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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숙재밀물현대무용단의 ‘세종은 오늘도 잠들지 않는다’

    ◎춤으로 되살아난 ‘슈퍼스타 세종’/한글주제 연작 성격… 해외 페스티벌 공식출품 예정 올해는 세종 탄생 600돌의 해.이를 계기로 조선조 문화의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했던 세종의 일대기가 무대위 화려한 춤으로 되살아난다. 오는 23·24일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라가는 무용극 ‘세종은 오늘도 잠들지 않는다’는 이숙재밀물현대무용단이 세종과 관련지어 선보이는 일곱번째 작품.이숙재밀물현대무용단은 지난 91년 ‘홀소리 닿소리’를 시작으로 ‘한솔이어라’(92년),‘신용비어천가’(93년),‘한글기행’(95년),‘한글의 정신’(95년),‘550­한글누리’(96년) 등 한글을 주제로 한 작품을 잇따라 무대에 올려온 독보적인 무용단이다. 올해 공연작 ‘세종은 오늘도…’는 우선 그동안 공연들이 초점을 맞춰왔던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에 국한하지 않고 영역을 크게 확대한 것이 특징.지금의 압록강·두만강으로 이어지는 국경 획정과 대마도 정벌과 같은 세종의 국방정책과 과학기술진흥·문화선양 등에서부터 그의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의지 등전인간적 모습을 그리고 있다. 춤은 모두 5개의 장으로 구성된다.1장 ‘화합의 어울림’에서 나비의 부드러운 날개짓과 같은 춤사위로 민족의 하나됨을 표현하고 2장 ‘세종의 꿈’에서는 힘찬 남성무와 군무를 통해 북방 4군6진의 개척,대마도 정벌 등 뻗어나는 조선의 힘을 시각화한다.이어 3장 ‘세찬 바람과 고뇌 속에서’를 통해 북쪽 오랑캐와 바다건너 왜구의 발호,왕비와 공주의 죽음 등 계속되는 시련속에서 겪는 세종의 고뇌와 역경이 그려지며 4장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서는 한글에 얽힌 사연과 창제과정을 집중 조명한다.특히 이 장에서는 무용수들이 한글 자모 하나하나를 직접 몸으로 형상화,한글의 과학성과 철학성을 강조한다.마지막 5장은 세종의 업적을 기리는 축제 한마당.번영된 통일조국을 바라는 환희의 축제,민족의 꿈의 무대로 이어지면서 막이 내린다. 줄거리가 분명한 극적 구성에다가 컴퓨터 영상을 이용한 멀티비전,국악기와 서양악기를 고루 이용한 음악,화려한 조명 등 일반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이숙재 교수(한양대)의 안무로 무용단원 32명이 출연한다. 이교수는 “세종은 한국문화의 르네상스기를 가져온 문화예술가,영토확장 등을 이룩한 정치인,과학문명의 기틀을 다진 발명가 등 다방면에 걸친 위대한 슈퍼스타였다”며 “국내공연이 끝나면 ‘슈퍼스타 세종’이라는 타이틀로 해외 페스티벌에 공식 출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3일 하오7시30분,24일 하오4시·7시30분.문의 578­6810.
  • 서예가 이미경(이세기의 인물탐구:146)

    ◎글씨마다 유·절·곡… 궁체의 대가/획과 여백이 미 조화 붓끝에 예술혼 담아/작품 미·캐나다박물관 소장 ‘국제 서도인’ ‘멀고 먼 서법의 길/가도가도 끝없어라/지름길 따로 없어/한 골로만 모는 채찍/외로운 발자국마다/내모습이 찍힌다’ 한글서예중에서 궁체의 우뚝하고 독보적인 존재인 꽃뜰(하정 이미경)의 시조 ‘서법의 길’ 전문이다.그는 틈틈이 남모르게 써온 시조들을 모아 지난 여름 ‘붓끝에 가락 실어’란 제목으로 시조집을 엮어냈다.서여기인이라면 시·서·화에 능한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서예가의 타이틀로 시조집을 펴낸 것은 아마도 꽃뜰이 처음일 것이다.그의 글씨만큼이나 시조 또한 구절구절 영롱하고 근엄하여 마지막 이조여인의 기개인 ‘양반은 외부의 자극에 함부로 동하지 않는다’는 ‘강류석부전’을 굳건히 지킨다. ○‘붓끝에 가라길어’ 시조지보 꽃뜰은 바로 한글서예에서 갈물체를 이룩한 이철경(전 금란여고 교장)의 친제이다.언니인 갈물과 비슷한 시기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으면서도 결혼생활로 한동안 서단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고 그의 성격이 남앞에 나서기를 꺼려하여 지금까지 신문이나 잡지에 개인적 풍모가 소개된 적도 드물다.그러나 서예계 원로들이 한글서예를 말할때 ‘꽃뜰’을 으뜸으로 점치면서 일중 김충현은 그가 발간하는 ‘서법예술’에다 ‘꽃뜰의 궁체’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명한 바 있다.‘고통을 인내할줄 아는 한국여성 특유의 자세로 고전을 발굴하여 계승시킨 여사의 궁체는 아담하며 청초하면서도 그 운필은 찬연하고 풍격은 고고하다’고 했다.우선 그의 글씨에서는 ‘향기’가 우러난다.그의 아호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뜨락이기 때문인지 그가 펼치는 글씨는 한다발의 백매나 홍매,어느때는 모란향같은 기품이 은은히 풍겨나온다. 글씨를 쓰는데 있어 한자는 획수가 많은 편이어서 공간처리가 용이하지만 한글은 획수가 적어 여백처리가 난해한 편이다.이른바 그림에 비유한다면 한글서예는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화에 비유되고 한자는 화면을 꽉채우는 서양화에 가깝다.그래서 획과 여백의 비중을 똑같이 배분해야만 치졸이 배제된다.여백처리에서 만약 실오라기만한 틈새를 보여도 궁체가 지니는 특징은 삽시에 소멸된다.백낙청이 ‘비파행’에서 비파소리를 ‘은쟁반에 떨어지는 옥구슬’이라고 했듯이 ‘그의 글씨야말로 옥구슬 금구슬을 꿰어낸듯 오색광채를 발한다.글씨가 구슬인 것은 꽃뜰의 글씨를 보면 실감된다’는 평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특히 이은상의 ‘만폭동팔담가’며 2천여자가 넘는 ‘관동별곡’,동해에서 해뜨는 광경을 보고 쓴 ‘동명일기’ 등은 10곡병풍을 펼치는 순간 문자그대로 ‘보석이 쏟아지는 현란한 현기증’이 느껴진다.글씨마다 흐르고(유) 맺히고(절) 감돌고(곡) 굽이치면서 정자에서 흘림,진흘림과 반흘림이 초성에서 종성까지 반듯하게 대맥을 이어나간다.그리고 어느 글씨를 쓰든 글씨의 결론은 그것이 예술답게 아름답다는 정답을 얻어내고야 만다.시조시인 정완영은 꽃뜰의 서체에 대해 ‘이분은 청산 한나절 넉넉하게 기대앉은 초가삼간처럼 한유해 보이면서도 자강불식의 심락을 누리는 그림같은 분’이라고 했다. ○이화여전땐 피아노 전공 본래 그의집안은 강원도 원주이지만 한성의학교(서울대 의대전신)를 나온 부친 이만규씨가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4녀2남중 위로 세 언니와 오빠는 개성출신이고 부친이 다시 서울 배화학교 부교장에 부임하여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다.서예를 하게 된 것은 집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편지쓰실때 글줄이 자를 대고 줄친 것처럼 고르게 뻗은 봉서의 흘림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다.성격이 강명한데다 필재가 뛰어난 것을 보고 부친이 붓을 잡고 천자문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14살 되던해 ‘애련설’을 써서 교내습자대회에서 입선하자 더욱이나 글씨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배화학교 졸업후 이화여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그의 음악공부가 글씨쓰는 일에 특별한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이른바 문자예술에서 한번 지나간 것은 다시 덧칠하지 않는 일회성,생체리듬과 음악의 리듬같은 율동성으로 작품을 이루는 순간의 서법등이 음악을 이루는 과정과 같은 맥락을 지녔다는 것이다.그러나 대학졸업후 서울공대 출신인 남상인씨(전 서울공대 교수)를 만나 결혼했고 지금의 홍제동한옥에 정착하면서 시할머니(57년 91세로 작고) 시어머니(93년 97세작고)를 모시고 사는 엄격한 시집살이를 감당해왔다.그의 고옥은 초가을인데도 녹음이 창연하고 청결한 한복차림으로 그는 마루에 나앉아 아침나절이나 마음이 움직일때 붓을 잡는다.요즘은 주로 자작시조를 서두로 잡고 있다. 언니인 갈물이 갈물회를 발족한 것은 58년이고 그는 50대에 들어와서야 뒤늦게 서예활동을 시작하여 갈물회 정회원이 된것은 72년이 처음이다.그때 글씨를 회원전에 내놓았고 ‘유독 그 영롱한 필체가 돋보여 뭇시선을 끌었다’고 생전의 갈물이 자랑한 바 있다. ○‘궁체서예의 제일봉’으로 아직도 꼿꼿하고 청청한 그는 ‘한글서예의 우뚝한 존재’임을 극구 부인하면서도 ‘글에 대한 예술성은 10년정도의 서력으로는 인지하기 힘든 경지이며 보통 30년정도의 서력을 길러야만 서예와 서도를 터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그리고 여전히 멈추지 않고 ‘서예의 대가가 시조의 신인’이 되어 ‘서중유시’를 이뤄낸 것이다.한연대가 흘러가면 한사람의명인에 의해 그 시대의 정서가 아로 새겨지듯이 일중은 번뇌를 해탈하는 ‘오도일이관지’에서 따온 ‘일이당‘을 꽃뜰의 당호로 내려주면서 ‘궁체서예 제일봉의 외로움’을 격려해 마지않았다. 무현고금이라고 했던가.‘줄이 없어도 울리는 거문고’처럼 그의 시서 쌍전은 혼탁한 진토속에서도 백옥같은 빛을 발하며 먼 훗날에도 그의 붓끝은 심혼의 절조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연보 ▲1918년 서울 출생 ▲1936년 배화여고 졸업 ▲1940년 이화여전 기악과 졸업,미세스 골먼에게 피아노 사사 ▲1958년 갈물서회 발족 ▲1954∼63년 이화여중 서예강사 ▲1970∼74년 서울YWCA 서예반 강사 ▲1972년부터 갈물서회 회원전출품 ▲1974년부터 갈물회 대표 ▲1977년 미국 워싱턴 시카고 LA 샌프란시스코 ‘한글서예’전시 ▲1982년부터 신사임당상 수상,한국미술협회 회원 ▲1983년 ‘갈물 이철경­꽃뜰 이미경’자매전(캐나다 토론토,미국LA) ▲1986년부터 국제서도회 이사 ▲1987년 꽃뜰 이미경 서예전(백악미술관) ▷작품소장◁ ‘동유기(동유기)’(예술의 전당)‘만폭동 팔담가(만폭통 팔담가)’(세종대왕 기념관) ‘한국 여성서체’(미국 시애틀박물관)‘오우가’(샌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속미인곡’(캐나다 로열박물관)외 ▷저서◁ 갈물 꽃뜰 공저 한글’(81년) 꽃뜰 이미경 쓴 ‘한글서예’(82년) 이미경 시조집 ‘붓끝에 가락 실어’출간(97년 토방출판사)
  • 서울신문·스포츠서울 주최 97국제 CAD·CAM 전시회

