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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니 ‘사무적’… 라이스 ‘외교적’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딕 체니 미국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서로 다른 손님맞이 태도를 보여줬다. 체니 부통령은 매우 ‘사무적’으로 정 장관 일행을 만났다. 우선 체니 부통령은 정 장관측에 배석자를 3명으로 제한했고, 면담 내용도 공개하지 말자고 요청했다. 또 사진 촬영도 하지 않았다. 정 장관의 이번 워싱턴 방문에 정치인으로서의 ‘계산’이 있었다면, 그것은 체니 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미 정부내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론을 대표하고 있는 체니 부통령이 ‘무책임한 독재자(체니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했던 표현들)’를 만난 결과를 들고온 정 장관과 미소 지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공개해 지지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체니 부통령은 정 장관의 면담에 45분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했다. 면담에 배석했던 열린우리당의 채수찬 의원은 “두 사람이 충분한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라이스 장관은 정 장관을 다분히 ‘외교적’으로 대한 것 같다. 라이스 장관은 이번주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G8(서방선진7개국+러시아) 정상회의 준비 등으로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며 1일 오후 정 장관이 로버트 졸릭 부장관을 만나는 자리에 꼭 10분간 다녀갔다. 라이스 장관은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정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간 면담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한·미간에 긴밀한 협력을 통해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공동 노력하자.”고 ‘듣기좋은’ 말을 정 장관에게 건냈다. 또 정 장관과 나란히 서서 미소를 띤 얼굴로 기념사진도 찍었다.dawn@seoul.co.kr
  • ‘진짜’ 판타스틱한 영화를 만난다

    리얼판타스틱영화제(운영위원장 김홍준)가 새달 14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와 필름포럼에서 열린다. 올해 상영될 작품은 총 61편. 개막작으로는 1924년 소련이 제작한 SF 무성영화 ‘아엘리타’가 선정됐다. 전체주의 국가인 화성으로 우주선을 타고 날아간 남자가 독재자의 딸 아엘리타와 사랑에 빠지고, 노예 반란으로 혁명이 일어난다는 줄거리. 야코프 프로타자노프 감독의 작품으로 개막식에서는 작곡가 송현주가 영화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음악이 함께 선보인다. 부천국제영화제의 대안적 성격을 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해볼 부문은 ‘마르크스의 침공!!! 동구권 SF영화 특별전’. 개막작을 비롯해 ‘오존 호텔에서의 8월말’(얀 슈미트·1966년),‘섹스미션’(율리우스 마슐스키·1983년) 등 13편이 상영된다. 또 다른 주요 부문인 ‘판타스틱 영화세상’ 섹션에서는 일본영화 ‘느린 남자’(시바타 고)와 ‘휑’(빈센조 나탈리),‘노는 회사, 라이엇’(킴 핀) 등 15편을 만날 수 있다.‘코리안 판타지’ 섹션에는 ‘달콤한 인생’(김지운),‘혈의 누’(김대승),‘말아톤’(정윤철),‘알 포인트’(공수창),‘브레인 웨이브’(신태라) 등 7편이 선보일 예정. 단편 섹션 ‘짧지만 판타스틱’에서는 ‘사다리를 들고 다니는 남자’(안드레아스 리이저),‘기적’(고수진),‘영원한 일상’(디디에 퐁탕) 등 국내·외 작품 24편이 소개된다. 올해 초 발견된 해방 전 기록영화 ‘조선’과 ‘해방뉴-쓰’가 특별상영작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연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김홍준 집행위원장이 해촉되면서 영화제의 스태프들이 따로 떨어져 나와 대안적 성격인 리얼판타스틱영화제 개최를 추진해왔다. 이 영화제는 부천국제영화제와 같은 기간에 열린다.www.realfanta.org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필리핀 ‘민주화 아버지’ 신 추기경 하늘로

    필리핀 ‘피플 파워’의 구심점이었으며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해온 하이메 신 추기경이 21일 오전 6시15분(현지시간) 선종했다.76세. 2003년 11월 마닐라 대주교에서 은퇴한 신 추기경은 신장 질환과 당뇨병 등을 앓아왔으며 지난 4월 차기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단회의(콘클라베)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변인인 훈 세스콘 신부는 신 추기경이 지난 19일 저녁 고열로 카디널 산토스 메디컬센터에 입원했으며 장기장애로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교계 지도자들은 추기경 가족과 장례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시신은 마닐라성당으로 옮겨졌다. 중국계 상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16자녀 중 14째로 태어난 신 추기경은 11살때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종교인의 길에 들어섰다.26세때 고향인 중부 아클란지방에서 사제를 서품한 뒤 주교·대주교를 거쳐 48세 되던 지난 1976년 마닐라 교구장을 맡아 8000만 신도를 거느린 필리핀 가톨릭계를 28년 동안 이끌어왔다. 그는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산아제한, 빈곤과 이라크전쟁 반대에 이르기까지 직설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아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종교 지도자로 꼽혀 왔다. 지난 86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과 결별을 선언한 피델 라모스 군 참모차장과 후안 폰세 엔릴레 국방장관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마닐라시 경찰과 군 본부를 포위하라고 요구하면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강론은 평화적으로 마르코스를 축출한 피플 파워로 연결됐고 아시아와 남미 전역에서 부패·독재정권에 대항하는 평화적 운동으로 승화됐다. 2001년에도 부패와 실정을 일삼은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기여했으나 이 문제로 에스트라다를 지지하는 빈민층과 갈등을 겪었다. 개신교도였던 라모스 대통령과는 인공 산아제한 문제로 대립하기도 했다. 신 추기경은 특히 부패를 혐오했고,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설교 등을 통해 도덕적으로 문제있는 정치인을 공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힘은 2003년 7월 수백명의 군 장병이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에 대해 일으킨 반란을 무산시킴으로써 다시 입증됐다. 그는 같은해 은퇴성명에서 “황혼녘에 드는 이때 하느님과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내가 잘못 이끌었거나 상처준 모두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클릭이슈] 대학가 日극우단체 자금 유입 공방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1899년 오사카생.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22살 때 물려받은 유산으로 우익단체 ‘국방사’ 결성.1931년 국수대중당 총재에 선출된 뒤에는 당원들에게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의 제복을 입혔을 정도로 파시즘을 추종. 만주 항일유격대 소탕과 가미카제 특공대 창설에 깊숙이 관여. 패전 뒤에는 도쿄재판에 회부돼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 받지만 투옥 3년 만인 1948년, 감옥에서 나와 사업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 1951년부터 경정사업을 시작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사카와는 ‘도박재벌’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자선사업과 함께 사사카와 재단(95년 사망후 일본재단으로 개명)을 설립한다. 