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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년만에 이승만 동상… 보·혁 갈등

    51년만에 이승만 동상… 보·혁 갈등

    51년만에 서울 남산에 다시 세워진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을 놓고 보수와 진보 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다. 보수 진영은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 진영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라고 맞서는 형국이다. 한국자유총연맹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 자유총연맹 광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행사에는 박희태 국회의장과 이홍구 전 국무총리, 캐서린 스티븐스 주한미대사 등이 참석했다. 이 전 대통령의 동상은 남산 분수대 자리에 위치해 있다가 지난 1960년 4·19혁명으로 철거됐다. 이후 51년 만에 남산 자락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에 건립된 것이다. 동상은 높이 3m, 폭 1.5m의 청동으로 제작됐고, 기단부는 2m 20㎝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박창달 자유총연맹 회장은 제막식에서 “이 전 대통령은 헌정질서를 만들고 북한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했다.”면서 “이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진보단체들은 “이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은 역사를 왜곡하고 독재자를 비호하는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사월혁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11개 단체회원 100여명은 자유총연맹 정문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가진 뒤 스티로폼으로 만든 이 전 대통령 동상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단순한 동상 건립이 아닌 뉴라이트세력의 역사 왜곡”이라면서 “최근 일부 보수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와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 재평가 작업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데 최근에 보수 쪽에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면서 “나라의 근간을 만드는 작업인 만큼 시간을 두고 논의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카다피 동상 ‘참수’… 공관 무차별 약탈

    카다피 동상 ‘참수’… 공관 무차별 약탈

    “오늘이 비로소 리비아인이 자유를 쟁취한 첫날이다.” 42년간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무아마르 카다피의 트리폴리 요새 ‘밥알아지지야’가 23일(현지시간) 함락되자 반군과 시민은 총을 치켜들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파죽지세로 수도를 장악해 가면서도 “밥알아지지야 안에서 자축할 것”이라며 전의를 다져 왔었다. 여섯 달의 내전, 그 사이 수많은 가족과 친구를 잃었던 이들은 쌓인 울분을 풀듯 요새 곳곳의 시설을 부수고 닥치는 대로 전리품을 챙겼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중지원을 받으며 육상저지선을 뚫은 반군은 요새에 도착, 1m 두께의 출입문과 시멘트벽을 향해 총탄을 쏟아부었다. 미스라타에서 트리폴리로 합류한 반군 최정예 부대 수백 명이 선봉에서 한참을 공격하자 대문 중 한 곳이 갈라졌다. 기세에 눌린 카다피군이 도주하면서 승부는 쉽게 갈렸다. 순식간에 알아지지야에는 반군기가 게양됐다. 요새 안에 입성한 반군은 6㎢에 이르는 경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몰락한 독재자의 흔적을 파괴하고 ‘전리품’을 수집했다. 반군과 시민 수백 명은 금빛 카다피 조형물을 찾아 머리 부분을 떼어냈고 손바닥으로 후려치다가 분이 안 풀린 듯 땅에 처박은 뒤 짓밟았다. 1986년 미군의 트리폴리 공습을 기억하려고 카다피가 세운 ‘비행기를 움켜쥔 주먹’ 조형물도 청년들의 분풀이 대상이 됐다. 요새 곳곳은 이미 5개월여에 걸친 나토군의 폭격으로 벙커 등 곳곳이 초토화된 상태였다. 카다피가 머물던 저택도 무차별 약탈당했다. 카다피를 상징했던 군모와 복장에서부터 기이한 수집품, 카다피 가족 구성원의 것으로 보이는 건강기록카드까지 남아나는 게 없었다. 반군은 금을 덧씌운 총과 트로피 등을 들고 나와 자랑하듯 외신 카메라 기자들 앞에서 흔들었다. 카다피가 TV에 등장할 때 애용하던 전동 골프 카트도 반군 차지가 됐다. 한 청년은 카다피의 희귀 모피를 몸에 두르고 집 밖으로 나왔다. 카다피가 6개월 전 반정부시위가 발생했을 때 처음 TV에 나오며 입었던 옷이다. 한 반군은 “많은 친구가 (내전 중) 숨졌다. 그들이 오늘 함께 이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밥알아지지야 요새는 1969년 카다피에게 쫓겨난 아드리스 국왕이 처음 지었다. 쿠데타 이후 카다피가 관저와 막사, 통신센터 등으로 활용해 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 몰락] “민주화·경제성장 선배 한국, 阿·중동 독재자를 꾸짖어라”

    “민주화 선배인 한국이 북아프리카·중동의 독재국을 당당히 꾸짖어야 한다.” 이란의 인권운동가이자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64·여)가 한국이 ‘아랍의 봄’(아랍권역의 반정부·민주화 바람) 때 택한 ‘침묵 외교’에 일침을 가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등 국제사회 리더들이 아랍 청년들에게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쟁취한 한국을 본보기로 삼으라.”고 권고했지만, 정작 한국은 독재자의 인권탄압과 폭압정치를 견제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우리 정부는 6개월을 끈 리비아 사태 종식이 임박하자 지난 22일 뒤늦게 “반군에 100만 달러(약 10억 8000만원)를 직접 지원하겠다.”며 지지를 공식화하고 있다. 내전 초기부터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비판하며 반군을 승인했던 서방 국가들과 비교되는 행보다. 현지의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한 타당한 조치라는 평가와 함께 ‘경제에만 함몰된 철학 없는 외교’라는 비판도 나온다. 에바디는 23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및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인권은 경제적 이권 앞에 자주 희생된다.”면서 “한국 역시 인권 침해에 눈감으면서 중동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해 왔다.”고 꼬집었다. 모국인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는 국민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주장해온 그는 “정당한 국민적 요구조차 탄압한 시리아와 예멘, 바레인, 이란 등의 권력자들에게 한국 내 여행 제한과 자산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바디는 또 “민주화 시위를 둘러싼 아랍 지역의 카오스가 앞으로 몇 년간 계속될 듯하다.”며 사태의 장기화를 예상했다. 그러나 “결국 혼란 끝에 민주주의가 찾아올 것”이라며 낙관적인 시각을 보였다. 에바디는 특히 “아랍의 진짜 민주화는 지역민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 때 달성했다고 볼 수 있으며 미국 등 서방사회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같은 지역 통치자들은 모두 아랍인의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란의 첫 여성판사 출신인 에바디는 자국 민주주의와 아동·여성의 권리를 높이려 투쟁한 공로로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가 각각 선정한 ‘세상을 바꾼 여성’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등 ‘우먼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2009년 6월 강경파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된 뒤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영국 등에 머물고 있다. 노벨위원회가 있는 노르웨이 외교부는 2009년 이란 당국이 에바디의 노벨상 메달을 몰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 몰락] 알아사드·살레의 시간 얼마나 남았나

    [카다피 몰락] 알아사드·살레의 시간 얼마나 남았나

    ‘절반의 성공’에 그칠 듯했던 ‘재스민 혁명’(아랍권역의 반정부·민주화 움직임)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의 사실상 붕괴로 재점화할 조짐이다.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에서 독재자의 세 번째 퇴장을 지켜본 세계인의 관심은 ‘다음 타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쏠린다. 당장 시민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시리아와 예멘의 통치자가 강력한 네 번째 후보다. 부자 세습을 통해 11년째 권력을 쥐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탱크와 군함까지 동원해 유혈진압하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불붙은 5개월 사이 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알아사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퇴진 요구를 “대꾸할 가치가 없다.”며 일축했다. 비폭력 반정부 시위를 고집해온 시민들로서는 강한 권력욕을 보이는 알아사드 앞에서 뾰족한 돌파구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이 국내외의 거센 비난 여론에도 대국민 학살극을 멈추지 않는 것은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어 서방의 무력 개입 가능성이 낮다. 역내 우방이 없어 고립무원 처지에 놓였던 카다피와는 사정이 다르다. 충성도 높은 군대도 알아사드가 ‘믿는 구석’이다. 막내동생인 마헤르는 정예 부대인 제4사단과 공화국수비대를 이끌며 ‘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맡고 있다. 군부가 정권과 시위대 사이에서 중립적 자세를 끝까지 지키며 독재자 퇴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튀니지나 이집트와 다른 점이다. 하지만 리비아 사태는 정권의 친위대가 버티는 상황에서도 시민의 힘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시리아 국민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다. 카다피와 닮은꼴 행보를 하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35%에 달하는 실업률에 빈곤선 이하 계층 비율이 5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우리(예멘군)는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선전포고를 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반정부 시위가 사실상 내전으로 바뀐 지난 6월 대통령궁에서 폭탄 공격을 받았고 중화상 치료차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두 달 넘게 체류 중이다. 카다피의 몰락을 지켜본 살레로서는 자신이 앞서 거부했던 사후 처벌 면제를 보장하는 대신 조기 퇴진이라는 걸프협력협의회(GCC) 중재안에 다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중동 전문가인 제프 포터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리비아 사태는 시리아와 예멘 내 시위대에 강한 자극을 줬다.”면서 “비록 리비아에서처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해도 시위대와 반군, 야권이 저항을 계속한다면 정권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리비아 카다피 42년독재 끝났다

