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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개혁진영이 말하는 장하준

    장하준 교수는 말 그대로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경제학자일 뿐만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이들은 장 교수가 경제이론을 무시하고 역사적 경험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고 날을 세운다. 심지어 국방부는 2008년 장 교수의 책을 반정부·반미 성격을 띤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반면 진보 성향 학자들은 장 교수가 박정희 독재정권의 관치경제를 옹호하고 재벌을 비호한다고 비판한다. 일부 진보적 학자는 오히려 복지국가의 성격에 대한 구체적인 담론이 장 교수에게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장 교수와 관련해 진보·개혁진영에서 10년 가까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논쟁은 장 교수가 재벌개혁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 기고에서 “민족주의 감정을 악용해 부패하거나 무능한 재벌총수 문제를 덮어선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대표적인 경제민주화운동으로 평가되는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한국은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총수자본주의”라면서 “회삿돈을 빼돌리는 총수를 고발하는 시민단체 활동이 뭐가 잘못됐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차이도 크다. 김 교수는 “그는 국가와 재벌이 짝짜꿍이 되었던 박정희 시대가 정치적 독재 빼고는 너무나 좋은 시대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 교수가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견해를 정면으로 논박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더 나은 자본주의로 가기 위한 ‘대중적·시민적 동력’에 대한 얘기가 장 교수에게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최근의 저서 ‘진보집권플랜’에서 장 교수가 노조의 경영참가를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 [열린세상] 위키리크스가 이끈 정보혁명/이민규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

    [열린세상] 위키리크스가 이끈 정보혁명/이민규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

    위키리크스가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을 공개하면서 시작된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이어 이집트에서는 30년 무바라크 독재정권에 위협을 가하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예멘, 알제리 등 이웃 중동 국가는 물론 전 세계로 민주화 열기는 확산될 전망이다. 이처럼 위키리크스가 우리 앞에 혜성처럼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권과 규칙 위에 아직도 초법적으로 군림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과 이런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해야 할 언론 같은 공공 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디지털 환경에서 전자화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익명성이라는 보호 가면을 쓰고 자신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의를 실천하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위키리크스는 변화된 환경에 최적화한 다른 형태의 ‘소통 도구’인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사가 아닌데도 최초로 201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프로 퍼블리카’나 조지 소로스가 투명사회 구현을 위해서 후원하는 ‘CPI’(미국공직청렴센터) 등이 정보 유통에서 변화의 선봉에 서 있다. 새롭게 탄생한 위키리크스의 활동도 눈부시다. 대표적인 폭로 매체이자 닉슨 대통령도 하야시킨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30년간 수행한 것보다 위키리크스에서 4년간 더 많은 특종거리를 전 세계 언론에 제공하였다. 폭로 저널리즘의 속성상 처음에는 유명인의 선정적인 이슈에 주목하지만 점차 사건의 배경이나 심층을 깊게 파고든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북한 문제만 보더라도 처음 폭로했을 때는 김정일의 주벽과 같은 기이한 행동에 주목했다가 그후 점차 북한 체제 붕괴 시나리오나 중국과의 외교 관계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 주제 측면에서는 줄리언 어산지가 앞으로 비윤리적인 회사 이미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평판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와 같이, 위키리크스는 정치 이슈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비윤리적인 다국적 기업을 타깃으로 경제문제 폭로전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과 같이, 지난 1971년 ‘뉴욕타임스’가 미 국방부 비밀문서를 폭로한 일명 ‘펜타곤 페이퍼’ 사건 이후로 잠잠했던 폭로 저널리즘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펜타콘 페이퍼와 위키리크스 모두 ‘국가기밀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논란을 불렀다. 하지만 폭로의 주체는 주류 언론에서 시민기관으로 바뀌었다. 폭로 범위와 대상도 한 국가에서 세계로 지평을 넓혔다. 언론은 더 이상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40년 동안 언론의 역할이 그만큼 변화했다. 주류 언론도 충분한 반성과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마치 판도라 상자와 같이 위키리크스에서 쏟아내는 정보는 상당 기간 논란을 부를 것이다. 정보가 공개될 때마다 갑론을박이 쏟아져 나올 터이지만 정부나 기업은 ‘투명성 확보가 최선의 전략’이라는 점을 차츰 인식하게 될 것이다. 위키리크스와 같은 익명의 집단지성을 활용한 뉴미디어 기관의 부단한 노력으로 공정사회와 투명사회를 향한 민초들의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어산지라는 기인의 단독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오히려 위키리크스는 세상을 민주화로 이끌 수 있는 가치 있는 정보를 폭로하려고 지난 수십년간 정보 민주화에 관심을 가졌던 익명의 집단지성이 꾸준하게 협력하고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밀정보의 축적이야말로 죄악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위키리크스를 만들어 내었다. 어산지를 어떠한 방법으로 제거하더라도 위키리크스의 폭로전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더 나아가 설사 위키리크스를 폐쇄할지라도 이와 같은 성격을 가진 새로운 사이트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그 기능을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혼돈의 10년이 지나고 또다른 밀레니엄을 맞는 지금 정보 유통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
  • 이집트 여야 헌법개혁委 구성

    6일(현지시간) 이집트 최대 야권세력인 무슬림형제단과 처음 공식대화에 나선 이집트 정부가 여야 공동으로 헌법 개혁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정부와 야당측이 개헌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면서 13일째 이어진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봉합 국면으로 접어드는 동시에 30년 독재정권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이집트 정부 대변인인 마그디 라디는 “정부와 야당이 헌법에 기초한 평화적인 권력이양에 합의했다.”면서 “헌법 개혁 위원회를 구성, 3월 첫째주까지 헌법 개정안과 입법 개정안을 논의, 제안하기로 합의했으며 위원회에는 다수의 정계 인사와 판사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슬림형제단을 비롯, 야당인 와프드당과 타가무당, 청년 야당 단체 등 일부 야권 세력과 면담을 가졌다. 하지만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권력을 위임 받으라는 야당측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AFP통신이 면담에 참석했던 야권 인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에 앞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술레이만 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이양 과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석우·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기로에 선 이집트] 美, 눈치 보다 무바라크 포기… 對중동 외교정책 한계 노출

