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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요기’ 전락한 디스토피아

    ‘눈요기’ 전락한 디스토피아

    유독 물질 유출됐던 마을 관광재난의 타자화에 일종의 경고“시간 흐르면 죽음도 투어 대상”잔혹한 참상이 일어났던 비극의 장소를 여행하는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다시는 이런 고통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이뤄진다. 하지만 여행객은 자신에게 직접 닥치지 않은 재난에 대해 그 고통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재난의 피해를 직접 겪은 이들은 이 같은 외지인의 방문을 접하고 어떤 심정을 느낄까.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 이후 한국 문학의 미래를 여는 젊은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초엽의 신작 SF소설 ‘므레모사’는 출입이 금지된 재난 지역에 감춰진 진실과 예상을 뒤엎는 결말로 독자들을 전율케 한다.가상의 국가 이르슐에는 유독성 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마을 므레모사가 있다. 이르슐 정부는 사고 이후 수십 년이 지나 재난지역인 므레모사 관광을 허용하고,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어 기계 다리를 착용한 무용수 유안을 비롯한 6명이 추첨을 통해 관광에 참가하게 된다. 유안은 여행 첫날밤 다른 방문객들로부터 끔찍한 참사를 겪은 뒤 므레모사로 귀환한 사람들의 신체가 ‘좀비’처럼 변했다는 소문을 듣는다. 하지만 실제 만나 본 귀환자들은 겉보기에 멀쩡했고, 므레모사는 오염된 땅처럼 보이지 않았다. 방문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에 홀린 듯 저마다 여행 목적도, 돌아갈 생각도 잊은 채 므레모사에 머물게 되고 유안이 홀로 분투하는 과정에서 귀환자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작가는 전작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독성 먼지에 고통받는 세계 속에서 고립된 공간 프림빌리지를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제시했었다. 이번엔 지구 전체가 아닌 특정 지역에만 닥친 재난으로 범위를 축소하며 재난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내 재앙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할 수 있다’며 남의 재난을 눈요깃거리로 삼는 세태도 꼬집었다. 유안을 제외한 므레모사 방문객들은 아무에게도 공개된 적 없는 이곳을 자신들이 최초로 방문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때로는 주민들을 도우러 왔다는 시혜의식을 내비치기도 한다. 끔찍한 비극 이후에도 기이하게 이 죽음의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이목을 끄는 가장 큰 이유다.하지만 방문객들이 기억을 잃고 의식을 장악당하는 것은 재난을 타자화하는 데 대한 일종의 경고로 여겨진다. 이와 함께 주목할 만한 것은 주인공 유안이 기계 다리에 의존해야 하는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다리를 절단한 뒤 환지증에 시달리고 무용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재활훈련을 거듭 했다. 이런 유안에겐 오히려 남을 의식하며 살 필요 없는 므레모사라는 기형적 공간이 더욱 편안하게 여겨진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일본 후쿠시마나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연상케 하는 므레모사에서 발생한 재난이 그려 내는 풍경은 재난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와 함께 ‘왜 우리는 재난을 그토록 재현하며 반복하려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시간이 흐르면 어떤 죽음은 투어의 대상이 된다. 여행자는 자유롭게 넘나드는 존재이면서 침범하고 훼손하는 존재”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SF소설이지만 미스터리와 공포, 판타지적 상상력에 예상치 못한 반전이 어우러진다는 점이 이 소설의 묘미다. 디스토피아를 인간사의 다양한 풍경과 결합해 인상적으로 부각시킨 이 작품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 [그 책속 이미지] 나태주가 쓰고 유라가 그리고… 반세기 뛰어넘은 하모니

    [그 책속 이미지] 나태주가 쓰고 유라가 그리고… 반세기 뛰어넘은 하모니

    걸그룹 ‘걸스데이’ 출신 작가 유라는 여행 중 발견한 곳곳의 풍경들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리며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따뜻한 색감으로 표현한다. 그림은 작가가 좋아하는 청량한 여름 바닷가 풍경으로, 생명력 있는 소재가 화폭에 더해져 정적이고 평화로운 가운데 생기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은은한 파도의 결과 생생한 질감이 돋보인다. 이 시화집은 나태주 시인의 시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여행에 관한 시를 뽑아 엮고, 거기에 어울리는 유라의 그림을 어울려 담아냈다. 계절과 여행을 주제로 한 이들의 합작은 반세기에 가까운 두 작가의 세대 차가 무색하게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시와 그림을 통해 쉽사리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독자들을 따뜻한 마음의 여행길로 안내한다.
  • 박근혜 전대통령 회고록,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1위

    박근혜 전대통령 회고록,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1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교보문고가 6일 발표한 1월 첫째 주(12월 29일∼1월 4일)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쓴 편지를 모은 책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가 1위를 기록했다.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집계한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이 책이 1위를 차지했다. 이 책은 박 전 대통령이 신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기 직전인 지난달 30일 오후 공개됐다. 서점에 배포되기 전부터 예약 판매만으로 인터넷 판매량을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오르면서 서점가에 돌풍을 예고했다. 이 책을 구매한 독자 가운데 60대 이상 남성이 25.7%를 차지할 정도로 노년층의 관심이 두드러졌다. 여성 10.5%를 합하면 전체 독자의 36.2%가 60대 이상이었다. 40대가 22.6%로 뒤를 이었고 50대 20.4%, 30대 15.5%, 20대 4.9% 순이었다. 이밖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친형 사이의 갈등을 다룬 책 ‘굿바이, 이재명’(지우출판)이 98계단 뛰어오른 18위를 기록하는 등 대선을 앞두고 정치 분야 책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지난달 24일 출간된 ‘굿바이, 이재명’은 민주당 측이 판매·배포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책이 1위로 데뷔하면서 김호연 작가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2위),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2’(3위), 만화 ‘흔한남매 9’(4위), 에릭 와이너의 철학 에세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5위), 매트 헤이그의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6위) 등 지난주 1∼5위를 기록한 책들이 모두 한 계단씩 내려앉았다.
  • “진단키트 양성, 보건소 PCR 음성… 6일간 7번 검사 미쳐요” 결과 봤더니 [강주리 기자의 K파일]

    “진단키트 양성, 보건소 PCR 음성… 6일간 7번 검사 미쳐요” 결과 봤더니 [강주리 기자의 K파일]

    보건소 PCR 검사 오류 추정 후기 올라와“키트 양성에도 PCR 음성, 재검사서 양성”재검사 안 받았으면 나흘간 감염 확산 아찔네티즌 “너무 고생” “혼란스러워” 격려·불안 전문가 “채취 실수 등 적지만 PCR 오류 가능”시중 유통검사 장비 신뢰성 세밀히 검증해야“6일 동안 코로나19 검사 7번 했습니다.” 한 시민이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확인했다가 다시 보건소 검사에서 음성 판정과 양성 판정을 번갈아 받는 사례가 확인됐다. 적극적으로 재검사를 받지 않고 방치했다면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가 시중에 유통되는 검사 장비와 체계의 신뢰성을 더 세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진단키트에 두 번이나 두 줄 떴는데”키트 4번, PCR 3번…“키트 오류인 줄” 지난 3일 한 지역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자가진단키트 양성→보건소 PCR 음성 나왔어요’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A씨는 “지난달 29일 기침 증상이 있는 가족과 함께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아 다음날 가족은 양성, 난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가족과 A씨는 각각 화이자와 모더나를 2차까지 맞은 접종 완료자였다. A씨는 가족이 감염된 터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31일 집에서 자가진단키트로 다시 검사를 했다. 이때 미세하게 양성 판정이 나왔다. A씨는 다음날 또다시 이 키트로 검사를 했고 이번에는 더욱 뚜렷한 양성 표시가 나왔다. A씨는 곧바로 보건소에 2차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러나 이달 2일 나온 보건소 검사 결과는 또 음성이었다. A씨는 불안한 마음에 집에서 다시 자가진단키트로 자가 검진을 했고 양성임을 재확인했다. A씨는 “뭐가 뭔지 진짜 모르겠다. 5일간 PCR은 음성, 자가진단키트는 양성인데 미치겠다”며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보건소 검사가 잘못된건지, 자가진단키트가 잘못된건지, 코막힌 건 단순 감기인지 모르겠다”면서도 3일 다시 보건소로 가 3차 PCR 검사를 받았다.보건소 “PCR 음성시 재검사 불필요”그러나 재검사 양성 나오자 “…” A씨는 검사 다음날 결국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접종 완료 후 확진된 돌파감염이다. 그는 추가 게시글에서 “결국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면서 “자가진단에서 계속 두 줄이 나오고 보건소 PCR 검사는 음성이 나왔길래 자가진단키트가 오류인 줄 알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보건소 양성 판정은 이달 3일, 자가진단키트 양성 판정은 지난달 31일”이라면서 “자가진단키트가 보건소 PCR 검사보다 더 빨리 알아낸 것인데, 자칫 큰 민폐를 끼칠 뻔했다”고 전했다. A씨는 열은 없으나 기침과 코막힘, 냄새를 못 맡는 후각 상실 증상이 있었다고 공개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몇 번이나 코를 찌르고 너무 고생많았다”, “상황 판단 능력 최고다”, “(PCR 검사) 몇 번을 받아도 적응 안되는데 정말 칭찬한다”라고 격려했다. 또 한편으로는 진단키트가 양성인데 반해 방역 당국이 인정하는 공식 검사인 PCR 검사가 음성으로 뜬 뒤 양성으로 재차 바뀐 데 대해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나”, “너무 혼란스럽다” 등의 불안감을 호소했다. 보건소측은 “자가진단키트는 실제 양성이 아닌데도 양성으로 잘못 판정되는 경우가 있어 PCR 검사가 가장 정확하다”면서도 PCR 검사가 뒤늦게 양성으로 바뀐 데 대해선 “이런 경우가 없는데…”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음성 검체 보관 안해 원인 규명 불가”검사량 폭증에 신속항원검사 확대 검토 전문가들은 자가진단키트에 주로 사용하는 ‘신속항원검사’가 30분 이내에 빠른 결과를 내지만, 바이러스 양이 많아야 정확도가 높아져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PCR 검사도 아주 드물게 오진이 나올 수 있어 검사 신뢰도를 더 높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성흥섭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6일 “앞서 음성으로 뜬 검체는 보관하지 않기 때문에 원인 규명이 어렵다”면서도 “0.01%도 안 되지만 PCR 검사도 오류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 외에 “두 번째 PCR 검사에서 검체채취 과정이 잘못됐거나 검체물이 바뀌었을 가능성, 검사 오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4일 전파속도가 델타 변이의 2~3배 정도로 빠르지만 중증화율·치명률은 30~50% 수준인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과 방역패스 확대로 인한 PCR 검사량 폭증에 대비해 의료기관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염호기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 대책전문위원장은 “신속항원검사는 민감도(정확도)가 50% 이하이기 때문에 PCR 검사의 보조수단으로서만 활용해야 한다”면서 “오미크론 확진 오판을 막기 위해 각 진단키트 유효성 검사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강주리 기자의 K파일은 강주리 기자의 이니셜 ‘K’와 대한민국의 ‘K’에서 따온 것으로 국내외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취재파일입니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사까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한국형 FBI’ 국수본 출범 1년…책임 커졌는데 존재감은 ‘글쎄’

    ‘한국형 FBI’ 국수본 출범 1년…책임 커졌는데 존재감은 ‘글쎄’

