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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몽’ 이요원-남규리, ‘독살-학대’ 비밀 공유 “동지이자 적”

    ‘이몽’ 이요원-남규리, ‘독살-학대’ 비밀 공유 “동지이자 적”

    MBC ‘이몽’ 속 독립 걸크러시 3인방 이요원-남규리-박하나가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동지이자 적인 이들의 오묘한 관계가 보는 이들의 흥미를 고조시킨다. MBC 특별기획 ‘이몽’(연출 윤상호, 극본 조규원)은 일제 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인 손에 자란 조선인 의사 이영진과 무장한 비밀결사 의열단장 김원봉이 펼치는 첩보 액션 드라마. 독립운동가들의 스토리를 재조명해 매회 시청자들에게 짙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이요원(이영진 역)의 동지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남규리(미키 역)와 박하나(차정임 역)의 속내에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먼저 이요원과 남규리는 극 초반, 임주환(후쿠다 역)을 사이에 두고 연적 관계를 형성해 이목을 끌었다. 남규리가 이요원을 마음에 품고 있는 임주환을 짝사랑하고 있던 것. 이후 남규리와 친분을 쌓은 이요원은 남규리의 양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한위(송병수 역) 독살 작전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남규리는 이요원과 유지태(김원봉 역)가 이한위를 독살한 정황을 눈치채 긴장감을 높였다. 더욱이 남규리는 이요원에게 이한위의 학대 사실을 고백하며 “약속해요. 내 비밀 지켜주기로. 언니 비밀은 내가 지켜 줄게요”라는 말을 남겨 그 속내에 궁금증이 증폭됐다. 이에 서로의 비밀을 품고 있는 이요원과 남규리의 향후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요원과 박하나의 관계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앞서 박하나는 어린 시절 유지태와의 인연으로, 그에 대한 호감을 품은 채 의열단에 합류했다. 이에 유지태는 박하나에게 “문제 생기면 냉정하게 정리할 사람이 너 뿐이야”라며 의열단의 안방마님 박하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유지태의 마음은 이요원을 향해 있는 상태. 이에 박하나가 이요원을 연적으로 적대시 할지, 독립운동 동지로 손을 맞잡을지 궁금증이 높아진다. 한편 ‘이몽’ 지난 방송에서는 이영진과 김원봉이 함께 친일행각을 일삼은 송병수를 처단해 통쾌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김원봉은 조선총독부 폭파 작전을 시행하던 중 치명상을 입고 중태에 빠진 상황. 이에 이영진, 김원봉과 의열단의 향후 행보에 궁금증이 수직 상승한다. MBC 특별기획 ‘이몽’은 이요원-유지태-임주환-남규리-허성태-조복래 등 탄탄한 출연진, ‘사임당 빛의 일기’, ‘태왕사신기’ 등을 연출한 윤상호 감독, ‘아이리스’ 시리즈를 집필한 조규원 작가 등 믿고 보는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작품. 오늘(8일) 밤 9시 5분 19-22화가 연속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몽’ 남규리 “미키 헤어스타일, ‘색계’ 탕웨이 참조”

    ‘이몽’ 남규리 “미키 헤어스타일, ‘색계’ 탕웨이 참조”

    MBC ‘이몽’ 남규리가 자신을 학대해온 양부 이한위의 죽음을 방관하는 연기로 호평을 받는 가운데 특유의 털털하고 솔직한 인터뷰가 공개됐다. 독립운동가들의 스토리를 재조명해 매회 시청자들에게 짙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MBC 특별기획 ‘이몽’(연출 윤상호, 극본 조규원)에서 ‘미키’ 역을 맡은 배우 남규리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지난 16화에서는 그 동안 송병수(이한위 분)에게 학대 당해왔던 미키(남규리 분)가 이영진(이요원 분)-김원봉(유지태 분)의 독살로 몸부림치는 송병수를 바라보며 애교 가득했던 얼굴을 지우고 싸늘하게 돌변하는 모습이 그려져 소름을 유발한바 있다. 이때 한 순간에 돌변하는 표정과 말투로 미키를 완벽히 소화한 배우 남규리에게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이에 남규리는 “그 동안 보여드리지 않았던 캐릭터이기에 새롭다고 느껴주셨던 것 같다. 너무 감사하다”며 대중의 호응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벗어 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미키가 한 선택에 공감했고, 저 역시 속 시원했다”며 화제의 장면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한편 남규리는 미키를 ‘분신 같은 존재’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미키는 제 마음을 독차지 했던 ‘분신 같은 존재’였다. 촬영장에 다녀오면 언제나 미키 연기를 곱씹으며 꿈꾸듯 빠져 살았던 것 같다”면서, “현장이 끝나는 게 아쉬워서 혼자 울었던 기억도 난다”며 미키를 연기할 때의 설렘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남규리는 오묘한 표정과 눈빛, 매력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라는 평을 얻고 있는 바, 미키를 연기함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혀 귀를 쫑긋하게 했다. 그는 “칼이 아니라 바늘 같은 미키의 본능적인 표현과 쿨함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드러날 듯 말듯 오묘하게 움직이는 행동과 눈빛, 부드러운 리듬을 타는듯한 말투로 미키를 표현하려 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남규리는 화려한 스타일링에 대해 “드라마 의상팀과 헤어팀에서 해주신 스타일링 중 매번 미키의 감정선에 따라 직접 초이스를 했다. 당당하고 쿨하면서도 소녀스러운 미키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번 고민해서 선택했다”며 스타일링 하나에 있어서도 묻어 나오는 애정을 느끼게 했다. 이에 더해 남규리는 화제가 된 헤어스타일에 대해 “헤어스타일을 고민하던 중 좋아하는 영화 ‘색계’ 속 탕웨이의 핑거 웨이브를 봤다. 마치 미키마우스 귀를 거꾸로 해놓은 듯한 모습이 미키와 너무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해서 하게 됐다”며 미키의 탕웨이 헤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런가 하면 남규리는 가장 기억에 남은 댓글을 언급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혀 이목을 집중시켰다. “‘누군가 해서 찾아봤더니 남규리였다’라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매 작품 잘할 수 있는 것보다 틀을 깨고 캐릭터에 분해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남규리라는 사람보다 캐릭터가 보인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더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이몽’이 끝난 뒤 ‘미키는 남규리가 딱 이었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항상 쓴 소리, 단 소리 달게 받고 발전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해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이날 남규리는 ‘이몽’에 대해 “모든 회차가 저에겐 울림이고 가슴 뜨겁다”면서, “특히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스토리가 담긴 14화 엔딩 장면이 그 시대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 먹먹했다. 그 시대를 살면서 선조들이 느끼셨을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가장 평범해야 할 일상마저도 무너지는 현실 속에 살아야 했던 삶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끝으로 남규리는 관전포인트로 ‘미키의 변화’를 꼽으며 “미키는 비밀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 미키의 행동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할 수도 아닐 수도 있으니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전해 관심을 고조시켰다. 이어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듯, ‘이몽’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드라마로 많은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 드린다”며 드라마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MBC 특별기획 ‘이몽’은 일제 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인 손에 자란 조선인 의사 이영진과 무장한 비밀결사 의열단장 김원봉이 펼치는 첩보 액션 드라마. 오는 8일(토) 밤 9시 5분에 19-22화가 연속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능력을 뽐내려고 일부러 치명적 약물 주입? 프랑스 마취 의사 수사

