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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송곳니’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송곳니’

    한 작가의 영화를 언급하면서 그가 속한 국가의 영화를 운운하는 건 옳지 않다. 작가는 국가를 대표하는 운동선수가 아니며, 그의 개성과 주제가 반영된 영화는 국가성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관심 바깥에 있던 나라에서 몇 감독이 동시에 출현해 주목받을 경우엔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그럴 때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라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미카엘 카코야니스, 코스타 가브라스, 테오 앙겔로풀로스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그리스 영화계에 두 명의 젊은 감독이 등장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송곳니’와 ‘알프스’로 세계 영화계의 엄청난 환대를 받은 데 이어 그간 란티모스의 영화를 제작해온 아티나 라켈 창가리 또한 두 번째 연출작 ‘아텐버그’로 란티모스에 못지않은 평가를 듣고 있다. ‘송곳니’는 교외의 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우화 같은 이야기다.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아내와 세 자녀를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시킨다. 안팎을 유일하게 오갈 수 있는 아버지를 통해 가족은 필요한 물품을 얻는다. 아내가 남편의 노선에 은밀하게 동조하는 가운데, 한 번도 담장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는 아들과 두 딸은 주어진 현실에 별다른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아들은 아버지가 데려온 공장 직원과 몸을 섞으며 욕망을 해소하고, 자매는 아버지가 가져다준 소소한 물건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소녀처럼 경쟁한다.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아버지는 송곳니가 빠져야만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큰딸은 궁금하다. 흔들리기는커녕 꿈쩍도 하지 않는 송곳니는 언제쯤 빠지는 걸까. 란티모스는 선배들이 오랜 주제로 삼아온 ‘그리스 독재의 역사’를 다시 화두로 꺼내든다. 그는 ‘송곳니’가 억압적 체제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달라진 건 영화의 스타일이다. 가브라스와 앙겔로풀로스의 비판이 리얼리즘에 바탕을 뒀다면, 란티모스의 블랙코미디는 풍자와 상징으로 독재의 비극을 은유한다. ‘송곳니’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작품이다. 어리석은 대사를 읊고 유치한 게임에 골몰하는 인물들은, 무대 위에 묶인 채 끊임없이 부조리극을 펼쳐야 하는 인형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혹자는 독재에 대한 빤한 은유만 넘쳐나는 지루한 작품이라고 불평하기도 한다. 충격파로 배치된 후반부의 사건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송곳니’를 보던 일부 젊은이들은 몇몇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독재의 시기를 경험한 자들은 ‘송곳니’를 보며 감히 웃을 수 없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들은 현실의 극적 표현임을 안다. ‘송곳니’는 독재자보다 통제당하는 존재들을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바다’를 ‘의자’라 불러도 믿고 지내던 각각의 인물들은 무지의 정점에서 동물로 변하고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조차 폭력적인 몸짓으로 반응한다. 일렬로 앉은 가족이 아버지 앞에서 개처럼 짖고, 아이들은 무감각한 얼굴로 망치와 가위를 휘두른다. 그들의 피와 멍을 접하면서 우리에게 독재의 시간은 끝났다고 위안할 수 있을까. 독재자의 망령이 아직 주변을 맴도는 지금, 소통의 창구이면서 소통을 막는 미디어가 판치는 지금 ‘송곳니’는 가슴 서늘한 충고를 전한다. 1월 5일 개봉. 영화평론가
  • [피플 인 포커스] 튀니지 인권운동가 마르주키

    청년노점상의 분신자살로 올해 ‘아랍의 봄’에 불을 댕겼던 튀니지에서 인권운동가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중도좌파인 공화의회당 대표 몬세프 마르주키(66)는 12일(현지시간) 제헌 의회에서 재적 의원 217명 가운데 153명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 1월 지네 엘 아비니데 벤 알리 전 대통령의 퇴진 이후 11개월 만에 민주 선거로 탄생한 첫 대통령이자, 튀니지가 공화국을 선포한 1957년 이후 3번째 대통령이다. 이날 트레이드마크인 ‘잠자리 안경’과 노타이 차림의 회색양복을 입고 나온 마르주키는 “중동에서 첫 자유 공화국이 된 나라의 첫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연정의 권력 분점에 반발, 반대표를 던진 44명의 의원들에게는 “나를 계속 주시하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마르주키는 13일 카르타고 대통령궁에서 공식 취임한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튀니지인권연합(LTDH)의 회장을 지낸 그는 벤 알리 전 대통령의 눈엣가시였다. 1994년 선거 결과를 비판하다 투옥됐으나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4개월 만에 풀려나 프랑스 망명길에 올랐다. 2001년 공화의회당을 창당한 뒤 이듬해 당국으로부터 활동이 금지되자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민주화 시위로 벤 알리 대통령이 쫓겨난 지난 1월에야 영구 귀국했다. 마르주키의 첫 임무는 연정 파트너이자 제1당인 엔나흐다당의 사무총장 하마디 제발리를 총리로 임명하는 일이다. 튀니지 권력 구조상 대통령은 총리에 이어 2인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그가 엔나흐다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인도 독립영웅 마하트마 간디의 평화운동과 인종분리정책을 철폐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를 배우기 위해 인도와 남아공을 각각 찾았을 정도로 학구파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 프랑스인 부인과는 이혼했다. 프랑스어, 아랍어로 ‘감시받는 독재자들’, ‘중동을 위한 민주화의 길’ 등을 써낸 다작 작가이기도 하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의 우울한 전망/장홍 프랑스 알자스 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의 우울한 전망/장홍 프랑스 알자스 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역사 이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해가 없었지만, 올해는 유독 국내외적으로 큰 사건들이 즐비했다. 모든 주요 사건들이 실시간으로 지구촌 곳곳에 전해지는 글로벌 시대이기에 특정 사건이 미치는 영향은 더욱 광범위하고 폭발적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발생한 국내 정세에는 물론 국제 정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들 중 일부를 살펴보자. 아랍의 봄에 처음 꽃을 피웠던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민주주의의 불모지 아랍 세계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이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후 이집트로 옮겨붙은 불꽃은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타도했고, 리비아에서는 독재자 카다피가 처참한 종말을 맞았다. 시리아는 수천명의 인명 피해를 대가로 지불하고도 여전히 내전 상태다. 튀니지와 모로코 그리고 이집트에서 보편적 민주주의 가치를 인증하지 않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민주주의는 몇 번의 광장 혁명만으로 정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이를 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 한 과정으로 간단히 치부해도 될까. 역사는 자주 예측할 수 없는 아이러니와 미스터리를 포함하고 있기에 동시대인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월스트리트 점령 사건도 글로벌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월가를 점령하려는 운동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하고도 예민한 문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상징적이고 시사하는 바 또한 크다. 신자유주의의 결과인 극소수로의 부 쏠림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는 한 이 같은 운동은 점점 더 확산되고 강도도 높아져 언젠가는 폭력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이 체제를 대체할 뚜렷한 대안은 문제의 심각성이나 위급함에 비춰 턱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는 사실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욕망은 신자유주의의 핵심 가치다. 욕망은 모든 것을 수치로 풀려 하거나 환산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즉 소유에 모든 무게가 실려 있다. 진정한 대안은 소유에서 존재로 가치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의식혁명이 일어날 때만 가능하지 않을까. 유럽의 금융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유로존의 금융위기는 다른 많은 위기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복잡한 원인을 지니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 간의 연대성 결여, 유로의 합리적 운용을 위한 제도의 허점과 미비 그리고 일부 회원 국가들의 지나친 국가부채 등이 주된 요인일 것이다. 원인이 뭐든지 간에 유럽의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경기 하락을 불러왔고, 예측할 수 없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위기는 아직도 진행형이고, 관련 국가들의 상반되는 이해와 입장 때문에 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불안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해결책은 모두가 당면한 위기를 순간적으로 덮어 보려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유럽 통합의 모터는 독일과 프랑스다. 독·프 커플이 동상이몽으로 경쟁하고 대립할 때, 유럽 통합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처럼 독일의 독주가 계속된다면 유로화는 물론 장래 유럽 통합 전반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이런 과정에서 유로화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로벌화를 선도하는 국가나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국가나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세계화로 예상되는 장점에만 주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제는 그것이 갖는 문제점들이 뭔지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야만 바람직하고 진정한 글로벌화가 가능할 것이다.
  • [박명재 세상 추임새] 세 사람의 죽음 앞에서