    리비아 카다피 42년독재 끝났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사실상 붕괴됐다. 지난 2월 리비아 사태가 촉발된 지 6개월 남짓 만이다. 카다피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전멸 위기에 몰린 카다피군은 22일(현지시간) 수도 트리폴리의 카다피 관저와 녹색광장을 중심으로 최후 항전에 나서 산발적인 총격전이 계속되고 있다. 리비아 반정부군은 21일 ‘인어의 새벽’이라는 작전명 아래 카다피 국가원수의 최후 거점인 트리폴리를 대부분 장악하고, 카다피의 두 아들을 생포하면서 카다피 42년 체제의 종식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반군 측 런던 주재 마흐무드 나쿠아 부대사는 22일 “트리폴리에서 교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반군이 수도의 95%를 장악하는 등 통제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반군들이 카다피의 관저가 있는 밥 알아지지야 요새로 통하는 주요 도로에서 카다피 측 저격수들과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관저 안에는 카다피의 4남 알 무타심이 버티고 있다고 아랍권 위성TV인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반군은 21일 정부군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트리폴리에 입성했으며, 카다피의 경호와 수도 방위를 책임진 최정예부대 32여단의 기지를 점령했다. 반군은 이날 밤 트리폴리 도심의 ‘녹색광장’까지 완전 장악했다. 반군과 시민들은 “더 이상 녹색광장이 아니라 순교자의 광장이다.”, “승리의 순간이 왔다.”며 환호했다. 이로써 밥 알아지지야 등 일부 지역을 뺀 트리폴리 전역이 반군 통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22일 오후 카다피 친위부대가 필사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반군이 녹색 광장 밖으로 밀려났다. 또 카다피의 아들 중 한명이 이끄는 부대가 트리폴리 중심부에서 반군과 격렬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반군의 트리폴리 입성 과정에서 카다피의 후계자 1순위였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과 3남 알사디가 생포됐다. 장남 모하메드 알카다피는 반군에 투항했다고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전했다. 반군은 민간인 불법 공격 지시 등 반인도 범죄 혐의로 카다피와 함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사이프 알이슬람이 리비아 내에서 재판받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카다피의 최측근인 한 친척이 체포되고 총리는 튀니지에 머무는 등 내부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카다피는 정확한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국외 망명 가능성과 함께 시르테나 남부 사막 기지 등에 은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서방 각국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카다피 체제의 전복을 기정사실화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트리폴리가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카다피의 권력이양을 촉구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데스크 시각] ‘분노의 세계화’ 시대에 산다는 것/김균미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분노의 세계화’ 시대에 산다는 것/김균미 국제부장

    ‘분노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Anger) 경제에서 자주 쓰이는 ‘세계화’라는 용어를 사회적 현상에 적용해 놓고 보니 어쩐지 눈에 설다. 하지만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들불처럼 일고 있는 각종 시위를 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장기 집권해온 독자재들의 붕괴를 가져온 중동의 ‘재스민 혁명’, 런던을 불태웠던 영국 폭동, 정부의 긴축재정과 허리가 휠 정도로 늘어난 빚더미에 화가 난 그리스 국민들, 국민의 94%가 가톨릭 신도인 스페인에서 재정 부담(1550억원)을 이유로 벌인 교황 방문 거부 시위, 서울에서 진행됐던 대학 반값 등록금 시위. 그런가 하면 지구 반대편 남미의 칠레에서는 대학생과 시민들이 지난 5월부터 공교육 개혁을 요구하며 연일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급기야 냄비와 프라이팬 등을 들고 나와 두들기는 ‘솥뚜껑 시위’로 불만을 폭발시켰다. 이스라엘에서는 고물가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다롄의 한 화학공장이 독성 물질을 무단 방출한 데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져 공장이 폐쇄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들 시위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차이가 있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를 방치하는 정치권과 지도층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쯤 되면 ‘분노의 세계화’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세계화는 흔히들 무역·자본 자유화가 추진되면서 재화·서비스·자본·노동 및 아이디어 등의 국제적 이동 증가로 인한 각국 경제의 통합화 현상을 지칭한다. 1983년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시어도어 레빗 교수가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5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레빗 교수는 세계화를 신기술의 발달로 미디어의 영역이 넓어져 세계가 좁아진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얼마 전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 13일자에 실은 칼럼에서 ‘분노의 세계화’ 문제를 짚었다. 프리드먼은 세계화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정보통신(IT) 기술이 오늘날 분노의 세계화를 가능케 했다고 진단했다. 인터넷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순식간에 한쪽에서 일어난 시위는 지구 반대편 시위 참가자들을 독려하며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 분석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중동의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은 이집트와 예멘, 리비아로 옮겨붙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시위 소식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결국 독재자들의 목을 옥죄었다. 런던에서 시작돼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폭동은 유사한 사회·경제적 상황에 처한 주변 유럽 국가들을 긴장시켰다. 모방 범죄도 잇따랐다. 하지만 나라 밖에서 들려오는 각종 시위 소식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한국의 IT 발달 수준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구촌 곳곳의 시위를 촉발시킨 문제들을 한국도 고스란히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천정부지의 대학 등록금, 청년 실업률, 치솟는 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 빚 등등…. 아직은 칠레나 이스라엘, 영국처럼 불만이 분노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언제까지 우리만 참으며 희생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나 지도층이 SNS를 효과적인 선거운동 내지 여론 관리 수단 정도로만 여길 게 아니라 소통의 채널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시대에, ‘분노의 세계화’ 시대를 산다는 것은 불만뿐 아니라 역으로 희망과 긍정의 힘을 공유할 수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에게, 소말리아에서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아이에게 손을 내미는 우리를 기대해 본다. kmkim@seoul.co.kr
  • 카다피 정권 몰락 계기로 본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는

    카다피 정권 몰락 계기로 본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역사 속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들의 말로를 되돌아본다. ●차우셰스쿠 등 도피중 처형 22년간 루마니아를 철권통치하며 김일성을 모방해 우상화 작업에 혈안이 돼 있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전 대통령은 1989년 카다피처럼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을 시도했다. 하지만 평소 정권에 불만이 많았던 군은 총부리를 차우셰스쿠에게 돌렸고, 북한으로 도망치려다 붙잡힌 그는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됐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연인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알프스 산맥을 따라 도망쳤던 베니토 무솔리니 전 이탈리아 총리 역시 유격대에 붙잡혔다. 메제그라라는 마을에서 페타치와 함께 처형당한 무솔리니의 시신은 밀라노의 로레타 광장에 매달렸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도 고향인 티그리트에서 숨어지내다 미군에 체포된 지 3년만인 2006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소모사 부자, 암살도 대물림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전 니카라과 대통령은 20년 독재 후 1956년 암살 당했다. 그 자리를 두 아들이 잇따라 차지, 소모사 일가는 1979년까지 62년간 니카라과를 지배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에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도 1980년 암살당해 권력뿐 아니라 죽는 방식까지도 대물림했다. 독립 이후 정권 전복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조제프 카빌라 현 대통령은 아버지 로랑 카빌라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가였으나 변절, 독재를 하다 2001년 쿠데타 과정에서 암살됐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이 17년간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정치적 이유로 살해된 이들이 공식적으로만 3197명이고, 1000여명은 여전히 실종상태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8년 뒤인 1998년 영국 런던에서 체포됐지만 건강상 이유로 석방돼 귀국했다. 칠레에 돌아와서는 가택연금됐고 2006년 심장마비로 숨졌다. ‘20세기 가장 부패한 지도자’로 꼽히는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재직 중 부패혐의로 처벌받지는 않았지만 물러난 뒤 10년간 은둔생활을 하면서 빼돌린 돈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피노체트·밀로셰비치 감옥행 ‘발칸의 도살자’라 불렸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연방 대통령은 2000년 실각한 뒤 2001년 4월 세르비아에서 체포됐다. 1999년 구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에 의하여 전쟁범죄와 학살죄, 반인도적범죄 혐의로 기소돼 같은 해 7월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송됐으며 재판을 받던 중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프리카의 히틀러’로 불리는 이디 아민 전 우간다 대통령 역시 망명 생활 중 사망했다. 집권 기간 동안 전체 1000만명 인구 중 정적 등 최소 30만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79년 반군에 쫓겨 리비아로 도피했다가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갔다. 죽는 날까지 우간다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엄청난 낭비벽으로 더욱 유명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1986년 2월 부정선거가 발목이 잡혀 집권 21년 만에 하와이로 쫓겨났다. 3년 뒤 가족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마침내 비참한 최후 맞은 리비아 카다피

