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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고령 初産母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인샬라’의 작가 오리아나 팔라치는 지난 73년, 43세에 결혼했다.그의 결혼에 전세계 매스컴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베트남전의 종군기자로서 그가 만나지 않은 권력자와 독재자는 없으며 미국 보스턴대학에는 세계적인 인물들과의 인터뷰 테이프가 전시된 ‘오리아나 팔라치 코너’가 있고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학부에는 ‘팔라치 스타일 인터뷰’과목이 있을만큼 부러울 것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더구나 지난 68년 ‘라이프’지와의 대담에서 그는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자의 결혼은 남자를 위한 희생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했었다.그러나 그리스의 반체제 활동가이던 8세 연하의 알렉산드르 파나글리스를 만나자사랑에 빠졌고 즉시 결혼생활에 들어갔다. 통계청이 내놓은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보면 35살이 넘어서야 첫아이를 낳는 ‘고령 초산모(初産母)’가 늘어나는 추세다.35살이 넘어 첫아이를 낳은 산모는 지난 88년 3,413명이던 것이 97년에는 9,023명으로 2.6배나늘어났다.배우자도 남자의 경우 전에는 현모양처형을 좋아했으나 요즘은 ‘생활력·경제력·독립적인 여성’이나 영화 ‘에이리언 4’에서 외계인과 싸우는 시고니 위버같은 여전사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나이차이도 프랑스의여류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지난 80년,66세의 나이로 35세 연하의 남성과 결혼했을 때는 세계적인 화제로 들끓었으나 예술가들의 40,50연하 여성과의 결혼은 흔한 예이고 이제는 연상여성·연하남성의 결혼은 예사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우리의 경우는 여성들의 교육기간이 길어진데다 경제위기로인해 결혼을 미룬것이 만혼과 나이든 초산모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작가인 스티븐슨은 ‘결혼을 미루는 인간은 전장(戰場)에서 도망치는 병사와 같다’고 꼬집는다. 나이든 부모는 아이를 외롭게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팔라치도 파나글리스를 좀더 일찍 만나지 못한것을 평생 후회했고 아기를 낳지는 않았으나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써서 아기에 대한 강한 선망을 표시했다.세월따라 생활환경따라의식과 관습이 다소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아기에 대한 여성의 동경은 나이와 상관없이 따뜻한 모성이 깃들어있다는 생각이다.35살의 나이는 늦지않지만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돌보기 위해서는 전장을 도망치는 병사는 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세기 논설위원
  • [대한광장] 언론개혁 절박하다

    언론개혁은 언론계의 잘못된 관행을 깨뜨리고 불합리한 구조를 정리하여 언론계를 갱신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즉,언론인의 사회의식수준을 높임으로써 그들의 양심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약자를 위해 굽힘없이 발양될 수있도록 주변환경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개혁해 나가는 작업이라 하겠다. 한국언론은 적어도 과거 30여년간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시민들이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고 있을 때,독재자와 그 동조세력의 목청과 용어와 형식논리를 오히려 더욱 미화·확대하여 유포시킴으로써 군사주의적 경쟁을 촉진하는 한편,민주주의의 발전을 늦추는데 협력해 왔다.물론 많은 지식인과 평범한생활인도 긴급조치와 계엄령,반공법,국가보안법 등의 합법적 억압 때문에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유린당하는 처지에서 언론인만이 양심을 정직하게 표현할 수 없었음을 양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압제와 저항의 시대가 역사속에 묻히고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이 함께 존중되면서 과거를 청산하고 희망찬 미래를 맞아야 할 때이다.이 시대는 언론이 정치권력의 일부였거나 상업세력의 광고인이었거나 일부 지식인만의 무대였던 과거와의 명백한 결별을 요구한다. 첫째, 언론은 공·사인을 막론하고 특정인을 영웅이나 마녀로 만드는 시민적 의제설정에만 바빴다.이 기능적 과정에서 언론은 예사로 개인의 인권을침해하고 타인의 사생활을 흥미거리로 삼아 사람을 농락하기를 즐겨왔다.언론인에게 요구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은 제로였던 것이다. 둘째로 우리 언론인은 취재현장에서의 용기가 지나쳐 어리석은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취재를 빙자하여 사적(私的) 서류를 절취하거나 공무원을 사칭하면서 뉴스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대단한 능력쯤으로 여긴다.기자가정보제공자의 신원을 쉽게 밝혀버리거나 기사가 나가기도 전에 관련정보를누설하는 등 약속위반이 다반사인 상태에서 취재원 쪽에서는 기자에게 비밀정보를 제공할 엄두도 낼 수 없는게 현실이어서 시민사회 전체는 언론의 초법적 행위에 익숙해져 있다. 셋째로 언론기업의 거대화와 집중화로 인한 여론독점은 언론자유의 본질적가치에이르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로운 교류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이미 관료구조화된 언론기관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는 대신,권력이나 자신들의 이익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와같은 구태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 언론이 민주주의에 필요한 공적 정보를 사회에 전달하고 권력을 감시하면서 사회생활의 여러 영역에서도 속도감있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먼저 확실하게 개혁되어야 한다.속보와 특종도 중요하지만 성실한 자세로 수용자의 사랑을 받으며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건전한 모습이다.공중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언론은 독립적인 사회적 제도로서의 의미가 희박하고 선거에 의해 권력이 창출되는 대의민주제의 발전이라는 앞날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그러므로 개혁된 언론은 공공의 안녕을 위해 더욱 신중한 취재보도를 해야 마땅하다. 제 아무리 시민세력이 독려한다고 해도 언론주체가 개혁되지 않으면 현실의 언론상황을 타파하고 새 전통을 수립하려는 언론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그러므로 성공적인 개혁을위해서는 이를 선도할 언론계 내부의 힘이 필요하다.역사관과 민족관이 올곧고 이기심을 최소한으로 자제할 수 있는 언론인들이 양심을 담보로 결집한 역량이 넉넉할 때,언론개혁 선도진영은 하나의 운동으로서 이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사도 이제는 외형경쟁이나 이익경쟁 대신 전달내용의 질적 경쟁을 통해 매체간 건설적인 비판과 상호감시를 활성화하여 언론의 위상을 높이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그래야 상업적인 선정언론과 권력추종적인 편파언론의 허물을 벗고 민중의 알 권리에 화답하여 객관세계를 진실하게 감시하는 민주주의적 참언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언론개혁은 결코 정치권력이 위로부터 압력을 가하거나 법제적 통제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강조한다. [柳一相 건국대 교수·신문방송학 美 오리건大 교환교수]
  • 전방위 퇴임압력 밀로셰비치 끝장인가

