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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김건희 여사, 美·캐나다 단독일정…참전용사 방문·미술관 관람

    [포토] 김건희 여사, 美·캐나다 단독일정…참전용사 방문·미술관 관람

    윤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마지막 날인 23일(현지시간)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순방 기간 단독 일정을 소개했다. 김 여사는 순방 기간 도중에는 윤 대통령 일정에 일부 동행하는 모습만이 언론에 공개됐지만 별도 단독 일정을 비공개로 소화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지난 21일 오전 10시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참전용사의 집’을 방문했다. 참전 군인과 가족을 위한 요양시설인 참전용사의 집에는 6·25 전쟁 참전 군인 등 4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김 여사는 노병들을 만나 “저의 할아버지도 여러분과 같은 6·25 전쟁 참전 군인이었다”며 “여러분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한국은 많이 발전했다. 모든 것이 여러분의 헌신과 용기 덕분”이라고 말했다. 필 머피 뉴저지 주지사의 부인 태미 머피도 김 여사 방문에 동행했다. 김 여사는 순방 마지막 날인 23일에는 캐나다 오타와에서 캐나다 국립미술관과 참전용사 보훈요양병원을 방문했다. 김 여사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부인 소피 그레고어 트뤼도 여사와 국립미술관 작품을 관람했다. 김 여사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풍경화가 그룹의 작품을 보고는 “캐나다는 넓은 영토만큼 그림에 등장하는 풍경도 각양각색”이라며 “여기에 우리나라 산세를 담백하게 담은 수묵 산수화를 전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미술관 관계자는 “내년이 한국과 캐나다 수교 60주년인 만큼 이를 계기로 한국과 전시 협력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원주민 작품 전시관에서 한 관계자가 “비원주민 작품과 원주민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김 여사는 “다양한 문화를 애써 융합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캐나다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고 이 부대변인은 전했다. 김 여사는 미술관을 떠나며 트뤼도 여사에게 “언제든지 연락해 달라”고 인사를 했다. 이에 트뤼도 여사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고 이 부대변인은 덧붙였다. 김 여사는 이어 캐나다 참전용사 보훈요양병원을 방문해 6·25 전쟁에 참전한 제시 셰네버트 간호장교를 만났다. 올해 100세인 셰네버트 장교는 6·25 전쟁에 참전한 오빠를 따라 간호병으로 입대해 1951년부터 의정부 야전병원에서 복무했고, 1976년 간호장교로 전역했다. 김 여사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참전해주신 여성 간호장교님이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고마운 마음에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꼭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반드시 다시 한국을 방문해 당신께서 지켜낸 대한민국이 얼마나 변했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셰네버트 장교는 “이렇게 먼 곳을 찾아줘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고 말하며 김 여사와 포옹했다고 이 부대변인은 전했다. 사진은 김건희 여사와 캐나다 총리 부인 트뤼도 여사가 23일(현지시간) 캐나다 국립미술관을 관람하고 있다.
  • 오로지 국익 ‘모두 다 동맹’ 진영 넘나들기[오일만의 글로벌 패권경쟁]

    오로지 국익 ‘모두 다 동맹’ 진영 넘나들기[오일만의 글로벌 패권경쟁]

    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인도의 ‘마이웨이 외교’ 노선은 미중러의 삼각 패권 게임에서 진영을 뛰어넘으며 빛을 발하고 있다. 국익과 실용주의를 앞세운 인도가 과거 전통적 비동맹 노선이 아닌 다양한 진영과 손을 잡는 ‘다자동맹’ 외교를 펼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국제 위기 속에서 인도는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도 관계를 지속하고, 앙숙 중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도는 반중(反中) 쿼드에선 미국·일본 정상과 악수하고,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선 러시아·중국 정상과 손을 잡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몇 달간 보여 준 행보다. 최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글로벌 강대국들이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14억명의 ‘인구 대국’ 인도는 진영을 넘나드는 독특한 외교안보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경제 등 여러 부문에서 중국 대신 ‘세계의 엔진’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엔진의 연료는 다자동맹이 될 전망이다. 글로벌 경쟁은 일종의 위험 분산 게임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도는 전 세계 파트너 사이에서 특정 국가를 고르지 않고 국익이란 잣대로 다자동맹 또는 ‘전부 다 동맹’이란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인도 특유의 실용주의 국익 극대화 전략인 것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 노선을 걸어왔다. 미국과 구소련이 주도하던 냉전시대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고 제3세계 국가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1955년 반둥회의를 계기로 촉발된 비동맹운동의 좌장 노릇을 하며 국제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인도는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에 맞춰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1997년에는 벵골만기술경제협력체(BIMSTEC) 설립을 주도하며 남아시아 지역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BIMSTEC는 인도, 태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스리랑카, 네팔, 부탄 등 벵골만에 인접한 7개국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 러시아가 영향력 확대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동시에 ‘중국 견제’ 목적이 강한 안보 협의체 쿼드에도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속했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이 주도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선언하기도 했다. 또 이스라엘, 미국, 아랍에미리트(UAE) 간 협의체인 I2U2의 멤버이자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다. 인도는 미국이 주도한 쿼드 회원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미국의 제재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러시아제 첨단 방공미사일 S400을 도입하기도 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인도의 독자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인도는 미국과 서방의 압박 속에서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확대 중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 등의 제재로 인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자 각국에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 판매를 제안했고 인도가 흔쾌히 응한 것이다. 원유 수입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인도는 미국의 제재 동참이라는 ‘명분’보다는 국내 물가 안정이라는 ‘실리’를 택했다. 인도는 주요 7개국(G7)이 결정한 러시아산 원유가격 상한제 참여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러시아는 과거부터 인도와 깊은 우호 관계를 이어온 데다 러시아산 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미국의 요청으로 인도가 IPEF에 몸을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인도는 ‘세계 최대 FTA’로 불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경우 협상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2019년 11월 최종 타결 직전 불참을 선언했다. 조금이라도 국익이 침해될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인도의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런 행보를 통해 인도는 정치·경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인도의 GDP는 명목 기준으로 8547억 달러를 기록, 세계 5위 영국(8160억 달러)을 넘어섰다. 경제 전문가들은 인도의 GDP 규모가 2027년에는 4위 독일, 2029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가 될 것으로 관측한다. 인도는 올해 2분기에 경제성장률 13.5%를 기록하며 무서운 질주를 이어 가고 있다. 인도는 주요 20개국에 속해 있지만, 이 중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주변 국가인 방글라데시(2362달러), 스리랑카(3699달러)보다도 1인당 소득이 낮다. 인도의 전체 가계소비 지출도 2조 달러로 세계 5위 소비시장이지만, 1인당 지출액은 1500달러에 불과하다. 비슷한 소비시장 규모를 가진 독일의 1인당 소비지출액이 2만 400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인도는 독일 구매력의 14분의1에 불과하다.
  • “바이든도 시진핑도 모두 우리 편”...인도 모디 총리의 ‘마이웨이’ 전술

