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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건강 나빠 권력승계 지연”

    ◎일시사지 「제군」「북한의 앞날」 특집 보도/당뇨병 확실… 통치권 누수현상까지/곁가지 김평일·혁명1세대 세확장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는 일본의 시사월간지 「제군」지 12월호가 김정일체제의 불안한 전도를 예고,관심을 끌고 있다. 이 잡지는 「김정일은 나타났지만…」이라는 제하의 특집기사에서 『북한의 권력승계가 늦어지고 있는 것은 당뇨병 등 김정일의 심각한 건강이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정일이 건강악화로 인해 현재 전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어 북한권부안에 심상찮은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잡지는 이런 분석의 근거로 이복동생 김평일(핀란드 주재대사)이 활발히 서방언론과 접촉하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김평일의 대외활동은 김정일의 권력장악력의 약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김평일은 김정일이 건강했을 때는 「곁가지」로 김정일의 철저한 견제를 받아 입도 뻥긋하기 힘들었다. 이 잡지는 이같은 김부자 후계체제의 난기류를 역이용해 북한의 핵심 기득권세력들이 자신들의 지위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른바 「혁명 1세대」를 중심으로 한 당정치국 실세들이 김정일의 통치권 누수의 틈을 비집고 사실상 집단 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해석은 김정일이 건강이상이나 장악력의 부족으로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가 구축되고 있다는 통일원 등 정부 일각의 관측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군」지는 지난 10월 16일 김일성 1백일 추모제에 김정일이 나타났으나 권력자의 풍모를 발견할 수 없었을 뿐더러 병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는 평가에서부터 기사를 시작하고 있다. 「제군」지의 기사를 요약해본다. 여러 정보를 종합하건대 그의 병은 당뇨병인 게 틀림없다.동서 사회체제의 차이에 관계없이 아무리 능력이 있는 정치가라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따라서 김정일이 권력자의 자리에 취임한다고 해도 건강이 좋지 않는 한 실권이 없는 명목적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김정일의 권력이 약화되고 있는 구체적 증거는 이복동생이자 핀란드 주재대사인 김평일의 최근 「신이 난 듯한」 언동이다.김정일이 건강했을 때는 김평일이 서방기자들과 단독 인터뷰에 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나 최근 그의 언론접촉 뿐만 아니라 외교활동도 더 활발해지고 있다. 「혁명 1세대」로 불리는 노간부들의 입장에서도 김정일의 병은 그의 지위를 이름뿐인 것으로 만들어 당정치국 중심의 정치를 하도록 하는 구실을 만들어주고 있다.이들 당정치국 고위간부들에게는 자신들의 지위 안정화를 도모할 기회가 굴러들어온 셈이다.이로 인해 가령 김정일이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에 취임한다 하더라도 북한정국은 유동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김일성이라는 절대적 독재자가 사라지고 권력계승자인 김정일은 병으로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사태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김정일을 둘러싼 권력투쟁은 세대간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파벌형성에 의한 다툼이라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김평일의 신이 난 것 같은 행동도 이해할 수 있다는 감이 든다.
  • 베니스 비엔날레/베니스 영화제(유럽 문화산업 현장:중)

    ◎관광진층·경제활성화 동시 추구/현대미술·영화흐름 주도… 세계적인 축제로/권위에 안주 않고 끊임없는 개혁정신 발휘/비엔날레 한국관 기공계기,기업의 현지 투자 요청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기공식이 열렸던 지난 8일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은 베니스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한국은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국이며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자적인 문화가 있으나 이를 세계에 선전하지 못해왔다.이런 기회를 베니스 시민들이 갖게 해주어 감사한다』 이에 대해 베니스의 시장인 마치모 카치아리씨는 『한국이 상설 전시관만 지을 것이 아니라 공단에 기업이 투자하고 현지인을 고용하며 많은 관광객을 보내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화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세계적 권위와 그 권위를 단순한 문화행사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관광진흥과 경제활성화에까지 연결시키는 이탈리아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의 수많은 미술제전과 영화제중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관이 개관했을 때에는 히틀러가 참석했으며 일본관이 개관할 때는 국왕이 참석,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1895년 이탈리아왕국과 베니스시는 베니스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미래에도 예술을 주도하기 위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창설했다.그해는 국왕인 움베르토1세와 사보이왕가의 마그리타왕비의 결혼 25주년 기념식이 있는 해였다. 베니스는 당시 세계최고의 예술도시로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영국·미국등의 젊은 화가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오던 곳이었다. 제1회 대회는 주로 라틴국가들의 화가 4백71명이 참가했으며 그후 1백년동안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2년에 한번씩 6월에 시작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 각국의 화가·조각가·건축가·평론가·저널리스트·화상등 1만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세계의 미술 올림픽.미술인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르디니 공원에 상설전시관을가진 24개국,주로 선진유럽국가들의 국제잔치로 치러져 왔다.따라서 이곳에 상설전시관,즉 국가관을 갖지 못한 나라들은 이탈리아관의 한쪽을 비좁게 빌려 쓰면서 국가관을 마련하기 위해 치열한 국제 로비전을 펼쳐 왔다. 선진국의 문화패권주의가 날카롭게 대결하는 이곳의 한정된 공간에서 마지막 국가관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고 건물 기공식을 올린 우리 정부는 「문민정부 최대의 문화외교 성과」로 이를 자부하고 있다.한국관이 들어서는 부지는 지난 20여년동안 중국과 아르헨티나 등이 상설전시관을 짓기 위해 탐내왔던 곳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권위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자 박물관인 베니스의 미술전통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귀족적 권위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개혁의 정신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명성을 지켜왔다. 이탈리아의 전위미술가였던 필리포 마리네티는 베니스를 20세기 미술운동의 하나인 미래파의 발상지로 만들었고 그의 미래파선언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위적인 성격을 가미했다.그는 19 07년 『박물관과미술관은 수백년 전에 죽은 화가와 조각가들의 공동묘지이기 때문에 때려 부셔야 한다.운하의 물길을 터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물에 잠기게 하라.오!영광에 가득찼던 캔버스들이 물위에 떠내려 가며 색이 바래고 갈갈이 찢겨지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즐겁겠는가』라는 미래파 선언을 했다.그는 더 나아가 『엔진의 뚜껑을 커다란 파이프로 장식한 경주용 자동차가 「사모트라체의 승리」라는 낡은 그림보다 아름답다』고까지 말했다. 1968년에는 학생들의 데모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수상제도가 바뀌기도 했다.베니스대학 학생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그랑프리 제도가 상업주의에 이용된다며 데모를 벌여 대상제도가 사라지고 「올해의 화가상」과 가장 훌륭한 작품을 출품한 국가관에 주는 상이 새로 만들어졌다. 한편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19 32년 만들어 졌다.당시의 통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첨단과학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영화제를 창설했다.독재자의 광기와 과욕이 이탈리아의 영화 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고 독재자가 역사의 인물로 사라진 뒤에도 전세계 영화인들의 최고 영예가 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칸영화제가 생긴 것은 이보다 7년 뒤인 39년이며 베를린영화제는 50년에야 창설됐다. 베니스 영화제는 32년 제1회대회때부터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34년에는 국내영화·국제영화 두분야로 나누고 36년에는 최고상인 무솔리니배가 추가되고 47년부터는 베니스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황금사자상이 주어진다. 38년도 베니스 영화제의 무솔리니배는 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기록영화를 만든 독일의 여류감독 레니 레펜슈탈에게 돌아가고 51년도에는 영화 후진국인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라생문」으로 작품상을 받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구로사와의 부친은 일본 육사를 나와 평생동안 학교의 체육선생을 지낸 사람으로 구로사와는 그의 영향을 받아 일본 사무라이의 비정한 생활을 영화한 것이 일본문화 수출의 첨병이 되었다.일본의 영화산업은 베니스영화제의 수상을 계기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7년에는 우리나라의 강수연양이 「씨받이」라는 영화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베니스 영화제는 해마다 여름철에 리알토섬(베니스의 주요 섬)의 남쪽 방파제 구실을 하는 리도섬에서 열린다.리도 섬에는 11㎞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과 경마장 골프코스 비행장 축구경기장 등이 있는 곳으로 영화제가 시작되면 세계적인 축제가 벌어진다. 이기주 주이탈리아대사는 『우리나라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우리 문화를 선전하고 알리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상품은 비싼 것이라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신뢰를 하면서 물건을 사는데 비해 한국 상품은 1만달러가 넘는 것은 보증서가 있는가,잘못되었을때 환불을 받을 수 있는가를 질문받게 된다』고 밝혔다.이대사는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알리는 대규모 문화 행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문화행사와 관광진흥을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베니스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 “셋이 함께 만나자” 한·일에 제의/클린턴(김 대통령 순방여로)