    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60여년 만에 폐지되면서 경찰의 책임수사를 표방하는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출범했다. 경찰 수사 기능만을 모아 경찰청에 국수본을 신설하고, 국수본부장을 경찰청장(치안총감) 다음으로 높은 치안정감 계급으로 두면서 경찰청장이 수사사건에 구체적으로 수사지휘를 못하도록 한 것은 수사 독립성을 확보하고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한국형 FBI(미국 연방수사국)’로 불리며 야심차게 첫발을 뗀 국수본이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 임직원 및 공직자 부동산 투기 의혹,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 굵직한 사건에서 존재감을 좀처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수본 출범 후 지난 1년 동안의 성과와 한계, 문제점을 6일 짚어봤다.‘부동산 투기’는 용두사미…檢에 주도권 뺏긴 ‘대장동’ 경찰청은 이날 국수본의 주요 성과로 ▲보이스피싱 등 서민경제 침해범죄 ▲부동산 투기 등 부패범죄 ▲성폭력·사이버도박 ▲생활폭력·조직폭력 범죄 등에 대한 특별단속을 28회 실시해 범죄자 19만 363명을 검거(8929명 구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실적과는 별개로 경찰 안팎에서는 여전히 국수본의 역할과 존재감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이 터지자 “공공기관 직원과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은 국가수사본부의 수사역량을 검증받는 첫 번째 시험대”라며 “우리 사회의 공정을 해치고 공직사회를 부패시키는 투기 행위를 반드시 잡아달라”고 국수본에 힘을 실었다. 이후 국수본을 중심으로 금융위원회·국세청·금융감독원·한국부동산원과 1560명 규모의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합수본)가 꾸려졌다. 합수본은 최근까지 부동산 투기사범 6038명을 검거(62명 구속)했다. 하지만 정작 수사대상에 올랐던 국회의원 가운데 투기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송치된 국회의원은 3명뿐이었다. 일각에서 정치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국수본 관계자는 “국회 동의를 얻어 현직 의원을 구속한 사례는 흔치 않다”며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건) 피의사실 공표죄라는 법제도상 한계 때문이지 여야 동일 기준 수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소수의 민간사업자가 광범위한 정·관계 로비 활동을 통해 개발이익 상당 부분을 차지한 ‘대장동 사건’ 역시 경찰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해 5개월이나 내사했지만 수사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검찰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경찰은 이 사건을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가 아닌 경기남부청에 배당해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국수본이 경찰청장에게 부담이 될 만한 사건은 맡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수본 관계자는 이에 대해서도 “인지 및 특수수사에도 충분한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중요사건은 직접 지휘해서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경찰, 수사종결권 가졌지만 검찰 보완수사 요구 여전 국수본 출범에 앞서 경찰 수사체계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수사권 조정 법안 시행이다. 이 법 시행으로 경찰은 대부분의 사건에서 직접 수사권을 갖게 됐다. 국수본은 수사심사관·책임수사지도관·경찰수사심의위원회 등 3중 심사체계 구축, 수사부서 과·팀장 지휘 강화 등을 통해 책임수사 완결성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송치·송부한 사건에 대해 검사가 보완수사 요구 및 재수사 요청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왕왕 발생하자 수사관들은 여전히 검찰이 사실상 수사지휘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경기 지역의 한 수사 담당 경찰관은 “보완수사 요구 내용을 보면 피의자에 대한 형벌의 정도를 정하기 위해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등 이것저것 묻는데, 이런 양형 참작 사유를 판단하는 것은 검사가 할 일”이라며 “검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본인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이 처리한 사건에 대한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 및 재수사·시정조치 요청 비중은 지난 2020년 4.6%에서 지난해 8.0%로 3.4%포인트 늘었다. 특히 지난해 경찰이 송치한 사건(혐의가 인정된다고 사건) 74만 1364건 중 보완수사 요구가 들어온 것은 8만 523건으로 전체의 10.9%나 됐다. 지난해 불송치 사건(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건)에 대한 재수사 요청은 전체 38만 9178건 가운데 1만 3659건(3.5%)이었다. 검찰에서도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경 지검의 일선 검사는 “수사를 할 땐 정말로 죄가 돼 처벌이 될지 여부가 중요한데, 경찰이 송부한 기록을 보면 그런 법리적 판단이 미비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검찰 수사 과정에서 6대 범죄 외에 다른 혐의도 파악할 때가 있는데 여죄를 캐지 못하는 상황도 있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불송치 사건 9일 더 늦어져…수사관도 시민도 불만족 인력도, 역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경찰이 수사할 사건만 늘어나 사건 처리 기간도 전보다 늘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한테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현 송치결정 사건) 1건당 평균 처리 기간은 지난 2020년 50.6일에서 지난해 52.6일로 늘었다. 그러나 경찰이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현 불송치결정 사건) 1건당 평균 처리 기간은 지난 2020년 59.6일에서 지난해 69.8일로 더욱 늘었다. 검사로부터 보완수사 요구를 받을 경우 다시 송치하는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사건 처리가 무한정 늘어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증대된 업무량에 따른 적절한 보상은 필수다. 하지만 일선 수사관 입장에선 업무량만 늘었을 뿐 근속승진(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 승진) 기간 단축과 같은 혜택은 없다. 더군다나 같은 수사부서라고 하더라도 인지수사(고소·고발 없이 첩보 등을 통해 범죄혐의를 포착해서 개시하는 수사)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승진 기회가 주어지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자연히 일선에서는 수사부서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방경찰청 수사과장과 경찰서장 등을 지낸 박상융(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지금 국수본에 서무 업무를 담당하는 내근 인력이 너무 많다”면서 “국수본과 시·도경찰청 등 상급 경찰관서에 직접 수사부서를 많이 신설하면서 일선에서 근무하던 수사관들을 차출해 경찰서의 수사인력 부족 문제는 심화됐고, 그 결과로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고소·고발사건 처리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소·고발 남용을 막겠다며 반려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제기도 적지 않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민은 경찰에 고소할 수밖에 없는데, 전권을 가진 경찰이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수사 독립성 외쳤지만…예산·인사는 여전히 청장 권한 국수본부장이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인사권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수본은 경찰청장이 수장으로 있는 경찰청 조직 중 하나에 불과하다. 수사관 인력 충원 계획, 예산 편성 등에서 독자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총경 보직 추천권과 경정 이하 인사권 일부를 본부장에 위임했으나 실질적인 인사권은 여전히 청장이 쥐고 있다. 경찰청은 살인 등 중요사건에 대해 관내 경찰서장이 수사 진행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결재하도록 하는 등 경찰서장의 역할도 중요해졌지만 역량은 천차만별이다. 비수사 부서에 오래 있으면서 수사 경험이 없는 경찰서장도 있는데, 그렇다고 다양한 경찰 기능 중 수사만 강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도권의 한 경찰서장은 “수사권 조정으로 이전에 비해 서장에게 수사 지휘를 많이 하라고 독려하는 분위기이지만 모든 지휘관들의 수사 역량이 숙성됐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경찰의 수사 책임이 커졌다면 그만큼 지휘관의 수사 교육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수본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엔 비리·부패 척결과 같은 특수수사를 강화해야 하지만, 검찰이 6대 중요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를 맡은 만큼 경찰이 잘할 수 있는 민생사건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찰개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양홍석(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경찰의 특수수사 영역은 조직과 인력 면에서 검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수사경험도 축적돼 있지 않다”면서 “사기나 보이스피싱과 같은 금융범죄는 경찰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훈련을 통해 수사역량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수본은 올해 경제팀·사이버·심사인력 등 수사관 443명을 늘리고, 예산도 전년 대비 11.8% 늘어난 3387억원을 배정했다. 또 민생사건 수사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존의 경제·지능·사이버팀을 통합수사팀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각 시·도경찰청 수사부서는 발생 빈도는 낮지만 고도의 전문지식과 수사기법을 필요로 하는 범죄와 피해자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사기, 금융범죄 등 지능범죄에 집중 대응할 방침이다.
  • [문화마당] 서명본전을 기다리며/손택수 시인·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문화마당] 서명본전을 기다리며/손택수 시인·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한 해 동안 쌓인 책이 채석강 퇴적층이 되었다. 서가를 넘쳐난 책들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뻗쳐올라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의식 중의 하나가 이 퇴적층을 깎아 내는 일이다. 나는 변산반도를 휘감는 파도처럼 켜켜이 쌓인 층층을 남독하는 것으로 새해맞이 여행을 대신한다. 가장 많이 정체된 잡지류가 제일 먼저 뚫리고, 다음으로 출판사 증정본들이 관심사의 유무에 따라 분류된다. 마지막은 곤혹스러운 선택의 시간이다. 저자의 친필 서명본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남기고 버릴 것인가. 출산의 기쁨을 지인들과 먼저 나누고자 정갈한 마음으로 돌에 새기듯이 집중을 했을 작가들을 생각하면 저마다의 고유한 필체가 뿜어내는 숨결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담백한 서체부터 짧은 인사말을 겸하거나 낙관을 곁들이고 그림을 더해 저마다의 개성을 뿜어낸다. 이해인 수녀님의 서명본은 문방구의 반짝이 스티커들과 사인펜 꽃그림까지 어우러져서 그대로 하나의 장르라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자료적 가치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한다. 쉽지 않다. 여기에 작가들과의 친분 관계가 더해지면 장서인을 남길 책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마저 쉽지 않다. 과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그렇지 않아도 좁은 집안이 온통 책무덤이 되고 말 것이다. 문단 말석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품을 수 있는 평수의 한계가 분명해서 삼엄하고 강파른 칼날을 휘둘러야만 했다. 이사가 잦던 시절 내게 미니멀리즘은 유행하는 소비 패턴이 아니라 숨 쉴 틈을 마련하고자 하는 애면글면의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버린 책을 다시 구입해야 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한번은 헌책방에서 자신의 친필 서명본을 발견한 후배 소설가로부터 항의를 받고 적잖이 난감했던 일도 있다. 창작촌과 카페를 작업실로 하여 유랑하던 시절이었으나 할 말이 없었다. 작품집을 내기 위해 겪었을 인고의 시간을 모르지 않았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날 밥과 술을 사며 겨우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그 뒤로 내 이름이 있는 서명본과 독하게 이별을 결심했을 때는 꾀를 내서 서명이 있는 내지를 잘라내거나 서명 부분만을 가위로 오려 내어서 파기하는 버릇을 들였다. 짓궂은 독자들이 헌책방에서 구한 서명본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봉변을 당하는 일도 간혹 일어난다고 하니 책에 상처를 내는 곤혹 따위는 어서 떨쳐 버려야 했다. 그러나 이 잔꾀가 어쩐지 떳떳치 못하고 찜찜했다. 명색이 간서치를 꿈꾸면서 책에 상처까지 내며 지켜야 할 명예란 게 무엇인가. 몇 해 전부터는 아예 내지에 따로 포스트잇처럼 별지를 붙여서 책을 손상하지 않고 떼어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한 책들이 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민망한 일이었다. 헌책방과 고서점에서 친필 서명본은 환영을 받는다. 일본의 수집가들에겐 곱절로 유통된다고 한다. 인사동의 근대서지 전문가들도 그 가치를 인정한다. 저자의 친필 서명본일수록 폐지가 될 운명을 벗어나 새 주인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시절 인연이 다하여 떠나보낸 책들이 또 다른 공유의 장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야속한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올해는 비난을 감수하고 책에 상처를 내지 않았다. 눈 밝은 누군가 수집한 서명본전을 기획해 볼 법도 하다.
  • [정은귀의 詩와 視線] 사랑하지 말라는 사랑/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정은귀의 詩와 視線] 사랑하지 말라는 사랑/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나 바라노니 내 아이가절대로 사랑하지 않기를.나 바라노니 내 아이가절대로 사랑하지 않기를.사랑은 널 다치게 할 테니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랭스턴 휴스 ‘사랑을 탄식함’에서 첫 시작이 중요하다며 새해 첫날 만보 걷기를 했고 뻣뻣한 몸을 늘리며 요가를 했다. 다음날엔 시를 쓰며 보람된 새해 아침을 축원했다. 칼럼도 첫 글이 중요하다며 희망의 말로 독자들을 만나려고 많은 시들을 미리 골라 놓았다. 시의 바다를 유영하며 글을 쓰려는 찰나, 전화를 받았다. 투병 중이던 이모님이 갑자기 나빠지셨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은 준비 안 된 시간에 들이닥친다. 나를 특히 아껴 주신 분과의 영별은 상상 너머의 일. 희망의 시들이 낯설다. 눈물 그렁그렁, 간신히 마음 다잡아 컴퓨터 앞에 앉는다. 며칠 전 뵐 때 정신 혼곤한 중에 이모님 하신 말씀. “은귀야, 젊을 때 진 너무 빼지 마라.” 랭스턴 휴스(1901~1967)의 이 삐딱한 시는 그 황망 중에 생각난 시다. 휴스는 미국의 남성 시인인데, 이 시는 사랑에 빠졌다가 배신당한 여성의 목소리를 취한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세워 시를 쓰는 시인들이 많기에 여성 화자의 등장이 놀랄 일은 아니다. 믿었던 사랑을 잃고 상심한 화자는 강으로 간다. 강가에서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은 위스키와 같고 적포도주와 같기에 행복하려면 늘 사랑에 빠져 있어야 한다니, 그건 불가능한 일. 화자는 높은 탑에 올라가 자기를 배신하고 떠난 남자를 생각한다. 시는 “바보 같은 나, 그만 떨어져야지”로 끝난다. 통속소설 같은 비극적인 결말! 사랑? 해? 말아? 아니, 해야지, 사랑 안 하고 어찌 사는가!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사랑을 고상하고 아름답게만 다루는 습속을 깨고 싶었다 한다. 엄마는 딸에게 사랑은 아프고 슬픈 일이라는 걸 미리 알려 주고자 한다. 살며 사랑하는 일은 늘 어렵다. 환희와 아픔, 믿음과 배반, 숭고와 통속, 지리멸렬이 함께하는 일이다. 휴스의 독특한 사랑 시는 이모님이 병중에서 자기 생을 돌아보며 내게 전하신 간곡한 사랑의 메시지와 닮은 ‘살핌’의 시선이다. 늘 최선을 다하신 결곡한 분이 “살아 보니 아무것 아니더라. 너무 애쓰지 말고 너를 아껴라” 당부하셨다. 시인의 시는 믿음이 망가진 세상의 통속성을, 이모님 말씀은 생의 필멸을 직시하게 한다.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게 된 눈이다. 눈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우리를 깨우치는 시선이다. 죽을 것 같던 시의 화자는 아마도 죽지 않고 눈물 쓱 닦고 다시 씩씩하게 잘 살았을 것 같다. 사랑 별거 아니야, 하며. 팬데믹 시절의 병동,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모님은 어쩔 줄 몰라 서성대는 자손들의 당혹을 오히려 달래 주신다. 괜찮아. 겁먹지 마. 오는 일은 굳건히 맞으면 돼. 별일 아니야. 너무 진 빼지 말고 살아. 너무 진 빼지 말고 살아.
  • “버리지 말고 익명으로 출산하세요”…日 비밀 출산 논란