    리비아를 42년간 철권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 리비아 반군은 어제 수도 트리폴리 입성에 성공했다. 카다피의 장남은 투항했고, 차남과 3남은 생포됐다. 트리폴리는 카다피의 최후 거점 도시다. 이에 앞서 반군은 카다피 5남이 지휘해온 트리폴리 외곽의 친위 정예부대 기지를 접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휴가지인 마서스 비니어드섬에서 성명을 통해 “카다피 정권에 대항하는 힘이 정점에 달했다.”면서 “트리폴리는 독재자의 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6개월여간의 지루했던 내전은 미국, 영국 등 다국적군의 지지와 지원을 받은 반군의 승리로 사실상 끝이 났다. 지난해 말부터 아프리카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피플파워’는 24년간 통치했던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을 축출하고, 30년간 이집트를 강압 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쫓은 데 이어 카다피를 끌어내리는 데도 사실상 성공했다. 총과 대포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찾겠다는 시민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을 시작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카다피의 몰락에 따라 민간인들에 대한 유혈 진압도 서슴지 않고 있는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퇴진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 리비아에서는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반카다피 진영의 대표기구인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졌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리비아에 민주정부가 수립돼 하루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카다피 정권의 몰락을 가장 우려스러운 눈으로 볼 대표적인 정권은 아무래도 3대째 세습을 준비하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일 것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을 억압만 한다고 해서 제대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부와 군은 북한의 움직임을 보다 면밀히 점검해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또 정부는 교민 안전은 물론 카다피 이후에도 리비아의 건설사업에 우리 건설업체들이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차분하면서도 내실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 나토군 공중지원… 6만5000 카다피군 반군에 ‘백기’

    나토군 공중지원… 6만5000 카다피군 반군에 ‘백기’

    ‘현존 최장기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쌓은 난공불락의 요새조차 자유에 목마른 반군의 기세 앞에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중 지원’을 받은 반군은 21일(현지시간) 내전 개시 6개월여 만에 처음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 시설 대부분을 장악했다. CNN은 “반군이 카다피의 대문 앞 계단까지 접근했다.”며 42년간 이어진 카다피 철권통치의 종말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전했다. 반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의 아랍에미리트연합 주재 대사인 아레프 알리 나야드는 “오늘이 (카다피가 없는) 첫날”이라며 사실상의 승리를 자축했다. ‘인어의 새벽’이라는 작전명으로 수도 함락전을 개시한 반군은 이날 서부 나푸사 산을 통해 트리폴리까지 순식간에 밀고 들어갔다. 트리폴리의 27㎞ 외곽에 있는 최정예부대 ‘카미스 여단’이 가로막았지만 어렵지 않게 격퇴했고 수도 중심부로 치고 나갔다. 카미스 여단은 카다피의 7남 카미스가 이끄는 수도방위군이다. AP통신은 카미스 여단 간부 중 한명이 몇년 전 카다피가 자신의 형을 숙청하자 앙심을 품고 반군에 투항하면서 정예부대가 허무하게 함락됐다고 전했다. 또 카다피군이 동부전선 방어에만 신경쓰는 틈을 타 반군이 서부 산악지역에서 진격해 온 것도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트리폴리에는 6만 5000여명의 친카다피 병력이 있었지만 큰 저항은 없었다고 CNN이 전했다. 반군 측은 자신들이 22일 오전까지 카다피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다며 트리폴리 함락이 임박했다고 밝혔다. 카다피 지지자들의 집결지였던 녹색광장과 미티가 국제공항도 접수했다. 반군은 카다피가 집권 이후 이름 붙인 녹색광장을 ‘순교자의 광장’으로 개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군 측 관계자는 “트리폴리의 핵심시설인 병원과 군 막사, 외국 취재진이 머무는 릭소스호텔 등은 여전히 카다피 측이 장악 중”이라고 밝혔다. 반군이 등장하자 트리폴리는 일순간 ‘해방구’로 변했다. 반정부군이 100여대의 군 트럭에 나눠 타고 대열을 이루며 진격하자 시민들은 길가에 늘어서 환호하며 반겼다. 카다피는 반군이 숨통을 죄어 오는 상황에서도 “트리폴리를 포기하지 않고 결사항전해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카다피를 지켜 줄 ‘우군’은 많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이 생포됐고 3남인 알사디도 붙잡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독재자는 벼랑 끝에 섰다. 반군에 투항한 것으로 알려진 장남 모하메드는 이날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정권이) 현명하지 못해 리비아의 위기와 혁명이 발생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목격자들은 사면초가에 몰린 카다피의 트리폴리 관저와 녹색광장 주변에서 22일 오후 늦게까지 치열한 교전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또 군대를 이끌고 트리폴리로 진격한 카다피의 아들 중 한명이 중심부에서 반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아랍권 위성 TV인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벼랑끝’ 알아사드에 전방위 압박 통할까