    ◎한반도 새환경속 대남정책 조율/한·미·일 정상회담/외무·안보보좌관 등 배석… 1시간 요담/한·미회담/덕담나눈뒤 한­일무역·북­일관계 등 논의/한·일회담/강택민,“양국관계 성공적인 발전” 평가/한·중회담 김영삼 대통령은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14일 저녁 미국및 일본 정상들과 예정에 없던 긴급 3국정상회담을 가졌다.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상·하오에 걸쳐 클린턴 미국대통령,무라야마 일본총리,강택민 중국국가주석,크레티앵 캐나다총리등 4개국 정상들과 잇따라 개별회담을 갖는등 이번 순방기간중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다. ▷3국정상회담◁ ○…14일 저녁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 주최 18개국 정상 만찬이 끝난 뒤 김대통령과 클린턴 미국대통령,무라야마 일본총리는 만찬장 아래층의 서미트 룸으로 자리를 옮겨 긴급정상회담을 갖고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회담후의 3국 공조방안을 조율. 이날 상오 김대통령이 강택민 중국주석과 개별정상회담을 가진 장소인 이 방에는 3개국 정상회동을 제의한 클린턴 대통령이 맨 먼저 하오9시42분쯤 들어서고 바로 뒤따라 김대통령,무라야마총리가 차례로 입장,세 정상은 서로 악수를 하고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한 뒤 좌정. 3국정상은 자리에 앉아서도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한동안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했으며 잠시후 의전관계자들이 보도진의 퇴장을 요구. 3국정상은 10여분동안 대화를 나눈 뒤 국별로 「공동발표문」을 발표시킴으로써 사실상 3국 실무진 사이에 마련된 발표문내용을 추인한 모임이 된 셈. 이 자리에 있던 우리 정부 관계자는 3국정상회담의 의의에 대해 『미국과 북한의 핵문제 합의후 조성된 한반도의 새로운 환경과 미국및 일본의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움직임을 앞두고 3국의 공조를 정상들이 확인한 자리』라고 설명. ▷한·미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이날 하오2시58분부터 1시간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렸다. 김대통령은 대사관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클린턴 대통령과 반갑게 인사한 뒤 관저 뒤편에 있는 정원에서 카메라기자들을 위해나란히 포즈를 취하며 재회의 기쁨을 교환.김대통령은 『악수라도 한번 해볼까요』라며 클린턴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하기도.사진촬영에 응한 뒤 두 정상은 정원쪽 옆문을 통해 회담장으로 입장.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상오 강택민 중국국가주석,무라야마 일본총리와 회담했고 이어 폴 키팅 호주총리와 오찬을 겸한 회담을 가졌으며 김대통령과의 회담이 네번째이자 개별회담으로는 마지막. 이날 정상회담에는 한국쪽에서 한승주 외무부장관·한이헌 경제수석·정종욱 외교안보수석·주돈식 공보수석과 이장춘 외무부 외교정책기획실장·장재룡 미주국장이 배석했고 미국쪽에서는 크리스토퍼 국무장관·레이크 안보보좌관·루빈 경제정책보좌관·로드 동아태차관보와 레이니 주한대사 등이 배석. ▷한·일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날 아침 숙소인 만다린호텔에서 무라야마 일본총리와 조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4개국 정상과의 연쇄 정상회담에 착수. 김대통령은 이 호텔 2061호실에 마련된 한일정상회담 장소에 상오 7시30분 정각에 도착,2분뒤 도착한무라야마총리를 입구에서 맞아 악수를 나누며 『일본과 한국은 날씨가 비슷한데 여기 기온이 유난히 높아 고생하시겠다』고 인사. 김대통령은 『오늘 아침 조깅하는데 서울보다 20도 이상 높고 습도도 높은 것 같더라』고 말했고 무라야마 총리는 『매일 조깅하시느냐.지난 7월 뵐 때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다』고 덕담. 김대통령은 이어 사진기자들이 정상회담 장면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하자 『사진기자들은 독재자』라고 농을 던졌고 무라야마총리도 환하게 웃음. 김대통령이 취임 후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는 이번이 4번째이며 무라야마총리와는 지난 7월 취임직후 그의 방한으로 첫 상면한 뒤 두번째. 김대통령과 무라야마총리는 북한핵문제및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개선문제,한일무역역조 문제와 사할린거주 한인1세의 영주귀국문제들을 주제로 1시간동안 조찬을 하면서 환담. ▷한·중 정상회담◁ ○…무라야마 일본총리와 회담을 마친 김대통령은 장소를 자카르타 힐튼 컨벤션센터로 옮겨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 1시간10분 남짓 회담. 한·중 정상회담은 똑같은 장소에서 직전에 열린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강주석의 정상회담이 다소 지연돼 예정보다 20분 늦은 상오 9시20분부터 시작. 김대통령은 회담장에 도착해 회담장 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강주석의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한 뒤 회담장으로 이동. 김대통령은 『지난해 시애틀 APEC 정상회담과 지난 3월 중국방문에 이어 오늘 다시 만나 반갑다』고 인사한 뒤 우리측 배석자인 한승주 외무부장관과 한이헌 청와대경제수석,정종욱 외교안보수석,주돈식 공보수석을 소개. 강주석도 『1년만에 세번째 만나게 됐다』고 인사하고는 중국쪽 배석자인 전기침 외교부장등을 차례로 소개. 김대통령은 배석자 소개가 끝나자 『지난번 이붕총리가 전부장과 함께 방한했을때 두나라의 관계발전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아주 좋은 자리가 됐다』면서 한·중관계의 발전을 주요 논의 사항으로 제기. 강주석은 이에 대해 『지난해 APEC에서 김대통령 각하를 만난데 이어 지난 3월 방중기간동안 만나고 또 이붕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한·중 두나라의 관계증진을 위해 매우 성과있는 일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한·중관계는 매우 성공적으로 발전되고 있다』고 평가. 이날 한·중정상회담은 한·중 정상의 숙소가 아닌 제3의 장소(컨벤션센터)에서 열렸으나 강주석이 김대통령을 영접하고 전송했으며 이는 지난해 시애틀 정상회의 때 우리측이 영접하고 전송한데 대한 답례와 함께 의전상의 이유 때문이라고 한 관계자가 설명. ▷한·캐나다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연쇄 개별정상회담의 마지막 순서로 크리티앵 캐나다총리와 크레티앵총리의 숙소인 메리디엔호텔에서 단독회담을 갖고 두나라의 협력증진방안과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을 위한 협조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 지난해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 때 단독정상회담을 가진바 있어 구면인 김대통령과 크리티앵총리는 메리디엔호텔에 마련된 회담장에서 반갑게 악수를 나눈뒤 양쪽의 배석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상회담에 돌입. 회담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크레티앵총리는 김대통령이 도착하자 환하게 웃는얼굴로 김대통령을 반갑게 영접했으며 김대통령은 한외무장관,한경제수석,정외교안보수석,주공보수석 등 우리쪽 배석자들을 소개. ▷APEC 정상 만찬◁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APEC정상회의 주최국인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는 것으로 APEC정상회의 참석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APEC 의전서열순서에 따라 만찬장인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 도착,수하르토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어셈블리 제1홀에 입장. 김대통령은 이곳에서 클린턴 미국 대통령,강택민 중국국가주석,무라야마 일본총리를 비롯한 APEC정상회의에 참석한 18개국 지도자들과 칵테일을 들며 상견례를 겸해 환담. 이어 김대통령은 어셈블리 제2홀로 이동,수하르토대통령의 만찬사를 듣고 각국 정상들과 함께 만찬. 김대통령은 만찬이 끝난뒤 어셈블리 제1홀로 다시 자리를 옮겨 APEC 지도자 비공식회의에 참석,15일 정식회의의 주의제인 역내 무역자유화 연도에 대해 사전에 입장을 조율. ▷손여사 민속촌방문◁ ○…김대통령이 개별연쇄정상회담에 나선 이날 부인 손명순 여사는 클린턴 미국대통령부인 힐러리 여사 등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부인 10명과 함께 푸루나발티 퍼르티위박물관과 타만미니민속촌을 방문. 손여사는 수하르토 대통령부인 티엔 여사의 안내로 도자기공예품등이 진열된 박물관 내부를 돌아보고 민속촌을 시찰한 뒤 아이맥스영화와 인도네시아 고유의상에 현대복장을 가미한 패션쇼를 관람. 이날 박물관 및 민속촌 관람도중 티엔 여사는 맨앞에 선 손여사와 힐러리 여사에게 주로 많은 설명을 했으며 손여사와는 이따금 손을 잡고 걷기도.
  • 열린 눈·열린 가슴/문정희 시인(굄돌)

