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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한경재시대의 노사관계 정립(최택만 경제평론)

    경제계는 지난 13일 노총과 경총간의 임금협상재개를 촉구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공동선언 7개항을 발표했다.경제 5단체는 공동선언에서 『국민경제발전에 책임을 함께하는 합리적 노동운동을 적극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이 표현은 노총중심의 노동운동을 지지하고 제 2노총은 경제계의 협상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경련·무역협회·대한상의·경총·기업중앙회 등 5단체가 이례적으로 공동선언를 채택한 것은 지난 87년 정치의 민주화이후 해마다 악성 노사분규가 발생해 성장잠재력이 마모되어 왔고 향후에도 노사분규가 지속될 경우 기업존립과 경제안정이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세계각국의 노동운동을 보면 노사분규의 장기화가 한나라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간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슬기롭게 대처하여 위기를 모면한 케이스도 있다.전자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아르헨티나 페론주의자 정권하의 노동분규이다.1972년 페론주의자들이 집권을 하면서 노동분규가 급증,집권 5년후에는 인플레율이 무려 4백44%에 달하는 등 경제파탄에 직면했다. 터키에서도 1976년부터 80년까지 극심한 노동분규가 발생하면서 임금인상의 악순환에 의해 지난 80년에는 물가상승률이 1백10%에 달했고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스페인의 경우는 독재자 프랑코사후 민주화과정에서 과격한 노사분규가 발생,경제가 급격히 기울었고 이로 인해 유럽 최대의 실업국으로 전락했다. 반면에 영국은 대처 전총리가 광산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단호히 맞서 경제위기를 수습했다.싱가포르의 이광요 전총리는 정부의 인위적인 고임금정책으로 85년과 86년 두해에 걸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전국민에게 고통분담을 호소하면서 임금동결을 단행한 바 있다.싱가포르는 그 정책이 주효하여 88년에는 11%의 경이적인 성장을 실현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의 메넴 대통령도 이 나라 최대노조인 노동자총연맹의 부당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노조가 스스로 무리한 요구를 철회하도록 했다.그러면서 노사분규로 잃어버린 경제손실을 회복하자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찾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지난 87년부터 노사분규가 크게 증가했고 8년이 지난 현재도 일부 산업현장은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다행히 지난 2년동안은 노총과 경총이 임금의 사회적 합의를 본 바 있다.그러나 올해는 노동단체간의 주도권문제를 의식한 노총이 협상을 거부함으로써 임금합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세계무역기구출범으로 인한 무한경쟁에 대비하여 노사가 한층 더 협력을 다져야 할 시점인데 현 상황은 정반대이다.국제적인 경제환경의 변화가 없다해도 흔히 노사관계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로 비유된다.물고기가 살지 않는 물은 죽은 물이고 물이 없이는 고기가 살 수 없다.노사간을 공동운명체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총과 경총은 바로 공존관계 정립의 실질적인 주체이다.노총이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주체로서 책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재야노동단체와 선명경쟁을 위해 주체자리를 내놓는 것은 노총 스스로를 위해서도 잘못된 일이다.재야노동단체 역시 노사가 국민경제와 생산활동의 실질적인주체라는 사실을 외면한채 집단이익을 위해 투쟁으로 일관하려는 것은 옳지가 않다.공산권의 붕괴로 노사를 노자관계론적 대립관계로 보는 시대는 막을 내린지 오래다.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시대 노사관계는 최대의 자율과 최상의 협력을 전제로 한다.그리고 산업현장은 경영과 노동이라는 공동작업을 통해 전인적 가치를 구현하는 「협력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이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이다.우리의 노사관계도 무한경쟁시대에 맞게 재정립되어야 한다.따라서 노총은 경총과의 임금협상에 응하기 바란다. 정부는 중앙노사가 자주·자율·자결원칙에 따라 임금합의를 이끌어 내도록 유도하는 한편 한국형 임금결정제도의 정립을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중앙노사가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경우 정부는 각계 의견과 생산성 및 물가지수 등을 감안하여 임금가이드라인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 북,차관급회담 거부

    북한은 27일 우리측이 지난 25일 남북간 현안논의를 위한 차관급 회담을 갖자고 제의한 데 대해 『대세의 흐름에 반하는 반통일적 움직임』이라면서 거부입장을 분명히 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 중앙통신은 이날 우리측의 차관급회담 제의에 대한 노동신문 논평을 인용해 이같이 밝히고 한국정부가 「8·15 공동경축행사 지지,대민족회의 거부」 입장을 밝힌 것은 『남측이 북남 사이의 접촉과 대화를 근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북한의 이같은 반응은 노동신문 논평형식을 빌리긴 했으나 우리측의 차관급회담에 대한 명백한 반대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통일원의 이 당국자는 특히 『북한이 당국간 회담을 거부함으로써 당초 그들의 8·15경축행사 공동개최 및 대민족회의 제의가 우리 정부당국과 각 정당,사회단체등 민간을 이간시키려는 속셈이 확연해졌다』면서 『그러나 당국간 대화원칙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입장은 불변』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북한도 경수로 건설지원이 본격화되기 위해선 남북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당분간 북한의 태도변화를 지켜 볼 뜻을 밝혔다. 한편 노동신문은 논평에서 한국정부가 이번 성명을 통해 취한 태도는 『민족의 염원에 도전하는 반통일적이며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라면서 『대화와 통일문제에 대한 입장에서 남조선 당국은 전 군부독재자들과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시련과 도전의 94년(사설)

    해마다 한해를 보낼때는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을 쓴다.또다시 한해를 보내는 이 마지막 날의 아침에 되돌아보는 지난1년도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아니 다사다난이 그 어느해보다 실감나는 격동의 94년이었다.되돌아보기도 싫고 겁나기까지 한 지난1년이 아니었는가. 끔찍하고 어려웠던 사건·사고들이 유달리 많았던 한해였기 때문일 것이다.그중에서도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의 패륜과 지존파의 잔인무도한 살인행각은 인간이기를 거부한 천인공노의 사건들이었다.장교및 하사관 무장탈영과 사병들의 장교 길들이기등 군 하극상과 공무원이 국고를 훔친 세도등은 허탈과 분노를 안겨준 사건들이었다. 대형사고도 많았다.아침 출근길을 강타한 한강성수대교 붕괴는 가장 충격적인 사고가 아닐수 없었다.문자 그대로 부실 시공과 관리및 대응의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대표적인 인재의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무책임하고 경솔한 보도경쟁으로 국가적 신뢰실추의 빌미가 되는 안타까움까지 남겼다.그밖에도 살인더위에 유람선화재와 가스폭발,통신공동구화재,열차충돌등 크고작은 사고들로 얼룩진 한해였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시련의 연속이었다.그러나 시련과 실망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그동안 우리는 고속성장만을 정신없이 추구해왔다.공무원의 복지부동을 탓하는 소리도 높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권위주의시대의 맹목적 고속성장과 그 타성의 불가피한 결과요 부산물이라 할수 있다.문민시대가 반성과 재정비및 새출발에 나서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비온 뒤에 땅 굳는다는 속담도 있다.뼈아픈 반성과 굳은 각오의 새출발로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아야 할것이다. 다행스런 것은 사건·사고의 홍수속에서도 좌절없는 도전은 계속되었다는 점이다.경제는 안정과 활기의 조화속에 성장을 지속했으며 주사파 위협에 대한 자정의 사회운동도 전개되었다.대통령은 미·러·중·동남아등 세계를 누비며 부지런히 한국을 심고 통일외교를 다지는 한편 수출세일즈를 진두지휘하는 굽힐줄 모르는 의지를 과시했다.세계화비전을 제시하고 정부조직의 혁명적 개편도 단행했다.제2도약의 체제정비로 분주했던 한해의 보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격동도 만만치 않았다.탈냉전의 민족갈등이 처절한 속에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평화진전은 기억해야할 94년의 보람일 것이다.우리 주변환경에도 큰변화가 있었다.공산독재자 김일성사망과 북·미 핵합의및 해를 넘기는 김정일 공식승계 지연등은 한반도에서도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가 느리나마 꾸준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광복 50주년의 새해엔 통일로 가는 문이 열릴 것인가.
  • 미 정찰 헬기 북한불시착… 워싱턴 표정