    유혈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 국제사회가 전방위 압박을 가하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국가 지도자들의 요구대로 자진 사퇴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무력진압을 계속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국제사회는 자산동결, 수출입 금지 등 시리아에 대한 경제 제재 강화를 통해 알아사드 정권의 숨통을 죄겠다고 하나 중동지역 전문가들은 ‘독재자의 딜레마’에 빠진 알아사드가 순순히 권좌에서 내려올지 속단하긴 이르다고 지적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 5개국 정상들은 18일(현지시간) 시리아에 제재 조치를 가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대시리아 결의안에는 시리아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와 자산동결, 여행금지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도 시리아 제재 추가 조치를 내놨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알아사드의 퇴진을 처음으로 요구하는 한편 시리아 정부 소유의 모든 미국 내 자산 동결과 시리아 석유산업과 관련된 모든 거래 금지 등을 발표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학살 혐의로 시리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안보리에 요청했다. 내비 필레이 인권위원회 대표는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증거를 유엔 진상조사위원회가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이런 노력이 알아사드의 하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부정적이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앤드루 타블러 연구원은 “알아사드는 이미 너무 많은 폭력을 자행했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나기 어려운 ‘독재자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자진 사퇴한 뒤 재판을 받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사례가 그에겐 반면교사로 작용할 수 있다. 이집트 언론은 이날 무바라크 측근의 말을 인용해 무바라크가 알아사드의 퇴진을 조언했다고 보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혼돈의 중동… 시리아·예멘·리비아 수장 3인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46), 예멘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69),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69). ‘아랍의 봄’ 이후 중동 불안의 중심에 선 3인의 운명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알아사드는 지난 3월 이후 반정부 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2000명에 이르는 자국민을 희생시켰다. 아버지 하페즈로부터 지난 2000년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알아사드는 1982년 아버지가 이슬람 폭동을 문제 삼아 3만명 이상의 자국민을 학살한 전철을 뒤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대공포와 장갑차, 군함 등을 앞세운 정부군의 유혈 진압으로 북서부 항구도시 라타키아와 홈스, 훌라 등에서 연일 수십명씩의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급기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일 오전(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알아사드의 퇴진을 공식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시리아 주민을 위해 알아사드가 물러나야 할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알아사드 정권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시리아산 석유의 미국 수입 전면 금지,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직간접 수출 금지 등을 포함한 강력한 추가 제재 방안도 발표했다. 그동안 미국은 “알아사드가 정통성을 잃었다.”며 개혁을 압박해 왔지만, 그의 퇴진을 요구하기는 처음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알아사드와의 통화에서 군사적 공격과 대규모 체포의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알아사드는 “시위대에 대한 군사 작전은 중단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에서는 살레의 귀국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33년간 집권 중인 살레는 지난 6월 반정부 세력의 공격으로 화상을 입고 치료차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러 왔다. 살레는 지난 16일 알아라비야 TV에 출연, “임기가 끝나는 2013년 이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넘기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미국과 사우디가 살레의 귀국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걸프협력위원회(GCC)의 ‘사후 처벌 면제 및 30일 이내 퇴진’ 중재안을 지지하고 있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는 6개월 남짓한 내전 끝에 비극적 종말로 치닫고 있다. 반군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NTC)의 무스타파 압둘 잘릴 위원장은 18일 “승리가 임박했다. 트리폴리를 에워싸려고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NTC는 어떤 협상도 없을 것이며, 카다피는 강제로 내쫓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다피 퇴진 후 8개월 내 권력 이양을 위한 선거 실시’라는 로드맵도 공개됐다. 한때 반미 진영에서 추앙받던 카다피는 권좌를 지키려고 광적인 학살극을 벌이다 끝내 비참한 독재자의 최후를 앞두게 됐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인가, 이타적인 동물인가.’  이 질문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기도 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현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순수하게’ 이기적인 동물이다. 1976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의 이 이론은 여전히 생물학계의 주류로 각광받고 있다. 도킨스의 이론은 결코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다.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이자 기계’ 정도로 요약된다.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보존의 원칙이라는 한 가지 목적만을 갖고 있으며 유전자는 이에 맞춰 프로그램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흔히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하는, 남을 위한 희생정신과 이타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타성은 수많은 학자들이 진화생물학을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이번 주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 & What)에서는 ‘인간의 이타성’에 대한 공개재판을 열었다. 피고석에는 역사상 가장 ‘이타적인 과학자’로 꼽히는 러시아의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가 앉았다.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를 떠돌며 종자를 모았지만, 정작 본인은 감옥에서 굶어죽은 비극의 주인공이다. 인간의 근원에 대한 왕성한 탐구욕을 보여 온 영화 ‘혹성탈출’ 속 원숭이들의 영웅 시저가 검사로 나서 바빌로프의 이타적 유전자를 기소했다. 바빌로프의 변호는 그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녹색혁명의 아버지’ 노먼 빈센트 볼로그(1914~2009)가 맡았다. 시저 니콜라이 바빌로프. 1887년 모스크바 출생. 작물학자이자 식물유전학자, 수집가, 탐험가. 맞는가? 바빌로프그렇다. 시저법정에 섰는데도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 보통 피고인석에 서게 되면 죄를 지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모두 긴장한 모습이게 마련인데. 바빌로프 2년 정도 수용소와 법정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보다는 오히려 분위기나 의자가 편하다. 시저당신이 왜 여기에 불려 왔는지 죄목을 알고 있나. 바빌로프잘 모르겠다. 시저당신은 유전자의 법칙을 거스른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 진화생물학의 핵심 토대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유전자는 오로지 생존만을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의 일생은 이 이론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자리의 배심원 앞에서 그걸 입증해 보이겠다. 당신의 집안은 꽤 부잣집이었다. 당신의 부모는 당신이 섬유공장을 물려받기를 원했는데 왜 따르지 않았나. 바빌로프우리 가족이 부유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난 세 명의 형제들을 어려서 병으로 잃었다. 그 때문에 나를 포함한 나머지 형제들은 당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던 과학과 의학을 통해 이 같은 불행을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누나 둘은 의사와 세균학자, 형은 물리학자, 난 식물학자가 됐다. 시저다른 형제들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왜 당신은 식물학인가. 당시에는 식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별 의미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빌로프사실 의사가 될지 식물학자가 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 입학 직전 러시아에 최악의 흉년이 닥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시저당신 자신을 위해서였다면 분명 의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니었나. 잘살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식량을 걱정해서 식물학자가 됐다는 사실부터 아이러니하다. 과학적 발견으로 인류의 고통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 아닌가. 바빌로프그게 나의 가장 큰 희망이었다. 난 새로운 발견을 할 때마다 ‘이 발견을 어떻게 농사에 활용할 수 있을까.’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또 작물의 질병과 전염병 때문에 생겨나는 기아, 사망, 이주, 사회불안을 막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시저그래서 결국 당신은 가족조차 버리고 먼 길을 떠났다. 1916년에 처음 파미르 고원으로 ‘페르시아 밀’을 찾아 떠난 이후 1933년까지 115차례나 소위 ‘종자찾기 여행’을 했다. 첫 여행을 떠날 때는 신혼이었고, 아들이 태어났는데 안아 줄 시간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도대체 얼마나 숭고한 여행이었기에 가족도 팽개쳤던 건가. 바빌로프작물이 지닌 질병면역력을 찾기 위해 지구상에 어떤 식물이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를 알고자 했다. 농작물이 잘 자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날씨의 영향도 있고, 병충해가 생겨서 순식간에 초토화되는 일도 많다. 무엇보다 인간이 생산성이 높다거나 하는 이유로 한 가지 작물에만 집착하면 그 작물에 병충해가 생길 경우 모두 굶어 죽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양한 생물을 키울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더위에 강한 작물, 추위에 강한 작물, 생산성은 낮은 대신에 병충해에 강한 작물을 적절하게 섞어서 키운다면 어떤 경우에도 기아를 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작물의 근원을 찾아야했다. 밀, 벼, 콩 등이 처음 태어난 곳을 찾는다면 그곳에서 가장 강하게 자란 품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시저그래서 도대체 품종을 얼마나 모은 것인가. 바빌로프정확하지는 않지만 5대륙을 모두 돌면서 나와 동료들이 모은 종자와 덩이줄기가 14만 8000개에서 17만 5000개 정도 될 거다. 당연히 모두 땅에 심는 순간 자랄 수 있는 발아 가능한 종자들이었다. 시저그동안에 당신은 이혼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류를 구한다는 목표 아래 결국 가족을 잃은 건데, 만족하나. 바빌로프아내 에카테리나와 아들 올레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종자여행을 위해서 말을 배울 시간도 부족했다. 시저전 세계를 돌아다녔는데, 몇 개 국어나 할 수 있나. 바빌로프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라틴어는 기본이고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나 페르시아어까지 배웠다. 땅과 씨앗의 진정한 주인은 농부들이고, 종자에 대해서는 그들이 가장 잘 안다. 그들의 말로 대화하는 것이 종자여행의 핵심이었다. 시저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오로지 씨앗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았고, 그 결과 가족을 잃었다. 심지어 국가도 당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러시아에 식량이 부족해지자 스탈린 체제의 농업학자들은 당신이 지나치게 많은 종자를 가져와 방치했기 때문에 식량정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가뒀다. 재판에서 총살형을 선고받았고, 물론 다행히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량을 모은 당신이 감옥에서 굶어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잖은가. 당신은 뭘 위해 일한 건가.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면, 당신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것 아닌가. 심지어 당신의 제자들은 연구소의 종자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다가 세계대전 중에 봉쇄된 도시에서 굶어 죽었다. 이 또한 당신의 책임 아닌가. 바빌로프…. 볼로그바빌로프의 성과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뒤를 이었던 내가 좀 더 보충하고 싶다. 병충해에 강하고, 식량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당신의 목표였다. 맞는가. 바빌로프그렇다. 그것만이 인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볼로그현재 러시아의 경작지 80%에서 바빌로프가 세운 연구소의 종자에서 개발된 품종을 키우고 있다. 불과 80년이 지나지 않아 수천년을 내려온 농업의 뿌리를 바꾼 거다. 종류는 1000가지가 넘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물다양성은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화두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를 뿌리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살포한 덕분에 땅은 피폐해졌고 새로운 병충해에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결국 식물학자와 농업학자들은 80년 전 바빌로프가 주장했던 생물다양성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시저바빌로프의 노력들이 실제로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것인가. 볼로그나 역시 바빌로프의 여행에서 연구의 기본을 얻었다. 밀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밀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고, 병충해에 강한 앉은뱅이 밀을 얻었다. 이 밀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했다. 시저그 덕분에 당신은 197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평생 아쉬움 없이 연구를 하고 영광을 누렸다. 그런데 바빌로프는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희생만 한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정황상 바빌로프의 유전자는 유죄가 분명하다. 볼로그시저 당신은 ‘이기적 유전자’의 가장 큰 함정에 빠져 있다. 바빌로프가 이타적이냐 하는 질문에 당신은 ‘그렇다.’라고 대답하겠지만 실제로는 바빌로프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주장하는 유전자 설계론의 핵심은 유전자가 자신이 속한 종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유전자를 위해 행동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는 이타주의자들은 결국에는 생존을 위해 교묘하게 이타성으로 위장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바빌로프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을 위하는 대신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위해 철저하게 프로그램된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까지 버릴 수 있는 이타성이 바로 지독한 이기적 유전자의 증거다. 오히려 바빌로프야말로 ‘이기적 유전자’ 그 자체가 아닌가. 바빌로프이기적 유전자니 이타적 유전자니 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난 그냥 내 머리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죽는 순간까지 내가 모은 종자들에 대해 걱정했는데, 그 덕분에 인류가 기아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됐다니 기쁘다는 생각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게리 폴 나브한·강경이/아카이브)  이타적 유전자(매트 리들리·신좌섭/사이언스북스)  이타적 과학자(프란츠 부케티츠·도복선/서해문집)  기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스코트 킬맨·이순주/에이지21)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이상임/을유문화사)  생각의 역사2(피터 왓슨·이광일/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가 밝힌 유전자의 비밀
  • 美 ‘디지털 외교’의 1인자 “北주민, 美 도움없이 인터넷 자유 찾을 것”

