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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입국에 생애바친 선각자/서울신문 초대사장 위창 오세창선생

    ◎독립운동·저술 등서 뚜렷한 발자취/23세에 첫발… 필봉으로 민족혼 고취/팔순고령에도 본지서 해방조국 정론기개 불태워 『매일신보는 이제 혁신되어 이름조차 새로운 「서울신문」으로 냅떠 나서게 되었다.…우리는 일당일파에 기울이지 않고 언론보도에 공정하고 적확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민족총력의 집결통일과 독립완성의 시급한 요청에 맞추어 단호매진하는 동시에 국내를 비롯하여 연합우방의 동업기관과 더불어 민주주의적 질서수립을 위해 상응한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19 45년 11월22일 혁신사란 이름의 서울신문 창간사중 일부이다. 언론입국의 기치를 이같이 내걸고 새로 태동한 서울신문에 초대사장으로 추입,격랑의 그 어려운 시절을 이끌던 이는 바로 위창 오세창선생이었다. 큰 체구에 근엄한 표정,그리고 절고의 기품과 해박한 지성으로 명성 높은 원로 민족인사였다.위창은 33인(3·1운동)의 한사람이자 불굴의 독립투사로 더 이름이 높다.또 근대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탁월한 서예인이었다.그의 행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화사상 일찍 눈떠 개화운동및 개화사상가,언론인,종교인,전각가·저술가·고서화 수집가를 덧붙여야 할 만큼 다각적인 발자취를 남긴 민족근대화의 선각자였다.특히 개화사조의 계몽과 주권의식의 고취를 민족에 불어넣기 위해 벌였던 개화및 언론활동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인식을 새롭게 할 만큼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위창은 개화사상에 일찍이 눈을 뜬 부친 오경석과 은사 유대치의 감화를 받아 일찍부터 개화및 진보적 사고를 지니게 되었다.자신의 개화사상이 곧 민족의 근대화를 이루는 지름길로 여겨 개화운동의 전면에 나선 것이 약관 23세이던 18 86년의 일이다.박문국의 주사로서 당시 관보였던 「한성주보」의 기자를 겸하면서 처음 언론을 대했다. 정치적 격변의 시대이기도 했던 그무렵 위창은 지위를 높여 영화를 누릴 기회도 많았으나 이를 마다하고 필봉의 길을 택했다.언론을 통해 민족에 개화의식을 심어 끝내는 국권회복의 길을 앞당기려는 깊은 뜻을 품었기 때문이었다.기자생활은 18 88년 7월 한성주보가 폐간될때까지 1년8개월간에 불과했다.그러나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민족을 일깨우는데 집념을 불태운 그 세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그뒤 31세이던 18 94년 국군기무처의 낭청(총재비서관)자리에 관직을 얻은 그는 당시 영의정이던 김홍집의 3차내각이 무너지기까지 의정부주사·농상공부 참사관·통신국장을 지내면서 줄곧 정부시책을 통해 또다른 민족근대화 작업을 집요하게 폈다. 위창의 민족개화운동은 도쿄 망명중 동학교주 손병희를 만나 입교하면서 그 날개를 더 달았다.19 06년에는 항일구국운동을 위한 신문 「만세보」를 손병희의 재정적 후원으로 창간,사장에 취임하면서 본격화 하기 시작했다.당시 위창은 주필로 국초 이인직을 취임시켰다.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가 처음 발표된 것도 바로 「만세보」지면을 통해서였다. ○「만세보」 사장 취임 그러나 만세보는 경영난에 빠져 이듬해에 폐간되는 비운을 겪었다.위창은 권동진·장지연·김가진등과 「대한협회」를 조직,사회개혁과 항일운동을 계속했다.그러면서 이상재·김규식·안창호등과 「대한학회」발기인으로활동한 위창은 19 05년 5월 대한협회의 기관지 성격으로 「대한민보」를 창간,다시 사장으로서 항일언론을 지속하는등 민족을 위한 투쟁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대한민보는 창간 이듬해 한일합병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나 당시 매우 획기적이고 용기있는 신문편집을 단행한 것으로 유명하다.창간호부터 1면에 청년화가 이도영이 붓으로 그린 비판적 시사만화를 연재한 것도 이때다.시사만화는 미련한 놈이 도끼로 나무를 찍다가 자루가 빠지는 바람에 도끼날이 제 발등에 떨어져 찍히는 내용이었다. 이 만화의 설명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미완용(이미완용)자부상피(자부상피)」라는 설명이 그것인데 당시 「매국대신 이완용이 자부와 상피붙었다」는 소문을 풍자한 내용이다.대한민보에는 이밖에도 일제통감의 침략행위와 일인들의 악행을 풍자한 만화도 등장했다.또 우리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뒤에도 군복을 입고있는 이완용내각의 군부대신 이병무의 모습을 그려놓고 「벌거벗고 군도차기」라고 꼬집은 만평이 게재되기도 했다. 이 모든 비판적 만평은 위창의 항일언론정신에 바탕한 것은 물론이다.당시 그같은 통렬한 설명도 위창이 직접 붙인것으로 알려져 있다.매우 엄격하고 불의에 타협않는 단호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위창은 과묵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말과 행동을 늘 은인자중하여 심중을 알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기회를 얻으면 결코 방관하지 않는 기민성을 보이기도 했다. 생전에 술과 담배는 즐겼다.19 19년 3월 민족대표 33인중 한사람으로 왜경에 체포,실형을 받은뒤 술을 끊기까지 두주불사에 줄담배였다. 한국서화사연구의 혁혁한 공로자로서도 언론인 못지않게 이름이 높다.김석학의 대가이던 부친 적매 오경석의 아들답게 근대적 미술가단체의 효시인 서화협회의 발기인이자 민족서화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폭의 활동을 했다.위창이 서화사연구와 전서쓰기및 전각에 전념하기는 통한의 국망을 본 이후 천도교도사로 은거하면서였다. ○서화사연구에도 열성 그리고 고서화수집가로도 유명했다.한학과 김석학에 깊은 조예가 없이는 손대기 어려운 전서에 뛰어났다.전서로당대의 일인자였던 그는 예서를 씀에도 고격하여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전서의 높은 경지와 함께 전자를 돌도장에 새기는 전각에서도 근대이후 일인자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남긴 미술사적 공적은 「근역서화징」의 편저이다.「근역서화징」은 삼국시대이후 3백92인의 화가와 5백76인의 서가,그리고 시·화를 겸했던 1백49인의 기록을 시대순으로 정리한 책자를 말한다.필생의 대업적인 「근역서화징」은 오늘에도 그 방면의 유일하고 거의 완벽한 사전으로 학계와 사회의 길잡이가 돼있다. 육당 최남선은 이 책자가 출간되었을때 『암흑한 운중의 전광』이라는 표현으로 그 업적을 극찬할 정도였다.위창은 또하나의 편저업적인 「근역인수」를 남겼다.조선시대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화가 8백56인의 성명·아호·별호·자·이명의 도장 약3천8백종을 실제의 날인본으로 모은 것이다.한국전각예술의 역사적 흐름과 실제 사용의 행적을 보여주는 최대의 자료집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도 1천1백16점의 글씨와 그림을 묶은 「근묵」이며삼한의 와당을 모은것등 많은 문화재를 수집 정리했다.위창이 명현석유를 비롯한 옛서화가들의 필적을 이처럼 모아 정리한것은 단순한 취미에서가 아니었다.선인들의 문화유품이야말로 민족의 정신적 생명으로 인식,이를 아끼는 마음에서 였다.그것은 위창의 애국애족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그의 이러한 정리작업은 광복을 맞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뒤 일제가 패망하고 국권을 찾으면서 위창은 팔순의 고령으로 서울신문 사장에 추대되었다.광복의 땅에서 우리말로 정론을 펴는 서울신문 초대사장에 취임한 그는 얼마 안되는 세월이었지만 노후의 기개를 불태웠다. 8·15 1주년을 맞아 지난날 일제에 빼앗겼던 대한제국 황제의 옥쇄를 민족을 대표하여 인수했던 위창­.그는 6·25로 가족과 함께 내려간 피란지 대구에서 1953년 4월 세상을 떠났다.그때의 나이 천수를 다한 90세였다.
  • 4년간 12만명 아사/“소말리아 어린이를 돕자”

