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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유일 유아용 도서전문서점 「여우오줌」대표 권경미씨(인터뷰)

    ◎“어린이에 꿈·모험 심어줄 책을 팔지요”/고양성사동 아파트 밀집지역에 위치/잡지사서 일한 경험 살려 양서만 취급/국교생 독서회원제 운영… 도서대여도 현재 전국의 5천여개의 서점 가운데 전문서점은 몇십곳에 불과하다.어린이 책 전문서점은 더더욱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경기도 고양시 성사동의 아파트 밀집지역에 있는 「여우오줌」은 그 가운데 하나다.주위 아파트들의 넓이는 거의가 20평을 넘지 않는다.결혼한지 몇 년 되지않는 사람들이 주로 산다.취학전 자녀가 대부분이다. 기껏해야 국민학교 저학년이다.이들이 「여우오줌」의 고객이 된다.따라서 진열대는 취학전 어린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여우오줌」은 이처럼 드문 어린이서점 가운데서 유일한 유아용 책 전문서점이라고 할수 있다. 「여우오줌」의 주인 권경미씨(29)는 『어린이 서점의 주인은 단순히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닌 독서상담역을 겸해야 하는것이 특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좋은 책만 가져다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아이들의 눈길만을 끌려고 만든 책은 감동을 줄수가 없지요.아이들을 위한 책과 영합하는 책은 제목만 봐도 구별이 되요』 「여우오줌」에 진열된 책은 유아용 2천여권과 국민학생용 1천여권 등 모두 3천여권으로 결코 많다고 할수 없다.가게 면적이 좁은 이유도 있지만 이처럼 좋은 책만 선별하는 권씨의 엄격함 때문이다. 『유아용 책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은 대단합니다.꼼꼼히 다 읽어보고 나서야 구입하지요.그렇지만 많은 엄마가 「이 책이 아이에게 얼마나 재미있을까」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 아이를 영재로 키우는데 도움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권씨는 또 『유명상표의 옷이 선호되듯 내용에 관계없이 몇몇 대형출판사에 맹목적인 신뢰감을 가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우오줌」은 국민학생을 대상으로 한 독서회원제도 운영하고 있다.현재 회원은 1백20명으로 연회비 2천원을 내면 책 한권을 5백원에 일주일 동안 볼수 있다. 『회원이 되면 처음에는 공포나 모험을 다룬 책들을 고르지요.점차 책방에 오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명작에 손길이 가는 것을발견할수 있습니다.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독서습관도 좋아지는 것을 알수있어요』 권씨의 우리 출판계에 대한 바람은 유아용일수록 외국것을 베끼지 말고 창작에 힘써 달라는것.그는 또 『30권 짜리 전집이라면 보통 10권씩의 좋은 책과 보통 수준,수준이 떨어지는 책이 섞여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전집류의 낱권판매가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권씨는 현재 전집을 헐어 낱권으로 파는 「모험」도 하고 있다. 국문과 출신으로 잡지사에 일한 경험이 있는 권씨는 『그래도 책이 가장 친근한데다 아들 성지(3)에게도 좋을 것 같아』지난해 4월 책방 문을 열었다.「여우오줌」은 쉽게 기억되고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킬수도 있을것 같아 생각해낸 이름.그는 『유아용 책 만큼은 상업성보다는 진정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며 「여우오줌」도 당연히 여기에 해당한다』고 힘을 주었다. 권씨는 『이것도 장사인데 장사 꾼 취급을 안받고 엄마들로 부터 오히려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것이 「여우오줌」을 운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이자 보람』이라면서 크게 웃었다.
  • 초·중교에 과학책을 보냅시다(사설)

    서울신문사는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과 함께 전국의 초·중학교에 과학책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과학기술의 시대」인 21세기의 주역이 될 우리 청소년들이 과학적 사고와 창의력 및 탐구력을 갖추고 자랄수 있도록 국민적 지원의 힘을 모으고자 하는것이다. 한 나라의 생존과 번영은 이제 과학기술이 좌우하게 됐다.치열한 국제경제전쟁속에서 우리는 선진기술장벽을 뛰어 넘기 위해 과학입국을 국가의 최대목표로 삼고 있으며 오는 2000년까지 선진7개국 수준의 과학기술개발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무엇보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확대,과학기술 인력의 양성을 들 수 있다.이를 위한 국가정책의 강력한 추진에는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과 참여의 폭 확대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과학기술 발전의 주체로서의 국민들의 총체적인 합의를 얻기 위한 과학풍토 조성,과학의 대중화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학교에서의 과학교육과 학생 및 일반 국민 대중 계몽을 위한 과학독서 운동이다.특히 대중계몽을 위한 과학독서운동은 우수과학인력 양성을 위한 지름길이 될수도 있다.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독서는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력을 미친다.과학은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도 키운다. 그러나 우리의 과학독서는 매우 빈약하다.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독서인구중 과학도서를 읽는 비율은 0.5%에 불과하고 국민학교 도서관(실)의 과학책은 전체의 5∼10%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 오래된 책들이어서 내용도 낡고 맞춤법도 틀리는 경우가 많다. 선진외국의 경우처럼 도서관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과학책 보내기 운동을 굳이 펼칠 필요가 없다.국내에서 출판된 주요 과학도서는 도서관에서 구입·비치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의 도서관 현실은 92년 현재 전국의 공공도서관이 2백73개로 인구 15만6천여명에 1개꼴이며 국민1인당 평균장서수가 0.18권 정도다.또 학교도서관의 학생1인당 평균도서구입비는 2백40원에 불과하다. 과학책 보내기 운동은 바로 이처럼 열악한 도서관 현실에서 우리의 시급한 과학기술 입국의 필요성 때문에 시작됐다.마침 7일 개막된 「93서울도서전」에 참석한 대통령도 『벽지학교와 불우청소년들에게 과학도서를 많이 보내도록 하고 공공도서관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21세기의 꿈나무를 키울 과학책 보내기 운동에 뜻있는 많은 이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 “과기입국”의 목소리는 큰데…/초·중학교에 과학책이 드물다

    ◎전체의 5∼10%… 그나마 묵은책이 대부분/「서울신문·과기진흥재단 과학책 보내기운동」 계기로 본 실태 올해는 교육부가 정한 「과학교육의 해」요,문화체육부가 선정한 「책의 해」로 곳곳에서 책잔치가 열리지만 초·중학교 도서실에는 과학책이 없다.미래의 일꾼들의 못자리인 학교에 과학적 내용을 담은 책이 없어 과학기술의 우위가 국가의 우위로 연결될 21세기를 앞두고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10평 규모의 도서실을 갖춘 서울 종로의 K국민학교. 도서실에는 약2천여권의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동화책들이고,과학관련 책은 발명이야기나 그림백과 등 3∼4종 1백여권 정도이다. 학교에 도서실은 갖추지 못했지만 올해 독서를 많이 시키기로 한 서울 은평구의 한 학교는 학생들에게서 책을 기증받았다. 기증받은 책중에서 볼만한 것으로 60권을 골라 1주일에 한 학급씩 책이 담긴 바구니를 돌린다.그러나 이 책 바구니에서 과학책은 한권도 찾을수 없다. 열악한 과학도서 실태는 지방 시·군·읍단위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전교생이 1백57명인 전북 순창군 금과중학교는 도서실에 책은 4백70여권 가량 있지만 과학책은 고작 60여권 정도 뿐이고,충남 당진군 탑동국교는 1천5백여중 과학관련책은 1백여권 뿐이다. 이 학교 김영국교감(54)은 『1백여권도 대부분 오래전에 나온 것들로 활자도 나쁘고 맞춤법도 틀린다』며 『1년 예산이 수십만원 정도라서 과학책 구입은 뒤로 밀릴수 밖에 없다』고 털어놓는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은 「국민학교도서실 실태조사」를 했다.이 결과 4백90개 조사대상학교중 학급당 1백권 이상 단행본을 갖춘 학교는 59·4%였으나 책들은 대부분 학생들이 가져온 것들로 볼만한 책들이 적었고,과학책은 전체의 5∼10%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담당교사들의 모임인 초등과학교육정보센터 박종규교사(48·서울예일국교)는 『과학책과 시청각자료는 청소년들에게 과학적 원리를 쉽게 해설해주고,미래의 과학자로서의 꿈을 키워줄 수 있다』며 21세기 미래를 준비해야 할 이때에 『일선학교에 기초과학 해설서,미래 첨단과학해설서,과학자전기,교양과학도서,생활과학도서,과학교육용 비디오테이프나 슬라이드 등 과학을 친근하게 접하면서도 창의력과 탐구력을 키울 체계적인 자료의 지원이 아쉽다』고 밝혔다.
  • 학교주변 폭력배 1,150명 구속/경찰청/전국 8일간 일제단속