    “버리지 말고 익명으로 출산하세요”…日 비밀 출산 논란

    일본의 한 병원에서 고립된 임산부들이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제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유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름 적절한 제도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태어난 아이의 호적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5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구마모토시에 있는 지케이병원은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12월 10대 여성이 ‘내밀 출산’을 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누구에게도 신원을 밝히지 않고 비밀리에 아이를 낳는 것을 내밀 출산이라고 한다. 이 병원은 2007년부터 키울 수 없는 신생아를 맡아주는 ‘황새의 요람’(아기 우체통)을 운영해왔다. 이어 2019년에는 내밀 출산을 독자적으로 도입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홀로 출산하다가 아이를 유기하는 등의 문제를 막기 위해서였다.  익명으로 출산하고 싶은 여성은 병원의 신생아 상담실장에만 신원을 밝히면 된다. 여성이 출산을 하면 병원 측이 대리인 자격으로 신생아의 출생 신고를 하게 된다. 아이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병원 금고에 보관된 어머니의 건강보험증 사본 등을 통해 본인 출생과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내밀 출산을 한 이 여성은 지난해 11월 중순 이 병원에 “출산을 부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며 이메일로 상담을 의뢰했다. 이 여성은 12월 내원했고 상담실장 한 명에게만 자신의 건강보험증 사본을 제출하며 개인 정보를 밝혔다. 이후 다른 병원 직원들은 이 여성의 신원을 모르는 상태에서 출산을 도왔다. 이 여성은 출산 후 태어난 아이의 특별입양을 신청한 뒤 아이를 두고 퇴원했다.  병원 측은 “아기와 어머니 등이 힘든 경험을 하는 고립 출산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며 내밀 출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호적법상 출생 신고를 할 때 유기된 아기의 경우 부모가 누군지 알면 이름을 기재하도록 돼 있어 병원 측의 방식은 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마모토시는 이번 일에 대해 “적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야마가타 후미하루 간사이대 교수(어린이가정복지학)는 요미우리신문에 “내밀 출산은 산모의 안전이 보증된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현행법상 문제가 있는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 “가입은 쉬운데 해지는 어렵네”… 디지털 구독서비스 손본다

    “가입은 쉬운데 해지는 어렵네”… 디지털 구독서비스 손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넷플릭스·웨이브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멜론·지니 등 음원서비스의 까다로운 해지 절차를 손보기로 했다. OTT 시장은 최근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며 급팽창했다. 하지만 이용 해지가 까다롭고, 파격적인 할인을 내세워 해지하려는 사람을 붙잡는 방식으로 기존 구독자를 차별해 고객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공정위는 4일 ‘2022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의 첫 번째 과제로 ‘디지털 경제에서의 경쟁 촉진 및 소비자 권익증진’을 선정했다. 공정위는 OTT·음원서비스 등 디지털 구독서비스의 까다로운 이용 해지 절차와 과도한 취소 수수료 등의 실태를 파악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입 절차는 손쉽게 해 놓고 해지 절차는 까다롭게 만들어 계속 사용을 유도하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또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 지정 제도를 동일인의 관련자 범위를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제2의 김범석’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앞서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미국 국적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동일인 지정을 피하면서 ‘외국인 특혜’라는 의혹을 받았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지난해 5월 1일 지정 이후 쿠팡의 (지분구조 변화 등) 사정이 달라졌는지와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올해 5월 외국인 총수 지정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 생존욕구 큰 X세대가 뛴다… “은퇴 후 30년 버티려 내 삶에 재투자”

    생존욕구 큰 X세대가 뛴다… “은퇴 후 30년 버티려 내 삶에 재투자”

    치킨집, 편의점, 커피숍 창업으로 이어졌던 중년의 은퇴 공식이 바뀌고 있다. 기존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중년인 X세대가 40~50대로 진입하면서다. X세대는 인류 역사상 어떤 세대보다 젊고, 덜 권위적이며, 소비력이 좋은 노년층이 될 예정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랐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특성도 발견된다. 이들이 경제적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인생의 후반을 ‘은퇴’가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보는 이유다. “평생을 오피스워커로 살아왔으니 남은 후반부는 다른 칼라(collar)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구독자 3만 4700여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50대 몸짱 TV’의 운영자 오세욱(52)씨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40~50대 맞춤 운동법을 소개하는 전업 유튜버가 됐다. 아내는 그의 도전을 내켜 하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수익’ 대신 결국 그의 ‘꿈’을 지지하기로 했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삼성전자 연구원, 미래전략실을 거쳐 도이치은행, 다이와증권 애널리스트, 외식업체 재무 담당 임원을 지낸 오씨는 인생 후반을 운동을 통해 느꼈던 삶의 활력과 만족감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오씨는 20~30대를 위한 운동법은 많지만 정작 중장년층을 위한 콘텐츠가 적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2년 전부터 스마트폰 카메라로 중년층을 위한 운동 팁들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기세를 몰아 지난해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운동법을 책으로 출간했다. 최근에는 트레이너 자격증도 땄다. 오씨는 “예전이었으면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나이인 50이 돼도 아직 살날이 살아온 만큼 남아 있다”면서 “건강만 있으면 (X세대는) 지금도 청년이고 지금부터 새로운 인생”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오씨처럼 모든 X세대가 자신만만한 노후를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경민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는 “40대는 자녀 양육 시기가 길어지면서 70세까지는 현업에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세대지만 조직에서는 큰 기대를 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조직이든 조직 밖이든 오랫동안 생존해야 한다는 욕구가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천편일률적인 기성세대의 은퇴법과 모습은 달라도 생존에 대한 욕구 자체는 그 어느 세대보다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이들의 생존 욕구는 소비로도 나타난다. 신한카드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온라인 교육 플랫폼 ‘클래스101’ 등 5개 업종에서 20대 여성 비중은 2년간 16.1% 감소했지만 40대 여성은 7.9% 늘었다. 도서 소비도 활발하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2010년 20%를 차지했던 40대 독자 비중은 X세대가 40대에 대부분 진입한 2019년 34%까지 올랐다. 특히 신기술을 배우려는 40대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지난해 산업계를 강타한 ‘메타버스’ 관련 도서 연령대별 구매 비중은 X세대가 43.3%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윗세대야 30년 열심히 일해서 10년 노후 준비면 됐겠지만 지금은 은퇴 후에도 30년을 더 살아야 하잖아요. 살아남으려면 ‘존버’(최대한 버틴다는 뜻의 은어)하면서 공부해야죠.” 유통업계 대기업에서 팀장급으로 일하는 임주완(43·가명)씨는 퇴직 후 강단에 서는 것이 꿈이다. 임씨는 내년부터 모아 둔 적금을 깨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다. 임씨는 향후 남은 5년을 “내 인생 마지막 베팅의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50대 초중반이 대표로 내려오고 80년대생 임원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면서 “임원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크게 없고 이대로 회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 (직장에서는) 길어 봐야 최대 5년이지 않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2년 전부터 좋아하던 골프 라운딩 횟수도 줄이고 주말마다 마케팅 특강을 나가면서 강의 경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는 “대학 때 IMF를 겪어서 그런지 특히 경제적으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존재하는 것 같다”면서 “석사 학위를 따면서 그랜저 한 대 값(약 3500만원)이 깨졌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박사 과정 역시)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X세대는 젊은이보다 중년과 노인이 주류인 세상에서 노인이 되는 첫 세대다. 책 ‘영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의 저자 이선미씨는“미래는 더이상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닌 주류가 될 중노년 세대와 젊은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됐다”면서 “거대한 인구수를 자랑하는 X세대가 활력 있는 새로운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중학교 체육수업서 백골이?...부실공사 탄로나자 직원 살해해 운동장에 매립