그는 1970년 150t짜리 병원선 1척을 한국에 기증한 데 이어 1975년에는 한국나병연구원 건립자금으로 1억 2000만엔(당시 2억원)을 전달한다. ●일본재단의 돈을 둘러싼 해석 두고 치열한 공방 이런 사연을 갖고 있는 일본재단의 돈이 연세대와 고려대에 흘러들었다는 사실이 최근 부각되면서 해당 대학의 구성원들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공익법인이긴 해도 전범과 관련된 재단의 돈을 학문 연구에 사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과 사사카와 개인이 아닌 공익법인으로부터 받은 돈이기 때문에 투명하게 쓴다면 문제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본재단의 돈이 연세대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95년. 연세대는 당시 재단의 기금을 출연받아 학교법인 아래에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뒀다. 같은해 12월4일 알렌관에서는 ‘한·일협력 연구기금 전달 조인식’을 기념하는 행사도 열었다. 당시 일본재단의 기금을 끌어오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송자 연세대 전 총장은 “한·일 국교 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양국 상호 이해 증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사카와의 셋째아들로 일본재단의 이사장인 사사카와 요오헤이는 이날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며 “일제의 박해에 쓰러진 그의 학문과 정신을 이 기금을 통해 이어가겠다.”고 밝혔다.‘한·일협력 연구기금’ 10억엔(당시 환율기준 75억원)이 일본재단의 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연세대는 심각한 학내 갈등을 겪는다. 교수평의회와 총학생회는 전범의 기금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힌 연세대는 결국 1996년 6월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독립적인 재단법인 ‘아시아 연구기금’으로 탈바꿈시킨다. 일본재단의 돈과 외부 지원을 합해 총 1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아시아 연구기금은 여기서 나오는 이자 수입 등으로 해마다 3억∼8억원 정도를 교수들에게 연구비로 지급해 왔다. ●일본재단, 연구비 지원 제안 잇따라 연세대에 일본재단의 자금이 유입되기 훨씬 전인 1988년 고려대에도 이 재단의 자금으로 장학금이 조성됐다. 사사카와 생전에 장학금을 유치한 고려대는 그의 이름을 따 ‘사사카와 영-리더(Young-Leader)’라는 장학금을 설치하고 1억 2950만엔을 받았다. 이 기금의 이자는 2003년까지도 고려대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됐다. 고려대의 한 교수는 “1980년대 말부터 일본재단이 한국의 유명대학 교수에게 전화를 일일이 걸어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해와 실제 일부 교수가 그 돈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시아연구기금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재단의 기금은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 한 사람의 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유 교수는 “일본재단은 경정사업을 하는 하나의 공익법인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로또나 마사회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아시아연구기금은 동아시아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연구를 하는 데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반면 연세대 교수협의회 대표 최종철 교수(영문과)는 모든 기금에는 돈을 주는 단체의 의도가 있다고 반박한다. 일본재단의 핵심 운영진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구성원들로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해 왔기 때문에 이들의 돈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재단의 자금을 받은 단체와 대학들은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기금을 모두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효연 김준석기자 belle@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박정희 평가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박정희 평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평가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계간 ‘창작과 비평’은 이번 여름호에서 박정희 재평가를 쟁점 기획으로 다뤘다. 여기서 과거 반독재 지식인 진영의 중심에 섰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민주개혁 없는 경제개발의 추구는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에서처럼 결국 경제의 장기적 침체와 쇠퇴를 낳거나 이란의 이슬람혁명에서처럼 원리주의적인 신정(神政) 체제로 귀결하기 십상”이라면서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건 제2의 박정희가 해결책이 못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그러나 박정희의 공과를 따져 경제개발의 업적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는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주제로 매월 한 차례 콜로키엄(전문가 토론회)을 열고 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위를 부각한 만화 ‘박정희’가 지난 16일 출간되자 박정희 추종 세력이 반발하고 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의 영웅’이면서 ‘독재자’다. 양면성을 가진 박정희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의 본 모습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박정희가 비난받을 점 박정희의 허물로 지적되는 점들은 대통령이 되기전의 친일 행각과 좌익활동, 대통령이 된 다음의 장기집권과 독재정치, 인권탄압 등이다. 반(反) 박정희 진영에서는 박정희가 교사에서 일본군 장교로, 다시 대한민국 장교로,‘빨갱이’에서 반공의 기수로, 충성을 다하는 장군에서 쿠데타의 수괴로 변신을 거듭하며 조국 민족도, 적과 동지도, 양심과 이념도 버린 것은 오로지 권력욕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음은 반 박정희 진영의 친일에 관한 주장. ▲친일행각=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던 박정희는 1940년 23세의 나이에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 입대, 일본군 장교가 됐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도 했다. 졸업식에서 박정희는 대표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라고 선서를 했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박정희는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썼다. 다시 일본 육사에 들어가 3등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천황에게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 박정희는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을 거쳐 제8군단에 배속돼 독립군 토벌에 출정했다. 독립군 토벌에 나갈 때 “조센진 토벌이다. 요오시(좋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문명자씨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이라는 책에 나온다. ▲좌익활동=해방후 군 창설에 참여한 박정희는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를 2기로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한 뒤 좌익활동에 빠진다. 