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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독일 총리가 나치 전범자 묘소를 참배했다면?/ 이성낙 가천의과학대학교 총장

    1995년 5월8일 통일 독일 국회의사당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식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필자는 우연히 그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감명으로 남아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식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독일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도 굴욕적인 패망의 날이지 않은가. 국회 상하원 의장, 행정부와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나란히 자리한 가운데 독일 대통령은 “히틀러와 그를 추종한 나치가 저지른 범죄는 인류 역사상 상상을 초월한 최악의 것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엄숙한 역사적 과제는 나치가 저지른 엄청난 죄악상을 조금도 미화함 없이 우리 후세에게 전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한 연설 내용이 퍽 인상적이었다. 또 나치 독일군의 점령 아래 공포의 정치범 캠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웃 나라 폴란드 외무장관이 그날의 특별 연사로 초청되었다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그가 유창한 독일어로 “용서는 승자의 몫이 아니고 패자의 몫이다.”라고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한 인간이, 한 민족이 겪은 가없는 아픔을 극복한 참된 승리자의 당당한 기백이 서린 ‘나무람’은 필자의 가슴에 뜨겁게 다가왔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 건으로 여론이 높아지면 더욱 오만하게 “우리 일본인이 우리의 조국을 위해 숭고한 생명을 바친 이를 추모하는데 다른 나라가 왜 간섭하는가?”,“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세계 어느 나라도 문제 삼지 않는데…”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는 작태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이문제에 있어서 필자가 정부 당국의 대응 방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전문가도 아니고 정부의 깊은 속내도 알 수 없지만,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역사인식이 모자라 반성할 줄 몰라서 사과하지 않겠다는 부랑아에게 “사과하라, 사과가 미흡하다.”라며 끈질기게 연연하는 정부의 태도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국제적 양심 세력을 적극 동원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언젠가 필자가 독일 동료들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가지고 외교적 마찰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독일의 총리가 만일 나치 전범이 묻힌 묘소를 참배했다면 독일 국내는 물론 이웃 폴란드, 프랑스, 영국 등이 조용히 묵과하고만 있겠느냐?”고 되물었더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다른 예를 들어 보면, 독일을 대표하는 석학이기도 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2년여 전 일본 방문을 앞두고 한국을 찾아왔을 때 일본 정부의 전후 역사관, 즉 죄의식이 없는 일본 사회에 절제 있으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 근래 일본 정부의 전후 역사관에 대해 우려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유럽 및 미국 사회에서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국제적 분위기를 잘 이용해서 우리가 뜻하는 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가 자기네 잘못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겠다고 버티는데,‘팔을 비틀면서’ 집요하게 사과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득 나치에게 학살된 유대인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어느 비문이 생각난다.‘잊지 않기 위해 용서하노라(Forgive,not to forget)’. 이성낙 가천의과학대학교 총장
  • [이사람]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이사람]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전현직 중국 국가주석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도 감동시킨 ‘농부 외교관’. 제주도 북제주군 현경면 저지리에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분재예술원을 운영하는 성범영(67) 원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행복한 농부다. ●세계 정상을 감동시킨 ‘농부 외교관´ 정원을 다녀간 세계 지도자들은 수없이 많다. 최근 10년 동안 각국의 정상, 공무원, 군인, 언론인 등이 다녀갔다. 이들이 남긴 감탄의 글과 그림만도 300여점에 이른다. 성 원장은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한국적인 정원을 소개하면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가 민간 외교관 역할을 맡게 된 계기는 1995년 11월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의 방문이다. 예정 관람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정원을 샅샅이 돌아본 장 주석은 귀국한 뒤 “한국 제주도에 있는 분재예술원은 일개 농민이 정부의 지원 없이 세계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 가서 보고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간부들에게 지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생각하는 정원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국가 부주석이 찾았다. 이후 중국 당과 정부, 지방 정부, 군인 등 엘리트 공무원들이 성 원장의 정원 조성·운영 노하우와 철학을 배우기 위해 찾는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제임스 레이니·버시바우 전현직 주한 미국대사, 장 폴레오 전 주한 프랑스 대사도 다녀갔다.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중국 인민일보 총편집인 등도 찾았다.CNN에 정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나간 뒤 미국·캐나다 등에서도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성 원장은 “오직 분재원을 보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에서 20시간을 걸려 찾아온 관광객도 있으며, 독일의 한 관광객은 무려 열 번이나 찾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국 관광 전문기자 15명이 3시간 동안 분재원을 취재하고 돌아갔다. ●“두루외! 낭이 밥멕여주나” 성 원장의 거친 손에는 늘 전지 가위가 들려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무에 물을 주고 돌을 쌓는 억척스러운 농민이다. 세계적인 관광농원을 조성한 성 원장은 그러나 관광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제주 토박이도 아니다. 그저 나무가 좋아서, 제주도 돌이 소중해서 분재원을 가꾼 농민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때 군에 입대했다. 그가 척박하기로 소문난 제주도에 발길을 내디딘 것은 1963년 말. 군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목포에서 연락선을 탔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타고 겨우 찾아온 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나지막한 가시덤불 언덕이었다. 초겨울인 데도 파릇파릇 자라는 채소와 열대 과일,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돌이 신기해 막연하게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돌아갔다. 성 원장은 서울에 올라와 와이셔츠 공장을 운영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모두 제주 돌밭을 구입하는 데 투자했다. 전국을 돌면서 나무를 사들였다. 분재 정원에 관한 전문지식을 별도로 배운 적도 없고 정원 조성 설계도도 그리지 않았다. 다만 가장 한국적이고 제주도의 자연에 맞추겠다는 생각으로 농장을 가꾸고 돌담을 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두루외! 낭이 밥멕여주나(미친 놈, 나무가 밥먹여주나).”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는 제주 돌을 아낄 줄 안다. 돌에 미친 ‘돌챙이’(돌담 쌓는 사람) 소리를 들을 정도다. 정원은 나무와 돌담으로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다. ●분재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랑으로 완성 성 원장의 분재관은 남다르다. 분재야말로 살아 있는 나무를 소재로 삼아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랑으로 완성하는 ‘생명예술’로 본다. 오랜 세월을 바쳐 완성하고,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시간예술’이기도 하다. 기르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아름답게 완성하는 ‘인격예술’로 정의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기술과 정성을 더하여 자연보다 더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땔감에 불과한 나무(우리만 갖고 있는 자연이란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아름다운 분재가 된다. 성 원장은 “분재는 나무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 교정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무를 사랑하다보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고, 순리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를 깨닫는다.”며 정원 조성과 그의 철학이 담긴 책 ‘생각하는 정원’을 내놓았다. 이 책은 중국어·영어로 번역됐고, 일본어·독일어판도 나올 계획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책꽂이]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마여 앤젤루 지음, 김욱동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 아칸소 주의 스탬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 강간, 혼전 섹스, 동성애 문제 등을 거리낌없이 다뤘다. 저자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으로 꼽히는 작가이자 가수, 영화감독, 여성운동가다.9800원. ●한 권으로 읽는 한국의 소담(김원석 엮어씀, 문학수첩 펴냄) 어느 날 정철과 유성룡이 교외로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이항복과 심일송, 이월사 등을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이들은 각자 소리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정철은 ‘맑은 밤, 달 밝은 때에 다락 위로 구름 지나는 소리’가 제일 좋다 했고, 심일송은 ‘바람 앞에 원숭이 우는 소리’를, 유성룡은 ‘새벽에 술 거르는 소리’를 꼽았다. 이에 이항복이 껄껄 웃으며 “제일 듣기 좋기에는 뭐니뭐니해도 동방화촉 좋은 밤에 신부가 치마끈 푸는 소리가 좋지.”라고 했다고 한다. 항간에 전해오는 해학넘치는 소담(笑談)모음집.9000원. ●몬타우크(막스 프리쉬 지음, 이정린 옮김, 고려대출판부 펴냄) 1960년대 전후 독일어권 문학의 대표 작가인 저자의 소설. 작가 스스로 “나는 고백하기 위해서 쓴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이 소설은 자신의 삶을 증언한다. 인디언식 지명인 몬타우크는 미국 맨해튼에서 110마일 떨어진 롱아일랜드의 북쪽 끝. 자서전도 일기도 아니지만 독자가 프리쉬의 친구, 후원자 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작가 자신을 드러냈다. ●사랑 하면 죽는다(마르셀라 이아쿱 지음, 홍은주 옮김, 세계사 펴냄) 온몸을 내던지는 열정적 사랑은 끊임없이 변주되고 반복되는 영원한 테마다. 이 책은 정신과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온 7명의 환자와 의사의 치명적 사랑 이야기를 다룬 심리소설. 열정적 사랑의 허상이야말로 테러리스트보다 위험하고 잔혹하다는 메시지가 담겼다.9500원.1만원.
  •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엮음