    ◎미의회/“송환 안되면 북­미합의 반대”/북자극우려 백악관 조심스런 성명/방북 귀환의원들 냉정한 대처 주장/미정가 조기해결 낙관… 언론선 톱뉴스로 일제보도 클린턴미국대통령은 일요일인 18일 교회에 가기전에 휴전선 북방에서 추락한 사고헬기의 조종사 1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1명은 생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백악관측은 클린턴대통령이 이같은 보고를 받고 『오늘 우리의 기도는 사고헬기의 조종사와 그들의 가족을 위해 드릴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백악관당국이 클린턴대통령의 이름으로 발표한 세문단짜리 성명은 생존조종사 홀준위가 아직도 북한에 억류되어있음을 감안,북한을 자극하지않도록 어휘선택에 각별히 신중을 기했다는 것. 이 성명은 북한영공에 잘못 들어간 미군 헬리콥터가「추락하는 과정에서」 조종사 2명중 1명이 사망하고 다른 1명은 무사하다고 밝히고 있는데,비무장 헬기에 북측의 대공포발사등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지않은 것은 사고경위가 불확실하기도 하지만 북측을 자극하지않으려는 고려가 있었다는것. ○…미국의 주요 방송들은 휴일의 톱뉴스로 일제히 사고 미군헬기조종사 1명의 사망과 생존조종사 1명의 송환문제를 다루는등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이번에 사망한 데이비드 힐레먼준위 유족들의 애통해하는 모습과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은 보비 홀준위의 가족 모습을 방영했다.홀준위의 부인 도나 홀여사는 『그이가 무사하다니 기쁘기 한량없지만 힐레먼과 그 가족을 생각하면 뭐라고 말할수 없다』고 울먹였다. ○…이번 사건이 전해진후 미의회의 민주,공화 양당의원들은 저마다 조종사의 송환문제가 지연된다면 북미합의가 초당적인 반대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원의 대니얼 모이니헌의원(민주·뉴욕)은 조종사 1명의 사망사실이 전해지기전 가진 CBS방송과의 회견에서 『북한의 독재자도 죽고 경제도 죽었다.조종사들을 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고 공화당의 피트 도미니치의원(뉴멕시코)은 NBC방송과의 대담에서 『조종사를 억류할 합당한 이유가 없을것』이라며 『송환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말하고 『미국은 오래 앉아서 기다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머코스키의원(공화·알래스카)과 함께 북한을 다녀온 폴 사이먼의원(민주·일리노이)은 『북한은 사용할만한 카드가 없다. 우리가 피해야할 일은 이번 사건을 확산시키는 것이다.우리는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 ○…워싱턴정가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미군헬기의 불시착과 관련,북한이 미국을 적대시할 경우 잃을 것이 많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미국의「전략및 국제연구센터」의 군사전문가이며 북미관계 전문가인 윌리엄 테일러는 『핵협상 진행과 병행해 북미관계개선을 다루고있는 양국관계가 이번 사건에 의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그는 『북한이 헬기조종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를 거부하고 있고 미국이 전쟁연습을 하고있다고 비난하지만 숨가삐 돌아가는 며칠의 기간이 지나면 생존한 1명의 조종사를 돌려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헬기 조종사 가운데 한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아시아국가 실태조사차 마침 평양을 방문중인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민주·뉴멕시코)이 워싱턴에 전달. 리처드슨의원은 북한의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전달하고 헬기가 추락한 장소를 방문할수 있도록 요청했으며 만약 필요하다면 미군 헬기들이 조종사들을 소개하기 위해 북한지역에 착륙할수 있는지를 묻기도. 그는 미군헬기의 북한영내 불시착으로 본래 업무는 뒤로하고 북한과의 협상창구역할을 맡아 바삐 뛰게 됐다.
  • “이 22일 총리불신임 투표”/연정파트너 등 곧 동의안 제출

    ◎평론가들,신임획득 난망 밝혀 【로마 로이터 연합】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총리는 집권연정 파트너인 「북부동맹」과 다른 2개 야당이 제출할 3개의 불신임동의안에 따라 오는 22일경 불신임투표를 치르게 됐다. 현집권연정의 파트너인 북부동맹은 불신임동의안 제출 준비를 마쳤으며 중도파 야당인 국민당과 공산당의 후신인 좌익민주당(PDS)도 함께 불신임동의안을 제출키로 했다.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불신임투표 일자는 의회가 95년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현연정의 장래에 대해 논의한 후인 오는 22일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연정의 3백66개 의석중 1백5석을 차지하고 있는 북부동맹의 움베르토 보시당수는 라 푸블리카지와 회견에서 『작은 독재자는 22일 몰락할 것이다』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긴밀한 관계인 민족동맹의 지안프랑코 피니 당수도 『이같은 도전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면서 불신임투표 결과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치평론가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불신임투표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현내각 붕괴 후 총선실시와 새내각 구성 등 정국의 불안한 향방에 우려를 표했다. 【로마 로이터 연합 특약】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22일로 정해진 가운데 집권연정 참여세력 가운데 하나인 북부동맹이 분열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이탈리아 북부동맹의 움베르토 보시 당수는 이날 당의 공식의견인 총리 불신임에 반대하는 당내 반대세력을 「이와 돼지들」이 라고 비난함으로써 내부반대파와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편 보시당수는 이날 주간당무보고서에서 『베를루스코니는 「죽음의 선상」에 들어섰으며 집권여정은 이미 죽었다』고 밝혔다.
  • “김정일 건강 나빠 권력승계 지연”

    ◎일시사지 「제군」「북한의 앞날」 특집 보도/당뇨병 확실… 통치권 누수현상까지/곁가지 김평일·혁명1세대 세확장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는 일본의 시사월간지 「제군」지 12월호가 김정일체제의 불안한 전도를 예고,관심을 끌고 있다. 이 잡지는 「김정일은 나타났지만…」이라는 제하의 특집기사에서 『북한의 권력승계가 늦어지고 있는 것은 당뇨병 등 김정일의 심각한 건강이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정일이 건강악화로 인해 현재 전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어 북한권부안에 심상찮은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잡지는 이런 분석의 근거로 이복동생 김평일(핀란드 주재대사)이 활발히 서방언론과 접촉하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김평일의 대외활동은 김정일의 권력장악력의 약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김평일은 김정일이 건강했을 때는 「곁가지」로 김정일의 철저한 견제를 받아 입도 뻥긋하기 힘들었다. 이 잡지는 이같은 김부자 후계체제의 난기류를 역이용해 북한의 핵심 기득권세력들이 자신들의 지위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른바 「혁명 1세대」를 중심으로 한 당정치국 실세들이 김정일의 통치권 누수의 틈을 비집고 사실상 집단 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해석은 김정일이 건강이상이나 장악력의 부족으로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가 구축되고 있다는 통일원 등 정부 일각의 관측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군」지는 지난 10월 16일 김일성 1백일 추모제에 김정일이 나타났으나 권력자의 풍모를 발견할 수 없었을 뿐더러 병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는 평가에서부터 기사를 시작하고 있다. 「제군」지의 기사를 요약해본다. 여러 정보를 종합하건대 그의 병은 당뇨병인 게 틀림없다.동서 사회체제의 차이에 관계없이 아무리 능력이 있는 정치가라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따라서 김정일이 권력자의 자리에 취임한다고 해도 건강이 좋지 않는 한 실권이 없는 명목적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김정일의 권력이 약화되고 있는 구체적 증거는 이복동생이자 핀란드 주재대사인 김평일의 최근 「신이 난 듯한」 언동이다.김정일이 건강했을 때는 김평일이 서방기자들과 단독 인터뷰에 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나 최근 그의 언론접촉 뿐만 아니라 외교활동도 더 활발해지고 있다. 「혁명 1세대」로 불리는 노간부들의 입장에서도 김정일의 병은 그의 지위를 이름뿐인 것으로 만들어 당정치국 중심의 정치를 하도록 하는 구실을 만들어주고 있다.이들 당정치국 고위간부들에게는 자신들의 지위 안정화를 도모할 기회가 굴러들어온 셈이다.이로 인해 가령 김정일이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에 취임한다 하더라도 북한정국은 유동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김일성이라는 절대적 독재자가 사라지고 권력계승자인 김정일은 병으로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사태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김정일을 둘러싼 권력투쟁은 세대간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파벌형성에 의한 다툼이라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김평일의 신이 난 것 같은 행동도 이해할 수 있다는 감이 든다.
  • 베니스 비엔날레/베니스 영화제(유럽 문화산업 현장:중)