    [박명재 세상 추임새] 세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근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주목을 끄는 세 사람의 죽음을 연이어 목격하게 되었다. 사망순서대로 하면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리비아를 42년간 철권통치하였던 카다피 전 국가원수, 영원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그들이다. 박영석 대장이 48세, 스티브 잡스가 56세, 카다피가 69세이다. 우리는 이 세 사람의 죽음의 양태와 고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의 극명한 차이점을 보면서 언제가 한번 맞게 될 죽음에 대해 몇 가지 상념을 떠올리게 된다. 먼저 히말라야를 가슴에 품고 추락사한 박영석 대장의 죽음은 말 그대로 사고사이다. 한평생 정열과 의지로 정복하려 했던 자연의 설산 속에서 맞이한 안타깝고 장렬한 도전의 죽음이었다. 세네카가 ‘죽음이 어떠한 장소에서도 너희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어떠한 장소에서도 죽음을 기다리라.’고 한 말과 함께, 옛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자는 산에서, 물을 좋아하는 자는 물에서 죽는다.’는 말이 연상되는 슬픈 최후였다. 그는 도전하는 젊은이들과 특히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산악인들의 깊은 애도와 슬픔 속에 영원한 산사람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 잡스는 놀랄 만한 발상과 창조로 애플의 신화를 만들고 세상을 변화시킨 금세기 최고의 CEO로서, 그의 죽음은 병사였다. 그의 비상한 재주와 능력, 기술도 병 앞에서는 병약하고 초췌한 모습의 환자일 뿐이었다. 전 세계가 이 천재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그의 사후 세상의 흐름과 정보기술(IT) 업계 변화를 예측하고 분석하기에 분주했으며, 소규모 추모행렬이 며칠간 이어졌다. 죽는 날까지 일을 놓지 않고 신제품을 출시하고 발표하면서 정열을 태웠던 기술인·기업인으로서 면모를 보여주고, 찾아온 죽음 앞에 조용히 순응해 간 비교적 젊은 나이의 죽음이기에 그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세상을 좀 더 바꿀 수 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다. ‘영광 속에서 맞이한 죽음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말과 함께 ‘열심히 일한 날은 잠이 잘 찾아오고, 열심히 일한 인생에는 조용한 죽음이 찾아온다.’는 격언이 생각나는 그런 죽음이었다. 카다피는 장기간에 걸친 독재정치체제 하에서 신처럼 군림하며, 절대적 지지와 숭배를 받고 있다고 믿었던 자기 국민들로부터 총살과 시해를 당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죽음 앞에서도 끝끝내 총을 쏘지 말라며 애원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추한 모습으로 죽어갔다. 그것도 자기가 믿었던 자신의 고향 땅에서.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망한다는 독재자의 말로를 증명이나 하듯 그의 죽음을 반기는 국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더럽혀지고 짓밟혀진 채 세상을 등졌다. ‘남의 의지에 의해서 죽는 것은 두 번 죽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려지고, 아주 추하게 자기 국민과 온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카다피의 비굴한 마지막 죽음의 모습은 세계의 오만한 독재자들에게 충분한 경종과 교훈을 주었다. 생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말하랴(未知生 焉知死)는 논어의 경구가 있지만, 행복한 사람은 가장 알맞은 때에 자기에게 알맞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에 앞서 행복이 먼저 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찌 그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할 것인가. “죽음이 찾아올 때 나이와 업적을 참작하지 않으며, 죽음은 이 땅에서 병든 자와 건강한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권력자와 힘없는 자를 구별 없이 쓸어간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죽음에 대비해서 살아갈 것을 가르친다.”는 선인의 말과 함께, 동양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그의 시집 기탄잘리에서 ‘신이 어느 날 문득 죽음의 광주리를 우리 앞에 내밀었을 때, 우리는 과연 그 광주리에 무엇을 담아놓고 이 세상을 떠날 것인가.’라고 한 말을 세 사람의 죽음 앞에서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음미하게 된다. 또한 ‘죽음은 교황이나 거지나 모두 용서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영국 속담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CHA의과학대 총장
  • [기고] 연평도 1주기와 김정일/림일 탈북작가 ‘소설 김정일’ 저자

    [기고] 연평도 1주기와 김정일/림일 탈북작가 ‘소설 김정일’ 저자

    간 크게 남한영토에 대고 백주에 무려 170여발의 포 사격을 가한 북한군의 무모한 행위가 있은 지 1년이다. 세계가 놀란 연평도 포격은 김정일 신하들의 절대 충성심이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끔찍한 그림이다. 민간인들이 사는 평화로운 섬을 겨냥한 연평도사건 이후 가장 크게 눈에 띈 것이 남한의 강경한 대북제재 조치이다. 민족을 향해 포탄을 쏘는 이성을 잃은 북한집단과는 그 어떤 대화나 교류도 안 하겠다는 방침이다. 북한에 지원하던 인도적 지원마저 끊긴 상태이다. 지난 8월 초, 수해를 맞은 북한에 초코파이, 라면 등 50억원어치의 물품을 전달하겠다고 통보하였으나 답변도 없는 그들이다. “그래? 주겠다는 것도 안 받아?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아?” 연평도사건 이후 북한당국의 나쁜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다는 정부의 태도도 만만치 않다. 언젠가는 김정일이 항복할까? 남쪽에 제대로 된 사과와 사전방지대책 같은 특단의 조치라도 혹시 있을까? 천만에. 하늘이 무너져도, 지구가 깨져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이다.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오히려 햇볕정책의 찬반과 마찬가지로 남남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이것도 없어질 그림이 아니다. 북한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특수집단이다. 2000만 인민이 모두 굶어 죽어도 지도자와 정부 비판을 엄두도 못 내는 괴상망측한 국가다. 벙어리 2000만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에게는 어쩌면 지금의 빈곤상태가 독재정치에는 더더욱 유리할 것이다. 항상 배를 곯아야 잡생각을 못하고, 먹여주고 입혀주는 자기만을 따르며 충성하는 머저리 같은 인민은 그에게 외화를 벌어주는 동물원의 짐승이나 다름없다. 일각에서는 지난 정부에서 지원한 쌀이 군부나 당간부들에게 들어가 실망이라는데 크게 보면 당간부도, 군인도 엄연히 인민이다. 예전에는 간부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로 인민들이 시장에서 돈을 주고 ‘한국산 쌀’을 사 먹었으나 지금은 그림의 떡이다. 역설적으로 북한주민들의 굶주림을 가중시키는 지금의 대북정책도 어쩌면 희대의 독재자 김정일을 돕는 또 하나의 작태이다. 사실 남한에서 북한에 식량과 물자를 줘도, 안 줘도 김정일을 도와주는 꼴이다. 그렇다면 이왕 주면 어떨까? 통 크게 말이다. 김정일이 화가 나서 “제발 보내지 마라. 인민들이 배부르니 내 말을 안 듣는다.”라고 해도 “그래도 받아라. 어차피 여기서는 쓰레기로 버리는 것들이다.”라고 하며 말이다. 뵈는 게 없는 깡패한테서 사죄를 받는다? 미친 놈이 제 정신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소가 웃다 꾸러미 터질 일이라고, 김정일이 코웃음 치고도 남을 일이다. 남한의 대북정책 관계자들이 김정일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김정일에게도 인간적으로 한마디 하고 싶다. 그깟 알량한 자존심에 목숨 걸지 마라. 일국의 지도자답게 화끈한 모습을 보여라. “죄송하다. 연평도포격 1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다시는 그런 비극적인 일이 안 생기도록 온 힘을 쏟겠다.”라고 해보라. 작은 것에 감동하여 뭐든 더 주는 남측의 지원물자를 전부 받아라. 그것을 총명한 당신의 은덕으로 치사하고 인민들에게 줘서 지금의 국가적 빈곤에서 탈출하라. 차라리 그게 인민을 위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 [지금&여기] 영웅을 위하여/이순녀 국제부 차장

