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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깔깔깔]

    ●사장과 대리 출장에서 돌아온 부장이 부하직원에게 물었다. 부장:“나 없는 사이에 또 그 녀석이 술마시고 주정부렸다며?” 직원:“늘 하던 대로 아무에게나 욕하고 그랬죠 뭐.” 부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부장:“그 녀석 술만 안 마시면 벌써 대리 달았을 텐데….” 직원:“괜찮을 거예요. 술만 마시면 사장이 되는걸요. 뭘∼”●무서운 아내 검사가 남편을 독살한 아내를 심문하고 있었다. 검사:“남편이 독이 든 커피를 마실 때 양심의 가책을 못 느꼈나요?” 아내:“조금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검사:“그때가 언제죠?” 아내:“커피가 맛있다며 한 잔 더 달라고 할 때요.”
  • “지도자 이산의 참모습 알리고파”

    조선시대 정조(正祖)대왕이 축성한 수원 화성 등 문화재 복원 업무를 맡고 있는 학예사가 어린이들을 위한 정조대왕 전기를 펴냈다. 경기 수원시 화성사업소 학예연구사 김준혁(41)씨는 25일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지도자 정조의 참 모습을 어린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책 제목은 ‘이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이다. 이산은 정조대왕의 본명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올해 5월 탈고했지만 책을 만드는 작업에 시간이 걸리면서 공교롭게 정조대왕을 다룬 드라마 ‘이산’의 인기가 한창일 때 책이 나왔다. 164페이지 분량의 책에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대리청정, 정조의 개혁정치, 조선 최강의 부대 장용영, 화성 능행 등 정조의 사상과 발자취를 보여주는 주제로 꾸며져 있다. 특히 ‘정조는 숭유억불 시대에 왜 용주사를 만들었을까?’,‘정조는 과연 독살되었는가?’ 는 등 정조시대 당시 논쟁거리였던 14가지 이야기를 구성해 논술교육에 활용하도록 했다. 본문 중간마다 어려운 단어를 풀이해 놓아 청소년들이 쉽게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거중기와 장용영 훈련 모습을 그린 삽화, 사도세자의 무덤인 융릉과 정약용 선생의 초상화 등 사진도 삽입해 글을 읽는 재미를 높였다. “정조의 사상과 정책이 서양보다 앞선 것이라는 것을 청소년들이 알고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습니다.” 정조대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정조에 대해 조예가 깊은 김씨는 “정조는 흔히 문예 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양반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제도를 백성을 위한 제도로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혁신적인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성인들을 위한 정조이야기를 준비 중이라는 김씨는 ‘이순신’,‘전태일’,‘알기 쉬운 화성이야기’,‘수원화성 행궁’을 썼으며 공저로는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 수원화성’,‘우리고장 수원’,‘우리 전통문화와의 만남’,‘강좌 한국사’ 등이 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살(煞),혹은 신의 저주

    [한승원 토굴살이] 살(煞),혹은 신의 저주

    전쟁터에 내보내 잃었거나, 역병, 자동차 사고, 물놀이 사고로 잃었거나, 자식 두셋을 거듭 잃은 부모는 남의 자식을 향해 귀여우니, 어쩌니 하고 말하지 않는 법이다. 남의 자식의 버르장머리나 심성에 대한 말은 더더욱 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 말에 살(煞)이 끼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살이란 사람이나 물건 등을 해치는 독살스럽고 모진 기운, 악귀의 저주이다. 그런 부모는, 누군가가 원할지라도, 혼례식 주례를 해서는 안 되고, 중매를 서서도 안 된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아무런 표정 없이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한다. 혼례식을 앞둔 부모나 혼례 당사자들은 팔자좋은 어른을 주례로 삼는다. 이혼한 경력이 없어야 하고, 자식 잃은 슬픔을 맛보지 않았어야 하고, 무병해야 하고, 심성이 고와야 하고, 부정한 일에 연루되지 않았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고 너그럽고 자비로워야 하고, 떳떳한 자식들을 슬하에 둔 사람이어야 하고…. 팔자 좋지 않은 어른, 부정한 일을 저지른 어른을 주례로 선택할 경우, 그가 뱉은 축복의 말에 신의 저주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우려한다. 우리는 미다스왕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자기가 만지는 것마다 모두 황금이 되었으면 하는 탐욕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어느 날 아침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어버리는 환희를 맛보았다. 그러나 포크도 빵도 물도 황금이 되어버리자 그는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슬퍼하는 아버지를 위로하는, 사랑하는 공주를 만지자 공주마저도 황금으로 변해버렸다. 그는 탐욕 가득 찬 스스로를 참회하고 나서 신으로부터, 손으로 만지면 무엇이든지 황금이 되는 저주, 살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미운 며느리의 발뒤꿈치가 빨래를 밟느라고 희어져 있으면 시어머니가 왜 그것이 달걀같이 생겼느냐고 시비하며 미워한다는 속담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추종세력은 자기들이 내세우려 한 대선 예비후보 세 사람이 낙마하는 절망을 맛본 바 있다. 더구나 애초에, 그 세 사람이 눈에 뻔히 보이는 시나리오에 의하여 단일화시킨 한 예비후보마저 노 대통령이 저주한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맨 꼴찌로 패배하고 말았다. 노 대통령이 낙마시키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저주의 말을 퍼부은 바 있는 한 야당 후보의 지지율은 50%대에 이를 정도이고, 그것은 사상 유래 없는 지지율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댄 바 있다. 그 후보는 대통령이 다 된 듯 으스대며 유세를 거듭하고 다니다가 야릇한 변수를 만나 시방 당혹해 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그의 추종세력은 자기들이 낙마하기를 바란 사람이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로 선출되자, 어찌할 수 없이 지지의사를 밝혔는데, 그 후보는 지지율이 간신히 20% 대를 턱걸이했다가, 그 야릇한 변수가 생긴 직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위로 떨어지고 있다. 자기가 밀었던 사람들이 모두 낙마하고, 낙마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오히려 득세하는 현실 앞에서 노 대통령과 그의 추종 세력은 자기들의 말에 살이 끼어 있음을 얼른 알아채야 한다. 이젠 누구를 지지한다느니, 누구는 반드시 낙마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가 누군가를 비난하면 할수록 그 비난받은 자의 지지율은 높아지고 누구를 지지한다고 말하면 그 지지받은 자의 지지율은 더욱 추락하게 되므로. 자기를 개혁진보 세력이라고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위기가 닥쳐 있다. 개혁진보는 분명히 좋은 것이지만, 무슨 까닭으로인지 이제 그것의 약발은 떨어져 버렸다. 대선을 앞둔 지금, 누구의 어떤 잘못으로인가, 진보개혁의 기치를 내세우는 사람, 머리에 붉은 띠 두른 채 주먹 하늘로 치켜들며 외치는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는 시각이 만연(蔓延)되어 있다. 한승원 소설가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39) 동물원의 을지훈련(下)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39) 동물원의 을지훈련(下)