    미국 정부가 최근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일관성 없는 대응으로 중동 외교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튀니지의 시민혁명으로 촉발된 아랍권의 급변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미국 정부 내 입장 조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정보기관의 분석력도 도마에 올랐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 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 수시로 변해 도대체 미국의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5일 카이로에서 처음 대규모 시위가 열린 뒤 “이집트 정부가 안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면서 사실상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美 정부내 입장조율도 안돼 하지만 이튿날인 26일 “이집트 정부가 이번에 정치·경제·사회 개혁을 이뤄낼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고 밝힌 데 이어 28일에는 “이집트 정부 치안 당국이 시위대 대응에 자제해야 하며, 민주화를 원하는 시민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반정부 시위대를 옹호했다. 지난달 30일에는 무바라크를 겨냥해 “이집트 국민의 요구에 화답할 만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질서 있는 권력이양’을 촉구했다. 급기야 지난 4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의 권력이양 작업이 당장 시작돼야 한다면서 무바라크를 압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을 즉각 물러나게 할 것인지는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집트인들에 의해 결정될 일”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무바라크에 대한 즉각적인 권력이양 촉구 다음달인 5일 힐러리 국무장관은 또다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의 시위 진정 노력을 평가하며 “(권력이양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처음으로 술레이만 부통령을 직접 거명하며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제47차 국제안보회의에서다. 한술 더 떠 미국 정부 특사로 이집트를 방문했던 프랭크 와이즈너 전 이집트 주재 미국대사가 5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대선 때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국무부는 정부 입장과 무관한 개인적 견해라며 진화에 나섰다. 미국 입장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다 중동권에 미칠 영향과 이에 따른 국익 등 복잡한 셈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최근의 중동 정세와 관련해 정보 당국을 질타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오바마, 정보당국에 실망했다” AP통신은 5일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 오바마 대통령이 튀니지 독재정권의 붕괴를 예측하지 못한 데 대해 “정보 당국에 실망했다.”는 입장을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이집트 소요사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미 의회도 정보당국의 정보수집 및 분석 능력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3일 의회에서 중앙정보국(CIA) 고위 관계자들을 상대로 오바마 대통령이 이집트 정세의 위험성에 대해 사전경고를 충분히 받았는지, 정보기관들이 이집트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위해 소셜네트워크를 모니터했는지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정국 현안 분야별 해법-개헌 및 여야 영수회담] 1987년엔 민주화 중심 개헌, 디지털·스마트 시대 맞춰야

    [정국 현안 분야별 해법-개헌 및 여야 영수회담] 1987년엔 민주화 중심 개헌, 디지털·스마트 시대 맞춰야

    이명박 대통령이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개헌 성사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의견이 다수이지만, 시기적으로 올해 개헌 논의를 하면 늦지 않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이 대통령은 “개헌과 관련해서는 17대 국회부터 연구해 온 것이 많다.”면서 “헌법학자들도 연구해 온 것이 있기 때문에 여야가 머리만 맞대면 늦지 않다. 새로 시작할 게 없으며 내년에 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올해 하면 괜찮다.”고 말했다. 이미 개헌 논의 시기를 놓친 게 아니냐는 정치권 다수의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개헌의 실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실현이 가능하고 안 하고 이전에 시대에 맞게 (개정)하는 것이 맞다.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정치권도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정치적으로 이걸 어떻게 자꾸 생각하다 보니 안 되는 것이며, (개헌을) 청와대가 주관할 시간도 없으며 국회가 해야 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우리가 민주화와 독재정권 (타도)투쟁을 하다가 1987년에 개헌을 했는데 디지털 시대, 스마트 시대가 왔다. 거기에 맞게 남녀동등권의 문제, 기후변화, 남북관계에 대한 것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개헌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을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입장을 직접 밝힌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4년 중임제와 같은 권력구조에만 논의가 집중될 경우 자칫 정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개헌의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개헌 추진이 정략적인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일축했다. 분권형 개헌이 차기 유력 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등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 이 대통령은 “누구한테 불리하고, 유리하고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이번 좌담회를 계기로 여야 갈등관계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여야 영수회담 추진에 대해 묻자 이 대통령은 “연초가 됐으니 한번 만나야겠죠.”라며 설 연휴 이후 영수회담을 갖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세계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 전문가 분석

    이집트 내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며 주변 산유국으로 정치 불안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과 전문가들은 세계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사태 장기화 및 주변 지역 확대 여부는 주시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주변국 확대 여부는 주시해야 박승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이집트 사태가 2009년 11월 두바이 사태 때보다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작을 것으로 예상했다. 박 연구원은 “두바이 사태는 과도한 차입에 의존한 과잉 투자라는 경제적 문제가 근본 원인이었으나 이집트 사태는 정치적 문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면서 “지난주 말 유럽과 미국의 주식시장이 하락한 것은 기술적인 과열 부담을 덜어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박 연구원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대항마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의장이 떠오르고 있는데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울 인물은 아니라며 “이번 사태의 영향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진영 삼성증권 연구위원도 “이번 소요 사태는 높은 인플레와 낮은 임금 등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격이 짙고, 미국도 개혁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화 가능성은 낮다.”면서 “이집트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을 경우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석유 수출 길목인 수에즈 운하가 폐쇄되면 큰 영향을 주겠지만 이집트 경제가 수에즈 운하에 기대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수에즈 운하가 막힐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장기화 가능성 낮아 김지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집트 경제 규모는 한국의 5분의1 정도로 작고 주요 산유국도 아니기 때문에 이번 사태 자체로는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튀니지·이집트에 이어 다른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독재정권 국가들로 격렬한 민중시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이 지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원유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어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호세프·페르난데스 南美 두 여걸 ‘악수’