    며칠전 니카라과의 외교관부부와 저녁을 함께 했다.니카라과 사람들은 시를 너무도 사랑해서 마치 우리가 모임이 끝나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듯이 그렇게 시를 열정적으로 읊는다고 했다.그래서 특별히 한국의 시인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그분들과 자리를 함께 한 것이었다. 그분들을 만나고 나서 나는 내심 조금 충격을 받았다.그동안 내가 니카라과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그 나라는 독재자 소모사 때문에 오랜 시련을 겪은 나라였다는 것과 중미국 가운데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라는 것 뿐이었다.그러나 너무도 세련되고 지적인 금발의 대사부부를 만나서 니카라과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듯이 그렇게 기회만 있으면 시를 읊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나라가 그 어느나라 보다도 아름다운 문화국임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십수년전 일본에 갔을 때도 나는 비슷한 충격을 받았었다.어린시절 유난히 반일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우리세대는 일본인을 한번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말았던것이다.그래서 일본을 다만 자동차나 팔아먹는 경제대국 정도로 알고 있었다.더구나 일제 36년의 앵글로만 바라보며 언제나 일본인이 아닌 「일본놈」만을 바라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일본은 그 무엇보다 먼저 문화국이었다.자긍심에 넘치고 매사에 철저한 선진국이었다.나는 비행기안에서 속으로 가슴을 치며 우리나라로 돌아왔었다. 최근 모스크바에서 받은 충격도 작은 것은 아니었다.소련이라는 나라를 우리는 오랫동안 필요이상으로 이데올로기로만 바라보았었다는 늦은 개안이 간담을 써늘하게 했다.푸슈킨 고리키 톨스토이로 이어지는 눈부신 문화국이요,차이코프스키의 선율이 장엄하게 스며있는 예술의 나라임을 나는 소스라치게 다시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최근 우리와 멀어져간 노벨상을 두고 새삼 국제화니 국제감각이니 하는 탄식과 자성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대학 총장의 국적문제가 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활짝 열린눈과 크게 열린 가슴이 아니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언제나 뒤쳐져있을 것은 뻔한 노릇이다.
  • 모스크바대 부설 국제종합학교/허진 이사장(인터뷰)

    ◎“반김정일세력 폭동 일으킬 가능성”/김정숙·김영주 실각 판단은 성급/지원하되 체제안정엔 도움 안되게 모스크바국립종합대 부설 모스크바국제종합학교 이사장으로 있는 허진씨(67)는 4일 김일성사후 북한정세를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라고 진단했다. 허씨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우선 김일성사망후 후계자로 지목됐으나 아직 정권을 잡지 못한 김정일측 세력과 이에 대한 김일성의 처 김정숙과 동생 김영주,김정일 이복동생 김평일등 반김정일세력이 모두 상대세력에 대항할 만한 뚜렷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한 점을 제시했다. 이런 상태에서 권력쟁취를 위해 섣불리 상대방비판등 무리한 행동을 감행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유린당할 우려가 있어 뾰족한 「수」를 쓸 수 없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허씨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북지원은 『기본적으로 독재자 권력연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의 폭동등 북한내 김정일반대세력들의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북한인민은 군부대폭동이 일어나 군사독재가 되더라도 김정일독재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두려움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허씨는 북한소식 입수경로에 관해 『북한 왕래객과 중국서 나온 신문이 고작일 정도로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특히 북한내에서도 김일성의 아들·처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인민이 많을 정도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북한사회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허씨는 이와 함께 93년12월2일 김일성이 김정일을 불러 후계자지위를 박탈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즉 노동당관계는 자신과 김성애가 맡고 김정일에게는 군사관계만 맡기려 했다는 것이다. 허씨는 이와 관련,『현재 김정일이 갖고 있는 국방위원회위원장 자리는 병기관리등 군수산업분야에 국한된 것이며 국가방위전략및 전술수집을 담당하고 있는 군사위원회위원장 자리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채 오진우와 함께 부위원장으로 있다』고 덧붙였다. 허씨는 또 북한의 핵무기보유설에 대해서도 『1∼2개정도 보유가능성은 있으나 그렇다 할지라도 운반수단이 없는데다 아직 한번도 실험을 해보지 못한 쓸모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특히 방한중인 중국의 이붕 총리가 김정일체제 안정이 중요한 만큼 한국이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세습정권을 도와줘야 한다는 발상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소련자연과학원 원사(정회원)로 명예문학박사이기도 한 허씨는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광복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 민주청년동맹 평양시위원회 간부및 북조선 내무성 정치국 고급장교로 근무했다.그는 52년 모스크바국립영화대학에서 극문학·시나리오문학을 배웠다. 그는 스탈린 격하문제가 제기된 56년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 참가,김일성 개인숭배사상의 허구성을 깨닫고 김일성반대운동에 나섰다. 허씨는 『모스크바의 북조선 유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김일성의 개인숭배사상을 비판했으며 이 때문에 모스크바 북한대사관에 체포돼 강제이송당할 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57년11월27일 북한 보안요원에 붙잡힌 허씨는 다행히 대사관 2층사무실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이후 김일성세습체제반대운동에 앞장섰으며 82년 「북조선왕조성립비사」란 김일성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자신의 호인 임은 명의로 내 김일성의 실상을 파헤치기도 했다. 『대전 과학공원을 동료들과 구경하고 조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알 수 있었다』는 허씨는 4일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 「제네바합의」 누가 얻고 누가 잃었나/NYT지 분석 「손익계산서」

    ◎김정일 채략·말로 성과/북한/앉아서 부담던 “구경꾼”/일본/강·온따라 “엇갈린 득실”/한국/환영속 양보엔 “속앓이”/IAEA 세계적인 이목을 한데 모으며 지난주 극적인 타결을 본 북한·미국간 제네바합의와 관련,이해당사자들의 득실은 어떻게 될까. 뉴욕타임스지는 23일 제네바합의에서 가장 큰 승리는 북한의 김정일이 거두었으며 한국은 승자인 동시에 패자,일본은 운좋은 구경꾼이라고 보도했다.또 이 신문은 가장 손해를 본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이며 클린턴 대통령은 합의내용대로 이행된다면 위험한 안보문제의 훌륭한 중재자로 최고의 승자가 되겠지만 이행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라는 이유로 평가를 보류했다.다음은 타임스지가 분석한 당사자별 미·북합의 득실에 관한 내용이다. ▷김정일◁ 지난주까지만 해도 김일성의 큰 자리를 메워보려는 김정일의 몸부림은 애처로워 보였다.최근 수년간 북한을 다녀온 방문객들은 언제나 북한의 권력층조차도 김정일을 독재자들 가운데 난쟁이로 취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러나 한국문제 전문가인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하버드대 교수는 『이번 제네바 합의로 인해 김정일은 갑자기 아버지만큼 총명하게 보이게됐다』고 말하고 『김정일은 미국을 책략으로 이겼을뿐만 아니라 말로써 미국이 수십억달러를 부담하게끔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2개의 새 원자로 건설비용에 드는 40억달러 가운데 대부분은 한국과 일본이 떠맡게된다.그러나 미국은 엄청난 분량의 오일(중유)을 무료제공키로 동의했다.중유공급으로 공장이 재가동될 것이며 북한의 권력층은 엄청난 잠재적 이득을 보게됐다.그런점에서 이번 합의의 승자는 북한권력층이기도 하다.북한농민들은 거의 혜택을 보지못할것 같다.기름난방식 주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일본정부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를 극구 꺼려왔다.대북제재를 취할 경우 군비증강이 요구되고 미군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지원을 제공해야할 필요에 직면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같은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된다.그러나 그것을 충족시킨다면 일본정부는 내분에 직면케되고조총련의 테러를 촉발시킬지도 모른다. 또한 일본의 가장 큰 우려는 북한정권이 붕괴되면 난민이 홍수처럼 밀려들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정권이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버팀목이 되는 것을 유감스럽다고할 일본의 기업인들은 거의 없다.북한정권의 강화는 무서운 경쟁자가 될 통일한국의 등장을 늦춰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한국국민은 북한은 형제이자 적이라는 두개의 마음을 갖고있다.정보기관과 군부내 강경론자들은 김정일정권이 붕괴직전에 있으며 조금만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다.한 전직고위관리는 미,북한간 합의에 대해 『미친 짓』이라면서 『우리와 수십년간 싸워온 적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계 대표들은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그들은 강경파가 원하는 방식의 북한정권 붕괴는 원치 않으며 또 경제파탄상태에 있어 사회간접시설이 전무한 상태에서 재건설에 참여해야하는 상황을 원치않는다.이제 그들은 북한의 노후한 공장들 주변의 길을 파악해가면서 경수로와 오일 수송로를 천천히 건설할수있게된 것이다.▷군비통제자◁ 비난론자들은 제네바합의가 이라크나 이란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에 핵폭탄 보유의 꿈을 계속 간직하도록 부추겼다고 말한다.미국은 북한이 이미 수년전에 서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하는 대가로 보상해주기로 합의한 것으로 북한은 단지 NPT탈퇴를 위협함으로써 40억달러 상당의 경수로와 수십억달러어치의 난방용 기름을 제공받게 됐으며 무역규제조치의 해제도 손에 넣게됐다. IAEA는 이번 합의를 환영하는척 하지만 IAEA의 많은 관리들은 특별사찰을 수년간 연기해주기로 양보한것은 조만간 그들을 괴롭히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 “대북합의 결함” 미언론 시각