    내년이면 국내에 동물원이 생긴 지 한세기를 맞는다. 돌아보면 사연없는 곳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리나라 동물원 동물들에게는 두 차례의 큰 수난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요즘 진행중인 ‘을지훈련(8월20∼24일)’이 현실화됐던 때다. ●광복 못 본 맹수 21종 38마리… 독약 먹여 패전의 기운이 일본에 짙게 드리운 1945년 7월25일. 당시 창경원 동물원 회계과장 사토(佐藤明道)는 전 직원을 모아 놓고 “오늘밤 사람을 해칠 만한 동물은 모두 죽여야 한다.”고 명령을 내린다. 그는 “미군 폭격으로 동물들이 우리를 뛰쳐나와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라며 “지령이 도쿄로부터 떨어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사(당시 사육사)들에겐 ‘동물들의 먹이에 몰래 넣어두라.’며 이름모를 극약이 배부됐다. 그날 코끼리, 사자, 호랑이, 뱀, 악어 등은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이날 밤 창경원 일대에서는 비명을 토해내는 맹수들의 울부짖음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직원들도 땅을 치며 울었다고 회고한다. 1993년에 발간된 ‘한국동물원 80년사’에 따르면 이날 하루 독살을 당한 동물은 21종 38마리. 하지만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일제는 동물 수를 줄여 나갔다. 심지어 전시 동물을 다른 동물의 먹잇감으로 쓰도록 했다.80년사를 정리한 오창영(80·전 서울대공원 동물부장)씨는 “태평양전쟁 후 일제가 인위적으로 줄인 동물 수는 모두 150여마리 정도”라면서 “당시 일본은 사육사보다는 징용군이, 우리 쇠창살보다는 무기로 쓸 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학살 이후 정확히 20일후 광복을 맞았다. 며칠만 버텼더라도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몰살 불러온 1·4후퇴 광복을 맞은 동물 수는 281마리다. 대부분 사슴, 원숭이, 조류 등으로 이미 동물원이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정도다. 그럭저럭 동물원이 안정을 찾았지만 다시 한국전쟁이 찾아왔다. 전쟁이 터진 후 사흘만인 1950년 6월28일 인민군은 미아리고개를 넘어 창경원 앞을 통해 서울로 들어왔다. 경황이 없던 탓에 사육사들이 남아준 것은 동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행이었다. 돌봐줄 사육사도 있었고, 적어도 동물은 이데올로기 문제에 있어 자유로웠다. 그 후 9월 서울이 수복됐고 인민군은 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듬해 1·4후퇴 때는 상황은 딴판이었다. 중공군까지 물밀듯이 내려온다는 소식에 남았던 사육사들도 모두 짐을 쌌다. 재수복후 창경원 동물원은 참담했다. 당시 사육사 박영달씨는 이렇게 회고했다.“동물사는 모두 열려있었지만 살아 움직이는 동물들은 새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낙타, 사슴, 얼룩말은 도살이 된 듯 머리통만 남아있었고, 여우나 너구리, 오소리, 삵 등은 굴과 돌 틈에 끼어 죽어있었다.…(중략)모두 그렇게 굶어죽고 얼어 죽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러, 英외교관 4명 맞추방

    러시아가 19일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러시아 연방보안부(FSB) 전직 요원 독살 사건을 둘러싼 갈등으로 러시아 외교관 4명을 추방키로 한 영국의 조치에 대한 맞대응으로 러시아 주재 영국 외교관 4명을 추방키로 결정하자 영국이 “부당하다.”며 반발하는 등 외교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러시아 주재 영국 대사를 외무부로 소환해 이런 결정을 통보했으며 이후 미하일 카미닌 외무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공식 발표했다고 로이터,A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카미닌 대변인은 성명에서 러시아의 이번 맞대응 조치가 균형을 갖추고 있고 최소한의 필요 사항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또 러시아는 영국 관리들에게 비자 발급을 중단할 것이며 러시아 관리들의 영국 비자 신청도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거미정보 요청 쏟아져 국내 35종 상세히 해부

    충북 괴산 샘골에서 있었던 일이다. 늑대거미 한 마리가 마른소똥 위에 앉아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다가가서 얼른 손으로 잡으려는 순간 갑자기 마른소똥이 얼굴을 치켜드는 것이 아닌가. 마른소똥처럼 보이던 것은 똬리를 틀고 낮잠을 자던 살모사였다. 남들은 기겁을 하지만, 거미를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거미는 어두운 몸빛깔에 털이 많은 데다, 독 때문에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거미도 생태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동물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거미 인간’이 대중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영화 ‘스파이더 맨’이 거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어느 정도는 기여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40여종의 애완용 거미가 수입되고 있을 만큼 관심이 높다. 강연에 나설 때마다 거미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고 정보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도 끊이지 않고 있다. ‘거미의 사계’(임문순·김승태 지음, 안성미디어 펴냄)는 이렇듯 크게 높아진 거미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평생을 거미 연구에 매달린 학자로서 반갑고 고맙게 작업을 했다. 주변에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흔히 볼 수 있는 35종의 거미를 선발한 뒤 생물학적 정보와 생태학적 정보를 다양한 컬러사진과 함께 묶었다. 그동안에는 일반인들이 자연에 나가 관찰한 거미에 대한 정보를 원해도 증명사진 형태의 사진 1∼2장이 고작이었고, 심지어는 암컷과 수컷을 구분하는 것조차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거미류는 세계적으로 3만 9700여종이 알려져 있고, 국내에도 680여종이 서식한다. 거미는 자연상태에서도 농업과 임업에서는 해충을 억제하는 고마운 천적이 상위동물에는 먹이가 된다. 최근 캐나다에서 거미줄의 성질을 이용하여 강철보다도 강한 인공거미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공심줄이나 인공인대 같은 의료용 재료와 방탄조끼나 우주복을 만드는 데 쓰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거미에게 약물을 먹이면 이들이 치는 그물의 모양이 약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마약 범죄나 독살 사건 등을 해결하는 법의학적 재료로도 쓰여질 전망이다. 거미는 이처럼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동물이다. 거친 자연에서 생존해 나가는 놀라운 지혜와 독립심 또한 놀랍다. 인간도 하찮은 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미에게서 삶의 지혜와 강한 정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임문순 건국대 명예교수
  • 6년 끈「남편 독살 혐의」무죄

