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독일 반응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용적률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진상조사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아파트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봉사활동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452
  • 「7ㆍ20 남북자유왕래 선언」의 뜻(긴급대담)

    ◎“이념보다 민족 우선”… 가장 현실적 통일 접근/중국­대만간의 「협약없는 교류」 배울만/4강엔 「한반도 데탕트」 지원 유도 계기/북측 강온싸움 가속화 예상…보안법 철폐등 내세워 시간벌기 펼칠지도 「민족대교류」를 제의한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는 우리정부가 북한의 주장을 전향적으로 수용,민족교류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자는 획기적인 선언으로 북한의 대응여하에 따라서는 분단극복을 위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흐름과 북한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온 최평길교수(연세대)와 도흥렬교수(충북대)의 대담을 통해 이번 특별발표의 의의와 배경 그리고 이 발표 앞으로 남북관계에 미칠 장단기적인 영향 등을 들어본다. □참석자 ▲최평길교수 연세대 ▲도흥렬교수 충북대 사회=이동화 편집부국장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는 일차적으로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앞으로 이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따라서 남북분단의 벽을 허물수도 있으며 남북간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리라고 봅니다. 노대통령의 특별발표의 전반적인 의미와 그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최평길교수=노태우대통령의 제의는 분단이후 4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사회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의 모든 제의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원한다면 모든 왕래와 교류를 허용하겠다는 이번 제의는 분단이후 민족사에 일대 획을 긋는 쾌거인 동시에 세계사적인 흐름으로 볼때 「당연한」조치라고 봅니다. 다만 70년대에 7ㆍ4남북공동성명이 있었다면 오늘의 이같은 제의는 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 나왔어야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특별발표는 전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이 실질적인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데 있어 진일보한 조치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는 한편 간접적으로는 미ㆍ일ㆍ중ㆍ소 등 주변 4대강국에 대해 남북한의 실질적인 통일을 위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할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경제교류부터 시작 이번 제의가 구체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우리측이 어떤 후속조치를 취하느냐와 북한이 과연 이를 수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도흥렬교수=특별발표의 의미나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우선 우리 정부가 우리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표명했으며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북교류의 실체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김일성의 올 신년사에 대응,북한이 제의하고 있는 통일정책을 전향적이고 포괄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언으로 볼 수 있으며 세번째는 독일통일에 크게 고무받아 우리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선언은 한ㆍ소 정상회담의 성사에 이은 양국간의 관계진전,7ㆍ7선언이후 계속된 우리측의 각종 대북제의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으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혁명적인 거보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번 제의가 갖는 의미를 여러 면에서 지적하셨는데 이 제의를 앞으로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판문점공동경비구역내 북측지역의 개방선언,8ㆍ15범민족대회,남북고위급회담 등과 관련해 이번 제의가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말씀해 주십시요. ▲최=북한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여건을 종합해 볼 때 우리가 추진하는 방향으로 보조를 같이 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가령 북한은 소련으로부터는 정치ㆍ경제적인 개방압력을,중국으로부터는 단계적인 경제적 개혁이나 대외경제적 개방을 종용받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실정입니다. 동구식의 개혁ㆍ개방정책을 추진할 경우 북한체제의 근저를 뒤흔들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내부에서는 개방과 개혁을 추구하는 경제ㆍ행정관료 중심의 진보파와 혁명1세대라는 수구파 사이에 정책적 갈등이 노출되고 있고 이에 따라 대내적 정책방향은 물론 대남정책에 있어서도 뚜렷한 방침이 정립돼 있지 못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따라서 북한은 고위급회담등 정치선언적 의미가 큰 남북회담에는 응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대화는 기피하면서 여러가지 조건을 붙여 한국정부에 그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당분간 견지하리라고 봅니다. 또한 남북고위급회담도 범민족대회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거부하든지 아니면 7ㆍ4공동성명당시 서명자인 김영주대신 박성철이 나왔듯이 연형묵총리를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총리등 실세가 아닌 제3자를 내세울 가능성도 높습니다. ▲도=북한이 보일 반응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봅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우리의 이번 제의를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현재 북한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북한경제를 연구하는 소련학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백달러를 넘지 않으며 더 놀라운 일은 공장ㆍ기업소의 가동률이 40∼50%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72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후 85년 남북고향방문단이 다시 남과 북을 오가는데는 13년이 걸렸습니다. 즉 남북간의 비교열세를 확인했던북한이 평양시가지를 대대적으로 정비,자신있게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계획적이고 치밀한 판단이 서야만 북한사회를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의 권력층이 그들의 체제열세를 대내외에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자유왕래를 허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한 북한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식을 모색하는 과도기의 단계에 있고 김정일 후계체제의 구축에도 많은 걸림돌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과연 우리의 의도대로 따라오겠느냐는 것은 역시 의문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직접적인 거부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의 철폐라든가 임수경ㆍ문익환목사의 석방,미군철수 등 여러가지 전제조건의 해결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나름대로의 대응방식을 찾기까지 시간벌기작전을 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제의가 남북한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이나 파급효과 등은 어떻습니까. ▲최=직접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통일정책을 미ㆍ일ㆍ중ㆍ소 4대강국은 물론 세계에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북한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의 권력 핵심부에 큰 영향을 미쳐 개혁성향을 가진 계층과 세습체제를 고수하려는 수구계층과의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북한의 권력핵심부를 어느 쪽이 차지하느냐에 달렸는데 이번 제의는 개혁파의 세력부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의 연령(78)등을 고려,오는 92년이나 가까운 시일내에 정권교체의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데 이번 제의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정=그렇습니다. 북한에서의 이념투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에는 저도 동감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선동적 통일전선차원의 각종 제안을 내놓았으나 이번에 우리정부가 북한의 제안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앞으로는 섣부른 선동이나 선전적인 제안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중ㆍ소서도 교류지원 ­민족교류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 민족교류에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한지,또한 동서독과 중국ㆍ대만등 외국의 경우와 비교,어떻게 민족교류를 전개해야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최=북한의 수용여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주변 4대강국의 지지여부도 중요합니다. 남북한을 포함한 6자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동서독과 비슷한 경제교류입니다. 경제교류는 중국과 소련도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사회주의경제의 최대 약점인 생산관리기법이나 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군비축소와 관련된 실질적인 결실이 있어야 하며 북한도 이를 진심으로 원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측은 선 군비축소통제,후 신뢰구축을 주장하는 북한의 제의를 전향적으로 수용,이를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도=남북관계에서 우리는 대화와 접촉ㆍ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북한은 선 군비축소주장을 펴왔습니다만 앞으로는 전제조건이 없어야 하며 이점에서 대만의 방식을 참고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만의 행정원은 지난 87년 10월 대만인들이 대륙의 가족을 방문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만인들은 가족방문을 시작했고 이어 관광ㆍ비즈니스방문 등으로 대륙방문을 확대해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중국과 대만간에는 거창한 공식적 협약도 없이 왕래가 이뤄지고 이를 통해 동질성과 전통성을 회복,신뢰구축을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대만식의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도 제한된 기간이지만 조건없는 왕래를 허용함으로써 오해와 불신을 조금씩 씻어내야할 것입니다. ▲최=독일은 동서독분단이후 즉시 매년 4백∼5백여명씩 크리스마스가 되면 서로를 방문할 수 있었고 점차 그 수를 늘려나갔습니다. 