    ◎관광진층·경제활성화 동시 추구/현대미술·영화흐름 주도… 세계적인 축제로/권위에 안주 않고 끊임없는 개혁정신 발휘/비엔날레 한국관 기공계기,기업의 현지 투자 요청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기공식이 열렸던 지난 8일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은 베니스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한국은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국이며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자적인 문화가 있으나 이를 세계에 선전하지 못해왔다.이런 기회를 베니스 시민들이 갖게 해주어 감사한다』 이에 대해 베니스의 시장인 마치모 카치아리씨는 『한국이 상설 전시관만 지을 것이 아니라 공단에 기업이 투자하고 현지인을 고용하며 많은 관광객을 보내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화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세계적 권위와 그 권위를 단순한 문화행사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관광진흥과 경제활성화에까지 연결시키는 이탈리아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의 수많은 미술제전과 영화제중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관이 개관했을 때에는 히틀러가 참석했으며 일본관이 개관할 때는 국왕이 참석,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1895년 이탈리아왕국과 베니스시는 베니스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미래에도 예술을 주도하기 위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창설했다.그해는 국왕인 움베르토1세와 사보이왕가의 마그리타왕비의 결혼 25주년 기념식이 있는 해였다. 베니스는 당시 세계최고의 예술도시로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영국·미국등의 젊은 화가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오던 곳이었다. 제1회 대회는 주로 라틴국가들의 화가 4백71명이 참가했으며 그후 1백년동안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2년에 한번씩 6월에 시작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 각국의 화가·조각가·건축가·평론가·저널리스트·화상등 1만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세계의 미술 올림픽.미술인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르디니 공원에 상설전시관을가진 24개국,주로 선진유럽국가들의 국제잔치로 치러져 왔다.따라서 이곳에 상설전시관,즉 국가관을 갖지 못한 나라들은 이탈리아관의 한쪽을 비좁게 빌려 쓰면서 국가관을 마련하기 위해 치열한 국제 로비전을 펼쳐 왔다. 선진국의 문화패권주의가 날카롭게 대결하는 이곳의 한정된 공간에서 마지막 국가관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고 건물 기공식을 올린 우리 정부는 「문민정부 최대의 문화외교 성과」로 이를 자부하고 있다.한국관이 들어서는 부지는 지난 20여년동안 중국과 아르헨티나 등이 상설전시관을 짓기 위해 탐내왔던 곳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권위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자 박물관인 베니스의 미술전통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귀족적 권위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개혁의 정신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명성을 지켜왔다. 이탈리아의 전위미술가였던 필리포 마리네티는 베니스를 20세기 미술운동의 하나인 미래파의 발상지로 만들었고 그의 미래파선언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위적인 성격을 가미했다.그는 19 07년 『박물관과미술관은 수백년 전에 죽은 화가와 조각가들의 공동묘지이기 때문에 때려 부셔야 한다.운하의 물길을 터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물에 잠기게 하라.오!영광에 가득찼던 캔버스들이 물위에 떠내려 가며 색이 바래고 갈갈이 찢겨지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즐겁겠는가』라는 미래파 선언을 했다.그는 더 나아가 『엔진의 뚜껑을 커다란 파이프로 장식한 경주용 자동차가 「사모트라체의 승리」라는 낡은 그림보다 아름답다』고까지 말했다. 1968년에는 학생들의 데모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수상제도가 바뀌기도 했다.베니스대학 학생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그랑프리 제도가 상업주의에 이용된다며 데모를 벌여 대상제도가 사라지고 「올해의 화가상」과 가장 훌륭한 작품을 출품한 국가관에 주는 상이 새로 만들어졌다. 한편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19 32년 만들어 졌다.당시의 통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첨단과학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영화제를 창설했다.독재자의 광기와 과욕이 이탈리아의 영화 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고 독재자가 역사의 인물로 사라진 뒤에도 전세계 영화인들의 최고 영예가 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칸영화제가 생긴 것은 이보다 7년 뒤인 39년이며 베를린영화제는 50년에야 창설됐다. 베니스 영화제는 32년 제1회대회때부터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34년에는 국내영화·국제영화 두분야로 나누고 36년에는 최고상인 무솔리니배가 추가되고 47년부터는 베니스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황금사자상이 주어진다. 38년도 베니스 영화제의 무솔리니배는 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기록영화를 만든 독일의 여류감독 레니 레펜슈탈에게 돌아가고 51년도에는 영화 후진국인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라생문」으로 작품상을 받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구로사와의 부친은 일본 육사를 나와 평생동안 학교의 체육선생을 지낸 사람으로 구로사와는 그의 영향을 받아 일본 사무라이의 비정한 생활을 영화한 것이 일본문화 수출의 첨병이 되었다.일본의 영화산업은 베니스영화제의 수상을 계기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7년에는 우리나라의 강수연양이 「씨받이」라는 영화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베니스 영화제는 해마다 여름철에 리알토섬(베니스의 주요 섬)의 남쪽 방파제 구실을 하는 리도섬에서 열린다.리도 섬에는 11㎞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과 경마장 골프코스 비행장 축구경기장 등이 있는 곳으로 영화제가 시작되면 세계적인 축제가 벌어진다. 이기주 주이탈리아대사는 『우리나라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우리 문화를 선전하고 알리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상품은 비싼 것이라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신뢰를 하면서 물건을 사는데 비해 한국 상품은 1만달러가 넘는 것은 보증서가 있는가,잘못되었을때 환불을 받을 수 있는가를 질문받게 된다』고 밝혔다.이대사는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알리는 대규모 문화 행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문화행사와 관광진흥을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베니스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 “셋이 함께 만나자” 한·일에 제의/클린턴(김 대통령 순방여로)

