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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질 1백20명 추가석방/이라크,소련인 1천명도 출국허용

    【바그다드 로이터 연합】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7일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와 회담을 가진뒤 독일인 1백명을 포함,총 1백20명의 서방인을 석방할 것을 지시했다고 이라크 INA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후세인 대통령은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간곡한 호소를 받아들여 독일인 1백명과 미국ㆍ영국ㆍ이탈리아인 등 여타 서방인 20명을 석방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한편,바그다드 주재 소련 대사관은 이날 1천여명의 소련인이 오는 10일 바그다드에서 출국할 것이라고 밝혔다.
  • 「브란트 이라크행」 EC에 파문/“인질석방 개별외교” 싸고 논란

    ◎“거대독일이 「공동대처」 결의 깼다” 콜총리 맹공/“12월 전독총선 겨냥한 사민당 승부수” 분석도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의 바그다드행차가 유럽공동체(EC)내에 불협화음을 조성하고 있다. 브란트는 지난 5일 바그다드에 도착,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만나는 등 독일인 인질석방 교섭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도적 사명」임을 앞세운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이 EC 국가들 사이에서 말썽을 빚고 있는 것은 『정부차원의 개별협상을 말자』는 EC 정상들의 로마 합의가 이루어진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라크에 억류되어 있는 인질들을 빼내기 위해 각국은 그동안 노련한 외교관 또는 고위급의 정치인들을 바그다드에 보내 민간차원의 활발한 교섭활동을 펴왔으며 브란트가 현지에 머물고 있는 기간에도 일본의 나카소네(중증근) 전 총리가 후세인과 만나 모두 1백6명의 인질들을 석방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덴마크의 앙케르 요르겐 센 전 총리와 뉴질랜드의 데이비드 롱이 전 총리도 금명간 바그다드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같은 각국의 「개별행동」은 대 이라크 응징을 위한 공동전선에 균열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브란트의 행동이 유럽사회에서 유독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은 「거대독일」이 EC 전체 의사를 가볍게 여기려는 징후가 아닌가 또는 EC통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이 발표되자 네덜란드 정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로마 정상회담에서의 약속이 있은지 불과 5일만에 발표된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을 예의 주시하겠다』며 로마회의에서 인질협상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리자고 가장 강력히 주장한 장본인이 바로 헬무트 콜총리임을 지적,브란트의 행동을 막지 못한 콜정부가 못마땅하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독일 국내에서도 브란트에 대한 탄핵의 소리가 만만치 않다. 외무장관을 역임한 막스 반데르 스토엘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대를 철수케 하려는 국제적 공동노력을 브란트가유치한 국내정치 놀음에 이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오로지 이라크 지도자들의 콧대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나무랐다. 공식적으로는 「개인자격」으로 발표됐지만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에는 기민당정부의 지원과 협력이 크게 뒷받침된게 사실이다. 그가 인질들을 싣고 나오기 위해 타고간 항공기는 정부가 전세낸 루프트 한자기이며 그 비행기에는 이라크에 답례로 줄 의약품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당초 브란트측에서 바그다드방문 의사를 비췄을 때 콜 총리는 반대의사를 표시하다가 48시간도 안되어 정치참모들을 모아 놓고 어떻게 하면 정부가 외교적 손상을 덜 입고 브란트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를 숙의했다는 후문이다. 콜은 또 EC 의장인 이탈리아의 길리오 안드레오티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이 독일정부의 단독행동이 아님을 누누이 설명하고 이를 EC 차원에 연결시켜 파악할게 아니라 유엔활동의 하나로 인정해 주도록 케야르 사무총장에게 요구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상(자민당)도 EC내의 자민당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등 정부차원의 면책작전에 심혈을 기울여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바그다드행을 실천에 옮긴 브란트 측으로서는 오히려 기민당정부와는 정반대의 정치적계산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쉽게 점칠 수 있다. 브란트의 사민당측은 이라크 인질문제를 오는 12월2일의 역사적인 전독 총선을 앞두고 있는 미묘한 정치상황에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71년도)이며 총리를 역임한 브란트는 독일인 인질석방교섭에 나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혀 왔으며 석방된 인질들과 함께 금의환향 하는 장면은 선거를 앞둔 사민당진영이 결코 놓칠 수 없는 호재로 판단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선거에서 꺾어야할 기민당의 콜총리가 주동이 된 EC 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을 염두에 둘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역행함으로써 기민당에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인질석방이 이루어질 경우 국내 정치게임에서 브란트의 사민당이 콜의 기민당에게 멋진한판의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EC 차원에서 볼때는 별로 탐탁치 못한 행위로 비치고 있는게 문제이다. EC는 5일 로마에서 긴급외무장관회담을 소집,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개인적 행동」이었다는 독일측의 설명에 따라 지난번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재확인 하는 선에서 그쳤다. 인도적 사명을 앞세운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을 각국이 정부차원에서 비난하고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EC 각국은 민간외교나 또는 다른 명분들을 내세운 개별행동이 국제적 위기에 행동통일로 대처해 나간다는 EC의 목표를 일그러뜨릴 위험성이 있다는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은 지난번 정상회담 합의내용을 두고 정치적 통합을 앞당길 수 있는 EC 공동외교정책 수행의 시범 케이스 라고 떠들썩하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 소,페만 무력사용 시사

    ◎고르비특사,무조건 쿠웨이트 철군 촉구/부시도 “사태 방치땐 3차대전 확대” 경고/이라크,인질 1백6명 석방 【런던 AP 연합】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소련 대통령 특사는 서방 외교관들에게 소련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영국의 BBC방송이 5일 보도했다. BBC방송은 이날 프리마코프 특사가 모스크바 주재 대사들에게 지난주 불어 통역관이 통역과정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군사적 선택은 『허용할 수 없다』고 잘못 통역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밝히면서 이같이 전했다. 이 방송은 또 프리마코프가 이들 대사들에게 소련은 대 이라크 금수조치와 이라크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쿠웨이트 철수를 요구한 유엔결의가 완전히 이행되기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와코(미 텍사스주)UPI 연합】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5일 페르시아만 사태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미국은 이라크의 침략을 결단코 저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하루 앞둔 이날텍사스주 와코시에서 열린 공화당 집회연설을 통해 『미국이 페르시아만 사태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침략행위를 저지하고 제어하지 않을 경우 「내일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제재조치들이 실효를 거두도록 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으나 『한 나라가 인근국을 위협하고 국제법을 위반해 이를 합병할 수 없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바그다드 로이터 연합】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6일 인간방패로 삼기 위해 자국에 억류중이던 외국인 인질중 1백6명을 석방하도록 명령했다고 관영 INA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후세인 대통령의 석방조치로 풀려나게 될 인질들은 일본인 77명을 비롯,이탈리아인 20명,스웨덴인 5명 그리고 독일인과 포르투갈인이 각각 2명이라고 밝혔다.
  • 외언내언

    「초콜릿 솔저」. 실전에 참가치 않은 군인을 가리키는 영어다. 페르시아만 위기로 찌는 듯한 사막에서 고생하는 미군을 떠올리면 「초콜릿처럼 달콤한 병영생활」을 하는 군인들을 잘 비유한 말일 것이다. 전후 승리군으로 동독에 주둔해온 소련군인들도 이 범주에 들 것 같다. ◆동독주둔 소련군은 독일통일을 계기로 1994년 이내로 철수케 됐다. 그러나 적지 않은 소련군인들이 될 수 있는 한 귀국하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보도다. 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내들까지도 그러하다는 것. 얼마전 한 소련군 부대에서 군인아내들이 이틀간 색다른 시위를 벌였다. 귀국해봤자 집도 절도 없이 텐트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들에게는 독일생활이 「초콜릿 랜드」로 비치는 것. ◆그러하기는 병사들도 마찬가지. 동독 때와는 달리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부자 나라(서독)을 만났다. 자연히 새로운 유혹에 빠지고 예기치 않은 위험에 직면했다. 탈영을 하거나 무기를 팔아 그 돈으로 서방상품을 구입하려 한다. 심지어는 쓰레기장을 뒤져쓸 만한 물건을 모은다고. 그들이 밀매하는 무기 가운데는 지대공미사일,대전차수류탄도 있다고 한다. 한 장교는 독일시민권을 얻으려고 독일아가씨와 결혼할 생각이라며 지참금으로 2년간 모은 봉급 2만마르크를 내겠다고 말할 정도. 각종 비리를 저지르기 위해 마피아식 갱도 조직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독일은 독일인의 것,소련은 물러가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소련군과 독일인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가고 소련군은 그들대로 군율은 흐트러지고,사기는 떨어지고,충성심은 썩어가는 3중고를 겪고 있다고.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소련군이 2년 앞당겨 철수할지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는 가운데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보좌관인 올레그 보고몰로프도 3일 탈영,범죄 등을 들어 소련군의 철수를 앞당길지 모른다고 시사. 소련군의 「귀국반대」는 한마디로 소련이 잘살지 못하기 때문. 조국도 못살면 조국이 아닌 세상인가 보다. 고르바초프가 경제개혁을 서두르는 이유를 실감케 한다.
  • 브란트 전 서독총리/오늘 바그다드 도착/서방인질 석방 타진