    “저는 동료들 70명의 목숨을 앗아간 야비한 독재자의 광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감옥 역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십시오.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입니다.”(카스트로,1953년) “우리는 범죄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만인을 위한 빵, 만인을 위한 지식, 만인을 위한 노동, 만인을 위한 자유와 정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크로포트킨,1883년)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엮음, 김준서 등 옮김, 이매진 펴냄)는 격동의 시대, 혁명을 위해 온몸을 바친 혁명가 25인의 법정 최후진술과 변론을 담은 책이다. 혁명은 본래 그 성격상 재판에 회부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세기, 혁명가들에 대한 재판은 법적 절차가 무시된 채 변칙적으로 이뤄졌다. 독일어 원전에 실린 25명의 진술을 모두 옮겨 실은 완역본.2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날카롭고 냉정한 눈빛… 진짜 명성황후?

    이번엔 정말 명성황후일까. 고종황제·명성황후·흥선대원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25일 공개됐다. 사진 수집가인 영국인 테리 베닛이 발굴한 19세기 사진 2600여점 가운데,1884년부터 1906년까지 한·중·일을 오갔던 한 독일 사진작가의 사진 중 한 장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사진작가가 군함 ‘카이저’호를 타고 조선땅에 들어온 시점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1895년) 직전인 데다, 명성황후 사진 밑에는 독일어로 ‘시해된 왕비(Die Ermodete Konigin)’라는 기록까지 남겨뒀다. 여기에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사진의 배경이 같고, 명성황후를 접견한 사람들이 남긴 “왕비의 눈은 날카롭고 냉정한 빛을 띠고 있어서 기밀한 두뇌 회전이 느껴졌다.”(이사벨라 비숍 ‘명성황후의 회고록’)는 묘사와 사진 속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도 주목된다.학계에서 벌써 “정확한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데다, 베닛 역시 “한국이 진실규명 작업을 한다면 기꺼이 돕겠다.”고 밝히고 있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그동안 명성황후 사진이나 초상화는 모두 진위논쟁에 휩쓸렸다. 대표적인 것이 1904년 ‘꼬레아 꼬레아니’(카를로 로제티)와 1906년 ‘대한제국 멸망사’(호머 헐버트) 등에 실린 사진. 당초 명성황후 사진으로 알려졌으나 고종황제의 밀사로 활약했을 정도로 조선정부에 우호적이었던 호머 헐버트가 얼굴을 잘 알고 있었을 명성황후 사진설명에다 ‘조선여인’이라는 표현을 쓸 리가 없고, 이 사진을 ‘조선의 상궁’이라 설명한 당시 미국쪽 책이나 잡지 등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그 진위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Book Review] 안데르센 평전

    순수한 동심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하지만 그는 정작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위한 작가’이기를 거부했다. 성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환상과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거침없이 그려낸 그의 작품은 영어 혹은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달콤한 이야기로 변질됐다. 스스로 “나의 인생사가 나의 작품에 대한 최상의 주석”이라고 했듯, 안데르센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의 작품이 왜 복잡다단한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영국 출신의 안데르센 연구가 재키 울슐라거가 쓴 ‘안데르센 평전’(전선화 옮김, 미래M&B 펴냄)은 근대 동화의 개척자 안데르센의 삶과 문학세계를 조명한 평전이다. 안데르센의 생애를 다룬 책으로는 ‘안데르센 자서전’이 국내에 나와 있지만, 이 책은 많은 사실들이 왜곡되고 어두운 내용이 빠져 있어 “은폐의 걸작”이란 말을 듣는다. 안데르센은 마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10년마다 새로 자서전을 써냈다. 구두수선공인 아버지와 알코올중독자 세탁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이 써놓은 글을 보면 상류층과의 친분관계에 몰두하느라 헐떡이는 그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안데르센 평전’은 자서전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저자는 덴마크어로 씌어진 편지, 일기, 평론 등 다양한 문헌들을 통해 안데르센의 복잡한 내면과 창작의 비밀을 밝힌다. 책은 부자들의 틈바구니에서 느꼈던 소외감과 분노, 양성애적인 욕망, 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 글쓰기의 괴로움 등 안데르센이 평소 지닌 감정의 무늬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안데르센은 인상부터 예사롭지 않다. 못생긴 데다 눈치까지 없던 안데르센을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키가 크고 말라서 살도 없고 뼈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초롱같이 긴 턱과 창백한 얼굴로 도마뱀처럼 구부린 채 꿈틀거리며 다녔다. 행동은 단순하고 아이처럼 순진하여 어딘가 바보 같았다.” 기괴함마저 안겨주는 쓸쓸한 영혼의 모습이다. 책에는 자신의 후원자인 요나스 콜린의 아들 에드바르 콜린을 비롯, 젊고 매력적인 남성들에게 느꼈던 안데르센의 동성애적 감정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실려 있어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200편이 넘는 동화를 쓴 작가로 기억된다. 안데르센 이전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나 독일의 그림 형제가 구전민담을 수집해 정리한 데 반해, 안데르센은 처음으로 옛이야기를 문학적 양식으로 소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런 점에서 안데르센은 근대 동화의 창조자라 할 만하다. 안데르센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기 삶에서 나온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의붓누이 카렌 마리는 동화 ‘빨간 구두’의 카렌으로, 한 때 사랑한 여인 리보르는 ‘팽이와 공’의 공으로 형상화됐다. 자신의 영혼의 자화상을 동화 속에 그려놓은 것은 물론. 안데르센은 성공한 ‘미운 오리새끼’이자 사랑에 목숨을 건 ‘인어공주’였으며,‘꿋꿋한 양철 병정’이자 왕의 사랑을 받는 ‘나이팅게일’이었다. 우울한 ‘전나무’,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 악마 같은 ‘그림자’도 모두 안데르센의 분신이다. 책은 안데르센이 주변 인물이나 경험을 동화에 어떻게 끌어들였는지, 어떤 식으로 작품의 초고를 수정해갔는지 소상히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안데르센 동화의 원전도 만날 수 있다. 중역과 축약 번역, 번안으로 접하던 안데르센 동화와는 또 다른 감흥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어른들을 위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만이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안데르센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안데르센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양수겸장’의 작가다. 저자는 안데르센 특유의 구어체와 수다스러운 어투, 비약과 유머, 풍자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번역상의 오류가 안데르센을 단순한 동화작가의 범주에 가두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2002년 덴마크 오덴세 시가 수여하는 ‘안데르센 특별상’ 수상작.3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獨-佛 공동역사교과서 발간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 역사교과서가 10일 공식 발간됐다. 지난 5월과 6월 불어판과 독일어판 가본이 각각 발간된 데 이어 이날 독일 자를란트주 자르브뤼켄에서 최종본 발간 기념행사가 열렸다. 공동 역사교과서는 모두 3권으로 구성되는데 이번에 출간된 것은 1945년 이후 현대사를 다룬 제3권이다. 르네상스∼2차세계대전 시기를 다룬 2권은 내년 상반기에, 중세사를 다룬 1권은 2008년에 출간된다. 이번에 출간된 공동 교과서는 신학기부터 고등학교 과정에서 사용된다. 편찬위원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양국의 인식을 굳이 하나로 통합시키지 않고 공동교과서에 그대로 병기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이를 비교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베이징 연합뉴스
  • [이 한권의 책] 열광…감격…행복한 비명

