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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종편 편파 심사” 파상공세 崔 “불공정 아니다” 의혹 부인

    野 “종편 편파 심사” 파상공세 崔 “불공정 아니다” 의혹 부인

    17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최 후보자 가족의 부동산 투기 의혹, 편법 증여 및 상속 의혹,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 1기 방통위원장 재직 동안 언론 탄압 의혹 등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은 파상 공세를 통해 연임 저지 방침을 드러냈다. 반면 한나라당은 해명성 질의에 치중하며 엄호에 주력했다. 최 후보자는 모두 발언을 통해 “언론 자유를 억압한 당사자로 비판하는 것을 보고 비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저도 과거 기자 시절 독재정권에 항거했고 고문도 당했고 투옥도 당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최 후보자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폄하했다. 같은 당 장병완 의원은 종합편성채널 심사와 관련, “필수 증빙서류인 주요 주주 이사회 결의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관련 심사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등 편파 심사로 동아일보 ‘채널A’가 선정됐다.”고 주장했다. 최 후보자는 “불공정하고 편파적으로 심사했다면 제 책임으로 귀착된다.”며 의혹을 적극 부인했다. ●민주 “언론자유 억압한 당사자” 같은 당 정장선 의원은 “최 후보자의 아들이 고교 3학년 때인 1988년 키 179㎝에 몸무게가 최대 63㎏이었으나 1년 뒤에 114㎏의 과체중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최 후보자는 “저는 군대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자식을 바랐지, 군대 못 가는 자식을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은 최 후보자 아들의 고교 졸업식 및 신체검사 때 사진 2장을 내보이며 “(병역기피가 아님을) 사진이 증명한다.”고 옹호했다. 민주당 김재윤 의원은 최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골프를 함께 치는 등 취재 과정에서 개발 정보를 얻은 것 아니냐.”고 캐물었다. 그는 또 “지난 15년간 소득이 5500여만원뿐인 장남이 3억원이 넘는 부채를 갚고 서울 서빙고동에 아파트를 구입했다.”며 편법 증여 의혹도 제기했다. 최 후보자는 “당시 전 대통령이 뉴스의 중심이었고, 그쪽에서 제안을 해 와 취재기자로서 당연히 응했을 뿐”이라면서 “그런 일(개발 정보 취득)이 있었다면 무슨 낯으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아들은 자영업을 하면서 부동산 구입 자금을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은 “내가 예전에 공직에 있을 때는 안 팔리는 땅을 지인들 보고 사라고 하기도 했다.”고 거들었다. ●최시중 “나도 독재 항거” 눈물 한편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방통위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만 대응 자료를 사전 배포하는가 하면 언론에 비밀리에 일방적인 해명 자료를 배포했다. 관권 청문회로 전락했다.”고 문제 삼으며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과 고성을 주고받아 정회하는 등 파행을 빚었다. 홍성규·강주리기자 cool@seoul.co.kr
  • 뒤틀린 이슬람교리에 갇힌 여성

    뒤틀린 이슬람교리에 갇힌 여성

    “전지전능하신 신께서는 성욕을 열 가지로 나누어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중 아홉가지를 여성에게, 한 가지를 남성에게 주셨다.” 무함마드(모하메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말이다. 그는 흔히 ‘강경파’로 분류되는 이슬람 시아파의 창시자다. 해석 여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말이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이를 ‘여성은 성욕이 강하고 조절능력이 떨어지는 존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우세하다. 여성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남성을 성적으로 탈선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며, 이는 사회 혼란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이슬람 여성들이 외출시 ‘당연히’ 히잡을 쓰거나 차도르, 부르카 등으로 온몸을 꽁꽁 동여매야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심지어 성기 절제 등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각종 관습과 정책들도 버젓이 용인된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제럴딘 브룩스 지음, 황성원 옮김, 뜨인돌 펴냄)은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 왜곡돼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지 고발한 책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민완 여기자인 저자가 월스트리트저널의 해외 통신원으로 보스니아와 소말리아, 중동 지역에서 6년 동안 지내며 만난 이슬람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만리장성보다 두꺼운 히잡과 차도르 속에 감춰진 여성들의 애환과 욕망 등 복잡한 정서를 날것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책의 일관된 정서는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신은 정의롭다. 다만 왜곡되었을 뿐이다. 남성에 의해.’ 저자는 이슬람이 원래 해방적 성격의 종교로, 여성에게 할례와 은둔생활을 강요하거나,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데 남녀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가 아버지가 죽고 난 뒤 권력투쟁을 진두지휘한 것에서 보듯, 초기 이슬람 여성들은 남성의 뒤에 숨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남성 기득권층이 코란의 해석권을 독점하면서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여성을 정치사회적 목적에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책은 전반부를 통해 유독 여성에게 가혹한 이슬람의 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아직도 5명 가운데 한 명의 이슬람 소녀가 겪고 있다는 여아의 성기 절제와 명예 살인 등 믿기 힘든 처참한 실상이 낱낱이 드러난다. 후반부에서는 정치와 경제, 사회 등에까지 지평을 넓힌다. 여성 운전 금지 조치에 저항한 여교수들, 남녀 분리의 원칙을 무시하고 직장생활을 감행한 여기자 등 남성 중심의 권력체제에 도전한 이슬람 여성들을 통해 작지만 소중한 희망을 발견한다. 최근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뒤흔들고 있는 ‘재스민 혁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 중 하나가 여성들의 적극적인 시위 참여라는 분석이 있다. 독재정권들이 단기간에 무너진 배경에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책이 더욱 시의적 무게를 갖는 이유다. 1만 8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자유·인권위해 목숨걸고 싸우는 그녀들