육군본부 정보국 작전과장으로 근무하다 1948년 여수 순천 사건을 계기로 군내 ‘남로당 조직책’임이 드러나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박정희는 자신이 참회했으며 사면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증거로 자신이 맡고 있던 조직망을 폭로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뒤 박정희는 수사에 협력해 공모자들을 수사대에 알려주기도 했고 공모자들의 집으로 수사대를 직접 이끌고 가기도 했다. 동료 장교들의 감형운동으로 석방되어 문관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다가 6·25전쟁 이후 소령으로 복귀했다. ▲독재정치·인권탄압=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에 들어간 박정희는 1972년 유신으로 종신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 유신 반대세력에게는 가차없는 탄압이 가해졌다. 수백명의 언론인을 쫓아냈고 수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고문했다.1973년 최종길 서울대 교수를 간첩으로 몰아 고문을 해 숨지게 했고 같은 해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씨를 납치했다.1975년에는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 8명을 사형시켰다. 언론인 장준하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8년 집권기간에 10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계엄령, 위수령, 비상령이 발동됐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만여명이 검거됐다. ●박정희의 경제적 업적 대통령 취임 이후 박정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하고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는 등 경제성장에 힘을 쏟은 것은 사실이다. 매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열고 해외공관을 통해 수출 확대에 주력했다. 포항제철, 울산 중화학공업 단지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도 힘썼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산업교통망을 늘렸다.‘잘살아 보세’라는 기치 아래 농어촌을 중심으로 새마을운동이라는 개혁 운동을 펼쳤다. 이런 성장정책으로 박정희는 한국을 절대빈곤에서 탈피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인당 국민소득을 실질소득이 아닌 명목소득으로 계산할 때 박정희가 집권했던 1961년 82달러였는데 죽을 때인 1979년 1636달러를 기록해 외형상 연평균 18%의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특히 수출은 연평균 38% 증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박정희의 이런 경제적 치적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60년대의 고도성장은 다른 개도국에도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수출도 늘었지만 수입도 엄청나게 늘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이면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정희,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인물이든 공(功)과 과(過)가 있기 마련이다. 공 때문에 과가 묻혀서도 안되고 그 반대가 돼서도 안된다. 특히 잘못은 시간이 지나면 묻혀지고 미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인물과 동시대에 살지 않은 후손들에게 어떤 한 면만 부각돼 인물 평가가 잘못될 수 있다. 따라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과를 분명히 따져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를 내려놓는 일이다. 경제난이 지속되는 요즈음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의 한 쪽면만 보고 무턱대고 추종하는 것은 잘못이고 허물 때문에 공적을 폄하해서도 곤란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이룬 경제성장의 업적은 노동자의 희생과 인권침해, 천민자본주의 등의 폐단과 부작용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단기간 성장을 박 전 대통령이나 집권·지도층의 공만으로 돌릴 수 없다. 박정희가 경제적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 묵묵히 일한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점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박정희가 닦은 경제적 기반 위에 1인당 GDP(국내 총생산) 1만달러를 넘는 중진국이 된 한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빈부격차와 지역갈등은 박정희가 추구한 성장지상주의와 개발편향주의가 한 원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칠레 저항작가 루이스 세풀베다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칠레 저항작가 루이스 세풀베다

    “그 어떤 독재자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여독을 채 못 풀어서인지 의자에 몸을 파묻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중남미 문학의 거장 루이스 세풀베다(56)는 갑자기 허리를 곧추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옌데와 피노체트 얘기가 나오자 보인 반응이다. 한국과 칠레는 비슷한 면이 있다.4·19혁명에 이은 5·16쿠데타는 아옌데 정부 집권과 피노체트 쿠데타와 닮아있고, 박정희와 피노체트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란도 닮은 꼴이랄 수 있다. “지난해 9월 칠레에서 열린 APEC회담에서 라고스 칠레 대통령이 ‘아시아 대표들에게 설명하는데 지쳤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칠레의 경제발전이 군부독재 덕분이 아니라고 설명하는게 너무도 힘들었다고 합니다.”세풀베다는 칠레의 경제발전에 대해 “잠재적인 민주주의가 작동했기 때문이며 민주주의가 없다면 거시적인 경제성장이 결코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세풀베다는 대표작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뒷얘기도 소개했다.“유네스코 조사단의 일원으로 ‘백인 식민주의가 아마존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조사의 후원을 셸이 맡았더군요.”다국적 석유기업 셸이 노리는 것은 뻔했다. 다량의 석유가 묻혀 있는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의 머릿수를 알 필요가 있었다. 그의 목에 은 돌고래 목걸이가 걸려있는 것도 이 경험과 관련있다. 더 이상 그린피스같은 환경단체의 활동이 필요하지 않은 날까지 목에 걸고 있자고 그린피스 창설자 데이비드 맥타가트가 만든 10개의 목걸이 가운데 하나다.“이 목걸이를 바다에 던져버릴 그날은 언제올까 싶지만 한사람의 시민으로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윤리의식을 실천으로 연결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美 “6자 거부땐 5자 다른 선택”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프 디트러니 미국 국무부 대북협상대사는 “만일 북한이 궁극적으로 (6자회담) 테이블에 복귀하기를 거부하고 핵 문제에서 도발적으로 긴장을 계속 고조시킨다면 (회담 참가국들 가운데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은 함께 모여 선택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트러니 대사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윌라드호텔에서 조선일보와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러나 선택 방안들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디트러니 대사는 6자회담에 이어질 북·미 관계 정상화 협상은 인권 문제와 미사일, 마약 밀매 등 북한의 불법행위들이 모두 해결돼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며 “이 문제들에 대한 북한의 협조적인 접근이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회담이 6자회담의 재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남북한이 더 의미있는 대화로 서로 더 