    6년 끈「남편 독살 혐의」무죄

    지난 23일, 대전지법 형사합의 재판부는 진기한(?) 판결을 내려 화제. 피고 허애순여인(25·대전(大田)시 문창(文昌)동52)의「남편독살혐의」에 대해 재판장 김상원(金祥源)부장판사는「무죄」언도를 내린 것이다. 허여인은 6년전인 64년3월18일 밤, 술에 곤드레가 된 남편 김모씨(30)가 귀가하자 자리를 보아 주다가 발작적으로 62g의 양잿물을 남편의 입속에 부어넣어 버렸다. 다행히 남편은 목숨을 건졌지만 이로 인해 입안과 식도에 심한 상처를 입은 김씨는 오랫동안 병상에서 신음했다.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허여인은 재판부에 발작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하면서 어느날 결혼하기전 사귀었던 애인이 있었다고 남편에게 고백한 뒤부터 남편의 학대가 심했다는 것. 재판부에서는 이와같은 그의 고백을 정신과 의사들에게 감정시킨 결과 『허여인은 과거에 대한 집념과 현실사이의「콤플렉스」때문에 정신분열증이 일어나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허여인의 범행이 정신질환의 하나인 이상, 질병을 벌할 수 없는 것이라고 무죄를 판시한 것. 6년이라는 기록의 수립도 사실은 이 정신감정때문에 소비되었다고. [선데이서울 70년 11월 15일호 제3권 46호 통권 제 111호]
  • 마피아와 공모 카스트로 독살 기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960년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암살하기 위해 마피아를 고용했던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CIA가 26일(현지시간) 공개한 702쪽 분량의 비밀공작 문서에 따르면 카스트로 집권에 위협을 느낀 CIA는 로버트 마휴라는 중재자를 통해 폭력갱단인 조니 로셀리를 접촉, 카스트로를 제거하는 대가로 15만달러를 제안했다. 마휴는 CIA가 배후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로셀리에게 카스트로 집권으로 사업상 심각한 재정적 손실을 봤다는 이유를 댔다. 비밀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미국내 1급 수배범 2명과 공모해 카스트로에게 접근이 가능한 쿠바 관리인에게 독극물 알약 6알을 전달하는 등 수차례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 사건은 1971년 워싱턴포스트 잭 앤더슨 기자에 의해 최초 보도됐으나 문서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공개된 비밀문서에는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CIA의 암살음모와 불법도청, 언론인 감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베트남전이 격화되던 1967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외국 공산주의 정부(소련)가 미국 반전운동을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CIA는 여배우 제인 폰다의 개인 우편을 수시로 뜯어보고, 반전 논조의 기자들에 대해 전화 도청을 실시하는 등 7년 동안 미국인 30만명과 반전조직을 감시해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이중 두드러진 반전 활동을 편 7200명은 별도 감시파일을 만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1960년 쿠데타로 물러난 콩고 반식민지도자 패트리스 루뭄바와 도미니칸 공화국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를 암살하려던 계획도 밝혀졌다. 이번 문서공개에 대해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상당수가 언론보도나 정부와 의회의 특별조사를 통해 알려진 내용인 데다 검열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농어촌 ‘브랜드 마을’ 뜬다

    농어촌 ‘브랜드 마을’ 뜬다

    농어촌에 ‘마을 관광상품화’ 바람이 불고 있다. 농작물 상품화와 동떨어져 있던 시골 마을들이 “전통 브랜드화’를 앞세워 돈벌기에 나섰다. 여기에 마을의 청정 농수산물을 방문자에게 얹어 판매해 농어민에게는 일석이조이다. 단순 농사나 어업에만 종사하던 시골이 소득원 찾기에 눈을 뜬 것이다. 독특한 전통 어로법이나 농수산물 생산 과정을 상품으로 내놓는 곳도 있다. ●별주부마을 등 소득 두 배 늘어 충남 태안군 남면 원청리 별주부마을에서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 때만 되면 어른과 어린이 20∼30명이 바닷가 돌담 안에 돌아다니는 물고기를 잡는다. 어부가 된 듯이 그물로 만든 뜰채로 멸치와 우럭 등을 잡아 바구니에 넣는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독살’이라는 이 마을의 전통 어로법이다. 바닷가에 돌담처럼 쌓아놓고 밀물 때 담을 넘어 들어왔다가 썰물 때 달아나지 못한 고기를 잡는 것이다. 이 마을 주민 김생우(48)씨는 26일 “사리 때 하루 2시간 동안 독살을 빌려주고 30만원을 받는다.”며 “주민들이 수입을 나눠가져 이런 행사를 하기 전보다 가구당 소득이 두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체험마을 연간 수입 1억원 웃돌아 체험마을과 테마마을이란 이름으로 국내에서 마을을 브랜드화한 곳은 2002년 27개에서 현재 287개로 급격히 늘었다. 농림부 전영미 사무관은 “주민들이 스스로 특성에 맞게 마을이름을 바꿀 정도로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123개 체험마을에서 체험행사를 열고 농수산물을 판매해 183억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도선국사마을은 도자기 및 손두부만들기와 짚풀공예 등을 해 연간 1억원의 관광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민 신승균(55)씨는 “광양에서 가장 보잘 것없던 마을이 지금은 광양에서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고 자랑했다. 유명하기는 충남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원골마을’도 마찬가지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7월 말 자연예술제가 열린다. 주민들이 마을 골목길, 산과 들에다 한두가지씩 작품을 만드는 행사다. 올해로 11회째다. 예술제가 열릴 때에는 외지인과 외국작가들도 참가해 연간 7000∼8000명이 몰려든다. ●텅빈 농촌에 사람 소리… 농수산물 등 판매 수입도 짭짤 한지 뜨기와 공예, 풀피리 만들기 등 체험 행사를 열고 있는 충북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벌랏한지마을’ 주민 강귀순(46)씨는 “지난해에만 6000여명의 관광객이 몰릴 정도로 많이 찾아 산나물과 고추, 마늘, 잡곡이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도선국사마을도 하루 60여명의 관광객이 찾아 민박에 묶고 마을에서 생산된 무공해 채소와 과일을 사가 집집마다 짭짤한 부대수입을 올리고 있다. 유명세를 얻고 있는 다른 브랜드 마을도 민박과 펜션을 지으려고 혈안이다. 주민 신씨는 “수입도 수입이지만 텅텅 빈 마을에 아이들 웃음 소리가 들려 사람 사는 맛이 난다.”며 “마을에 들렀던 관광객 중에는 아예 이사를 오겠다는 이도 있다.”고 전했다. 경북 의성군 안계면 교촌마을의 송종대씨도 “이농과 고령화 등으로 비어가던 마을이 테마마을 변신 이후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기뻐했다. ●환경 훼손·지나친 장삿속 멀리해야 나쁜 점도 없지는 않다. 벌랏한지마을의 강씨는 “관광객들이 심어놓은 채소까지 손을 대고 감나무와 밤나무 가지를 꺾기도 한다.”고 말했다. 별주부마을 김씨는 “관광객이 체험행사를 왔다가 농경지와 바다, 마을 등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간다.”고 귀띔했다. 대전 배재대 관광이벤트경영학과 김석출 교수는 “1차 산업인 농·어업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분명하다.”면서 “환경을 해치거나 지나치게 상업성을 띠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종합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테마·체험마을이 되려면 마을에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시·군에 신청을 한다. 시·군에서는 매년 1월 말까지 신청을 받아 시·도에 올린다. 시·도는 심의 후 5월 말까지 체험·테마마을을 선정한 뒤 예산기획처를 거쳐 농림부에 이를 통보한다. 체험·테마마을로 선정되면 국비와 지방비 1억원씩 모두 2억원을 지원받는다. 이들 마을은 이 돈으로 체험관 등 관련 시설을 마을에 건립한다. 사업은 주로 농어촌 마을의 전통 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이 사업은 주민들이 농어업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농수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공동체의식을 다져주려는 목적으로 추진된다.
  • [칸 페스티벌] 시네마 대상 춘추전국 ‘밀양’ 깜짝 황금종려상?

