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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도전의 과실/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여자골프 중계를 보다 보면 ‘철의 여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선수가 소렌스탐이라는 선수다. 떡 벌어진 어깨와 팔자걸음을 하는 육중한 다리 등 체격 면도 그렇지만 상대 선수들을 압도하는 기싸움 면에서도 그녀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녀에게 마지막날 챔피언조 경기에서 참패하여 다음 대회에서는 예선통과도 못할 정도로 ‘후유증’을 겪는 선수도 여럿 보았다. 그 소렌스탐도 통한의 눈물을 뿌린 적이 있었다.2003년 남자 PGA 무대에 도전했다 예선탈락했던 때다. 이를 두고 무모했느니, 상업적이라느니 말들이 많았다. 여자선수의 남성영역 도전을 비웃는 글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도전은 정말 헛된 것이었을까.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이런 비판이 모두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한 선수는 그녀와 맞서면 마치 남자선수와 경기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해답의 열쇠가 있다. 도전을 치러내며 소렌스탐은 다른 여자 선수들을 훌쩍 앞질러 전혀 다른 차원의 선수가 돼 있었던 것이다. 최근 5경기 우승확률 100%. 그녀는 도전의 과실을 착실히 거둬들이고 있는 셈이다. 역시 도전은 가치가 있었다. 굴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할 일이다. 신연숙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더글러스 모크 지음

    ‘동물의 왕국’ 같은 TV다큐멘터리를 보면 동물세계의 끔찍한 싸움은 거의 종과 종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처럼 그려진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치타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가젤을 쫓는 장면 등은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같은 종 내에서 일어나는, 나아가 혈족간에 일어나는 유아살해나 형제살해 같은 싸움을 다루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자연계에서는 동족상잔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막 알을 깨고 나온 새들의 둥지에서도 하이에나나 여우의 굴에서도 어김없이 처절한 생존투쟁이 벌어진다.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더글러스 모크 지음, 정성묵 옮김, 산해 펴냄)는 동물의 세계, 그 중에서도 특히 혈족 사이에서 드러나는 공공연한 잔인성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 오클라호마대 동물학과 교수인 저자는 수십년 동안 동물 가족전쟁의 현장을 쫓아다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진화론의 가설을 현장관찰을 통해 경험적으로 검증해온 그의 업적은 독보적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때론 가장 무서운 적이 되기도 한다. 먹이가 부족하고 천적이 들끓는 상황에서 종을 이어가기 위해 혈족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형이 동생의 몫을 빼앗고, 새끼가 무사히 자라날 가망이 없으면 아예 잡아먹어 버리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히 동물들이 비정해서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선택이다. 무척이나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꿀벌들의 자기희생도 가시고기의 눈물겨운 부성애도 알고 보면 진화의 냉정한 선택일 뿐이다. 요컨대 자연을 바라볼 때는 인간적인 잣대가 아니라 유전자라는 렌즈를 통해 보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이 책은 동물의 세계로부터 일정한 교훈을 이끌어낸다. 동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토록 혈육간의 전쟁을 벌이는데 인간의 골육상쟁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인간이 채택하는 이른바 이성적 행동양식이라는 것이 진정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적인 진화를 뒷받침해줄 것인가. 책을 읽다 보면 그 행간에서 인간들의 ‘이기적인’ 행태가 저절로 묻어난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이스라엘 항공산업 ‘올인’… 항공기 개조 ‘넘버1’

    이스라엘 항공산업 ‘올인’… 항공기 개조 ‘넘버1’

    |텔아비브 조승진특파원|“미국의 패트리엇보다 성능이 우수하다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기능이 서로 다르다고 얘기하고 싶다.” 이스라엘의 국영 최대 방위사업체인 IAI(Israel Aircraft Industries)사의 한 임원은 이 회사를 방문한 기자에게 자신들이 생산하는 미사일 요격 시스템인 ‘애로(ARROW)Ⅱ’가 패트리엇과 달리 대기권 밖에서의 고(高)고도 요격이 가능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패트리엇(PACⅢ)에 뒤질 게 없다는 자신감을 에둘러 표현한 것. 물론 이를 이스라엘 국민 특유의 지나친 자신감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스라엘 방위산업 현황을 찬찬히 뜯어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 듯싶다. 현재 이스라엘은 애로는 물론 공중조기경보통제기(AEW&C), 무인항공기(UAV)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또 항공기 개조 분야 역시 독보적이다. 일찍부터 공군력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우주항공 산업에 주력해 온 것이다. 이스라엘이 방위산업 분야에 유독 강점을 보이는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이스라엘은 주변국의 상시적 위협을 기회로 활용, 자주국방의 계기로 삼아 왔다. 아랍권의 위협을 상시적으로 느껴온 이스라엘은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해 요격 미사일 개발에 적극 나섰다. 이스라엘은 또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각종 제약 조건을 요령있게 비켜가며, 세계 무기산업의 ‘틈새시장’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독특한 전략을 폈다. 항공기 제조가 아닌 ‘개조’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무인항공기(UAV) 등 강대국이 비교적 손을 놓고 있던 미개척 분야에 투자해온 게 주효했다. 현재 한국과의 군수협력 분야를 살펴봐도 이같은 틈새시장 전략의 위력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국은 현재 이스라엘로부터 UAV는 물론 적이 자신을 감시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전투기용 레이더경보수신기(RWR), 적의 레이더를 무력화시키는 HARPY 등 상당한 양의 무기를 수입했다. 이들 장비의 경우 사실상 이스라엘이 거의 독점적으로 생산하거나 경쟁력이 월등한 무기들이다. 반면, 한국이 이스라엘에 수출하는 무기는 탄약이나 지뢰탐지기 등에 불과해 ‘무역 역조’가 심한 상태다. IAI의 모세 케렛 회장은 “이스라엘이 지역내 초강국으로 자리잡는 데 IAI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redtrain@seoul.co.kr
  • 서울공연 앞둔 英무용단 DV8 예술감독 로이드 뉴슨

    서울공연 앞둔 英무용단 DV8 예술감독 로이드 뉴슨

    영국의 신체극단 ‘DV8’이 세계 초연작 ‘저스트 포 쇼(Just for show)’로 한국 관객과 첫 대면한다.‘DV8’은 사회현실에 밀착한 주제의식과 독창적인 표현방식으로 세계 무용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단체.31일∼4월2일 LG아트센터 공연을 앞두고 무용수와 스태프 20명과 함께 서울에 온 로이드 뉴슨(49) 예술감독을 28일 만났다. 그는 1986년 ‘DV8’을 창단했다. 5년 만의 신작이다. 그동안 다룰 만한 사회적 이슈가 없었다는 뜻인가. -2001년 안식년을 제외하면 사실상 잠시도 쉬지 않았다. 신작을 구상하고, 자금을 모으고 세계 투어를 다니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우리가 관심가질 만한 사회적 이슈는 아주 많다. 한국에서의 경험도 다음 작품에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저스트 포 쇼’는 어떤 작품인가. -약점을 노출시키기보다는 가식을 보여주는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모습을 감추고, 더 나은 이미지를 보여주려 애쓰는 현실을 홀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무용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정부 기관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하다 뉴질랜드 무용단의 오디션에 참가했다.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사람들과의 소통에 한계를 느꼈는데 무용을 통해 좀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심리치료사의 이력이 무용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심리치료사로 계속 일했다면 아마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웃음)사회심리적인 면에 관심은 있지만 어떤 영향을 미치려는 생각은 없다. 그저 진실을 보여주려 노력할 따름이다. 독특한 안무를 위한 남다른 훈련방법이 있나. -95년 작 ‘엔터 아킬레스’같은 경우 영국 선술집에서 춤추는 남성무용수의 발동작을 위해 축구와 아이리시 전통댄스를 연구했다. 주제가 정해지면 모든 가능한 동작들을 실험해보고, 이를 구체화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모든 동작은 의미와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기존 무용단과 차별되는 ‘DV8’의 존재 가치, 혹은 기본 철학은 무엇인가. -진실(truth)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스타일에 희생되지 않고, 어려운 문제와 정면 대결하는 노력과 정직함이 모토다. 또 의미없는 동작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같은 레퍼토리를 재공연하지 않는다. 매 작품마다 다른 무용수를 선발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리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 자부한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황제주 vs 귀족주’ 승부는