우리는 6ㆍ25전쟁으로 이것마저 없었는데 이번 제의를 계기로 이제부터라도 제한된 수,제한된 기간이나마 서로 오가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북한은 지난 60년대는 조총련을 통해,80년대는 재미교포를 통해 경제적인 도움을 추구했는데 90년대에는 북한출신 한국기업인들을 불러들여 부분적인 경제적 도움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또 순수한 관광객유치를 통해 제한적이나마 북한을 개방한다고 과시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가 통일을 이루기위해 앞으로 취해야할 조치들을 말씀해 주십시요. ▲도=대만의 예처럼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며 관계법에 따른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조속히 구성,활동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선언앞서 제도 마련” 또한 북한의 입장을 고려,정책추진의 완급을 조정해야하며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국민들의 반응도 생각해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인 조치는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분배구조를 개혁,7.7%에 이르는 3백30만명의 절대빈곤계층의 불만을 해소하는 것도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입니다. ▲최=첫째 정치적 선언에 앞서 법적 제도적 조치를 먼저 취해야합니다. 국가보안법 개정을 서둘러야 하고 냉전시대의 법규ㆍ정책을 과감히 정비해야 합니다. 둘째 통일과 민족교류의 문제를 정권적 차원에서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정부는 내부결속을 위해 야당 및 재야 등 각계각층과 충분한 협의과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 “그리운 혈육 만나려나”… 설레는 실향민

    ◎“남북왕래”선언… 온국민이 “대환영”/이북5도청등 문의전화 “빗발”/“북서 거부”소식에 다소 실망도 노태우대통령이 남북자유왕래를 허용하는 「민족대교류기간」을 선포한 20일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날 대통령의 담화내용이 온국민의 염원인 통일의 길을 앞당기는 획기적인 조치라고 환영하며 북한측의 반응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국민들은 북한측이 노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번 광복절때 남북교류가 이뤄지면 그것을 계기로 교류의 폭을 더욱 넓힐 수 있고 나아가 통일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날 하오 북한측이 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실망하는 모습들이었다. 특히 이북5도민회 등 북녘에 가족과 친지를 두고온 실향민들은 『이번에야말로 남북왕래가 실현돼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측이 노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일 것을 간절히 바랐다. 이날 이북5도청사무국과 1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회에는 방북신청절차 및 필요한 서류ㆍ준비사항 등을 묻는 실향민들의 성급한 전화가 빗발쳤다. 일부 시민들은 그러나 북한측의 폐쇄정책 등으로 미루어 이번 조치가 기대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부의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후속조치를 기다렸다. 정부의 시책에 늘 비판적이던 「전민련」과 「전대협」 등 재야 및 학생운동단체에서까지 이날 노대통령의 담화를 『통일의 실현을 위한 전진적인 조치』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러나 『남북간의 실질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문익환목사ㆍ임수경양 등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재야단체들은 이번 담화에 따라 다음달 13일부터 15일까지 판문점에서 열 계획인 이른바 「범민족대회」에 대한 정부의 불허방침이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보고 『이 대회를 실현하기위해 곧 정부여당ㆍ평민당 등과 구체적인 실무접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각계의 소리/“민족화합기반 구축의 대결단/경제협력등 실질방안 따라야/거부 예상했지만 기대 못버려” ▲전경련=대통령의 선언은 남북한 인적왕래를 특정기간 개방함으로써 민족화해의 기반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족통일을 위한 신뢰와 전망을 밝게 해 이를 촉진하려는 결단으로 환영한다. ▲조동영씨(67ㆍ1천만 이산가족재회 추진위원회 사무총장)=51년 1ㆍ4후퇴때 혼자 월남했다. 북에는 부모님이 계시는데 꿈속에 자주 나타나는 것을 보면 살아계실 지도 모르겠다. 이번 방문이 성사돼 한명이라도 많은 실향민들이 고향에 갈수 있게되길 바란다. ▲조영황변호사=노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독일통일 등 국제적 정세에 맞춰 한반도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획기적인 조회로 크게 환영한다. 앞으로 남북간의 경제협력이나 상호방문 등 점진적이고도 실제적인 교류방안을 모색하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할 것이다. ▲어수영교수(51ㆍ이화여대 정치외교학)=이번 담화는 7ㆍ7선언보다 진일보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조치에 대해 북한측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의문이지만 인도적 입장에서 북한이 이를 수용,판문점을 통한 자유왕래가 실현된다면 통일로가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신신묵목사(한강중앙교회담임)=북한이 우리 제의를 받아들여 판문점을 열면 그들이 평양에 세웠다는 봉수대교회에서 예배를 올리고 싶다. 그렇게 되길 기도하겠으며 몇 안되는 북한성도들도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박현성스님(서울도선사주지)=우리 불교계는 지금까지 여러 채널을 통해 여러가지 방법의 교류를 모색해 왔다. 이번 특별담화로 명절때만이라도 남북합동법회가 열리고 더 나아가서 북한불교유적을 복원하는데 참여할 수 있길 희망한다. ▲김성재씨(66ㆍ황해도중앙도민회 사무국장)=지난 47년 황해도 장연에서 월남한 뒤 한시도 북에 계신 부모님을 잊어본 적이 없다. 이번 선언이 현시화돼 모든 실향민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했으나 예상대로 북측이 거부하고 나와 실망스럽다.
  • 불,대일관계 강화 모색/통일독일의 정치ㆍ경제력 대응

    ◎로카르총리,내일 방일 【도쿄 로이터 연합】 프랑스는 통일독일의 강력한 정치ㆍ경제력을 상쇄하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강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일본 외무성 관리가 17일 밝혔다. 그는 『프랑스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 통일 독일의 정치ㆍ경제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밝히면서 『새로운 국제질서하에서 일본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과 관련,프랑스는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발견하게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본은 프랑스가 유럽정치통합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무성 관리의 이같은 논평은 미셸 로카르 프랑스총리의 일본방문 이틀전에 나온 것으로 로카르총리는 일본을 방문,아키히토 일본왕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등 정부지도자들 및 일본경제계지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 “나토 군사전략 수정”확인의 대좌/런던 정상회담 의미와 전망

    ◎동구 변혁ㆍ통독 따른 새질서 모색/미ㆍ유럽안보 전면 재편의 분수령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은 냉전시대 이후를 대비한 나토의 위상변화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회담은 특히 나토의 구조개편과 함께 새 유럽안보체제 창출을 위한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토체제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것이며 소련등에 아직도 불확실성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결국 큰 성과없이 끝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나토는 지난 49년 소련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창설된 이후 가장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다. 소련의 위협이 현저하게 감소되고 동유럽의 민주화로 새로운 유럽안보질서의 정립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토정상들은 따라서 급격한 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나토의 기본전략을 전면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나토는 특히 현재 진행중인 소련공산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의 입지를 강화해 주기 위한 전략으로 서방 안보체제가 소련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토의구조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있음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간의 상호 불가침선언제안이 이번 회담에서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불가침선언은 그러나 두 기구간에 일괄적으로 이루어질지 각국별로 개별적인 형식을 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나토정상들은 또 40년전 아이젠하워대통령때부터 계속 유지돼온 나토의 기본 군사전략을 재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소련의 재래식 공격을 나토의 동부국경에서 격퇴시킨다는 「전진방위」전략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재래식 공격에 대해 핵무기를 선제사용한다는 「신축반응」전략을 재검토한다는 것이다. 부시미대통령은 이미 핵무기는 「최후수단」이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유럽배치 핵포탄의 철수를 제의,나토군사전략의 변화를 시사한 바 있다. 영국은 그러나 나토 핵전략의 변경을 반대하고 있다. 나토 정상들은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에 대한 소련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도 소련에 대한 양보와 함께 나토 군사전략의 변화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서구안보를 군사적 개념에서탈피시키고 다원화된 국제정세에 보다 효과적인 경제적 정치적 장치에 의존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토의 정치적 장래에 대해서는 회원국들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나토의 정치적 역할의 확대를 강조하고 있으나 서독과 프랑스는 이같은 구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특히 나토의 정치적 역할의 확대에는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와 서독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안보ㆍ정치적 역할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소련도 CSCE의 역할 증대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전유럽기구인 CSCE가 새로운 유럽안보체제의 기본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토회원국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는 나토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CSCE는 유럽의 인권신장이나 인종분규의 해결을 위한 중재역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유럽에서의 지도력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가장 강력한 나토회원국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미국역할이 점차 축소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유럽의 변혁과 독일통일이라는 격변기에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나토의 기본전략의 변화와 함께 미국의 지도력이 시험받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한반도에 감도는 「독일증후군」/서병철 외교안보연 교수(세평)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토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에 이르는 가장 바람직한 처방은 독일식 접근방법인데 그 가능성이 보이고 있어 이는 우리에게 신선한 희망을 갖게한다. 