    美 ‘디지털 외교’의 1인자 “北주민, 美 도움없이 인터넷 자유 찾을 것”

    위기의 미국 외교가가 ‘e-외교’에 주목하고 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아프가니스탄전 등 ‘전쟁의 덫’에 발목 잡힌 채 아랍권역의 ‘재스민 혁명’을 맥없이 바라보며 정보력과 영향력 상실을 한탄했던 미국은 인터넷과 새로운 소통 도구를 활용한 외교 가능성에 눈을 돌린다. 미국의 디지털 외교전 최전선에 알렉 로스(40) 국무부 장관 혁신담당 수석 자문관이 서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 뉴미디어로 무장한 그는 외교관 대신 외국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려 애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인터넷 자유’를 끌어올리려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그는 워싱턴 국무부 내 사무실에서 국내 언론으로는 서울신문과 첫 인터뷰를 갖고 “북한 주민 스스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정교한 디지털 생태계에 접속할 것이며 끝내 인터넷의 자유가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국무부가 아랍 권역 등의 ‘인터넷 자유’ 보장을 위해 추진해 온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는 최근 (인터넷 자유 보장을 위한) 12개의 프로그램 개발을 도우려고 모두 2800만 달러(약 300억원)를 투입했다. 그중에서 ‘여행가방 속 인터넷’(IIS)과 ‘패닉버튼’은 공개됐다. IIS는 (권위주의 국가 등에) 이동광대역통신망을 설치하는 것으로 거의 상용화됐다. 패닉버튼은 시리아 등에서 (반체제 인사 등이) 체포될 위기에 놓이면 비상 버튼을 눌러 체포 사실을 주위에 알리도록 고안한 제품이다. 버튼을 누르면 휴대전화 속에 저장된 모든 연락처도 함께 지워진다. 나머지 10가지는 기밀 사항이다. →북한에서도 ‘IIS’나 ‘패닉버튼’ 같은 기술이 활용될 가능성이 있나. -우리는 특정 국가를 겨냥해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 미 국무부는 지구상 194개국에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인터넷 자유를 위한 기술도 모든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어떤 나라가 됐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북한에는 인터넷망이 거의 구축돼 있지 않다. 북한의 ‘인터넷 자유’를 돕기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북한 주변에는 활기 넘치는 ‘디지털 생태계’가 조성돼 있다. 북한의 인터넷 자유는 미국의 도움으로 얻어지지 않을 듯하다. 외부 세계와 연결할 방법을 찾는 북한 주민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북한 정권이 ‘정보 정전’ 상태를 지속하려 한다면 이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아랍의 봄’ 기간 동안 인터넷은 독재자 축출 도구로 활용됐지만 ‘반미감정’ 전파의 장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인터넷 자유’는 미국의 외교적 이익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물론 네티즌이나 언론이 미국에 대해 좋은 말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며 이 같은 권리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이집트와 튀니지 등의 혁명 과정에서 기술과 소셜 미디어는 큰 역할을 해냈다. 결성하는 데 몇 년씩 걸리는 정치운동 조직을 단박에 가능하도록 했고, 짧은 시간 안에 연대의 고리를 강화했다. 저소득층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민주화 세력의) 리더십을 확산시켰다. 시리아나 이집트, 튀니지 등에서는 넬슨 만델라나 레흐 바웬사 같은 독보적 리더는 없다. 네트워크가 ‘혁명 지도자’가 된 것이다. →줄리언 어산지가 주장하는 정보의 자유와 미국이 강조하는 정보의 자유는 어떻게 다른가. -자유는 책임으로부터 나온다. 미국에서는 무기를 소지할 권리가 있지만 누군가에게 마음대로 쏠 권리를 준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말할 권리가 있지만 남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할 권리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인터넷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가 포르노물 등을 인터넷에 올릴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에서 사기를 칠 권리나 지적 재산을 훔칠 권리가 주어진 것도 아니다. →한국의 정보기술 환경을 평가한다면. -한국은 굉장히 수준 높은 디지털 환경을 구축한 것으로 안다.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는 미국보다 낫다. 다만 한국의 디지털 환경 중 인터넷 카페 등에서 인터넷의 자유로운 사용에 제약이 있는 것이 아쉽다. ‘디지털 지문’ 같은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클린턴 국무장관과 모두 일해 봤는데, 두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 두 사람 모두 ‘머리’와 ‘가슴’, 지능과 동정심이 조화를 이룬 지도자들이다. →‘디지털 외교관’이자 비정부기구(NGO)의 창립자이며 혁신가다. 당신과 같은 꿈을 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청년이라면 기꺼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성공한 사업가들을 보라. 여러 번 실패한 이들이 많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해고됐다가 돌아왔고, 구글 회장인 에릭 슈미츠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지배당한 회사에서 일했었다.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실험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실패에서 배우라고 독려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피고’ 무바라크 “난 무죄”… 그는 끝까지 뻔뻔했다