    중학교 체육수업서 백골이?...부실공사 탄로나자 직원 살해해 운동장에 매립

    부실공사 사실이 탄로 나자 이를 고발한 직원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학교 운동장에 매장한 피의자 2명이 사건 16년 만에 붙잡혔다. 이들은 자신들이 담당했던 중학교 운동장 트랙 건설 사업 중 부실 공사 사실을 눈치 챈 직원에게 악감정을 품고 다량의 마취약을 먹인 뒤 살해해 매장한 혐의다. 중국 후난성 인민검찰청은 지난 2003년 발생한 ‘운동장 시신매장 사건’에 대해 당시 400미터 트랙 건축을 담당했던 두샤핑, 뤄광충 등 두 사람을 고의 살인죄 혐의로 기소했다고 4일 이같이 밝혔다. 관할 검찰 측은 피의자들에 대해 피해자 덩스핑을 잔인하게 살해해 학교 운동장 아래 매립한 혐의로 고의 살인죄를 구형했다. 사건은 2003년 후난성 신황현(新晃县) 소재의 제1중학교에서 살인을 모의한 두 씨와 뤄 씨 등 두 사람의 계획적 살인 행위로 시작됐다.검찰 조사 결과, 피의자 두샤핑은 당시 신황현 제1중학교 운동장에 400미터 규모의 육상 트랙 공사를 수주, 이 과정에서 굴착 공사를 담당했던 또 다른 피의자 뤄 씨를 알게 된다. 당시 건설 대금 중 일부를 불법 은닉했던 두 씨는 사업에 관리 감독자로 참여했던 피해자 덩 씨에게 악감정을 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두 씨가 공사 대금의 상당량을 불법 은닉, 부실공사로 이어지자 당시 학교 소속의 행정 직원이었던 피해자 덩 씨가 이를 학교 측에 고발하고 우 씨의 공사를 막았다는 것이 두 씨가 잔인한 살인을 계획했던 결정적인 이유였던 셈이다. 다수의 증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무렵 두 씨는 피해자의 고발을 계기로 피해자 덩 씨를 죽이고 싶다는 등의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는 등 보복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잔인한 시체 매장 사건은 2003년 1월 22일 제1중학교 트랙 공사가 무려 2년 만에 완공되기까지 단 10일을 남겨둔 날 발생했다. 당시 피해자 덩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거주, 운동장 트랙 건설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공사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는 사건 당일 낮 12시가 가까워지자 사무실에서 장기를 두며 점심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바로 이때 사무실로 피의자 두 씨와 뤄 씨 두 사람이 등장했다. 수사 결과, 피의자들은 다량의 마취약을 물에 탄 뒤 이를 피해자에게 건내 마시도록 강요했다. 약이 든 물을 마신 피해자는 곧장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피의자들은 피해자의 얼굴을 청테이프로 감고, 손과 발은 비닐봉지에 넣어 움직일 수 없도록 했다. 또, 피해자의 머리를 망치로 수차례 가격해 살해했다.사건 당일 밤 11시 무렵, 피의자들은 어둠을 틈타 피해자의 시체를 운동장 내 아직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활주로 가장 큰 구덩이에 매장했다. 간이 매장한 시체 위에는 돌을 올려 시체를 감췄고, 이튿날 다시 사건 현장을 찾은 피의자들은 활주로에 묻힌 시신 구덩이를 더 깊이 파는 공사를 진행했다. 이 잔인한 살해 사건은 지난 2019년 6월 19일 우연한 계기에 시작된 운동장 트랙 공사를 하던 중 백골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외부에 처음 알려졌다. 피해자가 무고하게 살해돼 학교 운동장에 매립된 지 무려 16년의 일이었다.수사 결과, 피해자의 시신은 매장된 지 16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시신은 당시 ‘신황현 제1중학교’라는 학교에서 제공한 운동복을 입은 상태였다. 경찰은 현장에서 시신을 감쌌던 테이프와 비닐봉지 등을 발견하고, DNA 감정으로 사망자의 신원이 당시 실종 신고가 있었던 덩 씨로 확정했다. 시신이 주요 사인은 두개골에 심각한 골절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유골에서는 살해당하기 직전 다량의 마취약을 투약됐을 것으로 보이는 마취 성분의 약품이 검출됐다. 한편, 이번 사건을 담당한 검찰 측은 두 씨와 뤄 씨 등 일당에 대해 최소 24년 이상의 유기 징역형을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힌 상태다.
  • 정창욱 셰프, 음주운전으로 벌금 1500만원…면허취소 수준

    정창욱 셰프, 음주운전으로 벌금 1500만원…면허취소 수준

    유명 셰프 정창욱씨가 음주운전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7단독 신세아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약식 기소된 셰프 정씨에게 지난해 6월 벌금 1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정씨는 지난해 5월 9일 새벽 서울 중구의 한 도로에서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167%로 면허취소 기준(0.08%)을 넘은 상태였다. 정씨는 2009년에도 같은 혐의로 적발된 사례가 있다. 정씨가 정식 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약식명령은 그대로 확정됐다. 재일교포 4세인 정씨는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현재 서울 중구 소재 식당 금산제면소 셰프로 있으며, 구독자 13만여명의 요리 유튜브 채널 ‘정창욱의 오늘의 요리’도 운영하고 있다.
  • “해지 안 하면 3개월 100원”… 공정위, OTT 까다로운 해지 절차 손본다

    “해지 안 하면 3개월 100원”… 공정위, OTT 까다로운 해지 절차 손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넷플릭스·웨이브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멜론·지니 등 음원서비스의 까다로운 해지 절차를 손보기로 했다. OTT 시장은 최근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며 급팽창했다. 하지만 이용 해지가 까다롭고, 파격적인 할인을 내세워 해지하려는 사람을 붙잡는 방식으로 기존 구독자를 차별해 고객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공정위는 4일 ‘2022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의 첫 번째 과제로 ‘디지털 경제에서의 경쟁 촉진 및 소비자 권익증진’을 선정했다. 공정위는 OTT·음원서비스 등 디지털 구독서비스의 까다로운 이용 해지 절차와 과도한 취소 수수료 등의 실태를 파악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입 절차는 손쉽게 해 놓고 해지 절차는 까다롭게 만들어 계속 사용을 유도하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또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 지정 제도를 동일인의 관련자 범위를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제2의 김범석’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앞서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미국 국적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동일인 지정을 피하면서 ‘외국인 특혜’라는 의혹을 받았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지난해 5월 1일 지정 이후 쿠팡의 (지분구조 변화 등) 사정이 달라졌는지와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올해 5월 외국인 총수 지정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공무원노조에 두번 ‘백기’ 든 전북도의회

    지난해 송지용 의장의 폭언·갑질로 물의를 빚었던 전북도의회가 전라북도공무원노조와 갈등을 빚다가 두차례나 ‘백기’를 들고 고개를 숙여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송 의장은 지난해 11월 김인태 당시 사무처장에게 폭언·갑질을 한 사실을 부인했다가 공무원노조가 반발하자 뒤늦게 사과해 체면을 구겼다. 최근에는 도의회 6급 직원 3명을 집행부로 전출시키려다가 노조의 항의에 굴복, 이를 철회하는 등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송 의장과 공무원노조간 갈등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 의장은 지난해 11월 10일 오후 당시 김인태 의회 사무처장을 의장실로 불러 폭언과 갑질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송 의장은 의장실 문이 열려진 상태에서 고함을 지르면서 욕설과 폭언을 퍼부어 밖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까지 이를 모두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김 처장과 상가에 동행했던 의장 비서실장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인사조치까지 단행했다. 송 의장은 직원 상가 조문 과정에서 의전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 의장의 ‘갑질 난동’은 공무원 노조의 성명서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북도공무원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송 의장은 갑질 피해 공무원에게 즉각 사과하고, 도의회는 갑질행위를 철저히 조사해 시정하라”고 촉구했다. 김 처장도 송 의장의 폭언을 국가인권위에 신고하는 등 강력 대처하고 나섰다. 이에 송 의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폭언·갑질 행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공무원노조가 전국 공무원노조와 연합해 촛불시위를 하겠다고 성명서를 발표하자 하룻만에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정치인으로서 가장 금기시 해야 할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다. 이후 송 의장과 공무원노조는 지난해 12월 13일 ‘갑질 근절을 위한 상호실천협약’을 하고 사태가 수습되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전북도의회가 6급 직원 3명을 본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집행부로 전출시키기로 결정해 2차 피해 논란이 불거졌다. 공무원노조는 일방적인 6급 직원 전출 명령은 송 의장의 폭언·갑질 사건과 연속 선상에서 단행된 인사만행으로 보았다. 공무원노조가 3일 ‘직원 부당 전출 인사만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예고하자 전북도의회는 다시 한번 꼬리를 내리고 전출인사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전북도의회 총무담당관이 이날 오전 노조를 찾아가 전출인사를 원위치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하자 노조는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송 의장의 폭언·갑질 사과에 이어 전출인사 철회 사건까지 불거지자 전북도의회의 빈약한 행정능력과 자질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전북도와 도의회 직원들은 “오는 13일부터 지방의회의 인사권이 독립되면 제왕적 권한을 남용하는 사태가 줄을 이을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있다. 전북도의회 공무원노조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의장단의 대처에 귀추가 주목된다. 전북도의회 공무원노조는 “전북도의회가 노조와 상호존중 실천협약을 한 지 20일이 지났음에도 의장의 독단적인 인사 근절을 위한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의회사무처 노조지회에 의견조차 묻지 않고 있다”면서 “이같은 행위가 지속될 경우 상호존중 협약이 파기된 것으로 보고 갑질신고는 물론 강력한 단체행동도 불사할 것일 명백히 밝힌다”고 예고했다.
  • [인사]

    ■서울신문 ◇승진 <국장급> △미디어전략실장 이경숙△편집국 사회2부 김상화△사업국 부국장 겸 문화사업부장 이철행 <부국장급>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전경하△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1부장 김진성△편집1부 김인석△사회2부 신동원△비주얼뉴스부장 이다현△독자서비스국 공보전략2부장 김응록△신문유통부장 김성수△제작국 윤전1부 CTP운용팀장 정광수 <부장급> △편집국 편집1부 김경희△편집2부 홍혜정△사회2부 남인우△문화부장 홍지민△비주얼뉴스부 차장 강미란△독자서비스국 공보전략1부 차장 박근성△신문유통부 신명식△광고국 영업지원팀장 김선희△사업국 공공사업부 차장 최영철△공공사업부 정대수△제작국 제작지원팀 구성숙△윤전1부 최완순△윤전2부 양용모 <차장급> △경영기획실 기획부 성민수△편집국 편집2부 정재훈 신혜원△정치부 황비웅△디지털미디어센터 온라인뉴스부 김지수△디지털비즈니스부 박혜영△웹제작부 정지운 △독자서비스국 공보전략2부 김생호△신문유통부 이준한△광고국 영업지원팀 나경은△시설안전관리국 전기설비운용부 조강욱△제작국 윤전2부 이동권 ◇전보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진경호△편집국 편집2부장 이건규△사회2부(제주주재) 강동삼△시설안전관리국 전기설비운용부장 조강욱 ■법무부 ◇3급(부이사관) 임용 △인권정책과장 정소연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장 박선미△한중관계사연구소장 김인희△출판팀장 김경재 ■EBS △이사회 사무국장 최남숙△미래교육기획부장 이상호△교재기획출판부장 장대성△대외협력부장 최권용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이대혁△영업관리팀장(광고데스크) 이제환△공공비즈팀장 윤영원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권숙인△사회과학대 교무부학장 이은주△사회과학대 학생부학장 이정민△사회과학대 기획부학장 김용균△의과대학장 김정은△의과대학 교무부학장 김홍빈△의과대학 학생부학장 정호경△의과대학 연구부학장 신현우△의과대학 기획부학장 이규언△보건대학원장 정효지△보건대학원 교무부원장 고광표△보건대학원 학생부원장 조영태
  • 삼성 차세대 TV 3종 공개… ‘맞춤형 스크린 시대’ 연다