    ◎경제전쟁 첨단무기 한자리 집합/22일 개막… 국내외 70여업체 참가·부스규모 200개/산업현장의 컴퓨터 응용기술 수준 가늠해볼 기회 ‘경제전쟁의 첨단무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97한국 국제 CAD·CAM·CAE전’(캐드캠 97) 및 ‘한국 국제 컴퓨터 그래픽스 및 멀티미디어전’(그래피디아 97)이 서울신문·스포츠서울 주최로 오는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종합전시장 3층 대서양관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다. 25일까지 나흘동안 이어지는 이번 행사는 올해 10회째를 맞아 참가업체의 방대한 규모와 최첨단 제품들의 다채로운 전시로 CAD·CAM·CAE(컴퓨터 응용 설계·제조·엔지니어링)분야 전시회로서 독보적 위치를 더욱 굳힐 것으로 보인다. CAD·CAM·CAE분야는 산업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컴퓨터 응용기술로 공장자동화(FA)와 사무자동화(OA)의 핵심을 이룬다.설계에서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기반기술로 합리적 경영과 생산 효율성의 극대화를 꾀할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정보 사회로 진입하면서 점차 다양하고 변화속도가 빨라지는 소비패턴에 대응한 유연 생산방식으로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무한 경제전쟁의 황량한 벌판에 놓인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무장해야할 첨단 무기인 셈이다. 이 행사의 취지도 생산성 향상에 골몰하는 기업들에게 최신 제품을 소개,경쟁력 확보방안의 안내역을 한다는데 모아져 있다.CAM,CAE의 산업응용사례를 선보여 생산성향상을 도모하고 멀티미디어 산업육성을 통한 정보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며 신제품·신기술 비교전시를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 창출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번 행사의 참가규모는 국내외 70여개 업체.부스규모는 200여개다.신세계I&C,롯데캐논,인터그래프,휴렛패커드 등 CAD,CAM 및 그래픽 관련 유명업체들이 총망라돼 있다.전시제품으론 CAD,CAM,CAE분야에서 건축 및 지리정보시스템 관련 제품과 기계·금형·전자·섬유·봉제·로봇산업 분야의 응용소프트웨어가 선을 보인다.또 그래픽 보드,컬러복사기,스캐너 등 주변기기 신제품도 전시된다. 그래피디아 97에선 ▲광고디자인 ▲산업디자인 ▲전자출판 ▲프리젠테이션 ▲애니메이션 ▲시뮬레이션 ▲이미지 프로세싱 분야 ▲영상데이터베이스 ▲CD롬 ▲네트워킹 ▲PC영상카드 ▲비디오 저작도구 등이 출품된다. 인터넷 카페도 전시장내에 운영한다.대우정보시스템이 장비를 제공해 마련된 인터넷 카페에서는 건캐드가 인터넷 및 캐드 관련 소프트웨어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 업체의 자사제품 설명회 및 기술동향 세미나 등 특별행사가 전시기간동안 29회에 걸쳐 열린다.이 분야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산업현장에서 컴퓨터 응용수준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고 관련 정보를 얻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행사 주최측 한 관계자는 “이번 행사로 컴퓨터 응용분야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 “특히 국내외 어려운 경제여건을 타개하는데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한국종합전시장,한국소프트웨어 산업협회가 주관하며 정보통신부,통상산업부,한국방송공사가 후원한다.또 현대정보기술이 협찬한다.관람시간은 매일 상오 10시부터 하오 5시까지다.
  • 조순 총재 “내가 진짜 경제대통령”

    ◎“DJ의 경제해법은 아마추어 수준”/오늘 TV대담에서부터 대DJ 공세 민주당 조순 총재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경제대통령’자리를 놓고 일전을 겨룰 태세다.조총재측은 최근 대선전략의 하나로 주공격대상을 김총재로,‘공격무기’를 경제로 삼는다는 방침을 마련했다.앞으로 있을 각종 TV토론에서 가급적 김총재가 제시한 경제해법들의 허점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겠다는 생각이다. 조총재가 포문을 김총재에 조준하고 나선데는 우선 ‘독보적인 경제후보’로서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으려는 특화전략이 담겨 있다.조총재의 측근은 30일 “김총재의 경제해법은 대부분 조총재 제자교수들 주장을 꿰맞춘 것으로,김총재는 아마추어일 뿐”이라며 “경제전문가인 조총재가 본격적으로 경제해법을 제시하고 나선다면 두 분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김총재와 전단을 형성함으로써,선거국면을 양자대결구도로 이끌겠다는 목적도 있다.측근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와 2위다툼을 벌이고 있으나 이같은 경제문제가 정국의 쟁점이 된다면 김대중­조순의 맞대결구도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총재측은 특히 이같은 양자대결 분위기가 형성되면 범여권표를 결집하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신한국당 이회창 대표 아들의 병역파문과 자민련 김종필총재의 낮은 지지율에 실망한 여권성향의 표가 상당수 조총재쪽으로 돌아서리라는 판단이다.측근은 “조총재가 야당후보이긴 하나 보수안정희구계층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다”면서 “조총재가 김총재와 전단을 형성한다면 ‘반김대중’표를 결집하는데 적잖은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조총재는 당장 1일 있을 TV대담에서부터 대김대중공세를 시작한다는 생각이다.
  • 지오이 커뮤니케이션 민태홍 사장(빌게이츠 꿈꾸는 한국의 도전자)

    ◎10년전 청계천 골방의 30살 풋내기 사업가/홈뱅킹시스템 달인 되다/화상지원용 최첨단 시스템 국내첫 개발/20여개 금융기관 납품… 올매출 40억 목표 □새 SW ‘조이뱅크’ ·은행 호스트컴퓨터서 계좌정보 받아 개인계좌·자금 등 관리 ·주식거래·홈쇼핑 포함 모든 자금 통합관리도 집에서 거래은행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 단말기로 계좌이체,거래내역조회 등을 할 수 있는 홈뱅킹서비스가 국내에서도 날로 확산되고 있다.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이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다. (주)지오이 커뮤니케이션〔조이컴·(02)­561­4411)은 홈뱅킹 시스템분야에서 국내에선 단연 선두업체다. 일부 은행에서 문자기반의 홈뱅킹 서비스가 시행되던때 이미지와 도표도 전송할 수 있는 비디오 텍스기반의 시스템을 국내 처음으로 구현했다.3차원 가상공간과 음성 등 멀티미디어 서비스가 가능한 웹기반의 시스템 개발도 완료,몇몇 은행에 납품하는 등 홈뱅킹 시스템 첨단화의 맨 앞엔 늘 조이컴이 있었다. 이 회사의 시스템은 현재 20여개 금융기관에 구축돼 있고특히 비디오 텍스 시스템을 구축한 은행들은 100% 조이컴 제품을 쓰고 있다.지난해 매출액은 25억원,올해는 40억원을 내다본다. 조이컴은 지난 87년 민태홍 사장(40)이 청계천의 한 골방에서 픽셀시스템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전형적인 벤처기업.91년 법인 등록에 이어 올해부터 회사이름을 조이컴으로 바꿨다. 민사장은 그동안 한글 그래픽 소프트웨어,현금 자동지급기 소프트웨어,고속도로 정보안내 시스템 등 여러 방면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손을 댔다.홈뱅킹을 전략종목으로 삼게된 것은 지난 90년 한국통신이 구축한 비디오 텍스기반의 PC통신망인 하이넷P 단말기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면서 부터였다. 앞선 비디오 텍스 기술을 응용,무언가 해야겠다는 궁리끝에 생각해 낸 것이 홈뱅킹 시스템이었다.당시 일부 은행에서 이뤄지고 있는 홈뱅킹 서비스는 문자만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화상까지 지원하는 비디오 텍스 홈뱅킹 시스템의 가능성이 커 보였던 것이다. 국내최초의 제품인데다 은행들의 홈뱅킹 서비스에 대한 관심으로 조이컴은 이 분야에선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91년 국민은행에 처음 시스템을 구축한데 이어 현재까지 10여개 은행에 조이컴 제품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서비스 공급자쪽인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제품이어서 시장에 한계가 있는 것이 문제였다.민사장은 그래서 눈을 사용자쪽으로 돌렸다.고객들이 PC에 설치,홈뱅킹을 즐길수 있도록 한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이다. 이 소프트웨어의 이름은 ‘조이뱅크’.거래은행의 호스트컴퓨터에서 받은 계좌정보를 이용해 개인의 계좌및 자금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이외에도 주식거래,홈쇼핑,가계부 등 가정의 모든 자금운영을 통합관리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현재 시험판이 나왔으며 올해안에 정식제품이 나올 예정이다. 민사장은 은행의 호스트 컴퓨터에 따라 달랐던 사용자쪽 소프트웨어들을 조이뱅크로 통합하는게 궁극적인 목표다.이를 위해선 조이뱅크의 독특한 전송규약(프로토콜)을 은행들마다 다른 네트워크 프로토콜의 표준으로 만들어야 한다.그는 회사의 인지도를 최대한 활용,각 은행들에게 조이뱅크와 호환되는 시스템구축을 설득하고 있다.이러한 노력끝에 은행간 계좌이체 등을 총괄하는 금융결제원과 지난해 12월 호스트컴퓨터 솔루션 공급계약을 맺은 것은 사업성공을 예고하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은행간 네트워크 표준이 마련되면 하나의 사용자쪽 소프트웨어로 고객들이 어느 은행이든 온라인으로 쉽게 거래를 틀 수 있고 아직은 불가능했던 은행간 계좌이체도 할 수 있습니다.조이뱅크가 이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민사장은 미국 인튜이트사가 지금까지 자국시장에서 8백만개를 판 홈뱅킹 소프트웨어 ‘퀴큰’의 예를 들면서 조이뱅크도 국내 홈뱅킹의 대명사가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 무악인 박병천(이세기의 인물탐구:140)