    자유·인권위해 목숨걸고 싸우는 그녀들

    여성이 당하는 착취에서는 인간의 야만성을, 여성이 표출하는 항거에서는 인류의 진보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지구 한구석에서 목숨을 헌납하고 투쟁하는 여성들이 있다. ●팔라잔카·산체스 시상식 참석 불허 이들 중 ‘아주 특별한’ 10명이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가 매년 수여하는 ‘용기 있는 국제여성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자국 정부로부터 시상식 참석을 허락받지 못한 2명을 뺀 8명이 참석했다. 수상자 중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주 검찰총장인 마리아 바시르는 탈레반 정권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검사직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그녀는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몰래 동네 소녀들을 모아 가르쳤다. 적발되면 사형감이었음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탈레반 정권이 물러간 뒤 2006년 그녀는 검사직을 되찾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주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바시르는 지금도 탈레반 세력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집이 불탄 적이 있고 앞마당에 폭탄이 떨어지기도 했다. 자녀들은 협박 편지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이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 여성 인권 옹호자로 활동하고 있다. 카메룬의 언론인 앙리에트 에크웨 에봉고는 1980년대부터 독재정권에 맞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양성평등을 위해 싸웠다. 투옥과 협박에 시달렸지만 민주주의를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멕시코의 마리셀라 모랄레스 이바녜스 검사는 조직범죄 특별조사단을 지휘하며 마약과의 전쟁에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마약단의 살해 위협을 무릅쓰고 ‘목격자 보호 프로그램’을 만들려 하고 있다. 벨라루스의 나스타 팔라잔카는 비정부기구(NGO) ‘말라디(청년) 전선’의 부회장으로서 독재에 대한 저항에 헌신하고 있다. 정부는 그녀의 시상식 참석을 불허했다. 쿠바의 요아니 산체스는 반정부 블로그를 운영하며 민주주의를 설파하고 있다. 역시 시상식 참석을 허락받지 못했다. 파키스탄의 굴람 수그라는 빈민촌에서 여성 교육 등 계몽운동을 하고 있다. 헝가리에서 집시 출신으로는 처음 의원이 된 아그네스 오스즈톨리칸은 소수자 인권 옹호를 주창하고 있다. 요르단의 변호사인 에바 아부 알라위는 인권단체의 대표로서 고문과 성폭행, 명예살인 등의 희생자에게 법적 탈출구를 제공해 왔다. 중국의 인권 변호사 궈젠메이는 베이징에 여성 법률 상담센터를 열어 성희롱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툰바예바, 정상으로는 처음 받아 중앙아시아 최초의 여성 국가 수반으로 민주주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로자 오툰바예바 키르기스스탄 대통령도 정상으로는 처음 이 상을 받았다. 오툰바예바 대통령은 “이 상은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 모두의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축사에서 “수상자들은 어려움을 감수하고 변화를 추구했다.”면서 “용기는 확산될 수 있다는 매우 단순한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광주 시의원들이 카다피 규탄성명 낸 이유는?

    광주 시의원들이 9일 리비아 카다피 정권에 대한 규탄 성명을 냈다. 시의원들은 “카다피는 42년간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억압해 왔으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면서 “카다피 독재정권은 민간인 학살과 유혈 진압을 중단하고 리비아 국민의 뜻에 따라 민주화를 이행할 것을 광주시민과 함께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리비아 국민의 용기 있고 정의로운 항쟁으로 반드시 민주화가 쟁취될 것임을 확신하며 리비아 국민의 민주화 혁명을 전 국민과 함께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론의 반응은 나뉘고 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광주의 의정대표로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국회나 시민단체가 아니면서 지나치게 ’쇼’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열린세상] 새 세상이 열리는 중동현장에서/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열린세상] 새 세상이 열리는 중동현장에서/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두달 가까이 중동에서 현장연구를 하고 막 돌아왔다. 잘못된 정권을 뒤엎으려는 거센 분노와 새 세상을 만들려는 뜨거운 열기의 한가운데서 나도 새로운 공부를 하고 왔다. 9·11테러 이후 10년간 세상이 바뀌었듯이 중동의 아랍국가들도 엄청나게 변했음을 느꼈다.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를 종파 간·부족 간 권력 갈등과 소외의 문제로 분석하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번 아랍 민주화 시위는 50년 동안 억눌려 왔던 민주, 인권, 복지, 삶의 질을 향한 근원적 변화의 문제이다. 아랍세계이니 다른 세계와 다를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되었다. 다만 독립 이후 최초로 경험해 보는 민주화 실험의 서투른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왜 튀니지에서 촉발된 정권 퇴진 시위가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42년 철권통치의 카다피까지 무너뜨리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이웃 왕정 산유국으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는가? 아랍은 80년 전만 해도 하나의 공동체였다.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믿으며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1300년 동안 하나라는 집단의식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 아랍세계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구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22개의 개별국가로 쪼개져 버린 것이다. 더러는 왕정을 유지하고 더러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통치체제는 각각이지만 그들을 묶어 두는 아랍정신은 지금도 맥이 통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받은 거대한 변화의 욕구가 이슬람식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부르짖고 있다. 첫째,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 중심에는 이념이나 종교 대신 철저하게 삶이 들어와 있었다. 치솟는 물가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청년실업 문제, 30~40년 한결같이 억눌러 온 권위주의 왕정과 군사독재정권을 향한 극에 달한 불만과 분노, 자유롭게 말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희구가 자욱이 깔려 있었다. 둘째, 그들은 새로운 삶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셜네트워크의 힘이고 인구의 60~70%를 차지하는 20대 후반 이하 젊은 층의 요구였다. 그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세상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처절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선전화 시대를 거치지 않는 파격적인 변화의 속도다. 록카페에서 몸을 흔들고 여성들의 히잡 색깔이 화려해졌다. 외국의 유명 브랜드 회사들이 연이어 명품 히잡을 출시하면서 이슬람 여성들의 패션도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셋째, 그들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1세대 지도자들은 비록 장기집권과 독재적 통치형태를 밟았어도 기본적으로 독립전쟁의 영웅으로서, 혁명 지도자로서, 국부로서 최소한의 국민 공감대와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공헌도 못한 그의 자식들이 권력을 세습하고 호화로운 사치행각에 국가의 부를 탕진할 때 그들은 좌절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인내해야만 했다. 넷째는 미국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주문이다. 독재정권에 시달려온 아랍 민중들은 권력자들을 비호해온 미국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동시에 미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도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구가 또한 묘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미국이 종래처럼 이스라엘 안보와 석유 이익이란 두개의 축을 지키기 위해 독재정권과도 협력하고 지원해 주던 중동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랍 국민들은 미래의 세계질서는 미국-서구, 중국-동아시아 축과 함께 중동-이슬람 축이 굳건히 자리잡아 함께 공존하며 협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이제는 우리도 중동-이슬람 세계를 무지와 편견 속에 주변부로 몰아내기보다는 주류세계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중심부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인구 15억에 57개국을 거느린 세계, 자원과 자본을 가진 거대한 시장을 버려두고 진정한 글로벌 경쟁을 논하는 것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 [열린세상] 3·1운동과 SNS/이창원 한성대 행정학 교수