가까워지면서 핵 문제의 해결쪽으로 움직인다는 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디트러니 대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독재자로 부르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을 폭정의 잔존기지라고 지칭한 것이 6자회담 재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어떤 말보다 이슈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며 “북한 중앙통신이 평양에서 매일 미국에 대해 하는 (거친) 말들을 우리가 문제삼는다면 우리는 결코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미나에서 조태용 외교통상부 북핵외교기획단장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수개월간 축적돼온 합동 외교노력이 이제 결정적 전기를 맞고 있으므로 그 성공 여부를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 단장은 또 앞으로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더 자주 열되, 반드시 전체회의 형식이 아니라 소그룹별 회의를 가질 필요가 있으며, 각국 대표단장끼리는 가능하다면 (결론이 날 때까지 회의를 계속하는) 교황선거 방식의 분위기에서 진지하고 집중적인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6자회담 개선론을 제기했다. dawn@seoul.co.kr
  • 北 “부시는 불망나니” 맞불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폭군’이라 비난하자 곧바로 북한이 부시 대통령을 ‘불망나니’로 맞받아치는 등 북·미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9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폭군’,‘위험한 사람’,‘국민을 굶기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하루 만인 30일 부시 대통령을 ‘불망나니’,‘도덕적 미숙아’,‘인간추물’,‘세계의 독재자’ 등으로 표현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불망나니는 ‘지독하게 못된 망나니’란 북한식 표현이다.3년전인 2002년 부시 대통령은 의회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했고, 같은 해 5월에 사석에서 김 위원장을 ‘피그미(난쟁이)’,‘버릇없이 구는 아이’ 등으로 비하하면서 강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북한은 이에 부시 대통령을 ‘폭군 중의 폭군’이라고 되받았던 적이 있다. ●”북·미관계 어떤 진전도 기대안해” 특히 외무성 대변인은 이번에 “부시 대통령 집권 기간에는 핵문제 해결도, 조ㆍ미관계의 어떤 진전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혀 북핵문제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는 양상이다. 북·미간 공방은 최근 미국이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 가능성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6자회담 재개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이 북핵해결 분수령될듯” 최근 동북아 3국을 순방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6자회담 재개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 발언은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을 6자회담의 틀로 유도하려는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데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2일 뉴욕에서 개최될 핵확산방지조약(NPT) 회의에서 북한의 태도를 근거로 신형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북한을 압박할 개연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오는 9일 모스크바 정상회의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물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북한 핵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부시, 북핵 안보리회부 시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독재자로 비난하며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회부할 가능성을 언급해 북한의 반발 등 파장이 예상된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가진 특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에게 초점을 맞춰 ‘위험한 사람’,‘폭군’으로 지칭하며 ‘주민을 굶긴다.’,‘위협하고 허풍떤다.’ ‘거대한 강제 수용소’ 등의 표현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미국은 북핵 문제를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특히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과의 협의를 통해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책”이라면서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려면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재선 이후 한국과 중국 등의 요청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왔으며,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일부 참가국(중국, 러시아)들은 안보리 결의안에 대한 비토권도 갖고 있다.”고 말해 안보리 회부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은 아님을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이라크에 대규모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지만, 이 때문에 북한 등 다른 문제를 처리하는 데 조금도 제한을 받고 있지 않다고 말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능력’을 과시했다. dawn@seoul.co.kr
  • [사설] 경찰 저질공세론 수사권 못 갖는다

    수사권 문제를 싸고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대(對)검찰 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 최근 경찰관련 사이트에는 일선 경찰관들이 검찰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띄우거나, 대중가요 ‘독도는 우리땅’ 가락에 가사만 바꾼 ‘수찾사(수사권을 찾는 사람들)’란 노래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가사는 검찰을 ‘무소불위 독재자 권력의 고향’이라고 비난하고,‘대검찰청 나오면 한강다리 왜 갈까’라며 인권보호에 소홀한 점을 꼬집고 있다. 일반인들이 만들어 퍼뜨린 노래라면 한번쯤 웃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권 조정의 핵심 당사자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풀어도 어려운 판에 이렇듯 상대의 감정을 건드려서 무슨 효과를 거두겠는가. 노래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글을 통해서도 검찰을 폄하하는 발언이 다수 발견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다. 지난 19일에는 허준영 경찰청장을 ‘수사권독립장군’이라고 한 패러디가 경찰전문 포털사이트인 ‘폴네띠앙’에 등장했는데, 허 청장이 직접 이를 언론에 자랑삼아 소개한 점도 경솔한 처사다. 이래가지고는 본질은 사라지고 감정만 돋울 뿐이다. 모든 수사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수사권 논란에서 경찰이 ‘약자’로 비쳐지는 것은 사실이다. 시일은 촉박한데 검찰의 이기주의로 인해 조정이 답보상태라서 그랬겠지만, 국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려고 한다면 실망스럽다. 우리는 검찰이 경찰보다 수사능력이 탁월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두 기관 모두 국가와 국민에게 중요하며, 독자적으로 해야 할 일과 협력해야 할 일이 있다. 법 집행과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기관답게 모범적으로 처신해 주기를 당부한다. 검경의 일거일동을 지켜보겠다.