독일식 방법이라 하는 것은 분단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사용을 배제하고 상호간 위협대상이 아니라는 신뢰를 구축한 속에서 접근을 통하여 실직적인 협력을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서로 방문하고 경제적으로 도와주며 필요하면 정상회담도 개최하고 유엔에서 옆자리에 앉아 국제문제에 의견을 일치시키는 가운데 국경선을 개방한 후 민족자결에 의하여 통일에 이르는 합리적 방법이 독일식이다. ○독일식 접근 바람직 지금까지 동서독에서와는 달리 남북한 관계개선이 전혀 진척되지 않은 것은 북한의 후기 스탈린주의적 경직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한으로 하여금 고집을 꺾고 타협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적 추세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지난 6월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회담을 통하여 마련되었다. 소련이 회담에서 경제문제에 치중하는 인상을 주려 했어도 국교수립이 안된 한국과의 정상회담 개최에 나선 것은 이미 양국간 관계에 급변을 예고해 주는 것이다. 한소 정상이 불과 1시간 동안 만났지만 양국간의 수교,서울과 모스크바 상호방문,한반도의 평화정착 공동노력,남북대화를 통한 교류 증진,그리고 경제협력 등 당장 필요한 모든 사항에 합의함으로써 근본적인 교류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의 긴장과 남북한간 대립을 조성한 배후의 근원인 소련이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냉전시의 산물을 정리하고 신사고를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였다.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정책이 체제유지에 장애물이라는 관점에서 외면해 왔으며 현상 유지에 도움이 안되는 외풍을 원천봉쇄하려 함으로써 소련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북한으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하는 충격요법을 활용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소련은 대세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는 과거의 브레즈네프 독트린과는다른 방법으로 벌을 받는다는예를 동유럽에서 보여온 바 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를 망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분수에 넘치는 저항을 하다가 차우셰스쿠가 쓰러졌다. 동독에서도 「자주성」을 내세우는 오만을 보인 호네커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소,북한에 충격요법 고르바초프는 한걸음 더 나가 분단국을 통일시키는 산파역할까지 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통독을 가로막는 빚장을 잠갔던 소련이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일에 청신호를 보임으로써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에대한 반대급부로 「한지붕 밑의 유럽」 계획을 성사시키는 결심을 얻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질서를 재정립하는 데 마지막 저해요소는 북한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탈바꿈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는 이미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과 동맹국들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조정되었음을 분명히 하였고 다음해 12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각국이 독자적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할 수 있음을 허용한 바 있다. 이는 소련이 자국의 행동 반경과 정책방향의 선택폭을 스스로 확대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지나치게 소련에 기대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은 것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소련과 동맹국들간의 관계는 50년대 중반기 상황을 방불케 한다. 당시 탈스탈린 정책이 소련에서 시작되어 다른 공산국에 전파되었고 얼마 가지않아 위성국들이 오히려 소련을 앞질러 스탈린 망령에서 벗어났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공산체제 개혁과 해체가 바로 그 진원지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변국들이 질적인 면에서 소련을 추월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오직 북한만은 45년전과 흡사하게 소련의 권유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련이 탈스탈린운동 때와는 달리 「신사고」 실현을 중단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북한도 계속해서 소련의 희망을 묵살할 처지에 있지 못하다. 소련은 북한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페레스트로이카 파급을 방해할 경우 전격적으로 한소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것과 같이 가까운 시기안에 한국과의 일방적인 국교수립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도 소련은 동유럽 동맹국가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독의 반발을 외면하고 1955년 10월 서독과 수교한 예가 있다. 이는 동독이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1974년 9월보다 19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소련의 입장에서 서독의 경제적 잠재력이 협력대상으로서 매력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 소련이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한국의 자본과 기술,그리고 생활필수품 제공을 기대하는 것과도 비유된다. ○집안단속 강화할 듯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집안단속을 위한 경직성을 강화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이 최신군비를 전적으로 소련에 의존하고 있으며 무역 60%,외채 80%를 소련이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볼때 계속해서 소련의 비위를 거스를 입장이 못된다. 소련의 군사원조가 중단되면 잠재적 저항세력인 군부를 자극하게 되고 이는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국 북한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소련이 원하는 대로 동독이 택했던 것과 같은 협력정책을 답습하는 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문제의 독일화를 위하여 서독이 추진했던 예를 참고삼아 「북방정책」으로 주변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한반도 정책」으로 북한을 회유하는 신축성 있는 정책을 구사함이 바람직하다.
  • 동ㆍ서독의 경제통일(사설)

    동ㆍ서독은 18일 경제ㆍ통화ㆍ사회통합 협정에 조인함으로써 통일을 위한 또하나의 중요관문을 통과했다. 오는 7월2일 이 조약이 발효되면 동ㆍ서독은 45년간에 걸친 분단상태를 사실상 청산하는 경제ㆍ사회통일을 달성하게 된다. 베를린장벽 붕괴 6개월,동독의 자유총선실시 2개월만의 신속하고도 순조로운 진행이다. 이번 협정으로 동독은 서독의 대규모 재정지원을 배경으로 중앙통제식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버리고 서독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서독과 통일된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며 기존 공산주의 법제도를 폐기하고 서독의 법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리고 서독의 마르크화가 동ㆍ서독의 유일한 공식화폐로 되며 통화관리등 경제정책의 모든 책임은 서독정부가 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서독경제의 동독경제 흡수통합이며 동독경제 주권의 서독이양을 의미한다.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사회주의 경제의 완전 항복문서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서독에 의한 사실상의 동독흡수 통일이라고 할 수있으며 이제는 동서독의 통일이 돌이킬 수 없는기정사실로 굳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경제ㆍ사회통일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셈이며 문제는 이 제도를 여하히 효과적으로 실천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완전통일을 무리없이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라 하겠다. 지난 40여년동안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에 안주해온 동독의 사회주의 경제가 물과 기름의 관계라 할 수 있는 서독의 자본주의 경제에 어떻게 조화롭게 흡수될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같은 사회주의대 자본주의 분단국의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는 우리문제해결에 참고가 될 수 있는 하나의 교훈적 모델로서 크게 주목된다 하겠다. 생체이식수술의 경우와 같은 거부반응의 위험은 없을 것인가. 인플레와 실업사태 등 벌써부터 허다한 부작용의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서독 당국자들은 이 모든 위험을 강력한 서독경제의 힘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동ㆍ서독의 경제통일과 관련해 또 한가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점은 그것이 국제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서독정부는 동독과의 통합자금조달을 위한 7백억 달러규모의 채권발행 구상을 밝히고 있다. 동독과 함께 소련ㆍ동유럽 경제재건에 서방의 자금이 몰리게 되면 아시아ㆍ아프리카 및 중남미의 개발도상국과 누적채무국에 대한 지원자금의 고갈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동독과 소ㆍ동유럽이 세계자금의 「블랙 홀」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다. 결과적으로 국제자금부족과 금리상승사태까지 겹치게 될 경우 세계경제,특히 개발도상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게될 우려가 크다. 소ㆍ동유럽의 민주화개혁과 동ㆍ서독의 통일은 국제정치질서의 근본적인 재편성을 강요하고 있는 동시에 국제경제질서의 큰 변화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하겠다. 아무튼 독일의 경제 통일은 15년 전의 베트남 무력적화통일과는 다른 전후 최초가 될 분단국의 평화적 민주화통일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크게 고무적인 사태의 전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건설 경쟁에서의 압도적 승리가 가져온 결과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겠다.