    호세프·페르난데스 南美 두 여걸 ‘악수’

    남미의 전통적 앙숙 관계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두 여성 대통령이 손을 맞잡는다.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왼쪽·63) 대통령과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57)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본격적인 양국 협력 시대 개막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손은 호세프 대통령이 먼저 내밀었다.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아르헨티나를 선택하며 ‘남미 우선 외교’ 노선을 분명히 한 셈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회담을 하루 앞둔 30일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들과 가진 회견에서 “두 나라가 국제무대에서 남미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양국의 전략적 협력 관계 구축을 다짐했다. 호르헤 타이아나 아르헨 외무장관도 호세프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두 나라는 국가 연합을 향해 가고 있다. 원자로를 함께 만들고, 함께 만든 물건을 갖고 해외 시장으로 나갈 것”이라고 협력을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양국 정상회담에서 핵에너지, 과학 기술, 자원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협정이 체결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핵에너지 협력 협정이 눈에 띈다. 이는 핵에너지 공동 연구와 원자로 공동 건설을 통해 지구촌의 원전 건설 붐에 합류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두 정상은 자동차 등 성장 동력 산업의 생산 부문을 통합하는 방안도 타진할 계획이다. 또 남미대륙 정치기구인 남미국가연합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의 발전 방향에 관해서도 협의하기로 했다. 한편 호세프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인권 운동의 상징인 ‘5월 광장 어머니회’와 ‘5월 광장 할머니회’ 회원들을 만나기로 했다. ‘5월 광장 어머니회’는 아르헨 군사독재정권(1976~1983년) 시절의 실종자들을 찾는 단체이며, ‘5월 광장 할머니회’는 군정 당시 강제 입양된 야당 정치인의 자녀를 추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이집트 군부도 무바라크 사퇴 촉구”