    ‘황제주 vs 귀족주’ 승부는

    국내 증권시장에서 롯데칠성은 이른바 ‘황제주’로 통한다. 삼성전자는 최고의 ‘귀족주’로 일컫는다. 거래가격이 1주당 각각 100만원,10만원선을 넘을 때 붙는 별칭이다. 최근 증권가에선 두 회사 주식의 거래상황이 증시의 향방과 연결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만큼 관심을 끈다는 얘기다. ●덩치는 작아도 몸 값은 두배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롯데칠성은 전날보다 1만 7000원(1.76%) 오른 98만 5000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2500원(0.50%) 상승한 49만 8500원으로 롯데칠성의 절반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롯데칠성은 지난 2일 종가 기준으로 108만 2000원을 기록, 증시 사상 두번째 100만원대 주식으로 등극했다. 비록 7일까지 불과 4일간만 황제 자리를 지키다 98만원대로 내려왔으나 증시가 나아지면 언제든 다시 뛰어 오를 수 있어 현존하는 유일한 황제주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해 SK텔레콤이 처음으로 100만원선을 넘었으나 10분1로 액면분할을 하면서 스스로 황제주에서 물러났다. 롯데칠성은 1977년부터 28년 연속 주주들에게 흑자 배당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몸값(주가)에선 롯데칠성의 절반 수준이지만 덩치는 롯데칠성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시가총액은 롯데칠성보다 73배(73조 600억원), 주식발행수는 110배(1억 4729만주)나 된다. 매출액도 43배(43조 7370억원), 종업원수는 12배(6만 167명)다.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롯데칠성이 0.27%에 불과하지만 삼성전자는 16.21%나 된다. 롯데칠성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내 최대 음료 회사라면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무역흑자의 3분1을 거들고 있는 세계 속의 국가대표 기업이다. ●코카콜라와 마이크로소프트 롯데칠성의 주가는 2년 전인 2003년 3월에는 48만 9000원에 불과했으나 계속 오름세를 타고 있다. 지난 2월부터는 내수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원화 강세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면서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년전 28만 4000원에서 지난달 28일 52만 7000원까지 올랐다가 40만원대 후반에서 조정을 받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선에서 미끄러진 뒤 주춤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롯데칠성은 올여름에 10년만의 더위가 찾아온다는 전망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10만원 이상의 고가주는 10주씩이 아닌 1주씩도 거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 점이 수급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 대주주와 계열사가 분산 보유한 45.8%의 지분과 외국인이 보유한 42.66%를 빼면 유통물량은 10%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급여건의 개선은 호재가 된다. 전문가들은 롯데칠성을, 미국 증시에서 수십년동안 고가의 주가가 거의 꿈쩍도 하지 않는 코카콜라와 비교한다. 두 회사 모두 식음료 업종에서 독보적인 선두이고, 경기침체기에도 망할 리가 없기 때문에 주가가 비싸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에 견주곤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나스닥지수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의 대표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발표된 기업실적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증시를 함께 끌어올리는 위력을 발휘해 ‘마이크로소프트 효과’에 빗댄 ‘삼성전자 효과’라는 칭송을 들었다. ●외국인의 새로운 관심 외국인들이 몇해 전부터 롯데칠성 주식을 조금씩 사 모으고 있어 관심을 끈다. 최근에도 증시에서 매수할 수 있는 물량이 워낙 적어서 그렇지, 대체로 매수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외국인들이 투자비중을 낮출 것이라는 견해가 나와 대조를 이룬다. 굿모닝신한증권의 김학균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 주가가 지난해 4월(55만 7000원)의 최고점에 크게 못 미치는 데도 종합주가지수가 크게 상승한 것은 이제 한국 증시를 이끄는 주력 종목이 다양해졌음을 보여준다.”면서 “외국인이 팔아도 국내 투자자들이 이를 소화할 수 있어 증시의 안정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지분율은 삼성전자의 경우 오래 전부터 50∼60%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롯데칠성은 2000년 15.90%,2001년 31.90%,2002년 38.25%,2003년 42.66%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국내 증시의 42%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새롭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현재로선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대신증권 박재홍 선임연구원은 “롯데칠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시에서 주식거래가 거의 없어 국내 전문가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던 종목이었으나 최근 여러가지 기대감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면서 “다만 올해 주가수익비율(PER)이 음식료 업종의 평균치와 비슷해 지금도 저평가된 것으로 보이는 삼성전자 등에 비해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주식가치 매력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4)이화여대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4)이화여대

    이화여대 법대는 명실공히 ‘여성법조인의 산실’이다. 지난 1950년 개설된 이후 211명의 여성법조인과 23명의 법학교수를 배출해 냈다.사법시헙 합격자 규모 전국 6위, 법대 종합 순위 전국 5위라는, 겉으로 드러난 지표도 자랑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여느 남녀공학 법대 못지 않은 탄탄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10년 전부터 로스쿨 준비” 로스쿨을 향한 이대의 도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태윤 법대 교학부장은 “이대는 로스쿨 도입방안이 처음 논의되던 지난 1995년부터 로스쿨 도입이 대세라고 판단, 이미 10년 전부터 로스쿨로의 전환을 준비해 왔다.”고 소개했다. 이대는 이미 지난 1999년 연면적 2400여평의 법대 독립건물을 마련, 전용 모의법정과 법대 도서관을 설치했다. 함께 완공된 초현대식 법대 전용기숙사인 ‘솟을관’도 일반 기숙사와 차별화된 동영상강의실, 세미나실, 정보학습실 등을 갖춰 최고의 법대 기숙사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법학관도 완공을 1년여 앞두고 있다.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최첨단 대형강의실 4개와 실제 법정과 동일한 모의법정, 법학도서관 등을 갖춘 신관을 현 법학관 옆에 신축하고 있다. 또한 법대 전용 기숙사를 내년에 추가로 세운다는 계획이다. ●국내 최고수준의 교수진 무엇보다 이대의 자랑은 국내 최고 수준의 교수진이다. 실무형 교수진을 포함한 30여명의 교수진 모두가 국내에서 손꼽히는 법학자들이다. 대표적으로 신인령 총장은 총장이기에 앞서 노동법 분야의 독보적인 학자다. 현재 법제처장으로 재직 중인 김선욱 교수는 내로라하는 법여성학자다. 형법의 이재상 교수도 손꼽힌다. 검사출신인 그를 빼놓고 형법을 얘기할 수 없을 정도다. 이 교수의 교과서는 사시 수험생들에게 ‘바이블’로 통하고 있다. 민법의 송덕수, 상법의 오수근 교수, 행정법의 김유환 교수 등은 이대에서 최우수 교수로 선정돼 법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헌법의 김문현 교수는 학계에서 존경받는 헌법학자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행정심판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국제법 교수진도 탄탄하다. 최원목 교수는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무부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한 실무가다. 최 교수는 특히 행정고시에도 합격한 이력을 자랑하며 미국 변호사 자격까지 갖추고 있다. 김영석 교수 역시 외시에 합격, 외교통상부 근무 경력을 갖고 있는 등 이대 국제법 교수진은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전문가들이다. 최희경 헌법 교수는 “이대는 헌법·민법·형법 등 기본법은 물론, 세법·법여성학·국제통상법·도산법 등 개별법 역시 분야별 최고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대는 로스쿨 도입에 대비해 실무경험을 갖춘 교수진을 10명 정도 충원한다는 방침이다. ●판·검사 평균임용률 25% 넘어 이대 출신들의 활동도 활발하다.44회 합격자 39명 가운데 올해 판·검사로 신규임용된 연수원 수료생은 12명으로 임용률이 30%를 넘는다. 역대 사시 합격자 210명 가운데 판·검사는 모두 53명으로 평균 임용률이 25%를 넘는다. 사시합격자비율은 전국 6위지만, 판·검사 임용률은 단연 톱이다. 특히 한때 ‘금녀구역’이었던 검찰쪽 진출이 활발해졌다. 올해 임용된 신규검사 85명 가운데 이대출신은 10명에 달한다. 서울대 33명에 이어 연세대(10명)와 함께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더욱이 여성신규검사만 따로 놓고보면 35명 가운데 이대출신이 30%를 육박하는 등 최근 법조계에 불고 있는 여풍을 이끌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양명조 법과대학장 “세법·국제법 국내 최고 수준” “전문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법학교육을 추구합니다.” 양명조 이대 법과대학장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대 법학교육의 좌표를 이같이 밝혔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로스쿨이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전문적인 법학교육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양 학장은 “로스쿨이 다양한 전공지식을 기반으로 한 법률가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률가로서의 전문성”이라면서 “현재의 학부 4년 과정을 로스쿨 2년동안 집중적·집약적으로 교육시킨 뒤 3년차부터 실무교육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 법대가 전문성과 실용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양 학장은 “현재 이대 법대는 기본법 과목에서도 법조계 내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세법·국제법·도산법·노동법 등의 전문분야에 있어서도 국내 최고 수준의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 한 분야 빠짐없이 최고의 교수진이 포진해 있다는 설명이다. 전 분야에 걸친 다양한 커리큘럼도 이대 법대의 강점이다. 이대 법대의 자신감은 지금까지 이대가 배출한 법조인과 법학자들에 대한 두터운 신뢰에서도 비롯된다. 양 학장은 “국내 여성법학교수는 모두 50여명인데 이 가운데 50%에 육박하는 23명이 이대 법대 출신”이라며 “이대출신들은 법조인뿐만 아니라 법학자의 층도 두텁다.”고 강조했다.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에 최고의 교육시설까지 마련돼 있어 이대 법대의 전망은 밝다는 것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전효숙 헌재재판관등 법조인 211명 배출 이화여대가 배출한 법조인은 여성 최초의 사법고시 합격자인 고(故) 이태영(1936년 졸업) 박사를 필두로 모두 211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6명의 판사와 27명의 검사를 배출했다. 이들 이대 출신 법조인들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다. 최초 여성법조인인 이 박사는 1952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최초의 여성변호사로 활동하며 여성 법조인의 문을 열었다. 전효숙(69학번) 헌법재판관에게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역대 네번째 여성법조인으로 합격했다. 사법고시가 사법시험으로 바뀐 1963년 이후 이대가 배출한 사시 합격자 210명 가운데 최초이기도 하다.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쳐 지난 2003년 여성 최초로 헌재 재판관에 임명됐다. 그는 특히 탄핵심판과 수도이전 헌법소원 등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 이선희(69학번·사시 20회) 변호사는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지난 2001년 친일파 후손의 토지반환소송에 대해 “헌법정신으로 볼 때 반민족행위자가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의 보호를 구하는 것은 현저히 정의에 어긋난다.”며 기각판결을 내린 바 있다. 김선욱(71학번) 법제처장은 여성으로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법여성학자로 손꼽힌다.82학번인 금덕희(사시 20회) 판사와 노정희(사시 29회) 판사는 각각 대전지법과 광주지법에서 활동 중이다. 김은미(82학번) 변호사는 33회 사시 수석합격자다. 같은 학번의 이명숙 변호사는 사시 29회로 가정법률 전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이명숙 변호사의 가정법원’이란 라디오 방송 진행과 저서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로 대중과도 친숙하다. 이들 외에 사시 32회에 합격해 현재 대구고등법원에 재직 중인 이영숙(87학번) 판사도 이대 출신이다. 검사로는 서울북부지검 노정연(86학번·사시 35회) 검사가 대표적이다.‘이대 출신 첫번째 검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천사표 검사’로 유명한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 최정숙(86학번·사시 33회) 검사는 올해 초 폭력혐의로 입건된 불우 청소년에게 처벌 대신 온정을 베풀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밖에 차정일 특검팀 특별수사관으로 활동한 이영희(90학번) 변호사 등 88명이 연수원 졸업 직후 개업해 변호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여자프로농구 ‘겨울여왕’ 우리은행 주장 이종애