    【카이로ㆍ본ㆍ로마 외신 종합 연합 특약】 이라크에 억류중인 서방인 인질들의 문제와 관련,서방이 분열되고 있는 가운데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6일 새벽(한국시간) 이라크에 도착했다. 독일 언론들은 브란트가 4백여명의 독일인을 포함,5백여명의 서방인 인질과 함께 귀국할 것이라고 보도했으며 브란트 및 겐셔 독일 외무장관도 기자회견을 통해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는 낙관을 표시했다. 또한 롱이 뉴질랜드 전 총리 및 안케르 요르겐센 덴마트 전 총리도 곧 인질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라크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언론은 이라크가 모든 인질들에 대해 집으로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 호텔투숙 홍콩인/5천여만원 도난

    1일 상오6시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2201호실에 투숙중이던 이 호텔 총지배인 요하네스 얀스씨(40ㆍ독일인)의 부인 로버타 헬레나차이씨(32ㆍ홍콩인)가 2천7백만원짜리 사파이어반지 등 5천4백만원어치의 금품을 도난당한 것을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 「일벌레」는 옛말… 사라진 게르만 근면성(통일독일의 과제:하)

    ◎「라인강 기적」이후 “즐기자”풍조 서독인/의타심ㆍ시간때우기 등 체질화 동독인/“일터 잃을라”… 국내 외국인에도 배타적 근면ㆍ검소ㆍ신뢰성 등으로 표현되던 독일인들의 기질이 분단 45년만에 크게 바뀌었다. 이제 서독지역이건 동독지역이건 독일국민들은 노동만 하는 「일벌레」는 아니다. 전 서독 주민들이 전후 폐허속에서 경제부흥에 전념했던 50,60년대에는 근면 검소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70년대 경제의 기반이 닦이고 여유가 생기자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전후 커피가 부족해 보리차로 대신하던 경험을 겪은 50대 이상 장ㆍ노년층은 이제 값비싼 포도주를 선호하며 틈틈이 해외여행을 하는가 하면 화려한 옷차림으로 외식하기를 즐긴다. 근로자들은 1주일에 44시간하던 노동시간이 40시간으로 줄어들었음에도 이를 32∼36시간으로 더 단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하오 6시만 되면 상가문을 닫고 생활을 즐긴다. 전 서독 주민들이 풍요로운 생활을 즐기는데 열중하고 생활방식이 미국화 되었다면 전 동독 사람들은 사회주의체제 아래서 명령체계에 무조건 따르는 복종형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전 동독지역 국민들은 사회주의체제속에서 국가에서 계획한 생산활동에 종사하다 보니 근면ㆍ성실성의 기질이 퇴색되고 시간때우기ㆍ의타심이 높아지고 게을러졌다는 지적이다. 전 서독 국민들이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쾌락지향적이고 자유분방한 기질로 바뀌었다면 전 동독 국민들은 소시민적인 기질이 몸에 밴듯한 느낌이다. 베를린에서 만난 한 동독 청년은 『이제 어디나 갈 수 있고 무엇이나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막상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할 뿐』이라며 이지적인 서베를린 분위기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동서독 국민들이 반세기동안의 다른체제에서 생활해 오는 과정에서 게르만민족의 근면ㆍ검소ㆍ신뢰성 등의 특성이 사라지고 양쪽 국민들끼리도 서로 다른 기질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이한 국민성이 형성되어 있는 가운데 독일통일 후 자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거부적인 태도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통일 후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수는 서독지역 4백여만명 동독지역 2백여만명 등 6백여만명으로 늘어나 전체독일인 8천여만명의 7.5%에 이르고 있다. 서독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60년대 부흥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들어온 터키인 1백50여만명,유고인 80여만명 등 근로자들이 대부분. 동독지역은 또 앙골라 등 동독과 관계를 맺고 있던 사회주의국가들이 정변을 겪을 때 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 들어온 난민과 망명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서독지역은 고도의 경제부흥이 끝나고 70년대들어 안정기에 들어가면서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없게 돼 이들 노동자들에게 보조금을 주면서 귀국장려책을 쓰고 있다. 통일독일은 동독지역 국민들까지 합쳐 자국민의 실업자가 2백15만명(8.2%)이나 되자 전 동독정부가 허가한 외국인의 체류허가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귀국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미 생활의 터전을 잡은 외국 노동자나 난민들은 본국으로 귀국한다 해도 생활보장이 안돼 그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극우단체들의 외국인에 대한 테러행위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이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친절하고 예의바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말썽이 되고 있는 것은 스킨헤드족(빡빡머리),네오나치즘족 등 이른바 극우파들의 세력도 만만치 않아 독일거주 외국인들에 대한 폭력행위가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들의 행동은 독일의 통일과 더불어 더욱 과격해질 우려도 있어 불안감을 더해 주고 있다. 이달 초순 서독지역의 한 공동묘지에서는 한 극우단체의 20대 전후 10여명이 외국인 묘비 1백여개를 쓰러뜨리고 그 위에 스프레이로 나치 친위대의 「SS」표시를 해 놓았다가 이중 5명이 경찰에 검거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자칭 자유독일노동당(FAP) 소속원들로 네오나치즘 회원들과 접촉을 갖고 『독일에서 유태자본과 노동자들을 몰아내자』며 이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묘비훼손 사건은 독일 남부지역에서 최근 14번째 발생했으며 치안상태가 극히 양호하면서도 극렬주의자들의 파괴행위,국수주의적인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 동독지역에서 만난 한 음식점 주인은 처음에 『일본인이냐,중국인이냐』고 물어 『아니다』라고 했더니 곧이어 『서울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는 서울올림픽으로 한국에 관해 알게 되었다며 『한국이 서독과 같이 경제부흥에 성공한 나라』라고 부러움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동독지역 국민들은 북한보다는 남한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전 동독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활보다 전 서독지역 외국인 근로자들이 더 잘 사는데 대해 『우리들이 누려야 할 몫을 외국인들이 차지했다』며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분단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서로 각기 형성된 국민성을 융화시키고 분단의 유산인 국내거주 외국인 집단과 자국민들과의 조화로운 생활을 유도하는 문제가 통일독일이 안고 있는 또하나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 고립된 이라크,경제난에 “허덕”/“봉쇄 두달”… 효과 중간점검

    ◎공업기반 취약… 제고능력 한계에/제품생산량 침공전비 43% 감소/차량 운휴 늘고 발전소도 가동 중단 위기 지난 월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결의한지 두달이 지나면서 이 조치가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다. 이라크 경제에 대한 정확한 통계수집의 불가능 등으로 경제제재 조치가 이라크경제에 미친 타격을 분명하게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라크경제가 이로 인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는 조짐은 여러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지난 18일 이라크는 의약품에 대한 배급제 실시를 발표하면서 원유를 배럴당 21달러에 판매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하루만인 19일에는 금수조치로 공급이 끊긴 화학첨가물의 절약을 위해 휘발유와 엔진오일의 배급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하는 한편 국민들에게 절전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들만 가지고 이라크 경제가 균열되기 시작했다고 확언하기는 아직 이를지도 모른다. 사실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의 대부분 도시에서 경제제재에 따른 타격의 흔적이 많지는 않다. 가게에는 아직 식료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으며 식당에도 밤늦게까지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금수조치에 따른 우유부족으로 이라크 어린이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이라크의 비난과는 달리 적어도 식료품부문에 있어서는 경제제재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이라크 국민들은 식사를 조금 적게 하는 것엔 익숙해졌다면서 경제제재조치에 조금의 위협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식료품이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 생겨나고 있다. 필요한 제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해낼 기술을 갖지 못한 이라크의 취약한 공업기반이 바로 이라크의 목줄을 죄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등장한 것이다. 휘발유 배급제를 발표한 알 샬라비 석유장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라크는 지금 화학첨가물의 부족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 원유를 정유하는데 필요한 화학첨가물이 부족,이라크의 석유제품생산은 쿠웨이트 침공 이전에 비해 거의 절반에 가까운 43%가 감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타이어 생산의 부족으로 버스,자동차의 운휴가 늘고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전 이라크의 한 수력발전소에서 터빈기술자로 일했던 한 독일인은 『이라크 당국은 예비부품 비축에는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무엇이든 필요하면 주문해서 쓰라는게 그들의 방식이었다』고 말하면서 『내가 일하던 수력발전소도 부품부족으로 올 12월 이전에 가동이 중단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제봉쇄조치 이후 선박차단 2천6백여차례,승선검색 2백70여차례,강제회항 12차례 등 물샐틈없는 해상봉쇄에 따라 이라크정부의 주 수입원이던 석유수출이 전면봉쇄됨으로써 이라크정부의 재정난도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라크정부는 지난 10월초 10억 이라크디나르(약 32억달러)의 정부공채 발행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이란과의 전쟁이 한창일때 이라크가 재정난 타개를 위해 사용하던 방법이다. 이같은 재정난과 경제적 어려움이 22일 프랑스와 미국인 인질석방 검토와 같은 이라크의 유화적 자세를 이끌어 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유엔의 대 이라크 경제제재가 이제 조금씩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만은분명하다. 그러나 그 효과가 얼마만한 크기인지를 측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바그다드의 한 서방외교관은 『이라크경제가 타격을 받은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타격이 언제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날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지난 18일 『경제제재조치가 이라크의 경제 뿐만 아니라 군사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믿고 있다』고 체니 미 국방장관이 말하는 등 일부에서는 이라크군의 유지가능성에 대한 의문까지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첨단 전자부품과 특수오일 등 군장비 운용에 필요한 보급품의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일부 분석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실상이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분석은 서방측의 희망적인 관측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 통독후유증… 동ㆍ서 문화적 차이 심각(세계의 사회면)

