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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화가 박수룡 ‘과거로의 먼 시간여행’

    이집트 벽화 같다.어찌 보면 중국의 갑골문자를 닮았다.암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그의 그림을 보면 저절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서양화가 박수룡(47). 소설삽화가로도잘 알려진 그가 시간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화폭에 담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02-544-8481)이 그 현장이다.지난해부터 새로 시작한 ‘선사시대의 꿈’과 ‘Egyptian dream(이집트의 꿈)’ 시리즈를 비롯, ‘뛰는자’‘해오라기’등 17점이 전시돼 있다.25일까지. 박수룡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못지 않게 ‘무엇을’ 그리느냐에 힘을 쏟는 작가다.그는 한때 어두운 사회현실을 고발하는 시대성 강한 그림을 그렸다.지난 91년 ‘해체된 인간’전에서는 보이지 않는 제도적 폭력에 의해 희생되는 인간군상을 요철기법으로 그려내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작에는 자신의 삶과 기억은 물론 그 이전의 선험적시간까지 담아내려는 의지가 담겼다.작가의 시간관념은 물감을 배합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수성과 유성물감을 섞어 쓰는 것은 화가로서는내키지 않는 일. 어느 정도 시간이흐르면 화면이 가문 강바닥처럼 깔깔하게 말라 벌어지기 때문이다.그러나 작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어차피 시간 속에 마모되기 마련”이라는 그는 “작품이 세월에파괴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박수룡이 즐겨 그리는 갈색조의 화면은 천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듯 고고한 기운을 내뿜는다.그것은 곧 두엄더미 같이질박한 한국인의 정서다.그 한국적인 색채와 정조는 해외에서도 꽤 인기가 있다.그는 최근 미국 마이애미 아트페어와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에 참가해 좋은 평을 받았다.3월에는팜 스프링스 아트페어에도 나간다.다양한 조형실험을 통해작품의 독자성을 확보한 박수룡은 이제 세계적 보편성이라는푯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김종면기자
  • vision 2001-우리구 새해살림 / 강남구