    이집트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 사태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를 진정시킬 열쇠를 쥐고 있는 군부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사퇴를 촉구했다고 알려지면서 30년 독재 정권의 운명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30일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부통령에 임명된 군 중장 출신이자 무바라크의 측근인 오마르 술레이만과 모하메드 후세인 판타위 국방 장관은 전날 무바라크와 만나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두 사람은 그(무바라크)에게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꺼냈다.”고 전했다. 무바라크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집트 국영 방송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날 오전 한 부대의 작전 지휘부를 방문했으며 부통령, 국방장관,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날 오후 4시에 시작되는 통금을 앞두고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 탱크가 추가로 등장하고 전투기 2대가 저공 비행해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CNN은 이 같은 군의 움직임에 대해 시위대를 위협하기 위한 것인지 정부(내무부)와의 갈등을 표출하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시위가 엿새째로 접어들었지만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시위는 수그러들기는커녕 확산일로에 있다. 이날 통금 시간을 넘어서도 시민들은 계속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분노한 시위대는 전날 카이로에서만 최소 17곳의 경찰서를 불태우고 총기와 탄약을 탈취했다. 약탈자들이 상점과 부유층 주택가에서 물건을 훔치고 이날 오전까지 최소 3곳의 교도소에서 수천명의 수감자가 탈출, 경찰과 총격을 벌이는 등 혼란상이 펼쳐졌다. 지금까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최소 150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다쳤다고 알 자지라 방송은 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앞서 29일 밤 술레이만 정보국장을 부통령에 임명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시위대는 정권 퇴진 운동을 계속해 나갈 뜻임을 분명히 했다.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야당 단체로 이뤄진 변화를 위한 국민연합’(NAC)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에게 무바라크 대통령 정권과 협상에 나서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엘바라데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협상의 여지가 없다. 무라바크는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유혈사태가 확산되자 이집트 국민과 외국인들의 탈 이집트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서방 각국은 일제히 무바라크를 압박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 정부가 정치개혁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격화되는 시위…이집트 앞날은] 당혹스런 美 ‘30년 우방’ 버리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튀니지 국민들의 편이며 민주화에 대한 모든 이들의 열망을 지지한다.”며 23년 독재정권을 축출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지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사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시위 사흘째인 27일이 돼서야 유튜브 웹사이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집트의 장기적 번영을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정도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것도 인터뷰 도중 나온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시위는 좌절감을 억압해 온 결과”라며 “그동안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이집트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말해 온 바 있다.”고 말했다. 무바라크의 퇴진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조심스러운 태도는 무엇보다 지난 30년 무바라크 집권의 이집트와 미국이 맺어온 협력관계에서 비롯된다. 아랍권의 협력 파트너가 절실했던 미국은 무바라크의 인권 탄압을 불편해하면서도 이집트의 독재 정권을 묵인해 왔고, 이집트는 중동평화협상의 중재자로 나서면서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적 지원을 받아 왔다. 양국의 끈끈한 관계는 위키리크스가 28일 공개한 외교문서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권력 승계 계획을 미국은 묵인해 왔다. 이에 무바라크는 인권과 언론자유 보호를 위해 이집트의 긴급조치법을 폐지하고 이를 대신할 대테러 방지법을 제정하라는 미국의 권유를 묵살했다. 미국이 대 중동 정책을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점을 철저히 활용한 것이다. 무바라크는 특히 미국과의 관계를 오래 유지할수록 얻을 것이 많다고 판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협상을 오래 끌려 했던 것으로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하마드 빈 자심 알 타니 카타르 총리는 “이집트는 마치 환자가 1명밖에 없는 의사가 환자의 생존을 바라면서 최대한 오래 입원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의 지도자들은 시위 사태를 각국 국민의 ‘합당한 우려’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봐야 한다.”며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에 힘을 실었다. 반 총장은 특히 무바라크 정부가 국내 인터넷과 휴대전화 서비스를 차단한 데 대해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원칙 중 하나가 돼야 한다.”고 비난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열린세상] 오코노기 교수의 마지막 강의/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열린세상] 오코노기 교수의 마지막 강의/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일본의 한반도 문제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의 정년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가 지난 18일 게이오 대학에서 있었다. 필자도 제자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400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재학생뿐만 아니라 일본의 내로라하는 한반도문제 전문가,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비롯한 한·일 양국 주요 언론인, 그리고 졸업생 등이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선생은 차분한 목소리로 한국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그간의 연구 성과 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마치 현대한국정치사 강의를 듣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선생은 격동의 한국정치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선생의 인생진로가 한반도와 얽히게 된 계기는 학부생 때 한국에 대해 연구해 보라는 지도교수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1960년대) 군사독재정권하에 있던 빈곤한 한국에 대해 일본사회는 극도의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을 공부해서 뭐하느냐.’는 만류가 대세를 이루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론이 그의 한반도 연구에 대한 의지를 꺾지 못했고, 그는 일본인 한국교환유학생 1호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강의가 무르익어 갈수록 오코노기 선생이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당장 인기가 없고 미래도 없어 보이는 한국에 대해 연구하겠다고 하는 ‘인생을 건 결단’이 있었다는 점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개인적 결단에 대해 국가가 그냥 내팽개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지원이 잇따랐고, 그러한 지원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1차자료 수집을 위한 장기간의 미국 워싱턴 체류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가 인생에 있어서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했다. 이는 외로운 결단을 한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 시스템’이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사실 일본에서는 비인기 분야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 대학의 슬라브 연구소에서는 국경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매년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연구원들이 걸어서 답사하며 변경 지역의 문화, 언어, 역사, 풍습 등을 이 잡듯이 조사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국경연구가 영토분쟁 시 체계적인 논리를 펼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함은 물론이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비인기 분야의 연구자들이 발이나 붙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잘나가는 분야에만 온통 쏠리는 우리네 연구 풍토가 한국판 ‘오코노기’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끊임없는 열정을 보여 왔다는 점이다. 선생은 한국의 대표적 학자들은 물론, 정계와 관계의 주요 인물들과 광범위한 인맥을 쌓아 왔다. 이들과의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통하여 생각을 정리 분석하여 수많은 논문을 내놓았다. 선생의 취재 수첩은 깨알 같은 정보로 가득하다. 세 번째는 대학교수로서 그는 오직 한 길만 걸었다는 점이다. 조금만 학문적 업적이 쌓이고 명성을 얻으면 정계에 진출해 버리는 일부 우리 학계의 현실과는 달리 선생은 오직 자신의 영역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것이다. 선생은 강의 말미에 자신의 지도교수가 일러준, 대학교수로서 가져야 할 교육·연구·대학행정·사회공헌·후진양성이라는 5가지 덕목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는 소위 잘나가는 ‘유명’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서의 모습을 한번도 흩트린 적이 없었음을 필자는 기억한다. 필자의 서툰 일본어로 작성된 학기말 논문을 선생은 언제나 손수 빨간색 펜으로 빼곡히 수정해 돌려주었는데, 이에 긴장하고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일본이 한국 통일과정에 얼마나 공헌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을 뒤로하고 90분 강의를 마무리했다. 한반도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선생의 한·일관계 처방인 것이다. 오코노기 선생의 건승과 퇴직 후에도 보다 왕성한 연구 활동을 이어 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월드이슈] 독재·부패·高물가… 북아프리카는 ‘피의 혁명’

    바싹 말라 있던 북아프리카의 민심이 불똥 하나에 거칠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계기로 시작된 민주화 도미노가 이집트와 알제리, 예멘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권 전역을 휩쓸고 있다. 독재와 부패 등 ‘상수’에 지쳤던 시민들은 물가 폭등이라는 ‘변수’가 발생하자 기다린 듯 분노를 표출한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가 촉매작용을 하면서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혁명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내닫고 있다. ●이집트·예멘 등 반정부시위 열기 튀니지발(發) 시민혁명이 국경을 넘고 있다. 지역 맹주인 이집트에서는 나흘째 이어진 정권 퇴진 시위로 최소 7명이 숨졌고 예멘에서도 지난 24일 시민 1만 6000여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요르단과 알제리, 오만, 모리타니 등 북아프리카·중동지역에서 반정부 시위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아랍권 내 민주화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것은 국경을 뛰어넘어 지역민 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장기 집권 중인 권력자의 존재가 눈에 띈다. 축출당한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은 23년간 권좌를 지켰고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30년간 통치하고 있다.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이 지역 국가의 대통령과 관료는 일상적으로 뇌물을 챙겼다. 특히 인터넷 확산으로 정부의 정보통제가 무력화되면서 독재정권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국민적 분노가 폭발했다. 튀니지 혁명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서 벤 알리 대통령의 부패상이 폭로돼 불붙었다. 독재·부패에 대한 정치적 불만이 턱밑까지 차 있는 상황에서 북아프리카 전역에 떨어진 ‘물가폭탄’은 정권 퇴진 요구라는 거센 후폭풍을 낳고 있다. ●중위연령 20代 불과… 트위터 참여 높아 이집트는 2006~2008년 평균 7%의 고성장을 기록했으나 서민들은 10%에 이르는 실업난에 울었고 최근 곡물 및 에너지 등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분노가 폭발했다. 알제리 역시 곡물 가격 급등이 정권 퇴진 운동의 단초가 됐다. 북아프리카의 주요 특징으로 꼽히는 ‘젊은 국민’도 민주화 운동의 토양이 되고 있다. 이집트의 중위연령(총 인구를 연령별로 나열할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나이)은 24세, 알제리 27.1세다. 우리나라의 중위연령(37.9세)보다 10세 이상 젊다. 튀니지의 중위연령은 29.7세로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뤄낸 직후인 1990년 중위연령(27세)과 비슷하다. 트위터 등 SNS가 시위 동력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도 북아프리카 민주화 운동의 공통점이다. 이집트는 국민 4명 중 1명이 인터넷을 사용한다. 정부가 아무리 언로를 틀어막아도 사이버 공간에서 움트는 민주화의 싹을 꺾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권력층이 결자해지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시위대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카네기 중동센터의 정치 분석가 아므르 함자위는 “이제 질문은 어느 나라가 다음이냐가 아니라 어느 정권이 살아남느냐.”라면서 “중동의 일부 군주제 산유국을 제외한 대부분 아랍국가가 영향권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피플파워는 ‘23년 철권’보다 강했다