  • 「당위」와 「호도」와… 현해탄에 “사죄파고”/서울의 시각

    ◎“주체분명히… 일왕이 직접 솔직하게/과거청산 없인 진정한 동반자관계 기대난” 오는 24일로 예정된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한일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인해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노대통령의 방일시 아키히토(명인)일왕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수준을 놓고 양국정부가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방일까지 불과 열흘도 남지않은 시점에서 이 문제가 원만하게 처리되지 못할 경우 양국간에는 자칫 불편한 관계마저도 초래될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노대통령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3개국 순방을 연기하면서도 일본방문만은 예정대로 실현시키겠다고 한 것은 다름 아닌 「다가오는 21세기를 맞아 아태시대를 함께 이끌어갈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협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는 첨단과학기술,산업기술협력,통상 등 보다 경제적 실익이 있는 분야로 양국협력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는 정부방침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된지 45년이지났건만 과거에 대한 협상은 아직 완전하게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달 30일 한일외무장관회담을 통해 재일한국인차별의 상징이면서 역시 과거청산문제의 일환인 지문날인제,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등 이른바 4대악 제도의 개선에 양국간합의를 이끌어낼 때만해도 일왕의 명백한 사과표명문제는 그다지 표면화되지 않은 다분히 「잠복성 이슈」였다. 이 문제는 노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가진 주한일본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일본이 한일 양국간의 과거사에 대해 사과의 주체임을 명확히 해야하며 사과발언도 아키히토일왕에 의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양국간 최대현안으로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일본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4역(간사장ㆍ정조회장ㆍ총무회장 참의원의원회장)이 회동,『한국에 대한 유감표명은 84년 고 히로히토(유인)일왕이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했던 수준 이상을 벗어날 수 없고 특히 이번에는 일왕 대신 가이후(해부)총리가 해야만 한다』고 결론짓고 이같은 의견을 일행정부에 전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국간의 국민감정까지 겹쳐 사태는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게 현재의 상황이다. 일왕의 사과수준에 대한 양국간의 입장차이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우리측은 이번 방일에서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사과표명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일본의 상징인 아키히토 일왕이 직접 한국민을 상대로 이를 밝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84년 당시 일왕이 밝힌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서 양국민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느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표현은 사과가 아닌 유감인데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는 측의 주체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명백한 사과와 함께 사과의 주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이와관련,일본이 지난 72년 대중국국교 정상화때 발표한 양국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전쟁을 통해 과거 중국인민들에게 끼친 큰 손실에 대해 깊이 책임을 느끼고 깊이 자책한다』고 밝혔다시피 이번에도 일측으로부터 이정도 수준의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깊은 자책은 분명한 사과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84년 당시의 「유감표명」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또 사과표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이번 기회에 일왕의 사과는 물론 가이후총리의 직접적인 사과표명,그리고 일본의회의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결의까지 얻어낸다는 강도높은 전략을 짜놓고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원경 주일대사와 방일에 따른 최종실무협의차 도일한 김정기외무부아주국장에게 이같은 지침을 시달,일정부측에 전달하도록 해 『과거청산및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일왕의 구체적인 사과가 있어야 할 것』임을 강력 촉구할 방침이다. 만약 이번에도 일측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사과표명을 얻어내지 못할 경우 내년초로 예상되는 일왕의 방한을 심각하게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노대통령은 이번 방일로 인해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고있으며 방일성과에 대한 국내 평가와 관련,자칫 잘못되면 「통치력의 위기국면」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지난번 노대통령의 3개국 순방연기 발표때 일본도 연기했어야만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측의 이러한 강경한 방침에 비해 일측은 『천황은 「국민의 상징」이며 헌법상으로도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 존재일 뿐이므로 그의 발언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나아가 가이후총리가 「국민의대표」인 만큼 그가 직접 나서 유감표명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에 대해 『엄청난 경제력 상승에 힘입어 일본도 이제는 타국에 의해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자존심 외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양국간의 이같은 입장차이에도 불구,방일을 전면 취소하는 최악의 카드를 쓰지 않고 방일직전까지 절충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양국간 협상이 어떻게 결말지어질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도 일측이 과거청산과 관련,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어물쩡 넘기려 한다면 한일 양국간의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양국민간의 앙금은 더이상 치유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 문제는 해결의 열쇠가 일측에 있기 때문에 전후처리과정에서 유태인 및 이스라엘정부에 대한 완벽한 보상을 한 서독과 같이 일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나설 때만 말 그대로 「양국간의 밝은 미래」로 나아갈 것으로 보여진다. ◎동경의 입장/자민당선 84년 유인발언 수준 고수 압력/죄과 반성않고 경협구실,우회 속셈 오는 24일부터의 노태우대통령 일본공식방문을 불과 1주일 남짓 앞두고 한일 양국간에는 일왕의 「사죄의 말」을 둘러싸고 새로운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핵심은 반성의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군국주의 일본에 강점당해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한국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다 진지하고 명확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동아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제국을 전쟁의 참화속에 몰아 넣었던 일본은 과거의 죄과를 반성하기는 커녕 여러가지 이유를 둘러대며 사죄를 거부한다. 강한자 앞에서는 비굴하며 약해 보이는 존재 앞에서는 무차별 짓밟으려 드는 일본인 특유의 교활한 근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적 자존에 직결되는 감정의 문제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안고 있다. 한국측의 요구는 물질적 보상에 있지 않다. 『잘못했다』라는 한마디 사과의 말을 정신적 위자로 바라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대통령도 14일 상오 청와대 정원에서 열린 일본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이같은 뜻을 밝혔다. 노대통령은 임진왜란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예로들며 지난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때 쇼와(조화)일왕이 표명한 「유감의 뜻」은 『사죄인가 아닌가가 확실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하고 아키히토(명인)일왕이 말할 내용은 쇼와일왕보다 더욱 진전된 사죄표현이 되도록 기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짧은 기간이었지만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잘못되었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사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강한 쪽이 넓은 마음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는 잘해 나갑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한국국민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같은 한국측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측은 짜증과 불쾌감까지 나타내며 인색한 반응을 보인다. 자민당의 한 수뇌는 14일 밤 이문제에 관해 『더 깊은 내용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며 애당초 우리들이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이 수뇌는 식민지 지배와 더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 의한 임진왜란까지 예를 들며 『히데요시까지 끌어내는 것은 (일본측이)땅에 꿇어 앉아 빌어도 부족하다는 말인가』라는 망언에 가까운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이날 상오 오자와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을 비롯한 자민당4역은 모임을 갖고 아키히토 일왕이 말할 내용에 관해 『쇼와일왕이 말한 내용보다 더 진전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이를 정부측에 전달했다. 일본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에 관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반성의 빛을 보인다. 그러나 그 반성은 솔직ㆍ명확한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있기 때문에(경제적인)협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민당수뇌의 표현대로 오만한 자세의 그것이다. 올바른 역사인식하의 반성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일본의 「천황」과 총리는 침략행위를 저질렀던 국가에 대해,원수나 수뇌가 방일하거나 자신의 상대국을 방문했을때 「과거의 역사」를 반성한다는 말을 해왔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유감의 뜻」 표명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같은 침략국이었던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몇번이나 반복했던 명확한 「사죄」와는 다르다. 85년 5월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패전 40주년을 기념하는 연방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전쟁과 폭력지배 아래서 억울하게 숨진 많은 사람들을 애도합니다.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앗긴 6백만 유태인,전쟁에 시달렸던 모든 민족,그중에서도 소련ㆍ폴란드의 무수한 사자,레지스탕스의 희생자를 생각하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지난 68년 3월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쇼와일왕은 『귀국과 일본은 함께 아시아의 일원으로서,또 예부터 깊은 관계를 가진 사이로서 우호적인 접촉을 계속해 왔습니다. 지난번의 대단히 불행한 전쟁후에도 이 전통적인 관계는 급속히 회복되었습니다』라며 얼버무렸다. 74년 포드미 대통령의 방일때에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상접하는 양국은 2세기에 걸치는 연대를 통해 여러가지 기복은 있었으나…』라고 전제하고 『한때 참으로 불행한 시대를 가졌던 것은 유감이었습니다』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 78년 10월 등소평 중국부총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에도 『양국의 오랜 역사 사이에는 한때 불행한 일도 있었습니다만 과거의 것으로 끝나고…』라고 말했다. 일본의 가장 큰 피해국이었던 한국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말로 사죄아닌 사죄를 대신했다.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을 맞은 쇼와일왕은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 양국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 전부였다. 일본측이 자신의 죄과에 대한 사죄에 인색하고 있는 것은 이제 세계 초일류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자만때문이라고 외교가에서는 보고 있다. 헌법상 규정의 「상징 천황」 여부를 떠나 일본국민의 정신적 구심체 역할을 맡고 있는 「천황」은 「천황의 이름으로」 저지른 전쟁책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반성의 빛을 보여야만 한다는 것이 도쿄 외교가의 시각이다.