    ‘아셈지역과 테헤란 벤처밸리로 대표되는 번화한 강남구지만 대모산의 다람쥐가 양재천의 물을 마시러 오는 환경친화적인 도시를 건설하겠다’강남구는 올해 구정 목표를 ‘사이버행정과 환경행정’으로정했다.인터넷을 활용,주민들을 위한 사이버 행정을 펴나가면서 환경을 최대한 보호하는 정책을 펴나간다는 계획이다. ■구정의 사이버화. 행정업무의 전산화·인터넷화를 통해 온라인 및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행정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업무의 과감한 아웃소싱을 통해 고객감동 행정을 실천해 나간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강남구는 이미 지방세고지서 이메일 발송,버스전용차로 위반단속자료의 동영상 인터넷 서비스, 장기 미반환차량 인터넷공매 등 사이버 행정을 펴왔으며 올해도 관내 위치안내 시스템을 구축하고 도로관리·통행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사이버행정 모델을 창안해낼 계획이다. 또 구룡마을 무허가건물 관리,불법유통 광고물 정비,공원녹지 보안관리,보건위생,청소 분야 등에도 업무의 아웃소싱을통해 한차원 높은 민간 행정서비스를제공하기로 했다. ■편리한 교통체계. 아셈지역의 상습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모노레일 등 신교통수단을 도입한다.올해 상반기 안에 신교통수단 법인설립에 관한 용역을 발주하고 출자여부를 결정한다는 일정을 잡고 있다. 특히 오는 6월에 가동되는 강남교통관리센터(KTMC)를 통해각종 교통정보를 가공·분석,인터넷과 소형 입간판 및 가변전광판 등을 활용하여 종합교통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다.또 마을버스 도착안내 시스템을 민자유치로 도입하고구가 독자적으로 설치한 CCTV를 통해 수집한 각 지점의 교통상황을 교통방송에 제공한다. 이와 함께 주택가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곡지구,경기여고지구 등 6개 지구를 지정,지구교통 개선사업을 펴고 신사동,논현2동 등 7곳에 주차장을 확충할 계획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30개 중소기업에 기업육성자금 30억원을지원하고 우수기업은 제품홍보 책자도 발간·배포해 준다.또수서동에 지하3층,지상8층 규모의 첨단산업센터를 민·관 합동의 제3섹터 방식으로 건립한다. 특히 압구정·청담동 일대패션전문점 100여곳을 묶어 패션거리로 활성화하고 논현동가구거리에도 지역특성에 맞는 다양한 축제를 개최, 관광객을유치하는 한편 상권을 부활시킬 계획이다. ■수준높은 교육환경 조성. 주민들의 교육수준이 높고 유학준비생들이 많은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국내에서 해외 현지와똑같은 어학연수를 할 수 있도록 미국 UCR대학 부설 구립 국제교육원을 설립,오는 6월 옛 구청 본관에서 문을 열 계획이다. 특히 테헤란 밸리에 집중돼 있는 벤처기업들의 정보통신 고급인력 수요를 해소해주고 주민들의 전문교육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한국정보통신대학 서울분교를 개설,다음달 입학식을 갖는다. 김용수기자 dragon@. *권문용 구청장 인터뷰. “인터넷망 구축과 다양한 전자행정 콘텐츠를 개발,시간과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행정서비스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권문용(權文勇) 강남구청장은 테헤란 밸리를 끼고 있는 구의 특성을 활용,구정의 사이버화(cyber化)를 이뤄 주민들에게 보다 편리한 서비스행정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특히 앞서가는 정보화 인프라를 활용,행정데이터를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주민이 구정 정보화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했다. 최근 침체의 늪에 빠진 테헤란 벤처밸리의 활성화 문제도중대현안임을 강조했다. “테헤란 밸리에는 서울의 벤처기업중 34.5%가 입주해 있습니다.이들 기업에 올해 운전자금 45억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또 역삼동에 벤처타워를 세워 유망 벤처기업들이 싼값으로사업공간을 임차,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벤처기업들이 사업설명회나 세미나 등 각종 행사를 벌일 때 사무실 임차부담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무료로 오피스 풀(Office Pool) 제도를 운영해 나가겠습니다.” 한편 권 구청장은 지방자치의 정착 및 발전과 관련, “지역의 독자성과 차별성이라는 지방자치의 근본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중앙정부나 광역 자치단체가 기초자치단체에 대해 수시로 간섭하는 지금의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수기자. *양재천 정화 복원된 생태계. 강남구는 관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양재천을 도심속의 자연친화적인 생태하천으로 꾸며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있다.양재천 조성사업은 전국적으로 하천 개량사업의 이상적 모델이 되고 있으며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개혁박람회에 출품돼 우수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강남구가 양재천에 수질정화시설을 갖춘 것은 지난 97년.그후 냄새나던 하천물이 깨끗한 물로 바뀌면서 왜가리가 날아들기 시작했다.뿐만 아니라 쏘가리,모래무지,얼룩동사리,피라미 등 26종의 물고기가 살 수 있게 됐다. 99년부터는 너구리가 수시로 출현하게 됐고 지난해 가을에는 수리부엉이도 찾아와 주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강남구는올해도 양재천과 대모산을 ‘바이오 파크(Bio-Park)’ 형태의 수준높은 자연생태공원으로 조성,주민들이 쾌적한 환경속에서 여가를 즐기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올해 저습지에 부레옥잠,갈대 등 수생식물을많이 심어 조류와 곤충류의 서식처를 조성하기로 했다.또 자전거도로와는 별도로 양재천 전 구간에 하천 옆으로 생태학습탐방로를 따로 조성,산책하는 주민들이 물고기를 보면서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또한 양재천을 방문하는 주민들이 불편사항이나 건의사항이 있을 경우 사이버공간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양재천 인터넷 홈페이지도 개설한다.
  • 대한매일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최하림론(1)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시의 자리-최하림론. 1.거친 육성(肉聲)과 혼돈을 넘어서 고야의 한 그림에는 황폐하고 공포스러운 표정의 크로노스가 자식을잡아먹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그림 속의 주인공 크로노스는 ‘시간’을 상징하는 신으로서 자식을 낳는 족족 잡아 삼키는데,자식 중에하나인 제우스를 삼켰다가 제우스의 아내 메티스〔‘숙려(熟慮)’라는 뜻의 여신〕가 준 약을 마시게 되어 그를 토해놓는다.아버지의 뱃속에서 놓여난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무한지옥인 타르타로스에가두어 버리고 은(銀)의 시대를 펼친다. 인간 상상력의 한 중요한 테마가 실현되어 있는 크로노스의 신화에서, 우리는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류의 뿌리 깊은 욕망을확인할 수 있다. 크로노스의 자식들인 우리 인간은 그의 뱃속에서 삶을 영위하지만,그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을 열망한다.종교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 신화적 상상력을 실현하려는 욕망의 발현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 밖에 존재할 수 없으며,인간의 삶이란 결국 시간과 벌이는 고투의 흔적이다.시간은 모든 고통의 원천이자 자기동일성의 근원적 조건인 것이다.우리는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서 생의 좌표와 의미를 가늠하고 수정한다. 시간이 거쳐가고 남은 자리에 부려져있는 소모와 쇠약, 또 한켠에서 벌어지는 생성의 현장은 인간의 근원을 돌아보게 하는 냉엄한 지표이다. 인간의 경험과 욕망을 담아내는 문학은 궁극적으로 시간과 투쟁하는존재의 모습을 형상화한다.시의 경우,이 대결의 양상은 정서적 직접성과 대상의 중층성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는데,여기서 대상의 중층성이란,현실과의 역동적 상호 작용 속에서 구축되는 한 시인의 작품 세계에는 현실의 시간적 궤적과 생리적 연치가 더해가면서 변모하는 한자연인의 모습이 함께 담겨있음을 말한다. 시에는 시대와 개인을 통과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시는 시대와 개인,역사와 인간이 삼투하며 길항하는 생생한 내면의 현장이다.한 시인의 시세계를 조감함으로써 우리 자신 속에도 깃들어 살고 있는 시간의 신이 한 인간의 몸을 빌어 건네는 전언을 들을 수 있으며,아울러 몸 속에 지핀 시간과의 길고도 험한 싸움을 수행하는 한 정신의 고언(苦言)도 듣게 되는것이다. 이미 다섯 권의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1976),『작은 마을에서』(1982),『겨울 깊은 물소리』(1987),『속이 깊은 심연으로』(1991),『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1998) ― 을 상재한 바 있는 최하림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진지한 사색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압축된 풍경과 서정적 형식을 통해 형상화해 왔다.그의 시에서 우리는 지나온 역사의 의미와 그 현실을 통과한 한 개인의 정신의 풍경을,더불어 몸을 받은 존재로서 시간을 경험하는 한 인간의 고단한 삶의역정을 보게 된다. 최하림의 시가 현실참여적 성격을 보이는 1970,80년대는 전사회적으로 정치적 열기가 강렬한 시기였다. 소위〈시의 시대〉로 불렸던 이 연대(年代)에 시가 발휘한 힘은 분화(噴火)를 꿈꾸던 당대인의 욕망과 상상력에서 발원한 것이었다.극렬한 용출을 욕망하게 만든 억압적 상황은 역설적으로 시에 힘을 실어주었던 배후(背後)였으며,현실의 후광 속에서 시는 단일하면서도강렬한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와 현실의거대한 깃발 아래,개인의 실존에 대한 시적 사유의 깊이나 언어적 성취가 상대적으로 소외되기도 하였다. 시 장르의 폭발력이 외부에 있었던 만큼,현실적 열기가 지나간 현장에는 작부들의 사이비 신세타령만이 웅성댈 뿐,역사와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들은 이제 실종되고 없다.80년대가 부려놓고 간 피폐하고 앙상한 언어의 잔해들 위로,묵시록적 상상력과 정신분열증적 언어들이 쇄말리즘의 안개 속에 밀려와 있고,‘시의 죽음’이 풍문처럼떠도는 상황에서 한 세기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미만하던 세기말의 암울한 전망과 우려가 새로운 세기의 도래와함께 말끔하게 제거되면서,그 자리에는 기술자본주의의 지칠 줄 모르는 광란의 질주에 도취되어,그것에 저항하고 개입할 의지를 포기한상혼(商魂)들이 혼몽 속을 헤매고 있다. 최하림 시의 독자적 가능성은,‘역사적 연대’의 흔적들이 썰물처럼빠져나간 이 흉흉한 시점에서도 여전히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진지한천착을 서정적긴장 속에서 일관되게 수행해 오고 있다는 점,아울러그러한 작업이 자기 존재,나아가 존재 일반에 대한 깊은 성찰에까지닿아있어 시적 사유의 폭과 깊이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의 시에서 7,80년대의 날선 육성(肉聲)과 90년대의 세기말적 언어들을 넘어서는 치열한 시적 사유를 만나게 된다.깊은 고통과오랜 침잠의 시간들이 동행하는 그 세계에서,우리는 ‘역사의 시대’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개인의 실존적 고뇌들이 진지한 역사적 상상력과 조우하는 장면을 목도할 수 있다.역사와 개인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최하림의 시적 태도는 우리 시대 문학의 자리를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강인한 정신 속에 길이 있다.길을 만들고,그 길을 가는 것은 문학의 태생적인 운명이다.그것은 포기하지 않는 꿈이,문학의 배태(胚胎)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2.역사의 공범의식,그 도덕적 순결성〈아우슈비쯔〉는 시간의 진행을 진보의 역사로 인식했던 인류에게근본적인 반성의 계기였다.근대의 쌍생아인 자본주의와 역사주의 모두에 가능태로 잠복해 있던 폭력적 욕망이 그 포악성을 드러낸 자리에서 역사는 시간의 근본적인 의미와 방향을 인간으로 하여금 되묻도록 요구하였다.20세기의 인류에게 〈아우슈비쯔〉가 있었던 것처럼우리 현대사의 한 극점에는 〈광주〉가 놓여있다.역사적 상상력의 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결과적으로 역사적 현실로부터 선회하는 최초의 기점이 되었다.그것은 고통의 진원지를 응시하는 힘의부족에서 연유한 것이었는데,〈광주〉를 문제삼던 많은 사람들은,아예 〈광주〉가 서있던 ‘역사의 자리’를 떠나버리고 말았다.바로 이지점이, 최하림을 여타의 시인들과 갈라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한국사의 비극적 상징인 [광주]를 통과하면서,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권의 해체’라는 세계사적 변혁을 지나면서 최하림은 역사와 존재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사유 속으로 침잠한다.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의 붕괴를 그는 외부적 현실을 통해서 해소하지 않고, 역사를 내면속에 소환하는 방식으로 끌어안는다.역사의 내면화는 필연적으로 역사를 윤리학의 차원으로 환원한다.역사는 익명의 타자의 것이 아닌,주체의 윤리적 실천의 장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 대한공격적인 정서보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반성적 사유가 시의 주를 이루게 된다.낭만적 격정과 들끓는 고뇌로부터 한걸음 비켜선 자리에서 최하림은 지나온 역사와 시간을,그리고 시와 인간을 응시한다. 어둠과 함께 온 기억들에 싸여 나는/나를 밝혀주지 못하는 불빛을본다/빛이 멀면 편안하다 죄가 많은/우리는 죄들이 두렵고 어둠이 내려서/아름다우니 어둠에 몸 섞는다/이런 밤 새들은 얼마나 조심스레/그들의 하늘을 날았던지/내 영혼은 어디를 방황했던지/검은 유리 같은 공기 속에서 길들은/보이지 않게 밤으로 이동하고/새로운 추억이짐짝처럼 마른 나무 밑에 쌓인다/시간이 별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흘러 간다/시간을 따라서 광목도로 어디쯤 걸음을 멈추고 쉴 곳이 있을것이다/잠시 유숙할 집이 있을 것이다/우리에게 범한 죄를 우리가 사할 때가 있을 것이다/한 사람에게만은 사랑이었고 배반이었던 여자도어디쯤 있을 것이다/그러나 세상은 결국너를 버리고 달려간다/세상은 고통스럽고 일어서는 자는 숨을 수 없어서 불행하다/내 가슴은 사직처럼 허물어져간다/예감을 노래해선 안 된다/나는 밤으로 간다 잘있거라/한번도 힘껏 꽃잎 피지 못하고/한번도 힘껏 울어보지 못한/정다운 말들아 내 딸들아 ―「光木道路」 전문 한바탕의 회오리 같은 역사가 훑고 지나간 내면 세계에,짙은 허무와체념이 배음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쓸쓸한 어조 사이로 배어나오는고통과 절망 속에,내면으로 귀환한 역사의 흔적이 음각되어 있다. 이흔적이 구체화된 기억의 형상은 최하림의 역사 인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단초로서,그의 시 곳곳에는 역사가 남기고 간 상처가 고통의 기억으로 잔존해 있다.그 기억의 공간은,‘절망의 부레 찢어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악마구리같이 아우성치며’(「말하기 전에,나는」) ‘피투성이 된 붉고붉은 입술들’(「우리들은 오늘도」) ‘갈가리찢긴 육신의 목소리’(「무등산」)들이 ‘합창을 이루는’, 아비규환의 절규가 가득한 곳이다.이러한 고통스러운 공포의 기억을 조성한과거는‘몇 대의 트럭이 난폭하게 거리를 질러가고’(「부식 동판화」) ‘탐욕스러운 개들이 안개 속으로 달려가’ (「고통의 문지방」)며 ‘사나이가 시간을 죄스레 칼질하고 생채기에서 뚝,뚝, 피가 흐르는’(「상처」),폭력과 살육으로 얼룩진 광란의 시간이다.주목할 점은 이러한 과거의 기억이 역사 자체의 이미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시적 화자를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만드는 ‘죄와 벌’의 이미지로 출현한다는 사실이다.이는 “기억의 아이들이 붉은 얼굴로 지나가고/어디서인지 흰 이를 드러내며 킬킬킬킬/웃는 아이”(「섬진강」)와 같이 과거의 기억에 대응하는 심리적 이미지가 대체로 자조적이고 자학적인 형상으로 각인되어 시인의 내면에 환기된다는 점에서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역사적 현장을 투과하면서 굴절,각인된 이러한이미지들은 시인이 과거의 역사를 자기반성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최하림에게서 과거는 부정적 실체라기보다,폭압적 상황을 결과적으로 방기했던 고통스런 부채의 시간인 것이다. 역사를 내면화하는 이러한 방식은 최하림의 많은 시편들을 의식의풍경으로 읽게 만든다.인용된 시의 배경인 ‘어둠’의 상황은 죄의식속에 고통스러워하는 화자의 내면을 상징한다.‘빛’과 대조되는 ‘어둠’은,공포와 방황의 시간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윤리적 자의식의내면 상태를 보여준다.이 어둠 속에는 한국 근대사의 비극적 경험과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이 각인시켜놓은 고통스러운 상흔,시간을 역사의 진보로 인식한 20세기적 사유의 참담한 좌절이 가로놓여져 있다. ‘빛’으로 생각했던 역사와 시간의 배반을 절망적인 체념으로 추억하면서도,자신을 ‘어둠과 함께 온’ 역사의 주체로 사유하는 시인에게 과거의 기억은 ‘짐짝’ 같이 둔중한 고통의 추억이 될 수밖에 없다.광포한 역사의 기억이 형벌과 같은 공포의 대상이라면,그 기억의공간 속에서 시인은 자신을 유형수(流刑囚)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적인 역사,패배의 역사를 주체가 되어 감내하려는 태도는 최하림시의 역사 의식과 도덕적 순결성의 원천이다. 역사의 폭력에 희생된영혼들이 ‘보이지 않는 내 맘속의맘까지도 감시한다’(「죽은 자들이여,너희는 어디 있는가」)는 토로나,‘말’에 대한 자학적인 공격,그리고 시의 언어를 형벌로 인식하는 태도 등은 최하림이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의식의 내면으로 소환하여 현재의 윤리적 검열의 내적장치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베드로] 연작시들과 [소록도] 시편들은,자신을 불행한 역사의 공범자로 인식하는 시인의 이러한 의식을 반영한다.가롯유다뿐만 아니라베드로 역시,예수를 로마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아넘긴 공범자라는죄의식이 죽음과 패배의 시대를 통과한 최하림의 내면 속에 자리잡고있는 것이다. 포악한 현실의 암묵적 공범이라는 이러한 윤리적 자의식은 “우리에게 범한 죄를 우리가 사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대용서의 전제를 마련한다.이는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예수의 정신과 상통하는 것으로서,우리는 최하림의 시에서 개인의 윤리성의 문제로 화육(化肉)한 역사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그에게 있어서 역사는자신의 [시와 삶]을 향해 끊임없이 윤리적 질문을 투척하는 고통의실체인것이며,시는 역사에 바치는 고해성사인 셈이다.따라서 시 초반부의 ‘빛이 멀면 편안하다’는 진술은,회한과 고통이 배어있는 역설적 고백으로서,이러한 도덕적 순결성은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종교적인 성격에까지 닿아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최하림의 시는 시간을 보는 시각에서 지상으로 복귀한다. ‘사랑’이자 ‘배반’이었던 역사와, 역사의 연인들은 시간의 무심한흐름 속 ‘어디쯤 걸음을 멈추고 쉴’ 것이기 때문이다.시인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명멸하는 역사와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세상은 결국 너를 버리고 달려갈’ 것이고 역사의 전망을 모색하는 자는 ‘숨을 수 없어서 불행할’ 것이지만, 그래도 시인은 다시그 역사의 암담한 ‘밤으로 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예감을 노래해선 안 된다’는 당위적 진술과 ‘나는 밤으로 간다’는 고백 사이에는, ‘역사의 진보’라는 믿음의 종말이 몰고온 뼈아픈 각성과 현재의 암담함을 감내하겠다는 고뇌의 의지가 가로놓여 있다.시간의 냉혹함을 응시하는 유한한 역사적 존재의 허무와 절망을 그대로 끌어안으면서도 결코, 역사적 삶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서 우리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한 정신의 비장한 모습을 보게 된다. 역사를 자신에 대한 윤리적 성찰의 계기로 수용하면서도,다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최하림의 엄격한 현실주의에서 우리는 고결한 지상의 세계와 만난다.미래를 밝혀줄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은 현실을자기 성찰의 자리로 삼는 그 강인한 정신의 고도(孤島)는 우리에게시의 자리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3.인간의 실존,그 처연한 고요 현재는 과거의 기억 위에서 진행되며 모든 삶은 시간 속에 묻힌다는명제는,최하림 시의 기본 전제이다. 최근 시집『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에는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와 실존의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이 시집에 수록된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동일 제목의 두 편의 시는 최하림의 시적 작업이 그동안 집요하게 천착해온 두 테마를 압축해서 보여준다.두 편의 작품에서 추구하는 [집]이란,하나는 우리 모두가 다시 꿈꾸며 세워야 할 역사적 미래를 의미하고,나머지 하나는 실존적개인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적막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 두 개의 테마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작품 속에 나타나는데, 인간실존의 주제가 보다 근원적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것이 최하림 시의보다 깊은 심층을 이룬다고 하겠다.이는 역사의 문제를 개인의 윤리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개인적 실존의 문제를놓지 않고 역사적 현실을 응시하는 그의 자세는, 한 평론가의 지적대로 그를 ‘고전적 정신의 표상’으로 이해하게 하는 요인이다.개인의존재성에서 출발하여 현실의 문제에 육박해가는 이러한 특징은 최하림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그의 시의 미덕이다.[집으로 가는 길] 두 번째 작품에서 우리는 그가 도달한 개인적 실존의 한 극점을 보게 된다. 많은 길을 걸어 고향집 마루에 오른다/귀에 익은 어머님 말씀은 들리지 않고/공기는 썰렁하고 뒤꼍에서는 치운 바람이 돈다/나는 마루에 벌렁 드러눕는다 이내 그런/내가 눈물겨워진다 종내는 이렇게 홀로/누울 수밖에 없다는 말 때문이/아니라 마룻바닥에 감도는 처연한고요/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고요에 이르렀구나/한 달도 나무들도 오늘내 고요를/결코 풀어주지는 못하리라 ―「집으로 가는 길」(88쪽)전문 이 작품은 소리가 멎고 시간이 정지된 듯한 깊은 고적(孤寂)의 세계를 보여준다.원초적 고요에 휩싸인 흑백필름 같은 이 침묵의 세계에서 우리는 인간의 근원적인 실존의 풍경을 본다.모성의 자궁에서 나와 영원의 집으로 돌아가는 인간은,그가 출발한 고요의 세계와 도착할 침묵의 집 사이에 존재한다.그 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길을 가야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 ‘많은 길을 걸어’ 귀환하는 ‘고향집’은 실존의 근원지로서,길의 출발이었던 ‘어머니’조차 존재하지않는 무(無)의 세계이다.‘공기는 썰렁하고’ ‘치운 바람이 도’는그 적막의 세계에서 ‘벌렁 드러눕는’,이 시의 가장 처연한 대목은존재의 고단한 무게와 허무함을,행위를 통해 서늘하게 표현하고 있다.존재의 무게를 부려놓는 행위는 주검이 되어 땅에 몸을 누이는 행위를 환기시킨다.여기에서 시인이 도달한 ‘처연한 고요’가 감도는 ‘마룻바닥’은 내가 떠나온 어머니,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도달했을 인간 보편의 공간이자 삶 속에 내재한 근원적인 침묵의 세계이다.죽음이란,결국 존재를 끌고 다니던 침묵이 보편적인 고요의 세계로 돌아가 합류하는 영역인 것이다.그 거대한 절대 침묵의 세계 속으로의 편입,그것이 바로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이 ‘처연한 고요’의 세계에 도달했다는 진술은, 시인이 이미 이 상태를 경험했음을 의미한다.그것은 사물로부터의 소외를 처절하게 체험했던 투병기간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시인이 도달한 이‘처연한 고요’의 세계는 그의 시에 등장하는 ‘무색계’(「구천동시론」)의 심연을 이루는 정서이다.색신(色身)과 물질의 속박을 벗어나 순정신적 세계를 의미하는 무색계는,최근 시집(『굴참나무 숲에서아이들이 온다』)에 다수를 차지하는 만물과 교감을 누리는 시들의정신적 바탕이라 할 수 있다.사물로 스며들고 사물에 개방되어 만물과 동화(同和)를 경험하는 투명하고 정결한 세계는,이미 무색계에 들어와 있는 상태로서,사물과의 자유로운 정신적교감을 보여주는 이시들 속에 처연한 정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은 이 ‘무색계’가 육체적 실존의 끝을 기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하림의 시세계에 한 축을 이루는 개인적 실존의 문제는 그의 시에배어있는 허무와 쓸쓸함의 원천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존재의 막막함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실존의 처연함,그 서늘한 고요를 감지하게 된다.어떠한 과장이나 포오즈도 용납하지 않고 존재의 현실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그의 준엄한 태도는,현학적 사변과 요설,감상적 자기 연민과 소영웅주의가 만연한 오늘의 문학적 현실을 반성케 하는 시정신의 본질을 보여 준다.언어의 사원에서 울려나오는 서늘한 사유는,삶이 부과한 시의 자리이자 시가 돌아가야 할 시원(始原)이다. 김문주
  • 주요공기업 내년 2월까지 정비방안 확정