    성난 민초들의 두려움을 이겨낸 투쟁이 23년간 장기집권해 온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74) 대통령을 튀니지의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튀니지를 한달 가까이 달군 ‘재스민 혁명’이 1차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방화와 약탈이 발생하는 등 한동안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총리 여·야 통합정부 구성 논의 모하메드 간누시 튀니지 총리는 14일 국영방송을 통해 “벤 알리 대통령이 튀니지를 떠났다.”고 밝혔다. 벤 알리 대통령은 이날 가족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직을 맡도록 한 헌법에 따라 푸아드 메바자(77) 국회의장이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취임했다. 메바자 의장은 45~60일 내 새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간누시 총리는 16일 여야 통합정부 구성을 논의하려고 주요 야당인 민주진보당의 마야 즈리비 대표 등을 만나 향후 정치 일정 등을 논의했다. 튀니지 전역에는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비상사태가 해제되기 전까지는 3명 이상 모이는 집회가 금지되고 군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에 대해 발포할 수 있다. CNN은 수도 튀니스 곳곳에 탱크와 무장 군인 등 군병력이 배치되기 시작했으며 사복 경찰들이 거리에 나온 청년들을 곤봉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는 등 아비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튀니스 중앙역 청사가 불타고 튀니지 동부 모나스티르의 한 교도소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 재소자 50여명이 불에 타 숨지거나 탈옥을 시도하던 중 교도관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며칠 전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고 치료받던 벤 알리 대통령의 부인 레일라 여사의 조카 이메드 트라벨시는 이날 숨졌다. 또 벤 알리 대통령의 경호실장 알리 세리아티는 사회 불안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민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중동 독재정권 연쇄붕괴에는 회의적 아랍 각국은 튀니지 국민 편을 들고 나섰다. 벤 알리를 받아들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조차 성명을 통해 “우리는 전적으로 튀니지 국민의 편에 서 있다.”고 했다. 이집트는 “튀니지 국민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튀니지 사태가 중동의 다른 독재국가에 ‘민주화 도미노’ 현상으로 번져 나갈지에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튀니지 사태에 고무된 이집트 카이로의 시위자들은 장기집권 중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의 동유럽처럼 독재정권들이 연쇄 붕괴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이집트·이란·시리아·요르단 등에 정치적 불화가 있지만 집권세력이 군대를 장악, 무력으로 반대파를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인 데다 군인들이 시위에 동조할 태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된 근거다. 쿠웨이트와 바레인, 요르단 등은 제대로 조직된 야당이 있지만 집권층이 국부를 활용, 자국민들에게 광범위한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불만이 폭발하지 않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나쁜 소녀’에 빠진 ‘착한 소년’

    ‘나쁜 소녀의 짓궂음’(문학동네 펴냄)은 남미의 성적 에너지가 가득 찬 연애소설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2006년 펴낸 작품. 흔히 노벨문학상 수상작 하면 연상되는 시점의 변화나 다양한 화자의 무차별 등장, 시공간 질서의 파괴 같은 실험적인 문학 기법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수십년에 걸친 ‘착한 소년’과 ‘나쁜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간다. 착한 소년 리카르도는 1950년대 페루 리마에서 ‘칠레 여자아이’로 알려진 귀여운 릴리를 만난다. 악마에 홀린 것처럼 춤을 추는 릴리에게 바보처럼 한눈에 반한 리카르도는 세번이나 딱지를 맞는다. 1960년대 파리에서 나쁜 소녀는 게릴라 전사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 후 쿠바의 아바나에서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1970년대에 리카르도는 런던에서 그녀를 만나지만 이제 나쁜 소녀는 영국 귀족의 아내가 되어 있다. 도쿄에서 나쁜 소녀와 만났을 때는 일본 야쿠자 우두머리의 애인이 되어 있었다. 이후 리카르도는 우연히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 나쁜 소녀의 본명이 오틸리타란 사실을 알게 된다. 리카르도는 나쁜 소녀와 재회할 때마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고,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면 그녀에게 달려간다. 끊임없이 신원을 바꿔가며 화려하고 모험 가득한 삶을 사는 나쁜 소녀는 평범한 리카르도가 사랑을 고백할 때마다 매몰차게 거절하면서도 자신이 힘이 없을 땐 그에게 되돌아온다. 전형적인 팜므 파탈(악녀)이 등장하는 연애소설이지만 ‘할리퀸 소설’(로맨스 소설)과 다른 것은 20세기 사회적 변화상을 요사가 소설에 녹여 냈다는 점이다. 프랑스 68혁명, 동성애 커밍아웃, 히피 문화와 구조주의의 태동, 에이즈 발견, 냉전시대의 종말, 독재정권의 횡포, 경제발전, 테러에 대한 공포 등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사는 삶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20세기 사회 문화적 흐름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로이터 “北 지역적 위기 가장 높다”