    정치생명 위기를 통치기반 강화에 역이용하는 솜씨를 자랑하며 권력을 오로지해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코소보 패전으로 그가 10년 권좌에서 끌려내려올 최대 고비를 맞았다. 밀로셰비치는 나토군 진주 직후인 이번 주초부터 공식석상에 나와 재건 약속 등을 내걸며 민심수습을 시도하고 있다.하지만 반응은 냉랭하기 이를데없다.우군 내부에서조차 이탈선언이 줄지었다.14일 집권연정 3대세력인 세르비아 급진당(SRS)의 연정탈퇴에 이어 이튿날 세르비아 정교회가 밀로셰비치사임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정교회는 보스니아-크로아티아 내전때도 밀로셰비치를 편들었던 민족주의세력이며 SRS 역시 국수주의 극우집단.이들이 성지를 빼앗기고 세르비아계의 대량탈출을 불러온 코소보 참패에 대해 책임추궁에 나선 셈이다.세르비아민족감정에 편승,권력을 유지해온 밀로셰비치에게 이는 직격탄이나 다를바없다.권력분열 조짐을 틈타 야당은 16일부터 전국적 하야 촉구 서명에 돌입하는 등 전방위에서 퇴임압력이 쏟아지고 있다. SRS 탈퇴로 밀로셰비치 정권은 의회 과반수 지위를 상실했다.극우정당들이의회내 소수 민주 야당들과 손잡고 불신임 투표를 할 경우 원칙적으론 그대로 쫓겨날 수도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밀로 듀카노비치 몬테네그로공화국 대통령,부크 드라스코비치전 연방 부총리 등 후임설이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특히 나토 공습때부터 밀로셰비치에 비판적이었던 듀카노비치는 종전이후 독자적으로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는가 하면 민주화 없는 유고연방 탈퇴 입장을 거듭 흘리면서밀로셰비치를 자극하고 있다.실제로 몬테네그로의 연방탈퇴가 가시화할 경우 발칸반도는 또 한번 피의 대전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경제 재건도 밀로세비치의 호언과는 달리 난제가 아닐 수 없다.미국과 유럽연합(EU)은 밀로셰비치가 물러나지 않는 한 한푼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못박아 왔다.최악의 경제난이 이어질 경우 민심 이반이 대규모 민중폭동으로 분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이렇게 되면 사면초가의 밀로셰비치가 군부를 동원할 가능성은 아주 커진다.그러나 타임 최신호는 밀로셰비치가 지난 89년 민중의 손에 실각,처형당한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전철을 밟을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제2공화국과 張勉(28)-金대통령 특별회고(상)