  • 문화교류의 호혜주의/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며칠 전에 서울신문은 일본문화가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필자가 관심하는 연극분야에서만도 스바루극단의 번역극 「깊로 푸른 강」공연(1979년),「노」공연(1981년),일본마임연구소공연(1981년),가부키공연(1988년),지인회의 「샤카나이진혼곡」과 신야 에이코의 일인극 「저고리를 입은 피폭자」공연(1989년),그리고 「교오겡」공연(1990년) 등이 그예로 지적되고있다. 그러나 이밖에도 필자가 국내에서 본 일본공연예술 작품만 해도 아직 더 있다. 제3세계 연극제가 개최되던 당시에 필자는 독일에 있으면서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일시귀국한 바 있는데 그때 교포극단에 찬조출연하는 형식으로 일본의 「부도」공연이 선을 보였다. 상반신을 드러낸 무희의 모습이 보수적인 한국연극계에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일문화 홍수처럼… 재일교포를 표방한 일본연극의 한국상륙으로는 이밖에도 김봉웅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스가 고헤이의 한국배우들을 활용한 공연(원명은 「아다미에서의 살인」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유명한 휴양지 아다미를 「뜨거운 바다」로 번영한 것은 실상 무의미하다)이 그렇고,「신주쿠 료산 바쿠」극단의 공연이 또한 그렇다. 그렇게 보니까 한국동화를 소재로 삼은 일본아동극단의 경우들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같은 경우 한국관객은 그러한 공연들이 표방하는 한국과의 연관때문에 그 공연들의 일본적 특성을 짐짓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일본적인 특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나 무엇이라고 꼬집어서 규정짓기 어렵다. 왜냐하면 앞에서 나열한 공연들이 어떤 공통적인 특성들을 한결같이 지니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극내적인 특징을 굳이 지적하자면 신경질적이라고 할 만큼 철저한 형식미추구를 우선 손꼽아야 할 것 같다. 이러한 형식미추구가 종종 비인간적인 내용의 묘사도 서슴지 않게 만드는 경향으로 발전한다. 아울러 바로 이러한 특성이 상업주의와 야합할 성향을 높여주기도 한다. 고전극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한 현대극에서도 이러한 체취는 역력하다. 이러한 특색은 한국의 예술전반과 비교할때 분명히 차이가 난다. 얼마전에 공연된 「교오겡」공연의 첫 작품에는 방울이 등장한다든지 발을 구른다든지 하여 마치 한국의 무당굿이나 지신밟기를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분명히 우리의 경우에는 일본의 경우에 비해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의미에서든 좀더 자연스럽고 생동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휴식시간에 만난 영국관객으로부터도 그 비슷한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특색을 감지하면서 필자는 일본과의 문화교류의 묘미를 터득한 셈이다. 남을 통해 나를 확인해 볼 수 있고,또 그 모양까지 흉내낼 것은 없겠으나 철저한 직업의식은 분명히 우리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굳이 양국간의 과거를 내세워 일본의 고급문화까지 마냥 거부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앞에서 열거한 작품들중 몇몇에서 풍겨나는 상업주의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문자 그대로의 「상품」들이다. ○무조건 거부는 곤란 새삼스럽게 왜 우리가 상업주의를 경계해야 하는가를 여기에서 늘어놓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해서 그것은 인간들로 하여금자신을 좀더 자각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고양시키도록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그반대되는 성향을 더 짙게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상업방송이 위성을 통해 우리 문화에 파고들 것을 경계하는 이유를 일본의 양식있는 인사들도 꼭같이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우리 문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그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물리치고자 함에 있어 우리는 민간차원의 공동노력만큼이나 문화정책의 역할에 많은 기대를 갖게 된다. 이러한 노력은 물론 우리 혼자만으로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 그러기에 우리는 호혜주의에 입각한 양국의 문화교류정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나의 원칙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종의 역조현상이 눈에 뛴다. 다시 말해서,우리가 일본의 문물을 접하게 되는 빈도가 일본이 우리의 눈물을 접하게 되는 빈도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호혜주의는 이러한 역조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원칙을 뜻한다. 그러나 문화교류도결국 경제적인 능력이 뒷받침해주어야 하는데,서로 비슷하게 상대를 받아들이기에 우리의 경제형편은 일본에 비해 훨씬 불리하다. 그러기에 필자가 뜻하는 호혜주의는 산술적인 평등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일방적인 시혜를 허용해서도 안된다. 그보다는 예컨대 GNP에 비례하는 공동출자를 통해 양국의 문화교류에 소요되는 경비를 충당하자는 쪽에 가깝다. 또한 좀더 심도깊은 문화교류가 되자면 양국 문화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문화부가 신설되어 일종의 붐을 일으키려는 의도에서 행사에 대한 관심이 높게 보이는 현상에 대해 힐난하는 여론도 없지 않으나,이어령 문화부장관이 한소 문화장관 공식회동을 앞두고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화교류는 지양하고 소련에 대한 문화적 연구를 선행하기 위한 소련문화연구소를 설립,냉철하고 실질적인 교류가 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발언은 참으로 온당하다. 즉,무원칙한 경쟁이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행사 위주로 진행되는 문화행사 소개가 문화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는 입장은한일 양국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정부차원의 문화교류는 문화수출입이라는 균형감각에 맞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견해에도 우리는 적극 찬성한다. 아울러 전문인력의 교류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그의 입장이 고수될 것도 기대한다. 어느 경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전문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ㆍ실천이 더 급할지 모른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한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라나는 세대들이 과연 얼마만큼 민족적 자부심을 지켜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기본원칙은 지켜야 「교오겡」공연을 보면서 느낀 우리문화가 지닌 자연스럽달까,소박하달까 하는 특색에 대한 약간의 자부심이 공연후 아직 공식적으로 시작도 되기전에 리셉션용 음식에 마구 달려들어 먹어치우고 드디어는 테이블 하나를 쓰러뜨리고야 물러선 대학생 또래의 젊은이들의 버릇없는,그야말로 위아래도 없는 모습으로 인해 완전히 구겨지고 말았던 경험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꾸짖어도 보았으나 그들은 몇점의 음식에서 좀체 물러설줄 모르고 있었다. 극히 비근한 예이지만 격식과 품위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꾸밈없는 것같은 신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 말이 결코 젊은이들을 기죽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들을 청년들이 더 많은 것으로 믿기에 외국과의 문화교류에서 적용되어야 할 원칙을 새삼스럽게 거론했는지도 모른다.