    [지금&여기] 영웅을 위하여/이순녀 국제부 차장

    평소의 단정한 외모나 당당한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목 보호대와 휠체어에 의지한 그녀는 작고, 초라했다. 며칠 전 외신에 등장한 글로리아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 얘기다. 1년 전까지 최고 권력자였던 그녀는 신병치료를 위해 출국하려다 선거 조작 및 뇌물 수수 의혹과 관련한 출국금지 조치로 공항에서 제지됐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돼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그녀는 국민 영웅이었다. 전직 대통령 아버지에 미국 유학파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1998년 필리핀 최초 여성 부통령에 당선됐다. 2001년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민중 봉기로 축출되자 대통령직을 승계해 코라손 아키노에 이어 두 번째 여성 대통령에 올랐고, 과감한 부패 척결과 빈곤 추방, 정치제도 개혁 등을 실시해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2004년 대선에서도 40%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선거 부정 의혹이 불거지고, 연달아 뇌물 사건이 터지면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대통령에서 물러나자마자 수사 대상이 됐다. 영웅으로 출발해 역적으로 끝난 지도자는 세계 역사에서 한둘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한달 전 사망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다.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 영웅에서 42년간 권력을 독점한 악랄한 독재자로 전락한 그는 시민군의 손에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 아로요나 카다피나 이런 비참한 운명을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 역시 누구나처럼 떠날 때 박수받는 지도자를 꿈꿨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 어느 순간 권력욕으로 변질돼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궤도를 이탈해 무한 질주하는 데도 이를 깨닫지 못한 결과는 이렇게 참혹하다. 영웅이었기에 스스로 장기집권을 합리화한 어리석음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에서 지도자들이 교체된다. 시작은 조금 부족해도 아름다운 뒷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진정한 영웅의 등장을 기다린다. coral@seoul.co.kr
  • 美 “亞 국방예산 한푼도 안 깎는다”… 中 패권 견제 본격화

    美 “亞 국방예산 한푼도 안 깎는다”… 中 패권 견제 본격화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 미국을 지배하던 1969년 7월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괌에서 새 아시아 정책인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다. “미국은 앞으로 아시아에 직접적·군사적·정치적인 과잉개입을 하지 않으며, 과중한 부담을 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42년 만인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호주 캔버라에서 “아시아는 미국의 최우선 순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프리 개럿 시드니대 미국학 교수는 호주 언론 ‘컨버세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오늘 오바마의 연설은 새로운 오바마 독트린으로 기념비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데이비드 팔머 플린더스대 교수는 “오바마의 새 아시아 정책은 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큰 외교정책의 변화”라며 “미국의 유럽·중동 중심 외교가 아시아·태평양 중심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독트린이 나온 배경은 우선 중동과 유럽의 안보적 위협이 상당부분 감소한 데 있다. 알카에다는 오사마 빈라덴 사살 이후 크게 약화됐으며 중동 민주화 덕에 전쟁광으로 돌변할 만한 독재자가 거의 사라졌다. 러시아도 어쨌든 민주적 선거 체제다. 반면 중국은 강대국 중 유일한 일당 독재 체제다. 미국은 히틀러, 스탈린 등의 교훈을 통해 독재국가의 전쟁위협에 민감하다. 실제 중국은 항공모함과 스텔스기 등 첨단무기를 속속 개발하고 있으며, 남중국해 분쟁 등에서 덩치를 앞세운 패권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유럽은 부채 문제로 빈사 상태이고 원유 공급원으로서의 중동도 최근 캐나다 등지에서 양산되는 오일샌드 등으로 전보다는 매력이 떨어졌다. 반면 아시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 인도 등 거대시장이 있어 ‘먹을 게’ 많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미래를 보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가 이날 “아시아에 할당된 국방예산은 한 푼도 깎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호주에 미군 기지가 새로 들어선 것은 미 해외 국방력의 중심이 60여년 만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아시아로 옮겨짐을 의미한다. 미국은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와 일본, 호주 등 우방, 새로운 친구인 인도, 인도네시아 등을 묶어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통해 중국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이 작심하고 아시아의 안방에 떡하니 자리를 마련한 이상 중국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일전을 불사하자니 아직 힘에서 열세이고 머리를 숙이자니 남중국해 문제와 위안화 절상 등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1980년대 미국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가 나가떨어진 일본의 전철을 중국이 밟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그러나 미·중 대결이 격화되더라도 미국이 중국을 미·소 냉전만큼 몰아세우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이 아직은 우세하다. 미·중은 경제적으로 깊숙이 얽혀 있는 데다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기왕이면 잘 길들여서 미국이 만들어 놓은 우리 안으로 집어넣는 전략을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날 오바마가 아시아에서의 군사력 강화를 노골적으로 역설하고 태평양 ‘강국’(Power)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저돌적인 모습을 보인 것을 놓고 취임 초부터 견지해 온 ‘소프트 외교’를 사실상 폐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생각나눔 NEWS] 친일파 동상·기념비 철거 vs 보존