    30년 철권통치 끝에 시민혁명으로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83) 전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 6개월 만에 시위대 유혈 진압과 부정 부패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섰다. 하지만 무바라크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아랍권에서 전례 없는 전직 통치자의 재판에 중동은 물론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퇴진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홍해 휴양지인 남부 시나이반도의 샤름 엘 셰이크 병원에 입원해 있던 무바라크는 3일 오전(현지시간) 군용기를 타고 수도 카이로로 이동해 경찰학교에 임시로 마련된 특별법정에 출두했다. 지난 2월 11일 퇴진한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두 아들과 철창속 3시간 재판… 15일 속개 무바라크는 흰색 죄수복을 입고 이동 침대에 누운 채로 입장해 두 아들(알라, 가말)과 하비브 알아들리 전 내무부 장관, 6명의 고위 관료와 함께 금속 창살 안의 피고인석에서 인정신문을 받았다. 무바라크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의식은 또렷했고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무바라크는 시민혁명 당시 유혈 진압 지시를 내리고, 통치 기간 중 공공 재산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의 시민혁명 진압 당시 840명의 시민이 숨졌다. 혐의가 사실로 입증되면 무바라크는 교수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무바라크와 두 아들은 이날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 무죄다.”라고 주장했다. 오전 10시 정각에 개정된 재판은 3시간 남짓 진행됐다. 시민혁명 희생자의 가족과 외신 기자 등 600여명이 법정을 가득 메운 채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봤으며 이집트 국영방송은 TV로 이를 생중계했다. 무바라크는 재판이 끝난 뒤 재판부의 명령에 따라 샤름 엘 셰이크가 아닌 카이로 인근 군 병원으로 옮겨졌다. 재판장을 맡은 아메드 레파아트 카이로 형사법원장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건강 상태를 점검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1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무바라크에 대한 재판은 오는 15일 속개된다. 알아들리 전 장관과 고위 관료 등 7명은 4일 재판을 다시 받는다. 이집트 시민들은 이번 재판이 독재자를 응징할 기회라고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과거의 부정부패를 얼마나 일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시민혁명 이후 정권을 장악한 이들은 무바라크 재임 당시 임명된 인물들로 무바라크 기소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 세계 언론들 시시각각 중계 BBC는 중동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놀라움과 충격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민주화 시위 당시 정부군의 진압으로 22세 아들을 잃은 여인 하산 라우프는 재판정 바깥에 설치된 대형 TV 스크린을 통해 재판 모습을 지켜보며 “이제야 내 아들의 영혼이 안식에 들 수 있게 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또 다른 시민은 “30년의 부패 끝에 드디어 정의가 행해지는 것을 보게 됐다.”고 흥분했다. 반면 무바라크 지지자들은 “우리의 대통령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경찰학교 인근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바라크의 지지자와 반대자 수백명이 투석전을 벌였고,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한 군경이 이들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쌓았지만, 정작 그 결과물에 비해 주인공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유도 다양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기록이 갖는 한계 때문에, 패망한 국가의 군주는 승자가 지워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히틀러가 폴크스바겐의 스테디셀러 ‘비틀’을 만든 주역이라든가, 그가 얼마나 문학적인 인물이었는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은 누구도 말하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자연과학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만 인류의 삶을 바꿀 만한 발견이나 발명을 해낸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천재이거나, 은둔형 외톨이여서 앞으로 나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17세기의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다. 그는 짧은 수식을 적은 후 “나는 이 문제를 풀 놀라운 증명을 찾아냈지만, 여백이 부족해 적지 않는다.”라고 썼다. 인류가 흔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불리는 이 문제를 푸는 데는 그 후로 무려 357년이 걸렸다. 이 밖에도 “다 알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결과만 내놓거나 “이걸 어떻게 풀었는지 내가 왜 설명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잠적해버린 천재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남긴 업적과 함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생물학자들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과학자 중 업적에 비해 본인이 가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으로 ‘그레고어 요한 멘델(1822~1884)’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근대 유전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그는 왜 그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주 주인공은 지난달부터 전 세계 네티즌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주목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전학자이자 수도사 멘델이다. 놀라운 발견을 한 그는 왜 철저하게 ‘재야의 과학자’로 머물러야 했을까. 그리고 최근 불고 있는 멘델에 대한 관심은 무엇 때문일까. 인터뷰가 진행되자 멘델은 오히려 “오늘날 내가 받고 있는 존경은 사실 어이없는 행운 덕분”이라고 털어놓았는데…. →중·고등학교 생물교과서를 덮은 이후 사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나는 것 같다. 최근 전 세계 포털의 과학자 검색 순위에서 당신이 급상승했다. 완두콩도 검색어에 오르고 말이다. -나도 이상해서 좀 알아봤더니, 구글이 깜찍한 짓을 했더구먼. 지난달 20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그날 구글이 로고를 ‘완두콩’으로 만들었더라고. 뭐 탄생 189주년이니 딱히 기념할 만한 시점도 아닌데, 워낙 엉뚱한 짓을 많이 하는 애들이니. →거 참 질문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답변이다. 검색어 덕분에 당신에 대해서 좀 찾아봤는데 의외로 알려진 게 없더라. 뉴턴이나 다윈 같은 과학자들은 몇 페이지가 모자랄 정도인데 말이다. 검색창에 당신 이름을 넣으면 ‘멘델의 법칙’이나 나오지 당신 얘기는 ‘수도사였다’ ‘유전학의 창시자다’ ‘완두콩을 가지고 실험했다’ 이 정도가 고작이던데. 궁금한 점 위주로 개인 신상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자. 무엇보다 수도사가 왜 과학실험을 한 건가. -그게 사실은 거꾸로란 말이지. 난 과수원집에서 태어났거든. 어렸을 때부터 나무 품종을 개량하면서 유전학자의 꿈을 키웠고 아버지도 내 교육에 열성적이었어. 문제는 집에서 내 뒷바라지를 해 줄 수 있는 처지가 안됐다는 거였지. 심지어 여동생 결혼자금까지 다 써버릴 정도였으니. 근데 대학 교수가 나보고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가 되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별로 망설임도 없이 사제 시험을 보고 수도사가 됐지. 마침 내가 있던 성 토마스 수도원 원장은 신학 외에 과학이나 예술을 공부하도록 장려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었어. →근데 사실 당신 낙제생이었다는, 그것도 생물에서 망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수도사들은 근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했는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중학교 교사 자격시험에서 생물과목 과락을 해서 자격증을 못 땄다. 착한 원장님께서 날 밀어준다고 빈 대학에서 특별 과외까지 시켜 줬는데, 또다시 떨어져서 아예 교사의 꿈은 접었어. 근데 대학을 다니면서 당시 유행하던 다윈의 학설을 접했고 그게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은 계기가 됐지. →아 당신보다 유명한 과학자와 동시대를 살았군. 다윈이 당신에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다윈이 주장하는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어. 수도원 안쪽 뜰에 있는 작은 정원에 완두를 심고, 만 그루 넘게 심고 키우고를 반복하면서 하나하나 결과를 기록해나갔어. 생색을 좀 내자면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 완두 꽃가루를 모두 손으로 수분시켰고, 내가 원하는 종끼리 수분시키기 위해서 일일이 다 봉지를 씌웠지. 그 실험만 무려 8년을 꾸준하게 계속했고. 그 결과 1865년에 대를 물려도 변하지 않는 형질이 있다는 것, 형질 사이에 우성과 열성이 있다는 것, 독립적으로 유전이 되는 형질이 있다는 것 등을 밝혀낼 수 있었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부모의 형질이 왜 잡종인 자손에게 나타나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내가 그걸 알아낸 거다. 청출어람이라고 해야 하나. →왜 하필 완두였나. -뭐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완두콩이 번식이 잘되고 하나의 가지에 콩이 많아서였다고 해야 하나. 물론 실험이 망하면 먹을 수도 있었고. 근데 결과를 보면, 정말 운 좋게도 유전형질이 딱 갈라지는 재료를 우연찮게 선택했던 것 같다. →근데 당신은 동네 학회에서도 무참히 밟혔다. 허무하지 않았나. -조그마한 소도시에 있는 자연과학협회 회원들이 내 연구결과를 이해나 했겠나. 딱히 큰 학회에 발표하지도 않았고, 다윈한테만 우편으로 보낸 정도였는데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사실 더 열받는 건 내가 다윈한테 보낸 논문이, 다윈이 죽은 후에 방에서 뜯지도 않은 채 발견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지. 만약에 다윈이 그걸 뜯어봤다면 창조론자들과 맞설 강력한 무기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자기 복이 그 정도였구나 하고 생각해야지 뭐. 근데 나도 몇 년 뒤에 수도원장이 되고, 수도원이 세금 때문에 정부랑 싸우는데 앞장서면서 딱히 과학에 관심을 쓸 시간이 없어졌어. 결국 내 연구는 내 시대에는 개인적인 만족으로 끝난 셈이지. →당신 연구의 존재감이 얼마나 없었으면 당신이 죽은 후에 당신 동료들이 논문하고 연구 자료까지 아무 생각없이 불태웠을까. 근데 이쯤에서 핵심적인 질문을 해야겠다. 당신의 논문에는 ‘유전’이나 ‘법칙’이라는 말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도대체 ‘멘델의 법칙’은 어디서 나온 건가. -그게 사람 운인 것 같다. 내가 했던 연구가 한 35년 정도 아무도 모르게 묻혀 있었는데 말이지. 과학자들도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지 1900년쯤에 과학자 세명이 나랑 비슷한 실험을 했거든. 그래서 결과를 얻었는데, 누가 먼저인지 당장 싸워야 할 판이 된 거야. 사실 과학자들이 ‘최초’ 어지간히 좋아하잖아. 그 와중에 어이없게 내가 예전에 썼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논문 ‘식물 잡종에 관한 실험’이 도서관에서 발견된 거지. 싸우기 귀찮으니까 그 영예는 전부 이미 죽은 나한테 돌려버리기로 합의를 본 거고. 하긴 내용도 거기서 거기였다고 하더구먼. →당신이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뒤늦게 빛을 본 건가. -근데 그건 또 아니고. 난 잘 몰랐는데, 내가 좀 글을 못 썼던 모양이야. 후대 학자들이 심지어 “멘델은 시대를 앞서간 게 아니고, 19세기의 학자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 건 글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했겠느냐고. →그래도 당신은 오늘날 위대한 유전학자로 좋은 점만 부각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영국의 생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어. 베이트슨은 내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불명확한 대목은 손질하고, 원문도 좀 바꿔놓았지. 그 결과 당시 과학계를 주도하던 영국이나 미국의 연구자들은 절대적으로 시대를 앞서간 것으로 보이는 멘델만을 만나고 칭송하게 된 거지. 오히려 내가 사용한 독일어권에서는 인정받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 이를 입증하지. →불운한 학자로 당신을 골랐는데, 듣다 보니 정작 엄청난 행운아 아닌가. -완두콩 1만 그루를 8년 동안 기른 정성은 보답받을 만하다고 생각해. 공부하기 위해서 수도사가 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런 노력을 하고도 내가 그 결과를 인정받기 위해서 애쓰지 않고 스스로 만족했기 때문에 중학교 교사자격시험조차 떨어진 내가 교과서에 길이 남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참고문헌 -교과서를 만든 과학자들(손영운/글담)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에른스트 페터 피셔·전대호/해나무) -멘델이 들려주는 유전이야기(황신영/자음과모음) -멘델, 현대 유전학의 창시자(비체슬라프 오렐·한국유전학회/전파과학사) -유전학의 탄생과 멘델(에드워드 에델슨·최돈찬/바다출판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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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 독재자 초라한 은둔

