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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액 낙찰된 히틀러 ‘죽음의 전화기’…알고보니 가짜?

    거액 낙찰된 히틀러 ‘죽음의 전화기’…알고보니 가짜?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최후까지 사용했다는 이유로 거액에 낙찰된 전화기가 가짜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최근 독일 일간 프랑크프루트 알게마이네 짜이퉁 등 현지언론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의 한 경매장에서 24만 3000달러(약 2억 7000만원)에 낙찰된 전화기가 가짜로 보인다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이 전화기는 나치 상징 문양인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특히나 히틀러는 생전 마지막까지 이 전화기로 유태인 학살 등 수많은 명령을 하달해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대량살상무기로 지칭되기도 했다.     낙찰된 히틀러 전화기가 가짜라고 주장하고 나선 사람은 프랑크푸르트 통신박물관 이사인 프랑크 네이걸과 미국 비영리기관인 전화박물관 등이다. 네이걸은 "전화기 본체는 독일 최초의 전기공업회사인 지멘스운트할스케에서 제작됐으나 수화기는 영국에서 만들어졌다"면서 "히틀러가 사용했을 당시 이같은 방식으로 전화기를 제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마도 종전 후 영국에서 조립된 가짜 전화기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한 네이걸은 항상 최고 품질의 제품을 사용하는 히틀러가 맞춤형도 아닌 단순하게 빨간색으로 도색된 전화기를 사용한 점과 다이얼이 있는 것도 수상하게 여겼다. 네이걸은 "히틀러는 교환원을 통해 원하는 사람 모두와 통화할 수 있었다"면서 "이 때문에 전화기에 다이얼이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밝혔다. 한편 경매회사인 알렉산더 히스토리컬 옥션이 밝혔던 이 전화기에 얽힌 사연은 역사책의 한 페이지 수준이다. 지난 1945년 4월 30일 당시 히틀러는 ‘총통의 벙커’(Fuhrerbunker)라 불리는 베를린 비밀 지하벙커에서 역사적인 총성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벙커로 소련군이 조사에 들어갔고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이 전화기다. 히틀러의 이름과 나치의 휘장이 새겨진 이 전화기를 통해 히틀러는 수백 만명의 유태인 학살과 각종 전투를 지시했다. 이 전화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종전 후 소련군이 비밀벙커를 조사하던 당시 서방에서는 영국군 준장인 랄프 레이너가 연락책으로 투입됐다. 조사가 끝난 후 레이너 준장은 소련군으로부터 이 전화기를 선물받았고 그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친 채 개인적으로 보관해 왔다. 이후 레이너 준장은 1977년 사망했고 전화기는 그의 아들인 라눌프가 물려받아 이번에 경매에 나와 익명의 수집가에게 낙찰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北, 韓에 책임 떠넘기고 발뺌 전략… 남남갈등 조장 ‘물타기’

    北 20장 분량 “허점·모순” 억지… 담화 발표한 조선법률가委 주목 북한이 23일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김정남 피살 배후설을 부인한 것은 그동안 위기 때마다 보여 온 ‘발뺌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음모책동’, ‘반공화국모략소동’, ‘낭설’ 등의 주장을 펼치며 ‘물타기’에 나선 것이다. 사건 발생 이후 침묵을 지켜온 북한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외교관이 연루되는 등 ‘조직적 개입’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자 열흘 만에 공식 입장을 내놨다. 원고지 20장 분량의 담화는 말레이시아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허점과 모순투성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담화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객관성과 공정성이 없이 그 누구의 조종에 따라 수사방향을 정하면서 의도적으로 사건 혐의를 우리에게 넘겨씌우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오직 하나 박근혜와 자유한국당, 국가정보원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물타기’를 시도했다. 담화에서 김정남이나 김철(김정남의 여권상 이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우리 공화국 공민’이라고 지칭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백두혈통인 김정남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정권을 대변해 조선중앙통신에 담화를 발표한 ‘조선법률가위원회’라는 단체의 실체에도 관심이 쏠린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 단체는 2002년 10월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산하 비상설조직으로 상설됐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 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방침과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앞서 북한은 과거에도 주요 사건 때마다 ‘모략극’ 주장을 ‘전가의 보도’처럼 제기해 왔다. 2010년 천안함 사태 때는 “남한 정부가 억지로 북한과 연계시키려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83년 발생한 아웅산 테러 사건과 1987년 KAL기 폭파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아웅산 사건 직후 “독재자 전두환을 제거하려던 남조선 인민의 의거”라며 자신들의 개입 사실을 부인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음모책동’이라고 규정한 북한은 김현희의 범행이 확인된 KAL기 폭파사건 때도 “남조선과 일본이 내놓은 허위 날조”라고 강변했다. 한편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담화 내용에 대해 “예상은 했지만 내용을 보니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억지주장이자 궤변”이라고 밝혔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김한솔 행적 궁금증…폐쇄 전 SNS엔 민주주의 성향·여친 공개