  • “볼턴, 노대통령과 면담 무산되자 화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차기 유엔대사로 지명된 존 볼턴 전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이 지난 2003년 초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의 면담을 추진하려다 이뤄지지 않자 토머스 허버드 당시 주한대사에게 크게 화를 내며 통화하던 전화기를 내던지듯이 끊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또 볼턴이 그해 6월31일 서울방문 중 연설을 통해 “북한은 지옥과 같은 악몽”이며 “김정일은 참주적 독재자”라고 지칭했던 것에 대해 허버드 대사가 “고맙다.”고 말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허버드 전 대사가 볼턴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를 진행 중인 상원 외교위에 보낸 ‘석명서’를 통해 밝혀졌다고 주간지 뉴스위크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허버드 전 대사는 볼턴이 인준 청문회에서 자신의 “고맙다.”는 발언을 왜곡하자 이를 시정하기 위해 외교위에 석명서를 보냈다고 밝히고 “당시 ‘고맙다.’는 말은 그 연설에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들도 있었는데 이를 바꿔달라고 요청한 것을 받아들인 데 대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허버드 대사는 볼턴 차관이 노 당선자와의 면담을 요청했던 그 전 주에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노 당선자를 만났기 때문에 면담을 주선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당초 19일 실시될 예정이었던 볼턴 지명자에 대한 인준 투표는 볼턴의 과거 ‘부적절한’ 행적과 관련한 폭로가 잇따르면서 다음달로 연기됐다. 볼턴의 인준이 자꾸 꼬여가자 백악관도 신경이 곤두서 있다. 스콧 매클렐런 대변인은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을 근거 없이 공격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워싱턴 정가의 추한 면”이라고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dawn@seoul.co.kr
  • [교황 서거]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

    27년간 재임, 가톨릭 사상 세번째로 장수한 교황으로 기록된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사를 완전히 새롭게 쓴 인물이다. 비(非) 이탈리아계 교황의 선출은 1523년 네덜란드 출신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5년 만에 그가 처음이었다. 공산 국가인 폴란드에서 교황이 나온 것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는 선출 당시 58세로 최근 123년 동안 추대된 교황 중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했다. 교황은 취임 이후 교회 업무뿐만 아니라 세계 문제를 자신의 일로 여겨 104차례에 걸쳐 각국을 방문, 인권문제·이념갈등 해소 등을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사목 순방은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횟수가 많아 거리로 환산할 경우 지구를 27바퀴 돈 것과 맞먹는다.‘행동하는 교황’으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 교황은 지난 세기 가톨릭이 저지른 과오를 머리 숙여 사죄하고 다른 종교와 화해를 모색해 성(聖)과 속(俗) 모두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을 듣고 있다.8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바티칸에 안주하며 바깥 세상과 거리를 두었던 전임 교황들과 달리 뛰어난 친화력을 발휘했다. 수요일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해온 그의 강론을 듣기 위해 바티칸에 온 순례자는 무려 1780만명에 이른다. ●그늘진 유년기 취임 34일 만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뒤를 이은 그의 발탁은 당시 파격적이었다. 바티칸 내부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던 그는 추기경들의 8번에 걸친 투표 끝에 78년 10월16일 제264대 교황에 선출됐다. 교황은 1920년 5월18일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군장교 출신의 양복사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그의 유년기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9세 때 어머니가,12세 되던 해에는 의사였던 형 에드문트마저 성홍열(猩紅熱)로 각각 사망,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구멍난 옷을 기워 입히고 헝겊 조각으로 만든 공을 차며 아들과 축구를 할 정도로 다정다감했다. 동시에 집중력과 강인함을 길러주기 위해 차가운 방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는 엄격한 면도 있었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보이티야는 다른 폴란드인들과 달리 반유대주의적 시각을 갖지 않았다. 당시 바도비체에는 20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거주했다. 보이티야는 이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렸고 이는 훗날 교황이 유대교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 바탕이 됐다. 그는 교황으로서 유대교 성전과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아우슈비츠 기념관을 최초로 방문해 유대인을 “우리의 형제들이여….”라고 지칭, 가톨릭과 유대교의 오랜 반목에 마침표를 찍었다. ●재능있는 사제 젊은 시절 보이티야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일 뿐 아니라 스키, 산악 등반, 카약, 수영 등 모든 운동에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38년 아버지와 함께 크라쿠프로 이주해 야젤로니안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시 낭송, 노래, 연극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극단에서 활동했으며 한때 전문 배우를 꿈꾸기도 했다.39년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 대학 문을 닫자 강제이주와 징집을 피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40년부터 4년 간 채석장에서 일했고 이어 화학공장 공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41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신의 종으로 살라.”는 부친의 평소 가르침을 따라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46년 사제 서품을 받고 48년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듬해 크라쿠프에서 보좌신부로서 본격적인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제로서의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58년 크라쿠프 부주교,64년 주교,67년 추기경 자리에 올랐으며 78년 마침내 교황으로 선출됐다. ●‘세계의 양심’ 구심점 그의 교황 선출이 공표되자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유리 안드로포프 의장은 앞으로 상당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평신부 시절부터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교황은 취임 이후 조국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적극 지지해 공산정권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는 구소련 몰락과 냉전종식의 기폭제가 됐다. 당시 사제들은 교황의 비밀 메시지를 사제복에 숨겨 투옥돼 있던 노조 지도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 인권 침해를 일삼는 칠레의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같은 독재자들을 공개적으로 비난, 반정부 운동을 고취시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서방국가도 예외는 아니었다.81년 첫 미국 방문에서 교황은 미국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를 강력히 경고하는 한편 제3세계의 빈곤을 외면하는 이기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2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도 미국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수주의의 기둥 교황의 피임과 낙태, 안락사에 대한 거부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산업국가가 이같은 ‘죽음의 문화’를 조장한다고 비판하면서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에 반대해 원성을 샀다. 