    능력을 뽐내려고 일부러 치명적 약물 주입? 프랑스 마취 의사 수사

    프랑스의 한 마취과 의사가 17명의 환자에게 일부러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약물을 주입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동부 브장송의 한 병원에 근무하는 프레데릭 페시에르(47)는 이번주 법원에 출두해 심문을 받았다. 48시간 구금되기도 했다. 경찰과 검찰은 그가 동료 의사의 마취약 파우치에 뭔가를 넣어 위급한 상황을 유도한 뒤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페시에르는 2017년 5월에도 일곱 건, 아홉 명의 죽음에 연루됐는지 추궁 당했지만 풀려났다. 하지만 약물을 다루지 말라는 처분을 받았다. 그런 그가 몰래 치명적인 약물을 동료 의사의 파우치에 넣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무려 66건, 가장 최근에는 네 살부터 여든 살 이상까지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환자들이 수술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의심을 부추겼다. 유죄가 인정되면 종신형이 선고될 수 있다. 에티엥 망토 검사는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페시에르가 이들 환자들 사례에 “공통된 뇌관”이었다며 그는 동료들과도 공공연히 갈등을 빚었다고 말했다. 또 수술실에서 그가 하는 행동들은 거의 연출된 것에 가깝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너무 빨리 어떤 증상인지 진단해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페시에르는 16일(현지시간) 취재진에게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내 경력은 끝장 났다. 독살자 낙인이 찍힌 의사를 누가 믿겠는가? 가족은 파탄 났고 아이들이 걱정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변호인 장 이브 르보르뉴는 AFP통신에 경찰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며 “페르시에가 어떤 약물을 주입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 가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변호인들은 경찰이 페르시에의 초기 심문 진술들을 오염시켰다고 비난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여기는 중국] 주인 잠든 사이 반려견 독살...‘육류’로 판매한 부부 검거

    [여기는 중국] 주인 잠든 사이 반려견 독살...‘육류’로 판매한 부부 검거

    타인의 반려 강아지를 무단으로 절도, ‘식용’ 개고기로 재판매한 ‘악질’ 부부가 공안에 붙잡혔다. 장쑤성(江苏) 단양시(丹阳市) 인민 검찰은 최근 전 씨, 손 씨 등 2인 일당을 붙잡아, 절도죄, 유해식품 제조 및 판매 등의 혐의로 구속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단양시 인민 검찰은 최근 공익에 반한 이들 부부의 혐의에 대해 제1심 재판을 통해 남편 전 씨와 아내 손 씨에 대해 최소 1년 이상, 6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유력언론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지난 2018년 1월부터 이 일대에 거주하는 이웃들을 대상으로 반려 동물과 일반 가축 등을 무단으로 절도, 독살 후 재판매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해당 부부가 절도 후 도살한 가축 등을 인근 도시로 재판매하도록 도운 혐의를 받는 일당 11명을 추가로 적발해 구속 수사하고 있다고 현지 공안은 밝혔다. 이번에 공안에 적발된 일당은 가축 도살 및 처분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었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가축의 사료에 독약을 섞어 먹이는 방식으로 손쉬운 살처분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이들이 먹인 독약 사료를 먹고 죽은 가축이 인근 식당에 ‘고기류’로 유통된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독약을 먹은 후 죽은 고기는 해당 부부가 구매한 대형 냉동고에 저장, 이후 인근 대형 식당과 호텔 등에 식용 고기로 빠르게 처분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인근 식당에 독약 먹인 가축을 납품한 이들 부부와 일당이 지난해 1월부터 판매한 육류 양은 무려 약 8만 근에 달한다. 이는 현지 시가로 약 40만 위안(약 70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특히 이들은 개 주인, 가축 소유자들이 잠에 든 새벽 4시부터 아침 8시까지를 겨냥, 인근 지역 가축을 상습적으로 절도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에 대해 현지 공안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편취, 재판매한 수익의 10배에 달하는 약 400만 위안(약 7억 원)의 벌금형이 내려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장쑤성 인민검찰 측은 이 같은 사례가 지역 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식품의약품 안전범죄 처벌’과 관련한 사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지난 7일 해당 지역 검찰이 공개한 사건 내역에 따르면, 단양시 일대에서 유통 중이었던 개고기 샘플을 채취한 결과 일부 육류에서 ‘스키사메토늄’과 ‘사이안화물’로 불리는 독성이 강한 공업화학약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특히 해당 육류는 이 같은 공업 화학 약품에 중독, 폐사한 것으로 이를 무단으로 유통한 업자들에 대해 강력한 처분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지 인민 검찰 관계자는 타인 소유의 가축 절도 및 독극물에 중독, 폐사한 육류의 재판매 등의 업자 사건과 관련 “적발된 업자 및 유통 업체 등에 대해서는 부당 판매 수익의 최소 5배에서 최대 10배까지의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면서 “또한 해당 업자들은 언론을 통해 개인 정보를 공개, 일반 대중에 공개 사과하는 등의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여기는 남미] “시끄러운 반려견, 독살하겠다” 경고, 장난 아니었다

    [여기는 남미] “시끄러운 반려견, 독살하겠다” 경고, 장난 아니었다

    콜롬비아에서 테러 같은 반려동물 독살사건이 잇따라 발생,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1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살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는 곳은 콜롬비아의 페레이라라는 지방도시다. 영문도 모른 채 독살을 당한 반려동물은 반려견 5마리, 반려묘 5마리 등 이미 최소한 10마리에 이른다. 유기견 입양운동을 벌이고 있는 민간단체 '아돕타메'의 대표 릴리아나 리베라는 "신고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독살을 당한 반려동물은 훨씬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사건을 동물에 대한 테러로 보고 있다. 여기엔 충분히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보름 전 페레이라에는 섬뜩한 인쇄물이 돌기 시작했다. 누가 뿌렸는지 확인되지 않는 인쇄물에는 "길에 있는 반려동물을 독살하겠다"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인쇄물은 "짖어대는 반려견에 대한 공동체(주민)의 불만이 계속되고 있어 이젠 우리가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경고했다. 독을 먹고 조용해지기 전에 반려견을 교육시키라는 최후의 통첩도 포함돼 있었다. 동일한 내용의 게시물이 인터넷에도 돌기 시작하자 페레이라 경찰은 대응에 나섰다. 인쇄물이 뿌려진 곳을 중심으로 경찰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민들에겐 주의를 당부했다. 인쇄물에 죽은 반려견의 사진이 포함돼 있고 (시끄럽게 짖는 반려견을 키우는) 집을 모두 파악해두었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장난으로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격을 막아내진 못했다. 사마리아라는 동네에 살던 반려견이 첫 희생양이 됐다. 최근 개를 입양했다는 견주는 독을 먹은 반려견을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살려내지 못했다. 사인은 독살로 판명 났다. 경찰은 "타깃까지 정해놓았다는 점 등을 보면 계획적인 범죄가 분명하다"면서 "테러에 준하는 사건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페레이라에 뿌려진 인쇄물 (출처=콜롬비아 경찰)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동영상] 24년 전 중국에 붙들린 판첸 라마 지금은 이런 모습일 것