    미국의 두 신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20일 북한·미국 핵협상 합의와 관련해 각각 기사 또는 칼럼니스트의 기고문을 실었다.공통적으로 이번 합의의 취약성을 지적한 이 글들을 요약소개한다. ◎WP지 칼럼/「깡패정권」에 약한 백악관/지나친 양보로 북에 지렛대 넘겨 미국이 이라크의 무력 시위에 대해서는 강경히 대응하고 나서 아이티 및 북한의 사고뭉치들에게 흥정하자는 자세를 보인 것은 놀랍고 걱정스런 것이다.이라크에 대한 강경 대응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건전한 것이었다. 백악관은 세드라를 아이티에서 떠나도록 하기 위해 세드라의 집 세채에 대한 5천달러의 월세 지불까지 미국이 맡기로 합의했어야만 했나.클린턴의 안보 부보좌관 샌디 버거가 그 월세금은「푼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일리는 있다.세드라 일당이 권좌에 눌러 있음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분란을 감안하면 세드라에게 집 세채 월세금 주는 것이야 별 것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왜 깡패 한사람의 요구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터무니없이 양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책임감 있는 사람들은 아이티 침공이나 북한 핵 문제로 인한 무력충돌을 피하려는 정부의 방침을 비난하지 않는다.그러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이 행정부는 강하게 나오는 적들에게 상을 주는 듯하다.이제 해외의 다른 악당 정권들도 악하게 행동하는 것이 워싱턴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 공산정부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부문의 양보는 더욱 뒤로 물러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미국은 북한에도 슬금슬금 양보하다가 이제 핵시설 사찰의 시기,석유의 공급,40억 달러 드는 새 원자로 두개의 건설보장 등에서 확실하게 양보했다. 주요 보도 내용을 보면,2003년 또는 아마도 그뒤까지도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북한의 손아귀에 있다.북한은 그로부터 5년 더 현재의 핵무기 저장과 관련된 모호성을 지킬 수 있다.평양은 합의를 깨려고 결심하기만 하면 새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원료를 10년동안 주무를 수 있다. 집 월세 지불 등 세드라에 대한 백악관의 너그러운 처사에 대해 앤서니 레이크 안보 보좌관은 기자들에게 『여기에는 뇌물수수도 없고 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나는 사죄할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레이크씨,그것이 바로 문제다.하잘 것 없는 인간들의 책임 모면을 위해 미국민은 세드라 집의 월세를 물거나 김정일에게 연료를 제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하는 데 대해 아무런 사과도(그것을 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게서 마저) 받을 자격이 미국민에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식과 미국민의 위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NYT지 보도/미조치 「핵억제」와 모순/핵탄제조 기도국에 위험한 선례 북한과의 핵합의를 서둘러 타결함으로써 클린턴 대통령은 40억달러에 달하는 에너지 원조 제공약속이 그가 「깡패국가」라고 부른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도박을 벌이고 있다. 지난 1년이상 미국 정부의 정책은 평양의 지도자들이 신뢰할 수 없고 예측불가능한 스탈린주의자이자 전체주의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응징되어야 한다는가정에 기초를 둬왔다. 북한이 모든 핵시설에 대한 사찰허용을 거부함으로써 국제적 협약을 위반했을 때 미국은 평양에 대해 새로운 국제제재를 강구하겠다고 말했었다.이는 미국 정부를 외교적 곤경에 빠뜨렸다. 중국이 안보리 제재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고 북한은 제재를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자 클린턴행정부는 협상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핵협상타결을 축하하는 이면에는 미국 행정부 안팎에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도이치 국방부 부장관은 클린턴 대통령의 북·미 합의 승인을 결국 지지하면서도 새로 건설될 경수로의 폐연료봉을 북한이 악용할 소지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없다며 반대했다. 도이치 부장관은 또한 북한이 너무 오랫동안 폐연료봉을 보관할 수 있게된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로버트 갈루치 미측 수석대표도 18일 북한과의 합의를 스스로 치켜세우면서도 김정일을 아직 신뢰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그는 이번 합의를 가리켜 『아마도 그것은 신뢰를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신뢰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많은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미국 행정부가 제네바협상에서 양보함으로써 핵무기를 만들려는 여타 국가들에게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고 말한다. 공화당진영은 이번 합의에 대해 즉각 독재자에게 항복한 것이라고 정치공세를 폈다.밥 돌 공화당 상원원내총무는 성명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합의는 언제라도 가능하다』고 미국 정부의 양보를 비아냥거렸다. 제네바합의는 미국 행정부가 핵기술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지금까지 취해온 접근방법과 크게 모순되고 있다. 이제 북한은 돈한푼 들이지않고 경수로를 받게된 마당에 이란에게 경수로 구입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어떻게 러시아와 중국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한 북한에 대해서는 상을 주면서 어떻게 이란이 이 조약을 준수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한 국방부 관리가 지적한대로 세상일은 공평하지 않은지 모른다.
  • 「카터외교」에 비판과 찬사 교차/미언론서 상반된 평가

    ◎“독재자 비호… 국무부와 관계불편”/“국제 이해증진에 기여” 긍정론도 미국에서 요즘 가장 바쁜 사람은 지미 카터 전대통령이라는데 다른 의견이 없을 것 같다. 극적인 아이티사태 중재에 이어 미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남북한대사를 만나는 등 남북한대화 중재역할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그는 에티오피아,수단,라이베리아에서도 내전종식을 위한 중재역할을 맡는 등 국제분쟁의 중재자 내지 해결사로서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론으로 엇갈리고 있다. 뉴욕 타임스지는 카터의 아이티사태 중재는 전직대통령이 보배로운 외교적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서 역대대통령 가운데 은퇴후 다시 하원의원이 돼 노예제도 반대투쟁을 벌였던 존 퀸시 애덤스 이후 카터만큼 국민에게 봉사하고 각국간 이해증진을 위해 기여한 사례는 없었다고 극찬했다. 카터는 금년도 노벨평화상의 제1후보로 꼽히고 있으며 실제로 카터 자신도 대통령 재임 당시 캠프데이비드 중동평화협정을 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벨평화상을 타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카터의 공로에 못지 않게 그의 외교스타일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제기되고 있고 미국무부와의 관계도 계속 불편한 상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카터외교의 문제점으로 그가 분쟁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독재자들을 비호하고 나선다고 지적했다.이 신문은 레이건행정부에서 국무부관리로 일했던 로버트 케건의 칼럼을 통해 카터가 김일성을 만난 뒤 김을 존경과 동정을 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으며 클린턴이 대국민연설을 통해 악마로 몰아세웠던 아이티 군부지도자 라울 세드라와 협상할 때는 세드라를 명예로운 군인과 같이 대우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이유는 독재자 보다도 미국의 무력사용을 더 증오하는 그의 뿌리깊은 신념에서 비롯됐으며 이같은 신념은 월남전과 65년 미군의 도미니카공화국 개입,73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정권 전복을 통해 형성됐다는 것이다.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이고 분명한 위협이 없는 한 절대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무력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카터의 신념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는 지적이다.아이로니컬하게도 카터의 이같은 신념은 현재 많은 미공화당의원들이 동조하고 있다. 카터 자신도 독재자들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비판이 있음을 알고 있다.카터는 20일 『내 아내(로절린여사)도 가끔씩 내가 독재자들에게 너무 동정적이라는 얘기를 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나는 그들(독재자)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분쟁중재자로서 카터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국무부,특히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있다.카터는 아이티사태 중재과정에서 국무부가 김일성과 만났을 때보다도 더 비협조적이었다면서 국무부의 거부자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장관의 입장에서 보면 카터의 중재역할로 결코 심기가 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카터에만 매달리니… 나라체통 뭐가 됩니까”/「DJ비판」 파문 이세기 민자의장/“나는 대북강경론자 아닌 원칙론자”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22일 『조용히 있어야 할 사람들이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고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최근 활동을 꼬집었던 민자당의 이세기 정책위의장은 23일 인터뷰에서도 『카터전대통령에게 줄줄이 쫓아가 매달려서야 나라의 체통이 뭐가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책위의장은 이날 민주당이 「공식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내가 민주당의 정책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카터전대통령을 겨냥해 한 말인데 거기에 대해 답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망언」이라고 하는데. ▲지난 21일 한승주외무부장관을 만났을때 미국에는 도대체 대통령이 두사람이냐,클린턴대통령은 어디가고 카터씨가 한반도문제를 다하는 것처럼 비춰지느냐고 지적한 것이다.카터씨가 뭐기에 줄줄이 쫓아가 기대면 나라의 체통이 어찌 되느냐고 한 얘기다.카터씨 보고 한 얘긴데 누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에는 답할 필요가 없다.카터씨가 뭐라고 그러면 몰라도…. ­남북정상회담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내가 언제 남북정상회담을 하지말자고 했나.서두르지 말자는 것이다.아직 저쪽(북한)에 공식적인 정상이 없지 않느냐.유령을 만나서 대화하나.김일성사망후 두달이 넘도록 정상을 못낼 정도로 저쪽이 어려운 모양인데 애정을 가지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자는 것이다.그때가서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데 서두르고 앞서가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카터씨에게 친서를 보냈는데. ▲저쪽(카터)에서 (남북정상회담의)「도구로 써달라」고 했으니 의례적으로 「신중을 기해 달라」는 인사답신을 보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하지말라거나 잠자코 있으라는 답신을 할 수야 있겠느냐. ­그 때문에 어떤 혼선이 있는가. ▲미국에 클린턴대통령이 있다.김영삼대통령과도 자주 전화통화등을 통해 대처해 나가고 있다.김대통령도 클린턴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서두르지 말자고 얘기했다.외무부장관등 외교채널에서도 대화하고 있다.정부와 조율하고 이를 뒷받침해 주어야지 조용히 있어야 할 사람들이 쓸데없이 나서면 정책에 혼선이 온다. 이정책위의장은통일원장관을 지낸 북한문제 전문가이다.북한핵과 관련해서도 국내외의 원자로를 두루 살펴보았을 정도로 식견이 뛰어나다.그러나 모든 문제는 신중하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소신은 굽히지 않는다.그는 일부에서 「대북 강경론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싫어한다.인터뷰끝에 그는 『나는 강경론자가 아니라 북한에 대해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원칙론자」』라고 거듭 강조했다.
  • 프라하에서 보낸 편지:7/민병석 주체코대사(굄돌)