    ◎3천3백명 검거… 9월까지 계속 경찰청은 4일 학교주변에서 금품을 갈취하거나 여학생을 폭행하는등 학생들을 괴롭히는 폭력배 3천3백66명을 적발,이가운데 1천1백50명을 구속하고 2천2백16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최근들어 범죄유발업소나 호화사치업소 주변에 청소년 폭력배들이 늘고 이들이 유흥비를 마련하기위해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뜯는등 피해사례가 그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지난달 23일부터 말일까지 8일간 일제단속을 벌여 이들을 사법처리하는 한편 오는 9월말까지 계속 단속키로 했다. 경찰의 이번 단속으로 학교 안팎에서 폭력서클을 만들어 폭행을 일삼던 3백70명이 검거됐고 통학로 주변폭력배 1천6백96명이 단속되는가 하면 여학생들에게 성폭행을 가한 71명도 사법처리됐다. 경찰은 앞으로도 ▲학교내외 불량 폭력서클 ▲입시학원·독서실및 통학로주변 불량배 ▲제적생등 무위도식 불량배 ▲만화가게·비디오가게등 음란물취급소배회 불량배 ▲볼링장·음악다방등 놀이공간주변 폭력배 ▲본드등 환각물흡입자 성폭력사범등에대해집중 단속을 벌여 나갈 방침이다.
  • 6공 경제실세 어떻게 지내나/최각규·서영택씨 미 대학 연수

    ◎강현욱씨 지구당 맡아 정치꿈 새 정부 출범 이후 「개혁태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최근 최각규 전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비롯,이용만 전재무·서영택 전건설부장관등 6공 경제장관들 가운데 일부는 해외유학을 떠났거나 곧 나갈 계획이다. 재임중 안정시책을 펴온 최전부총리는 지난주 MBC­TV가 방송한 「부총리들은 말한다」는 신경제 진단 특집 프로그램에도 출연을 사양한 채 새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그는 미국 하와이대 부설 동서문화센터에서 6개월 동안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연구활동을 하기 위해 29일 출국한다.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인 이전재무장관은 일본 게이오(경응)대학에서 1년동안 연수할 계획으로 부인과 함께 지난 달 30일 떠났다.지난 14대 총선시 출마설이 돌았던 그는 귀국 뒤 고향인 강원도 평강 근처의 철원·화천 지역구에서 입후보할 가능성이 크다는게 주변의 얘기다. 경제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진념전동자부장관은 오는 8월께 미국 스탠퍼드대학으로 가 경제사 또는 경제사상사를 연구할 계획이다. 국세청장으로 더 알려진 서전건설부장관도 올 하반기 미국 하바드대에서 우리나라 세제 전반을 연구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봉수 전상공부장관은 『독서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겠다』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고 강현욱 전농림수산부장관은 14대 총선때 출마했던 전북 군산·옥구 지구당 위원장직에 복귀,정치 재기의 꿈을 키우고 있다. 역시 경제학박사 학위를 가진 이진설 전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은 송파구 문정동 자택 부근의 컴퓨터학원에 다닌다.아직 구체적인 유학계획은 없다. 대체로 정통 경제관료들이었던 6공의 마지막 경제장관들은 한편으로 정치권과 연계된 6공의 경제실세들과는 전혀 입장이 다른데도 그들에 대한 비리조사설에 얹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현실에 무척 심기가 불편하다. 경제계에는 최근 동화은행 안영모행장의 구속을 계기로 6공 정부에 몸담았던 L장관·L의원·K의원등의 수뢰설이 널리 퍼지고 있다.개혁태풍으로 누가 언제 「사정의 칼」에 맞을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현재의 상황에서 이들 6공 경제장관들도 몸조심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 같다.
  • 택지개발지구/유치원용지 전용 가능

    ◎50%까지… 학원·탁아소 등 설립 허용 앞으로 택지개발 사업지구 내 유치원 용지는 음악·미술·속셈·태권도 학원이나 독서실·탁구장·탁아소 등으로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또 택지개발 지구의 토지를 수의계약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자격기준이 예정지구 지정고시일 이전부터 땅을 소유한 사람으로 제한됨으로써 지구지정 이후 택지를 공급받으려는 투기행위가 사라지게 됐다. 건설부는 이같은 내용의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24일 입법예고했다. 택지개발지구 내의 유치원용지는 현재 다른 용도로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나 개정안은 토지이용도를 높이기 위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른 시설로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정주영씨 “의욕상실”/왕 회장 요즈음 어떻게 지내나

    ◎승용차로 늑장출근… 경영보고엔 침묵/자중·방황 추측속에 독서·외출로 소일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은 요즘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가끔 현대건설 간부들로부터 보고를 받지만 특별한 지시를 내리지는 않는다.대략 아침 8시가 넘어 승용차로 출근,점심 때 외출한다.예전부터 알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방미 닷새만에 귀국 그는 지난 18일 출국,미국 LA와 일본 도쿄의 현대지사를 방문하고 당초 일정을 하루 당겨 지난 22일 귀국했다.외견상으론 업무차 방문한 것이지만 휴식의 성격이 짙었다는 것이 주위의 시각이다.두 곳에서 업무보고를 받았지만 특별한 언급 없이 재정상태에만 관심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예전과 달리 정명예회장의 근황에 대해 밝히길 꺼린다.알릴 것도 없지만 알려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당초 26일로 예정됐던 선거공판이 다음달 10일로 연기됐기에 더더욱 그렇다.사실 그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입건에 심리적 부담 정명예회장이 일정을 하루 당겨 귀국한 이유나 가끔만나는 지인들이 누구인지,무슨 책을 읽는지 관계자들은 잘 모른다.수행비서는 알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왕회장이 「자중」하고 있는 만큼 이에 따른다는 태도이다. 정명예회장은 지난달 11일 「정치외도」를 마치고 그룹에 복귀,15일 정례 사장단회의에 참석했다.그는 프로야구등 운동팀 육성과 고속도로변 광고문제를 거론하며 그룹 이미지 개선을 역설했다.그 이후 또 다시 침잠했다.공식적인 대내외 행사에 일체 발을 끊은 것이다.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앞으로는 자동차가 주력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현대건설에 강한 애착을 갖고있는 그가 정세영회장이 은근히 야심을 키우는 것으로 알려진 자동차사업을 지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 재계의 설명이다.그러나 실제로는 경영에 전혀 간섭을 않고 있어 그의 의중을 헤아리는 사람이 없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도보출근과 아침체조도 요즘은 끊은(?)상태이다.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구상인지,고민인지는 알 수 없다.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심적부담이 크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자신의 심복들이 잘린 상황이어서 매사 의욕이 없어 보인다고 전해진다. ○옛 친구오 자주 어울려 정명예회장의 이같은 모습이 대선 후유증인지,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전략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다시 복귀했지만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언제,어디서나 왕성한 활력을 과시하며 자신만만하던 그는 아직도 「시련」의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 명지대,“책 1백권 읽어야 졸업”/공통필수 과목으로 지정