    대한매일은 ‘정직한 역사 되찾기’의 일환으로 지난 2월부터 ‘제2공화국과 張勉’시리즈를 주 2회 1개 면씩 연재해 왔다.지난번 27회의 ‘장면의 정치 역정과 생애(하)’로 연재는 사실상 일단락되었다.이번 28회는 당시 민주당정부의 당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회고를 상·하로나눠 그 전반부를 싣고 29회는 후반부를 싣게 된다.마지막 30회는 이번 연재물을 총정리하는 의미에서 제2공화국을 평가하는 대담으로 엮어진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구술하여 녹취한 답변은 ▲장면(張勉)전총리와의인연 ▲그를 만나 가톨릭 영세를 받은 과정 ▲장면정부의 경제제일주의 평가 ▲민주당 신파 출신으로서의 자부심 ▲장면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에 대한평가 ▲제2공화국 및 장면정부 평가 등 여섯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다음은김 대통령이 ‘장면 전총리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하여 술회한 내용이다. ?藜圄? 박사와의 인연 1956년 장면 박사가 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무소속이던 제가 장 박사 지지를 선언한 것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장 박사가 그 사실을 알고 고맙게 생각하면서 저와 장면 박사의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본격적인 인연은 다음해 제가 가톨릭 영세를 받을 때 장 박사가 대부가 되어주면서 부터입니다. ?嵐适獵? 입당 저는 민주당에 입당해 중앙상무위원으로 일했습니다.민주당중앙상무위는 33명의 국회의원과 50명의 원외 당원으로 구성된 지금의 당무위원회 같은 것입니다.저는 젊은 나이에 발탁되었고 정책심의 등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의견을 제시한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하나 당시 민주당 내에는 신·구파의 큰 대립이 있었는데 저는 신파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많은 발언을 했고,그런 저에 대한 장 박사의 신임이 매우두터웠습니다.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 역사에 ‘3·15부정선거’라고 기록된 60년 3월15일 정·부통령선거때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趙炳玉)박사가 돌아가시고 부통령 후보인 장 박사만 남아 선거를 치렀는데 주로 장 박사 계열의 신파가중심이 되어서 선거를 했습니다.저는 강원도 당무위원장으로서 강원도의 험준한 지역을 돌면서 일선에서 선거운동에 임했습니다. 전국적으로 행해진 ‘3·15부정선거’에 대해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저는 인사동 중앙당사 앞에 인산인해를 이룬 시민들 앞에서 마이크를 걸고부정선거를 규탄했습니다.그리고 4월6일 민주당이 중심이 된 시위가 있었습니다.시청 앞에 모여 을지로4가와 종로,그리고 파고다공원(지금의 탑골공원)과 광화문을 거쳐 다시 시청 앞으로 돌아오는 시위였습니다.그때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시위는 거의 없었습니다.고등학생 일부가 부정선거를 규탄했고 대학생들은 아직 나서지 않던 때였습니다.그 시위에서 저는 앞장서 휴대용 마이크로 구호를 선창하는 입장이었고,정부에서는 내무장관 포고령으로 발포도 불사한다는 위협을 했습니다.지금 생각해도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던 비장한 심정이었습니다. 시위가 시작되자 정부는 방침을 바꾸어 진압보다는 시위대가 군중과 합세하지 않도록 격리하는 데만 주력했고,파고다공원 앞에 오자 학생들이 시위대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시위대가 광화문까지 오자 학생들은 경무대(지금의청와대)쪽으로 가려고 해 시위를 주도하는 우리와 약간의 실랑이까지 벌이게 되었습니다.이렇게 전개된 그날의 시위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襤逅?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정권이 들어섰을 때 당 대변인인 조재천(曺在千)선생이 법무장관으로 입각하게 되었습니다.저는 부대변인을 했는데 조재천 선생이 “비록 김대중씨가 원외(院外)지만 그 이상 대변인을 해낼 사람이 없다”며 강력히 추천하고 장 박사도 그 말이 옳다고 동의함으로써 제가 여당의 대변인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신문에 많이 보도가 되었지만 저는 대변인으로서도 여당 입장을 잘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그때는 매일같이 여야 대표들이 학교나 명동에있던 시공관 등지에서 연설을 했는데 저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연설로 시민들에게서 많은 호응을 받았고,이로 인해 총리인 장 박사로부터 칭찬을 받은일이 몇번 있습니다. ?藍? 박사의 민주정신 저는 대변인으로서 매일 장 박사를 찾아가 몇가지 지시를 받고 제 의견도 말씀드리면서 아주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하루는장 박사가 제게 “이 자리에 오래있는 것보다는 여야간 정권교체가 한번 되어야 이 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온다”는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했습니다.그 말씀에 저는 ‘참,이 어른에 대해 사람들이 약하다고 그러는데 또 약한 말씀을 한다’는 그런 생각밖에 못했습니다.그러나 박정희(朴正熙)정권의 장기 집권을 겪고나서야 저는 그 말씀이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였다는 사실을 아주 깊이 깨닫게 되었고 정말 그 훌륭한 민주정신에 대해서 새삼스레 감복한 기억이 있습니다. 장 박사는 정국을 끌어나가는 데 아주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구파가 정권을 차지하는 것에 실패하자 그냥 당을 깨고 나가 야당을 만들었습니다.그것은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그때 저는 “이렇게 해서 정국을 불안하게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만일 조병옥 박사님이 아직 생존해 계셨다면 적어도 정부를 1∼2년은 안정시켜 놓고 분당을 해도 했을 것이다”라고 한 적이있는데 그것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襤ㅁ? 흔든 당내 소장파 장 박사가 제일 크게 고생한 것은 당내 소장파들이 조직을 따로 만들어 정부가 하는 일을 일일이 비판한 것이었습니다.‘중석불사건’이라고, 6·25 부산 피란 시절에 중석불 부정불하사건이 있었는데 장 박사가 또다시 중석불 부정을 저질렀다고 소장 의원들이 들고나선 적도있습니다.5.16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 정당성으로 중석불사건 등 부정부패를 지적했는데 군사정권에서 조사하고 재판한 결과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장 박사는 제게 당내 소장파들의 움직임을 걱정하고 개탄하고 염려한 일이여러번 있었습니다.저는 장 박사에게 소장파 대표를 중요한 각료직에 등용해 정부에서 같이 일하도록 하면 그런 문제가 수습될 것이라고 건의를 드렸는데 이 방안은 당내 노장 중진들의 반대로 잘 안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fi?襤ㅁ? 타도 외친 혁신계 그리고 혁신계가 당시 참으로 사려깊지 못한 일을 했습니다.과거 이승만(李承晩)시대에 완전히 용공으로 몰려 숨도 크게 못 쉬고,감옥에 가고,심지어 조봉암(曺奉岩)씨의 경우는 사형까지 당하고 하던 혁신계는 4·19 이후 민주당정권 아래서 완전히 해방이 되어 자유롭게 활동하게 되었습니다.그런 혁신계가 장면정권 타도를 내세우고 공세를 취했습니다.신문에도 보도된 것이지만 그때 저는 “지금 혁신계가 장면정권을 이렇게 괴롭히지만 만일 장면정권에 불행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혁신계다.‘입술이 있으면 이가 답답하게 생각하지만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불행하게도 5·16 후제 말 그대로 되었습니다.혁신계는 그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압과 고초를 겪었습니다.저는 민심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세력들한테 불씨를 주는 행동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藍躍溶ㅁ? 망친 3신(新) 사실 당시 신문도 문제가 있었습니다.모두가 나서서 정부를 매일같이 공격했습니다.심지어 정부기관지라는 신문까지 나섰습니다.결국 정부를 국민 앞에 완전히 불신의 대상으로 만든 것입니다.5·16 후‘3신(新)’이 장면정권을 망쳤다는 말이 유행을 했는데 ‘3신’이란 신문(新聞),혁신계(革新系) 그리고 당내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新風會)가 그것이었습니다. 장면 박사는 본질적으로 독재자는 아니었지만 강력한 지도자도 아니었습니다.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였는데 그런 분이 당내와 언론과 혁신계로부터의 협격으로 힘도 제대로 못쓰게 되었습니다.그런 불안정한 상황이 일부군인들에게 마치 나라가 공산화되어 가고,나라가 붕괴 직전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 원인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정리 이용원기자 - 金대통령 회고 이모저모 현직 대통령이 일간지의 현대사 연재물에 증언을 해준 것은 대한매일이 연재하고 있는 ‘제2공화국과 張勉’이 처음이다.제2공화국 당시 민주당정부의 집권당 대변인을 맡았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본보의 증언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이 연재물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민주당 대변인을 맡았고 장면 박사와 돈독한 관계에 있었던 김 대통령의 얘기가 왜 없느냐”는 등의 성화가 잇달았다. 독자들의 재촉에 못이겨 지난달 하순 서면으로라도 증언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이 오리라고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당시 개각에 이어차관급 인사가 있었고 곧바로 러시아·몽골 순방이 예정된 대통령의 일정상‘한가롭게’ 40년 전 기억을 더듬을 틈이 없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길에 오르기 전날인 지난달 26일 밤 대한매일이 서면으로 회고를 요청한 6가지 질문에 대해 소상히 구술했다.청와대 관계 비서관이 이를 녹취하여 다음날 서면으로 옮긴 결과 A4용지 10장 분량이었다.200자 원고지로 34장에 해당하는 상세한 내용이었다. 해외 순방을 앞둔 노(老)대통령은 늦은 밤 질의서를 한장한장 넘겨가며 옛날 일을 되새겼다.대통령의 회고에는 이 땅에 최초의 민주주의 꽃을 피운 제2공화국의 역사가 우리 현대사에 정직하게 기록되어야 한다는 진지함으로 가득했다.또한 그후 역대 군사정권에 의해 폄하된 장면정부가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하며 동시에 제2공화국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의 진로를 모색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는 간곡한 메시지도 회고의 행간에 읽을 수 있었다.이밖에 내각책임제에 대한 진솔한 평가와 집권자로서 정치권에 갖는 바람(29회 게재 예정) 등 김 대통령의 정치관을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했다. 이용원기자ywyi@
  • [발언대] 金대통령과 朴正熙 前대통령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돌아볼 때 김대중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악연과 선연이 얽혀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그러나 두사람은 이런 악연과 선연의 대립 드라마속에서도 용하게도 비극적인 파국은 면했다.몇 번의 생명위해에도 김 대통령의 자연인으로서의 생명은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김대중 대통령은 대구에서 박 전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정리를 했다.박 전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훗날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김 대통령은 일반인들의 예상을 깨고 박 전대통령 뿐만이 아니라 비리의 상징으로까지 비쳐졌던 전·노 두 전직 대통령까지 정치적 공격대상에서 제외시켰다.새로운 역사,제2의 건국대열에 힘을 쏟자는 것이다.기막히고 부끄러운 과거통치를 융합의에너지로 돌리자는 대승적 결단이었다. 이런 결단밑에는 자연인 김대중의 눈물과 회한이 깔려있었을 것이다.이 시점에서 김 대통령의 단안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부정적인 측면보다는긍정적 측면을,음적인 시각보다 양적인 시각을 더 부각시킨 점이 그것이다.김 대통령의 가슴에는 미전향장기수의 석방에서부터 박 전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정리까지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미래를 위한 큰 용광로가 준비돼 있다고 봐야 한다. 김 대통령은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빈곤을 퇴치한 긍정적인 측면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집권시에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박 전대통령의 비극을 예방할수도,보다 밝은 정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여한을 술회하기도 했다. 독재자를 위협하는 최대 정적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는 거의 공식화돼 있다.그리고 사선을 넘고 집권한 통치자가 그의 최대정적을 어떻게 처우하는가도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김 대통령은 이런 상식을 벗어던졌다는 점이다.이같은 인간감정을 초극한 깊은 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결코 경거망동하지 말자.지푸라기라도 하나라도 옮길 힘이 있다면 제2의 건국대열에 힘을 쏟아붓자. 최병훈[이시영 초대부통령 기념사업회이사]
  • YS 좌충우돌