    삼성 차세대 TV 3종 공개… ‘맞춤형 스크린 시대’ 연다

    ‘네오 QLED’ 빛의 밝기 4배 향상마이크로 LED 110인치 선보여‘라이프스타일’ 사용자 시력 보호 업계 최대 기대작 ‘QD-OLED TV’QLED 판매 위해 올 상반기 출시삼성전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전·IT 전시회 (CES 2022)에서 선보일 TV 신제품 라인을 3일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주력 프리미엄 TV ‘네오 QLED’ 신형을 중심으로 마이크로 LED와 라이프스타일 TV 등의 신제품을 통해 ‘맞춤형 스크린 시대’를 열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QD(퀀텀닷)-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는 당분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CES 개막을 하루 앞둔 4일부터 전시장을 채울 삼성전자의 주력 TV인 네오 QLED 신제품은 이전 모델보다 더욱 진화했다. 2022년형 네오 QLED는 삼성 독자 화질 엔진인 ‘네오 퀀텀 프로세서’를 개선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도입했다. TV 패널 대비 관련 기술을 개선해 빛의 밝기를 기존보다 4배 향상된 1만 6384단계까지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영상 속 사물의 형태와 표면을 분석해 그 결과에 따라 광원을 최적화하고, 배경과 대조되는 대상은 자동으로 화질을 대비해 더욱 선명한 색감과 입체감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마이크로 LED TV는 110인치와 101인치, 89인치 3가지 신규 모델을 CES에서 처음 공개한다. 마이크로 LED는 삼성전자 TV 라인업 중 최상위 제품으로,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LED가 백라이트나 컬러 필터 없이 스스로 빛과 색을 낸다. 기존 제품 대비 화질과 색상, 선명도, 명암 등에서 진일보한 표현력을 자랑한다. 디자인이 좋아 고객 수요가 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TV 제품군에는 화면에 빛 반사를 방지하는 기술을 새롭게 적용해 편안한 시청 환경 제공과 함께 사용자의 시력 보호까지 고려했다. 사실 업계에서 관심이 높았던 삼성전자의 기대작은 QD(퀀텀닷)-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활용한 ‘QD-TV’였다. 지난해 11월 삼성디스플레이가 처음 출하한 QD-OLED 패널은 OLED 패널에 나노 크기의 반도체 결정 물질인 ‘퀀텀닷’ 컬러 필터를 입힌 것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디스플레이 분야 역점 사업으로 꼽았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CES에서 시제품이 공개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삼성전자는 QD-TV 비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QLED TV 시리즈 판매에 주력하기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막 생산을 시작한 새 패널로 만든 TV를 전면에 내세우면 시장에서는 현재 주력 제품군이 ‘구형 모델’로 인식되면서 판매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QD-TV 출시는 LG전자가 글로벌 시장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는 OLED TV 분야에 삼성전자가 본격 경쟁에 뛰어드는 시작이 될 제품으로, 올해 상반기 중 출시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 홍콩 민주매체 줄폐간… ‘친중’ 홍콩 의회선 中에 충성 맹세

    홍콩 민주매체 줄폐간… ‘친중’ 홍콩 의회선 中에 충성 맹세

    새해부터 홍콩에서 극과 극의 풍경이 펼쳐졌다. 빈과일보와 입장신문 등 홍콩 민주진영 매체가 잇따라 폐간한 데 이어 인터넷 언론사인 중신문(시티즌 뉴스)마저 스스로 문을 닫았다. 의회(입법회)에 모인 친중 정치인들은 중국 정부에 충성을 맹세했다. 2019년 홍콩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놀란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한 지 1년 반 만에 나타난 모습이다. ‘홍콩의 중국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정부의 언론 탄압에 민주화 세력의 목소리를 홍콩 안팎에 전달할 통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중신문은 지난 2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고별사를 통해 “무거운 마음으로 폐간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중신문은 “2년 사이 사회가 급변하고 언론의 생존 환경이 악화해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이상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면서 “우리 작은 배는 거친 풍랑 속에 선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폐간 배경을 밝혔다. 중신문은 2017년 1월 크리스 융 전 홍콩기자협회장 등 언론인들과 언론계 학자들 10명이 의기투합해 창간됐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기부금으로 운영됐으며 지난해 6월 홍콩에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뒤 탄압을 받은 기자들이 합류했다. 중신문은 페이스북을 통해 “당파와 무관하게 홍콩을 사랑하며 자유와 개방, 다원주의와 포용 등 홍콩의 핵심 가치를 유지한다”고 소개했다. 홍콩 보안국은 지난해 10월 중신문이 “국가보안법 시행에 따라 당국이 홍콩의 언론 자유 보장을 거부했다고 보도하며 독자들을 오도했다”고 주장하는 등 중신문에 대해서도 압박을 가했다. 이로써 빈과일보(애플 데일리, 지난해 6월), 입장신문(지난해 12월 29일)에 이어 불과 6개월 사이에 홍콩 민주 진영 언론사 세 곳이 문을 닫았다. 세트릭 알비아니 국경없는기자회 동아시아지국장은 “중신문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세 번째 독립언론 희생양”이라면서 “홍콩의 언론 자유가 도마에 올랐다”고 비판했다.이날 홍콩 입법회에서는 지난달 19일 선거에서 뽑힌 90명의 의원이 충성 선서를 했다. 홍콩 정부에 충성과 책임을 다한다는 내용이다. 선서 이후 당국이 진실성을 의심하면 즉시 자격이 박탈되고 향후 5년간 공직에 출마할 수 없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주재한 선서식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2016년 충성 선서식에서 민주 진영 의원들이 ‘홍콩은 중국은 아니다’ 등의 현수막을 흔들며 반발해 6명이 의원 자격을 박탈당한 것과 대조적이다.
  • “거친 풍랑 속 안전 보장할 수 없어” 홍콩 민주진영 언론사 자진 폐간

    “거친 풍랑 속 안전 보장할 수 없어” 홍콩 민주진영 언론사 자진 폐간

    빈과일보와 입장신문에 이어 또다른 홍콩 민주진영 언론사인 중신문(眾新聞·시티즌 뉴스)이 폐간했다. 최근 급격히 악화된 언론 환경에 대한 우려로 자진해 문을 닫은 것으로, 홍콩의 언론 자유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신문은 2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고별사를 통해 “설립 5주년에 작별을 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중신문은 “2년 사이 사회가 급변하고 언론의 생존 환경이 악화해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이상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면서 “우리 작은 배는 거친 풍랑 속에 선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폐간의 배경을 밝혔다. 중신문은 4일부터 운영을 중단하고 홈페이지가 업데이트되지 않을 것이며 일정 시일 뒤 폐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오후 9시 30분부터 중신문의 홈페이지 접속이 되지 않는다고 홍콩 오리엔탈 데일리 뉴스는 전했다.홍콩 까우룽반도 삼수이포구에 본사를 둔 중신문은 2017년 1월 크리스 융 전 홍콩기자협회장 등 언론인들과 언론계 학자들 10명이 의기투합해 창간됐다. 크라운드 펀딩을 통한 기부금으로 운영됐으며 지난해 6월 홍콩에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뒤 탄압을 받은 언론사들의 베테랑 기자들이 합류해 수십 명의 직원을 둔 언론사로 성장했다. 중신문은 페이스북을 통해 “당파와 무관하게 홍콩을 사랑하며, 자유와 개방, 다원주의와 포용 등 핵심 가치를 유지한다”고 소개했다. 중신문의 폐간은 빈과일보와 입장신문 등 홍콩 민주진영 언론사에 대한 홍콩 당국의 탄압이 심해짐에 다른 선제적 조치다. 지난해 6월 홍콩 당국은 민주진영의 최대 언론사였던 빈과일보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자산을 동결한 데 간부 7명을 기소했다. 창업주인 지미 라이는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및 사기 혐의 등으로 수감 중이며 빈과일보는 홍콩 당국의 압박에 23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홍콩 당국은 이어 지난달 29일 또다른 민주진영 온라인 매체 입장신문을 압수수색하고 전·현직 편집국장을 기소하면서 입장신문 역시 문을 닫았다. 중신문 역시 홍콩 당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았다. 홍콩 보안국은 지난해 10월 중신문이 “국가보안법 시행에 따라 당국이 홍콩의 언론 자유 보장을 거부했다고 보도하며 독자들을 오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홍콩에서는 불과 6개월만에 민주진영의 언론사 3곳이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홍콩 외신기자클럽(FCC)이 지난해 6월 홍콩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6%는 “언론 자유의 악화로 홍콩을 떠날 생각이 있다”고 답했으며 56%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보도를 피하거나 자기 검열을 한다”고 답했다. 세트릭 알비아니 국경없는기자회 동아시아지국장은 “중신문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협박과 괴롭힘의 세 번째 독립언론 희생양”이라면서 “홍콩의 언론 자유가 도마 위에 올랐다”고 비판했다.
  • [202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몸의 기억으로 ‘나 사는 곳’을 발견해가는 언어-신미나론/염선옥