성경 교리를 들어 여성의 사제 서품을 허용하지 않아 교회 안팎에서 독재적이라는 비난도 잇따랐다. 81년 3월 바티칸 광장에서 한 터키인으로부터 복부와 양손에 총격을 받아 중태에 빠졌다. 당시 KGB가 배후 조종을 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암살 동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교황은 83년 이 터키인이 복역중인 감옥을 직접 방문, 그를 용서하는 자비를 베풀어 세계인을 다시 한번 감동시켰다. ●쇠약한 말년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두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긴 교황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깨 골절, 대퇴골 교체수술, 종양 제거수술 등을 받았다. 말년엔 암살 후유증에다 파킨슨씨병, 무릎 관절염 등으로 거동은 물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한 세월을 보냈다. 감기에 따른 호흡곤란 등의 합병증으로 고령에도 불구, 기관 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빠르게 기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건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임설에 시달려야 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옛소련독립국 ‘피플파워’ 도미노

    ‘피플 파워’의 도미노 현상인가.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에 ‘시민혁명’ 바람이 매섭다.2003년 11월 그루지야의 ‘장미혁명’과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에 이어 24일 키르기스스탄에선 ‘레몬혁명’으로 14년을 집권해온 아스카르 아카예프 정권이 무너졌다. 이들 국가 모두 부정선거로 시민혁명이 촉발됐으나 보다 근본적인 배경은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었다. 독재화 성향이 짙은 카자흐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주변 독립국가연합(CIS)에로 시민혁명이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 진영은 발빠르게 정국 수습책을 내놓았으나 전국에서 약탈과 방화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주민간 유혈극으로 5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하는 등 정국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부패로 얼룩진 독재의 말로 이날 권좌에서 쫓겨난 아카예프 대통령은 한때 개혁의 기수로 불렸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창했지만 예의 독재자처럼 그도 권력욕에 사로잡혔다. 그는 2000년 대선에 출마했던 펠릭스 쿨로프 전 부총리를 구속시켰고 2002년에는 야당 의원의 구속에 항의하던 시위대에 발포,6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후 가족 일가의 독재 체제를 강화, 국민과 야당의 불만이 고조됐다. 결국 지난 13일 총선에서 영구집권을 위해 선거 부정을 자행, 자신의 아들과 딸을 포함해 75석 대부분을 집권당이 차지하자 국민들의 분노가 일순 폭발했다. 그루지야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와 우크라이나의 레오니트 쿠치마가 걸은 길을 답습한 것이다. 아카예프는 쇼핑센터를 경영하는 부인 등 가족의 비리가 드러난 데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서 염증을 느낀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카예프 “사임한 적 없다” 키르기스스탄 의회는 25일 야당 지도자인 쿠르만베크 바키예프를 임시 대통령겸 총리로 지명, 바키예프가 사실상 차기 지도자로 부상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바키예프는 이날 비슈케크 중앙광장에 모인 군중에 “마침내 우리에게 자유가 왔다.”며 “새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회 연설에서 상황을 신속히 개선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하원은 시민들에 의해 석방된 쿨로프를 내무장관에, 상원은 이셴바이 카디르베코프 야당 의원을 의장에 지명했다.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3개월안에 치러야 하는 현행 헌법에 따라 6월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카자흐스탄에 머무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아카예프는 25일 자신이 사임했다는 보도를 부인하면서 야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비난했다. 카바르 통신에 이메일로 보낸 성명에서 아카예프는 “유혈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나라를 떠나 있는 것”이며 곧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가 사임했다는 소문은 교활하고도 모략적인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키르기스스탄은 그루지야나 우크라이나와 달리 외교정책의 향배보다 경제회복과 부패청산이 최대 관건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와 달리 개혁의 구심점이 약한 데다 야당이 서구식 민주화에도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아 ‘미완의 혁명’에 머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플 파워 확산 우려하는 주변국 주변국들도 이를 바라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으나 혁명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일 비교적 공정한 선거를 치른 몰도바도 후유증이 없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언론을 통제, 사태 추이를 일절 보도하지 않으면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투르크메니스탄과 벨로루시는 피플 파워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현 정권의 영구집권을 위해 종신 대통령제를 구축했거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동시에 피플 파워의 여파는 2008년 임기가 끝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크렘린 일각에선 대통령 3선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제2의 독립’으로도 불릴 수 있는 CIS의 피플 파워 바람이 모스크바에 닥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시론] 반대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션 헤이스 헌법재판소 연구원

    [시론] 반대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션 헤이스 헌법재판소 연구원

    필자를 포함해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이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낸 한국인도 사랑한다. 한국인들은 정열적이고, 멋지다고 할 정도로 복잡다단한 민족이다. 무엇보다 주류 사회, 다수 의견에 도전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국회나 언론 매체에서도 첨예한 의견대립은 쉽사리 발견된다. 거리 집회 참가자들은 물론 택시 기사들도 정부와 정치인에 대해 찬·반 목소리를 높인다. 활발한 반대의견 덕택에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뿌리내렸다.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의 큰 걸음은 주류 사회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됐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과 한국인은 혁명가의 피와 정신을 물려받았다. 이들은 사회보편적 원칙에 항거할 줄 아는 저항가다.”라고 표현했다. 저항이 쉽지 않던 과거에도 한국인들은 일제 식민주의에 항거, 독립을 이뤘고 무자비한 독재자를 몰아냈다. 결국 아시아 지역에서 몇 안 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성과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또 주류 사회에 대해 강력히 도전하는 정신, 용기가 변화의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정신이 사법부나 교육 현장까지 닿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다. 예를 들어 하급 판사가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판결을 내놓는 일이 심각할 정도로 드물다. 박사과정 학생이라도 지도 교수에게 다른 의견을 피력, 충돌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법원과 학교는 자유로운 사고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이다. 