    - YS ‘내각제 봉창’ 왜 두드리나 기타큐슈 최광숙특파원 3일 김포공항에서 페인트 봉변을 당한 뒤 일본으로 건너간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4일에도 정부의 실정을 꼬집는가 하면‘내각제 문제’를 거론하는 등 김대중(金大中)대통령 흔들기를 계속했다. 김전대통령은 이날 기타큐슈 국제대학에서 ‘21세기 아시아의 미래를 말한다’라는 제목의 강연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 안에 내각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또 “내각제 약속으로 당선된 DJ의 정치적 임기는 올해 말로 끝난다”고 주장했다. YS는 강연에서 “국민에게 체념과 좌절을 안겨준다면 가장 큰 불행”이라며 “독재자 자신의 불행도 기다리고 있다”고 DJ를 맹비난했다.이어 “당시야당 총재이던 DJ의 노동법 개정과 기아자동차 처리 반대로 IMF사태가 초래됐다”고 DJ의 책임론을 폈다. 그는 이와 함께 “(내각제는) 어제 오늘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덧붙였다.내각제 추진을 위한 정치세력화 등에 대해서는 “지금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곧 말할것”이라고 밝혀 정치재개를 강력히 시사했다. 그의 이같은 ‘내각제 발언’은 내각제 개헌 논쟁에 불을 지펴,정국을 뒤흔들면서 자신의 존재도 부각시키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김대통령과 정부에 맹공을 퍼부을 경우 최소한 텃밭인 부산·경남지역에서는그만큼의 반사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김전대통령은 이밖에 페인트 사건과 관련,“양심적인 변호사나 수사 경험이 많은 전문가로 하여금 수사에 착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좌충우돌 ‘訪日 행보’빈축 일본을 방문중인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3·4일 연내 내각제 개헌을 잇따라 촉구,빈축을 사고 있다.무엇보다 90년 3당 합당 당시 내각제 합의 약속을 깬 ‘당사자’가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정국이던 90년 1월 22일 당시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盧泰愚)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 민주당 총재,김종필(金鍾泌) 공화당 총재는 ‘내각제’를 전제로 3당 합당을 선언했다.5월에는 각서도 썼다. 그럼에도 내각제 문제는 민자당 합당 이후 계속 논란거리가 됐다.각 계파가내각제를 하느냐,마느냐로 ‘분당’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여기에 YS가 ‘쐐기’를 박고 나섰다.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그해 10월 31일 독자적인 기자회견을 갖고 내각제 개헌 반대와 합의각서의 사실상 백지화를 선언했다.YS도 당시 “국민 다수와 야당이 반대하는 것이 확실한데도 내각제 개헌을 끌고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이유를 댔다.올 8월까지 내각제 논의 유보를 결정한 상황과 엇비슷하다.그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부친이살고 있는 마산으로 내려가 당무 복귀를 거부했었다. 이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치권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국민회의는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으며,내각제 지지정당인 자민련으로부터도 ‘박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발언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어 뭐라고 얘기할 수 없다”고 난감을 표정을 지었다.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YS의 언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특별기고] 前·現職 대통령들께 드리는 충언

    요즘 언론이나 항간에는 전·현직 대통령들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이 무성하다.나는 여론에 편승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전·현직 대통령들께 사심 없는 충언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최규하 전대통령께. 노후를 평안히 보내고 계시는 최전대통령은 역사와 국민 앞에 진솔한 증언을 통해 당시 하야와 5공 집권과정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회고록을준비하고 계시다니 회고록에라도 명확한 진상을 공개하실 것을 국민은 바랍니다. 전두환 전대통령께. 폐일언하고 5·18의 영령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고통으로 신음하는 부상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과의 말 한마디쯤 해주시는 것이어려운 일인지요.광주시민은 오랫동안 따돌림과 차별을 당해 왔지만 지역감정 해소와 동서화해를 호소하며 국민화합을 위해 마음을 열었습니다.망국지병인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누군가 앞장서 풀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한을삭이고 통분을 억누르면서 우리는 화해하자,용서하자,지역감정을 해소하자,동서화합을 이루자,구걸하듯이 손길을 내밀며 진정한 화해의악수를 애원해왔습니다.사죄와 사과는 강요할 수 없듯 화해와 용서도 강요할 수 없는 것임을 아린 마음으로 체험했습니다.어렵지만 동서화합 차원에서 마음을 비우고사과하기를 기대합니다. 노태우 전대통령께. 다른 전직 대통령을 당신 생전에 평가하는 발언은 현명하지 못합니다.다른분도 더한 말로 당신을 비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상호비방하면 똑같이 명예만 실추되고 위상만 떨어집니다.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냉소와 당혹과 황당감으로 상처를 받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께. 당신의 아호처럼 ‘거산(巨山)’ 같은 지도자로 남아 주도록 국민은 기대했습니다.그러나 IMF로 기업인과 국민에게 큰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신이 남겨놓은 실패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과 현 정부는 안간힘을쏟고 있습니다.지역감정 유발로 힘을 분산시켜서는 안됩니다.당신의 취임사에서 5·18 선상에 놓였다는 문민정부는 5·18 진상과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공소권 없음’이라던 ‘성공한 쿠데타’도 주모자들을 법적 처리했습니다.그때 당신의 용단을 환영했습니다.그러나 요즈음 당신의 행보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습니다.당신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방과 독재자 운운하는 발언은 당신에게도 국가사회에도 결코 이롭지 않습니다.선진국의 전직 대통령들처럼 참고서가 될 수 있는 회고록 저술에 전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대통령께. 부도 직전의 나라살림을 물려받아 노심초사하신 결과 일년반 만에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로 접어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반DJ세력이 아직도사사건건 과한 비판과 공격을 가하고 퇴임대통령까지 원색적 비난을 마구 퍼붓는데도 의연한 바위처럼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존경을 받을 만한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공조와 화합의 기치 아래 보수세력,비민주 인사,독재 전과자들,반개혁 기득권세력,반개혁 언론까지 수용하고 아우르는 것은 DJ의 개혁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여타 정권과의 차별성과 참신성이 희석된다고 우려합니다. 지역감정 해소와 국민화합,용서는 대통령의 평생 소신이요,덕목인 것도 이해합니다.한 신앙인으로서도 사랑과 용서를 한결같이 실행하는 것은 복음정신입니다.그러나 ‘박정희 전대통령 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화합과 화해의 차원이 아닌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경제개발과 근대화는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하겠지요.그러나 그것으로 상쇄할 수는 없습니다.5·16쿠데타,4·19혁명 무효화,비민주 일인 독재 장기집권,지역차별 심화,정의와 인권·자유 탄압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조명없이는국민들에게 가치관의 전도와 선악의 무분별을 가져다 줄 뿐이라고 우려합니다.정치적 역학 관계와 복잡한 복선이 얽힌 현실에서 힘과 지혜를 겨루는 것이 아슬아슬하게 비쳐지는 데 통치의 지혜와 힘을 다수 국민들로부터 얻고모으기 바랍니다.국민들은 국민의정부의 제2건국의 성공을 열망하고 기대에차 있습니다.
  • [사설] 터무니없는 ‘대국민 성명’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이 17일 수유리 4·19국립묘지를 방문한 뒤 느닷없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해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그는 대통령 재임시에도 ‘깜짝 쇼’를 연발해서 국민들을 놀라게 했었던지라 이번 성명도또 하나의 깜짝쇼쯤으로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그러나 김씨의 성명은 대통령직 퇴임 뒤 처음 내놓는 공식 성명인데다 올해 초부터 벼르고 별러왔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너무나 비논리적이고 자가당착(自家撞着)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영삼씨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독재의 상징 인물인 박정희(朴正熙)씨를 찬양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국민들은 김대통령이 박정희씨를 무조건 ‘찬양’하는 게 아니라,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은 그것대로 지적하면서 경제적 근대화 부분을 평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김씨 자신도 92년 대선 당시 박 전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해서 기념관 건립을 약속하고 서명까지 했었다는 박근혜(朴槿惠)씨의 지적은 접어두기로 하자. 김씨는 김대통령을 ‘독재자’로규정하고 4·19국립묘지에서도 “지금의 정치·경제·사회상황이 4·19 때와 똑같다”고 했다.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정치지도자의 이같은 상황인식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김씨는 “부익부 빈익빈,정경유착의 왜곡된 경제구조와 오늘의 경제위기도박정권의 잘못된 경제정책에 기인한 바 크다”고 지적했다.백번 옳은 말이다.그렇다면 대통령 재직시에는 그같은 사실을 몰랐다가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불러온 최고·최종 책임자인 그는 박정희씨의 원죄(原罪)를 따지기에 앞서 국민에게진심으로 사과를 했어야 옳다. 김씨는 또 “현정권의 박정권에 대한 미화는 기본적으로 지역정치를 바탕으로 하는 현정권의 사고에서 비롯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김씨가 민정·민주·공화 3당합당을 통한 ‘반호남 연합’전술로 정권을 잡았던것은 재론하지 않겠다.그러나 부산·경남지역을 누비고 다니며 지역감정을노골적으로 부추기고 내년 총선에서 그 지역 공천의 지분권을 내비치다가 국민의 비판을 받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옳은가.김씨가 느닷없이 성명을 발표한 것을 두고 김대통령에 대한 공격 뿐 아니라 영남지역을 누비고 다니는전두환(全斗煥)씨의 행보를 아울러 견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삼씨는 지역감정에 기대어 정치를 재개하려는 헛된 꿈을 버리기 바란다.그와 같은 일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김씨 자신의 말대로 ‘시계를 거꾸로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 월 스트리트 저널 한국 개혁 평가