    오늘날 체코는 바츨라브(Vaclav) 두명이 끌고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이것은 바츨라브 하벨 대통령과 바츨라브 크라우스 수상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이름은 같지만 이 두사람의 지도자적 성향과 역할내용은 이름만큼 비슷하지는 않다.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하벨을 체코의 양심이라고 한다면,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크라우스 수상은 체코의 두뇌라고 할수 있다.하벨 대통령은 국익보다는 초국가적 가치로서의 정의를 더 중히 여기는 발언을 자주하며,크라우스 수상은 이때마다 국가의 실익보호를 위해 대통령 발언의 후유증을 수습하느라고 동분서주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체코에서 빈몸으로 쫓겨난 독일인들에 대한 대통령의 동정적 발언,회교국들로부터 규탄을 받고 있는 영국 작가 루시디의 초청,체코무기의 구입차 방문중인 칠레의 전 군사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공개비난 등을 들수 있다.이때마다 수상실은 발칵 뒤집혔다.가해국이자 부국인 독일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거나 회교국과의 관계는 도외시하고 작가의 표현자유만 중시하여 초청을 하는 소행은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한 일이 아니냐,찾아온 고객을 무안을 주어 쫓아 버리는 행위를 하는것은 말도 안된다는 등 볼멘 소리가 수상실 근처에서 터져 나왔다.그리고는 「하벨 대통령의 개인적 의견」,「사적 초청」,「정부와 협의 없는 발표」 등으로 얼버무려 수습하느라 애를 먹는다. 이런 상황이 일견 대통령과 수상간의 불협화음으로 보이지만 실은 이 두 지도자의 조화 때문에 체코는 명분도 살리고 실익도 챙길 수 있다.하벨 대통령의 양심적 언행 때문에 서유럽 국가들이 긍정적 체코관을 갖게되고,크라우스 수상의 현실적 정책 때문에 회교국과도 우호를 유지하며 무기 해외판매의 실익을 보게된다. 체코의 양심과 두뇌로 상징되는 이 두 바츨라브 중 하벨은 1992년에 방한했고 크라우스는 내달초에 방한한다.우리는 체코의 양심에 이어 두뇌를 만나게 될 것이다.이기회에 우리도 한국의 「양심」과 「두뇌」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 무리의 결과/오동춘 시인·외솔회 사무국장(굄돌)

    씩씩하고 용감한 무적해병이 되기 위해 진해에서 군사교육을 받을때 중사교관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에므원(M1)총은 무리를 가하면 결합이 안되고 총을 쏠 수 없다.그러므로 총에 무리를 가하지 말라 했다.뜻깊은 말이었다. 무슨 일이고 무리를 가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과음·과식하면 배탈이 나지 않던가? 작년의 구포열차사건,목포항공사건,위도서해훼리호 침몰사건등도 다 사람이 그 운행을 무리하게 했기 때문에 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목숨들이 낙엽처럼 흩어져 날아가버린 것이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3선개헌에 성공한 박정희대통령 역시 영구집권을 노리며 유신독재 헌법을 만들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혼자 출마해서 혼자 당선되는 독재선거방법으로 체육관에서 대의원들의 표에 의해 박정희는 유신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유신헌법을 반대하는 지식인,대학생들을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이 빡빡하게 잡아 넣었다.그리고 여당인 공화당의 다수 횡포와 물리적인 힘에 의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순간을 살기 위해 영원히 죽을 수 없다」던 김영삼 야당총재를 19 79년 10월4일 국회밖으로 쫓아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남의 눈에 눈물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말이 있다.또 죄는 지은대로,공은 닦은대로 간다는 말도 있다.누가 10·26시해사건을 예측이나 했으랴! 소장의 신분으로 5·16쿠데타로 정권을 쥔 박정희대통령이 한 고향 사람인 김재규 총에 의해 이승에서 저승으로 쫓겨간 것이다.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3선 대통령으로만 끝났어도 오늘날 크게 존경받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무리한 장기집권을 노리다가 독재자의 낙인을 받고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우리는 무리를 가하는 삶이 곧 멸망의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국사회의 이해」 박성수교수 등 5명의 비판

    ◎“한국 반대해야 올바른 현대사” 강변/“피착취계급 입장에 서야” 논리적 오류/가설을 「진리」로 규정… 언어의 테러 자행 고려대 한승조교수(정치외교학과)에 이어 박성수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를 비롯한 5명의 다른 학자들도 경상대 교수 10명이 공동으로 쓴 「한국사회의 이해」를 비판하고 나섰다.박교수등은 1일 「한국사회의 이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논문의 서론에서 『「한국사회의 이해」에 수록된 주장들은 지난 80년대 이래 자칭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이 공공연히 발표해온 논저에서 취한 것들로 그 중에는 당연히 북한 공산당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를 보는 틀◁ 피지배자 민중의 입장에서만이 올바르게 사회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 서로 대립하는 착취와 피착취계급이 존재하며 한국사회를 올바르게 보려면 피착취계급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잘못된 논리다.또 「상식과 과학의 통일성」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연구에서 오직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만이 과학」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그리고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사회를 이해하려 한다」는 기술은 제3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사회를 본다는 가치중립적 입장으로 해석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시공을 초월해 적용되는 절대 진리가 아니다.우리 사회는 1백40여년전 마르크스가 살았고 관찰의 대상이 됐던 프러시아 영국 프랑스등 서구 제국의 사회와 다르고 종속이론의 발상지인 남미 제국의 사회상과도 다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 사회가 대대로 이어지는 절대 불변의 계급구조 속에서 자본가는 잉여가치의 착취에 의해 부를 더욱 증가시키고 가난한 사람은 그로 인해 더욱 가난해지는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이 기술하고 있다. ▷사회과학=사회운동,사회과학자=사회운동이론가?◁ 이 책에서 우리는 민중운동의 이론가와 사회과학자와 정치가간의 차이에 혼란을 일으킨다.대학 강단에 선 정치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등 모든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운동의 실천적 이론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돼야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 ▷근·현대사의 왜곡◁ 이 책은 1919년의 3·1운동이 노동자 농민의 계급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민족대표를 비롯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민중을 배신함으로써 3·1운동이 실패했다고 주장한다.김일성과 박헌영이 6·25 남침의 주동자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 책이 과연 객관적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는지,아니면 객관적 역사 서술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근대사를 적화통일하려하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북한정권의 시각에서 보고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종속이론◁ 부정부패,소득분배의 불균형,수출위주 경제의 대외의존성 등을 이유로 종속이론에 입각해 우리 현실을 이해하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계급구조와 계급의식◁ 저자들은 한결같이 우리 사회를 자본주의 계급사회로 규정하고 계급간의 모순과 갈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러한 주장들은 대부분 실증이 결여되고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외면한 구호적혹은 상투적 주장에 불과하다.저자들이 주장하는 계급은 존재하지 않고 계급의식은 더구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사회와 이상국가 체제의 정체는◁ 저자들이 장황하게 기술한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 자체의 이상적인 내용과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변혁 이후 구현될 이상사회와 이상국가 체제의 구체적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았다.노동자계급이 변혁의 주체라는 주장 역시 자명한 명제인 것만은 아니다.사회혁명이나 변혁에 있어 노동자계급이 자신 위에 군림할 소수의 독재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는 가능한 방도는 아직까지도 인류 역사의 숙제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의 상대적 우월성◁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사회적인 문제란 노동자들이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착취를 당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다.그러나 이 문제는 자본주의의 처음 단계에서는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자본주의가 성숙해지면 효과적으로 대처되고 극복돼 갔던 것이 현실이다. ▷글을 마치며◁ 「한국사회의 이해」의저자들은 이른바 「과학화」의 개념적 도구들을 총동원해 우리 사회를 파악하려 든다.또 가설을 바로 진리로 확정해놓고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그리고 믿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온갖 언어적 테러를 자행할 뿐아니라 물리적 테러도 서슴지 않고 있다.이런 태도는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종교신자의 태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한국사회의 이해」와 같은 선동적 책자가 우리 사회에서 유포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 호치민과 김일성의 차이/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우리 국무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이영덕총리가 31일 상오 하노이 중심부에 자리잡은 호치민(호지명)묘소를 찾았다.이총리는 나라안에서의 「주사파」논란을 우려한 듯 호치민묘소에 헌화만 하고 시신을 보존하고 있는 내부는 참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의 눈으로 볼때 이총리는 하지 않아도 될 몸조심을 한 듯 여겨졌다.호치민과 김일성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호치민은 이데올로기를 떠난 국민적 영웅이었다.이총리가 그의 묘소를 방문했을 때는 날씨가 화창했으나 전날까지만 해도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그런 빗속을 뚫고 맨발에 후줄그레한 차림의 참배객들이 그의 묘소에 줄을 이었다. 한 베트남 참배객은 이렇게 말했다.『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위해,미국과 싸우기 위해 사회주의를 택했을 뿐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라며 『호치민은 공산주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민족의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이 참배객의 말은 실제에서도 일치했다. 이총리가 총리회담을 하고 국가주석을 예방한 하노이의 주석궁은 일반의 상상을 벗어나 있었다.정문을 지키는 위병은 슬리퍼를 신은 자유스런 복장이었다.주석궁 안에서 경호를 하는 경찰관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채 귀빈의 방문을 전혀 개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북한처럼 삼엄하고 강요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주체사상」이라는 명목아래 김일성·김정일을 「살아있는 신」이라 주장하는 북한과는 확연히 달랐다.물론 「기쁨조」도 없고 「어버이수령」이란 말도 없었다.그만큼 「인간적」이었다.사회주의에 앞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표현과 감정의 자유를 한껏 누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따라서 호치민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통일도 보지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민족지도자였지 「주체사상」이라는 허무맹랑한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압제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지난 69년에 사망한 그는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지도 않았다.그의 사망후 베트남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다.그가 물려준 「청렴주의」도 철저히 이행,25년동안 무리없이 정권을 이끌고 있다.최근들어 중간관리들의 부패가 일부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이나오지만 최고지도층은 아직도 그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사파」도 이데올로기 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 스리랑카 야당연 이끈 쿠마라퉁가(뉴스인물)

