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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철스님 법어 집대성/전11권… 5년 대작업끝 11월 마무리

    ◎「선문정로」「본지풍광」「자기…」등 수록 한국불교 선학계의 독보적인 거봉이자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퇴옹 이성철 조계종 종정의 법어가 전11권으로 집대성돼 화제가 되고 있다. 성철스님의 문도들로 구성된 백련선서간행회(대표 원택)가 지난 87년부터 8권의 법어집을 펴낸데 이어 최근 「백일법문」상·하권을 발간,성철스님 법어집을 사실상 마무리 지은것. 이에따라 성철스님 법어집은 오는 11월께 나올 「선문정로평석」발간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백련선서간행회가 기획한 성철스님법어집 전11권은 제1집 「백일법문」상·하권을 비롯,「선문정로평석」「돈오입도요문론강설」「신심명·증도가강설」「영원한자유」「자기를 바로봅시다」등 7권과 제2집인 「돈황본 육조단경」「선문정로」「본지풍광」「한국불교의 법맥」등 4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백일법문」「돈오입도요문론강설」「신심명·증도가강설」「영원한 자유」「자기를…」등은 성철스님의 육성녹음된 법문을 풀어 정리한 책이며 「돈황본 육조단경」과 「선문정로」「본지풍광」「한국불교의 법맥」은 성철스님이 직접 저술한 책. 최근 출간된 「백일법문」은 지난67년 성철스님이 해인총림방장으로 추대된후 1백일동안 행한 법문을 정리한 책으로,법문의 핵심은 중도사상에 입각,원시불교사상에서 중관·유식은 물론 천태·화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의 요점을 설명해 놓고 있다. 가을쯤 출간될 「선문정로평석」은 선문의 바른길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책이며,「돈오입도요문론강설」은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자기집의 보배창고」를 어떻게 하면 열수있을까에 대해 서술한 대주혜해스님의 「돈오입도요문론」을 풀이,선종의 전통사상 이해에 빼놓을수 없는 책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에 비해 대학생및 사부대중에 행한 설법을 큰 줄기로한 「영원한 자유」와 성철스님이 수행시절 후학들을 위해 필록했던 말씀과 해인총림방장및 81년 7대종정으로 추대된이후의 부처님오신날 법어·신년사등을 한데묶은 「자기를…」는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법어집.다른 법어집과는 달리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수있는 이책은 12판까지 찍는등 불교계의 명저로 손꼽히고 있다는게 출판사측(장격각)의 설명이다. 특히 견성이 성불임을 강조,선에 대한 성철스님의 지론이 담긴 참선의 이론적인 지침서 「선문정로」와 실제수행의 결과를 설한 법어집 「본지풍광」은 선에 대한 논지의 기준이 되고 있는 책으로 꼽히고 있다. 불교계에선 「선문정로」와 「본지풍광」출간후 성철스님이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난 81년 처음 발행됐던 「선문정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돈오돈수」임을 일관되게 주장,「돈오점수설」을 주장하는 일부학계와 송광사 「보조사상연구원」과의 논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편 성철스님 법어집 완간과 관련,불교계에서는 성철스님의 지론과 가르침을 폭넓게 접할수 있다는 점에서 편견에 빠진 사부대중과 일반인들의 가치관정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불소계 섬유표면처리제 개발/화학연 궁리환박사팀,국내최초로

    ◎수분·기름·먼지성분 의한 섬유손상 막아/일서 연140억원상당 수입… 대체효과 기대 수분과 기름,먼지성분에 의한 섬유의 손상을 막아주는 불소계 섬유표면처리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됐다. 한국화학연구소 계면활성연구실 궁리환,화학공학연구실 이정민 이수복박사팀은 한국정밀화학(주)와 4년간의 공동연구를 수행한끝에 불소계 발수발유제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고 2일 밝혔다. 화학연구소에 따르면 발수 발유 방오가공제의 개발은 파라핀 왁스 에멀션으로부터 시작해 실리콘 오일을 사용한 발수제등이 개발돼 왔으나 내구성 혹은 방오성 발유성등이 약한 취약점을 갖고 있었다.반면 50년대부터 불소계화합물이 표면이 매우 낮은 표면에너지를 갖고 그에따라 물및 유기용매와 접촉시 매우 큰 접촉각을 갖기때문에 우수한 발수 발유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밝혀지면서 불소계발수발유제가 세계 발수제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혀왔다. 그러나 불소계발수발유제는 제조방법의 난이성과 일본 미국등 기술선진국의 기술공개기피로 국내기술개발이 안이뤄져 91년 현재 연간 약2천5백톤(1백50억원)이 전량 수입,사용돼 왔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개발로 현재 80∼90%를 일본에 수입의존하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연간 2천만달러 이상의 수입대체효과를 기대할수 있게 된것은 물론 미국 일본 독일등 선진4개국이 독점하고 있는 세계시장 진출도 내다볼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 화랑가 활력소/중진화가들 전시회 풍성