    - “한국 亞洲國중 가장 매력있는 투자국” 金대통령 국민과의 대화로 개혁 지속 추진 “한국은 아시아 경제위기의 타격을 받은 국가중 가장 매력있는 투자국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저명한 시사주간지 월 스트리트 저널지가 한국특집 기사를 실었다.‘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개혁만이 모든 해답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14일자 A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마이클 슈만 서울지국장이 서울발로 보낸 이 기사는 먼저 경제위기 극복배경을 짚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개혁을 위한 국민 설득 ▲대기업과노조단체 포섭 ▲외국 투자가들에 대한 이해확산 노력 ▲강경한 개혁조치 단행 등 4가지를 들었다. 이 기사는 무엇보다 “한국은 일단 자신감을 되찾았으며 올해부터 견실한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특히 “많은 해외 경제전문가들이 권유하는 것 만큼의 개혁을 이룩하지는 못한 가운데에서 해낼 수 있었다”면서 이를 ‘기적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한국의 빠른 경제회복이장기적으로는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이 기사는 “경제면에서 취약한 점의 보완과 빈약한 정책 혁신 등 많은 조치가 단행됐다”면서도 “강력한 개혁의 노력은 전문가들이 권장한 것에는못미쳤다”고 평가했다.또 “많은 은행들이 부실상태로 남아 있고 악성부채로 허덕이고 있으며 반면 거대 재벌들은 조직 축소를 머뭇거리고 있다”고분석했다.“어떤 경우에는 과거보다 거품을 더 키워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대통령에 대해서는 ‘개혁의 승자’로 표현했다.지난해 1월 IMF사태 이후 대통령 당선자로서 ‘국민과의 대화’를 가진 것에 대해 ‘독재자들에 익숙한 나라에서 전례에 없던 대중과의 관계맺음’이라고 규정했다.“개혁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자리매김한 뒤 김대통령의개혁추진 노력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아직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분석가들은 한국의 개혁노력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하고 있다”면서 “재벌 구조조정 노력은 절반의 만족밖에 이루지 못했다”고 ‘유념할 제안’을 거듭 소개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프리덤하우스 98보고서“세계 언론자유 뒷걸음질”

    ?施治謙? 최철호특파원?恃際隙? 제약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교묘한 입법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지난해 언론자유는 전세계적으로 퇴보한 것으로29일 밝혀졌다.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는 지난해 세계 186개국의 언론자유 지수가 49.04로 97년의 46.29에 비해 악화됐다고 밝혔다. 이 지수는 언론법 및 정부에 대한 평가,언론보도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언론인에 대한 괴롭힘,물리적 공격,살해,기타 언론자유 위반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각국 언론자유 정도를 1부터 100까지의 수치로 나타내며 ▲1-30은 완전보장 ▲31-60은 부분보장 ▲61-100은 언론자유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언론자유 국가는 한국을 비롯한 68개국(인구 12억명),부분적 언론자유를 누린 국가가 52개국(24억명),언론자유가 없는 국가는 66개국(24억명)이었다.53개국의 언론자유가 지난해보다 악화됐으며 향상된 국가는 20개국에불과했다. 언론자유가 신장된 국가로는 독재자의 사망 또는 퇴진으로 많은 제약이 제거된 나이지리아와 인도네시아가,퇴보한 국가로는 폭동으로 외국언론에 대한 검열과 비판,국내언론에 대한 제한이 촉발된 말레이시아,언론인 체포와 괴롭힘이 계속된 중국 등이 꼽혔다. 연구를 주관한 레너드 수스만은 “아직도 언론인에 대한 물리적 공격,심지어 살인과 체포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각국 정부가 명예훼손법 등으로교묘하게 비판을 봉쇄하는 ‘은밀한 검열’이 점점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 YS, 李仁濟씨 방문에 시큰둥

    ‘DJ-YS 화해의 메신저’역할을 자임한 이인제(李仁濟) 국민회의 당무위원이 29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상도동댁을 방문했다.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 인사차원의 방문이었다.하지만 단순한 ‘귀국인사’ 이상의 의미가있었다.전·현직 대통령의 관계가 다소 소원한 상황에서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 때문이었다.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김전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이위원의 얘기에 “다 끝난 얘기다.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상도동 대변인격인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이 전했다.한마디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과거에도 독재자하고 타협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불의와는 타협할 생각이 없다”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김전대통령은 “현 정권이 잘하면 잘한다고 말하지 괜히 트집 잡는 것이 아니다”라며 현 정권의 남북정책 등에 대해 강도높게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전대통령은 이위원에 대해 ‘훈수’까지 곁들였다고 한다.“이위원이 만약 국민회의에입당하지 않고 외국이나 국내에 조용히 있었으면 내년에 정말 좋았을 것”이라며 말했다.‘좋았을 것’이라는 의미는 부연하지 않았다. 상도동측은 앞으로 여권인사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며 ‘동교동-상도동간의 화해 분위기’를 일축했다. 이위원도 “모든 게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말했다.시간을 두고 메신저 역할을 계속 해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최광숙기자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22)-창작과 비평사

