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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소보 사태 평화해결 실마리/유고,유엔결의 준수 동의

    ◎클린턴 “신뢰성 의구심… 완전항복을”/홀브룩­밀로셰비치 4일간 최종담판 【워싱턴·베오그라드 AP 연합】 공습 직전까지 갔던 코소보사태가 극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적 위협에 굴복,코소보주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7개월에 걸친 탄압을 종식하라는 유엔의 결의를 준수하기로 전격 동의했다고 12일 밤 미국 백악관 관리들이 전했다. 이 관리들은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또한 약속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2,000명의 감시단 배치에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공군력을 이용한 감시단 보호활동과 코소보주의 자치선언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나토는 리처드 홀브룩 특사가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최종담판을 벌일 수 있도록 4일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1199호)내용의 완전 준수를 약속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고에 대한 군사적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코소보주에 평화가 완전 정착될 때까지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할 뜻임을 내비쳤다. 홀브룩 특사는 13일 베오그라드로 가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협상을 재개한다. ◎유고 ‘무릎’ 꿇기까지/낮부터 새벽까지 양보없는 밀고당기기/공습 임박하자 밀료셰비치 힘없이 굴복 새로운 한주를 시작하는 12일 새벽 신유고 수도 베오그라드 주재 미국 대사관에는 숨막히는 긴장이 감돌았다. 밀로셰비치 대통령과의 회담장에서 밤을 꼬박 세우고 돌아온 리처드 홀브룩 미국특사가 밀실에 틀어박혀 세시간째 전화통을 붙들고 백악관과 통화중이었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16개국 대사들이 대 유고 무력사용을 승인하기 위해 브뤼셀로 모여든다. 승인이 떨어지면 미사일 발사장치의 빨간단추는 웨슬리 클라크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 손가락 아래로 들어가게 돼 있다. 백이면 백 만장일치 승인이 확실한 상황. 지난 일주일간 고집쟁이 밀로셰비치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홀브룩은 갖은 애를 써왔다. 주중에 벌써 60여시간에 걸친 세차례 담판이 이어졌다. 노련한 홀브룩도 10일 오후 회담장을 나설 때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제,오늘 아침,지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토와 미국은 격분했다. 남은 것은 전쟁뿐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11일 홀브룩은 회담장으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발길을 옮겼다. 6시간에 걸친 낮 회담이 저녁 식사후 재개돼 이튿날 새벽 한시반에야 끝났다. 와중에 미국은 전투기 70대와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용 전투함 등을 탑재한 대규모 운반함을 지중해에 배치하고 크루즈 미사일 발사용 B­52 폭격기를 영국으로 이동했다. 공습이 곧 시작되는 듯했다. 나토 국가들도 12일 무력사용을 승인,긴박감은 절정에 올랐다. 하지만 상황은 싱겁게 끝났다. 12일 저녁 늦게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밀로셰비치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준수 약속을 공표한 것. 코소보 휴전,2,000명 규모의 국제사찰 등을 모두 받아들이며 밀로셰비치의 버티기는 여기서 끝났다. ◎리처드 홀브룩 미국 특사/외교협상의 명수/월남 평화회담 맹활약 유태계 독일인 이민3세. 뉴욕 태생으로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후 약관 21세에 국무부에 입성,직업외교관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60년대 말 파리 월남 평화회담의 미국 대표단으로 활약했으며 코소보 사태이전 보스니아 사태때도 특사를 역임,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을 정도로 유고문제에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한때 관계에서 물러나 컨설팅 회사의 부사장과 은행의 중역 등을 역임하는 등 야인으로 지냈으나 클린턴 정부 출범후 주 독일대사로 복귀,국무부 차관보에까지 이르렀다. ◎밀로셰비치 신유고 대통령/“발칸의 도살자”/87년부터 쿠데타로 집권 강경한 민족주의자로서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이었을 당시 ‘대세르비아’를 주창하며 코소보주의 자치권을 박탈,코소보 분리독립운동의 불씨를 낳았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 아내와 처가의 후광으로 일찍 권력 핵심에 다가갔으며 87년 옛 공산당내 정치선배들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마침내 현 집권 사회당의 당권을 장악했다. 특히 암투와 계략 등 정치술수에 뛰어나다. 그의 백기투항에도 불구하고 서방세계가 계속압박을 가하는 것은 약속 깨기를 밥먹듯 하는 전력 때문이다. 아내 미리아나 마르코비치는 나치에 항거한 국민적 영웅의 딸이다.
  • 내일 統獨 8돌/‘심리적 통합’ 숙제로

    ◎천문학적 비용 들였지만 옛 동독지역 위화감 가중/슈뢰더에 ‘통일 완결’ 기대 【베를린=南玎鎬 특파원】 오는 3일이면 동독과 서독이 통합된지 만 8년이 된다. 21세기 유럽통합시대의 주도국으로서 전후(戰後)세대인 슈뢰더 총리시대를 맞게된 독일은 통일 이후 어느해 보다 의미있는 기념일을 맞고 있다.특히 동·서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베를린 수도 시대’를 앞두고 있는 독일인들에게 통일 8주년의 의미는 진정한 통일완수를 위한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독일 정부는 동독지역 경제부흥을 위해 1조1,000억마르크(825조원)를 쏟아부었다.아직 동독지역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서독지역의 74.3%에 머물고 실업률도 서독지역의 2배인 18%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두 지역의 틈은 통일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혀졌다.연방 정부는 각종 재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난해까지 동독지역에 51만여개의 기업을 설립했고 32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정치적으로는 통일직후 실시된 총선을 통해 정당들이 자연스레통합,민주주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동서독의 심리적 통합문제는 이른바 ‘통독 후유증’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다.자유와 통일이 모든 것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던 동독지역 주민들의 실망과 심리적 공허감,그리고 경제적으로 피해의식을 가진 서독지역 주민들간의 위화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슈뢰더 총리의 등장에 거는 독일인들의 기대는 바로 양 지역의 화해와 심리적 통합에 모아지고 있다. 슈뢰더는 총선에서 승리한 뒤 지난 89년 동독지역 주민들의 용기를 융화시켜 독일을 번영의 길로 인도하겠다며 일자리 확보 등을 통한 경제번영을 약속했다.또 동독지역 심장부에 있는 베를린으로의 천도도 이지역 주민들을 소외감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한몫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전후세대인 슈뢰더가 이끄는 독일은 경제강국임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의 원죄자로서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굴레를 벗어던질 것이란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강력한 통일국가로서 유럽통합시대를 주도하며 명실상부한 국제사회 강대국 지위로 복귀할 것이란기대다.
  • 직접투자 올해 41억弗… 작년의 절반/외국인투자 유치 이렇게