    [이 한권의 책] 열광…감격…행복한 비명

    한국어판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받아드는 순간은 한마디로 열광, 감격이다. 동시에 질겁, 그러나 행복한 비명이다.2500쪽 짜리 책도 책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발터 벤야민은, 아니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출판한 조형준과 그 출판사 새물결은 2500쪽 짜리 초대형 프로젝트를 내놓으면서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을까? 이미 1000쪽 짜리 프로젝트 ‘천 개의 고원’을 기획 출판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배포라고 봐야 하는가? 그렇게 보자면 그 이전의 야심작인 ‘사생활의 역사’(전3권)나 ‘여성의 역사’ 작업에서 기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하늘에서 본 지구’ 프로젝트에서 이들의 현재 생각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이제 발터 벤야민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니 당연하게도, 이들의 것, 그러니까 조형준의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때의 의미는 19세기의 수도 파리, 나아가 자본주의 탄생기의 유럽의 수도를 단순히 따라 읽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완전히 분해해서 다시 조립’해가는 주체적인 작업이 된다. 한마디로 이 엄청난 도전에 의해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한국어판 그것과 다른 언어권의 그것으로 나뉘면서, 원본은 물론 다른 언어권에 귀중한 참고가 되는 희귀한 현상을 낳는다. 문제의 한국어판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어떤 책인가. 원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13년간에 걸친 벤야민의 이론적 고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체적인 사유의 작업장으로, 마르크스의 ‘자본’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광대하고도 독창적인 이론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절반은 독일어로, 또 절반은 프랑스어로 씌어진 것이 원본인데, 한국어판의 백미는 원본에는 없는 이 책의 탄생 과정 전체를 상세히 알려주는 여담(餘談), 그러니까 다양한 ‘부록’ 이다. 이 책의 성립사에 관한 증언들, 보유, 유고, 기사 작성, 노트와 자료들의 전거 등. 프루스트의 작품을 하나의 거대한 여담 문학으로 보는 견해를 필두로 여담은 이제 하나의 장르로 승격되는 과정에 있음을 적시해볼 필요가 있다. 또 이 책을 읽는 독법 중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저자 벤야민이라는 인간의 생의 이력이다. 그가 나치 치하의 유대인 지식인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그가 초기 자본주의 연구로 런던을 제치고 파리를 잡았는가를 묻는 것보다 보들레르의 독일어 번역자라는 점, 보들레르에게서 치명적인 파리의 향기, 곧 근대 자본주의의 냄새에 홀려 파리로 왔다는 점, 위태로운 유대인 지식인인 주제에 목숨을 걸고 파리에 남아 마지막까지 파리를 기록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가 비평가라는 타이틀을 거부하고 오직 문필가로 생을 마감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가 정신이 아니면 그것은 하등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부질없는 일이 한 위대한 영혼을 구원하는 바,‘아케이트 프로젝트’가 그것이고, 그것은 한 영혼을 넘어서는 인류사의 기념비적인 작업인 것이다. 도대체 2500쪽 짜리 초대형 프로젝트 앞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썩 난감한 서두로 운을 떼었다. 이 책이 걸작인 것은 화두인 동시에 해답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읽든 자유다. 나처럼 책의 이면들, 그러니까 원본에는 없는 한국어판의 부록들을 먼저 펼쳐 들어도 좋고, 이구동성 필독을 권하는 ‘파리의 아케이드’들을 꼼꼼히 읽어나가도 좋고, 아예 텍스트 대신 뭉텅뭉텅 수록된 수십 컷의 아케이드 사진 풍경들을 사진첩처럼 감상해도 좋다. 문제는 이 매혹적인 20세기 정신의 서사시를 언제라도 펼쳐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마음이든, 서가든, 심지어 밥상머리든, 어디든! 함정임 아케이드 프로젝트
  • [열린세상] 병원 폭행과 경어 쓰기/이성낙 가천의과학대 총장

    선진국에서는 몸과 마음이 병든 환자로 꽉 찬 병원에서 어떠한 형태든 난동을 부리는 것은 절대 경험할 수 없거니와 용납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난동이나 언어폭력이 이루어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편으론 국회의원들이 의사를 진행하면서 몸싸움하는 것이 고정 메뉴화된 지 오래되었고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 수준이 심히 민망스러울 지경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인데, 환자나 그 가족이 병원에서 벌이는 물리적 난동이나 언어 폭행의 양상을 탓할 수만은 없을 듯싶기도 하다. 1년 전, 휴전선 GP초소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여러 명의 젊은 장병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가슴아픈 사건이 일어나 우리 사회가 한바탕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군 당국에서는 ‘철저한 진상 조사와 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것을 기억한다. 며칠 전에는 우리 장병들의 처소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보도를 접하고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이 단순히 열악한 생활공간 탓이라고 판단했다면 아직도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쳇말로 하드웨어 차원의 일차적 해결책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는 뜻이다. 총기 난사 사건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을 때 열악한 장병들의 생활공간에서 비롯된 문제라기보다는 문제의 장병이 선임 장교로부터 인격을 크게 모독당한 것이 돌발적인 사건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측되었다. 즉 언어폭력의 결과인 것이다. 주거 공간이 아무리 호화로울 정도로 개선되었다 할지라도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언어를 포함한 생활 문화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어떠한 대책도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검찰청의 언어폭력 관행과 근래 잇따른 피의자들의 자살 사건이 무관하지 않다면 이와 유사한 예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예들이 증명하듯 우리 사회의 언어문화 수준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본다. 요즘 독일월드컵과 관련하여 프랑스팀 내에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는 현지 보도가 있었다. 그 보도는 한 노장 선수가 감독에게 갑자기 경어(敬語)로 말을 건넸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대화하는 가운데 경어를 사용하면 자신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어에 ‘당신(Vou)’과 ‘너(Tu)’가 있듯이 독일어에도 ‘당신(Sie)’과 ‘너(Du)’가 있다. 그들은 평소에 말을 놓고 지낼 정도로 서로 허물없이 지내다가도 대화 중 갈등이 생긴다든지 격론을 할 때는 화법이 곧바로 경어로 바뀐다. 우리의 언어 관습에서 대화가 잘 풀리지 않으면 번번이 “왜 반말이야?”란 말이 튀어나오게 마련이고, 그러면 감정이 상당히 격해지는 현상과는 사뭇 다르다. 주의를 기울일 만한 사실은 프랑스나 독일군(軍)에서는 경어만을 공식어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만일 국내 군부대에서 장교가 하사관에게 또는 검찰청에서 피의자에게 경어만 사용한다면 지금까지 일어난 많은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 중 심기가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한층 더 상대방을 존중하는 범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반갑게도 국내 의료계의 한 작은 모임이 병원에 난무하는 언어폭력을 추방하기 위해 의료인이 먼저 병원의 언어문화를 순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신념으로 모든 의료인들이 ‘경어쓰기 운동‘에 동참할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공적인 자리에서는 대화 상대가 아무리 연령 차이가 많이 나고, 친숙하게 지내는 후배나 제자라 해도 반드시 경어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부는 한줄기 신선한 바람이 아닐 수 없다. 의료계에서 조용히 시작된 이번 ‘경어쓰기 운동’이 우리 사회 전반에 차츰 퍼져 나간다면, 건전한 사회로 한발 더 진화해 가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 이성낙 가천의과학대 총장
  • 히틀러 벙커 있었던 곳 유대인 학살 기념관 옆