    ◎변시지씨,두곳서 제주풍화 발표/김기혁씨도 불화 120점 선보여/황요엽·정하경씨,은둔 깨고 대작 출품 평소 작품발표가 듬하던 중진화가들의 대규모 개인전이 잇따라 열려 극심한 불황에 빠져있는 화랑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들어 화랑가는 4개월여동안 외국미술위주의 전시들로 장식됐거나 젊은 작가들의 3∼4인 그룹전이 유행한반면 굵직한 화랑들은 불황에 몸을 사려 무게있는 초대전이나 기획전개최를 뒤로 미뤄온 터여서 이들 중진작가초대전은 「점잖은 그림」을 즐기는 올드 팬들에게 모처럼 감상구미가 당기는 전시회가 되고 있다. 오랜 공백끝에 전시회를 갖는 작가들은 우성 변시지(66),우산 황용엽(61),남윤 김기혁(55),정하경씨(50) 등 4명. 제주에 작업의 터전을 굳히고 있는 변시지씨는 25일부터 5월16일까지 예맥화랑 인사동전시실과 소격동전시실 두곳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인사동에 본점을 둔 예맥화랑이 화랑운영에도 프렌차이즈방식을 도입,첫 지점으로 문을 연 소격동전시실 개관기념으로 이 화랑의 전속작가 변씨의 작품을 내놓은 것.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내며 미술수업을 한후 지난 57년 귀국하여 한국 고유미의 표출에 심혈을 기울여온 변씨는 자연주의에 바탕한 실경화작업을 추구하는 작가.젊은 시절,김인승 손응성 장리석씨 등과 「비원파」로 활약한 인물로 75년이후 그의 화폭에는 큰 변화가 일어 수묵조의 흑색의 필선과 특유의 감필 및 생략기법으로 독창적 화풍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황토빛위에 압축된 필선으로 제주의 풍경들을 화려하게 때로는 적막감짙게 담아낸 서정성 높은 제주풍화 50점이 발표되고 있다. 제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작가인 황용엽씨는 5월12일부터 25일까지 국제화랑에서 초대전을 펼친다. 2년만에 개인전을 갖는 황씨는 미발표 근작 40여점을 선보이는데 소품부터 대작(1백50호)까지 골고루 출품한다. 그룹전 등에 별로 참가하지않은 황씨는 창작욕넘친 노년의 결실을 이번 개인전을 통해 과시할 예정.그는 30년이상 일관되게 「인간」을 모티브로 한 작품제작에 임해왔으며 화단의 유행적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성실한 구상적 화면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그는 이번 근작들에서 과거 화면에 등장하던 절망적 한계상황을 되도록 배제하고 밝고 맑은 느낌의 삶을 관조하는 작가정신을 표출해보인다. 특히 향수에 젖은채 자연의 풍경과 동화된 인간들의 모습이 작가특유의 선묘로 그려지고 있다. 서울갤러리에서 28일부터 5월3일까지 전시를 갖는 김기혁씨는 「한국불교설화화전」이란 주제를 내세우고 있다. 본래 영문학자로서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내학문풍토에 대한 개인적 거리감을 버리지 못해 학자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김씨는 「그림」에 제2의 인생을 걸고 있다. 15년전부터 동양화에 전념하며 특히 불교설화의 형상화에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그는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중심부에 있는 대전시장 글랑팔레에서 열린 프랑스전국조형미술협회창립1백주년 기념전에 특별초대국인 한국의 대표로 초대돼 불교설화화 52점을 출품,호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출품작 52점과 그외 대표작 61점및 대작 4점등 1백20여점이라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회화외적인 모든것을 외면한채 외곬로 치닫는 근성이 유별난 김씨는 고승 고찰에 얽힌 얘기들을 현세로 끌어와 화현시키고 있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동산방화랑 초대전을 23일 개막,5월2일까지 계속하는 정하경씨(한성대교수)는 지난 84년이후 8년만에 개인발표의 자리를 꾸미고 있다. 80년대초부터 실경산수화에 전념하며 독특한 수묵화기법을 추구해온 정씨의 화폭은 섬세하면서도 수려한 필치가 돋보인다. 급변해가는 여러 회화형식에 초연,오직 산수화에 집착하고 있는 그는 청담한 한국의 자연을 재현해내고 있는 몇안되는 작가중의 한명이어서 이번 초대전은 한국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수 있는 전시로 기대되고 있다.
  • 연대 일산천문대 폐쇄위기/신도시공사 먼지·불빛으로 관측 불가능상태

    ◎80년 문열어 핼리혜성·19개쌍성 연구/국내최대 61㎝ 망원경등 사장될지도/이달말 관측 중단… 재원부족으로 이전도 어려워 핼리혜성관측,쌍성연구등으로 지난10여년 동안 국내 천문학계의 선구자 역할을 해온 연세대 일산천문대가 일산 신도시건설로 인해 4월말로 연구관측을 중단하는등 영구폐쇄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80년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일산리에 지름61㎝의 반사망원경과 디지털기록식 자동광전 측광기등을 갖추고 문을 연 이 천문대는 주변 신도시 건설로 인한 먼지와 불빛등으로 더 이상 연구관측을 할 수 없게 돼 이달말 문을 닫는 것이다.개관당시 일산천문대는 소백산천문대에 이어 국내 최대 규모인 61㎝ 반사망원경을 도입,국내의 본격적인 천문학시대를 열었다.또 우리나라 천문학의 개척자로서 19 20년대 견우성에 속해 있는 독수리좌의 별을 최초로 발견,원철성(영어명ETA)이란 이름으로 세계 천문학사에 빛나는 이원철박사의 학맥을 이어 오는데 중추적역할을 해왔다. 현재 연세대 천문대(대장·천문석천문대기학과교수)는 일산천문대를대신할 대체지로서 연세대원주 매지리캠퍼스를 선정,이전을 추진하고 있으나 망원경의 분해 및 조립,천문대건물 및 돔 건설등에 최소한 10억원이상에 달하는 이전경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사실상 일산천문대를 폐쇄하게 됐다. 이에따라 일산천문대가 지난10여년간 독보적 연구활동을 벌여온 각종 쌍성연구가 모두 중단될 위기에 있다.연세대학의 천문대는 ▲일산천문대와 ▲지름 40㎝의 반사망원경을 갖춘 연세대교내천문대 두 곳으로 모두 다 쌍성연구에 거의 이용돼 세계적인 쌍성연구의 핵심지로서의 명성을 누려왔다. 일산천문대가 수행해 오고 있는 중요 쌍성연구는 19여개,특히 세계천문학 연구사상 가장 긴 27·1년 주기의 쌍성인 마차부자리의 입실론별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어 세계천문학계의 기대를 모아오기도 했다.이밖에도 10·36년주기의 백조자리의 31번째 쌍성과 20·35년주기의 세페우스자리의 VV와 NY자리등의 연구관측도 80년대초부터 줄곧 해오고 있어 일산천문대의 연구활동 중지로 국내천문학의 연구에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됐다. 쌍성이란두 개의 별이 서로의 인력에 의해 태양과 지구,지구와 달처럼 서로의 주위를 도는 별을 말하는데 쌍성연구를 통해서 별의 무게와 밀도,구성물질과 온도,밝기와 연령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별에 대한 기초연구자료로 쓰인다. 27·1년주기의 입실론별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는 나일성박사(천문기상학과교수)는 『이 별까지의 거리는 약5백광년정도 떨어져 있는데 하나는 태양보다도 2백여배 이상 큰 초거성이고 또 하나는 태양의 10배정도 되는 별로서 별의 진화와 우주의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기대하고 할 수 있는 대상 』이라고 말했다.나박사는 두 별이 서로를 한 바퀴 도는 오는 20 09년까지의 연구관측계획을 잡아놓고 지난 10여년간 줄곧 관측을 통해 분석자료를 모으며 연구해 왔으나 『일산천문대의 연구관측 중지로 관측의 공백을 갖게 됐다』고 안타까워 했다. 일산 천문대는 지금까지 오규동,이용삼,정장해 김호일,김천휘박사등 주목 받는 5명의 박사와 7명의 석사를 배출했다.일산천문대는 연구 관측 중지 이후에도 당분간은 천문학관련수업등을 위한 관측시설로 이용되다가 다른 교육용도로 이용될 전망이다.현재 교육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땅은 교육부의 허가없이는 전용이 불가능하고 또 일산천문대가 자리잡고 있는 부지는 연대가 독지가로부터 기증받은 땅이어서 전매등을 통한 천문대시설 기금마련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여 관계자들을 더욱 애타게 하고 있다.
  • 재벌당/외국의 시각/프랑스인들은 말한다:4·끝