    정부는 내년 2월까지 한국전력과 한국통신 등 주요 공기업의 자회사43개사의 정비방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기획예산처는 15일 한국전력 등 주요 공기업 15개사의 자회사 43개사에 대한 처리방침을 내년 2월까지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상기관은 지난 98년 8월 53개 자회사를 정리하겠다고 발표했을 당시 정리되지 않은 35개사와 새로 공기업의 자회사로 편입된 한국통신엠닷컴,파워콤 등 8개사다.한국통신 자회사가 13개로 가장 많다. 예산처는 외부위탁(아웃소싱) 시장 활성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등 여건 변화를 반영,자회사로 존속할 필요가 있는지를 재검토하기로했다. 관련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확정할 방침이다. 검토 결과 민간시장 형성 등 경제·사회적 여건변화로 더이상 공기업으로 존치할 필요가 없는 기관은 민영화할 계획이다.또 부실로 회생가능성이 거의 없어 민영화가 곤란하거나 모기업으로부터 업무의독자성이 없는 기관은 통폐합할 계획이다. 한국통신 자회사인 하이텔CSC와 대한주택공사의 자회사인 한양공영등은 내년 2월까지 민영화하고 다른 자회사들도 이르면 2002년 상반기까지 정비하기로 했다. 한전KDN 등 약 10개 정도의 자회사는 존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공기업 자회사 중모기업에 통합할 기업은 통합하고 민영화할 수 있는 곳은 민영화하는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었다. 곽태헌기자 tiger@
  • [사설] 大유럽의 등장

    프랑스 니스에서 세계사에 중요한 문서로 남을 조약이 작성되었다. 유럽연합 회원국인 15개국의 정상들은 7일부터 11일 새벽까지 긴 마라톤 협상 끝에 대부분 공산권이던 중·동유럽의 12개국을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합의했다.‘니스 조약’으로 불릴 이 합의에따라 12개국이 새로 들어가고 또한 오랫동안 가입후보국으로 남아 있는 터키까지 가입한다면 유럽연합은 앞으로 28개국을 아우르는 커다란 국가연합이 된다.거대 유럽의 등장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니스 회담에서는 회원국 확대와 관련해서 각료회의 투표권 재조정이있었다. 이 조정은 국익과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합의가 어려웠다.강국인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는 소국들의 투표권이 늘어남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어렵게 될 것을 원치 않았고 투표권이적은 소국들은 유럽연합이 소수 강국에 끌려다니게 될 것을 우려했다.특히 포르투갈은 이웃인 스페인의 27표에 비해 12표는 너무 적다고반발했다.가장 인구가 많은 독일은 가장 많은 투표권을 지니기를 바랐으나 프랑스,영국,이탈리아와 똑같이 29표씩으로 하는 대신 유럽의회 투표권 5표를 더 배당받는 선에서 양보해 파국을 막았다. 여기에서 보듯 회원국 확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또 폴란드,헝가리,체코 등 중·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이 즉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일러야 2004년부터다.이번 합의 사항은 유럽의회와 각국 의회에서 통과되어야 효력을 나타낸다.유럽의회에서 부결시키겠다고 공언하는 유럽의회 의원들도 있어 낙관만 할 수는 없다.그러나,두 차례의세계대전을 겪은 뒤 움튼 유럽통합의 이상은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성립을 밑바탕으로 하여 현실화 과정을 착착 밟아왔다.유럽경제공동체를 거쳐 유럽연합에 이르기까지 유럽통합주의자들은 수많은시련과 장애를 헤쳐왔다.이제 ‘대서양에서 우랄까지’의 통합은 더이상 꿈이 아니다. 유럽 정상들은 6만명 규모의 신속대응군 창설에도 합의했는데 미국을 주축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관계설정이 숙제다.서유럽국가들은 그들 안보의 보호막인 이 기구의 약화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독자성을 갖춰 미국의 입김을 덜 받고 싶어하고,미국은 유럽의 그러한 움직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대유럽이 등장하면 유럽과 미국의 관계,더 나아가 세계 정세에 변화가 올 것이다.그 변화는 우리 외교와 통상환경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유럽에서는 거대세력이 형성되고 있는데,우리는국내의 작은 이익다툼에만 눈을 두다 세계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하는것은 아닌지,눈을 들어 멀리 봐야 할 때다.
  • 사회장관회의 뭘 논의하나