    진시황은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파묻었다.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앗은 자들은 늘 그러했다.저항을 부르고 수많은 ‘금지’를 낳았다.우리 현대사에도 ‘지상의 양식’을 지향하다 ‘잉크를 묻힌 죽은 물체’가 돼버린 옥고들이 많다. 시집 ‘신동엽전집’(75),‘국토’(조태일),‘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82)‘대설 남(南)’(〃,82),‘8억인과의 대화’(리영희,77)…등도 그 대열에있다.당국의 붉은 딱지가 붙은 이 책들은 모두 모태가 같다.69년 등록한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다. 저항의 첫 발은 약간 거슬러 올라간다.66년 서울 종로구 공평동 문우출판사에서 발행한 132면의 문예계간지 ‘창작과 비평’이 그것. ‘…대중의 소외가 혹심한 사회일수록 철저한 수준을 고수하는 소수 작가·지식인의 비중이 커지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국토분단과 기성사회의 모순을 유지함으로써만 자신의 특권을 간직할 수 있는 소수를 제한다면,적어도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잠재적으로나마 우리의 이상에 동조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창작과 비평’창간호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자세’의 일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영문학자 백낙청교수의 의도에 공감한 국악인 황병기씨 등 지인들과 문우출판사 오영근사장 등이 쌈지돈을 모았다.‘비평의 정신’을 싹틔운 주역은 백교수와 소설가 한남철,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조교 김상기,기자이던 임재경·이종구씨 등 5인이었다.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어조는 단호했다. 69년 백낙청교수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면서 염무웅교수(영남대 독문학)가 편집장으로 바통을 이어받아 암울했던 70년대를 버텼다.염교수는 ‘창비의정신’을 이렇게 말한다. “사회과학이나 현실에 발딛고 기본 민주주의 성취,실학·국학시리즈로 민족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분단 극복 지향,기층 민주주의 역량성장에 이바지등 3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고유한 미적 가치를 최대로 추구하면서 이런 과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목적주의 문학이나 천박한 참여문학과는 차별성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에 발행한 ‘신동엽전집’(창비신서 10,75년)이 긴급조치 9호의 미움을 사면서 창비의 ‘화려한 금서 리스트’가 막을 연다.이어 77년에 ‘8억인과의 대화’(창비신서 18)로 편역자 리영희교수와 발행인 백낙청교수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돼 리교수는 구속되고 백교수는불구속 기소되었다. 수난속에서도 명맥은 유지하던 ‘창비’는 80년에 이르러 ‘절망적인 탄압’에 직면한다.7월말 국가보위입법회의로부터 계간 ‘창비’의 강제 폐간이라는 철퇴를 맞은 것이다. 암중모색하던 ‘창비’는 82년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창비시선 33)로 새벽을 열려고 나섰다.이화여대·연세대 앞에서 불티나게 팔리던시집은 학원사찰팀의 눈에 띄여 판매금지·압수라는 공식적인 과정을 거쳤다.“압수된 책이 작두로 잘렸다”는 ‘창비인’들의 회고는 당시 검열의 상징이다.심지어 국세청 세무사찰로 추징금 1,000만원을 부과하는 비열한 수단도 동원했다.이에 굴하지 않고 ‘대설 남’ 1권을 내놓았으나 문공부가 판매금지하고 전량을 봉인했다. 끊임없이 ‘비판의무기’를 갈던 ‘창비사’는 85년 부정기간행물(무크)로 얼굴을 달리하여 ‘창비’ 57호를 간행했다.이번에는 서울시가 불법으로 정기간행물을 냈다는 꼬투리를 잡아 ‘출판사 등록 취소’로 탄압했다. 그러나 이제 ‘창비’는 혼자가 아니었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중문화운동협의회 등의 항의농성 및 성명발표와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등 11개 출판사 대표의 항의성명이 이어졌고 문인·학계 인사가 중심이 돼 등록취소에 항의하는 ‘범지식인 서명운동’을 펼쳐 2,853명의 서명록을 문공부에 전달했다. 당시 발행인이었던 김윤수교수(영남대)는 “회사가 없어져 책임자로서 어깨가 무거웠다”면서 “‘창비’를 살리려고 문공부 담당국장과 10개월의 마라톤 협상에 들어갔다”고 밝힌다.그 과정에 당국은 ‘창비’ 회생조건으로 백교수가 손을 떼고 이름도 바꾸라고 강요했다. 어렵사리 사태를 수습한 김윤수 발행인은 86년 8월5일 ‘창작사’로 신규등록했다.87년 2월6일 부정기간행물 형태로 ‘창비 1987’(통권 58호)을 간행했다.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는 말이 있듯 ‘창작사’는 87년 2월17일 ‘창작과 비평사’라는 출판사 이름을 되찾았고 다음해 계간 ‘창비’도 다시 제 얼굴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평탄한 앞날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89년 겨울호에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실어 다시 수난시대로 접어든다.이시영주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이시영 상임고문은 “11월 23일 퇴근 길에 남산으로 끌려갔는데 안기부는그동안 저를 통해 최대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문단에 대한 총점검을 하려고했다”면서 “‘창비’ 매호를 낱낱이 분석하고 필자들 성향까지 꿰뚫고 있었다”라고 전한다. 숨가쁜 ‘창비’의 발자취에는 일그러진 현대사의 모습이 오롯이 녹아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기름지게 한 거름이기도 하다.정해렴 김윤수 고세현씨등으로 이어지는 발행인을 중심으로 현대사의 주역들을 일궈냈다. 고은 조태일 김지하 신경림 이성부 이시형 김용택 곽재구 김남주 고정희 김명수 등이 시로 독재자에‘침을 뱉었다’.이문구 황석영 현기영 방영웅 김한수 등이 소설이라는 쟁기로 척박한 땅에서 리얼리즘의 열매를 일구었다.송건호 리영희 박현채 강만길씨 등은 우상을 깨고 이성을 외쳤다.‘창비’는이들의 ‘사상의 거처(居處)’였다. 이제 ‘창비’의 나이 33세.‘잔치를 끝내지 않으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지난 96년 ‘영원한 창비인’ 백낙청교수(하버드대 교환교수로 재미)가 창비 30년을 정리하면서 밝힌 입장에서 ‘창비’의 앞날은 여전히 튼실할 것임을 예고한다. “정말 중요한 일은 시장경제의 논리와 ‘창비’ 고유의 지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혹은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하는 일이겠습니다”이종수기자 vielee@
  • 사이버공간 전·현직대통령 ‘수난시대’

    전·현직 대통령들이 ‘사이버공간’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다. PC통신의 토론실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풍자와 비판글이 50여건씩 게재되고 있다. 또 인터넷에는 이들을 풍자 대상으로 삼은 패러디 신문들이 잇따라 등장,인기를 끌고 있다.최근에는 청와대를 패러디한 사이트까지 개설됐다. 네티즌들은 “대통령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나 풍자는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척도”라면서도 “일부 이용자들이 건전한 비판의 선을 넘어 원색적인 욕설과 함께 비하의 말을 일삼아 ‘사이버 공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유니텔 등의 ‘토론실’에는 외환위기와 실업,국민연금,어협협정 등 전·현직 대통령들의 실정에 대한 비판이 주요 토론거리로 등장했다. 특히 네티즌들은 현 정부를 비난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부산 발언과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정치 재개 등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천리안 토론실인 ‘나도 한마디’의 한 이용자는 “입만 열면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며 김전대통령의 독설에따끔한 충고의 글을 올렸다. 특히 ‘현직 대통령을 독재자라 칭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집중토론실에는 250여명의 네티즌이 참여했다. 하이텔의 토론장인 ‘큰마을’에서 한 이용자는 전·현직 대통령들을 모두‘지역감정’을 이용해 출세한 사람이라고 꼬집었으며 일부 이용자들은 ‘주막집 XXX’나 ‘말복에 된장 찍어 먹을 X’ 등 저속한 표현을 써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편 인터넷에는 딴지일보와 망치일보,거지일보,수세미일보 등 패러디사이트가 대거 등장,우스꽝스러운 합성사진과 함께 풍자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
  • YS, 지역정서 노골적 자극