    “바이든도 시진핑도 모두 우리 편”...인도 모디 총리의 ‘마이웨이’ 전술

    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인도의 ‘마이웨이 외교’ 노선은 미중러의 삼각 패권 게임에서 진영을 뛰어넘으며 빛을 발하고 있다. 국익과 실용주의를 앞세운 인도가 과거 전통적 비동맹 노선이 아닌 다양한 진영과 손을 잡는 ‘다자동맹’ 외교를 펼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국제 위기 속에서 인도는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도 관계를 지속하고, 앙숙 중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도는 반중(反中) 쿼드에선 미국·일본 정상과 악수하고,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선 러시아·중국 정상과 손을 잡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몇 달간 보여 준 행보다. 최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글로벌 강대국들이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14억명의 ‘인구 대국’ 인도는 진영을 넘나드는 독특한 외교안보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경제 등 여러 부문에서 중국 대신 ‘세계의 엔진’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엔진의 연료는 다자동맹이 될 전망이다. 글로벌 경쟁은 일종의 위험 분산 게임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도는 전 세계 파트너 사이에서 특정 국가를 고르지 않고 국익이란 잣대로 다자동맹 또는 ‘전부 다 동맹’이란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인도 특유의 실용주의 국익 극대화 전략인 것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 노선을 걸어왔다. 미국과 구소련이 주도하던 냉전시대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고 제3세계 국가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1955년 반둥회의를 계기로 촉발된 비동맹운동의 좌장 노릇을 하며 국제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인도는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에 맞춰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1997년에는 벵골만기술경제협력체(BIMSTEC) 설립을 주도하며 남아시아 지역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BIMSTEC는 인도, 태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스리랑카, 네팔, 부탄 등 벵골만에 인접한 7개국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 러시아가 영향력 확대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동시에 ‘중국 견제’ 목적이 강한 안보 협의체 쿼드에도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속했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이 주도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선언하기도 했다. 또 이스라엘, 미국, 아랍에미리트(UAE) 간 협의체인 I2U2의 멤버이자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다. 인도가 가입한 국제 협의체의 성격을 보면 폭넓은 스펙트럼을 띠고 있다. 1962년 국경 문제로 중국과 전쟁을 치른 인도는 2020년 다시 중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면서 급격하게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달 초 러시아와 중국 등이 참여한 다국적 군사훈련 ‘보스토크(동방) 2022’ 훈련에 군병력을 파견했다. 안보와 국익을 위해서라면 앙숙이라도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인도식 실용주의의 단면을 보여 준 것이다. 인도는 미국이 주도한 쿼드 회원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미국의 제재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러시아제 첨단 방공미사일 S400을 도입하기도 했다.1분기 GDP 세계 5위…7년 후 일본 추월 경제 분야에서도 인도의 독자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인도는 미국과 서방의 압박 속에서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확대 중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 등의 제재로 인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자 각국에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 판매를 제안했고 인도가 흔쾌히 응한 것이다. 원유 수입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인도는 미국의 제재 동참이라는 ‘명분’보다는 국내 물가 안정이라는 ‘실리’를 택했다. 인도는 주요 7개국(G7)이 결정한 러시아산 원유가격 상한제 참여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러시아는 과거부터 인도와 깊은 우호 관계를 이어온 데다 러시아산 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미국의 요청으로 인도가 IPEF에 몸을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인도는 ‘세계 최대 FTA’로 불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경우 협상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2019년 11월 최종 타결 직전 불참을 선언했다. 조금이라도 국익이 침해될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인도의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런 행보를 통해 인도는 정치·경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인도의 GDP는 명목 기준으로 8547억 달러를 기록, 세계 5위 영국(8160억 달러)을 넘어섰다. 경제 전문가들은 인도의 GDP 규모가 2027년에는 4위 독일, 2029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가 될 것으로 관측한다. 인도는 올해 2분기에 경제성장률 13.5%를 기록하며 무서운 질주를 이어 가고 있다. 인도는 주요 20개국에 속해 있지만, 이 중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주변 국가인 방글라데시(2362달러), 스리랑카(3699달러)보다도 1인당 소득이 낮다. 인도의 전체 가계소비 지출도 2조 달러로 세계 5위 소비시장이지만, 1인당 지출액은 1500달러에 불과하다. 비슷한 소비시장 규모를 가진 독일의 1인당 소비지출액이 2만 400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인도는 독일 구매력의 14분의1에 불과하다. 중러 “달러 패권 맞서 독자적 국제 결제망 개발하자”...반미 연합전선, 사마르칸트 선언러시아·중국 주도의 ‘반미 연합체’로 평가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달러 패권에 맞설 SCO 회원국 간의 독자적 국제 결제망 개발을 제안했다. 지난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은 “지역 통화(회원국의 화폐) 화폐를 이용한 국제 지불과 결제 시스템 개발을 강화하고 SCO 개발은행 창립을 추진, 지역경제 통합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착수한 대러 금융 제재는 물론 향후 중국에 가해질 금융 제재에 대비, 달러·유로화가 아닌 위안화·루블 등의 통화로 SCO 회원국 간에 결제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금융 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되자 자국 최대 국책은행인 스베르방크를 통해 SWIFT를 대체할 독자적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또 중국의 독자적 국제 위안화 결제 시스템인 국경간위안화지급시스템(CIPS)도 허용했다. 이미 중러가 독자적 결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양국 통화를 활용한 결제 비중을 높이는 가운데 이에 동참할 국가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2001년 출범한 정치·경제·안보 협의체인 SCO의 회원국은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 8개국이었으나 ‘옵서버’ 이란이 이번 회의를 통해 사실상 정회원으로 추가됐다. 중러 주도의 국제 결제망을 전 세계 인구의 41%,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차지하는 SCO 회원국으로 확대시켜 ‘달러 패권’에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SCO 정상회의는 시 주석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동성명인 ‘사마르칸트 선언’을 통해 “SCO 국가들의 통화를 상호 교역 결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점진적으로 늘린다”고 공식화했다.신냉전 빨려드는 미중러 삼각 경쟁 미중러 삼각 경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부터 공산 진영인 중러는 국경 전쟁을 벌이며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 틈을 타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전격적인 수교를 단행하면서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을 견제하는 ‘세력 균형 전략’을 펼쳐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냉전 이후 미국이 일극 패권국이 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미국에 맞서는 새로운 패권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승리에 도취한 미국은 어느 날 문득 중국과 러시아의 달라진 모습을 알아챘다. 중국은 더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저임금으로 지탱하는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기술 표준과 통상 규칙을 제시할 정도의 기술 강국으로 거듭나 있었다. 러시아도 구소련 해체 뒤 만신창이 국가가 더이상 아니다. 체첸 전쟁, 조지아(그루지야) 전쟁을 거쳐 크림반도 합병과 시리아 개입에서 보여 준 대국으로서의 군사력을 자랑했고, 가스·석유 등 자원 강국으로서의 외교적 역량 등을 보이면서 유라시아의 또 다른 거인으로 재등장했다. 이런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서 더이상 미국의 압력(제재)과 요구에 개의치 않고 있다. 2011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였던 두 나라 관계를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킴으로써 최고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편입으로 경제제재를 받고 있던 2014년 5월엔 두 정상이 4000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30년간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2015년 5월엔 시진핑의 실크로드 경제벨트 건설과 푸틴의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서로 연계하며 전면적 협력 관계가 됐다. 중러는 북핵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시리아 문제 등 거의 모든 주요 현안에서 한목소리를 내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 기시다 日총리 행사장 찾아가 30분 약식회담, 만남 자체에 의미?