  • “예상밖 우파 압승”… 세계가 놀랐다/동독총선 뚜껑 열리던 날

    ◎사민 22%ㆍ민사 16% 득표에 침울/동베를린선 유일하게 좌파 앞서/서독출신 새 경제장관,“상반기중 통화통합” 【동베를린=김진천특파원】 ○…로타르 데 마이치레 기민당수는 개표가 50% 진행된 시점에서 CDU 우세라는 ADN통신 집계가 나온 후 가진 동독 DFF­TV 회견에서 『우리는 승리했다』고 선언하면서 『가능한한 광범위한 연정을 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브라힘 뵈메 사민당 총재도 기자회견을 갖고 『투표결과에 실망했다』고 패배를 시인. ○공산당 출신 많은 탓 ○…전국적인 선거결과와는 대조적으로 동베를린에서는 사민당과 민사당(전 공산당)이 우파연합을 압도. 21.8%의 득표로 기민당에 이어 전국적으로 2위를 기록한 사민당은 동베를린에서는 35%의 득표로 1위를 차지했다. 민사당도 동베를린에서는 전국 평균치인 16.3%의 거의 2배에 달하는 30%를 득표. 정치평론가들은 이곳에 거주하는 공무원ㆍ보안군ㆍ노동자들중에 공산주의자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 ○주가ㆍ마르크화 강세 ○…서독 보수파 지도자들은 자매 정당들이 압승을 거두자 양독간의 신속한 경제통합을 촉구하고 나섰으며 동독 신정부의 경제장관으로 지명된 서독정치인 엘마르 피에로트도 동서독간의 통화 단일화가 오는 6월말까지 이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피에로트는 서베를린시 정부경제장관을 역임한바 있다. 한편 우파연합의 승리로 서독증권시장의 주가가 2% 정도 상승했으며 독일 마르크화도 외환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다. ○민사,1백만불 지출 ○…이번 선거에서 민주사회주의당은 5백50만 동독마르크(1백8만달러)를 지출해 가장 많은 자금을 사용했으며 그 다음으로는 기민당이 1백50만 동독마르크(29만4천달러),사회민주당이 50만 동독마르크(9만8천달러)를 쓴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수치는 이들 당이 자체적으로 공개한 것이나 7백50만 서독마르크(4백38만달러)로 추산되는 서독 정당들의 지원금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호네커는 투표 거부 ○…권터 미타크와 요하킴 헤르만 등 권력남용과 부패혐의로 권좌에서 축출된 공산당 지도부 전직 고위 인사들은 옥중에서 각각 투표에 참여했으나 공산당서기장과 국가평의회 의장을 지낸 에리히 호네커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귄터 미타크 전 공산당 서기는 반체제 인사가 투옥되던 곳인 호헨쇼엔하우젠 교도소내의 병상에 누워 있다가 이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교도소내 213호실에 마련된 투표소에 왔으나 여전히 창백한 표정이었으며 언론검열 책임자이며 당기관지 노이에스 도이칠란트의 편집인이었던 요하킴 헤르만은 조깅복 차림으로 출현. ○투표 못해 항의소동 ○…동독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이날 자유총선거에서 해외 거주 동독 국민들은 각각 주재 동독대사관으로 찾아가 귀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등 적극적인 참가 열의를 보였다고 동독 관영 ADN 통신이 보도했다. ADN 통신은 그러나 몽고거주 동독인들이 1백50여장의 투표용지를 싣고 모스크바를 떠난 소련 아에로플로트기가 제시간에 도작하지 못해 투표를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몽고에 있는 동독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아침 회의를 가진 뒤 업무를 중단하고 헌법상 보장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조치하지 못한동독 중앙선거관리 위원회에 항의전문을 보냈다고 이 통신은 전언. ◎동독총선 반응/“역사적 사건” 대대적 환영 미/서독 개입 비난,통독 신중히 소 ○…미 백악관은 18일 실시된 동독선거를 환영하고 이를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규정. 백악관 부대변인 앨릭스 글렌 여사는 이날 동독에서 사상 처음으로 자유총선이 끝난 직후 『미국은 오늘의 동독총선을 환영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자유총선을 통해 자신들의 장래를 결정하려는 동독국민들의 열망을 지지해왔다』고 밝혔다. ○…소련은 동독선거에서 우파연합이 승리한 것은 서독의 보수우익정당들의 지원때문이라며 서독 정치인들의 동독선거 지원을 비난했다. 겐나디 게라시모프 소련 외무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동독선거 유세에 참여하는 것은 아주 비정상적인 행위』라고 지적하고 관영 타스통신도 서독인들이 동독선거에 깊이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소련은 특히 동독 지도자들은 통독을 서둘러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타스통신은 그러나 소련은 동독의 새정부와 건설적인 관계유지를 희망한다고 보도했다.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18일 동독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자유선거에서 보수세력이 압도적 승리를 거둠에 따라 동서독의 통일은 명백한 승인을 받게 됐다고 말하고 모든 동독인들이 자국에 남아 동독 재건에 나서 달라고 호소.
  • 가시화된「독일 재결합」을 보며/서병철 외교안보연 교수(특별기고)

    ◎「통독의 길」한반도까지 뻗치길… 민족자결원칙에 입각한 접근을 통한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해온 서독은 미ㆍ영ㆍ불ㆍ소등 전승4대국과 주변 군소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급속한 통일을 기대하지는 않아 왔다. 그러나 서독은 동독내 사태가 급속하게 변화함에 따라 통일정책을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게 되어 콜총리는 작년 11월28일 국가연합(Confederation)형식의 10개항 통일안을 내놓았다. 한편 겐셔외무장관(자민당)은 콜총리(기민당)가 연립정부 구성 정당간의 협의없이 통일방안을 수립한데 대하여 「통일된 독일이 나토회원이 되고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현재의 동ㆍ서독지역에 계속 주둔한다」는 내용의 독자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미ㆍ소,기선잡기 바빠 통일논의는 선거를 앞두고 더욱 가속화되었다. 동독의 경우 3월18일 총선거에서 민주사회당(전사회주의통일당)과 「노이에스포룸」등이 집권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분당」에서 「통일」로 정책을 바꾸었으며 사민ㆍ기민ㆍ자민당도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통독논의에 열의를 보인다.서독에서도 국민의 주관심사가 통일문제로 되자 12월2일 실시될 예정인 12대총선거를 의식하여 각당이 통일문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며 동독총선거를 서독의 지방선거와 같은 형태로 간주하여 동독정당들의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주역이 되기 위하여 새로운 통독안을 제시하는등 기선을 잡으려 경쟁한다. 미ㆍ영ㆍ불ㆍ소 4대전승국은 독일의 통일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원칙적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콜총리의 통일방안은 동구의 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며 통독은 당장 논의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작년 12월6일 불ㆍ소 정상회담에서 발언하여 작년말까지도 「2개독일정책」을 고수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통독문제의 긴급성을 인식하고 금년 1월29일 모드로브 동독총리와의 회담에 이은 2월10일 콜 서독총리와의 회담에서 독일통일에 찬성한다는 정책상의 변화를 보였다. 이로써 통독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제거된 셈이다. 소련은통독이 「신사고」에 입각한 「유럽공동의 집」구성계획에 부합되고 붕괴직전의 동독을 양보하는 대신 중립화를 통하여 독일전체를 자국에 일보접근시키는 결과를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급선회하였다. 미국은 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진 독일문제에서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독에 적극 협조하고 또한 소련과의 경쟁적 입장에서 기선을 잡으려 서독의 통일노력을 적극 지원한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이 되고 체제도 자유민주화 된다는 전제아래 통일을 추진한다. 한편 프랑스 미테랑대통령은 『통일된 독일은 지나치게 강화되어 1차대전 발발직전인 1913년 상황에 도달한다』는 이유로 통독을 반대하였으나 민족자결에 의한 통일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협조지도 정책전환을 하였다. ○양동맹기구가 걸림돌 영국의 대처총리는 최근까지 『10∼15년 후에야 통독문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했었으나 통독추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대세에 동조하고 있다. 통독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분란이도사리고 있다. 첫째,통독은 4대전승국의 동의를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승국들은 독일조약에서 통독문제에 대한 결정권과 추진책임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 민족자결에 따라 양독이 통일합의에 도달하더라도 미ㆍ영ㆍ불ㆍ소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2차대전을 종결짓는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상황을 변경하는 통일은 원칙적으로 종전 네나라 결정사항인 것이다. 둘째,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문제이다. 몰타 미소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군사블록을 해체하는 것이 긴급한 사항이 아니라는데 의견일치를 보았고 고르바초프는 『2000년까지 군사동맹을 해체하자』는 과거의 제의를 의식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았고 부시도 유럽에서의 미군 주둔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이 바르샤바기구에 잔류할 것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어 중립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동독을 동맹권에서 서방측으로 해방시켜 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11개주(서독)가 나토에 속하고 5개주(동독)가 바르샤바기구에 잔류해야하므로 이것이 가장 큰 난제이다. 셋째,주변국들이 통독에 대해 원칙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독이 되면 7천6백만명의 인구(서독6천만,동독1천6백만)를 묶어 서독의 자본과 기술,동독의 숙련되고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2의 경제기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주변국들은 유럽 중심부에 강력한 국력을 갖는 독일의 부상에 위협을 느껴 현상태를 선호한다. 