    ◎국가차원 전략업종 선정/유치 체계적 뒷받침 절실 외국인투자가 주춤해지고 있다. 외자유치는 외환보유고 확충에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고용창출을 가져와 실업률을 낮춰주고 침체된 경기를 살려내는 묘약이다. 선진업체와의 자본제휴는 선진기술과 경영기법을 익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외자유치 여건은 아직 열악하다. 외국인투자 유치실태를 짚어보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 본다. ◇관청 문턱부터 막힌다=세계적 유통전문업체인 프랑스 N사는 지난 6월 한국 공무원의 고압적이고 무사안일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부도난 국내 업체의 부지를 사들여 유통전문점을 세우려던 이 회사 관계자는 구청을 찾았다가 “건폐율을 46%로 하라”는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건물이 들어서는 지역의 특성상 60%의 건폐율이 보장될 수 있는데도 46%로 축소하라니 기가찰 노릇이었다. N사측이 “한국업체에는 60% 건폐율을 인정해 주면서 외국회사에겐 왜 건폐율을 축소하느냐”고 항의하자 구청 담당국장은 “조례에 따라 60%범위에서 탄력적으로조정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N사는 한국정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할 지,사업팀을 철수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했다. 그러나 공기가 벌써 4개월 남짓 지연돼 내년 8월 개점하려던 사업계획은 이미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이 공사는 사업비가 무려 600억원이나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 한국인 설계사는 “잘못이 있다면 구청에 로비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날로 격감하는 외국인투자=올들어 외국인 직접투자는 41억300만달러로 지난해의 59% 수준. 특히 지난 7월까지 쭉 늘다가 8월에는 4억700만달러로 7월보다 67%나 줄었다. 증시에서도 외국인 돈을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 1∼4월에는 외국인의 순매수가 이어져 총 4조5,318억원의 외화가 들어왔다. 그러나 7월에만 306억원이 들어왔을 뿐 5∼6월과 8월에는 외국인이 매도세로 돌아서 무려 4,887억원이 유출됐다. ◇규제가 투자를 가로막는다=최근 미국의 민간 투자기금인 얼라이언스 캐피탈이 한국에 2억달러를 투자,수익증권을 팔겠다고 금융당국에 허가를 신청했다.그러나 당국은 규정상 곤란하다며 허가하지 않았다. 규정을 고치면 되지 않느냐는 질의에 “한가지 규정만 고칠 수 없고 다른 규정까지 개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당국의 얘기였다. 이 기금은 아예 투자를 포기했다. 지난 15일 상의에서 열린 외국인투자촉진법 설명회에서 대구의 광학기계 사업에 투자한 한 독일인은 “공장설립 등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워 외국인은 한국에서 사업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듀퐁은 인천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했다가 환경문제때문에 계획을 취소했다. ◇아직도 부동산 거품이 아직도 있다=미국 록펠러재단의 부동산컨설팅사는 한국에 외국기업을 소개하려 해도 땅 값이 시장가치를 반영하지 않아 투자유치가 어렵다는 뜻을 한 지자체에 전했다. 특히 토지개발공사가 원가개념을 고집해 인접한 공단 부지도 개발시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가 하면 주변 땅 값이 떨어져도 장부가격만 고집,공급가격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말 서울 강남의 한 부동산 컨설팅사는 업무용 빌딩을 사려는 외국인 투자자와 협상을 벌였다. 그런데 세금과 담보내역 등을 꼼꼼하게 살피던 이 외국사는 장부에 평당 관리비가 1만2,000원으로 적혀있는데 실제 2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회사측 설명에 고개를 저었다. ‘관행’이라는 회사측 해명에도 회계장부가 투명하지 않다며 계약을 포기했다. 인천에 있는 O호텔의 소유주는 외국인에게 호텔을 400억원에 팔려다가 거절당해 경매에 내놓았으나 절반 수준인 200억원에 낙찰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협상보다는 값이 싼 법원 경매를 선호한다. 볼보 트럭코리아사가 한남동의 사무용 빌딩을 매입한 것도 법원 경매를 통해서였다. ◇외국인들,여전히 회의적=국민은행의 외국인 주주는 지난 6월까지만 해도 47%였다. 그러나 대동은행을 인수한 뒤로 외국인들이 주식을 처분해 지분이 28.56%로 떨어졌다. 삼성전자도 5월 말 43%이던 외국인 지분이 최근 40%까지 떨어졌다. 외국인들이 우량주식을 내놓는 것은 내수부족으로 경제의 장기불황이 예고되는 탓도 있지만 한국기업과금융의 구조조정이 미흡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뒷받침 절실하다=현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는 외국인투자지원센터(KISC)가 설치돼 운용하고 있다. 지난 4월에 문을 연 뒤로 일본 이노텍사가 경기도 광주에 100만달러를 투자,반도체 검사장비를 생산하는 (주)이노아시아를 설립하는 등 40건 9억8,0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원­스톱 서비스’를 표방한 것과 달리 서류접수 등만 대행,‘원­모어 서비스’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계부처 직원들이 나와 법 규정 상담을 하지만 자구해석에만 그쳐 법 적용이 관계부처간 이견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직면하는 외국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전북 외자유치 정보센터의 관계자는 “1회성 서비스에 치중할 게 아니라 선진국의 경우처럼 어떤 업종에서 외자를 집중적으로 유치할 것인지와 우리 상품의 이미지를 높이는 전략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전자산업에 치중했고 말레이시아는 페낭을 외국인 투자자유지역으로 정해 일본의 전자부품산업을 끌여들였다. 싱가포르는 첨단 하이테크 산업을 겨냥했다. ◎외국인 유치 성공사례 서울 역삼동에 있는 K개발업체는 분당 주상 복합건물 단지를 짓는 데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1억달러의 외자유치를 추진해 성사직전이다. 주택경기가 부진함에도 정확한 원가계산을 부탕으로 연 25%이상되는 사업 수익률을 제시, 동남아 투자자들로부터 흔쾌히 승락을 받았다. 포천에 온천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유럽계 금융중개회사로부터 1,000만달러의 외자유치를 성사시킨 인터랜드의 朴聖泰 상무는 “수익성 있는 프로젝트에는 외국인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사업규모가 크거나 대기업이 참여해야 외자가 유치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 親日의 군상:8/월북무용가 崔承喜(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에 국방헌금 내고 ‘舞踊報國’ 맹세/15세때 日 유학… 귀국후 세계순회공연하며 대활약/1942년 6개월간 만주 돌며 130여회 日軍 위문공연/해방후 前歷 비난 피해 남편과 월북… 北韓정권 참여 □엇갈리는 親日 평가 “예술위해 불가피” “자의적 친일 활동” 근대 이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중에서 ‘스타중의 스타’는 누구일까? 1930년대 당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무용가 崔承喜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崔承喜는 세계적인 무용가라는 찬사를 받은 ‘전설적 예술가’였다. 바로 그 崔承喜가 최근 우리사회에서 ‘부활’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국적의 재일교포 무용수 白香珠씨가 내한공연을 통해 崔承喜의 춤사위를 완벽에 가깝게 복원한데 이어 한달 뒤인 7월에는 그의 이름이 국내 한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崔承喜(1911∼?). 언제적 이름인가. 그의 이름 앞에 ‘월북무용가’란 수식어가 필요할만큼 우리 귀에 낯선 이름 崔承喜. 해방후 남편을 따라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는 반세기 가까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왔다.그가 ‘최모(某)’에서 ‘崔承喜’라는 이름 석자를 되찾은 것도 90년대 들어서다. 암울한 일제하 미국과 유럽·중남미 등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식민지 조선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조선의 꽃’ 崔承喜. 그러나 그는 남한에서는 ‘월북예술가’라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반(反)혁명분자’로 낙인찍혀 남북한 모두에서 외면당해 왔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가 지하창고에 가둬 뒀던 한 천재 예술가를 ‘역사의 양지녘’으로 이끌어내 보자. 崔承喜는 한일병합 이듬해인 1911년 서울 종로에서 양반집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26년 숙명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당초 도쿄음악학교에 진학할 작정이었으나 연령미달로 입학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던중 큰 오빠 崔承一의 권유로 당시 일본 최고의 무용수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돼 그의 문하에 입문했다. 해방후 그에게 쏟아진 ‘친일파’라는 비난은 그의 출생시점과 그가 일본으로 무용공부를 떠나면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열여섯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이시이 문하에서 무용공부를 한 崔承喜는 29년 귀국,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차렸다. 이듬해 2월 그는 경성(京城)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발표회를 가졌는데 첫 공연 치고는 성공작이었다. 이 때 공연한 한국무용 ‘영산춤’ 등은 한국인이 춘 최초의 독자적 춤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이자 당시 와세다대학 재학생이던 安漠(본명 安弼承)과 결혼,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최승희연구가 鄭昞浩(중앙대·무용과) 명예교수는 그들의 결혼배경을 두고 “崔承喜는 공연기획 분야에서 천재적인 安漠의 능력을,安漠은 崔承喜의 인기를 사회주의 건설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해방후 崔承喜의 월북은 그의 남편 安漠의 권유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安漠은 북한정권에서 평양음악학교장·문화선전부 부부장(차관)을 지냈으나 58년 숙청의 비운을 맞았다. 한편 崔承喜는 33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로 들어갔다. 남편 安漠이 ‘조선독립음모사건’으로 구속되자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곤란까지 겹쳐 더이상 국내에서는 활동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일본행은 의외로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쿄로 돌아온지 두 달만에 그는 한 잡지사 주최 여류무용대회에서 ‘신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 때 그가 춘 춤은 ‘에하라 노아라’라는 전통 조선무용으로 술에 취한 자기 아버지의 굿거리 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1934년 도쿄에서 개최된 그의 제1회 신작발표회를 통해 그는 명실공히 ‘톱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는 “崔여사가 추는 조선무용을 보면 일본의 서양무용가들에게 민족의 전통에 뿌리박으라는 강력한 가르침을 볼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인 최초의 무용가’라는 점이 의외로 일본사회를 강타하여 그에게 광고모델 요청이 쇄도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그의 인기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마침내 해외공연을 추진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38년 2월 그는미국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시작으로 해외공연길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파리 공연에 이어 스위스·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 유럽공연을 마쳤다. 이무렵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40년 브라질 공연을 시작으로 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칠레·멕시코 등 중남미지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40년말 2년여 해외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오자 일제 당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인기를 군국주의 전쟁에 활용할 속셈이었다. 결국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일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崔承喜 부부는 궁성(宮城),메이지신궁(神宮),야스쿠니신사(神社)을 참배하고는 ‘무용보국(報國)’을 맹세하였다.(‘報知新聞’40년 12월7일) 며칠 뒤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구미(歐美)공연 때 마음이 든든한 것은 위대한 일본의 국력 덕분이었는데 새삼 조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졌다”며 친일성향을 드러냈다. 그의 친일과 관련,빼놓을 수 없는 일화 한토막.아사히신문 41년 2월5일자에는 ‘일독(日獨)헌금 교환,독일인 기사와 崔承喜씨’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일본회사에 근무하던 한 독일인 기사가 귀국하면서 여비의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써달라고 이 신문사에 기탁한 일이 있은 후 이번에는 유럽공연을 다녀온 崔承喜가 두 차례의 독일공연에서 생긴 수입금을 독일육군병원에 헌금하려고 가져왔다는 것. 이 무렵 崔承喜는 일본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또 춤을 통해서도 그의 친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춤의 비중이 점차 증가한데다 춤동작에서도 일본 전통춤인 ‘노(能)’가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공연 수익금의 일부,혹은 전부를 국방헌금으로 바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부터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일본군부와 조선군사령부 등에 국방헌금을 바쳤다. 41년말 ‘대동아전쟁’(소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예술가들까지도 전선(戰線)으로 내몰았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42년 2월초 그는 일본군 위문공연차 만주·중국으로 향했다. 8월까지 6개월 동안에 무려 130여 차례의 위문공연을 하였는데 당시 그의신분은 일본 육해공군 촉탁이었다. 해방때까지 그의 일본군 위문공연은 계속됐다.그는 상하이 주둔 한 일본군 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하다가 일본패망 소식을 접했다. 해방이 되자 그에게는 중국 현지에서부터 ‘친일파’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듬해 5월 귀국해 보니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일전력(前歷) 때문에 그는 남한 땅에서는 설 땅이 없었다. 결국 그는 귀국한지 두 달도 채 안돼 남편을 따라 월북하였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공과(功過)가 교차된 崔承喜의 일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에는 변호와 비판이 엇갈리기 마련이다. 무용학자 鄭昞浩 교수는 崔承喜의 친일행적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는 예술을 위해 친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가 한국무용사에 남긴 업적에 무게를 실어준다. 반면 金鍾旭(서지연구가·60)씨는 “崔承喜는 도일 직후부터 본명 대신 일본식 이름(崔承子,사이쇼코)으로 활동한 열성 친일파”라며 그의 친일성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전성기 시절 ‘반도의 무희(舞姬)’‘민족의 꽃’으로 불리며 조선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崔承喜. 식민지시대와 분단기를 거치면서 그에게 씌워진 ‘친일(親日),친공(親共)’의 굴레가 ‘역사의 화해’를 볼 날은 과연 언제일까. ◎崔承喜의 知人들/동서양 명사들과 골고루 교분/美 소설가 존 스타인벡/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화가 피카소·시인 장콕토/周恩來 등과도 친교 전성기 당시 崔承喜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예술인들과 교류를 맺고 있었다. 우선 일본 체류시절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와 민예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등 당대 일본 최고의 지성인들이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소설가 존 스타인백·루이스 레에나·존 그로프,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소설가 로맹 롤랑·미셀 지몽,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와 친교를 맺고 있었다. 또 중국인으로는 周恩來 총리,무용가 梅蘭芳 등이그의 후원자이자 벗이었다. 국내에서는 呂運亨·宋鎭禹 등 민족진영 인사와 남편의 동지이기도 한 朴英熙·韓雪野 등 카프계열 작가들이 그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 파리공연 때 그는 피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은 적이 있다.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安씨집안(시댁)과 崔씨집안(친정)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 무궁화도 약재/농진청,약리작용 소개