    ◎동ㆍ서독 출신들의 현황/언어ㆍ스포츠 등 미식 생활방식에 젖어 서독출신/소 문화 배척,독일인 고유의 색채 유지 동독출신/슈피겔지 “통합은 됐으나 융화되진 못한 상태” 지난 3일의 동서독 통합 이후 독일인들 사이에는 동독 출신과 서독 출신간에 카우보이 모자에서부터 언어사용문제에 이르는 갖가지 문화적 차이를 발견하고 서로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한때 소련의 동맹국이자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였던 옛 동독사람들과 지난 40여년 동안 특히 미국과 같은 서방문화를 선호하는 경향에 물들어온 옛 서독사람들간에 형성되고 있는 이같은 이질적인 관계를 한마디로 『통합은 됐으나 융화되지는 못한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옛 서독 사람들은 스포츠에서 언어에 이르는 모든 부문에서 아메리카니즘(미국식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서독 지역의 주요 도시들에는 함부르크 돌핀스,베를린 이글스,카를스루헤 나이츠와 같은 풋볼팀들이 전국적인 아마추어 풋볼 리그를 결성한 채 경기를 벌이고 있다. 러시아어나 프랑스어 과목을 많이 가르쳤던 동독의 학교에서 교육받아온 옛 동독인들은 영어가 간간이 섞인 독일어를 쓰는 옛 서독인들의 구어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본에서 발행되는 대외정책 전문잡지 유로파 아르키브의 틸만 흘라데크 부장은 『나치사상을 포함한 나치시대의 완전 몰락 이후 그시대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나섰는데 그들이 선택한 것중 가장 중요한 두가지가 소련의 공산주의와 미국식 생활방식』이라고 말했다. 서독인들은 미국,영국,프랑스의 점령하에서 수립된 서독을 소련 팽창주의에 맞서는 서방동맹으로 흡수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의해 쉽게 서방 스타일을 선택하게 됐다. 그러나 가증스러운 철조망이 가로놓인 국경 너머에서 소련의 점령에 대해 점점 더 큰 분노를 느껴가면서 소련 문화를 철저히 외면하는 생활을 해왔던 동독인들은 독일인 고유의 색채를 더 많이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1933년 권력을 잡은 나치 정권은 미국의 재즈음악을 비독일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금지했으나 독일인의 문화와 성향에 대한 아메리카니즘의 침투 역사는 나치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문화는 2차대전 종전 이후 독일에 진주한 미군이 추잉검과 미국 담배를 들여온 것을 계기로 급속도로 아메리카니즘에 물들어 갔으며 그후 45년 동안 서독에서는 미국 TV시리즈물과 디즈니랜드 스타일의 유원지,심지어는 로데오경기까지 일상화해 왔다. 대도시의 10대들은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시끄럽게 거리를 누비고 있고 조용한 도시로 알려진 본에서도 스피드와 굉음을 즐기는 사람들이 미국제 할리 데이비스 모토 사이클 대여점에 몰리고 있으며 또한 프랑크푸르트와 본에서는 미국식 샐러드 바에서의 저녁식사와 시카고식 피자,미국 서부식 스테이크 등이 일상화해 있는 실정이다. 반면 과거 동독 지역의 상점들은 슈퍼마켓이나 부틱과 같은 외래어들 보다는 독일어 간판들을 많이 내걸고 있다. 한마디로 명령계통과 복종으로 대변되는 독일인들의 프러시아식 특성은 서방문화권인 서독에서 보다는 엄격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해온 동독에서 더 많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독일에서는 자동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도로의 신호 등 앞에서 파란등이 켜질 때를 고지식하게 기다리는 옛 동독주민들과 카우보이 스타일의 활달한 걸음걸이로 그 횡단보도를 그냥 건너가는 옛 서독인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 몸에 밴 의타심… 정부만 쳐다보는 동독인(통일독일의 과제:상)

    ◎돈많은 서쪽 동포에 “기대반 경계반”/부동산 소유자들은 옛주인 나타날까봐 “불안” 통일독일은 지난 10월3일을 전후한 사흘간의 축제를 마치고 새로운 국가건설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45년간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동서지역 국민들간에는 생활ㆍ의식ㆍ행동에 큰 골이 생겼으며 민족의 동질성회복이 과제로 남게 됐다. 통일과정을 현지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나본 독일인의 얘기를 중심으로 통일에 대한 동독인의 기대,서독인의 불안,민족성회복노력 등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통합된 베를린은 동서의 장벽이 철거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이 동서를 가르고 있었다. 분명 경계선은 없지만 서쪽에 있다 동쪽지역으로 들어서면 거리의 분위기부터가 달라진다. 서쪽지역의 주택과 건물들은 저마다 특색을 갖고 말끔히 단장되어 있는데다 베란다에는 으레 각양각색의 꽃이 진열되어 있고 창문안쪽에는 하얀 레이스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동쪽지역의 건물들은 한결같이 우중충한 회색에다 군데군데 무너진 벽이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거나 유리창이 깨어진채로 방치되어 있기 일쑤다. 하인츠씨는 『자동차 한대 구입하는데 12년,냉장고는 5년,TV는 3년을 기다려야 차례가 왔다』며 사회주의체제의 고질적인 물자부족을 개탄하고 『이제 돈많은 서쪽 동포들이 도와줄테니 상태가 곧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상전차인 에스반이 구부러진 궤도를 돌아가는 금속성음과 군데군데 패인 히틀러시대의 자연석 차도를 달리는 트라비승용차의 매연으로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공해문제도 통일독일이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중의 하나이다. 성능이 좋은 벤츠나 BMW승용차를 타고 남부유럽을 여행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것이 동쪽 주민들의 한결같은 꿈이다. 번화가의 여관 여주인인 마티나 헤미히씨(52)는 하루 숙박료가 1∼3층은 80마르크,4∼5층은 60마르크라고 해 그 이유를 물으니 『낮은층은 수세식 화장실과 욕실이 갖춰져 있으나 높은층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설명했다. 동쪽지역 접객업소뿐만 아니라 주택의 경우도 화장실에 물통과 손잡이가 긴 바가지가 놓여있는 경우가 많아 화장실이 거실보다말끔한 서쪽 가옥들과 큰 비교가 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부를 균등배분한다는 사회주의 이상은 좋은 제도이나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는 취약점이 있다는 것이 독일통일이 남긴 교훈이었다. 여관주인 헤미히씨는 『호네커일당이 다 해먹다 보니 우리는 40년전과 조금도 나아진게 없다』며 『콜이 우리를 살려주겠지요』라고 역시 통일정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길 희망했다.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1백여㎞ 떨어진 슈테그레츠마을을 찾은 것은 통일축제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 5일 하오 5시쯤이었다.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사자주점」을 들어서자 백발의 건장한 주인은 힐끗 한번 쳐다본후 맥주따르는 일을 계속했다. 자리에 앉아도 그는 인사는 커녕 자기자리로 돌아가 마시던 술잔을 계속 비울뿐 주문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벽난로에서 새어나온 갈탄 연기와 담배연기속에서 낡고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잡담을 하던 동네주민 10여명도 갑자기 말을 끊은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서독주민들의 경우라면 아파트계단이나 이른 새벽 길거리에서마주치게 되면 『안녕하십니까』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는 세련된 태도를 보인다. 주문한 맥주잔을 다 비우고 『맛이 좋다』고 칭찬하자 이를 호의로 받아들인 주인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사라지고 『당케,당케』를 연발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마티아스 쾨니히(66)라고 소개하며 『축복받은 독일,통일된 조국이라지만 나로서는 앞날이 걱정될뿐』이라며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목재소에서 근무하다 12년전 은퇴한 쾨니히씨는 20여평 크기의 주점과 방이 딸린 이 건물을 한달 수입의 15%인 월 2백마르크의 집세를 내고 살아 왔으나 최근 서독 주인이 나타나 『집을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지금까지는 국가에서의 임대주택은 자신의 주택이나 다름없었는데 통일과 더불어 새 주인이 나타나 쫓겨나게 됐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 별다른 불편없이 살아오던 쾨니히씨는 갑자기 나타난 집주인에게 쫓겨날 형편이 되었다. 쾨니히씨와 같이 동독지역에서 주택ㆍ농지ㆍ공장부지의 새 주인이 나타나 생활의 불안을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1천8백만 주민중 1백만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정부는 아직 사유재산환수에 대해 최종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나 부동산을 가능한한 원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이어서 동독지역 주민들의 불안은 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다른 체제에서 반세기 가까이 살아온 독일민족은 과보호와 경쟁상태에서 각기 다른 국민성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동베를린 지역의 샤리테병원 정신심리과 의사인 알렉산더 슐제박사(39)는 『지금까지 사회주의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통일의 기쁨보다는 새로운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서독지역 주민과 다른 동독지역 주민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슐제박사는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동쪽 주민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밀어 닥칠지 모르며 생활터전도 흔들려 불안해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동안 사회주의라는 온실속에서 안일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모두가 색깔도 없이 똑같은 형태가 되었으며 모험을 회피하려는 소시민근성이 몸에 베이게되었다』고 분석했다. 분단 45년만에 양쪽 국민성에도 커다란 단절이 형성된 느낌이다. 한쪽이 시장경제의 경쟁속에서 닳고 닳았다면 한쪽은 사회주의이 과보호 속에서 순치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 독일인 변사/신라호텔서