    |칸(프랑스) 이종수특파원| 제60회 칸 국제영화제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지난 16일 개막 이후 다양한 화제를 뿌리며 27일 시상·폐막식을 앞두고 있다.25일(현지 시간) 현재 가장 큰 관심은 역시 경쟁부문 수상작이다. 예년에 견줘 유력한 후보작이 떠오르지 않아서인지 르 피가로, 르 몽드 등 주요 언론을 비롯, 수많은 사이트에서 ‘대상 추천작’을 묻는 설문조사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밀양’ 수상 여부 촉각 한국의 가장 큰 관심은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된 두 작품의 수상 여부다. 경쟁부문에 한국 영화 두 편이 오른 것은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후 처음이다. 현재까지 영화전문 잡지의 평가 등 현지 반응에 비춰 보면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김기덕 감독의 ‘숨’보다 더 후한 점수를 받았다. 특히 공식 시사회 이전부터 언론의 관심을 모았던 ‘밀양’은 23,24일 시사회 이후에도 호평을 받았다. 우선 현지 데일리 ‘스크린’에서 프랑스 대중문화 비평지 ‘포지티브’의 미셸 클레망으로부터 만점인 평점 4점을 받았다.‘스크린’평가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은 평균 3.2점을 받은 크리스티안 문기우 감독의 ‘4개월,3주 그리고 2일’, 코언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두 편이다. 또 ‘밀양’은 25일자 ‘프 필름 프랑세’로부터 4점 만점에 평균 2.6점을 얻었다. 전체적으로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밀양’의 개별상 수상을 예감케 하는 청신호도 많다. 한 관계자는 “24일 시사회 뒤 반응이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과 비슷했다.”며 감독상 수상 가능성을 내다봤다. 특히 유럽 언론들은 여주인공 신애 역의 전도연의 열연에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영화담당인 기자인 윌프리드 엑스브라이야트 기자는 “전도연이 섬세한 감정연기를 잘 소화했다.”며 사견을 전제로 “여우주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지도 전도연의 연기를 호평했다. ●독살당한 러시아 전 정보요원 다큐 ‘깜짝 발표’ 한편 영화제 막판에 독살당한 러시아 전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26일 상영한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리트비넨코의 친구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비판에 앞장서온 안드레이 네크라소프 감독이 연출한 ‘반란:리트비넨코의 경우’는 조직위원회가 제작단계부터 비밀을 유지하면서 영화제 막판에 ‘비밀병기’로 띄웠다. 감독은 “리트비넨코를 살해한 사람들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담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 드라마 ‘한 여학생의 일기’가 칸 영화제에 처음으로 상영돼 눈길을 끌었다.18일 영화 수입업자 시사회에 이어 21,24일 시사회가 열렸다. 북한에서 800만명의 관람했다는 이 작품은 프랑스 영화사 ‘프리티 픽처스’가 지난해 18월 평양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본 뒤 판권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할리우드 스타들에 대한 열광도 여전했다.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오션 13’이 상영된 24일 칸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 근처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보려는 인파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앞서 21일 열린 안젤리나 졸리의 기자회견 때도 카메라 기자들과 팬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vielee@seoul.co.kr
  • 성폭행과 성추행을 즐기던 사내의 종착역은

    “쯧쯧,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여자만 보면 성폭행을 일삼더니만….” 중국 대륙에 여성만 보면 성폭행을 하지 못해 안달하던 ‘색귀(色鬼)’로 불리는 사내가 끝내 독살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에 따르면 자신의 생명을 단축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깝죽대던 장본인은 중국 중서부 쓰촨(四川)성 루저우시에 살았던 장얼(張二·가명)씨.독신인 그는 주위의 여성들을 보기만 하면 성폭행과 성추행을 일삼다가 끝내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줄곧 독신생활을 해왔지만,궐자는 여성 밝힘증에는 누구 못지 않았다.해서 친구들로부터 그렇게 여자를 좋아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을 자주 들었다.이에 대해 장씨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궤변을 늘어놨다. 그러던중 몇년전 어느날,장씨는 같은 동네에 사는 가오(高)모씨의 아내와 그의 딸을 볼 때마다 성폭행했다.이 사실을 안 가오씨는 참지 못하고 아내와 이혼했다.가오씨는 얼마 있다가 재혼했다. 장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가오씨의 재혼한 아내 류(劉)모씨에게도 성폭행과 성추행을 자행했다.가오씨 부부는 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뼈속 깊이 각인됐다. 지난달 1일밤,가오씨는 회사 일이 많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이 틈을 노려 장씨는 가오씨의 집에 몰래 들어가 혼자 집에 있던 류씨를 범했다.늦게 퇴근한 남편 가오씨는 이 사실을 알고 더이상 장씨를 그대로 놔둘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이들 부부는 그를 열명길로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튿날 오전,장씨는 남편 가오씨가 회사에 간 틈을 타 또다시 류씨를 만나러 갔다.장씨는 류씨에게 “술을 좀 먹었더니 속이 쓰리다.”며 “꿀물이나 좀 타 달라.”고 요구했다.류씨는 “잠깐 기다려라.곧 꿀물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힐끗거리며 장씨를 쳐다본 뒤 두방망이질 하는 가슴을 안고 몰래 꿀물 속에다 쥐약을 탔다.이 꿀물을 맛있게 들이킨 장씨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아직도 죽지 않은 모습을 본 장씨는 옆에 있던 몽둥이를 들고와 확인 살해했다.이들 부부는 고의살인죄 혐의로 쇠고랑을 차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그같은 꼴 보고 미치지 않으면 비정상이죠”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천하의 ‘독부(毒婦)’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남편을 살해했을까?” 중국 대륙에 한 40대 여성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남편이 정부와 놀아나는 장면을 목도하고 그 모욕을 도저히 참지 못해 남편을 독살하는 사건이 발생,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사건의 장본인은 차오(曹·여)모씨.남편의 참을 수 없는 모욕적인 애정 행각을 보다 못해 열명길을 보내버린 ‘독부’이다.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상추(商丘)시에 사는 차오씨는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만난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장면을 보고 더이상 참지 못하고 남편을 독살한 혐의로 붙잡혔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10일 보도했다. 차오씨에 따르면 사건은 지금부터 11년 전인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아들 한명을 낳아 금실 좋게 살아가던 이들 가정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남편 류(劉)모씨가 사업상 자주 만나던 안후이(安徽)성 출신의 늘씬하고 해반주그레한 가오모씨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때부터 류씨는 부인 차오씨에 대해서는 사랑 자체를 포기하고 가오씨와의 관계는 더욱 뜨거워졌다.남편으로서의 역할은 말할 것도 없고 아빠,가장으로서의 책임마저 일말의 양심도 없이 비정하게 방기해버렸다. 이에 그치지 않고 류씨는 급기야 가오씨와 중국 서북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로 사랑의 도피 행각까지 벌이기까지 하는 등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하지만 이들의 빗나간 사랑의 행각도 1년이 지나면서 행탁이 모두 비어버리자 끝낼 수 밖에 없었다.류씨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무일푼이 돼 돌아온 남편을 본 차오씨는 어이가 없었지만,그래도 아이의 남편인 것을….해서 정말 열이 받고 속이 뒤집어졌지만 아들이 “아빠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편 류씨는 물론 정부 가오씨마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방이 두개 뿐이 까닭에 차오씨는 안방에서 남편과 정부 가오씨 등 세 사람이 한방에 함께 자게 됐다.문제는 여기서 사단이 벌어졌다.남편이 일부러 차오씨가 보란 듯이 가오씨와 노골적으로 짐승같은 애정 행각을 벌였다. 이에 화가 난 차오씨는 남편 류씨에게 이혼을 요구했다.이 말을 들은 남편은 “웃기는 소리 말라.”며 오히려 구타를 했다.더이상 참지 못한 그녀는 남편을 소리 소문 없이 없앨 결심을 했다. D-데이를 1998년 5월1일로 잡았다.당일 차오씨는 무서워 두 방망이질을 하는 가슴을 눌러 참으며 남편의 밥그릇에 독을 발라 남편 류씨가 먹도록 한 뒤 도피길에 올랐다.독밥을 먹은 남편은 당연히 그 자리에서 숨졌다.2년여 도피 행각을 벌이던 차오씨는 지난해 12월 공안당국에 고의살인죄 혐의로 붙잡혀 여생을 쓸쓸히 철창 속에서 보내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05일 TV 하이라이트]