    ◎피부노화방지 원료 등 신물질 50종 추출 무궁화를 아십니까.독일인들이 차(茶)로 달여 마시고,일본인 중국인들이 무좀약으로 만들어 쓰는 무궁화를 아십니까.이 무궁화에 노화를 막는 물질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아십니까.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아 농촌진흥청이 14일 무궁화의 약리작용을 소개하는 이색자료를 냈다. 농촌진흥청은 생명공학연구소 兪益東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최근 50여종의 신기능 생리활성물질을 무궁화나무에서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신물질들은 실험결과 1∼5ppm의 낮은 농도에서 유해산소를 제거,노화작용을 조절하는 항산화 활성물질들로,아미노산 6개로 구성된 펩타이드계 화합물 ‘히비스펩틴’ 등이다.항산화활성물질은 건강식품이나 피부노화방지 화장품 등의 원료로 쓰인다. 兪박사는 “인비트로 실험(세포배양실험)에서는 이들 물질이 배양된 암세포를 죽이는 효과까지 나타났다”고 말했다.동의보감에는 무궁화의 줄기나 껍질을 차로 달여 마시면 이질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 한국외국어대 양인석 교수 영어로 쓴 ‘Welcome‘

    ◎유머 그 웃음의 철학/말초적인 웃음보다 ‘가마솥 웃음’에 주목 19세기 영국의 여성소설가인 조지 엘리엇은 “프랑스인들은 유머 없는 위트를 즐기고,독일인들은 위트 없는 유머를 즐기지만,영국인들은 위트를 가미한 유머를 즐긴다”고 말했다.유머감각을 지닌 영국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괴짜(original)에게 조소를 보내기보다는 오히려 찬탄을 보낸다.18세기에 ‘유머리스트’라는 말은 일종의 아첨으로 통했다.그러나 한국인은 유머에 익숙하지 않다.‘체면’을 중시해온 유교문화 탓일까. 한국외국어대 양인석 교수(65·영어과)가 유머의 사회·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한 영어로 쓴 유머집 ‘Welcome Aboard the Humor Pleasure Boat’(한국문화사)를 최근 펴냈다. 위트와 유머,그리고 익살은 모두 희극적인 것에 속한다.그러나 이 셋은 엄연히 구분된다.위트는 지적이고 귀족적이며 추상적인 관념들간의 돌연한 대조에서 생긴다.반면 유머는 정서적이고 중산계급적이며,정상적인 인간의 성격과 구체적인 인물들의 괴상한 성격 또는 상황을 대조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에 비해 익살은 하류 계급적이며,오직 요란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유머와 위트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이완과 ‘재미’의 원천이라고 그의 저서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지적하고 있다. 양교수는 이 책에서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냄비 웃음’보다는 뜸이 들어야 터지는 ‘가마솥 웃음’을 이끌어내는 유머에 주목한다.그래서 간혹 왜그것이 유머가 되는지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있다.우리 구전민요‘아리랑’에 관한 항목이 그런 예다.‘아리랑’을 운명공동체를 강조한 노래로 보는 그는 아리랑을 유토피아로,‘아라리’를 좋은 장소를 일컫는 상징어로 해석한다. 논리를 초월하는 유머를 논리의 성긴 그물로 잡으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하지만 유머는 어떤 대상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즉 생각하는 사람의 전유물인지도 모른다.18세기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이“세상은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요,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다.
  • 87년 창설… 당원 1만5천여명/극우 성향 獨 민족당

    ◎외국인 추방 등 극단 민족주의 표방 【파리=金柄憲 특파원】 극우정당으로서 독일 선거 사상 처음으로 옛 동독지역의 연방주의회에 진출,충격을 안겨준 독일민족당(DVU)은 독일내 극단적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독일 정보기관에 의해 ‘우파 극단세력’으로 공식 분류된 정당답게 이번 작센­안할트주 선거에서도 ‘외국인 추방’과 ‘독일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정운용’ 등을 주창했다. DVU는 이번 선거 전까지도 일반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정당이었다.87년 독일의 자유난민법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된 이래 16개 연방주 가운데 한 곳에서도 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정보기관은 전국의 DVU의 당원수를 1만5천명으로 추산. 그러나 DVU는 이번에 백만장자 당수인 게르하르트 프라이의 대대적 재정지원과 22%가 넘는 선거구의 실업률을 활용함으로써 30세 이하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 獨 정계 유로화 가입 지지는 國益 부합(해외사설)