    김한솔 행적 궁금증…폐쇄 전 SNS엔 민주주의 성향·여친 공개

    말레이시아 당국이 친족의 방문을 전제로 김정남의 시신 인도 방침을 밝힌 가운데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22)의 행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3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습 살해된 이후 김한솔이 아버지의 시신 인수를 위해 말레이시아에 방문할 것이란 소문이 강하게 돌았다. 그러나 김한솔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던 항공기 탑승자 명단에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고, 실제로 목격했다는 증언이나 보도도 나오지 않아 입국설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김한솔은 김정남이 1995년 동거녀인 이혜경 사이에 낳은 아들로 2011년부터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 분교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이후 프랑스의 명문 르아브르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9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폐쇄된 김한솔의 SNS 프로필에는 “공산주의 또는 민주주의(Communism or Democracy)?”라는 질문에 ‘민주주의’라고 표시됐다. 김한솔은 2012년 10월 핀란드 출신의 엘리사베트 렌 전 유엔 사무차장과의 인터뷰에서 “삼촌(김정은)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아버지 김정남이 가난한 인민들을 항상 생각하라고 가르쳐 왔으며, 대학 졸업 후에는 북한에 대해 인도주의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인민들을 돕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스니아국제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연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한솔이 올린 사진에 상대 여성은 “I love you too yeobo(나도 사랑해 여보)”라고 적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소니아(Sonia)’라는 이름의 이 여성이 현재 옥스퍼드 대학에 재학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밖에도 김한솔은 SNS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굶고 있는데 나만 호의호식하는 게 미안하다” 등의 발언을 올린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 시사평론가 리여우치는 홍콩 인터넷매체 홍콩01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부친의 복수를 하거나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판할 경우 이 또한 김정은 정권으로부터 제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은밀하게 위험하게… 암살, 세계사를 뒤집다

    [글로벌 인사이트] 은밀하게 위험하게… 암살, 세계사를 뒤집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을 계기로 ‘암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정인을 살해한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는 테러의 범주에 들지만, 은밀하게 이뤄지기에 따로 암살로 분류한다. 암살은 종종 나라 간, 종족 간 전쟁이나 대학살을 불러오면서 격동의 역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암살된 사라예보 사건은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또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암살은 대통령 암살이라는 흑역사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반면 40가지 이상의 암살 계획에서 살아남은 아돌프 히틀러, 638번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피델 카스트로도 있다. 르완다 대학살의 불씨가 된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 암살과 의문투성이인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탈레반의 수장인 오사마 빈라덴의 암살 등도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의 흐름을 바꾼 ‘암살’ 사건을 알아봤다.●링컨 저격 배후, 아직도 설왕설래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국민을 위한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의 정부’라는 짧은 말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던 대통령이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평등과 화합을 위해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알리며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며칠 뒤인 1865년 4월 14일 오후 10시 12분 포드극장 특별석에서 존 윌크스 부스가 뒤에서 쏜 총을 맞고 9시간 후 생을 마감했다. 미국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암살로 숨진 첫 미국 대통령이라는 아이러니한 역사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암살자는 존 윌크스 부스란 배우였지만 배후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왕설래하고 있다. ●100일간 80만명 목숨 앗아간 세계사의 오점 1994년 4월 한 사람의 암살로 촉발된 르완다 대학살은 100여일 동안 8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우리 세계사의 오점 중 하나로 기록됐다. 르완다의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미사일에 격추된 것이 원인이었다. 후투족 출신인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은 당시 탄자니아에서 반군과 평화협상을 마친 뒤 귀국하다 변을 당했다. 르완다의 다수족인 후투족은 이를 빌미로 소수 투치족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그야말로 보이는 대로 죽인 것이다. 100일여 동안 공식적으로 80여만명, 비공식적으로 117만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에 1만명, 1시간당 400명, 1분당 7명이 살해당한 것이다.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라예보의 총성, 4년간 전쟁 소용돌이 암살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이다. 1914년 6월 28일 오전 10시 50분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리는 총성이 울린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당시 19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후계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태운 차 앞으로 튀어나와 차 안을 향해 총을 쐈다. 페르디난트 대공은 목에, 부인 조피는 복부에 총에 맞고 두 사람 다 즉사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암살의 책임을 세르비아 정부에 돌리며 최후통첩했고, 7월 28일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4년여 동안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40번의 암살 계획에서도 살아남은 히틀러 나치 독일의 독재자이며 공포정치의 대가였던 아돌프 히틀러는 40번의 암살 계획에서 모두 살아남았다. 2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달으며 독일에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독일군의 일부 핵심 관계자가 히틀러를 없애고 미국과 손을 잡을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시도된 크고 작은 암살이 알려진 것만 40번이나 된다. 히틀러는 운이 좋게 모든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는다. 특히 영화 ‘작전명 발키리’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944년 7월 20일의 폭탄 암살 시도가 대표적이다. 베를린 출신의 참모장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가지고 갔던 서류가방 폭탄이 라슈텐베르크 지하벙커에서 터지면서 개혁파의 성공을 예고했다. 그러나 당시 히틀러는 평소와 달리 지하벙커가 아닌 지상 참모본부 오두막에서 회의를 하는 바람에 목숨을 건지고 암살에 참여한 수백 명의 독일 장교와 가족들을 처형했다. 이 사건이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대표격이다. 만약 히틀러 암살이 성공했다면 지금의 세계사가 어떻게 변했을지 예상하기 어렵다. ●암살 올림픽의 금메달, 피델 카스트로 미국의 눈엣가시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2006년 한 다큐멘터리에서 “638번의 암살을 피한 나는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는 올림픽이 있다면 금메달을 땄을 것”이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59년 쿠바의 친미정권을 몰아내고 공산화를 이룬 카스트로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등 각종 정보기관으로부터 다양한 암살 공격을 받았다. 독약이 묻거나 폭탄이 장착된 시가를 이용한 암살 계획부터 김정남 암살처럼 독약이 묻은 천이나 독펜, 스프레이 등 모든 암살 도구가 동원되기도 했다. 수백 번의 암살 고비를 넘겼던 카스트로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2016년 11월 25일 90세의 나이로 숨졌다. 2015년 미국과 쿠바는 50년 만에 수교를 재개했다. 카스트로 암살이 성공했다면 쿠바 역사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트럼프 “장관 면접 구경와라” 녹취 유출