    ◎부모 모두 총리 지낸 명문가 출신/소르본대 유학… 72년 정계 입문/동지인 남편 암살돼 한때 외유/독재자·사회주의자 우려 시각 지난 16일 실시된 스리랑카 총선에서 5개 야당연합전선인 인민동맹(PA)을 이끌고 집권 통일국민당(UNP)에 승리한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여사(49)는 부모가 모두 총리를 지낸 정치명망가 가문의 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난 59년 불교승려에 의해 암살된 솔로몬 디아스 반다라나이케 전총리이며 어머니는 남편의 뒤를 이어 세계 최초로 여성총리에 선출돼 60∼65년,70∼77년 사이 두차례에 결쳐 총리를 지낸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여사다. 그녀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지난 72년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공부하다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귀국,어머니를 돕기 시작하면서 부터다.그러나 88년 남편 비자야 쿠마라퉁가와 함께 야당인 사회당을 만든 직후 과격단체에 의해 남편이 암살당하자 살해위협을 피해 두 아이와 함께 영국으로 피신했다가 지난 90년 귀국했다. 강렬한 카리스마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선거운동기간중 자유시장경제정책을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왜곡된 자본주의」라고 비난,많은 청중들을 끌어모으고 국민들을 흥분시키기도 했다.그러나 이때문에 그녀가 독재자나 사회주의자의 길을 걷지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북 김정일정권 6∼12개월내 붕괴”/영 아태전문가 일통신과 회견

    ◎개방땐 자유맛본 북주민 봉기로 전복/폐쇄정책 고수땐 경제파탄… 민심 이반 영국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의 리처드 그랜드 아시아·태평양 담당 주임은 3일 『김정일 신체제는 앞으로 6개월∼12개월 사이에 전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랜드 주임은 이날 런던에서 일본 교도 통신과 가진 기자 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오는 5일부터 재개되는 제 3차 미·북한 고위 당국자 협의도 성공하지 못해 결국 핵문제는 대북 제재 실시 문제로 다시 돌아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랜드 주임의 회견 요지. ­후계자인 김정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테러 지원자,핵확산 금지 조약 (NPT)문제의 책임자로 알려지고 있는 한편 젊은 개혁파의 테크노크라트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모두 다 맞는 말이다.그의 정통성은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것 뿐으로 아버지와 같은 권위가 없다. ­김정일 체제는 오래 유지될 것인가. ▲6개월이나 12개월 정도에서 전복되는 것이 아닐까.그는 2가지의 길이 있으나 어느 것이든 실패할 것이다.경제 안정을 위해 개방 정책을 취하고 서방측의 투자를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나 그렇게 되면 국민은 급속히 자유를 맛보게 돼 국가로부터 배반당하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한편 지금까지의 정책을 그대로 고집한다면 경제는 파탄하고 민중은 새로운 주석을 적대하게 될 것이다. ­정권 붕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엄격한 국가 통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그룹이 정권을 전복하더라도 새로운 독재자가 서방측을 향해 국가를 개방하고 평화적인 남북 통일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이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다.그러나 정권 전복으로 혼란이 생겨,국가로서 통일된 행동을 취할수 없게 되면 한국군과 충돌,대량의 피란민이 발생할 수도 있다.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제3차 미·북한 고위 당국자 협의의 전망은 ▲미국과 북한의 대화는 무너지고 전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북한이 핵사찰을 수락하더라도 국제 원자력 기구(IAEA)에 신고한 시설에 한하고 의혹의 시설이나 군사 시설에 대한 사찰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이라크의 핵개발 문제에 대한경험을 갖고 있는 미국은 의혹 시설에 대한 사찰을 계속 요구,결국 대화는 실패하고 제재 실시 문제로 다시 돌아 가게 될 것이다.
  • 세기적 아이러니/호현찬(일요일 아침에)

    이날 밤에도 내가 살고 있는 지구촌의 뉴스들은 어둡고 불안하고 답답한 것뿐이었다.수많은 생명들이 도살당하던 보스니아에서는 평화협정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천년동안 반목과 생존투쟁을 벌이다 겨우 화해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 가자지구에서 또다시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군과의 충돌로 수십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도 나왔다.르완다에는 반군의 진격으로 도살을 모면하기 위하여 백만명이 국경넘어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진정 아프리카에는 신도 UN도 속수무책인 것같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식 「동물농장」에서 거창한 김일성장례쇼가 벌어지고 있었다.「위대한 독재자」의 구령에 따라 웃고울고 그들 나름대로의 몸짓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동토의 땅이 지척에 있다. 4백만명의 겨레를 살상하고 천만명의 이산가족에게 이별의 슬픔을 안겨준 6·25의 주범의 종말이다.그런데도 북한땅은 온통 호곡의 소리가 진동한다.이 세기적인 아이러니속에 나도 살고 있는 것이다. 한달이상 지속된 가뭄으로 땅이 갈라지고 곡식과 초목들이타고 있다.서울의 환락가에서는 여전히 네온빛이 휘황하게 점멸되며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다.이 엄청난 아이러니속에 내가 살고있는 것이다.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전력부족과 과소비탓으로 전압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무덥고 습습한 공기속을 헤치며 밖으로 나갔다.서울의 하늘은 스모그와 얕은 구름이 덮여 있다.간간이 별이 보인다.목성과 슈메이커 레비9혜성의 파편이 대충돌했다는 소식도 들었다.직경 4㎞나 되는 별이 아름다운 목성에 충돌하여 지구만한 크기의 검은 웅덩이가 생기고 1천㎞이상의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고 한다.일천만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이러한 우주의 이벤트를 지구인들은 장려한 우주쇼라고 하며 흥분에 싸였다.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대충돌이 지구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과학자의 예측이다. 문득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생각난다.『1999년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올 것이다.앙골모아의 대왕을 부활하기 위하여…』 예언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공포의 대왕이 무엇인가 여러가지 억측을 하며풀이한다.그것은 지구와 충돌하는 대혹성일 수도 있고 핵이나 수소폭탄일 수도 있고 인류의 멸망을 재촉하는 포악한 독재자 또는 종말론을 신봉하는 신자들에게는 신의 심판일 것이라는등.이러한 생각에 이르다보니 아주 미물같은 인간들이 권력을 휘두르며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어리석은 짓들이 가소롭다.불로장수하기 위하여 불로초를 구하다 죽은 진시황의 무덤이 한낱 고고학적인 흥미를 끈 것이외에 무엇을 남겼을까.아방궁같은 궁전에서 영화를 누리다 죽은 김일성의 시신을 덮은 꽃들도 곧 시들고 유리상자도 다 부질없는 짓일 것이라는 것이 곧 밝혀질텐데 말이다. 요즘에 TV에 가끔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생명이 얼마나 존귀하며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서 모든 생명체들이 신의 섭리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법칙들을 실현하고 있는 것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한 여름에 잠깐 울기 위해서 수년동안 모진 환경속에서 견딘 매미들이나 잠자리들,알을 낳자마자 죽는 곤충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치열한 적자생존의 싸움을 벌이고 보금자리를 짓고 먹이사냥을 하며 짝짓기를 하는 동물이나 곤충들과 사람의 생활이 무엇이 다를까.대우주의 섭리안에서 생은 찰나이나 생명은 영원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생명이야말로 창조의 근원이다.그런 소중한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느끼고 있는 것일까…. 생명을 경시하는 것일수록 반자연,반평화이다. 생명은 희망에서 나온다.판도라의 궤속에서 나온 모든 인류의 재앙을 물리칠 있는 희망이야말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머리위에서 돌도 있는 컬럼비아인공위성속에서 작은 민물고기의 산란을 지켜보는 우주인의 실험도 인류의 창조를 위한 몸짓의 하나일 것이다. 밤이 지나면 또다시 태양은 찬란하게 솟아올라 생명의 에너지를 사랑스런 지구촌에 쏟아 부을 것이다.
  • 북한읽기­아는만큼 보인다/이재근(서울광장)