    독일 마르크화가 선을 보인지 50년이 흘렀다.민주·번영·안정이라는 상징과 의미를 담은채 오늘에 이르고 있는 마르크화가 유럽 단일화폐인 유로화로 대체되는데 대해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아직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헬무트 콜 총리는 유로화는 마르크화만큼 훌륭하고도 안정적인 화폐단위가 될 것이며,독일의 상대국가들도 유로화를 통해 마르크화의 문화를 잘 받아들일 것이라고 꾸준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인들의 정서는 지난 23일 독일의회에서 99년 1월부터 출범하는 유로화에 대한 독일의 가입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여당인 기민당과 기사당,그리고 자민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사민당과 녹색당도 절대다수가 유로화 가입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프랑스 의회의 치졸했던 광경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는 9월27일 있을 독일의 연방선거는 이미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한 상황이다.앞으로 4년간 권력을 잡기 위한 여야의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그러나 사민당이나 녹색당의 지도자들은 유로화가입의 찬성이 콜 총리에 대한찬성처럼 비쳐질 우려가 있음에도 프랑스의 공화국연합처럼 기권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그들은 국가의 영광과 이익을 위해 찬성표를 던졌으며,유럽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의 독일의 태도에 충실했다.단지 동독의 위기를 악용하고 있는 옛 동독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의 몇몇 의원들만 반대했을 뿐이다. 차기 총리 자리를 놓고 맞붙은 콜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민당총리후보는 유로화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들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양측 모두 유럽단일화폐 가입은 세계화로 인한 경제전쟁에서 독일과 독일국민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가장 훌륭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슈뢰더 후보는 유로화를 위해 자신들의 주장을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모든 의원들도 유로화의 가입은 통일된 유럽에서 독일의 위치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韓方’ 닮은 독일 자연치료학/쉬케 박사 이색강연

    ◎“안구의 홍채가 모든 장기 대표 침술로 류머티스·피부염 치료 혓바닥 보고 소화기이상 진단” 지난 25일 서울 중구 소공동 프레지던트호텔에서는 이색적인 의학강연이 열렸다. 세계의학저널(02­616­3456)주최로 열린 이날 강연은 유럽 전통의학의 하나인 독일 자연치료법에 관한 것.한의사를 비롯,일반인들이 대거 참석,요즘 부쩍 높아지고 있는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강연은 에스페란토로 진행됐으며,鄭元朝 박사(한국에스페란토협회회장)가 통역했다. 자연치료는 중세 수도원에서 비롯된 약물치료학에서 발전해 온 것으로 지금 독일에만 1만명 이상의 자연치료학자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자연치료학은 서양의학과 달리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도 함께 치료한다는 것.연자로 나선 자연치료학자 하랄트 쉬케박사는 이날 독일 자연치료학의 핵심인 홍채학,서양침술,설진(舌診)법에 대해 설명했다. 주요내용을 요약한다. ▷홍채학◁ 안구의 홍채안에는 인체의 장기(贓器)에 해당하는 조직이 있다는개념에서 출발한다. 오른쪽눈동자는 오른쪽 장기를,왼쪽 눈동자는 왼쪽 장기를 대표한다고 본다.기관지,간,비뇨기등의 이상을 홍채를 통해 알수 있다는것. 예를 들어 ‘위염을 앓고 있다’면 서양의학에서처럼 위의 염증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왜 걸렸느냐를 중요시 한다.홍채를 통해 어떤 장기가 약해졌느냐를 본 뒤 원인을 발견,다양한 치료를 하게 된다.예컨대 이 방법으로보면 독일인에게 흔한 축농증의 한 원인은 오른쪽 발이 차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적 관점에서는 대단히 어리석어 보이지만 차가워진 오른쪽 발을 따뜻하게 했더니 축농증이 실제로 많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양침술◁ 약150여년전 독일의 발명가 카를 바운샤이트가 만든 기계를 이용한 침술.그의 이름을 따서 ‘바운샤이트침술’이라고도 한다.한방침술과도 일맥상통한다. 33개의 바늘로 만든 기계로 피부를 1㎜정도 찔러 치료하는 것.바늘 끝에는 약초기름을 바른다. 피가 나오지 않을 정도의 자극만 주는 것으로,맞고 나면피부가 빨갛게 변한다.류머티스,피부염 등에 효과가 있다. 만성편도선염환자를 치료할 때는 침으로 찌르고 수건으로 덮어두면 뜨거운 느낌이 일주일 정도 지속되다가 치료된다.피부염의 경우,문제가 생긴 바로옆 부위에 침을 놓아 치료한다. ▷설진(舌診)◁ 말 그대로 혀를 보고 병을 진단하는것.독일 자연치료학자들은 혓바닥이 소화기를 대표한다고 본다.우리 한방에서도 쓰고 있는 방법이다. 혓바닥의 색깔,백태 유무,패인 곳,부었는지와 함께 혓바닥 밑의 정맥 등을 관찰한다.예를 들어 혓바닥의 안쪽 부분은 항문의 이상을 나타낸다.위,간,장 등의 질환을 이 방법으로 진단할 수 있다.
  • 존재와 시간/마르틴 하이데거 지음(화제의 책)

    ◎독 실존철학자 하이데거 대표작 20세기 독일의 실존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가 38세되던 해인 1927년에 펴낸 대표적 저서 ‘존재와 시간’을 완역.독일인들은 흔히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두고 다음과 같은 농담을 한다.“‘존재와 시간’이 왜 독일어로 번역되지 않고 있는냐”는 것이다.‘존재와 시간’이 독일어로 쓰여졌지만 독일인들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책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이 책은 정신과 외계를 확연하게 구분하는 극단적인 이원론의 데카르트주의와 서구 형이상학의 일면적이고 일방적인 이성중심 논리에 반기를 든다.그리고 가장 현세적이고 일상적이며 평범한 인간이 이 세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방식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하이데거는 전통철학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가운데 전혀 다른 개념틀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서양철학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알며,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알며,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인식론이 전통적으로 중심적지위를 차지해 왔다.그러나 이 책에서 하이데거는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화두로 택한다.이 책은 인간 ‘현존재(Dasein)’의 ‘세계­안에­있음’을 체계적으로 분석,존재가 시간적으로 어떻게 인간에게 주어지며 인간이 어떻게 이에 응답하는가를 드러내 보인다.‘존재와 시간’의 관계에 주목하는 하이데거는 존재는 시간속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한다.그런 만큼 모든 시대와 문화권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또는 ‘존재의 논리’란 없다는 것이다.역자인 외국어대 이기상 교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한마디로 삶의 문법을 과학의 논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한다.이기상 옮김 까치 2만5천원.
  •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이삼성 지음(화제의 책)

    ◎사회정치적 제도 문제로 파악한 전쟁 전쟁의 폭력과 야만을 둘러싼 문제들을 중심으로 20세기 문명을 해부한 연구서.도서출판 한길사가 국내 학계의 인문학 연구성과를 집대성하기 위해 기획한 ‘한길신인문총서’의 첫권으로 나왔다.미국의 대외정책 등에 관해 왕성한 연구·저작활동을 보여온 지은이(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이 책에서 전쟁을 우주론적·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역사와 사회정치적 제도의 문제로 파악한다.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운명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과 집단이 선택한 일련의 역사적 결과라는 것이다. 전쟁이 단순한 힘과 힘의 대결에 그치지 않고 제노사이드,즉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계획적인 집단 대학살의 비극을 불러오게 된 데는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설명.여기서기억의 정치란 집단적인 기억의 망각과 왜곡,부인,조작의 정치를 뜻한다.정치적 신화의 창조 같은 것이 그에 속한다.이교수는 2차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대학살)에서 보스니아와 르완다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제노사이드의 비극은 인간의 집단적 역사의식이 왜곡,은폐,과장,축소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나아가 독일인들이 2차세계대전 이후 나치즘의 시대를 ‘히틀러의 시대’로 묘사하는 것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히틀러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려는 집단적인 기억의 정치가 작용한 탓이라는 미국의 정치학자 허버트 허시의 비판도 소개한다.이 책에서 다루는 또 하나의 주요 주제는 핵과 국제정치질서의 문제다.도구적 이성이 합리적 이성에 의해 통제되지 못한 상태에서 핵문제가 여전히 강대국의 논리로 이해되거나 약소국 혹은 일부 반미 ‘일탈국가’의 문제로만 인식돼서는 안된다는 게 이교수의 지적이다.한길사 2만원.
  • 이 케이블카 추락…20명 사망/저공훈련 미군정찰기가 지지선 끊어