    트럼프 “장관 면접 구경와라” 녹취 유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후 파티에서 “장관 면접 구경와라”라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내일 많은 인터뷰가 있다. 재무장관, 국무장관 후보자와도 면접한다. 와도 좋다. 재미있을 것이다”는 당시 트럼프 발언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입수해 18일(현지시간) 공개했다. 트럼프 당시 당선인은 당시 각료와 백악관 참모 후보자들의 면접 계획을 소개하면서 “장군들과 독재자들, 모두 있다. 정말 우리는 내일 인터뷰한다. 15∼25분 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이 우리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모든 이들이 온다.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오고 싶으면 와도 좋다”고 반복해 말했다. 실제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던 밋 롬니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각료 후보자들이 이 골프클럽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승리 후 사람들을 자신의 리조트로 불러놓고 어떤 언행을 보여줬는지 이 테이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남 아들이자 ‘적통’ 김한솔, 행방 묘연…가장 위태로운 처지

    김정남 아들이자 ‘적통’ 김한솔, 행방 묘연…가장 위태로운 처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피살됐다. 김정남이 피살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잠재적 위협으로 여길 또 다른 ‘백두혈통’은 누가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첫손에 꼽히는 인물은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22)이다. 김한솔은 프랑스 유학을 마친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김한솔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맏손자다. 김일성-김정일-김정남을 잇는 김씨 일가의 사실상 ‘장손’이자 ‘적통’이다. 아버지 김정남이 사망하면서 김정일의 첫 동거녀 성혜림(2002년 사망)쪽 후손 가운데 생존해있는 대표적 인물이 됐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이복 형제자매를 지칭하는 ‘곁가지’ 가운데서도 가장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셈이다. 김한솔은 프랑스의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 캠퍼스를 졸업하는 등 서구 교육을 받은 ‘신세대’다. 숙부인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 체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거침없이 견해를 밝혀 왔다. 특히 2013년 핀란드 TV와의 인터뷰에서는 김정은이 어떻게 김정일의 후계자가 됐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면서 “그(김정은)가 어떻게 독재자(dictator)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북한 체제에 대해 나름의 비판적 시각을 숨기지 않았던 조카 김한솔도 이복형 김정남과 마찬가지로 김정은의 ‘눈엣가시’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김한솔이 아버지의 사망 이후에도 김정은 체제에 대해 예전처럼 자유롭게 발언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그는 프랑스에서 학업을 마치고 지난해 마카오 또는 중국 등지로 돌아간 뒤 소재가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국가정보원은 15일 김한솔이 마카오에 체류 중이라고 밝혔다. 신변이 위태로워진 그가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는 관측이 엇갈린다. 아버지처럼 사실상 중국 당국의 비호를 받으며 외국에서 잠행을 계속하거나, 북한으로 돌아가 삼촌 김정은에 철저히 복종하며 조용히 살아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다만, 김한솔을 북한땅에 들이는 것은 김정은에게 ‘턱밑의 칼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작다. 국내 대북 전문가 일각에서는 신변 보호를 위해 김한솔을 한국 등 안전한 곳으로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도 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몰락한 대통령, 세상과 마주하다!…‘어느 독재자’ 예고편

    몰락한 대통령, 세상과 마주하다!…‘어느 독재자’ 예고편

    세계적인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어느 독재자’ 티저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됐다. 영화 ‘어느 독재자’는 쿠데타로 인해 하루아침에 몰락한 독재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손자와 망명을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로드무비다. 공개된 포스터에는 황량한 비포장도로를 걷는 대통령과 손자의 뒷모습이 담겨 있다. ‘몰락한 독재자, 자신이 군림했던 세상과 마주하다’라는 카피는 쿠데타로 인해 도망자 신세가 된 독재자가 만나게 될 새로운 현실을 궁금케 한다. 함께 공개된 티저 예고편은 “이 자리의 가치를 보여주마”라며 어린 손자에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독재자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을 향해 ‘대통령을 위한 나라는 필요 없다’며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대의 강렬한 모습이 이어진다. 쿠데타 이후 혼란에 빠져 허름한 차림으로 손자와 도주하는 독재자의 모습은 앞으로 전개될 예측불허 스토리에 대해 호기심을 자아낸다. ‘가베’, ‘칸다하르’ 등을 연출한 세계적인 거장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어느 독재자’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물론, 제50회 시카고국제영화제 골드휴고 작품상, 제71회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한 화제작이다. 영화 ‘어느 독재자’는 오는 3월 개봉 예정이다. 15세 관람가. 120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북한 김정남 여동생 김설송은 감금”…아들 김한솔은 어디로?