    [동영상] 24년 전 중국에 붙들린 판첸 라마 지금은 이런 모습일 것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다음으로 중요한 판첸 라마의 현재 모습을 상상으로 꾸민 이미지다. 여섯 살이던 1995년 이후 중국 당국에 붙잡혀 세계에서 가장 어린 정치범이란 수식어가 붙여졌고, 그 뒤 24년 동안 한 번도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등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11대 판첸 라마가 게둔 초에키 니이마다. 국제티베트네트워크가 전문가인 팀 위덴에게 의뢰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한 이미지다. 보통 어린이들이 실종된 뒤 많은 세월이 지난 뒤의 모습을 상상해 이미지로 만들려면 부모나 가족, 친지, 친구들의 사진을 참조하는데 니이마는 사진이 단 한 장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위덴은 서른 살 청년의 평균 건강 상태, 평균 키나 체격 등을 감안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미지를 구현했다. 4년 전에도 또다른 티베트 관련 단체 국제티베트캠페인이 실종 20주년을 맞아 스물여섯 살 먹은 니이마의 모습을 상상해 공표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판첸 라마의 현재 모습을 이미지로 만들어 배포하는 노력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티베트 불교는 환생을 강하게 믿는다. 판첸 라마가 1989년 중국 당국에 의해 독살됐다는 의심이 파다하자 1959년부터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운 달라이 라마는 1995년 5월 14일 티베트의 나크추 마을에 살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의 아들인 니이마를 판첸 라마로 지명했다. 중국 당국은 달라이 라마가 니이마를 판첸 라마에 지명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미리 가족을 다른 곳으로 옮긴 뒤 자신들이 포섭한 다른 승려들로 하여금 다른 아이를 판첸 라마로 옹립하도록 했다. 니이마는 1995년 5월 17일 중국 당국에 체포된 뒤 지금까지 종적이 묘연하다. 한 관리는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중국 북부 깐수성에 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가 베이징에나 근처에 감금돼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2000년 10월 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은 상하원 국제위원회에다 “우리가 니이마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중국 정부는 그가 건강하며 보살핌을 잘 받고 있으며 부모들은 다른 나라들이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되풀이해 들었다”고 밝혔다. 쿡 장관은 중국 관리들이 탁구를 치는 모습과 칠판에 한문을 적는 뒷머리 모습이 담긴 사진 두 장을 보여줬을 뿐 사진을 넘겨주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중국 당국이 납치해 감금하고 있건 보호하고 있건 그의 마지막 모습은 열한 살이던 2000년 쿡 장관이 본 두 장의 사진이 유일하다. 달라이 라마처럼 판첸 라마는 부처의 한 단면이 환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판첸 라마는 무량한 빛의 부처인 아미타불(Amithaba)이 환생한 것이며, 달라이 라마는 공감의 부처인 관음불(Avalokiteshvara, 티베트 말로는 Chenrezig)의 환생으로 여겨진다.전통적으로 둘은 상대의 환생에 멘토 역할을 하며 상대의 환생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떠맡는다. 판첸 라마의 나이가 달라이 라마보다 50세 이상 어려 적절한 절차를 거쳐 달라이 라마를 승계하게 된다. 중국 정부가 1995년 판첸 라마 지명 과정을 통제했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승계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달라이 라마는 2011년 은퇴와 환생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중국 정부는 “내가 죽기만을 기다리며 15대 달라이 라마 임명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하겠다고 합니다”라고 개탄했다. 사실 판첸 라마는 달라이 라마가 현생을 마감한 뒤 그의 환생체를 찾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판첸 라마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놓아두면 달라이 라마 사후의 차기 지명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달 로이터통신 인터뷰를 통해 승계자를 인도에서 찾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장차 두 명의 달라이 라마가 있을 수 있다. 한 명은 여기 자유로운 국가에서, 다른 한 명은 중국에서 말이다. 누구도 중국에 의해 선택된 쪽을 믿어서도 존경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하고 티베트 불교도 회의를 연내 인도에서 열어 달라이 라마가 자신의 승계자를 손수 찾는 일을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쌍둥이만 15쌍...자녀 총 44명 낳은 우간다 싱글맘의 사연

    쌍둥이만 15쌍...자녀 총 44명 낳은 우간다 싱글맘의 사연

    아프리카 우간다 여성 마리암 나바탄지(39)는 지금까지 무려 44명의 자녀를 낳았다. 몇 명은 죽었고 현재는 38명이 마리암과 살고 있다. 우간다 출산율은 여성 1명당 평균 5.6명으로 세계 평균인 2.4명의 두 배가 넘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다. 로이터통신은 25일(현지시간) 그중에서도 마리암이 가장 많은 자녀를 출산한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기네스에 따르면 1700년대 러시아의 한 농부가 16쌍의 쌍둥이와 7쌍의 세쌍둥이 등 모두 69명의 자녀를 낳은 것이 최고 기록이다.마리암은 12살 때 결혼해 1년 만에 첫 쌍둥이를 낳았다. 이후로 5쌍의 쌍둥이를 줄줄이 출산했고, 세쌍둥이 4쌍과 네쌍둥이 5쌍이 그 뒤를 이었다. 첫 쌍둥이를 출산한 후 의사는 마리암에게 그녀의 난소가 유난히 크며, 피임약은 건강에 매우 해로울 것이라는 소견을 내놨다. 그 어떤 피임도 하지 못한 마리암은 그렇게 15번의 출산 끝에 44명의 자녀를 낳았다. 마리암은 “2년 반 전 마지막 임신을 했다. 나에게는 6번째 쌍둥이였는데, 한 명은 출산 중 죽었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망한 아이들을 빼고 38명의 자녀가 살아 있다.마리암과 38명의 자녀는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북쪽으로 50여km 떨어진 마을에 산다. 시멘트와 골판지로 대충 만든 방 네 칸짜리 집은 39명이 함께 살기에는 비좁다. 어떤 아이들은 2층 침대에서, 어떤 아이들은 흙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장성한 아이들은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요리나 집안 일을 나누어서 한다. 그러나 여자 혼자 38명의 자식을 건사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마지막 임신 후 남편이 그녀와 아이들을 버리고 떠나면서 마리암은 싱글맘으로 아이들을 혼자 부양하고 있다. 이제 이 집안에서 남편의 이름은 금기어다.38명의 식비와 학비, 의료비 등을 대기 위해 마리암은 미용일, 이벤트 보조, 고철 수집, 술 빚기, 의약품 판매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마리암은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어른의 책임을 떠맡았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을 돌보고 돈을 버는 데 사용했다. 행복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리암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3일 후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가출했다. 이후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새어머니는 마리암의 5남매를 독살했다. 그녀는 “나는 친척집에 있어서 겨우 독살을 피했다. 그때 난 7살이었고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고 말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늘 많은 아이를 갖고 싶었다는 마리암은 그러나 이렇게까지 많은 자녀를 낳을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돈이 없어 학교를 중퇴해야 했던 첫째 딸 이반 키부카(23)는 “엄마는 우리를 키우느라 늘 압박 속에 살았다. 아이들을 씻기고 요리를 하는 등 가사를 분담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의 부양은 엄마가 책임지고 있다. 엄마가 안쓰럽다”고 가슴 아파했다. 그러나 자신의 유년 시절이 불우했기에 아이들만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리암의 바람대로 38명의 아이는 잘 자라주었다. 마리암은 집 한쪽에 나란히 걸려 있는 자녀들의 졸업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해치’ 정일우, 한승현 충격 죽음에 핏줄 선 오열 “형님”

    ‘해치’ 정일우, 한승현 충격 죽음에 핏줄 선 오열 “형님”