    ◎유니세프 문예인클럽,25일 강남Y회관서 「사랑의 장터」 열어/노 대통령 등 각계 300여명 참가/기증품 판매·자선공연 등 개최/「소말리아빵」 특별주문… 고통 함께 나누기 행사도 내전과 가뭄으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소말리아 어린이를 돕기 위한 대규모 자선행사가 열린다. 25일 상오11시부터 하오 6시까지 서울 논현동 강남YMCA회관에서 열리는 「소말리아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장터」가 그것.유니세프 문화예술인클럽(회장 박용구)이 마련한 이 행사에는 노태우대통령을 비롯,전두환전대통령 이수정문화부장관 김수환추기경등 정치·경제·문화·종교·언론·연예·스포츠 등 각계각층의 인사 3백여명이 자신의 소장품 또는 성금을 내놓는다.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내전과 가뭄으로 목숨을 잃은 소말리아인이 12만여명.현재도 1백만명이 넘는 소말리아 어린이들이 아사직전의 위기에 놓여있으며 전체 어린이의 절반이상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6·25의 잿더미속에서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이 다른 나라를 도울수있을만큼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지금 마련된 이번 「사랑의 장터」는 기증 소장품의 전시판매와 공연,소말리아 빵 맛보기 행사등으로 진행된다. 전시판매될 소장품 가운데는 국립국악원장 이승렬씨가 사용하던 가야금,서양화 구상화단의 독보적인 중진화가 오승우씨가 아끼는 자신의 작품,원로 음악평론가 박용구씨가 가보로 지녀 온 서예병풍,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한 영화배우 안성기씨가 그린 파스텔화,프로야구선수 장종훈씨가 사인한 기념시계와 야구공,탁구선수 유남규·현정화·김택수씨가 사인한 탁구라켓,인간문화재인 판소리 명창 박동진씨가 애용하던 합죽선등이 포함돼 있다.그밖에 소설가 박범신씨,국악인 황병기씨,문학평론가 김병익씨,음악인 박은희·이경숙·김남윤씨,무용가 문일지씨,프로바둑기사 조훈현씨,만화가 김수정·이보배씨등도 자신이 서명한 책·음반 및 각종 소장품과 성금을 기증했다.기증품중 진귀한 소장품은 경매에 부쳐질 예정. 또한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공연프로그램에는 한국계 러시아 성악가인 넬리리씨,박동진명창,개그맨 이상운씨,가수 김세환·이택림·김창완씨등이 출연하겠다고 발벗고 나섰으며 소말리아 어린이들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먹는 소말리아빵은 특별주문됐다. 이 행사를 마련한 유니세프 문화예술인클럽은 전세계 불우어린이를 돕는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의 사업취지에 공감한 국내 문화예술인 50여명이 모인 유니세프 후원단체.91년 11월 결성된이래 지난 5월 국립국악당에서 자선공연 「보리죽과 우리가락」을 열어 수익금 전액을 아프리카난민 어린이를 위한 기금으로 유니세프에 전달한바 있다.
  • 동남훨타공업/금속필터 국산화… “이젠 수출 채비”(앞서가는 기업)

    ◎“「고부가전략」만이 살길”… 기술개발 6개월/88년 시판… 매출 5년새 40배로 국내외 시장 쟁탈전이 뜨겁게 달아 오르면서 이제는 고부가가치 전략을 세우지 않고서는 기업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돼 버렸다.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기업의 사활차원에서 이같은 전략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W이론을 만들자」라는 책으로 최근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서울대 공학연구소장 이면우교수(서울대 공학연구소장)는 기업의 고부가가치 전략을 「하이터치」전략이라고 부르고 있기도 하다. 경기도 안산시 시화공단의 동남휠타공업(대표 김동식)은 고부가가치 전략을 통해 불황을 이기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동남휠타공업은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오던 금속마이크로필터의 제조기술을 자체 개발해 제품 국산화에 성공함으로써 수입대체는 물론 수출까지 계획하고 있다. 섬유 또는 필름제조용으로 사용되는 금속마이크로필터는 고난도의 용접기술을 필요로 해 그동안 미국·일본·독일·벨기에 등 공업선진국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 더욱이 금속마이크로필터가 들어가는 설비는 대부분 이들 나라로부터 수입된 것이어서 설비에 맞는 금속필터를 국내에서 생산해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산화에 성공한다 해도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사줄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불리한 여건속에 동남기업이 금속마이크로필터의 국내개발에 나선 것은 지난 88년 2월. 직원이라야 김사장(36)을 포함해 3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열의만큼은 대단했다. 첫 시제품이 나오기까지 6개월간은 샤워시설을 개조해 만든 10평남짓 규모의 공장에서 3∼4일을 뜬 눈으로 지새우기 일쑤였다.시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루밤 사이에 시가 80만원짜리 원자재(가로 1m50,세로 1m)를 몇장씩 날려보내기도 했다. 각고의 노력끝에 첫 시제품이 완성됐다.모두들 이 시제품이 성능면에서는 선진국 어느 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그러나 시제품 개발만으로 모든 문제들이 풀리지는 않았다. 금속필터를 사용하는 기업은 SKC·동양나이론·코오롱·제일합섬등 국내굴지의 합섬회사들이다.이들 기업을 상대로 납품한다는 것은 무명의 중소업체에게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 보다 몇배 힘든 과제였다. 우선 이들 기업의 실무자를 만나는 것 조차 정문에서부터 철저히 차단당했다. 그래서 김사장을 비롯한 이 회사 직원들은 이들 대기업의 실무자들을 만나기 위해 정문에서 또는 회사 밖에서 밤을 새운게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이러한 노력끝에 이들 대기업을 하나하나 거래선으로 트기 시작했다. 동남휠타공업의 제품은 무엇보다 수입제품에 비해 가격이 30∼40% 싸 원매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수 있었다. 물론 제품의 성능도 수입품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냈다. 동남휠타공업이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은 금속필터 제조공정이 자동화 보다는 거의 수작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업체들도 금속필터의 제조공정은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질좋은 제품을 남들보다 값싸게 공급하는 기업은 성공하게 마련이다. 88년 공장설립 당시 고작 5천만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이듬해인 89년 6억원으로 불어났고 90년 9억원,지난해 12억원,올해는 2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시화공단에 번듯한 공장도 마련했다. 지난해 7월 공사에 들어가 12월 입주한 공장은 부지 5백3평에 건평 3백87평 규모이다. 공장 식구도 3명에서 현재는 30명으로 10배가 늘어났다. 동남휠타공업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김사장은 『그동안에는 주로 국내 13개 합섬회사를 상대로 판매를 해왔으나 앞으로는 금속필터를 필요로 하는 석유화학·화장품·제약·식품업계에도 판로를 뚫을 생각』이라면서 『지난해 5천만원어치를 로컬수출한 것을 계기로 해외시장에 나서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와함께 내년부터는 필터 세정설비를 집중개발,이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무에서 유를 일궈내는데 밑거름이 된 회사의 직원들에 대한 배려도 각별하다. 회사는 집없는 직원들을 위해 안산시영아파트 18평짜리 5채를 구입,이달안에 모두 입주시킬 예정이며 미혼자들을 위해서는 별도로 기숙사를 마련해 두고 회사에서 하루세끼 식사를 모두 제공해 준다.현재 동남휠타에서 생산하는 필터는 크게 립디스크 필터와 주름형 필터,튜브형 필터로 나눌 수 있다. 동남휠타공업은 이 필터를 조립해서 사용할 수 있는 하우징 캐싱·초음파 세척기·오토 스트레이너·버블 포인트 검사기·에어 플로우 테스터등을 자체 개발,필터분야의 독보적 기업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 캔버스에 흙냄새 물씬/“시골풍의 두 중견” 이종구·변시지 개인전