    13일 하오1시30분쯤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1257호실에서 독일 운송회사 이사 한스 마이어(46)씨가 침대에 누워 숨져있는 것을 객실과장 조현백씨(42)가 발견했다. 조씨는 『마이어씨가 예약시간이 끝났는데도 나가지않아 객실로 가보니 속옷차림으로 침대에 반듯이 누워 숨져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10일 업무관계로 입국한 마이어씨가 12일 밤늦게까지 한국지사 직원들과 술을 마신 사실을 밝혀내고 일단 과로에 따른 심장마비로 숨진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 「통일의 흥분」사라진 독일/박봉식 서울대교수ㆍ국제정치학(서울시론)

    ◎엄청난 통일경비ㆍ실업증가로 고심 작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때 모든 독일인들은 흥분의 절정에 있었던 것 같다. 금년 10월3일로 다시한번 통일국가가 된 독일은 많은 사람들,특히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간여한 나라들의 축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뒷마음에는 서로 다른 그림자를 감추고 있는 것 같다. 독일통일에 대해 외국인들의 태도는 차치하고 독일 사람들 자신­서독은 서독대로 합병당한 동독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심각한 새로운 현실에 어리둥절한 상태에 있다. 서독은 동독의 재건을 위해 향후 근 10년에 걸쳐 수천억달러의 돈을 투입해야 하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통일독일의 콜 수상은 서독 사람들에게 통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동독으로 부터 철수해야 할 37만명의 소련군을 위해 1백억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재정적 부담외에도 동독 사람들을 맞이하는 서독 사람들은 결코 즐거운 표정들이 아니다. 서독 기업인의 기준에서 본다면 동독 근로자들은 기능이나 노동의 질에서 수준미달로 보이고 있다. 한편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것을 빼앗긴 허탈한 심경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루아침에 생활의 모든 틀이 바뀌어진다. 설혹 실업을 면하는 사람들도 서독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동독인 1천6백만명중에 4백만명이 조만간 실업자가 된다고 한다. 모든 학교의 교원들은 그들이 가르치던 과목이 없어지거나 재조정되는 데에 따르는 재훈련을 받아야 한다. 동독의 공무원들은 어떻게 되는가? 서독에서는 공산당원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서독이 동독을 합병했기 때문에 동독의 모든 관청은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동독 공무원은 채용되더라도 심사를 받아야 하고 대체로 기술직 이외에는 채용이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동독 외무부직원 2천명중 1천8백50명이 해고되었고 나머지 1백50명도 임시계약으로 복무하는 상태다. 65만명에 달하는 동독 공무원이 모두 해임되는 상태다. 이들은 새로운 직장을 위해 재교육을 받는다. 그들의 심경은 어떠할까 짐작이 간다. 나라를 서독에 넘긴 동독 수상은 통일로 인해 동독인의 생활에 별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통독 국회의원이 된 1백40여명의 시한부의원과 동독 수상을 위시해서 통독정부의 각료가 된 몇사람들은 갑자기 거액의 세비를 받아 새 천지를 만난 것 같을지 모르나 동독에 남은 백성들은 앞날이 캄캄할 지경이다. 특히 전쟁전에 동독지역에 토지를 두고 서독으로 피해온 사람들은 옛 재산을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동독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주거로 부터 쫓겨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 전 동독 수상 한스 모드로는 『우리는 서로를 알 시간이 더 필요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동서독간의 교류가 있어 온지 오래다. 그러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막상 통일을 하고보니 서로를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 뜻이다.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독에는 정신병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군대 경찰 학교 관청 심지어 교회까지 서독에 합병당하고 말았다. 동독의 법관들은 더욱 쓸모없는 인간들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얼마씩 1대 1로 바꿔주는 서독돈을 가지고 일용품을 구입하는 기쁨도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벌써 잃어버린 동독 생활에 대한 노스탈자가 일고 있다. 12월에 있을 총선거에서 이들의 표의 방향이 어디로 갈까? 이들이 정치적으로 집단행동으로 흘러갈때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할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10월3일,독일통일의 날을 동 서독의 적지않은 민족주의자들은 경축하지 않았다. 특히 지금의 통일독일의 영토에서 제외된 옛 독일땅을 고향으로 하는 백여만명으로 구성된 단체의 사람들은 이번 통일로 일차대전후 독일영토의 4분의 1이 잘려 나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잃어버린 땅들이 8백년간 독일 사람들의 고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이 지금의 역사상황에서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독의 거의 전역에서 아파트 월세가 갑자기 10배로 늘어나는 생활 현실에서 터져나오는 아우성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통일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것은 유태인이다. 나치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50만명이었던 독일의 유태인은 지금 약 3만∼5만명이라 한다. 이들은 분단과 4대강국의 지배체제가 그들에게는 가장 안전한 체제였다. 통일에 따라 4대강국의 간섭권이 사라지는 것은 그들에 대한 보장체제가 없어지는 것이 된다. 그들에게는 동독에서 군국주의적 생활과 외국인에 대해 증오로 길들여진 1천6백만 동독인 모두가 두려운 존재이다. 이러한 국내외 복합적인 상황은 물론 통일에서 오는 독일의 새로운 활력으로 용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폴크스바겐 자동차회사는 크게 활기를 띠고 있으며 마르크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로 동독이 서독의 수준으로 향상되면서 안정화되어야 하겠지만 그동안 동서독의 모든 사람들은 통일의 흥분을 가라앉치고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요구하는 현실이 존엄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통일이 아직도 요원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준다. 동 서독은 그동안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막상 통일을 실현한 현재 그들은 너무도 서로 다른데 대해 당황하고 있다. 그래도 서독은 경제력으로 소련을 꼼짝못하게 묶어 놓고 동독을 합병해내는 능력을 가졌다. 동독 사람들은 스스로 2등 국민임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당대가 아니면 다음세대에는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의 내면을 보면서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이 아득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 통독의회,새 선거법 채택/“양독지역서 5% 득표땐 의석 배분”

    ◎개원 첫날부터 총선 정책 공방/“분단 45년의 벽 융화로 극복” 콜총리/“동독 외면한 공약 남발”비난 라퐁텐 【본 AP 연합】 통일독일 출범 3일째를 맞은 5일 전독일 회의가 본에서 첫 회의를 개최하고 새로운 선거법을 채택함으로써 오는 12월2일로 예정된 전독총선이 당초 계획대로 실시될 수 있게 됐다. 이날 전독일 의회에서 의원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된 새로운 선거법은 대법원으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은 동서독간의 선거협약을 대체하게 된다. 새로운 선거법은 통일 독일을 동서독으로 선거구를 양분해 동독출신의 의원은 동독지역 유권자의 5% 지지만 얻으면 원내로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선거법에 따라 민사당과 같은 소규모 정당들도 원내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동서독은 통일에 앞서 한 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전체유권자 가운데 5%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만 한다는 내용의 선거협약에 합의한 바 있었으나 대법원으로부터 위헌파결을 받음으로써 12월2일의 전독 총선실시가 불투명했었다. 한편이날 회의는 지난달 12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2+4」회담에서 체결된 2차대전 전승국들의 독일에 대한 권리를 종식시키는 협약을 승인했다. 【베를린 로이터 AP 연합】 독일 통일에 따라 구동독출신의 일부 각료와 의원들이 통일된 연방정부에 합류한 가운데 4일 전후 45년만에 처음으로 전 독일의회(하원)가 구제국의회(라이히스타크) 건물에서 개원,오는 12월의 전독 총선을 겨냥한 정책대결로 첫 통일의정을 장식했다. 회의 벽두 새로 연방정부에 무임소 각료로 입각한 5명의 동독출신 장관들이 콜 총리앞에서 입각선서를 한 가운데 시작한 이날 회의는 나치독일과 스탈린 통치,베를린 장벽에서의 희생자들에 대한 의원들의 추모 묵념과 함께 진행됐다. 서독출신 의원 5백19명과 새로 연방의회에 가담한 1백44명의 동독 의원들을 합쳐 모두 6백63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된 이날 회의에서 헬무트 콜 총리는 독일이 국내외에서 좋은 이웃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지난 45년간 분단의 상처를 조속히 극복하기 위해 모든 독일인들이 자기희생의 헌신적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라고 역설했으며 사민당과 동독의 구공산당 지도자들은 콜총리와 기민당의 통일정책 등을 격렬히 비난하는 등 통일의회 개원 첫날부터 총선을 의식한 의원들의 열띤 설전이 불을 뿜었다. 콜 총리는 통일독일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분단 45년의 영향을 일소하는 것이라면서 『독일을 문화ㆍ경제ㆍ사회 등 제반 모든 분야에서 하나로 융화시키는 일이 앞으로 독일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흑ㆍ적ㆍ황의 독일 3색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베를린의 구제국 의회에서 이날 상오 10시 개회된 회의에서 그는 특히 『독일역사의 양지에 있던 서독인들과 공산독재에 고통받던 동독인들의 간격을 메워야만 한다』고 전제하고 『지난 40년동안 피폐화한 것을 몇주나 몇달안에 훌륭한 상태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나 이를 빠른 시일내에 극복할 수 있도록 독일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사민당의 오스카 라퐁텐의원은 그러나 콜 총리가 급속한 통일이 동독측에 가져온 고난을 외면한채 대독일만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는 12월 총선에서 콜 총리와 대결할 라퐁텐의원은 또 콜총리가 세금인상으로만 가능한 공수표를 남발하고 있다고 공격하는 등 통일독일 의회는 개원 첫날부터 사실상의 선거전으로 치달았다.
  • 「분단 41년」의 청산과 과제(새 독일 탄생:3)