    “북한 김정남 여동생 김설송은 감금”…아들 김한솔은 어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독살된 가운데 이복 여동생 김설송이 감금됐다는 주장이 이 제기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성혜림 사이에 태어났으며, 김설송은 김정일과 둘째부인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나 두 사람은 이복 남매지간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15일 “김정남 여동생인 김설송이 높은 지위는 아니지만 (노동당 서기실에서) 힘을 쓰는 위치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김정남 암살사건과) 연관이 있어 모처에 감금됐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김설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정보기술(IT) 사업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행방도 현재 묘연한 상태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던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지난해 학교를 졸업해 마카오 또는 중국 등지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려다 피살된 것과 관련, 마카오에 머물고 있는 아들을 만나려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한솔은 2012년 10월 핀란드 yle-TV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독재자’로 표현했다. 그는 2012년 영어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삼촌 김정은에 대해선 “아버지(김정남)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이는 할아버지(김정일)와 삼촌 간의 문제였고, 두 사람 모두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김정은)가 어떻게 독재자(dictator)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한솔은 2013년 12월쯤 프랑스의 명문 르아브르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포착된 것이 마지막이다. 당시는 김정남을 지원해왔던 장성택 전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이 숙청된 직후였다.그는 대학은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가 취업했다는 소식은 들려지 않았다. 그와 함께 공부한 현지 학생들은 “한솔씨가 ‘대학 졸업 후 영국의 한 대학으로 진학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영국으로는 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솔씨는 당시 친구들에게 “마카오나 싱가포르에 들르게 되면 연락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한솔씨의 거처를 추정할 단서지만 이후 한솔씨가 포착된 적은 없다.김한솔은 김정일의 장손이다. 평양에서 태어나 아버지 김정남을 따라 마카오에서 자랐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국제학교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UWC)’ 모스타르 분교를 거쳐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남 아들 김한솔, 프랑스서 학업 마치고 돌아가…신변 위협 가능성(종합)

    김정남 아들 김한솔, 프랑스서 학업 마치고 돌아가…신변 위협 가능성(종합)

    14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이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 피살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아들인 김한솔의 신변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한솔은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녔고, 학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솔은 지난해 마카오 또는 중국 등지로 돌아간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김정일의 맏손자인 김한솔은 2013년 9월 프랑스의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 캠퍼스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했다. 파리에서 두 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이 대학은 다양한 국가에서 유학온 학생이 200명가량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정치, 국제관계, 경제, 역사, 법 등과 관련된 학과들이 있다. 수업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된다. 프랑스 학제에 따라 교육기간은 3년이며 2년간 르아브르에서 공부하고 나서 나머지 1년은 이 학교와 제휴를 맺은 400여 개 외국 학교에서 유학하거나 현장 실습을 한다. 김 군은 2013년 5월 보스니아의 국제학교인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 모스타르 분교를 졸업한 뒤 자택이 있는 마카오에서 머무르다 프랑스로 건너와 이 학교에 들어갔다. 입학 직후인 그해 10월에는 핀란드 TV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어떻게 김정일의 후계자가 됐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아버지(김정남)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이는 할아버지(김정일)와 삼촌(김정은) 간의 문제였고 두 사람 모두 (내가) 만난 적이 없어서 그(김정은)가 어떻게 독재자(dictator)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군은 김정남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된 직후인 2013년 12월부터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프랑스 당국의 밀착 경호를 받았다. 2학년때인 2014년 10월에는 캠퍼스를 찾은 연합뉴스 취재진의 학교생활 등에 대한 질문에 침묵을 지키다 “그만하시죠”라고 말하며 기숙사 문을 닫고 들어가기도 했다. 짙은 색 외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김군은 보통 한국 대학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기숙사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학교를 오갈 때 사복요원이 김군을 경호하고 이들의 차로 학교에 오가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프랑스 정부의 강도 높은 보호를 받아왔다. 김정남은 아들이 2014년에 파리 시내의 한 호텔에 머무는 모습이 출장 온 한국 대기업 직원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그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를 수차례 다녀간 것으로 추정된다. 학제에 따라 김군은 2015년 9월까지만 파리에 있고 나머지 1년은 다른 국가에서 교환학생을 지낸 뒤 졸업을 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남 피살…아들 ‘김한솔’ 신변 위협 가능성

    김정남 피살…아들 ‘김한솔’ 신변 위협 가능성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현지시간 13일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등 가족들의 신변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현지시간 13일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고 정부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김정남의 갑작스런 죽음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결국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이복형을 암살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TV조선에 따르면 복수의 정부 관계자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여간첩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등 가족들 신변에도 이상이 생기는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한솔은 2012년 핀란드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삼촌 김정은을 독재자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당시 김한솔은 “살면서 (김정일과 김정은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삼촌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김정남과 둘째 부인 이혜경 사이에 태어난 김한솔은 아버지가 권력에 밀려나면서 해외를 전전했다. 마카오와 중국 등지를 떠돌다가 2011년 말부턴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 분교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했다. 2013년 말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신변 이상설이 돌았지만 프랑스 정부의 밀착 경호 덕에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솔은 김정남의 영향을 받아 개혁개방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선제타격시 엄청난 재난 가져올 것”