    앞으로 사회관계장관회의는 어떤 안건이 주 의제가 될까.운영은 또어떻게 이뤄질까.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첫 사회관계장관회의는 향후회의의 의제와 운영방향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최인기(崔仁基)행정자치부 장관은 회의를 마친 뒤 “회의운영 전반에 대한의견교환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운영방향 및 안건] 사회관계 분야는 업무의 독자성이 강하고 부처간연계성이 약한 만큼 부처별 고유업무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부처 자체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협의했다.그러나 ▲관계부처간 사전 협의·조정이 필요한 사항 ▲자치단체 및 관련 행정기관의 협조·지원이 필요한 사안 ▲기타 사회안정을 해치거나 사회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많은 사항에 대해서는 관계장관회의의 주 의제로 삼기로 합의했다. 구체적 심의안건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요소가 있는 업무를 비롯,▲사회 안녕 질서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업무 ▲관련부처간 지원 협조가 절실히 요청되는 업무 ▲정책집행과정에서 국민적 참여나 합의등이 필요한 업무 등이다.국제경기대회의 종합적지원방안이나 청소년 보호,환경보전 등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요청되는 사안도 주요 안건이 된다. [주요 정책 과제] 해당 부처들이 내놓은 주요 현안은 4개 분야로 요약된다. 첫째가 사회기강확립이다.정부는 이를 위해 연내에 비정부조직으로인권위원회를 두는 내용의 인권법 제정을 비롯,▲부패방지법의 입법을 추진하며 ▲불법 집단행동의 엄정대처로 사회기강을 확립키로 했다. 둘째가 국정개혁의 지속추진이다.구체 사안으로는 외국인 근로자 고용 관리법을 제정,외국인력의 활용을 위한 제도 개선과 ▲남녀평등에걸림돌이 되는 법령 정비 ▲노동관계법 개정을 통해 노동부문 개혁을마무리하기로 했다. 셋째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이를 위해 의약분업의 조기정착을추진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또한문화복지의 확대 및 문화·관광사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키로했다. 마지막으로 국민대화합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일이다.분야별,계층 집단 지역간 화해 운동도 그래서 전개된다.자치단체간교류활동 및 지역공동개발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의견을 모았다. 홍성추기자 sch8@
  • [문화도시 문화거리](6)연극·미술의 고장 밀양

    밀양백중놀이,밀양아리랑 등의 전통놀이문화와 얼음골,표충사,영남루,사명대사 유적지 등의 손꼽히는 문화유산을 간직한 밀양.부산 마산창원 울산 등 인근 대도시를 잇는 삼각지대에 위치한 인구 13만의 중소도시 밀양은 오랜 세월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속이 알찬 문화도시로 성장해왔다.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대신 보이지않는 곳에서 꾸준히 문화의 향기를가꾸는 전통은 요즘에도 그대로 이어져온다.그중에서도 문닫은 초등학교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창의적 노력은 단연 눈길을 끈다.전시성 문화행정이 아니라 생활에 밀착한 일상의 문화를 추구하는 밀양의 남다른 문화예술관을 엿볼수 있는 상징적인 대목이기 때문이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지난해 9월 연희단거리패 단원 60여명과 함께부북면 가산리 월산초등학교에 터를 잡은 ‘밀양연극촌’은 1년새 이 지역의 새로운 ‘문화명소’로 자리잡았다.밀양시와 밀양시교육위원회의 배려로 5년간 무상임대한 500평 규모의 폐교에는 연습실과 무대제작실,의상제작실,조명기자재실,숙소 등이빼곡이 들어차있다.운동장 한귀퉁이에는 400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통나무 의자를 들여 ‘숲의 극장’을 꾸몄다. 이곳에서는 주말 저녁마다 연희단거리패 고정레퍼터리와 신작들을 공연하는 ‘주말극장’이 열리는데 인근 주민들을 위한 ‘동네극장’인데도 부산 마산 대구 울산은 물론 서울에서도 차를 몰고 내려와 주말마다 운동장이 주차장이 될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네살먹은 어린애부터 팔순 할머니, 때론 술취해 주정하는 관객들까지 ‘숲의 극장’은모두 포용한다.“연극의 문턱을 낮추면 관객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밀양에서 깨닫게 됐다”고 이윤택은 털어놓는다. 내후년쯤엔 이곳서 아시아공연예술축제가 열릴 전망이다.‘아시아의전통과 동시대적 창조’란 주제아래 한국과 일본,중국을 중심으로 인도 몽고 등 남방문화를 아우르는 대규모 공연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밀양을 동시대 문화예술의 메카로 부상시킬 야심에 부풀어있다.지금까지 밀양연극촌이 해낸 문화적 성과를 감안하면 헛된 욕심으로 끝날것같진 않다. 산내면 가인리에 자리한 가인예술촌도 독특한 지역문화공간의 모범으로 꼽을 만하다.96년 10월 가인초등학교에 문을 연 가인예술촌은뜻맞는 밀양 미술인들의 공동작업실 겸 지역주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톡톡히 한몫을 해내고 있다.현재 이곳에는 박장길(서양화)심점환(서양화)이정형(조각)등 8명의 작가들이 한솥밥을 먹으며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입촌을 원하는 작가는 기존 작가들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1년에 개인전 1회이상,그룹전 3회이상에 참여해야 하는 등 규칙이 엄격한 만큼이곳 작가들은 누구보다 왕성한 창작활동을 자랑한다.교사 한켠에 전시실을 마련해 번갈아가며 상설전시회를 여는 한편 부산,마산 등 인근 대도시에서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지난해에는 이곳에서‘한국 미디어아트 현황과 과제’(2월)‘한국 현대미술의 쟁점’(6월)을 주제로 두차례 학술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당시 이곳을 방문한 도쿄대와 고베대 교수들은 “저력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가인예술촌은 또 매년 여름 ‘가족캠프’를 열어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도자기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등 일반인을 위한 문화공간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박장길씨는 “언젠가는 이곳에서 밀양비엔날레같은국제미술행사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극촌이나 예술촌과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초동면 범평리 범평초등학교의 ‘미리벌민속박물관’도 밀양의 개성있는 지역문화공간이다.98년7월 개관한 이곳은 성재정 관장이 30년간 일일이 모은 손때묻은민속유물 2,400여점이 전시돼있어 학생들의 시청각교육장으로 그만이다.밀양지역은 물론이고 부산,창원 등에서 단체로 관람오는 일이 잦고,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주말에 오는 외지 관람객도 300∼400명을헤아린다.성관장은 “폐교를 선뜻 개인에게 내준 밀양시의 문화정책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문화도시는 번듯한 문화예술회관이나 야외공원을 짓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지역주민들이 좀더 가깝게 문화를 접하고,향유하는 문화네트워크의 구축이야말로 진정한 문화도시의 필요조건이라 볼때 밀양은 한발짝 앞서가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밀양 이순녀기자 coral@.*이렇게 가꿉시다- “아시아 전통 숨쉬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밀양(密陽)을 나는 ‘비밀스런 양지’라 부른다.그만큼 밀양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다.인구 13만의 밀양시는 몇십년이 지나도 인구가 늘지 않고 공장도 큰 호텔도 들어서지 않는다.우리극연구소가 밀양에 연극촌을 세울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밀양의 한적함때문이다. 한때 1,000여명에 이르렀던 한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40여명으로 줄고,급기야 폐교의 운명을 맞으면서 우리는 꽤나 크고 시설이 좋은 학교를 연극촌으로 접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밀양은 이런 식으로 폐교된 초등학교가 가인예술인촌,민속박물관 등으로 탈바꿈하고 있다.폐교된 학교를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창작의 산실로 활용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밀양시장 이상조씨의 발상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로 변화하는 지금 고도 정보통신사회의 뒤켠으로밀려나고 있는 밀양을 자연과 문화의 도시 이미지로 탈바꿈시키려는시장의 발상과 열정을 시민들 또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밀양의 문화는 뭐니뭐니 해도 맑은 물과 부드러운 황토 흙,그리고 녹색 환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이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서슬퍼런 전통이 버티고 서있다.표충사,안동 손씨 집성촌,여주 이씨 집성촌 고택 등은 우리에게 민족의 본래적 심성과 생활양식을 일깨우는귀중한 교육장이 될 수 있다.이 자연과 전통을 문화적 기반으로 하여 이제 동시대의 예술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가인 예술인촌은 화가들의 창작 산실이고,밀양연극촌은 지금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의 종합연극제작소로 조성되고 있다.밀양시내 실내체육관을 800석 규모의 무대 공연장 겸용으로 전환하는 작업 또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적극적인 동시대 문화 수용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면,자연과 전통의 도시 밀양은 동시대 문화 예술의 메카로 부상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밀양을 프랑스의 아비뇽이나 영국의 에딘버러처럼 세계적인 페스티벌을 열어 도시의 이미지를 제고시켜야 한다는식의 현시적인 발상을 경계한다.세계적인 문화도시라는 환상을 따라가다가는 특색도 없는 백화점 나열식의 문화 전시장이 되기 십상이다.나는 차라리 비밀스런 양지 밀양이 생명 생태 환경친화의 도시문화,혹은 아시아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전통과 창조의 예술이 생산되는도시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밀양에 가면 맑은 바람과 공기와 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란 캐치프레이즈는 공장이 들어서지 않는 도시란 오명을 자부심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아니면,‘밀양에 가면 아시아의 아름다운 전통이 동시대의 예술로 창조되고 있습니다’란 문화적 발상이 세계적이란 환상 보다 훨씬 알차고 독자성이 있을 것이다.나는 밀양이 이런 환경도시,아시아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문화도시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윤택 연극연출가 밀양연극촌 예술감독
  • 인체 신비를 벗긴다/(하)연구방향과 대응전략