    ◎“「현대신화」 정치서도 꿈꾼다” 희화적 논평/정씨가 「경제거인」으로 남지 않은건 실수 한국에서 통일국민당이 만들어질 때,르 몽드지는 이를 경제면에 크게 보도하면서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성장과정과 사업성공 내력,그가 정치에 투신하는데 대한 한국민들의 반응,현대 그룹 산하 기업들의 규모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신문은 정씨를 「현대제국」의 창업자로 일컬으면서 그가 얼마나 돈이 많은가에 주목했다.정씨의 재산이 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고 납세액 순위로는 15위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며 그와 그의 가족은 그룹 주식의 67·8%를 차지하여 4백억달러 어치에 이르는데 이는 국가예산과 맞먹는다고 쓰고 있다. 프랑스적 관점에서 볼 때,거대 경제 집단이 민간 소유로 돼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찔한 것이다.게다가 그 집단의 소유자가 정당을 만들어 당수로 앉는다는 것은 더욱 놀랄만한 것이다.개인 소유의 기업집단이 국민 전체 경제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것부터 심히 우려할만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정치력화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다수 프랑스인들은 큰 민간기업이 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점이 바로 현사회당정권의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사회당 정부는 1981년 집권 즉시 많은 큰 기업들의 국유화조치를 과감히 단행했다.따라서 현재 프랑스에는 재벌이 없다.프랑스인의 상식으로,재벌이 정당을 만드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르 몽드지는 정씨가 「현대제국」을 건설한 능력을 정치에서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어떤 이들은 그가 추하게 늙어가고 있으며 산업계의 가부장으로 계속 남아있지 않는 것을 실수라고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이와함께 그가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 완고한 태도를 보여 근로자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씨가 역대 정권에 많은 돈을 대주었으나 이제는 그가 한 정당 즉 자신의 정당에 돈을 쓰기로 했으며 정치에 뜻을 둔것은 80년대초 국보위의 업계 재편성 조치 때였다는 정씨의 말을 직접 인용했다. 프랑스 정치풍토에서 대기업인이 정계에등장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서 마르셀 다소(1892∼1986)가 유일하다.그는 미라주 전투기 개발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 항공기 제작사 마르셀 다소 항공과 그밖에 신문사·영화사·부동산회사·전자회사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다소는 59세 때인 1951년 처음 국회에 진출,한번의 낙선을 빼놓고는 당선을 거듭하여 94세로 죽을 때까지 30여년간 의원직을 지니고 있었다.오랫동안 최연로 하원의원으로서 국회개회연설을 하는 영예를 누렸다.그는 제1차 세계대전때 조종사로 출정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에 항거한 애국자였다.전투기 설계의 천재이자 항공기 제작산업의 독보적 존재로 프랑스가 세계항공산업의 선두에 나서도록 하는데 견인차역할을 해냈다. 다소는 정치풍자 컬럼니스트와 시나리오작가로서도 재능을 보였다.지역사회에 많은 돈을 희사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힘쓴 자선가이기도 했다.이런 그였으므로 그가 의원직을 차지하고 있는데 대해 까다로운 프랑스인들도 저항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가 보인 거인의 풍모는 마르셀 다소 항공의 국유화 과정에서도 잘 볼 수 있다.정부의 조치는 국민의 뜻이라면서 마르셀 다소는 오히려 능동적으로 많은 주식을 국가에 무상으로 넘겨 주었다.경영권을 정부에 넘기고도 월 5천프랑(현재 환율로 치면 약 70만원)보수의 기술고문직을 자청하여 죽을 때까지 미라주 전투기 시리즈의 개량과 신세대 전투기 라팔의 개발에 전념했다.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여전히 그는「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어쩌면 한국의 마르셀 다소로서 존경을 받을 수도 있었을 우리의 「거인」이 외국 기자의 기사 속에서 후진적 정치 환경과 함께 희화적으로 그려지고 있음은 국민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 롯데햄 소비자상담실장 조광윤씨(소비자를 위해 뛴다:9)

    ◎“고객은 왕 아닌 신으로 모셔야”/불만 접수되면 자재 구입선 교체 『소비자보호는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 왔습니다.그것이 1등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도 함께 해왔지요.제 소비자보호관을 경영층에서 높이 평가해준 것 같습니다』 지난 10일 소비자 상담실 책임자로서는 국내에서 두번째로 이사로 승진한 (주)롯데 햄·롯데우유 조광윤(50)소비자상담실장. 『최고 경영층이 소비자 보호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저도 무척 기쁩니다.소비자는 왕이라는 시대를 넘어 소비자를 신으로 모셔야할 것입니다』 고도 개방사회로 그간 상품에대한 정보을 독점해온 기업못지않게 소비자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독특한 대소비자관을 갖고 있는 그는 『소비자 상담내용을 무마하려고 하지않고 소비자의 충고 한마디를 귀담아 들었다가 어김없이 기업경영에 반영시켜왔다』고 말했다. 『소비자 불만사항을 수용,생산시설의 컨베이어 시스템도 교체했고 소비자 고발 다발지역을 꼬집어 그 지역에 대한 유통관리시스템을 강화시키기도 했습니다.심지어 소비자 불만이 제기될 때에는 자재구입선마저 과감하게 교체했으니까요』 그결과 지난 85년 소비자상담실장을 맡은이래 소시지 햄업계에서 독보적인 선두자리에 올라섰고 7년전에 비해 매출액도 3.5배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올해부터는 생산 영업 관리등 회사의 전분야에서 근무고과의 20%를 소비자 보호분야에서 평가하게 됐습니다.소비자 고발이 단 한건이라도 제기되는 분야 근무자책임자나 승진대상자는 의무적으로 자체 소비자 교육을 받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이 마련됐어요』
  • 「조선실록」·「대장경」 한글완역은 괄목(북한 문화실상:4)