    로이터 “北 지역적 위기 가장 높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와 연평도 포격 등으로 고조된 한반도 위기를 바라보는 외신들의 시각이 심상치 않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북한 문제의 심각성이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보다 높다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진을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했다. ●“北 내적 붕괴 가능성” 로이터통신은 21일(현지시간) ‘2011년 국제정치적 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10가지 요인’을 선정하면서 북한을 지역적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았다. 로이터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무력시위를 통해 후계자 김정은의 입지를 강화하려 하면서 남북한 간 충돌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올해보다 내년에 지역적 위기 가능성이 더 높다.”고 관측했다. 특히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면서 핵 위상이 강화돼 국제적인 협상력이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로이터는 직접적인 전쟁보다는 북한의 내적 붕괴 가능성이 더 높으며 어느 경우든 대규모 인적, 물적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로이터는 이 밖에 미국과 중국의 경제·군사적 갈등,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독재정권의 후계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국가들,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 가능성 등을 잠재적 위기 요인으로 제시했다. ●올해의 사진에 ‘한반도’ 4장 포함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이집트 등 신흥국의 9개 언론사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국제뉴스를 소개하면서 이 가운데 한반도 위기를 포함시켰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의 주요 순간과 뉴스 사진’을 월별로 소개하면서 지난달 23일 북한의 포격 직후 연기에 휩싸인 연평도 사진을 ‘올해의 사진’으로 꼽았다. 사진 목록에는 연평도 사진을 비롯해 지난 8일 여야 의원들이 예산안 처리를 놓고 국회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 기념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개를 돌려 김정은을 바라보는 모습, 7월 21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한 장면 등 총 4장의 한반도 관련 사진이 포함됐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역대 노벨상 시상식 불참·거부 11명 면면

    100여년간 이어져온 노벨상 시상식에 수상자가 불참하거나 수상을 거부한 사례는 류샤오보를 포함해 11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9건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대부분 독재정권의 압력 때문이다. 노벨상 중 평화상 수상자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류샤오보가 네 번째로, 대리인 수상과 상금 전달까지 모두 이뤄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1936년 나치 치하의 독일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중병을 앓고 있었고 정권이 출국을 불허해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 메달 수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대리인이 상금을 받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돌프 히틀러는 집권 당시 오시에츠키뿐 아니라 모든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1938년 화학상을 받은 리하르트 쿤을 비롯해 아돌프 부테난트(1939년 화학상), 게르하르트 도마크(1939년 생리·의학상) 등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중 쿤은 1945년, 도마크는 1947년에야 상장과 메달만 전달 받았고, 부테난트는 수상을 포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이 노벨상 수상자 탄압을 주도했다.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던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정부의 지시로 수상을 거부했다. 반체제 물리학자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 역시 1975년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여가 금지됐지만, 이탈리아 출국 비자를 갖고 있던 그의 부인이 대리 수상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해 민주화 운동을 펼친 공로로 평화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1983년)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1991년)는 각각 부인과 아들이 대리인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중에서도 수상 거부자가 있었다. 1973년 베트남 평화협정의 공로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레득토 북베트남 총리는 “베트남에 아직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절했다. 자의로 노벨상 수상을 포기한 사람은 레득토 총리와 1964년 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 등 두 명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노벨委 “류샤오보 정당한 투쟁… 中 변화 계기 되길”

    노벨委 “류샤오보 정당한 투쟁… 中 변화 계기 되길”