    ◎신의 소리·동작 전수하는 ‘굿판의 사자’/신들린듯한 소리·춤사위 ‘세습무의 증언자’/무형문화재 72호 ‘진도씻김굿’ 기능보유자 진도씻김굿의 전과정을 보기 위해서는 이틀에서 사흘이 걸린다.그러나 70년대 이후 진도씻김굿의 인간문화재 박병천은 망자를 불러들이는 초가망석,복덕을 비는 제석,매듭을 푸는 고풀이와 이슬털기,길닦음으로 1시간짜리 굿을 짜서 무대에 올리고 있다. 잔잔한 파도같이 밀려오는 삼현육각중에서도 대금과 쌍피리의 구성진 죽관음이 한맺힌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흰 광목천으로 길을 닦아 혼을 승천시킨다.이때 주무는 흰 도포에 갓,단정하게 앉아 북가락과 구음으로 굿을 이끌되 신바람나게 뛰거나 번거롭게 휘도는 것이 아니라 시종 숙연하고 조용하게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한맺힌 망서 넋 위로 ‘누웠던 환자가 벌떡 일어난다’는 박병천의 소리와 장단은 북춤에서 굿거리 한량춤과 지전춤 살풀이춤으로 한판을 펼쳐도 그 기량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특히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쌍가락으로 치는 북춤은 양어깨를 활짝펴고 솔개가 날아가다 동작없이 머문듯한 춤사위며 천길 낭떨어지에 내려꽂히는 물줄기처럼 시원하게 휘돌고 몰아치는 전과정이 가히 ‘달인의 경지’로 호평된다. 그는 ‘춤은 바로 장단의 기화’라고 말한다.‘춤은 우리 가락에 내몸을 놓는것’이며 ‘내몸에다 장단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락에 맞춰 내몸을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이김발(이긴발)­까치발(새발)­자진발­디딤발’로 장단에 몸을 놓는 지무네(지무)를 추되 춤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전체속을 깊이 알고 추는 ‘무검질 속’춤이 제격이다. 그가 짠 씻김굿 무악은 2분박 보통 빠르기의 흘림을 기본으로 하면서 진양에서 굿거리 중모리 덩덕궁이 자진모리로 이어지는 삼장겹장단은 흥과 화사가 넘치고 너름새가 화려하여 다른 지방에서는 볼수 없는 장단이다.소리 역시 툭 트여서 현대창작무대의 잦은 초대와 요청이 들어오고 국립무용단에서는 그의 장단과 소리와 북춤을 무용극에 삽입하고 있다. 그가 이런 장단과 연희에 달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부터 굿속에서 굿을 보면서 자라난세습무가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진도 신청의 당장이던 박범준과 당대 제일의 무당으로 알려진 김소심의 장남.그의 조상이 진도에 온 것은 9대조부터이며 그의 종조부인 박종기씨는 대금산조의 창시자이고 당숙인 만준씨는 피리의 명인,고모인 박선래씨도 무업을 이어받고 있다.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무동을 서기 시작했고 목포상업중과 목포 상선전문학교시절에는 연극부 밴드부에서 타고난 끼를 다방면으로 발휘했다.굿에 종사하던 사람을 천시하던 시절이라 한때는 미곡상도 해보고 포구에서 객주노릇을 하기도 했으나 무슨 일을 해도 되는 것이 없어 가업을 잇기로 한 것이다. 70년대에 접어들자 그는 집안에서 배운 진도만의 ‘남도 들노래’‘강강수월래’‘거문도 뱃노래’와 ‘진도다시래기’를 가지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나가 국무총리상 대통령상을 휩쓸었고 이보형 임학재씨에게 발굴되어 77년 서울 YMCA강당에서 첫공연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평생을 무대에 서 본적이 없는 무당과 악사들을 모아 연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데다 막상 막을올리기 직전에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창피해한다는 이유로 공연을 취소하는 바람에 큰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세습무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그는 무대에 오르면 평소의 근엄하던 자태는 간데없이 사라지고 희색만면에다 목소리에 마저 신기가 실려 징으로 녹여내고 목으로 풀어내는 ‘비나리’는 씻김굿 명인들 중에서도 독보적 명기로 구분된다. ‘나오소사 나오소사 씻김받자고 나오소사.잔옷벗고 마른 옷입고 상탕에 목욕하고 중탕에 메를 짓고,쑥물 향물 청계수로 목욕재계하신후에 …’ ○어려서부터 굿속서 자라 엇중모리에 얹는 이 비나리는 굿에서 씻길 망자를 맞아들이는 초가망석(초혼) 첫머리 사설로서 애절한 허튼제와 일정한 장단이 없는 무장단이 특징이다.또 언제 손이 나가는지 2박자 하나라도 네개 여섯개 열두개로 끊어내고 둥둥 떠있는 혼을 능란하게 어우르는 품은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에 의하면 ‘남이 넘볼수 없는 경이의 수준’이다. 징을 칠때는 씻김굿에서만 만 9시간을 끌기도 하고 살풀이 장단하나만도 80여개로 쪼개치는 귀신같은 솜씨는 그의 손 마디마디에 박혀있는 굳은 살과 가죽처럼 두꺼운 손바닥에서 그만의 연륜을 되짚을수 있을 뿐이다.굿판을 시작하며 막을 올릴때는 ‘선부리장단’을 쓰고 중중모리로 넘어가야할 경우에도 중모리장단의 절반 다음박에서 중중모리장단을 ‘산 도리돈돈 닷 돈…’으로 절묘하게 끌어낸다.실제로 그가 굿을 진행하는 전과정에서 북가락에 구음을 넣는 그 소리는 어느때는 구슬프고 어느때는 화창하여 때묻지 않은 싱싱한 구음에 녹아들고 젖어든다. 송파구 석촌초등학교옆 살림방이 딸린 박병천문화재전수소는 에어컨 하나없는 선풍기 바람속에서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그는 온신명을 쏟아낸다.단 한사람이라도 완벽하게 가르치고 길러내자 하는 일념에서다.무무를 담당하는 부인 정숙자씨(58)와의 사이에 3남 4녀가 있지만 장남(환영)만이 국립국악원 대금주자로서 국악과 관련이 있을뿐 막상 진도씻김굿을 잇는 자녀는 없다. 우리민족음악회의 노동은씨(음악평론가)는 ‘우리가 박병천을 주목하는 것은 인간문화재나 대금산조의 창시자의 집안이라는 사실때문이 아니라’ ‘인간사 음악으로 장구한 역사의 지평을 이룬 신청에서 태어난 사람이며 그 시대 신들의 언어를 우리 시대의 언어로 전달하는 음악사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시대의 음악사자” 그의 연희는 모든 민속예술자료의 사전에다 각종 민속연희에 가닿지 않는 부분이 없을만큼 무한한 기량을 갖추고 있다.그러나 그의 대에서 어쩌면 세습무가 끊긴다는 사실은 그를 아끼는 주변에 안타까움을 던져준다.그러나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세습무의 증언자로서 일생을 가무에 젖어 살아온 그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입신 대광에서 왕생극락을 현대에 실천한 초월의 예인이 아닐수 없다. □연보 ▲1932년 전남 진도 출생 ▲1952년 목포상선전문학교 졸업 ▲1960년부터 무무악 섭렵 ▲1971∼76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남도 들노래’(국무총리상수상 ‘강강수월래’(대통령상)‘거문도 뱃노래’(국무총리상)‘진도만가’(문공부장관상) ▲1977년 진도다시래기 발표 ▲1978년부터 서울YMCA강당,국립극장,공간사랑 ‘씻김굿’ 공연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기능보유자 ▲1981년 ‘박병천문화재전수소’개설 ▲1982년 국제민속예술제초청 유럽 6개국 순회공연,해마다 ‘명무전’ 참가 ▲1984년 LA올림픽개막축제공연,니카라과 민속음악제 금상 ▲1985년 베를린 국제민속음악제 국가대표 유럽7개국순회공연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참가 ▲1990년 LA 세계민속페스티벌 참가 ▲1994년 아시아 소사이어티 초청공연 ‘코리아 페스티벌’ 및 미국순회 ▲1997년 ‘명인명창 한마당’(호암아트홀),‘진도 바닷길’ 축제공연 ▷현재◁ 사단법인 민속놀이진흥회 이사장,재단법인 문화재보호재단(한국의 집)전문위원 및 공연단 총감독,중앙대예술대학원 및 국립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객원교수
  • 러시아는 아직도 우주기술 최강국/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 칼럼)

    1957년.인류 역사상 첫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가 성공적으로 발사됐을때 소련은 전국적으로 기쁨에 들떠 환호했다.미국등 ‘바깥세계’는 놀라움과 함께 엄청난 쇼크를 받았다.지구상에서 두번째 초강대국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우주탐험을 놓고 미국과의 경쟁의 닿을 올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57년 인공위성 첫발사 수십년동안 모스크바 정부는 우주경쟁에서 워싱턴정부를 앞서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이 ‘우주경쟁’을 군사적 우위를 가름하는 선전도구로 사용했다.우주경쟁에서 미국을 이긴다는 것은 곧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로 이용됐다.‘스푸트니크’호는 라이벌인 미국보다 성능이 우수한 미사일을 개발하는데도 도움을 줬다.또 지상에서 미국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져다 주었다.상대방의 대량살상무기 공격을 미리 방지하는 데도 효력이 컸다. 우주게임은 처음에는 소련 정부가 (미국보다)우월했다.크렘린 정권은 첫 남성우주인을 우주궤도에 보낸데 이어 첫 여성우주인,나아가 최초 두 우주선을 미국보다 먼저 쏘아 올리는데 성공했다.소련의 우주인은 사상 최초로 우주선에서 나가 우주유영도 해보였다.소련 당국은 소련의 우주선이 지구선회를 가장 많이 하는등 상당기간 우주분야에서의 각종 진기록을 경신해 나갔다.우주인들은 소련에서 최고 영웅대접을 받았으며 전소련국민들은 이들때문에 매우 자긍심이 높았다.당시 수백만명의 소년,소녀들은 미래에 우주탐험가가 되는 일이 꿈이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6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부터 미국은 소련을 우주경쟁에서 따라잡기 시작했다.가장 눈에 띄는 약진은 1969년 인간의 달 착륙.미국이 기세를 부리는 동안 반대로 소련은 주춤하기 시작했다.소련식 사회주의 경제는 어려움에 봉착했고 우주경쟁을 뒷받침하는데 한계에 다다랐다.그러나 소련은 우주인을 상주시킬수 있는 우주정거장 분야만큼은 여전히 미국을 압도했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의 개혁·개방시대가 열리면서 모스크바와 워싱턴정부는 서로 우주경쟁에서 이기려는 이데올로기적 모험을 중단했다.함께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런탓에 상당액의 국가재정이 절약됐고 우주탐험 분야에서의 지적능력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소련과 미국은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관련분야에서의 분업을 이뤄나갔다.예를 들어 크렘린측은 화성탐사에 더이상 돈을 쏟아붓지 않았고 미국은 우주정거장분야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게 됐다. ○소붕괴후 투자 주춤 소련이 붕괴되자 상황은 달라졌다.소련경제가 훠청거리면서 우주개발 투자가 대폭 감축된 것이다.러시아정부는 우주과학자들에게 살길을 스스로 찾으라며 예산지출을 대폭 삭감했다.우주탐험은 ‘사치’로 인식됐고 당장 ‘끼니거리’에 신경를 써야만 했다.이같은 철학은 당분간 지속됐다. 러시아 국민들은 우주탐험비,막대한 국방비를 줄이거나 서방으로부터의 ‘은전’을 기대하며 생활여건을 개선시켜줄 것을 더 절실히 바랐다.현재까지도 국민감정은 보다 현실적이다.그러나 어떤 나라도 러시아를 돌봐주지않을 거라는 인식이 지식인들 사이에 일기 시작했다.또 삭막한 국제정치·경제무대에서 경쟁해 나가는 것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동시에 알아차렸다. 우주개발기술과경험은 러시아가 아직 세계의 지도국가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임을 누구도 부인못한다.동시에 해외로부터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확실한 요소이기도 하다.러시아 정부는 우주탐험이 동결될 경우 그만큼 우주경쟁에서 뒤쳐질 것이며 이후 영원히 따라잡기 힘들다고 생각한다.인류의 미래는 우주탐험에 달려 있다고도 본다.때문에 크렘린측은 최근 중대한 조치를 내렸다.우주메커니즘의 연구·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우주분야를 재생시키기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러시아는 낡은 우주정거장 미르를 다시 이용하기 시작했다.러시아는 외국의 우주인을 미르에 승선시키며 달러를 벌어들였다.우주관련산업 구조개편에 나서 일부 부서가 합병되거나 없어졌다.과거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한 예산이 다시 투입되기 시작했다. ○마케팅기법 도입해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주기술에 있어 러시아의 잠재력은 아직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규모나 다양성이 아직 미국보다 우월하다.최근 미국의 한 우주과학자는 “미국 국내에서 제작하는 것보다 러시아로부터 수입된 우주기술을 사는 것이 낫다”며 러시아의 첨단우주기술 우위를 인정한다.소련시대때는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때문에 과학기술의 모든 것을 자체 설계·제작해야 한 적이 있었다.이것이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는데 도움을 준 아이러니컬한 면도 없지 않다.우주공학은 물론 인공지능,광학기술,생화학,반중력기술,환경탐사기술등이 그것이다. 우주탐사에 관계되는 이러한 기술력 보유때문에 현재 모스크바와 워싱턴정부는 서로 협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현재 미르에서 미국 우주인이 러시아 우주인과 함께 일을 하고 있고 해저기지에서 위성을 쏘아 올리는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중에 있다.유럽의 우주산업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마케팅기법만 자리잡으면 향후 15년안에 러시아는 세계의 우주기술시장을 주름잡을 것이라고 확신하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국악인 묵계월(이세기의 인물탐구:134)