    ◎학술/쉽게풀어 대중화 치중… 전문성 결여/북방사 연구,한국사 공백부문 메워/「고조선」·「발해사」 연구는 독보적 업적 북한에서의 학술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적인 연구보다는 대중적인 정리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상당한 수준의 고전국역 성과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의 대중화 작업과 함께 구·신석기 청동기문화에서부터 조선후기 실학사상 연구에 이르기까지 집약적인 노력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와같은 연구경향에는 북한의 역사적인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내재돼 있지만 북한의 거의 독점적인 북방사연구는 한국사의 공백부분들을 채우고도 남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60년대이후부터 지난 90년까지 보고된 북한의 구석기관련 유적은 20여개소에 이르며 남한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고인류인골과 동물골들이 서북지방의 석회암지대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어 한반도의 홍적세 고인류의 거주방식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때문에 북한의 고고학연구는 남한의 석기·토기연구와는 달리 고생물학적·고인류학적인 측면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신석기유물은 두만강연안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방과 대동강유역 압록강유역등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두만강 연안의 유물은 신석기문화 편년의 기준이 될만큼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의 고조선연구 역시 북한학계의 독점적 업적에 속한다.리지린의「고조선연구」(64년),김용간 황기덕 공동명의로 발표된 「기원전 천년기 전반기의 고조선문화」(67년)등의 저서는 그 대표적인 작업이다.또한 중국과 북한에서 발굴된 토기·무덤·장식무늬등 고조선유물은 고조선영역과 고고학적 연대와의 연결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후한서」「삼국지」등을 근거로 부여의 건국시기와 영역을 밝힌 북한의 부여연구역시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으며 고구려의 적석총과 적토석실분등 고분과 산성 사지의 독점적인 연구도 두드러진다. 정책적으로 주요연구의 하나로 정해져 일찍부터 진행돼온 발해사연구는 62년 발표된 박시형의 「발해사연구를 위하여」라는 논문을 출발점으로 한다.이논문은 발해사를 한국사안에 편입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논증을 시도한 최초의 논문이며 한말 계몽사가들이후 단절된 발해사연구전통을 다시 잇는 최초의 논문이라는 점에서 남북한을 통틀어 매우 의미가 큰 글로 꼽힌다.이렇게 출발한 북한의 발해사연구는 북한이 60년대초 중국에서 발굴한 자료를 기초로한 고고학적 연구결과인 주영헌의 「발해문화」(1971)로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조선사연구중 가장 괄목할만한 부분은 실학사상 연구인데 이는 실학사상을 우리나라의 유물론적 전통으로 받아들여 사회개혁의 이론적 기초로 삼았기 때문.최익한의「실학파와 정다산」(1955)을 비롯,김석형등의「다산 정약용탄생 2백주년기념논문집」(과학원 철학연구소 1952)등 연구저서가 풍부하다. 한편 북한의 고전국역 사업은 과학원고전연구실을 중심으로 지난50년대부터 진행돼 왔다.홍기문 류수 리용학 김상훈 리철화 김찬순 등의 학자들이 중심이 돼 이미 완역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팔만대장경 고가요집 고대전기설화집 한시선집 박지원·김시습의 작품선집등이 국역됐다. 「철저히 원문중심」원칙 아래 완역된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주없이 쉽게 풀어 썼으며 인명·지명·관명할 것없이 한문을 전혀 안쓴 명역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역사의 대중화작업은 역사서술의 평이화와 한글화작업으로 뒷받침되고 있다.우리 학계에서 참고할 만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대중화와 한글전용 고집으로 역사적 용어의 의미가 상실된 경우도 많은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외언내언

    구소련의 붕괴는 국제정치·군사 뿐아니라 세계과학기술질서에도 큰 변화를 불러올 조짐이다.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으로 계승된 구소련개혁의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고있는 분야의 하나가 과학기술계.정부의 지원은 중단되고 종사자들에 대한 대우는 땅에 떨어졌으며 과학자들은 해외로 떠나거나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구소련은 스탈린때부터 서방자본주의와의 대결을 위한 군사목적의 과학기술 증진에 모든것을 투자해온것이 사실.연구소와 과학자들을 특별지원해왔다.결과적으로 서방보다 훨씬 유리한 연구분위기의 조성이 가능했고 세계최고수준의 연구진도 확보할수가 있었다.핵과 우주분야에서 승리하고 독보적 수준도 유지할수 있었던것.◆첨단의 전자산업과 일부소비재 경공업부문에선 미·일에 뒤진것이 사실이나 물리학 수학 원자력 우주공학 등에선 미국과 함께 세계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이 국제학계의 공인.특히 상업주의에서 소흘해지기쉬운 기초및 이론과학분야에서 크게 앞선것으로 알려졌었다.◆이것이 개혁의 부작용으로 무너지고 있는것.개혁의 혼란과 정부의 지원중단으로 구소련의 연구·실험실엔 일대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는것이 불르몽드지의 보도.생활수준의 향상이 우주탐험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옐친의 신조다.일반노동자보다 낮은 급료와 장래가 불투명해진 환경으로부터 과학자들이 대거 탈출하는것은 당연한 순서인지도.◆이들을 상대로 국가이기주의의 온세계가 치열한 스카우트전까지 벌이고 있는 형편.우수과학자들에겐 3만6천내지 7만5천달러의 연봉에 온갖 특전이 제의되고있다.중동등 일부 불온국가로의 핵기술자 확산을 우려하는 구미도 소련과학자 스카우트전에선 예외가 아닌형편.한·일도 뛰어든지 오래다.구소련의 핵및 군사기술 확산문제는 31일 유엔안보리 정상회담의 중요의제이기도.붕괴된 초강국 과학기술의 확산이 온세계의 주목거리가 된셈.
  • 딱딱한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미 과학자 아시모프책 인기

    ◎천문·물리·화학등 1년새 20여권 발간/러시아태생… 교양서·공상소설이 주류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날로 높아지면서 많은 과학도서가 출간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 과학자의 저서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러시아계 미국과학자 아이작 아시모프의 저서들이다. 지난해 봄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시모프의 저서들은 최근까지 10종에 육박하고 제작중인 것도 2∼3종이 된다. 이들을 권수로 치면 20권이 넘는다. 이 책들은 과학교양서와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로 대별된다. 웅진문화가 지난해 4월 「과학의 새로운 안내」 시리즈를 기획,「아시모프의 천문학」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아시모프의 「지구과학·화학」 「물리학」을 펴냈으며 곧 「생물학」 2권을 펴낼 예정이다. 동아출판사는 지난 6월 「우주의 비밀」을 펴냈으며 사회과학전문출판사였던 풀빛출판사는 최근 「풀빛과학」 시리즈 제1권으로 「아시모프박사의 과학이야기」를 출간했다. 이와함께 역시 사회과학전문 출판사였던 백산서당이 자매사인 현대정보문화사를 통해 아시모프의 과학소설(SF)을 집중적으로 펴내고 있다. 지난 여름 대하 SF 「파운데이션」 5권을 펴낸데 이어 지난 연말 나머지 4권을 더 펴내 완간했으며 최근에는 전 4권의 「로봇」시리즈 가운데 제1권 「강철도시」를 선보였다. 「벌거벗은 태양」 등 나머지 3권도 이달안에 완간하며 이를 이어 곧 「우주 3부작」도 출간할 예정이다. 뿐만아니라 아시모프의 저서가 3백종을 넘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과학도서의 대중화와 함께 그의 저서들은 계속적으로 소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아시모프의 저서가 많은 아낌을 받고 있는 것은 어려운 과학을 재미있고 알기쉽게 전달해주기 때문. 특히 그의 교양과학서들은 과학의 각 분야에 관한 박학다식하고 정밀한 지식을 설득력 있고 독특한 접근방법과 표현으로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할 뿐만아니라 이 지식들을 유기적으로 연관지음으로써 명쾌한 세계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파운데이션」으로 대표되는 그의 SF작품들도 비록 먼훗날의 과학세계를 그린 공상소설이기는 하나폭넓고 깊이 있는 과학지식을 토대로 펼치는 「과학적인 공상」이어서 독자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북돋아 준다. 특히 「파운데이션」의 경우와 같이 은하제국이 내부분열로 무너진다거나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 등을 줄거리로 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해 주는 부분들로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1920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3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모프는 19살때부터 저술활동을 시작,46살때 이미 1백권의 저서를 기록해 지금까지 미국 최고의 과학저술가로 꼽히고 있다. 1949년 컬럼비아대학에서 화학박사학위를 받고 보스턴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나 연구생활과 문학에 대한 열정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마침내 교수직을 버리고 저술에만 몰두하게 됐다. 그는 전공인 화학은 물론 수학·천문·물리·생물·기술 등 과학전반과 SF에 걸쳐 경이로울 만큼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쳐오고 있는데 하나같이 평이하고도 기발한 발상과 문장으로 70세가 넘은 지금까지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특히 그의 SF에 대한 업적은 단연 독보적인 것으로 가장 우수한 SF에 주어지는 휴고상을 4번이나 받았으며 네뷸라상도 한번 받았다. 19세에 「로비」라는 제목의 단편 로봇소설을 발표하면서 SF작자가 된 그는 42년부터 쓰기 시작한 「파운데이션」과 53년부터 발표한 「강철도시」 등 장편 로봇시리즈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SF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파운데이션」은 61년 3부작으로 완간됐으나 그뒤 독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6부작으로 늘어났으며 아직까지 집필이 계속되고 있어 최장기간 집필작품으로 유명하다. 「로봇」시리즈도 55년까지 2부가 나왔으나 독자들의 요청으로 83년부터 3,4부를 다시 펴냈다. 77년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잡지」를 창간한 그는 70세가 넘은 지금도 과학저술에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소 프라우다 79년만에 폐간