    [스포츠 라운지] 여자프로농구 ‘겨울여왕’ 우리은행 주장 이종애

    ‘스무고개’를 해 보자. 첫째 한국농구의 간판 센터, 둘째 통산 경기당 2.0블록슛 7.3리바운드. 이쯤이면 농구팬들은 서장훈(삼성)이나 김주성(TG삼보)의 이름을 댈 테지만, 천만에 말씀이다.2005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우리은행의 우승을 엮어낸 ‘블록슛 여왕’ 이종애(30)의 기록이다. 여자 센터 중에서 블록슛에 관한한 이종애는 독보적인 존재다. 통산 492블록슛을 쌓아 평균치만 놓고 보면 김주성(2.2블록슛)에 약간 못 미치는 놀라운 기록이다. 또 다른 센터의 척도인 리바운드에서도 최초로 개인통산 1800리바운드를 넘어섰다. ●3회우승 주역… 상복은 없어 프로에서 단 2차례를 빼곤 블록슛왕의 자리를 넘겨준 적이 없는 ‘골밑의 여제’이지만 유독 MVP와는 인연이 없었다. 첫 통합우승을 일궈냈던 2003겨울리그 때는 ‘맏언니’인 조혜진(32)에게 정규리그 MVP를 양보해야 했다. 우리은행이 3번째 우승을 확정지은 16일 장충체육관. 축포가 터지고 오색 꽃가루가 날렸지만, 이번에도 MVP는 ‘총알낭자’ 김영옥(31) 몫이었다.2002년부터 4년째 주장을 맡아 기둥 역할을 하며 3번의 우승을 엮은 그였기에 섭섭할 법도 했다. 하지만 워낙에 낙천적인 그는 “모든 선수들의 꿈이 MVP인데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죠.”라면서도 “운이 안되나 봅니다.”라면서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종애에 대한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혹독한 조련으로 악명(?)높은 박명수 감독조차 “아픈 몸으로 묵묵히 뛰면서 감독과 어린 선수들의 가교역할을 해줘 너무 고맙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움직이는 종합병원… 은퇴시기 고민중 그가 처음 농구공을 잡은 것은 인천 인성여고 1학년때. 중학교 3학년까지는 줄곧 높이뛰기 선수로 활약하면서 전국무대를 평정했지만 고교 입학 뒤 운명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큰 키(당시 176㎝)를 유심히 본 고 심욱규 감독이 부모님을 설득했기 때문이다.1년동안은 공식경기에 거의 뛰지 못 했지만 타고난 재능에다 ‘백지상태’였기에 흡수는 더욱 빨랐다. 체계적인 훈련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쑥쑥 자란 이종애는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10년여 동안 줄곧 대표생활을 하면서 부동의 센터로 활약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순탄치만은 않았다. 허리디스크(추간판탈출증)부터 급성신우신장염에 빈혈까지…. 은퇴를 결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움직이는 종합병원’ 이종애가 지금까지 계속 뛸 수 있었던 것은 남편 김태현씨의 외조 덕분.2003겨울리그 직후 디스크가 악화돼 고개조차 가눌 수가 없었던 이종애는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그만두면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김씨의 다독거림에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들은 현재 딴 살림(?)을 차린 상태다. 남편이 태국 푸껫에서 프로젝트를 맡아 장기체류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는 26일 한·일 여자농구 왕중왕전을 마친 뒤 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순간 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종애는 요즘 머릿속이 복잡하다. 몸도 워낙 안 좋지만, 남편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예쁜 2세도 낳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에서는 이종애의 공백을 메워줄 후배들이 클 때까지 계속 뛰어줬으면 하는 눈치다. 이종애는 “쉬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은퇴 뒤엔 작은 농구교실을 열어 꼬마들에게 ‘즐기는 농구’를 가르치고도 싶고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팬들은 여름리그에서 상대의 레이업슛을 찍어내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이종애는 ●1975년 3월18일 인천생 ●이원(61)·김광숙(54)씨의 1남3녀중 둘째 ●용현초-신흥여중-신명여고-인성여고-선경증권-상업은행(현 우리은행·98년~) ●186㎝ 60㎏ ●만화책·드라마보기(취미) ●뼈다귀 한새 쫑(별명) ●98아시안게임 동메달,2000시드니올림픽 4강,2002세계선수권 4강,2002아시안게임 은메달
  • [공직이 변해야 나라도 변한다] (12)이성수 병무청 사무관

    [공직이 변해야 나라도 변한다] (12)이성수 병무청 사무관

    “병무청 입장에서는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가장 중요한 고객입니다. 이들이 군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입대에 앞서 많은 정보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병무청 기획관리관실에 근무하는 이성수(49·혁신기획 담당) 사무관은 ‘모병(募兵)업무’에 관한 한 청내에서 가히 독보적인 존재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충원국 소속 ‘모병 일원화 태스크포스(TF)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젊은이들의 병역 의무 자진 이행을 유도하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개발, 정책에 반영시켜 온 주역이다. 친구와 함께 군 생활이 가능해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동반 입대제’나 징병검사를 받은 젊은이들에게 제공하는 ‘모집병 정보 이메일 서비스’ 등도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병역 자원이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병역에 대한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거부감도 해소하지 못한다면 모병 업무의 차질은 불가피합니다.” 모병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또 강군(强軍) 육성을 위해서는 군 입대자의 사회 주특기나 적성 등을 고려해 입대 후 적재적소 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입대 시점에서부터 군사 주특기를 당사자의 입장에 맞춰주게 되는 ‘모집병 제도’는 그런 차원에서 아주 좋은 대안이라는 것이다. 사실 일부 특수분야에 대해 병력을 모집하는 모병업무가 병무청으로 넘어온 것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육군본부가 직접 했다. 해·공군은 지금도 군 당국 소관이다. 대민 행정서비스 체계가 덜 갖춰진 군에서 모병업무를 맡는 게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은 오래됐지만, 업무를 내줄 경우 조직 유지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조직논리 때문에 2002년까지는 육군이 이 업무를 맡아왔다. 하지만 이 업무가 병무청으로 이관되는 것을 계기로 이 사무관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군사 주특기를 사전에 배정받는 모집병(기술·행정병)의 규모와 주특기 세분화였다. 특별한 계획없이 군에 입대하는 이들보다는 사전에 계획을 세워, 입대 날짜나 주특기 등을 배정받는 모집병의 전투력이 월등한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이디어에 따라 2002년 3만명 규모이던 모집병은 이후 계속 늘어나기 시작,2004년엔 7만명,2005년 8만명으로 연차적으로 늘었다.2008년에는 연간 현역병 입영인원(약 21만명)의 절반가량을 모병으로 충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모병을 위해 공개 모집하는 군사 주특기 역시 2002년엔 106개였으나, 올해는 204개로 확대됐다. 과거에는 공병·통신 등의 구분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포클레인, 그레이더 등으로 ‘전공’이 세분된 것이다. 2003년 4월부터 시행된 ‘동반 입대제’는 신병들의 군에 대한 불안감이나 어려움을 일거에 날려버린 ‘히트 상품’이다. 이는 친구나 동료 2명 단위로 입대해 함께 훈련을 받은 뒤 같은 부대·같은 내무반에 배치돼 전역 때까지 함께 지내도록 하는 제도이다. 현재 이 제도에는 연간 2만명이 몰리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지원자의 경우 접수 첫날 대부분 마감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다. 이 사무관은 “현재의 징병제가 지원제로 바뀌지 않는 한 병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일정 부분 남게 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이왕 군에 가는 상황이라면 가급적 많은 정보를 주고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주는 게 개인이나 국가가 모두 윈윈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다양한 아이디어 덕분에 병무청의 모병업무는 지난 2003년 11월 청와대로부터 우수 혁신사례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국내 유일 무형문화재 사기장 김정옥 선생