    ◎76세 고령에도 녹슬지 않는 절창/「훌륭한 가장」 「엄한 스승」 「만년 무대인」으로/「삼설기」 「긴아리랑」 유일하게 맥이어 전수 명창 묵계월의 공연무대를 한번이라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가 왜 이 시대의 절창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된다.지난 95년 가을,74세의 나이로 무대에 선 그는 「청춘홍안은 네자랑 말어라,덧없는 세월에 백발이 되누나」로 시작되는 「청춘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소리 한평생을 정리하는 「묵계월,끝없는 소리의 길」공연에서 그의 모습은 여전히 씩씩했고 세월의 파란만장속에서 갈고 닦은 소리의 관록을 유감없이 과시해 보였다.특히 양반댁 마님이 낭랑한 소리로 이야기책을 읽어내려가는 듯한 「삼설기」는 그만의 독보적 「발군」을 새삼스럽게 확인시켰다. 책상 하나에 등촉을 밝히고 단정하게 앉아 책장을 넘기면서 어느때는 높이고 어느때는 낮추면서 운치와 시취로 경기민요의 진수를 펼친다. ○75년 인간문화재로 「백이숙제 착한이와 도척같은 몹쓸 놈도 죽어지면 허사로다/역려건곤에 부생이 약몽하니 즐거움도 얼만고/병촉야유하며 독서담론 자락하니 한가하기 측량없다…」 그의 음색은 중하청부에서 곱고 섬세하게 꺾어 올려치는 끝막음 소리가 일품이다.더구나 경기지역에서 전수되어온 긴 잡가는 유장하고 은근한 가락에 후렴이 붙는 짧은 장절형식이 흥겨움을 더하여 지루감이 전혀 없다.십이잡가중에서도 그는 적벽가·출인가·선유가·방물가로 75년 인간문화재가 되었고 「삼설기」와 「긴 아리랑」은 그가 유일하게 맥을 잇는 명곡들이다. 늘 깨끗한 한복에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는 항상 소리만을 하면서 시름없이 살아온것 같지만 국악의 정상에 우뚝 서기까지 그의 인생 뒤안길은 만단 파란과 희비가 엇갈린다.물론 그가 살아온 한평생이란 우리 국악인 1세대들이 한결같이 겪은 공동의 운명이랄 수가 있다. 눈물없이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세월속에서 그가 그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를 구구절절 전해준다.「내 나이 11살때 나는 어머니품을 떠나 남의집 양녀로 가야했다」로 시작되는 사연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는 서울 광희동에서 이윤기씨와 조성여여사 사이의 다섯딸중 넷째로 태어났다.부친은 노리개의 매듭을 만드는 장인이었으나 매듭으로는 돈벌이가 될수 없어 어머니는 잦은 친정 나들이로 쌀이며 돈을 꾸어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 주었다.그런 집안의 넷째딸로서 제대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랄 처지가 아닌데다가 이화자의 민요나 황금심을 좋아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싶은 꿈을 미처 펼쳐보일 여유도 없었다.그때 어머니가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며 키우느니 잘먹고 잘입히는 집에 가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수 있도록」 남의 집에 양녀로 보낸 것이다. 그때부터 본명 이경옥을 버리고 그 집의 성을 따서 「묵계월」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고 분홍치마에 꽃신을 신고 조선권번에 다니면서 주수봉 최정식 스승으로부터 경기민요 십이잡가를 사사,권번학습이 끝난 다음에도 독선생인 김윤태 스승을 모셔다가 가곡 가사 시조를 거쳐 상중하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때까지 철저하게 모든 것을 배워 나갔다.자그마한 몸매에서 터져나오는 경기민요 특유의 담백한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애틋함이 스며있었고 가락마다에 「어머니 보고싶은 길고 긴 그리움이 담겨」「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온통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했다.16세가 되었을때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노래실력으로 이팔청춘에 「절창」칭호를 들으면서 과장이나 선비들의 모임에 불려나가 만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제자 가르치는데 정성 허스키한 탁성이 중후한 가운데로 명주고름같은 선이 절로 흘러나오고 마딧소리에 방울목을 얹어 겹창으로 접목시킨 오관청음은 「들을수록 맛이 나고 멋이 난다」는 평을 듣는다.18세가 되자 인력거를 타고 명월관 국일관 천향각을 주름잡았으나 21살에 광산업을 하던 김영배씨를 만나 결혼,그러나 그가 노래를 쉰것은 단란한 생활을 누리던 신혼기와 6·25때 뿐이다.1남2녀를 낳고 살림에 재미를 붙이기도 전에 부군의 사업실패로 이번에는 가족부양을 위해 회갑잔치며 화수회등 여러 모임에 나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권번을 거치지 않고는 소리를 배울수 없었고 요정에 나가지 않고는 제아무리 명창이라도 명성을 떨칠수 없었다.따라서 부군의 사업실패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 사업이 계속 융성했다면 오늘의 묵계월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는 부군 타계후 혼자서 삼남매를 키워 대학까지 공부시켰고 한편으로는 제자를 가르치면서 「훌륭한 가장」「엄한 스승」「만년 무대인」의 자리를 반듯하게 지켜왔다.오죽하면 소설가 박경수는 한 수필에서 「세상에 이름 날리는 여류 명창치고 일부종사한 사람은 남도 경서 명창을 막론하고 묵계월뿐으로 소리만이 아니라 가정생활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행실녀」라 쓰고 있다. ○내년 데뷔60년 공연준비 평소에는 말수가 적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않는 결벽증이며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순리에 거슬리는 일은 애써 하지 않는다.요즘은 10년전부터 살고있는 성산동 성산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만 온정성을 쏟고있다.이웃에 방해될 것을 걱정하여 장구대신 북에다 천을 대어 소리를 죽이고 그가 엄한 스승밑에서 무서운 학습기간을 거친 것처럼 추호의 빈틈이나 용서없이 혹독하게 가르친다. 홍익대 이재흥 교수는 「노랫가락(경기민요)·송서 삼설기·초한가와 긴잡가 장구장단인 도드리 6박·12박은 서울소리 고유의 전통문화로서 묵계월의 존재는 특별히 예술보호차원의 의미마저 갖는것」으로 평가한다.「내가 만약 백살까지 산다면 나는 백살에도 무대에 설것」이라는 그는 내년에는 18세때 처음 무대에 선지 만60년을 맞는 기념공연을 가질 예정이다.지금도 40년대,50년대를 고스란히 거슬러 오를만큼 기억력이 뛰어난 그는 지난해 경기민요에서 한평생 동도를 걸어왔던 안비취를 잃은 것에 못내 상심을 금치 못한다. 서울사람들의 경위 바르고 단정한 성격을 가리켜 경중미인이라고 했던가.「고희를 훌쩍 넘긴 지금도 녹슬지 않은 청음에다 서울 십이잡가를 능란하게 소화하여 지킨다는 것은 소리꾼에서는 100년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한 독보적 소리보물」이라는 원로 성경린씨의 말은 일세를 풍미한 명창에 대한 최상의 「치하」와 「경의」표시가 아닐수 없다. □연보 ▲1921년 서울 출생(본명 이경옥) ▲31∼34년 이광식 주수봉사사 ▲34∼37년 경성방송국 출연 ▲36년부터 최정식·김윤태 사사 ▲38년 부민관 명창대회출연 입상 ▲39년 빅터레코드 음반취입 ▲49년 제일극장 명창대회에 스승 최정식 선생과 공연 ▲62년 국악협회 민요분과위원장,재일동포위문 일본순회공연 ▲68년 문공부주최 제1회 명인명창대회,국악대공연출연(장충체육관) ▲69년 「묵계월경기민요」 출반(성음) ▲71년 「한국민요연구회」 설립. ▲75년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지정,「경기12잡가 묵계월전수소」 개설,동아일보주최 국악경연대회심사위원. ▲76∼79년 동아방송 개국기념 공연 ▲83년 한국민속가무예술단 일본공연 ▲87년 LA교민위문 공연. ▲87∼90년 조선일보 주최 「명인명창대회」 출연 ▲90년 「묵계월 인생70­소리 60」 주제의 제1회 개인발표회(호암아트홀),국립국악관현악단(이상규 지휘)과 「십이잡가」 협연,한국민요연구회주최 신춘국악대잔치 특별출연 ▲92년 대한민국국악제 특별출연 ▲94년 경기국악축제(연강홀) ▲95년 「묵계월,끝없는 소리의 길」주제의 제2회 개인발표회(호암아트홀)공연,KTV 「묵계월소리의 세계」특집방송,「묵계월 경기민요」CD출반(오아시스) ▲97년 삼성그룹복지재단주관「효행상 시상식」 축하공연 〈현재〉 국악협회 고문,민요연구회 고문 〈수상〉 세종상(68년) 국악대상(92년)
  • 유통업계 생존전략 찾기 안간힘/경영전략 부재로 잇단 부도 자성

    ◎롯데 팀제 도입 등 영업강화 박차/롯데 팀제 도입 등 영업강화 박차/미도파·뉴코아도 조직축소 채비 유통업이 위기다.진로,대농그룹에 이어 한신공영까지 유통업에 진출한 기업들이 곤란을 겪으면서 유통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같지 않다.과잉경쟁으로 뜨겁던 업계에 찬바람이 불고있다. 무서운 기세로 점포를 확장해온 뉴코아백화점이 최근 자금난에 시달리다 못해 계열사를 통폐합하고 당분간 신규매장개설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다.업계에서는 일련의 유통업계 부도와 자금난 현상이 경기불황에 따른 매출감소로 불거져나오긴했지만 큰 원인은 각 업체별 경영전략과 출점방식등에 문제가 있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이에 따라 업체마다 변화된 시장환경에 적응하기위한 조직개편과 슬림화를 서두르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할인점사업 진출에 맞춰 그동안 추진해온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이번주중 발표키로 했다.백화점부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롯데는 올해초 사장실 직속으로 「제도개선팀」을 둬 뒤늦게 뛰어든 할인점사업에서의 경쟁력강화대책을 구상해왔다.중점을 둔 것은 영업부문의 강화로 영업본부아래 마케팅파트와 고객전담부서를 신설하고 모든 부서에 팀제를 도입할 계획이다.시장변화에 최대한 빨리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다. 한화유통은 지난 5월 특별팀을 구성,중장기 유통사업계획안 마련에 착수했다.한화유통의 경우 한화그룹 차원에서 유통을 주력기업으로 삼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단기적인 매출확대전략보다는 21세기에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한 장기계획에 비중을 두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창립기념일인 오는 15일 그동안 구상해온 중기 계획안 「비전2001」을 발표한다.현대는 올초부터 관리부문의 인력을 영업부문으로 이동시켜 인력운용의 효율성을 꾀하고 있다.이밖에 미도파,뉴코아 등도 어느정도 계열사 통폐합이 진행되는대로 조직개편을 통해 관리부문의 불필요한 인력을 영업부문으로 전출시킬 계획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유통업의 위기는 이미 예견했던 일로 단지 시기가 좀 앞당겨진 것일뿐』이라며 『그동안 우리나라 유통업체들이 너무 안이하게 현실에 안주해온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 미 의회는 인터넷정치“천국”/상원 전원·하원259명 사이트 개설

    ◎유권자접촉 돈·시간 절약·시회지도층과 24시간 대화 미 의회가 인터넷 정치시대를 활짝 열어 의원들에게 고비용으로 치닫고 있는 정치풍토로부터의 출구를 마련해주고 있다. 올해초 105회 임기의 시작과 함께 의회 차원에서 의원들에게 웹사이트 설치를 더욱 권장,현재 1백명의 상원의원들은 모두 자신의 사이트를 갖고 있으며 하원의원들도 2일 현재 259명이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지난해 160명 이었던데 비하면 급속한 증가이며 금년말까지는 435명 전원이 개설하게 될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의원들의 입장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정견이나 의정활동을 상세히 소개하고,또 e메일을 통해 지역주민이나 오피니언 리더층과 24시간 접촉할 수 있는 등의 장점에서 그 선호도가 급속히 높아져 가고 있다.특히 이같은 인터넷정치의 활성화는 돈과 시간의 절약이라는 측면에서 고비용정치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를 위해 상원은 상원컴퓨터센터(SCC)를,하원은 하원정보자료소(HIR)를 설립했다.이들은 의원들의 웹사이트 개설에 따른 기술지원은 물론 교육·기타 정보서비스까지 해주고 있다.HIR의 경우 내년도 5천만달러의 예산을 책정,웹사이트 개설에 따른 의원과 유권자사이의 보다 편리하고 유용한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은 경비절감 또한 피부로 느끼고 있다.매일 200통씩의 우편물을 유권자들에게 e메일로 보내는 존 애쉬크로프트 상원의원(민주,미주리)의 경우 년간 25만장의 종이와 우송료를 절약할수 있었다고 밝혔다.더우기 유권자들과 만나서 대화를 주고받을 경우 들어가는 식사대나 차값도 절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의원들이 웹사이트를 갖게 되자 서로 특색있는 내용으로 꾸미려는 경쟁도 적지않다.의회내 인터넷정치의 선구자격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민주,메사추세츠)은 단연 독보적이다.사이트를 열면 오디오와 비디오로 각각 환영사가 나오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요리강좌」 등을 개설,누구나 언제든지 재미있게 자신의 사이트를 찾게하고 있다. 패트릭 레이 상원의원(민주,버몬트)은자신의 사진 대신 캐리커쳐를 실었으며 지역구 학생들의 그림 전시,버몬트 비경소개 등 다채롭게 꾸며 놓았다. 하원은 개설한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부여했는데 1번은 13선의 돈 영(공화,알래스카)의원이다.93번의 벤자민 길먼 외교위원장(공화,뉴욕)과 220번의 데이비드 스카그스(민주,콜로라도)의원 사이트도 돋보인다.
  • 태원정보시스템 정성엽 사장(빌게이츠 꿈꾸는 한국의 도전자)