    ◎레닌이 창간… 공산당 해체뒤 “홀로서기” 실패 1912년 레닌에 의해 창간되어 79년간 소련공산당의 기관지로 대변자 역할을 해온 프라우다지가 11일자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이같은 사실은 프라우다지가 11일자 1면에 사고를 게재함으로써 밝혀졌다. 프라우다지가 폐간된 주된 원인은 지난 8월 쿠데타이후 공산당의 해체에 따라 자금원이 단절된데다 당기관지로부터 일반지로 완전히 탈바꿈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의 대변지인 프라우다가 경영난에 빠져든 것은 지난 87년 소련개혁정책이 본격화되면서부터. 87년까지는 1천만부를 찍어낼 정도의 위세를 가졌던 프라우다는 87년을 고비로 구독자수가 떨어지기 시작,급기야는 현재 발행부수인 2백60만부로 주저앉고 말았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프라우다의 인기만회를 위해 89년 측근인 이반 프롤로프(61)를 편집책임자로 임명,체제및 지면쇄신등 신문의 변혁을 꾀했다.따라서 종전의 금기를 깨고 광고를 게재하고 TV방송국을 개설하는등 경영다각화와 수지개선책을 마련하는데 주력해 왔다. 특히 지난 8월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뒤 7일동안 정간당했던 프라우다는 「국민의 이해를 돕는 신문」이라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복간됐었다. 프라우다는 이 복간호에서 이례적으로 재무상태를 공개하며 공산당중앙위가 이 신문에 돈을 대주었다는 정보를 일축하면서까지 중립지향적인 신문임을 강변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산당 복권 캠페인을 벌이는등 당기관지로부터 일반지로의 탈바꿈에 있어 명확한 한계를 보여 소련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 프라우다지의 폐간은 공산당의 몰락과 함께 볼셰비키혁명이후 소련신문의 독보적 존재로 군림해온 공산당기관지가 국민의 버림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셈이다.
  • “국책연구기관의 대부”… KDI 창립 20돌

    ◎“인재의 산실”… 성장기 경제개발 견인/정책좌표 제시·대안개발 “독보적”/관논리 대변,“들러리” 전락 비판도/경제여건 변화 따른 새 위상 정립이 과제 그동안 경제개발정책수립을 위한 국책연구기관으로 독보적인 기능을 담당해왔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1일로 창립 20돌을 맞았다. KDI는 전문연구기관이 전무하고 이렇다할 경제전문가들이 별로 없었던 지난 71년부터 경제개발계획수립에 싱크 탱크로 깊숙이 간여,우리나라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해왔다. 그동안 3차에서부터 6차에 이르기까지 경제개발계획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고 내년부터 시작되는 7차 계획수립에서도 총량·재정·복지 등 9개 분야의 정책과제도출과 대안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외 경제여건변화로 새로운 위상정립과 진로모색에 부심하고 있다.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정부의 개발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나 정부의 기획능력이 향상된데다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함으로써 일일이 KDI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89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국민경제제도연구원이 잇따라 설립된데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이 많이 생기면서 위상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에따라 KDI는 유능한 인력들을 다른 연구기관에 많이 뺏기고 경제진단 및 정책제시기능이 타성적이고 경직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학자적인 자세에서의 연구보다는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고 정당화하는 데만 주력해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최근 진념 경제기획원차관이 순시차 들른 자리에서 『주변 여건이 변화하고 있는데도 KDI는 제자리에 서있다. 경제기획원과 공동운명체인만큼 다른 연구기관들보다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한 것도 KDI의 변신을 촉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처럼 입지가 크게 좁아졌지만 KDI는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큰몫을 하고 인재배출과 양성에도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설립에서부터 80년까지 KDI를 이끈 김만제 초대원장(현 삼성생명 회장)은 같은 서강대교수 출신의 남덕우 당시 부총리와 호흡을 맞추면서 서강학파시대를 열었다. 그의뒤를 이은 김기환씨는 상공부차관을 거쳐 남북경제회담 수석대표로 일했고 3대원장인 안승철씨는 현재 중소기업 은행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 4대원장이었던 박영철씨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현재 고려대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부원장 및 연구위원 출신들도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초기에 잠시 부원장을 맡았던 이봉서씨는 동력자원부장관을 거쳐 현재 상공부장관에 재임중이다. 김기환씨와 함께 일했던 사공일씨는 청와대수석을 거쳐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김광석씨와 김수곤씨는 경희대에서 같이 일하고 있다. 전산실장이었던 김대영씨는 건설부차관을 역임했고 초빙연구위원이었던 황병태씨와 연구위원이었던 서상목씨는 국회의원으로 봉직하고 있다. 수석연구위원이었던 김적교씨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중 상당수는 관변 이코노미스트라는 지적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점은 부인할 수 없다. 구본호원장은 앞으로의 KDI 진로와 관련,다원화된 계층과 집단의 욕구를 수용하고 조정하는 종합적인 경제정책방향의 제시,남북통일에 대비한 미래지향적 연구기반 구축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함께 세계여러나라에 우리의 경제개발경험을 소개하고 오는 7월엔 경제개발의 공과를 점검하는 국제세미나도 가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천관우선생 영전에