    【트렌토(이탈리아)·워싱턴 AP AFP 연합】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테산의 스키장에서 3일 저공훈련중이던 미군 정찰기가 케이블카 지지선을 끊는 사고를 일으켜 케이블카가 추락,최소한 20명이 사망했다. 구조요원들은 독일인 7명,헝가리인과 폴란드인이 각각 2명을 포함해 20명의 사망자가 인근 트렌토시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사고를 낸 EA­6B 프라울러기는 아비아노 소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기지의 보스니아 평화 감시를 위한 정찰임무를 지원키 위해 파견돼 저공훈련을 하던 중 80m 상공에서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운항중이던 다른 케이블카 1대가 공중에 매달린 채 추락 위험에 직면해 있었으나 구조요원들이 헬기를 동원해 땅으로 안전히 유도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사고기는 꼬리부분에 경미한 손상을 입은 채 아비아노기지로 무사히 귀환했다.아비아노기지 사령관 티머시 페프 준장은 사고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모든 미군기의 저공비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 브란트 전 독 총리 소재로 한 오페라 개막

    ◎“나치만행 원죄 우리 스스로 씻자”/70년대 총리재직때 파 게토방문 헌화장면서 영감/최근 부정적인 영웅주의 시각과 국민화해 초점 빌리 브란트 전 독일총리를 소재로,나치 만행에 대한 독일인들의 의식을 새롭게 일깨우는 오페라 ‘바르샤바 굴복’이 개막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지난 주말 도르트문트에서 막을 올린 이 오페라는 브란트 전 총리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내용의 핵심은 나치 만행으로 빚어진 독일인들의 업보를 씻어내고자 하는 그의 몸부림에 초점을 맞췄다. 오페라를 창작한 도르트문트 오페라 하우스의 존 듀는 70년 당시 총리였던 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를 방문,헌화하는 자리에서 벌였던 조그만 제스처에서 영감을 얻었다.듀는 27년전 브란트의 그같은 제스처와 뒤이은 일순간의 침묵을 마음속에 감동으로 품어오다 이번에 오페라로 만들어 냈다. 음악과 노래를 꾸며진 2시간 짜리 이 오페라의 노래는 동독 출신 게르하르트 로젠펠트가 작곡했으며 대본은 브란트가 바르샤바를 방문한지 3일후 태어난 필립 코흐하임이 만들었다.오페라를 구상한 듀는 “독일인들은 최근의 역사로 인해 영웅주의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전제한 뒤 작품 의도가 “브란트 같은 과거의 모범적인 인물과 독일인들을 화해시키려는데 있다”고 밝혔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입안했으며 그의 가장 절친한 조언자였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에곤 바르(75)는 개막 첫날 이 오페라를 감상한뒤 “빌리(브란트)는 동독 출신 작곡가가 이 작품을 만든 사실에 대해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브란트가 게토에서 무릎을 꿇은뒤 뒤따랐던 침묵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면서 작품이 당시 상황을 극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오페라는 마치 브란트가 게토의 기념비 앞에서 무너지는 상황을 연상시키듯 유태인 배지(스타스 앤드 데이비드 배지)를 단 일단의 유태인들이 무대로 뛰어나와 비오듯 쏟아지는 총탄앞에 스러지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 제2부 경쟁력을 키우자­전문가 좌담(G7으로 가는 길:83·끝)