    인간유전자 지도초안 발표로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의 게놈 연구방향과 대응전략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 게놈연구는 90년 시작된 미국 중심의 인간게놈프로젝트(HGP)에 대응,94년 과학기술처 시범사업으로 처음 실시됐다.하지만 본격적인 게놈연구는 지난해 말 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21세기 프론티어사업의 시범사업으로 ‘게놈 기능분석을 이용한 신유전자 기술개발사업’이 채택되면서부터다. 80년대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미국 영국 등 과학 선진국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연구수준은 걸음마에 불과하다.원천기술 투자도 미흡하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기술경쟁력은 선진국의 60% 수준에 불과하다.그러나 출발은늦었지만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단장 兪香淑)은 염기서열 공개를 계기로후발주자로서의 열세를 만회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한국형 게놈연구 본격화 유 박사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열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의 특이한 체질과 질병에 초점을 맞춘다면 국내 연구의 독자성과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단은 이에 따라 위암·간암 등 외국인에게는 발생빈도가 낮지만 한국인에겐 빈발하는 질병관련 유전체를 대상으로 삼아 연구력을 모으기로 했다.과제로는 ▲위암·간암 유전자 및 단백질의 초고속 발굴기술 개발 ▲한국인의특이 단일 염기변이(SNP) 발굴 ▲위암·간암 관련 유전체의 기능연구 ▲한국인에게 자주 일어나는 질환의 유전체 연구 등 4가지를 정했다. 이들 과제에 대해 총 40여가지의 세부과제가 확정되는 대로 연구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3년안에 위암·간암 조기진단 가능 사업단은 2003년까지 1단계로 핵심기반기술 및 한국인 특유의 유전자원을 확보한 뒤 2단계(2004∼2006년)에는 신규유전자의 기능을 정밀 분석하고 응용기술 개발을 목표하고 있다.3단계(2007∼2010년)에는 곧바로 약품개발에 쓸 수 있는 최종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진단·치료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사업단에 따르면 앞으로 1년안에 위암·간암을 발현시키는 특이 유전자를찾아낼 수 있는 DNA칩을 개발한다는 것이다.국내 최초의 임상조직 은행 표준안이 제정되며 개인 유전정보의 보호·남용·교육에 대한 지침이 제정되는등 유전체 기능연구의 토대도 마련된다.3년 후에는 위암·간암용 진단키트를개발하고,위암·간암을 유발하는 ‘후보유전자’ 1,500개와 목표유전자 150종을 구명(究明)하며,치료에 쓰일 수 있는 신약 후보물질 5종을 확보하는 등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계획이다. 한국인에게 많이 나타나는 위암·간암환자의 생존율을 10∼30% 수준에서 6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한국형 게놈프로젝트에는 앞으로 10년간 1,740억원이 투입된다. ■정부 지원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바이오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정부에서도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을 인식,지원을 늘리고 있다.올해 정부가 바이오산업에 투자하는 규모는 총 2,140억원으로 지난해(1,608억원)보다 33%늘어났다.과기부가 기초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고 산업자원부는 생명공학의인프라 구축과 개발 기술의 산업화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2010년까지 생물산업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 아래 바이오산업 인프라구축을 위한 5개년 계획(2001∼2005년)을 마련했다.지자체를 중심으로 생물산업의 지역혁신 거점을 구축하고 네트워크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생물산업발전기반조성 및 유전자변형 생물체의 수출입 등에 관한 법률안’(약칭 생물산업법)도 올 정기국회에 낼 계획이다. 함혜리기자 lotus@. *국내업계 움직임. 유전자지도 초안발표로 국내 대기업들과 제약사,벤처들도 유전체 정보가 가져올 막대한 시장성을 나름대로 전망하면서 발빠르게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생명공학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은 LG 삼성 SK 제일제당 한화 두산 등 10여곳. LG화학은 올해 바이오산업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제휴사인 스미스클라인 비참사로부터 받은 퀴놀론계 항생제에 대한 5차분 기술수출료 1,000만달러 등 그동안 바이오산업으로 벌어들인 수익금 1,000억원으로 바이오펀드를 조성,3∼4년에 걸쳐 벤처기업과 대학에 재투자할 계획이다. ‘제 2반도체사업’으로 생명공학산업을 선정한 삼성은 앞으로 3년간 총 3,000억원을 투자한다.그룹 내 삼성종합기술원과 삼성정밀화학을 중심으로 생명공학전문 기업의 설립을 추진 중이다.DNA칩과 진단 칩 등 진단분야 기술개발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SK케미칼은 그동안 중추신경계와 간질치료제,우울증치료제 등 가시적인 성과를 올린 데 이어 올해 50억원을 바이오벤처에 투자하기로 했다. 발효와 백신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제일제당은 첨단 생명공학기업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앞으로 5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한다.올해 안에500억원을 투입,미국에 바이오기업을 세우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대상도 올해부터 3년간 2,000억원을 투자,생명공학을 집중 육성한다. 동아제약 녹십자 종근당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 생명공학과 밀접한 제약회사들 역시 바이오벤처기업에 투자를 늘리는 한편 이들 기업과 기술제휴로 신약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바이오벤처기업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바이오니아(DNA칩),프로테오젠 (단백질칩),바이오넥스(SNP발굴),넥스젠(GMO검색키트),제노텍(DNA합성),툴젠(유전자 기능조절) 등 바이오벤처들이 유전정보를 응용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국내 바이오시장은 올해 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2010년 9조원,2015년 15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함혜리기자. *優性인간만 활보하는 새 통제사회 올것인가. 1990년 저서 ‘역사의 종언’을 통해 냉전이후의 인류문명을 예언했던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조지 메이슨대 교수가 게놈지도의 완성으로 생명공학의 발달이 인류에 미칠 위험성을 경고했다.28일자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에 실린 후쿠야마교수의 글 ‘자연정복의 이정표’를 요약한다. 미국의 셀레라사와 인간게놈프로젝트(HGP)가 공동발표한 인간 유전자지도초안 완성의 의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상업적인 면에서는 벌써부터 인간게놈지도의 완성이 인류의 건강과 행복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과대평가되고 있다.이같은 기대는 분명히 부풀려졌다.과학자들이 이뤄낸 것은사전 한권 없이 전혀 알지못하는 외국어로 씌어진 두꺼운 책을 이제 막 옮겨쓰기 시작한 단계에 비유할 수 있다. 방대한 양을 해석해야 하는 엄청난 작업이 남아있다.연구자들은 게놈지도를구성하는 유전자들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어떤 유전자가 특정 단백질을생성하고 어떤 단백질이 유방암과 지능,알츠하이머병,장수 등을 유발시키는지 구명(究明)해내야 한다.민간기업들은 게놈지도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 방법에 대해 특허권을 주장해야 한다.인간게놈지도 초안완성 발표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초안 완성의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인간 유전자 지도를 해독해냄으로써 약품개발에는 큰 진전을 가져올 것이다.현 단계에서는개인유전정보에 대한 비밀보장과 특정 유전정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 등이문제로 지적된다.어쨌든 이번 성과는 500년간 진행돼온 자연정복을 통한 ‘인류구원’작업에 중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인류역사를 통해 인간이 정복하고자 했던 자연은 홍수,전염병,가뭄,기근 등외적 환경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를 억제하는 것은 이보다는 인간의 본성이다.유한하고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인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유전자 정보의 해독은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계속돼온 인성을 둘러싼 ‘본성(nature) 대 양육(nurture)’의논쟁,즉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특성들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데 기여할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사회과학자들은 인간행동에 변화를 주는 것은 전적으로 생물적 특질이 아닌 주변환경과 문화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쌍둥이의 행동특성 연구를 통해 환경보다 유전적 요인들이 인간 행동을 지배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인간의 행동을 유전자 분자 차원에서 설명할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달한다면 이같은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다.그 결과인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운명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원치않는 해답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르크스가 소위 ‘본성의 영역’이라고 칭한 것들이 인간의 열망을 제한하게 된다면 인간들은 이 본성을 바꾸기 위해 유전정보를 활용하려들 게 뻔하다.부모가 원하는 외모와 지능 등을 조합한 ‘맞춤 아기’의 탄생도 가정해볼 수 있다.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정보를 확보한 뒤에는 이를 통제할 수있는 더욱 막강한 수단도 고안해낼 것이다. 만약이런 사태가 현실화되면 유전정보를 다루는 회사들은 일반인들의 우려를 무마시키기 위해 애쓸 것이다.생명공학은 인류를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질병퇴치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변할 것이다.그러나 생명윤리학자인 레온 카스의 지적처럼 치료와 개량은 명쾌하게 구분짓기 어렵다. 첨단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외모와 지능,사회 적응력을 개선하는 것이 왜잘못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논리 뒤에 숨어있는 순수하지 못한 ‘목적’이다. 프랑스혁명에서 냉전에 이르기까지 급진적 혁명세력들은 인간의 본성은 사회정책을 통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고 믿어왔다.혁명이념에 맞지 않는 본성은 재교육이나 노동수용소에서 교정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이런 신념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20세기 후반 자유민주주의가 득세하며 사회주의의몰락을 가져왔다. 인간게놈지도의 해독으로 인류는 혹시 전세기에 퇴조한 사회개조론을 보완,합리화하는 근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미래에는 우파가 아닌 좌파가 사회적 불평등을 고친다는 명분아래 우생학을 옹호하고 나설지도 모른다. 정리 김균미기자 kmkim@
  • [新 김정일 연구](4)경영개념 도입

    ‘실리 보장’.이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부터 강성대국 건설을 외치면서 경제사업의 맨 앞자리에 내세우는 지침이다.‘통 큰 지도자’로선전되는 김국방위원장이 경제를 직접 챙기면서 ‘작은 것’에까지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지난해 6월 어느날.점퍼 차림으로 측근 간부들을 거느리고 신의주 화장품공장 현지지도에 나선 김국방위원장은 꾸짖는 어투로 ‘강령적 과업을 제시’(지시)하고 있었다. “공장 건물만 요란하게 지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경공업공장에서는 인민들에게 실지(실제로) 필요한 상품을 많이 생산해야지,멋따기 놀음(멋내기)을해서는 안됩니다” 허세만 앞세우고 ‘실제적인 이익’(실리)은 따지지 않고있다는 따끔한 질책이었다. 김국방위원장의 실리 중시 지침은 올해 신년사설을 통해 전 주민들에 하달됐다. 김국방위원장이 실리 중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9월부터.먼저 정부조직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정무원을 내각으로 바꾸면서부총리를 종전 9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 37개부(部)와 위원회를 32개 성(省)과 위원회로 대폭 축소했다.이는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돼온 연합기업소와 공장들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기 위한 전초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을 전후해서 북한의 기업소와 공장들이 크게 달라지기시작했다.기업소와 공장들의 변화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대대적인 조직개편이다.이는 남한판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연합기업소와 큰 공장 50여곳이 일반 기업소와 공장으로 축소·개편됐다. 북한이 ‘우리식 새로운 기업소 조직 형태’라고 자랑해오던 ‘연합기업소’의 명맥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곳은 성진 제강연합기업소와 상원 시멘트연합기업소 등 몇 곳에 지나지 않는다.기업소와 공장에서는 경영혁신도 함께이뤄지고 있다. 부분적이나마 ‘기업경영의 독자성’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채산제가 확산되고 있다. 조직 축소와 경영혁신에 대한 김국방위원장의 의지는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지난 1월 평북지역 경제부문을 현지지도하면서 ‘공장·기업소들의관리운영사업을 개선하며 경제사업에서 새로운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는 지침’을 제시했다고 그 당시 노동신문은 전하고 있다.그는 또 비슷한 시기 평북지역 토지정리사업 현지지도에서 도 간부들에게 ‘얼렁뚱땅하여 기름예비를조성하는 것’(얼룽뚱땅하여 기름을 많이 타 가는 것)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이에 따라 지금 북한에서는 자재를 낭비하거나 기업관리를 무책임하게 한 사람에 대해서는 엄중한 문책이 가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국방위원장이 이처럼 기업소와 공장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을 가하고 있는것은 비대해진 조직의 군살을 빼고 낭비 요인을 줄여 내실을 기하고 효용을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김국방위원장의 실리 중시는 북한에서 추진되는 각종 대형사업에서도 반영되고 있다.지난 98년까지만 해도 전체 건설사업 가운데 경제나 주민들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정치선전물 공사 비중이 40%선에육박했으나 지난해부터는 10% 수준 미만으로 낮아졌다. 기업소와 공장의 대대적인 관리·운영방식의 변화가 계획경제의 틀을 새로짜는 방향으로 움직일지,아니면 부분적으로나마 시장경제 쪽을 향할 것인지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한·중·일 합작 ‘춘향전’ 무대 오른다