    ◎한반도 새환경속 대남정책 조율/한·미·일 정상회담/외무·안보보좌관 등 배석… 1시간 요담/한·미회담/덕담나눈뒤 한­일무역·북­일관계 등 논의/한·일회담/강택민,“양국관계 성공적인 발전” 평가/한·중회담 김영삼 대통령은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14일 저녁 미국및 일본 정상들과 예정에 없던 긴급 3국정상회담을 가졌다.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상·하오에 걸쳐 클린턴 미국대통령,무라야마 일본총리,강택민 중국국가주석,크레티앵 캐나다총리등 4개국 정상들과 잇따라 개별회담을 갖는등 이번 순방기간중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다. ▷3국정상회담◁ ○…14일 저녁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 주최 18개국 정상 만찬이 끝난 뒤 김대통령과 클린턴 미국대통령,무라야마 일본총리는 만찬장 아래층의 서미트 룸으로 자리를 옮겨 긴급정상회담을 갖고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회담후의 3국 공조방안을 조율. 이날 상오 김대통령이 강택민 중국주석과 개별정상회담을 가진 장소인 이 방에는 3개국 정상회동을 제의한 클린턴 대통령이 맨 먼저 하오9시42분쯤 들어서고 바로 뒤따라 김대통령,무라야마총리가 차례로 입장,세 정상은 서로 악수를 하고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한 뒤 좌정. 3국정상은 자리에 앉아서도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한동안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했으며 잠시후 의전관계자들이 보도진의 퇴장을 요구. 3국정상은 10여분동안 대화를 나눈 뒤 국별로 「공동발표문」을 발표시킴으로써 사실상 3국 실무진 사이에 마련된 발표문내용을 추인한 모임이 된 셈. 이 자리에 있던 우리 정부 관계자는 3국정상회담의 의의에 대해 『미국과 북한의 핵문제 합의후 조성된 한반도의 새로운 환경과 미국및 일본의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움직임을 앞두고 3국의 공조를 정상들이 확인한 자리』라고 설명. ▷한·미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이날 하오2시58분부터 1시간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렸다. 김대통령은 대사관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클린턴 대통령과 반갑게 인사한 뒤 관저 뒤편에 있는 정원에서 카메라기자들을 위해나란히 포즈를 취하며 재회의 기쁨을 교환.김대통령은 『악수라도 한번 해볼까요』라며 클린턴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하기도.사진촬영에 응한 뒤 두 정상은 정원쪽 옆문을 통해 회담장으로 입장.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상오 강택민 중국국가주석,무라야마 일본총리와 회담했고 이어 폴 키팅 호주총리와 오찬을 겸한 회담을 가졌으며 김대통령과의 회담이 네번째이자 개별회담으로는 마지막. 이날 정상회담에는 한국쪽에서 한승주 외무부장관·한이헌 경제수석·정종욱 외교안보수석·주돈식 공보수석과 이장춘 외무부 외교정책기획실장·장재룡 미주국장이 배석했고 미국쪽에서는 크리스토퍼 국무장관·레이크 안보보좌관·루빈 경제정책보좌관·로드 동아태차관보와 레이니 주한대사 등이 배석. ▷한·일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날 아침 숙소인 만다린호텔에서 무라야마 일본총리와 조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4개국 정상과의 연쇄 정상회담에 착수. 김대통령은 이 호텔 2061호실에 마련된 한일정상회담 장소에 상오 7시30분 정각에 도착,2분뒤 도착한무라야마총리를 입구에서 맞아 악수를 나누며 『일본과 한국은 날씨가 비슷한데 여기 기온이 유난히 높아 고생하시겠다』고 인사. 김대통령은 『오늘 아침 조깅하는데 서울보다 20도 이상 높고 습도도 높은 것 같더라』고 말했고 무라야마 총리는 『매일 조깅하시느냐.지난 7월 뵐 때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다』고 덕담. 김대통령은 이어 사진기자들이 정상회담 장면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하자 『사진기자들은 독재자』라고 농을 던졌고 무라야마총리도 환하게 웃음. 김대통령이 취임 후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는 이번이 4번째이며 무라야마총리와는 지난 7월 취임직후 그의 방한으로 첫 상면한 뒤 두번째. 김대통령과 무라야마총리는 북한핵문제및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개선문제,한일무역역조 문제와 사할린거주 한인1세의 영주귀국문제들을 주제로 1시간동안 조찬을 하면서 환담. ▷한·중 정상회담◁ ○…무라야마 일본총리와 회담을 마친 김대통령은 장소를 자카르타 힐튼 컨벤션센터로 옮겨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 1시간10분 남짓 회담. 한·중 정상회담은 똑같은 장소에서 직전에 열린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강주석의 정상회담이 다소 지연돼 예정보다 20분 늦은 상오 9시20분부터 시작. 김대통령은 회담장에 도착해 회담장 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강주석의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한 뒤 회담장으로 이동. 김대통령은 『지난해 시애틀 APEC 정상회담과 지난 3월 중국방문에 이어 오늘 다시 만나 반갑다』고 인사한 뒤 우리측 배석자인 한승주 외무부장관과 한이헌 청와대경제수석,정종욱 외교안보수석,주돈식 공보수석을 소개. 강주석도 『1년만에 세번째 만나게 됐다』고 인사하고는 중국쪽 배석자인 전기침 외교부장등을 차례로 소개. 김대통령은 배석자 소개가 끝나자 『지난번 이붕총리가 전부장과 함께 방한했을때 두나라의 관계발전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아주 좋은 자리가 됐다』면서 한·중관계의 발전을 주요 논의 사항으로 제기. 강주석은 이에 대해 『지난해 APEC에서 김대통령 각하를 만난데 이어 지난 3월 방중기간동안 만나고 또 이붕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한·중 두나라의 관계증진을 위해 매우 성과있는 일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한·중관계는 매우 성공적으로 발전되고 있다』고 평가. 이날 한·중정상회담은 한·중 정상의 숙소가 아닌 제3의 장소(컨벤션센터)에서 열렸으나 강주석이 김대통령을 영접하고 전송했으며 이는 지난해 시애틀 정상회의 때 우리측이 영접하고 전송한데 대한 답례와 함께 의전상의 이유 때문이라고 한 관계자가 설명. ▷한·캐나다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연쇄 개별정상회담의 마지막 순서로 크리티앵 캐나다총리와 크레티앵총리의 숙소인 메리디엔호텔에서 단독회담을 갖고 두나라의 협력증진방안과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을 위한 협조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 지난해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 때 단독정상회담을 가진바 있어 구면인 김대통령과 크리티앵총리는 메리디엔호텔에 마련된 회담장에서 반갑게 악수를 나눈뒤 양쪽의 배석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상회담에 돌입. 회담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크레티앵총리는 김대통령이 도착하자 환하게 웃는얼굴로 김대통령을 반갑게 영접했으며 김대통령은 한외무장관,한경제수석,정외교안보수석,주공보수석 등 우리쪽 배석자들을 소개. ▷APEC 정상 만찬◁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APEC정상회의 주최국인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는 것으로 APEC정상회의 참석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APEC 의전서열순서에 따라 만찬장인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 도착,수하르토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어셈블리 제1홀에 입장. 김대통령은 이곳에서 클린턴 미국 대통령,강택민 중국국가주석,무라야마 일본총리를 비롯한 APEC정상회의에 참석한 18개국 지도자들과 칵테일을 들며 상견례를 겸해 환담. 이어 김대통령은 어셈블리 제2홀로 이동,수하르토대통령의 만찬사를 듣고 각국 정상들과 함께 만찬. 김대통령은 만찬이 끝난뒤 어셈블리 제1홀로 다시 자리를 옮겨 APEC 지도자 비공식회의에 참석,15일 정식회의의 주의제인 역내 무역자유화 연도에 대해 사전에 입장을 조율. ▷손여사 민속촌방문◁ ○…김대통령이 개별연쇄정상회담에 나선 이날 부인 손명순 여사는 클린턴 미국대통령부인 힐러리 여사 등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부인 10명과 함께 푸루나발티 퍼르티위박물관과 타만미니민속촌을 방문. 손여사는 수하르토 대통령부인 티엔 여사의 안내로 도자기공예품등이 진열된 박물관 내부를 돌아보고 민속촌을 시찰한 뒤 아이맥스영화와 인도네시아 고유의상에 현대복장을 가미한 패션쇼를 관람. 이날 박물관 및 민속촌 관람도중 티엔 여사는 맨앞에 선 손여사와 힐러리 여사에게 주로 많은 설명을 했으며 손여사와는 이따금 손을 잡고 걷기도.
  • 열린 눈·열린 가슴/문정희 시인(굄돌)

    며칠전 니카라과의 외교관부부와 저녁을 함께 했다.니카라과 사람들은 시를 너무도 사랑해서 마치 우리가 모임이 끝나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듯이 그렇게 시를 열정적으로 읊는다고 했다.그래서 특별히 한국의 시인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그분들과 자리를 함께 한 것이었다. 그분들을 만나고 나서 나는 내심 조금 충격을 받았다.그동안 내가 니카라과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그 나라는 독재자 소모사 때문에 오랜 시련을 겪은 나라였다는 것과 중미국 가운데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라는 것 뿐이었다.그러나 너무도 세련되고 지적인 금발의 대사부부를 만나서 니카라과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듯이 그렇게 기회만 있으면 시를 읊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나라가 그 어느나라 보다도 아름다운 문화국임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십수년전 일본에 갔을 때도 나는 비슷한 충격을 받았었다.어린시절 유난히 반일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우리세대는 일본인을 한번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말았던것이다.그래서 일본을 다만 자동차나 팔아먹는 경제대국 정도로 알고 있었다.더구나 일제 36년의 앵글로만 바라보며 언제나 일본인이 아닌 「일본놈」만을 바라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일본은 그 무엇보다 먼저 문화국이었다.자긍심에 넘치고 매사에 철저한 선진국이었다.나는 비행기안에서 속으로 가슴을 치며 우리나라로 돌아왔었다. 최근 모스크바에서 받은 충격도 작은 것은 아니었다.소련이라는 나라를 우리는 오랫동안 필요이상으로 이데올로기로만 바라보았었다는 늦은 개안이 간담을 써늘하게 했다.푸슈킨 고리키 톨스토이로 이어지는 눈부신 문화국이요,차이코프스키의 선율이 장엄하게 스며있는 예술의 나라임을 나는 소스라치게 다시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최근 우리와 멀어져간 노벨상을 두고 새삼 국제화니 국제감각이니 하는 탄식과 자성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대학 총장의 국적문제가 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활짝 열린눈과 크게 열린 가슴이 아니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언제나 뒤쳐져있을 것은 뻔한 노릇이다.
  • 모스크바대 부설 국제종합학교/허진 이사장(인터뷰)