    기시다 日총리 행사장 찾아가 30분 약식회담, 만남 자체에 의미?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에서 며칠의 신경전 끝에 처음으로 얼굴을 맞댔다.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고(故) 아베 신조 총리가 회담한 뒤 2년 9개월 만에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당초 대통령실은 지난 1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브리핑을 통해 “흔쾌히 합의됐다”며 정상회담 성사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한국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데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잇따르며 분위기가 냉각됐다. 그러자 대통령실도 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노코멘트”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대통령실은 회담 시작 4시간여 전 브리핑에서도 회담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통상 정상회담 일정이 언론에 미리 공지돼 풀단(취재 공유 그룹)이 꾸려지는 일이 이번에는 없었다. 양측 모두 전속 사진사만 들어갔다. 이날 오후 주유엔 대표부 1층 양자회담장에서 가진 윤 대통령과 울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은 언론에 미리 공지되고 풀단이 꾸려졌다. 대통령실은 한일정상회담이 시작된 지 2분이 지난 낮 12시 25분쯤 “한일정상회담이 지금 시작합니다”라는 언론 공지문을 냈다. 약 30분 진행된 정상회담 장소는 유엔총회장 근처의 콘퍼런스 빌딩이었다고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기시다 총리가 참석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친구들’ 행사장이 있던 건물로 윤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가 대면 회담이 성사됐다. 이 건물은 윤 대통령이 묵는 호텔에서 걸어서 약 11분, 기시다 총리가 묵는 호텔에서 걸어서 약 6분이 소요된다. 기시다 총리는 회담을 끝내고 걸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윤 대통령이 회담을 위해 해당 건물에 들어서는 장면이 기시다 총리를 취재하려 대기하던 일본 기자들에게 포착됐다. 영상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경호원에 둘러싸인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취임식이나 국회 시정연설 등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을 때 윤 대통령은 하늘색 넥타이를 매곤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해당 빌딩에서 CTBT 관련 회의가 있었다. 그 회의에 기시다 총리가 참석했고, 그래서 일본 기자들이 취재를 했다”며 “윤 대통령이 그곳을 방문하면서 일부 일본 취재진에 노출된 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있는 곳을 찾아가 만난 형식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유엔총회 기간 뉴욕에는) 굉장히 많은 정상이 여러 행사를 하고 있어 장소가 마땅치 않다”며 “그 장소 중 하나를 (선택)해서 기시다 총리도 오고, 윤 대통령도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기시다 총리는 그 건물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며 “기시다 총리가 있는 곳을 윤 대통령이 방문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상회담 방식이나 장소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 만큼 우리가 너무 저자세로 매달린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일부 일본 언론이 주유엔 일본 대표부가 회담 장소라고 보도한 데 대해 이 관계자는 “(회담 장소가) 다른 명칭”이라고 부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약식회담은 구체적 의제를 확정해서 논의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약식회담이란 말을 드린다”고 설명했다.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밖에 없는 데다 30분의 짧은 회담이라 당연히 성과는 미미했다. 대통령실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양국 정상은 현안을 해결해 양국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해 외교당국 대화를 가속화할 것을 외교 당국에 지시하고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며 “정상 간 소통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최근 핵무력 법제화, 7차 핵실험 가능성 등 북한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등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양국이 국제사회와 연대해 나가자는 데 공감하고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첫걸음을 뗐다”며 “한일 간 여러 갈등이 존재하지만 양 정상이 만나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한독 정상회담 개최...尹, 獨총리에 방한 제의

    한독 정상회담 개최...尹, 獨총리에 방한 제의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첫 한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에서 양 정상이 ▲양국관계 발전 방안 ▲경제안보 이슈 ▲한반도 및 주요 국제정세 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주유엔 한국대표부 반기문 홀에서 가진 회담에서 숄츠 총리에게 “한국과 독일은 분단 상황에서 경제 발전이라고 하는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는 나라로서 서로 같은 입장에서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왔다”며 “독일은 민주주의, 인권, 법치와 같은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대한민국의 핵심 우방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내년에 한국과 독일이 교류 개시 140주년을 맞는다는 점을 언급하며 “지난 1993년 헬무트 콜 총리가 서울에 온 이후 독일 총리가 방한한 적이 없다”며 “내년 뜻깊은 해를 맞아 편리한 시기에 방한해주시면 대단히 기쁠 것”이라고 제의했다. 이에 숄츠 총리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만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회담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독일로도 윤 대통령을 초청해 저희가 더 많은 양자 회담을 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대통령실은 회담 결과 발표에서 “양 정상이 최근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같은 경제안보 문제에 있어서도 양국 간 협력의 잠재력이 크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관련 분야에서 소통과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또 양 정상은 인도-태평양 전략과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정세 변화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력을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 [김보라미의 인권에 동그라미] 개인정보보호위의 독립성/디케 변호사

    [김보라미의 인권에 동그라미] 개인정보보호위의 독립성/디케 변호사

    유엔총회는 1990년 개인정보 처리자로부터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개인정보 감독기구의 원칙을 정했다. 유럽연합 역시 1995년 ‘개인정보보호지침’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정보 보호 감독기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개인정보 보호 감독기구의 ‘완전한 독립성’(with complete independence)의 의미는 이후 유럽연합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에서 발전돼 규정됐다. 유럽사법재판소는 “독립적인 개인정보 보호 감독기관의 설치가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해 개인 보호의 필수 요소”라고 전제한 뒤 ‘완전한 독립성’의 의미를 구체화한 바 있다. 재판소는 일관되게 개인정보 보호 감독기관들이 외부 영향에서 자유롭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독립성을 향유해야 하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독립성의 보장은 개인정보 감독기관 자체와 그 직원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개인과 기관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규정된 것이라고 판단해 왔다. 2012년 오스트리아 정보보호위원회에 대한 판단에서는 “보호위원회의 임원이 정부 감독에 복종해야 하는 공무원이라는 점”, 또는 “연방 총리가 보호위원회의 모든 직무에 대해 무조건적인 정보권을 가진다는 점” 때문에 독립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2020년에도 독일 개인정보 보호 감독기관이 “국가 감시에 복종하도록 규정한 점”을 문제삼았다. 우리나라는 2020년 1월 9일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과거보다 독립적인 개인정보 보호 감독기구, 즉 현재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설치를 정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과거보다 한 걸음 나아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중앙행정기관으로 규정하면서도 국무총리의 행정감독권 대상이 되지 않도록 독립적인 기능성을 입법화했다. 하지만 과거 여러 독립적인 위원회들이 막 입법화됐던 예에서 보듯이 신생 위원회의 독립성은 입법만으로는 실현이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초대 위원장과 초대 위원들의 리더십과 의지, 그리고 의미 있는 역할들이 뒷받침돼야 한다. 윤종인 초대 위원장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오랜 세월 숙원 사업이었던 유럽연합과의 적정성 결정 채택을 비롯해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사업자에 대해 엄중하면서도 굵직한 정책적 판단을 했다. 시민의 권리와 인권보장에 대해서도 분쟁 절차 활성화 등을 통해 거침없는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편견 없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회 이해관계자 간 의견과 생각을 섞으며 대화를 증진하려는 노력을 하고 소통을 해 온 점도 놀라웠다. 신생 위원회의 위상을 충실하게 일궈 놓은 점은 초대 위원회의 전문성과 이를 실현하려는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최근 윤 위원장이 아직 임기가 남아 있음에도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지금까지 닦아 온 방향과 역할들이 더 발전하길 희망해 본다.
  • 한일 정상회담 극적 성사… 징용 배상 해결·관계 복원 분수령 되나

    한일 정상회담 극적 성사… 징용 배상 해결·관계 복원 분수령 되나

    미국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21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간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며 문재인 정부에서 악화일로를 걸었던 양국 관계가 복원의 물꼬를 틀지 주목된다. 한일 양국은 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막판까지 진통을 겪으며 악화된 양국관계의 여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대통령실은 이날 뉴욕 현지시간으로 정오가 지난 시각에 한일 정상회담이 시작했음을 공지했다. 앞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진전된 상황이 나오는 대로 바로 설명드리겠다”고 말한 바 있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 추진 막판까지 의제와 형식을 놓고 진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강제 징용 배상 해법과 관련해 양국은 이번 회담 추진 과정에서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만난 시간도 30분에 불과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을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지난 15일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유엔총회 순방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됐다고 밝혔지만, 일본 측이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양측은 ‘기싸움’ 양상을 보였다. 여기에 기시다 총리가 한국 측이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며 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본 측은 통상 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확정되면 양국이 동시에 발표하는 외교 관례를 한국측이 어겼다고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정상회담이 어렵게 성사됐지만, 관계복원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한일 정상이 향후 좀더 우호적 분위기 속에 만나기 위해서는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도 일부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윤 대통령은 30%대 지지율이 고착화되며 국정의 동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한일관계와 같은 외교 현안에 집중하기가 어려운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시다 총리 역시 당내 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가운데 최근 내각 지지율 조사에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지르는 조사가 나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보수층이 더욱 등을 돌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당내 기반이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각 지지율까지 급락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갑작스러운 영국 국장 참석과 미 국내 정치 일정 등으로 뉴욕 체류 일정이 단축됐다”며 “그럼에도 한미 정상 간 회동은 어떤 식으로든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두 번째 연사로 기조연설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 같은 사정으로 뉴욕이 아닌 워싱턴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뉴욕에서 실제 한미 정상이 만나더라도 제한된 형식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취임 후 첫 한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한독 관계 발전 방안과 경제안보 이슈 등에 대해 심도 있는 협의를 나눴다. 이들은 앞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때 처음 대면한 바 있다.
  • “우크라이나 전쟁 멈춰라”..유엔총회서 각국 정상 이구동성