    ◎“밑빠진 독 물붓기” 개발투자 3년 원격진료 1등기술 이뤘다/서울대병원 등 10곳에 시스템 구축 결실/올 매출목표 30억… 외국업체와 본격 경쟁 『병원전산화의 완성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이용한 의료영상의 저장 및 전송체계(PACS)와 원격진료시스템(텔레라디올로지) 구축으로 이뤄집니다.이를 통한 참다운 의료복지사회 실현이 우리 회사의 이상이죠』 정성엽 사장(36)은 국내에 몇 안되는 병원 네트워크 솔루션업체 (주)태원정보시스템(02­578­0338)을 운영하고 있다.이 회사는 진료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이미지와 동영상을 병원내부 또는 병원끼리 네트워크로 교환하고 저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준다.엑스레이 사진이나 자기공명장치(MRI),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이미지데이터,환자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의사가 앉은 자리에서 검색,공간을 초월한 진료를 할 수 있다. 광범위한 효과만큼이나 기술적으로 어려운 분야기도 하다.정사장이 회사를 차린 것은 지난 93년 10월.당시 같은 일을 하는 회사들이 있었지만 기술의 한계로 대부분 중도에 손을 뗐다.올해로 창업 4년째인 정사장은 상품개발에만 3년을 투자했다.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던 이 기간은 집까지 저당잡혀야 할 만큼 어려운 때였다.기술투자가 매출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1년이 채 안된다.지난했던 세월의 대가는 일단 이 분야에선 국내에서 독보적 위치에 올랐다는 것이다. 『일반 동영상 및 정지화상파일은 전송속도의 문제때문에 해상도의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1백분의 1이하로 압축하곤 합니다.하지만 정밀을 생명으로 하는 의료자료는 오진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절반정도의 압축이 고작입니다.따라서 크기가 큰 파일을 실용가능한 속도로 전송하고 이미지 손상을 최소화하는데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죠』 이 회사는 현재 서울대병원,아주대병원,상계백병원 등 10곳의 종합병원에 시스템을 구축중이다.올해 매출목표는 30억원에 이른다.이런 실적으로 업계에서 「뚝심의 사나이」로 통하는 정사장은 올해를 사업도약의 해로 삼고 있다.하드웨어 장비의 가격인하와 디지털저장으로 인한 자료보관비 등의 비용절감효과로 병원들이 시스템 구축에 갈수록 적극적이다.정부도 이 분야에 대한 상당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복지사회구현이라는 측면말고도 155MBPS의 전송속도를 내는 이 분야 네트워크 구축기술은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의 원천기술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우리 경쟁상대는 미국,일본 등 외국업체들입니다.국내 병원입찰에서 맞붙는 회사들이 실제로 외국업체들뿐이예요.전송속도 등 특정분야에서 미국 일류업체의 80%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시스템 구축비용이 절반정도에 불과해 충분히 겨뤄볼 만합니다』 정사장은 국내 의료장비가 외국산 일색인 우울한 현실에서 그나마 국산의 자존심을 지킬수 있는 것이 의료전산화 소프트웨어분야라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 시대의 화두 「벤처 창업」(지금은 창업시대:1)

    ◎불황없는 벤처기업 경제견인차로/명퇴바람속 고용 창출·두자리수 고성장/변화에 쉽게 적응… 순익률 일반기업 5배 추락하는 경쟁력,급증하는 실업자군….이제 기존의 산업정책으로는 우리경제의 성장점이 한계에 왔다.우리보다 앞서 저성장과 고실업을 겪었던 미국은 벤처기업을 대안으로 채택,유례없는 호황속에 있다.반면 일본은 대기업위주의 산업정책에 집착,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정부도 마침내 벤처기업의 창업활성화로 무한경쟁의 파고를 잠재우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원대한 「벤처드림」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서울신문은 이에 맞춰 저비용·고효율 산업구조를 위한 새 시리즈 「지금은 창업시대」를 6회에 걸쳐 내보낸다.〈편집자주〉 경기후퇴의 여파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샐러리맨들에게 명예퇴직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2월중에만 실업률이 3.2%에 달해 실업자군단이 66만2천명으로 불어났다.한달새 11만2천명이 늘었다.하루 3천920명씩 실업자가 발생한 셈이다.특히 대졸실업률이 3.2%에서 3.7%로 높아진 것은 명퇴의 후유증이다.그러나 실업은 더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비상구는 바로 벤처기업의 창업이다. 모기업 경리부에 근무하는 김모씨(35)는 최근 명예퇴직을 결심했다.회사가 수익악화로 젊은 층에까지 명예퇴직을 시행한다고 했을때 갈등이 일었지만 마음이 흔들릴바에야 빨리 결정,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김씨는 일단 한국생산성본부 부설 「창업스쿨」에 등록키로 했다.퇴직금 8천만원을 밑천으로 대학전공(전기제어)을 살려 「경쟁력있는」 식품기계 제조업체를 세울 생각이다. 요즘 통상산업부와 중소기업청의 창업지원과를 비롯,정부기관의 창업관련 창구에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창업 문의전화가 온다.절차와 비용 등등….한국생산성본부 산하 한국기업상담의 창업강좌는 자리가 없을 정도다.소규모 점포에서부터 소시민들에게는 「거액」의 자본이 들어가는 중소기업 창업 등 강좌내용 역시 수요자 욕구만큼이나 다양하다.뿐만 아니라 명퇴자들의 고갈된 창의력을 충족시키기 위한 명퇴자들의 창업소재 찾기목적의 여행상품도 등장하고있다.창업관련 컨설팅업체는 물만난 고기처럼 생기를 찾고 있다. 컨설팅 전문업체들은 이 시대의 화두 「창업」이 난세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처방이라고 입을 모은다.대기업들이 경영환경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손쉬운 명퇴를 선택하면서도 고용창출에 실패한 반면 벤처기업들은 고용을 창출하며 두자리 숫자의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벤처기업의 성공담은 많다.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 전문메이커인 (주)건인은 대기업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이다.매출액이 지난해 67%나 증가한 데 이어 올해에도 증가율이 110%에 이를 전망.올해 38세인 변대규사장은 벤처기업을 창업한 뒤 매출액 대비 15%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오늘의 성공을 이뤄냈다. 국내 벤처기업은 1천여개로 중소기업 전체의 1.1%,매출액 5조2천억원으로 전체 3.7%,종업원수 4만7천명으로 전체 2.3%나 된다.그러나 당기순익율이 15%로 일반 기업체보다 평균 5배이상 높다.지난해 중소제조업체의 도산율이 3.8%인데 반해 벤처기업협회에 등록된 120개업체는 도산이 없었다. 정부는 벤처기업을 우리경제의 자생력 있는 토양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시행한다는 계획이다.요즘의 창업러시와 맞물려 이들 시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면 벤처기업은 2001년 2만개,2005년 4만개로 늘어 우리경제의 견인차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벤처기업 성공사례/순이익 일반업체보다 3배 높아

    ◎한글과컴퓨터­총종업원중 연구인력이 70% 차지/건인­위성방송수신기로 년1백% 고성장 국가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기수. 31일 서울 과천 정부 2청사 안내동 2층 장미홀에 마련된 벤처기업 성공사례 전시회를 알리는 문구로 앞으로 정부정책의 방향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재정경제원에서 김영삼 대통령 주재로 경제장관확대회의가 열린 시점에 맞춰 전시회가 열렸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날 전시회에는 국산 워드프로세서 시대를 연 한글과 컴퓨터,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 전문업체 건인,컴퓨터 수치제어기기 전문업체 터보테크,발전소 제어장치 메이커 우리기술,가상수술 프로그램 제조업체 비트컴퓨터와 새롬기술,퓨처컴퓨터,한아시스템,KMW,텔슨전자,시엔에스 테크놀로지,마리컴퓨터 등 12개사가 참여했다. 이들 기업들은 기업연령이 몇년에 불과하지만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종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이다.매출액 대비 순이익의 비율이 평균 9.9%로 일반제조업체의 평균 2.8%(95년)보다 3배나 높다.이익을 많이 남긴다는 얘기다.그것은 두툼한 연구개발(R&D)투자비에 의해 보장된다는 게 특징이다.이들 12개사의 평균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규모는 16.5%,총종업원 대비 개발연구인력 비율이 34.8%나 된다.95년 기준 제조업평균이 각각 2.7%와 4.9%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이들 기업체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바로 기술집약적 기업의 구현이다. 한글과 컴퓨터의 경우 R&D비율이 30%로 총종업원 대비 연구인력이 70%나 된다.이것이 90년 4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회사가 외국산 워드프로세서를 제압하고 한글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78%를 장악한 토양이 됐다.터보테크는 일본 화낙사가 독점하고 있던 공작기계용 수치제어기기(CNC)를 독자개발,지난 94년 이후 매년 81%의 매출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는 회사.컴퓨터 설계·제작(CAD/CAM)과 CNC는 업계의 추종을 불허한다.연구인력의 44%를 석.박사가 차지하는 풍부한 기술력이 뒷받침한다.서울대 제어계측학과 선후배로 짜여진 우리기술은 「우리기술로 세계를 제패한다」는 다부진 각오로 지난 93년 출범한 전형적인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이다.박사급 5명,석사급 7명 등 50명의 직원이 고작이긴 하지만 지난 93년 원자력발전소의 디지털 경보시스템을 국산화해낼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영광원전 1,2호기 및 고리원전 3,4호기의 경보기는 이 회사 작품. 89년 설립된 건인은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로 매년 100% 이상의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기업.지난 95년 세계 최초로 동화상 가용반주기를 개발해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다른 업체들도 기술력이나 제품력이 탁월하기는 마찬 가지.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백만기 통산부 기술품질국장은 『전시회에 참가한 벤처기업은 우리경제의 살길이다』고 전제하고 『정부는 이같은 벤처기업이 확대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개발,시행하겠다』고 말했다.
  • 핸디소프트 전영표 이사(빌 게이츠 꿈꾸는 한국의 도전자)