    [생각나눔 NEWS] 친일파 동상·기념비 철거 vs 보존

    ‘도대체 어디까지가 후손들이 기려야 할 순국선열일까.’ 17일 ‘제72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추모제 등 순국선열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그러나 아직도 논란은 뜨겁다. 지난달 관련 사회단체들이 친일 인사로 지목된 인물들의 동상 철거와 친일파 단죄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들은 “동상 철거는 곧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부관참시”라며 “그들의 업적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맞서고 있다. ‘친일 행적’이 확인된 인물들의 동상이나 기념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쉽지 않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친일파 동상 방치는 교육에 도움 안 돼”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원 정선읍에 친일 인사인 이범익(1883~미상)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업적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민문연 측은 “현지 실사 뒤 해당 지자체에 기념비 철거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범익은 일제강점기 강원·충남지사 등을 지낸 행정관료로, 일제가 세운 만주국의 간도특설대 창설을 제안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인 인사로 알려졌다. 앞서 14일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의 동상이 경북 구미시 생가에 건립된 데 이어 16일 새마을운동중앙회가 경기 성남시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 새마을운동을 만든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흉상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민문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친일 인사를 기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면서 “유신 독재 40년째인 내년부터 역사정의실천연대 등을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의 친일·독재 행적에 대해 교육·홍보활동을 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행적 오늘날 잣대로 평가 말아야” 민문연은 지난달 31일에도 경기 과천 한국마사회 본관 앞에 설치된 김동하(1920~1995) 전 마사회장의 흉상을 철거하라는 공문을 마사회 측에 보냈다. 김 전 회장이 1940년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하는 등 친일 행위를 일삼았던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회도 지난달 서울대공원에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1891~1955) 동상을 철거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친일파인 인촌의 동상을 방치하는 것은 공원을 찾는 어린이들의 교육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개인 견해로 존폐 거론은 잘못” 반대도 만만찮다. 철거 반대론자들은 “고인이 된 인물들의 행위를 오늘날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라는 입장이다. 일제강점기하에서 그들이 보인 현실 참여적 태도와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8월 서울 남산에 이승만(1895~1965) 전 대통령의 동상을 건립했던 한국자유총연맹은 “인촌이 항일투쟁에 앞장서지는 않았어도 교육·언론사업에 나서 독립 기반 조성에 기여했다.”며 “민문연의 동상 철거 요구는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역사학자들은 이와 관련, 의견 표명을 꺼리고 있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의미다.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정리된 입장이 없다.”면서 “독재자로 평가받는 이 전 대통령의 동상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다르지 않겠느냐.”며 즉답을 피했다. 유금종 순국선열유족회 회장은 “특정 단체나 개인의 견해를 반영해 친일파의 동상이나 기념비의 존폐를 거론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결정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영준·김진아기자 apple@seoul.co.kr
  • [WHO&WHAT] 장원급제지사 - 조선 최고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WHO&WHAT] 장원급제지사 - 조선 최고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비행기도 잠시 쉬어 간다.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과 주변 친지들까지 신경이 곤두선다.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는 하루 종일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왜 아들딸이 시험을 보는데, 그 엄마가 백일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매년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교육공화국’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하는 입시철이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어도 여전히 한국에서 입시는 곧 교육의 목표이자 모든 것이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학원가와 수많은 경시대회, 각종 콩쿠르가 순수하게 학문이나 재능을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수십년간 교육정책의 수장이 되는 사람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나 시장, 도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나아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과연 나아지는 게 어떤 것이란 말인가.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도대체 언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조선시대는 좀 다르지 않았겠느냐는 기대를 안고, 자식을 위해 조선 최고의 시험 전문가를 찾아간 남산골 김씨 부인의 뒤를 따라가 봤다. 미리 밝혀 두지만 오늘은 역사의 결과물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다. 김씨 부인은 그게 마냥 좋았다. 옆집 누구네 아들은 기생집에 드나든다고 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공부에만 관심을 쏟는 아들이 대견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만 읽는 아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벌써 스무 살이다. 책을 백날 읽어 봐야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자나 깨나 서책만 붙들고 있다. 장가를 보내려 해도 초시(初試)라도 붙은 양반과 그렇지 않은 양반은 자리부터 달라지는데 말이다. 김씨 부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결국 책을 읽는 것은 과거를 보고 관직을 얻기 위함이 아니냐. 이제 한번 과장(科場)에 나서 가문의 이름을 떨쳐야 할 때가 아니냐.” 아들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학문의 목적이 어찌 개인의 출사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 아직까지 나라의 그릇이 될 정도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한숨이 늘어 가는 김씨 부인에게 어느 날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앞집 박씨 부인이 좋은 수가 있다며 찾아왔다. 각종 서적의 필사본을 파는 아랫마을 책방 주인이 바뀌었는데, 과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장안 제일의 전문가란다. 10대에 초시에 붙었는데, 돈 버는 일이 좋아서 관직 대신 이 길로 나섰다는 것이다. 박씨 부인이 말한다. “지난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판서댁 자제도 한사코 과거가 이르다며 만류하다가 이 사람을 만난 후 불과 반나절 만에 마음을 바꿔 과장에 나갔다니까요. 일단 한번 만나나 봐요. 상담하는 건 돈도 안 받는다던데. 그 댁 아들도 초시는 붙어야 한숨 돌릴 것 아니에요.” 그냥 만나 보기만 해도 된다는데 손해 볼 것 없는 일 아닌가. 다음 날 김씨 부인의 발걸음이 책방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 입구에서 ‘이생’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안내를 받고 서가 사이에 앉자 잠시 후 책장 너머로 한 남성이 나타나 돌아앉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생 마주 뵙고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제 처지가 밖으로 대놓고 얼굴을 드러낼 만하지 못합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나라에서 금하는 것들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어서요. 김씨 괜찮습니다. 저야 그냥 몇 가지 여쭤 보려고 찾아온 걸요. 제 아들이 올해 스물인데 책만 읽고 과장에 나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과거를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녀자인지라 과거의 힘을 잘 모르기도 하고?. 이생 유학을 하다 보면 욕심 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요. 수신제가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고요. 분명한 건 과거에 급제하면, 그것도 장원을 하면 본인과 가문의 격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지요. (조선시대 전체의) 경쟁률로 따지면 744번 열린 문과시험에서 급제자는 1만 4620명 정도입니다. 많은 것 같지만 자격시험에 불과한 초시인 생원시와 진사시 합격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죠. 정기 시험인 식년시는 500여년 동안 고작 163회에 불과하고 시험마다 전국 각지에서 2000~3000명씩 몰려들어요. 그중 장원급제자는 1명. 조선 전체를 통틀어도 연간 장원급제자는 1.4명에 불과하지요. 안정적으로 관직이 보장되는 대과 합격자까지 넓힌다고 해도 회당 고작 33명뿐입니다. 김씨 (한숨을 내쉬며) 걷기도 전부터 책을 읽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최소한 33명 안에는 들어야 한다는 얘기군요. 순수하게 학문이 전부도 아니겠죠? 이생 흠. 명문세가는 대를 물리려면 문과에 급제하는 것이 필수니까, 기를 쓰고 덤벼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선생을 모셔 영재교육도 받으니까 진사나 생원이 차린 서당에서 수학한 선비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부인할 수 없는 건 입신양명하려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김씨 그런데 선생께서 유명해지신 건 과거를 보는 요령을 알려 주시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요. 정말 선생께 배우면 과거에 급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가요. 이생 허허. 물론 공부도 안 한 사람을 그냥 합격시켜 주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절대’가 아니라 ‘거의’인 이유는 조금 있다가 설명드리죠. 확실한 것은 요령 없는 시험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와 동문수학한 사람들 중에는 시험관도 있고, 시험장을 감시하는 입문관도 있고, 답안을 고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씨 답안을 고쳐요?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나라님께서 지켜보는 시험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이생 그러니까 제가 먹고사는 것 아닙니까. 찾고자 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연히 위험한 길이니 비용이 들지요. 초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초시는 과장 사수(寫手), 거벽(巨壁), 선접꾼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거의 완벽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김씨 시험을 보러 가는데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이생 요즘 어머니답지 않게 이쪽으로는 전혀 걸음도 안 하신 분이 분명하군요. 혹시 글씨가 예뻐야 모든 게 예뻐 보인다는 말 아시나요. 과장 사수는 악필들이 주로 쓰는데, 응시자를 대신해 글씨를 써주는 사람입니다. 가장 많고 가장 저렴하죠. 그 다음이 거벽인데 이건 과거 문제를 풀어 주고, 시문도 지어 주는 사람이지요.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책을 펼쳐 놓고 몰래 베끼는 게 더 나아요. 어차피 사람도 많은 데다 시험관들이 별로 감독도 안 하거든요. 선접꾼은 말 그대로 주먹을 사는 겁니다. 과장에 햇볕이 내리쬐거나 하면 시험 보는 데 방해가 되잖아요. 과장에 몇 군데 나무 그늘 같은 명당이 있는데, 공부만 하던 선비들이 뛰기는 힘드니까 선접꾼을 사서 미리 자리를 잡아 놓는 것이 유리하죠. 더 확실한 건 시험장 서리를 매수하는 건데 요새는 서체로 응시자를 알 수 없도록 서리들이 답안을 베껴서 그걸로 채점하거든요. 그때 서리가 답안을 고치면 되죠. 김씨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참 많이들 하나 보군요. 비용도 많이 들겠어요. 이생 투자 없이 얻어지는 결과물이 어디 있습니까. 진사나 생원만 돼도 호칭이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운이 좋아서 지방수령 자리라도 하나 받으면 집 한 채 값이 아깝겠어요. 김씨 그런 편법이나 부정행위 말고 진짜 요령도 있나요. 예를 들어 시권(試券·답안지)은 언제 내는 것이 좋다니 하는 것들요. 이생 상담받으러 오셔서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시는군요. 