    3국(國)3색(色)의 춘향전. 고전 ‘춘향전’이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 공동으로 제작돼 서울 무대에 오른다.한국ITI(대표 양혜숙)와 베세토위원회(위원장 김의경)는 오는 10월 19∼22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3국이 각각 고전극 스타일로 만든 다국적 ‘춘향전’을 공연키로 했다. 전 3막 가운데 1막은 중국의 월극(越劇),2막은 일본의 가부키(歌舞伎),3막은 한국의 창극(唱劇)으로 구성한다.한 작품안에 3명의 춘향과 몽룡이 등장하는 셈.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그릴 1막은 중국을 대표하는 월극단인 절강소백화월극단이 맡는다. 중국에서는 이미 54년과 78년 두차례에 걸쳐 춘향전이 월극으로 소개돼 현지에서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작품이다.경극이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고전극인데 비해 월극은 20세기초 항주·상해 지역에서 탄생한 지방 전통극으로 30년대부터 모든 연기자들을 여성으로 제한한 것이 특징.연출을 맡은 양샤오칭은 배우 출신으로 국가1급 연출가 칭호를 받았다.배우 15명,악사 11명 등 모두 40명이 내한할 예정이다. 2막은 춘향의 옥중 장면으로,105년 역사의 가부키극단 쇼쿠치가 참가한다.가부키는 17세기 중반 형성된 고전극으로 초기에 ‘여자 가부키’‘소년 가부키’등의 과도기를 거쳐 남자만 출연하는 형식으로 굳어졌다.‘월극’과 정반대인 셈. 춘향전은 1945년 일본에 처음 전해진 뒤 현대극과 오페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으나 가부키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아름다운 여자역을 잘 소화해내는 배우로 유명한 나카무라 시바자쿠가 춘향으로 등장한다. 어사출도와 두 청춘남녀의 재회 등 스펙터클한 장면이 많은 3막은 국립창극단이 공연한다.한국측 연출 겸 총연출을 맡은 손진책은 “3국이 각기 독자성을 살리면서도 일관된 흐름을 갖도록 세심히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본공연 전후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3국 배우와 악기가 모두 출연하는 화합의 장으로 연출할 계획이다. 김의경위원장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개최기간에 때맞춰 각 나라 고전극의 특성을 한눈에 비교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중·일의 문화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94년 조직된 베세토위원회는그동안 세나라를 번갈아가며 연극제를 열어오다 올해 처음으로 합동공연을 갖게 됐다. 이순녀기자 coral@
  • [환율 비상](중)정책방향 어떻게… 전문가 제언

    정부의 환율정책이 기로에 섰다.환율을 시장자율에 맡기면 환율 폭락세로 국내 수출업계가 아우성이고,당국이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면 지금까지의 ‘자율화 정책’ 기조가 무너져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상반되는 입장을 가진 두 전문가의 제언을 통해 환율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본다. ◆유인열(柳仁烈)한국무역협회 이사 최근의 환율 동향은 절상 속도가 지나치게 높아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지난해 9월말 이후 이미 8.3%나 절상됐고 올해도 외국인의 주식투자 확대,외국인투자 유치 및 금융기관의 외자유치 등 금융거래에 의한 절상요인이 매우 걱정된다. 문제는 이러한 절상 추이가 기업이나 국민경제측면에서 감내할 수 없다는데 있다.우선 기업측면에서 볼 때 수출의 경상이익률이 5∼6%에 불과한 실정에서 급속한 절상은 기업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또한 현재의 환율은 적정환율(1,206원)을 크게 하회할 뿐 아니라 손익분기점 환율에 근접해있다. 국민경제 측면에서도 장기적으로 유지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이제겨우 외환위기를 벗어났으나 국제투기자금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국제금융질서하에서 대외적인 경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대외부채에 버금가는 수준의 공적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이는 앞으로 최소한 5년 정도는 100억달러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요 경제예측기관은 올해에도 약 100억달러 정도의 흑자를 보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나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국제상품가격 등 수입단가의 하락으로 수입금액이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무역수지가 흑자를 나타내고 있으나 앞으로 수입가격이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면 수입이 급증하여 무역수지가 조만간 적자로 반전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이를 볼 때 원화의 추가적인 절상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외환시장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으나 환율은 정부의 중요 정책수단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국제투기,금융거래 등에 의한 환율수준의 왜곡으로 경제의 건실한 성장이 저해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흔히 환율조작국 시비를 불러 일으킬 것을 우려하나 현재와 같은 외환시장 체제하에서는 이러한 시비는 어불성설이다. ◆정영식(鄭永植)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두가지문제를 안고 있다.첫째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원화를 약세로 반전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개방과 외환거래 자유화의 확대로 외국자본 유출입이 빈번해지고 있어 외환정책의 독자성이 약화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능력도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정부의관할지역이 아니면서 국내 외환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홍콩의 역외 NDF(Non Delivery Forward)시장도 정부의 시장개입 능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이로 인해 정부의 개입 능력은 과거와 달리 크게 제한되고 있다.실제로 정부는 작년에 원화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세차례에 걸쳐 외환시장 개입을 발표,환율을 일시적으로 상승시켰으나 장기적으로는 하락세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둘째는 정부가 원화강세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시장개입으로명목 환율이 시장 실세환율을 크게 벗어나 우리 외환시장이 환투기 대상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외환위기라는 뼈저린 과거를 가지고 있다.외환위기 이전 원화가 시장 실세환율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원화 강세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기능을 거스르는 대규모 개입을 단행했다. 당시 정부의 개입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우리나라는 국제투기자본의 환투기 공세를 이기지 못해 외환위기에 빠졌다.작년 12월에 나타난 원화의 급격한 강세도 원화가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시장 실세가격을 반영하지못하자 투기자본이 역외 NDF시장에서 달러를 대량 매도하면서 촉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외환정책과 시장개입은 시장 기능을 제고하고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그러나 최근 정부의 시장 개입은 원화 강세를약세로 반전시키는 데까지 확대되고 있다.이러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중장기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수출에 미치는 영향 환율하락은 수출에는 부정적인영향을 주는 반면 물가안정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따라서 환율정책 수립에는 이 두가지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환율이 수출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각각 알아본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된다.단가 1달러짜리 상품을 수출하는 경우,1달러=1,000원일 때와 1달러=500원일 때를 비교하면 원화 수입은 절반으로 떨어진다.수출업체는 2달러는 받아야 되므로 달러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외국의 주문은 줄어든다.수출이 줄게되는 것이다. 환율이 5% 하락할 때 수출은 10억달러 감소하고 수입은 14억달러 늘어나는것으로 무역협회는 추정한다.20% 하락하면 무역흑자가 96억달러나 감소한다는 계산이다. 수출업체들은 처음에는 달러가격을 올리지 않기 위해 비용을 줄이든가,가격을 올리지 않고 판매량을 늘리는 방법 등으로 채산성 감소에 대응한다.손해를 감수하고서도 바이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수출을 하는경우도 많다.무협의 조사에 따르면 수출기업의 절반 가량은 환율이 10% 오르더라도 수출가격을올리지 않고 채산성 감소분을 그대로 감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지속적으로 오르면 결국 수출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LG경제연구원은 환율이 10% 떨어지면 국내 제조업체들의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이 3.5% 감소하고 수출가격이 6%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무역업계는 수출 손익이 0인 손익분기환율을 1,120원으로 보고 있다.산업별로는 경공업이 1,135원,중화학공업은 1,096원인 것으로 추정한다.따라서 현재의 환율은 손익분기점에 거의 도달했다.수출을 해도 이득이 없다.특히 환율 변동이 적은 중국이나 동남아 등과 경쟁하고 있는 섬유업종은 채산성이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손성진기자 sonsj@] 환율하락, 물가에 미치는 영향* 환율 하락은 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환율이 떨어지면 달러화로 들여오는 수입품의 원화표시가격이 내리기 때문이다. 특히 원유가 등 원자재·부품 가격의 하락은 국내 산업 전반의 제조원가를줄이는 효과를 낸다.국내 제조업체들은 원유와 철강재,비철금속 등 원자재조달을 수입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 환율하락의 물가억제 효과는 매우 크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을 1%이하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환율하락의 공이 컸다.물가안정은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중 하나이며 정부는 이를 위해 환율하락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화환율이 10% 떨어지면 소비자물가는 최대 1.7%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난해 환율이 98년에 비해 15% 이상 떨어졌으므로 소비자물가를 2∼2.5%포인트 끌어내렸다는 설명이다.환율하락이 없었다면 소비자물가가 3% 이상 올랐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98년에는 전년에비해 환율이 46%나 상승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5%나 됐다. 지난해 당국이 사실상 환율하락을 용인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던 것도 물가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환율하락은 수출을 감소시켜 기업의 채산성과 국제수지를 악화시키고 설비투자를 둔화시키기 때문에 환율정책은 항상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없다. 현재 경제 상황에서는 인플레 압력을 완화하고 무역수지 흑자를 크게 감소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적절한 환율정책이 요구된다. 손성진기자
  • [발언대] 실질적 지방자치 이뤄 중앙집권 폐단 없애야

    새천년이 밝았다.새천년의 희망찬 해를 바라보면 새로운 꿈과 포부에 들뜰만도 한데 오히려 착잡한 심정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분단현실,부패공화국,비방과 책임전가만 난무한 정치,심화되는 빈부격차,그리고 이벤트성 행사로멍든 문화.우리 사회의 곳곳에 깊이 스며있는 구습을 그대로 안은채 새천년을 맞이하는 심정은 오히려 처절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사회가 비틀어지고,일그러진 것일까.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앙집권화,중앙집중의 문제가 제일 크다.속도제일주의,규모제일주의는 지난 시기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그래서 말로는 다원화,지방화,유연경제를 얘기해도 서울 제일,큰 것 제일,“집중화되어야 효율적이다”하는 전근대적인 환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그래서 사람도,돈도,문화도,교육도 중앙에 집중되고 사회문제도,빈부격차도,환경파괴도 심해만 진다.그러다보니 사는 것이 점점 팍팍해진다. 과거 우리사회의 가장 큰 과제는 군사독재와의 싸움이었다.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적인 체제와 제도를 갖추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하지만 지금은 중앙집중 권력과의 싸움이 사회발전의 가장 큰 과제이다.행정독점,경제독점,권한독점,교육독점,문화독점과 싸워야 한다.사회전체가 분권화되고,자치화되어야 한다. 독점된 권력은 반드시 썩는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다”라는 민주주의 원칙은 몇년에 한번 행사하는 선거권으로 포장될 수있는 것이 아니다.실질적인 권한이 생활단위인 지방으로,읍 면동으로 이양되어 국민들이 직접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이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아직도 우리의 지방자치는 반쪽짜리 지방자치로 불린다.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는 독자성과 자립성이 없이 중앙정당에 종속되어있다.지방의 행정권과 예산권도 중앙부처에 종속되어 있다.주민소환제,주민발안제,주민투표제 등 주민의 참여를 직접 보장하는 제도들의 도입은아직 요원하다.이제 각성한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김기현[한국YMCA전국연맹 부장]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48)20세기의 마지막 필화사건들