    ◎그룹웨어 1억5천만불 수출 기염/시대 앞지른 핸디오피스 94년부터 독주/기술경쟁 4년만에 일 첫 진출… 미·중 노크 소프트웨어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치고 해외시장진출을 꿈꾸지 않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좁은 시장,소비자들 사이에 만연돼 있는 불법복제,미완숙의 기술수준 등 어려운 국내여건은 이들에게 해외시장진출에 강한 집착을 낳기도 하고 머릿속 공상에 그치게도 한다.우리 소프트웨어업체에 해외시장은 희망과 좌절의 표상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그룹웨어 제품 「핸디*솔루션」으로 일본시장진출에 성공한 핸디소프트(대표 안영경)는 그래서 다른 회사에겐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이러한 성공 배경에는 새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정확한 시장예측등 경영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전영표 이사 겸 기술연구소소장(34)과 같은 젊고 뛰어난 기술인력의 승리이기도 하다. 전이사가 핸디소프트에 입사한 것은 지난 91년 11월.한국과학기술원(KAIST)선후배사이로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안사장이 회사창업 9개월만에 그를 이사로 전격영입했던 것.윈도가 국내에 알려지기 전인 80년대말부터 그는 과학원 석사과정을 밟으며 아르바이트 삼아 소프트웨어업체에서 윈도용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당시로선 국내에 몇 안되는 윈도 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었다.일찍이 윈도가 운영프로그램의 대세임을 간파한 안사장은 세계적 소프트웨어회사로의 자신의 야망에 날개를 달아줄 사람으로 전이사를 선택했던 것이다. 개인보다는 기업과 같은 조직시장을 표적으로 삼은 회사전략에 따라 초기에 그는 그룹웨어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통합 사무자동화(OA)패키지 개발에 주력했다.「핸디펜」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제품은 워드프로세서에 다양한 문서양식의 업무처리기능인 폼,드로잉,레이아웃 등을 결합하고 초보적 수준의 전자메일 및 전자결재기능까지 합친 것이었다. 『핸디펜이 나올 당시 기업에서 이를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제품이 시장을 앞질러 별 재미를 보지 못했어요』 그러나 92년말부터 기업에 일기 시작한 근거리통신망(LAN)구축붐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근거리통신망의 확산조짐이 보이면서 협동작업이 가능하고 결제 및 구성원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이 회사 안팎에서 제기됐습니다.더구나 일부 외국회사 그룹웨어들은 사용이 불편해 국내시장에 뿌리박지 못하고 있었거든요.그래서 본격적인 그룹웨어 개발에 착수,핸디펜 개발경험을 바탕으로 전자메일 및 전자결재기능을 크게 강화한 「핸디*오피스」를 내놓았죠』 93년 12월 보람은행 전산시스템에 채택되면서 모습을 드러낸 핸디◎오피스는 온전한 의미의 그룹웨어 제품으론 국내에서 처음 나온 것이었다.사용의 편리성이나 독특한 우리만의 결제시스템을 제품에 적용한 것이 한동안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수 있었던 이유가 된다. 『94년 한해동안 그룹웨어 시장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어요.그러나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요.선발업체인만큼 기술적으로 앞서 있지만 그 격차가 자꾸 줄어들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짧고 달콤했던 독점의 시대가 가고 경쟁의 거센 맞바람에 직면한 핸디소프트에게 새로운 도약의 받침대가 된 것은 바로 지난해 성사된 일본 아마다그룹과의 그룹웨어 공급계약.세계적 판금 및 기계제작업체인 이 회사에 3년간 「핸디*솔루션」 1억5천만달러어치를 공급하기로 했다.엄청난 계약규모도 그렇지만 우리 소프트웨어회사의 해외시장진출 성공사례로 업계에 뜨거운 화제가 됐다. 전이사는 이미 지난 4년여간 일본시장진출을 위해 현지업체와 자사제품 홍보계약을 맺고 사전정지작업을 해 온 결실임을 강조한다.결코 갑자기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마다그룹 한 계열사와 유통계약도 체결,일본시장에 우리제품을 팔 수 있는 교두보도 마련했어요.일본에서의 경험을 살려 미국과 중국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전이사는 「세계적 소프트웨어 회사 핸디소프트」 그 명성을 향한 첫걸음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자못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구약성서 시편 세계 첫 재해석/이상일 서강대총장 박사학위 논문

    ◎사실에 바탕둔 논리 일관… 학문적 평가 독보적/희귀한 문장을 유물·고분 그림과 일일이 확인/제목 「일상생활의 축제­시학적·회화적·종교적 해석」 12년만에 집필 완성 서강대 이상일 총장(50)이 최근 세계최초로 역사적인 그림을 통해 성서를 재해석한 박사학위 논문을 로마교황청 성서대학원에 제출,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총장은 최근 구약성서의 「시편」을 「일상생활의 축제­시학적·회화적·종교적 해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재해석했다.성서에 나오는 희귀한 문장이나 단어들을 성서학자들이 발견한 유물·유적·고분의 그림과 일일이 확인해 시편을 다시 썼다. 시편은 그동안 150개의 종교적인 시로 구성돼 있고 모음과 띄어쓰기가 없는 셈족 언어로 씌여져 학자들 사이에 해석이 분분했다. 이런 가운데 이총장은 시편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일관된 논리로 재해석,학문적 평가에서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권위를 갖게 됐다. 지난 85년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하기 시작한 이총장은 12년이 지나서야 논문을 완성했다. 방대한 역사적 사료를 수집해야 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택했기 때문이다.나아가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하고 심사할 세계적 권위자가 아무도 없었던 탓이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이총장은 지난 78년 예수회 사제가 된 뒤 로마교황청 성서대학원으로 유학,83년 성서학 교수과정을 마쳤다.이곳에서 구약성서 시편의 대가인 삐에르 뿌르 교수와 더모 콕스 교수에게 사사,그 자신도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가 됐다. 이때 시편의 새로운 해석방법에 대해 영감을 얻은 이총장은 이집트·수메르 등 고대 유적지에서 성서학자들이 발견한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곧 이 작업이 너무나 방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84년 귀국했다. 귀국후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사료수집과 논문집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이총장이 지금까지 모은 역사적 그림만도 4만5천장에 이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논문의 완성을 눈앞에 둔 지난 93년과 94년에 지도교수였던 삐에르 뿌르교수와 더모 콕스교수가 잇따라 암으로 사망했다.그뒤 이총장은 잠시 학문적인 침체기에 빠졌다.이를 딛고 집필 12년만인 지난 2월말에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로마교황청도 이러한 이총장의 종교적 업적을 인정,논문제출을 요청했다.심사등 절차를 거쳐 박사학위를 수여할 예정이다.또 2권의 책으로도 출간해 일반인에게도 소개할 참이다. 이총장은 『「가장 유명한 성서학자는 가장 거짓말을 잘하는 학자」라는 말이 있듯이 그동안 성서의 해석에는 항상 논란이 있었다』면서 『시편을 보다 과학적이고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이 논문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 무대막 전문업체 독 「게리에츠」사(G7으로 가는 길:59)

    ◎틈새시장 공략 세계무대 독보적 위치/“다른회사 제품은 절대 흉내 안낸다” 불문율로/직원 고작 85명… 무대막관련 특허 100여개 보유 중소기업이 특유의 전문성과 특허기술을 살려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사례는 흔치 않다.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기는 독일도 여느 나라와 다를바 없다.그 어려움을 딛고 세계시장 개척에 성공한 사례를 독일의 중소기업 게리에츠사에서 찾을수 있다. 케리에츠는 대기업이 섣불리 뛰어들기 힘든 무대막과 무대막을 움직이는 자동레일을 특화해 생산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굳히고 있다.대기업이나 영세기업 사이의 틈새를 노려 아무도 만들지 않는 것을 생산한 것이 적중했다.「다른 회사가 만든 것을 흉내내지 않는다」는 것은 게리에츠 사람들의 오랜 불문률이다. ○불·미 등에 제작공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리의 바스티유극장,뉴욕 메트로폴리탄극장,모스크바 볼쇼이극장,대만의 장개석 기념관 등을 화려하게 장식한 무대막의 한쪽 구석을 눈여겨 본 사람은 어김없이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커튼 표시 한가운데박힌 「게리에츠」(Gerriets)란 글씨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그 크고 화려한 무대막을 생산하는 조그만 기업이름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그러나 무대예술가들은 무대막 분야에서 세계최고의 기술을 가진,독일이 자랑하는 중소기업 「게리에츠」란 것을 알고 있다.게리에츠의 무대막 제작기술은 이미 이 분야에서는 난공불락일 정도로 명성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85명에 불과한 근로자들은 천조각들을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꿰메어 각종 세계적 행사들이 치러지는 무대들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무대막을 만들어낸다.지난 50여년간 남들이 눈여겨 보지 않은 무대막이란 틈새시장을 끈기있게 파고 들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혼신을 다한 결과이다. 무대막 장치와 관련한 특허기술은 100여개나 된다.천조각을 표시안나게 잇는 기술,미끄러지지 않도록 특수재료를 쓰는 무대바닥용 깔판,불에 타지 않는 재료 등은 바로 이 회사가 갖고 있는 특허이다. 게리에츠사는 독일 남서부 프라이부르크 인근 작은 도시 움키르히에 있다.지난 1950년 현재 사장인 발터 게리에츠(70)의 아버지 한스 게리에츠가 창립한 회사이다. 한스 게리에츠는 라트비아 리가지역의 섬유업자였다.2차 대전 직후 부인의 고향인 프라이부르크에 정착한 그는 시립극장 재건시 참여,섬유업에 밝다는 이유로 무대막을 제작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됐다. ○고객 요구땐 24시간 상담 아들 발터 게리에츠는 지난 61년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받았다.그는 섬유도매업을 겸해온 회사를 극장 무대막 제작 및 설비제작 전문업체로 특화했다.지금은 인근 프랑스 알사스지방과 미국 뉴저지주,런던 등에 제작공장을 둘 정도로 「국제화」된 중소기업이 됐다.최근에는 아들을 경영에 참여시켜 3대째 가업으로 이어 가고 있다. 극장 무대막 제작기술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가로가 12m,세로가 10m가 넘는 것이 보통이다.조명을 쐈을때 빛을 잘 받아야 하고 주름이 지지 않아야 훌륭한 무대막이 된다.무대막 받침천인 특수 PVC를 표시 안나게 고압을 이용해 붙이는 기술은 아무도 흉내 낼수 없는 이 회사만의 특허기술이자 노하우(Know­How)이다. 특히 무대막 조절용 자동레일은 신경을 써서 만들어야 한다.한번 고장나면 사람이 직접 10m 이상 높이까지 올라가서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더구나 공연 도중에 고장이라도 나면 낭패이기 때문에 고도의 정밀성을 요한다. 경쟁업체들이 대부분 영세업자란 점도 게리에츠의 성공을 도왔다.영세업체들은 소규모 극장의 장치들을 생산할 수 있지만 대형 극장용은 어림도 없다.대기업들은 고도기술과 소량생산이라는 업종특성 때문에 실익이 없어 진출을 꺼리고 있다. 게리에츠 사장은 『무대막과 각종 부수장치의 제작은 기술과 신뢰가 바탕이되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라며 『이 분야에 관한 한 대기업들이 두렵지 않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가격갱쟁도 “자신” 고객의 기술적인 요구를 충족시켜 주려는 게리에츠의 노력과 성실한 고객관리가 자신감을 갖게 한 요인이다.대부분의 독일 기업은 업무시간외 초과근무는 있을수 없다.게리에츠는 달랐다.업무시간이 끝나도 고객에게서 연락이 오면 찾아가서 상담하는 24시간 근무자세로 고객을 감동시켰다. 이 회사는 가격경쟁에서도 독보적이다.무대막과 자동레일의 가격은 개당 각각 1만∼1만5천마르크(5백30만∼8백만원).그러나 이보다 30%이상 낮춰도 버텨낼수 있다고 자신한다. 게리에츠사는 연간 무대막 1만6천m를 생산하며 총 매출액은 2천8백만마르크(1백50억원)에 이른다.대형극장,TV방송국,박람회장,각종 회의장,야외공연장,각종 연예쇼 등이 주요 시장이다. ◎발터 게리에츠 사장/“세계 유명 극장은 모두 우리제품 써요”/특허 기술 개발위해 꾸준히 투자 지난 50년부터 아버지 밑에서 게리에츠사의 경영에 참여해 온 발터 게리에츠 사장(70)은 『틈새 상품의 특화와 성실한 고객관리가 게리에츠사의 성공비결』이라고 말했다. ­게리에츠의 주요 고객은. ▲파리의 바스티유,모스크바 볼쇼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장은 모두 우리 제품을 쓴다.대충 120여곳이나 된다.한국의 예술의 전당에도 우리가 무대막을 설치했다.최근에는 일본 후지 TV에서도 방송용 무대막을 요청하는 등 동남아 시장에도 진출했다. ­판매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시장이 특이해 판매선과의 인간적 유대가 가장 중요하다.우리는 체코출신의 무대예술가 스보보다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무대예술가들과 절친하며 이들을 매개로 판매망을 찾는다.판매형식은 주로 주문에 따른다. ­중소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전문성과 특허기술개발을 위해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자신있다고 자만하면 금방 뒤진다.정부의 중소기업정책도 중요하다.한국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독일은 세금이 너무 높다.세금감면정책으로 중소기업을 장려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라 사장과 종업원간의 인간적 관계가 중요할텐데. ▲종업원들은 모두 이 도시에 산다.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도 가족과 같은 인간관계가 아니면 일하기 힘들다.사장인 나도 직접 사원식당에서 식사를 날라다 먹는다.직원들의 어려운 일은 언제라도 상담하고 도와준다. ­사원들의 급여나 복지혜택은. ▲여자 재봉사에게 월 평균 3천5백마르크(1백85만원),남자들에게는 4천∼4천5백마르크를 준다.휴가때는 1천마르크를 더 주고 연말에는 한달치 급여를 별도로 지급한다.순익계산후 남으면 모두가 사원들의 몫이다.세무서에 돈을 주느니 종업원들에게 준다. ­사원들의 숙식비는 회사에서 제공하는가. ▲독일에는 공짜가 없다.사원식당의 점심은 10마르크(5천3백원)이다.먹여주고 재워주면 회사의 경영에 큰 부담을 준다.모두가 각자 부담이다. ­사원선발은 어떻게 하나. 『입사시 2∼3개월간 수습기간을 거친다.이 기간동안 회사는 지원자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지원자는 일하고 싶은 회사인가를 판단한다.따라서 나갈 사람은 3개월이내에 나가고 남는 사람은 10∼20년간 식구처럼 함께 일한다.
  • 오페라 연출가 조성진(이세기의 인물탐구:121)