    [열린세상] 3·1운동과 SNS/이창원 한성대 행정학 교수

    때는 92년 전 3월 1일, 조선의 민족대표 29인은 늦게 온 4명을 제외하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인사동 태화관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다. 선언 후 총독부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자부로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고, 60여명의 일본 경찰들이 태화관으로 몰려와서 우리 대표들을 남산 경무총감부와 현재의 중부경찰서로 연행하였다. 거사 당일 당연히 통신수단의 미비로 민족 대표들끼리의 연락도 쉽지 않았지만, 대표들과 학생 시위대와의 소통도 전혀 원활하지 않았다. 더욱이 시위학생들과의 원래 약속장소는 태화관과 300m 떨어진 탑골공원이어서, 민족대표 33인이 나타나지 않자 당황한 학생대표는 단독으로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 낭독까지 했다. 3·1운동으로 말미암아 상해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고, 전 세계에 우리민족의 독립에 대한 결의와 의지를 전파하는 큰 성과가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좀 엉뚱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시계를 반대로 돌려 92년 전 3·1운동 당시 요즘과 같은 정보통신(IT) 기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존재했다면 3·1운동의 시위 양상과 그 결과 역시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본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도미노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역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92년 전 한반도에는 조직화된 반정부 세력이나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았고, 요즘의 튀니지·이집트·리비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 3개 국가에서 시위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하여 시위를 주도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시위장면을 생중계하면서 부패 청산, 장기 독재정권 퇴진, 기본권 보장 같은 실질적인 주장을 전파하니 그 효과가 아주 절대적이다. 대학까지 나왔지만 취직이 안 돼 튀니지 인구 4만의 소도시 시드 부지드에서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경찰의 단속으로 청과물을 압류당했고, 이를 항의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자 분신을 선택했다. 이러한 불행한 소식이 금방 SNS를 타고 가공할 실업률, 부정부패와 장기독재로 얼룩진 튀니지에서는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발전되고, 곧 23년 독재자 벤 알리 대통령에 대한 전국적 정권퇴진 운동으로 발전했다. 벤 알리 대통령은 인터넷을 차단하고, 비판적 인사들의 이메일과 SNS 계정을 해킹하면서까지 이러한 반정부 시위를 막고자 했지만, 도리어 우회 경로를 통해 페이스북 등으로 시위가 확산되었고, 결국 시위 2개월 만인 지난 1월 15일 외국으로 야반도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튀니지의 인구가 1000만명 정도인데, 이중 페이스북 가입자가 무려 180만명 정도로, 18%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집트 역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제안된 반정부 집회에 엄청난 시민들이 호응을 했고, 휴대전화·스마트폰·노트북 등으로 무장한 시위대들은 집회 장소와 시위 상황 등을 SNS를 통해 생중계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 역시 인터넷 차단과 주요 시위 주도자에 대한 감금으로 대응했지만, 결국 2월 11일 헬기를 타고 휴양지로 도망을 가는 신세가 되 고 말았다. 지식정보사회에서 무서운 것은 일반 대중이 총으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디지털 카메라·노트북 등으로 무장한 대중이 이러한 정보를 다시 SNS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SNS가 민주화와 개방화에 기여만 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왜곡된 정보도 정말 효과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나 권력집단에 의한 정보 왜곡은 정말 두려운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정치인들이 요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매달리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우리 사회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미지수다. 물론 정부나 정치인들의 정보 왜곡은 일반 시민들과 미디어의 개방적 네트워크에 의한 지속적 검증으로 막는 방법 외에는 없다. 왜냐하면, SNS의 진정한 위력도 민주화와 개방화를 위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의식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 [지청천 ‘자유일기’] 근·현대사 조명 중요사료 평가

    [지청천 ‘자유일기’] 근·현대사 조명 중요사료 평가

    백산 지청천의 ‘자유일기’는 1919년 그가 일본군을 탈출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하면서부터 시작돼 타계하기 한달여 전인 1956년 12월 11일까지의 ‘숨겨졌던’ 기록이다. 일기에는 만주와 상하이 등지에서의 독립운동과 해방 직후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그의 시각과 견해가 꼼꼼히 담겨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중요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백산이 시장주의에 반대해 계획경제를 주장한 것과 관련,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임시정부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대토지 국유화 등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지향했다.”며 “이는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매우 선진적인 시각”이라고 해석했다. 이승만 정부와 대립한 백산에 대해 정재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백산의 일기는 독립군 노선과 이승만 노선이 서로 결합했다가 흩어지는 과정, 독립군 노선이 밀려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료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에 독립운동 시절의 기록인 50년 이전의 일기를 모두 잃어버린 점은 아쉽다. 현재는 그 이후의 기록인 일기장 5권과 수첩 2권만이 전해진다. 일기를 소장해 온 백산의 딸이자 독립운동가인 지복영(池復榮·1920∼2007) 여사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많아 살아 생전에는 절대 공개 못 한다.”고 할 만큼 50년대 이승만 정부 당시 국내 정세, 민생, 개헌, 노동 문제 등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대표적 우파 정치인인 그가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용인술을 준엄하게 꾸짖고 건국 초기 국가의 발전 방향을 두고 고심하는 대목에서는 당시 이념 논쟁이 극심한 가운데서도 민생 안정과 진정한 자주독립을 이루려 한 독립운동가의 우국충정과 고뇌를 엿볼 수 있다. 김동현·윤샘이나기자 moses@seoul.co.kr
  • ‘월드뮤직’ 두 거장 새달 첫 내한공연

    ‘월드뮤직’ 두 거장 새달 첫 내한공연

    아프리카와 남미를 상징하는 ‘월드뮤직’의 두 거장이 나란히 첫 내한 공연을 한다. 주류 음악에 익숙해진 팬들에게는 모처럼 귀에 앉은 딱지를 떼어 낼 기회다. 모국인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베냉공화국보다도 유명한 월드뮤직계의 여걸 안젤리크 키드조(위·51)가 오는 13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먼저 오른다. 지난해 남아공월드컵 개막식의 축하공연이 전채요리였다면 이번엔 메인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키드조는 카를로스 산타나, 브랜포드 마샬리스, U2의 보노 등 수많은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아프리카 음악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듬앤드블루스(R&B)와 펑크, 재즈, 라틴음악의 특성을 결합해 월드뮤직의 미래를 제시한다는 격찬도 받고 있다. 2008년 ‘진진’(Djin Djin)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서정적인 음악부터 경쾌한 댄스음악까지, 화려한 퍼포먼스와 카리스마가 넘쳐나는 그의 공연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재미있는 공연으로 정평이 나 있다. 3만~7만원. 브라질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1927~1994)이나 후앙 질베르토(80) 같은 보석들을 배출한 나라다. 이들의 다음 세대가 바로 브라질 음악의 간판 질베르토 질(아래·69)이다. 19일 LG아트센터에서 한국 팬과 첫 만남을 가진다. 질은 1967년 데뷔 앨범 ‘루바카오’(Louvacao)를 내놓은 이후 5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일곱번의 그래미상(월드뮤직 부문) 수상과 함께 4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1960년대 군사독재정권의 탄압 속에 기타리스트 겸 가수인 카에타노 벨로조와 함께 문화운동 ‘트로피칼리아’의 선봉에 서다가 국외로 추방되기도 했다. 룰라 대통령 집권 시기인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내한공연에서는 아들인 벵 질,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자키스 모렐렌바움과 함께 두대의 기타, 한대의 첼로로 어쿠스틱 음악의 감동을 전할 계획이다. 4만~12만원. (02)2005-0114.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중동발 재스민향 北전파 4대루트