    ◎“반김정일세력 폭동 일으킬 가능성”/김정숙·김영주 실각 판단은 성급/지원하되 체제안정엔 도움 안되게 모스크바국립종합대 부설 모스크바국제종합학교 이사장으로 있는 허진씨(67)는 4일 김일성사후 북한정세를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라고 진단했다. 허씨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우선 김일성사망후 후계자로 지목됐으나 아직 정권을 잡지 못한 김정일측 세력과 이에 대한 김일성의 처 김정숙과 동생 김영주,김정일 이복동생 김평일등 반김정일세력이 모두 상대세력에 대항할 만한 뚜렷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한 점을 제시했다. 이런 상태에서 권력쟁취를 위해 섣불리 상대방비판등 무리한 행동을 감행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유린당할 우려가 있어 뾰족한 「수」를 쓸 수 없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허씨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북지원은 『기본적으로 독재자 권력연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의 폭동등 북한내 김정일반대세력들의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북한인민은 군부대폭동이 일어나 군사독재가 되더라도 김정일독재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두려움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허씨는 북한소식 입수경로에 관해 『북한 왕래객과 중국서 나온 신문이 고작일 정도로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특히 북한내에서도 김일성의 아들·처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인민이 많을 정도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북한사회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허씨는 이와 함께 93년12월2일 김일성이 김정일을 불러 후계자지위를 박탈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즉 노동당관계는 자신과 김성애가 맡고 김정일에게는 군사관계만 맡기려 했다는 것이다. 허씨는 이와 관련,『현재 김정일이 갖고 있는 국방위원회위원장 자리는 병기관리등 군수산업분야에 국한된 것이며 국가방위전략및 전술수집을 담당하고 있는 군사위원회위원장 자리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채 오진우와 함께 부위원장으로 있다』고 덧붙였다. 허씨는 또 북한의 핵무기보유설에 대해서도 『1∼2개정도 보유가능성은 있으나 그렇다 할지라도 운반수단이 없는데다 아직 한번도 실험을 해보지 못한 쓸모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특히 방한중인 중국의 이붕 총리가 김정일체제 안정이 중요한 만큼 한국이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세습정권을 도와줘야 한다는 발상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소련자연과학원 원사(정회원)로 명예문학박사이기도 한 허씨는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광복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 민주청년동맹 평양시위원회 간부및 북조선 내무성 정치국 고급장교로 근무했다.그는 52년 모스크바국립영화대학에서 극문학·시나리오문학을 배웠다. 그는 스탈린 격하문제가 제기된 56년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 참가,김일성 개인숭배사상의 허구성을 깨닫고 김일성반대운동에 나섰다. 허씨는 『모스크바의 북조선 유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김일성의 개인숭배사상을 비판했으며 이 때문에 모스크바 북한대사관에 체포돼 강제이송당할 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57년11월27일 북한 보안요원에 붙잡힌 허씨는 다행히 대사관 2층사무실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이후 김일성세습체제반대운동에 앞장섰으며 82년 「북조선왕조성립비사」란 김일성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자신의 호인 임은 명의로 내 김일성의 실상을 파헤치기도 했다. 『대전 과학공원을 동료들과 구경하고 조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알 수 있었다』는 허씨는 4일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 「제네바합의」 누가 얻고 누가 잃었나/NYT지 분석 「손익계산서」

    ◎김정일 채략·말로 성과/북한/앉아서 부담던 “구경꾼”/일본/강·온따라 “엇갈린 득실”/한국/환영속 양보엔 “속앓이”/IAEA 세계적인 이목을 한데 모으며 지난주 극적인 타결을 본 북한·미국간 제네바합의와 관련,이해당사자들의 득실은 어떻게 될까. 뉴욕타임스지는 23일 제네바합의에서 가장 큰 승리는 북한의 김정일이 거두었으며 한국은 승자인 동시에 패자,일본은 운좋은 구경꾼이라고 보도했다.또 이 신문은 가장 손해를 본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이며 클린턴 대통령은 합의내용대로 이행된다면 위험한 안보문제의 훌륭한 중재자로 최고의 승자가 되겠지만 이행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라는 이유로 평가를 보류했다.다음은 타임스지가 분석한 당사자별 미·북합의 득실에 관한 내용이다. ▷김정일◁ 지난주까지만 해도 김일성의 큰 자리를 메워보려는 김정일의 몸부림은 애처로워 보였다.최근 수년간 북한을 다녀온 방문객들은 언제나 북한의 권력층조차도 김정일을 독재자들 가운데 난쟁이로 취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러나 한국문제 전문가인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하버드대 교수는 『이번 제네바 합의로 인해 김정일은 갑자기 아버지만큼 총명하게 보이게됐다』고 말하고 『김정일은 미국을 책략으로 이겼을뿐만 아니라 말로써 미국이 수십억달러를 부담하게끔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2개의 새 원자로 건설비용에 드는 40억달러 가운데 대부분은 한국과 일본이 떠맡게된다.그러나 미국은 엄청난 분량의 오일(중유)을 무료제공키로 동의했다.중유공급으로 공장이 재가동될 것이며 북한의 권력층은 엄청난 잠재적 이득을 보게됐다.그런점에서 이번 합의의 승자는 북한권력층이기도 하다.북한농민들은 거의 혜택을 보지못할것 같다.기름난방식 주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일본정부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를 극구 꺼려왔다.대북제재를 취할 경우 군비증강이 요구되고 미군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지원을 제공해야할 필요에 직면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같은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된다.그러나 그것을 충족시킨다면 일본정부는 내분에 직면케되고조총련의 테러를 촉발시킬지도 모른다. 또한 일본의 가장 큰 우려는 북한정권이 붕괴되면 난민이 홍수처럼 밀려들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정권이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버팀목이 되는 것을 유감스럽다고할 일본의 기업인들은 거의 없다.북한정권의 강화는 무서운 경쟁자가 될 통일한국의 등장을 늦춰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한국국민은 북한은 형제이자 적이라는 두개의 마음을 갖고있다.정보기관과 군부내 강경론자들은 김정일정권이 붕괴직전에 있으며 조금만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다.한 전직고위관리는 미,북한간 합의에 대해 『미친 짓』이라면서 『우리와 수십년간 싸워온 적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계 대표들은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그들은 강경파가 원하는 방식의 북한정권 붕괴는 원치 않으며 또 경제파탄상태에 있어 사회간접시설이 전무한 상태에서 재건설에 참여해야하는 상황을 원치않는다.이제 그들은 북한의 노후한 공장들 주변의 길을 파악해가면서 경수로와 오일 수송로를 천천히 건설할수있게된 것이다.▷군비통제자◁ 비난론자들은 제네바합의가 이라크나 이란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에 핵폭탄 보유의 꿈을 계속 간직하도록 부추겼다고 말한다.미국은 북한이 이미 수년전에 서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하는 대가로 보상해주기로 합의한 것으로 북한은 단지 NPT탈퇴를 위협함으로써 40억달러 상당의 경수로와 수십억달러어치의 난방용 기름을 제공받게 됐으며 무역규제조치의 해제도 손에 넣게됐다. IAEA는 이번 합의를 환영하는척 하지만 IAEA의 많은 관리들은 특별사찰을 수년간 연기해주기로 양보한것은 조만간 그들을 괴롭히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 “대북합의 결함” 미언론 시각