통독이 이루어지면 군사동맹체제가 실질적으로 붕괴되고 강력한 중부유럽이 형성되어 현존하는 유럽질서가 크게 변화할 것이다. 즉 유럽을 가르는 바르샤바 나토 군사동맹의 군사적 성격이 약화되고 정치적 기구로 변질될 것이다. 통독은 사실상 유럽분단의 종결을 의미하므로 고르바초프의 「유럽공동의 집」달성이 가시화되어 소련의 적극적인 유럽사회 참여를 유도할 것이다. ○중부유럽 새질서 형성 한편 미소의 영향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독일의 비중이 커지고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국가들의 구심점이 되어 중부유럽의 발언권이 강화된 새로운 국제질서가 조성될 것이다. 2차대전후 패전국으로서 독일이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오데르나이세 동독ㆍ폴란드 국경선은 이미 1950년 동독이,그리고 1972년 서독이 각각 인정한 바 있으나 통일된 후에 재론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현시점에서 통독가능성에 대하여 전망해 보면 동ㆍ서독은 경제면에서 통일을 먼저 달성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양독은 2월13일 통화단일화 원칙에 합의하고 경제통화동맹 창설을 위한 합동실무위원회를 발족시킴에 따라 경제면에서의 통일이 향후 수개월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독연방은행이 양국의 통화금융을 운영하고 하루 2천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서독으로 이주하여 붕괴위기에 처한 동독경제를 서독이 흡수하게 된다. 동ㆍ서독간 최초의 합의도 경제에 관한 베를린협정(1951년 9월 체결)이었던 경험을 고려할 때 경제적 통일이 정치적 통일을 유도할 것이다. 동독총선거에서 사민당(당수­뵈메,명예당수­브란트)의 압승이 예상되며 이 당은 국민의 대다수(여론조사 결과 75%)가 희망하는 통일추진을 주요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어 통일논의는 선거후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마침 2월13일 오타와 나토ㆍ바르샤바조약기구 외무장관회의에서 미ㆍ소ㆍ영ㆍ불과 동ㆍ서독 6개국이 2단계의 통독방안에 합의하여 통독논의의 체계적인 추진이 제도화되었다. 이는 거쳐야할 과정과 순서를 명시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통독전망을 밝게 한다. ○경제통합이 정치견인 끝으로 독일의 통일은 전후 형성된 불합리한 상황의 해결이라는 의미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강대국의 협조의무를 상기시켜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또한 통독이 한반도 통일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북한을 대화에 응하게 하여 남북한간 접근을 촉진시킬 것이다. 북한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분단을 영구화하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하지만 1972년 12월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1973년 9월 유엔에 동시가입하였으며 1974년 3월 상주대표부를 교환설치한 동ㆍ서독이 통일을 이루는 일은 대화조차 거부하는 북한의 이론을 오류로 만든다.
  • “「개혁바람」 한반도 유도”신호/소 외무의 “장벽제거”발언의 의미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지난 10일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마친뒤 기자회견을 통해 한반도의 「장벽」 제거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촉구해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데탕트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소련의 고위관리로서는 처음으로 한반도의 남북교류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일단 한반도평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언의 배경과 의미를 국내전문가들과 도쿄의 시각을 종합해 정리한다. ◎한국정부의 시각/「장벽」보도 엇갈려 공식적 논평유보/대소외교 강화… 새 대북채널도 가동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10일(현지시간)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의 양국외무장관회담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한반도장벽철거」를 촉구한데 대해 외무부와 통일원등 정부관계부처는 「장벽」의 의미가 확인안돼 일단 공식논평을 유보한 채 사태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현재까지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의 정확한 발언진의를 알수 없는데다 「한반도장벽」에 대한 APㆍ로이터등 서방진영통신과 소련관영 타스통신의 보도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통신은 단순히 「한반도장벽」이라고 표현했지만 타스통신은 『한반도를 두부분으로 분할하고 있는 군사분계선지역의 콘크리트장벽 해체와 주민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는데 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의 제의에 적절한 반응이 없다』고 밝혀 북한측이 주장하고 있는 휴전선남쪽의 콘크리트장벽을 지칭했다. 그의 발언에 대한 정부의 시각도 크게 둘로 나뉘어지고 있다. 첫째로는 북한 김일성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혔듯이 휴전선남쪽에 콘크리트장벽이 존재한다는 북한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시각이고,분단이후 40년 넘게 계속돼온 장벽을 단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분단」의 의미로 언급했을 뿐이라는 다분히 축소적인 해석이 두번째 시각이다. 전자의 경우는 미소 외무장관회담을 앞두고 북한측이 콘크리트장벽철거와 자유왕래문제에 대해 소련측과 사전협의를 거쳐 소련측이 앵무새처럼 북측입장을 대변한 것을 의미하며 국제적인 여론을 유리하게 전개시키기위한 북측의 술책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셰바르드나제의 기자회견전문을 미국측을 통해 입수,「장벽」의 의미를 정확히 분석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상호 교환설치된 주소 한국영사처와 주한 소련영사처라는 한소간 공식외교채널을 통해 콘크리트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소측에 납득시킬 방침이다. 또 소련의 고위관리가 때 맞춰 문익환목사,임수경양등 밀입북 인사에게 중형을 내린 남한정부를 비난한 사실도 한반도 문제해결에 대한 소측의 편향된 자세를 보여준다는 것이 정부측의 분석이다. 반면 정부내에서는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발언이 대체적으로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간의 직접대화촉구등 한반도문제해결에 적극성을 띠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기류도 많다. 즉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철수 문제에 대해 「완전철수의 분위기가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고 밝힌 점은 소측이 그전보다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균형을 찾아간다고 볼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같은 관점에서 셰바르드나제의 발언은 북한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대 한반도정책의 또 다른 표현으로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으로 한반도문제가 베를린장벽과 함께 국제적인 문제로 격상됐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북관계의 정확한 현실을 알리는 홍보외교에 주력하는 한편 북한개방유도를 위해 기존의 대화와 함께 새로운 대화채널을 가동시키는등 남북회담에서의 이니셔티브를 잡아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 언론의 시각/크렘린의 「정치ㆍ경제적 이해」직결/태평양지역서의 군축촉진도 겨냥 합의내용에 있어서 획기적 진전을 가져온 이번 미소외무장관회담에서 지역분쟁문제의 하나로서 한반도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됐다는 사실을 일본외교소식통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공동성명에서 『미소 양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바라며 남북대화 지지를 표명했다. 소련측은 북한이 가까운 장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보장조치협정을 맺을 전망이라고 말했다』라며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언급한 사실을 중요시하고 있다. 더구나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10일상오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차 한반도긴장완화에 대해 소신을 밝힌 것은 소련의 한반도정책자체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도쿄(동경)신문은 모스크바 특파원 해설기사를 통해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한반도문제에 관해 국제사회는 남북한간의 벽을 헐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자유왕래 실현에 강한 의욕을 표명한 것은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고 유럽군축의 흐름을 극동에 파급시키며 남북한의 국경개방,나아가 남북통일을 목표로 하는 소련정책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셰바르드나제외무가 미소 외무장관회담 석상에서 한반도의 벽철거구상에 지지를 요청했을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에서도 그 실현을 위한 여론조성을 당부한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배경에는 크렘린의 정치ㆍ경제적 이해관계가 한반도ㆍ극동지역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상기시켰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의 아시아ㆍ태평양지역구상에 따라 시베리아극동부의 경제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은 경제대국 일본과의 경제ㆍ과학기술교류를 바라고 있으나 「북방영토 반환문제」가 장애로 되어있기 때문에 급진전의 전망은 없다. 따라서 소련은 극동제2의 경제대국인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더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회주의동맹국 북한 김일성정권에의 정치적 배려가 필요하다. 