    구소련의 「6·25외교문서」가 주는 교훈적인 의미는 크다.역사적 진실은 결코 감춰질 수 없다는 진리가 그것이고 과거의 사실은 같은 형태로는 두번다시 되풀이될 수 없다는 확신을 사람들에게 심어준것이 또다른 하나다.6·25를 놓고 북침이니 남침유도전쟁이니 하는 속절없는 강변이 이제 무슨 근거를 갖겠는가.역사는 세월속에 확연해지고 사물은 아는만큼 보인다는 교훈이다.우리의 북한관이나 대북한인식도 그래야한다. 열이틀간에 걸친 장의행사와 추도대회의 장막뒤에 무슨 꿍꿍이속이 있었는지는 조만간 밝혀질 일이다.「그 아버지의 아들」이 후계권력자로 일단 굳혀진 사실도 알려졌다.그러나 그것이 곧 김정일이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한다는 보장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국내외적으로 체제유지에 불리한 요인이 가중되고 내부반목이 첨예화할 경우 큰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새가 죽을때 소리가 아름답고 사람이 죽을때 말이 착하다』(조지장사 기명야애 인지장사 기언야선)는 옛말이 있다.50년 독재자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그들 장의기간 내내 그것을 생각했다.그건 그렇고,김일성은 자신의 죽음을 다분히 예감했으리라고 나는 본다.죽기전에 가슴에 감춰둔바 과거의 잘못을 털어놓고는 뭔가 하나라도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남북정상회담이 그것 아니었을까.카터씨에게 얘기했다는 일흔살이상 이산가족 고향방문제의도 사실이라면 그렇다.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어떻든 김일성은 희대의 음모가요 책략가였음이 분명하다.그는 정상회담을 제뜻대로 끌고가다가 여의치않거나 중동무이하는 경우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김일성은 근년에 들어 유난히 김정일후계체제를 비롯한 통치권인계작업과 연관된 언행을 많이 한것으로 나타났다.아들후계구도 및 주체사상의 강화와 관련해서는 『내가 우리인민의 토양에 씨를 뿌리고 키워온 주체사상을 김정일동지가 무성한 숲으로 가꾸어 풍만한 열매를 맺게했다』『그가 없으면 동무들도,사회주의도 없다』『그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은 처음봤다』는 등의 공언이 그런 것들이다.밝혀진 바로는 최근 수년동안 김일성은 다만 「군임」해왔을뿐 김정일이 당·정·군의 전권을 장악했다.김일성은 세습후계체제의 공고화에 모든힘을 쏟았다는 얘기다.오랜기간 타스통신 평양특파원을 지낸 알렉산더 레빈은 그의 저서에서 김부자의 「일체관계」를 이렇게 묘사한다.『내가 목격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1984년 평양주재 소대사관에서 일어났던 일이 있다.그곳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러 와있었다.서기장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가져왔던 김일성은 추억에 잠긴듯 조금은 감상적으로 보였다.그는 소련대사 슈브니코프와 대화를 더 하기위해 강당중앙에 멈춰섰다.그러자 그보다 앞서가던 김정일은 돌아서서 「갑시다.갑시다」하고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조급히 재촉했다.아무것도 거칠것이 없다는 몸가짐이었다.김일성은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온순하게 아들의 뒤를 따라갔다.이 광경에 놀란 우리는 그후 오랫동안 이 「사건」을 분석했다』 독재자 아버지는 죽었고 그 아들이 아버지와 형식적으로나마 나눠가졌던절대권력을 아우르게 됐다.「한몸 두머리」의 권력이 지금 「한몸 한머리」로 되는 마당이다.그래서 우리는 이제 전체 북한읽기는 물론 그 한 머리 권력주체의 인물탐구에 철저해야한다.남북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 교류를 위한 남북회담의 진전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원칙이 유효하다는게 우리 입장이다.원칙과 정신은 살아있다는 말이지만,단 새로운 상황 새인물에 맞게 조정돼야한다고 본다.남북정상회담은 이제야말로 북이면 북 어느 한쪽의 책략으로 이뤄질 일이 아니다.처음 우리쪽 여론이나 국민정서가 그러했듯 시기는 여유있게 잡고 장소도 평양이나 서울아닌 제3의 지역이 좋다.판문점도 그렇고 공해상의 어느 함정에서도 안될것이 없다.그리하여 차츰 평양으로 서울로 가고 오자는 것이다. 상황은 많이 변했고 그래서 사람을 아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김정일을 더욱 연구하고 탐색해야한다.현재로선 그가 정상회담의 한쪽이 되는것이기 때문이다.그들 장의행사 전기간에 걸쳐 말한마디 하지않았고 공개석상에서는 병색이 완연한 넋나간 모습이었는데 왜 그랬는지를 정확히 알아내야한다.그의 성격,언행,사고,감정처리가 어떻든 남북한 관계변화와 직결되는 것이라면 우리의 지피지기는 단순한 인물탐구가 아닌 큰지혜에 속하는 것이다.『사람은 아는만큼 느끼고 느낀만큼 보인다』고 누군가 말했다.
  • 누가 옳고 그른지 국민은 안다(사설)

    서강대 경영대 교수들의 박홍총장지지성명을 보며 우리는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비로소 음미하게 된다.외견상으로는 총장의 발언을 소속대학교수들이 편든 것같이 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박총장의 발언에 대해,운동권의 폭력방식의 비판 및 비난 공세만 극성스럽고,공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해 『박총장의 발언진의가 흑백논리에 의해 왜곡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는 교수들의 성명에서 역연히 그것은 드러난다. 침묵만을 만능의 알리바이(불재증명)로 활용해온 많은 지식인 특히 대학인들이 우리에게는 있다.그들에게는 서강대교수들의 용기가 아직도 냉소의 대상이 될수도 있으므로 지지성명 교수들에게는 그나름의 용기가 필요했고 앞으로도 부담이 따를지도 모른다.그러나 단언하건대 그들이 보인 용기가 저버려지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런 작은 빌미는 서울대에 나붙었다는 「백지대자보」로도 읽어진다.여기서는 이른바 운동권론리의 핵심인 『6·25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이론보다는 「김일성」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전범 김일성론」「독재자 김일성론」「김일성의 부당한 호칭」「부자 세습의 웃음거리」「조문 논쟁」등에 냉철하고 균형감각을 가진 논평을 하고 있다.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란 이런 것이다.차가운 머리로 현실을 분석하고 논평하고 고발하는 것으로 사회참여를 하여,일상의 타성에 파묻혔거나 때로 방향감각을 상실한 다중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이다.그 본연의 역할을 일탈하여 대세 추종적이거나 침묵으로 유탄의 횡액이라도 피하려하는 지식인도 얼마든지 있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왔다.그런 지식인이 더는 숨기 어려울만큼 시대가 이제는 밝아졌다. 이런 때이므로 소위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한 재야세력의 반응은 우리를 비애스럽게 한다.지난날 이들 세력이 보여온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기능을 우리는 안다.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맹목적인 운동권 비호의 논리를 벗어나 여전히 이성을 잃고 「주사파」같은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젊은이들을 바로잡아주기를 기대했다.그러나 그들은 우리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그들은 언필칭 증거를 대라지만 검찰이 밝힌 그 많은 대북 「교신」과 「팩시」와 「전화」들이 있는데 박총장의 발언을 놓고 증거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스스로 알수 있을 것이다.그들이 정말로 「정의」로우려면 북의 인권과,부자세습과 인민을 얽어맨 부당한 굴레에 대해서만이라도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그렇게는 못할망정 수렁으로 들어가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부추기기나 하는 일을 이제는 그만두라.종교의 겉옷을 두르고 「정의구현」이라는 오만한 명칭을 전횡하는 일이라도 멈추라.
  • 서울대 백지대자보/김일성 비판 많았다