    SBS ‘해치’ 정일우가 ‘경종’ 한승현의 충격적인 죽음에 처절하게 오열했다. 60분 내내 브라운관 압도한 미친 몰입도와 함께 혼란스러운 조정에서 ‘왕세제’ 정일우가 앞으로 펼칠 활약에 관심이 치솟는다. 지난 8일(월)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해치’ 33회, 34회에서는 경종(한승현 분)이 끝내 밀풍군(정문성 분)의 계략에 의해 죽음을 맞아 충격을 안겼다. 특히 이 과정에서 왕세제 이금(정일우 분)이 자신에게 향할 비난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내의원의 탕제를 물리는 등 경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이금은 내의원에서 혈흔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확인, 그 배후에 밀풍군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품었다. 이에 이금은 갑작스레 병환이 악화된 경종에게 내의원 탕약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는 상황. 이금은 박문수(권율 분)에게 밀풍군과 위병주(한상진 분), 도지광(한지상 분)의 재조사를 지시했고, 내의원을 긴급 수색했다. 하지만 이는 이금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는 사안이었고 그를 향한 신료들의 반발은 거셌다. 탕약에 독이 사용됐을지 모른다는 의혹은 있으나, 이가 밀풍군의 소행이라는 점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경종의 병세 악화를 눈 앞에서 지켜만 봐야 하는 것. 이금은 내의원을 대신해 도성의 명의를 불러냈지만 그 또한 병의 원인조차 찾지 못하는 절체절명 위기가 이어졌다. 특히 조태구(손병호 분)는 “주상전하의 병을 치료할 의지는 있으신 것이옵니까”라며 이금을 능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중전(송지인 분) 또한 “세제의 처분을 납득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 이에 민진헌(이경영 분)은 현실적인 충언을 건넸다. 그는 “장차 군왕이 되고자 한다면, 불구덩이는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명백한 진실도 외면할 수 있는 것. 때론 그것이 진짜 책임일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라며 일침했다. 하지만 이금은 “책임을 피해야 한다면. 그런 것이 군왕이라면. 난 차라리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라며 이 또한 자신이 감내해야 할 길임을 되새기는 등 왕세제으로서 소신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이금을 향해 날을 세울 때 인원왕후(남기애 분)가 힘을 보탰다. 특히 인원왕후는 궁녀 수업을 받고 있던 여지(고아라 분)를 궐 안으로 불러 대비전의 나인으로 삼는 등 향후 이뤄질 이금과 여지의 재회에 관심을 높였다. 그런 가운데 이 모든 것이 밀풍군의 계략이었음이 실제로 드러나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밀풍군은 채윤영(배정화 분)을 앞세워 내의원 수의녀에게 해독제가 없는 극독을 탕재에 넣게 한 것. 더욱이 밀풍군은 이금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경종을 살리기 위해 탕약을 물릴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고, 이로 인해 경종이 죽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탕약을 금한 이금의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라는 악마 같은 계략을 그려냈다. 특히 채윤영이 해당 수의녀를 독살하며 증험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인까지 사라지게 됐다. 무엇보다 끝내 경종이 죽음을 맞이해 충격을 안겼다. 경종은 “그만 애쓰거라. 너는 부디 만백성을 위한 좋은 왕이 되어다오. 나는 될 수 없었던 내가 꿈꿨던 그런 왕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이후 경종을 붙잡고 처절하게 오열하는 이금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특히 스스로 살을 도려내 경종에게 자신의 피를 수혈하는 이금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과정에서 정일우는 얼굴의 핏줄이 곤두설 만큼 고통에 찬 절규로 보는 이들까지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더욱이 “형님”이라는 짧은 울부짖음 속에서 경종을 향한 아우의 깊은 우애가 드러나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런 가운데 남인인 이인좌(고주원 분)가 첫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특히 이인좌가 유배지에 있는 위병주를 찾아가 또 다시 파란이 일어날 것이 예고돼 긴장감을 높였다. 그런가 하면 조태구와 소론이 대비전에 몰려가 “저하께선 이 나라의 왕이 될 자격이 없으십니다”라며 집단 반발해 위기 속 이금이 앞으로 보여줄 행보에 관심을 높였다.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오늘(9일) 밤 10시에 35회, 36회가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중국 VIP용 옌청감옥에 인공지능 도입 탈옥 막아

    중국 VIP용 옌청감옥에 인공지능 도입 탈옥 막아

    보시라이 전 중국 충칭시 당서기 등의 아내 등 중국 고위급 인사들이 수감되어 VIP 감옥이라 불리는 허베이성 옌청 교도소 방마다 인공지능 모니터가 설치됐다. 인공지능 네트워크는 죄수들의 특이 행동을 관찰해 실시간으로 교도관에게 알린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1일 전했다.인공지능 카메라는 인간 교도관처럼 잠을 자거나 먹지도 않으며 24시간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다. 교도관에게 뇌물을 주고 탈옥하려는 시도도 인공지능 시스템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지만 옌청 감옥은 공산당 간부들이 많이 갇혀 비교적 안락한 시설로 유명하다. 교도소 안에 과수원, 채소밭이 있으며 축구장은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가 오면서 운동장 활동이 취소되어 유명무실해졌다. 옌청 감옥에 수용된 이들의 총 숫자는 지난해 기준 1600여명으로 이는 시진핑 주석이 반부패 작업을 시작한 이후 많이 증가한 것이다. 옌청 감옥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톈진대와 공동 개발한 것으로 죄수의 숫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어디에 누가 있으며 누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고 인간 교도관이 모니터를 시청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죄수들이 일정 시간 서성거리는 것이 감지되면 인공지능 모니터는 이상 현상으로 간주하고 인간 교도관에게 이를 알린다. 현재 옌청 감옥 최고 유명인은 보시라이 전 당서기의 아내 구카이라이로 영국 사업가를 독살한 죄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전직 중국 중앙(CC)TV 앵커인 루이 청강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2014년 옌청에 수감됐었다.보시라이는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라이벌로 여겨졌던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과 함께 베이징 북쪽의 친청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저우는 독방에서 개인 정원을 두고 채소를 키우며, 보는 양복을 입고 붓글씨를 쓰는 등 호화로운 수감생활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마트 감옥’을 개발한 톈진대 측은 인공지능 감시 시스템을 남미에도 수출하고자 협의중이나 중국 기술 사용을 제한하는 미국 정부 때문에 시장 진출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 감옥은 카메라와 센서를 동시에 갖췄기 때문에 둘 가운데 하나를 속이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모두를 피해 탈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개발자는 강조했다. 지난해 중국 랴오닝성에서는 두 명의 죄수가 교도관의 제복과 출입카드를 훔쳐 달아났다가 1200여명에 이르는 경찰의 추격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옌청 감옥이 랴오닝성 탈옥 사건 이후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스마트 감옥은 중국뿐 아니라 영국, 싱가포르 등에서도 운영 중이다. 영국은 리버풀의 알트코스 감옥에 2016년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했으며 싱가포르도 교도관이 없는 교도소를 세우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멘붕’에 빠진 뇌과학자 정신질환 투쟁의 기록

    ‘멘붕’에 빠진 뇌과학자 정신질환 투쟁의 기록

    2015년 미국 국립정신보건원 인간두뇌수집원 원장 바버라 립스카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하고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동네에서 길을 잃어 집을 찾지 못하는가 하면 가족들에게 뜬금없이 화를 낸다. 머리에 바른 염색약이 줄줄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동네를 하염없이 달리고, 전날 먹은 피자가 플라스틱 덩어리라는 생각에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망상에 시달린다. 30년 이상 동물과 인간의 뇌를 해부하고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해 연구하던 뇌 과학자의 정신이 붕괴했다는 징후였다. 흑색종이 뇌에 전이돼 곳곳에 종양이 생겼던 립스카는 결과적으로 1~2년 사이에 건강을 회복했다. 심각한 뇌 기능장애를 겪은 사람이 치료에 성공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터라 스스로도 극적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다룬 이 에세이는 정신질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던 한 생존자의 투쟁기인 동시에 불안·망상·분노·기억상실에 빠진 뇌에 대한 한 과학자의 탐구기다. 립스카는 정신질환을 직접 경험한 과학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신경과학적 지식을 바탕 삼아 생생하게 들려 준다. 뇌는 어떻게 정신질환을 만들어 내는지, 정신이 망가져도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기분은 어떤 것인지, 뇌는 어떻게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지에 대해.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은 이후 립스카는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곤경에 더 세심하게 주파수를 맞추게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됐다는 그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사회에 중요한 깨달음을 안긴다. 암이 환자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정신질환 역시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 정신질환자를 대할 때는 깊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정남 살해女, 베트남 출신은 왜 안풀어줬나