    지난 26일 평양에서 열린 ‘선군청년총동원대회’는 강성대국 건설에서 청년들의 역할을 강조한 이례적 행사였다. 중동발 재스민향이 북한에까지 전달되지는 않을지 북한 지도부의 우려가 묻어나 있다. 27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북한에 이집트, 리비아 민주화 시민혁명 내용과 ‘세습정권, 독재정권, 장기정권은 망한다.’는 내용이 담긴 전단 수만장을 새로 제작해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심리전을 강화해 북한 내부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의도다. 복수의 탈북자들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 USB 사용은 보편화됐다.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들어가는 것으로 한 탈북자는 북한에 USB가 200만개 이상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 탈북자는 “지난해 북한 장마당(시장)에서 한개 2만~3만원에 팔렸다. 대학생들이 자료를 저장해서 다니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USB와 전단이 실린 풍선은 지상 5000~6000m까지 올랐다가 터지도록 타이머 장치를 한다. 함경남도 지역이나 평양에서 USB를 발견했다는 탈북자의 증언도 있다. 최근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북한에는 AM라디오 100만대, 단파 라디오 20만대가 보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KBS한민족방송과 극동방송 외에 열린북한방송 등 민간방송이 북한으로 전파를 쏘고 있으며, 최근 중동 민주화 소식을 집중적으로 전하고 있다. 최근 당 간부들만 보는 참고신문에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소식이 실렸다. 참고신문은 알려진 것과 달리 열람 후 반납하지 않고 각자 집에서 보관한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간혹 친구집에 갔다가 보기도 했다. 다만 돌려 보거나 밖으로 내돌리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외부로 빼돌리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거나 중국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한 사람들은 중동의 민주화 시위 소식을 접했을 것으로 보인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재스민 민주화 혁명’ 강풍 북한까지 갈까?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이어 이집트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독재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아랍권에 반정부 시위가 번지면서 이란에서도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예멘과 바레인 등에서도 유혈사태가 이어지는데요. 18일 오후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된 ‘TV 쏙 서울신문’은 진경호 국제부장을 초대해, 중동에서 거침없이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바람의 원인은 무엇인지, 과연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들었습니다. 더불어 식량난 등으로 중동 못지 않게 집권세력이 벼랑 끝에 매달릴 소지가 있는 북한에도 이런 민주화 흐름이 스며들지 알아봅니다.   튀니지와 이집트 정권을 무너뜨린 반정부 시위가 중동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데요. 먼저 지금의 중동 상황을 한번 짚어주시죠. -한마디로 조용한 나라가 단 한 곳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아시는대로 지난 주말에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진 데 이어 반정부 시위 물결이 지금 중동 전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란과 예멘, 바레인, 알제리 등 대략 9개 나라에서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고 사상자도 속출하는 상황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했는데요. 먼저 이집트 상황부터 짚어보죠.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나고 군부가 권력을 이양 받았죠. -사실 이집트에서 군부는 무바라크의 독재권력을 뒷받침해 온 집단입니다만 그러면서도 무바라크와 달리 국민들의 신망이 두텁다는 게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이런 군부가 권력을 이양받아 과도정국을 이끌고 있는데요. 일단 군부는 이집트 의회를 해산하고, 현행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켰습니다. 다음 주에 개헌위원회가 새 헌법안을 마련하면 두 달 안에 국민투표에 부치고, 새 헌법에 맞춰 오는 9월까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겠다는 게 이집트 군부가 내놓은 계획입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거취도 관심인데요, 중병설에다 망명설 등 갖가지 소문이 무성한데,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퇴진 후 이집트의 유명 휴양지인 셰름 엘 셰이크의 별장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말기 암을 앓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있고, 퇴진 성명을 발표한 뒤로 몇차례 혼절해서 혼수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합니다.이집트 사태가 일단락되나 싶더니 곧바로 이웃 나라로 번졌습니다.   무엇보다 이란이 관심이 아닐 수 없는데,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야권과 반정부 시위대가 대규모 시위를 예고한 날이 바로 오늘(18일)입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 서울과 5시간30분 시차가 나니까, 우리 시간으로 대략 오늘 밤부터 시위가 본격화할 전망입니다. 앞서 지난 14일 테헤란 등에서 수만명이 참여하는 유혈 시위가 벌어져 1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했는데, 이번 시위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느냐가 향후 이란 정국의 분수령이 될 듯 합니다.   이란은 여러모로 이집트와 대비되는 나라인데요. 당장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다는 점부터 다른데,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어떤 이유로 일어나고 있는 건지요. -이란은, 미국과 관계를 놓고 보면 북한과 더불어 대표적인 반미 국가라는 점에서 이집트와 대척점에 있습니다. 철권 통치와 심각한 경제난이라는 점에서는 이집트와 유사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란은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호메이니 혁명 이후 강력한 이슬람 정권이 통치를 해오면서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등 강압 통치를 해온 대표적 나라로 꼽힙니다. 때문에 2년 전 대선 직후에도 ‘그린 무브먼트’라는 대규모 유혈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억압정치에 대한 불만에다 최근 단행한 정부의 재정긴축 조치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된 것이 직접적인 시위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란 말고도 바레인이나 예멘 같은 다른 나라들의 시위 상황도 심상치 않던데요. 사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과연 북한이 이런 민주화 열기를 비켜갈 수 있느냐는 겁니다. 북한에서도 이런 반체제 시위가 가능할까요. -지난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9회 생일잔치가 평양을 중심으로 성대하게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500만명의 주민이 올해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유엔의 전망도 나옵니다. 그만큼 주민들의 불만은 증폭돼 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이 앞서 언급한 중동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국가란 점입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여전히 철저하게 통제돼 있고, 이 때문에 설령 반체제 움직임이 일더라도 북한 전역으로 조직화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당장 중동의 민주화 열기가 아시아 대륙을 넘어 북녘으로까지 이어지기는 힘들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서울신문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격랑의 중동] 리비아軍 미사일까지 동원 진압… “최소 200명 사망”