    밤중에 갑자기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 애통한 마음을 금할길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1949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말년까지 현역 언론인으로 활동해오면서 한국 역사학계에 공헌하신바 참으로 크십니다. 스스로는 『비아카데미 사학도』니 『겸연쩍은 역사학도』니 하면서 겸손해 하셨지만 대학 연구실을 지키는 사람 이상의 학문적 정열로 한국사 연구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1952년 「역사학보」에 발표하셨던 논문 「반계 유형원연구」는 비록 대학 졸업의 학사논문이지만 실학연구의 효시로 오늘날의 탄탄한 실학연구의 기초를 닦은 것이었습니다. 실학연구와 함께 조선사 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여 군제사를 중심으로한 조선의 정치 및 사회·경제 제도연구에 괄목할 성과를 올리고 「한국사 근세 조선전기편」(진단학회편)의 발간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말년에는 고대사에도 눈을 돌려 「인물로 본 한국고대사」 「고조선사·삼한사연구」 등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만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하셨던 근세사 연구도 병행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선생께서는 평소 『역사학 논문을 쓰려면 개설서를 한 줄이라도 고칠 수 있는 논문을 써야 한다. 대담한 가설을 세우되 고증은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바로 그것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실학연구가 그 가장 좋은 표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후배들에게 항상 따뜻한 인정으로 대하셨습니다. 아무리 신문사일이 바쁘더라도 찾아간 후배들을 항상 따뜻이 맞아 주셨고 선생이 계시는 직장이나 집동네를 지나치면서 선생을 찾지 않을 경우엔 매우 섭섭해 하셨습니다. 또한 일단 찾아온 손님은 무엇이든 대접해 보내야 마음편히 여기는 선비의 체질을 끝까지 간직하셨습니다. 결국 오늘의 불행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된 두주불사의 애주도 이같은 맥락에서 말미암았을 것입니다. 선생의 정치적·사회적 활동에 대해 평가할 입장은 아니고 또 잘 모르지만 민족자주와 민주개혁이란 굳은 신념의 발로이었을뿐 항간의 일부 오해처럼 추호도 사욕이 개재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정녕 드문 천부적 재질과 뛰어난 풍모와 건강을 지니셨던 분이 이토록 빨리 가시다니 비단 한국역사학계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사회의 큰 손실입니다. 고이 잠드소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허선도 국민대교수
  • 정치권 「물갈이」 움직임 정밀분석

    ◎「포스트 3김」 겨냥… 뉴리더 경쟁 뜨겁다/“합종연형” 활발… 입지굳히기 총력/돈줄 막강… 민정계 대권후보 1순위/박태준/“자생력 구비” 평가… 호남에도 뿌리/이종찬/대통령 신임속 사조직 확대 박차/박철언/이기택/“야권 신세대 기수”… 대중 이미지 살려 차기대선 나설듯/장외서 바삐 뛰는 김복동씨,러닝메이트설 큰 관심 모아/김윤환씨엔 킹메이커역 기대… 김원기·김영배씨도 “재목” 올해에는 20여년간 우리 정치권을 이끌어왔던 3김씨를 대체할 「뉴리더」의 탄생이 가능할 것인가. 1노 3김의 처절한 혈투가 벌어졌던 지난 87년 말의 13대 대통령선거 이후 정치권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 세대교체의 목소리가 높았으며 일련의 여론조사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88년 13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극적으로 회생했던 3김씨는 지난해 3당 통합이란 정계개편을 통해 다시 김영삼·김대중 대결구도로 정국을 몰아가고 있다. 양김이 14대 대통령 선거전에서 다시 붙고 그에 따라 지역감정이 극도로 악화됐을 경우 이 나라가 온전히 유지될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금년이 그같은 양김구도 정착여부의 갈림길이 되리라는 관측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금년 상반기 실시될 지자제 선거,또 빠르면 연말에라도 치를수 있는 14대 총선 등이 정치권 세대교체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내연중인 민자당내 대권후보 쟁탈전이 금년봄 공개화될 가능성도 높아 금년 한 해는 세대교체가 과연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이뤄진다면 「뉴리더」는 누가 될 것이냐에 정가의 관심이 모아질 것같다. 정치권 「물갈이」 움직임은 야권보다는 여권에서 보다 세차게 일고 있다. 다수 인재와 폭넓은 인맥군을 보유한 여권에 몸담고 있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에 대한 도전양상은 호남을 기반으로 독보적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6마리의 용」들 꿈틀 여권내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는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이다. 그 뒤를 이어 김윤환·이종찬·박철언·이춘구·이한동·박준병의원 등 소위 민자당내 민정계의 「여섯 용」들이 꿈틀거리고 있으며 장외 김복동·권익현씨 등도 거론 대상이다. 민자당내 최대 계보인 민정계를 노태우 대통령을 대리해 관리하고 있는 박태준 최고위원은 때묻지 않은 정치적 이미지와 함께 포철을 배경으로 상당한 자금동원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박최고위원이 대권고지를 향해 노골적으로 움직일 경우 김영삼 대표측을 자극해 당내분이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한 청와대측의 당부로 표면적인 활동은 삼가고 있지만 박최고위원측이 뛰고 있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박최고위원을 지원하는 핵심세력은 민자당내 민정계 8인 모임. 이종찬·심명보·이자헌·오유방·이태섭·이치호·장경우·김중위의원 등으로 구성된 이 모임의 목표는 「민자당 대권후보의 자유경선」이다. 즉 민자당내 민주계 주장처럼 김영삼대표가 아무런 저항없이 대권고지에 올라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민정계내에서 단일후보를 옹립,김대표와 맞붙여 그 승자가 차기 대통령 선거전에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 모임의 인사들은 아직 민정계의 대권후보를 누구라고 못박고 있지는 않지만 박최고위원을 1순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같다. 박최고위원은 이들 8인 모임 이외에도 이춘구·이한동의원 등 민정계 중진인사들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으며 김중위·최재욱의원이 주축이 된 민정계 소장그룹들과도 연관을 맺어가고 있다. 민정계에서도 대권후보를 내 자유경선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8인 모임의 총 간사는 오유방 의원이지만 이 그룹의 리더격은 역시 이종찬의원이다. 여권 출신인사 가운데 보기 드물게 자생력을 가지고 역량을 키워왔으며 대중적 기반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종찬의원은 내심 민정계에서 자신을 대권후보로 추대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이의원은 민정계 단일후보 옹립에 실패할 경우라도 민자당 대권후보 경선에 나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고 차기가 어렵다면 차차기를 내다본다는 생각아래 여러 방향의 합종연형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의원의 정치적 활동범위와 관련,청와대측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견제」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3당 합당이후 노대통령과 잦은 독대를 통해 차기정권 구도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차차기까지 염두에 서울출신의 이의원은 민정계 대권 고지점령을 위해서는 대구·경북(TK)세의 지지획득이 관건이라고 보고 정호용 전 의원 지지 서명파를 중심으로 TK 소외세력 규합을 적극 나서고 있으며 호남지역 원내 지구당위원장 상당수와도 깊숙한 친분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민정계 인사중에서 이의원 다음으로 경선출진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은 박철언의원이다. 박의원은 3당 합당과정 등을 통해 노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내외에 과시하면서 「뉴리더」 후보로 떠올랐다. 박의원은 13대 대통령선거 당시 노태우후보의 민정당 외곽선거 조직인 월계수회를 6공 출범이후 실질적으로 관리하면서 민정계내에서 최대 세력을 키워왔으며 민정계 대권후보는 전국적 조직을 가진 자신이 적합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박의원은 지난해 4월 김영삼 대표와의 일전에서 일단 패배,대권후보 경쟁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었다. 박의원 진영은 그러나 노대통령의박의원에 대한 신임은 아직도 확고하며 노대통령의 임기가 유한한 점을 감안,노대통령이 건재할때 대권경쟁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 놓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박의원은 평민당과의 제2 정계개편 가능성을 통해 김영삼대표측을 견제하면서 지난해말부터 월계수회를 중심으로 한 자신의 조직확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종찬·박철언의원을 제외한 민정계 중진가운데 경선에 나설 가능성이 가장 큰 인사는 이한동의원이다. ○계파 조정자로 적격 경기·인천지역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이한동의원은 3당 합당 직후 자신의 세력판도를 박철언의원에게 상당부분 잠식당했다. 하지만 구 민정당 당3역과 내무장관 등 화려한 관·정계 경력을 거치면서 크게 모난 행동은 하지않았다는 점,문민으로서의 이미지가 돋보인다는 점 등 때문에 계파 조정자로서 일약 대권후보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민정계의 소위 「6용」중 김윤환·이춘구·박준병의원 등은 스스로 대권을 노린다기보다는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지는 인사들이다.김윤환의원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당내 어느 계파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발군의 현실 정치감각을 갖고 있는 김의원은 무리한 세대교체 요구는 판을 아예 깨버릴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3김씨 퇴진은 선거를 통해 국민이 판단해줄 문제이며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논지다. 김의원의 이같은 모호한 태도 탓에 민정계 일각에서 김대표쪽으로 「귀순」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하고 있지만 본인은 이를 극력 부인하고 있다. 김의원에 대한 노대통령의 신임,원만한 대야관계 등을 감안할 때 어떤 대권희망자도 그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며 김의원의 지지가 여권의 대권쟁탈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관측이다. 이춘구의원은 김의원과 관점은 다르지만 역시 세대교체론의 조기주장에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의원은 민정계가 세대교체 주장으로 김대표를 너무 몰아붙일 경우 김대표를 「순교자」로 만들어 도리어 김대표에게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대표에게도 여권의 대권주자가 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되 금년내 적절한 시점에서 김대표의 대권후보 부적격성이 자연스레 노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병의원도 민자당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당내 3계파 주요 인사들과 상당한 친분관계를 구축,차기 대권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자당내 민주계에서는 김동영·김덕룡·황병태·최형우의원 등이,공화계에서 김용환·최각규·김용채의원 등이 2세대 그룹을 이루고 있으나 김영삼·김종필씨가 스스로 물러나기 이전에 대권을 노릴만한 위치에 있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밖에 장외의 김복동씨도 주위에서 출전을 권유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고 권익현 전 민정당 대표 등 5공 세력들의 움직임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김복동씨의 경우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부통령제 신설을 위한 개헌을 강력 주장하고 있는 저변에 김씨를 14대 대통령선거전 러닝메이트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란 관측도 있고 김종필씨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주목된다. 대권후보를 향한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민자당과는 달리 평민당 중간 실력자들은 김대중총재의 카리스마적 권위와 정치지도력에 안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탓에 평민당내에서는 김대중총재를 이을 2인자 그룹이 뚜렷이 부각되지 않은 가운데 김원기·조세형·김영배·정대철의원 등이 김대중총재의 후계자감으로 거론되는 정도다. 야권에서는 평민당보다는 민주당이나 재야그룹에서 신세대를 부르짖는 인사가 다수 있으며 민주당의 이기택 전 총재나 박찬종·김광일·노무현의원,재야의 핵심이 되고 있는 이부영·장기표씨 등이 그들에 속한다. 이중 이기택의원은 어느 정도 대중적 이미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차기 대통령 선거전에서 제2의 야권후보로 뛰어들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유경선이 바람직 현 상황에서 세대교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3김씨가 스스로 용퇴하거나 자유경선을 통해 새로운 지도자가 3김씨를 누르는 길 뿐이다. 3김중 김영삼·김대중씨의 자발적 퇴진은 기대키 어려운 가운데 지난해 11월 민자당 내분시 김영삼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3김 퇴진론을 주장했던 김종필씨의 태도가 관심의 대상이다. 김종필씨가 금년내 적절한 시점에 제2의 세대교체 선언을 하고 이것이 민정계내의 세대교체 주장과 어우러질 경우 그 파장은 예상외로 커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세대교체가 보다 합리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역시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후보를 자유경선하는 것이다. 민자당의 중간보스들은 금년 한해를 여권 대권후보 자유경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최대한 주력하는 기간으로 삼으려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김영삼대표가 여권의 대권후보가 되더라도 경선이라는 절차를 밟지않고 통치권자에 의해 「지명」된다면 대국민 설득력을 잃어 상당한 표의 일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금년말 정기국회직후 14대 국회의원 공천권문제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차기 대권구도가 구체적 모습으로 나타나리란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 노벨경제학상 수상 3교수의 업적