    “北 선제타격시 엄청난 재난 가져올 것”

    “북핵은 사기·해법 중 택일이 본질…재난 발생 전에 김정은 들어내야”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9일 최근 미국 일각에서 거론되는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 “선제타격 시 김정은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엄청난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이날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북아안보정세 전망과 대한민국의 선택’ 국제 콘퍼런스에 토론자로 참석해 “김정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은 지난 시기 독재자의 말로를 다 봤다”면서 “사담 후세인, 무아마르 카다피 등을 비롯해 살아남은 독재자는 없다”고 했다. 이어 “김정은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 발악을 할 것”이라며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김정은을 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 전 공사는 1994년에 이뤄진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제네바 합의에 대해 “김정일과 클린턴의 사기 합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김정일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미국이 북한을 치지 못하게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면서 “클린턴도 북한이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안전을 관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시간벌기 작전으로 대사기극을 연출해 냈다는 게 북한 외무성의 결론”이라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또 “북한 핵 문제의 본질은 두 가지”라며 “하나는 진정으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느냐, 아니면 진정한 핵 문제 해결을 믿지 않으면서 제네바 합의처럼 대사기를 쳐보겠느냐,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쓴 ‘죽음의 전화기’ 경매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쓴 ‘죽음의 전화기’ 경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죽음을 담은 물건 하나가 경매에 나온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CNN은 세계 2차대전 때 사용된 적색 전화기 한 대가 조만간 경매에 나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평범한 전화기에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유는 바로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화기에 얽힌 끔찍한 사연은 지난 1945년 4월 30일 독일 베를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히틀러는 총통의 벙커(Fuhrerbunker)라 불리는 비밀 지하벙커에서 역사적인 총성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벙커로 소련군이 조사에 들어갔고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이 전화기다. 히틀러의 이름과 나치의 휘장이 새겨진 이 전화기를 통해 히틀러는 수백 만명의 유태인 학살과 각종 전투를 지시했다. 이 전화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종전 후 소련군이 비밀벙커를 조사하던 당시 서방에서는 영국군 준장인 랄프 레이너가 연락책으로 투입됐다. 조사가 끝난 후 레이너 준장은 소련군으로부터 이 전화기를 선물받았고 그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친 채 개인적으로 보관해 왔다.   이후 레이너 준장은 1977년 사망했고 전화기는 그의 아들인 라눌프가 물려받았다. 라눌프(82)는 "생전의 아버지는 히틀러의 영광과 패배가 담긴 사악한 이 전화기를 보려 하지 않았다"면서 "언젠가는 역사적인 중요한 물건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치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경매 낙찰자가 이 전화기를 일반에 전시하기 바란다"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될 역사적인 교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매는 이달 18일~19일 미국 메릴랜드에서 진행되며 예상 낙찰가는 우리 돈으로 6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그날, 히틀러를 살린 건 안개였다

    그날, 히틀러를 살린 건 안개였다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강희진 옮김/제3의공간/344쪽/1만 5000원인류 최초의 낙원은 ‘에덴동산’이다. 과학자들은 혹독했던 빙하기가 끝나고 기원전 5000년 온난 다습했던 ‘최고의 기후’를 경험한 인류의 기억이 에덴동산이라는 ‘낙원 신화’로 남게 됐다고 추정한다. 날씨와 기후는 인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요 요인이다. 궂은 날씨 때문에 일정을 바꾸는 사소한 변화부터 기근, 가뭄, 장마와 혹한 등 대규모 변화는 인류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는 기원전 200년 로마 제국부터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 가뭄까지 지난 2000년 이상 주요 국가적·문명사적 사건마다 작동해 온 ‘그날’의 날씨를 역사에 대입해 풀어낸 책이다. 독일의 의사이자 역사 저술가인 저자는 장기적 현상 변화인 ‘기후’를 통해 문명의 흥망성쇠를 고찰하고, 단기적 기상 조건인 ‘날씨’의 변화무쌍함을 통해 전쟁의 승패와 역사 속 인물의 부침을 읽어 낸다. 저자의 시선을 좇다 보면 오늘의 날씨가 내일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로마제국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제국의 번영 이유를 “비옥한 토지와 하늘”이라고 기술했다. 제국의 전성기였던 1~2세기의 날씨는 온화하고 쾌적했다. 이른바 ‘로마 온난기’다. 수도 로마뿐 아니라 정복 전쟁으로 확보한 유럽 대부분 지역의 기후는 5대 현제 시절이 끝날 때까지 약 300년 동안 포근했다. 정치는 안정됐고, 식량 소출량은 제국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 로마제국의 쇠퇴는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한 250년쯤의 혹한기와 정확히 겹친다. 제국의 땅은 쟁기를 댈 수 없을 만큼 얼어붙었고, 정치·경제적 위기가 제국을 무너트렸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마야 문명, 그린란드의 바이킹족 문명도 기후변화로 사라진 문명들이다. 저자는 “지난 1만 2000년 동안의 기후사를 되돌아보면 온난기에는 사회와 문화가 발전하지만 한랭기(소빙하기)에는 사회적 불안과 위기가 점철됐다”고 말한다. 날씨는 독재자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다. 1939년 11월 8일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뮌헨의 대형 맥주홀에서 연설하기로 했다.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에 돌아가려던 히틀러는 안개 예보가 뜨자 기차 탑승으로 일정을 바꿨다. 열차 출발 시간인 오후 9시 30분에 맞추기 위해 9시 7분 연설을 끝낸 히틀러는 서둘러 맥주홀을 떠났다. 그리고 13분 후 목공인 게오르크 엘저가 히틀러의 원래 일정에 맞춰 설치했던 폭탄이 터졌다. 몇 분 전까지 히틀러가 서 있었던 연단은 초토화됐다. 그날 뮌헨에 안개가 끼지 않았다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대표되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책은 극심한 가뭄과 지름 40㎝의 우박세례 등 기상이변으로 인한 ‘빵값 폭등’이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혁명의 배후를 들춰내기도 하고, 1281년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에서 시작된 가미카제(神風) 신화의 기원, 중세 소빙하기와 마녀사냥의 연관성 등 풍성한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저자는 지구온난화가 전 지구적 미래를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 “지구상에는 이제 수많은 기후 대신 단 하나의 기후만 존재한다”면서 “우리는 지구라는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고 그 배는 손놓고 앉아만 있기에는 그다지 튼튼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아프리카는 열등한가 세계인의 양심에 묻다