뭐 제 직감상 또 오실 것 같아서 몇 가지 더 말씀드리죠. 시권은 빨리 낼수록 유리합니다. 어차피 같은 문제를 푸는데, 먼저 푸는 사람이 잘한다는 인상을 줄뿐더러 채점도 하다 보면 지치거든요. 특히 사서삼경의 암기와 해석을 쓰는 생원시 같은 경우에는 일단 한번 작성하면 고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들 하잖습니까. 아. 가끔 이름을 빼먹는 사람도 있는데, 꼭 시권에 조상 이름과 자기 이름을 써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우스워 보이지만 매년 수십 명이 이것 때문에 떨어져요. 마지막으로 종이, 종이가 중요합니다. 시험지를 각자 사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두껍고 질 좋은 종이를 사야 합니다. 시험관들 마음이라는 것이 좋은 종이를 보면 좋은 가문으로 생각하기 쉽거든요. 김씨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학문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출세를 위해 못하는 짓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걸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과장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할 텐데요. 이생 과연 그럴까요. 아드님은 분명 이 길을 따라 과거를 보든가 아니면 이 같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를 보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겁니다. 낭충지추. 이런 부정과 편법이 판치는 과장에서도 탁월한 인재는 분명히 드러나게 돼 있거든요. 절 믿으세요. 제가 조선 제일의 시험 전문가로 불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조선의 출세길, 장원급제(정구선·팬덤북스) -조선 양반의 일생(규장각한국학연구원·글항아리) -조선과거실록(지두환·동연)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푸른역사)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파란미디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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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 조선 최고의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WHO&WHAT] 조선 최고의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비행기도 잠시 쉬어 간다.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과 주변 친지들까지 신경이 곤두선다.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는 하루 종일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왜 아들딸이 시험을 보는데, 그 엄마가 백일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매년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교육공화국’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하는 입시철이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어도 여전히 한국에서 입시는 곧 교육의 목표이자 모든 것이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학원가와 수많은 경시대회, 각종 콩쿠르가 순수하게 학문이나 재능을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수십년간 교육정책의 수장이 되는 사람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나 시장, 도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나아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과연 나아지는 게 어떤 것이란 말인가.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도대체 언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조선시대는 좀 다르지 않았겠느냐는 기대를 안고, 자식을 위해 조선 최고의 시험 전문가를 찾아간 남산골 김씨 부인의 뒤를 따라가 봤다. 미리 밝혀 두지만 오늘은 역사의 결과물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다. 김씨 부인은 그게 마냥 좋았다. 옆집 누구네 아들은 기생집에 드나든다고 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공부에만 관심을 쏟는 아들이 대견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만 읽는 아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벌써 스무 살이다. 책을 백날 읽어 봐야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자나 깨나 서책만 붙들고 있다. 장가를 보내려 해도 초시(初試)라도 붙은 양반과 그렇지 않은 양반은 자리부터 달라지는데 말이다.  김씨 부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결국 책을 읽는 것은 과거를 보고 관직을 얻기 위함이 아니냐. 이제 한번 과장(科場)에 나서 가문의 이름을 떨쳐야 할 때가 아니냐.” 아들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학문의 목적이 어찌 개인의 출사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 아직까지 나라의 그릇이 될 정도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한숨이 늘어 가는 김씨 부인에게 어느 날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앞집 박씨 부인이 좋은 수가 있다며 찾아왔다. 각종 서적의 필사본을 파는 아랫마을 책방 주인이 바뀌었는데, 과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장안 제일의 전문가란다. 10대에 초시에 붙었는데, 돈 버는 일이 좋아서 관직 대신 이 길로 나섰다는 것이다. 박씨 부인이 말한다. “지난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판서댁 자제도 한사코 과거가 이르다며 만류하다가 이 사람을 만난 후 불과 반나절 만에 마음을 바꿔 과장에 나갔다니까요. 일단 한번 만나나 봐요. 상담하는 건 돈도 안 받는다던데. 그 댁 아들도 초시는 붙어야 한숨 돌릴 것 아니에요.”  그냥 만나 보기만 해도 된다는데 손해 볼 것 없는 일 아닌가. 다음 날 김씨 부인의 발걸음이 책방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 입구에서 ‘이생’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안내를 받고 서가 사이에 앉자 잠시 후 책장 너머로 한 남성이 나타나 돌아앉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생 마주 뵙고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제 처지가 밖으로 대놓고 얼굴을 드러낼 만하지 못합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나라에서 금하는 것들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어서요.  김씨 괜찮습니다. 저야 그냥 몇 가지 여쭤 보려고 찾아온 걸요. 제 아들이 올해 스물인데 책만 읽고 과장에 나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과거를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녀자인지라 과거의 힘을 잘 모르기도 하고?.  이생 유학을 하다 보면 욕심 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요. 수신제가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고요. 분명한 건 과거에 급제하면, 그것도 장원을 하면 본인과 가문의 격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지요. (조선시대 전체의) 경쟁률로 따지면 744번 열린 문과시험에서 급제자는 1만 4620명 정도입니다. 많은 것 같지만 자격시험에 불과한 초시인 생원시와 진사시 합격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죠. 정기 시험인 식년시는 500여년 동안 고작 163회에 불과하고 시험마다 전국 각지에서 2000~3000명씩 몰려들어요. 그중 장원급제자는 1명. 조선 전체를 통틀어도 연간 장원급제자는 1.4명에 불과하지요. 안정적으로 관직이 보장되는 대과 합격자까지 넓힌다고 해도 회당 고작 33명뿐입니다.  김씨 (한숨을 내쉬며) 걷기도 전부터 책을 읽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최소한 33명 안에는 들어야 한다는 얘기군요. 순수하게 학문이 전부도 아니겠죠?  이생 흠. 명문세가는 대를 물리려면 문과에 급제하는 것이 필수니까, 기를 쓰고 덤벼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선생을 모셔 영재교육도 받으니까 진사나 생원이 차린 서당에서 수학한 선비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부인할 수 없는 건 입신양명하려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김씨 그런데 선생께서 유명해지신 건 과거를 보는 요령을 알려 주시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요. 정말 선생께 배우면 과거에 급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가요.  이생 허허. 물론 공부도 안 한 사람을 그냥 합격시켜 주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절대’가 아니라 ‘거의’인 이유는 조금 있다가 설명드리죠. 확실한 것은 요령 없는 시험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와 동문수학한 사람들 중에는 시험관도 있고, 시험장을 감시하는 입문관도 있고, 답안을 고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씨 답안을 고쳐요?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나라님께서 지켜보는 시험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이생 그러니까 제가 먹고사는 것 아닙니까. 찾고자 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연히 위험한 길이니 비용이 들지요. 초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초시는 과장 사수(寫手), 거벽(巨壁), 선접꾼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거의 완벽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김씨 시험을 보러 가는데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이생 요즘 어머니답지 않게 이쪽으로는 전혀 걸음도 안 하신 분이 분명하군요. 혹시 글씨가 예뻐야 모든 게 예뻐 보인다는 말 아시나요. 과장 사수는 악필들이 주로 쓰는데, 응시자를 대신해 글씨를 써주는 사람입니다. 가장 많고 가장 저렴하죠. 그 다음이 거벽인데 이건 과거 문제를 풀어 주고, 시문도 지어 주는 사람이지요.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책을 펼쳐 놓고 몰래 베끼는 게 더 나아요. 어차피 사람도 많은 데다 시험관들이 별로 감독도 안 하거든요. 선접꾼은 말 그대로 주먹을 사는 겁니다. 과장에 햇볕이 내리쬐거나 하면 시험 보는 데 방해가 되잖아요. 과장에 몇 군데 나무 그늘 같은 명당이 있는데, 공부만 하던 선비들이 뛰기는 힘드니까 선접꾼을 사서 미리 자리를 잡아 놓는 것이 유리하죠. 더 확실한 건 시험장 서리를 매수하는 건데 요새는 서체로 응시자를 알 수 없도록 서리들이 답안을 베껴서 그걸로 채점하거든요. 그때 서리가 답안을 고치면 되죠.  김씨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참 많이들 하나 보군요. 비용도 많이 들겠어요.  이생 투자 없이 얻어지는 결과물이 어디 있습니까. 진사나 생원만 돼도 호칭이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운이 좋아서 지방수령 자리라도 하나 받으면 집 한 채 값이 아깝겠어요.  김씨 그런 편법이나 부정행위 말고 진짜 요령도 있나요. 예를 들어 시권(試券·답안지)은 언제 내는 것이 좋다니 하는 것들요.  이생 상담받으러 오셔서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시는군요. 뭐 제 직감상 또 오실 것 같아서 몇 가지 더 말씀드리죠. 시권은 빨리 낼수록 유리합니다. 어차피 같은 문제를 푸는데, 먼저 푸는 사람이 잘한다는 인상을 줄뿐더러 채점도 하다 보면 지치거든요. 특히 사서삼경의 암기와 해석을 쓰는 생원시 같은 경우에는 일단 한번 작성하면 고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들 하잖습니까. 아. 가끔 이름을 빼먹는 사람도 있는데, 꼭 시권에 조상 이름과 자기 이름을 써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우스워 보이지만 매년 수십 명이 이것 때문에 떨어져요. 마지막으로 종이, 종이가 중요합니다. 시험지를 각자 사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두껍고 질 좋은 종이를 사야 합니다. 시험관들 마음이라는 것이 좋은 종이를 보면 좋은 가문으로 생각하기 쉽거든요.  김씨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학문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출세를 위해 못하는 짓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걸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과장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할 텐데요.  이생 과연 그럴까요. 아드님은 분명 이 길을 따라 과거를 보든가 아니면 이 같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를 보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겁니다. 낭충지추. 이런 부정과 편법이 판치는 과장에서도 탁월한 인재는 분명히 드러나게 돼 있거든요. 절 믿으세요. 제가 조선 제일의 시험 전문가로 불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조선의 출세길, 장원급제(정구선·팬덤북스)  -조선 양반의 일생(규장각한국학연구원·글항아리)  -조선과거실록(지두환·동연)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푸른역사)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파란미디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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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 인구 10억명 시대 경제학자 맬서스 ‘2011년판 70억 인구론’