    ◎내녀부터 시행/독후감 제출­토론 의무화 명지대(총장 이영덕)는 94학년도부터 「독서강좌」를 「공통필수과목」으로 지정,실시키로 했다. 이에따라 명지대 학생들은 재학중에 적어도 1백권이상의 책을 읽어 학점을 따야만 졸업을 할수 있게 됐다. 학생들의 인격교육강화를 위한 이같은 조치는 국내대학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조치로 대학가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독서강좌」(가칭)는 교수들이 엄선한 동·서양 고전및 현대의 명저 1백권을 재학생들에게 1∼3학년 6학기동안 읽게한 뒤 1권에 5장내외 총5백여장의 독후감 또는 서평을 제출케하는 새로운 「학과목」이다. 구체적 강의진행방법으로는 학생들로 하여금 매주 지정된 책을 읽게 한뒤 세미나형식의 강의시간에 지도교수의 해제등 독서지도와 함께 토론시간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명지대는 이를위해 「명저 1백선위원회」를 구성,이미 사회과학·자연과학·문학·음악·예술·철학·역사·교육·종교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1백권의 목록과 이 학교 전문분야의 교수들이 쓴 각 도서의 해제를 작성해 놓았다. 명지대는 또 독서강좌를 전담지도하기 위해 전임조교제나 연구원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다. 「명저 1백선 위원회」가 확정한 「학기별 독서프로그램」에 따르면 1학년 학생들은 1학기에 「삼국유사」「열린 사회와 그 적들」「시간의 역사」「수학은 아름다워」「리바이어던」「죄와 벌」등 20권,2학기에는 「에밀」「햄릿」「재미있는 물리여행」「지구를 살리는 50가지 방법」「자본론」등 20권을 꼭 읽어야 한다. 학생들은 또 2학년 1학기에 「탈무드」「삼국사기」「파우스트」「알기쉬운 양자역학」「인간과 디자인」등 15권을,2학기에 「순수이성 비판」「첨단무기 시리즈」「영상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즐기면서 배우는 물리학 산책」「역사의 연구」등 15권을 읽어야 한다. 3학년 1학기에는 「실락원」「고문진보」「지구환경보고서」「서양미술사」「주역」등 15권,2학기에는 「목민심서」「현대사상의 형성」「국부론」「수학의 확실성」「논어」등 15권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50)

    ◎길림시절:9/「유길학우회」 활동의 허구/“이준·안중근의 독립투쟁 비판” 주장/27년엔 공산당 영향력 없어 불가능/종교타파 주도자,자신서 여선생으로 바꿔 회고록에서는 길림소년회와 유길학우회가 한 사업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⑴조기회…아침마다 지구별로 열었다.일요일은 모든 회원들이 북산에 가거나 그 밑의 운동장에 가서 체육경기를 했고 가창행진도 하였다. ○“노동이 낫다” 인식케 ⑵종교타파…김일성이 조선인소학교의 여선생을 시켜 종교를 믿는 학생에게 하루종일 하느님에게 빵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였다.그 다음에 여선생에게 학생들을 데리고 밀 이삭을 주워 그것으로 빵을 만들게하여 먹을 것을 얻는 데는 「하느님」보다 노동이 낫다는 것을 인식시키도록 하였다.또 소년회원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보고 「소년 애국가」·「조선인 길림소년회가」같은 혁명가요를 보급하였다. ⑶국어강습…27년 여름에는 중국소학교에 다니는 소년 등 우리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20일동안 국어를 가르쳤다.「조선사람은 조선을 알아야 한다」란 구호를 내걸었는데 계영춘·김원우·박소심이 강의에 출연하였다. ⑷과외활동…용담산 원족,강남공원 야유회,문화유적 참관,강연회,토론회,학습회,웅변대회,독서발표회,노래보급,연예공연 등을 다양하게 조직하였다. ⑸비밀활동…강남공원·북산 등에서 야유회의 간판을 가진 비밀회의를 많이 하였다.북산의 약왕묘 지하실은 그들의 전용 회의실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하였다. ⑹강연…오동진·이탁 등 정의부 지도자들은 국치일(8월29일),3월1일,단군 탄생일(10월3일)등 주요 기념일에 교포들과 청년학생들을 모아 놓고 강연회와 토론회를 자주 조직하였다.김일성도 연설했다. ⑺토론회…27년 여름에 손정도네 예배당에 유길학우회 성원들을 모아 놓고 이준의 방법이 옳은가,안동근의 방법이 옳은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가졌다.이 토론회를 계기로 조선을 독립시키는 데는 테러나 청원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진로가 탐구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⑻계몽사업…소년회원들까지 동원하여 강동·육대문·신안둔·대황구와 같은 농촌마을에 나가 농민들의 일손을 도와주면서 그들을 계몽하였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활동」의 실태를 분석해 보자. 첫째로 손정도의 예배당에서 당시의 학생들이 일제 요인을 향한 테러나 강대국을 위한 청원의 방법으로는 나라를 찾을 수 없다고 토론했다는 것은 민족주의운동 진영에 공산주의 사조가 침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둘째로 종래는 김일성 자신이 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었던 종교타파 문제가 이번 회고록에서는 그 주인공이 「조선인소학교」의 여선생으로 바뀌었다.이 학교는 일본기록이 말하는 「신개문 밖의 예배당에서 경영하는 유치원」이다.공산주의 사조는 당시 유치원 선생에까지 파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부 계통” 입증 따라서 이러한 일들은 29년 께가 아니면 생길수가 없다.김일성이 주장하는 27년 상반기에는 길림지방에서는 민족주의진영 세력이 압도적이었고 조선공산당의 영향은 아직 그 내부에까지 침투되지는 못하였다. 셋째로 국어강습은 회고록 본문을 읽어보면 김일성이 한 일이 하나도 없다.대신 조선공산당 재건파의 하나인 서울상해파의 간부 박소심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 사실은 29년에 서울상해파가 국어강습을 지도했고 그들이 계영춘,김원우 등 정의부 좌경분자들을 강사로 끌어들인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넷째로 오동진,이탁 등 정의부의 지도자가 강연했는데 이런 강연을 김일성도 했다고 하고 있다.이것은 그가 국민부 계통이었다는 것을 실토한 대목이다.소년회장으로 있었던 29년 무렵 그가 소년들 앞에서 「강연」을 한 것 자체는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다. 다섯째로 29년 당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는 여러 종파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과외활동,비밀모임,대중 계몽사업을 벌였다.그들은 민족주의 단체에 적극적으로 침투하여 서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썼다. 이 때문에 국민부 인사들은 혹은 좌경화되고 혹은 「반동」으로 몰리고 동족상잔의 가지가지 비극이 연출되었다.정의부계통의 청소년들도 조선공산주의운동의 강력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김일성도 그런 소년의 한 사람이었다. 회고록의 기술을 분석해보면 이상과 같다.그러나 회고록은 이러한 진실을 계속 외면하고 29년 께에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선상에 나타난 일련의 현상을 27년에 끄집어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 총영사 질겁” 과장 『조선인길림소년회,조선인유길학우회,마르크스 레닌주의 독서조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길림일대에서는 「ㅌ·ㄷ」성원들을 핵심으로 하는 새세대의 혁명역량이 급속히 자라나게 되었다. 길림에 주재하고 있던 일본총영사까지도 이것을 간파하고 우리의 활동에 주의를 돌리게 되었다.길림 일대에서 새로운 혁명세력이 등장하여 그것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데 질겁한 총영사는 자기나라 외무대신에 보낸 공식 보고문에서 그 대오가 조직력이 강하다는 것과 장차 무서운 존재로 나타나게 될 위험성이 있으니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는 것을 경고하였다』 ①「세기와 더불어 1」241면 이하 ②같은 책 2백46면
  • 학습대(새상품)

    필기각도와 독서각도를 10단으로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하다.거리를 조절할 수 있고 4가지 이상의 학습자료를 동시에 올려 놓을 수 있다.야외에서는 화판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아이디어 발명품 추천제품.에디슨교구.2만2천원.504­4004.
  • 김우창 비평세계 한눈에/「시인의 보석」 등 전집5권 완간