    ‘류샤오보’라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 메마른 박수를 받아든 주인공은 ‘사진’이었다. 단상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 뒤편에는 커다란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고, 류샤오보는 그 안에 갇혀 있었다. 10일 오후 1시(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상자인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의 자리가 비어 있는 가운데 2010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물론 대리인·상금 전달자까지 참석하지 않은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109년 만에 처음이다. 주인공 없이 명분만 있는 시상식은 쓸쓸했고, 식장 밖에서는 서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세계 인권의 날인 이날 벌어진 논쟁의 주제는 세계 평화에 공헌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주어지는 노벨평화상의 올해 수상자가 ‘인권탄압에 맞선 투사’인가, 아니면 ‘국가 전복을 꿈꾸는 범죄자’인가였다. 류샤오보가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계속된 세계적 논란과 혼란은 시상식 당일 최고조를 이뤘다. 오슬로 시청에서 1시간 15분 동안 진행된 시상식에는 하랄 노르웨이 국왕과 소냐 왕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비롯한 저명 인사, 이병현 노르웨이 주재 한국 대사 등 각국 대사, 해외로 망명한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 등 약 1000명이 참석했다. 노벨위원회가 초청한 류샤오보의 가족 및 지인 140명 중에서는 인권운동가 완얀하이가 유일하게 자리를 지켰다. 소프라노 조너선 만의 공연으로 막을 올린 시상식의 열기는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류샤오보의 수상 이유를 설명하며 최고조에 달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과거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독재정권의 탄압 때문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례를 거론하며 “중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언론·표현·토론·시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은 닫힌 사회”라고 비판했다. 이어 “류샤오보는 오직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고, 반드시 석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미국이 진정한 강대국이 된 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해 관철된 이후”라며 “강대국이 된 중국은 이 같은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중국 정부에 조언했다. 참석자들은 여러 차례 기립박수로 연설에 답했고, 일부 중국 반체제 인사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30여분 넘게 진행된 연설의 대부분을 중국 정부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채웠고, “류샤오보의 수상이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희망찬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노벨위원회는 류샤오보의 빈 의자에 상장을 올려놓는 것으로 수여식을 대신했다. 이어 노르웨이 여배우 리브 울먼은 류샤오보가 지난해 쓴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며 우리는 자유로운 중국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항상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원고를 대신 읽었다. 지난해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시상식에 보낸 성명에서 “나보다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더 많은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중국 당국에 그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BBC, AP통신 등은 이날 약 2000명의 시위대가 ‘류에게 자유를’, ‘중국의 자유’ 등의 구호를 외치며 노르웨이 주재 중국대사관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뒤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는 10만여명의 청원서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초청장을 받은 65개국 중 중국 등 18개국이 불참했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각국 등 47개국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참한 나라는 러시아, 쿠바, 이라크, 카자흐스탄 등으로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고민 또는 자국 내 반체제 인사 감금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우크라이나, 콜롬비아, 세르비아 등은 시상식 직전 입장을 바꿔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위원회와 류샤오보의 수상을 지지하는 각국 정부는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 정부에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9일 “중국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당연히 세계 인권선언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면서 “강대국으로서 ‘토론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야글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인권 기준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에 대한 답변으로 분석된다. 야글란 위원장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중국을 겨냥한 결정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씨줄날줄] 레짐 체인지/구본영 수석논설위원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어제 미국의 외교 전문 25만여건을 공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각국 지도자들에 대한 거침없는 인물평으로 미 국무부를 궁지로 몰아넣으면서다. 우방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깊이가 부족하다.”고 폄하할 정도였으니….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다. 외교 전문은 그를 ‘무기력한 늙은 친구’(flabby old chap)라고 표현했다. 아마 뇌졸중으로 쇠약해진 그에 대해 주한 미 대사관 정보통들이 보낸 동향보고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활발한 근황은 그런 첩보를 무색하게 한다. 그는 연평도 도발 닷새 만에 3남 김정은과 함께 교향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포격 이틀 전엔 해안포 지휘부대를 찾았다고 전해진다. 2008년 미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북한 ‘정권교체론’(regime change)을 제기했다. CNN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우라늄 농축시설 시위와 연평도 도발을 자행한 북측을 겨냥, “정권 교체를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한 것이다. “한반도 위기에서 공화·민주당 행정부들이 추구해온 대북 유화정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레짐 체인지론’은 2기 부시 행정부도 한때 검토했다.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콘돌리자 라이스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했다. 그녀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이 친시장 정권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관리’한 백악관의 실무자였다. 북한 정권교체론의 이면에는 미 조야의 좌절감이 배어 있다. 북핵 개발 저지를 위한 강온 전략 어느 것도 먹혀들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검토한 영변 핵단지 폭격은 한국이 인질로 잡혀 있는 한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대북 경제제재 또한 중국이 북한에 계속 뒷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별다른 실효성이 없지 않은가. 이런 딜레마 속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북 지도부를 교체하는 방안은 외견상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레짐 체인지’는 가능한 수단 측면으로 보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마찬가지다. 북한주민들이 들고 일어나거나, 궁정 쿠데타를 유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김 위원장이 북 내부에서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행사하는 한 현실성이 적은 얘기가 아닐까. 다만 독재정권이 3대를 이어간 역사적 전례가 없다는 ‘상식’이 유일한 위안일 듯싶다. 굳이 “군사력이 경제력에 비해 비대한 나라는 반드시 멸망했다.”는 폴 케네디 교수의 연구 결과를 들먹일 필요도 없겠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창비 150호 원동력은 한국사회 저력”

    “창비 150호 원동력은 한국사회 저력”

    “창작과비평이 150호까지 온 것은 한국 사회의 저력입니다.” 1966년 1월 미국 유학에서 갓 돌아온 28살의 젊은 문학평론가는 ‘야심만만’하게 잡지 한 권을 세상에 디밀었다. 이문구, 송기영, 신경림, 김남주, 박현채, 리영희, 강만길 등 ‘필발’ 쟁쟁한 문인들과 평론가들을 배출한 계간 ‘창작과비평’(창비)의 시작이었다. ●“우리사회 활력 사라지지 않을 것” 유난히 하얀 낯빛의 그 젊은이가 어느새 고희를 넘긴 나이가 되어 24일 서울 정동의 한 식당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맞았다. 백낙청(72)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창비 편집인이다. 창간호를 낸 지 44년 만에 올 겨울 통권 150호를 찍었으니 감회가 남다를 만하다. “창비 같은 잡지가 어떻게 가능한지 외국에서 무척 궁금해하는데 그건 한국 사회가 외국 사회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백 편집인은 150호 돌파 원동력으로 ‘한국 사회의 저력과 활력’을 꼽았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정부 방침이 일반 시민들의 활력을 키우기보다는 죽이는 쪽으로 작용해 왔지만 활력이 죽지 않았다.”면서 “정치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국 사회의 활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계속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인쇄소도 직접 뛰어다니는 등 실무를 거의 혼자서 다했는데 지금은 ‘집단 지성’이 작용하는 잡지로 진화했다.”며 “창간호를 낼 때 품었던 기대와 포부가 실현돼 흐뭇하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1년에 네번 나오는 계간지가 150호를 찍는 데는 37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창비는 7년이 더 걸렸다. 군사정권 서슬이 퍼렇던 1980년 7월 폐간됐다가 1988년 봄에야 복간된 때문이다. 민족문학론이나 민족경제론 등 창비가 주도한 담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하지만 암울했던 시절, 한국의 지성계를 이끌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평론 문화를 개척했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한국문학 아직도 빈곤한 게 현실” 백 편집인은 “(독재정권 시절) 압수수색 당하고 탄압 당할 때 오히려 판매 부수가 올라갔다.”면서 “예전에 민족문학을 강조했던 것은 우리(한국문학)가 빈곤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죽지 말자고 그랬던 것”이라고 당시를 돌이켰다. “세계 문학의 시야에서 볼 때 한국 문학은 아직도 ‘빈곤한 문학’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국내에서나 통할 만한 작가를 세계적인 작가라고 치켜세우거나 억지로 띄우는 일이 많지만 빈곤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자.”면서 “분식회계를 하면 당장은 속일 수 있지만 재산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평론가들이 일부러 만들어내는 거품도 빈곤의 일부”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과 관련해서는 “그 이유와 경위가 어떻든 북측이 우리 남측 영토에 대고 포격을 하고 민간에 피해를 입힌 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잘라 말했다. 창비는 150호 발간을 기념해 ‘창비사회인문학평론상’을 신설하고, 창간호부터 150호까지 전권을 이동식 저장장치(USB메모리)에 담은 전자영인본을 출시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타임 선정 20세기 세상을 바꾼 25명의 여인들