    金泳三전대통령의 지난해 대통령 퇴임 이후 첫 ‘고향방문’은 정치 재개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金전대통령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그간의언행으로 볼 때 정치활동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金전대통령은 8일에도 이해하기 힘든,정치색이 짙은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텃밭’으로 2박3일간의 나들이 중 마지막 행선지인 부산에서“삼성,LG 등 부산·경남 재벌들을 하나 하나 거둬가고 있다”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했다. 金전대통령은 이 지역 출신 한나라당 의원 10명 등이 참석한 조찬모임에서“빅딜은 자기들끼리 하는 것이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비난했다.이어 “정부의 중요 직책은 (PK 출신이) 다 쫓겨나고 특정지역 사람이 갔다”면서 “나는 대통령 시절 의식적으로 국무총리,대법원장 등 중요 직책에 호남사람을 기용했다”고 주장,현 정부의 인사정책을 성토했다. 金전대통령은 “金大中대통령이 보복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또 “나마저 독재정부에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됐다”고 밝히고 “현 정부가 반성하기를 바라지만 이미 현 정권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고,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독설(毒說)을 퍼부었다. 金전대통령은 이날도 金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몰아붙이면서 한·일어업협정,언론탄압,부정선거 등을 들먹였다. 조찬모임에는 이 지역 출신인 한나라당 朴寬用 辛相佑 金鎭載 金道彦 金炯旿 金武星 鄭義和 鄭文和 朴鍾雄의원과 무소속 韓利憲의원 등 10명이 참석했다. 金전대통령은 고향방문 첫 날인 지난 6일 통영시 만찬에서 金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규정하며 칼을 뽑은 뒤 일반의 부정적 여론을 무시하면서 현 정권을 연이어 신랄하게 비판했다.이는 계산된 행동이라고 분석되고 있다.부산·경남 출신을 중심으로 야당 내에서 지분을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의도로 비친다.상도동 복귀 후 金전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 YS,잇단 선동성 발언

    金泳三전대통령은 6일에 이어 7일에도 “金大中씨는 독재자이며,지금 정권은 독재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金전대통령은 경남 창원에서 지역 인사들과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이며,모두 힘을 합쳐 나라를 바로잡는 데최선을 다한다면 이런 독재자는 하루 아침에 독재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며 민중 봉기(蜂起)를 선동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 ”평화단 수용때까지 계속”

    나토의 유고 공습은 과연 정당화될수있는가-“그렇다”“아니다”를 놓고지금 미국,유럽에서는 여론 전쟁이 한창이다. 미 CNN방송과 워싱턴 포스트,USA투데이,영국의 BBC등 미국,유럽의 유력 언론매체의 인터넷 웹사이트에는 나토 공습을 옹호하고 반박하는 팽팽한 찬반의견들로 논란이 한창이다. CNN의 즉석 여론조사에는 하루도 안돼 10만 여명이 응답했으며 USA투데이웹사이트의 경우 하루 사이 A4용지 100여장 분량의 의견들이 쏟아졌다. “한 주권국가에 대한 공습은 나토의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미국의 두 주가 서로 유혈싸움을 벌인다고,또 인종차별로 인권을 유린한다고 해서 나토가 미국에 폭격을 가할 것인가.” 나토의 공습을 성토하는 사람들은 시각은 각양각색.국제법적인 접근에서부터 미국의 패권주의 시도나 신무기의 실험장 또는 클린턴의 위기 모면책으로 보는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도덕적 명분’에 의문표를 달았다. 고단수 정치가로서 ‘차이나 위기(핵기술 누출)’을 피해나가려는 또 다른‘왜그 더 도그(wag the dog)’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B-2스텔스 폭격기같은 신무기를 선전하기 위해서 저지른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보는 주장도 있다. 또 ‘인도주의 수호’라는 미명으로 마음대로 무력을 행사한다면 굳이 유엔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반문도 있다.인도적 차원에서 나섰다면 공습받을 나라는 유고 말고도 인도네시아,르완다등 수도 없이 많다고 꼬집은 글도있다. 한 캐나다인은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등 이번 공습을 주도한 서방 지도자들은 세계 평화를 배반하고 새로운 냉전으로 몰아간 범법자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토 공습에 손을 들어준 사람들은 “국제법보다 인류법(Human law)이 앞선다”고 주장했다.또 르완다 내전에서 유엔안보리 결의안이 실패함으로써 50만명의 양민이 죽어나갔다며 유엔안보리는 인류를 지키는 역할을 잃었다는의견도 있다. 코소보사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성격으로 “강대국들은 스스로를 지킬수 없는 약자(알바니아계)를 지켜줘야할 의무가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미래 세계 평화를 위해이번 공습은 다른 지역의 독재자들과 사악한 지도자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 영국의 한 시민은 “비로소 나토가 제 역할을 찾았다”며 공습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金秀貞
  • 나이지리아 대선 개표 돌입

    [라고스 외신 종합] 나이지리아 대통령 선거 투표가 지난달 27일 저녁 10시 30분 (한국시간) 종료돼 개표에 들어갔다.이로써 나이지리아는 15년간의군사독재를 마감하고 민정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됐다. 이번 대선은 작년 6월 독재자 사니 아바차 사망이후 후계자인 아부바카르 장군이 제시한 민정 이양계획의 하나다. 이번 선거에서는 과거 군사정권 수반이었던 중도좌파 인민민주당(PDP)의 올루세군 오바산조,우익성향의 전인민당(APP)및 남서부 지역에 근거를 둔 민주동맹(AD)의 연합후보인 올루 팔라에 등이 경합하고 있다. 그러나 PDP 후보 오바산조가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시카고 철학硏부소장 찰스 반 도렌 ‘지식의 역사’ 출간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개개인은 매일 진보할 뿐만 아니라 전체로서의인류는 우주가 나이를 먹는 비율로 끊임없이 진보한다”고 말했다.미국 시카고에 있는 철학연구소 부소장인 찰스 반 도렌은 파스칼이 말하는 지식의 끊임없는 진보를 더듬어 왔다.그는 자신이 탐구한 인류의 위대한 지식형성 과정을 ‘지식의 역사’라는 책에 담아냈다.그의 저서가 홍미경 옮김으로 고려문화사에서 두권의 책으로 나왔다.(각권 8,000원) 그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인류문명 변천사를 지식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중심으로 탐구했다.과학적 지식 뿐만아니라 예술·종교·문학·사상·철학 등많은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지식은 혁명적인 역사의 전환을 가져오기도 하고 진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 것도 있다”고 그는 쓰고 있다.자신의 연구를 통한 분석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21세기 100년도 예측한다. 인류 전체의 지식 역사를 한 사람이 탐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보면 그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문학과 수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그는 75년부터 20여년 동안 백과사전 브리태니카의 편집장으로수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역사와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편집했다. 그의 책은 750쪽이 넘는 방대한 규모다.그러나 지식 발전과정을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동양의 지식 발전사가 거의 없는 아쉬움도 있다.하지만 그의 책은 지적 역사를 재미있게 소개한 고급 교양서로서는 부족함이 없다. 그의 지식 탐구 여행은 고대 이집트로부터 시작된다.그러나 이집트 통치자들을 보는 그의 눈은 곱지 않다.“이집트 통치자들은 사회변화를 수반하는진보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다.그 결과 3,000년 동안 놀랄만큼 거의 진보하지 않았다”.고대 이집트 절대 권력자들은 “변화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들의 ‘지혜’는 오늘의 독재자에게도 ‘복음’이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달랐다.그들은 수학의 놀라운 진보에 힘입어 물질과힘에 대한 혁명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다.그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미 오늘의 우리만큼 이해하고 있었다. 지은이는 기원전 6세기 쯤에시작된 그리스의 지적 발달을 인류 역사에 큰영향을 미친 첫번째 ‘지식 폭발’이라고 정의한다.두번째 ‘지식 폭발’은15세기 전후 르네상스와 함께 유럽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그는 말한다. 유럽사상가들에 의해 1550년∼1700년 사이 창안된 ‘과학적 방법의 발견’은 모든 종류의 지식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지식의 발전이었다.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고 신학의 묵은 관념을 깨뜨리며 과학적 방법을 발견했다.저자는 갈릴레이와 데카르트를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지적 혁명의 위대한 공로자로 평가한다.그 지식혁명의 완성자는 뉴턴이었다. 그러나 지식은 항상 우리를 행복하게 해 온 것은 아니다.“인간은 지식과신념체계를 삶에 너무나 중요한 의미로 여겨서 다른 체계를 가진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광기의 전쟁은 잔인한 파괴를 가져왔다.프로이트도“인간은 개화된 만큼 행복한 존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그러나 세계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그는 민주주의에서하나의 희망을 찾는다.민주주의는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20세기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실패한 실험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최고 가치의 통치형태로 여기고 있다. 미래의 민주주의에는 위험 요소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우월한 유전인자에서 태어난 ‘우월한 소수’가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을 부각시켜 다수를 설득할 위험성이 있다”.그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반란’도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그러나 컴퓨터는 보다 지적인 존재로 인간의 지식탐구를 계속 지원할것이라고 그는 예측한다.“인간과 컴퓨터는 평온한 배움의 항로를 함께 여행할 것이다”.
  • 金三雄 칼럼-장면박사 출생100년