    ◎열린사고·변증법에 바탕둔 평론 탁월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고려대 김우창교수(57·영문과)의 평론이 전집으로 묶여 나왔다.5권짜리 전집가운데 이번에 새로 쓰여진 책은 「시인의 보석」,「법없는 길」,「이성적 사회를 위하여」등 3권.이는 지난77년과 81년 발간당시 「한국인의 손으로 씌어진 비평문장이 도달할 수 있는 우아미와 세련미의 극한」이라는 평을 받았던 「궁핍한 시대의 시인」과 「지상의 척도」이후 12년만에 다시 만나는 김우창평론의 완결편이다. 이번 전집발간으로 문학,철학,정치학,사회학,심리학,역사,미술,도시환경,교육등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사유체계와 치밀한 사색력을 엿볼 수 있게 됐다.평론가의 전집발간은 오는 6월 완간을 앞두고 있는 「김현전집」16권에 이은 2번째규모. 전집전편에는 열린 사고와 변증법적 인식에 바탕을 둔 그의 비평원리가 꿰뚫고 있다.직관이나 통찰력보다는 경험적,논리적 적합성을 중시,왜 「우리 시대 최대의 인문적 지성」으로 일컬어지는지를 실감케 한다. 제3권 「시인의 보석」은 염상섭,황석영,이문구의 소설과 황동규,김광규,최승호등의 시에 대한 개별 비평과 소설및 시전반에 관한 고찰,그리고 문학이나 문화에 대한 생각등을 담고 있다.4권 「법없는 길」에서는 음악,그림,조각,독서,포스트모더니즘 같은 문화예술전반에 걸친 해박하고 철저한 지식들을 칼날처럼 휘두르고 있다.마지막 권에 해당하는 「이성적 사회를 위하여」의 경우 부제로 달려 있는 「사회와 정치에 관한 에세이」가 암시하듯 시론성격의 글들로 채워져 있다. 문학평론가 이동하씨(서울시립대)는 『한국의 평단에서 이 책의 저자가 이룬 스타일면에서의 성취는 아직 그 누구도 넘어서지 못한,앞으로 유례가 나오지 않을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또 이번 전집발간으로 16년에 걸친 김우창비평세계의 진행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다시쓰는한국현대사」사회과학전문「돌베개」(책의해/우리가만든책:9)

    ◎출판사 자천도서 시리즈/해방 50년사 새 시각서 정리/북한사,민족사에 포함 젊은독자들에 인기 인문·사회과학전문출판사로 출판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돌베개(대표 임승남)가 펴낸 「다시쓰는 한국현대사1·2·3」(박세길지음)은 해방50년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정리한 스테디셀러이다. 88년 11월 1권 초판발행이후 제3권이 완간된 지난해 10월까지 이 분야서적들의 전반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판을 거듭하면서 25만부이상이 꾸준히 팔려나갔다.이 책이 호응을 얻은 것은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한국민중사」(풀빛),「바로 보는 우리 역사」(거름),「한국현대사」(풀빛)등 일련의 현대사재조명작업에 의해 현대사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이 달라진데 힘입었다. 대학생독서실태조사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독서토론회교재로 선정될만큼 젊은층을 사로 잡은 「다시쓰는…」은 이러한 시대흐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외세가 민족사에 미친 영향을 전면에 내세운 문제의식이 새로웠다.또 북한사를 민족사의 범위안으로 껴안으면서 동시대를 살아온 젊은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했다는 서평을 받았다. 한국현대사를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휴전에서 10·26까지」「19 80년에서 90년대초까지」로 크게 3분해 더듬어본 이 책은 시각의 전향성과 현대사에 대한 흡인력 강한 정보제공서란 측면에서 생명력을 인정받았다. 1·2권은 1945년 8월15일 해방에서부터 1979년 10·26사태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민중의 요구와 역할을 중심으로 외세와의 관계를 부각시키면서 남·북을 민족사의 공동주체로 설정하는데 서술의 주안을 두고 있다.3권은 우리들의 기억속에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다.80년 「서울의 봄」∼한중수교까지를 통사적으로 서술하면서 90년대의 진로를 전망했다.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붕괴의 원인과 그 파장 그리고 세계경제의 블록화추세,일본의 군사대국화,핵사찰문제등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발생한 역사의 분수령이 된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의 큰흐름과 맥을 짚어 주고 있다. 한철희주간은 『이 책은 일반대중이 우리 현대사에서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가에대한 답을 들려 주고 있다』고 기획의도를 밝히면서 『특히 우리가 처한 현실상황을 국제정세와 한반도주변정세,국내상황,민중의 역량등을 민족주체적 입장에서 연계시켜 분석했다』고 말했다.
  • 67개 문화유적 정비·부수공사정착 지원

    ◎문체부 주요업무 보고내용/청소년프로그램 1백50종 개발/도덕성회복 범국민적 운동전개 ▷문화예술분야◁ ◇가치관 재정립과 도덕성 회복 ▲인·의·예·지·신 등 선현의 생활체험을 확산시키기 위한 「고전의 세계」등 교재발간과 「이달의 문화인물」사업 활성화 ▲윤리와 도덕성 회복을 위한 범국민적 문화운동 전개 ▲독서 생활화 사업 등 6개 분야 39개 사업을 전개해 전국민이 적극 참여토록 적극 유도. ◇지역문화의 균형 발전 ▲시·도 단위 종합예술제 등 지역 문화예술행사 70개를 중점 지원 ▲국·공립 예술단의 지방 순회공연 확대▲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방문화원진흥법 제정 추진. ◇민족문화 보존 및 전승 ▲경복궁과 창덕궁 등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유산 복원 ▲신라·백제·가야·중원·영산강 유역 등 5대 지역 문화권 67개 유적 정비 ▲오는 4월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복원 완료하는 등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를 순차적 복원 추진 ▲안재호와 오일도의 생가 등 1950년 이전까지의 근세역사 문화인물 유적 40여건 정비. ◇문화 기반시설확충 ▲예술의전당 운영합리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추진 ▲대구·부여·김해·제주 등 국립지방박물관 건립 ▲시·도 단위의 종합문예회관 계속 건립 ▲96년까지 4백30개의 공공도서관을 세워 선진국 수준인 10만명당 1개의 도서관을 확보하고 도서관 전산망을 확충해 정보의 공급기능을 확대. ▷체육청소년분야◁ ◇청소년 수련터전확충 ▲청소년중앙공원(독립기념관 동쪽기슭)과 한국청소년수련마을(강원도 평창군)을 건립 ▲전국 6천5백20여곳의 문화원 체육관 운동장을 여가공간으로 개방 ▲96년까지 5천1백명의 청소년지도자를 양성,관련 단체등에 의무배치 ▲97년까지 1백50종의 수련프로그램개발 보급,자율성과 책임성함양 ▲문화예술시범학교 30개교 지정및 수련활동과 문화현장학습 학습평가 반영추진 ◇불우청소년복지대책 ▲2백곳의 야간공부방을 올해안에 2백67곳으로 확대 ▲지방청소년 상담실 10곳 설치운영 ◇국민생활체육진흥 ▲누구나 참가할수 있는 생활체육프로그램을 개발,주2∼3회 운동하는 인구를 97년까지 50%까지 확대 ▲시군단위 운동장12곳,체육관 5곳,동네체육시설 5백곳,실내빙상장등 사계절체육시설 5곳 조성 ◇우수선수육성 ▲신인선수8종목 3백명 후보 27종목 1천명을 육성해 올림픽등에 대비 ▲태릉선수촌숙소신축 ◇올림픽성과 확산 ▲「올림픽기념관」등 건립및 한민족체전과 서울평화상 재정립 ◇국제대회유치및 청소년국제협력 ▲태권도의 올림픽종목채택추진 ▲96동계아시안게임및 2002년 월드컵 남북공동개최 추진 ▲중국 쿠바와 체육교류협력추진 ◎공보처 퇴폐언론 자율정화활동 등 강화/종합유선방송 95년초 실시 추진 ◇언론의 자유영역 확대와 발전을 위한 지원 ▲구시대의 잔재인 「규제적 발상」을 완전 청산하여 문민시대에 걸맞는 언론자유를 창달할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기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연수활동도 적극 지원한다. ◇정부시책 정보의 적극적인 공개관행 정착 ▲주요정책의 구상입안,결정집행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기회를 확대한다.▲각부처의 정기·부정기 브리핑제도를 정착하고 기자실 개방등 언론의 취재영역을 확대한다.▲부처내 정책결정과정에 공보관 참여를 관행화하는등 각부처 공보관제도를 활성화한다. ◇언론자유에 조화되는 사회적 책임의 제고 ▲언론사별 자발적 내부윤리강령을 제정 시행토록 권고하는 한편 잡지·주간지협회의 퇴폐언론 자율정화활동을 강화하고 광고의 윤리성 제고를 위한 광고자율심의 기구의 설립을 지원한다.▲언론의 인권침해사례를 고발하고 시정 요구할수 있도록 법개정을 추진,언론중재위의 중재기능을 확보토록 한다.▲신문발행부수공사제도(ABC)의 조기정착을 적극 지원한다. ◇국민과 국가에 유익한 방송의 질적도약 추구 ▲KBS로 하여금 국민에 유익한 보도·다큐멘터리·토론·기획특집·건전드라마및 공익광고 확충에 노력토록하는등 공영방송위상을 강화한다.▲종합유선방송은 국민적 합의도출을 위해 전반적 쟁점사항을 종합점검 보완후 시행토록 하되 93년말 이내 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선정하며 프로그램 공급업자및 종합유선방송국을 단계적으로 허가해 95년초 종합유선방송을 실시한다.▲대도시 중심의 지방민영TV방송 신설을 추진하고 도별라디오방송은 주파수 범위내에서 신설을 검토하는등 방송의 지방화시대 개막에 따른 지방민영방송(TV 라디오)의 신설을 검토한다.▲종교방송 라디오 지방국의 신설을 추진하되 종교간의 형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주파수 범위내에서 지방국 신설을 추진한다.
  • 새정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7)