    “우크라이나 전쟁 멈춰라”..유엔총회서 각국 정상 이구동성

    20일(현지시간) 막을 올린 제77차 유엔총회 일반토의에서 주요국 정상들은 이구동성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을 촉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깐부’(같은 편)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나란히 불참한 가운데 ‘러시아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서 퇴출시키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각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차례로 연설하는 일반토의에서 발언자들은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면서 전쟁 중단 및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가 2월 24일(우크라이나 전쟁 개시일)부터 목격한 것은 제국주의와 식민 시대의 복귀”라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리의 집단 안보를 깨뜨렸다. 러시아가 패권국이 아니라면 누가 패권국이겠는가”라고 비난했다. 그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 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전쟁에는 결코 승자가 없다. 공정한 평화 절차에는 패자가 없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영토·주권 보전을 기반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 PBS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2014년에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포함해 이번 전쟁으로 빼앗은 돈바스 지역 등을 우크라이나에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전쟁으로 비롯된 글로벌 에너지 대란을 경고하며 “핵 무력 과시와 원전 안전 위협으로 지구촌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러시아를 비판했다.교도통신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를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내쫓고 자신들이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고 전했다. 특히 숄츠 총리는 “이번 기회에 유엔 안보리를 개혁해야 한다. (러시아 대신) 독일이 상임이사국이 돼서 더 큰 책임을 지겠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독일은 2004년부터 인도·브라질과 손잡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꾀하고 있다. 한편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찾은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9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미국이 대만 문제를 통제하는 것이 시급한 사안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중 관계의 판이 뒤집힐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20일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키신저는 1979년 미중 수교를 막후 지휘한 인물로 미국 내 대표적 친중파다. 중국은 미중 관계가 암초에 부딪힐 때마다 키신저와 면담하고 그가 베이징의 편에 서 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 대통령실 “한미 정상회동 이뤄질 것, 한일은 상황 진전되면 말씀”

    대통령실 “한미 정상회동 이뤄질 것, 한일은 상황 진전되면 말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뉴욕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열릴 예정이던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재조정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갑작스러운 영국 국장 참석과 미 국내 정치 일정 등으로 뉴욕 체류 일정이 단축됐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 측 사정으로 기존에 협의중이던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변경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럼에도 한미 정상 간 회동은 어떤 식으로든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당초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두 번째 연사로 기조연설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 같은 사정으로 뉴욕이 아닌 워싱턴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 외에도 유엔총회에 참석하며 미국과의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던 다른 나라 정상들도 상당수 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뉴욕에서 실제 한미 정상이 만나더라도 제한된 형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유엔총회에 참석한 정상들이 대부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만큼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오후 주최하는 리셉션에서 한미 정상 간 회동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또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와 관련, “진전된 상황이 나오는대로 바로 설명드리겠다”고 밝혔다. 앞서 대통령실은 한일 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공식적으로 노코멘트”라는 입장을 되풀이해왔다. 한편 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간의 한독정상회담은 이날 오후 예정대로 열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숄츠 총리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때 인사를 나눴으며 정식 정상회담은 오늘이 처음”이라며 “한독 관계 발전 방안과 경제안보 이슈를 심도 있게 논의한다”고 했다.
  • 조 바이든·윤 대통령이 英여왕 장례식서 ‘14열’에 앉은 이유

    조 바이든·윤 대통령이 英여왕 장례식서 ‘14열’에 앉은 이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國葬)이 19일(이하 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좌석을 두고 조롱 섞인 SNS 게시물을 올렸다. 이날 국장에는각국 정상 250여 명 및 왕족 500명을 포함한 2000명이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윤석열 대통령,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 등과 함께 앞에서 14번째 열, 통로 쪽에 좌석을 배정받았다.바이든 대통령 부부의 앞에는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뒤에는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가 앉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보다 2열 앞자리를 배정받았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는 6번째 열에 자리 잡았다. 이에 트럼프는 바이든 대통령의 좌석이 곧 영국과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미국의 위치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트럼프는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 바이든 대통령의 좌석을 언급하며 “단 2년이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미국에 일어난 일이다. (미국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서 “다만 우리 대통령은 특정 제3 국가의 지도자들을 알게 되는데 좋은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내가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면 그들은 나를 그 자리에 앉히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의 (국제적) 위치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왕의 장례식 좌석 배치, 누가 정할까 여왕의 국장에 참석한 국빈의 좌석은 영국 왕실과 외무부가 지정했지만, 구체적인 좌석 배열 기준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990년대 초 미국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렌윅 클리프턴은 19일 영국 더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국빈의 좌석 배열이) 알파벳 순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명예로운’ 자리를 주지 않으면 히스테리를 일으켰을 것이다. 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좌석 위치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외무부는 장례식 좌석 배열에 대해) 누가 심술을 부릴 것인지 생각해봐야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또 바이든 대통령이 다른 국빈들과 달리 전용차인 ‘비스트’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한 것과 관련해 “미국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애써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영국은 거대한 보호자 무리(바이든의 경호 요원들)가 그들 주변에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바이든은 어디를 가든 항상 비밀 경호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좌석 배치와 관련해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익명으로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과 한 인터뷰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좌석은 의전 문제이기보다는 ‘미국의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왕의 국장은 ‘영국인들의 행사’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이는 여왕의 국장이 영국 및 영국인 주체로 진행되어야 하는 행사인 만큼, 외국인의 좌석 배열이 각국 VIP에 대한 의전과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날 국장에서 맨 앞 첫 번째 줄에 앉은 사람은 국왕 찰스 3세와 윌리엄 왕세자 등 왕실 가족 23명이었다. 외국인 구역의 맨 앞자리를 배정받은 사람은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이었다.
  • 尹, 英여왕 장례식 참석…“한영 관계 더욱 돈독히”

    尹, 英여왕 장례식 참석…“한영 관계 더욱 돈독히”

    윤석열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전 각국 정상급 인사들과 함께 1시간 가량 진행된 장례식 미사에 참석했다. 장례식장에는 찰스 3세 국왕 등 영국 왕족과 영연방 총독들 뒤로 각국 정상 250여 명이 빽빽하게 착석했으며, 윤 대통령 부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와 같은 장례식장 14열에 앉았다. 윤 대통령 2열 앞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앉았다. 윤 대통령은 당초 미국 뉴욕 유엔총회 참석 차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장례식 참석을 위해 일정을 변경해 18일 영국을 먼저 방문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장례식 참석에 대해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하여 영국 국민의 슬픔을 공유하고, 최고의 예우를 갖춰 고인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다시 한번 표명했다”며 “이번 런던 방문은 한영 우호 관계의 기반을 더욱 돈독히 하는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전날 저녁 찰스 3세 국왕 주최 리셉션에도 참석해 깊은 애도를 전했다. 윤 대통령은 찰스 3세 국왕을 만나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로서 평생을 헌신한 여왕을 잊을 수 없을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 또한 이 슬픔을 함께하고 있다”고 위로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에 찰스 3세 국왕은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와 준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한 뒤 커밀라 왕비, 윌리엄 왕세자,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 등 왕실 가족들을 윤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국왕 주최 리셉션과 여왕 장례식장에서 자유 진영의 정상급 인사들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조문 외교’도 펼쳤다. 리셉션에는 바이든 부부를 비롯해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마크롱 대통령,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 등 전 세계의 주요 왕실 인사들도 런던을 찾아 여왕을 추모했다.
  • [포토] 윤 대통령 부부, 찰스 3세 만나 깊은 애도의 뜻 전달