    [격랑의 중동] 리비아軍 미사일까지 동원 진압… “최소 200명 사망”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19일(현지시간)과 20일 내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과 장기 독재정권의 강경 진압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사상자가 속출하는 유혈 사태 속에서도 오히려 민주화 열기는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독재정권의 강압에 오래도록 억눌린 시민들의 저항의식이 아랍권의 지형과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리비아 병 원, 수혈할 피 모자라 발 동동 리비아 동부에 위치한 2대 도시 벵가지에서는 20일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엿새째 이어졌다. 보안군이 중화기까지 동원한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펼치면서 시민들은 “이것은 학살”이라며 치를 떨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와치는 이날 누적 사망자 숫자가 최소한 104명이며 이 가운데 최소 20명은 19일 살해됐다고 밝혔다. 반면 알자지라방송은 현지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벵가지 한곳에서만 2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희생자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국 각지에서 사상자가 잇따르면서 병원들은 수혈할 피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리비아 정부는 시위가 확산되거나 외부에 구체적인 시위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을 전면 차단했다. BBC방송은 19일 시위 도중 숨진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문상객들이 14.5㎜ 대구경 기관총 공격을 받아 최소한 15명이 숨지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은 현지 병원 의사의 말을 인용, 희생된 시위 가담자들이 머리와 가슴에 조준사격을 당했으며 한 희생자는 지대공 미사일에 머리를 맞았다고 밝혔다.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벵가지는 마치 시위대와 보안군이 대치하는 전쟁터 같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방송은 전했다. ●예멘 보안군, 시위대에 발포 AFP통신에 따르면 예멘 수도 사나에서는 20일 사나대학교 학생 수백명이 학교 근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인근에서 살레 대통령 지지 시위를 벌이던 100여명과 충돌이 벌어졌다. 19일에는 보안군이 수천명 규모의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면서 시위 가담자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보건부 당국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망자는 목에 총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남부 도시 아덴에서도 16세 소년 1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예멘의 시위 사망자는 11명으로 늘었다. AFP통신은 20일 주요 야당 지도자 하산 바움이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남부 도시 아덴에 도착한 직후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바레인은 주말을 분기점으로 정부가 유화 국면을 조성하면서 지난 11일 이후 계속된 민주화 시위는 20일 모처럼 별다른 충돌 없이 진행됐다. 17일 수도 마나마 중심부 진주광장에서 야영하던 시위대를 무력진압해 사망자 5명과 200여명에 이르는 부상자를 냈던 보안군은 19일 셰이크 살만 빈 하마드 알칼리파 왕세자의 지시에 따라 군 병력과 장갑차를 진주광장에서 철수시켰다. 진주광장에 다시 모인 시위대 수만명은 “우리는 오늘 바레인의 일부를 해방시켰다. 이제 전 바레인을 해방시키겠다.”며 기뻐했다. 광장에서 철야농성을 벌인 이들은 20일에도 대규모 시위를 이어갔다. 알칼리파 왕세자는 19일 “모든 정파와 모든 이슈에 대해 진지하고 솔직하게 논의할 것”이라며 반대세력과의 대화를 제의했다. 이에 대해 시아파 정당 소속 야심 후세인은 “(대화 제의는) 정책이 180도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화답했지만 대화를 거부하는 인사들도 있어 시위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요 야당 지도자들은 20일 회합을 갖고 정부 측 제안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시위대도 보안군의 재진입에 대비해 진주광장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다시 설치하는 등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이란 야당 진영 웹사이트들에 따르면 20일 이란 수도 테헤란 테헤란 발리 아스르 광장과 국영방송 앞에는 각각 1000여명과 수백명의 시위대가 모여 정권 퇴진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곧바로 최루탄을 쏘며 강제해산에 나섰고 이후 경찰과 시위대 간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반복되며 기습시위가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언론매체들의 테헤란 내 시위 취재가 금지된 상태이며, 이란 관영 매체들은 이날 시위와 관련된 소식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모로코 “모하메드 왕 권력 이양하라” 모로코에서는 20일 수도 라바트 에서 2000여명, 최대도시 카사블랑카에서 1000여명이 참가하는 민주화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모하메드 왕에게 새로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일부 이양하라고 요구했다.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는 19일 3000여명의 시위대가 행진을 시도하다 진압 경찰과 맞붙었다. 이 과정에서 야당 의원을 포함, 12명의 시위자가 부상했다. 현재 알제 도심에 자리한 ‘5월1일 광장’에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9개 경찰 부대 2만 6000여명이 배치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현행법상 불법인 정당 설립을 추진하면서 웹사이트에서 총선 실시와 투명한 정부 등을 요구하던 운동가들을 대거 잡아들였다. 사우디에서는 다음 달 13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계획돼 있다. 지난 3개월간 미국·모로코 등에서 치료를 받던 압둘라 이븐 압둘 아지즈 국왕은 오는 23일 급거 귀국할 예정이다. 박찬구·강국진·정서린기자 ckpark@seoul.co.kr
  • “중동 대중권력 시대 좋긴 한데”… 친미 깃발 유지 고심

    “중동 대중권력 시대 좋긴 한데”… 친미 깃발 유지 고심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가 반정부 시위로 들끓으면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도 대전환의 갈림길에 섰다. 친미국가와 반미국가 가릴 것 없이 시민혁명의 불길에 휩싸인 아랍권이 지금 미국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중동의 지각변동 앞에서 미국은 허둥대고 있다. 튀니지 벤 알리 정권의 붕괴를 지켜보면서도 미처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몰락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친미 독재정권 붕괴가 반미 이슬람 정권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1차 목표만 확고할 뿐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각론에 대해서는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중동의 안정이라는 전략적 이해와 중동의 민주화라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맹을 재구축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까닭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민주화 바람과 독재자에 의해 지탱돼 왔던 안정이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 끼여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고민은 ‘맞춤형 대응’에서 일단이 드러난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 따라 차별화된 대응을 펴고 있는 양상이다. 당장 동맹국인 바레인 정부에 대해 미국은 이집트 시위 초기의 대응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시위대의 민주화 요구를 지지하면서도 바레인 정부의 퇴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인구 70만명의 소국이지만 미 해군 5함대 사령부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란 이슬람 시아파 정권의 영향력을 최일선에서 차단해 온 바레인 수니파 정부의 퇴진과 이후의 정국 혼란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반면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이란에 대해서는 인터넷과 언론의 자유를 촉구하며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원거리 지원사격을 펴고 있다. 중동 친미 정부들과의 협력 태세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무바라크 이집트 정권이 붕괴된 뒤로 미 행정부는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이 모두 나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 셰이크 알사바 쿠웨이트 국왕,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왕세자 등과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친미 전선 수호에 부심하고 있다. 이 같은 미 행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환점을 맞은 중동의 향후 지형이 미국에 유리한 구도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설령 다각도의 노력으로 반미 성향의 이슬람 정권 탄생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시민혁명에 의해 탄생된 새 정권들이 일방적인 친미 노선을 견지해 나갈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권력의 추가 독재권력에서 일반 시민들에게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극소수의 절대권력자에게 의존해 왔던 미국의 중동 전략이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중동 프로그램 책임자 마르완 무아셰르는 “수십년간 미국은 (이 지역에서) 석유와 이스라엘 때문에 민주주의보다 안정을 우선시했으나 이 같은 정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절대권력이 아닌 대중권력을 향해 중동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높아가고 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위키리크스 설립자 어산지에 대한 상반된 두 시선