    ◎기업ㆍ가계 재테크 이론의 초석 마련/투자따른 위험ㆍ수익률 상관관계 분석 마코위츠/자본구조ㆍ자산가격 결정 모형 개발 샤프/기업의 재무관리ㆍ자산평가 이론 정립 밀러 올해 노벨경제학상에 선정된 3명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유명대학 강단에 서있는 재정 및 투자이론의 대가들이다. 69년부터 시작된 노벨경제학상에서 3명이나 공동으로 수상한 적은 없으며 모두 30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중 18명이 미국 경제학자들이 차지했다는 점은 오늘날 경제이론의 전개가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해리 마코위츠교수는 투자이론의 창시자. 지난 52년 투자에 따른 위험과 수익률과의 상관관계를 이론적으로분석해낸 경제학자로 「현대 투자이론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즉,투자위험이 높을수록 예상수익률도 커지며 투자위험이 낮을수록 기대수익률도 낮아진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전개했다. 오늘날 개인이나 기업의 재테크 이론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투자 등에는 위험이 따르며 그 위험이 큰만큼 수익률도 높아진다는 이론이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주식ㆍ부동산ㆍ예금 등 분산투자가 바람직하다는 이른바 재산 3분법의 이론적 근거도 제공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마코위츠는 그러나 투자에 따른 위험도를 계량화하지 못하고 샤프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된다. 윌리엄 샤프교수는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이론을 계승,발전시킨 투자이론의 대가. 마코위츠가 투자위험과 기대수익률과의 상관관계를 표준편차의 개념으로 설정한데 비해 샤프는 수학적 공식을 사용,위험계수인 배타계수를 개발해냈다. 투자자산의 위험계수를 산정해 냄으로써 자본ㆍ자산가격의 결정모형(CAPM)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8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랑크 모딜리아니와 공동 연구작업을 했던 머튼 밀러교수는 기업의 최적 자본구조에 대한 논문을 저술했다. 밀러는 지난 58년부터 77년까지 모딜리아니와 같이 연구를 계속했으며 그의 이론은 기업의 자본구조,배당정책과 시장가치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85년 모딜리아니교수가 밀러와의 공저로 노벨경제학상을 탔을때 밀러교수가 누락됐던 것이 이번 수상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해리 마코위츠,머튼 밀러,윌리엄 샤프 등 3인의 미국 경제학자들은 투자와 자산관리의 기초가 되는 재무이론을 최초로 정립하고 계승ㆍ발전시키는데 기여한 사람들. 이들이 정립시킨 이론의 골자는 가계의 저축과 기업의 투자를 연결시켜주는 금융시장에서의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해 현대 시장경제를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금융시장을 통해 개별기업의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과 위험이 동시에 평가되는데 투자자들은 이를 기초로 투자결정을 위한 제반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분야 이론의 개척자가 지난 50년대에 「자산선택이론」(또는 투자이론:불확실성하에서의 가계 및 기업의 금융자산의 배분에 관한 이론)을 발표했던 마코위츠 교수다. 그는 이 이론을 통해 기대수익과 위험의 정도가 각각 다른 여러가지 형태의 자산(주식ㆍ토지ㆍ예금 등) 가운데 어떻게 투자할때 위험도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를분석했다. 윌리엄 샤프 교수는 마코위츠의 「자산 선택이론」을 토대로 60년대에 자본자산가격모델(금융자산의 가격형성에 관한 이론)을 개발했다. 머튼 밀러교수는 기업의 재무관리와 자산평가에 관한 독보적인 이론을 정립시켰다. 그는 기업의 재무구조와 이익배당률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그 기업의 자산가치를 산출해내는데 기여했다. 국내 학자들은 이들 3명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공동결정된 것은 종전까지 거시경제에 치중해왔던 수상기준이 이제 미시재정이론쪽으로 전환된 것으로 평가했다. ◇머튼 밀러교수(67)=▲1923년 미국 보스턴 출생 ▲하버드대 석사(44년) ▲존스홉킨스대 박사(52년) ▲현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 ▲주요저서=재무이론(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모딜리아니와 공저),거시경제학이론(74년) ◇샤프교수(56)=1934년 케임브리지 출생 ▲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 교수 ▲주요저서=포트폴리오이론과 자본시장,투자론 ◇마코위츠교수(62)=1928년 시카고 출생 ▲현 뉴욕시립대 바로크칼리지 교수 ▲주요저서=투자선택이론(52년)
  • 「민주조선」 부주필등 거의가 「남한통」/북한취재단 50명의 면면