    ◎이/“이 땅의 사람과 우리 냄새·소리 담아”/변/탐라 특유 「바람의 맛」 화폭에 듬뿍 향수어린 인간의 심성에 가장 깊게 와닿는 빛은 어쩌면 흙냄새 물씬한 황토색인지도 모른다. 우리시골의 풍경을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 보이는 두작가가 바로 그런 흙냄새 물씬한 황토색화면을 갖고 각자 큰 개인전을 벌이고 있어 화제다. 「땅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학고재(739 ­49 37)에서 근작전(20 ∼ 28일)을 펼치고 있는 중견 이종구씨와 「격랑의 구도」란 주제아래 영동 예맥화랑(517 ­41 38)에서 전시(11월4일까지)를 갖고있는 중진화가 변시지씨. 두작가가 집착하는 내용은 별개의 것이지만 도시인이 빼앗긴 흙내음을 듬뿍 담아낸 화면으로 황폐화된 현대인의 심성을 함께 달래주고 있다. 이종구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시대의 농민상을 일관되게 그려온 화가다.화단내에서 「이종구」하면 곧 「양곡부대에 농민들의 삶을 담은 화가」로 익히 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시대의 건실한 작가상의 한 모범」으로까지 칭송된바 있다. 양곡부대를 캔버스삼아 유화로 그린 그의 인물화들은 표정들이 생동감넘치게 묘사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풍경화가로서 새모습을 제시해 보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냄새와 소리와 빛과 공기를 건강한 이 땅의 사람과 함께 그린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중진화가 우성 변시지씨는 제주에 작업의 터를 굳히고 제주에서만 느낄수 있는 「바람의 맛」을 화폭에 재현해내고 있는 독보적인 인물. 그는 짙은 향토성을 예술의 토양으로 삼고있는 많지않은 작가중에도 그 색깔이 두드러져있다.제주에서 태어난 변씨는 객지에서의 유학시절을 마치고 20년전에 다시 고향땅을 찾아 정착했다. 관광지로서 번성한 오늘의 제주를 모티브로 한것이 아니라 제주만이 갖고있는 원초성에 맞춰진 그의 제주시리즈는 『육지인들에게 낯설기만한 고유한 섬생활의 결들이 비늘처럼 반짝인다』는 평을 듣는다. 누런 장판지를 연상케하는 기조에 검은 선획으로 이미지를 나타내고있는 제주그림들에서 풍경전체가 격랑을 타고있는듯한 매력을 접하게 되는 것은 관객이 즐길수 있는 묘미이다.
  • 주한외국문화원/책·영화 등 “세계문화 사랑방”

    ◎7개국에서 설치… 이용방법을 알아보면/도사관엔 각종서적 비치… 자유롭게 대출/어학강좌·미전·음악제 등 프로그램 다양/거의 월∼금요일만 문열어… 유학도 안내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각종 정보와 자료를 얻기위해 주한외국문화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문화원을 두고 있는 나라는 미국,일본,포르투갈등 7개국.각국 문화원은 언어교육프로그램을 비롯,유학안내 문화프로그램등을 마련해 내방인에게 소개하고 있다.특히 이들 외국문화원은 해당외국어습득을 위한 「정보보고」로서 독보적이다. 외국문화원은 결국 자국홍보를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지만 이를 잘 이용할 경우 큰도움을 얻을 수 있다.주한외국문화원이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과 이용방법등을 알아봤다. ▷미국문화원◁ 서울 중구 을지로 1가에 위치한 미국문화원의 공식명칭은 「서울아메리칸센터」.운동권학생들로부터 수난을 겪은 미국공보원이 서울 남영동으로 이사를 간뒤 그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문화원의 주요시설로는 도서자료실이손꼽힌다.자료실이용은 일반회원과 특별회원으로 자격을 분류해 실시하고 있는데 특별회원은 이용희망자가운데 미문화원측이 선별한 사람이나 정치가,교수등 사회지도자급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과학,인문과학,예술관련 서적등 1만여권의 장서가 비치된 도서관은 학생증,주민등록증,신분증을 제시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그러나 도서대출을 위해서는 회원증을 만들어야 한다.특히 이곳에 설치된 컴퓨터단말기를 이용하면 미국도서관자료등 귀중한 최신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상오11시∼하오6시사이에 문을 연다. ▷일본문화원◁ 일본문화원은 지난88년 주한일본대사관 광보관실에서 광보문화원으로 명칭을 바꿨다.명칭변경과 함께 업무도 확대,갤러리를 새로 열고 매일 1회씩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그러나 일본문화원은 일본의 경제력에 비해 미국,유럽국가와는 달리 두드러진 활동을 펴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소감이다.하지만 일본어교육에 대한 지원은 대단해 전문교육과정으로의 자리를 확실하게 다져가고 있다. 도서관은 1백50석 좌석에 1만5천여권의 각종 장서를 비치해 놓고 있다.「책의 나라」일본답게 일본문학,문화관련서적및 정기간행학술지가 풍부하게 갖춰져 있다. ▷프랑스문화원◁ 프랑스문화원은 영화를 통한 문화홍보로 일반에게 더욱 친숙하다.69년 첫설치된이후 국내 영화공부 지망생들사이에「프랑스문화원사단」이 생겨날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다. 또 문화원1층을 프랑스에서 공부한 미술학도의 전시공간으로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도서관시설은 월∼금요일의 경우 상오10시부터 하오6시까지,토요일은 11시30분∼6시까지 개방한다. ▷영국문화원◁ 지난 73년 문을 연 영국문화원은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1층에 있다.지하철1,2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영국문화원이 주는 장학금을 받아 학위를 따온 국내학자 3백81명가운데 3분의2가 과학기술분야일정도로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영국문화원의 특징. ▷독일문화원◁ 「괴테인스티튜트」로 불리는 독일문화원은 독일만화영화상영,전시회개최,박물관교육세미나등각분야에 걸쳐 꾸준하고 지속적인 문화활동을 펴오고 있다. 특히 89년 4월부터 한국창작음악발전을 위해 시작한 새마당음악제는 다른 문화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프로그램. ▷이탈리아·포르투갈문화원◁ 지난87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설된 이탈리아문화원은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6월 「이탈리아뉴시네마전」을 한국영상자료전에서 개최하는등 나름대로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이탈리아문화원은 서울 한남동 우진빌딩4층 대사관안에 함께 있다.도서관개방은 월∼금요일 상오9시부터 하오5시까지이다. 90년에 개설된 포르투갈문화원은 지난3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임진왜란에 참가한 포르투갈인」이라는 제목으로 그내용을 기록한 고서전시회를 여는등 한국민과의 공감대형성에 노력하고 있다.문화원은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옆 유고대사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도서관개장시간은 월∼금요일 상오9시부터 5시30분까지이다.
  • 세계기술혁신 일 기업이 주도/비즈니스 위크지,상위 15대기업 선정

    ◎일,상품개발주기 14위까지 독점/기술파급도는 미사가 10개 랭크/유럽선 경제권통합으로 집단대응추세 누가 기술혁신시대의 세계무대를 이끌고 있는가.기술변화의 추세는 무엇이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가. 기술혁신이 기업생존을 좌우하면서 특허권의 내용과 동향에 대한 정밀분석이 세계기술판도를 파악하고 경쟁기업의 전략및 기술력을 판단하는 지표로써 널리 쓰이고 있다.특허권리에 대한 분석이 미래의 기술판도를 가늠하고 기술장벽을 극복하는 주요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위크지는 최근 미국의 시 에치 아이 리서치사와 공동으로 특허기술분석을 토대로 세계무대에서 기술혁신을 이끌고 있는 기업 2백개사의 기술력을 평가,발표했다. 이 방법은 기존의 평가방법이 특허권의 단순 등록건수를 기술력과 동일시하던 것과는 달리 특허건수에 기술영향력(파급도)을 고려해 최종기술력을 평가해냈다. 이 분석결과의 특징은 미국과 일본기업들이 모든 평가분야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것.그러나 기술영향력,기술파급도의 평가분야에서는 미국기업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반면에 기술혁신주기(기술사이클)에선 일본기업들이 절대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즉 하이테크등 첨단기술력의 측면에선 미국이 아직도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지만 기술혁신속도경쟁에선 전자기술등을 앞세운 일본의 이노베이션속도에 미국이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술영향력분야 상위15대기업중 미국은 반도체칩의 독점적 공급자로 유명한 인텔사,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아이비엠사등 10개사가 올라있다.반면에 기술혁신주기분야 15개기업중 미국은 일본의 후지중공업,소니,니콘,리코사등 14개 기업들에게 자리를 양보한채 단 1개기업만이 서열에 들어있을 따름이다.그만큼 일본은 기술혁신도에서 이미 타의 추적을 불허할 만큼의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력에 대한 종합평가에 있어서도 일본은 1위부터 4위까지를 모두 휩쓸고 있다.(도시바·히다치·캐논·미쓰비시전기순).또 25위까지의 기업리스트에도 일본은 후지쓰,엔이씨(NEC),샤프,마쓰시다전기등을 포함,미국과같은 숫자인 11개기업이 올라있다(미국기업으로는 이스트만코닥,아이비엠,제너럴모터스,제너럴일렉트릭,듀폰등이 들어있다). 반면에 유럽기업으로는 필립스(전자분야를 기반으로 하는 네덜란드의 다국적기업),지멘스,훽스트(이상독일)등 3개사가 간신히 체면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이러한 특허기술분석결과는 「유럽공동체탄생의 직접적인 동인은 일본의 기술공세」라는 지적을 실감케 할 정도로 유럽기업들의 경쟁력상실을 보여준다. 특허정보는 신기술권리에 대한 권리내역이 집약돼 있기 때문에 기술정보의 정화로 불린다.또 이때문에 상대방이 먼저 따낸 기술을 분쟁에 걸리지 않게 응용하거나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것은 이미 기술개발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석방법은 이제 한발 더 나가서 「자사의 기술과 상품들이 얼마나 더 있으면 쓸모없게 될 것인지」를 판단하고 예측하는 주요한 가늠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그때문에 세계일류기업들은 눈을 부릅뜨고 특허분석전담반과 특허지도작성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또 그를 통해 얻은 자료들은 ▲첨단기술등 세계적인 기술개발변동추세 ▲경쟁기업의 개발·판매전략은 물론 협력제휴사의 선정과 기술이전료의 액수결정에도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 한국타악인 도쿄향연 참가/박동욱씨 등 일타악기협서 초청