    국내 유일 무형문화재 사기장 김정옥 선생

    “자만하지 말고, 돈과 기교를 향한 삿된 욕심을 끊어야 좋은 작품을 후대에 남길 수 있습니다.”한 평생을 고집스레 전통 조선 백자와 씨름해온 백산(白山) 김정옥(金正玉·63) 선생을 만나면 문명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23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7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고집스레 장인의 맥을 이어온 것도 그렇고 손이 많이 가는 전통식 발물레와 망댕이 가마를 여전히 고집하는 억척스러움도 감동을 준다. 그는 살아 있는 조선 백자의 상징적인 인물, 우리나라에서 사기장으로서는 유일하게 무형문화재 105호로 지정됐다. 올해 일본과 독일에서 열리는 ‘도예작품전’ 준비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선생을 만나기 위해 경북 문경새재 인근에 있는 그의 가마터를 찾았다. ●7대째 이어온 장인 손길… 전통 기법 고수 그의 작업실인 ‘백산선방’에 들어서자 짙은 눈썹에 강렬한 눈빛이 사로 잡았다. 선조때부터 대물림해 내려온 물레를 힘차게 돌리며 작품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氣)가 느껴졌다. 환갑을 넘긴 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넘쳤다. “백자는 감촉이 부드러우며 적당한 빙렬이 있어야 하고, 분청은 자연스러운 맛이 나야 하는데 전기 물레와 전기 가마로는 쉽게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만든 이의 정성과 혼을 담을 수 없다.” 이런 연유로 그는 모든 작업에 있어 전통적인 방법을 고집한다. 흙만 얹어도 각종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전기 물레가 도입된 지 오래지만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발물레만을 사용한다. 또 가마는 장작가마인 ‘망댕이’ 가마만을 고집한다. 망댕이란 흙을 뭉친 덩어리란 뜻으로 백산 집안이 지켜온 전통 가마다. 장작은 자기와 가장 궁합이 맞는 다는 적송(赤松)만을 사용한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200년된 발물레와 160년된 망댕이 가마는 ‘도민속자료로 지정’됐고, 현재는 그가 직접 만든 발물레와 가마를 사용하고 있다. 두 달에 한번씩 불을 지피는 가마에는 다완 100여점이 들어간다. 하지만 작품으로 남는 것은 3∼4점이 채 안된다. 대부분의 그릇은 파기된다.80∼90%의 성공확률을 보장하는 가스 가마를 외면하고 97%의 실패가 눈에 보이는 망댕이 가마만을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가장 한국적인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법부터 전통적이어야 한다. 많은 작품보다는 제대로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삶의 철학이자 고집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탓에 그의 백자와 분청은 형태와 빛깔에서 그 만큼 남다르다. 청와백자는 옛 명품에 버금가는 깊이와 운치가 서려있다. 특히 손맛이 살아 있는 다갈색 차사발과 정호다완은 분청 중에서도 일품으로 꼽힌다. ●20여년 수련후 데뷔… 각종 상 휩쓸어 대한민국 최고의 도공에 오르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선조들이 닦아 놓은 비법을 전수받아 쉽게 명장에 오른 것은 결코 아니다. 91년 대한민국 도예부문 명장 선정과 96년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의 칭호를 얻기까지 손에 물과 흙이 마를 날이 없었다. 부친인 김교수(金敎壽) 선생은 일본에서 배우러 올만큼 솜씨좋은 도공이었지만 집은 끼니가 없을 만큼 가난했다. 결국 그는 문경서중 3학년을 중퇴하고 부친으로부터 장인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산간벽촌인 가마터에 땔감과 흙등 모든 재료를 모두 지게로 지어 나르느라 어깨가 성한 날이 없었지만 7대를 내려온 가업을 잇는 것이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여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다. 배움의 길에 들어선 지 20여년이 지난 83년 경북공예품경진대회에 다완을 출품해 입선하면서부터 그의 작품이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뒤 그의 작품은 각종 전통 도예 부문의 각종 상을 휩쓸면서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서게 된다. 향토문화상(86년)경북문화상(87년)전승공예대전특별상(88년)을 받았다. 백자와 분청으로 대별되는 그의 작품은 ‘청화백자팔각병’과 ’분청사기철화당초문계룡산호’,‘정호다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의 작품에는 자기 과시나 수사적인 기교가 없다. 그저 투박하지만 그 속에는 고고한 자연의 맛을 느끼게 한다. 지난 96년에는 그의 작품이 미국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상설전시관에 전시됐으며,98년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타이완 등 4개국 장인전문가회의 한국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에는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에서 ‘동방의 빛’ 전시회를 개최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발돋움하게 됐다. 올해도 각종 전시회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는 4월 31일부터 5월 8일까지 문경도자기전시관에서 열리는 문경전통 차사발 출제의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6월에는 도쿄 경왕백화점에서 도예 작품전을 연다. 지난 87년부터 벌써 18년째를 맞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전통 찻사발 등 70여점이 전시된다. 이어 연말에는 독일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조선백자 맥 잇겠다” 외아들도 수련중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제자를 키우는 것. 그의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조선백자의 맥을 잇겠다고 나선 외아들 김경식(38)씨와 전수장학생 4명에게 참 도공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어려운 시절을 거쳐 왔지만 스스로 선택한 도예가의 길을 후회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면서 “우리 전통 도예를 길이 전승하는 것에 남은 인생을 걸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대한민국 대표 도예가로 발돋움한 것은 조상의 후광이나 재능보다는 도자기에 대한 사랑과 끊임없는 노력, 집념, 고집, 실패를 즐기는 그의 삶 그자체였다. 문경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백산 김정옥의 삶 -1941년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출생 -1991년 대한민국 도예명장 선정 -1996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 지정 -1996년 미국 스미스 소니언 국립박물관 상설전시 -1998년 일본 도쿄 아세아 4개국 명인 전문가회의 한국대표참가 -1999년 문경대학 초대 명예교수 -2000년 대통령 표창
  • 성덕대왕신종에 담긴 신비한 ‘소리과학’

    성덕대왕신종에 담긴 신비한 ‘소리과학’

    우리 선조들의 종 제조기술은 창조는 고사하고 모방하기조차 쉽지 않다.(서울신문 2월25일자 10면 참고) 특히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서기 771년 제작) 은 종 표면에 새겨진 그림의 예술성에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의 아름다움이 포개지면서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변변한 과학기술 장비 하나 없이 귀에 의지해 만들어냈을 우리 선조들의 ‘소리 과학’ 속으로 들어가본다. ●울림의 미학 ‘맥놀이’ 종소리는 종 몸체에 외부 타격으로 만들어진 진동이 주변 공기를 진동시키고, 이 진동이 귀에 전달돼 들리게 된다. 타종 직후에는 수많은 부분진동음이 발생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본진동과 울림만 남게 된다. 일정시간이 지난 뒤 남는 소리가 바로 종 고유의 소리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타종 직후 곧바로 소멸되는 ‘탕’하는 타격음에는 종의 각 부문에서 발생하는 각종 진동수가 섞여 있다. 이어 먼 곳에서도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음(원음)이 타격 후 10초 안팎까지 지속되며, 타격 후 1분 이상 계속되는 여음은 점차 줄어들면서 은은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울림 가운데 소리의 세기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맥놀이’는 성덕대왕신종을 비롯한 한국종에서만 들을 수 있다. 맥놀이는 선명하고 오래 지속될수록 아름다운 소리로 느껴진다. 다만 1초당 5∼6회 정도 반복되면 좋은 느낌을 주지만, 그 이상이면 불쾌감도 줄 수 있다. ●종 내부 쇠찌꺼기·종 아래 웅덩이에도 과학이… 성덕대왕신종도 타종 직후에는 여러가지 진동수의 음파들이 혼재하지만 차츰 64㎐와 168㎐ 가량의 기본진동수 음파만 남게 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김양한 교수는 “성덕대왕신종의 맥놀이는 종의 재질과 두께가 균일하지 않아 기본진동수에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면서 “종 구조 자체가 갖는 자연스러운 비대칭성이 아름다운 소리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즉 성덕대왕신종 내부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쇠찌꺼기가 과거에는 주조기술의 한계로 인식됐지만, 종의 비대칭성을 만드는 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종 윗부분에 속이 빈 파이프처럼 생긴 음관도 음질과 음색을 좋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관의 지름은 아래쪽 8.2㎝, 위쪽 14.8㎝의 나팔관 형태로 한국종에서만 볼 수 있다. 중국종과 일본종 등에는 없다. 김 교수는 “종을 칠 때 외부 진동은 멀리 전파되지만, 내부 진동은 서로 충돌하거나 반사돼 잡음이 나게 된다.”면서 “음관은 종 내부에서 형성되는 고진동수의 잡음을 신속히 방출,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종은 종 아래에 구덩이(음통)를 판 뒤 설치했는데, 음통은 종 안에 들어있는 공기의 진동수를 맥놀이 현상을 유발하는 진동수와 일치시켜 종소리가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젖먹이 아이를 희생양으로” 전설은 진실 혹은 거짓? 전설에 따르면 신라인들은 성덕대왕신종을 만들기 위해 30여년을 매달렸지만 실패를 거듭하자 젖먹이 아이를 희생양을 바쳐 결국 종은 완성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종을 치면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것같은 ‘에밀레∼, 에밀레∼’라는 소리가 났다는 것. 전설이 사실이라면 성덕대왕신종에서는 사람의 뼈를 구성하고 있는 인(P)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197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성덕대왕신종을 복제한 ‘우정의 종’을 보내는 과정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정밀조사를 벌였다. 당시에는 성덕대왕신종에서 어린아이에게서 검출될 수 있는 인이 나왔다고 발표된 바 있다. 반면 1998년 당시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성덕대왕신종 성분 분석을 한 결과, 인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다만 인의 비중은 구리보다 가벼워 쇳물 위로 뜨기 때문에 ‘불순물’로 여겨져 제거됐다면 인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단서를 덧붙였다. 결국 성덕대왕신종에 얽힌 전설은 13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진위 여부를 밝힐 수 없는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2005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 “고맙다 신세계”