    ◎“과도기 없이 통일”… 현실적 융화에 어려움/낙태ㆍ환경보호문제 등 의견 대립 첨예/베를린행 인파 급증… 주택ㆍ교통난 심화/동독기업 도산 속출… 연말가면 실업 1백만 예상 최근 베를린 도심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교통량을 해소하기 위해 간선도로마다 버스ㆍ택시전용차선이 등장했다. 일반승용차가 버스전용차로 운행할 경우에는 20마르크(9천2백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버스전용차선으로 다니는 승용차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벌금을 둘러싼 시비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규율과 질서를 존중하던 독일정신(Deutsche Geist)의 실종이라고 하겠다. 이 문제에 대해 지난 9월28일자 「베리리널 몰겐포스트」지는 다음과 같이 관계자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만프레드 카이절(49ㆍ열쇠공)은 『최근엔 버스를 타도 전보다 30여분 늦게 귀가하게 된다. 나는 직장에 늦지 않게 출근하고 싶으며 역시 퇴근후 정확하게 집에 도착하고 싶다. 그래서 가끔 차량들이 없는 버스차선을 이용하게 된다. 교통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디터 스캄브락스(37ㆍ경찰국 경감) 『동독지역서 온 운전자들이 버스차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들은 버스차선에 대해 전혀 유념하지 않고 있다. 최근 악화된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에 공공교통수단의 우선 소통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서독의 서민대상 백화점인 알디(ALDI)에는 요즘 이른 아침부터 물건을 사려는 동독지역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줄을 서 있다. 아침 10시부터 개점하는 백화점은 오전중에 일부 상품이 동이 나 줄서기에 익숙하지 못한 서베를린 사람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들이 선호하는 상품은 주로 가전제품이어서 컬러TVㆍ비디오제품들을 들고 가족들이 무리를 지어 베를린 도심을 다니는 동독지역 주민들이 눈에 많이 띈다. 1마르크라도 절약하기 위해 알디의 바겐세일을 고대하던 서베를린 중산층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가격도 상승해 생활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밖에 통독 이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업종은 주택임대업자와 중고자동차판매업 등이지만 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서민들의 생활이 쪼들리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시내 주택임대사무실에는 임대 신청을 하기 위한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으며 임대료가 몇달새 2배까지 오른데다 신청이 접수된 뒤에도 2∼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방3에 응접실이 있는 1백㎡ 규모의 아파트는 월 임대료가 연초 2천5백마르크 정도였으나 최근엔 4천여 마르크로 치솟았다. 통일뒤 베를린에만 30여만명의 외래인이 몰려 들었다는 집계여서 주택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3년된 중고차도 여유있는 동독출신 사람들이 몰려들어 벤츠 300의 경우 2만5천∼3만마르크를 홋가,통일전에 비해 5천∼1만마르크가 상승한 가운데 거래되고 있다. 이같은 모든 문제는 독일통일 예상을 뒤엎고 급속히 진전되는 바람에 독일정부가 국민들의 통일요구에 사전준비가 제대로 안된채 끌려간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독일통일의 동기를 여러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겠으나 지난해 가을 서독으로의 대탈출로 불이 당겨진 이후 전광석화처럼 통일 작업이 추진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리 계획된 통일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분출된 갑작스런 욕구때문에 이뤄진 통일이어서 많은 문제점과 갈등을 과제로 남겨 두었다고 하겠다. 통일의 직접동기는 여행자유화였던 것이다. 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묶어둔 동독의 사회제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불만과 반발을 자초했으며 평소 강제로 주입시켜온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도 퇴색시켰다. 지난해 동독시위의 첫 구호는 「여행자유화」였으며 이것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장기화,이에 따른 폐쇄사회의 모순,경제침체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서독으로의 대탈출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부터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갑작스런 통일은 많은 갈등을 과제로 남겨놓고 있다. 이때문에 40여년 분단갈등의 해소문제는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것보다는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동독사람들이 경쟁과 능력을 중시하는 시장경제 사회에 어떻게 빨리 적응하느냐 하는 사회적인ㆍ경제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통일조약에 따라 사회주의 동독의 각종 제도는 서독체제에 맞도록 개편되어야 하는데이 과정에서 벌써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대표적인 과제들중에는 낙태법ㆍ실업ㆍ투자ㆍ환경문제 등이다. 이런 문제들은 통일독일 정부가 앞으로 시간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지만 서독국민과 동독국민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많아 쉽사리 실마리를 찾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서독에서는 낙태를 금지시키고 있으나 동독은 이를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통일후 서독 여성들이 동독으로 건너가 낙태시술을 받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독의 집권 기민당은 낙태법문제에 관해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으나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낙태에 관해서는 기소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통독후 가장 골치아픈 문제로는 실업문제와 인플레현상이다. 사회주의경제가 다 그러하듯 동독의 경제는 지금까지 적정인력 투입이나 균등분배에 중점을 두어왔기 때문에 통계상으로는 실업률 0% 였으나 경제통합후 3개월만인 현재 동독지역의 실업자수가 30여만명에 이르는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독 문제연구소의 쿳페박사는 최근 『새 경제질서는 충분한 사전준비나 과도기도 거치지 않고 갑자기 닥쳐왔다』며 『향후 2년내에 동독기업의 30%가 도산할 것이며 실업자수는 연말까지 1백만명,91년까지 전체 노동력의 25%인 2백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양국의 체제가 합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갈등은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며 독일인들은 이를 현명하게 해결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 새 독일 출범하던 날 이기백특파원 현장르포