    지난 60여년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히틀러 벙커’의 위치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독일 정부와 베를린 시당국은 그동안 벙커 위치가 노출될 경우 히틀러를 추앙하는 네오 나치들의 순례지가 될 것을 우려해 공개를 꺼려 왔다.‘푸에러 벙커’로 불리는 이곳은 독일 패망 직전인 1945년 4월30일 히틀러가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이다. 8일(현지시간) 베를린 빌헬름가 인근에 벙커의 옛사진과 함께 시설물의 내부구조와 역사 등을 독일어와 영어로 기술한 대형 안내판이 설치됐다.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곳은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불과 2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지금은 주차장과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간판설립을 주도한 민간 문화기구 ‘베를리너 운더벨트’는 지난 수년간 시 당국과 문화재청에 끈질긴 로비를 벌인 끝에 최근 간판 설립 허가를 얻어냈다. 벙커는 소련군 점령 뒤 대부분 파괴됐고 그나마 남아 있는 건물의 기초와 벽도 1980년대 도시개발 과정에서 매립돼 지금은 옛모습을 찾기 어렵다. 베를리너 운더벨트의 디트마르 아놀드 대표는 “벙커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려 주는 것이 이곳에 대한 신비감을 박탈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3) 마음과 의식의 차이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3) 마음과 의식의 차이