    ◎총학생회서 일반학생토론장 마련/거의 전범애도 불만·권력세습 혹평 서울대총학생회가 21일 김일성사망과 관련,운동권이 아닌 일반학생들의 자유토론을 이끌고자 내붙인 백지 대자보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견해를 개진,눈길을 끌었다. 김일성사망에 대한 평가,김일성의 호칭문제등에 대해 모두 익명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힌 대자보에서 한 학생은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 남한사회가 민족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거세된채 지주와 친일세력에 의해 지배됐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며 일부 운동권에서 주장하는 「6·25=민족해방전쟁」에 동조했지만 『전범 김일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비판론」이 주류를 이루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군부정권이 물러난뒤 청문회를 열어 죄를 논한 것처럼 왜 김일성에 대한 청문회를 열지않는지 모르겠다』,『김일성이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처럼 인민들에 의해 처단되지 않아 아쉽다』는등 김일성의 죽음을 환영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일성장례식과 관련,한 학생은 『과거 박정희대통령이 사망했을 당시 국민학교 2학년때라 철모르고 울었지만 북한에서는 서너살짜리 아이들이 울어대는 것을 보고 끔찍했다』고 토로했고 김일성의 호칭문제에 대해 『왜 학생들이 김영삼대통령은 「김영삼」으로 부르면서 김일성은 깍듯이 「김일성주석」이라고 호칭하는지 모르겠다』며 『용어선택에서부터 균형감각을 갖는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일부 운동권학생들의 비틀린 시각을 비판했다. 김정일의 세습문제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것은 조선시대에나 있을수 있는일』이라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판하기도 했다. 한 학생은 『김일성사망후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조문논쟁등 이념논쟁에 깊은 비애를 느낀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이 아니라 냉철하고 날카로운 지성의 눈으로 남북정세를 분석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달성하는 일』이라고 신중한 결론을 내렸다.
  • 공산독재자 장례식 어떻게 치러졌나

    ◎천안문광장 1백만인파… 외국조문단 “사절”/모택동/안치순간 소전역 5분간 묵도/레닌/조포30발… 애도군중 압사소동/스탈린/“화형” 유언 불구 유리관에 보존/호지명 20세기 들어 전체주의 국가의 장기집권자들은 흔히 사망시까지 권력을 쥐고 있다가 국민의 애도 속에 장례식이 치러지곤 했다.스탈린·브레즈네프·모택동·티토·호지명등이 그러했다. 그러나 사후의 평가는 장례식 만큼 화려하지는 않다.스탈린과 브레즈네프는 사후에 집권 당시의 잘못에 대해 준엄한 역사의 심판대에 내몰리기도 했다.아직도 적절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모택동과 호지명 뿐이다. 이들 가운데 그 장례식이 연기된 경우는 없었다. ▷레닌◁ 1924년 1월21일 사망했으나 발표는 22일 상오 6시.모스크바 중심가의 노조회관에 안치된 그의 시신에 마지막 경의를 표하려는 조문객이 혹한에도 불구하고 90만명이 넘었다.장례식은 27일.붉은 광장의 모솔레움에 방부 처리돼 안치되는 순간 5분동안 소련 전역에서 묵도가 이뤄졌다.그의 장례식은 그 뒤 소련 지도자는물론 중국등 공산권 지도자의 사망시 장례식의 전범이 돼 왔다. ▷스탈린◁ 1953년 3월 5일 사망했다.사체는 레닌 때와 마찬가지로 노조회관에 안치됐다.사망 2개월 전까지 공포정치를 거듭해 왔으나 모스크바의 중심부는 애도하는 군중들로 큰 혼잡을 이뤄 사망자가 나오기까지 했다. 9일 사체는 정치국원인 베리아·말렌코프·바실리·몰로토프·불가닌·카가노비치 등에 의해 모솔레움으로 운구돼 레닌의 옆에 안치됐다.이 때 5분동안 모든 소비에트연방 각공화국의 수도등에서 각각 30발의 조포가 발사됐다. 스탈린의 유해는 레닌과 마찬가지로 방부처리돼 살아 있을 당시의 잠자는 모습에 가깝게 재현됐으나 소련의 관영 매체에서 그의 이름은 한 달이 지나자 거의 언급되지 않게 됐으며 56년 20차 공산당대회에서 격하의 대상으로 내려 앉고 말았다. ▷브레즈네프◁ 18년동안 소련을 통치한 브레즈네프는 82년11월10일 상오 8시30분 사망했으나 하루가 지난 11일 상오 11시 발표됐다.안치장소는 역시 노조회관.15일 그의 장례식에는 32개국 국가원수와 15개국의 총리,14개국의 외상,4개국의 왕세자등이 참석했다. 검은 양복의 정장차림으로 꾸며진 그의 유해는 사망발표 2시간만에 당서기장으로 선출된 안드로포프와 티호노프·체르넨코·그로미코등에 의해 운구된 뒤 포차에 실려 모솔레움으로 옮겨져 레닌의 뒤에 안치됐다.관 뒤에는 가족이 따르고 그 뒤에는 소련군 장성들이 브레즈네프의 초상화와 훈장을 들고 천천히 따라갔다.하관시에는 조포가 발사되고 차량과 선박은 경적을 울려 애도를 표했으나 스탈린 때보다는 차분한 분위기. ▷모택동◁ 76년 9월9일 파킨슨씨병으로 사망.그의 장례식은 18일 하오 천안문 광장에서 치러졌다.아침에 사망했으나 발표는 하오 늦은 시간.북경주재 외교관의 조문은 허용됐으나 외국의 조문사절단은 사절. 장례식에서 광장은 물론 장안대로까지 가득 채운 1백만명의 조문객은 50렬로 앉아 화국봉총리의 연설을 들었다.행사를 주도한 화총리와 당제2부주석 왕홍문등은 얼마안가 제거됐다. 모의 사체는 인민대회당에 안치된 뒤 새로 건립된 모택동기념관으로 이장됐으며 유리관속에 방부처리된 채 잠자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티토◁ 2차대전 뒤 다인종국가인 유고슬라비아를 통치해 온 티토는 독자 노선과 비동맹운동등 활발한 외교를 벌이다 80년 5월4일 사거.티토의 장례식에는 소련의 브레즈네프서기장,미국의 먼데일부통령등 동서양진영의 35개국 국가원수와 8개국 부통령,50여개국의 정당지도자 7개국 국왕등이 참석했으며 대규모 연쇄정상회담이 벌어져 국제외교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장례식은 8일 사체가 안치됐던 의사당에서 거행.유해는 베오그라드 구시가지 남쪽끝의 티토기념관안에 묻혔다. ▷호지명◁ 파리평화회담 하루전인 69년 9월3일 상오 심장마비로 사망.그는 자신의 사체를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다른 공산국 지도자처럼 거대한 기념관안에 방부처리돼 안치됐다.그는 사후를 대비한 후계체제를 준비해 놓지는 않았지만 베트남공산당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후계구도를 무리없이 완성시켰다.
  • 국민 86% “김일성은 전범·독재자”/공보처등 3곳 여론조사 결과

    ◎남북정상회담 “점진 추진” 우세/“전쟁가능성 낮다” 대체로 많아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북한주석 김일성에 대해 독재자나 전범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남북정상회담은 점진적으로 계속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보처가 18일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여론조사를 비롯,중앙일보와 매일경제신문이 따로 실시한 조사 결과등 3개 여론조사를 비교분석한 결과로 나타났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한국갤럽 응답자의 50.2%가 김일성을 「독재자·개인숭배자」,36.1%가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라고 응답하는등 86.3%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도 김일성을 「전범」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76.9%였으며 김정일을 「호전적이고 위험한 인물」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41.7%로 나타났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적극 추진」(45.8%)과 「점진적 추진」(43.5%)이 비슷했으나 두 언론기관의 조사에서는 「점진적 추진」이 61.1%와 79.2%로 신중론이 우세했다. 김일성 사망후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에 대해서는 3개 여론조사 모두 「더 낮아질 것」(37.7∼44.3%)이라는 응답이 「더 높아질 것」(22.6∼44.1%)보다 높게 나타났다.또 통일시기에 대해서는 「빨라질 것」과 「늦어질 것」이라는 응답이 엇비슷해 김일성의 사망과 통일과의 역학관계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북한의 정국전망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결과가 나왔다.한국 갤럽등 2개 여론조사결과에서는 「서서히 안정」등이 64.6%와 77.3%로 비교적 긍정적으로 예상한 반면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18.8%만이 「김정일이 큰 혼란없이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응답해 대조를 이뤘다. 북한의 대외개방정책과 관련해서는 점진적 개방이 79.2%로 주류를 이뤘지만 「더 폐쇄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예측도 32.6%나 됐다. 앞으로의 남북관계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는 핵,경제교류,이사가족,통일문제등이 공통적으로 포함됐다.특히 북한에 대한 경제지우너에 대해서는 72.5%가 바람직스럽다고 응답했으며 경제 지원방식은 외국등을 통한 간접지원(20.8%)보다는 직접지원(66%)이 우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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