    ◎민속음악 접목시킨 창작곡 「대비」등 소개 우리나라의 독보적 타악기주자이자 작곡가인 박동욱씨(58)가 이끄는 한국타악인회가 오는 27일부터 8월2일까지 일본의 도쿄에서 열리는 「타악기의 향연­92」에 참가한다. 일본타악기협회 및 오카다타악기앙상블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번 일본연극에는 박씨를 비롯,김종환·윤제상·최경황·이강구·원일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우리 전통음악을 소재로 한 창작곡들을 선보일 예정. 「타악기의 향연­92」는 일본의 타악기그룹이 22개나 참여하는 타악기패스티벌로 외국단체로는 한국타악인회가 유일하게 초청을 받았다. 이번 연극회에서는 박씨가 지난 76년 발표한 「대비」를 비롯,백병동의 「타악기앙상블을 위한 파사칼리아」,김용진의 「놀이」,박영근의 「타악기를 위한 3악장」등이 연주된다. 한국타악인회는 타악기를 전공한 연주자들이 「서양음악의 모방이 아닌 우리음악의 맥을 찾는다」는 목표아래 지난 80년 창단된 이래 한국민속음악의 요소를 접목시킨 창작과 연극활동으로눈길을 끌어온 단체이다. 한국타악인회는 오는 29일 마사히홀에서 한차례 연주회를 가진뒤 31일 우에노문화회관에서 한국의 현대창작곡을 소개하는 강습회를 갖는다. 또 8월1일에는 센조쿠음악대학에서,2일에는 구니다치음악대학에서 한국적 리듬에 대한 특강과 연주회도 가질 예정이다.
  • 정보문화기술상 수상 안철수군의관(인터뷰)

    ◎“컴퓨터바이러스 퇴치는 부업”/제대후 전공인 전기생리학에 몰두할터 컴퓨터의 작동을 중단시키거나 자료및 프로그램에 치명적 손실을 일으키는 컴퓨터바이러스의 퇴치에 독보적 공로를 세운 안철수씨(30·국군의무사령부 군의관)가 정보문화센터주최로 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회 정보문화상 시상식에서 정보문화기술상을 수상했다. 『지난 88년 국내 최초로 발견된 컴퓨터바이러스인 브레인이 제가 사용하는 디스켓에도 감염된 사실을 알고서 감염원인및 치료방법을 연구,이듬해에 퇴치프로그램을 개발해 일반에게 무료로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씨가 개발한 퇴치프로그램 「백신」은 이후 치유능력이 꾸준히 개선돼 현재 95종의 컴퓨터바이러스를 고칠 수있는 「백신3­95」까지 나와있다. 『제 자신은 바이러스백신보다 다른 유용한 프로그램개발에 관심이 더 많았지만 신종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샘플이 모두 내게로 모이고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어 어쩔 수없이 이 방면의 전문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의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있는 프로그램을 짜는데에 짧게는 3시간,길게는 1주일동안 머리를 싸매는 그는 매달 15일 백신의 개정판을 피시서브,코텔,KT메일등 전자통신망의 게시판에 발표하고 있다. 『나의 희망은 우수한 의학자가 되는 것입니다.컴퓨터바이러스 퇴치프로그램개발은 취미이니까 등산을 가거나 바둑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94년 제대하면 전공인 전기생리학연구에 매달릴 작정입니다』
  • 성철스님 법어 집대성/전11권… 5년 대작업끝 11월 마무리

    ◎「선문정로」「본지풍광」「자기…」등 수록 한국불교 선학계의 독보적인 거봉이자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퇴옹 이성철 조계종 종정의 법어가 전11권으로 집대성돼 화제가 되고 있다. 성철스님의 문도들로 구성된 백련선서간행회(대표 원택)가 지난 87년부터 8권의 법어집을 펴낸데 이어 최근 「백일법문」상·하권을 발간,성철스님 법어집을 사실상 마무리 지은것. 이에따라 성철스님 법어집은 오는 11월께 나올 「선문정로평석」발간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백련선서간행회가 기획한 성철스님법어집 전11권은 제1집 「백일법문」상·하권을 비롯,「선문정로평석」「돈오입도요문론강설」「신심명·증도가강설」「영원한자유」「자기를 바로봅시다」등 7권과 제2집인 「돈황본 육조단경」「선문정로」「본지풍광」「한국불교의 법맥」등 4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백일법문」「돈오입도요문론강설」「신심명·증도가강설」「영원한 자유」「자기를…」등은 성철스님의 육성녹음된 법문을 풀어 정리한 책이며 「돈황본 육조단경」과 「선문정로」「본지풍광」「한국불교의 법맥」은 성철스님이 직접 저술한 책. 최근 출간된 「백일법문」은 지난67년 성철스님이 해인총림방장으로 추대된후 1백일동안 행한 법문을 정리한 책으로,법문의 핵심은 중도사상에 입각,원시불교사상에서 중관·유식은 물론 천태·화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의 요점을 설명해 놓고 있다. 가을쯤 출간될 「선문정로평석」은 선문의 바른길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책이며,「돈오입도요문론강설」은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자기집의 보배창고」를 어떻게 하면 열수있을까에 대해 서술한 대주혜해스님의 「돈오입도요문론」을 풀이,선종의 전통사상 이해에 빼놓을수 없는 책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에 비해 대학생및 사부대중에 행한 설법을 큰 줄기로한 「영원한 자유」와 성철스님이 수행시절 후학들을 위해 필록했던 말씀과 해인총림방장및 81년 7대종정으로 추대된이후의 부처님오신날 법어·신년사등을 한데묶은 「자기를…」는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법어집.다른 법어집과는 달리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수있는 이책은 12판까지 찍는등 불교계의 명저로 손꼽히고 있다는게 출판사측(장격각)의 설명이다. 특히 견성이 성불임을 강조,선에 대한 성철스님의 지론이 담긴 참선의 이론적인 지침서 「선문정로」와 실제수행의 결과를 설한 법어집 「본지풍광」은 선에 대한 논지의 기준이 되고 있는 책으로 꼽히고 있다. 불교계에선 「선문정로」와 「본지풍광」출간후 성철스님이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난 81년 처음 발행됐던 「선문정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돈오돈수」임을 일관되게 주장,「돈오점수설」을 주장하는 일부학계와 송광사 「보조사상연구원」과의 논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편 성철스님 법어집 완간과 관련,불교계에서는 성철스님의 지론과 가르침을 폭넓게 접할수 있다는 점에서 편견에 빠진 사부대중과 일반인들의 가치관정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불소계 섬유표면처리제 개발/화학연 궁리환박사팀,국내최초로