    김정남 살해女, 베트남 출신은 왜 안풀어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2년여 만에 석방된 인도네시아인 여성 시티 아이샤(27)가 축제를 방불케 하는 환대 속에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반면 사건 당시 같은 혐의로 말레이시아 정부에 체포됐던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31)은 14일 다시 재판을 앞두고 있는 등 희비가 엇갈려 배경이 주목된다. 13일 자카르타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티는 전날 보고르 대통령궁에서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면담한 뒤 가족과 함께 반텐주 세랑군 란짜수무르 지역의 집으로 향했다. 마을 주민들은 타국의 정치 다툼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이웃이 무사히 귀환한 것을 반기기 위해 늦은 시간임에도 거리로 몰려나와 일제히 환호했다. 일부는 악기를 연주했고, 주변의 이슬람 사원들은 기도시간을 알리는 확성기를 울려댔다. 세랑 출신으로 2008년 서(西)자카르타 탐보라 지역으로 상경한 시티는 2011년 남편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건너갔으나, 1년 뒤 이혼하고 인도네시아 바탐 섬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지에서 일해 왔다. 그는 방송용 프로그램 제작자 행세를 하는 북한인들에게 섭외돼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하는 데 동원됐다가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한편 팜 빈 민 베트남 외무장관은 12일 사이푸딘 압둘라 말레이시아 외무장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시티와 함께 김정남 독살 혐의로 기소된 자국민 흐엉도 석방할 것을 요청했다고 베트남 외무부가 공개했다. 민 장관은 이날 통화에서 베트남 지도부와 국민이 이번 재판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트남에서는 시티가 풀려난 만큼 흐엉 역시 석방돼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됐다. 흐엉의 재판은 14일 열릴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매체들은 사건 당시 김정남이 입고 있던 재킷에서 시티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고, 김정남을 공격하는 모습이 공항 내 CCTV에 찍히지도 않았다는 변호인의 발언을 인용해 시티가 흐엉보다 더 석방되기 쉬운 입장이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주범격인 북한인 용의자들로부터 VX를 건네받아 김정남을 앞뒤로 포위한 채 공격을 했다는 점엔 차이가 없는 만큼 이런 해석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당국이 시티에 대한 공소만 취소하고 석방한 것은 내달 17일 총·대선을 앞둔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민 보호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베트남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공을 들였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61%가, 인도네시아는 87%가 무슬림이라는 정서적 동질감도 있다. 야소나 라올리 인도네시아 법무인권장관은 최근 토미 토머스 말레이시아 검찰총장에게 “시티 아이샤는 리얼리티TV에 출연하는 줄 알았으며 김정남을 살해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 석방을 촉구했다. 토미 총장은 이에 지난 8일 “언급한 사항들과 함께 양국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 시티 아이샤의 공소 절차를 더는 진행하지 않기로 했음을 알리게 돼 기쁘다”고 답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외무부는 끈질긴 외교적 노력 끝에 석방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말레이시아, 김정남 독살 가담한 인도네시아 여성 갑자기 풀어줘

    말레이시아, 김정남 독살 가담한 인도네시아 여성 갑자기 풀어줘

    말레이시아 검찰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 형인 김정남 독살에 가담했던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에 대한 살인죄 기소를 돌연 취하해 달라고 11일 쿠알라룸푸르의 샤알람 고등법원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그녀를 석방했다. 아이샤는 지난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신경 자극제인 VX를 발라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이샤와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은 살인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들은 TV의 함정 프로그램 촬영 중인 것으로 오인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아이샤는 유죄 평결이 내려지면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기소를 취하해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AFP 통신에 따르면 아이샤를 풀어준다고 해서 무죄 방면은 아니라고 보도했다. 이날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을 지켜본 조너선 헤드 BBC 특파원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검찰이 도안 티 흐엉에 견줘 아이샤를 단죄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도안 티 흐엉은 이날 오후 재판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법정 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이샤만 석방된 데 충격을 받았다며 변호인을 통해 재판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제판을 연기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온국민 참여한 성공한 혁명” vs “잘못된 지도로 실패한 시위”

    “온국민 참여한 성공한 혁명” vs “잘못된 지도로 실패한 시위”

    “3·1운동은 신분과 직업, 종교의 구별 없이 도시와 농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이 다같이 참여한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3·1 인민 봉기는 외세 의존에 물젖은 인물들의 잘못된 지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실패의 교훈만 남겼다. 구차스럽게 청원의 방법으로 ‘독립’을 얻으려고 했다.”(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3·1운동에 대한 두 가지 다른 평가다. 우리 학계에서는 3·1운동이 일제의 무단통치에 저항하고 한반도에 민주공화정을 세우는 밑거름이 됐다며 ‘5000년 역사의 최대 사건’으로 추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3·1운동이 그만한 찬사를 받을 만큼 파급력이 큰 사건이 아니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3·1운동이 일어나 실제 광복이 되기까지 26년이나 걸렸기 때문에 둘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민족지도자들이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잘못 이해해 시위에 나섰다는 시각도 있다. 과연 우리는 3·1운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종 승하로 일제 억압에 대한 반발 터진 것 1919년 3월 1일 새벽 서울 종로와 서대문 일대의 주택가 담벼락에 다음과 같은 격문이 붙었다. “우리 이천만 동포여, 우리 폐하 붕어(사망)의 원인을 아는가. 모르는가. 역도를 사주해 시해를 하고자 윤덕영과 한상학에게 음식을 올리는 때를 기다리게 해 시녀로 하여금 식혜에 독약을 넣게 한 것이다.” 앞서 고종(1852~1919)은 1월 21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건강 하나만큼은 ‘완전체’에 가깝다고 알려진 그가 돌연사하자 타살 의혹이 빠르게 퍼졌다. 이 격문은 3월 3일로 예정된 고종의 장례식을 노려 배포됐다. 고종이 일제에 독살 당했다고 대놓고 단정했다. 마지막에는 민족자결주의를 언급하며 “금일은 세계 개조, 망국 부활의 좋은 기회”임을 강조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에 대한 분노를 최대로 끌어올리고자 고종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실제 고종 독살설은 큰 효과를 낸 듯 하다. 경성은 고종을 조문하려고 올라 온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 남대문역(현 서울역) 하차 인원을 살펴보면 2월 28일 1만 4080명, 3월 1일 9686명, 3월 2일 2만 5903명이었다. 평소 남대문역 이용객이 하루 2000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원이 서울로 몰려갔다고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고향으로 내려가서도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3·1운동 발생 일별 통계표’에 따르면 3월 1~20일 하루 평균 12곳에서 만세 시위가 발생했다. 3월 21일~4월 10일엔 매일 전국 25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3월 31일 39곳, 4월 1일 53곳, 2일 40곳, 3일 39곳으로 정점을 찍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실제 3·1운동은 고종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낀 조선인들이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시위에 나선 것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6일 “3·1운동의 직접적 원인이 고종의 독살설에 있다면 만세 시위는 고종의 장례식이 치러진 3일에 가장 격렬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세 시위 기간 동안 ‘고종을 추모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위원은 “고종의 죽음이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3·1운동이 고종을 위한 시위는 결코 아니었다. 9년간 이어진 일제의 무단통치 억압에 대한 반발이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각계 각층 민중들 평화 만세시위 역사상 처음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33인은 각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지도자로 보기 어렵다. 대부분 천도교와 기독교 관계자였다. 전국적 지명도를 갖고 있던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상당수는 3·1운동 직전인 1919년 2월 말에야 독립선언서 서명을 제안받았다. 일부는 선언서를 읽어보지도 못했다. 민족대표 가운데 소극적이나마 일제에 협조한 이들이 있었고, 일부는 친일파라는 오명도 남겼다. 이런 인사들이 주도한 만세 시위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3·1운동의 주인공은 민족대표가 아니라 시위에 참가한 민중 전체”라고 강조한다. 대표적 사례가 일제의 각종 보고서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만세꾼´이다. 이들은 밤마다 거리로 뛰쳐나와 전차에 돌팔매질을 하고, 수십명씩 짝을 지어 마을을 돌며 봉기를 유도했다. 기유정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3·1운동의 의미를 잘 몰라도 (조선독립을 위해) 무작정 만세를 외친 이들이 많았다. 3·1운동은 이런 민중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학과 교수도 “만세 시위가 비폭력 운동으로 전개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면서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무기를 들지 않고 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나선 것은 우리 역사상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윌슨 영향 받았지만 민주공화제 계기 만들어 3·1운동은 조선독립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김원봉(1898~1958) 등 상당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을 ‘실패한 시위’로 여겼다. 군사력도 없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의지해 만세운동에 나섰다가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는 비판이다. 이런 견해는 지금의 북한 학계도 마찬가지다. 애초 민족자결주의는 1차 세계대전 패전국(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의 식민지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승전국인 영국 등이 발칸 지역 식민지를 접수하려고 하자 이를 막으려던 의도였다. 엄밀히 말해서 조선의 독립과는 관련이 없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불편한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윌슨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전 세계는 3·1운동에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식민지 민족이 목숨을 걸고 몇 달간 치열한 시위에 나섰다는 소식은 중국 상하이부터 시작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DC에 이어 러시아와 유럽에까지 알려졌다. 1919년 4월 6일 미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는 1면 머리기사로 ‘조선의 비무장 봉기’를 게재하고 “조선의 독립 시위는 민족자결과 이상의 실현을 위한 소극적 저항의 ‘가장 경이로운 사례’”라고 평가했다. 같은 달 24일 뉴욕타임스도 사설을 통해 “조선인들은 세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일제의 영향력 아래 있던 중국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3·1운동을 전했다. 문영걸 미도중국선교연구소 소장이 ‘기독교사상’ 3월호에 발표한 ‘중국 신문 속 3·1운동’에 따르면 1919년 3∼5월 중국 신문들은 104건의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승전국 식민지 가운데 맨 처음 혁명의 횃불을 들어올린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 인도 국민회의파 독립운동, 필리핀과 아랍지역 독립운동을 촉발하며 이른바 제3세계 해방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줬다. 이 때문에 3·1운동은 짧게 보면 ‘실패한 시위’일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성공한 혁명’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3·1운동은 전 민족이 하나가 돼 자주 독립을 선언했다는 점과 근대적인 민주공화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 등에서 중국 신해혁명(1911)이나 프랑스혁명(1789~1794)보다도 높게 평가받을 부분이 있다”면서 “3·1‘운동’ 대신 ‘3·1혁명’으로 불러야 그 의미를 제대로 기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3.1운동 확산의 배경 ‘고종의 국장’을 되새기다… 특별전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3.1운동 확산의 배경 ‘고종의 국장’을 되새기다… 특별전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고종(1852~1919)은 1919년 1월 21일 새벽 덕수궁 함녕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일혈로 알려졌지만 항간에는 일본인 혹은 친일파에게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또 고종의 국장(國葬)은 조선총독부가 임시로 설치한 장의괘(葬儀掛)가 주도하면서 3년여에 걸쳐 장중하게 진행되는 조선왕실의 국장에 비해 축소되고 변형됐다. 나라를 잃고 일제의 식민 통치에 억눌려 있던 민중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당시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불러모았던 고종의 국장은 이후 항일독립운동에서 중요한 항쟁으로 꼽히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전국 확산에 영향을 미친 고종의 국장을 다시 살펴보는 전시가 열린다. 3월 1일부터 31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소규모 기획전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이다. ‘고종의 승하’, ‘고종의 국장’, ‘고종의 영면’ 등 3개 주제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고종 황제의 초상, 고종의 국장 절차를 기록한 의궤, 고종 국장 사진첩, 고종 황제 국장을 보도한 이탈리아 주간지, 고종의 능을 조성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 등 총 15건의 작품이 소개된다. 국장 절차를 기록한 ‘이태왕전하어장주감의궤’(李太王殿下御葬主監儀軌), 고종 국장 때 대여(大輿·국상 때 쓰던 큰 상여)와 의장 행렬을 담당한 민간 단체가 남긴 ‘덕수궁인산봉도회등록’(德壽宮因山奉悼會謄錄) 등에는 고종의 장례가 일본식으로 진행되면서 격하된 사실이 드러나 있다.또 고종의 국장을 촬영한 경성일보사에서 발간한 사진첩에는 고종의 생전 모습을 비롯해 승하 발표 기사, 함녕전에 마련된 빈전(殯殿·국상 때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의 관을 모시던 전각), 고종이 잠든 홍릉 등이 담겼다. 고종 승하 당시 제작된 어보와 옥책을 통해 당시 왕실 의례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1899년부터 1989년까지 간행된 이탈리아 주간지 ‘라 도메니카 델 코리에레’(La Domenica del Corriere) 1919년 6월 8일 발행본 1면에는 고종 국장 행렬을 묘사한 삽화가 인쇄되어 있는데, 조선인의 모습을 이국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새달 21일에는 ‘고종 국장과 1919년의 사회’라는 주제의 특별 강연회도 열린다. 이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고종 국장 과정을 분석해 대한제국 황실 의례가 국권 침탈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하고, 윤소영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은 고종 국장 이후 억눌린 민중의 한이 3·1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과정을 살펴본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3·1’ 혁명·촛불·메타역사·여성… 구국의 100년 다시 읽다