    ◎“세계평화 위해 봉사”… 1백만인파 환호/동ㆍ서독인 어깨동무 밤새 거리누벼/“인간의 존엄성 구현하는 국가”선언/“분단위로”… 한국인엔 음식값 절반 할인도 하늘에는 영광,땅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폭죽이 하늘을 수 놓았으며 광장을 가득메운 시민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통일ㆍ통일』을 외쳐댔다. 3일 통일을 맞은 독일은 2일부터 4일까지의 통일축제기간 전국이 열광속에서 지낸데 이어 5일 상오 10시 제국의회건물에서 동서독 합동의회를 가짐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했다.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던 3일 0시 베를린시내 브란덴부르크문 주변에서는 이미 초저녁부터 전국에서 몰려든 1백만여명의 인파가 손에 손을 잡고 국가인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벨 알레스」(독일이여,이세상 모든 것 위에)를 힘차게 불러대는 가운데 제국의회 앞에 설치된 41m 높이의 국기게양대에 새독일의 흑ㆍ적ㆍ황색의 새국기가 게양됐다. 가로ㆍ세로 10m,6m의 대형국기가 올라가자 군중들은 일제히 환호를 했으며 폭죽과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아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날 브란덴부르크문을 중심으로 한 운텐덴린덴가와 프리드리히가에는 동서독에서 몰려든 1백만여명의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혼잡했으며 통일의 순간에는 군중들의 함성과 폭죽의 초연이 가득했다. ○…이날도 역시 통일 전야인 2일과 마찬가지로 2천여명의 예술가ㆍ음악가ㆍ무용가들이 축제로 곳곳에 마련된 수십군데의 임시무대에서 춤과 음악의 향연을 벌여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으며 수백군데의 노상 식당과 주점에는 세계 각국의 각종 음식과 주류들이 선을 보여 축제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이들 노상 음식점중에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교민 조중식씨가 차린 한국식 포장마차도 있었는데 조씨는 빈대떡ㆍ만두ㆍ불고기ㆍ잡채 등 네가지 음식을 함께 담은 「혼합한국요리」 한 접시를 10마르크씩에 팔고 있었고 간혹 찾아오는 한국인들에게는 『통일을 못이룬 슬픔을 위로한다』는 이유를 달며 반값인 5마르크씩에 제공했다. ○…마리엔교회의 합동통일 예배가 끝난후 3일 상오 11시부터 필하모니에서거행된 통일국가행사에서 자비네 베르그만 폴 전 동독인민의회의장,리타 쥐스무트 연방하원의장,발터 몸퍼 연방상원의장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각각 연설과 기념사를 통해 독일과 유럽의 단합을 촉구. 한편 메지에르 동독 총리도 이날 통일수시간 전에 가진 고별 방송연설에서 『전제정치를 대신해 법과 민주주의,인간의 존엄을 구현하는 국가가 들어선다』고 독일통일의 의의를 선언했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은 라이히슈탁 앞의 야외무대에서 거리로 나온 군중들에 행한 연설에서 『우리는 통일유럽에서 세계의 평화를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선언.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또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지도하의 소련과 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및 『억압과 독재를 부수고 과감히 떨쳐 일어난』 전 동독 국민들에 감사의 뜻을 표시.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4일 통일 독일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분단 45년의 영향을 일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 독일의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이날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콜 총리는 통일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모든 독일인은 통일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희생을 치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인 독일 통일 이후 동독대표 1백44명이 추가돼 6백63명으로 확대된 의회에서 「독일역사의 밝은 부분」에 있던 서독인들과 공산독재에 고통받던 동독인들 사이의 간격을 메워야만 한다고 전제하면서 『모든 독일인이 문화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 융화되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 가장 큰 과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에 대한 독일의 충성을 재차 강조하면서도 유럽통화의 단일화 실현속도를 둘러싼 유럽공동체(EC)내의 논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 외언내언

    통일독일을 경축하는 1백만 독일인들의 함성과 환호. 베를린시 의사당앞 광장의 감격이 화면으로,활자로 전해져 온다. 통일독일을 두고는 피해당사국들 사이에 우려의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민족으로서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다. ◆『…헨델,라이프니츠,괴테,비스마르크…,그들은 독일류의 강력한 전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독일은 온갖 대립 사이를 의념없이 살아 나오고 유한 강을 터득한 가운데 신념이나 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그를 서로 접합ㆍ이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자유를 보전하고 있다.…』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884)에서 하고 있는 말. 오늘의 동서독일 하나됨도 니체의 이런 지적에 연유함인가. ◆지금부터 5년전쯤,헬무트 콜 수상을 실랄하게 꼬집는 「농담집」 4권이 서독을 휩쓸었다. 동서독이 대치한 상황 아래서 서독의 방첩책임자 티트게가 동독으로 망명하고 심지어 총리의 여비서 부부까지 망명하자 서독국민들은 울화가 치밀었던 것. 「농담집」은 그 분풀이를 하면서 콜 총리를 완전히 「바보 천치」로 묘사한다.그것을 읽은 콜 총리는 『너무 재미있어 나도 웃었다』는 여유. 그럴 수 있는 체제 속의 대기였기에 오늘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 아닐까. ◆통일이 되었다 해도 안팎의 시련은 지금부터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거인」이 된 독일이 세계평화에의 길에 어떻게 이바지해 가느냐 하는 점. 특히 주변 피해 당사국들은 거기 주목한다. 그 점에서 독일인의 심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비판했던 독일인 하이네의 경고도 재음미해야 겠다.­『프랑스의 애국주의가 전문명국을 포용하는 데 비해 독일의 애정의 실체는 이렇다.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냉기 속의 가죽과 같이 수축하며 외국 것을 증오하면서 세계시민도 유럽인도 아닌 편협한 독일인이기를 원할 뿐 이다』(「로망파」제1장). ◆누가 뭐라해도 오늘의 결과는 게르만족의 예지와 애국애족정신에 기인하는 것. 우리의 남과북­예지도 애국애족정신도 없다 할 것인가.
  • 새 「역사의 장」여는 통독의 현장에서/이기백특파원

    ◎“이제 독일은 하나”… 거리마다 샴페인 축제/“우리는 자랑스런 독일인”… 얼싸안고 환호/통일 알리는 종소리에 목메어 국가합창/동ㆍ서베를린 잇는 마라톤엔 2만5천명 참가 그것은 새 역사의 장을 여는 감격적인 축제였다. 성당과 교회의 종이 일제히 울려 퍼지면서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저마다 「아인하이트 아인하이트」(통일)를 외쳐대며 민족재결합의 기쁨을 만끽했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에 몰려든 시민들은 손에 손을 잡고 자유ㆍ평화ㆍ정의를 강조하는 국가를 목이 터져라고 불렀으며 통일을 축복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현란하게 수놓았다. 이제 독일은 하나,통일축제가 시작되는 2일 자정부터 4일까지 베를린 시내에서는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금세기들어 3번째 세워지는 새 독일의 탄생을 축복하고 밝은 미래를 기원했다. ○…통일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성당과 교회의 종소리가 2일 0시 일제히 울려퍼지자 축제행사가 중점적으로 진행되는 운텐 덴린덴거리와 6월17일 거리에 나와 있던 시민들은 주먹을 공중으로 치켜올리며 환호했으며 각 가정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려 이 순간을 축복했다. 운텐 덴 린덴 거리에 부인ㆍ여동생과 함께 나온 지그마 캡슐씨(35)는 『통일이 이같이 빨리 이뤄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감격스럽고 독일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가족들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동베를린에 산다는 에버린 쾨러양(22)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하늘을 수놓은 폭죽의 섬광처럼 우리는 빛을 발할 것입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10월3일이 「통일의 날」로 국경일이 됨에 따라 독일국민들은 매년 이날 휴무하게 되며 지금까지 동서독이 별도로 통일을 기원하던 기념일은 폐지된다. 동독은 지금까지 건국일인 10월7일을,서독측은 동독에서 공산정권에 항거해 시민들이 일제히 궐기했던 6월17일을 기념해 공휴일로 지정했었다. ○인산인해 교통마비 ○…베를린은 역사적인 백림마라톤대회가 때마침 통일축제 직전인 30일 열려 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웠다. 60여개국에서 2만5천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대회의 코스는 독일통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서베를린 샤로텐부르크문을 출발,6월17일 거리를 지나 동베를린지역인 칼 막스거리를 거쳐 브란덴부르크 문과 통일전 체크 포인트였던 찰리 검문소를 통과하는 등 반세기만에 전 베를린 시가지를 질주해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이 때문에 독일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과 각국의 취재기자ㆍ외국관광객으로 숙박난ㆍ교통난을 가중시켰으며 도심은 거리를 나다니기조차 힘들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호텔과 여관이 초만원을 이루자 베를린시당국은 TV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민박을 강조하는 계몽을 펼치고 있으며 축제기간중 지하철을 24시간 운행하는 한편 역주변과 광장등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당분간 단속하지 않기로 해 텐트족의 천국을 이루기도. ○…통일축제의 절정은 몸퍼 서베를린 시장이 2일 상오 9시 시의회에서의 통합을 선언하는 행사. 몸퍼시장은 이 자리에서 독일과 독일인은 영원히 하나이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임을 다짐. 이어 몸퍼시장은 연합군 사령관들에게 베를린의 자유수호에 기여한 노고를 치하하고 연합군 사령관의 고별사에 이어 곰을 상징하는 베를린기가 시장에게 되돌려 진다. 이에 앞서 독일분단 이후 베를린 시정을 담당했던 연합군 사령관 레이먼드 하드도크(미국),로버트 콜베트(영국),프랑세스 샹(프랑스)장군 등은 1일밤 마지막으로 브라보검문소에서 간단한 철수기념식을 갖고 장병들을 위문. ○일부선 통일반대 시위 ○…통일축제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브란덴 부르크문 광장에서는 「우리는 통일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든 3백여명의 전동독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은 통일이 된 뒤 사회주의 국가에서 누려온 정부 복지시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불이익」과 불확실한 통일후의 생활을 우려해 연일 이곳에서 통일반대시위를 벌여왔는데 이날도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광장의 한 귀퉁이에서 시위를 강행. 그러나 통일을 환영하는 군중들의 환호에 이들의 주장은 더욱 초라하게 보였으며 1일로 독일 경찰에 편입된 전동독경찰관들이 이들의 데모를 보호. ○「통일의 횃불」기념촬영 ○…역사적인 통일이 이루어짐에 따라 지난 40여년동안 독일 통일의 열망을 불태우던 테오도르 호이스 광장의 횃불도 꺼지게 된다. 서독 초대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Theodor Heuss)가 취임하면서 독일국민의 통일염원을 북돋우기 위해 광장 한가운데 마련됐던 통일횃불은 냉전시대의 파란만장했던 베를린의 과거를 지켜보며 베를린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온 명소. 「Freiheit(자유)ㆍRechts(정의)ㆍFrieden(평화)」라고 새겨진 대리석 받침대 위에서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던 희망의 횃불이 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베를린시민들은 연일 이곳에 몰려들어 헌화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1일 가족과 함께 통일횃불을 배경으로 가족들과 사진을 찍던 헬무트 센켄씨(52)는 『호이스의 염원은 드디어 성취돼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었으나 횃불이 소멸되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통일의 횃불은 독일인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 ○동독군복등 기념판매 ○…독일의 신문들과 방송들은 대부분 차분한 자세로 베를린의 분단에서 통일에 이르는 과거를 재음미하며 통일행사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소개. TV는특히 통일이후의 국내ㆍ세계정세를 논의하는 좌담회를 방영하는 가운데 ARDㆍZDF 등 전국적인 방송망을 갖고 있는 TV는 60년대초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이히빈 베를리너(나는 베를린시민)』이라고 연설하며 소련과 동독의 봉쇄로 고난을 겪고 있던 베를린시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던 기념비적인 장면을 보여줘 감회를 새롭게 하기도. 또 통일축제기간동안 재빠른 상업주의가 극성을 부려 2차대전때 파괴된 상흔을 간직한채 도심 한가운데 을씨년한 모습을 하고 서 있는 카이저 빌헬름교회 주변 광장에는 상인들이 전 동독군인의 모자와 제복,계급장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가 하면 베를린의 한 회사는 베를린 봉쇄때 시민들의 생필품을 공수했던 C46수송기를 임대해 축제기간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 템펠로프 공항까지 기념비행을 광고하면서 손님들을 끌기도. ○교민무용단 공연도 ○…이번 행사에는 우리나라 교민여자 무용단인 「아리랑무용단」이 참가,2일 하오 11시부터 동베를린 오페라하우스 앞 베벨프라츠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어서눈길. 무용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베를린시 당국에서 축제참가 초청장을 보내와 2차대전으로 인한 마지막 분단국인 한국이 참가하는 것이 큰 의의를 가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참가를 결정했다는 것. 2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무용단은 이날 공연에서 한복으로 차려입고 30여분동안 우리나라 전통춤을 공연할 예정인데 통일의 현장에서 「통일기원춤판」이 한바탕 벌어질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 ○…통일축제는 승전 4대국 수뇌들이 참석하지 않게됨으로써 당초 계획과는 달리 순수한 독일인 자체의 축하행사로 진행될 전망. 통일축제의 공식행사는 2일 하오 5시 동서베를린시 의회가 개최됨으로써 시작되며 4일 상오 9시 베를린에 있는 라이흐스탁(국회)에서 동서독 합동의회가 열림으로써 끝을 맺으나 기념공연 등 각종 행사는 시내 곳곳에서 잇따라 열린다. 축제의 절정은 3일의 동서베를린 경계선에서 펼쳐질 시민잔치와 국회건물의 통일독일기 게양식. 국회에 통일독일기가 게양되는 것과 동시에 동서베를린의 모든 공공건물과 대형건물,차량들에도 독일기가 게양되거나 꽂혀진다.
  • “희망과 경계의 통일”… 엇갈린 시각(새 독일 탄생:1)