    ◎수분·기름·먼지성분 의한 섬유손상 막아/일서 연140억원상당 수입… 대체효과 기대 수분과 기름,먼지성분에 의한 섬유의 손상을 막아주는 불소계 섬유표면처리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됐다. 한국화학연구소 계면활성연구실 궁리환,화학공학연구실 이정민 이수복박사팀은 한국정밀화학(주)와 4년간의 공동연구를 수행한끝에 불소계 발수발유제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고 2일 밝혔다. 화학연구소에 따르면 발수 발유 방오가공제의 개발은 파라핀 왁스 에멀션으로부터 시작해 실리콘 오일을 사용한 발수제등이 개발돼 왔으나 내구성 혹은 방오성 발유성등이 약한 취약점을 갖고 있었다.반면 50년대부터 불소계화합물이 표면이 매우 낮은 표면에너지를 갖고 그에따라 물및 유기용매와 접촉시 매우 큰 접촉각을 갖기때문에 우수한 발수 발유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밝혀지면서 불소계발수발유제가 세계 발수제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혀왔다. 그러나 불소계발수발유제는 제조방법의 난이성과 일본 미국등 기술선진국의 기술공개기피로 국내기술개발이 안이뤄져 91년 현재 연간 약2천5백톤(1백50억원)이 전량 수입,사용돼 왔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개발로 현재 80∼90%를 일본에 수입의존하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연간 2천만달러 이상의 수입대체효과를 기대할수 있게 된것은 물론 미국 일본 독일등 선진4개국이 독점하고 있는 세계시장 진출도 내다볼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 화랑가 활력소/중진화가들 전시회 풍성

    ◎변시지씨,두곳서 제주풍화 발표/김기혁씨도 불화 120점 선보여/황요엽·정하경씨,은둔 깨고 대작 출품 평소 작품발표가 듬하던 중진화가들의 대규모 개인전이 잇따라 열려 극심한 불황에 빠져있는 화랑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들어 화랑가는 4개월여동안 외국미술위주의 전시들로 장식됐거나 젊은 작가들의 3∼4인 그룹전이 유행한반면 굵직한 화랑들은 불황에 몸을 사려 무게있는 초대전이나 기획전개최를 뒤로 미뤄온 터여서 이들 중진작가초대전은 「점잖은 그림」을 즐기는 올드 팬들에게 모처럼 감상구미가 당기는 전시회가 되고 있다. 오랜 공백끝에 전시회를 갖는 작가들은 우성 변시지(66),우산 황용엽(61),남윤 김기혁(55),정하경씨(50) 등 4명. 제주에 작업의 터전을 굳히고 있는 변시지씨는 25일부터 5월16일까지 예맥화랑 인사동전시실과 소격동전시실 두곳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인사동에 본점을 둔 예맥화랑이 화랑운영에도 프렌차이즈방식을 도입,첫 지점으로 문을 연 소격동전시실 개관기념으로 이 화랑의 전속작가 변씨의 작품을 내놓은 것.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내며 미술수업을 한후 지난 57년 귀국하여 한국 고유미의 표출에 심혈을 기울여온 변씨는 자연주의에 바탕한 실경화작업을 추구하는 작가.젊은 시절,김인승 손응성 장리석씨 등과 「비원파」로 활약한 인물로 75년이후 그의 화폭에는 큰 변화가 일어 수묵조의 흑색의 필선과 특유의 감필 및 생략기법으로 독창적 화풍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황토빛위에 압축된 필선으로 제주의 풍경들을 화려하게 때로는 적막감짙게 담아낸 서정성 높은 제주풍화 50점이 발표되고 있다. 제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작가인 황용엽씨는 5월12일부터 25일까지 국제화랑에서 초대전을 펼친다. 2년만에 개인전을 갖는 황씨는 미발표 근작 40여점을 선보이는데 소품부터 대작(1백50호)까지 골고루 출품한다. 그룹전 등에 별로 참가하지않은 황씨는 창작욕넘친 노년의 결실을 이번 개인전을 통해 과시할 예정.그는 30년이상 일관되게 「인간」을 모티브로 한 작품제작에 임해왔으며 화단의 유행적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성실한 구상적 화면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그는 이번 근작들에서 과거 화면에 등장하던 절망적 한계상황을 되도록 배제하고 밝고 맑은 느낌의 삶을 관조하는 작가정신을 표출해보인다. 특히 향수에 젖은채 자연의 풍경과 동화된 인간들의 모습이 작가특유의 선묘로 그려지고 있다. 서울갤러리에서 28일부터 5월3일까지 전시를 갖는 김기혁씨는 「한국불교설화화전」이란 주제를 내세우고 있다. 본래 영문학자로서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내학문풍토에 대한 개인적 거리감을 버리지 못해 학자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김씨는 「그림」에 제2의 인생을 걸고 있다. 15년전부터 동양화에 전념하며 특히 불교설화의 형상화에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그는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중심부에 있는 대전시장 글랑팔레에서 열린 프랑스전국조형미술협회창립1백주년 기념전에 특별초대국인 한국의 대표로 초대돼 불교설화화 52점을 출품,호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출품작 52점과 그외 대표작 61점및 대작 4점등 1백20여점이라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회화외적인 모든것을 외면한채 외곬로 치닫는 근성이 유별난 김씨는 고승 고찰에 얽힌 얘기들을 현세로 끌어와 화현시키고 있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동산방화랑 초대전을 23일 개막,5월2일까지 계속하는 정하경씨(한성대교수)는 지난 84년이후 8년만에 개인발표의 자리를 꾸미고 있다. 80년대초부터 실경산수화에 전념하며 독특한 수묵화기법을 추구해온 정씨의 화폭은 섬세하면서도 수려한 필치가 돋보인다. 급변해가는 여러 회화형식에 초연,오직 산수화에 집착하고 있는 그는 청담한 한국의 자연을 재현해내고 있는 몇안되는 작가중의 한명이어서 이번 초대전은 한국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수 있는 전시로 기대되고 있다.
  • 연대 일산천문대 폐쇄위기/신도시공사 먼지·불빛으로 관측 불가능상태

    ◎80년 문열어 핼리혜성·19개쌍성 연구/국내최대 61㎝ 망원경등 사장될지도/이달말 관측 중단… 재원부족으로 이전도 어려워 핼리혜성관측,쌍성연구등으로 지난10여년 동안 국내 천문학계의 선구자 역할을 해온 연세대 일산천문대가 일산 신도시건설로 인해 4월말로 연구관측을 중단하는등 영구폐쇄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80년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일산리에 지름61㎝의 반사망원경과 디지털기록식 자동광전 측광기등을 갖추고 문을 연 이 천문대는 주변 신도시 건설로 인한 먼지와 불빛등으로 더 이상 연구관측을 할 수 없게 돼 이달말 문을 닫는 것이다.개관당시 일산천문대는 소백산천문대에 이어 국내 최대 규모인 61㎝ 반사망원경을 도입,국내의 본격적인 천문학시대를 열었다.또 우리나라 천문학의 개척자로서 19 20년대 견우성에 속해 있는 독수리좌의 별을 최초로 발견,원철성(영어명ETA)이란 이름으로 세계 천문학사에 빛나는 이원철박사의 학맥을 이어 오는데 중추적역할을 해왔다. 현재 연세대 천문대(대장·천문석천문대기학과교수)는 일산천문대를대신할 대체지로서 연세대원주 매지리캠퍼스를 선정,이전을 추진하고 있으나 망원경의 분해 및 조립,천문대건물 및 돔 건설등에 최소한 10억원이상에 달하는 이전경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사실상 일산천문대를 폐쇄하게 됐다. 이에따라 일산천문대가 지난10여년간 독보적 연구활동을 벌여온 각종 쌍성연구가 모두 중단될 위기에 있다.연세대학의 천문대는 ▲일산천문대와 ▲지름 40㎝의 반사망원경을 갖춘 연세대교내천문대 두 곳으로 모두 다 쌍성연구에 거의 이용돼 세계적인 쌍성연구의 핵심지로서의 명성을 누려왔다. 일산천문대가 수행해 오고 있는 중요 쌍성연구는 19여개,특히 세계천문학 연구사상 가장 긴 27·1년 주기의 쌍성인 마차부자리의 입실론별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어 세계천문학계의 기대를 모아오기도 했다.이밖에도 10·36년주기의 백조자리의 31번째 쌍성과 20·35년주기의 세페우스자리의 VV와 NY자리등의 연구관측도 80년대초부터 줄곧 해오고 있어 일산천문대의 연구활동 중지로 국내천문학의 연구에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됐다. 쌍성이란두 개의 별이 서로의 인력에 의해 태양과 지구,지구와 달처럼 서로의 주위를 도는 별을 말하는데 쌍성연구를 통해서 별의 무게와 밀도,구성물질과 온도,밝기와 연령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별에 대한 기초연구자료로 쓰인다. 27·1년주기의 입실론별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는 나일성박사(천문기상학과교수)는 『이 별까지의 거리는 약5백광년정도 떨어져 있는데 하나는 태양보다도 2백여배 이상 큰 초거성이고 또 하나는 태양의 10배정도 되는 별로서 별의 진화와 우주의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기대하고 할 수 있는 대상 』이라고 말했다.나박사는 두 별이 서로를 한 바퀴 도는 오는 20 09년까지의 연구관측계획을 잡아놓고 지난 10여년간 줄곧 관측을 통해 분석자료를 모으며 연구해 왔으나 『일산천문대의 연구관측 중지로 관측의 공백을 갖게 됐다』고 안타까워 했다. 일산 천문대는 지금까지 오규동,이용삼,정장해 김호일,김천휘박사등 주목 받는 5명의 박사와 7명의 석사를 배출했다.일산천문대는 연구 관측 중지 이후에도 당분간은 천문학관련수업등을 위한 관측시설로 이용되다가 다른 교육용도로 이용될 전망이다.현재 교육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땅은 교육부의 허가없이는 전용이 불가능하고 또 일산천문대가 자리잡고 있는 부지는 연대가 독지가로부터 기증받은 땅이어서 전매등을 통한 천문대시설 기금마련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여 관계자들을 더욱 애타게 하고 있다.
  • 재벌당/외국의 시각/프랑스인들은 말한다:4·끝