    ◎“고비용­저효율 혁파 구조전환 서둘러야”/“금리·임금·물류비 등 5고추방 정책 펼때”/재벌 인력·자금 과점… 중기에 배분정책 필요/산­학협동 차원 ‘교수 창업휴식제’고려 할때/제품·건설 ‘완벽 제일’로 국가이미지 제고를/작고 강한정부 권력 최소화­서비스 극대화서 □참석자 ·백만기 통산부 기술품질국장 ·정해수 무공 무역진흥본부장 ·박병엽 팬택사장 서울신문의 사회발전 캠페인 ‘G7으로 가는 길’이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1부 ‘창의력을 키우자’는 우리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인 지를 짚어보고 우리의 교육과 외국의 교육을 비교,앞으로 나아갈 바를 제시했습니다.2부 ‘경쟁력을 키우자’는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빠진 우리 경제가 새로운 경쟁력 창출의 계기를 모색할 수 있도록 국내외 초일류 경쟁력의 현장을 찾아 생생히 보도했습니다.서울신문은 각계 전문가 좌담을 마련,경쟁력을 가로막는 요인이 무엇이며 그 해소방안을 알아보고 이를 위해 국민·기업·정부가 각자 해야할 과제를 짚어봤습니다.〈편집자주〉 ▲백만기 국장=우리 경제의 경쟁력 약화원인부터 살펴보면 고금리 고임금 그리고 고물류비용에 고지대 고규제등 5가지의 원인이 더해져 나타난 결과라고 말합니다.그러나 우리경제에 고비용 저효율이 나타난 원인은 우리경제가 유연성과 탄력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즉 우리산업이 중화학공업위주에서 첨단산업으로 옮겨가면서 거기에 맞는 구조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즉 비용을 걱정하다보면 효율이 떨어지고 반대로 효율에 촛점을 맞추다보면 비용이 더 들어가는 그런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산업구조 측면에서 우리경제는 대기업위주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변화대응에 느립니다.한국은 현재 요소비용을 낮추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이므로 이 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원가의 물류비 비중 한국 16·대만 7%선 ▲정해수본부장=저는 미국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살펴보겠습니다.우선 1인당 GNP를 기준으로 본 임금수준이 미국은 1.08배,대만은 1.2배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1.8배로 훨씬 높습니다.금리에 있어서도 미국은 6%선을 보이고 대만이 7%선인데 비해 한국은 13∼14%를 보여 갑절수준입니다.아울러 물류비용에서도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물류비용이 한국은 16%인데 비해 미국과 대만이 7%선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이처럼 요소비용 자체가 한국이 떨어져있는 상태에서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박병엽 사장=저는 자원배분문제와 교육에 기인한 문화적 측면에서 얘기하겠습니다.한국의 30대 재벌기업은 우리나라의 자원을 과점하고 있습니다.즉 인력과 자금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집중화가 효율적인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기업이 가져야할 자원은 모든 기업에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데 있습니다.이 때문에 사회정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따라서 국가는 일정부분 기업에 대해 합리적인 간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국가가 간여해 위험(RISK)을 관리하는 것이 사회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봅니다.대기업은 덩치는 크지만 함몰하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한국의 근로자에게 임금을 더 줘도 된다고 봅니다.대신 일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한국의 근로자들은 받은 만큼 부가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적정한 임금을 받으면서 일을 통해 보람을 찾는 ‘멋진 삶’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이것은 교육적인 문제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여성 고급두뇌 사장 선진국방안 검토를 ▲백=그렇다면 이같은 문제점의 해결 방안에 대해 살펴봅시다.고비용은 낮추고 효율은 높이는 방안이 병행돼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완화가 더욱 추진돼야 하며 금융분야에서 국제시장 가격으로의 근접이 필요합니다.기업단위에서도 높은 지가를 피하기 위해 해외 공장설립운영등과 같은 방안도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인력문제에서 한국은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너무 낮습니다.고급두뇌들이 사장되고 있습니다.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여성근로자들이 일주일을 반씩 나눠 일하는 선진국의 방안도 검토해볼수 있을 것입니다. 또 교육제도가 시장경제측면에 맞춰 고쳐질 필요가 있습니다.예를 들어 한국의 공과대학에서 공학도는 단순히 미·적분을 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이는 문제 해결능력 측면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미국의 MIT에서는 대학 커리큘럼을 과감히 바꿔 대학 저학년때부터 로보트를 만드는 일을 시킵니다.로보트를 만들려면 미·적분은 기본적으로 알아야하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흥미를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키워지는 것입니다.이같은 응용력을 갖춘 인력을 사회에 배출할 때 그 사회의 인력수준은 분명 차이가 날 것입니다.또 기업 자체내에서도 기술과 경영혁신이 필요합니다.기업의 기술은 디자인,품질,정보화가 종합적으로 어울어진 것이어야 합니다.한국에서의 경공업은 고비용구조때문에 안된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습니다.그러나 문구를 만드는 M기업의 경우는 디자인의 개발로 미·일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디자인 분야 인력만 100명이 넘습니다.이는 전통적인 분야에서도 승산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정보화도 중요한 요인입니다.미국의 경제가 살아나는 이유는 정보화가 완성단계에 있기 때문입니다.이 단계에서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효율이 높아집니다.정보화 초기에는 돈이 더 듭니다.그러나 완성단계에 가면 효율은 지수적으로 늘어납니다.단순히 컴퓨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리엔지니어링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박=전통적 산업이든 첨단산업이든 기술은 필요합니다.한국은 요소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G­7국가들처럼 많지는 않습니다.그러나 대학에는 관련분야의 학위를 가진 고급인력이 모여있습니다.그들은 활성화되지 않은채 사장되고 있습니다.자신도 기술현장에 뛰어드는 것을 원치않습니다.이들 인력을 활용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합니다.단순히 백묵을 잡고 강단에 선다고 해서 기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5년을 강의한 뒤에 3년은 산업현장에서 연구하고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식의 교육시스템이 마련되야 합니다.대학강단은 포화상태임에도 산업현장에는 사람이 없는 모순은 분명 해결돼야 합니다.대학교수들의 창업지원,창업휴직제 등의 방안도 고려해볼 사항이라고 봅니다. ▲정=88년에 저는 홍콩에서 근무했습니다.당시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모든 사람들이 한국의 발전상에 희망을 보였지만 홍콩신문사의 한 편집장은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을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적 있습니다.이유는 한국민들은 ‘FINISH’는 있지만 ‘COMPLETE’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일을 끝내도 완벽한 처리가 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이후 한국에서는 성수대교 붕괴,삼풍상가 붕괴 등의 부실공사에 따른 사고가 터져 이 말을 새삼스레 떠올렸습니다. 완벽성을 추구하는 의식구조가 필요합니다.그저 대충하고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목표지상주의는 위험합니다.그 결과 80년대 중반 미국시장에서 한국상품의 비율은 5%선이었으나 지금은 2.6%로 떨어졌습니다.우리나라 상품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국가이미지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선진국 소비자일수록 국가이미지를 통해 상품을 선택합니다.과거 ‘경제동물’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일본은 국가이미지 개선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하고 있습니다.우리도 일본만큼 투자할 수는 없어도 국가이미지 관리에 지금보다 더 신경써야 합니다. ○좋은제품 생산에근로자 자긍심을 ▲박=우리사회는 편향적 시각이 많습니다.잘 안될 때에는 모든 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그러나 우리도 판매나 금융측면은 괜찮다고 봅니다.문제는 기업인들이 모티브가 없다는데 있습니다.가치관의 문제라고 봅니다.일본이나 독일인들은 소득만이 목표가 아닙니다.그들은 자기가 일을 해 어떤 제품을 만들었다는데 상당한 자긍심을 갖습니다.얼마전 독일 로젠하임에 갔을때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기업내에 그 고장에서 나서 자라 그 곳의 대학을 졸업,상당한 기술수준을 가진 기술자가 무려 100명이 넘었습니다.그리고 반 이상이 40∼50대였습니다.이들은 관리직만을 차고 앉아 불평만 하는 그런 자세가 아니었습니다.자부심과 함께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이들의 태도가 부러웠습니다.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기업은 판로를 개척해달라,자금을 조달해 달라는 등의 요구를 정부에 합니다. 나는 판로가 없고 자금이 없는 기업은 기업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우리는 기술은 있는데 판로와 자금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기술은 기술 그 자체와 금융,마케팅,인력구조등이 연관된 개념입니다.OECD 나라들에서는 자기 일만하면 되는 분위기라고 보면 한국은 정부기관이나 금융쪽에 생존에 필요한 유대관계를 평소 정기적으로 맺어놔야 합니다.자기일에 매달릴 시간이 선진국은 100이라면 한국은 50에도 못미칩니다.관리해야할 부가적인 일이 너무 많습니다. ▲백=옳은 말입니다.전에 장관을 수행해 한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기업 정문에 ‘…지정 기업’,‘…지정 기업’ 등 관련 부서만해도 수없이 많았습니다.이런것은 굳이 규제는 아니더라도 ‘CONTACT POINT(접촉점)’가 많다는 것을 말합니다.평소 민간기업은 여러 관련 관청과 좋은 유대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말을 여기서 실감했습니다.기업은 정부가 없어도 잘 해나가겠다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지만 정부도 과감히 혁신,이같은 접촉점을 줄여나가야 합니다.이것이 비효율을 낮추는 길입니다. 작고 강한 정부는 권력을 최소화하고 서비스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특허청의 예를 들면 심사관의 부족으로 특허하나 심사받는데무려 4년이 걸립니다.그런데 심사관을 늘리려면 총무처에 의뢰,정부차원에서 논의를 거치는 등 절차가 복잡합니다.공무원의 서비스자세가 이래서는 안됩니다.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정리=최철호 기자〉
  • 독일이 부러워한 한국/김종환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굄돌)

    우리에게 독일은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나라로 인식되어 있다.그렇다면 독일인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실 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많은 사고와 북한과의 대치 상황 등으로 인하여 우리 국가이미지가 그리 좋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독일 방문길에 올랐다. KAIST 로봇축구팀이 시범경기를 위하여 독일 브레멘에 도착한 것은 지난 9월 중순이었다.유럽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첨단 로봇에 관한 국제학회가 브레멘의 응용시스템기술원에서 열렸으며 이 학회에서 우리 로봇축구팀을 초청하였던 것이다.이를 계기로 MiroSot유럽투어를 기획하여 이미 스페인·오스트리아·이탈리아에서 각 언론사의 열띤 취재속에 시범경기를 성황리에 마쳤으나,이곳에서의 반응은 어떠할지 매우 궁금하였다. 이 학회에서 주선한 브레멘 TV방송국의 취재진은 상오 내내 취재를 하였는데 그들은 특수촬영을 위해 초소형 카메라 장비를 동원하였으며,여러 각도에서 축구로봇의 묘기를 담기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로봇 축구를 처음 접한 취재진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신기해 하였다.우리는 그 당시 이미 미주 지역을 포함하여 8개국을 방문하였는데 이처럼 조직적이고 꼼꼼히 취재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과연 독일인은 독일인이구나라고 느끼며,매사에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것이 오늘날의 독일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부러웠다.‘우리 한국인도 충분히 능력이 있는데…우리도 조금만 더 잘하면 되는데…’등의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이어 하오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국제 프로그램 제작진의 요청에 따라 한시간짜리 로봇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원숙한 초로의 사회자 진행으로 취재가 잘 마무리되었지만 상오의 독일 제작진하고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학회 진행하느라 바쁜 가운데 이런 취재를 주선해준 응용시스템기술원의 키로히로프 박사와 하스 박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독일인에 대한 평소의 생각 및 브레멘 TV방송국의 조직적인 취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이 자리에서 그들은 한국을 첨단 전자기술이 매우 발달된 나라로 알고,한국인은 조직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뜻밖에도 그들은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 폴러스 주한독일대사 ‘독 통일 경험과 과제’강연 요지