    ●사이언스+(YTN 오후 1시40분) 세계는 지금 유비쿼터스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개발중이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속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미래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사물과 사물이 정보를 공유하는 유비쿼터스 세상을 살펴본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최근 급증하고 있는 황혼 이혼. 이혼 부부의 평균연령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중년부부의 갈등, 더 이상 남 이야기가 아니다. 부부사이를 갈라놓는 중년기 호르몬 체계변화, 대다수 부부들이 겪고 있는 부부사이의 갈등과 위기의 문제점을 알아본다. 갈등의 원인에 따른 극복 노하우도 알아본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5분) 애인으로부터 뺑소니 사고 목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남자. 사례금을 노리고 피해자의 가족에게 자신이 목격한 것처럼 진술한다. 덕분에 범인은 잡히게 되었지만 뒤늦게 알게된 애인은 남자에게 가짜 목격자 행세를 했다고 고소하겠다고 주장한다. 진짜 목격자 대신 목격자 행세를 한 남자는 처벌될까?   ●주몽(MBC 오후 9시55분) 주몽이 전쟁의 승리를 선포하자 백성들은 환호하고, 소서노는 승전을 기념하는 잔치를 벌인다. 겨우 살아남은 대소와 나로는 주몽이 양정을 죽이고 현토성을 장악했음을 부여에 알린다. 원후와 신료들은 경악한다. 금와왕의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을 눈치챈 설란은 의원을 불러 금와를 독살시킬 계략을 세운다.   ●소문난 저녁(KBS2 오후 6시10분) 여자들만 꼭 해야 하는 그것이 있다. 바로 산후조리. 중국과 일본의 여자들도 비켜갈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의 산후조리법은 어떨까? 중국에서는 산후조리사가 전문직으로 각광을 받고 있고, 일본에서는 사회복지 시스템으로 산후조리가 정착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 한국의 산후조리법을 비교해 본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40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생선 중의 하나가 명태로 이 명태가 제철을 맞았다. 맛이 깔끔하고 담백해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영양가 많고 활용도 높은 식품으로 유명하다. 보관과 건조의 방법에 따라 씹는 맛과 깊이가 조금씩 달라진다. 명태의 효능과 다양한 활용법에 대해 알아본다.
  • ‘다시 살아나는’ 정조

    ‘다시 살아나는’ 정조

    조선의 21대 국왕인 정조가 ‘화두’로 떠올랐다. 조선조 최대의 개혁 역동기였지만 개혁을 완결짓지 못하고 마감한 정조시대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조의 개혁이 미완성으로 끝났고, 결국 100여년 뒤 조선의 망국으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수구-개혁’ 공방이 한창인 현재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 적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에서도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방각본 살인사건’ 등 역사극 두 편이 제작될 예정이다. ●실록으로 읽는 정조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설 세종국가경영연구소는 17일부터 6주 동안 매주 수요일 ‘정조실록학교’를 개설한다. 정조를 포함한 정조시대 사람들의 ‘꿈’과 ‘고뇌’를 정조실록을 토대로 되짚어 보자는 취지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일반인 수강생들이 어렵지 않게 강의를 꾸몄다. 6장으로 구성된 강의 가운데 핵심은 맨 마지막과 4번째 장이다. ‘왕의 죽음, 그리고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는 정조가 시도했으나 성취하지 못한 개혁안들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다. 정조는 즉위초 경제, 인사·교육, 군사, 재정 등 4대 분야를 개혁하겠다는 이른바 ‘경장대고’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일부 성공한 분야는 ‘시장자유화’(신해통공)를 골자로 한 경제개혁과 장용위를 친위부대인 장용영으로 확대개편한 군사제도 개혁이다. 하지만 정조가 심혈을 기울였던 탕평책은 재위 19년(1795년) 자신의 고모 화완옹주와 이복동생 은언군 처리 문제를 둘러싼 관료들과의 갈등, 천주교와 연관된 측근 정약용·이가환의 좌천 등으로 물거품이 됐다. 실록을 토대로 개혁실패의 원인을 정조의 시각에서 분석하게 된다. ●독살? 과로사? 아울러 독살설 등 정조 죽음의 실체도 재미있는 소재다. 일각에서는 정조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세도정치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독살설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을 5개월여 앞둔 정조는 “옷을 입은 채로 밤을 지새우길 벌써 25일째다.”라며 체력, 정신력의 소진 가능성을 스스로 제기하고 있어 종기 부작용과 과로가 겹쳐 사망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조시대의 보·혁 논쟁 이번 강의를 통해 조명되는 정조는 개혁을 주도하는 ‘현실 정치인’의 모습이다. 당시 보혁논쟁의 중심에 정조가 있었다. 따라서 제4장의 주제도 ‘보수와 개혁 사이에서’이다. 보혁논쟁의 핵심은 이른바 ‘왕안석 논쟁’. 정조는 송나라의 대표적 개혁론자인 왕안석과 그 반대편에 섰던 사마광 가운데 왕안석을 우위에 놓고,“개혁은 하지 않고 있을 뿐 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개혁긍정론을 설파했다. 또 왕안석을 등용한 송나라 신종을 “큰 일을 할 수 있는 임금”이라며 적극적인 개혁정치가로서 국왕의 위상을 강조했다. 개혁을 반대하고, 사마광을 추종하던 관료들에게 “개혁에 따르라.”며 일침을 놓은 셈이다. ●언로(言路) 막은 정조 정조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집권 후반기에 갈수록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상소에 대해서는 금지령을 남발하는 등 언로를 막은 부분이 그렇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는 “왕권강화에 따른 명령체계의 일원화로 심각한 당쟁을 완화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언관의 비판기능을 약화시키고, 관료들의 소명의식을 박탈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그는 “비판과 견제가 없는 정치체계가 만들어진 것도 정조시대였다.”고 덧붙였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열린세상] 늑대 이야기/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일이다. 이웃에 사는 친구네 돼지 한 마리가 한밤중에 사라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어른들은 늑대 짓이 틀림없다고 했다. 늑대는 본래 영리한 짐승이어서, 소리도 없이 돼지를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돼지가 울 안에서 뛰쳐나오게 겁을 준 다음 제발로 걸려 데려갔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고, 늑대는 두 마리가 넘게 왔을 것이라는 자상한 설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딱히 늑대를 본 기억은 없다. 돼지를 데려갔다는 동네서 좀 떨어진 해받이고개 초입에서 어느 날 만났던 큼직한 개가 혹시 늑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지레 겁을 먹은 적은 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늑대 소리는 이내 쑥 들어가 버렸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늑대와 흡사하다는 이리를 주제로 삼은 황순원의 단편 ‘이리도’를 국어책으로 배웠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리떼 이야기를 빌려 늑대도 그러려니 하는 어림잡은 상상의 날개를 달았다. 정해(丁亥) 돼지의 해 들머리에 무슨 늑대냐고, 되받아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두 지지(地支) 띠 이름에도 끼어들지 못한 늑대를 새삼스레 들춘 까닭은 따로 있다. 지난 세밑 경상북도가 이미 멸종한 늑대를 지리산 반달곰처럼 복원할 계획이라는 대구발 뉴스가 내심 반가워서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야생과 종(種)이 같은 늑대 2∼3쌍을 몽골이나 러시아에서 들여와 안동 야생동물생태공원에서 키워 5년 뒤에 방사(放飼)한다는 것이다. 이참에 친구네 돼지가 사라졌을 때 들었던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더 해야겠다. 무아지경에서 사람을 만난 늑대는 사람 키를 훌훌 타 넘다가 해코지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기다란 담뱃대 장죽(長竹)을 저고리 등자락에 세워 꽂아 뾰죽한 물부리가 드러나면, 늑대는 그만 달아났다고 했다. 이에 곁들여 ‘혼자 길을 가다 만난 늑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로 이야기 끝을 맺었던 기억이 난다. 이말은 옳다. 서구인들은 일찍부터 늑대를 심술궂고도 탐욕스러운 짐승으로 몰아세운 설화(說話)를 빌미로 죽음 이상의 고통을 주고, 또 늑대를 독살하는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18세기까지도 북아메리카에서는 황무지 개간에다 신의 은총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늑대 멸종을 부추겼다. 그래서 1883∼1918년 사이 몬태나 주에서만 3만마리 이상의 늑대를 죽인 기록이 남아 있다. 지난 19세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하는 가운데 동물 가까이로 다가간 영국의 동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에 이어 독일의 생물학자인 에르스트 헤켈에 의해 생태학(生態學)이 태동한다. 그리고 20세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 환경보호주의자로 나선 ‘동물기’의 작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늑대를 비롯한 동물의 삶과 죽음을 연민(憐愍)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여러 사람들이 어여쁜 마음으로 키우는 애완견의 조상이 1만 4000여년 전 극동 아시아에서 사육한 늑대라는 사실을 알면, 야생의 동물이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늑대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2만여년 전 유적인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는 늑대를 실제 스케치한 그림이 보이거니와, 이보다 2000여년이 앞선 로스앤젤레스 판초라 유적에서는 수백마리 몫의 늑대뼈가 나왔다. 늑대는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를 잇는 북반구에 널리 퍼졌던 식육목(食肉目) 개과(科)의 무리 사냥꾼이다. 그러나 멸종에 가까울 만큼 숫자가 줄어들었다. 오늘날 생태보존 문제는 인류가 자연계에 화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슈가 되었다. 세계의 생태학자들은 문제의 실마리가 아시아 쪽에서 먼저 풀어지기를 기대하는 모양이다. 유교적 자연관(自然觀)과 불교적 자비관(慈悲觀)이 아직은 다 메마르지 않은 지역으로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행여 생태를 복원하는 날이 오면, 늑대가 어슬렁거렸던 고향땅 해받이고개를 거닐어 볼란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 추사 김정희, 중인들과 만나다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 추사 김정희, 중인들과 만나다