    ◎“「현대신화」 정치서도 꿈꾼다” 희화적 논평/정씨가 「경제거인」으로 남지 않은건 실수 한국에서 통일국민당이 만들어질 때,르 몽드지는 이를 경제면에 크게 보도하면서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성장과정과 사업성공 내력,그가 정치에 투신하는데 대한 한국민들의 반응,현대 그룹 산하 기업들의 규모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신문은 정씨를 「현대제국」의 창업자로 일컬으면서 그가 얼마나 돈이 많은가에 주목했다.정씨의 재산이 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고 납세액 순위로는 15위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며 그와 그의 가족은 그룹 주식의 67·8%를 차지하여 4백억달러 어치에 이르는데 이는 국가예산과 맞먹는다고 쓰고 있다. 프랑스적 관점에서 볼 때,거대 경제 집단이 민간 소유로 돼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찔한 것이다.게다가 그 집단의 소유자가 정당을 만들어 당수로 앉는다는 것은 더욱 놀랄만한 것이다.개인 소유의 기업집단이 국민 전체 경제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것부터 심히 우려할만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정치력화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다수 프랑스인들은 큰 민간기업이 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점이 바로 현사회당정권의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사회당 정부는 1981년 집권 즉시 많은 큰 기업들의 국유화조치를 과감히 단행했다.따라서 현재 프랑스에는 재벌이 없다.프랑스인의 상식으로,재벌이 정당을 만드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르 몽드지는 정씨가 「현대제국」을 건설한 능력을 정치에서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어떤 이들은 그가 추하게 늙어가고 있으며 산업계의 가부장으로 계속 남아있지 않는 것을 실수라고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이와함께 그가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 완고한 태도를 보여 근로자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씨가 역대 정권에 많은 돈을 대주었으나 이제는 그가 한 정당 즉 자신의 정당에 돈을 쓰기로 했으며 정치에 뜻을 둔것은 80년대초 국보위의 업계 재편성 조치 때였다는 정씨의 말을 직접 인용했다. 프랑스 정치풍토에서 대기업인이 정계에등장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서 마르셀 다소(1892∼1986)가 유일하다.그는 미라주 전투기 개발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 항공기 제작사 마르셀 다소 항공과 그밖에 신문사·영화사·부동산회사·전자회사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다소는 59세 때인 1951년 처음 국회에 진출,한번의 낙선을 빼놓고는 당선을 거듭하여 94세로 죽을 때까지 30여년간 의원직을 지니고 있었다.오랫동안 최연로 하원의원으로서 국회개회연설을 하는 영예를 누렸다.그는 제1차 세계대전때 조종사로 출정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에 항거한 애국자였다.전투기 설계의 천재이자 항공기 제작산업의 독보적 존재로 프랑스가 세계항공산업의 선두에 나서도록 하는데 견인차역할을 해냈다. 다소는 정치풍자 컬럼니스트와 시나리오작가로서도 재능을 보였다.지역사회에 많은 돈을 희사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힘쓴 자선가이기도 했다.이런 그였으므로 그가 의원직을 차지하고 있는데 대해 까다로운 프랑스인들도 저항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가 보인 거인의 풍모는 마르셀 다소 항공의 국유화 과정에서도 잘 볼 수 있다.정부의 조치는 국민의 뜻이라면서 마르셀 다소는 오히려 능동적으로 많은 주식을 국가에 무상으로 넘겨 주었다.경영권을 정부에 넘기고도 월 5천프랑(현재 환율로 치면 약 70만원)보수의 기술고문직을 자청하여 죽을 때까지 미라주 전투기 시리즈의 개량과 신세대 전투기 라팔의 개발에 전념했다.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여전히 그는「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어쩌면 한국의 마르셀 다소로서 존경을 받을 수도 있었을 우리의 「거인」이 외국 기자의 기사 속에서 후진적 정치 환경과 함께 희화적으로 그려지고 있음은 국민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 롯데햄 소비자상담실장 조광윤씨(소비자를 위해 뛴다:9)

    ◎“고객은 왕 아닌 신으로 모셔야”/불만 접수되면 자재 구입선 교체 『소비자보호는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 왔습니다.그것이 1등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도 함께 해왔지요.제 소비자보호관을 경영층에서 높이 평가해준 것 같습니다』 지난 10일 소비자 상담실 책임자로서는 국내에서 두번째로 이사로 승진한 (주)롯데 햄·롯데우유 조광윤(50)소비자상담실장. 『최고 경영층이 소비자 보호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저도 무척 기쁩니다.소비자는 왕이라는 시대를 넘어 소비자를 신으로 모셔야할 것입니다』 고도 개방사회로 그간 상품에대한 정보을 독점해온 기업못지않게 소비자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독특한 대소비자관을 갖고 있는 그는 『소비자 상담내용을 무마하려고 하지않고 소비자의 충고 한마디를 귀담아 들었다가 어김없이 기업경영에 반영시켜왔다』고 말했다. 『소비자 불만사항을 수용,생산시설의 컨베이어 시스템도 교체했고 소비자 고발 다발지역을 꼬집어 그 지역에 대한 유통관리시스템을 강화시키기도 했습니다.심지어 소비자 불만이 제기될 때에는 자재구입선마저 과감하게 교체했으니까요』 그결과 지난 85년 소비자상담실장을 맡은이래 소시지 햄업계에서 독보적인 선두자리에 올라섰고 7년전에 비해 매출액도 3.5배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올해부터는 생산 영업 관리등 회사의 전분야에서 근무고과의 20%를 소비자 보호분야에서 평가하게 됐습니다.소비자 고발이 단 한건이라도 제기되는 분야 근무자책임자나 승진대상자는 의무적으로 자체 소비자 교육을 받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이 마련됐어요』
  • 「조선실록」·「대장경」 한글완역은 괄목(북한 문화실상:4)