    1. 몸의 기억에 부여되는 리얼리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쩌면 예술이 끝자락에 도달해 있고 이제 “규정 불가능성”(하이데거)에 빠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현대는 예술 과잉의 시대이자 ‘무(無)예술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헤겔이 비유한 것처럼, 이제는 예술이 인간의 비대해진 욕망을 더는 채워 줄 수 없다는 “예술의 종언”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읽는 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현대성과 서정성이 미학적으로 반목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은 이분법적 폐쇄성이 낳은 관념적 산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속성을 탈(脫)서정성에 두려는 해체적 사유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현대성과 서정성은 대척적 개념이 아니라 수많은 접점을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시의 차원으로 수렴되어 가는 것이라는 앙투안 콩파뇽의 ‘현대적 전통’론은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신미나에게 ‘시’는 현대성과 서정성이 만나면서 발원하는 예술적 실체로서 그녀의 시는 현대인에게 예술의 존재를 아직도 따뜻하게 건네는 악수로 은유될 수 있을 것이다. C.S. 루이스는 ‘오독’(1961)이라는 비평집에서 현대는 삶과 예술이 혼동되며 시인과 대중이 서로 예술을 다르게 이해하는 시대라고 갈파한 바 있다. 또한 이성복은 ‘불화하는 말들’(2015)이라는 시론집에서 시인들에게 세상과 불화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적지 않은 논자들이 현대시가 세계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예술과 세계가 불화하는 시대에 신미나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경험과 언어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그것을 통합하려고 한다. 본래 시가 노래와 춤이라는 몸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실된 아우라(Aura)를 여전히 기억해야 할 미학적 흔적으로 보고 이를 재포착함으로써 삶과 분리된 예술을 통합하려는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닫힌 기억들이 열린 기대 속에서 각인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녀에게 몸의 기억은, 비록 하찮고 순간적으로 꺼질 미광(微光) 같은 것일지라도, 수없는 리얼리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 아가, 세상이 어찌 보이냐 할아버지 어린 나를 무등 태우고 뒤돌아서서 지붕 위로 어금니 던진다 까치가 어금니 물고 간 곡선으로 내 젖무덤은 부풀어 올라 백내장 걸린 할아버지 중얼거리시데 저 봐라, 상갓집에서 혼 빠진다 - ‘산 너머’ 전문 시의 화자는 어린 시절 이를 뽑던 기억, 할아버지 무등을 타던 기억을 떠올린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각을 부여한다. 할아버지가 무등 태우며 ‘헌니 줄게 새 이 다오’를 노래하던 순간은 온몸으로부터 분출되고 온몸으로 수렴되는 발화의 기억을 남긴다. 신미나의 시에 그려진 화자의 경험과 기억은 독자의 마음을 열어 주면서 무등 탔던 기억, 실에 묶어 이를 던졌던 기억, 미신과도 같이 헌 이를 주면 새 이를 물어다 준다고 노래했던 기억에 생생한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이렇듯 몸의 기억에 리얼리티를 부여한 결과 그녀의 시는 많은 이들에게 오래된 정동적 연결망을 제공하게 된다. 신미나는 수많은 시편을 통해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이마’) 기억, “어린 조약돌 몇 개 씻어 주머니에 넣고”(‘첫사랑’) 다니던 기억, “눈밭에 노란 오줌 구멍을 내”(‘연’)던 기억, “방바닥에 엎드려 글씨를” 쓰다 “공책 뒷장에 눌러쓴 자국이 점자처럼 새겨졌”던 기억(‘받아쓰기’), “생쌀을 씹는 버릇”(‘윤달’)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러한 섬세한 기억들이 귀환하는 방식은, 기록되지 못한 채 떠돌지라도, 시인으로 하여금 창의적 감각과 초월적 사유를 거느리게끔 해 준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대인이 가진 몸의 기억을 순간적으로 각성시키면서 파편화된 체험을 끌어들이는 놀라운 통합의 힘을 발휘한다. 2. 신화와 샤먼적 요소 신미나는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공동체적 감각이 묻혀 있는 시대를 향하는 시인이다. 기억의 바닥에 있는 시대의 경험과 그것에 얽힌 삶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전체를 통해 얻어지는 질서의 틀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신미나의 기억은 할머니의 삶과 함께 빈번하게 드러나는데, 화자의 삶은 할머니에 의해 ‘명랑’을 되찾고 있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마고 2’) 싫을 정도로 화자의 고백에는 할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숨쉬고 있다. ‘마고 할멈’은 시인에게 삶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죽음을 애도하며 견뎌 애써 살게끔 해 주는 상징이다. 기억 속의 할머니는 시인의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이고, 시인은 자신의 경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할머니의 삶과 기억을 끌어들여 샤먼적 요소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그녀의 시에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 쉬운 농경적 삶의 방식이 생생하게 보전되어 있다. 과학기술 사회에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묻혀 버린 옛것을 꺼내와 그것이 가져다준 진정한 메시지를 독자와 교환한다. 삶을 위로하던 공감 요소인 신화가 불려올 때 그녀의 시에서는 샤먼의 배치 과정이 필연적으로 중요하게 개입하게 된다. 사실 신미나의 시에는 무속 체험과 감각이 빈번하게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첫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2014)와 제2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2021)에서 신화나 샤먼의 체험을 두루 끌어들이고 있다. 그녀에게 신화나 샤먼적 요소는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과 기억의 산물이다. 신화와 샤먼적 요소는 “뜻 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처럼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어디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리는 기억에 담겨 있는데, 이는 “너무 많은 무늬를 몸에 새긴” 것 같아 끝없이 되풀이된다. 그것들은 자아를 지탱하는 배경과 같으며 이러한 사례는 그녀의 시 전체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 “지푸라기인형”(‘마고 2’, ‘백일몽’)과 “헝겊인형”(‘묘의 함’), “종이인형”(‘묘의 함’,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거울’)은 무(巫)와 관련을 두고 있으며, 탱화나 “천년을 물속에 살아야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물가”(‘백일몽’) 이야기, “때리면 정신 든다는 무당 말”(‘불티’)에 “아비가 대나무 뿌리로 아들을 때”리는 주술성이라든가 “몸을 얻으려면 새 옷을 입어야”(‘홍합처럼 까맣게 다문 밤의 틈을 벌려라’) 하는 샤먼적 상상, 저승으로 떠나게 될 아기들이 가여워 제명과 맞바꿔 아기들을 살린다는 ‘마고’ 신화까지, 그녀는 수많은 샤먼적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과학적 시선에 의해 지배되는 현대에 샤먼과 신화적 요소는 리얼리티를 감쇄시킬 수도 있을 법한데, 신미나의 시에서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독특한 형태로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겪은 기억을 중심으로 인문적 사유가 제거된 과학기술의 공허함과 허황된 논리를 비판하면서 그 빈 곳에 신화와 샤먼을 채워 넣는 것이다.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한다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왔다 묘의 주머니는 작고 이따금 탄내가 난다 주머니 속에는 타다 만 볍씨가 있다 묘의 상자 속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고 정글짐 꼭대기의 해가 타고 있다 - ‘묘의 함(函)’ 전문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로서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하고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온 존재이다. 종이 가마에 고깔모자를 쓴 검정으로부터 태어난 ‘묘’는 제의를 치르는 무당 같은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묘의 상자 안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다. 바로 이는 접신과 빙의된 샤먼의 모습이다. ‘종이 인형’을 한 묘의 상자 안에는 타인의 삶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도 있다. 시인이 은유하는 것은 시대의 종말과 위기에 있지 않다. 다만 그녀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이라고 믿어 왔던 인간의 존재방식에 균열을 낼 뿐이다. 기술 발전과 합리성이 채워 주지 못하는 소외와 불안을 ‘무속’ 모티프를 통해 진단하고 ‘해원’이라는 처방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 싫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냈더니 이고 있던 채반을 내려놓고 갔다 채반 위에 팥 한 알 또렷이 남았다 다음날엔 보따리를 두고 갔다 매듭을 풀어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나왔다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일으켜 세워도 자꾸만 목이 꺾였다 배를 갈라보니 노란 것이 반짝 했다 금니였다 할머니의 등에 새긴 문신은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방패 마작처럼 패를 뒤집어 얼굴이 자도르르 돌아간다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쟁기 눈, 코, 잎을 갈아 끼운다 높고 슬픈 노래를 물려주려고 잠들면 가만 코에 손가락을 대본다 할머니는 피가 너무 환해서 인간의 잠을 자지 못한다 - ‘마고 2’ 전문 장사치로 떠도는 할머니가 등장하자 화자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낸다. 이는 가난한 할머니의 고통이 새겨 넣은 상처를 마주하는 화자의 고통을 암시한다. 종종 가난으로 얼룩진 기억은 삭제되거나 묻히는데, 시인은 할머니의 기억을 아프게 되살려 고통과 가난을 마주하는 순간을 불러낸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두고 갔지만 그 매듭을 풀어 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그 안에서 나온다.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자꾸 목이 꺾이기만 하는 인형의 배를 갈라 보니 노란 금니가 반짝이고 있다. 지푸라기 인형이라는 샤먼적 요소를 통해 할머니와 접신하는 경험은 신비롭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신화와 샤먼적 요소를 통해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할머니에게 들었던 신화를 통해 다시 할머니를 만난 것이다. 할머니의 등장이 어린 손녀가 겪어 갈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전개는 신화의 이미지를 거느리는데 “배를 갈라보니” 노란 금니가 나온다는 신화는 작품에 이러한 환상성을 부여하고 있다. 붉은 구슬을 입에 물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나왔 습니다 천수관음은 천개의 손으로 슬픔을 어루만진다는데 손이 천개면 세상의 눈물을 닦을 수 있습니까 뜨거워서 그래, 아가 어쩌다 네 마음에 명랑을 잃었니?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내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습니다 봄에 난 콩 싹처럼 웃어보라, 해를 피하지 않는 해바라기처럼 용감해라, 물 만난 오리처럼 신나게 욕해보라, 비 온 뒤 제비처럼 까불어라, 분수처럼 솟구쳐라, 쪼개고 쑤시고 부러뜨려라, 톱날의 요철과 같이 벌떼처럼 화를 내라, 연기처럼 곧게 서라, 백합처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 할머니는 겹겹의 모란 치마로 나를 폭 싸서 공중에 띄웠습니다 키질하듯이 위아래로 까부르니 몸이 아기만큼 작아져 배꼽이 간지럽고 이히히 웃음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우스운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한 것인데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았습니다 - ‘탱화 3’ 전문 화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오셨다는 것은 시인에게 강림하는 샤먼적 순간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명랑을 잃은” 화자에게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다. 이러한 발화를 통해 할머니의 존재는 화자에게 한 차원 더 명확해진다. 할머니는 “…웃어보라, …용감해라, …욕해보라, …까불어라, …솟구쳐라, …부러뜨려라, …화를 내라, …곧게 서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라고 위로하며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할머니에 대해 화자는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는다. 화자에게 할머니는 ‘웃음을 주는’ 존재이며 삶에 원초적인 힘을 주는 정신적 동반자이다. 할머니의 상실을 지우고 할머니의 존재를 보존하는 방식은 기억에 의해 가능한 것인데, 시인은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신비함을 그 안에 담음으로써 이러한 작업을 수행한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신비한 일로 확장해 가면서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성격을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3. 존재론적 근거로서의 기억을 통한 표준화에의 저항 할머니는 현존하지 않고 시인의 몽상과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베냐민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르면, 신미나는 과거를 고정적 점으로 보지 않고 현재로부터 관찰하고 불러낸다.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기억으로 새겨진 것은 언젠가 ‘있었던’ 실재일 뿐이다. 그러나 신미나는 세속적 질서 속에 할머니의 기억과 농촌 경험을 가져와 행복에 대한 표상을 과거로부터 형성한다. 화석으로 남은 시골이 따스한 공간이었다는 전언을 통해 도시가 가진 허상을 비판하고 지금까지 가졌던 삶의 불균형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신미나는 이렇게 자신의 기억을 응시하면서, 데리다가 말하는 흔적(trace)을 만지는 일을 수행한다. 수레가 남긴 바퀴자국을 토대로 동물과 수레의 현전을 논할 수 없듯 그의 흔적은 ‘없다’를 말할 수 없는 심적 자국인 것이다. 그 점에서 ‘지켜보는 사람’을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의 첫 작품으로 배치한 것은 퍽 유의미하다. 