    신세계가 신한은행을 힘겹게 따돌리고 2년 연속 꼴찌를 면했고, 삼성생명은 어부지리로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신세계는 28일 순천 팔마체육관에서 열린 2005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엘레나 비어드(29점 14리바운드)의 독보적인 활약을 앞세워 신한은행을 63-59로 따돌렸다. 두 팀은 8승12패로 동률을 기록했지만, 시즌 상대전적에서 3승1패로 앞선 신세계가 승자승 원칙에 따라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반면 4강 플레이오프에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던 신한은행은 트레배사 겐트(21점 16리바운드)와 강지숙(14점)이 분전했지만 고질적인 막판 집중력 부족으로 눈물을 흘린채 체육관을 떠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상화 ‘금빛 질주’

    한국 여자스피드스케이팅 ‘기대주’ 이상화(16·휘경여고 1년)가 여자 빙속 사상 처음으로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이상화는 지난 19일 핀란드 셰뇨키에서 열린 2005세계스피드스케이팅주니어선수권 여자 500m 결선에서 39초93으로 결승선을 통과, 안네테 게르리첸(40초44)과 이레네 우스트(40초74·이상 네덜란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여자 스프린터가 세계주니어선수권을 제패한 것은 이상화가 처음. 1990년 스프린트선수권 3위, 93년 세계선수권 은메달 등 한국 여자 빙속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유선희도 주니어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남자부에서는 76년 세계선수권 남자부 종합우승을 차지했던 이영하 등이 주니어대회를 제패한 바 있다. 이상화는 20일 여자 1000m에서 1분22초46을 기록, 우스트(1분22초44)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이틀 연속 메달을 거머쥐었다. 이상화는 이날 결선에서 스타트가 돋보였지만, 후반 들어 체력이 떨어지며 우스트에 0.02초 차로 금메달을 내줘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여자 1500m에서는 이주연(경희여고)이 2분07초78로 동메달을 따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지난 2002년 5월24∼25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그룹 연수원 ‘창조관’에 삼성의 금융사 7인의 ‘수장’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속속 모여 들었다. 직전 전자사장단 회의에서 “현재 실적에 자만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자.”고 주문했던 이건희 회장이 무슨 말을 던질지 모르는 상황.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캐피탈, 삼성증권, 삼성투신운용 등 업종별로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뒤 새벽 1시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회의를 함께 한 이 회장은 “문제가 있는 경영방식은 즉각 고쳐 금융사들도 삼성다운 ‘일류경영’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해외 선진 금융사들의 본격적인 진출에 대비해 핵심 금융전문인력을 확보하고 벤치마킹해 상품·서비스 개발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종 대 외국자본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것이다. 이 회장은 2001년 회의때도 “사고가 난 뒤 보험료율만 올리지 말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연구개발(R&D)에 노력하라.”고 주문해 삼성화재가 최초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이 전자계열에 이어 금융사 사장들과 전략회의를 가진 데서 나타나듯 금융업은 전자와 함께 삼성의 양대축이다. 삼성은 지난 세월 현대·LG 등과 늘 수위를 다퉈왔지만 금융만큼은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현재 자산기준으로 삼성생명이 90조원을 넘어섰고 삼성화재 14조원, 삼성증권 6조원에 육박한다. 웬만한 시중은행과 맞먹는 수준이다. ●자산 90조, 삼성의 ‘젖줄’을 일군 사람들 삼성생명은 57년 4월 강의수, 전중윤, 윤삼영, 강일성, 김용수, 강화두 등 7인의 경제인이 57년 공동으로 세운 동방생명이 전신이다. 초대 사장과 회장을 지낸 고 강의수 회장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장인이다. 당시 동방생명 마산지부장이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었다. 동방생명은 설립 2년 만에 국내 생보업계 1위로 뛰어오른 데 이어 62년에는 동남증권(현 하나증권) 설립, 동양화재 주식 매입,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 등 사세를 넓혀 나갔다. 하지만 63년 1월 강 회장이 운명하자 곧바로 어려움에 빠졌고 그해 7월 삼성의 일환이 된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지배구조를 지탱하는 ‘대들보’로서 그만큼 부담도 안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자동차 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내놓으면서 해외 및 국내여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때 일부 해외언론은 이 회장을 가리켜 ‘책임을 질 줄 아는 유일한 경영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재용 상무가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19.34%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에버랜드는 지난해 말 삼성생명 지분 6%를 제일은행에 5년간 신탁하면서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데 당국의 결론이 주목된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4월 이수빈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배임혐의로 고발한 것도 걸려 있다.99년 회사가 손해를 봐 가면서 우리은행과 주식을 맞교환해 지배주주에게 ‘이득’을 안겨줬다는 주장과 삼성자동차 ‘우회지원 대출’ 등이 고발 사유였다. 이같은 경영외적인 비중을 제외하고도 삼성생명은 국내 생명보험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선두업체로 올해 자산 100조원 돌파가 예상되는 등 화려한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2003년 미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가운데 생보사 부문 19위에 랭크됐다.2010년까지 자산 200조원, 매출액 47조원을 달성하여 ‘글로벌 종합금융서비스회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과거 삼성의 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 돈을 빌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삼성생명빌딩과 중앙일보빌딩, 종로타워, 강남의 하이닉스빌딩 등 수많은 빌딩이 삼성생명 소유다.1116개 지점의 영업용 부동산의 장부가만 3조 5158억원에 달한다. ●생명의 산 증인, 이수빈과 배정충 삼성생명의 경영은 99년 12월부터 배정충(60)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전북 전주생인 배 사장은 전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69년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삼성생명의 자산은 30억원(현재 90조원)에 불과했다. 생명보험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던 70∼80년대를 영업 현장에서 보낸 배 사장은 삼성화재 대표를 거쳐 99년 ‘친정’의 대표이사로 금의환향했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한달에 걸쳐 전국의 영업현장을 순회한 일일 정도로 현장을 우선시한다. 한번 본 숫자는 거의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수리’에 밝다.4년 만에 삼성생명에 돌아왔을때 사장실에 불려 간 간부들이 업무와 관련된 통계숫자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자 일일이 수정해주며 ‘불호령’을 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반면 아무리 바빠도 회사 임직원이나 거래처, 지인들의 상가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로 인간적인 면도 강하다는 평이다. 이수빈 회장도 삼성생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65년 삼성그룹 공채 6기로 입사,13년 만에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한 그는 25년간 제일합섬, 제일제당, 삼성항공, 삼성생명, 삼성증권의 CEO와 삼성 금융그룹 회장을 맡아 ‘직업이 사장’으로 불린다. 보험 경영에 손익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을 접목했고 생명보험 경영의 핵심인 영업소장과 설계사의 위상 강화를 통해 업계 1위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생명은 그 역사만큼이나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2대 사장을 지낸 이호씨는 20대,31대 내무부장관과 8대,20대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63년 삼성으로 넘어 오면서 새로 구성된 경영진에는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3남이자 이병철 회장의 둘째 사위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시아버지인 정상희씨는 71∼78년 회장을 지냈고 김만제 전 포철회장도 경제부총리를 마치고 91∼92년 회장을 맡았다. ●사돈과 사위가 맹활약한 삼성화재 삼성화재는 1951년 3월 경남 함안 출신의 구진현씨가 세운 재단법인 ‘훈세사(勳世社)’에서 출발한 안보화재와 한국일보 창업주인 고 장기영 회장이 초대사장을 지낸 안국화재가 전신이다. 안보화재와 안국화재는 63년 합병으로 한 회사로 태어났고 93년 말 삼성화재로 이름을 바꿨다. 삼성화재의 사사에는 유난히 ‘인척’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맹희씨의 장인인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는 삼성에 인수된 직후인 61년 안국화재 사장을 맡은 뒤 운명(76년)하기까지 사장을 지냈다.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자 손영기씨의 아들인 손경식 CJ 회장은 93년 7월 당시 제일제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경영을 맡았다. 이병철 회장의 4녀 덕희씨의 남편인 이종기씨와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이종기씨 역시 2000년 3월 경영에서 물러날 때까지 삼성화재를 국내 대표 손보회사로 키워놨다. 안국화재 지분이 많던 이맹희씨도 65∼67년 임원을 지냈고 부인 손복남씨도 85∼93년 상무로 일했다. 삼성화재 역시 긴 역사만큼이나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 동부화재 김순환 사장은 2001년까지 부사장을 지냈고 조용철 CJ홈쇼핑 사장도 99년까지 삼성화재에서 일했다. 박해춘 LG카드 사장, 박종익 전 손보협회 회장도 삼성화재 출신이다. ●신경영으로 이끈 이학수와 이수창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실질적으로 삼성화재 대표를 지낸 것은 94년 12월∼96년 8월로 1년 8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삼성화재의 ‘경영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꿔 현재의 고도수익을 낳는 경영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본부장은 94년 초 제일제당 대표로 잠시 나갔다 돌아오고 나서 바로 삼성화재 CEO로 부임하자마자 17%였던 시장점유율을 30%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삼성화재 임원들은 ‘불가능한 목표’라며 주저했지만 “삼성이 명색이 ‘영남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구에서 4위, 부산에선 3위, 경북은 7위라는게 말이나 되느냐? 전부 1위로 끌어 올리자.”는 이 본부장의 격려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94년 17.6%였던 삼성화재의 점유율은 96년 23.6%로 급등,2,3위와의 격차를 10%이상 벌렸고 2001년 대망의 ‘30%’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본부장은 또 자동차보험의 공격적인 확대, 설계사 수당 100% 인상, 품질보증제 시행 등 ‘신경영’을 도입하며 삼성생명에 비해 뒤처져 있던 삼성화재의 위상과 직원들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구단 창설,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 등을 통해 회사 이미지 개선에도 기여했다. 이 본부장, 배정충 현 삼성생명 사장의 뒤를 이어 99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수창(56) 사장의 경영성적도 눈부시다.99년 26.9%였던 점유율을 지난해 32%로 끌어 올리며 2,3위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2003년,2004년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로부터 국내 민간기업 중 최고등급인 A+를 받았다. 매월 마지막주에는 영업점과 보상 현장을 깜짝 방문하는 등 ‘현장경영’에 철저한 이 사장은 2002년 업계 최초로 ‘삼성애니카’라는 브랜드 경영을 도입했고 2001년 진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은행의 손해보험업 진출이 예정된 올해는 향후 10년간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한 시기”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경북 예천의 대창고를 졸업한 이 사장은 독특한 전공(서울대 수의학과)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국 경영인으로 성공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카드의 ‘불씨’ 삼성의 금융사업 가운데 가장 고전하고 있는 분야는 신용카드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1조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한데 이어 올해도 1조 2000억원의 증자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46%), 삼성생명(34.5%), 삼성전기(4.7%), 삼성물산(3.1%) 등 삼성 계열사들은 지분만큼 증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삼성카드의 적자로 인한 지분법 평가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2002년 “신용카드가 신용사회 저변확대에 기여했지만 과열 경쟁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지만 카드사태는 현실화됐다. 유석렬(55) 사장은 신용카드 부실이 불거진 2003년 대표이사를 맡아 그동안 삼성캐피털과의 합병, 유상증자, 해외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으로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74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유 사장은 입사직후 회사의 권유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에 진학한 ‘드문’ 케이스다. 삼성전자 반도체 미국법인 근무를 거쳐 91년부터는 비서실 재무팀에서 일했다. 미국법인 관리부장 시절 동료가 최광해 현 구조본 재무팀장이다.97년 삼성캐피털 대표이사로 CEO 생활을 시작한 유 사장은 삼성증권 사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투자은행’으로 변신중인 삼성증권 92년 국제증권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삼성증권은 98년 수익증권 판매고 최단기간내 10조원 돌파 등 짧은기간에 업계 선두권으로 도약했다. 일찍부터 ‘약정경쟁’을 지양하고 자산관리형 영업으로 변신을 시도, 현재 투신수탁고가 20조원에 달해 자산관리부문에서 은행 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조흥은행, 국민은행 지분 매각 작업에 공동주간사로 참여하는 등 외국계 대형 증권사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ing) 부문에서도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토종증권사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영입된 황영기 전 사장에 이어 지난해 5월 삼성증권 사장에 취임한 배호원(54) 사장은 삼성그룹 내에서도 대표적인 자산운용 및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 배 사장은 경남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77년 제일합섬 경리과를 시작으로 비서실 재무팀 부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장, 삼성투신운용 사장, 삼성생명 자산·법인부문 총괄 사장 등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금융전문가답게 깔끔한 이미지지만 직원들과 ‘해장국 미팅’을 즐기는 등 소탈한 모습도 갖고 있다. ●벤처투자, 투신운용, 선물 등으로 확장되는 금융사업 삼성은 삼성물산의 벤처사업팀을 확대,99년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육성하는 삼성벤처투자를 설립했다.2003년 대표이사로 부임한 김상기(55) 사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삼성생명, 삼성증권에서 주로 일했다. 지난해 말 현재 수익증권 22조 2000억원, 뮤추얼펀드 1000억원, 투자자문 38조 1000억원 등 60조가 넘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삼성투자신탁운용은 2003년부터 삼성화재 부사장을 역임한 황태선(57) 사장이 맡고 있다. 경북 상주생으로 김천 성의종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선물 관련 제품의 판매·컨설팅, 정보 수집 등을 담당하는 삼성선물은 지난해 3월부터 정주영(57) 사장이 맡고 있다. 정 사장 역시 황 사장의 고향인 경북 상주 출신으로 상주고와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증권 리테일 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의 금융비화 삼성은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제일모직, 제일제당, 삼성전자 등 거의 모든 회사를 손수 일궜지만 오늘날 100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금융사업은 대부분 인수한 것이다. 묘하게도 인수한 금융사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삼성이 직접 설립한 금융관계사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난해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추대되자 재계에서는 곧바로 삼성의 우리은행 ‘인수설’이 불거져 나왔다. 우리은행이 삼성자동차의 주 채권은행인데 삼성에서 잘 나가던 황 사장이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삼성의 부인이 아니더라도 삼성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한때 시중은행의 대부분을 소유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1금융권 진입을 노렸던 삼성인지라 의혹의 눈길은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고 이병철 회장은 50년대 중반 이승만 정부가 추진한 시중은행 주식 공매에 참가해 12억 9000만환에 흥업은행(구 한일은행) 주식 83%를 소유하게 됐다. 이어 조흥은행주 55%를 매입했다. 흥업은행 신탁부에서 상업은행주 33%를 갖고 있었으므로 삼성은 당시 4개 시중은행 가운데 3개 은행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했던 것이다. 황영기 회장이 맡고 있는 우리은행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친 것이므로 삼성과 우리은행의 인연이 질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16 쿠데타로 삼성이 소유하고 있던 은행 지분은 정부 소유로 돌아갔다. 삼성으로서는 한국비료(한비)와 대구대·은행을 박정희 정권에 뺏긴 셈이다. 하지만 삼성과 금융사업의 인연은 58년 안국화재 인수로 재개된 뒤 63년 동방생명 인수로 본격화된다. 금융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고 이병철 회장은 63년 봄 동방생명 임원이 찾아와 회사를 인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회고했다.5월22일 당시 동방생명 임원 대부분의 주식이 먼저 삼성으로 넘어왔고 강의수 회장의 유족들도 7월16일 지분을 넘겼다. 강 회장의 유족이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부인 강지연 여사다. 삼성과 민노당의 ‘악연’도 역사가 긴 셈이다. 삼성은 92년 11월 배현규씨 등 국제증권 대주주로부터 영업권을 양도받아 삼성증권을 탄생시켰다.96년에는 국제선물(현 삼성선물)을,98년에는 동양투신(현 삼성투신운용)을 인수했다. 반면 88년 설립한 삼성카드는 현재 그룹의 ‘뜨거운 감자’로 전락했고 95년 설립한 삼성캐피탈도 부실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삼성카드와 합병해야 했다.99년 설립한 삼성벤처투자도 ‘벤처 붐’이 사그라지면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ukelvin@seoul.co.kr ■ 생명·화재 역대 대표이사 ●삼성생명 강의수(57.4∼62,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장인) 이 호(∼63, 전 내무부·법무부 장관) 조우동(∼69, 전 삼성중공업 회장) 이겸재(∼71) 원종훈(∼78) 고상겸(∼83) 배상욱(∼84, 전 체신부 장관) 박태원(∼85) 이수빈(∼91) 황학수(∼95, 전 삼성카드 부회장) 이수빈(∼99, 현 삼성사회봉사단장) 배정충(∼현재) ●삼성화재 손영기(∼76, 이맹희씨 장인) 손경식(∼93, 현 CJ회장) 이종기(∼2000, 이병철 회장 넷째 사위) 강경수(∼93) 홍종만(∼94, 전 삼성자동차·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이중구(∼94, 현 삼성테크윈 사장) 이학수(94∼96, 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배정충(∼98, 현 삼성생명 사장) 이수창(∼현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보르헤스 문학 전기/김홍근 지음