    ◎학술/쉽게풀어 대중화 치중… 전문성 결여/북방사 연구,한국사 공백부문 메워/「고조선」·「발해사」 연구는 독보적 업적 북한에서의 학술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적인 연구보다는 대중적인 정리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상당한 수준의 고전국역 성과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의 대중화 작업과 함께 구·신석기 청동기문화에서부터 조선후기 실학사상 연구에 이르기까지 집약적인 노력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와같은 연구경향에는 북한의 역사적인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내재돼 있지만 북한의 거의 독점적인 북방사연구는 한국사의 공백부분들을 채우고도 남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60년대이후부터 지난 90년까지 보고된 북한의 구석기관련 유적은 20여개소에 이르며 남한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고인류인골과 동물골들이 서북지방의 석회암지대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어 한반도의 홍적세 고인류의 거주방식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때문에 북한의 고고학연구는 남한의 석기·토기연구와는 달리 고생물학적·고인류학적인 측면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신석기유물은 두만강연안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방과 대동강유역 압록강유역등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두만강 연안의 유물은 신석기문화 편년의 기준이 될만큼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의 고조선연구 역시 북한학계의 독점적 업적에 속한다.리지린의「고조선연구」(64년),김용간 황기덕 공동명의로 발표된 「기원전 천년기 전반기의 고조선문화」(67년)등의 저서는 그 대표적인 작업이다.또한 중국과 북한에서 발굴된 토기·무덤·장식무늬등 고조선유물은 고조선영역과 고고학적 연대와의 연결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후한서」「삼국지」등을 근거로 부여의 건국시기와 영역을 밝힌 북한의 부여연구역시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으며 고구려의 적석총과 적토석실분등 고분과 산성 사지의 독점적인 연구도 두드러진다. 정책적으로 주요연구의 하나로 정해져 일찍부터 진행돼온 발해사연구는 62년 발표된 박시형의 「발해사연구를 위하여」라는 논문을 출발점으로 한다.이논문은 발해사를 한국사안에 편입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논증을 시도한 최초의 논문이며 한말 계몽사가들이후 단절된 발해사연구전통을 다시 잇는 최초의 논문이라는 점에서 남북한을 통틀어 매우 의미가 큰 글로 꼽힌다.이렇게 출발한 북한의 발해사연구는 북한이 60년대초 중국에서 발굴한 자료를 기초로한 고고학적 연구결과인 주영헌의 「발해문화」(1971)로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조선사연구중 가장 괄목할만한 부분은 실학사상 연구인데 이는 실학사상을 우리나라의 유물론적 전통으로 받아들여 사회개혁의 이론적 기초로 삼았기 때문.최익한의「실학파와 정다산」(1955)을 비롯,김석형등의「다산 정약용탄생 2백주년기념논문집」(과학원 철학연구소 1952)등 연구저서가 풍부하다. 한편 북한의 고전국역 사업은 과학원고전연구실을 중심으로 지난50년대부터 진행돼 왔다.홍기문 류수 리용학 김상훈 리철화 김찬순 등의 학자들이 중심이 돼 이미 완역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팔만대장경 고가요집 고대전기설화집 한시선집 박지원·김시습의 작품선집등이 국역됐다. 「철저히 원문중심」원칙 아래 완역된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주없이 쉽게 풀어 썼으며 인명·지명·관명할 것없이 한문을 전혀 안쓴 명역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역사의 대중화작업은 역사서술의 평이화와 한글화작업으로 뒷받침되고 있다.우리 학계에서 참고할 만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대중화와 한글전용 고집으로 역사적 용어의 의미가 상실된 경우도 많은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외언내언

    구소련의 붕괴는 국제정치·군사 뿐아니라 세계과학기술질서에도 큰 변화를 불러올 조짐이다.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으로 계승된 구소련개혁의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고있는 분야의 하나가 과학기술계.정부의 지원은 중단되고 종사자들에 대한 대우는 땅에 떨어졌으며 과학자들은 해외로 떠나거나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구소련은 스탈린때부터 서방자본주의와의 대결을 위한 군사목적의 과학기술 증진에 모든것을 투자해온것이 사실.연구소와 과학자들을 특별지원해왔다.결과적으로 서방보다 훨씬 유리한 연구분위기의 조성이 가능했고 세계최고수준의 연구진도 확보할수가 있었다.핵과 우주분야에서 승리하고 독보적 수준도 유지할수 있었던것.◆첨단의 전자산업과 일부소비재 경공업부문에선 미·일에 뒤진것이 사실이나 물리학 수학 원자력 우주공학 등에선 미국과 함께 세계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이 국제학계의 공인.특히 상업주의에서 소흘해지기쉬운 기초및 이론과학분야에서 크게 앞선것으로 알려졌었다.◆이것이 개혁의 부작용으로 무너지고 있는것.개혁의 혼란과 정부의 지원중단으로 구소련의 연구·실험실엔 일대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는것이 불르몽드지의 보도.생활수준의 향상이 우주탐험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옐친의 신조다.일반노동자보다 낮은 급료와 장래가 불투명해진 환경으로부터 과학자들이 대거 탈출하는것은 당연한 순서인지도.◆이들을 상대로 국가이기주의의 온세계가 치열한 스카우트전까지 벌이고 있는 형편.우수과학자들에겐 3만6천내지 7만5천달러의 연봉에 온갖 특전이 제의되고있다.중동등 일부 불온국가로의 핵기술자 확산을 우려하는 구미도 소련과학자 스카우트전에선 예외가 아닌형편.한·일도 뛰어든지 오래다.구소련의 핵및 군사기술 확산문제는 31일 유엔안보리 정상회담의 중요의제이기도.붕괴된 초강국 과학기술의 확산이 온세계의 주목거리가 된셈.
  • 딱딱한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미 과학자 아시모프책 인기

    ◎천문·물리·화학등 1년새 20여권 발간/러시아태생… 교양서·공상소설이 주류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날로 높아지면서 많은 과학도서가 출간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 과학자의 저서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러시아계 미국과학자 아이작 아시모프의 저서들이다. 지난해 봄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시모프의 저서들은 최근까지 10종에 육박하고 제작중인 것도 2∼3종이 된다. 이들을 권수로 치면 20권이 넘는다. 이 책들은 과학교양서와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로 대별된다. 웅진문화가 지난해 4월 「과학의 새로운 안내」 시리즈를 기획,「아시모프의 천문학」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아시모프의 「지구과학·화학」 「물리학」을 펴냈으며 곧 「생물학」 2권을 펴낼 예정이다. 동아출판사는 지난 6월 「우주의 비밀」을 펴냈으며 사회과학전문출판사였던 풀빛출판사는 최근 「풀빛과학」 시리즈 제1권으로 「아시모프박사의 과학이야기」를 출간했다. 이와함께 역시 사회과학전문 출판사였던 백산서당이 자매사인 현대정보문화사를 통해 아시모프의 과학소설(SF)을 집중적으로 펴내고 있다. 지난 여름 대하 SF 「파운데이션」 5권을 펴낸데 이어 지난 연말 나머지 4권을 더 펴내 완간했으며 최근에는 전 4권의 「로봇」시리즈 가운데 제1권 「강철도시」를 선보였다. 「벌거벗은 태양」 등 나머지 3권도 이달안에 완간하며 이를 이어 곧 「우주 3부작」도 출간할 예정이다. 뿐만아니라 아시모프의 저서가 3백종을 넘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과학도서의 대중화와 함께 그의 저서들은 계속적으로 소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아시모프의 저서가 많은 아낌을 받고 있는 것은 어려운 과학을 재미있고 알기쉽게 전달해주기 때문. 특히 그의 교양과학서들은 과학의 각 분야에 관한 박학다식하고 정밀한 지식을 설득력 있고 독특한 접근방법과 표현으로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할 뿐만아니라 이 지식들을 유기적으로 연관지음으로써 명쾌한 세계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파운데이션」으로 대표되는 그의 SF작품들도 비록 먼훗날의 과학세계를 그린 공상소설이기는 하나폭넓고 깊이 있는 과학지식을 토대로 펼치는 「과학적인 공상」이어서 독자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북돋아 준다. 특히 「파운데이션」의 경우와 같이 은하제국이 내부분열로 무너진다거나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 등을 줄거리로 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해 주는 부분들로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1920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3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모프는 19살때부터 저술활동을 시작,46살때 이미 1백권의 저서를 기록해 지금까지 미국 최고의 과학저술가로 꼽히고 있다. 1949년 컬럼비아대학에서 화학박사학위를 받고 보스턴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나 연구생활과 문학에 대한 열정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마침내 교수직을 버리고 저술에만 몰두하게 됐다. 그는 전공인 화학은 물론 수학·천문·물리·생물·기술 등 과학전반과 SF에 걸쳐 경이로울 만큼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쳐오고 있는데 하나같이 평이하고도 기발한 발상과 문장으로 70세가 넘은 지금까지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특히 그의 SF에 대한 업적은 단연 독보적인 것으로 가장 우수한 SF에 주어지는 휴고상을 4번이나 받았으며 네뷸라상도 한번 받았다. 19세에 「로비」라는 제목의 단편 로봇소설을 발표하면서 SF작자가 된 그는 42년부터 쓰기 시작한 「파운데이션」과 53년부터 발표한 「강철도시」 등 장편 로봇시리즈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SF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파운데이션」은 61년 3부작으로 완간됐으나 그뒤 독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6부작으로 늘어났으며 아직까지 집필이 계속되고 있어 최장기간 집필작품으로 유명하다. 「로봇」시리즈도 55년까지 2부가 나왔으나 독자들의 요청으로 83년부터 3,4부를 다시 펴냈다. 77년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잡지」를 창간한 그는 70세가 넘은 지금도 과학저술에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소 프라우다 79년만에 폐간