    서울 올림픽의 해였던 1988년,한국 문단에는 두 필화사건이 창작의 자유를압박했다.하나는 주인석의 희곡 ‘통일밥’이었고,다른 하나는 이기형 시인의 실록 연작시집 ‘지리산’이었다. 김건원과 서울대 연극회원들의 도움으로 주인석이 지은 희곡 ‘통일밥’은한국 현대사를 축약시킨 전 13장의 다분히 실험적인 작품이었다.1988년 6월4∼8일까지 서울대 총연극회 제30회 정기 공연작이었던 이 희곡은 대학가의인기 상승에 힘입어 같은 해 8월 4∼7일까지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재공연 되었는데 바로 다음날인 8일 작가가 구속 당했다. 장시우와 그의 아들 해방,손자 동민 3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한 분단의 아픔과 8·15부터 1988년까지의 민족사를 ‘통일밥’은 투시하고 있다.해방의 혼란 속에서 노동자 자치운동을 하다가 감시를 피해 본의 아니게 월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장시우,그로 말미암아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갖은 수모를당하는 남한의 식구들이 팽팽하게 긴장미를 고조 시키다가 1984년 대홍수 때 북한 적십자사가 보내온 쌀로 ‘통일밥’을 짓는 것으로 남북의 동질성을강조한 이 작품은 다분히 전위적이다. 문제가 된 것은 해방 직후에 내걸었던 인공기였는데,이미 알려진대로 이 때의 ‘인공기’와 북한의 그것은 다른 것일 뿐만 아니라,장식용 소품으로 등장했다는 점 등으로 주인석은 9월 23일 기소유예로 석방,‘통일밥’ 필화는막을 내렸다. 원로 시인 이기형의 ‘지리산’은 ‘실록 연작시’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들을 취재하여 부각시킨 점이 돋보여 1988년 12월에 초판이 나오자 매진,재판에 돌입했는데 당국의 압수 수거 조처를 받았다.이어 출판사에 대한 수색이 진행되더니 1989년 2월 방송 뉴스로시집 ‘지리산’을 의법 조처하겠다고 예고한 뒤 아침출판사 정동익 사장을구속하고는 고령의 이기형 시인은 불구속 기소했다.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의 오류를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춘 이 연작시는 법정으로부터 정부가 선언한각종 통일 정책과 국가보안법 처벌은 무관하며,표현의 자유라 할지라도 체제 전복에 이용 당할 여지가 있는 작품은 용납하지 않는다는요지의 유죄 인정으로 시인과 발행인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지리산은 아마 한국 필화사 중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산일 것이다.1989년 4월 오봉옥 시인은 장시 ‘붉은 산 검은 피’(실천문학사,전2권)를 펴냈다.1930년대의 항일투쟁부터 1946년 10월 항쟁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이 장시는 “젊은 시인답지 않은 기량의 완숙함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최원식)거나,“남한 노동자 계급의 독자성을 견지하려는 힘과 주류적 혁명전통의 영향력을 확대 부식하고자 하는 힘 간의 갈등·충돌의 문예적 반영”(김명인),혹은 “일제 말기에서 해방 직후까지 민족의 생활상을 여실하게 그려낸 뛰어난 대서사물”(최유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이 시집 역시 필화로 가는 과정은 비슷하여 처음에는 수거,판금조치가 내려졌다가 서서히 출판사를 조여가며 구속,기소의 단계로 들어선다. 실천문학사 사장 이문구,주간 송기원,그리고 시인 오봉옥을 각각 충청도,서울,광주에서 도주의 우려라는 이유로 전격적으로 동시에 연행한 것은 1999년 2월 22일.송기원과 오봉옥은구속,이문구는 불구속으로 기소됐다.오봉옥과이문구는 제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송기원은 ‘민중교육’지 사건누범 기간이라 6개월의 실형을 언도 받았다. 마지막 하나의 필화가 남았다.그것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지금 기소중인 이 작품은 아마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한국문학의 마지막 필화가 될 것이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선거구제와 정국 풍향

    선거구제와 2여(與)합당은 미묘한 상관관계가 있다.전자는 후자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합당을 거론하기 전에 선거구제 문제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사안은 외형상으로는 독립변수처럼 보인다.현재 자민련 분위기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김종필(金鍾泌)총리는 최근 자민련 독자성을 부쩍 강조하고나섰다.중선거구제든,소선거구제든 개의치 않겠다는 자세다. 자민련은 ‘보수대연합’ 내지 ‘보수신당’을 추진하고 있다.한 고위 관계자는 “김총리가 내년 총선에서 자민련 간판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선거구제로 전환되면 이런 분위기에 쐐기를 박을 가능성이 크다.우선 소선거구제보다 연합공천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합당보다는 공조전략이 선거결과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이어진다.물론 이런 계산에 이견이제시되기도 한다. 반면 현행 소선거구제로 간다면 상황은 다르다.합당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상존한다.우선 자민련쪽으로 보면 지지도는 한자릿수에 불과하다.이런 구도에서는 ‘필패(必敗)’라는 분석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총리와 자민련은 일단 보수세력 규합에 총력을 기울일 기세다.그러나 ‘보수대연합’이든,‘보수신당’이든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합당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현행 소선거구제가 유지된다면 합당 주장은 더힘을 얻을 수 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연합공천 내지 연대가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2여1야 체제에서는 한나라당측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을 내놓는다. 연합공천이 매끄럽게 된다면 몰라도 안될 경우 공동여당이 공멸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자민련측은 현재로서는 이런 계산에 고개를 내젓는다.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는 합당문제와 관련,“중선거구제가 안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라고 여지를 남겨 놓았다.이렇듯 소선거구제 유지는합당 논의에 다시 불을 댕길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숨가쁜 물밑협상 성과는 아직?

    국회 정치개혁입법특위 활동시한 만료일(30일)이 다가오면서 특위의 연장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선거구제 등 주요 현안에서는 사실상 합의를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정치개혁 협상이 새해 예산안이나 ‘언론문건’국정조사 등 각종 현안과정치적으로 연계돼 있어 이들에 대한 처리결과도 주목된다. ●정개특위 특위는 여야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부분에서는 전혀 진전을이루지 못했다.70여개 항목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선거구제,의원정수 등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토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거구제와 관련,여당은 계속 ‘중선거구제+권역별 정당명부제’를 주장하고 있다.한나라당은 ‘소선거구제에 현행 전국구제 유지’라는 기존 당론을굽히지 않고 있다.이때문에 선거구제와 관련된 ‘합동연설회 폐지’,‘옥외연설회 금지’ 등의 문제도 그대로 남아 있다.의원수 감축문제에서도 당초여야는 현행 299명에서 270명선으로 줄이기로 했지만 각자 당 내부에서 ‘정치개혁의 본질과 의원수 감축은 관련이 없다’는 반발이 생기면서 야당을중심으로 ‘감축 철회’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에서는 지구당 폐지,정치자금 모금 및 배분방식 개선등에서 절충이 어려운 상태다. 국회관계법에서는 국회운영의 독자성과 중립성 보장을 위해 논의됐던 국회의장 당적 이탈문제나 인사청문회 대상 범위도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다른 쟁점 새해 예산안 처리가 가장 큰 문제로 남아 있다.여당은 정부가제출한 총 92조9,2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이 이미 당정간 충분한 협의를 거친만큼 가능한 한 정부원안을 통과시킨다는 목표다.그러나 야당은 예결위 부별 심의와 계수조정 과정에서 5조3,660억원 정도를 순삭감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정치개혁 입법문제 등을 예산안 심의와 연계할 움직임을보이고 있어 예산안의 정치현안 연계 여부에 따라 기한(12월2일) 내 처리문제가 판가름날 전망이다.상황에 따라서는 예산안 처리시기가 다소 늦춰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밖에 방송법과 주세법도 통과시켜야 한다.지난 26일 여야는 문광위 입법심사소위에서 방송위원회 구성비율을놓고 맞서다 충돌,야당이 예결위까지보이콧했다.소주세율과 관련,같은날 재경위에서는 정부·여당의 80% 인상안과 야당의 60% 인상안,75% 인상 절충안 등을 놓고 협의를 벌였으나 합의에실패,29일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전망 이처럼 각종 현안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긴 하지만 극적인 일괄 타결가능성도 없지 않다.문제의 핵심은 선거구제 등 몇가지로 좁혀져 있기 때문이다.주말 여야 총무회담 등 다각적인 물밑 협상을 통해 의견차를 더욱 좁힌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때문에 여야는 정개특위 시한을 5∼10일쯤 더 연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정치개혁입법 논의와 예산안 심사를 병행하다가 12월 초쯤 두 가지를한꺼번에 처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야가 ‘옷로비’의혹사건과 언론문건 국정조사 등을둘러싸고 대치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정기국회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지운 주현진기자 jj@
  • 외국자본 유출입으로 통화정책 효과 적다/한은, 재정적자 축소

    국제자본의 유출입이 한국은행 통화정책의 실효성을 크게 떨어뜨린 것으로나타났다.자본유출입에 따른 환율절상 압력과 시장금리 상승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정부의 재정적자 축소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본유출입의 확대가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보고서에 따르면 “자본자유화가 본격화한 92년 이후 중앙은행이 공급(환수)한 본원통화의 46%가 자본유출입에 의해 상쇄됐다”고 밝혔다. 예컨대 한은이 국내에 100에 해당하는 통화를 공급했을때 실제는 국내금리하락 등으로 46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54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자본자유화 이전인 85년∼91년까지의 상쇄효과는 11%에 불과해 한은 통화정책의 독자성 및 유효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이에 따라 그동안 해외자본을 흡수하기 위해 통화안정증권을 과도하게 발행해 왔는데,그 결과 채권물량 증가-시장금리 상승-해외자본의 추가 유입 등의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분석했다.한은은 이에 따라 “자본유입이 과다해 환율절상 압력과 금리가 높아지는것을 막으려면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예산이 편성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은호기자 unopark@
  • [대한광장] 가부장적 권력구조 해체의 신호