    시곗바늘을 조선 후기,200여년 전으로 돌려보면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오늘에 새롭게 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전문기술자 신분인 중인(中人), 즉 위항인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위항(委巷)은 좁고 지저분한 거리, 현재의 골목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한양의 창덕궁을 중심으로 옥인동, 통의동, 누하동 등의 인왕산 자락과 청계천 언저리에는 궁중 기술자들이 살았다. 이들은 60여개의 시사(詩社)를 만들어 ‘위항문학’을 꽃피웠다. 특히 이들은 서양의 문물을 가장 먼저 접한 신지식인들이었다. 조선 후기 근대화로 가는 과정에서 이들의 실용주의적 역할이 지대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과연 이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또 그 발자취들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이들의 문화를 재발견하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다. 연세대 허경진 교수의 눈을 통해 연중기획으로 이들의 궤적을 추적해 본다.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자 실학자인 추사 김정희는 누구 못지않게 19세기초 중인들과 교류를 가진 양반 선각자였다. 그는 중인들의 모임터인 송석원의 글씨를 써주는가 하면 조수삼·이상적·오경석과 같은 중인들과 교류를 갖기도 했다. 한양 인왕산의 서당 훈장 천수경(千壽慶·1758∼1818)은 집안이 가난했지만 글 읽기를 좋아하고, 시를 잘 지었다. 옥류천(玉流泉) 위 소나무와 바위 아래에 초가집을 짓고, 호를 송석도인(松石道人)이라고 했다. 아들 다섯의 이름은 일송(一松), 이석(二石), 삼족(三足), 사과(四過), 오하(五何)이다. 첫째 소나무와 둘째 바위는 자기 집 이름을 아들에게 붙여준 것이고, 셋째는 아들 셋이면 넉넉하다는 뜻에서 ‘삼족’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아들 하나가 더 생기자 너무 많다는 뜻으로 ‘과(過)’라 했는데, 하나가 더 생기자 “이게 웬 일이냐.”는 뜻으로 ‘하(何)’라고 했다. 창덕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양반 사대부들이 살았고, 그 오른쪽 인왕산 자락과 청계천 일대에는 역관이나 의원 같은 중인, 경아전들이 많이 살았다. 지대가 높고 외져서 집값이 쌌기 때문에, 가난한 서리들이 관청과 가까운 인왕산쪽으로 올라와 살게 된 것이다. 인왕산의 물줄기는 누각골(지금의 누상동)과 옥류동(지금이 옥인동)에서 각기 흘러내리다가 지금의 옥인동 47번지 일대에서 만났다. 깊은 산속에서 옥같이 맑게 흐르는 이 시냇물을 옥계(玉溪)라고 했다. 인왕산에서 태어나 함께 자란 친구들이 옥계 언저리에서 자주 만나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놀았는데,1786년 7월16일 옥계 청풍정사에 모여 규약을 정하고 시사(詩社)를 결성했다. 달 밝은 밤 솔숲에 흩어져 앉아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뜯고 시를 읊다가, 정기적으로 모여 시를 지으며 공동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13명이 모여 이날 지은 글들을 모은 ‘옥계사(玉溪社)’ 수계첩에 ‘차서(次序)’가 실려 있어 구성원의 이름과 나이를 알 수 있다. 장혼은 발문에서 “장기나 바둑으로 사귀는 것은 하루를 가지 못하고, 술과 여색으로 사귀는 것은 한 달을 가지 못하며, 권세와 이익으로 사귀는 것도 한 해를 넘지 못한다. 오로지 문학으로 사귀는 것만이 영원하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문학으로 사귀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씩 모였고, 그때마다 제목을 정해 시를 지었다. 주로 정월 대보름, 삼짇날, 초파일, 단오, 유두(6월보름), 칠석, 중양절(9월9일), 오일(午日), 동지, 섣달그믐에 모였다. 또 기쁘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돈을 모아 축하해 주기도 했다.1791년 6월 보름날에도 옥계에 모여 시를 지었는데, 달밤에 술 마시며 시 짓는 모습을 이인문(李寅文·1745∼1821)이 그림으로 그렸다. 솔숲 큰 바위에 ‘松石園’이라 쓴 곳이 바로 이들의 모임터인데, 이날은 풍악 없이 조촐하게 모였다. 제시(題詩)는 여든을 바라보는 마성린(馬聖麟·1727∼1798)이 썼는데, 옥계사 동인이 아니라 선배격인 백사(白社) 동인으로 격려한 것이다. ●당대 문인들 송석원서 교류하다 승문원(承文院·외교문서 관장) 서리였던 마성린은 살림이 넉넉했기에 위항(委巷) 시인들의 후원자 노릇을 했다. 평생 인왕산 일대를 떠나지 못하고 몇차례 집을 옮겨가며 살았다. 그는 늘그막에 ‘평생우락총록(平生憂樂總錄)’이라는 자서전을 지었다. 제목 그대로 기쁘고 슬픈 한평생이다. 그의 집에 수많은 시인 화가 음악가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으며, 이제 친구들이 다 세상을 떠나자 후배들의 시첩에 와서 그림에 글씨를 써주며 격려했다. ‘송석원시사’가 장안의 화제가 되자, 문인들이 이 모임에 초청받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해마다 봄가을이 되면 남북이 모여 큰 백일장을 열었는데, 남쪽의 제목은 북쪽의 운(韻)을 쓰고, 북쪽의 제목은 남쪽의 운을 썼다. 날이 저물어 시가 다 들어오면 소의 허리에 찰 정도가 됐다. 그 시축을 스님이 지고 당대 제일의 문장가를 찾아가 품평받았다. 장원으로 뽑힌 글은 사람들이 베껴 가면서 외웠다. 무기를 가지지 않고 흰 종이로 싸우는 것이라서 백전(白戰)이라고 했는데, 순라꾼이 한밤중에 돌아다니던 사람을 붙잡아도 “백전에 간다.”고 하면 놓아 주었다. 송석원시사가 커지자, 천수경이 60세 되던 해에 당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에게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추사는 송석원시사가 결성되던 해에 태어났는데, 어느새 그에게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이름이 났던 것이다. 추사의 집은 충남 예산 용궁리에 있는 추사고택이 잘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인왕산 건너편의 통의동에 주로 살았다. 수령 600년의 통의동 백송(白松)이 10여년 전에 수명을 다해 쓰러졌는데, 이 나무가 바로 추사의 집 정원수였다. 추사의 증조할아버지 김한신이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에게 장가들어 월성위에 봉해지자, 영조가 통의동에 큰 저택을 하사했다. 너무 큰 집이어서 월성위궁(月城尉宮)이라고 불렸다. 추사는 김한신의 장손, 큰아버지 김노영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는데,12세에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어 할아버지 김이주(형조판서)마저 세상을 떠나 큰 집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추사 32세에 송석원을 쓰다 송석원시사의 부탁을 받은 추사는 예서체의 큰 글자로 ‘松石園’을 쓰고, 그 옆에 잔 글씨로 ‘정축(丁丑) 청화(淸和) 소봉래서(小蓬萊書)’라고 간기를 쓴 뒤에 낙관했다. 정축년은 1817년이니, 추사의 나이 32세. 청화는 음력 4월(또는 2월)이고, 소봉래는 추사의 또 다른 아호이다. 