    위키리크스 설립자 어산지에 대한 상반된 두 시선

    ‘비전과 카리스마가 있는 디지털 시대의 체 게바라’ 대(對) ‘극단으로 치닫는 무분별한 테러리스트’. ‘정보 민주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는 민중의 정보기관’ 대 ‘국가 외교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범죄 단체’. 비밀문서 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와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에 대한 엇갈리는 시각이다. 상반되는 견해를 그대로 담은 위키리크스에 대한 두 권의 책이 거의 동시에 나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순위 50위권에 진입했다.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대니얼 돔샤이트베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지식갤러리 펴냄)과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마르셀 로젠바흐·홀거 슈타르크 지음, 박규호 옮김, 21세기북스 펴냄)는 제목처럼 저자의 성격이 판이하다. ‘마침내’의 저자 돔샤이트베르크는 위키리크스의 초창기 멤버이자 2인자로 활약했지만 어산지와의 불화로 지난해 9월 위키리크스를 떠났다. 한 술 더 떠 위키리크스의 경쟁 사이트인 오픈리크스를 열었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책 출간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어산지의 여성 취향은 단순하다. 어려야 하고 22세 이하를 좋아한다. 어산지는 18살 때 당시 16살의 여자 친구를 만나 관계를 맺었으며 1년 뒤 아들 대니얼이 태어났다. 대니얼은 현재 20살”이라고 폭로했다. 책을 쓴 목적에 대해서는 “어산지가 광신적인 추종 대상이 되기 전에 바른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었고, 어산지와 불화하게 된 배경을 명백하게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권력에’의 저자 로젠바흐와 슈타르크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기자로 수년 동안 어산지, 돔샤이트베르크 등과 접촉했다. 책에는 어산지가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기 바로 이틀 전까지 저자들과 나눈 대화내용뿐 아니라 2010년 9월 돔샤이트베르크와 어산지가 채팅으로 싸운 내용도 그대로 실려 있다. 내용이 자극적인 만큼 돔샤이트베르크가 쓴 ‘마침내’의 판매 순위가 좀 더 높다.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민주화 시위에 굴복해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는 위키리크스가 있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튀니지 정부의 부패상을 담은 미국의 외교전문은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열풍은 이집트로 번져 30년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2010년 미 국무부 외교문서 25만여건을 공개해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어산지는 지난해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네티즌 선정 ‘올해의 인물’ 1위에 선정됐다. 위키리크스는 올해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이기도 하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나와 줄리언을 단번에 하나로 묶어 주었다.”고 회고했지만 “어산지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는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극단적으로 천재적이다. 극단적으로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 편집증이다. 극단적 과대망상이다.”라고 어산지를 평가했다. 그는 위키리크스에 합류하기 전에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EDS)에서 네트워크 보안을 책임졌으며 약 5만 유로의 연봉을 받았다. 카오스컴퓨터클럽이란 커뮤니티가 주최한 행사에서 돔샤이트베르크는 어산지를 만났고, 2008년 위키리크스에 합류하게 된다. ‘슈피겔’의 기자들은 어산지가 돔샤이트베르크를 어떻게 여겼는지 밝혔다. 위키리크스 사람들은 돔샤이트베르크를 그냥 대외적으로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로 여겼다. 어산지는 그를 불안 요소로 보았다. 그는 돔샤이트베르크가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겼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산지는 그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주지 않으려 했고, 이것이 돔샤이트베르크에게는 불만이 됐다. 어산지에 대한 ‘슈피겔’ 기자들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위키리크스가 저널리즘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고 전제하면서 “어산지는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을 열광시키고 추종자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이 점은 다른 많은 문제점을 보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마침내’ 1만 3800원, ‘권력에’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정철, 싱가포르 출현 왜

    김정철, 싱가포르 출현 왜

    김정철(사진 오른쪽)은 왜 싱가포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경호원 수십명과 함께 움직이는 김정철이 지난 14일 싱가포르의 공연장에 나타난 것은 공개를 염두에 둔 행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시점이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 직전이라는 점은 북한의 3세 세습구도에 대한 김정철의 메시지가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김정철은 그가 “북한의 권력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은의 이복형이나 장남인 김정남은 김정은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각에서는 암살기도설도 나돌았다. 이 때문에 정철은 이를 염두에 두고 일찍이 해외생활이나 정치와 무관한 활동을 일부러 외부에 흘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의 여유를 보이기 위한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 이집트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언급하는 시각에 대해 “우리는 문제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아버지 생일에 여유롭게 해외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후계 문제는 정리가 됐고 정은·정철의 관계도 평온하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린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낸 김정철은 서구 문물에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 공연장에 모습을 드러냈듯이 그는 에릭 클랩턴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에 함께 등장한 여성(왼쪽)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얼굴형이 동그랗고 볼이 통통한 이 여성은 얼굴의 윤곽 등을 볼 때 동생 여정(24)일 가능성이 높다. 성혜림에게서 태어난 김정남(40)과 달리 여정은 정철·정은과 함께 고영희에게서 난 자식이라 각별한 사이다. 사진을 보면 이 여성은 김정철과 가까이 앉아 웃으며 대화하는 등 격의가 없어 보인다. 한 대북 소식통은 “기술서기(비서)이거나 여동생일 것이다. 여자 친구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철이 결혼했다는 소식도 없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민주 터키식 vs 軍政 파키스탄식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으로 역사의 새 장을 맞은 이집트가 또 한번 갈림길에 섰다. ‘무바라크 퇴진’처럼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집트의 앞날은 대단히 유동적이다. 당장 권력을 접수한 군부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 그들의 움직임에 무슬림형제단 등 야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이집트의 향후 정세를 결정할 변수로 꼽힌다. ●軍, 정권 쉽게 내줄까 이집트 군은 일단 권력의 민간이양을 공언했다. 모흐센 엘판가리 군 최고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국영 TV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넘기고 (이스라엘 등) 국제사회와 맺은 모든 협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군부는 내각을 해산하고 헌법 효력을 정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1952년 나세르혁명 이후 권력을 독점해온 군부가 쉽게 정권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1980년 한국의 제5공화국 등장처럼 또 다른 군사정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군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과정에서 정권과 거리를 두며 군부의 양 축이 된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과 사미 에난 군 합동참모총장이 세력 다툼을 이끌 공산이 크다. 미국 LA타임스는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는 군부가 계속 강력한 권한을 틀어쥔 가운데서도 민주적 개혁작업을 꽃 피운 터키 및 인도네시아 모델로 가거나, 아니면 군부와 정보기관이 권력을 틀어쥔 파키스탄 모델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슬림형제단 움직임도 주목 선거가 원활하게 치러질지도 불투명하다. 대선이 오는 9월 예정대로 진행되려면 그전까지 후보가 결정돼야 하고 정당도 만들어져야 한다. 투표 방법 또한 정해지지 않았고 반정부 시위 때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불법단체의 꼬리표가 붙은 ‘무슬림형제단’의 정치 참여 허용 여부도 변수로 남았다. 조슈아 무라브치크 존스홉킨스스쿨 연구원은 “독재정권을 거쳐온 이집트로서는 (민주적 선거과정이) 완전히 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여야 잠룡들이 뭍으로 대거 얼굴을 드러내면서 국론이 갈린다면 이집트 사회는 상당한 분열과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개헌 논의도 이집트 정국을 어지럽힐 요소다. 당장 군이 무바라크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것은 현행 이집트 헌법에 위반된다. 1971년 개정된 헌법은 대통령 퇴진 때 부통령이 통치권을 물려받거나 의회 의장이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그 역할을 대신 맡게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권력을 둘러싸고 정통성 논란이 벌어질 소지가 다분한 셈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피플파워’ 중동 현대사 새로 쓰다