    미국의 두 신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20일 북한·미국 핵협상 합의와 관련해 각각 기사 또는 칼럼니스트의 기고문을 실었다.공통적으로 이번 합의의 취약성을 지적한 이 글들을 요약소개한다. ◎WP지 칼럼/「깡패정권」에 약한 백악관/지나친 양보로 북에 지렛대 넘겨 미국이 이라크의 무력 시위에 대해서는 강경히 대응하고 나서 아이티 및 북한의 사고뭉치들에게 흥정하자는 자세를 보인 것은 놀랍고 걱정스런 것이다.이라크에 대한 강경 대응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건전한 것이었다. 백악관은 세드라를 아이티에서 떠나도록 하기 위해 세드라의 집 세채에 대한 5천달러의 월세 지불까지 미국이 맡기로 합의했어야만 했나.클린턴의 안보 부보좌관 샌디 버거가 그 월세금은「푼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일리는 있다.세드라 일당이 권좌에 눌러 있음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분란을 감안하면 세드라에게 집 세채 월세금 주는 것이야 별 것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왜 깡패 한사람의 요구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터무니없이 양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책임감 있는 사람들은 아이티 침공이나 북한 핵 문제로 인한 무력충돌을 피하려는 정부의 방침을 비난하지 않는다.그러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이 행정부는 강하게 나오는 적들에게 상을 주는 듯하다.이제 해외의 다른 악당 정권들도 악하게 행동하는 것이 워싱턴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 공산정부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부문의 양보는 더욱 뒤로 물러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미국은 북한에도 슬금슬금 양보하다가 이제 핵시설 사찰의 시기,석유의 공급,40억 달러 드는 새 원자로 두개의 건설보장 등에서 확실하게 양보했다. 주요 보도 내용을 보면,2003년 또는 아마도 그뒤까지도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북한의 손아귀에 있다.북한은 그로부터 5년 더 현재의 핵무기 저장과 관련된 모호성을 지킬 수 있다.평양은 합의를 깨려고 결심하기만 하면 새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원료를 10년동안 주무를 수 있다. 집 월세 지불 등 세드라에 대한 백악관의 너그러운 처사에 대해 앤서니 레이크 안보 보좌관은 기자들에게 『여기에는 뇌물수수도 없고 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나는 사죄할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레이크씨,그것이 바로 문제다.하잘 것 없는 인간들의 책임 모면을 위해 미국민은 세드라 집의 월세를 물거나 김정일에게 연료를 제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하는 데 대해 아무런 사과도(그것을 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게서 마저) 받을 자격이 미국민에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식과 미국민의 위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NYT지 보도/미조치 「핵억제」와 모순/핵탄제조 기도국에 위험한 선례 북한과의 핵합의를 서둘러 타결함으로써 클린턴 대통령은 40억달러에 달하는 에너지 원조 제공약속이 그가 「깡패국가」라고 부른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도박을 벌이고 있다. 지난 1년이상 미국 정부의 정책은 평양의 지도자들이 신뢰할 수 없고 예측불가능한 스탈린주의자이자 전체주의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응징되어야 한다는가정에 기초를 둬왔다. 북한이 모든 핵시설에 대한 사찰허용을 거부함으로써 국제적 협약을 위반했을 때 미국은 평양에 대해 새로운 국제제재를 강구하겠다고 말했었다.이는 미국 정부를 외교적 곤경에 빠뜨렸다. 중국이 안보리 제재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고 북한은 제재를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자 클린턴행정부는 협상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핵협상타결을 축하하는 이면에는 미국 행정부 안팎에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도이치 국방부 부장관은 클린턴 대통령의 북·미 합의 승인을 결국 지지하면서도 새로 건설될 경수로의 폐연료봉을 북한이 악용할 소지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없다며 반대했다. 도이치 부장관은 또한 북한이 너무 오랫동안 폐연료봉을 보관할 수 있게된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로버트 갈루치 미측 수석대표도 18일 북한과의 합의를 스스로 치켜세우면서도 김정일을 아직 신뢰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그는 이번 합의를 가리켜 『아마도 그것은 신뢰를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신뢰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많은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미국 행정부가 제네바협상에서 양보함으로써 핵무기를 만들려는 여타 국가들에게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고 말한다. 공화당진영은 이번 합의에 대해 즉각 독재자에게 항복한 것이라고 정치공세를 폈다.밥 돌 공화당 상원원내총무는 성명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합의는 언제라도 가능하다』고 미국 정부의 양보를 비아냥거렸다. 제네바합의는 미국 행정부가 핵기술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지금까지 취해온 접근방법과 크게 모순되고 있다. 이제 북한은 돈한푼 들이지않고 경수로를 받게된 마당에 이란에게 경수로 구입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어떻게 러시아와 중국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한 북한에 대해서는 상을 주면서 어떻게 이란이 이 조약을 준수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한 국방부 관리가 지적한대로 세상일은 공평하지 않은지 모른다.
  • 「카터외교」에 비판과 찬사 교차/미언론서 상반된 평가

    ◎“독재자 비호… 국무부와 관계불편”/“국제 이해증진에 기여” 긍정론도 미국에서 요즘 가장 바쁜 사람은 지미 카터 전대통령이라는데 다른 의견이 없을 것 같다. 극적인 아이티사태 중재에 이어 미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남북한대사를 만나는 등 남북한대화 중재역할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그는 에티오피아,수단,라이베리아에서도 내전종식을 위한 중재역할을 맡는 등 국제분쟁의 중재자 내지 해결사로서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론으로 엇갈리고 있다. 뉴욕 타임스지는 카터의 아이티사태 중재는 전직대통령이 보배로운 외교적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서 역대대통령 가운데 은퇴후 다시 하원의원이 돼 노예제도 반대투쟁을 벌였던 존 퀸시 애덤스 이후 카터만큼 국민에게 봉사하고 각국간 이해증진을 위해 기여한 사례는 없었다고 극찬했다. 카터는 금년도 노벨평화상의 제1후보로 꼽히고 있으며 실제로 카터 자신도 대통령 재임 당시 캠프데이비드 중동평화협정을 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벨평화상을 타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카터의 공로에 못지 않게 그의 외교스타일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제기되고 있고 미국무부와의 관계도 계속 불편한 상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카터외교의 문제점으로 그가 분쟁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독재자들을 비호하고 나선다고 지적했다.이 신문은 레이건행정부에서 국무부관리로 일했던 로버트 케건의 칼럼을 통해 카터가 김일성을 만난 뒤 김을 존경과 동정을 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으며 클린턴이 대국민연설을 통해 악마로 몰아세웠던 아이티 군부지도자 라울 세드라와 협상할 때는 세드라를 명예로운 군인과 같이 대우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이유는 독재자 보다도 미국의 무력사용을 더 증오하는 그의 뿌리깊은 신념에서 비롯됐으며 이같은 신념은 월남전과 65년 미군의 도미니카공화국 개입,73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정권 전복을 통해 형성됐다는 것이다.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이고 분명한 위협이 없는 한 절대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무력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카터의 신념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는 지적이다.아이로니컬하게도 카터의 이같은 신념은 현재 많은 미공화당의원들이 동조하고 있다. 카터 자신도 독재자들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비판이 있음을 알고 있다.카터는 20일 『내 아내(로절린여사)도 가끔씩 내가 독재자들에게 너무 동정적이라는 얘기를 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나는 그들(독재자)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분쟁중재자로서 카터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국무부,특히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있다.카터는 아이티사태 중재과정에서 국무부가 김일성과 만났을 때보다도 더 비협조적이었다면서 국무부의 거부자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장관의 입장에서 보면 카터의 중재역할로 결코 심기가 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카터에만 매달리니… 나라체통 뭐가 됩니까”/「DJ비판」 파문 이세기 민자의장/“나는 대북강경론자 아닌 원칙론자”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22일 『조용히 있어야 할 사람들이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고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최근 활동을 꼬집었던 민자당의 이세기 정책위의장은 23일 인터뷰에서도 『카터전대통령에게 줄줄이 쫓아가 매달려서야 나라의 체통이 뭐가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책위의장은 이날 민주당이 「공식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내가 민주당의 정책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카터전대통령을 겨냥해 한 말인데 거기에 대해 답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망언」이라고 하는데. ▲지난 21일 한승주외무부장관을 만났을때 미국에는 도대체 대통령이 두사람이냐,클린턴대통령은 어디가고 카터씨가 한반도문제를 다하는 것처럼 비춰지느냐고 지적한 것이다.카터씨가 뭐기에 줄줄이 쫓아가 기대면 나라의 체통이 어찌 되느냐고 한 얘기다.카터씨 보고 한 얘긴데 누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에는 답할 필요가 없다.카터씨가 뭐라고 그러면 몰라도…. ­남북정상회담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내가 언제 남북정상회담을 하지말자고 했나.서두르지 말자는 것이다.아직 저쪽(북한)에 공식적인 정상이 없지 않느냐.유령을 만나서 대화하나.김일성사망후 두달이 넘도록 정상을 못낼 정도로 저쪽이 어려운 모양인데 애정을 가지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자는 것이다.그때가서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데 서두르고 앞서가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카터씨에게 친서를 보냈는데. ▲저쪽(카터)에서 (남북정상회담의)「도구로 써달라」고 했으니 의례적으로 「신중을 기해 달라」는 인사답신을 보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하지말라거나 잠자코 있으라는 답신을 할 수야 있겠느냐. ­그 때문에 어떤 혼선이 있는가. ▲미국에 클린턴대통령이 있다.김영삼대통령과도 자주 전화통화등을 통해 대처해 나가고 있다.김대통령도 클린턴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서두르지 말자고 얘기했다.외무부장관등 외교채널에서도 대화하고 있다.정부와 조율하고 이를 뒷받침해 주어야지 조용히 있어야 할 사람들이 쓸데없이 나서면 정책에 혼선이 온다. 이정책위의장은통일원장관을 지낸 북한문제 전문가이다.북한핵과 관련해서도 국내외의 원자로를 두루 살펴보았을 정도로 식견이 뛰어나다.그러나 모든 문제는 신중하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소신은 굽히지 않는다.그는 일부에서 「대북 강경론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싫어한다.인터뷰끝에 그는 『나는 강경론자가 아니라 북한에 대해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원칙론자」』라고 거듭 강조했다.
  • 프라하에서 보낸 편지:7/민병석 주체코대사(굄돌)