    ◎「경제ㆍ군사대국」의 강풍이 분다/세계질서 재편의 축으로 부상/6번째 유엔상임국 확실… 영향력 신장/“제국출현” 우려속 “유럽통합 가속” 기대 10월3일 0시. 동서독이 공식 하나로 통일되는 이 시각,독일 전역에는 일제히 폭죽이 터질 것이다. 거리를 메울 시민들은 전통적인 뿔피리를 불어대며 밤이 새도록 게르만민족의 하나됨을 경축할 계획이다. 특히 냉전체제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에서는 브란덴부르크문 주변과 운텐 덴 린덴가를 중심으로 2일부터 4일까지 밤낮으로 이어질 통일축제가 벌어져 반세기 분단의 아픔을 씻어버린다. 독일은 지난 7월1일 경제ㆍ사회통합에 이어 동서독이 8월31일 체결한 「통일조약」에 따라 3일 0시에 독일민주공화국(GDRㆍ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FRGㆍ서독) 헌법 제23조에 의해 정치적으로 FRG에 흡수통합 됨으로써 내부적인 통일과정을 모두 마무리 짓게 된다. 이로써 지난 45년동안 사회주의를 추구해온 동독이라는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같은 기간동안 시장경제로 힘을 키워온 서독을 모태로 한 통일독일인 「독일연방공화국」이 유럽중심부의 새로운 국가로 등장,유럽의 새 질서를 추구하여 세계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이 발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분산되었던 독일의 국력은 통일을 계기로 동유럽을 포함한 유럽 경제권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2개국으로 구성된 EC내에서 서독은 지난해 총 수출의 30%,자동차 생산의 35%,철강생산량의 26%,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전체적으로 대략 25%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다 동독 편입으로 성장잠재력이 가세될 경우 통일독일의 EC내경제점유율은 33∼35%까지 올라가게돼 「경제패권주의」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독일경제력의 팽창은 EC국가들 뿐만 아니라 동구의 각국에도 기대감과 더불어 우려감을 동시에 갖게 하고 있다. EC국가들은 92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유럽단일시장화에 구동독이 합류함으로써 2차대전 후 지속되어온 동서의 냉전상태가 종식되었고 유럽내에서 동구라는 블록이 와해되었으므로 대유럽통합이라는 궁극의 목표를더욱 조속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은 경제초강국 독일로부터 그들의 피폐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80년대 중반이래 동구의 민주화물결 이후 이들 국가들은 사회ㆍ정치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해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더욱 피폐해져 독일의 경제적 지원을 고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동독국민들의 서독으로의 탈출을 계기로 독일통일이 가속력을 붙게 한 것도 미ㆍ영ㆍ불ㆍ소 등 승전 4개국중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소련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를 승인한 것이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소련은 그동안 콜 서독총리와의 독일통일협상 과정에서 38만여명에 이르는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비 명목으로 1백20억마르크(76억달러)를 받아내기로 한데 이어 지난주 30억마르크를 추가로 지원받기로 하는등 경제적인 실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분위기다. 소련은 최대의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당초 통일독일의 나토잔류를 반대하다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에의 동시가입으로 물러섰으며 결국은 나토가입만을 허용하기에 이르는등 협상과정에서 모든 것을 내주면서 최대한의 실리만을 추구해왔다. 물론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된 내부적 원동력은 서독의 민주주의의 실현과 경제적 성공,그리고 국민들의 잠재적인 통일열망 등을 기반으로 해 80년대 초반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에서 싹튼 동구권의 민주화운동이 동구제국에서 연속적으로 일당독재체제를 붕괴시키면서 결국 동독공산당의 몰락에 다다른 것이 큰 계기였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볼때 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측면이 많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비대한 관료조직과 더불어 비현실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에 의해 너무나 허약하게 무너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사회주의국가중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알려졌던 동독의 경우 그동안 생산관리나 품질향상 등 경제의 기초개념보다는 완전고용과 균등배분에만 주력,실업이 전무하다시피 했으나 결국 그것이 모양새만 그럴싸한 허수아비임이 드러났다. 한편 세계대전을 두차례나 저지른 독일의 재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의구심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독일은 이같은 주변국의 우려와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통일독일이 나토와 EC의 틀안에 남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진정한 EC의 정치적 통합에 기여하겠다는 점을 다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오는 3일의 통일에 이어 14일 동독지역에서의 주의회 선거를 실시해 사회주의 국가시절 폐지됐던 5개주 주의회를 다시 만들어 연방정부에 가입하는 한편 오는 12월2일 총선거를 실시해 연방의회(Bundestag)를 구성하는 등 정치일정을 차분히 추진해 나가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말까지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독지역 재건에 국력을 총집중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유력시 되는 헬무트 콜 서독총리가 전승 4개국 수뇌들과 주변국 수뇌들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통일독일이 평화와 자유의 나라가 될 것이며 제4제국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약속을 지켜 나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독일은 EC와 나토,그리고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등 국제협렵체제의 테두리 안에서활동할 것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6번째 상임이사국으로 가입돼 국제적인 중요한 문제의 결정에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상임이사국이 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소련은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위기를 조정하는데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통일독일의 국제적인 부상과 책임분담은 이제 마지막 냉전의 산물로 남아 있는 한반도문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 방향은 긍정적인 쪽일 것이라는 것이 전체적인 평가이다.
  • 통독협정 체결… 전후시대 종지부