    ◎중진급 망라… 언론공세 펼 듯/19명은 두번째 방문… 문화계 인사도 다수 서울회담에 참가할 것으로 통보된 북한측 기자단의 명단은 모두 50명. 북한측은 이들의 소속과 직책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제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기자단 50명중에는 로동신문 논설위원인 엄일규를 비롯해 문예총제 1부위원장인 최영화,민주조선 부주필인 안복만 등 북한언론계의 중진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져 서울회담을 계기로 대대적인 언론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로동신문의 논설위원인 엄일규는 대남통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5월 한달동안만 해도 「분단장벽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결코 지울 수 없다」(3일)를 비롯,「불법무법의 파쇼광란」(8일ㆍ문화방송 경찰병력투입 관련),「악랄한 도전,오만무례한 횡포」(26일ㆍ전대협의 미 대사관 항의방문단파견 관련) 등의 기명기사를 쓰는 등 주로 남한내부의 투쟁을 고취시키는 논평을 맡아왔다. 이밖에 로동신문기자로는 한배근ㆍ리길성 등이 있다. 로동신문은 연중무휴로 주7회 매일6면을 발행하고 있는데 발행부수는 90여만부로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 10만부,기타 신문 4만∼5만부에 비해 독보적인 위치를 치지하고 있다. 편집국에는 12개 부서가 있으며 특히 남조선부가 따로 있어 매일 한면씩 남조선면을 내고 있다. 로동신문 다음으로 비중있는 신문은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 이 신문은 부주필 안복만을 서울에 보낸다. 안은 87년 5월 부주필에 임명돼 88년 7월에는 북한을 방문한 루마니아신문대표단과 정준기부총리와의 회동에 배석하기도 했다. 64년 사로청중앙위위원으로 얼굴을 나타내기 시작해 73년에는 직총평남도위원장에 올랐으며 85년에는 북한측 올림픽위원회위원 자격으로 로잔체육회담대표를 맡기도 했다. 안과 함께 민주조선기자로 확인된 사람은 박춘민 김상현,리강후 등. 김상현과 리강후는 판문점에서 열리는 각종 남북대화시 일선 취재를 해왔으며 박춘민은 남조선관련 부서의 부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계 인사는 아니지만 기자단의 명단에 올라있는 최영화는 문예총제 1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문화예술계의대표적인 인물의 하나. 지난해 3월 북한이 제의한 남북 작가회담 예비회담의 북측 대표단장을 맡았었다. 또 지난해 4월에는 밀입북한 작가 황석영씨와 좌담회를 갖기도 했다. 최는 53년 작가동맹중앙위위원에 선출된 이후 줄곧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해 왔는데 그동안 맡았던 직위는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부강좌장(56년) 작가동맹부위원장(68년) 문예총부위원장(73년) 등. 현재는 평화옹호전국민족위부의장을 겸직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로동신문 부주필인 서동범을 기자단에서 제외하고 강두한ㆍ문광우ㆍ엄정온 등 3명을 추가로 기자단에 포함시킨다고 알려왔는데 이중 강두한은 조총련의 조선신보사 부장으로 확인됐다. 한편 이번에 오는 북한기자 50명중 김천일ㆍ홍창식 등 19명은 지난 85년 12월 서울에서 열렸던 제10차 남북 적십자본회담때 서울에 왔던 「기자」들로 밝혀졌다.
  • “조선명기홍도는 실존인물”/동국대최효식교수/경주야산서 묘ㆍ비석발굴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조선조 명기 홍도의 묘와 비석이 발견돼 홍도가 아버지 최명동과 세습기생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실존 인물임이 밝혀졌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최효식교수(동국대 박물관장)는 14일 경주시 도지동 627 야산에 묻혀 있는 묘비와 비석을 발견,비문을 판독한 결과 이 묘가 조선시대 명기 「홍도」의 묘임을 확인했다. 이 비석에는 당시 시ㆍ서예에 능한 절제가인 홍도가 사망하자 홍도를 아끼던 풍류협객들이 홍도가 세상을 하직한지 28년뒤인 1851년(철종2년) 8월에 비를 세운 것으로 기록돼 있다. 높이 1백20㎝ 너비 50㎝ 두께 50㎝의 화강암으로 된 비석 앞면에는 동도명기 홍도지묘로 적혀있고 뒷면과 옆면에 3백88자로 새겨진 비문에는 낭자 이름이 최계옥,자는 최월산이며 홍도라는 예명(기생명)은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별호라고 적혀있다. 또 홍도의 아버지는 가선대부를 지냈으며 어머니는 당시 세습기생으로 최씨의 애첩이었다는 사실이 적혀있다. 홍도는 무술년(1778년)에 태어나 12세에 시와 서에 능하고 14세에 예도 능했으며특유의 미모를 지녔으며 20세에 노래와 춤에 능해 독보적 위치를 확보,장안에서는 따를 자가 없었다고 적혀있다. 또 이 비에는 당시 임금 장인인 박상공이 홍도를 첩으로 삼았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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