    [포토] 윤 대통령 부부, 찰스 3세 만나 깊은 애도의 뜻 전달

    윤석열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을 하루 앞둔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 주최로 열린 리셉션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런던 북쪽 스탠스테드 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리셉션장으로 향했다. 부인 김건희 여사도 동행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리셉션에서 윤 대통령 부부는 찰스 3세를 만나 깊은 애도의 뜻을 전달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로서 항상 헌신하신 여왕님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민 또한 이 슬픔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찰스 3세의 영국 국왕 즉위에 대해서도 축하 인사를 전했다. 찰스 3세는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와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고, 윤 대통령이 기존 순방 일정을 조정하면서 영국을 방문한 것에 사의를 표했다. 찰스 3세는 영국 왕실 가족도 일일이 소개하면서 커밀라 왕비와 윌리엄 왕세자,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가 윤 대통령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특히 왕세자비는 한국을 가본 적이 없기에 초대해준다면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고, 찰스 3세 국왕도 오래전인 1992년 한국을 방문했기에 다시 한번 갈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윤 대통령은 언제든 환영한다고 화답했다고 김은혜 수석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를 비롯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등을 만나 환담하기도 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과 반갑게 안부를 묻고 곧 유엔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트러스 총리는 윤 대통령에게 각별한 인사를 전하면서 리셉션의 개략적인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리셉션에는 나루히토 일왕, 요르단 국왕 부부를 비롯한 상당수 왕실 인사들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리셉션 참석 전 소화하려 했던 일부 일정은 여건상 취소됐다. 윤 대통령은 앞서 런던 도착 직후 기내에서 취재진과 만나 “오늘 일정이 6·25 참전 기념비 헌화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추모(참배), (찰스 3세 국왕이 주최하는) 리셉션 등 세 개”라며 “런던 교통 상황 때문에 세 개를 다 할 수 있을지, 두 개만 할 수 있을지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19일 오전 런던 중심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되는 장례식에 참석한다. 이어 한국전 참전용사에 대한 ‘국민포장 수여식’을 끝으로 1박 2일간의 런던 일정을 마치고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이동한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런던행 기내에서 태풍 ‘난마돌’ 관련 사항을 보고받고, 철저한 대비 태세를 지시했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 尹대통령 “英 여왕, 헌신”…찰스 3세 “韓 갈 수 있길”

    尹대통령 “英 여왕, 헌신”…찰스 3세 “韓 갈 수 있길”

    윤석열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을 하루 앞둔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 주최로 열린 리셉션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런던 북쪽 스탠스테드 공항에 도착해 부인 김건희 여사와 리셉션장으로 향했다. 윤 대통령은 찰스 3세를 만나 “자유·평화의 수호자로 헌신하신 여왕님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또한 슬픔을 함께하고 있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윤 대통령은 찰스 3세의 영국 국왕 즉위에는 축하 인사를 건넸다. 찰스 3세는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와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찰스 3세는 가족도 일일이 소개했다. 커밀라 왕비, 윌리엄 왕세자,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가 윤 대통령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왕세자비는 한국을 가본 적이 없기에 초대해준다면 방문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찰스 3세 국왕도 갈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언제든 환영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등을 만나 환담했다. 바이든 대통령과는 곧 유엔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 트러스 총리는 윤 대통령에게 리셉션의 내용을 전했다. 리셉션에는 나루히토 일왕, 요르단 국왕 부 등 왕실 인사들도 참석했다. 윤 대통령이 리셉션 참석 전 소화하려 했던 일부 일정은 취소됐다. 윤 대통령은 앞서 런던 도착 직후 기내에서 취재진과 만나 “오늘 일정은 6·25 참전 기념비 헌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추모, 찰스 3세 국왕이 주최하는 리셉션 세 개”라며 “런던 교통 상황 때문에 세 개를 다 할 수 있을지, 두 개만 할 수 있을지 정확하지 않다”고 설명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1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되는 장례식에 참석한다. 이어 한국전 참전용사에 대한 ‘국민포장 수여식’을 끝으로 1박 2일간의 런던 일정을 마치고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이동한다.
  • 열강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동유럽 ‘끼인 국가’ 험난한 줄다리기 [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열강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동유럽 ‘끼인 국가’ 험난한 줄다리기 [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 격변기 동유럽…두 지도자의 다른 길 “혼혈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2022년 여름 열린 한 정치 집회에서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외 언론과 정치인들은 그를 거세게 비난했다. 오르반 총리가 이런 말을 한 의도는 2015년부터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에 몰려들어 유럽인이 비유럽인과 뒤섞여 살게 됐다면서 단일 민족인 헝가리인은 혼혈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1998년 서른다섯 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총리 자리에 오른 오르반은 2010년 재집권한 뒤 올해 4월 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승리하면서 모두 5회에 걸쳐 헝가리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그는 20대부터 정치 일선에서 활동했다. 1963년생인 그는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난 1989년 20만 군중 앞에서 소련군 철수와 자유 선거를 요구하는 연설로 유명해진 ‘민주 투사’였다. 그러던 그가 2010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파 민족주의자로 180도 변신했다. 서구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열렬한 신봉자로 헝가리를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시키려고 노력했던 그가 극단적 민족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친서방 일변도의 기존 노선에서 벗어나 러시아, 중국 등과 손을 잡는 이른바 ‘동방 정책’(Eastern Opening)을 추진했다. EU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의 중요성을 알기에 ‘휴식트’(Huxit, 헝가리의 EU 탈퇴)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동양과 서양의 선착장을 오가는 왕복선(ferry)과 같은 외교 정책은 지속될 전망이다. 가스 80%와 석유 6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며 중국의 자본 투자를 절실히 기대하는 상황에서 오르반 총리는 당분간 서방과 거리를 두며 친중·친러 행보를 계속할 것이다. 이는 강대국 세력들이 맞부딪치는 헝가리의 지정학적 위험 요인과 기회 요인을 ‘중간국 외교 전략’으로 관리하면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실용 노선으로 풀이할 수 있다.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사뭇 달라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선사시대부터 동서 교통로의 중심이었다. 게르만족, 훈족, 아바르족 모두 이곳을 거점으로 유라시아의 초원 지대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중심축’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중요성 때문에 이곳에 정착한 어떤 정치 세력도 오랫동안 통일된 국가를 유지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Ukraine)는 동슬라브어의 u(인근)와 kraina(변경)의 합성어로 ‘변경·접경 지대’라는 의미다. 12세기에 등장한 이 명칭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세워진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국명으로 채택됐다. ‘변경’을 의미하는 일반명사였던 ‘우크라이나’가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때 ‘우크라이나’가 국가로서 지도상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이다. 국명에서부터 지정학적 특징이 드러나듯이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독립된 국가 형태를 길게 유지한 적이 별로 없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주변의 강력한 세력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으면서 국제 정세에 따라 이리저리 귀속됐다. 19세기에는 합스부르크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동부와 서부를 각각 분할 점령했다. 그나마 신생 독립국인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도 불과 몇 년 만에 소멸했고, 결국 1922년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련 영토가 됐다. 서유럽과 러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는 동부와 서유럽의 영향권에 있는 서부로 나뉜 채 전개됐다. 이렇듯 수백년 동안 계속된 종족적·문화적·종교적 이질감은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동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민족 국가를 형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1991년 소련 해체와 더불어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최대 문제점이자 과제는 여전히 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의 대립과 갈등이 심하다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동과 서가 번갈아 권력을 잡으면서 정치권에서 동과 서의 힘의 균형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헝가리 건국 이야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는 그리스정교회의 성인인 올가(Olga)의 하얀색 대리석 동상이 서 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일대에는 북쪽의 발트해에서 도래한 바이킹들이 현지 슬라브족들과 함께 882년 키예프 루스 공국을 건립했다. 945년 공국의 제2대 통치자 이고리 1세가 죽자 그의 부인 올가 대공비가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섭정했다. 남편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국정을 총괄하게 된 올가는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신흥 국가의 취약점을 보완하려고 외세에 의존하는 전략을 택했다. 당대 최고 강대국이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힘을 빌리고자 토착 신앙을 포기하고 직접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그리스정교회 세례를 받기로 한 것이다. 올가의 개종은 키이우에 그리스정교회가 전파되는 계기가 됐고, 그의 손자인 블라디미르 1세는 정교회를 국교로 선언했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올가와 결혼해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적극적인 구애 전략을 펼치자 올가에게는 이에 대항할 방안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올가는 비잔티움 제국에 편향된 의존도를 낮추고자 좀더 균형 잡힌 외교 전략을 모색했다. 올가는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서유럽의 신흥 강국 독일 왕국에 사절단을 파견했고(959년), 이들을 접견한 독일의 왕 오토 1세는 키이우에 심복인 아달베르트를 보낸다.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견제와 키예프 루스 공국 내부의 반발로 아달베르트는 도망치듯 키이우를 떠나야 했다. 그 이후 1000년이 지난 지금 이와 유사한 일이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서방의 나토로부터 지원을 받고자 했으나 오히려 러시아의 공세적 정책을 불러오는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강대국 사이에 ‘끼인 국가’인 지정학적 중추국(pivot state) 우크라이나는 자국 문제를 해결하려고 외세(EU와 나토)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또 다른 외세(러시아)가 개입하는 빌미를 준 것이다.이슈트반 1세(975~1038)는 헝가리 왕국을 세운 초대 국왕으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는 그를 기리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있고 그의 동상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가 지금의 독일 지역을 통치하던 신성 로마 제국 출신 기젤라와 결혼함으로써 헝가리 왕국은 유럽의 변방에서 경계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또한 이 결혼으로 헝가리와 서유럽 사이의 이주와 교류가 본격화했다. 이슈트반 1세가 1015년경 자기 아들을 위해 작성한 보감(寶鑑)인 ‘십훈’(十訓)은 왕이 지켜야 할 열 가지 덕목을 정리한 것인데, 이 중 하나가 ‘이주자들의 환대와 대우’다. 여러 지역 출신인 이주자들은 다양한 언어, 습성, 학식, 군사 기술 등을 가져옴으로써 왕국과 왕실을 이롭게 하지만 단일 언어와 풍습은 오히려 왕국을 나약하고 쉬이 쇠락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주자들을 현지인과 동등하게 보살피고 그들에게 합당한 직책을 부여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즉 외국인 차별 금지는 헝가리 왕국의 건국 이념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주자 수가 늘어나고 이들의 사회·정치적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그때까지 낙후했던 헝가리 사회는 점차 발전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후에도 중세의 헝가리 왕들은 종교나 종족에 개의치 않고 모든 이주민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관용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오늘날 ‘외지에서 온 이주민을 환대하라’는 왕국 건설자의 유훈은 완전히 잊히고 말았다.● 역사의 가르침을 외면한 지도자들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는 서방의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대신 러시아나 중국 같은 국가를 모델로 삼아 나아가야 한다”면서 서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구, 러시아, 중국이 유라시아 중부 지역에서 벌이는 ‘뉴 그레이트 게임’(New Great Game) 속에서 오르반 총리가 보여 준 이러한 균형 정책에 헝가리 유권자들은 기꺼이 표를 던졌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만 극대화하려는 오르반 총리는 ‘이주민 환대’라는 건국 아버지의 유언을 망각한 나머지 주변 국가로부터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모 올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특정 강대국에 치우치는 선택을 하지 말고 동서로 분단된 자국이 협력적으로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고민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 같지 않다. 민족 명절인 추석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자 북한에 회담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그나마 다행이다. 중앙대 교수·작가
  • 韓총리, 정부 대표로 27일 아베 국장 참석