    데리다, 푸코, 들뢰즈, 에코 등 숱한 현대사상가들에게 사상의 신대륙에 눈뜨게 한 주인공. 라틴문학의 최고봉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문학평론가 김홍근(48)씨가 보르헤스의 삶과 문학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압축했다.‘보르헤스 문학 전기’(솔 펴냄)에는 남미 ‘환상적 사실주의’ 문학을 태동시킨 보르헤스의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보르헤스의 문학은 그 형이상학적 면모 때문에 매혹적이되 접근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에 싸여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보르헤스 문학세계의 매혹을 들추어 오랜 편견을 허무는 작업에 몰두한다. “(편견 때문에)주위만 뱅뱅 돌다 정작 성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보르헤스의 드라마 같은 삶 자체에 초점을 오래 맞추었다. 제1장에서 보르헤스의 문학적 위상을 잠시 짚어본 다음 그의 작품세계를 빚어낸 생의 이면을 비추는 데 지면을 후하게 할애했다. 보르헤스가 그만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문학관을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은 ‘도서관의 작가’란 별칭이 그대로 설명해준다. 아버지의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그의 이미지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눈먼 도서관장으로 연결된 건 잘 알려진 사실. 보르헤스의 독보적 사상과 문학관을 러시아 태생 미국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렇게 묘파했다.“보르헤스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마치 경이로운 현관에 서 있는 것 같았으나 둘러보니 집이 없었다.” 팔삭둥이로 태어나 6대째 내려온 부계(父系)의 유전병인 실명(失明)을 끝내 피하지 못했던 내력 등이 묘사되기도 한다. 많은 시간을 집안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가장 든든한 벗은 여동생 노라. 책 속의 주인공들 이름으로 서로를 바꿔부르며 놀았던 여동생과의 기억 등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접하다 보면 멀기만 했던 보르헤스의 문학세계에 바짝 가까이 다가선 듯한 착각에 빠진다. 39세의 보르헤스는 여자친구를 데리러 가다 계단의 창문에 부딪혀 며칠동안 혼수상태에 빠지고 만다. 깨어난 뒤 자신의 정신이 온전한지 시험해보려(278쪽) 단편들을 썼는데, 그 작품들이 곧 ‘마술적 리얼리즘’의 씨앗이 됐다. 페론 정권 때 시립도서관 하급 사서직에서 쫓겨났다가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립도서관장에 오른 이야기 등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짧은 수필이나 시 작품의 인용을 통해 보르헤스의 문학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건 물론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파블로 네루다, 옥타비오 파스 등 스페인어권 문학거장들과 그의 작품세계를 비교한 글도 들어있다.1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논란속 새달3일 개봉 ‘그때 그사람들’