    중동 독재자 초라한 은둔

    지난 2월 권좌에서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83) 전 이집트 대통령이 다음 달 3일 유혈진압과 부정축재 혐의에 대한 첫 재판을 앞두고 우울증 증세로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올초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재스민 혁명’으로 축출되거나 해외로 피신한 독재자들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8일 무바라크 전 대통령,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74) 전 튀니지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69) 예멘 대통령 등이 감옥 대신 철통 보안의 병실에서 요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30년간 이집트를 무력통치해온 무바라크는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뒤 이집트 남부 시나이 반도의 홍해 휴양지 샤름엘셰이크에서 칩거해 오다 지난 4월 수사기관의 조사가 시작되자 병원에 입원했다. 한때 심장발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주치의는 단순한 심장박동 이상이라고 밝혔다. 튀니지를 23년 장기집권해온 벤 알리는 시민혁명이 발발하자 지난 1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해 제2도시 제다에 있는 전용 요양소에서 지내고 있다. 튀니지 법원은 지난달 궐석재판에서 권력남용과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35년과 벌금 5000만 디나르(약 386억원)를 선고했다. 33년간 예멘을 부패의 늪에 빠트린 살레는 지난달 대통령궁에서 일어난 폭탄 사고로 입은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우디로 떠난 뒤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달 초 수도 리야드의 진료소에서 팔에 붕대를 감은 모습이 포착된 그는 귀국을 공언하고 있지만 야권이 살레 대통령 축출을 위한 혁명국가위원회 발족을 준비하는 등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재스민 혁명의 타도 대상인 독재자들이 하나같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인디펜던트는 재판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예전 아시아, 아프리카의 독재자들과 달리 호화판 해외망명이 쉽지 않게 변한 환경도 원인으로 꼽았다. 일례로 우간다의 학살자 이디 아민은 1979년 권좌에서 쫓겨난 뒤 사우디 왕가의 보호 아래 제다에서 24년간 편히 살았다. 필리핀의 21년 독재자 페르난도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82)도 하와이에서 수십억 달러의 비자금으로 망명생활을 한 뒤 1991년 귀국, 하원의원에 당선되는 등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요즘 독재자들은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이 수사 당국에 쉽게 발각돼 자금인출이 동결되는 데다 이웃 국가들도 이들의 망명을 꺼리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신문은 “국내에 남아 처벌받거나 피난처를 찾는 길밖에 없는 독재자들에게 병원이 은신처로 인기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지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 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러운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벨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 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은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 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 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힌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러운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서방 출구모색 다각화 속 지지부진 중동사태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아랍권의 교착 사태를 풀기 위해 다양한 카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은 돈줄을 틀어막으며 파키스탄 등 사이가 틀어진 대테러전 파트너를 압박하고 있고 리비아 공습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는 카다피 정권과의 대화를 통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반면 시리아 등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정정 불안 속에 반정부 시위와 강경 진압이 되풀이되고 있다. 내전 양상으로 번진 북아프리카·중동 국가들의 무력 충돌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본격적으로 ‘협상 카드’를 빼들기 시작했다. 리비아 군사작전의 선봉에 섰던 프랑스는 100일 넘는 공습에 지친 듯 협상을 통한 출구전략을 찾고 있고 미국도 6개월째로 접어든 예멘 사태를 끝내려고 ‘독재자 설득 작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은 알제리 신문인 ‘엘 카바르’의 11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프랑스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비아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냈다.”면서 “프랑스 측은 우리 리비아 정부가 자신들과 (휴전을) 합의한다면 반군 측에 ‘전쟁을 중단하라’고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알이슬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카다피 축출’을 목표로 줄곧 공습에만 매달려 온 프랑스 측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프랑스 측은 카다피 정부와의 직접 대화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향후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제라르 롱게 국방장관도 10일(현지시간) 현지 TV에 출연해 “카다피군과 리비아 반군이 서로 대화하고 (전쟁 중인 리비아) 군인들이 막사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포격을 중단할 것”이라면서 “(카다피군과 반군) 양측이 정치적 타협을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10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과 회동했다. 브레넌 일행은 국민적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살레 대통령에게 “걸프 국가들이 마련한 권력 이양 중재 방안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고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 미국 정부는 대테러 작전의 동맹국인 예멘이 6개월째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한국인은 일본이나 중국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요? 겉보기엔 다들 비슷한데….” 파란 눈의 친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 이런 질문을 받아 봤을 것이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은 동양인의 얼굴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나이도 잘 가늠하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나한테 중국 사람처럼 생겼다거나 일본인처럼 행동한다고 말하면 그걸 썩 달갑게 받아들이긴 어렵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은 분명히 다른 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이고 말도 다르며 국민성도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중·일만큼이나 다른 배경을 가진 나라들이 하나로 묶여진 동네가 있다. 지역은 유럽, 이름은 유럽연합(EU)이다.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 출범 기준으로 반세기 이상 시간이 지났다. 그들은 같은 화폐를 쓰고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든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내려온 그들 각각의 민족 감정이나 국민 의식 같은 것들도 빠르게 옅어지고 얇아지고 있는 것일까. 서울신문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한·중·일 국민 사이의 미묘한 경쟁의식이나 차이점이 EU 내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영국 최고의 프랑스 전문가인 ‘폴 웨스트’를 만나 직격 인터뷰를 했다. 웨스트는 영국인 스티븐 클라크가 2005년 출간한 소설 ‘똥 속에서의 1년’(A Year in the Merde)의 주인공으로, 프랑스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프렌치맨’ 속으로 뛰어든 열혈 ‘잉글리시맨’이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뒤편의 한적한 거리에서 웨스트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웨스트는 ‘정말 어이없다’는 표현을 습관처럼 사용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프랑스인들 틈바구니에서 보낸 27세 청년은 여전히 파리지앵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강타한 소설의 주인공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다. 벌써 6년째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내 이름은 폴 웨스트. 27세다. 영국 런던 출신이다. 프랑스의 레스토랑 체인에서 영국 홍차 프랜차이즈 사업부를 맡아 1년간 일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9월에 시작해 5월에 끝난다. 제목엔 ‘1년’이라고 써 있는데 나머지 3개월은 어디 갔나. -프랑스에서의 1년이지 않은가.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의 1년은 9월에 시작한다. 다른 나라는 전부 1월에 시작하지만.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면 샹젤리제 거리에서 마치 신년 축하 키스를 나누는 듯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수백 쌍이 늘어서서 말이다. 그런데 그 키스의 이유가 “이제 휴가가 끝났으니 아쉽다.”는 것이란다. 정말 어이없지 않나. 소설을 5월에 끝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가 휴가가 시작되는 때라서다. 뭐 한 3개월간은 나라 전체가 멈춘다고 보면 된다. 아! 여름에 파리가 붐비는 이유? 그 사람들 중에 프랑스 사람은 거의 없다. 다 관광객이지. 휴가가 끝나자마자 “내년 휴가에는 뭘 하지?”라는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들을 데리고 책임자로 일하면서 고생 엄청나게 했다. →책 제목이 비위생적이다. 그냥은 ‘똥’이고, 고상하게 말해 봐야 ‘대변’ 정도인데, 굳이 제목에 그걸 넣은 이유가 무엇인가(불어 ‘Merde’는 ‘제기랄!”, ‘빌어먹을!’ 정도의 의미를 갖는 가벼운 욕설로도 프랑스에서 널리 사용된다.). -처음 파리에 도착하고, 회사 면접을 보고 인사를 나누고 하나하나 적응해 가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디에선가 애완견들이 나타나 내 가방에 실례를 하고 도망갔다. 주인도 같이 있었는데. 내가 파리에서 낯설고 어이없는 일들을 겪을 때마다 그때 기억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난 그 기억 속에서 1년을 산 거다. →한국에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입장에서 실제로 들어 보니 어떻던가. -아, 프랑스 사람들도 영어를 잘한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말 웃기는 건 자기들끼리는 그걸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특유의 악센트는 둘째치고 자기네 알파벳 읽듯이 영어 단어를 읽을 거면 그냥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다. 부하 직원 중에 하나는 분명히 자기가 영어를 한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봐도 걘 헝가리어를 하고 있었다. →책에서 보면 당신은 부하 직원들이 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전혀, 100%, 결코, 한 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날 책임자로 스카우트하면서 나한테 직원을 뽑을 권리를 안 줬다. 참고 봐주려고 했더니 내는 아이디어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첫날 회의에서 밑에 직원들이 카페 이름을 ‘내 차는 부자다’(My tea is rich)라고 짓자고 주장하는데, 확 다 부숴 버리고 싶었다. 내가 며칠 동안 저건 문법상으로 영어가 아니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이해를 못 하더라. 그래서 보스한테 팀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원하는 팀을 꾸렸나. -웬걸. 팀원을 바꿔 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보스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펄쩍 뛰더라. 팀원을 자르면 회사 직원 전체가 파업을 하고, 그게 비슷한 업종 종사자들의 파업을 유도하면서 사회문제화되고 프랑스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고 했다. →에이, 말도 안 된다. 지나친 비약 아닌가. -그땐 나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프랑스인들은 파업을 거의 스포츠로 생각한다. 당연히 누구나 해야 하고, 재미도 있는 일이라고 느낀다. 아마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스포츠’ 설문조사를 한다면 1위는 ‘페탕크’(금속과 나무공을 던져서 가깝게 만드는 게임)가 분명하다. 영국에선 노인들이나 하는 스포츠인데 이걸 그렇게 좋아한다. 그 다음이 아마 파업일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파업을 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지하철이랑 버스 파업을 하는데 승객들한테 알려 주지도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좌절한 기분, 당신도 아는지 모르겠다. →영국도 가끔 지하철 파업을 하지 않나.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은 파업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하하. 정도가 있는 법이지. 프랑스인들이 파업을 참는 건 자기도 다음에 이 즐거운 스포츠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게 분명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식당에서 서빙을 하던 웨이터가 갑자기 디저트 차례를 남겨 놓고는 “파리의 웨이터들이 오후 1시부터 파업을 하기로 했다.”면서 가버린 적도 있었다. 그 이유가 뭐였는 줄 아나. 유로화가 통합된 이후에 사람들이 팁을 1유로 동전으로 주면서 예전에 프랑 동전을 받을 때보다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란다. 그래 갖고 파업을 하면 과연 손님들이 2유로 동전을 주겠는가. 완전히 파업을 위한 파업이다. 게다가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의 웨이터들은 이미 계산서에 15%의 봉사료를 받고 있다. →달팽이(에스카르고) 음식에 도전하는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그게 인상적이라는 건 당신도 끔찍하게 여겼다는 얘기지? 살아 있는 채 찜통에 집어넣고, 소금을 치고. 거참 그걸 왜 먹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다. →책을 몇 권 써도 할 얘기가 끝도 없이 나오던데, 실제 만나 보니 정말 맺힌 게 많나 보다. -이왕 인터뷰를 하는데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 혹시 ‘사데팡’(Ça dépend·그때그때 다르다는 뜻)이라는 말을 아는가. 아시아 친구들은 그게 프랑스에서 제일 싫은 거라고 하던데. 프랑스 애들은 무엇을 하든 처음에는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젓지만, 몇 번 조르면 오히려 안 되는 경우가 드물다. 유학생들, 특히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체류증 연장 신청을 하러 갈 때 아침에 부부싸움 한 공무원 앞에 서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나이와 성별, 학력까지 모두 같아도 담당자의 기분에 따라 허가가 날 수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망할 놈의 사데팡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아야 하나. →영국과 프랑스가 예전부터 견원지간이라고 하지 않나. 당신이 자꾸 이렇게 말하는 건 기본적으로 프랑스인을 싫어하기 때문 아닌가.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실 EU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우리 식민지에 불과했던 미국이 세계의 맹주 노릇을 하고 있고, 아시아까지 치고 올라오니까 함께 뭉쳐서라도 잘살아 보자고 만든 건데, 이게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프랑스랑 이탈리아를 보자고. 우리가 보기에 둘은 너무 비슷해. 자기들 음식이 세계 최고라고 하고, 와인이랑 커피라면 환장하고, 휴가 긴 것도 비슷해. 슈퍼마켓에서 줄이 절대 줄어들지 않는 것까지 똑같단 말이지. 근데 프랑스 친구들은 이탈리아인들이 어디에나 출몰하고 시끄럽고, 친한 척하면서 엉겨붙는다고 욕하기 일쑤거든. 반대로 이탈리아 친구들은 프랑스인들이 쓸데없이 딱딱하게 굴고, 음흉하다고 욕하는 게 일상이지. 프랑스 친구는 남한테 얻어먹는 걸 치욕스럽게 여기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집에 초대를 못해서 난리를 치거든. 심지어 잘난 조상 덕에 먹고사는 것까지 똑같은데 말이지. 아마 둘이는 서로 너무 닮아서 참지를 못하는 것 같아. 이렇게 다들 다른데 똑같은 화폐 쓰고 국경 없애면 다같이 뭉쳐서 밝은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을 거란 안이한 발상 자체가 문제였던 거지. →영국 얘기는 전혀 안 하고 있는 것 아는가. 사실 영국도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는 부지런한 편이지만 독일 사람들이 보기에는 게으른 나라 아닌가. -독일 애들은 지나치게 꽉 막혀 있는 거고. 간단한 서류 하나 잘못됐다고 사람을 붙잡아 두거나 일을 중단시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하고 어떻게 같이 일을 하나. 뭐 이러고 저러고 다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어차피 이미 EU로 뭉친 거 다시 돌리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지. 근데 도청 범죄자나 키우는 우리 정치인이나, 스캔들에 시달리는 이 나라 대통령이나, 어린 여자애 돈 주고 사서 문제 생긴 옆동네나 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답이 없는 거다. 정치인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서는데. →사실 그건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누구랑 누구랑 다르다는 얘기만 했는데, 전 세계가 같은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사실 내가 1년 동안 파리지앵으로 살면서 느낀 게 바로 그거다. 당신이 나의 독설을 원하는 것 같아서 안 좋은 경험만 추려 얘기하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결국엔 다 맞춰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나. 다만 나를 만든 스티븐 클라크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심지어 책도 잘 팔리는 상황이니까 당분간은 그러려니 하고 읽으면서 마음껏 웃어 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과장과 풍자로 채워진 책이고 실제 지은이의 직업도 방송 코미디 작가다. 프랑스의 실제 모습이 이와 일치한다는 뜻은 아니니 절대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편집자 주) 파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스티븐 클라크 영국의 언론인. 10년 가까이 프랑스 파리의 언론사에서 일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쓴 소설 ‘똥 속에서의 1년’(A year in the merde)을 출간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폴 웨스트는 그가 경험한 내용을 보여 주는 실존 인물에 가깝다. 당초 친구들에게 주기 위해 200부만 찍었던 책인데 출판사의 제안으로 공식 출간됐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6년째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클라크는 현재 라디오 방송의 코미디 작가로 활동 중이다. ●참고문헌 똥 속에서의 1년/ A year in the Merde (스티븐 클라크/ 블랙스완) 프랑스인을 혐오한 1000년/ 1000 Years of Annoying the French (스티븐 클라크/ 블랙스완) 달팽이에게 말하기/ Talk to the Snail (스티븐 클라크/ 블랙스완)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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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틀러가 나치 병사들에게 바비 인형 준 까닭?