    시민혁명이 중동의 현대사를 바꾸고 있다. 중동의 맹주인 이집트의 30년 철권 통치도, 튀니지의 23년 장기집권 체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피플파워 앞에 잇따라 무너져 내렸다. 중동의 시민혁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조짐이다. 알제리와 예멘, 요르단, 바레인 등에서도 권위주의 독재정권들이 시민혁명의 물결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중동 혁명의 주요 동력으로 인터넷을 미디어로 활용하는 디지털 세대와 트위트·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를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이집트의 시민혁명이 인터넷에 익숙한 수십명의 페이스북 활동에서 최초 점화됐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디지털 세대를 과거의 틀 속에 가둬 두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분석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시민혁명 18일 만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권좌에서 물러나자 중동의 인근 독재정권들은 ‘퇴진 도미노’를 피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시위대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당근’을 내놓고 있다. 청년들의 분신자살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알제리에서는 압델 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1992년 이후 19년 동안 이어온 국가비상사태 조치를 곧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수도 알제의 메이데이 광장 등에서는 시민 수천명과 일부 야권 인사들이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 강도를 높였다. 예멘에서도 이날 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 4000여명이 수도 사나에서 1978년 이후 장기 집권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이들은 “무바라크 다음은 알리의 차례”라는 구호를 외치며 한때 경찰과 대치했다. 살레 대통령은 최근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혁명에 자극받아 2013년 임기가 끝나면 권좌에서 물러나고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지도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은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를 진정시키기 위해 지난 8일 야권 인사를 포함한 새 내각을 출범시키는 한편 쌀과 설탕, 연료 등 주요 생필품 가격을 억제하는 조치를 내놓았고, 바레인에서는 다음주 야권 시아파의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각 가정에 1000디나르(약 298만원)씩 나눠 주기로 하는 등 유화책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랍 현대사가 네 번째 시기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이집트에 대통령 공화제가 수립된 1952년 나세르혁명, 이집트를 위시한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충돌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그리고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공화국이 등장한 1979년 이란혁명에 이어 2011년 민주화 혁명이 중동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무바라크라는 ‘기존 권력’과 이집트 시민, 그리고 미국이라는 외세의 3각 힘겨루기에서 시민혁명이 결실을 이뤄 냈음을 의미한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중동서 이란 입김 커질 듯… 美 정책기조 수정 불가피”

    “중동서 이란 입김 커질 듯… 美 정책기조 수정 불가피”

    30년 철권통치를 끝낸 이집트인들의 혁명 열기가 뜨겁다.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난 이집트는 과연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의 독재정권마저 무너뜨린 아랍 민주화의 물결은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와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의 긴급 지상대담을 통해 코샤리 혁명 이후의 이집트와 중동의 앞날을 짚어 본다. ●무바라크 퇴진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뭔가. 서정민 교수 가장 먼저 짚어 봐야 할 대목은 이집트인들이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시민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이집트가 아랍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한다면 아랍 현대사를 다시 쓰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 10일 밤 무바라크가 퇴진을 거부하고 나서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봐야 한다. 1952년 쿠데타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채택했지만 그것이 민주화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치와 경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군부가 얼마나 개혁조치를 취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이집트인들은 이제 민주화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군부가 실권을 장악했다. 황병하 교수 이집트 헌법은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국회의장이 권력을 승계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사태에서는 군 최고위원회가 권한을 이어받았다. 군부는 나세르 전 대통령이 주도한 쿠데타 당시부터 이집트 정치에서 핵심 역할을 해 왔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군부 출신이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군부는 지금 적지 않은 불안감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52년 나세르 혁명도 군부 고위장교들이 왕정을 지지하며 기득권에 안주할 때 자유장교단을 중심으로 한 하위직 청년 장교들이 나세르 혁명을 이끌었다. 이번 시위에 일부 청년 장교들이 가담했던 점을 감안하면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것은 군부 내부결속을 다지는 것과 함께 무바라크를 옹호하는 쿠데타와 그를 축출하려는 쿠데타 모두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치였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군부가 오랜 이집트 통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측면도 존재한다. 무바라크가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세습시키려 했지만 술레이만 당시 정보국장과 탄타위 국방장관이 끝까지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다. 군부는 앞으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무바라크를 퇴진시키기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이집트 정국을 전망한다면. 서 교수 한국이 1987년 경험했던 6월항쟁과 비슷한 경로로 갈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가 국민들 요구를 수렴하는 선에서 양보하되 권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모델이 가장 유력할 것이다. 그게 사실 미국 등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물론 자유로운 총선과 대선은 보장할 것이다. 다만 당초 계획대로 오는 9월에 대선을 치를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다. 1년 이상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선거 일정에 따라 이집트 정세가 안정으로 갈지 혼란으로 갈지 판가름 날 것이다. 무바라크 측근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요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 정국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집단은 무슬림형제단이다. 가장 큰 득표력을 갖고 있다. 이번 혁명은 민족적·세속적 성격이 강했고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한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의회에서 굉장히 약진할 것이다. 2005년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도 전체 의석의 20%를 차지한 경험이 있다. 향후 총선에선 최소한 3분의1의 의석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무슬림형제단은 군부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캐스팅보트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황 교수 무바라크가 퇴임한 건 상징적인 의미가 크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기존의 공동목표를 달성한 이상 이제부터는 각자 소속 정파와 조직 목표에 따라 다양한 요구가 터져나올 것이다. 현재 야권세력은 외형상으로는 크게 4·6청년운동, 변화를 위한 이집트운동(키파야), 무슬림형제단으로 나눌 수 있다. 4·6 청년운동과 키파야 등은 암르 마무드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지지한다. 변화를 위한 민족연합(NAC)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과 파루크 아흐마드 술탄 대법원장을 지지한다. 무슬림형제단이 대선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선 승리가 아니라 의회에서 의석을 최대한 확보해서 이집트 민주화와 선거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전체 인구의 40%가 하루 2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경제문제는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무슬림형제단은 빈곤구제 등 사회활동에서 보여준 오랜 경험과 열정으로 서민들의 신뢰를 쌓아 왔다. 앞으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보여줄 것이다. ●중동에 미칠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황 교수 튀니지에서 벌어진 민주화 열기가 이집트로 옮겨 왔지만 이집트와 튀니지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튀니지는 서구나 다름없는 국가지만 이집트는 관광산업을 빼고는 그동안 철저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집트는 말 그대로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 혁명이 곧바로 중동에 영향을 미치기는 쉽지 않다. 만약 이집트에서 이슬람 정당을 허용했다면 지금처럼 급격한 변화를 겪진 않았을 것이란 말도 있지만 요르단만 해도 이슬람 정당을 인정하고 정부에 참여시킴으로써 완충작용을 한다. 예멘이 불안하다고는 하지만 4개 유력부족 대표가 대통령과 협의하면서 운영하는 이 나라에서 이집트식 혁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페르시아만 인근 산유국들도 막대한 자금력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흡수할 충분한 여력이 있기 때문에 일부 개혁은 가능하겠지만 이집트식 혁명은 힘들다. 서 교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고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슬람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수니파의 대표주자였던 이집트가 격랑에 싸였다. 그동안 이란과 국교까지 단절했던 이집트에서 발생한 정치변화는 이란에 대한 단일전선을 흔들게 되고 이는 중동 전체 정치 역학에서 이란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그동안 이집트는 중동에서 가장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였다. ●이번 혁명이 ‘쇠퇴하는 미국 헤게모니’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서 교수 미국은 중동에 대한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입만 열면 중동 민주화와 인권을 외쳤지만 사실 지역 안정을 가장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이집트에서 발생한 혁명 국면에서 상황을 주도하지 못했다. 겉보기엔 공개적으로 언급했던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냈으니까 외교적 승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무바라크가 사임을 거부했다가 번복하는 약 24시간 동안 미국이 별다른 역할을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동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무력으로 후세인 정권을 교체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국내 정치에 미치는 힘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무바라크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춰온 대표적인 친미 인사라는 점도 미국엔 부담이다. 무바라크에 대한 역풍 때문에 이집트가 과거처럼 친미정책을 펼 여지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무바라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황 교수 군부가 지켜주는 한 무바라크가 이집트를 떠날 가능성은 낮다. 무바라크가 머물고 있는 샤름 엘셰이크는 이집트 국내에서 무바라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다. 독재자 단죄에 있어서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전통적인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시아파는 지도자가 잘못하면 법적인 책임을 포함해 끝까지 책임을 묻지만 수니파는 역사적으로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비록 각종 부정부패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임한 이상 무바라크 쪽에서 볼 때 수니파 정부가 무리한 요구까지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거기다 군부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무바라크를 마냥 내칠 수 없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설] ‘피플파워’ 이집트 민주화 완결 기대한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하야로 권력을 넘겨받은 이집트군 최고위원회가 어제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새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선거에 의한 민간정부가 탄생할 때까지 국정을 과도적으로 운영하되 직접 통치에 나서지는 않겠다고 확인한 것이다. 아울러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 협정을 준수하는 등 국제사회와 한 모든 약속을 지키겠다고 천명했다. 우리는 이집트군 최고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을 환영하면서, 이 사태가 이집트 국민이 원하는 대로 완결되기를 기대한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에 걸쳐 있는 아랍 세계에서 장기 독재정권이 무너진 것은 지난 한달 새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가 두 번째이다. 게다가 이집트 사태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국가 비상사태가 19년째 지속돼 온 알제리,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34년째 집권 중인 예멘에서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 밖에 국왕이 통치하는 몇몇 국가 또한 정정(政情)이 불안하다는 외신이 잇달아 나온다. 아랍권에 가히 세계사적 대변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국제사회가 이집트 민주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그 과정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의 흐름을 보면 독재권력이 장기간 존재하던 나라가 단박에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예가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화 과정만 봐도 그렇다. ‘박정희 시대’를 마감하고도 민주적인 사회가 정착될 때까지, 우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이라는 희생을 치렀고 전두환 철권 통치를 겪어냈다. 따라서 사회 불안을 핑계로 이집트 군부가 직접 통치에 나서려 하지는 않는지, 명목상으로만 민간정부를 구성하고 실질적으로는 군정을 이어가려 하지는 않는지 부단히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외부 이해 당사국이 개입하는 일 역시 없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아랍권은 현재 세계 질서의 당당한 한 축이다. 그러므로 아랍권의 안정과 발전은 세계평화 증진과 인류의 공동 선 실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까지 번진 아랍권의 민주화 요구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속에 조속히 정착되기를 바란다.
  • 알제리·예멘 “대통령 퇴진” 시위 확산