    韓총리, 정부 대표로 27일 아베 국장 참석

    한덕수 국무총리가 오는 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에 한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다고 총리실이 15일 밝혔다. 한국 정부 조문 사절단은 한 총리가 단장을, 국회부의장인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부단장을 맡는다. 윤덕민 주일 대사와 전 주일 대사인 유흥수 한일친선협회중앙회 회장도 사절단에 포함된다. 한 총리는 국장을 전후해 일본 정·관계와 재계 주요 인사를 면담하고, 재일 동포 대표 초청 간담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총리실은 “일본에 머무는 기간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은 27일 오후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국장 참석자는 최대 6000명 정도가 될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등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리의 출국은 지난 5월 취임 이후 두 번째다. 앞서 6월에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전을 펼치고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 참석했다.
  • [글로벌 In&Out] ‘초불확실성의 파도’, 싱가포르는 이렇게 넘는다/김창범 전략문화연구센터 고문(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글로벌 In&Out] ‘초불확실성의 파도’, 싱가포르는 이렇게 넘는다/김창범 전략문화연구센터 고문(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에는 한 치의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 8월 21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싱가포르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강조한 말이다. 결연함이 느껴진다. 국내외에서 불어오는 거센 도전의 바람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채 600만명이 안 되고 서울시보다 조금 큰 면적의 나라지만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를 낸다. 생존전략 차원에서 세계 정치안보 정세와 경제의 흐름을 빠르게 예측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고 ‘개방과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사례는 유사한 도전에 직면한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나침반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 역시 치솟는 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민생 경제가 압박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인해 대외 경제 환경이 악화됐다. 에너지, 식품, 원자재의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어져 올해 경제 성장은 당초 예상한 5%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리 총리는 지난 30년 동안 싱가포르의 지속적인 발전을 견인해 오던 글로벌 경제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강조했다. 리 총리가 역설한 것처럼 세계화의 확산,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과 수출 확대로 상징되던 시대는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중국의 성장은 이미 하강 추세를 보이고 있고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와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경쟁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해 싱가포르는 경제 체질을 업그레이드하는 동시에 자체 성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 세계가 보호주의를 내세우며 장벽을 세워도 싱가포르는 개방을 유지하고 전 세계와의 연계를 통해 발전해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교란 속에서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노력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식량과 필수의약품 비축을 늘리면서 2030년까지 싱가포르 식품 수요의 30%를 자체 생산한다는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농업 생산성 제고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생산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초불확실성의 파도를 정면으로 넘으려는 싱가포르의 결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도시국가로서 세계적인 수준의 ‘인재 풀’ 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자국 국민의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집중 투자를 하는 한편 외국의 고급 두뇌와 글로벌 기업을 더 많이 유치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 이런 노력은 최근 들어 조금씩 결실을 보고 있다. 그 하나가 현재 조성 중인 ‘주룽 혁신지구’다. 디지털 전환과 자동화를 기반으로 ‘살아 있는 실험실’이자 최첨단 제조업 허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일본의 최대 산업용 로봇회사인 ‘화낙’, 독일 ‘지멘스’ 등의 기술연구센터를 유치했고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난양공대를 비롯한 국내외 연구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혁신센터’가 지어지고 있으며 전기차 전용 스마트 공장도 가동될 예정이다. 발 빠른 국경 제한 완화로 컨설팅과 법률 서비스 같은 전문 서비스 분야의 성장을 촉진해 나가고 있다. 싱가포르가 강점을 지니고 있는 항공과 관광, 물류 분야의 회복도 가속화해 가고 있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 ‘선택과 집중’을 추구하는 접근은 우리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치열해지는 미중 갈등 속에서 안정적인 공급망과 수송, 물류의 허브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해지는 글로벌 상황을 활용해 우리도 보다 민첩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 기시다, 유엔총회서 바이든 회담 추진

    기시다, 유엔총회서 바이든 회담 추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는 20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일정을 추진하고 있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지난 6월 독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단시간 회담한 이후 3개월 만이다. 미일 정상은 회담이 이뤄지면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의 동·남중국해 동향, 긴박한 대만 정세에 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새 경제 통상 플랫폼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관해서도 장관회의 성과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은 유엔총회 외에도 오는 1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서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유엔총회에서 한일 정상회담 성사 여부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유엔총회 때 한일 정상회담 실시 여부에 대해서는 현시점에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날 브리핑에서 “양자 정상회담이 될지 아니면 풀어사이드(약식회동)가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회담을 추진 중”이라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전한 것과는 온도차가 있다. 한편 기시다 총리가 외교에 집중하는 동안 국내 지지율은 갈수록 떨어지며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NHK가 지난 9일부터 3일간 유권자 1255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 조사 때보다 6% 포인트 하락한 40%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NHK 조사로는 역대 최저치였다.
  • “시대를 규정한 지도자” 전세계서 영국 여왕 추모 물결