    오늘날 체코는 바츨라브(Vaclav) 두명이 끌고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이것은 바츨라브 하벨 대통령과 바츨라브 크라우스 수상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이름은 같지만 이 두사람의 지도자적 성향과 역할내용은 이름만큼 비슷하지는 않다.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하벨을 체코의 양심이라고 한다면,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크라우스 수상은 체코의 두뇌라고 할수 있다.하벨 대통령은 국익보다는 초국가적 가치로서의 정의를 더 중히 여기는 발언을 자주하며,크라우스 수상은 이때마다 국가의 실익보호를 위해 대통령 발언의 후유증을 수습하느라고 동분서주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체코에서 빈몸으로 쫓겨난 독일인들에 대한 대통령의 동정적 발언,회교국들로부터 규탄을 받고 있는 영국 작가 루시디의 초청,체코무기의 구입차 방문중인 칠레의 전 군사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공개비난 등을 들수 있다.이때마다 수상실은 발칵 뒤집혔다.가해국이자 부국인 독일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거나 회교국과의 관계는 도외시하고 작가의 표현자유만 중시하여 초청을 하는 소행은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한 일이 아니냐,찾아온 고객을 무안을 주어 쫓아 버리는 행위를 하는것은 말도 안된다는 등 볼멘 소리가 수상실 근처에서 터져 나왔다.그리고는 「하벨 대통령의 개인적 의견」,「사적 초청」,「정부와 협의 없는 발표」 등으로 얼버무려 수습하느라 애를 먹는다. 이런 상황이 일견 대통령과 수상간의 불협화음으로 보이지만 실은 이 두 지도자의 조화 때문에 체코는 명분도 살리고 실익도 챙길 수 있다.하벨 대통령의 양심적 언행 때문에 서유럽 국가들이 긍정적 체코관을 갖게되고,크라우스 수상의 현실적 정책 때문에 회교국과도 우호를 유지하며 무기 해외판매의 실익을 보게된다. 체코의 양심과 두뇌로 상징되는 이 두 바츨라브 중 하벨은 1992년에 방한했고 크라우스는 내달초에 방한한다.우리는 체코의 양심에 이어 두뇌를 만나게 될 것이다.이기회에 우리도 한국의 「양심」과 「두뇌」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 무리의 결과/오동춘 시인·외솔회 사무국장(굄돌)

    씩씩하고 용감한 무적해병이 되기 위해 진해에서 군사교육을 받을때 중사교관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에므원(M1)총은 무리를 가하면 결합이 안되고 총을 쏠 수 없다.그러므로 총에 무리를 가하지 말라 했다.뜻깊은 말이었다. 무슨 일이고 무리를 가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과음·과식하면 배탈이 나지 않던가? 작년의 구포열차사건,목포항공사건,위도서해훼리호 침몰사건등도 다 사람이 그 운행을 무리하게 했기 때문에 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목숨들이 낙엽처럼 흩어져 날아가버린 것이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3선개헌에 성공한 박정희대통령 역시 영구집권을 노리며 유신독재 헌법을 만들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혼자 출마해서 혼자 당선되는 독재선거방법으로 체육관에서 대의원들의 표에 의해 박정희는 유신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유신헌법을 반대하는 지식인,대학생들을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이 빡빡하게 잡아 넣었다.그리고 여당인 공화당의 다수 횡포와 물리적인 힘에 의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순간을 살기 위해 영원히 죽을 수 없다」던 김영삼 야당총재를 19 79년 10월4일 국회밖으로 쫓아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남의 눈에 눈물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말이 있다.또 죄는 지은대로,공은 닦은대로 간다는 말도 있다.누가 10·26시해사건을 예측이나 했으랴! 소장의 신분으로 5·16쿠데타로 정권을 쥔 박정희대통령이 한 고향 사람인 김재규 총에 의해 이승에서 저승으로 쫓겨간 것이다.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3선 대통령으로만 끝났어도 오늘날 크게 존경받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무리한 장기집권을 노리다가 독재자의 낙인을 받고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우리는 무리를 가하는 삶이 곧 멸망의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국사회의 이해」 박성수교수 등 5명의 비판