    우리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생각이 마음이고, 의식은 분명하게 주제화하는 자의식이나 도덕적 논리적 자각의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여긴다. 그 말이 대체로 옳다. 마음과 의식의 차이를 비교함은 사전적 의미의 개념을 하나 정리해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 문명에 대한 비전을 숙고해 보는 깊은 뜻을 지녔다고 하겠다. 프랑스의 20세기 무신론적 실존철학자 사르트르는 확실한 의식의 철학자다. 그는 사물의 존재양식과 의식의 존재양식을 철저히 구별하여, 사물의 존재양식은 의식없이 멍청한 상태에서 자기와 자기자신 사이에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자기동일적 존재로서의 즉자(卽自)존재(being in itself)이고, 인간의 의식은 자기와 자기자신 사이에 늘 거리를 두고 반성하고 자기자신을 부정하면서 자기자신의 어제를 극복하려 애쓰고 있는 대자(對自)존재(being for itself)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또 인간은 매일 자기자신을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그런 투명한 의식의 존재로서 자기만족의 게걸스러운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무한자유의 존재라고 인간의 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사르트르에게 명증한 자의식의 포기는 인간의 죽음과 같다. 의식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달리 자연스런 마음의 뜻을 가장 철학적으로 정교하게 밝힌 사유는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이라고 보는 데는 별 이의가 없겠다. 불교의 유식학에 의하면 일체가 다 마음이고, 다 마음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집, 산, 구름, 자동차, 사람 등이 다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그렇다. 이것을 유식학의 용어로 만법유식(萬法唯識·모든 것은 마음이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음)이라 부른다. 마음은 바깥으로 지향하는 탈자(脫自·자기를 벗어남)운동이고, 이 탈자운동으로 마음이 자기의 수준과 차원만큼 바깥에 그림을 무의식적으로 그린다. 이 그림이 바깥 경계로서의 집, 산, 구름, 자동차, 사람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집, 산 등의 개념이 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일까? 아니다. 저것들도 사람 마음의 욕망 수준이나 차원만큼 제각기 다르게 그려진다. 어떤 이는 집을 투기의 대상으로, 또 다른 이는 집을 낭만적 스위트 홈으로 여길 수도 있다. 산도 마찬가지다. 산을 자연의 온상으로 여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산을 이익을 위한 경제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모든 것들은 마음의 욕망의 대상인데, 그 대상은 마음의 욕망이 그린 사이버에 불과하다. 유식학은 마음이 곧 식(識·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그 알아차리는 마음은 마음이 세상을 향하여 무의식적으로 탈자적인 운동을 하고 있는 욕망과 분리되지 않는다. 탈자운동은 내가 결심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탈자적인 운동을 이미 하고 있기에 무의식적이라고 한다. 눈이 색을 보면서 그냥 알아차리고, 귀가 소리를 들으면서 그냥 알아차리는 것은 눈과 귀가 각각 보고 들으려는 욕망의 운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더구나 눈과 귀는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려 하는 무의식적 기호를 지닌다. 보고 들으려는 욕망이 사람마다 다르면, 색과 소리를 알아차리는 마음의 각도가 달라진다. 이런 자연적 마음의 알아차림과 욕망은 의식수준의 결심과 다르다. 도덕의식은 인간이 도덕적 양심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각하려는 결의와 함께 가고, 과학적 의식은 인간의 의식이 대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명석하고 판명한 판단능력을 요구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제의식은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한 문제파악 능력을 상정하고 있다. 이처럼 의식은 자의식의 자각을 촉구하면서 도덕적 과학적 대상에 대한 주관의 가치우위를 염두에 둔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cogito·코기토)는 철학이 의식 철학의 정상이다. 이 ‘코기토’의 출현으로 의식이 철학의 역사에 뚜렷이 부상하여 객체에 대한 의식의 주체가 세상에 도덕과 과학을 낳는 진원지로 여기게 했다. 그래서 서양철학이 대체로 의식 철학이 되었다.18~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데카르트의 철학으로 의식과 주체가 철학의 영역에 솟아난 것을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에 비유했을 정도다. 이 말은 서양 철학사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 철학이 의식의 철학을 낳았고, 의식의 철학은 주체의 철학을 키웠고, 이 주체의 철학은 인간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개척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서양의 근대 400여년은 이 의식의 철학사였고, 의식의 철학사는 의식의 사회도덕적 자각과 과학적 눈으로 세상을 소유론적으로 지배하려는 강렬한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단적으로 의식의 철학은 세상을 자아의 보편적 의식으로 지배하려는 소유론의 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사회도덕적 의식의 이상주의도 경제기술적 의식의 현실주의에 못지않은 소유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앞글(1.2.7.8.9회)에서 여러 번 지적했다. 불교의 유식학에서도 의식이 취급된다. 그러나 그 의식은 신대륙의 발견처럼 자랑스런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마음에 번뇌와 고통을 안겨다 주는 진원지로 여겨진다. 유식학에서 의식을 제육식(第六識)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의식이 오감(五感)의 지각인 안·이·비·설·신식(眼·耳·鼻·舌·身識=前五識)의 데이터를 나의 의식으로 통합하는 통각(統覺)의 기능을 수행하는 여섯 번째 마음의 알아차리기라는 뜻이다. 의식이 자기 홀로 공상처럼 생각하는 일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의식은 오감이 작용하지 않으면 쉰다. 신체의 오감이 작동하기에 그 오감의 지각을 늘 나의 생각으로 모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의식이다. 그러므로 의식은 늘 ‘나의 의식’이다. 동물도 감각이 있기에 동물도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고, 따라서 마음의 욕망인 탈자운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동물도 각자 마음의 차원만큼 살아가기 위하여 알아차리는 본능적 욕망을 지닌다. 아마도 식물도 생존하기 위하여 알아차리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왜냐하면 식물도 공격이 오면 그 공격을 알아차리고 자기 방어의 기제를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식물은 마음을 지녔지만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동식물은 ‘나의 의식’이란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왜 인간만이 ‘나의 의식’이란 생각을 할까? 인간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동물이고, 또 사회생활은 언어생활에 다름 아니고, 그 언어생활을 통하여 인간은 지능에 의한 소유론적 욕망을 성취시켜 나간다. 사회생활이 없으면, 즉 언어생활이 없으면 인간은 인간이 안 된다.17세기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II세는 갓 태어난 아기가 독일어를 전혀 듣지 않으면, 인류의 원초적인 언어인 신의 말인 히브리어를 말할 것이라고 공상했다. 병원에서 그는 간호원들에게 유아들이 독일어를 전혀 듣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유아들은 신의 말인 히브리어를 말하기는커녕 얼마 후 다 죽었다고 한다. 언어생활은 사회생활의 길이고, 이 길은 인간의 길이다. 그리고 이 길에 지능이 동반된다. 지능은 사회생활을 통하여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경쟁은 소유욕에서 발단한다. 인간의 언어생활은 동물의 생물학적 욕망의 마음을 사회학적 욕망의 마음으로 바꾼 것의 대가다. 생물학적 욕망의 마음은 자기생존을 위하여 타 생명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끝나지만, 인간의 사회학적 욕망의 마음은 타 생명을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타 생명을 사회적으로 지배하기를 욕망한다. 여기서 나와 타자의 사이에 투쟁이 일어난다. 서양의 의식철학에서 아무리 도덕의식이나 과학의식을 강조해도 그 의식은 다 사회적 지배의지의 투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의 유식학은 의식이 마음의 평화와 지혜를 어둡게 하는 번뇌와 고통의 원천이라고 본다. 사회생활에서 언어생활은 이미 인간의 무의식적 마음에 깊은 골을 새겨놓은 것과 같으므로, 유식학에서 이 언어생활이 잉태한 자의식은 아상(我相) 아만(我慢) 아애(我愛)를 형성하여 자아중심적 무의식인 제7식 말나식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이 말나식은 이미 의식과 오감의 지각을 다 자기중심적 편견과 색깔로 채색하게 하는 진원지와 같다. 그래서 의식수준의 도덕적 결의가 무의식인 말나식의 이기주의를 전혀 바꿔놓을 수 없다. 모든 이성주의와 이상주의의 헛수고를 우리가 여러 번 앞글(11.12.16.17회)에서 지적했다. 원효 대사는 의식수준의 번뇌를 ‘기(起)번뇌’라고 부르고, 무의식 수준의 번뇌를 ‘주지(住地)번뇌’라고 그의 ‘이장의’에서 기술했다. 그의 비유를 옮기면 기번뇌는 풀과 같고, 주지번뇌는 풀을 자라게 하는 땅과 같아서 풀뿌리를 쉽게 뽑아도 다시 땅에서 풀이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지번뇌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길이 무엇일까? 오감과 의식이 쉬면, 제7식인 말나식도 고요해지고, 말나식이 진정되어 평온해지면 제8식인 아뢰야식도 맑아지면서 여래장인 불성(佛性=神性)이 피어 오른다는 것이다. 아뢰야식이 사실상 마음의 궁극적 본질이다. 죽으면 딴 마음은 다 소멸하는데, 이것만은 불생불멸한다. 여기에 부처님(하느님)의 종자와 번뇌에 찬 중생의 종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본래 마음의 본질이 부처님(하느님)인데, 번뇌의 때가 사회생활(언어생활)의 와중에 끼어서 인간이 타인과 괴리되고 우주의 모든 동식물들과도 단절된 고립된 생활을 괴롭게 영위한다. 고립된 생활을 벗어나고자 타자를 욕망하지만, 소유론적 욕망만 하니까 서로 싸운다. 의식철학은 소유욕을 더욱 부채질하나, 마음의 철학은 우주의 만물로 향하는 존재론적 욕망의 길을 가르쳐 준다. 우주의 만물도 다 인간처럼 마음이다. 우주는 한마음(一心)이다. 인간의 마음에서 의식의 무게를 제거하면 우주의 동식물과 다 한 마음의 공명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광물까지도 잠자는 마음이라고 느껴야 하리라. 의식철학이 의식과 사물을 나눈다. 그러나 마음의 철학은 의식과 사물이 둘이 아니고, 한마음의 동기(同氣)라고 여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우리는 월드컵 청소년 특파원”

    ‘아드보카트 감독, 박지성 선수 사인 받아오기’,‘독일어로 한국 응원하기’,‘선수들이 찼던 공 가져오기’,‘독일인과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사진들고 사진찍기’…. 2006 독일 월드컵의 생생한 감동을 전하게 될 청소년 특파원 7명에게 쏟아진 또래 청소년들의 주문사항들이다. 2006 월드컵 공식파트너인 야후 코리아와 중등 온라인 교육사이트인 1318클래스는 4일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들이 월드컵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도록 하기 위해 ‘1318 월드컵 특파원’프로젝트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7명의 특파원들은 모두 중3년생들로 5000여명의 ‘1318 붉은 악마’응원단의 사전투표와 심사위원단 평가를 종합해 선발됐다.유창한 영어 및 외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어짱, 운동·춤·노래·악기연주 등에 뛰어난 특기짱, 유머감각과 개인기가 뛰어난 인기짱 등 각 분야에서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학생들이다. 인기드라마였던 대장금에 출연한 아역탤런트 출신의 경기 범계중 3년인 김소영양 등 여학생이 4명이고 얼짱에 축구광으로 온라인 사전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경기 대화중 3년인 최인혁군 등 남학생이 3명이다. 이들은 오는 9일 독일 현지로 출국한다. 토고전, 프랑스전을 관람하면서 1318의 시선으로 본 경기관람평, 사진 촬영, 그리고 특파원 다이어리 등을 통해 현지 열기를 국내 청소년들에게 생생하게 알린다. 뿐만 아니라 또래 친구들이 부여한 각종 미션을 수행하고 한국의 대표 청소년으로서 월드컵 기간에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게 된다. 성적이 전교 10위권인 서울 영남중 3년생인 김지현양은 “2002년 경기 때마다 시청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했었는데 그때 응원의 열기보다 뜨거울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열기를 그대로 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푸른1318 유하상 대표는 “어른들만의 축제가 아닌 1318들이 주인공이 되는 월드컵 축제를 만들어 보고자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뉴토익’ 크게 어렵지 않았다