    “시대를 규정한 지도자” 전세계서 영국 여왕 추모 물결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면서 전세계에서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공동 성명을 내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군주를 넘어 시대를 규정했다”면서 “미국과 영국의 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했고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엄과 불변의 정치인”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예정된 연설 일정을 취소하고 부인과 함께 미국 주재 영국대사관을 방문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모든 공공기관과 군부대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의회에 같은 지시를 했다. 미국 전직 대통령들도 여왕을 기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여왕의 우정과 지혜, 유머 감각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여왕은 2차 세계 대전 기간 현역 군 복무를 한 최초의 여성 왕족이었다”라며 “품위와 위엄, 지치지 않는 집무 윤리로 고유한 여왕의 역할을 만들어냈다”고 기렸다. 전쟁 중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왕위를 승계한 찰스 3세 국왕에게 보낸 서한에서 “여왕은 수십년간 세계 무대에서 권위와 함께 정당한 사랑과 존경을 누렸다”면서 “상실을 직면한 이들이 용기로 이겨내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여왕의 서거 소식은 깊은 슬픔”이라며 “우크라이나 국민을 대신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영국 전체와 영연방에 진심으로 애도를 전한다”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영국 국민뿐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큰 손실”이라며 “여왕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매우 큰 역할을 했으며 영일 관계 강화에 큰 공헌을 했다”고 밝혔다. 유럽과 과거 영국 식민지 국가로 구성된 영연방에서도 추모 메시지가 이어졌다. 프랑스는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애도 표시로 대통령궁과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했고 수도 파리에 있는 에펠탑 조명을 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여왕은 동시대를 보낸 8명의 프랑스 대통령을 모두 알고 지냈다”며 “그는 20세기 역사의 거인들 옆에 우뚝 서 있을 것”이라고 기렸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과 영국의 화해를 위한 그의 노력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여왕은 사회 진화 속에서 전통의 가치를 지켜왔다”고 했고,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은 “우리 모두의 모범이 되어준 여왕은 미래 세대에 견고하고 가치 있는 유산을 남겨줬다”며 “그가 그립다”고 애도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번 여왕과 함께 자리했던 것이 마지막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여왕의 존재는 캐나다 역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왕의 즉위 전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여왕은 우리 시대의 충실한 헌신자로서 기억될 것”이라며 “공적 생활을 통해 위엄과 품위를 전형적으로 보여줬다”고 추모했다. 여왕 재임 시기인 1982년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을 벌였던 아르헨티나의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지금 이 순간 슬픔에 빠져 있는 영국 국민과 왕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리브해 국가들도 영국 식민지 시절 배상 문제로 인한 갈등을 잠시 뒤로 하고 추모 물결에 동참했다. 앤드루 홀니스 자메이카 총리는 여왕이 자국을 자주 방문한 점을 언급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여왕은 자메이카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며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프지만 그의 역사적인 통치를 기억할 것”이라고 기렸다. 데이비드 버트 버뮤다 총리는 “영국과 세계가 거대한 변혁을 맞는 수십년간 여왕의 통치가 이어졌다”고 했다.
  •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이른 새벽에 검찰에 연행됐다 1992년 10월 29일 새벽. 네 명의 검찰 수사관이 집으로 밀어닥쳤다. 출판인 장석주는 곧장 서울지검으로 연행돼 갔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이미 연행돼 와 있었다. 검찰은 마 교수가 그해 써낸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했다. 검찰권력은 마 교수와 책을 펴낸 청하출판사 장석주 대표를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 혐의로 몰아 그날 저녁 8시에 전격 구속했다. 두 사람은 포토라인에 세워졌고 언론들은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그날 밤 텔레비전 9시 뉴스는 두 문화인의 구속을 난리가 난 듯이 보도해댔다. 검찰은 작가와 출판인을 이미 6개월 전부터 수사하고 있었다. 국무총리 현승종은 “어찌 이런 야한 내용이 공공연하게 출판될 수 있느냐”면서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뒷날 검찰총장이 되는 김진태가 담당 검사였고, 이건개가 서울지검 검사장이었다. 두 ‘공범’은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끌려다니다가 두 달 만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진보적인 이념으로 민주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80년대에 마 교수는 단독자로 성(性)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청하출판사에서 이미 ‘상징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마광수 문학론집’을 펴냈다. “그는 독특한 유형의 천재였습니다. 솔직하고 유쾌한 성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검찰권력이 들이댄 문학의 잣대는 그 작가와 그 출판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사건이 됐다. 마 교수는 재직하던 연세대로부터 추방당했다. 법정 싸움을 통해 해직과 복직을 반복해야 했다. 결국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심약하고 고립된 예술가에게 이 사회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한 문학가를 우리 사회 전체가 공모해서 죽인 것입니다. 빈센트 반고흐의 자살도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듯이, 마 선생의 죽음도 자살의 형식을 빌렸지만 우리 사회가 타살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를 ‘변태’라고 몰아세워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출판인 장석주에게도 ‘즐거운 사라’ 사건은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그해 12월 30일 ‘석방’됐지만, 1993년 1월 3일 새해를 맞아 서귀포로 가서 한 달을 머물며 고민했다. 결국 출판을 접기로 했다. 청담동의 사옥과 대치동의 집을 팔고 출판사를 정리했다. 1억원이 남았다. 의왕시로 가서 30평형 아파트를 세 얻었다. 책 만들기 13년 만이었다. 나름 개성 있는 책들을 기획해 냈다. 베스트셀러를 여럿 펴냈다.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1987)는 200만 부의 슈퍼셀러였다. 몇만 권씩 읽히는 ‘니체전집’ 10권도 여느 출판사가 펴내지 못하는 기획이었다. 장 그르니에 선집을 펴냈고 인문과학시리즈 ‘청하신서’를 펴냈다. 1979년 고려원에 입사해 3년 동안 편집자로 일하다가 1982년 청하출판사를 창립해 500종 이상을 출간했다. 책에 대한 장석주의 헌신은 개성 있는 출판사 청하의 이미지를 출판계에 각인시켰다. “출판사명 ‘청하’(淸河)는 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책을 만들자는 소박한 생각을 했습니다.”●정독도서관, 청소년 시절의 책 읽기 그가 펴낸 책들과 작가들이 그를 말한다.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32세에 자살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독일 시인 파울 첼란도 센강에 투신자살한다.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태양의 돌’과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사물시편’이 그의 정신의 한 내면일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실존의 문제가 그의 가슴에 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 땅의 젊은이들이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책 읽고 행동하는 시대, 그 혁명적 정조(情調)의 시대에 출판인 장석주의 책 만들기는 인간의 본성탐구 그것이었을 것이다. 1955년 충남 논산의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장석주는 10세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왔다. 아버지는 가난한 목수였다. 서울에서 장석주가 만난 책의 세계는 ‘문화충격’ 그것이었다. 책은 무한의 총체였다. 학급문고와 친구들과 형들이 읽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독서가 장석주의 탄생이었다. “청운중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빌려 온 오영수 전집을 단숨에 읽고는 제 안의 노스탤지어가 폭발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김소월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학원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보다 정독도서관에서의 책 읽기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의 권위주의 권력은 학교를 병영화시켰다. 그는 책의 세계로 도피했다. 저항의 몸짓 같은 것이었다. 정독도서관은 독서로 구현되는 피안의 세계였다. 황순원·김동리·손창섭·이제하·김승옥·이청준·박태순·이문구·박상륭·황석영·최인호 같은 한국소설가들, 고은·김종삼·김수영·김지하·황동규·신경림·김영태 같은 한국시인들, 카프카·카뮈·헤세·헤밍웨이 같은 국외 소설가들, 니체·바슐라르·사르트르·프로이트·융 같은 철학가와 사상가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미술사·성서고고학을 탐독했다. 노트했다. 정독도서관 시절의 이 노트들과 습작들이 1979년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시와 평론의 기초가 됐다. “저는 정독도서관에서 동과 서, 어제와 오늘의 책들을 두루 찾아 읽으면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깨 너머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정독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책 읽기는 잊을 수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희망 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옥죄었지만, 날마다 책 읽는 것으로 그 고통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토록 책 읽기에 매달린 것은 책이 그를 새로운 의미의 존재로 이끄는 충만한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책은 심오한 통찰로 이루어진 위대함, 무한한 사유와 창조를 이끄는 촉매제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주 샛길로 빠져 엉뚱한 영역에서 헤맸지만, 그 자체가 경이로웠습니다. 그 일탈의 경험은 또 다른 사유와 무한한 형태의 창조적 진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지요. 책의 권능이었지요. 저는 독서를 즐거움의 수단으로 삼았지만, 이 즐거움이야말로 제 안의 ‘혁명’이자 ‘결단’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그가 읽은 다양한 문학이론서들.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들, 김우창과 김현의 비평서들이었다. 문학의 내재적 가치에 눈뜨고 나름의 방법론을 세웠다. 문학비평으로 가는 길이었다. 책 읽기는 그의 삶의 대안이었고, 사유의 모든 것이었다. 책 읽기로 시인이 됐고, 평론가가 됐고, 저술가가 됐다. “시와 철학은 오성(吾性)을 향하는 길에서 방법론적 차이를 가질 뿐 한 혈통입니다. 시는 상상력을, 철학은 사유를 방법론적 매개로 삼습니다. 시는 자명함을 배제함으로써 자명함에 닿고, 철학은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의미에 닿습니다. 철학은 상식·대화·지혜 너머로 나아가려는 사유 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빛을 내는 행위입니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장석주에게 가장 진실한 명제일 것이다. 읽음으로써 그는 현실 속에서 실체를 구현해 내는 것이었다. 독서가 장석주! ●니체와의 만남 “제 인생 철학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 니체의 철학은 벼락처럼 제 머리에 꽂혔습니다. 니체의 책들이 굶주린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인식욕을 채워 주는 한편 제 절박한 내적 필요에 응답했습니다. 20대 때 저는 광대의 역할을 떨치고 일어나 사자의 심장을 갖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니체는 제게 속삭였습니다. ‘나는 너의 미로다’라고. 저는 굶주린 자가 젖과 꿀에 탐닉하듯이 니체 철학의 정수를 정신없이 들이켜며 철학이 건네주는 황홀과 도취 속에서, 부정의 정신에서 긍정의 정신으로 돌아섰습니다. 어느 순간 삶에 얽힌 매듭들이 주르륵 풀렸습니다. 더는 삶을 버거워하며 우울감에 빠지거나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장석주가 그동안 읽고 모은 책들이 3만 권이 된다. 온갖 책들의 섭렵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시집이 물경 5000권이나 된다. 소설이 수천 권이 될 것이다. 문학이론·인문서·예술서들이 또 얼마나 될까.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때로는 여러 번씩 읽다 보니 100권이 더 되는 책을 저술해 냈다. 장석주는 자신을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라고 칭한다. 사람들은 그를 ‘인문학 저술가’라고도 부른다. 책의 내용을 널리 알리고 책 읽기를 권하는 ‘독서교사’가 됐다. 세상의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를,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는 작업이란, 책과 책 읽기를 사랑하고 스스로 출판해 낸 그에게는 운명 같은 일이다. 그가 북리뷰해서 써낸 책들이 열 권을 넘어서고 있다. 젊은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와 즐거움을 이야기해 주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행복하다. 그가 써낸 책들이 우리 현대문예사의 한 장르가 돼 가고 있다. 첫 시집 ‘햇빛사냥’으로부터 가장 최근의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등 18권의 시집을 냈다. 문학을 통해 본 현대한국의 사회문화사인 ‘20세기 한국문학의 탐구’(전 5권), ‘일상의 인문학’, ‘이상과 모던뽀이들’, 이광수에서 배수아까지의 작가론인 ‘나는 문학이다’, ‘풍경의 탄생: 한국시의 이미지 계보학을 위해’, 동양철학에서 우리 시를 읽는 ‘상처 입은 용들의 노래’, ‘은유의 힘’ 등이 그것이다.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가 기억에 남는 한 권의 책이다. ●생의 고비마다 책이 있었다 보르헤스는 말했다. “쟁기와 칼은 손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그 이상이다. 책은 기억의 확장이다”라고. 한두 권의 책이 아니라, 수많은 책들 속에서, 그 책들의 내면을 탐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낸다.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 항상 중요한 국면마다 책이 있었습니다. 아직 뼈가 약하고 살이 연할 때 저를 키우고 단련한 것도 책이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해 스스로 낙오자가 되어 시골로 내려와 쓸쓸한 살림을 꾸릴 때, 힘과 용기를 준 것도 책이었습니다. 평생을 책과 벗하며 살아왔으니, 제가 읽은 책들이 곧 내 우주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안에 다정함이나 너그러움, 취향의 깨끗함, 투명한 미적 감수성, 올곧은 일에 늠름할 수 있는 용기가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모두 책에서 얻은 것입니다.” 독서가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수많은 책들이 합창하면서 창출해 내는 그의 정신의 한 풍경일 것이다. “저는 늘 책을 삽니다. 책을 사들일 때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서점에 나가 책을 사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책을 읽을 시간도 얻습니다.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나는 국가와 결혼하지 않았다”…사랑도 파격 ‘고르비의 순애보’