    ◎“한국 반대해야 올바른 현대사” 강변/“피착취계급 입장에 서야” 논리적 오류/가설을 「진리」로 규정… 언어의 테러 자행 고려대 한승조교수(정치외교학과)에 이어 박성수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를 비롯한 5명의 다른 학자들도 경상대 교수 10명이 공동으로 쓴 「한국사회의 이해」를 비판하고 나섰다.박교수등은 1일 「한국사회의 이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논문의 서론에서 『「한국사회의 이해」에 수록된 주장들은 지난 80년대 이래 자칭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이 공공연히 발표해온 논저에서 취한 것들로 그 중에는 당연히 북한 공산당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를 보는 틀◁ 피지배자 민중의 입장에서만이 올바르게 사회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 서로 대립하는 착취와 피착취계급이 존재하며 한국사회를 올바르게 보려면 피착취계급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잘못된 논리다.또 「상식과 과학의 통일성」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연구에서 오직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만이 과학」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그리고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사회를 이해하려 한다」는 기술은 제3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사회를 본다는 가치중립적 입장으로 해석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시공을 초월해 적용되는 절대 진리가 아니다.우리 사회는 1백40여년전 마르크스가 살았고 관찰의 대상이 됐던 프러시아 영국 프랑스등 서구 제국의 사회와 다르고 종속이론의 발상지인 남미 제국의 사회상과도 다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 사회가 대대로 이어지는 절대 불변의 계급구조 속에서 자본가는 잉여가치의 착취에 의해 부를 더욱 증가시키고 가난한 사람은 그로 인해 더욱 가난해지는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이 기술하고 있다. ▷사회과학=사회운동,사회과학자=사회운동이론가?◁ 이 책에서 우리는 민중운동의 이론가와 사회과학자와 정치가간의 차이에 혼란을 일으킨다.대학 강단에 선 정치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등 모든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운동의 실천적 이론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돼야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 ▷근·현대사의 왜곡◁ 이 책은 1919년의 3·1운동이 노동자 농민의 계급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민족대표를 비롯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민중을 배신함으로써 3·1운동이 실패했다고 주장한다.김일성과 박헌영이 6·25 남침의 주동자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 책이 과연 객관적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는지,아니면 객관적 역사 서술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근대사를 적화통일하려하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북한정권의 시각에서 보고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종속이론◁ 부정부패,소득분배의 불균형,수출위주 경제의 대외의존성 등을 이유로 종속이론에 입각해 우리 현실을 이해하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계급구조와 계급의식◁ 저자들은 한결같이 우리 사회를 자본주의 계급사회로 규정하고 계급간의 모순과 갈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러한 주장들은 대부분 실증이 결여되고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외면한 구호적혹은 상투적 주장에 불과하다.저자들이 주장하는 계급은 존재하지 않고 계급의식은 더구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사회와 이상국가 체제의 정체는◁ 저자들이 장황하게 기술한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 자체의 이상적인 내용과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변혁 이후 구현될 이상사회와 이상국가 체제의 구체적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았다.노동자계급이 변혁의 주체라는 주장 역시 자명한 명제인 것만은 아니다.사회혁명이나 변혁에 있어 노동자계급이 자신 위에 군림할 소수의 독재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는 가능한 방도는 아직까지도 인류 역사의 숙제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의 상대적 우월성◁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사회적인 문제란 노동자들이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착취를 당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다.그러나 이 문제는 자본주의의 처음 단계에서는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자본주의가 성숙해지면 효과적으로 대처되고 극복돼 갔던 것이 현실이다. ▷글을 마치며◁ 「한국사회의 이해」의저자들은 이른바 「과학화」의 개념적 도구들을 총동원해 우리 사회를 파악하려 든다.또 가설을 바로 진리로 확정해놓고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그리고 믿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온갖 언어적 테러를 자행할 뿐아니라 물리적 테러도 서슴지 않고 있다.이런 태도는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종교신자의 태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한국사회의 이해」와 같은 선동적 책자가 우리 사회에서 유포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 호치민과 김일성의 차이/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우리 국무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이영덕총리가 31일 상오 하노이 중심부에 자리잡은 호치민(호지명)묘소를 찾았다.이총리는 나라안에서의 「주사파」논란을 우려한 듯 호치민묘소에 헌화만 하고 시신을 보존하고 있는 내부는 참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의 눈으로 볼때 이총리는 하지 않아도 될 몸조심을 한 듯 여겨졌다.호치민과 김일성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호치민은 이데올로기를 떠난 국민적 영웅이었다.이총리가 그의 묘소를 방문했을 때는 날씨가 화창했으나 전날까지만 해도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그런 빗속을 뚫고 맨발에 후줄그레한 차림의 참배객들이 그의 묘소에 줄을 이었다. 한 베트남 참배객은 이렇게 말했다.『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위해,미국과 싸우기 위해 사회주의를 택했을 뿐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라며 『호치민은 공산주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민족의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이 참배객의 말은 실제에서도 일치했다. 이총리가 총리회담을 하고 국가주석을 예방한 하노이의 주석궁은 일반의 상상을 벗어나 있었다.정문을 지키는 위병은 슬리퍼를 신은 자유스런 복장이었다.주석궁 안에서 경호를 하는 경찰관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채 귀빈의 방문을 전혀 개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북한처럼 삼엄하고 강요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주체사상」이라는 명목아래 김일성·김정일을 「살아있는 신」이라 주장하는 북한과는 확연히 달랐다.물론 「기쁨조」도 없고 「어버이수령」이란 말도 없었다.그만큼 「인간적」이었다.사회주의에 앞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표현과 감정의 자유를 한껏 누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따라서 호치민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통일도 보지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민족지도자였지 「주체사상」이라는 허무맹랑한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압제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지난 69년에 사망한 그는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지도 않았다.그의 사망후 베트남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다.그가 물려준 「청렴주의」도 철저히 이행,25년동안 무리없이 정권을 이끌고 있다.최근들어 중간관리들의 부패가 일부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이나오지만 최고지도층은 아직도 그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사파」도 이데올로기 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 스리랑카 야당연 이끈 쿠마라퉁가(뉴스인물)

    ◎부모 모두 총리 지낸 명문가 출신/소르본대 유학… 72년 정계 입문/동지인 남편 암살돼 한때 외유/독재자·사회주의자 우려 시각 지난 16일 실시된 스리랑카 총선에서 5개 야당연합전선인 인민동맹(PA)을 이끌고 집권 통일국민당(UNP)에 승리한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여사(49)는 부모가 모두 총리를 지낸 정치명망가 가문의 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난 59년 불교승려에 의해 암살된 솔로몬 디아스 반다라나이케 전총리이며 어머니는 남편의 뒤를 이어 세계 최초로 여성총리에 선출돼 60∼65년,70∼77년 사이 두차례에 결쳐 총리를 지낸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여사다. 그녀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지난 72년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공부하다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귀국,어머니를 돕기 시작하면서 부터다.그러나 88년 남편 비자야 쿠마라퉁가와 함께 야당인 사회당을 만든 직후 과격단체에 의해 남편이 암살당하자 살해위협을 피해 두 아이와 함께 영국으로 피신했다가 지난 90년 귀국했다. 강렬한 카리스마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선거운동기간중 자유시장경제정책을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왜곡된 자본주의」라고 비난,많은 청중들을 끌어모으고 국민들을 흥분시키기도 했다.그러나 이때문에 그녀가 독재자나 사회주의자의 길을 걷지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북 김정일정권 6∼12개월내 붕괴”/영 아태전문가 일통신과 회견

    ◎개방땐 자유맛본 북주민 봉기로 전복/폐쇄정책 고수땐 경제파탄… 민심 이반 영국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의 리처드 그랜드 아시아·태평양 담당 주임은 3일 『김정일 신체제는 앞으로 6개월∼12개월 사이에 전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랜드 주임은 이날 런던에서 일본 교도 통신과 가진 기자 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오는 5일부터 재개되는 제 3차 미·북한 고위 당국자 협의도 성공하지 못해 결국 핵문제는 대북 제재 실시 문제로 다시 돌아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랜드 주임의 회견 요지. ­후계자인 김정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테러 지원자,핵확산 금지 조약 (NPT)문제의 책임자로 알려지고 있는 한편 젊은 개혁파의 테크노크라트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모두 다 맞는 말이다.그의 정통성은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것 뿐으로 아버지와 같은 권위가 없다. ­김정일 체제는 오래 유지될 것인가. ▲6개월이나 12개월 정도에서 전복되는 것이 아닐까.그는 2가지의 길이 있으나 어느 것이든 실패할 것이다.경제 안정을 위해 개방 정책을 취하고 서방측의 투자를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나 그렇게 되면 국민은 급속히 자유를 맛보게 돼 국가로부터 배반당하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한편 지금까지의 정책을 그대로 고집한다면 경제는 파탄하고 민중은 새로운 주석을 적대하게 될 것이다. ­정권 붕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엄격한 국가 통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그룹이 정권을 전복하더라도 새로운 독재자가 서방측을 향해 국가를 개방하고 평화적인 남북 통일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이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다.그러나 정권 전복으로 혼란이 생겨,국가로서 통일된 행동을 취할수 없게 되면 한국군과 충돌,대량의 피란민이 발생할 수도 있다.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제3차 미·북한 고위 당국자 협의의 전망은 ▲미국과 북한의 대화는 무너지고 전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북한이 핵사찰을 수락하더라도 국제 원자력 기구(IAEA)에 신고한 시설에 한하고 의혹의 시설이나 군사 시설에 대한 사찰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이라크의 핵개발 문제에 대한경험을 갖고 있는 미국은 의혹 시설에 대한 사찰을 계속 요구,결국 대화는 실패하고 제재 실시 문제로 다시 돌아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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