    1999년 8월26일 모든 일간지는 ‘옷로비 청문회’로 장식되어 서민들에게냉소섞인 볼거리를 제공하였고 사회면 일부에는 ‘70대 황혼이혼 승소’ 보도기사가 나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옷로비 청문회는 정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허위의 파장을 움직이려는 치맛바람의 극치를 이루고,교양 있는 사모님들의 일그러진 표정은 최순영씨의 1억6,500만달러에 달하는 외화도피 혐의를 희석시키고도 충분하였다.A할머니의 이혼 승소는 평생을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운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무시당하고 짓밟혀온 한 인간의 존엄 회복을 위한 눈물겨운 승리의 긴 한숨소리로 이 땅에서 가부장적 권력구조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 의미를 남긴 큰사건이었다. 청문회 사모님들은 외출의 자유도 시간의 여유도 있었다.이에 반해 A할머니 경우는 외출의 자유도,종교의 자유도,언론의 자유도 없는 기본권을 완전히박탈당한 채 결혼생활을 강요당하였다.40여년 동안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아보지 못한 A할머니는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었으나 허사였다. 우리 사회환경은 이혼을 공식적으로 청구한 여성은 어디서나 왕따를 당해왔기 때문에 이혼청구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각오를 필요로 한다.때문에 대부분 우리의 어머니들은 가부장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운명에 돌리면서 적응해 체념속에 살아왔다.그래서 아직도 이 땅의 대부분 여성들의 체념은 사회 전반에 걸쳐 유효한 이데올로기로 재생산되고 있다. A할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3년 이혼소송을 청구했고 첫 소송은 화해로 끝났다.그 뒤 1997년 20년 연상의 남편이 수십억대 재산을 모 대학에 일방적으로 기증하자 최소한의 생활비에도 쪼들려 온 A할머니는 두번째 소송을 제기하였다.그러나 재판부는 기왕에 가부장적 질서에서 살아왔으니 “해로하라”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렸다. 현대 인권의 개념에서 여성이 제외된 판결이었다.모든 여론은 수십억대 재산을 사회에 기증까지 한 남편을 동정했다.그때 A할머니의 소원은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였다. “언제 죽을지 몰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오늘의 가부장적 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였다.바로 항소심을 청구한 A할머니는마침내 “40여년간 부부로 생활해 오다 뒤늦게 이혼소송을 제기한 A씨에게도 책임이 있으나,더 큰 책임은 평생을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 일관한남편에게 있다”는 판결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였다.이 사건을 두고 많은 남성들은 “그렇지 않아도 요즘 세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한다는데 그 판결로 이혼을 조장하여,한국 가족사회도 서구 가족사회처럼 해체되는 것이 아니냐”면서 일본 사회에서 일고 있는 이혼공포증을 나타내고 있다. 여성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종속을 담보로 가정을 유지하고 사회적 질서를 지키자는 발상은 이제 한계에 달하였다.사전과 다른 방식의 사회해체를 방지하는 새로운 대안이 요구되고 있다.그것은 상대방을 평등한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는 평등사회 구현에 있다.이러한 논의가 새삼스럽게 대두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발전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아직도 우리들의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온존하고 있는 가부장주의가 현실 세계에서 가치의식·규범의식·사고방식을 전반적으로 규제하고 사회적 결합양식의 기본적인 정형으로 자리하여 오늘날까지 부단하게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관계에서 가부장주의는 국가의 정치에서 확대 재생산되며 일반국민들의 정치적 근대화에 대한 욕구를 억압하고 민주주의 체계와 상반된 감시기제작동으로 배타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여 왔다.그래서 권력집단은 모든 국민에게 유형화된 감정과 의견을 강제적으로 소유하도록 하고 A할머니의 남편이 할머니에게 한 것처럼 국민을 감시해 시민의 독자성과 자기책임을 허용하지 않았다.그러므로 국가는 가족관계에서 가부장주의 확대 재생산 판으로, 철저한 가부장적 권력구조로 이루어져 왔다.그 가부장주의에 맨몸으로 도전해승소의 결과를 얻은 이번 사건은 독재권력시대에는 거대한 리바이어던 같은국가의 강력한 가부장적 권력구조에 대한 도전이었다.그러므로 이름없는 한연약한 할머니의 이야기는 가부장적 권력구조 해체의 시작으로서 민주주의의 정통성과 도덕성을 지향,이성이 지배하는 희망의 새로운 세기로의 전환을알리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白京男 동국대 사회과학대학장]
  • 광역市 통합 郡 “아! 옛날이여”

    거대 시가지의 한켠에 자리잡은 ‘도심 속 농촌’인 군지역들의 광역시 이탈 움직임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대구 달성,인천 강화·옹진,울산 울주군 등 도심속 군지역들은 광역시에의통합 이후 기대와 달리 도농간 이질감이 여전한데다 농촌지역에 대한 개발투자 지연,각종 혐오시설 유치 등 푸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에서 광역시 이탈 및도(道)로의 복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의회는 최근 경남도로의 재편입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으고군의회에 소위원회를 구성,복군(復郡) 서명운동과 군민투표 등의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군의회 의원들은 16일 간담회를 갖고 “울산시가 광역시 승격을 위해 95년울주군과 통합하면서 군의 독자성 확보를 약속하고도 군민 의견을 무시한 채 두동면 대곡댐 건설계획과 삼동면 공원묘원 확장계획을 밀어붙이는 등 군지역에 혐오시설만 설치하고 개발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결의했다.이들은 군의 권익수호 차원에서 의회에 소위원회를 구성,복군서명운동과 군민투표를 추진하기로 해 시와의마찰이 예상된다. 지난 94년 경기도에서 인천시로 편입된 강화군에서도 주민들의 경기도로의환원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주민들은 강화가 인천과 역사·지리적으로 연관성이 적은데다 인천시가 약속한 강화읍∼길상면간 지방도 확포장공사 등이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97년11월 ‘강화 경기도환원추진위원회’를 구성,지속적인 환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옹진군 주민들도 통합후 교부세 등 예산지원이 줄어 개발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인천시 편입에 대한 지역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공무원들 역시 통합후 시군간 인사교류가 막혀 적체가 심각하다며경기도로의 환원을 바라는 눈치다. 지난 95년 대구시와 통합한 달성군 역시 아직 경북도로의 환원 얘기까지는아니지만 도시계획 입안 등의 문제로 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군은 시가 도시계획을 조정하면서 야산까지 보전임지로 묶는가 하면 시가지에서 20∼30㎞나 떨어진 구지면 등 달성지역에 근린공원을 집중 지정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곳 공무원과 주민들은 통합 당시인 95년부터 98년까지 시가 군지역에 건축 제한조치를 실시,재산권 행사에 불이익을 준데다 징수교부금과 교부세조차 제때 배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교통·주거문제 등도 통합 전보다 나아진게 없다는 입장이다.물론 부산시 기장군처럼 광역시 편입 이후도농통합의 순기능을 극대화,교통과 교육·주거 등 생활여건이 크게 개선돼주민들이 만족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광역시가 군지역 주민들의 각종 요구사항 수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는 상태여서 복군 문제를 둘러싼 광역시와 군 사이의 갈등은 심화될 전망이다. 대구 황경근 울산 강원식인천 김학준기자 kws@
  • 특검제협상 첫날부터 난항

    여야는 28일 파업유도 및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특검제 법안 실무협상을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국회 법사위 소속 국민회의 조찬형(趙찬衡) 박찬주(朴燦柱),자민련 함석재(咸錫宰),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 최연희(崔鉛熙)의원 등 여야 실무팀은 이날 회담에서 특별검사의 임명절차,직무범위,활동기간 등에서 현격한 견해차를 보였다. 여당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대통령 임명을 고수한 반면 한나라당은 공정한 수사를 이유로 대법원장 임명을 주장했다. 또 활동시한과 관련,여당은 이미 검찰수사를 통해 한차례 걸러진 사건인 만큼 신속하게 끝내자며 ‘30일 이내,20일 1회 연장’을 주장했다.이에 반해한나라당은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6개월 이내,2회 연장’으로 맞섰다. 직무범위와 권한에 대해 여당은 일반 검사 2명과 수사관 10명을 우선 파견한 후 특별검사가 독자적으로 특별수사관을 3명까지 임명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자고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독자성과 공정성 보장을 위해 제한을 두지말자는 입장을 보였다.이날 여야가 쟁점 현안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회담을 마침에 따라 향후 협상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
  • ‘우리의 화가 박수근’ 展

    흰색·갈색·회색·검정색의 절제된 사용,그리고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마티에르.‘민족의 화가’‘서민의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의 조형세계는우리 화단의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이다.“나의 그림은 유화이지만 동양화다”라고 스스로 말했듯이 그의 작품에서는 소박한 한국미가 느껴진다. 박수근 예술의 독자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그가 당대의 동료 화가들이 교육기관을 통해 아카데미즘을 답습한 것과는 달리,독학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낸 것과 무관하지 않다.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의 화가 박수근’전의 관람 포인트는 이러한 박수근 예술의 독자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 박수근은 회화의 재현적인 요소를 최대한 자제하고 대상의 본질만을 잡아내묘사한다. 또 서양화 기법을 우리 민족의 정서가 깃든 독자적인 마티에르 감각으로 소화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제시한다.박수근은 황갈색 톤의 중간색을 많이 사용했지만 그의 그림 색깔을 한 마디로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그림 밑바닥에서부터 번져 올라온 복합적인 색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그는많을 땐 열 번까지 물감을 겹쳐 올리고 지우고 긁고 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평면적인 느낌보다는 부각(浮刻)세공 같은 느낌이 강하다.그는 또한 서양화의 전통적인 기법인 원근법을 즐겨 쓰지 않았다.그래서 ‘그림 못 그리는 화가’란 소리도 들었다.그의 ‘소와 유동(遊童)’이라는 작품을 보면 그림 윗부분에 있는 소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다. 박수근의 그림 작업은 크게 젯소층,바탕칠하기,재질감 만들기,마무리 작업등 4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그는 젯소(gesso)가 미리 발라져 있는 상품화된캔버스를 주로 사용했다. 젯소는 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 재료로,유화물감의 기름성분이 천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발색효과를 높이기 위해 바르는 흰색 물감을 가리키는 말.이 젯소층 위에 모노톤의 물감을 바르고,화면에다시 물감을 칠한 뒤 붓으로 데생을 한다. 그 위에 붓과 나이프로 작업을 반복하면서 점차 두터운 화면을 만들어간다.그리고 끝으로 동양화에서의 갈필(渴筆)처럼 붓을 이용해 작품의 톤을 조정한다. 박수근 작품의 독자성은 이같은 방법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일관된 소재의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그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한다는 예술적 신념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모습을 반복해 그렸다.그럼으로써 그들을 우리 민족의 집단초상화로 거듭나게 했다.아이를 업고절구질하는 여인, 좌판을 벌리고 행상하는 아낙,헐벗은 나목처럼 황량하기만했던 시대 풍경은 50∼60년대 그가 경험한 일상이었지만,돌이켜보면 그것은곧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저력이자 우리 민족의 초상화이기도 하다.그는 인고의 생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그것에 주눅들지 않는 강인한 한국의 여인상을 그렸다.반면 남성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무룡태 정도로 묘사해 대조적이다. 1914년 강원도 양구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정 형편상 보통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가난에 시달리던 그는 미8군 영내매점에서 관광용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소설가 박완서는 당시 미8군 매점 초상화부에서 ‘간판쟁이 박씨’로 불리던 그를 소재로 처녀작 ‘나목’을 썼다.박수근은 수술비용이 없어 백내장 치료를 미루다가 1963년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그가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도 실명에 따른 충격으로 폭음하다가 간과신장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유화 82점과 수채화 8점,스케치 35점 등 모두 125점이 나와있다.‘소와 유동(遊童)’‘나무와 두 여인’‘시장의 여인들’ 등 중·고교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비롯 ‘귀가’‘아기보는 소녀’‘시장’등 대표작들이 모두 망라돼 있다.9월 19일까지 (02)771-2381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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