예산 고향집 뒷산을 소봉래라 했는데, 청나라에 다녀온 뒤부터 호를 자주 바꾸는 습관이 생겼다. 1809년 10월에 호조참판으로 있던 생부 김노경이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가게 되자,24세 되던 추사도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따라나섰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사신뿐만 아니라 상인·학자·승려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교류했지만, 조선초부터는 국경을 폐쇄하고 사신만 오가게 했다. 합법적으로 가볼 기회는 사신, 또는 사신의 수행원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사신들은 자기의 자제를 개인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서 견문을 넓혀 주었는데, 이를 자제군관이라고 했다. 추사의 스승 박제가가 자제군관으로 가서 청나라의 앞선 문물을 보고 돌아와, 추사에게 반드시 청나라를 구경하라고 당부했다. 청나라의 문인 학자들에게는 이미 추사를 한껏 자랑해 놓았다. 추사는 연경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 완원(阮元)을 만나 완당(阮堂)이라는 호를 받았다. 추사는 이때부터 상황에 따라 당호와 아호를 새로 짓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추사로서는 금석학자이자 서예가인 옹방강(翁方綱)을 만난 것이 더 큰 행운이었다. 그의 서재 석묵서루에는 희귀본 금석문과 진적(眞蹟) 8만여점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추사는 조선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진본들을 맘껏 보았고, 모각본까지 선물받았다. ●청 문물 경험후 서체 달라져 청나라에서 돌아온 뒤에 그의 글씨가 달라졌을 것은 당연하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는 추사의 글씨가 바뀐 과정을 논하면서, 청나라에 다녀온 뒤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완옹(阮翁)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書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동기창(董其昌)에 뜻을 두었고,(청나라에 다녀온 뒤) 중세에는 옹방강을 좇아 노닐면서 그의 글씨를 열심히 본받았다.(그래서 이 무렵 글씨는) 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꺼운데다 골기(骨氣)가 적다는 흠이 있었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씨가 바로 ‘松石園’ 석 자이다. 장중하면서도 아름답다. 박제가의 제자였던 추사는 신분의 벽을 넘어서 송석원시사의 조수삼과 가깝게 지냈으며, 이상적이나 오경석 같은 역관 제자, 조희룡이나 전기 같은 중인 화가들을 길러냈다. 위항시인의 시가 순수하다는 성령론(性靈論)이나 ‘인재설(人才說)’도 그러한 생활 속에서 나왔다. 송석원은 위항시인들의 모임터로도 이름났지만 김수항(안동 김씨), 민규호(여흥 민씨), 윤덕영(해평 윤씨) 등의 권력가들이 서로 집을 넘겨주며 살았던 곳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이 일대가 고급 주택가로 바뀌었지만, 시멘트 벽속에 ‘松石園’ 글씨가 아직도 남아 있고, 복개된 길 밑으로는 옥계가 흐르고 있다. 인왕산 재개발을 앞두고, 이 일대의 문화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 허경진 연세대 교수 > ■ 중인이란 중인(中人)이란 신분계급으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사이를 말한다. 중인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좁은 의미로는 주로 중앙의 여러 기술관청에 소속되어 있는 역관(譯官)·의관(醫官)·율관(律官)·산관(算官)·화원(畵員) 등 기술관원을 총칭했다. 이들은 잡과(雜科) 시험에 합격, 선발된 기술관원이거나 잡학 취재(取才)를 거쳐서 뽑혔다. 넓은 의미로는 중앙의 기술관을 비롯하여 지방의 기술관, 그리고 서얼(庶孼), 중앙의 서리(胥吏)와 지방의 향리(鄕吏), 토관(土官)·군교·교생·경아전 등 여러 계층을 포괄적으로 일컬었다. 양반 사대부 계층에 비하여 차별대우를 받았으며, 신분과 직업은 세습됐다. 육조(六曹)와 삼사(三司) 등의 일반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고, 한품서용제(限品敍用制)에 의해 관직 승진에도 제한이 가해졌다. 또 이들은 지방 양반의 명단인 향안(鄕案)에 등록되지 못했고, 향교(鄕校)에서도 양반의 아래에 앉아야 하는 등 천시를 받았다. 하지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문적인 기술지식이나 행정경험을 통해 양반 못지 않는 능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오늘날의 통역관에 해당되는 역관(譯官)들은 17세기부터 청(淸)나라와의 무역이 왕성해짐에 따라 자주 청나라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밀무역을 하거나, 상인들의 무역업무를 교섭해주고 돈을 받아 부자가 된 자들도 많았다. 이들은 전문적인 기술지식과 특수한 문서양식, 그리고 독특한 시문(詩文)인 위항문학(委巷文學)을 발전시켰으며 외세에 의한 변동기에 민감한 정세판단으로 전통문화의 해체와 근대화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 필자 허경진은 ▲1952년 목포 출생 ▲70년 제물포고 졸업 ▲74년 연세대 국문학 학사 ▲84년 연세대 박사 ▲84년∼93년 목원대 교수 ▲93∼2001년 미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 연구교수(한국한시) ▲01년∼현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우리 옛시(80년), 허균의 시화(82년), 평민열전(89년), 다산 정약용 산문집(94년), 연암 박지원 산문집(94년), 매천야록 매월당집(95년), 선조독살 전말기(95년), 조선위항문학사(97년), 허균평전(02년), 악인열전(05년) 등 다수.
  • 독살된 러 첩보원이 쓴 책 영화로 만든다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 210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드러난 러시아 연방보안부(FSB) 전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 인터넷판은 24일(현지시간) 리트비넨코가 러시아 역사학자인 유리 펠시틴스키와 함께 쓴 ‘러시아 날려버리기(Blowing Up Russia)´의 판권을 미국 할리우드 영화사인 ‘브라운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리트비넨코는 자신의 책에서 FSB가 1999년 러시아에서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테러 사건을 배후 조종했다는 ‘음모론’을 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폭탄테러 사건을 체첸 반군의 소행으로 몰아붙였고 지지도 상승으로 크렘린에 입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리트비넨코의 독살 배후로 지목을 받고 있는 러시아 정부의 심기가 더욱 불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옛 KGB요원들, 지금도 日서 활동