    “자기의 명성이 자기의 진실보다 더 빛나지 않는 자는 축복이다”―인도시인 타고르의 말을 올해 출생 100주년을 맞는 제2공화국 張勉총리에게 드리는 헌사로 삼으면 어떨까. 격동의 현대사에서 장면박사처럼 잘못 평가된 정치지도자도 흔치 않다. 그가 이끈 야당과 시민 학생에 의해 타도된 독재자나 합법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한 군사독재자가 ‘존경받는 인물’의 상위를 차지하는 반면 인격적이고도덕적인 품성과 자질로써 ‘단군 이래의 자유’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동시적으로 추진하다 좌절한 민주지도자는 망각되고 있다. 이것은 5·16이래 거듭된 군사쿠데타와 그 아류 정권에 의한 ‘승자의 기록’의 결과이지만, 진실을 탐구하고 가르치는 학자·교사·언론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4월 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장면정권은, 프랑스대혁명이 입헌군주주의자와 시민계급, 온건파와 과격파싸움으로 나폴레옹쿠데타를 불러오고,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운’사회를 구현한다면서 극좌·극우싸움의 혼돈끝에 히틀러 나치스를 맞았듯이, 집권8개월만에 박정희쿠데타로 붕괴되었다. [인간 장면의 인품] 역사상 대부분의 시민혁명이나 개혁이 쿠데타나 반동세력에 의해 좌절된 것처럼 장면정권 역시 5·16쿠데타를 겪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그는 무능과부패의 상징으로 낙인찍혔으며, 독재자들이 역사인물로 격상되는 가치전도현상이 나타났다. 우리 현대사나 국민정신면에서 대단히 부끄러운 모습이다. 장면박사는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으로 평가된다. 한없이 온후하고 어진 분으로서 인자하면서도 강직하며 사려깊은 분이었다. 외유내강의 독실한신앙인이고 지식인이었다. 그는 ‘각하’의 호칭보다 ‘장박사’로 불리기를 원했으며 집권 8개월 동안‘단군 이래의 자유’로 불릴만큼 민주주의를 허용했다. 물론 무질서와 정치사회적 혼란이 따르기도 했지만 오랜 억압구조에서 시달리던 국민에게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반민주행위자와 부정축재자의 처단등 4·19혁명과업을 수행하는 데 너무 미온적이었다는 비판도 따른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정권으로서의 시대적 한계와, 민주정치 제도에서 가장 운영이 어렵고 높은 민도와 양식있는 국회의원들을 전제로 하는 의원내각제에 발이 묶여서 과단성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제도적 한계도 따랐다. 여기에 야당의 사사건건 발목잡기와 이상주의적 조급성에 기운 혁신계와 일부 지식인·학생들의 급진적 통일론도 장면정권 좌절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재평가와 교훈찾아야] 장면은 비록 군인들에게 탈권당한 비운의 정치인이지만 그가 한국현대사에남긴 족적은 너무 크다. 무엇보다 제3차 유엔총회 한국수석대표로서 대한민국정부가 한반도 합법정부로 유엔의 승인을 받는데 기여한 일이다. 또 6·25전란 당시 주미대사로서 유엔군 참전을 위해 발휘한 역량도 큰 업적이다. 특히 민주당을 결성하여 이승만정권으로부터 암살 저격까지 받으면서 끝까지 반독재투쟁을 벌인 것이나, 집권기 혼란속에서도 일관되게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경제개발계획을 착실히 마련한 것등은 큰 업적이다. 그러나 교과서적 민주주의나 미온적인 시국 대처는 프랑스혁명기와 독일 바이마르공화정 시기처럼 반동세력에게 기회를 주게 되고 결국 역사를 후퇴시킨 행위로서오늘의 김대중정부에도 교훈으로 남는다. 곧 시작될 대한매일의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는 장면박사의 재평가를 통해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잡고 제2공화국 좌절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자는데 있다.
  • 99지구촌 점검-인권단체(2회)

    최근 몇년간 국제 사회의 핫 이슈는 인권문제였다.보스니아 인종청소,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독립운동 유혈진압,중국의 티베트 탄압,칠레 전독재자 피노체트의 재판 등.각국의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치달은 이 문제들을 지구촌현안으로 떠올린 주역은 다름아닌 비정부기구(NGO)의 인권단체들이다. 유엔인권선언 선포 50주년인 지난해 국제사회는 NGO인권단체들에게 인권향상의 공을 기꺼이 돌렸다.초기 양심수문제,인종차별 등에 머물던 인권운동의 범위가 여성,아동,전시 민간인,동성애자,죄수 등의 영역으로 확대된 데도이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최근에는 세계화에 따른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경제위기에 의해 고난받는개도국 빈민들의 문제로까지 인권운동의 초점이 맞춰지는 양상이다. 전세계 5,000여개 인권단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지난 61년 런던에서 설립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양심수 석방,정치범 박해 금지 등을 위해 활동하며 92개국 110만명의 정기 기부자를 확보하고있다.지부만도 54개에 달한다. 미국 국제법률가위원회(ICJ)도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다.200여개 인권단체과 연대 켐페인을 벌여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비준절차에 이르기까지결정적인 공헌을 했다.96년엔 한국의 정신대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유엔인권위원회에 최초로 제출했다.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와 ‘휴먼 라이트 워치’도 대표적인 단체.남아공 인종차별문제에서 르완다 대량학살 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왔다.지난 89년 설립된 중국의‘휴먼라이트 인 차이나’(HRIC)도 반체제인사 석방 등 인권문제를 다루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단체다. 정부간 외교행사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압력 시위는 협상의 변수역할도 하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지난 97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때.ICJ와 휴먼라이트워치 등이 백악관앞에서 티베트독립과 반체제인사 탄압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여 미국의 대 중국정상외교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같은해 국제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은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참상은 호주에본부를 둔 동티모르국제센터(ETIC)의 ‘작품’.인니 군인들이 동티모르 여성에게 자행한 잔혹행위 사진을 입수,공개함으로써 국제사회가 하비비 정권에압력을 행사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수난도 끊이지 않는다.좌익과 우익의 대결이치열한 콜롬비아에서는 IPC, CSPP등 인권단체 운동가에 대한 테러가 계속돼올 들어서만 6명이 살해됐다.金秀貞cry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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