    ◎급속 통합에 체제적응·재산문제 대두/통일비용은 제한적이고 견딜만한 수준 한국외교협회(회장 박동진)는 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클라우스 폴러스 주한 독일대사 초청 오찬강연회를 가졌다.다음은 폴러스대사의 ‘독일통일의 경험과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라는 주제의 강연 요지이다. 독일은 통일이후 이 통합과 관련된 정치적,법적,경제적 문제들을 직면하게 됐다.이 가운데 몇가지를 들면,첫째 동독제도의 존폐여부가 있다.우리가 공산주의 법과 제도를 따라야만 하는가.통일이후 독일의 통합된 법,제도가 생겨나기전 1천7백만명의 동독인이 자신들이 모르는 법적,사회적 체계속에서 갑자기 살아나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따라서 서독관리들의 동독유입은 피할수 없는 것이었다.그러나 많은 동독인들은 서독에서 파견된 인사들에 의해 통치받는 것을 싫어했다.공산주의 경찰과 정보기관,군대 등이 물론 많았다.따라서 당시 독일은 균형정책으로 동독 공산체제에 직접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과 조직을 포섭함으로써 타협을 이루려 노력했다. ○통일 후회하는국민 없어 두번째는 동독내 부동산 등 재산문제가 있다.이 문제는 오랜 토론끝에 49년 이후 재산을 몰수당한뒤 대부분 서독에 거주하고 있던 원소유주에게 반환하기로 결정됐다.그러나 이는 끝없는 법적,기술적,나아가 도덕적 문제까지 야기했다. 세번째는 자유기업이 문제가 됐다.90년 이후 동독내 사회간접자본은 대부분 현대화됐다.그러나 자유시장경제는 여전히 생소했고 동독인들에게는 어려운 문제였다.당시 동독의 실업률은 서독의 두배였고,수출액은 서독의 10분의1 수준이었다. 지금 언급한 문제점들을 독일인들의 통일이후 불평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옛 동독인들을 포함해 독일인 어느 누구도 통일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독일의 재통일은 옛 동독인들과 함께 자유와 위엄속에서 살 수 있다는데 진정 의미가 있다. 통일에 따른 서독의 재정적 부담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다.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부담은 제한적이고 견딜만한 문제라는 것이다.통일비용은 통일이전 우리가 부담해야했던 분단관련 예산 가운데서 20%정도 차감계산됐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또 통일이후 간접자본의 투자들은 적당한 시기에 그 효용을 드러낼 것이다.독일의 경우 두 체제의 통합은 매우 빠른 시일안에 급속도로 추진됐다.우리가 두 체제의 통합을 좀 더 느린 속도로 진행했다면 그 비용과 경제적 혼란은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과거 50년대 서독은 냉전의 산물인 홀스타인원칙을 적용했다.이는 어떤 나라건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는 상대국과는 외교적 관계를 끊는 것이었다.그러나 60년대 이후 동방정책을 채택하고 홀스타인원칙을 포기하면서 우리의 동맹국들도 동독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됐다.이는 동독이 민주주의국가들과 접촉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인근국가들 안도감 우세 1945년,세계 4강들은 독일의 분단을 히틀러의 공격에 대한 댓가로 생각했다.이후 많은 세월동안 서독정부는 유럽내에서 믿을만한 파트너가 되기 위해 신뢰를 쌓아갔다.그리고 (통일)기회가 왔을때 인근국가들은 우리의 통일에 반대하지 않았다.오히려 유럽에서는 독일분단이 극복되고 긴장,위험등이 제거된데 대한 안도감이 우세했다.따라서 현재 독일은 실로 오랜만에 우호국들에 둘러싸인 상황을 맞이했다.
  • 독일통일 7주년 국민통합 현주소

    ◎‘풍요’환상벗고 자본주의 냉혹함 체험/40년 이질감 극복 못해 아직 ‘보이지않는 장벽’/옛 동독인 무력감과 좌절속 점차 새생활 적응 3일로 독일통일 7주년을 맞았다.경기침체와 실업증가로 옛 동독지역에서의 실업율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등 동·서독 출신들간의 심리적 갈등이 여전히 문제되고 있지만 독일은 조금씩 분단의 상흔을 씻어내고 있다.통일 7년후의 독일을 동·서독 출신간 갈등과 토일독일을 지탱해온 바탕,통일비용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실직한 남편및 두 아이들과 함께 남편의 실직수당 등 사회보장금으로 살아가는 카트린 파겔 부인(33)에게 있어 아직도 앞날은 캄캄한 어둠일 뿐이다.컴퓨터를 전혀 만질줄 몰랐다는 그녀는 “나는 내가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는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그런 그녀도 지금은 컴퓨터를 조금은 다룰줄 안다.직업교육의 일환으로 컴퓨터를 배운 덕이다.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일자리를 가질 것을 꿈꾸면서 열심히 직업교육에 매달리고 있다. ○동독지역 실업률 18% 그러나 일자리를 바라기는 파겔 부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현재 옛 동독지역의 실업율은 18%로 옛 서독지역(9.7%)의 두배 가까이 된다.그런 만큼 너도나도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다닌다.통일 전 자본주의에 대해 가졌던 환상 가운데 보다 풍요로운 삶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실현됐지만 그 혜택에 따른 대가로 치열한 경쟁과 실업이라는 부작용도 있을 것임을 생각하지 못했던 옛 동독인들은 아주 느리게나마 자본주의의 선과 악을 몸으로 체험해가고 있다. 21세기 유럽대륙의 중심으로 발돋움한다는 희망 아래 1천여개의 크레인이 도시 곳곳에서 건설공사에 한창인 베를린의 모습에서 상징되듯이 지난 7년간 옛 동독의 모습은 무척 많이 변했다.첨단 대규모 유통단지들이 곳곳에 들어서 과거와는 다른 풍요로움을 과시하고 있다.새로 지어진 건물들 외에도 수많은 건물들이 개·보수를 거쳐 새롭게 단장됐다.완전히 교체된 옛 동독지역내 통신설비들은 아직도 교체를 끝내지 못한 옛 서독지역의 통신설비들보다도 오히려 훨씬 뛰어나다.이같은 사회기반시설들의 확충으로 옛 동독지역이 새롭게 탈바꿈한 것이 사실이다. 옛 동독지역에서의 생활수준도 옛 서독지역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우선 소득수준이 무척 높아졌다.서독지역에서는 옛 동독지역의 임금이 서독지역의 80%선에 육박하고 있으며 연금생활자들의 소득은 오히려 서독보다도 높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거나 수치상의 일일 뿐,소득이 높아진 만큼 집세를 포함한 모든 물가도 뛰어올라 어려움을 주고 있다.통일 당시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무너져내린 지금 옛 동독인들의 마음은 얼어붙었다.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의 모습에도 냉담하다.이들은 옛 서독인들의 삶과 자신들의 삶에는 차이가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왜 같은 독일인이면서도 다른 생활을 해야 하느냐는 불만에 사로잡혀 있다. ○곳곳에 첨단 유통단지 이처럼 동·서독인들간에 느끼는 이질감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것은 처음부터 독일통일이 안은 최대의 과제였다.눈에 보이는 ‘장벽’만 사라졌을뿐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속의 ‘장벽’은 여전하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그러나 40년 분단이 키워온 이질감을 빠른 시일 내에 해소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욕심일지 모른다. 발전에 대한 희망이 있을 때에만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는게 사실이다.많은 옛 동독인들이 희망을 잃고 무력감과 좌절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또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수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자본주의 경제에 적응해 ‘성공’한 동독인들이 나오고 있다.파겔 부인의 예에서 보듯 가냘프나마 희망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더욱이 지난 7년보다는 앞으로의 7년 동안 이질감 해소에 있어 훨씬 많은 진전을 보일 것이 틀림없다. ○서독인들 차별의식도 옛 동독인들에 대한 옛 서독인들의 이유없는 차별의식같은 것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40년 분단이 강제한 문화차이에서 가져온 것이다.그러나 옛 동독인들이 자본주의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그들 스스로 희망의 불씨를 지펴내고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다면 옛 동독인들의 얼어붙은 마음도 녹아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질감도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가치관이 전도되는 혼란 위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 옛 동독인들에게 있어 ‘자기 스스로만이 자신의 이익을 돌봐야 하는’ 자본주의 학습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일 수 밖에 없다.그래도 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본주의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다.달리 방법도 없다.“동·서독인은 한국민인가”라고 물으면 상당수의 옛 동독인들은 아직 “아니다”라고 답할는지 모른다.현재의 고통에 대한 반발로 옛 동독지역에서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다.시간이 흐를수록 “그렇다”는 대답이 “아니다”는 대답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 미 B­1폭격기도 추락/군용기 작년 10월이후 55대째