    ◎파격과 창조를 실천하는 무대예인/미와 룰에 강한 집착… 한치 오차도 거부/“하고싶은 일만 한다” 자칭 에피큐리안 오페라연출가 조성진을 보면 「이노슨트」란 단어가 생각난다.그는 예술의 전당 공연본부장이자 첫 예술감독으로서 「파격」과 「새로움」을 실천하면서도 순수무결과 이모셔널한 열정을 잃지않는 문학청년타입이다. 그는 스스로를 「에피큐리안」이라고 부른다.그의 부는 「읽어도 읽어도 남을 책,들어도 들어도 남을 음악이 있다」는 것이며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면서 생을 살아가려는 긍정적 자세가 확고하다. 따라서 행동과 말은 「직설적」이고 억지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극기사상」을 싫어한다.하고싶은 일만을 수용하기 때문에 그에게서 「좌절」과 「실패」,「스트레스」는 있을수 없다.또 지독하게 룰에 집착한 나머지 0.1㎜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성은 오페라를 연출하는 자리에서 「사사건건 붙들고 늘어지는」 바람에 「까다로운 연출자」로 소문나 있다.정연한 이론과 디테일한 주의력으로 철두철미를 강조하는 그와 대립하거나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이미 무의미한 일이다. 그가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이 되면서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기성가수를 상대로한 오디션실시다.지금까지는 오페라가수들이 그룹을 이루어 선후배순으로 배역을 나누어가졌으나 그는 극장위주로 가수를 고용하는 유럽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물론 신인발굴을 위한 오디션이 아니라 가수가 무대에서 모든 기량을 적라라하게 펼칠수 있는가,시간관념이 투철하여 참을성이 있는가를 까다롭게 따진후 상대방을 기용하는 식이다.오페라는 돈을 받고 무대에 올리는 상품인만큼 완벽을 기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조건이 반드시 구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그런 과정에서 「오페라가 끝나면 좋은 친구들을 잃는 것」이 그에겐 서글픈 일이지만 「최선을 다한 무대가 최상」임을 줄기차게 밀어붙인다.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평자의 비평이 아닌 관객의 비난이다.수준높은 관객의 취향에 부응하려면 「투철한 프로정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순수·열정 겸비 “문학청년” 그는 80년 빈유학기간 일시귀국해서 서울오페라단의 「아이다」를 연출하고 그후 국립오페라단의 「리골레토」에 손댔으나 우리 오페라무대의 오랜 타성이 체질에 맞지않는다는 이유로 한동안 대학오페라에 빠져들고있었다. 그리고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에 임명되자 긴 숙고끝에 비로소 조성진시대를 열게된 것이다. 예술감독 첫작품인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 지난 연말부터 정초로 이어진 오페레타 「박쥐」를 본 사람이라면 하나의 전통극이 창작품으로 다시 탄생되는 신선한 「쇼킹」을 체험할 수 있었다. 배역부터가 안형열 김관동 김원경 등 오페라본고장인 빈과 밀라노무대에 섰던 노련한 가수들을 필두로 코미디언 이홍렬 슈퍼모델 오미란을 다양하게 캐스팅하고 3막 파티장면에선 임동창과 사물놀이,판소리의 박윤초,대중가수 인순이 등 대중과 친밀한 얼굴을 객원초대하여 파티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대중을 지나치게 의식한 상업성이 물씬 풍기는 것일수도 있다.그러나 「이제까지의 구태의연을 과감하게 깨뜨렸다」는 평과 「뭐 저런게 있나?」라는 반대론이 팽팽한 가운데 결국 「오페레타는 재미있고 경쾌하다」는 인상을 객석에 각인시킨 결과를 낳았다.「관객이 좋아하도록 무대를 꾸미는 것」이 그의 식이며 「박쥐」는 유료관객 1천200명을 상회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가 오페라연출을 결심한 것은 서울대 독문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다.서울에서 언론인이며 문인인 조풍연씨의 2녀2남중 장남.「책부자집」인 그의 집에는 「학원」잡지나 소설책 표지에서 볼수있던 김내성 박계주씨 등이 드나들었고 부친은 임원식 현제명씨와도 각별하게 지냈다. 서울사대부국에 들어가기 이전에 최영우문하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는가하면 한때는 만화가를 꿈꾸기도 했으나 아버지를 따라 현제명의 「왕자호동」을 본것이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고급예술」에 대한 선망이 싹텄다.경기중시절에는 포터불 전축에 매달려 「음악광」이 되었고 이미 「문인의 속성」이 몸에 밴 그는 음악을 듣는다기보다 들여다보면서 「듣는것」과 「들어보는것」의 차이를 『오페라연출로 유지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학구적인 태도는 도서관에 처박혀 교과서에만 파고들기 보다 「병서를 공부하듯 실용적인 방식」으로 음악의 레파토리나 이와 관련된 예술·사회과학전반에 걸쳐 넓고 깊게 섭렵해온 셈이다.하루 5시간이상 음악을 들으면서 악보를 외우고 오페라대본을 분석파악하여 오페라연출가로서의 자질을 착실하게 다져왔다.취미도 재빠른 솜씨로 단숨에 그려나가는 누드크로키를 즐긴다.가족은 유학시절에 만난 결혼한 피아니스트 전영화씨(성신여대 교수)와 딸만 둘. 그는 「비우티」와 「폼」(형태)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여전히 가장 완벽한것을 이룬다는 자신의 목적에서 한치의 양보없이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거나 화젯거리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기전에 「질적으로 알차고 차원있는 공연을 이루어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이렇게 파란과 곡절없이 엘리트코스만을 똑바로 걸어온 그를 행해 그의 친구들은 「그에겐 콤플렉스가 없는 것이 콤플렉스」라고 꼬집기도 한다.그러나 무엇을 하더라도 여전히 「성취」때문이 아니라 빠져드는 그자체,그 과정을 사랑하는 그는 탐미주의적 허무를 지닐뿐 결코 탐욕주의는 아닌것 같다. ○에술의 전당 첫 예술감독 어느 분야에서나 독특하게 두드러진 인물은 있게 마련이다.예술분야에서의 독보적 존재란 개성과 컬러의 특성, 남다른 실력과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며 천재성과 고집과 보수성이 복합된 인물이 바로 조성진이라고 할수 있다. 그는 무엇이 될것인가를 확실히 알고 실천해 가는 예술가로서 「인생의 가장 심오하고 난해한 주제들을 가장 평이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하는 괴테」와 「생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진보적인 색깔로 칠하는 모차르트」를 좋아하고 그가 좋아하는 모든것을 무대위에서 실천하면서 가장 물오른 시기에 수직상승만을 그리는 이시대 새로운 타입의 「에피큐리언」에 틀림없다. □연보 ▲47년 서울출생 ▲71년 서울대 독문과 졸업 ▲71­74년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오페라연출,빈대학 음악학전공 ▲75­82년 독일 함부르크대학 음악학 전공 ▲78년 세종문화회관개관기념 빈오페라단초청 오페레타 「박쥐」조연출 ▲82­95년 한국방송공사 및 교육방송 음악교육프로그램 진행, 현재 CBS 「오페라하우스」 진행 ▲83년 국립오페라단 「리골레토」 연출 ▲86년 경희대 음대 「코지판투테」 연출 ▲87년 오페라스튜디오 「마루」개관 및 오페라단 「마루」창단기념 「독일가곡의 밤」 연주,KBS신인음악회 출연 ▲88년 독일문화원에서 「피가로의 결혼」·리틀엔젤스회관 「코지판투테」 연출 ▲89­91년 미국 인디애나대 대학원 오페라연출전공·뮤직아트센터연수,「피렌체의 비극」 연출 ▲92년 부산음협주최 「부산성 사람들」 연출(지휘 최정은) ▲94년 윤이상음악축제 「나비의 꿈」 「유동의 꿈」 연출 ▲96년 예술의 전당 기획공연 「피가로의 결혼」·오페라입문 프로그램 「오페라 산책」구성·진행·연출 ▲96년 오페레타 「박쥐」 제작·공연 〈현재〉 예술의 전당 공연사업본부장 겸 예술감독,서울대 음대 강사,중앙대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저서〉 오페라감상법」(96년 대원사) 「서양음악감상법」 「오페라란 무엇인가」(8월 출간예정)
  • 대우,현대자 아성 허물까

    ◎97 매출 65% 늘려 2천억 추월 시나리오/해외생산 본격화 근거… 현대선 “수성” 낙관 「97년.우리나라 자동차산업에 일대사건이 일어난다.30년간 국내 자동차산업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혀온 현대자동차의 30년 아성이 무너진다.주인공은 95년까지 국내 3대 자동차사중 최후발주자였던 대우자동차.GM과 결별한지 6년만에 현대자동차를 총매출에서 앞지른다」. 물론 대우의 「현대 뒤집기」는 아직은 가상 시나리오다.25일 발표된 양사의 내년도 매출목표에서 대우자동차는 올해보다 무려 65%가량 늘려 처음으로 현대를 2천억원 정도 앞지르게 짰다.특히 현대가 내년을 세계 10대 자동차메이커로의 진입 달성을 위한 기반 구축의 해로 삼고 있어 대우의 도전과 현대의 수성이 흥미롭다. 현대는 내년 목표를 올 추정치인 12조원보다 10% 증가한 13조2천억원으로 확정했다.승용차 1백14만대,상용차 31만대 등 총1백45만대를 생산,국내서 80만대를 팔고 65만대는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대우는 국내 9조4천억원,해외 4조원등 올해 추정치보다 65%가 늘어난13조4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밝혔다.국내에서 88만5천대,해외에서 50만8천대 등 올해보다 57.9%가 증가한 1백39만3천대를 생산,판매한다는 계획.국내서도 48만대를 팔아 승용차시장 40%를 차지해 1위를 하겠다는 야망이다. 대우 관계자들은 「뒤집기」시도가 무모하지 않다고 말한다.세계경영의 70%를 차지하는 해외자동차생산이 내년부터 본격화되고 내수시장에서 라노스의 인기등 신차 동향을 고려하면 욕심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내년에 해외공장에서만 50만8천대를 생산할 계획이다.필리핀과 이란공장의 가동으로 10개국 11개공장에서 차가 생산된다. 현대 관계자들은 『대우가 내년도에 목표를 달성한다해도 현대의 목표도 추정치인만큼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며 『설령 대우가 매출목표를 달성한다해도 해외생산차중 13만대가 대우모델이 아니고 설비수출도 포함되어 있어 순수 자동차매출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반박한다.또 현대정공의 자동차부문 매출이 포함되지 않아 의미가 없고 업계1위자리는 게속 지킬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자동차업계는 빅3중 2위자리를 지켜왔던 기아자동차의 내년 매출목표가 8조4천억원으로 이젠 현대·대우의 빅2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한국자동차의 맹주인 현대와 세계경영으로 강력한 도전자로 성장한 대우의 경쟁이 흥미롭다.
  • 포철 의식개혁­경제성 마인드 운동(고비용을 깨자:7)