    ‘3·1’ 혁명·촛불·메타역사·여성… 구국의 100년 다시 읽다

    3·1운동 100주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00년간 3·1운동은 숱한 분석의 대상이었으나 최근 들어 학계에서는 민족 대 반민족, 수탈 대 저항 등의 낡은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다각도로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다양한 주체들을 재조명하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을 재구성하는 일 등이다. 출판계에 쏟아지고 있는 다양한 기념 저작들을 4가지 키워드로 알아봤다.●3·1운동인가, 3·1혁명인가 3·1운동에 관한 학계의 첨예한 논쟁거리 중 하나는 ‘3·1혁명론’이다. 책 ‘3·1혁명과 임시정부’(두레)에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인구의 10분의1 이상이 만세시위에 참여했으며, 군주제를 폐지하고 근대적인 민주공화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3·1운동에 ‘혁명’이라는 ‘정명’을 붙여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학, 문학, 종교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8인이 머리를 맞댄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창비)에서는 보다 심화된 논의가 이뤄진다. 식민지 조선인들이 정치적인 목표로 내걸었던 대한독립이 3·1운동으로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으로 부를 수 없다는 입장(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조교수)과 ‘3·1운동보다 규모가 작았던 1919년 이집트 독립운동에도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입장(김학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등이 맞부딪친다. 혁명을 새로운 시대에 대한 지향이나 욕망, 유토피아에 대한 해방감, 그걸 표현하는 축제로 봐서 3·1운동이나 촛불에도 모두 ‘혁명’을 붙일 수 있다는 의견(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도 있다. ● ‘촛불’ vs 촛불 100년 역사를 뛰어넘어 오늘날 ‘촛불’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모습도 눈여겨볼 만하다.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에서 이기훈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촛불시위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과 3·1운동의 ‘내가 대표다’라는 선언 사이에 100년의 차이가 있지만 3·1운동은 공화와 주체의 자각이라는 측면에서, 촛불은 그 정치 원리의 구현이자 정점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언론인 손석춘씨가 펴낸 소설 ‘100년 촛불’(다섯수레)은 촛불은 갑자기 출현하지 않았으며, 3·1운동을 기점으로 한 100년의 역사가 만들어 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계약직 노동자로 평범한 삶을 영위해 온 소설 속 화자는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함께 참여한 시아버지로부터 대한민국 역사 속 굵직한 인물·사건들과 얽힌 4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600쪽가량의 두꺼운 책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적 사건들이 촘촘히 담겼다. ●메타역사적 관점에서의 비평적 3·1운동 읽기 한국역사연구회가 3년의 준비 끝에 펴낸 ‘3·1운동 100년’(전5권·휴머니스트)은 메타역사적 관점에 따라 비평적 역사 읽기를 시도했다. 3·1운동의 기억이 남과 북, 한국과 일본이라는 공간에 따라, 그리고 정치적 변동에 따라 그 위상과 해석이 달라지는 역사적 주제임에 주목한 것이다. 3·1운동의 세계사적 의의가 갖는 과장된 측면을 짚어내고,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과 북한, 일본의 3·1운동에 대한 인식 흐름을 살폈다. 정설화되고 있는 ‘고종독살설’에 대한 문제제기와 ‘3·1운동=서울 파고다 공원’이라는 상식을 깨는 북부 지방 도시들의 만세시위 등 3·1운동 사건사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 준다. ‘3·1운동 100년’에서는 당대를 겪은 다양한 주체들의 시선을 담았다. 도쿄 유학 중 혁명을 꿈꾸며 귀국한 청년, 경남 산청 출신의 유림 청년, 서울 한복판에서 3·1운동을 비판한 YMCA 총무 윤치호, 시위 탄압을 진두지휘한 일본군 사령관, 서양인 선교사 등 여러 관점에서 3·1운동을 재구성했다.●소외 됐던 여성에 대한 조명 문학에서는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여성 문학, 페미니즘 문학에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2014년부터 ‘김말봉 전집’을 발간해 왔던 소명출판은 이번에 7, 8권을 내놨다. 기자로 활약했던 김말봉(1901~1961)은 ‘보옥’이라는 필명으로 193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동아일보에 연재한 ‘밀림’, 조선일보에 연재한 ‘찔레꽃’ 등이 히트를 하며 일약 통속소설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이번에 출간된 책에는 김말봉의 단편소설과 미완성 장편, 시, 수필, 칼럼, 기사 등이 수록됐다. 그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쓴다’는 신조를 가진 대중소설가임과 동시에 1940년대 공창폐지위원장으로 여성 인권 신장에 앞장선 인물이었다. ‘신여성, 운명과 선택’(에오스)은 1910~1940년 한국 근대문학에 불꽃을 피운 여성작가 7인의 선집이다. 백신애, 이선희, 나혜석, 강경애, 김명순, 임순득, 지하련 등 해방 이전 사망했거나 해방 이후 월북해 상대적으로 빛을 못 봤던 작가들이 중심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봉건군주제 뛰어넘은 3·1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씨앗되다