    북아프리카의 맹주 이집트의 독재정권까지 성난 민심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면서 아랍권의 ‘민주화 도미노’가 다음은 어디로 퍼져 나갈지 주목된다. 아랍권 전역을 관장하는 암르 마무드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조차 “현재 중동을 휩쓸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언제 어디로 불어갈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상황이 불안정하다.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알제리와 예멘은 물론 부유한 왕국인 사우디아라비아까지도 민주화 열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반정부 봉기가 가장 뜨겁게 불붙은 곳은 알제리다. 알제리의 시위대 수천명은 12일(현지시간) 수도 알제 도심 곳곳에서 12년간 권좌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압델 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1999년 정권을 잡은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2009년 3선에 성공, 2014년까지 임기가 남았으나 높은 실업률과 부정부패 탓에 청년층의 불만이 극에 달하면서 위협받고 있다. 알제리 정부는 이번 반정부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집결지인 메이데이 광장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경찰력을 배치하는 등 사전 차단에 힘을 쏟았다. 중동의 최빈국 예멘 시위대도 홍해를 건너 온 이집트발 혁명 소식에 크게 고무됐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하야를 목격한 예멘 국민 4000여명은 12일 수도 사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멘 시위대는 “어제는 튀니지, 오늘은 이집트, 내일은 예멘 국민들이 사슬을 끊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1978년부터 집권 중인 독재자의 퇴진을 압박했다. 예멘 경찰은 이날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10명을 체포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또 이란에서는 서방 첩보요원들이 이 나라의 반정부 시위를 유도하기 위해 정신 이상이 있는 사람 중에서 분신자살할 자원자를 모집하고 있음을 이란 민병대원이 주장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미국 경제 전문 비즈니스 인사이드는 최근 ‘이집트 다음으로 붕괴될 11개국’이라는 기사를 통해 모로코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리비아 등의 정권이 붕괴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중동 각국의 민주화 향배가 결국 튀니지나 이집트에서처럼 군부의 선택에 따라 갈릴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외교관을 지낸 제이미 루빈은 “(정권 축출에 성공한) 이집트와 튀니지의 공통점은 군부가 시위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란과 시리아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해도 군이 즉각 개입, 강경 진압하기 때문에 시위의 동력이 오랜 기간 유지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YS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원흉” 원색적 비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원흉”이라며 원색적 비판을 퍼부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에 대한 논평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유탄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날린 셈이이다.  13일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독재정권은 반드시 붕괴되고야 만다는 역사의 진리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면서 “이집트 시민혁명의 승리를 민주주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인들과 함께 환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킨 4.19 민주혁명,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붕괴시킨 부마민주항쟁,전두환 독재에 저항한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투쟁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조국에 군사쿠데타라는 죄악의 씨를 뿌린 원흉이 바로 박정희 육군 소장”이라며 “이후 일제 치하 36년에 버금갈 만한 32년 동안 군사정권이 이 나라를 지배했고, 독재자 박정희는 18년간 장기 집권하며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 세습 독재정권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이 나라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크게 번영해 세계사의 주역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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