법원은 자유를 수호하고, 학교는 젊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주류 사회에 반대하는 도전 정신을 존중하고 증진시켜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도 반대할 줄 아는 것은 생각과 실천, 배움의 출발점이다. 만일 반대가 없다면 이런 것들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밀턴은 1644년 저작 ‘아레오파기티카’에서 “갖가지 주장이 이 땅에 활개치고 다니도록 허용하라. 진리가 그곳에서 함께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의 힘을 의심해 다른 의견을 내놓지 못하도록 막는 행위는 어리석다. 진리가 거짓과 투쟁하게 놓아둬라. 자유롭고 공개된 대결에서 진리가 거짓에 패배하는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사상의 시장(市場)’이라 불리며 경제학의 자유시장 이론의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이론의 근본 정신은 시장이, 자유로운 사상 교류를 통해 무엇이 진리인지 진단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특정 사상이 경쟁에서 이겨 수용될지 여부를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연방 대법관 홈즈도 이 이론에 적극 동조했다. 그는 “우리가 열망하는 절대 선(善)은 자유로운 사상 교류 속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진리를 판단하는 최고의 잣대는 시장 경쟁 속에서 승리해 보편적 이념으로 받아들여질 힘을 지녔는가다. 진리는 다양한 사상이 표방하는 열망을 안전하게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법부와 교육계에도 주류 사회에 반대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활발한 반대 의견 개진을 허용하는 것은 헌재는 물론 국가 전체에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소속 연구관들에게 다양한 반대 의견을 개진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런 정신이 사법기관과 교육계에도 전반적으로 확산되길 희망한다. 우리는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문화를 강력히 비판한 풀브라이트 미국 상원의원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우리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도 반드시 고찰해야 한다. 우리는 반대자들의 목소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환영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것들이 말도 안 된다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멈춰 버리고 행동은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 션 헤이스 헌법재판소 연구원
  • 쉬어가기˙˙˙

    이탈리아 프로축구(세리에A) 라치오의 주장 파올로 디 카니오가 ‘파시스트식 경례’ 세리머니로 1만유로(134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고. 디 카니오는 지난 1월 로마올림픽스타디움에서 벌어진 AS 로마전에서 골을 넣은 뒤 베니토 무솔리니식의 경례로 세리머니를 펼쳐 구설수에 올랐고,11일 징계청문회에서 이같은 벌금형이 확정됐다. 한편 라치오는 독재자 무솔리니가 응원했던 팀으로 팬클럽 회원들 역시 파시스트 성향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 美 유엔대사에 ‘안티UN’ 볼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존 볼턴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을 유엔주재 미국대사에 지명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핵심 인물인 볼턴 차관은 유엔의 효용성과 효율성을 강력히 비판해온 인물이어서 국제사회는 이번 인선의 배경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엔주재 외교관들은 “부시가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특히 볼턴은 한국 정부관계자들에게 “북한 핵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기 때문에 그의 인선이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날 국무부 브리핑룸에 볼턴 차관과 함께 나와 유엔대사 지명 사실을 발표했다. 라이스 장관은 “볼턴은 강인한 외교관이고,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왔다.”고 치켜세웠다. 볼턴은 “의회와 긴밀히 협력해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효율적인 다자외교를 지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볼턴은 지난 1994년 ‘연방주의자협회’ 포럼에서 “만일 뉴욕의 유엔 건물이 10개층을 잃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조금도 없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볼턴 지명과 관련,“다자기구를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유엔 개혁’이 인선 배경임을 시사했다. 메릴랜드주 출신인 볼턴은 예일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국무부와 법무부에서 일했으며 네오콘의 본산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부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타이완을 지지해 중국과도 사이가 좋지 않고, 이란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유럽과도 대립했다. 볼턴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삶이 지옥 같은 악몽인 나라의 폭압적인 독재자”라고 부를 정도로 대북 강경론자다. 따라서 북핵 문제가 일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넘어갈 경우 볼턴의 입김이 작용해 한차례 소용돌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최근 유엔 내에서도 미국의 독주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다 중국·러시아·프랑스 등 미국에 비협조적인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건재하기 때문에 볼턴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지 의문을 표시하는 의견도 있다. 볼턴은 지난 2001년 8월 국무부 차관에 지명됐을 때 상원 인준투표에서 찬성 57, 반대 43표를 기록했었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인선”이라며 인준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의회는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볼턴의 인준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dawn@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스타워즈 4(MBC 오후 11시40분) 옛 제다이 기사인 다스베이더의 지배를 받는 제국군과 레아 공주가 이끄는 공화국군과의 전쟁을 주내용으로 한 기념비적인 SF영화. 은하제국의 독재자인 타킨 총독의 돌격대는 레지스탕스인 레아 공주의 우주선을 공격한다. 레아 공주로부터 은하제국의 비밀정보를 의뢰받은 정보 로봇과 통역 로봇은 아슬아슬하게 우주선을 탈출, 혹성 타로인 사막에 도착한다. 두 로봇의 컴퓨터 기억장치에서 레아 공주의 구원 신호를 포착한 루크. 사막의 기인이자 최후의 기사단인 밴 캐노버와 함께 레아 공주의 구출작전에 뛰어든다. 두 사람은 우주공항의 주점에서 우주해적선장 한 솔로와 유인원 추바카를 끌어들인다. 레아 공주의 구출원정대 일행은 데스 스타에 잠입하여 공주를 구출, 혹성 야빈으로 귀환한다. 레어 공주가 빼낸 데스 스타 요새의 비밀이 드디어 분석된다. 이 비밀을 바탕으로 은하공화국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대십자군의 반격이 시작되는데…. 미국 영화의 전통적 장르인 서부영화에서 전쟁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재미있는 요소를 고루 갖춰 SF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됐다. 해적, 모험, 갱스터 무비, 공포, 뮤지컬적 요소도 포함돼 있고, 여기에 철학적 우화까지 곁들였다. 스타워즈 시리즈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작품.1977년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었고,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뒀다. 마크 해밀, 캐리 피셔, 해리슨 포드, 피터 쿠싱 등이 출연했고, 조지 루카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121분. ●내 이름은 쿠바(EBS 오후 11시45분) 미국의 꼭두각시였던 바티스타 정권이 몰락하고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 쿠바의 현실을 다큐멘터리적인 화면으로 그려낸 작품. 마치 완결된 여러 단편들을 합쳐 놓은 듯 진행된다. 흥겨운 클럽과 인적이 닿지 않는 오지까지 다양한 쿠바의 모습을 스펙터클하게 담아내며, 당시 쿠바의 열광적인 정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는 부패한 경찰 간부를 암살하려는 청년학생 엔리케(라울 가르시아)를 통해 다양한 정치계급의 삶의 모습을 포착해 낸다. 결국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하는 학생,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카스트로로 결집돼 혁명으로 비화한다. 쿠바혁명에 대한 역동적인 찬가로, 미하일 칼라토조프 감독의 1964년작.141분.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샤론 ‘내우외환’