    |도쿄 이춘규특파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전 러시아 연방보안부(FSB)요원의 독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 정보기관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이 12일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FSB의 전신인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출신 영국 국적의 한 인사의 말을 인용해 현재 일본에서 암약하고 있는 정보요원이 냉전 이후 더욱 늘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냉전 전에는 300명 정도였으나 현재는 그보다 많으며, 국적도 러시아 외에 일본, 한국, 중국 등이다.”라고 밝혔다.그는 또 “러시아 당국이 일본을 북미와 서유럽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정보원들이 냉전시대부터 일본에서 미국에 관한 군사정보를 입수해 러시아에 보내고 있으며, 주요 표적은 관공서와 외곽단체 등이다.”고 말했다.taein@seoul.co.kr
  • 강빈/박정애 지음

    “성품이 흉험하고 행실이 좋지 않았다. 이재를 추구해 많은 재물을 모았고 그 재물로 사람을 잘 유인했다. 세자가 없을 때는 시강원의 장계를 가져다가 임의로 써넣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했으니 부인의 도리와 분수를 지키지 않았다.…세자가 병이 있는 데도 잠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음란했고, 임금의 처소 가까이에서 큰 소리로 발악할 정도로 불순하고 거셌다.” 조선시대 인조와 효종대의 실록이 전하는 소현세자빈 강씨, 즉 강빈의 모습이다. 그러나 소설가 박정애(36·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 교수)는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실의 얼굴은 네모졌다가도 둥그레지는 법”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강빈을 여필종부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선구자적인 여인으로 끌어올린다. 최근 펴낸 역사소설 ‘강빈’(도서출판 예담)에는 작가의 이런 ‘여성주의적’ 역사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강빈(1611∼1646)은 열다섯 살에 ‘한번 들면 영결’이라는 구중궁궐의 왕실 여인이 된다. 하지만 병자호란의 패배로 남편 소현세자, 시동생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심양에서 9년 동안 인질생활을 한다. 그러나 강빈은 힘든 볼모생활에 굴하지 않고 소현세자를 도와 서양 문물을 도입하고, 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대규모 영농과 국제무역에서 큰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대가는 가혹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청과 짜고 자신을 몰아내려 한다는 인조의 의심으로 귀국 두달만에 독살 당하고,1년뒤 강빈도 조씨 저주사건 주모자이자 임금의 음식에 독을 넣었다는 죄목으로 서른여섯의 나이에 사사당하고 만다. 왕실 여인들은 흔히 지아비의 사랑을 얻기 위해 질투와 음모를 일삼거나, 당쟁에 휘둘리는 희생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록이 전하는 강빈의 모습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중세적이고 남성적인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작가가 그리는 강빈은 꿈과 사랑을 위해 자신의 열정을 아낌없이 불사른 더없이 매력적인 인물이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사내가 2년새 집안식구 5명을 독살한 내막은

    “유산 몇 푼 더 챙기려고….부모와 조카들을 죽이는 천하에 둘도 없는 패륜아가 되다니!” 중국 대륙에 유산을 챙기기 위해 자신의 부모와 조카들을 무참히 독살해버린 패륜 부부가 붙잡혀 물신 풍조의 만연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5일 중국신문(中國新聞)망에 따르면 독살사건의 용의자는 쓰촨(四川)성 루저우(瀘州)시에 살고 있는 장(蔣)모 부부.이들 부부는 2년여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를 독살했을 뿐 아니라,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는데 걸림돌이 되는 동생부부와 조카딸을 무참히 독살한 혐의로 붙잡혔다. 장씨 부부가 독살한 아버지 장씨는 이발사를 호구지책으로 삼아 슬하에 2남2녀를 키웠다.이발사를 하면서 생기는 샐닢도 허투루 쓰지 않고 조금씩조금씩 여투어온 덕에 생활에는 어느정도 여유가 있었다.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맏아들 장씨 등 두 아들과 큰딸을 이미 결혼시켰으며 이들도 자녀를 두고 있다.둘째 딸은 루저우의 한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아버지 장씨 부부는 생전에 둘째 아들 부부와 손녀 딸과 함께 생활해왔다. 사건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아버지 장씨의 아내(사건 용의자 어머니)와 그의 작은 며느리가 사망했다.건강했던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구토를 하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사지를 부르르 떨며 아주 고통스럽게 숨졌다.1년 뒤 2005년 이번에는 10살 밖에 안된 손녀딸인 둘째 아들의 딸이 같은 증상으로 보이며 사망했다. 올들어서는 4월 아버지 장씨마저도 또다시 같은 증상을 보이며 사망한데 이어,7월에는 둘째 아들마저 입과 코 등에 흰거품을 물고 사망한 시신으로 발견됐다.불과 2년여 동안 장씨 집안 일가족 5명이 모두 저승길에 오른 것이다. 그 친척들은 모두 “불과 2년새 일가족 5명이 죽은 사실이 조금은 이상했다.”며 “그래도 갑작스럽게 몹쓸 병을 얻어 모두 세상을 떠났구나.”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들을 양지바른 곳에 안장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을 없게 마련.장례식이 끝난 뒤 아버지 장씨의 두 딸과 맏아들간에 말다툼이 대판 벌어졌다.아버지 장씨가 남긴 유산을 둘러싸고 서로 많이 챙기려고 시끌벅적하게 떠든 것이다. 장씨의 두 딸에 따르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은행에 수만원(약 수백만원)을 에금했는데,이를 큰 오빠가 모두 삼킬려고 한다는 것.이 때문에 의심이 생긴 두 딸은 공안(경찰)당국에 집안 가족 5명의 사인이 불분명하다며 신고한 것이다. 공안당국은 즉각 매장된 집안 가족 5명의 시신를 부검한 결과 이들 모두 독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이에 따라 여러가지 정황상 혐의가 짙은 맏아들 장씨 부부를 고의살인죄 혐의 등으로 긴급 제포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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