    ‘뉴토익’ 크게 어렵지 않았다

    각종 ‘공시생(公試生)’을 포함해 모든 취업 준비생의 관심 속에 ‘뉴토익’이 지난 28일 처음 치러졌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지리라던 예상을 뒤엎고 전반적으로 기존 토익보다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읽기 평가의 독해 지문이 늘어나면서 시간 부족을 호소한 수험생이 많았지만 영국식 발음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까다로운 것은 아니었다. 어휘도 기존 토익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수험생들의 평가다. ●영국식 발음과 어휘 어렵지 않아 뉴토익의 가장 큰 특징은 발음과 어휘의 변화.LC(듣기 평가)에서 기존의 미국식 발음 말고도 영국·호주 등에서 쓰이는 영국식 발음이 대거 등장했다. 미국식과 영국식의 비율은 60대40 정도였다. 그러나 영국식 영어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수험생들은 입을 모았다. 직장인 김선중(28·서울 신림동)씨는 “영국식 발음이 독일어와 유사하게 철자 그대로가 많아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면서 “LC는 오히려 기존 토익보다 더 좋은 점수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LC나 RC(읽기 평가) 모두 어휘 자체는 옛 토익의 난이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어휘나 표현도 크게 변하지 않았고, 토익에서 요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관련 문장들도 생활영어 수준에 그쳤다. ●받아쓰기와 읽기로 준비하세요 그러나 복병은 RC의 읽기. 특히 파트 6,7의 문제 지문이 늘어나면서 일부 수험생들이 애를 먹었다. 사실 토익의 전체 지문 길이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에 3∼4개의 문제로 따로 제시되던 지문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체감 지문량’은 훨씬 많아졌다. 이런 이유에서 기존의 방식대로 세부 문법 따지기와 기계적 문제 풀이 위주로 공부하거나 독해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위권 이하 수험생들이 시간 부족을 많이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한두 문제 더 맞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영어 의사소통 능력 자체를 키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토익 공부에 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인터넷 전문영어교육업체 윈글리쉬닷컴의 강사 류양수씨는 “RC에서 점수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독해와 어휘”라면서 “실제 비즈니스 상황에서 의사소통을 한다는 관점에서 문법, 어휘, 독해 능력을 함께 길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길어진 독해 지문에 대처하기 위해 어휘의 폭과 수준을 조금 높여서 준비해야 한다.”면서 “받아쓰기와 따라 읽기를 병행하면서 LC를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헬렌 켈러’ 저시력인연합회장 미영순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헬렌 켈러’ 저시력인연합회장 미영순씨

    ‘빛의 천사’라고 했다. 한평생 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러나 전 세계 맹·농아를 위해 온몸으로 살았다. 헬렌 켈러(1968년 사망),3중 장애를 극복하고 하버드대학까지 졸업한 위대한 사상가로 존경받는다.50대 나이에 “만약 기적이 일어나서 사흘 동안만 눈을 뜰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답은 이러했다. 첫째날-‘나에게 삶의 보람을 찾아준 친절함과 따뜻함, 동료애로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보리라. 그 동정어린 친절과 인내의 산 증거를 발견해내리라. 소중한 친구들을 모두 불러내어 그들 안에 있는 아름다움의 외적 증거를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리라.’ 둘째날-‘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가슴 설레는 기적을 바라보리라. 그리고 잠든 대지를 깨우는 태양의 장엄한 광경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리라.’ 셋째날-‘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리라. 이윽고 밤이 이르러 일시 유예가 끝나고 영원한 암흑이 나에게 다시 닥칠지라도, 미처 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틈도 없이 나의 마음은 광휘로 가득찰 것이다.’ ●여고 2학년 때 실명… ‘고통·희망의 삶´ 한국의 헬렌 켈러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미영순(米榮順·58·정치학박사)씨. 쌀 미(米)자의 성을 쓰는 특별한 가족사를 안고 있다. 경기여고 2학년 때 갑자기 시력을 잃은 후 맹인-반맹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방송통신대와 국민대를 졸업한 뒤 타이완 유학까지 했다. 한·중 수교 이전에 중국 전문가로 활약도 했다. 지난 99년에는 ‘전국 저시력인연합회’를 창설한 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저시력 장애인(약 50만명)들이나 맹인들을 위해 ‘빛의 천사’ 역할을 해오고 있다. 흐린 세상으로 살아온 40년 인생, 경외스러움으로 문득 다가온다. 지난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에 위치한 연합회 사무실에서 미씨를 만났다. 올 1월 건양대 부속 ‘김안과병원’의 지원으로 이 병원 3층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주로 저시력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 상담을 해준다. 인사를 건넸더니 “미안해요, 잘 생긴 사람 같은데 알아보지 못해서.”라며 환하게 웃는다. 목소리가 무척 맑았다. 둥근 모자를 쓴 모습이 얼핏 헬렌 켈러를 연상케 했다. 더듬더듬 안경을 찾는다. 더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 내용에 대해 물었더니 “하얀 쌀밥은 색깔 있는 그릇에 담아주어야 해요. 안 보일수록 밥과 반찬 그릇은 내용물과 다른 색깔이어야 좋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시력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물었다.“남자 여자 구분이 안됩니다. 그저 어떤 형체만 어렴풋하게 아른거릴 뿐이지요.” 5월의 라일락이나 아카시아도 그저 마음에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전국 저시력인연합회 만들어 상담·봉사활동 미씨는 최근 장애인들을 위해 중요한 일을 주관했다. 전국의 시각 장애인들과 함께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란 주제로 글짓기 대회를 열고 나무 심는 행사도 가졌다. 시각장애인들은 남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에 ‘세상과 주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취지에서였다. 가족이 있느냐고 하자 “독야청청이죠.”라는 즉답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시곗바늘을 과거로 돌렸다. 오색찬란하던 세상이 어느날 흐린 세상으로 다가온 것은 고2 겨울방학 때. 까닭없이 시력이 뚝 떨어졌다. 안경을 맞춰 써봤지만 일주일도 안돼 무용지물. 그렇게 반복하기를 4,5차례 거듭했다. 결국 공부밖에 몰랐던 17살 소녀에게 캄캄한 암흑이 찾아왔다. 실명상태였다. 나중에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중2 때 야맹증이 있었는데 비타민A를 복용하면 된다는 말만 믿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화근이었다. 우선 다니던 학교에 휴학원을 냈다. 당시 미씨네 집은 서울 성북구 수유리. 삼양동 소재 여맹원을 찾아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 수유리에 있는 절 화계사를 자주 찾았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희망의 끈´ 놓지 않는 여자 이때 숭산 큰스님과 인연을 맺는다. 하루는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범종 옆에 쭈그려 앉아 있는 단발머리의 여학생 모습이 숭산 스님의 눈에 띈 것. 스님은 미씨를 방으로 불러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고 즉석에서 법문을 들려준다.“자 이 종이에 선을 그어 둘로 나눈 뒤 한쪽에 X, 다른쪽에 Y라고 해보자. 눈에 보이는 X인자는 X1,X2… 등으로 이어지고, 안 보이는 Y인자도 Y1,Y2…등으로 쭉 이어지겠지. 여기에 공통인자가 있다. 그 인자를 찾는 것이 바로 불교이니라.” 잠자코 듣던 미씨는 “스님, 그 공통인자는 Z겠지요. 제가 찾아보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지나 미씨가 반백이 된 뒤 스님을 다시 찾아갔다. 이때 스님은 “티끌처럼 작아도 세상을 품는 넉넉한 쉼터에 연꽃이 피어났구나.”라는 말로 격려했다. 또 미씨가 2004년 수필집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여자’를 펴낼 때 스님은 다음과 같은 추천사로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 장중유리애지도(掌中有理碍之道) 장이칙구인지비(臟裏則救人之悲) -손 안에는 장애를 다스리는 길이 있고, 마음에는 남을 구하려는 사랑이 있네. “아직도 Z는 못찾았지요. 아무튼 눈이 아니라 정신을 통해 사물을 보는 법을 터득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휴학한 지 6개월 후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어렴풋이나마 세상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 미씨는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구나.”하며 돌멩이 하나도, 바람에 쓸려가는 휴지 조각도 아름답게 보였다. 1년만에 다시 복학했다. 교실을 못찾아 헤맬 때도 있었고 배구공을 축구공으로 착각하는 시력에도 불구하고 67년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이어 서울대 법대시험에 응시했다. 첫날 수학과목은 만점을 받았으나 이튿날 독일어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 갑자기 캄캄해져 시험장을 빠져나와 한없이 울기만 했다. 법대를 나와 10년동안 무료변론한 뒤 국회활동을 거쳐 대통령이 되는 꿈이 무너졌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배웠다. 가야금, 장고, 단소, 시조, 한국무용, 요리, 꽃꽂이, 영어회화 등등….73년 방송통신대 가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5개학과에 2년제. 아버지가 새벽에 일어나 강의방송을 녹음하고 낮시간에 딸에게 들려줬다. 교재를 읽어주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도움으로 방통대를 당당히 수석졸업했다. 국민대 정외과에 장학생으로 편입하면서 배움의 열정은 더했다. 집과 학교 통학은 친구들의 도움에 의지했다. 혼자 등하교할 때에는 ‘8’자를 크게 쓴 카드를 이용해 버스를 세우곤했다. 이는 당시 8번 버스종점 기사들 사이에 오랫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80년 국민대를 졸업한 이듬해 타이완 유학시험에 장학생으로 뽑혔다. ●정치학 박사로 한·중관계 전문가 활동 유학시절에도 노트정리를 해주고 빈 종이에 큰 글씨로 써주는 룸메이트와 짝궁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강의는 망원경을 가지고 들었다. 곧 터질 듯한 높아진 안압으로 책 읽기가 너무 힘들어 한번 읽을 때마다 죄다 암기를 해야 했다.84년 중국정치대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내친김에 중국문화대학에서 박사과정까지 밟았다.89년 귀국한 후 ‘세종연구소’와 ‘북방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했다.94년에는 흑룡강대학 객원교수를 겸했다. “마음이 흐리면 흐리게 보이고 밝으면 밝게 보입니다. 주위에서 ‘헬렌 켈러가 미국에만 있느냐.’‘지체장애인 루스벨트도 대통령을 했다.’는 말로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었지요.” 미씨의 부모는 둘 다 세상을 떠나 영등포에서 외롭게 혼자 지낸다. 아버지의 고향은 함북 경성.6·10만세운동에 연루돼 열일곱살에 중국 하얼빈으로 피신했다. 어머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한 구소련 한국교포 2세. 옥사코프스키 여학교를 나와 하얼빈 대학에서 노어과 교수로 재직할 때 아버지를 만났다. 해방되면서 부모는 고향에 들어갔다가 6·25 직전에 월남했으며 48년 서울에서 무남독녀의 미씨를 낳았다. ●성씨를 米자로 쓰는 독특한 가족사 성을 쌀 ‘미’자로 쓰게 된 연유에 대해 “재령 이씨였던 19대 할아버지가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관직에 있을 때 함경도 지방에 쌀 보급을 워낙 잘해서 성을 ‘미’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지금 국내에는 50명 정도가 이 성을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동그라미는 처음 떠난 제자리로 와야 완성이 되지요. 느리지만 한걸음 한걸음 또박또박 처음의 자리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로 살아왔어요. 비록 빈 손일망정 그 빚을 갚고 가야지요.”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8년 서울 출생 ▲67년 경기여고 졸업 ▲76년 방통대 수석 졸업 ▲80년 국민대 정외과 졸업 ▲84년 타이완 중국정치대학 석사 ▲89년 타이완 중국문화대학 박사 ▲89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92년 북방연구소 연구위원 ▲94년 흑룡강대학 객원교수 ▲99년∼현재 사단법인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 ●상훈 2004년 이웃돕기 유공자포상 국민포장 수상. ●주요 저서 눈물 고인 가슴에 눈물 대신 품은 뜻(96년 고려원), 새벽 산사에 가보세요(97년 시공사),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여자(04년 북포스).
  • 加입양 22년만에 모국 온 마누엘 “꿈만 같아요”