    [WHO&WHAT] 인구 10억명 시대 경제학자 맬서스 ‘2011년판 70억 인구론’

    누구는 이달 말이면 된다고 하고, 누구는 올해 말 또는 내년 3월이라고 한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이미 넘었다고도 한다. 누가 맞았는지 정확히 알거나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계 인구 70억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꼼수’가 등장했다. 유엔은 아예 31일을 ‘70억 인구의 날’로 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아동인권운동기구인 ‘플랜 인터내셔널’은 인도 북동부 우타르프라데시아주에서 태어나는 여자아이를 ‘70억번째 아이’로 공인한다고 발표했다. 1초마다 2.5명, 1분에 150명씩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죽는 사람까지 고려하면 누가 70억번째인지 어차피 알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벤트인 셈이다. 생명의 탄생은 축복이지만, 70억이 사는 지구는 마냥 축복할 수 없는 일이다.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파괴되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나고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화 ‘덕택’에 한 나라의 불행은 다른 나라의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지며 지구는 이미 완벽히 ‘연동’된 상태다. 과연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에서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해줄 만한 사람의 강연을 들어보기로 했다. 바로 역사상 가장 ‘비관적’인 책을 쓴 사람으로 꼽히는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1766~1834)다. 지난 200여년간 그의 저서 ‘인구론’에 비할 만한 논쟁을 낳은 책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유일하다고 평가된다. 인구 10억명 시대에 살았던 최초의 ‘전업 경제학자’ 맬서스는 오늘날의 지구를 어떻게 평가할까. 2011년에 부활한 맬서스의 인구론 1, 2강을 들어보자. 제1강 ‘음울한 과학’ 인구론 전형적인 영국 신사의 강연을 기대했는데,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시는 분들의 표정이 보이는군요. 네. 전 선천성 구개파열, 소위 말하는 언청이죠. 그래도 지금 보시다시피 말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은 케임브리지대 지저스 칼리지에 입학한 이후에 여러 웅변대회를 휩쓸 정도였으니 강연에 대한 실망은 접으셔도 됩니다. 강단에 올라오기 전에 좀 들어보니 다들 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시더군요. 이해합니다. 200년이 지났으니, 제가 한 일만 남고 제 자신은 희미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우선 간단히 제 배경을 얘기하면서 시작하죠. 전 대학을 졸업한 후에 목사로 일했고, 나름대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1793년에는 지저스 칼리지의 평의원이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 주요한 관심은 당시의 정치와 경제에 있었습니다. 특히 복지정책이나 식량가격정책에 대해 깊은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39살에는 이스트인디아컴퍼니 칼리지의 교수가 되면서 역사, 정치, 상업, 금융을 가르쳤습니다. 담당은 ‘정치경제학’이라는 처음 만들어진 분야였죠. 흔히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시조라고 여기지만, 스미스는 도덕철학 담당 교수였어요. 결국 제가 최초의 전업 경제학자가 된 셈이죠.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제가 오늘 여기 선 이유가 된 책. 바로 ‘인구의 원리에 관한 소론:고드윈, 콩도르세 및 기타 저술자의 연구를 논평하면서 장래의 사회개혁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함’이죠. 너무 기니까 그냥 여러분들이 부르는 대로 ‘인구론’이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은 원래 제 아버지와의 논쟁에서 시작됐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목사였던 제 아버지 대니얼 맬서스는 굉장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당시 철학가나 정치인들과 비슷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던 단계였고 양모 수요가 늘어나면서 귀족과 중간계급이 대규모 목양지를 만들기 위해 토지를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들이 도시빈민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부양 자녀수에 따라 빈민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이에 동조하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전 이 정책이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는 장기적인 악수가 될 것으로 봤습니다. 왜냐고요. 간단합니다. 초판의 서문에 전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실 책은 사라지고 이 문구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인구는 억제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설명해 보죠. 인간은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인구는 1, 2, 4, 8, 16, 32…로 증가하죠. 반면 식량은 마음대로 증산할 수 없기 때문에 1, 2, 3, 4, 5, 6, 7, 8…로 늘어납니다. 그럼 지금 인구와 식량이 1:1이라면 200년 후에는 인구와 식량의 비율은 259:9, 300년 후에는 4096:13으로 벌어지게 됩니다. 물론 식량생산 기술을 개발하면서 격차는 좁아지겠지만 균등하게 늘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인류가 파국으로 가고 있다는 거죠. 물론 인구론은 그 해결책 역시 담고 있었습니다. 인구 증가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전쟁, 기아, 질병 같은 ‘적극적 억제’와 출산율을 낮춰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예방적 억제’가 있습니다. 전 예방적 억제를 권장했습니다. 목사인 제가 어떻게 적극적 억제를 하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혼을 늦게 하거나 빈민에게 청결을 권고하지 말고, 도시의 거리와 집은 더 좁고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게 하면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인구증가를 억제하고 평균수명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잔혹하다고요. 인구증가로 모두가 파멸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구론은 ‘성경’이 아닙니다. 단지 제 스스로 생각했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제 주장을 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전 평생 악평과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사회학적으로 해결책을 고찰했던 제 이론들은 빈민구제나 복지정책에 대한 반대 근거로 사용되며 기득권만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18세기에 저보다 앞서 이런 내용을 발표한 사람은 많았죠. 단지 제 이론이 산업혁명 급변기의 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또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당시를 대표하는 이론이 되지 않았을까요. 제2강 ‘수정 인구론’ 자, 그럼 현실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2011년의 오늘을 보니 제가 예측했던 것과 확실히 다르군요. 200여년이 지났으니 인구와 식량의 비율이 259:9여야 한다는 말인데 전혀 그렇지 않군요. 원인을 분석해 보니 전 산업혁명의 초창기의 암울한 분위기에 치중했던 나머지 인류가 얼마나 놀라운 발전을 할지 미리 내다보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구와 식량에 대한 제 전제를 다시 써야 하겠죠. 다만 변명을 하자면 저는 생전에 제 의견을 고치려고 노력했다는 겁니다. 인구론은 개정판이 나왔고 그때 내용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는데, 지금 사람들은 초판만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2판에서 인구 문제 해결 가능성을 낙관하기도 했죠. 또 빈민구제도 전면적인 폐지보다는 점진적으로 상황을 보며 조절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강조했던 예방적 억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인구억제 정책을 썼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아이를 적게 낳고 있습니다. 인구증가율이 높은 저개발 국가에서는 결혼연령을 늦추고 피임을 유도하는 등 제 200년 전 주장을 쓰고 있습니다. 인구는 늘어나지만 인구증가율은 둔화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언제 실질적으로 줄어드느냐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인구증가가 식량과만 연관을 맺는 것뿐 아니라 환경파괴나 자원고갈, 기후변화 등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요. 인구증가는 아직도 막아야 하는 숙제입니다. 식량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제 전제는 분명 틀렸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산업국가와 개발도상국에서는 식량 생산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보다 높아진 경우도 있더군요. 그러나 저개발 국가에서는 아직 굶어죽는 이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비교적 충분해진 식량을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하는 분배의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입니다. 오늘의 강연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경제학은 어디까지나 당시의 사회상황에 치중해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것을 택할지는 전문가와 정책 결정권자들의 몫입니다. 제 시절에 장 바티스트 세이는 “공급이 수요을 창출하기 때문에 공급 과잉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전 공급 과잉 현상이 충분히 생길 수 있고, 이런 경우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요.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 훨씬 적합한 얘기 아닌가요. 이래도 제가 단순히 한물 간 경제학자, 거짓 예언자이기만 할까요.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없습니다. 70억이 살아가는 지구라면 더 그렇습니다. 2025년에는 80억의 지구가 됩니다. 그 이후는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박중서/네이버 인물세계사) 교양세계사(동서역사문화연구회/우물이있는집) 경제학콘서트(팀 하포드·이진원/웅진지식하우스) 부의 탄생(윌리엄 번스타인·김현구/시아출판사) 더 이코노미스트 2011년 10월 22일/‘세 섬 이야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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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다피, 나토군 아주 무서워했다”

    42년간 최고의 권좌에서 호의호식해 온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도망자로 전락한 지난 2개월여 동안 자신의 신세를 선뜻 인정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짜증을 내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다고 생포된 그의 최측근이 전했다. 카다피와 함께 붙잡힌 전 인민수비대 사령관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은 22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카다피 일행의 마지막 날들을 털어놨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카다피는 수도 트리폴리가 과도정부군에 함락된 지난 8월 22일 보좌관과 경호원 10여명만 데리고 거점 지역인 타르후나와 바니 왈리드를 경유해 곧바로 고향 시르테에 도착했다. 남부 사막지대에 은신했다거나 니제르로 도피했을 것이라는 그간의 추측을 뒤엎은 것이다. 시르테행은 4남 알무타심이 외부의 예상을 역이용한 결정이었다. 카다피는 민가에 은신하면서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지?”, “왜 물이 없어?”라고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고 한다. 그는 쌀과 파스타로 연명했다고 한다. 또 카다피의 지지자들이 그를 ‘호전적’이라고 선전한 것과 달리 카다피는 전투에 나서지 않았으며 총 한 발 쏘지 않았다고 한다. “카다피는 나토군을 아주 무서워했다.”고 이브라힘은 말했다. 카다피는 코란을 읽거나 전화를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위성전화뿐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지지자들에게 투쟁을 독려하는 육성 메시지를 시리아 방송사로 전달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 주위에서 권력을 이양하라고 설득했지만, 카다피는 “이곳은 내 조국이다. 나는 1977년에 권력을 리비아 국민에게 모두 넘겼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특히 카다피보다는 아들 알무타심이 더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주 전 과도정부군의 포위망이 시르테 중심부까지 좁혀오자 카다피 부자는 주택 2곳을 오가며 공격을 피해 다녔다. 궁지에 몰린 카다피는 결국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생가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20일 새벽 3시를 출발시간으로 정했다. 그러나 무질서했던 카다피군의 혼란으로 출발이 지연되면서 차량 40대로 구성된 카다피 일행은 오전 8시에야 이동을 시작했고, 카다피와 최고사령관, 친척, 이브라힘이 탄 도요타 랜드크루저는 30분 만에 나토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파편을 맞고 정신을 잃은 후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는 이브라힘은 “리비아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기고] 카다피의 종말과 김정일의 미래/한기범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전 국정원 3차장