    ◎레닌이 창간… 공산당 해체뒤 “홀로서기” 실패 1912년 레닌에 의해 창간되어 79년간 소련공산당의 기관지로 대변자 역할을 해온 프라우다지가 11일자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이같은 사실은 프라우다지가 11일자 1면에 사고를 게재함으로써 밝혀졌다. 프라우다지가 폐간된 주된 원인은 지난 8월 쿠데타이후 공산당의 해체에 따라 자금원이 단절된데다 당기관지로부터 일반지로 완전히 탈바꿈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의 대변지인 프라우다가 경영난에 빠져든 것은 지난 87년 소련개혁정책이 본격화되면서부터. 87년까지는 1천만부를 찍어낼 정도의 위세를 가졌던 프라우다는 87년을 고비로 구독자수가 떨어지기 시작,급기야는 현재 발행부수인 2백60만부로 주저앉고 말았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프라우다의 인기만회를 위해 89년 측근인 이반 프롤로프(61)를 편집책임자로 임명,체제및 지면쇄신등 신문의 변혁을 꾀했다.따라서 종전의 금기를 깨고 광고를 게재하고 TV방송국을 개설하는등 경영다각화와 수지개선책을 마련하는데 주력해 왔다. 특히 지난 8월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뒤 7일동안 정간당했던 프라우다는 「국민의 이해를 돕는 신문」이라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복간됐었다. 프라우다는 이 복간호에서 이례적으로 재무상태를 공개하며 공산당중앙위가 이 신문에 돈을 대주었다는 정보를 일축하면서까지 중립지향적인 신문임을 강변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산당 복권 캠페인을 벌이는등 당기관지로부터 일반지로의 탈바꿈에 있어 명확한 한계를 보여 소련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 프라우다지의 폐간은 공산당의 몰락과 함께 볼셰비키혁명이후 소련신문의 독보적 존재로 군림해온 공산당기관지가 국민의 버림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셈이다.
  • “국책연구기관의 대부”… KDI 창립 20돌

    ◎“인재의 산실”… 성장기 경제개발 견인/정책좌표 제시·대안개발 “독보적”/관논리 대변,“들러리” 전락 비판도/경제여건 변화 따른 새 위상 정립이 과제 그동안 경제개발정책수립을 위한 국책연구기관으로 독보적인 기능을 담당해왔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1일로 창립 20돌을 맞았다. KDI는 전문연구기관이 전무하고 이렇다할 경제전문가들이 별로 없었던 지난 71년부터 경제개발계획수립에 싱크 탱크로 깊숙이 간여,우리나라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해왔다. 그동안 3차에서부터 6차에 이르기까지 경제개발계획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고 내년부터 시작되는 7차 계획수립에서도 총량·재정·복지 등 9개 분야의 정책과제도출과 대안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외 경제여건변화로 새로운 위상정립과 진로모색에 부심하고 있다.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정부의 개발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나 정부의 기획능력이 향상된데다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함으로써 일일이 KDI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89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국민경제제도연구원이 잇따라 설립된데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이 많이 생기면서 위상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에따라 KDI는 유능한 인력들을 다른 연구기관에 많이 뺏기고 경제진단 및 정책제시기능이 타성적이고 경직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학자적인 자세에서의 연구보다는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고 정당화하는 데만 주력해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최근 진념 경제기획원차관이 순시차 들른 자리에서 『주변 여건이 변화하고 있는데도 KDI는 제자리에 서있다. 경제기획원과 공동운명체인만큼 다른 연구기관들보다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한 것도 KDI의 변신을 촉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처럼 입지가 크게 좁아졌지만 KDI는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큰몫을 하고 인재배출과 양성에도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설립에서부터 80년까지 KDI를 이끈 김만제 초대원장(현 삼성생명 회장)은 같은 서강대교수 출신의 남덕우 당시 부총리와 호흡을 맞추면서 서강학파시대를 열었다. 그의뒤를 이은 김기환씨는 상공부차관을 거쳐 남북경제회담 수석대표로 일했고 3대원장인 안승철씨는 현재 중소기업 은행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 4대원장이었던 박영철씨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현재 고려대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부원장 및 연구위원 출신들도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초기에 잠시 부원장을 맡았던 이봉서씨는 동력자원부장관을 거쳐 현재 상공부장관에 재임중이다. 김기환씨와 함께 일했던 사공일씨는 청와대수석을 거쳐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김광석씨와 김수곤씨는 경희대에서 같이 일하고 있다. 전산실장이었던 김대영씨는 건설부차관을 역임했고 초빙연구위원이었던 황병태씨와 연구위원이었던 서상목씨는 국회의원으로 봉직하고 있다. 수석연구위원이었던 김적교씨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중 상당수는 관변 이코노미스트라는 지적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점은 부인할 수 없다. 구본호원장은 앞으로의 KDI 진로와 관련,다원화된 계층과 집단의 욕구를 수용하고 조정하는 종합적인 경제정책방향의 제시,남북통일에 대비한 미래지향적 연구기반 구축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함께 세계여러나라에 우리의 경제개발경험을 소개하고 오는 7월엔 경제개발의 공과를 점검하는 국제세미나도 가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천관우선생 영전에

    밤중에 갑자기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 애통한 마음을 금할길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1949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말년까지 현역 언론인으로 활동해오면서 한국 역사학계에 공헌하신바 참으로 크십니다. 스스로는 『비아카데미 사학도』니 『겸연쩍은 역사학도』니 하면서 겸손해 하셨지만 대학 연구실을 지키는 사람 이상의 학문적 정열로 한국사 연구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1952년 「역사학보」에 발표하셨던 논문 「반계 유형원연구」는 비록 대학 졸업의 학사논문이지만 실학연구의 효시로 오늘날의 탄탄한 실학연구의 기초를 닦은 것이었습니다. 실학연구와 함께 조선사 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여 군제사를 중심으로한 조선의 정치 및 사회·경제 제도연구에 괄목할 성과를 올리고 「한국사 근세 조선전기편」(진단학회편)의 발간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말년에는 고대사에도 눈을 돌려 「인물로 본 한국고대사」 「고조선사·삼한사연구」 등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만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하셨던 근세사 연구도 병행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선생께서는 평소 『역사학 논문을 쓰려면 개설서를 한 줄이라도 고칠 수 있는 논문을 써야 한다. 대담한 가설을 세우되 고증은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바로 그것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실학연구가 그 가장 좋은 표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후배들에게 항상 따뜻한 인정으로 대하셨습니다. 아무리 신문사일이 바쁘더라도 찾아간 후배들을 항상 따뜻이 맞아 주셨고 선생이 계시는 직장이나 집동네를 지나치면서 선생을 찾지 않을 경우엔 매우 섭섭해 하셨습니다. 또한 일단 찾아온 손님은 무엇이든 대접해 보내야 마음편히 여기는 선비의 체질을 끝까지 간직하셨습니다. 결국 오늘의 불행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된 두주불사의 애주도 이같은 맥락에서 말미암았을 것입니다. 선생의 정치적·사회적 활동에 대해 평가할 입장은 아니고 또 잘 모르지만 민족자주와 민주개혁이란 굳은 신념의 발로이었을뿐 항간의 일부 오해처럼 추호도 사욕이 개재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정녕 드문 천부적 재질과 뛰어난 풍모와 건강을 지니셨던 분이 이토록 빨리 가시다니 비단 한국역사학계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사회의 큰 손실입니다. 고이 잠드소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허선도 국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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