    ◎길림시절:6/「조선인 길림소년회」 조직설/민족주의자들이 28년경 만든 단체/“27년 결성주도”… 대조직가로 행세 김일성은 좌익문헌을 읽은 것이 자기 「혁명활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봉건군벌 장작상이 지배하는 중국의 오지 길림에서 그것도 1927년에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그런데 이 불가능한 일을 김일성은 전기에서 억지로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독서조 지도 억지 그는 한달에 열람료를 10전씩 내어 오마항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갔고 또 육문중학교에서 두번이나 도서주임으로 되었다고 주장한다.나중에는 몸소 비밀독서조를 조직하고 독립운동가가 경영하는 정미소의 방 한칸을 독서실로 만들어 거기서 좌익서적을 탐독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령 그가 도서주임이 되었다 하더라도 부유층의 자제가 가는 육문중학교가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구입할 리가 없고 봉건군벌이 경영하는 우마항의 도서관도 그런 책이 있을 턱이 없었다.또 비밀독서조란 것도 29년에 상월선생이 한 독서모임을 자기가 조직한 것처럼 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회고록은 이와같이 별로 좌익서적에 접하지도 읽지도 않았던 그를 대독서가로 만들어 놓았다.그 다음에는 그를 대조직가로 변신시키는 차례인데 그 첫번째가 길림소년회 결성이다. 「우리가 길림에서 처음으로 내 온 조직은 조선인길림소년회였다.그 때 길림에는 민족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소년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름뿐이고 길림시내의 소년들은 그런 조직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우리는 1927년 4월에 손정도네 예배당에서 조선인길림소년회라는 합법적조직을 무었다. 나는 김원우·박일파와 함께 이 모임을 지도하였다.모임에서는 조직부와 선전부·문화체육부와 같은 소년회의 부서들을 내오고 학교와 지역별로 되는 반도 조직하였다」 여기서는 길림소년회의 조직자가 「우리」로 되어 있고 김원우·박일파의 이름도 보이지만 여태까지의 전기들은 한결같이 김일성 혼자가 길림소년회를 결성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시점조작 들통 조선인길림소년회는 여러가지 증거로 보면 27년이 아니라 28∼29년에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최형우는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에서 김일성이 길림에서 「소년운동 지도자의 일인으로 일년유여의 시일」심혈을 짜냈다고 쓰고 있다.따라서 김일성은 28년부터 29년 5월에 퇴학할때까지 1년 남짓 소년회에 있었던 것으로 된다.또 이명영교수는 1917년생인 최진무씨가 13세가량이었을 때 길림소년회 회원이었다는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이 증언에 의하면 29년경 김일성은 길림소년회 회장이었다. 그런데 회고록은 이 기림소년회 이외에 길림에는 민족주의자가 만든 이름뿐인 소년회가 따로 있었다고 하고 있다.김일성이 참가한 소년회는 민족주의 조직이 아니라는 주장인데 이것은 사실을 정반대로 말하고 있다. 1930년 당시 길림에는 두가지 소년단체가 있었다.그 하나는 길성소년탐험대로서 공산당의 종파인 ML파의 표현단체 주중한인청년동맹 계열이었다.대장은 김일영,제1반장은 허성,제2반장은 진규삼이었으며 정미소 복흥태를 거점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고록의 상기 인용문에 나오는 「독립운동가가 경영하는 정미소」란 김일성이 있었던 길림소년회가 아니라 이 길성소년회가 거점으로 한 복흥태를 말한다.그는 자기와 그 입장이 반대되는 이 공산주의 길성소년회의 거점을 제멋대로 「길림소년회의 독서실」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일성은 29년 5월에 길림소년회를 떠났는데 이 조직은 29년 11월에 길림소년탐험대라 개칭하였다.30년의 일본기록은 민족주의단체 국민부산하인 남만한인청년총동맹의 지휘를 받는 이 소년조직에 대하여 그 본부도 구성원도 적지 않고 있다.그러나 회고록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조직의 본부는 손정도의 예배당이었다. 이 길림소년회에 대한 1930년의 일본기록은 다음과 같다. 「소년회.예년 5월 제1요일을 소년데이로 정하고 운동회 등을 열고 있다.본년(1930년)은 5월4일이 마침 소년데이에 상당하므로 당일 유길학우회원 김인기,박일파의 사회로 신개문 외 야소례배당에 소년 약20명을 모아서 간단한 기념식을 행하였다. ○29년경 “회원” 증언 그후 소년데이라고 쓴 지제의 수기를 하나씩 배급하여 오후1시부터 강남공원으로 가서 과자를 일동에게 분배하여 유희를 하고 동 5시경 무사히 철수,해산하였다.」 요컨대 조선인 길림소년회란 28∼29년은 정의부,29∼30년은 국민부에 속하는 소년단체였다.김일성은 이러한 소년회에 28년 무렵에 들어가 29년경에 회장으로 되었다.그리고 만약 길림소년회가 27년에도 있었다면 그가 이해 8월경에 입회하더라도 그것 자체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소년회가 「27년 4월 그가 결성한」조직일 수는 없다. ▷주해◁ ①「세기와 더불어 1」208면 이하 ②같은 책 238∼9면 ③평전 113면 ④평전 112면
  • 서예가 김기승씨(이세기의 인물탐구:21)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 원곡체 창안/한자명체 두루 통달… 독창적 변형경지 도달/고 최현배박사도 “한글 본연성품 표출” 칭송/성경구절 작품화 유명… 도산선생 묘비문 등 명필남겨 글씨를 이루기전 작업대앞에 선 원곡 김기승씨의 모습은 신을 향한 기도처럼 절실하고 경건하다. 눈부신 백지위에 붓길이 닿는순간 율동처럼 이어지는 묵향,어느때는 일필휘지,어느 때는 점 하나에도 혼신을 다해 멈출듯 흐느끼는 ▦황은 그 자체가 이미 통신의 경지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니라 신에 의해 움직이는것처럼 힘차게 그어내린 획마다에선 맑고도 밝은 상서로운 향기를 뿜어낸다.그리고 그 몇순간의 긴장은 폭풍전야의 정적인듯 은은히 주위를 압도한다. 원곡의 문향실은 그가 38년간 머물렀던 종로구 적선동에서 이곳 워커힐 아파트로 옮긴지 올해로 만 10년이된다. 요즘도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독교 방송을 들으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근처 아차산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바로 작업에 임한다. 그리고 하루 2시간에서 3시간,전날 독서로 구상해두었던명언·명구를 마음속에 새겨 우러나오는 진한감동을 작품속에 담아낸다. 그는 글씨를 이루는데 있어 아름다움은 언제나 「선」이어야함을 전제하고 있다.이른바 선하지 않은 것은 미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기술이 피부라면 인격은 근골이다.티없이 청정한 피와 살과 뼈대가 합일될때만 비로소 미의 영혼이 글씨와 글속에 첩식된다는 것이다.순수한 서체에서의 체삽이나 시속기는 천착스러움의 극치다.글이 뜻하는 바를 거르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타내기 위해선 심혼의 혈서로 성자에 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씨 내재의미 중시 「초학자시 불가진형세 선상자성의 재필전」­글씨는 처음 대할때 그 형세를 알수없으니 먼저 글씨가 이루어짐을 생각하면 뜻은 쓰기전에 있게 된다,즉 원곡은 서의 진수는 글씨의 모양에 두기보다 그 내부에 내재된 뜻을 소중하게 여기는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해서·행서·초서·전서·예서등 한자체에 두루 통달하여 일가를 이룬동안에도 그는 한때 중국말로 된 성경을 국전에 출품한 적이 있었다.막상 이를 내놓았으나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때부터 그만의 독특한 원곡체를 창안,한문각체의 독창적 변형을 한글에 적용시킨 이 서체는 한자와의 대련 작품을 쓸때도 조화와 균형을 깨지않는것이 특징이다. 옛날 궁중에서 궁녀들이 소설을 베낄때 사용한 궁체가 부드러운 반흘림의 반행초의 실용글씨라면 원곡체는 한문보다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구슬을 꿴듯한 우아미보다 먹물이 뚝뚝 듣는 힘의 분출이 돋보이는 서체다. 한글학자 고 최현배박사는 원곡의 한글체를 보고 『산같이 망막하고 강같이 줄기차다.우리의 한글이 제본연의 성품으로 온전히 나타났다』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의 독창성이 지나쳐 그 자신이 스스로 「전위예술」이라 일컬었던 「묵영기법」은 서예계에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묵영기법이란 청묵의 번짐을 사용하거나 먹물의 농담으로 거듭써서 시각효과를 앞세운 일종의 회화적 서예 회화인 셈이었다. 서예계는 『전위예술,즉 묵영은 서예에서는 있을수 없다』고 발칵 뒤집혔고 심지어는 『전통을모르고 전통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난 예술』로 혹평되기도 했다. ○「묵영기법」 논쟁불러 이때도 젊은감각과 시대에 부응하는 예술을 지향해온 원곡으로서는 전통예술을 지키기 위해선 고루하게 전통만을 고집하기 보다 오히려 여러각도의 실험과 시도를 언해 새로운 조형언어를 발굴,전통의 소중함은 물론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평생동안 그가 써온 작품은 개인전때마다 40점에서 60점씩 32회.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평소에 아끼는 성경구절들은 그때마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육당 최남선의 「삼·일독립선언문」을 비롯,제갈량의 「전후출사표」는 3천자이상,아가서8장 4천여자,무위자연의 노자 「도덕경」5천여언,특히 굴원의 「이소경」의 경우는 사적고증,한자구성·암기 등으로 6개월준비,집묵만도 10일이상 걸린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랜 연륜과 우수사려가 없는 마음가짐으로 인해 그의 글씨에는 향기는 물론 불가사의한 힘이 담겨 있다. 올해나이 84세.그러나 그 음성과 행동에서 연노의 기색은 찾아볼수 없다. 또 서예계 최고 원로의 권위의식 같은것도 없다.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격의없이 친절하고 편안하게 대한다. 1909년 충남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김정현씨와 김취옥여사의 2남중 차남으로 출생.5세때부터 조부인 동효공이 설립한 한문서당 삼언재에서 글씨와 천자문을 배웠고 홍산소년백일장에 나가 한시짓기 장원,11세때 보통학교 2학년에 들어가면서 신교육을 받게됐으나 공주고보 2학년때 일인체조교사를 배척하는 맹휴의 주동자로 지목되는 바람에 서울 휘문고보로 전학,그후 만주로 건너가 봉천 문회고급중학과 상해중국공학대학 경제과에 다녔다. 상해유학시절 흥사단 원동위원부에 입단하여 도산 안창호선생을 모신 독립운동에 가담,국내신문의 주요기사를 발췌정리하여 국내정세를 보고하거나 흥사단 행사때마다 글씨를 잘 쓴다고 해서 식순을 쓰는 일 등을 맡아보기도 했다. ○흥사단서 독립운동 그때부터 대학에서 공부한 경제학보다 글씨 쓰는 일에 심취하여 졸업후 고향에 돌아오자 고장의 명필인 산정 신익선선생에게 본격적으로 글씨를 배웠다. 하루종일 쓴 글씨가 집안마당에 흰눈처럼 수북히 쌓였던 기억은 지금도 그에게 불길같은 작업의지를 당겨준다고 한다. 그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소전 손재형선생에게 사사.『재주는 있으나 헛 공부했다』는 혹독한 질책을 받으면서 그는 구양순 안진경 왕희지의 법첩으로 겨울밤이 지새도록 수련을 쌓아갔다. 봉천 문회고급중학교때 남경서 신학대학을 나온 백영엽목사의 영향을 받아 크리스천이 된 그는 조국에 돌아가면 목사가 되려했으나 글자 한자한자의 그 묘한 성자에 빠져 글씨쓰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그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글씨로 전한다는 의도에서 성경구절을 작품에 담게 되었고 성경구절을 쓴 작품만도 6백여점에 이른다. 새문안교회에 다닌지 45년,출중한 건강을 타고난 그는 담배나 커피·술은 입게 대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 차인실씨(82)와는 1939년에 결혼,외아들인 명호씨(53·미앨라배마에서 병원)와 4녀가 있다. 원곡은 주변을 조금씩 정리해 본다는 뜻에서 지난83년 그가 아끼던 자작품 2백87점을 골라 국립현대미술관에 보내던날,아들 딸을 결혼시켜 내보낼때보다 더 가슴저미는 허망함과 섭섭함에 그날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한적이 있다. 지난 90년에는 그가 한평생동안 소장해왔던 추사 김정희의 「고시행서」위창 오세창·김구선생의 글씨,청전 이상범과 절친했던 운보 김기창,청계 정종여의 금물로 그린 「독수리」등 30억 상당의 골동서화를 아들의 모교인 연대박물관에 기증. 1958년 제1회 개인전을 필두로 신세계미술관이 주관하는 개인전이 끝나면 부인과 자녀들이 권유하는대로 이대와 고려대 중앙대등 각 대학에 작품을 나누어 보낸다. ○33회째 개인전 준비 그가 제정한 원곡서예상은 올해 16회째,오는 10월25일부터 제33회 원곡서예개인전을 역시 신세계미술관에서 갖게된다. 도산 안창호선생의 묘비문을 비롯,수백여개의 비문과 동상문 현판글씨 시비등 전국 방방곡곡에 그의 글씨가 산재해 있으나 단 한글자도 그는 허트로 내놓는 일은 없다. 그의 마음가짐은 「논어」에 나오는­ 「불지명이면 무이위군자야요 불지례면 무이립야요 불지언이면 무이지인야라(천명을 알지못하면 군자가 될수 없고 예를 모르면 세상에 나서 행세할수 없고 말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를 실천하며 앞만보고 살아왔다.분한이 있으면 향기로운 글,빛을 발하는 글에 이를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대덕약곡」(큰덕은 골짜기 같아야 한다)」에서 따온 그의 아호인 원곡처럼 그래서 나를 낮추고 남을 섬기고 마음을 텅비운 맑고 깊은 골짜기,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포용하면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정진하는 예인의 자세를 지킬 뿐이다. □연보 ▲1909년 충남 부여 홍산출생 ▲1927년 만주 봉천 문회고급중학졸업 ▲28년 흥사단 원동위원부입단 안창호 김구 이동령선생이 이끄는 한국독립당입당 ▲1932년 중국 상해 중국 공학대학부 경제과 졸업 ▲1936년 소전 손재형선생사사 ▲1939년 조선서도 진흥회 주최 전국서도전 입선 ▲1942년 중국 상해서 전중국서화전 입선 ▲1946년 전국 서화전 이등상 ▲1949년 제1회국전 서예부 특선(문교부장관상) ▲53∼55년 국전 제2·3·4회 특선 ▲〃 대성 서예학원 설립 ▲〃 서울대·숙대·상명여대 출강(15년간) ▲56∼58년 국전 제5·6·7회 추천작가(출품) ▲58년 제1회 원곡 서예전 ▲59·60년 〃 제8·9회 초대작가(출품) ▲61∼82년 국전 제10∼30회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 ▲59∼89년 원곡서예전 제2회∼29회 개최 ▲1976년 미국·유럽 미술여행 ▲78년 제1회 원곡서예상 제정 ▲79년 동아일보 주최 원곡서예 회고전 ▲79년 북유럽및 캐나다 미술여행 ▲〃 제1회 원곡 미술상 제정 시상 ▲79∼92년 제2∼15회 원곡서예상 시상 ▲83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자작 대표작(2백87점 기증) ▲84년 주일 한국 대사관 한국문화원 초대 서예전 ▲87년 봄베이·카이로등 유럽지역 여행 ▲기독교 미술인 협최 회장역임 고왕경·김강경·경천애인·시편23편·이소경·삼일독립선언문·애경·전후출사표·1오일삼성오신·불원천불우인·묵시록등 1천여점 은관문화훈장 한국서예사 원곡서문집
  • 서점을 문화공간으로/이호림 월간책 발행인(굄돌)