    [기고] 카다피의 종말과 김정일의 미래/한기범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전 국정원 3차장

    무아마르 카다피가 리비아 국민의 저항 끝에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사살되었다. 카다피의 처참한 종말을 지켜본 김정일은 내부의 위험요소를 차단하느라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 올해 초부터 시행해 온 재외 북한인과 주북 외국인 감시, 국경 경비, 정보기술(IT)기기 통제 강도를 높이고 핵 보유의 정당성 선전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러한 민감 반응은 통치 행태가 유사한 카다피 정권의 말로가 자신들의 미래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김정일과 카다피의 지배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한 세대를 넘는 기간 장기 독재체제를 유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정일은 1974년 2월에 후계자로 내정된 이래 사실상 37년간 북한을 통치해 왔다. 카다피는 1969년 9월 무혈 쿠데타를 주도하여 정권을 장악한 이래 42년간 절대 권력을 유지해 왔다. 장기 독재를 위해 현대 국가에서는 찾기 어려운 기형적 정치체제를 구축하면서, 부자세습을 추진해 왔다는 점도 같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자신의 공포통치를 정당화하고자 선군사상을 가미했다. 카다피는 자신의 지배체제를 ‘대중의 국가’를 의미하는 ‘자마히리야’라고 부르며, 이슬람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국민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와 석유회사 국유화 등 경제적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김정일이 2009년 1월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후계 안착에 안간힘을 써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카다피 또한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을 유력한 후계자로 점찍고 권력 이양을 준비해 왔다. 절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 보니 두 사람 모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철저히 유기한 점도 공통점이다. 김정일은 매년 수십 회의 공개처형을 하고, 6곳의 정치범수용소에 15만여명을 구금하며 인권을 짓밟아 왔다. 카다피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수천 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참담한 실정의 국민과 달리 독재자의 아들들은 호화 사치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닮았다. 후계자인 정은은 자신의 호화 집무실 신축에만 200만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끝으로 반인륜적인 테러를 자행한 점도 유사하다. 김정일은 서울올림픽 방해를 목적으로 1987년 11월 KAL기를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하여 우리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객 115명을 희생시켰다. 카다피는 1986년 4월 미 공군의 트리폴리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1988년 12월 팬암기를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공중 폭파시켜 승객 전원과 지역주민을 합쳐 270명을 죽게 했다. 꺼림칙했던지 항공기 테러 주모자인 두 사람 모두 항공기 탑승을 꺼려 왔다. 물론, 북한은 리비아와는 달리 종족 간 갈등이 없고, 리비아보다 물리적 통제력이 발달되어 있어 쉽게 민간봉기로 붕괴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시점이 문제일 뿐 세계적인 민주화 흐름에 북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북한에서 리비아와 같은 혼란이 발생하기보다는 개혁·개방 정권으로 연착륙하기를 기대한다. 북한은 리비아 사태에서 핵 보유의 정당성이 아니라, 인권·민생 향상으로의 정책전환을 교훈으로 찾아야 한다.
  • 밟히고 잘리고… 독재자 시신 수난

    밟히고 잘리고… 독재자 시신 수난

    스스로 ‘아프리카의 왕’이라 칭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시신이 정육점 냉동창고 바닥에 나뒹구는 신세로 전락하면서 세계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폭압에 분노한 시민들의 분노에 죽어서도 조롱거리로 유린당한 사례는 이전 독재자들에게도 반복돼온 역사였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가 대표적인 예다. 무솔리니는 1945년 연인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스위스로 도주하다 이탈리아 유격대에 붙잡혀 즉석 재판을 받고 총살당했다. 이후 두 사람의 시신은 밀라노로 보내져 시민들에게 얼굴 형태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밟혔다. 로레토 광장의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리는 수모도 겪었다. 무솔리니가 죽은 지 64년이 지난 2009년 11월 말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무솔리니의 뇌 일부분과 혈액을 1만 5000유로를 최초 가격으로 정해 매물로 내놓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시 이베이 측은 죽은 사람의 신체 일부는 경매에 부칠 수 없다며 해당 경매를 삭제했다. 1989년 민중봉기로 축출돼 총살형을 선고받은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18~1989)와 아내 엘레나는 160여 발의 총탄 세례를 맞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들의 시신은 지난해 차우셰스쿠의 자녀들이 신원 확인을 요청하면서 다시 파헤쳐지기도 했다. 빈민층의 사생아에서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1919~1952). 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죽은 그녀의 시신은 포퓰리즘의 대표적 사례인 페론주의의 부활을 우려한 아르헨티나 군부에 의해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떠돌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코가 부러지고 발이 손상되는 등 심하게 훼손됐다. 후안 페론 대통령도 사망한 뒤인 1987년 손이 잘려나갔다.독일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무솔리니의 처형 소식을 전해들은 다음 날 권총으로 자살을 하기 전 측근들에게 시신을 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총살·교수형·자살… 독재의 끝은 비참했다

    총살·교수형·자살… 독재의 끝은 비참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21일 무아마르 카다피처럼 전제 권력을 휘두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세계 각국의 독재자 15명을 정리해 보도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 아직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당신들도 떨고 있습니까

    당신들도 떨고 있습니까

    42년간 리비아를 철권 통치했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하자 현재 권좌를 누리고 있는 독재자들의 거취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재스민 혁명 이후 아직까지 아랍권에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독재자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다. 카다피 사망 이후 시리아 국내외 반정부 인사들은 알아사드 대통령이 카다피의 뒤를 잇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21일 전했다. 실제로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승리를 선포하는 순간 시리아 홈스에서는 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했다. 현지 통합시리아혁명위원회 대변인은 “주민들은 ‘오늘은 기쁨과 희망의 날’이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면서 “모두가 너무 기쁘고 알아사드가 다음 차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알아사드는 30년간 집권한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승계받아 11년째 집권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당국의 초강경 시위 진압으로 2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살레 예멘 대통령은 지난 6월 대통령궁 경내에서 폭탄 공격으로 중화상을 입고 치료차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두 달 넘게 체류하다 지난달 말 귀국했다. 카다피의 몰락을 지켜본 살레로서는 자신이 거부했던 걸프협력협의회(GCC)의 중재안에 다시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앞서 아라비아반도 6개국으로 구성된 GCC는 살레의 처벌 면제를 보장하는 대신 조기 퇴진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예멘의 야당은 살레의 아들 아흐메드가 최정예 부대 공화국수비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살레의 퇴진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보고 GCC 중재안을 선호해 왔다. 그러나 청년단체를 주축으로 한 시위대는 살레를 즉각 퇴진시키고 시위 강경 진압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최근호에서 앞으로 무너질 독재자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비롯해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쿠바의 카스트로 형제,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등을 꼽았다. 포린 폴리시는 김 위원장과 고(故) 김일성 주석이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국가로 만들었으며 북한에는 현재 약 15만명이 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무가베 대통령은 집권 후 3만명에 이르는 소수 민족을 학살했을 뿐만 아니라 지지자들을 통해 야당 인사까지 살해하는 등 통치 행태가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권력을 물려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도 언론과 인터넷 등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나 최근 경제 침체로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 벨라루스의 루카셴코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고 있다고 이 잡지는 덧붙였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주말 영화]