    현직 대통령을 두고 ‘멍청이’라고 조롱해댄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는데,20년도 더 지난 전직 대통령을 희화화한다고 해서 뭐 문제될 게 있을까.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재료로 오랜 독재의 성을 쌓아올린 대통령이라면. 하지만 영화 ‘그때 그 사람들’(제작 MK픽처스, 새달 3일 개봉)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불편함을 느낄 만하다. 총을 맞아 죽어가면서 “또 쏠라고. 한방 묵었다 아이가.”라고 말하고, 벗겨진 시체의 은밀한 부위를 허둥지둥 모자로 가리는 식의 ‘블랙 유머’ 앞에서 과연 통쾌하게 웃을 수 있는 관객이 몇이나 될까. 사람을 어이없게 죽이면서 유머를 구사했던 ‘사우스 파크’(그래도 이건 만화였다!)와 비슷한 느낌의 코미디는,‘정치’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문제될 건 없지만 우리의 일반적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죽음과 유머’뿐만 아니라 영화는 스릴러, 블랙코미디, 휴먼드라마, 다큐멘터리라는 섞이기 힘든 이질적인 요소들을 위험하게 동거시킨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한데 몰아넣으며 여기에서 빚어지는 소동을 장난스럽게 지켜보는 듯하다. ‘스릴러’ 영화처럼 큰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의 긴장감을 조성하며 시작한 영화는, 중간중간 어이없는 유머들을 날리더니 중반부부터 본격적으로 바보짓거리를 일삼는 권력층을 ‘블랙코미디’적으로 묘사하고, 후반부에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사건에 휘말려 희생된 주변 인물들을 ‘휴머니즘’적으로 추모한다. 그리고 과장 때문에 픽션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뒤집 듯 마지막은 ‘다큐멘터리’로 마감한다. 비범한 관객이 아니라면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한참 헷갈릴 정도다. 거두절미하고 1979년 10월26일 사건이 벌어진 단 하루만을 소재로 삼은 것도 일반관객에게는 불친절해 보인다.‘왜’를 완전히 생략한 채 ‘누가 어떻게’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는 그 때 그 사건을 잘 모른다면 이해하기도, 몰입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작품성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국내 관객에게 낯선 화법일지는 몰라도 인물 비틀기와 풍자로 사회비판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영화는 독보적이고 독창적이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의 복도를 무심한듯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의 유연한 움직임과 고풍스러운 장면들이 세련되게 어우러진 미장센도, 현실과 다른 영화만의 공간을 창조해냈다. 대통령을 살해하는 김 부장 역은 백윤식, 그를 돕는 주 과장은 한석규가 연기했다.“연기를 할수록 오리무중이었다.”는 백윤식의 말처럼 김 부장은 현실 속 민주투사도 이상주의자도 아닌, 그냥 영화가 만든 허상처럼 비쳐진다. 사실 영화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건 주 과장을 비롯해 희생된 인물들뿐이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우스꽝스러운’ 소수 권력층의 권력욕 때문에 무고한 ‘실제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이다.‘처녀들의 저녁식사’‘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 연출.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스카이HD, 디스커버리 다큐 방영

    스카이HD, 디스커버리 다큐 방영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의 고화질(HD) 전용채널인 스카이HD(대표 홍금표)가 2월1일부터 세계적 HD다큐멘터리 채널인 ‘디스커버리HD Theatre’의 프로그램들을 블록 편성해 방영한다. ‘디스커버리HD Theatre’는 21개 디스커버리 채널 중 하나로, 지난 2002년에 개국해 문화·과학·미스터리·우주탐험 등을 HD프로그램으로 제작, 공급하고 있는 채널. 세계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채널의 프로그램이 국내에 방영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금표 대표는 지난 2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네빌 메이어 디스커버리 네트웍스 아시아 총괄 대표와 채널공급을 위한 사업제휴 계약을 맺었다. 스카이HD에 편성되는 HD프로그램은 ‘디스커버리HD Theatre’ 채널의 다큐멘터리들로, 프라임 시간대인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매일 1시간씩 방송된다.2월1일 저녁 8시에는 무(武)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2부작 ‘무예 X파일’이 방송된다. 이어 2일에는 HD화면의 실감나는 영상미를 느낄 수 있는 ‘지구촌 불꽃놀이’,3∼4일에는 각각 ‘방탄차의 해부’와 ‘익스트림 하와이’ 등이 방영되고 이어 7일에는 역동적인 영상이 돋보이는 ‘백상어:자유를 찾아서’가 선보인다. 스카이HD측은 “이번 디스커버리HD 프로그램의 블록 편성을 계기로 자체 콘텐츠의 질적 강화와 경쟁력을 높여 가입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2006년부터는 ‘디스커버리HD Theatre’를 별도의 채널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2005여자프로농구] 최윤아 ‘가드본색’

    독보적인 포인트가드였던 신한은행 전주원 코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코트 복귀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새롭게 창단한 팀의 성적이 바닥을 헤맸고, 자신을 대신할 만한 ‘야전사령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새까만 후배 최윤아(19)가 그의 빈 자리를 채울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25일 광주 구동체육관에서 열린 2005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경기에서 최윤아(8점 6어시스트 3스틸)의 빼어난 경기조율과 투지 넘치는 허슬플레이, 고비마다 터진 야투를 앞세워 신세계에 59-58,1점차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5승5패가 된 신한은행은 4개팀이 형성했던 공동3위에서 벗어나 단독3위가 된 반면 신세계는 4승6패로 꼴찌가 됐다. 최윤아는 1점차의 숨막히는 승부가 계속된 4쿼터 초반 48-47로 뒤집는 레이업슛을 터뜨린 데 이어 2분23초를 남기고서는 공격제한시간이 다 돼 던진 공이 림을 맞고 나오자 그대로 돌진해 골밑슛으로 연결,54-50의 승기를 잡았다.14.9초를 남긴 상황에서는 한채진의 쐐기 3점포를 어시스트해 주기도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③-삼성전자를 이끄는 CEO들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③-삼성전자를 이끄는 CEO들