    아프리카는 열등한가 세계인의 양심에 묻다

    오브 아프리카/월레 소잉카 지음/왕은철 옮김/삼천리/272쪽/1만 6000원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영주권을 찢어버리고 출국하겠다”고 선언했던 월레 소잉카(83). 지난해 12월 초 그는 약속대로 20년 넘게 살던 미국을 떠나 고국 나이지리아로 돌아갔다. 극작가이자 시인, 소설가인 소잉카는 아프리카의 자유, 인권, 평화를 위해 분투하며 이를 작품에 녹여내 1986년 아프리카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인(聖人)의 지위에 오를 만한 아프리카인’, ‘호랑이’(나딘 고디머) 등의 수식어를 단 이유다.그가 자신의 요람이자 토양인 ‘극단적인 것들의 대륙’, 아프리카의 실체를 벗기고 가치를 드러내는 열정적인 에세이를 내놨다. 2012년 예일대 출판부에서 출간한 ‘아웃 아프리카’다. 제목은 소설이자 영화로도 옮겨진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연상시킨다. 이를 가리켜 왕은철 번역가는 책을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되받아 쓴 탈식민 담론”이라고 말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숱한 편견과 차별 등을 걷어내고 진정한 탐색에 나서려는 작가의 의도를 담은 제목인 셈이다.“아프리카인들은 선천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서구인(뿐 아니라 세계인일 것이다)들에 대해 분노하는 그는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편견과 위선을 낱낱이 해부한다. 아프리카의 자원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이기 위해 독재정권과 손잡는 외국 열강과 초국적 기업들이 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를 거세하는 주범이라는 지적은 둔중하게 와 닿는다. ‘외국 열강과 초국적 기업들은 독재 정권과 상대하기를 좋아한다. 기관을 통한 감독이 느슨해서 계약이 훨씬 더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들(외부와 독재 세력)은 민주주의가 아프리카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지껄인다. 그래서 아프리카 대륙을 근대 세계의 주된 흐름에 합류시키려면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신화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통상 사절이 떠받드는 복음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신봉자들은 이단자이자 변절자로 매도되고 만다.’(33쪽) 그는 ‘백내장 낀 눈’으로 아프리카를 왜곡해 온 외부 세력으로 세계 문학의 거장으로 묶이는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셰익스피어도 지목한다. 이들이 제멋대로 상상한 아프리카 대륙과 사람에 대한 야만의 풍경들이 오늘날까지 세계인들의 뇌리에 허구화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박히게 했다는 지적이다. 소잉카는 패권주의자들의 장난질에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아프리카 수백만명의 삶을 통절한 아픔으로 응시하면서도 아프리카 내부의 모순과 치부를 들춰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과거 노예 무역에 식민주의자들뿐 아니라 아프리카인들이 공모자로 나섰다는 점을 지적하고 전쟁과 내란을 유발하며 대륙을 피로 물들이는 근본주의자들과 독재자들을 비판하는 그의 문장에는 통렬한 자기 성찰과 반성이 배어 있다. 하지만 줄곧 비관과 절망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절망스러워하기 전에 주목할 것은, “늘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온 대륙이 사실,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확장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목적에 대한 온갖 수수께끼를 밝혀주는 경이로움의 역사와 현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38~39) “아프리카의 인류는 세계의 양심을 자극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지구적인 문화 자원의 중요한 역할, 조정자의 역할을 아프리카에 맡겼으면 좋겠다”는 당부로 글을 끝맺는다. 그 가운데 하나로 아프리카 영성의 가치에 주목한다. 이슬람이나 기독교보다 오래된 서아프리카 요루바족의 수천년 된 종교인 오리사교가 품고 있는 관용의 미덕이야말로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해결하지 못한 갈등, 우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를 풀 수 있는 해법이라면서 말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스스로 번역자로서의 능력을 의심할 정도로, 이번 경우처럼 번역이 힘든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털어놓는 왕은철 번역가는 글이 모호하고 어색하며 스타일 상의 문제도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의 민낯을 세계사적으로 고찰하는 쉽지 않은 주제인데다, 우리에겐 낯선 아프리카의 사상가, 지도자들의 이름, 토속 종교의 철학 등을 짚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뇌에 부담을 주고 품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귀한 목소리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히틀러가 마지막 쓴 ‘죽음의 전화기’ 경매 나온다