    이스라엘 정부가 20일(현지시간) 유대인 정착촌 철수와 요르단강 서안의 분리장벽 건설을 의결했으나 안팎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당초 발표대로 팔레스타인 수감자 500명을 21일 석방했다. 이스라엘 극우 세력들은 정착촌 철수를 ‘반역행위’로 간주하며 정부 각료들에 대한 암살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또 팔레스타인측은 서안지구와 이스라엘 영토를 분리하는 장벽 건설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장악하려는 이스라엘의 의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공격을 모의한 혐의로 구금됐던 이스라엘 극우파 노암 페더먼은 “샤론을 없애려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는 샤론 총리를 ‘독재자’나 ‘반역자’로 묘사하고 “히틀러가 샤론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는 낙서들이 늘고 있다. 각료들은 가족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협박편지에 시달리고 있다.21개 정착촌이 철수될 가자지구의 유대인들도 반발하고 있다. 일부는 20만∼40만달러의 이주비를 받고 떠날 뜻을 내비쳤으나 상당수는 이번 계획안이 실패할 것을 기대하며 현 거주지에 남을 뜻을 피력했다. 대니 나베흐 복지장관도 “30년간 살던 집에 남겠다는 결정은 합법적”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당초 팔레스타인의 위협을 내세워 요르단강 서안지구내 16%를 가로지르는 분리장벽을 계획,2002년부터 착공에 들어갔다. 그러나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난이 일자 이번에 서안지구 영토 7%만 이스라엘측에 포함시키는 새로운 수정안을 내놓았다. 장벽은 콘크리트 벽과 울타리 및 전기감시장치 등으로 건설된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지금 그곳은] 역사의 현장 궁정동 안가

    [지금 그곳은] 역사의 현장 궁정동 안가

    “어디 가십니까.”“무궁화동산이요. 못 가는 곳인가요?”“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근데 왜 가시는데요?”“공원 가는데도 이유가 있어야 됩니까?” 지난 18일 오전, 청와대 입구 바리케이드 옆에 서 있던 전경이 무궁화동산을 향하는 택시를 막무가내로 세웠다. 행선지를 밝혀도 두 눈은 여전히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전경들의 무전기도 낯선 이의 출몰에 쉴새없이 울렸다. 무궁화동산은 궁정동 안가(안전가옥) 자리에 들어선 ‘시민공원’. 그러나 그곳을 향한 길은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멀었다. 무궁화동산은 1993년 7월에 문을 열었다.3700여평의 아담한 크기다. 공원보다는 쉼터에 가깝다. 청와대를 정면으로 봤을 때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행정동으로는 청운동에, 법정동으로는 궁정동에 속해 있다. 남쪽으로는 경복궁과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배경이 된 효자동, 그리고 정부종합청사와 서울시경찰청이 있다. 무궁화동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곳. 박 전 대통령은 79년 10월 26일 밤 일본 가요 엔카를 들으며 시바스리갈을 들이켜다 심복인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을 맞았다.‘경제개발의 선도자’이자 ‘독재자’인 박 전 대통령이 죽던 날을 그린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되면서 다시 여론의 수면위로 떠올랐다. 무궁화동산은 청와대 쪽으로는 정문, 자하문 쪽으로는 후문이 나 있다. 가운데에는 중앙광장, 광장 북서쪽으로 관리사무소가 있다. 광장의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휴게소가 자리잡고 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작은 산책로와 큰 산책로 두 개가 나 있다. 원래 3채의 2층짜리 안가가 있었다. 현재 관리사무소와 휴게소 자리가 그곳이다. 박 대통령은 정문으로 들어와 ‘볼일’을 마친 뒤 가운데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후문으로 나갔다고 한다. ●“역사적 유물로 남겨뒀어야” 무궁화동산에는 365일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곳을 다녀간 국내외 관광객들은 17만 300여명에 이른다. 지난달엔 1만 600여명이 찾았다. 효자동과 충신동, 신교동 등 주변 주민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안가를 공원으로 바꾼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렸다. 역사적인 공간으로 남겨놨어야 했다는 말이다. 이곳에 산 지 23년째 되는 조연홍(54·여·청운동)씨도 “안가는 역사의 현장에 산다는 주민들의 일종의 자존심이었다.”면서 “지금까지 잘 보존됐더라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박정희 정권의 공과를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역사학습장이 됐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무궁화동산관리사무소 관계자도 “안가의 공원화는 YS 정권의 홍보용 이벤트로 진행돼 당시 모습을 전하는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글 사진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씨줄날줄] 2月의 명절/김경홍 논설위원

    평양 모란봉 기슭에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은 지난 1977년 4월15일 김일성의 65회 생일을 맞아 준공됐다.1989년 시민혁명으로 처형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이를 보고 대통령궁을 지었다고 한다. 준공 당시는 금수산의사당, 주석궁으로 불리다가 김일성 사망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후 ‘궁전’으로 승격된 것이다. 유럽식 궁전을 본떠 만든 5층 복합 석조건물 앞에는 콘크리트 광장이 조성돼 있는데 그 너비가 415m, 길이가 216m다.‘415’는 김일성의 생일을,‘216’은 김정일의 생일을 상징한다.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부터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태양절)까지 두달동안을 축제기간으로 정해놓고 일반인의 혼인식도 자제할 정도다. 북한이 지난주 설날 연휴기간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더니, 내부적으로는 ‘2월의 명절’로 불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3회 생일준비로 분주하다고 한다. 평양방송은 “장군님은 역사가 일찍 알지 못하는 희세의 위인, 절세의 애국자, 불세출의 영웅”이라면서 “선군정치를 따르는 것은 세계의 흐름”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중앙TV는 김 위원장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의 기슭에 버들개지가 피었다고 소개하며 2월 평균기온이 영하 25도를 오르내리는 백두산에서 버들개지가 핀 것은 자연의 현상을 초월한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이 이렇게 김 위원장을 세계적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있는 와중에 미국의 한 잡지는 김 위원장을 세계 최악의 10대 독재자 중 2위로 선정했다.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한 언론이 김 위원장을 독재자 상위에 랭크했다고 해서 공정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숭배 강요, 적대계급으로 분류된 북한주민 3분의1에 대한 차별,25만명의 수용소 감금, 공개처형 등 독재라는 굴레를 씌운 선정 이유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남의 명절이나 생일, 축제에 재를 뿌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협박이나, 봉건왕조 시대에도 없던 개인숭배 현상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북한이 특수한 국가라는 것만으로는 체증이 가시지 않는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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