    봉건군주제 뛰어넘은 3·1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씨앗되다

    급작스런 고종 서거… 3·1운동에 도화선복벽주의 아닌 왕정 극복한 민족자결주의 19세기말 독립협회 등 민주공화정 꿈꿔 수많은 임정 탄생… 세 키우기 위해 통합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돼 있다. 정부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수립일인 4월 1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임정의 의미를 기리자는 취지다. 19세기 말부터 우리 민족은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서서히 키워 나갔다.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3·1운동으로 이를 분출했고 상하이에 임정을 세워 계승했다. ●3·1만세운동 도화선이 된 고종의 죽음 “사실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은 궁정 자체에 있었다.” 1910년 중국의 대표적 개혁가 량치차오(1873~1929)는 사라진 대한제국을 두고 이렇게 개탄했다. 그는 “오늘날(20세기 초) 입헌국에서 군주는 정치적 책임이 없고 약정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전제국가는 이와 다르다. 국가의 운명이 전부 궁정 한 곳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이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탈바꿈하지 못해 망국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강제로 병탄조약을 맺고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육군 대장이 조선 총독으로 부임해 행정과 입법, 사법권을 모두 장악했다. 우리 역사의 최대 암흑기였던 36년간의 일제 통치기간이 시작됐다. 1919년 1월 21일 고종(1852~1919)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한반도 전체가 충격과 비통에 휩싸였다. 건강 하나만큼은 ‘완전체’에 가깝던 그가 돌연사하자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성난 민초들이 고종의 서거를 애도하고자 서울로 향했다. 이런 움직임이 3·1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이들이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를 내세운 것은 아니다. 되레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새 나라는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되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24일 “3·1운동 당시 고종에 관한 구호가 아예 없었다”면서 “1911년 중국 신해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 1918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공통점은 황제로 상징되는 절대 권력을 부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왕정을 완전히 극복했다. 3·1운동은 과거 봉건군주제를 넘어선 것이기에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강조했다. ●1896년 독립협회 때부터 민주공화제 열망 우리 민족은 대한제국 멸망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키워 나갔다. 1896년 조선에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자주독립과 천부인권 존중, 한글 사용 등을 강조했는데, 배후에는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를 포함해 서양 선교사들이 있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만들어 조선인에게 영어와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이승만(1875~1965)도 이 학당의 학생이었다. 독립협회는 종종 대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만민공동회는 관민공동회로 이어지며 국정개혁의 대원칙을 결정하기도 했다. 미국의 한인들이 발간한 신한민보 1910년 7월 6일자 사설에는 독립협회 정신을 계승해 “현 정부(대한제국)가 일본에 투항한 지 오래됐는데, 우리는 인민의 정신을 대표해 우리의 복리를 도모할 만한 정부를 세울 것임을 선언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 병합 뒤 국내외 망명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1911년 12월 연해주 한인들은 항일 결사체인 권업회를 세웠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대한광복군 정부를 수립했다. 1917년 12월에는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세워 독자적인 활동에 나섰다.1915년 3월 중국 동포들은 상하이에서 신한혁명당을 결성했다. 1917년 7월 박은식과 신채호, 김규식 등 독립운동가 14명이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독립운동 최고기관으로 공화정제로 운영되는 임시정부를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3·1운동을 준비한 천도교를 중심으로 임시정부수립운동을 펼쳤다. 3·1운동을 계기로 수많은 임시정부가 생겨났다. 이 가운데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와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의 한성임시정부는 힘을 모으고자 하나로 통합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임정의 시작이다. 김정인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회’ 기획소통분과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한 임정의 임시헌장은 정당성의 기원을 3·1운동에서 찾고 있다”고 밝혔다. 1920년 1월 임정 신년축하회 연설에서 내무총장 안창호는 민주공화국 탄생의 감격을 이렇게 전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나요? 있습니다. 과거에는 황제가 단 한 사람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2000만 국민이 모두 황제요. 제군 모두가 황제란 말입니다. 황제란 무엇이오? 주권자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제군이 모두 다 주권자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황성기의 시시콜콜]베트남의 길, 북한의 길

    [황성기의 시시콜콜]베트남의 길, 북한의 길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소원했던 북한과 베트남이 다가서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회담이 포함된 국빈방문을 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팜 빈 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관이 12일 2박3일 일정으로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이 민 장관을 만났다는 소식을 전했으나 면담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민 장관이 의전장을 동행시킨 만큼 북·베트남의 정상회담, 김 위원장의 체재일정이 주된 의제로 다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급격히 접근하는 북한과 베트남을 보는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양국이 관계회복을 어느 정도까지 이룰 것인가 둘째, 북한은 비핵화 이후 경제개발의 모델로 베트남 방식을 따를 것인가. 북·베트남 관계는 회복, 당분간 관망할 듯  먼저, 양국의 관계회복이다. 북한과 베트남은 한 때 혈맹이었지만 데면데면한 관계도 길었다. 1957년 호찌민 베트남 주석이 평양에 갔고, 58년과 64년에는 김일성 주석이 하노이를 찾았다. 70년대 베트남 전쟁 때는 북한이 공군 조종사를 보내 북베트남을 지원했다. 사이좋던 양국은 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김일성 주석이 “의리없는 나라”라면서 비난하고 서로의 대사를 소환한다. 2005년에는 베트남이 대북 쌀 지원도 했으나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남 독살사건에 북한 당국이 베트남 여성을 고용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냉각기를 이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베트남을 방문해 독살사건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양국 해빙의 계기를 만들었다. 베트남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흘러나오면서 회담 장소 제공에 적극적이었다. 미국 정상이 북한 정상과 만날 정도로 안전하고 매력적인 베트남을 큰 돈 안 들이고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 개혁개방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베트남 경제의 위상을 높일 수도 있다. 또한 베트남의 숙원 사업이던 미국·베트남 직항로 개설도 북·미 정상회담 장소 제공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선물’ 받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베트남으로선 국제사회로 나오려는 북한과 냉담한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으며, 신속하게 외교장관을 평양에 파견해 김 위원장의 국빈방문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세기 전 ‘혈맹’ 복원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70년대 같은 미국을 공동적으로 하는 베트남전쟁이란 상황이 없다. 미국과 수교한 이후 국제사회에 편입돼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해 연 6~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베트남과 비핵화 여부가 불투명한 북한이 혈맹 관계가 될 이유를 찾기 쉽지 않다. 또한 국민총생산(GDP)만 보더라도 2017년 기준 베트남(2238억달러)과 북한(300억달러)의 차이 또한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을 만드는 요소다. 결론적으로 2017년 김정남 독살 사건의 앙금을 정리하고 ‘사회주의 동지 국가’끼리의 사이를 복원하되 향후 동향을 서로가 주목할 선에서 머물 것으로 여겨진다.  베트남 발전모델, 북한 적용 무리 있어 북한이 취할 개혁개방 모델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북한의 선택지는 중국, 베트남 방식 정도인데 어느 것도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 중국 만해도 13억 인구, 대량생산과 소비, 세계를 시장으로 삼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 아무리 북한이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을 하더라도 인구 2500만으로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따르기는 어렵다. 베트남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라는 목표를 내걸고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실시했다. 베트남은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미국의 제재해제(94년) 대미 수교(95년)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도이머이를 시작한 86년 7억 9000만달러였던 베트남의 수출은 2017년 2119억달러 260배 이상 증가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해 7월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이 미국과 수교를 통해 기적을 이루었고, 북한이 그 길을 간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국민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도이머이 이후 경제발전이 괄목할 만한 것이지만 33년간 인구 9742만에 GDP 기준 세계 46위에 밖에 이르지 못한 베트남 모델이 김 위원장 성에 찰 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집단지도체제인 베트남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어느 정도 정치적 자유를 허용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노동당의 강력한 지도체제가 베트남 식을 수용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남한 ‘압축성장’ 최적이라는 의견도  북한의 경제개발 모델은 중국도, 베트남도 아닌 한국에서 찾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압축 성장의 모범 사례인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을 따라가야 한다”면서 “개혁개방 초기의 정치적 경직성만 극복할 수 있다면 한국의 IT 기술과 로테크 산업을 수출주도형 경제전략과 접목시켜 급속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양 위원은 “북한이 현재의 제재 속에서도 화학, 기계, IT 산업 등에서 국산화 노력을 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남북경협이 시작될 때 그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북한의 경제발전은 한반도 공동번영의 한 축인 만큼 우리로서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전통 어업문화 근간 ‘전통어로방식’ 국가무형문화재 된다