    필자는 바로 이틀전에 독서토론회와 관련하여 해당작가를 비롯한 몇사람들과 즐거운 지방나들이를 가졌었다. 독서토론회는 독자들이 평소에 관심있던 작가와 함께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특히 이번 나들이는 그 어느때와 달리 3시간 가까운 토론시간을 지루함없이 마칠 수 있었다.단하와 단상에서 열띤 논쟁을 벌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지만 마지막에는 그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독서토론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토론회 자리는 그간에도 간간히 있어왔던 것이지만 이번 토론회만큼은 몇가지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그중 특이했던 점은 그간의 독서토론회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예단체 소속의 지정 토론자가 참석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토론회의 밀도를 한껏 높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즉 전문적인 견해를 가진 평론가가 참여작가의 작품 및 문학적 가치까지를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제시해 줄 수 있었다. 이번에 느낀 새로운 현상으로서는 서점 스스로가 자체 매장내에 상설공간을 확보해 놓고 정기적인 독서토론회를 계속 기획하고자 하는 모습이다.이와같은 시도는 서점발전에 매우 중요한 현상으로 볼 수 있으며 앞으로 서점공간이 여타 분야의 공간과 무엇이 다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서점 스스로가 독자들에 대한 항구적인 서비스 체제를 갖추는 것은 지금도 전국의 생각있는 서점인들에 의하여 계속 확대되고 있다.이는 단지 다른 서점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것일수도 있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갖는 긍정성을 생각할때 국내출판문화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토론회가 끝난후 가능한 사람들끼리 모여 뒷마무리를 하였다.지역에 있는 분들의 한결같은 얘기는 서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방문화를 어떻게 하면 활성화시켜 볼수 있겠느냐에 모아졌다.전통문화의 단절이라든지,천박한 외국문화의 여과없는 유입,그로인한 문화의 도덕적 가치가 소리없이 무너지는 현장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세태등의 지적이 있었다. 그러면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어떤것이 있을까. 현재의 서울중심적인 문예활동과 지원정책을 지방에도 적극 배려하고자 하는 국가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그리고 여기에 국가정책지원 못지않게 각지역의 생각있는 사람들의 노력하는 자세가 뒤따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5)