    히틀러가 마지막 쓴 ‘죽음의 전화기’ 경매 나온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죽음을 담은 물건 하나가 경매에 나온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CNN은 세계 2차대전 때 사용된 적색 전화기 한 대가 조만간 경매에 나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평범한 전화기에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유는 바로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화기에 얽힌 끔찍한 사연은 지난 1945년 4월 30일 독일 베를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히틀러는 총통의 벙커(Fuhrerbunker)라 불리는 비밀 지하벙커에서 역사적인 총성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벙커로 소련군이 조사에 들어갔고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이 전화기다. 히틀러의 이름과 나치의 휘장이 새겨진 이 전화기를 통해 히틀러는 수백 만명의 유태인 학살과 각종 전투를 지시했다. 이 전화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종전 후 소련군이 비밀벙커를 조사하던 당시 서방에서는 영국군 준장인 랄프 레이너가 연락책으로 투입됐다. 조사가 끝난 후 레이너 준장은 소련군으로부터 이 전화기를 선물받았고 그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친 채 개인적으로 보관해 왔다.   이후 레이너 준장은 1977년 사망했고 전화기는 그의 아들인 라눌프가 물려받았다. 라눌프(82)는 "생전의 아버지는 히틀러의 영광과 패배가 담긴 사악한 이 전화기를 보려 하지 않았다"면서 "언젠가는 역사적인 중요한 물건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치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경매 낙찰자가 이 전화기를 일반에 전시하기 바란다"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될 역사적인 교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매는 이달 18일~19일 미국 메릴랜드에서 진행되며 예상 낙찰가는 우리 돈으로 6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예비후보 등록한 이재명 “文 대세론 뒤집기 가능”

    예비후보 등록한 이재명 “文 대세론 뒤집기 가능”

    현충원 이어 국립 5·18묘지 참배 “이승만·박정희에게 고개 못 숙여”이재명 성남시장이 31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이 시장은 “민주당 경선은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는 부패·불공정·불평등 구조를 누가 가장 속시원하게 걷어 낼 수 있는가를 선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면서 “이재명만큼 이 일을 잘할 후보가 있나”라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대세론을 뒤집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문 전 대표가) 당권을 다 가지고 있고 언론도 계속 압도적으로 많이 보도하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라면서 “경선은 될 사람을 뽑는 것이고 일반 여론조사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여야 대선주자 지지율 3위까지 올랐지만 최근 상승세가 주춤한 상태다. 지난 28일 설날에 다른 대선주자들이 휴식을 취하며 정국 구상에 나선 중에도 이 시장은 서울 광화문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과 정부종합청사 앞 노동자 장기농성장, 세월호 유가족 합동차례장을 잇달아 찾으며 바닥 민심 확보에 집중했다. 이어 경선 예비후보 등록날 오전에는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오후에는 광주로 이동해 국립5·18민주묘지를 찾는 등 야권 표 다지기에 나섰다. 이 시장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친일매국세력의 아버지,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며 “제 사회적 삶의 어머니 광주에서 새로운 제 정치 인생을 고하고 도움을 받고자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고 밝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 정년 65세’/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 정년 65세’/황성기 논설위원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기준대로라면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2020년 대통령 선거 출마 표명은 ‘뒷방 노인네의 헛소리’이다. 바이든 부통령은 1942년 11월 20일생으로 만 74세. 다음 대선에 출마하면 78세가 된다. 표 의원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모든 공직에 정년 도입을!’이란 제목의 글에서 대통령 정년 65세를 주장했다. 표 의원은 “50년간 살아오고, 1년간 정치를 해 보니 대통령과 장관 및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및 의원 포함, 모든 공직에 최장 65세 정년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표 의원은 “그래야 나라가 활력이 있고, 청년에게 더 폭넓고 활발한 참여 공간이 생긴다”면서 “은퇴한 분들이 ‘어른’으로 물러나 계셔야 현장의 대립이나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할 수 있으며, 나라가 안정된다”고 주장했다. 가능성은 제로이지만 그의 주장이 실현된다면 1944년생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선에 나올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1953년 1월 24일 태어난 문재인 전 대표가 만일 대통령이 된다 해도 1년 안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65세 정년의 적용을 받지 않을 대선 주자는 60세의 박원순 시장, 59세의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52세의 이재명 성남시장, 51세의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다. 그가 문재인 전 대표를 염두에 둔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페이스북에는 “당연히 반 전 총장 생각도 했죠. 하지만 그분만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적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직 공무원의 정년을 65세로 하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400개 가까운 댓글에서는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일이라 위헌적 발상이라는 말 듣기 쉬운 말씀’이라거나 ‘100세 시대에 역행’이라는 비판이 눈에 띈다. 세계를 둘러보면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92) 대통령은 예외이지만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55), 일본 총리 아베 신조(62),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60),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62), 이탈리아 총리 파올로 젠틸로니(62),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45) 등 선진 7개국(G7)을 비롯해 40~60대가 주류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는 1946년생, 선거에 패한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1947년생이다. 우리를 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만 73세에 당선이 됐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도 70세에 임기를 마쳤다. 나이가 지도자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나이가 많아 판단력 등에 문제가 있으면 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걸러 낼 수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이목을 끌려는 공약, 주장들이 넘쳐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대 폐지’, 이재명 성남시장의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불법재산 몰수’, 유승민 의원의 ‘육아휴직 3년’ 등과 함께 ‘65세 대통령 정년’은 실현도 어렵고 실효도 없는 포퓰리즘적 구호에 가깝다는 점에서 엄정한 판단이 요구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대선, 시선] “사교육 폐지 ‘전두환’ 되겠다”