    ◎특별점검령속 공중폭발/몬태나서 승무원 4명 사망 【워싱턴 AP 연합】 미 국방부가 미군기의 연속 추락사고로 모든 군용기에 대해 안전점검 실시를 위한 24시간 비행중단 지시를 내린지 이틀만인 19일 하오(현지시간) 미 공군 B­1폭격기가 몬태나주에서 훈련비행중 추락,4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미군기 추락사고는 지난 13일 이후 6번째가 된다. 버지나아주 햄프턴의 랭글리 공군전략사령부의 게리 캐루더스 대변인은 이날 사고로 “4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사우스 다코타주 공군기지 앨런 마셜 대변인은 추락사고가 와이오밍주와의 경계지대인 몬태나주 동남지역에서 발생했으며,공중폭발했다는 사실 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코언 장관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5차례나 미군기 추락사고가 연이어 발생,미군 요원 12명과 독일인 24명이 목숨을 잃자 17일 각 군에 24시간 비행을 중단하고 안전점검을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한편 미국의 97 회계연도가 시작된 작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미군은 추락사고로 55대의 전투기와 폭격기 등을 잃었다. □최근 미군기 추락 일지 ▲9월13일 C­141기,남아프리카공화국 부근에서 독일수송기와 충돌 ▲14일 F/A­18D기,오만에서 추락 ▲14일 F­117 스텔스 전투기,메릴랜드주 볼티모어 부근에서 추락 ▲15일 F/A­18D 호넷 전투기,노스캐롤라이나에서 훈련비행중 추락 ▲16일 F­16 전투기 2대,애틀랜틱시티 부근 대서양 상공에서 야간비행중 공중충돌
  • 베트남 여객기 추락­현지표정·구조활동

    ◎지상충돌 순간 폭발… 기체 산산조각/불길 1시간… 곳곳에 뒤틀린 시신/일부 구조대원들 귀중품 약탈행위/관제탑 “교신두절 3분만에 추락” ○…3일 프놈펜 포첸통 국제공항 부근 논바닥에 추락한 베트남 항공 소속 사고기는 추락 1시간여가 지난 이후까지도 불꽃을 내뿜고 있었으나 사고 현장으로 통하는 길이 비좁고 인근 곳곳이 침수돼 있어 소방차와 구조반원들이 접근에 애를 먹고 있는 실정. 가까스로 현장에 접근한 구조반원들은 진흙으로 뒤범벅이 된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어린이 1명을 구급차로 긴급 이송. 구조대원들은 우선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희생자의 여권과 메모 조각들을 찾는데 주력하는 모습. ○…베트남기 추락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중 일부는 “구조 작업이 아무런 사전 조정 없이 이뤄졌다”며 수습대책 부재를 비난.이들은 또 시체 일부가 몸이 꼬이고 비틀려지는 등 끔찍한 모습이었다고 전언. 다른 목격자들은 얼굴이 찢어지고 부상을 입은 두개골이 드러난 채 누워 있는 사체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면서 신발과 옷들도찢어진채 비행기 안전 수칙 책자,기내 지도 등과 함께 현장 주위에 마구 나뒹굴고 있었다고 설명. ○…여객기 추락사고 현장에 급파된 공항 구조대원과 경찰관중 일부가 죽거나 혹은 죽어가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귀중품을 약탈하는 한편 심지어 희생자의 옷까지 벗겨가는 일이 벌어졌다고 목격자들이 폭로. 여객기 추락당시 프놈펜의 국제공항에 있었던 한 프리랜서 사진작가는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면서 “그들은 희생자들 사이로 비집고 다니며 귀중품을 약탈했다”고 말하고 단지 5명의 구조대원만이 불타고 있는 기체안에 들어가 생존자들을 끌어내고 있었다고 분개. 또다른 목격자들은 약탈자들 가운데는 일부 경찰관들까지 끼여 있었으며 또다른 경찰관들이 호각을 불며 이들을 쫓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설명. ○…구조대원들은 사고현장에 처음 도착했을때 현장은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하는 아수라장이었다면서 비행기와 부근 마을 가옥들이 격렬하게 불타고 있었다고 밝혔다. 공항에서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한 목격자는 “사고 당시 엄청난 폭음과 함께 비행기가 지상에 추락했다”고 당시를 회상한 뒤 폭우로 시계가 “극히 불투명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항공기 추락사고를 목격한 한 12세 소년은 “놀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면서 “비행기가 논으로 추락해 약 200m 가량 미끄러졌다”고 증언. 추락 지점에서 약 700m 떨어진 곳에서 밭을 갈던 한 농부는 “가스 탱크들이 터지는 것 같은 큰 폭발음이 들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비행기가 완전 파괴돼 동체중 한 부분도 온전히 남지 않았다”면서 “비행기 날개,엔진,꼬리 부분이 다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 현장인 포첸통 국제공항의 한 관리는 사고 비행기가 스콜이 내리는 악천후속에서 첫번째 착륙에 실패한 뒤 두번째 착륙을 시도하다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의 원인은 날씨탓”이라고 말한뒤 “사고기가 악천후로 첫번째 착륙에 실패한 뒤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면서 지상에 충돌했다”고 덧붙였다. ○…사고당시 상황과 관련,캄보디아 국가정보부의 관리인 키우 칸하리스씨는 “사고기가 폭우속에서 지상 2천 피트 이하로 하강하고 있을 당시 관제탑으로부터 고도를 높이라고 지시받았다”고 전한뒤 “그러나 사고기는 충분한 고도를 얻지 못했다”고 전했다. 공항 관제탑 책임자인 티스 찬타씨도 관제탑과 사고기간 교신이 이뤄지다 사고 직전 두절됐으며 이후 3분만에 비행기가 나무에 부딪혔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은 사고기가 거의 지상에 닿았을 무렵 비행기가 미친듯이 흔들렸다고 말했으며 또다른 목격자들은 “꼬리 부분이 주변의 야자나무를 들이받은 것 같았다”면서 그런 다음 기체가 동강이나면서 곧바로 폭발했다고 전했다.이들은 비행기 잔해중 온전하게 남아 식별이 가능한 부분은 비행기의 꼬리 부분 뿐이라며 사고뒤 기체 잔해들이 활주로에서 200백m 밖에까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기에는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 등 많은 외국인이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중에는 서울에서 이 비행기를 탄 한국인 21명을 포함,대만인,일본인,독일인 등이 다수 끼여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프놈펜 외신 종합 연합〉
  • 지구촌 작년 6억명 외국관광/세계여행기구 96년 통계

    ◎여행객 가장 선호 국가­불 6,150만명 찾아/관광때 씀씀이 큰 국민­독 507억불 소비/관광수입 최고 국가­미 644억불 벌어 세계적으로 지난해 국외여행을 한 사람은 5억9천4백만명으로 지구촌 인구 10명당 1명이 외국관광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95년보다 5.3% 포인트가 증가한 수치로 2000년에는 7억,2010년에는 10억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같은 추세는 세계여행기구(WTO)가 3일 발표한 지난해 세계여행객 통계자료에서 밝혀졌다.이 자료에 따르면 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는 프랑스,국외여행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은 독일인,관광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국가는 미국으로 밝혀졌다. 프랑스는 지난해 6천1백50만명의 외국관광객이 몰려들어 95년에 이어 부동의 가장 인기 있는 행선지 위치를 굳혔으며 2위는 미국으로 4천4백80만명,3위는 스페인으로 4천1백30만명을 기록했다.다음은 이탈리아(32.9백만명),영국(26.0),중국(22.8),멕시코(21.4),헝가리(20.7),폴란드(19.4),캐나다(17.4·이상 단위 백만)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외여행에 돈을 가장 많이 쓴 국민은 독일인으로 5백7억달러를 소비했고 2위는 미국인으로 4백59억달러,3위는 일본인으로 3백68억달러를 기록했다.다음은 영국인(2백47억달러),프랑스인(1백63억),이탈리아인(1백24억),오스트리아인(1백17억),러시아인(1백16억),네덜란드인(1백15억),캐나다인(1백2억) 순으로 나타났다.이들은 전년 대비 10% 포인트 이상씩의 증가를 기록했으며 한국인의 소비는 15위를 기록했다. 한편 이들 세계여행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는 국가는 미국으로 지난해 6백44억달러를 기록했다.2위는 스페인으로 2백84억달러,3위는 프랑스로 2백82억달러를 올려 1위국 미국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다음은 이탈리아(2백73억달러),영국(1백97억),독일(1백58억),오스트리아(1백40억),홍콩(1백8억),중국(1백2억),캐나다(88억)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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