만일 이벽을 헐고 남북교류ㆍ대화가 진행된다면 북한이라는 정치적 걸림돌은 없어지게 된다. 소련의 남북한장벽제거 주장에는 또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은 지적한다. 그것은 미제7함대,필리핀,오키나와(충승)등 미측이 압도적 우세에 있는 극동ㆍ태평양 지역에서 긴장완화ㆍ군축을 촉진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장벽의 철거등 동서유럽에서의 긴장완화는 유럽군축을 크게 촉진시켰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성공한 외교수법을 아시아에도 적용해 온 고르바초프정권은 이와 같은 한반도장벽의 철거에 의해 극동ㆍ태평양군축에 미치는 정치ㆍ심리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본의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아사히(조일)신문은 11일자 사설에서 『종래 미소간에는 제안­역제안­비난­결렬이라는 패턴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그것이 무너졌다』며 양보에 의한 획기적인 미소대화의 전진을 높이 평가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독일재통일문제,아프가니스탄ㆍ중미ㆍ중동ㆍ일본의 북방영토문제등 세계의 지역문제를 또하나의 중요테마로 삼았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도 사설에서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관련,우려를 표명했다. 우리들은 이미 이 문제에 관해 북한이 하루빨리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사찰을 받아들일 것을 당부했다. 새삼 북한의 조치를 촉구한다』며 북한측에 화살을 겨누었다. ◎미소외무 공동성명 한반도관련 부분 미소 외무장관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중 한반도 관련부분은 다음과 같다. 『미국무장관과 소련외무장관은 태평양 및 동북아시아문제를 논의했다. 이들은 이 문제들에 관해 조속히 미소협상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양국 외무장관들은 한반도의 긴장을 줄이고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소련측은 북한이 핵안전문제에 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정을 맺을 직전단계에 와 있다는데 유의했다. 미국측은 이 협정이 속히 체결돼 성실히 이행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반응/대한교류 확대ㆍ대북 개방압력 시도/장기적으론 남북관계의 안정에 기여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한반도의 「장벽」제거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소련이 자유개혁 및 냉전종식의지를 극동으로 확산시켜보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미소간의 핵무기 감축 및 유럽주둔군 대폭 감축에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졌고 동구의 민주화개혁과 베를린장벽의 붕괴에 따른 동서독간의 통일논의가 한껏 무르익은 시점에서 이제 유일하게 청산돼야 할 냉전의 유산은 한반도문제 뿐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논평위원 서병철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소련은 현상태에서 동서독의 경쟁상황이 동구동맹국들의 성장과 소련의 개혁진전에방해가 된다고 판단,통독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로 전환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한반도에서도 동서독과 같은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이번 발언의 의미를 분석했다. 셰바르드나제의 발언은 소련의 최대 관심사를 유럽에서 극동까지 확대한다는 의미와 함께 유일하게 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련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한국과의 교류확대를 절실히 희망하는 소련의 속사정도 이번 발언의 의도에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반도의 긴장완화 및 안정을 통해 소련은 한국과의 교류확대 및 북한에 대한 경제ㆍ군사원조 부담 경감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소련은 이번 발언을 계기로 앞으로 북한에 대한 개혁ㆍ개방 압력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4월초로 예정된 김일성의 방소때도 이같은 문제가 주요관심사로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에 대해 로이터통신등 서방언론들은 한반도의 「장벽」을 상징적인 의미로해석,분단상황 그 자체로 전달하고 있는 반면 소련관영타스통신은 김일성이 올해 신년사에서 공세를 폈던 구체적인 콘크리트장벽을 지칭,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이 북한을 거들어 주기 위해 사전협의를 거친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가 설령 남한의 콘크리트장벽(실제로 있지도 않지만)을 지칭했다 하더라도 이는 북한의 반발을 다소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한 언어구사일뿐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북한의 개방과 무력도발의지 포기를 통한 한반도의 안정추구가 발언의 주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향후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북한이 당장 개혁정책을 받아들이기에는 지난 40여년에 걸친 강권통치의 유산이 너무 뿌리깊이 박혀있어서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내에 북한의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일단은 지배적이다. 북한이 소련의 예속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발언을 계기로 오히려 중국과의 밀월관계 유지쪽으로 돌아서리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경제의정체,국제정치의 변화,김일성사후 격하운동의 소지를 사전에 예방하고 김정일에게도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서울신문 논평위원 최평길교수(연세대)는 『이번 발언은 소련의 한반도개입 및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의지를 보인 것이기 때문에 당장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쨌든 이번 발언으로 한반도문제는 이제 국제적인 최대관심사로 부각됐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주변강대국들의 협조없이는 이뤄지기가 쉽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남북한 양측의 성실하고도 적극적인 노력과 대화라 하겠다.
  • 무르익는 “통독의 꿈”/오늘 소­서독 정상회담서 큰 진전 예상

    ◎서독 통일안,주변국 이해와 일치/국경문제등 난제 많아 낙관못해 『동서독의 통일은 오는 3월18일 동독이 자유선거를 치르고 난 직후에 이루어질 것 같다』 이는 9일 브뤼셀에서 독일문제 논의를 위해 긴급소집된 EC(구주공동체) 집행위원회 특별회의에서 내린 결론이다. 불가능하고 먼훗날얘기로만 치부되던 양독의 통일문제가 어느새 시간을 다투는 시급한 현안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며칠동안 통독문제를 둘러싸고 관계당사국들간의 외교접촉이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진전속에 주목되는 부분은 소련과 동독의 자세변화이다. 서독정부의 고위소식통은 헬무트 콜총리의 방소를 하루앞둔 9일 『소련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영역내에서의 통독실현 추진을 위한 대화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확인했다. 지난해 12월 몰타 미소정상회담때만 해도 통독에 반대의사를 분명히하고 그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때도 「전후유럽질서의 유지」라는 전제아래 「안되는 방향」으로 몰고가던 소련이 이제 「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즉 지난주 한스모드로브 동독총리와 만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은 통독의 불가피성을 최초로 인정했고 모드로브가 제의한 중립화 통일방안을 거드는 입장이었다. 동독의 경우도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중립화문제에서 한발 후퇴,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중립화를 포함한 4단계 통독안을 내놓았던 모드로브총리는 『이는 양독의 미래를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며 하나의 제안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주장의 강조를 낮췄다. 통독의 조기실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이같이 소련과 동독의 자세가 변한데다 서독의 새로운 제안이 미소를 포함한 이해당사국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는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통독문제와 관련한 소련의 거부반응은 말 할 것이 없이 자국의 안보문제 때문이다. 1ㆍ2차 세계대전에서의 피해를 비롯하여 항상 게르만 민족의 위협에 시달려 동독을 방어용 완충지대로 남겨두고 싶은 소련은 아무런 안정장치 없이 양독의 통일로 또다시 불안에 떨게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그래서 통독을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것이다. 서독측은 새 제안이 이러한 소련의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통일된 1개 국가에 양대군사블록 세력이 그대로 존치된다는 좀 복잡한 양상을 띠긴하겠지만 오히려 그러한 상태가 두기구 사이에서 빚어지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서독이 내놓은 4단계 10개항의 통독방안이 동서독간 경협증진등 내부통일과정에 중점틀 두었다면 이번 제안은 통독을 위한 국제적 분위기 조성과 외교ㆍ안보ㆍ군사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독측은 소련에 대한 설득과 아울러 군축회담을 서둘러 끝낼 수 있도록 미국을 포함한 서방동맹국들과의 협조증진노력도 함께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소련내에서도 독일 통일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주변나라들 못지 않다. 예고르 리가초프등 보수주의자들은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에 반대하며 급속한 통독논의가 갖는 위험성을 거듭 강조하고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고르바초프가 서독의 새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