    ◎길림시절:4/「공산서적 탐독」의 허구/“「국가와 혁명」 「자본론」 등 27년초 탐독” 주장/중국어번역판 29년께야 나온 사실과 상반/「타고난 공산주의자」 행세하려 날조 『길림에서의 나의 활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더 깊이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보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의 저작들을 탐독하는데 더 열중하였다.당시의 중국은 대혁명기여서 소련이나 일본에서 발간되는 좋은 책들을 많이 번역출판하였다』 ○만주반입 시일 걸려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의 길림시절이 이상과 같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쓰고 있다.그는 이 시기 「공산당선언」 「자본론」 「국가와 혁명」 「임금노동과 자본」등 고전과 그 해설서,그리고 고리키의 「어머니」 로신의 「축복」 「아Q정전」 기타 「철의 흐름」「압록강가에서」 「소년방랑자」같은 혁명적인 소설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중학생시절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책 읽는데에 눈을 뜨는 시절이므로 김일성도 책은 일정하게 읽었을 것이다.그러나 적어도 이상의 책들은 거의 읽지 않았다.이러한 책은 길림에서는 구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시 중국은 대혁명기여서 번역물이 많았다고 쓰고 있지만 중국혁명은 먼저 화남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화중·화북으로 번졌다.따라서 좌익출판물도 맨처음은 광동,그 다음에 상해,그리고 북경과 같은 순서로 출판되어 나갔다.그러한 출판물이 만주에 반입되더라도 그것은 심양,하얼빈에 먼저 들어가고 이보다 오지인 길림에는 그후에야 반입되었다. 이러한 상식을 안 다음에 회고록의 선전을 분석해 보자. ㈀김일성은 길림에 온 27년에 「공산당선언」 「자본론」 「국가와 혁명」 그리고 「자본주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즉 「제국주의론」을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78년의 「불멸의 자욱을 따라」부터 그렇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육문중학교에서 그가 직접 배웠던 공산주의자 상월은 상해에서 길림에 온 것이 29년 초였고 그가 휴대한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영문판이었다는 것,이 영문판을 중학생용으로 쉽게 풀어서 비밀소조에서 강의한 인물은 김일성이 아니라 상월 자신이었다는 것을 밝힌 바 있었다. ○상해서만 부분 출판 그런데 이번에는 레닌의 이 책을 일부러 그의 「독서목록」에서 빼고 있다.그 이유는 여러가지 추측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겟다. ㈁필자는 앞에서 화성의숙 시절에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는 회고록의 주장에 대하여 이 시절 화전에서는 그러한 책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는 점을 들어 그것이 헛된 주장임을 밝혔다.그런데 상월은 길림에 올 때 「제국주의론」이외에 다른 공산주의 서적을 가져온 흔적이 없다.이 점을 보면 김일성은 29년에 가서도 이 책은 읽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크게 된다. ㄷ)필자는 일찍이 중국에서 자본론이 부분적으로나마 번역출판된 것은 1930년 상해에서 있은 일이었고 따라서 26년의 화전이나 27년의 길림에서 김일성이 이 책을 읽었다는 말은 성립이 안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번에는 이러한 자기 주장을 대폭적으로 바꾸어 버렸다.자기가 동대탄에 숙소를 정하고 있을 때,와서 같이 생활한 박소심이 일본어판 자본론을 읽고 있다가 자기에게 해설해 주었다고 변경한 것이다. 일본문헌에서는 박소심은 조선공산당 재건파의 하나였던 서울­상해파의 중진으로 되어 있다.김일성으로 보면 「종파」였던 박소심이 과연 그와 동숙하고 있었겠는가부터가 의문이 되지만,하여간 그는 이런 말을 끄집어 냄으로써 오히려 자본론을 자기가 읽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한 셈이 되었다. ㄹ)레닌의 「국가와 혁명」은 27년,광동의 영동민국일보 부간 「혁명」에 이춘번(가백년)이 번역,연재하기 시작하였고 그 단행본은 29년에 출판되었다.김일성은 고리키의 「어머니」도 읽었다고 하는데 이 책 역시 29년 10월에 심단선(하연)이 「모친」이란 이름으로 번역하여 상해에서 출판하고 있다. 이런 책을 길림에서 27년에 읽어치웠다는 주장은 무식한 김일성이나 그의 아첨꾼인 어용작가들 이외는 아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ㅁ)이 밖에 이번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읽었다고 새로 선보인 책이 있다.「임금노동과 자본」「철의 흐름」「축복」「아큐정전」「압록강가에서」「소년방랑자」 등등이 그것인데 일일이 고증하지 않더라도 읽지 못하거나 읽지 않았던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재경분자이었을뿐 김일성은 이상과 같이 당시 중국에서는 번역되지도 않았던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을 러시아어나 일본어가 아닌 「중국어 번역본으로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것도 그가 길림에 있지도 않았던 27년 상반기,「길림에서 혁명활동을 벌이는 첫 사업」으로 이러한 독서를 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러한 조작을 일삼는 것은 그 이유가 뻔하다.그는 당시 좌경화되어 있었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그런데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그는 지금 자기가 타고난 공산주의자처럼 행세하고 있다.이 때문에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을 읽었다고 내세움으로써 당시의 자기를 「공산주의자」로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1」207면 ②평전 131면 ③평전 129면 ④평전 217면 ⑤평전 135면
  • 「미완의 삶」이 주는 안타까움 가득/시인·평론가 유고집 “화제”

