총의 투쟁은 “괴뢰 통치패들에대한 쌓이고 맺힌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라면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사슬을 끊고 임금인상을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선동했다. 5·1절을 맞아 북한이 인식해야 할 과제는 근로자들에게 노동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주는 일이다.노동의 참된 가치인식이야말로 북한 근로자들이 참다운인간적 존재양식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북한 근로자들이 피땀흘려 노력한만큼 인간적 행복이 보장될 때 비로소 5·1절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될것이다. 張淸洙논설위원
  • 특별기고-‘문명 충돌시대’와‘후삼국시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과 정치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드높다.오죽하면 시민단체들이 국회의원들에게서 세비를 반납받겠다는 운동까지 벌일까.군사독재시절,우리 국민들은 연중무휴로 일하는 국회를 보고싶어 했었다. 오늘날 국회의 모습은 어떤가. 작년 가을 정기국회 이래 지금까지 국회는중단없이 문을 열고 있다.그런데도 왜 예산안과 각종 법률안들이 제대로 처리되고 있지 못하는가.그 일차적인 원인은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국회 개원을 각종 비리혐의에 연루된 자당 의원들의 피신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지금 국회는 우리 민족의 고대에 있었다는 ‘솟대’처럼 되었다.국회의예산안이나 법률안심의를 세풍이나 북풍수사와 연계시켜 지연,거부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집권여당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터놓고 말할 때2,000만∼3,000만원 정도의 정치자금을 문제삼는다면 ‘나는 깨끗하다’고고해성사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 사회에는 무전유전(無錢有罪),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말이 상식처럼 되어있다.한나라당은 현재의 정치인 사정(司正)을 무권력유죄(無權力有罪),권력무죄(權力無罪)라고 항변하고 있는것이다. 한나라당 다수의 전력(前歷)을 보면 과연 그들이 이같은 항변을 할 자격이있는가라고 되묻고 싶지만,어쨌든 우리의 정치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원칙과 기준의 보편성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세풍이라든가,누가 봐도 명백히 범법적인 정치자금,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수억,수십억원대의 거래등은 단호히 처리하되,경미한 사건은 경미하게 처리한 후,본질적 문제들은제도적 개혁을 통해 근절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의 현주소에서 진짜 대책없는 부분은 정치인들의 정치의식이 ‘삼국시대’ ‘후삼국시대’수준이라는 것이다.우리 국민들이 ‘독재정치’를종식시켜준 것은 민주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는데,정치인들은 민주화가 아닌지역분할정치로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21세기 세계사를 다문명화시대로 전망하고 있다.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양극화됐던 20세기 국제정치가 공산주의 체제붕괴로,21세기에는 종교와 문명의 동질성에 기반한 7∼8개 문명권이 각축하는 새로운 장이 펼쳐질 것이라는 얘기다.약 184개에 이르는 민족국가군이 7∼8개 문명권으로 재편되는 세계를 상상해 보라.이 와중에서 소멸되는 민족국가군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는 세계 각국에게 기회이면서 위기이다.대격동이 예고되고있는 지금 우리 정치인들의 의식이 1천년도 더 전인 중세 초기의 ‘후삼국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의 21세기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까. 정략이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을 꿰뚫는 혜안이 담긴 정치개혁,민족적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의 구축은 시급하고도 본질적인 과제이다.이러한 정치개혁을 위해서 정치권은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바란다.成裕普 민주언론시민聯 이사장
  • 러 일부州 ‘경제 비상’ 선포

    ◎정치불안속 물가통제… 외국에 식량원조 호소 러시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서리 인준이 두차례 거부되면서 의회해산,비상사태 선포,유혈쿠데타 등 극한의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경제 역시 무정부상태. 생필품 품귀와 가격 폭등에 따른 주민들의 필사적인 사재기로 일부지역에선 ‘경제 비상체제’를 선언했다. ○…러시아의 일간 모스코브스키 콤소몰레츠는 8일 ‘대학살의 냄새’라는 제하 기사에서 옐친의 비상사태선포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나리오’라고 전망. 모스크바 전략연구소의 피온트코프스키 소장도 만약 체르노미르딘 총리안이 다시 상정돼 부결된다면 “의회는 해산되고 총선은 실시되지 않은 채 독재정치만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옐친 대통령이 의회의 강력한 반발에 굴복,체르노미르딘 총리안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대두. 한 정치분석가는 “옐친과 그 측근들은 체르노미르딘 도박의 실패로 다른 최상의 인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옐친도 1차 총리인준 동의안부결때와 달리 체르노미르딘 총리인준 동의안을 의회에 즉각 재상정하지 않아 의회와의 대결을 피했다. ○…러시아 서부의 칼리닌그라드주는 식품·연료 등 필수품 재고 확보를 위해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 주정부는 7일 연금혜택자와 저임노동자를 위한 재원과 90만여명의 주민들에 대한 기본 의약품 지급보장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주와 옴스크주도 물가통제에 들어갔다. 극북동부 무르만스크주는 스칸디나비아국에 식량원조를 호소,핀란드가 유럽연합(EU)에 긴급원조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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