    타임 선정 20세기 세상을 바꾼 25명의 여인들

    ‘철의 여인 대처, 패션 아이콘 샤넬, 섹스심벌 마돈나까지….’ 미 시사주간 타임이 19일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25명의 ‘파워우먼’을 추려 발표했다. 이들 여걸은 여성 특유의 감성을 앞세우면서도 때로는 남성을 압도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세상을 바꿨다. ●코라손 아키노·힐러리 클린턴 포함 우선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정치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여성 지도자가 눈에 띈다. 유럽 최초로 여성 국가수반이 됐던 마거릿 대처(85) 영국 전 총리와 독일 첫 여성 정상인 앙겔라 메르켈(56) 총리, 이스라엘에서 처음 여성 총리가 된 골다 메이어(1898~1978년)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타임은 “대처가 11년간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며 사회적 저항에도 공기업 민영화나 저세율 정책 등을 줄기차게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끌었던 코라손 아키노(1933~2009년)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63) 미 국무장관도 포함됐다. 주요 2개국(G2)인 중국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부인이었던 장칭(江靑·1914~1991년)과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년)도 나란히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혔다. 2명 모두 ‘그림자 내조’에 그쳤던 영부인의 역할을 벗어나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황혼기의 모습은 엇갈렸다.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였던 엘리너는 남편의 정치활동을 도우면서도 직접 라디오에 출연하고 칼럼을 쓰면서 여성문제 등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1945년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유엔 주재 미국대표를 맡는 등 영향력을 발휘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도 문화대혁명(1966~1976년)을 진두지휘하며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남편이 1976년 사망한 뒤 반혁명분자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통적으로 ‘여풍’이 강했던 패션 및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화장품 회사 설립자인 에스티 로더(1908~2004년), 패션제국 ‘샤넬’을 만든 가브리엘 샤넬(1883~1971년) 등이 ‘세기의 여성’ 자리를 차지했다. 또 단돈 35달러를 들고 고향 미시간주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 최고 팝스타’의 꿈을 이룬 마돈나(53)도 마찬가지다. ●마리 퀴리·버지니아 울프도 뽑혀 이 밖에 방사성 원소 폴로늄, 라듐 등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거머쥔 마리 퀴리(1867~1934년), 저서 ‘침묵의 봄’ 등을 통해 환경 운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레이철 카슨(1907~1964년), 테레사 수녀(1910~1997년),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년) 등도 역시 ‘파워 우먼’으로 선정됐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검찰수사가 ‘전면전 선포’로 맞설 일인가

    민주당이 어제 검찰의 청목회 수사와 관련, 자당 국회의원 측 관계자들을 체포한 데 반발해 예산심사를 거부하는 등 대정부 전면전을 선포했다.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은 “검찰의 강제수사는 민간인 불법 사찰과 ‘대포폰 게이트’를 덮고 정권말기의 레임덕을 희석시키기 위해 입법부의 심장을 겨눈 고도의 정치적 수사”라면서 전면적 대정부 투쟁을 다짐했다.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를 ‘독재’라는 말까지 동원해 비난했다. 하지만 검찰수사가 대정부 전면전 선포로 맞설 일인가. 민주당은 당과 대표의 지지율 답보 상태의 원인을 깊이 성찰해봐야 할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청목회 사건에 대해 검찰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합리적 목소리가 선명성 경쟁에 밀렸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그래서 민주당의 강경투쟁 노선이 다소 억지라는 지적을 받게 되는 것이다. 구시대적 투쟁 지상주의라는 비판도 있다. 지금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검찰이 조사하면 법에 따라 조사를 받아야 하고, 문제가 있으면 여론이 용납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2년 뒤 국민들에게 재집권을 호소하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대안 정당, 정책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군사독재정권 시대에나 통용됐던 ‘투쟁만 하는 야당’의 모습에는 국민들이 식상해한다. 호소력이 약한 강경노선은 자칫 민주당의 고립을 촉진할 수 있다. 87명 소속 의원 전원이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자고 하는 등의 으름장은 낡아빠진 구태로 비쳐질 뿐임을 알아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는 권위주의 시절 ‘용공조작’과는 다르다. ‘조작 수사’는 정치권이 반발하기에 앞서 국민들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철저한 청목회 수사를 원하고 있다. 여론에 따라야 할 야당이 여론을 등지면 되겠는가. 야당의 투쟁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면책특권에 기대어 근거가 확실치 않은 대통령 부인의 의혹을 추가로 폭로하겠다는 것도 호소력이 떨어진다.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조사받을 것은 당당히 받고, 예산 심의 등 민생을 돌볼 일은 살피면서 투쟁하는 것이 정도다. 우리 국민은 1985년 2·12총선 등 역사적 전환기마다 놀랍도록 공정한 심판을 내렸다. 민주당은 국민들이 냉철하게 지켜보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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