    [대선, 시선] “사교육 폐지 ‘전두환’ 되겠다”

    남경필(얼굴) 경기도지사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사교육 폐지를 위해서는 전두환이 돼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뜻을 강조하기 위해 1980년대에 과외 등 사교육을 금지시켰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거론하면서도 “옛날처럼 독재자가 아니라 국민께 동의를 구하면서 전두환이 돼야겠다”고 말했다. 또 소속 정당인 바른정당 의원들에게는 사교육 폐지를 위한 구체적인 법안을 만드는 “김영란이 돼야겠다”고 주문했다. 남 지사는 19대 대선 출마선언을 한 뒤 사교육 폐지를 공약 1호로 내걸었다. 그 이유를 “대한민국이 불공정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여러 원인 중 (사교육이) 첫 번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사교육 폐지의 대표 법안으로 출신학교 차별 금지 법안 발의를 지난 15일 제안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줄줄이 거부… 트럼프 축가 누가 부르나

    줄줄이 거부… 트럼프 축가 누가 부르나

    엘턴 존·셀린 디옹 등 잇단 고사 영국의 유명 소프라노 겸 싱어송라이터인 샬럿 처치(30)가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독재자’라고 비판하며 트럼프 측의 취임식 축가 요청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트럼프가 반(反)이민자 정책과 극우 인종주의 이미지 탓에 연예계 인사들로부터 잇따라 외면당하자 당황한 트럼프 측은 A급 연예인이 출연하는 취임식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처치는 이날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 당신의 참모들이 나한테 취임식 때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는데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내가 당신을 독재자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안녕”이라고 밝혔다고 AP가 보도했다. 1998년 12살의 나이에 데뷔해 1집 앨범 ‘천사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숱한 히트 앨범을 내며 스타로 부상한 처치는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반(反)트럼프’ 목소리를 내 왔다. 처치에 앞서 다른 유명 가수들도 트럼프의 취임식 축하공연 초청을 거부했다. 엘턴 존과 데이비드 포스터, 밴드 키스,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 셀린 디옹, 가스 브룩스 등이 취임식 공연 요청을 고사했고 영국의 팝가수 레베카 퍼거슨도 지난 2일 트위터에서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노래 ‘스트레인지 프루트’를 부르게 해준다면 취임식 공연무대에 서겠다”는 글을 올려 사실상 거절했다. 트럼프의 취임식 준비위원장인 톰 버락은 취임 행사에 A급 연예인들을 불러 모으는 데 애를 먹고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취임식장은 연예인 콘서트장이 아니다. 우리는 A급 인사라는 사람들 대신 현장의 ‘부드러운 관능성’으로 트럼프 당선자를 감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포르투갈 민주화 아버지’ 떠났다

    ‘포르투갈 민주화 아버지’ 떠났다

    살라자르 독재 저항·투옥 겪어 ‘카네이션 혁명’ 뒤 총선서 승리 “살아갈 의지·호기심 넘쳐” 자평 포르투갈 민주화의 아버지로 불리던 마리우 수아레스 전 포르투갈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9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수아레스 전 대통령이 입원 치료를 받아온 리스본의 병원 대변인은 “수아레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3일부터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옮겨진 뒤 혼수상태에 빠져 회복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병원은 수아레스 전 대통령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지 않았다. 가족들은 수아레스 전 대통령이 2013년 이후 계속 병치레를 해 왔다고 소개했다. 1924년 12월 수도 리스본에서 태어난 수아레스 전 대통령은 독재자 안토니우 드올리베이라 살라자르에게 저항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사회주의자로 그 역시 대학 시절부터 살라자르 독재 반대 운동을 하며 12차례 투옥 생활을 했다. 그는 이른바 ‘카네이션 혁명’이 발생한 1974년 이후 포르투갈 최초로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사회당을 이끌고 승리해 총리를 맡았다. 1974년 좌파 청년 장교가 주도해 일으킨 카네이션 혁명은 48년간 장기 집권한 살라자르 정권에 대항해 일으킨 무혈혁명을 말한다. 당시 혁명 소식을 들은 시민이 혁명군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지지 의사를 표시한 데서 비롯됐다. 카네이션 혁명 후 1976~1978년 총리를 맡은 그는 1986~1996년 10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주도한 그는 2011년 유로존 위기로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긴축정책을 강요하자 EU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인간애를 믿으며 스스로에 대해 살아갈 의지가 충만하고 엄청난 호기심에 대한 의욕이 넘친다고 스스로 설명해 왔다. 포르투갈 정부는 9일부터 사흘 동안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장례식은 10일 국장으로 치러진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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