    “이게 꿈은 아니겠죠? 한국 땅을 밟게 돼 너무 기쁩니다.” 생후 8개월 만에 캐나다로 입양됐던 마누엘(한국이름 문설희·23·퀘벡대 졸업 예정)이 22년 만에 모국을 찾았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행사 진행요원이던 마누엘은 당시 한국대표단으로 참석했던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 박연재 환경부 정책홍보담당관 등과 만나 인연을 맺었다.“나도 한국인”이라며 모국에 대한 사무친 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동서발전㈜이 다음달부터 넉 달 동안 환경업무와 관련한 ‘인턴십’을 마누엘에게 제안했다. 환경부 직원들도 비자와 숙소 문제 등을 알아보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아 마누엘은 지난 17일 한국땅을 밟을 수 있었다. 마누엘은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4개 언어에 능통하지만 한국어는 서툰 편. 마누엘은 21일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산사(山寺)체험도 해보면 좋겠고, 온천탕도 가보고 싶다.”면서 “앞으로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FIFA선정 준비된 영웅들] (5) 스위스 필리페 센데로스

    지난해 치열했던 독일월드컵 유럽예선에서 스위스를 구한 것은 필리페 센데로스(21·스위스·아스널)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 수비진을 진두지휘하며 같은 조의 프랑스, 터키, 아일랜드의 예봉을 무력화시켰다. 한·일월드컵때 홍명보의 역할을 팀에서 가장 어린 그가 해낸 것. 스위스와 G조에서 맞붙을 한국의 안정환이나 조재진 등 공격수들은 항상 센데로스를 의식해야 한다. 5살 때 유소년팀에 입단하면서 축구와 인연을 맺었고 16세에 스위스 1부리그에 데뷔, 능력을 뽐냈다.13세때 스위스 15세이하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스위스 국기를 가슴에 달기 시작했다.2002년 17세 이하 대표팀 주장으로 유럽청소년선수권대회(덴마크)에서 우승, 조국에 최초의 국제대회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기기도 했다. 아스널,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등 빅리그 클럽팀들이 앞다퉈 그에게 매달렸다. 결국 18세이던 2003년 아스널의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입성했다. 그에게 아스널에서의 첫 해는 ‘악몽’이었다. 일년 내내 계속된 부상에 시름하며 눈물로 지새웠다. 뒤늦게 2004년 10월27일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데뷔했다. 그러나 노장 솔 캠벨(잉글랜드)이 버텨 출전기회가 자주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초 캠벨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았고 철벽수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이후 캠벨이 컨디션을 회복했지만 팀 수비의 중심에는 이미 센데로스가 자리했다. 그의 성장을 가장 흐뭇하게 지켜본 것은 스위스였다. 곧바로 성인대표팀에서 러브콜이 왔다. 지난해 5월 초 월드컵 예선 프랑스와의 결전을 앞두고 중앙 수비수 무라트 야킨이 부상을 당하자 지체없이 센데로스를 발탁했다. 일부에서는 어린 나이를 문제삼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프랑스의 골잡이 다비드 트레제게를 가볍게 봉쇄함으로써 무실점 무승부를 견인,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센데로스는 세르비아계 어머니와 스페인 출신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등에 능통하다. 젊은이 특유의 패기와 열정에다 나이답지 않은 침착성과 노련미를 겸비해 벌써부터 차기 대표팀 주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 센데로스 프로필 ●1985년 2월14일 스위스 출생 ●190㎝,84㎏ ●중앙 수비수 ●스위스성인대표팀 (2005년∼현재), 21세이하 스위스대표팀, 17세이하 스위스대표팀, 15세이하 스위스대표팀, 프리미어리그 아스널(2003년∼현재)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이념 뛰어넘은 ‘사제의 만남’