본다는 것, 보았다는 것은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부재가 아닌 존재로 인정하는 일이며, 그 존재성은 사라지지 않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있는’ 것과 ‘있었던’ 것이 가지는 존재성의 기대를 동시에 내포한다. 한 알의 레몬이 테이블 위에 있다 오래전에 있었던 것처럼 금방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한 알의 레몬이 눈앞에 있다 그것을 치우면 레몬은 과거형으로 존재한다 흰 테이블보 위에 레몬이 있다 눈을 감아도 레몬은 레몬 빛으로 남고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진심으로 보인다 - ‘지켜보는 사람’ 부분 화자는 테이블에 놓인 “오래전에 있었던” 한 알의 레몬을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레몬은 비록 치워진다 해도 ‘과거형’이 될 뿐 비(非)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리했던 것은 눈을 감아도, 그것을 치우더라도, “레몬 빛으로” 남는 ‘사실’이 되고 “진심으로” 보이는 것이 된다. 존재의 가치는 시간이 증여한 것도 아니고 사회가 합의한 상징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 경험하여 의미가 솟아나는 지점에서 생겨날 뿐이다. 그 세계에서 기호화되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림자를 만”들고 조용히 남아 있게 된다. 이는 “쪼그리고 앉아”(‘단조’)서 보던 물에 불어나는 한 톨의 쌀알이 “찬 벽에 발을 대고 누”워서도 천장에 떠오르는 또렷함 같은 것이다. 기억은 ‘있었던’ 것의 부재를 또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는 과정으로 도약한다. 동요 속에서 마구 튀어오르거나 우글거리는 기억의 운동성은 존재의 살아 있음을 말해 주는 증거가 된다. 시인이 쓸모없는 일로 여겨지는 기억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오롯이 권역을 형성하고 우리의 인식과 감각에 등장하는 본연의 것들은 비록 외곽으로 밀려나 버렸다 해도 우리를 상실과 폐허 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존재론적인 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기억은 자주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억이 물질적인 감각에 찍힌 낙인일 때 신미나의 시는 기억의 집적을 통해 그러한 규정을 벗어난다. 그의 기억은 일정한 시공간과 서사와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고리를 이으면서 긍정적으로 순간순간을 끌고 나간다. 보들리야르는 현대를 가리켜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라고 지적하면서도 현대인은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신미나의 시는 언어의 옷을 채 입지 못한 기억들로 가득 채워짐으로써, 시적 주체를 추동하는 공감의 발원지로 기능하게 한다. 새로운 것의 권위에 대해 역설한 콩파뇽은 기억을 유행과 현대적인 것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는 기억이 ‘새로움’에 대한 ‘낡음’이라는 모순관계의 짝패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가 담아내지 못하는 ‘상상력’의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공연한 일들”과 “쓸모없는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신미나의 목소리는 기억의 세부를 포착하겠다는 의지이며, 그녀의 시는 폐기되는 세부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는 주변에 널린 세부에 주목하면서, 삶은 지평이 아니라 오히려 세부의 집적임을 말한다. 이때 세부는 여러 차원의 경험으로 채워진 모래사장으로서, 우리는 그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공연한 것들, 쓸모없는 것들은 삶을 채워 주는 세부인 것이다. 그녀의 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식과 불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법칙 이외에 어떤 언설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이 지향하는 고유의 법칙을 유지한다. 이때 도시는 다름과 비뚜름 대신 바름을 동의반복적(同意反復的)으로 배열하고 배치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유동하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바로 도시이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한 도로와 건물, 기호와 상징, 그 속에서 현대인은 한 방향으로 향하는 물고기 떼처럼 몰려간다. 모든 공간이 유사해지면서 모국어가 있어도 전 세계가 몇몇 우세어를 중심으로 통일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표준화와 평균화에 저항하는 신미나 시의 힘이다.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고요는 몰려오던 해일이 눈앞에서 멈춘 듯한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두었으므로 나의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어요 빛에 일렁이는 물 그물이 나의 발을 얽을 뿐입니다 - ‘아쿠아리움’ 부분 물주름 없는 물결 귀를 떠난 소리 풀 없는 인공 정원 - ‘홍제천을 걸었다’ 부분 현대인의 행동 양식은 모든 면에서 어떤 인공적인 것의 제작 방식과 일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같은 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현대인은 동화되어 가고 있다. 노동하는 동물로 격하된 채 살아갈 뿐 거부와 배척이 두려워 ‘소수-되기’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개인에게 감동을 주는 일에 대하여 어떤 말도 하거나 듣지 않는다. 도시인다운 ‘다수-되기’(에티엔 발리바르)를 지향하게끔 할 뿐이다. 도시는 고유한 특성이 제거된 개인을 색인 속에 분류하고 저장한다. 그런 가운데 개인의 슬픔은 썩어 가거나 사라지게 된다. 도시인의 언어는 차가운 콘크리트 언저리에서 싹튼 불쾌하고 축축한 우울과 소외의 언어가 된다. 그런 언어로 표지된 도시인은 자신의 결여된 내면성을 드러낼 방식이 없게 된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미학적 항의가 신미나의 시다. 4. ‘나 사는 곳’의 발견 과정으로서의 기억 혹자는 신미나의 시에서 농촌과 자연과 가난이 빚어낸 서정성을 읽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더 확장된 의미로서 폭력의 시대에 소실되어 가는 ‘나 사는 곳’(오장환)을 훑는 작업을 읽어 낸다. 모국어의 소실과 전통의 소외와는 달리 매체와 일상을 메우는 것은 온통 서구 것이다. 케이팝(K-Pop)과 한류(Korean-Wave)도 서구 입맛에 맞춘 예능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SNS의 시대,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하이브리드-스토어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콘택트 없이도 실시간 업무를 가능하게 했고, 신용카드라는 합의된 인증 방식의 결제를 통해 우리의 취향과 입맛은 모두 통제되고 있다. 이런 위험신호를 감지한 신미나는 ‘나 사는 곳’을 중심으로 우리의 것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고 있다. 보들레르가 현대성을 현대인의 불안과 관련시켜 읽어 냈다면, 신미나는 현대성을 폭력과 상실로 읽어 낸다. 그녀가 읽은 현대라는 미달태(未達態)는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아쿠아리움’) 둔 것과도 같아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는” 상실의 세계일 따름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머금고 “그만, 이라고 말해도 자꾸만 공을 물어 오는 착한 개처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인 것이다. 아쿠아리움에 가둔 물고기 세상처럼, 우리가 사는 곳은 동일한 풍경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풀 없는 인공 정원”(‘홍제천을 걸었다’)이 가득한 곳이 되고 말았다고 시인은 진단한다. 마당이 있는 저 집에서 살면 참 좋겠다 언덕 위에는 여자 대학교가 있고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고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 문방구 평상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고 옆에서 신문지 깔고 고구마순 껍질이나 같이 벗기고 싶고 해 지기 전에 수건을 걷어 오른팔에 얹고 옥상에서 내려갈 때 젖이 불은 개가 헐떡이며 걸어가는 것을 보는 집 보러 왔다가 그냥 간다 이가 썩어 구멍 난 데를 혀로 쓸며 돌아보는 사직동 - ‘지하철역에서 십오분 거리’ 전문 ‘고스트 타운’(베냐민)이 된 도시가 현대화의 필연적 산물이라면 시인이 바라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 “풀 없는 인공 정원” 대신 “마당이 있는” 집이고 “문방구 평상에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는 곳이다. 부품을 한데 모아둔 것처럼 젊은이들만 들어찬 도시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공간이며, 아이들이 애용하는 문방구 평상이 있는 공간이다. 또 획일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공간이며 비폭력적 공간이자 비상실의 장소이다. 빌딩과 벽이 없는 언덕 위에 여자대학교가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어 맛볼 수 있는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인 것이다. 시인이 이러한 공간성을 가져오는 방식은 ‘우리 것’의 회복이자 ‘나 사는 곳’의 확인 과정인 셈이다. 첫 시집에서부터 발견되는 그의 시적 공간은 도시 미학적 공간과 거리가 이처럼 철저하게 멀어진다. 또한 신미나의 시는 흔적으로만 남은 우리말의 보고이다. 현대적인 것을 이루는 성좌를 완성할 때 세련된 시어의 반복과 나열이 필수라면 시인의 언어는 낡은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것으로 명명된 모든 상황에서 시인이 채우는 장판, 요, 밥물, 물금, 내천, 조약돌, 연밥, 무밭, 아욱잎 등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우리의 감각적 언어가 더 감각적이고 새로운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시인은 농도 짙은 외래어를 사용하기보다 ‘싱고’, ‘무이모아이…’ 같은 우리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쏟아져 흐르는 외래어와 말줄임에 우리말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언어란 얼마나 나약하기만 한가? “나는 오리라 하였고 당신은 거위라” 하였으며, “나는 공복이라 하였고 당신은 기근”이라 부르며, “당신은 성북동이라 하였고 나는 종암동이라” 하였다는 등 언어는 불통을 잠재적으로 내재한다. 언어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일치”(‘사랑의 순서’)하는지도 모른다. 신미나는 시가 소통되지 못하는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독자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도시의 방식인 고통의 언어 대신 모태의 언어를 내뱉는다. 모태의 언어는 관찰과 소통과 사색을 통해 유래된 ‘흙’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기를 더 많이 드러내고 표출하는 도시 방식 대신 듣고 보고 느끼는 ‘삼중(重)의 겹’을 택한 결실이다. 이때 시인은 도시 안에서 ‘보는 자’이자 ‘느끼고 듣는 자’가 된다. “휘파람을 불며 길을 나서”면 “리어카에 폐지를 실은 노인들”(‘입김’)도 볼 수 있고, “한 손으로 번쩍 아이를 들어올리는”, “얼굴만 아는 여자”(‘길음동’)도 만날 수 있다. 또 “신발을 꺾어 신고 앞서”(‘모란과 작약을 구별할 수 있나요?’)가는 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화자가 바라보는 것은 무언가가 되지 못한 세부이며 삼중의 겹을 통해 시로 현상된 것들인 셈이다. 또한 그녀의 시는 우리로 하여금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를 보게 하고 “귀 기울여 듣게” 한다. 우리는 말하기를 유보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선행해야 비로소 삼중의 겹을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 과정이 그 안에 있다. 장마 지면 정미네 집으로 놀러 가고 싶다. 정미네 가서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고 싶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 새로 온 교생은 뻐드렁니에 편애가 심하고 희정이는 한 뼘도 안 되는 치마를 입는다고 흉도 볼 것이다 말 없는 정미는 응 그래, 싱겁게 웃기만 할 것이다 나는 들여놓은 운동화가 젖는 줄도 모르고 집에 갈 생각도 않는다 빗물 튀는 마루 밑에서 강아지도 비린내를 풍기며 떨 것이다 불어난 흙탕물이 다리를 넘쳐나도 제비집처럼 아늑한 그 방, 먹성 좋은 정미는 엄마 제사 지내고 남은 산자며 약과를 내올 것이다 - ‘정미네’ 전문 “밍크이불”은 어느 집에나 있었고 우리는 그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고 느낀 경험과 교생의 편애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기억, 예쁜 친구를 험담하던 기억이 시인의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저 기억 속에 둥둥 떠 있기만 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는 우리에게 ‘스스로 주어짐으로 돌아감’(장뤼크 마리옹)을 선사한 기억의 주체인 셈이다. 또한 신미나의 기억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뿐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 시대적 소멸의 흔적을 길어 올린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마고 이야기(‘마고 1·2’)를 소재로 삼는가 하면 할머니의 기억과 할머니와의 접신 과정을 ‘탱화’(‘탱화 1·2·3’)로 드러내기도 한다. 만약 시간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정의한다면 ‘새로움’의 추구라는 개념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전통적 서정성을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과제를 저버린 것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시가 발견해야 하는가, 발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신미나의 시는 시간 개념을 긍정하며 발명보다 발견을 더 큰 화두로 삼는다. 이는 타인에게 물려받은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기호화되지 않은 세부의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내포한다. 그리고 발견은 ‘나 사는 곳’을 살피는 몸짓이며 몸에 각인된 과거를 통한 시인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원적 모색을 뜻한다. 신미나는 언어적 한계를 무화(無化)하기보다 기억을 통해 자신이 실감하는 쪽을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 시어를 택하고 그 속에서 실감을 표현하는, 들뢰즈식으로 ‘행동하는’ 시인인 셈이다. 단절과 폐허의 상황에서 그녀는 ‘벽’이 아닌 ‘문’을 택하고 단절이 아닌 소통을 지향한다. 선명한 기억이야말로 개인을 지탱하는 근원적 뿌리이며 개인의 감각과 사회의 전체성을 함께 붙드는 운동임을 그녀의 시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 [2022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사랑해/조은비