    ●로드오브워(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1992년 우크라이나에서 자그마치 4조원어치의 무기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라진 무기들은 세계 각국의 무기 밀거래상들에 의해 공공연히 유통되기 시작하고, 이 와중에 ‘전쟁의 제왕’(Lord of War)이라 불리는 남자 유리 올로프(니콜라스 케이지)가 나타난다. 전 세계의 큰 전쟁 중 열에 여덟은 유리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얘기될 정도로 그는 ‘전쟁의 제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금액만 맞는다면 세계의 독재자, 전쟁광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위험한 거래를 만들어 간다. 유리는 승승장구하고, 이 때문에 국제 인터폴 잭(에단 호크)의 집요한 추적을 받게 되지만 거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또 거래가 더욱 위험해지면 위험해질수록 짜릿한 쾌감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친동생까지 끌어들이며, 자신의 무기 밀거래 사업의 범위를 급격히 넓혀 가며 전쟁의 제왕으로서의 그 위세를 더욱 높이게 되고, 아프리카 내전 독재자와의 거래 도중 동생을 잃게 된다. 결국 독재자와의 최후의 협상 테이블 앞에 자신의 운명마저 내던지게 되는데….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이야기를 통해 세상이 지탱된다고 믿는 수도승 파르나서스 박사. 그는 악마 미스터 닉이 제안한 내기에서 승리해 영생을 얻고, 수천년이 흘러 사랑에 빠진 박사는 젊음을 되찾고자 다시 악마와 거래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하나뿐인 딸 발렌티나를 열여섯 번째 생일날 악마에게 넘겨주기로 한다. 시름에 잠긴 박사 앞에 정체불명의 사내 토니가 나타나고, 박사는 딸을 되찾는 조건으로 악마와 또 한번 내기를 한다. 바로 상상세계에서 ‘5명의 영혼을 먼저 사로잡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한편 사기꾼 토니에겐 작은 피리가 하나 있다. 바로 목매달릴 때마다 삼켜 숨구멍 삼아 살아나는 비장의 무기이다. 약삭빠른 토니는 박사를 도와 침체에 빠진 상상극장을 부활시킨다. ●스팅(EBS 토요일 밤 11시 40분) 1936년 뉴욕의 갱 두목 도일 로네건(로버트 쇼)의 자금 운반책이 거리에서 두 명의 사기꾼에게 거금을 빼앗긴다. 두 사람의 사기꾼은 바로 루터와 후커다. 나이가 든 루터는 이것을 계기로 은퇴를 결심하지만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후커는 설상가상으로 부패한 경찰 스나이더에게 쫓기다 루터가 생전에 추천한 헨리 곤돌프(폴 뉴먼)를 찾아간다. 곤돌프는 루터가 로네건의 부하에게 살해된 것을 알아내고 복수를 계획한다. 로네건이 시카고로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곤돌프는 로네건이 탄 기차에 올라 그와 함께 큰 도박판을 벌인다. 그 와중에 로네건의 지갑을 훔친 후커는 이를 이용해 로네건에게 접근한다. 이것은 바로 로네건을 경마 사기에 끌어들이기 위한 두 사람의 첫 번째 계략이었다.
  • 국제사회 반응

    거의 모든 나라가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망을 환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카다피의 죽음은 서방세계가 벌인 군사행동의 정당성을 입증했다.”면서 “이는 또한 다른 중동 독재자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철권통치는 반드시 무너진다.”고 밝혔다. 이어 “리비아는 이제 안정된 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멀고 힘든 길을 가야 한다.”며 “미국은 (리비아의) 조속한 임시정부 구성과 함께 첫 번째 자유·공정 선거를 기대한다.”고 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리비아 국민에게 새 장이 열린 것”이라며 새 정부가 민주개혁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리비아 국민은 이제 민주적인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더 큰 기회를 갖게 됐다.”고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마침내 평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거듭날 길이 열렸다.”고 했다. 이들 4명의 정상은 이날 화상통화를 통해 향후 리비아 정국에 관해 논의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에서 “카다피군과 반군 모두 평화적으로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면서 “지금은 복수가 아니라 치유와 재건을 할 시간”이라고 밝혔다. 교황청도 “카다피의 죽음이 비극적인 유혈극을 끝낼 것”이라고 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카다피 치하의 인권 유린 혐의자 전원을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도 함께 성명을 내고 카다피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이 투항해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카다피가 “순교자”라며 애도를 표시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그들은 그를 암살했고, 이는 또 다른 잔학행위”라며 “우리는 카다피를 위대한 전사 겸 혁명가, 순교자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사설]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와 리비아 재건

    리비아를 42년 동안이나 철권 통치해 왔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결국 고향의 은신처에서 발각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카다피의 죽음으로 리비아의 내전은 일단 종식된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이제 리비아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적 재건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카다피의 최후에 대해 국제사회는 일제히 환영을 표시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폭정의 세기가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다른 중동 독재자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면서 “철권 통치는 반드시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카다피의 죽음으로 지구촌에 남은 장기 독재자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 세 명 정도다. 특히 김 위원장은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를 보며 핵무기 보유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김 위원장이 최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조건 없는 6자회담 개최 등을 언급했지만 북한 정권이 더욱 몸을 사리며 주민들을 통제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극도로 예민해진 북한 정권의 움직임이 한반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도록 동맹국 및 주변국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카다피가 수십년간 차지해 왔던 권력의 공백을 메워가며 리비아를 재건해 나가는 것도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반(反)카다피 투쟁을 이끌어온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있기는 하지만 140개가 넘는 부족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1500억 달러(약 17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카다피 일가의 은닉 재산을 어떻게 찾아내, 어떤 방식으로 리비아의 재건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관련국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그동안 리비아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과 EU, 중국, 러시아 등이 보여준 견해차에서 드러나듯이 리비아를 재건하는 과정에서도 원유 등 각종 개발 사업권을 둘러싼 각국의 신경전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과정에서 리비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로서는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 쏘지마! 쏘지마! ‘42년 철권’ 목숨 구걸했다

    쏘지마! 쏘지마! ‘42년 철권’ 목숨 구걸했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한때는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린 ‘젊은 영웅’이었으나 42년간의 철권통치로 악명을 날린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과도정부군(NTC)의 총에 맞아 결국 숨을 거뒀다. 최후의 순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국가원수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콘크리트 배수로에 숨어 있다 발각된 그는 총을 겨누는 병사에게 “쏘지 마, 쏘지 마.”라며 목숨을 구걸했다. 지난 8월 트리폴리 함락 이후 도피 중이던 카다피 전 국가원수는 20일 최후의 은신처로 지목돼 온 고향 시르테에서 체포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사망했다고 로이터와 알자지라 등 외신들이 NTC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로써 지난 2월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8개월에 걸친 리비아 사태는 막을 내렸다. 리바아 과도국가위원회(NTC)의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이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다.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압델 하페즈 고카 NTC 대변인도 “폭정과 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면서 “카다피는 독재자의 운명을 맞았다.”고 말했다. NTC 관계자에 따르면 카다피는 시르테 근처에서 생포될 당시에 양쪽 다리에 상처를 입었고, 앰뷸런스로 이송 도중에 부상이 심해 사망했다. 카다피는 머리에도 총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NTC측은 카다피가 체포 당시 황금으로 만든 권총을 든 채 카키색 군복과 터번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두 다리에 총을 맞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고 밝혔다. 카다피는 배수관에 숨어있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시민군을 향해 “쏘지마! 쏘지마!”라고 외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다피의 사망설에 대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아직까지 이 같은 언론 보도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NTC는 사실상 최종 승리를 선언했다. NTC 지휘관 유누스 알 압달리는 “시르테가 해방됐고 카다피군은 없다.”고 말했다. 카다피의 4남 무타심과 카다피의 군 최고책임자도 NTC군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NTC군 병사들과 시민들은 시내 중심부에 모여들어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며 환호했고 승리를 자축하는 자동차 경적이 곳곳에서 울려 나왔다. 카다피는 지난 2월 15일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뒤 “결사항전”을 공언하며 퇴진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나토군이 벌인 5개월여간의 융단폭격과 반군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지난 8월 수도 트리폴리가 무너지면서 카다피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이후 카다피의 행방을 둘러싼 각종 추측이 무성했지만 실제 은신처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다만, 그가 여전히 리비아 내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고향인 시르테와 바니 왈리드 등이 유력한 은신처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NTC 내부에서는 최근 그가 남부 사막의 사브하에 은신했거나 인접 아프리카 국가에서 병력을 모집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혼선을 빚기도 했다.  카다피 사망 소식은 시르테가 NTC군에 함락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얼마 안 돼 전해졌다. 이날 오전 8시 30분 나토군이 공습을 펼쳤고, 이어 NTC군이 최후의 공격을 감행해 90분 만에 시르테를 점령했다. 카다피는 나토군의 공습을 피해 달아나다 체포됐으며, 낮 12시 45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녀·유대근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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