    “아이고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정정하세요. 제 동창이래도 믿겠습니다.”“이 사람아, 나 아직 끄떡없다네.” 9일 오후 서울 잠실체육관. 휘문중·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휘문인 큰잔치’를 찾은 70대 제자는 아흔을 바라보는 스승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스승은 진보좌파의 원로 경제학자인 김윤환(85) 고려대 명예교수, 제자는 보수우파의 리더 중 한명인 민병돈(71)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현재 경실련과 민주노동당 고문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1952년부터 2년 동안 휘문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고려대 교수로 옮긴 뒤에는 서슬 퍼런 유신치하에서 진보 경제학계를 이끌었다. 반면 민 전 교장은 89년 노태우 정권 초기 육사 교장으로 재직하다 노 정권의 북방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군을 떠난 뒤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인연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통에 본교를 부산으로 옮긴 휘문학교는 서울 광화문 내수동의 한 건물에 임시 학교를 열었다. 김 교수는 민 전 교장의 고1 때 담임으로 일반 사회(정치)와 독일어를 가르쳤다. 민 교수가 옛날 일화를 떠올렸다.“어느날 헌법 수업을 하는데 자네가 당당하게 손을 들고 ‘우리나라 정치환경이 헌법처럼 제대로 되고 있는 겁니까.’라고 물어왔었지. 나는 그때 ‘헌법은 이상이지 꼭 그대로 실행되는 건 아니다.’라고 답해주면서 자네가 대단한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네.” 두 사람의 인연은 학교를 떠나서도 가끔씩 이어졌다. 가장 극적인 만남은 신군부가 집권하던 80년에 이뤄졌다. 김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134명의 지식인이 서명한 시국선언에 동참해 고려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당시 국보위 대령이던 민 전 교장은 스승을 찾아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논의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뜻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4년 동안 교직을 떠나게 된다. 민 전 교장은 “영관 장교의 신분으로 힘이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안타까웠다.”고 돌아봤다. 이념에 대한 질문에 김 교수는 “우리 나이엔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지.”라고 호탕하게 웃었고 민 전 교장은 “이념과 상관없이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내게 훌륭한 가르침으로 각인된 분이기 때문에 존경할 뿐”이라고 말했다.글 사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한영외고 서반아어과 2학급 증설

    내년부터 특수목적고인 한영외고에 서반아어과 2개 학급이 증설된다. 27일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한영외고가 최근 학년당 서반아어과 2개 학급(학급당 35명) 증설을 신청해 교육과정과 교원·학교 시설 확보 등을 검토한 뒤 인가하기로 했다. 한영외고는 학년당 영어과 2개반과 중국어과 2개반, 독일어과 2개반, 프랑스어과 1개반, 일어과 1개반 등 모두 8개반이 있으며 총정원은 280명이다.2007학년도부터 2개반이 추가되면 1학년 정원이 350명으로 늘며 서울지역 6개 외고 모집인원도 2006학년도 2100명에서 2170명으로 1.59% 증가한다.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외고 구술·면접이 당락 좌우

    외고 구술·면접이 당락 좌우

    2007학년도 전국 외국어 고교의 입시에서는 영어평가와 구술·면접이 당락을 좌우할 전망이다. 서울지역 외고 경쟁률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3일 특목고 입시 전문기관인 하늘교육에서 분석한 결과다. 대원외고의 일반전형에서는 내신성적 최고점과 최저점간 격차가 지난해 40점에서 올해 33.3점으로 줄었다. 독일어와 불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능력우수자 전형에서는 기존 해당 외국어듣기평가가 없어진 대신 영어 듣기평가가 실시된다. 명덕외고도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에서 내신등급을 기존 9등급에서 6등급으로 축소했다. 이화여자외고도 기존 학교내신으로만 신입생을 선발하던 방식을 바꿨다. 모집인원의 40%는 학교내신으로, 나머지는 학교내신과 구술면접으로 각각 선발한다. 서울외고의 일반전형 내신총점도 230점에서 200점으로 낮아지면서 내신비중이 76.7%에서 74.1%로 낮아졌다. 한편 올해부터 서울과 경기지역 외고 입시가 같은 날 실시됨에 따라 지난해와 달리 상위권 학생이 서울권 외고에 몰릴 전망이다. 하늘교육에서 최근 초·중학생 4297명을 대상으로 지원희망 특목고를 조사한 결과, 대원외고가 선호율 13.5%로 1위를 차지했다.2위는 민족사관고로 6.2%였다. 당장 올해 특목고 입시를 앞둔 중3년생들의 선호도에서도 대원외고(23.0%)가 1위였고 지난해 1위였던 외대부속외고(15.9%)는 2위로 밀려났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獨·英 언론전쟁 터지나

    독일이 단단히 화가 났다. 영국의 한 대중지가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엉덩이 사진을 신문에 게재,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에서 최대 부수를 발행하는 대중지 더 선은 지난 17일자에 수영복을 입은 메르켈 총리와 엉덩이를 드러낸 뒷모습 등 사진 2장을 공개했다.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던 메르켈 총리를 찍은 것이다. 선은 ‘독일 하원(Bumdestag)의 대장’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달았다. 독일어로 하원 철자는 ‘분데스탁(bundestag)’이다. 앞 세 자인 bun에다 엉덩이를 의미하는 속어인 ‘Bum’을 붙여 ‘총리의 엉덩이가 크다.’는 점을 강하게 연상시켰다. 기사에서도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경제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칭찬하면서도 “엉덩이 아래로 내려온 자신의 속옷도 올리고 있다.”고 빈정댔다. 또 속옷을 내린 엉덩이 사진 설명으로 “독일 경제가 더 이상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달았다. 독일 경제를 메르켈 총리와 성적으로 연관시켜 비유한 것이다. 토마스 스테그 독일정부 대변인은 “전통적인 영국의 예의범절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독일 프란츠 요제프 칼럼니스트는 “독일은 영국 여왕을 그처럼 비하한 적이 없다.”면서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당신(영국)을 쓸어버릴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는 정장 차림의 메르켈 총리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빌트는 ‘영국인이 우리의 총리를 우롱했다.’는 제목으로 거세게 반발했다. 이 신문은 “도대체 이런 증오심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라고 물었다. 메르켈 총리도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CNN은 19일 “메르켈 총리가 해당 언론사에 대해 고소 등 법적 절차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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