    [2022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사랑해/조은비

    “윤세희, 사랑해.” 정윤수의 고백과 동시에 선풍기 날개가 팽팽 돌아갔다. 나는 고민하는 척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점심을 먹고 돌아온 아이들이 칫솔을 입에 물고 교실과 복도를 오가며 나와 정윤수를 곁눈질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고개를 푹 숙였더니, 정윤수가 내민 하트 모양의 선물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 전쯤부터 소문이 돌았다. 정윤수가 우리 반 누구를 좋아한다고, 곧 고백할 거라고 말이다. 설마 그게 나일 줄은 몰랐다. 나는 정윤수와의 몇 안 되는 기억을 끄집어냈다. 저번에 내가 우산을 씌워 줘서? 아니면 지우개를 빌려줘서? 하지만 그건 친구로서 다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교실은 조용한 듯 소란스러웠다. 모두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나는 조심히 고개를 들어 정윤수를 바라보았다. 정윤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너무 빨라.” 내 말에 정윤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은근슬쩍 주위를 맴돌던 다정이도 날 바라보았다. “응. 뭐라고?” “빠르다고.” 정윤수는 아까보다 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았다.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언제 사랑할 수 있는데?” 정윤수가 물었다. 휴대폰에서 ‘띵’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슬쩍 화면을 확인했다. 즐겨찾기 해 둔 웹 소설의 최신 화가 등록됐다는 알림이 와 있었다. 마음속에서 북이 울리기 시작했다. 역시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정윤수의 고백보다 업데이트에 내 심장이 반응하는 걸 보면. “당연히 어른은 돼야지.” 내가 소설을 열며 말했다. 업데이트되길 주말 내내 기다렸다. 이번 화는 특히 그랬다. “더 빨리는 안 돼?” “안 돼.” 내가 돌아서며 대답했다. “그래도 넌 이제부터 내가 계속 신경 쓰일걸?” 정윤수가 소리쳤다. 교실에 남아 있던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으윽. 온몸에 닭살이 돋을 것 같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왔다. 걸음을 재게 놀려 서쪽 계단으로 갔다. 서쪽 계단은 사람이 거의 오지 않아서 조용히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자리를 잡고 첫 문장을 눈으로 훑었다. 사랑해.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화면을 밀어 넘겼다. 두 주인공이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이제 북은 마음속에서 튀어나와 귓가에서 울렸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댓글 페이지를 열었다. 독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댓글을 달아 둔 게 보였다. 내일이 빨리 와서, 다음 화를 또 보고 싶었다. 그런데 코인이 없었다. 지난주에 용돈을 받자마자 충전해 뒀는데, 벌써 다 쓴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 달에 딱 한 번만 코인을 충전하기로 엄마랑 약속했기 때문이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다음달 용돈은 없다. “정윤수는 착하잖아. 받아 주지 그래?” 다정이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됐고. 너 코인 남아 있으면 나 ‘선물하기’로 주면 안 돼?” “벌써 다 썼어?” “응.” “뭐. 난 요즘 보는 것도 없고. 알았어. 줄게.” 다정이가 말했다. 나는 다정이를 꼭 껴안았다. “진짜 정윤수 관심 없어?” 다정이가 떠보듯 물었다. “전혀. 그리고 절대 안 돼.” “안 될 건 뭐야.” 다정이가 입술을 비쭉대며 말했다. “사랑이 어떻게 쉬워?” “그럼 어려워?” 다정이가 되물었다. 맞다. 사랑은 어렵다. 사랑은 어려워야 한다. 그게 진정한 사랑이다. 웹 소설만 봐도 그렇다. 쉽게 연결되는 사랑은 없다. 모두 진흙탕을 구르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멀리 돌고 돌아 마침내 사랑을 나눈다. 그러니, 정윤수는 안 되는 거다. 내가 좋다고만 말하면 되니까. 다정이가 대답을 바라는 듯 날 보았다. 내 사랑의 철학을 설명하려는 순간, 다정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자기야. 나 지금 서쪽 계단.” 다정이가 전화를 받아 말했다. “뭐? 자기야?” 내가 되물었다. 목소리가 컸는지 다정이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다정이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지. 나도 사랑해. 금방 갈게. 세희야, 미안. 교실에서 보자.” 다정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엊그제쯤에 좋아하던 애한테 고백한다더니, 그새 ‘자기야’라고 부를 만큼 가까워졌나 보다. 나는 다정이에게 어서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여기서 괜히 사랑의 철학 어쩌고 했다간, 다정이는 내게 소설 좀 그만 보라고 했을 거다. 사랑은 이야기 속이 아니라, 세상에 있다면서 말이다. 나는 웹 소설 앱을 다시 켰다. 새로 올라온 작품을 탐색하는 사이에 그만 수업 종이 울렸다. 난간에 올라타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교실에 오니까, 아직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대신, 내 책상 위에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쪽지를 서랍 밑으로 가져가 펼쳤다. 사랑해. 혹시 정윤수가 보낸 건가? 나는 고개를 슬쩍 들었다. 정윤수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때, 뒷자리에 앉은 반장이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야, 그거 대각선으로 넘겨.” 반장이 말했다. 나는 쪽지를 다시 접었다. 가만 보니, 겉면에 대각선에 앉아 있는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억이 났다. 한 달 전에 있었던 고백 사건 말이다. 소문에 의하면 반장은 방과 후에 교실을 통으로 빌려서 고백했다고 했다. 하트 풍선으로 칠판을 장식하고, 바닥에 장미꽃잎을 뿌려서 말이다.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다. 나는 쪽지를 다시 접어 대각선에 앉아 있는 아이의 책상으로 던졌다. 그 애는 쪽지를 확인하더니, 수줍게 미소 지었다. 좋을 때다. 나는 턱을 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그사이에 공식적인 커플만 3커플이 탄생했다. 모르긴 몰라도 조용히 사귀는 애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뭘까?’ 요즘 애들은 사랑을 너무 남발한다. 사랑은, ‘사랑해’란 말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중에서 진정한 사랑을 하는 아이들은 몇이나 될까? 나는 곁눈질로 정윤수를 쳐다보았다. 정윤수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저렇게 대놓고 엎드려 있는데, 선생님이 못 보는 게 용할 지경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쟤는 뭘 안다고 나한테 사랑한다고 한 걸까?’ 정윤수는 아까부터 운동장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모래를 주물럭댔다.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기도 하고, 한 주먹 가득 움켜쥐기도 했다. “이쪽으로 패스해!” 다정이가 소리쳤다. “어, 어, 알았어.” 내가 어버버 하는 사이, 상대 팀에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시선이 자꾸만 정윤수 쪽으로 갔다. 모래바람이 날리고,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가 가득한 운동장에서 정윤수는 혼자 평온하게 모래를 가지고 놀았다. 그때, 공이 정윤수가 만든 모래언덕으로 굴러갔다. 순식간에 모래언덕이 무너졌다. 정윤수가 꼭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그 입술이 꼭 오리 주둥이 같아서 하마터면 귀엽다고 말할 뻔했다. 나는 정윤수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그림자가 지자, 정윤수가 날 올려다보았다. “너는 왜 축구 안 해?” 내가 물었다. 정윤수는 내 얼굴을 보고는 손에 쥔 모래를 흘려보내고, 벌떡 일어섰다. 얼굴이 새빨개졌다. 원래부터 빨갰는지는 몰라도. “난 땀나는 거 안 좋아해. 아, 그렇다고 네가 땀 흘리는 게 싫단 뜻은 아니야.” 정윤수가 말했다. 이렇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애는 처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꾸밈없이 내보이는 애도. 그러니까 교실 한복판에서 고백했겠지. “오해 안 해.” “그럼 이거 쓸래?” 정윤수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넌 이런 것도 가지고 다녀?” “뭐 그냥.” 나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손수건에는 토끼 모양의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얼굴이 달아오른 정윤수를 닮았다. 귀엽다. 아니지. 아니야.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윤세희! 공!” 다정이가 소리쳤다. 그래 맞다. 나는 공을 가지러 온 것뿐이다. 정윤수가 공을 주워 건넸다. 나는 공을 받아들고 운동장 한가운데로 던져 보냈다. 공이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쿵. 공이 바닥에 닿은 순간, 내 심장도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심장 소리가 내 귓가에 선명히 들려왔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다른 아이들이 눈치챌까 봐 재빨리 필드로 뛰어 들어갔다. “신경 쓰이는구나?” 다정이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 와중에도 내 눈은 정윤수를 좇았다. 정윤수는 새롭게 모래언덕을 쌓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어쩌면 남자친구로 나쁘지 않을지도….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는 경기에 마저 집중했다. 집으로 돌아와 습관처럼 웹 소설 앱을 열었다. 나는 로맨스 장르에 빠삭하다. 유명한 작품은 물론이고, 무명작가의 작품도 웬만해선 다 읽었다. 나만 알고 있던 작품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가 많아지면 왠지 뿌듯했다. 지금 찾아낸 작품도 내가 첫 화부터 빠짐없이 댓글을 달았다. 나는 작품에 대한 칭찬을 가득 담아 댓글을 썼다. 오늘은 한 문장을 더 추가했다. 작가님, 초등학생도 이런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본 웹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어른이다. 아니면 최소한 고등학생 정도는 되거나.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는 노래도 있는데, 왜 초등학생의 사랑 이야기는 잘 없는 걸까. TV에서도 연예인들이 초등학생 때의 연애담을 풀어놓으면 다들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소꿉놀이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소꿉놀이는 유치원 졸업과 동시에 끝났다는 걸. 나는 ‘작성’ 버튼 앞에서 머뭇댔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지우고 댓글을 올렸다. 그사이, 최신 화가 업데이트되었다. 나는 다정이가 선물해 준 코인으로 결제해 소설을 읽었다. 사랑이 이뤄지니까, 재미가 전보다는 없었다. 나는 최신 화를 마저 읽은 뒤, 1화로 돌아왔다.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설렘을 느끼고 싶었다. 1화에서는 주인공의 생김새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말간 얼굴에 눈 옆에 난 점, 가만히 있어도 위로 올라가 있는 입꼬리. 이상했다. 꼭 정윤수를 묘사하는 것 같다. 나는 페이지를 닫고 표지를 살폈다. 일러스트 속 주인공은 내가 알던 그 주인공이 맞다. 그런데 자꾸… 정윤수가 겹쳐진다. 멋진 옷을 차려입은 정윤수가 그림 속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예 화면을 끄고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하얀 천장에서도 정윤수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도 정윤수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눈을 비비기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소용없었다. 정윤수는 언제 어디서든 불쑥 내 눈앞에 나타났다. 밥을 먹다가도, 축구를 하다가도, 학원에 가다가도 불쑥. 최신 화는 날마다 업데이트되었다. 예전 같으면 빨리 들어가서 보고, 댓글도 남겼을 텐데. 작가님도 똑같고, 주인공들도 그대로인데. 소설이 재미없어졌다. 정윤수가 좋아졌다. 소설을 읽는 것보다 정윤수를 생각하고 정윤수를 바라보는 게 더 좋다. 아이들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랑의 씨앗이 뿌려지고, 씨앗이 새싹이 되고, 새싹에서 잎사귀가 나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그땐 너무 늦었다. 속에만 품고 있기에는. 정윤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정윤수가 내게 ‘사랑해’라고 말했던 그 순간의 마음을 나도 알 것 같았다. 나는 서쪽 계단으로 정윤수를 불러냈다. “나도 널 좀 사랑하는 것 같아. 아니, 사랑해.” 말을 내뱉고 나니까, 숨이 차올랐다. 그만큼 속이 시원했다. 사랑은, ‘사랑해’란 말은 아껴둘 필요가 없었다. 쓰면 쓸수록 닳는 게 아니니까. 정윤수는 대답이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자기랑 같은 마음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미안. 나 여자친구 있어.” “뭐?” “나도 고백받았어. 해수가 날 좋아한대.” 정윤수가 말했다. 정윤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슬쩍 보니, 그 ‘해수’란 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윤수는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었다. 나는 정윤수를 붙잡고 구구절절 말하고 싶었다. 해수는 널 좋아한다고 했지만 난 널 사랑한다고.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너는 모른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가, 가볼게.” 정윤수가 게걸음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그러고는 복도를 달려갔다. 나는 층계참에 주저앉아 머릿속을 정리했다. 방금 나는 정윤수에게 고백했다. 일주일 사이에 부침개 뒤집듯이 말을 바꾸는 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뭔가에 홀린 게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저런 애를 사랑했을 리가, 아니 사랑한다고 믿었을 리가 없다. “사랑해.”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말이다. 막상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까, 별거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사랑해’라고 말했다. 다시, 또다시. ‘사랑해’를 반복해서 말하면 내가 한 고백이 덮어질 것처럼. 사랑이 어떻게 이토록 별거 아니게 끝날 수 있을까. 시린 바람 한 줄기가 내 몸을 통과했다. “뭐야? 괜찮아?” 다정이가 다가왔다. 서럽다. 서러워서,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다정이가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나는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고백할 거 있어.” 다정이가 말했다. 그러고는 한참 뜸을 들였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다정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 헤어졌어.” “뭐라고?” 내가 다정이를 밀치며 물었다. 다정이가 멋쩍게 웃으며 나를 다시 안았다. “사실 나는 그 애를 좋아했다기보단, 그 애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좋아한 것 같아. 그 설레고 간질간질한 마음 말이야.” 다정이가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사랑은 모르겠지만, 다정이가 한 말만큼은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해.” 내가 말했다. 하고 많은 사랑 중에,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랑을 나도 찾을 수 있을까? 소설에서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나도 할 수 있을까? “나도 사랑해.” 다정이가 내 등을 토닥토닥해 주었다. 다정이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꼭 이렇게 다짐하는 것만 같다. ‘나는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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