    ◎김현·김성칠일기,학자 고뇌·방황 표출/박남훈·이연주,시집속에 죽음의 냄새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글쓰기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만드는 시인·평론가·역사가들의 유고집들이 독서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최근 나온 시인 박남훈의 「불면의 늪」과 이연주의 「속죄양,유다」등 두권의 유고시집과 6·25전쟁당시 타계한 전 서울대 사학과교수 김성칠씨의 유고일기 「역사앞에서」가 그것이다.그리고 지난해 출간된 문학평론가 김현(전 서울대교수)의 「행복한 책읽기」도 이 범주에 속한다. 시인 박남훈은 자신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불면의 늪」을 준비하다 지병이 도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중 시집출간도 보지 못하고 지난 1월5일 숨졌다.지난해 출간됐던 시집 「동해바다」에 수록되지 못한 작품과 투병중에도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고 완성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고통과 절망의 삶을 살아오면서도 고향바다를 그리며 일어서려했던 시인의 혼과 병상에 누워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삶을 차분히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시집 곳곳에서배어나온다. 지난해 가을 시집 한권분량의 시들을 정리해 놓고 스스로 세상을 버린 이연주 시인의 「속죄양,유다」 역시 출간되기 전부터 문단의 관심을 끌었던 시집.현대인이 처한 외면적인 삶과 내면적인 자의식의 파탄이라는 절망감과 겉늙어버린 삶속에서 새로운 기대를 걸었던 소망이 끝내 죽음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던 처절한 고민이 시집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이들 유고시집들이 개인적인 사유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면 김성칠·김현 두 사람의 유고일기집에서는 의식 깊숙이 자리한 학자·문학평론가로서 책임감 내지는 사명감이 관조된다.「조선역사」의 저자인 김성칠교수의 「역사앞에서」는 좌·우익에 대한 중도적 입장의 한 역사가의 눈에 비친 6·25전쟁이야기다.그래서 역사적 기록이 충실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됐다.피란길이 막힌 서울 정릉집에서 보통의 전쟁일기가 아닌 현대사의 일지를 적는 마음으로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일정한 신념이나 주관없이 전세에 따라 변신하는 지식인과 정치가들의 행태와 사회·문화·경제등 다방면에 걸쳐 질서가 붕괴하는 와중에서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해 기술한 이 일기에는 양심적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도 진솔하게 표출된다.그 시대는 해방직후 좌우대립이 심했던 45년 12월부터 46년 4월,50년 1월,50년 6월부터 51년 4월8일까지.부인 이남덕씨(73·전이화여대교수)에 의해 40여년만에 출간됐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는 일기이면서도 보통일기의 형식을 밟지 않고 있다.자신의 새로운 글쓰기 형태를 시도한 이 유작에는 「짧은 몇마디 말속에 큰 핵심을 실어나르는 단장」의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제자인 이인성씨의 발문에서 볼수 있듯이 김현은 이 유고가 출판되었을 때의 공적인 의미를 고려,그동안 꼼꼼히 기록해왔던 사생활의 흔적을 거의 지워버렸다.일기의 원본마저도 컴퓨터로 새로 정리해 놓는등 마지막 순간까지 학자의 모범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 유고집은 「채 완성되지 못한 삶이 던져주는 안타까움과 죽은 자에 대한 추억과 애도,삶의 유한성에 대한 새삼스런 인식등이 어울려 경건하면서도 처연한 감정을 빚어내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 「지방청와대」 주민시설로 전환/김 대통령 밝혀

    ◎도서관·유아원 등으로 활용/진해별장 군용화·정부청사전용실 없애 김영삼대통령은 13일 부산·전남·전북·경북·제주등 5곳에 설치된 대통령전용 숙소인 이른바 「지방청와대」를 폐쇄하고 일반에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낮 청와대에서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이같이 밝히고 『해군시설로 돼있는 진해앞 저도의 대통령별장(청해대)도 본래 목적대로 해군장병의 시설로 활용토록하고 정부종합청사내의 대통령실도 일반 사무실로 사용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개방되는 부산·전남·전북·경북등 4곳의 전용숙소는 도서관·박물관·독서실·유아원등 공공시설로 바뀌고 정원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제주지역의 시설은 현재처럼 제주지사의 공관을 겸해 존치토록 하되 일반인의 접근을 허용하고,필요에 따라 외국귀빈을 위한 영빈관으로 활용된다. 정부는 도지사공관을 겸한 광주·경북지역의 대통령숙소가 폐쇄됨에 따라 해당지사들은 아파트나 단독주택으로 관저를 옮기도록 조치했다. 이에따라 대통령전용의 지방숙박시설은 충북 청원군의 청남대 1곳만 남게 됐는데 청와대는 앞으로 이지역 주민들의 불편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번 조치와 관련,『새정부 출범에 맞춰 권위주의적 요소와 낭비요인을 없앤다는 취지에서 필요이상의 규모로 지어져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던 지방청와대를 없애기로 했다』고 설명하고 『이에따라 인근주민의 재산권행사에 불이익을 주어왔던 건축규제와 고도제한등도 전면 해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제주도소재의 대통령전용시설은 주민들에 피해를 주지 않을 뿐더러 관광지이기 때문에 외국정상과의 회담장소나 영빈관으로 활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그동안 속칭 지방청와대 유지관리를 위해 46명의 인원이 배치돼 연간 6억8천만원의 예산이 소요돼왔다.사용횟수는 1년에 불과 1차례 정도밖에 안됐다』고 취지를 설명하고,『저도인근의 어로통제도 해제,어로작업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대변인은 충북의 청남대는 현재대로 유지키로 한것과 관련,『경호문제와 대통령휴식등 여러가지 점을 감안해 청남대 하나정도는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전국 1천1백66개 각종 사업장/올 정기근로감독서 제외/노동부

    노동부는 12일 올해 정기근로감독 대상인 1천1백66개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하지 않기로 하고 전국 45개 지방 노동관서에 지침을 시달했다. 노동부의 이같은 방침은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을 줄이는 대신 노사협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의 자율적인 노무관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근로감독 대상업체들은 공인노무사의 노무관리 점검을 받은뒤 오는 11월까지 그 결과를 지방노동관서에 제출하면 내년도까지 정기근로감독 면제혜택을 받게 된다. 또 해당 사업장이 공인노무사의 점검을 원하지 않을 경우 오는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해당관서에 직접 신고해 확인을 거치면 마찬가지의 면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노동부는 그러나 해당 사업장이 노무사의 점검 또는 자진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내년도 정기근로감독 대상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노동부는 이와 함께 단체협약 등에 규정된 근로조건의 불이행과 관련해 노사분규가 발생 또는 발생우려가 있는 업체,임금 체불·근로조건 불량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업체에 대해서는 수시감독이나 특별감독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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