    전통 어업문화 근간 ‘전통어로방식’ 국가무형문화재 된다

    물고기를 잡을 때 지형과 조류의 흐름, 물고기의 습성을 고려해 어구(漁具)를 부리는 ‘전통어로방식’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전통 어업문화의 근간인 전통어로방식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전통어로방식은 물고기를 잡는 기술 뿐 아니라 관련 기술과 지식 등의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어구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방식은 고대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문헌에 ‘어량’(漁箭)이라는 어구가 등장한다. 어량은 대나무 발을 치거나 돌을 쌓아서 밀물 때 연안으로 몰려들었다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는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 어구로, 조선시대 서해안과 남해안 서쪽에서는 ‘어살’(漁箭)로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대나무 발을 친 것은 ‘살’, 돌을 쌓은 경우 그 축조물을 ‘독살’로 지칭하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는 어로 기술이 발달하고 해산물 수요가 증가하면서 ‘방렴’(防簾)이나 ‘장살’(杖矢) 같은 변형된 어구가 등장했다. 방렴은 대나무 발을 고정하기 위해 나무 기둥 아래에 무거운 짐돌을 매단 어구이고, 장살은 고정한 나무 기둥 사이에 대나무 발 대신 그물을 설치한 도구다. 이같은 어로방식은 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에 수록된 ‘고기잡이’에도 묘사돼 있다. 상인들이 바다에 설치된 어살이 있는 곳으로 배를 타고 나가서 물고기는 사는 모습이 담겨있다.전통어로방식은 1970년대 이후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경남 남해군 지족해협과 사천시 마도·저도 등에서 하는 죽방렴 멸치잡이가 있다. 그물살을 이용한 고기잡이 역시 전통어로방식의 명맥을 잇고 있다. 문화재청은 전통어로방식의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로 어민들의 경험적인 지식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고, 어업사와 민중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전통방식이 다양하게 계승돼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다만 전통어로방식이 어촌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사실을 고려해 특정 보유자와 보유 단체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보유자와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은 국가지정문화재는 아리랑과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등을 포함해 8건이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왕이 된 남자’ 여진구-이세영, 서고 안 ‘심쿵’ 포옹 “로맨스 급물살”

    ‘왕이 된 남자’ 여진구-이세영, 서고 안 ‘심쿵’ 포옹 “로맨스 급물살”

    ‘왕이 된 남자’ 여진구-이세영의 초밀착 포옹이 포착돼 보는 이들의 심박수를 높인다. 매회 자체 시청률을 경신하며 최고 시청률 10.6%(유료플랫폼 전국 기준/ 닐슨 코리아 제공)로 월화극 1위에 등극, 신드롬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tvN ‘왕이 된 남자’(극본 김선덕/ 연출 김희원/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측이 21일, 5회 방송을 앞두고 광대 하선(여진구 분)과 중전 유소운(이세영 분)의 포옹이 담긴 스틸을 공개해 이목을 집중시킨다. 지난 4회 방송에서는 가짜 임금 노릇을 하고 있는 광대 하선이 선화당(서윤아 분)을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폐비 위기에 놓였던 중전 소운을 구명해내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소운이 세자 시절로 돌아간 듯한 지아비(사실은 하선)의 다정한 면모에 닫혔던 마음을 활짝 열어 젖혀 안방 가득 설렘을 선사한 바 있다. 이 가운데 공개된 스틸 속 광대 여진구가 이세영을 감싸 안고 가녀린 손목을 꼭 움켜쥐고 있어 시선을 강탈한다. 특히 여진구의 커다란 품에 이세영이 폭 담겨 있는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간질이고 있다. 또한 여진구에게 안긴 이세영의 표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토끼처럼 놀란 눈 속에 은근한 설렘이 묻어나고 있는 것. 그런가 하면 여진구-이세영이 야심한 시각 장광(조내관 역), 오하늬(애영 역) 등 아무도 거느리지 않고 서고 안에 단 둘만 있어, 가슴 뛰는 분위기를 한층 더 배가시킨다. 이에 과연 서고 안에서 여진구와 이세영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증이 증폭되며 이들의 로맨스 기류가 짙어질 것을 기대케 한다. 이에 ‘왕이 된 남자’ 측은 “극중 소운이 지아비(사실은 광대 하선)에게 마음을 활짝 연 만큼 그의 직진 사랑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하선과 소운의 로맨스가 급 물살을 타기 시작할 것”이라며 “오늘 방송에는 시청자들의 설렘을 한껏 자극할 전개가 기다리고 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임금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쌍둥이보다 더 닮은 광대를 궁에 들여놓으며 펼쳐지는 이야기. 오늘(21일) 밤 9시 30분에 5회가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 몰라 안타까워”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 몰라 안타까워”

    항일운동 구심점이던 고종 ‘日 독살설’ 백성들 공분… 장례일 계기로 3·1운동 당시 황제에게만 사용했던 경칭 ‘만세’ 국호와 더불어 ‘대한독립 만세’ 외친 것“올해는 고종 황제 승하 100주년이 되는 해다. 대개 3·1 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도화선이자 기폭제가 된 고종황제 승하 100주년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을 잇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역사 교육이 부족한 점이 정말 안타깝다.”고종의 증손자인 이원(57·본명 이상협) 대한황실문화원 총재는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종 사망 100주년 소회를 묻자 “만감이 든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인 이구 황태손(皇太孫·황제의 적장손)이 타계한 이후 양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맡았다. 또 조선시대 왕이 직접 참여한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 조경단대제, 조선왕릉 제향의 ‘초헌관’으로도 참여한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오전 6시 30분쯤 사망했다.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채 안 돼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사망해 일부 역사학자와 법의학자를 중심으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됐다. 이런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고종의 후손인 이 총재는 이 독살설을 정설로 보고 있다. 그는 “고종 황제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 식혜, 커피를 마신 지 30여분 만에 시해됐다”며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이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다”고 견해를 밝혔다. 고종이 억울하게 죽으면서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의 공분을 일으켰고, 고종 장례일을 계기로 3·1 만세운동이 터졌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친일 역사학자들이 고종을 어리석은 군주로 묘사했지만, 최근에는 재조명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독립 만세’라는 구호에 대해 그는 “요즘은 만세가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다며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21일 오전 11시 30분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서 ‘고종황제 100주기’ 제향을 거행한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를 합장한 무덤이다. 그는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처럼 사직대제, 환구대제, 왕릉제향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고종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의 후손들을 설득해 작년에 다 돌려받지 못한 유물들을 환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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