    ◎「2+4」회담,통독 나토가입등 현안 타결/동독 소군 94년까지 완전 철수/폴란드 서부국경도 인정키로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동ㆍ서독과 미국ㆍ소련ㆍ영국ㆍ프랑스 등 2차대전 전승 4개국은 12일 통일 독일이 주변국들과 평화를 유지하는 동시에 완전 주권을 보장받는 내용의 이른바 「2+4」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전후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 동서독 양국이 오는 10월3일로 예정된 통일시점을 향해 매진하는 가운데 약 7개월간의 회담을 통해 체결된 이번 「2+4」협정은 이밖에 통일독일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완전 회원국으로 잔류하고 오는 94년까지 현 동독내의 모든 소련군 병력을 완전 철수시키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번 협정체결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한스디트리히 겐셔 서독 외무장관은 이 협정체결과 관련,독일인들은 이제 히틀러가 집권한 지난 1933년 1월 이후 최초로 민주국가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1일 미국 소련 영국 외무장관들과의 회담을 마친뒤 『이같은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된 것에 매우 감격하고 있다』고 기자들에게 밝히고 그러나 이번 협정에서 서독이 떠안게 된 약 75억달러의 재정부담과 통일독일의 완전 주권회복 시기가 내년중으로 미뤄진 것 등 일부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희석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번 협정의 원안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주 서독이 동독에서 철수할 약 37만의 소련군에 대해 주거 및 훈련비를 지원키로 약속한 것은 이번 협정에 대한 소련의 승인을 얻어내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겐셔는 독일통일을 기해 주권의 완전회복을 요구했으나 이를 위해서는 이번 협정에 조인한 관련국 의회의 승인 절차가 필요해 그 시기는 수개월 뒤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겐셔는 4대 전승국들이 의회승인에 앞서 통독 이틀전인 오는 10월1일을 기해 독일에 대한 점령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통일독일은 나토 및 EC(구주공동체) 회원국으로 잔류할 것이나 현 동독영토내에는 소련군이 주둔하는한 나토회원국 군대는 주둔하지 않게 된다. 지난 7월 이같은 문제에 합의한 서독의 콜 총리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또 통일독일이 군대 규모를 37만으로 제한하고 핵,화학,생물학 무기를 포기할 것에 합의함으로써 바르샤바조약기구측에도 협력의 손길을 뻗쳤다. 독일은 또 소련의 요청에 따라 현 동독영토를 비핵지대화해 핵무기 배치를 자제할 계획이다. 이번 협정에는 또 통일독일의 영토를 베를린을 포함한 현 동서독 영토만으로 국한,폴란드의 현 서부국경을 인정할 것임을 밝히는 문안도 포함돼 있다.
  • 「한민족 공동체안」발표 1돌 국제학술회의

    ◎한반도 통일 교류확대ㆍ동질성 회복이 지름길/북방정책ㆍ냉전체제 붕괴로 분위기 성숙/소 영향력 행사가 긴장완화의 최대변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 1주년 기념 통일문제 국제학술회의가 11일부터 2일간 예정으로 한국ㆍ미국ㆍ소련 일본 등 4개국의 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롯데호텔에서 통일원주최로 열렸다. 참석 학자들은 국제적인 냉전체제의 붕괴와 한국의 지속적인 북방정책 추진에 따른 공산권과의 관계개선으로 한반도의 통일분위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고 진단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강대국,특히 소련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학자들은 특히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한간의 관계개선을 촉진하려면 주변 강대국들간에 보다 긴밀한 관계증진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남북한간에는 독일의 통일과정처럼교류확대를 통한 상호 접근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음은 이번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주요 주제발표와 토의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남북한 경제ㆍ사회공동체 모색을 위하여(기조연설 이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한반도의 현실적 여건을 냉철히 감안할 때 국가통일이 당장 이룩되기 어렵다면 남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는 분단의 고통과 불편,생활상의 손실을 줄여 나가는 한편 그 바탕이 되는 민족통일부터라도 추진해야 한다. 즉 통일문제는 정부나 권력체제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민족구성원의 입장에서 접근해야만 한다는 점에 기본적 발상을 두어야 한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남북한의 정부조직을 하나로 합치는 정치적 통일을 이루기 전에 그 원초적 바탕이 되는 민족공동생활권을 이룩하기 위해 경제통합ㆍ사회통합을 먼저 실현해 나가자는데 근본적인 취지가 있는 것이다. 남북한간에 정치적인 요소의 개입없이 상호 이득이 되는 경제교류와 협력을 계속 추진해 간다면 국민생활의 다른 분야도 이같은 정신이 확산,사회적 동질성을 점차 모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상호불신 뿌리깊어 ◇동서화해와 한반도 통일전망(다케시타 히데시 일본방위청 방위연구소 교수)=한반도의 통일저해 요인으로 상호불신,거대한 군사력,전쟁경험 및 상이한 체제 등이 꼽힌다. 또 한국은 「먼저 건설하고 남북체제간 경쟁을 통해 체제의 결말을 짓고 나서 통일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우선 통일문제를 논의하고 이를 위해 통일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며 그 다음에 건설을 하자」는 입장을 견지,통일을 향한 수순에서도 상이한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간부들이 모인 파티에서 북한사람들이 한국의 가요인 「동백아가씨」를 부른 에피소드라든가 중국의 연변 조선족들이 최근 급속하게 탈이데올로기화 하는 현실 등을 볼 때 남북한간의 상호 혐오감과 불신감이 뿌리깊다는 지금까지의 도식도 수정돼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한민족은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에 익숙한 민족이기 때문에 이산가족의 존재는 남북 모두에게 중요한 국내적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남북간에는 체제나 이념을 떠나 정서적으로 뿌리를 같이하기 때문에 통일로의 에너지는 독일보다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한반도 분단의 주요인이었던국제 냉전구조가 와해된 상황에서 「통일」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는 한반도의 주변 강대국도 침묵할 수 밖에 없으며 전쟁을 도발한 독일과는 달리 한반도 통일문제에 주변 강대국의 자문을 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군축 신중한 접근을 ◇군사문제와 한민족 공동체형성(케빈 루이스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한민족 공동체 개념에서 필수조건은 전반적인 실행계획중 군축문제 및 군사전략 차원의 문제에 대한 적절한 취급이다. 즉 군축과 군사부문 협상에서 성급한 접근,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추구하는 모든 부문의 동시전진이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군축은 소망스러운 것이긴 하나 큰 대가를 지불하고 엄청난 모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추구해야할 대상은 못되는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주둔 군사력은 향후 몇년간 더욱 감소될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한반도의 상황발전과는 상관없이 주로 경제적 이유에서 실행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병력이 철수하더라도 잔류한 미군력만 적절히 운용하면 현재와 같은 전쟁억제력을발휘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90년대를 향한 통일정책(김학준 대통령 사회담당보좌역)=한민족 공동체방안의 논점 가운데 논란의 주요 요인은 남북체제연합론의 개념에 있다. 우선 국가연합의 개념은 국가들의 통합,즉 주권을 보유한 영토적 국민국가들의 통합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통합된 국가의 대표들에 의해 제한된 권리를 보유하며 수립되나 이것은 국민이나 각 회원국가의 정부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ㆍ언어ㆍ역사ㆍ문화를 달리해온 국가들 사이에서는 국가연합 창설사례를 볼 수 있지만 남북한처럼 민족적 동질성을 가진 경우에는 국가연합을 채택한 사례가 없다. ○쌍무관계 개선 필요 국가연합의 개념이 「1민족 2국가」의 원리이고 연방제가 「1민족 2지역정부」의 원리라면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채택하고 있는 체제연합의 개념은 「1민족 2체제」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결국 체제연합방안은 현실적으로 남북을 분단시키고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고 한편으로는 통일이라는 공동목표를 달성시키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두개의 다른 체제,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아가서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게 될 교류와 협력의 기초위에서 쌍무관계의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북연합과 경제협력(알렉세이 세미요노프ㆍ소련 과학아카데미 사무총장)=북한의 경제발전은 주체경제전략에 의해 지도돼 왔다. 이것의 기본원리는 자급자족으로써 다양화된 경제체제의 건설을 지향하며 균형성장보다는 성장률을 우선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경제는 전반적인 불균형,천연자원 원자재 전력의 만성적인 부족,산업재원의 정신적ㆍ물질적인 마모,저수준의 기술,불규칙적인 운송체계 등으로 일컬어진다. 게다가 대외경제구조도 자국에 부족한 원자재의 조달과 수입대금지불을 위한 외환획득으로 극히 제한돼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지도자들은 해외의 자본과 첨단기술도입에 필요한 합작부문에 있어서 의존적 태도,일방적으로 수혜만 받으려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심각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남북경제교류 절실 이같은 북한경제의 문제점 때문에 남북간의 경제교류는 상호 우대를 강화하면서 적대감을 해소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 추진돼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남북 경제교류에 제3국을 유치,이데올로기의 완충장치로 담당케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안병준 교수(연세대)=소련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가. ▲미하일 노소브연구원(소련 미ㆍ캐나다연구소)=소련은 이미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포기했기 때문에 남을 설득하거나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독일의 장벽도 소련이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독일인 스스로 제거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케시타 히데시 교수=미국이 한국에 대한 영향력보다는 소련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현실적으로 훨씬 크다고 본다.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을 위해 소련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국제 핵폐기물처리협정에 조인토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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