    ◎“잘 나갈때 더 뛰자”… 유비무환 전략/부서마다 비용 다이어트… 올 106억 절감/77개 실천항목 설정… 이달 2단계 돌입 『광양제철소의 철강단지와 사원주택단지를 돌아보니 놀랍고 감격스럽다.마르크스와 레닌이 추구해온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시킨 것같다』 소련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인 유진 바자노프 부부가 몇해전 광양제철소를 돌아보고 한 얘기다.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 얘기는 그대로 적용된다.포철은 경쟁력이나 사원복지에서 여전히 최고다. ○세계 40대 투자종목 뽑혀 미국의 모건 스탠리증권사는 최근 포철을 마이크로소프트나 듀폰 등과 함께 경쟁력 있는 세계 40대투자종목으로 선정했다.모건 스탠리는 포철이 설비의 경제규모·원가·노동생산성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경쟁사가 포철을 모방하는데 최소 15년이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다.그럼에도 회사의 주가는 현저히 저평가돼 있어 세계 철강업체중 최고의 투자가치가 있다고 밝혔다.특히 포철의 향후 5년간 주당 순이익증가율이 20%이상 될 것으로 보았다. 포철의 경쟁력은 여러 지표에서 단연 돋보인다.포철의 t당 노동소요시간은 2.1시간으로 일관제철소중 최고.미국(4.18시간)이나 브라질(5.6시간)·일본(4.2시간)의 절반수준이며 중국(55.2시간)이나 인도(48시간)와는 비교가 안된다.t당 총비용도 미국(529달러)·브라질(370달러)·영국(599달러)·일본(748달러)·호주(588달러)보다 낮은 360달러이며 총비용에서 노무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8%로 경쟁국(9∼27%)중 가장 낮다.포철의 대외성적표라 할 국제신용도도 세계 철강업계에서 최고다.무디스사의 포철신용등급은 A2로 신일본제철(A3)보다 높다.최근 5년간 t당 평균영업이익은 57.7달러로 브라질의 유시미나스(73.2달러),대만의 차이나스틸(68달러)에 이어 세계 3위였다. 이렇게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포철은 요즘도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고 있다」.불황에 대비하고 초일류의 철강기업으로 한차례 더 도약하기 위해서다. ○이익 상관없이 계속 노력 김권식 광양제철소장은 서류결재를 안한다.그는 모든 결재를 컴퓨터로 한다.컴퓨터결재는 3년전 그가 취임하고부터 계속되고 있다.결재중 의문나는 부분은 전화로 해결한다. 『길어야 1시간입니다.임직원이 결재하느라 뛰어다니는 시간이 그만큼 절약되는 셈이죠』 작은 것이지만 김소장의 컴퓨터결재는 포철의 인력운용과 비용절감에 「보이지 않는,큰 일조」를 하고 있다. 김소장을 만난 날은 정부가 현대제철소 건립을 불허하겠다고 밝힌 날이었다.정부방침에 대한 소감을 묻자 『허용하든,불허하든 포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그는 『포철의 경쟁상대는 외국업체』라며 『쉬어가고 싶어도 쉬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이익이 많이 나도,적게 나도 기업으로 존재하는 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김만제 회장의 포철이 그러나 무작정 물을 짜내자는 건 아니다.이른바 경제성 마인드가 대전제다.범정부적으로 추진되는 「경쟁력 10%이상 높이기운동」과 일맥상통하는 포철의 이 운동은 지난 3월부터 시작됐다.경제적 비용으로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내자는 비즈니스의식을 기업문화에 연결시킨 일종의 의식개혁이다. ○“공급과잉시대 곧 온다” 이 운동은 앞으로 3∼4년간 집중될 투자사업에서 포철이 노력하지 않으면 조강 2천8백만t 생산체제에서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절박한 판단에서 비롯됐다.그렇지 않아도 세계 철강수요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어 언제 불황의 그림자가 엄습할지 모를 상황이다.철강수요량은 국민 1인당 1t을 넘기 어렵다.일본 등 선진국이 그랬고 우리도 그렇게 가고 있다.그러나 인천제철이나 한보철강 등 국내 철강업체의 증설계획을 합치면 국내 철강공급능력은 멀지 않아 5천만t을 넘게 된다.자연스럽게 공급과잉시대가 열릴 것이란 게 포철의 판단이다. 때문에 경제성마인드운동은 어려울 때를 대비,생산성을 높이자는 유비무환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각 부서의 특성에 맞게 「Ever Green운동」「Hot Top운동」 등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선 해외파견교육을 줄이고 해외출장도 적정인원으로 통제했다.포상이나 각종 행사도 검소하게 치르고 간부사원의 개인명의 법인카드를 폐지,부서공용의 법인카드로 일원화했다.내년도 임원보수도 동결했다.저축 10% 더하기,소모품 20% 절감,불필요한 연장근로 없애기,집중근무,연월차휴가 적극권장 등도 실천사례다.이를 통해 올해 사무용품 등 소모품비 9억6천만원,통신비 2억7천만원을 절약하는 등 총 1백6억원쯤 절약될 것이라고 포철은 밝힌다. ○수요산업 경쟁력도 지원 물론 이같은 절약액이 포철의 순익규모(지난해 8천3백억원)에 비하면 큰 금액이 아니다.또 그만한 돈을 절약하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이는 포철이 최근 주요철강제품의 가격을 잇달아 내린데서 알 수 있다.포철은 순익감소를 감수하면서 수요산업의 경쟁력지원을 위해 가격인하를 단행했다.가격인하 등으로 올 순이익이 6천5백억원으로 줄 전망이다. 경제성마인드운동은 이달부터 2단계에 접어들었다.1인 다기능화,탄력적 가격체제,능력중심 인사제도 확립 등 77개 세부실천항목을 설정해 중장기관리에 들어갔다. 김종진 사장을 위원장으로 포스틸과 포스코개발·신세기통신·포스에너지·포스테이타 등 5대출자회사가 참여한 「경쟁력향상추진위원회」와 별도의 실무전담반까지 만들었다.「오늘의 경제성은 내일의 부가가치」「너와 나의 경제성의식,일류기업 앞당긴다」 등등… 포철의 어느 사업장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표어다. ○광양 1미니밀 준공 개가 때문에 포철은 체질개선을 통해 내실을 다지고 신제철법을 통한 고부가가치상품개발에 어느 때보다 주력하고 있다.지난해 단일공장규모로 세계최대인 60만t규모의 용융환원(용융환원·코크스공정 생략)제철설비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올해에는 미니밀을 준공했다.광양1미니밀의 준공으로 내년부터 생산량이 2천3백만t에서 2천6백만t으로 늘게 돼 세계1위인 신일본제철과 대등한 수준에 올라선다.광양5고로가 가동되는 99년이후에는 2천8백만t으로 명실상부한 세계1위 철강기업이 된다. 포철이 준공한 미니밀공정 역시 5고로에서 만들어낸 고품질의 쇳물을 원료로 미니밀에서 열연강판을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과정.기존 미니밀이 고철로 일반강을 만들기 때문에 품질면에서도 포철과 비교가 안된다.조만간 착공될 제2미니밀에서는 두께 1㎜의 얇은 제품까지 생산할 수 있어 자동차와 가전의 내판재용 냉연대체재까지 생산할 수 있다.이밖에 투피스 캔이나 타이어 고무제품의 보강재로 쓰이는 극세선의 개발사례와 같이 고부가가치제품개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광양제철 유일한 기성 김일학 제선부장/“무재해서 「저비용·고효율」운동 발전”/비싼 원료 적게쓰면서 고품질유지 주력/눈앞의 단가 상승보다 장기적 절감 우선 광양제철소 제선부의 김일학 부장(56).그는 요즘 어떻게 하면 제선원가를 줄일까 고심하고 있다. 그는 광양제철소에 유일한 기술명장인 기성이다.기성이라는 직급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제선분야에서는 독보적 존재다.용광로에서 나오는 쇳물의 빛깔만 보고도 온도를 측정해낼 정도로 쇳물의 달인이다. 그가 일하는 제선부에서도 요즘 경제성마인드운동이 한창이다.「Ever Green운동」이 그것. 『제선공정은 철광석과 코크스 등 원료제조에서부터 쇳물 만드는 공정 전반을 맡고 있는 부서입니다.제철소의 심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이런 공정 때문에 먼지가 많고 안전사고도 적지 않습니다.그래서 깨끗한 제선부,재해 없는 제선부를 만들자는 운동으로 시작돼 경제성마인드운동으로 발전됐습니다』 그가 속한 제선부는 값이 비싼 코크스를 가능한 적게 쓰면서도 같은 품질의 쇳물을 만들어내고 철광석 등 원자재를 운반하는 설비를 개선해 원가절감을 꾀하고 있다.이같은 노력으로 선철 t당 제조원가가 지난해말 130달러에서 125달러로 줄어들었다. 그는 『철광석과 유연탄을 부두에서 원료창고로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의 롤러만 해도 결함사항을 보완해 개체하면 당장은 비록 단가가 올라가지만 수명이 연장돼 효율성이 높아지는 이점이 있다』며 『제선부의 경제성마인드운동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72년8월 포철에 입사,핵심부서인 제선부에서 줄곧 일해왔다.지난해 10월 그 어려운 기성이 됐다. 포철은 기술축적과 현장중시 경영차원에서 기성·기성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15년이상 근속기술직 가운데 현장경험과 작업개선능력·인화력이 뛰어나야 한다.기성이 되면 정년이 65세(기성보 60세,일반직 56세)로 연장된다.활동비와 차량유지비가 지원되며 자녀전원 장학금지급(직원은 2명 한도),자녀특별채용 등의 혜택도 있다.포철에는 김씨를 포함,4명의 기성과 15명의 기성보가 있다.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힘들다는게 현장직원의 얘기다.김씨는 제선부의 기술고문역할을 맡고 있다.쇳물도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모든 기술적 자문은 그를 거친다.
  • 소모품비 저렴·연속용지 사용/도트프린터 여전히 인기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전속에 수많은 신제품들이 명멸하는 가운데서도 15년동안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컴퓨터 주변기기가 있다. 80년초 컴퓨터 사용자들이 가장 선호했던 프린터의 대명사 「도트프린터」가 바로 그 주인공. 화려한 컬러 잉크젯프린터와 값싼 레이저프린터의 등장으로 프린터시장은 도트프린터의 종말을 예고한 듯했지만 여전히 특수분야에서 고유의 기능을 지닌 채 나름대로의 시장을 고수하고 있다. 도트프린터는 소모품비용이 저렴하고 연속용지를 사용할 수 있어 관공서 또는 기업체의 세금계산서,급여명세서 발급 등 고유영역에서는 잉크젯프린터나 레이저프린터보다 더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특히 음식점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먹지를 내장한 세금계산서는 충격식 헤드를 내장한 도트프린터만이 인쇄가 가능해 이 용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도트프린터는 최근 몇년동안 시장이 늘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소하지도 않은 실정이라는 것이다. 내수시장에서 연간 판매되는 도트프린터는 모두 7만여대로 3백50억원 규모. 이 가운데 4만8천여대는 삼보컴퓨터가,나머지 2만2천여대는 제일정밀과 태흥 등이 나눠갖고 있다. 이와 관련,삼보컴퓨터 관계자는 『최근 몇년동안 도트프린터의 수요는 증가하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있으며 앞으로 이같은 추세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면서 『이는 도트프린터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기능으로 인한 고유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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