    나치 정권을 이끈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병사들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바비 인형을 지급했다는 역사적 고증이 제기됐다. 미국의 뉴욕 데일리 뉴스와 영국의 대중지 더 선은 11일 히틀러 정권이 1940년 최전선의 독일병정들에게 일종의 성노리개로 바비 인형을 공급할 계획을 세워 일부 시행에 옮겼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매춘부들의 접근으로 인한 병사들의 각종 성병 감염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이같은 역사적 뒷얘기는 바비 인형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술가 그램 도널드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도널드의 조사에 따르면 나치 정권은 이른바 ‘보르크힐트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유사성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섹스 인형’ 공급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그램이 입수한 비밀 문건에 따르면 SS, 즉 나치 친위대 책임자 하인리히 힘러는 “(점령지인) 파리에서 (나치병사들이 처한) 가장 큰 위험은 댄스홀이나 술집 등 어디에나 병사들을 유혹하려는 매춘부들이 득실거린다는 점”이라면서 “병사들이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건강을 해치는 모험을 감수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상부에 보고했다. SS 측의 이런 상황판단에 따라 나치 정권은 독일병정들에게 바비 인형 공급계획을 세웠고 한 점령지에서 시험적으로 용법 테스트까지 실시했다. 테스트 직후 성능(?)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은 힘러는 자신의 휘하 병사들을 위해 50개를 주문했다고 한다. 히틀러가 사용을 승인한 바비 인형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병사들의 배낭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였다고 한다. 그러나 ‘보르크힐트 프로젝트’는 1942년 전세가 기울면서 흐지부지됐다. 영국군에 체포됐을 때 당혹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꺼린 독일병사들이 바비 인형의 휴대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폭로한 그램은 “나치의 이 비밀 계획이 흐지부지된 후 드레스덴 대폭격 당시 이 인형을 만든 장소와 생산된 인형들이 모두 파괴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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