    “나는 국가와 결혼하지 않았다”…사랑도 파격 ‘고르비의 순애보’

    “그는 일보다 부인을 사랑했고, 국가보다 인권을 우선시했으며, 개인의 힘보다 평화로운 하늘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냉전을 종식한 옛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91세의 나이로 지난달 눈을 감으며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 곁에 묻힌 가운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독립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인을 회상하며 남긴 말이다. AP통신은 “고르바초프의 결혼은 그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틀을 깨뜨렸다”며 소련 출신 지도자로서는 전례가 없을만큼 눈에 띄게 사랑이 넘치는 결혼생활을 보냈던 고인의 순애보를 최근 집중 조명했다. ● “소련 출신 지도자로서 전례없이 사랑넘치는 결혼생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1999년 라이사 여사의 장례식에서 “두 사람은 진정한 한 쌍이었고, 그녀는 항상 그의 편에 있었다. 그가 성취한 것의 대부분은 부인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그 옆에서 당시 부인을 잃은 고르바초프가 오열했다. AP통신은 가족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헌신적인 사랑과 공개적인 애착은 현재 베일에 쌓인 러시아의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비밀스러운 사생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모스크바 대학에서 만났다. 라이사 여사는 직설적인 말투, 세련된 매너, 패셔너블한 옷차림으로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라이사는 항시 그의 여행에 동행했으며 정책과 정치에 대해 남편과 함께 논의했다. ● 부인 사망 후 20년 넘게 혼자…책, 노래 내며 추억 회상 AP통신은 ‘냉전체제를 종식하고 동구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소련의 해체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동구권을 서방에 넘겨준 ‘배신자’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는 남편 고르바초프의 발자취와 함께 라이사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두드러진 역할이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라이사 여사가 백혈병으로 생사를 오갈 때 부부의 사랑은 동정의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라이사 사망 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르바초프는 라이사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기도 했다. 그는 2009년 라이사를 위한 노래를 발매해 유명 음악가와 함께 부르기도 했고 ‘선택-미하일 고르바초프 최후의 자서전’을 출판해 라이사와의 추억을 담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인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도저히 부인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나는 부인의 침대 머리맡에 붙어 앉아 하염없이 부인을 불러댔다”며 절절한 부인에 대한 마음을 드러냈다. 또 그는 “나는 러시아나 소련과 결혼하지 않았다. 나는 부인과 결혼했다”고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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