    삼성전자의 지난 2004년 연간 매출은 57조 6324억원, 영업이익 12조 169억원, 순이익은 10조 7867억원으로(103억달러)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순수 제조업체로는 도요타에 이어 두번째다. 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은 삼성전자의 실적을 경제면 머리기사와 사설 등으로 취급하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전자의 지난해 이익은 마쓰시타(松下)전기, 히타치(日立),NEC, 도시바(東芝), 후지쓰(富士通), 미쓰비시(三菱), 오키(沖)전기 등 일본 10대 메이커의 지난해 순이익 합계 5370억엔(약 5조 3700억원)의 2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이병철 회장,37년전 “전자사업하겠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고속 성장은 69년 전자업계의 후발주자로 출발할 당시 ‘중복투자’ 등의 비난에 휘말렸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고 이병철 회장은 68년 사돈인 고 구인회 LG회장(이 회장의 차녀 숙희씨가 구 회장의 삼남 자학씨의 부인)과 안양골프장에서 라운딩 도중 전자사업 진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68년 12월30일 창립 발기인은 조우동 동방생명 사장, 손영기(이병철 회장 장남 맹희씨의 장인)안국화재 사장, 이병철 회장, 정상희(이병철 회장 5녀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시아버지)씨, 이맹희(당시 삼성물산 부사장)씨, 김재명(삼성 창업공신으로 이후 동서식품을 설립, 당시 제일제당 사장)씨, 정수창(당시 삼성물산 사장)씨였다. ●윤종용 부회장,“초밥이든 휴대전화든 속도가 생명” 삼성전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진들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96년말부터 9년째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윤종용(61) 부회장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그동안 숱한 상을 받았던 윤 부회장은 올 초에도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2004년에 이어 두번째 선정(Repeat Perfomer)으로 조 후지 도요타 사장, 스티브 잡스 애플컴퓨터 사장, 카를로스 곤 니산 회장 등이 윤 부회장과 함께 연속 선정됐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66년 삼성에 입사했다. 윤 부회장은 상무시절인 80년대 중반 잠시 네덜란드 필립스 본사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지만 이건희 회장의 부름을 받고 88년 삼성으로 돌아왔다.VCR와 DVD를 더해 빅 히트를 친 ‘콤보’제품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윤 부회장은 오늘날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반도체나, 휴대전화 등을 한번도 맡아본 적 없고 가전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 스스로도 “나는 비전문가요 ‘사이비’”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98년 7월 한달에만 무려 1700억원의 적자를 냈던 삼성전자를 오늘날 10조원대 이익을 내는 회사로 만든 데 윤 부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윤 부회장은 컬러TV의 재고를 줄이기 위해 수없이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던 삼성전자의 고질적인 문제를 과감히 혁파했다.97년말 8조 7000억원에 달하던 재고와 채권을 99년말 5조 2000억원으로 40%나 줄인 것이다.97년 국내 5만 8000명, 해외 2만 5000명이었던 인력은 각각 30%(1만 7400명),40%(1만명)나 회사를 떠나야 했다.120개가 넘는 사업과 제품을 매각하거나, 철수, 분사, 합작했다. 그래서 ‘진정한 혁신가’,‘기술 마법사’ 등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많은 별명 가운데서도 ‘구조조정의 달인’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삼성전자 주주총회때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참여연대 관계자들에게 “당신 주식 몇 주나 가졌어? 나도 주주야.”라며 호통을 칠 정도로 솔직하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까지 겹쳐 투박하게 들리지만 간결하다. 윤 부회장을 대표하는 경영 키워드는 ‘스피드’인데 그는 “초밥이든 휴대전화든 모든 부패하기 쉬운 것은 속도가 생명이다.”는 말로 핵심을 잘 설명한다. 스피드에 대한 윤 부회장의 애착은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남이 건너간 뒤에야 건넌다.”던 이병철 회장과 달리 “돌다리가 아니라 흙다리라도 있으면 건넌다.”는 지론에서 잘 드러난다. 윤 부회장은 “우리는 지금 초일류로 가느냐, 추락하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직원들을 다그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위기’를 강조한다.1993년 3월 이건희 회장의 제2창업 5주년 기념식사인 “21세기를 앞두고 남은 7년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살아남느냐 주저앉고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결단의 순간이 될 것이다.”란 말에서 모티브를 빌려 왔다. 이 회장의 ‘선문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윤 부회장다운 벤치마킹이다. 아들 태영(31)씨는 탤런트로 활동 중이다. ●황창규 사장, ‘황의 법칙’은 계속된다 경북 월성 출생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마친 이윤우(59) 부회장은 기흥공장장으로 일하던 80년대 중반 일본업체의 덤핑공세와 반도체 경기침체기에도 과감하게 256KD램과 1메가D램 양산 체제를 갖춰 삼성반도체의 신화를 이뤄냈다.68년 삼성전관(삼성SDI)으로 입사했다가 76년 삼성반도체 생산과장으로 반도체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황창규 사장에게 반도체총괄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신설된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올해 인사에서는 삼성전자 기술총괄(CTO)을 맡았다. 삼성 기술의 총아인 삼성종합기술원도 관장한다. 최형인(56)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가 부인이다. 황창규(52) 반도체총괄 사장은 아직 5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삼성전자 대표 사장으로 거론된다. 황 사장이 총괄사장을 맡은 지난해 삼성반도체는 매출 18조 2200억원, 영업이익 7조 4800억원으로 41%라는 기록적인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삼성전자 전체 이익의 62%가 반도체의 몫이었다. 16메가D램 개발팀장을 맡았고 세계최초로 256메가D램 개발에 성공하는 등 탁월한 연구개발 능력에 언변까지 화려하다. 엔지니어 출신 사장들이 커뮤니케이션에 약한 것과 대조된다. 딱딱한 주제인 반도체로 강연을 하면서도 5분 간격으로 수강생들의 웃음보를 터뜨릴 정도로 센스가 좋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마찬가지로 핵심을 정리하는 브리핑 능력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2001년 당시 난드플래시의 강자였던 도시바가 전략적 제휴를 제의해 온 것에 대해 그룹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자 이건희 회장에게 반대 논리를 펼쳐 결국 제휴를 무마시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난드플래시 세계 점유율 65%로 독보적인 1위를 달렸다. 부산 출생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반 만에 2배로 증가한다.”는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법칙을 깬 ‘황의 법칙’(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증가한다)으로도 유명하다. ●이기태 사장, 승부욕이 휴대전화 성공신화로 이기태(57)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감각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삼성 휴대전화를 책임지는 사령관답지 않게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휴대전화를 벽에 집어 던져 삼성 제품의 튼튼함을 확인시키는 것으로 해외 바이어와의 협상을 시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95년 3월 구미사업장에서 벌어진 무선전화, 팩시밀리 등 15만대의 ‘불량제품 화형식’을 지켜보면서 다져진 오기 덕분이다. 대전 출생으로 보문고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73년 삼성전자 라디오과에 입사한 뒤 줄곧 제조쪽에서 일하다가 90년 화상무선기기사업부로 옮기면서 휴대전화와 인연을 맺었다. 승부욕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며 사표도 두어차례 냈지만 이건희 회장의 돈독한 신임을 받고 있다. 선비 같은 용모의 최지성(54)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은 강원도 삼척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거쳐 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85∼91년 반도체 구주법인장을 지냈는데 당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삼성반도체를 ‘007가방’에 가득 싣고 험한 알프스 산맥을 자가 운전으로 넘어 다니며 애걸하다시피 영업을 했다고 한다. 삼성전자 사장단 가운데 유일하게 비서실에서 2차례(81∼85년,93∼94년) 근무해 시야가 넓은 편이다. 이상완(55) LCD총괄 사장은 서울고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마치고 76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반도체분야에서 생산기술·마케팅 등을 담당하다가 93년 걸음마를 뗀 LCD사업을 맡았다. 초창기 아직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던 삼성 LCD를 팔기 위해 도시바, 소니, 미쓰비시 등 일본업체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는 등 개발부터 판매, 품질까지 책임진 ‘톱 세일즈’로 유명하다. 천안공장, 세계 최대 LCD단지인 충남 아산 탕정공장 준공 등으로 LCD사업을 삼성전자의 ‘수종사업’으로 키워 놓았다. 경쟁사 대표의 ‘배신자’라는 비난에 유난히 속상해 하는 등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상운(53) ㈜효성 사장이 친동생이다. 지난해 윤종용 부회장이 직접 맡았던 생활가전총괄 사장으로 최근 부임한 이현봉(56) 사장은 경남 함안출생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6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상현 전 삼성전자 중국본사 사장,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박양규 삼성네트웍스 사장의 진주고 1년 후배다. 인사부장, 인사팀장 등 주로 인사부문에서 일한 때문인지 중앙인사위원회 자문위원,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 위원 등 외부활동이 많았다.2001년부터 2년간 국내영업사업부장을 맡으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내수시장 공략에 공을 들여왔다. ●최도석 사장, ‘안방살림’ 꼼꼼히 챙겨 인사, 재무, 기획, 홍보 등 스태프 기능을 총괄하는 최도석(56) 경영총괄 사장(CFO)은 마산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5년 삼성 재무인력의 양성소인 제일모직 경리과로 입사했다. 이학수 부회장이 당시 관리본부장이었다.80년 삼성전자로 옮긴 뒤에도 줄곧 경리·관리·재경·경영지원 등 ‘안방살림’을 도맡아 왔다. 삼성 사장단 가운데 가장 술이 셀 정도로 화통한 스타일이지만 연 매출 70조원(연결기준)이 넘는 회사의 재무를 총괄하고 있는 만큼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꼼꼼한 편이다. 삼성은 전자-SDI-전기-코닝-코닝정밀유리-테크윈으로 이어지는 ‘전자소그룹’을 유지하고 있다. 전자소그룹의 지난해 본사 매출(코닝·코닝정밀유리는 2003년)은 무려 69조 8897억원, 순이익은 11조 9618억원원에 달했다. 전자를 제외하고 가장 중량감 있는 CEO는 삼성SDI 김순택(56) 사장이다. 72년 그룹 공채로 입사해 제일합섬 소속으로 회장 비서실에서 주로 일했다.92∼94년 삼성전관 기획관리본부장을 지낸 인연으로 96년말 비서실을 떠나 삼성전관에 둥지를 틀었다.2000년부터 5년째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으며 사업구조를 브라운관에서 PDP,OLED,2차전지, 모바일LCD 등으로 바꿔놓았다. ●김순택 사장, 작년 해외출장 거리만 27만㎞ 무슨일이 있어도 신입사원 교육에는 빠지지 않는 데다 신입사원이 부서에 배치된 후에는 직접 이메일을 보내 안부를 묻는다.“기업의 가장 위대한 자산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년 110일 이상을 현장에서 보낸다. 중국, 말레이시아, 독일, 헝가리, 멕시코, 브라질의 10개 공장을 방문한 지난해 해외 출장거리가 27만㎞에 달했다. 삼성전기 강호문(55) 사장은 경기 부천 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석재(57)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이 전기공학과 68학번 동기다. 황창규 사장은 72학번, 권오현 사장(시스템LSI사업부장)은 71학번이다. 첫 사회생활은 금성전선에서 출발했지만 곧바로 삼성전자로 옮겨와 반도체, 컴퓨터, 네트워크 등을 담당했다.2002년부터 삼성전기 사장을 맡으며 삼성전기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큰 키(180㎝)에 미소가 인상적이다. 성균관대 예술학부장인 임학선(55) 교수가 부인이다. 브라운관 유리를 생산하는 삼성코닝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용산고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송용로(60)사장이, 세계 최대 LCD유리기판 업체인 삼성코닝정밀유리는 이석재 사장이 맡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항공기 엔진 등을 담당하는 삼성테크윈은 삼성물산·영상사업단·삼성생명 대표를 역임한 이중구(59)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IT축’인 삼성SDS 김인(56) 사장은 경남 창녕, 대구고와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그룹 비서실 인사팀장, 호텔신라 총지배인 등을 역임했다. 네트워크, 인터넷전화·국제전화 등을 영위하는 삼성네트워크 박양규(57) 사장은 삼성SDS, 삼성자동차의 설립 작업에 관여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반도체 ‘30년 비화’ 삼성은 지난해 12월6일 반도체사업 30주년 기념식을 갖고 2010년까지 25조원을 투자해 누적매출 200조원, 신규 일자리 1만개를 창출키로 했다.12월6일은 이건희 회장이 1974년 사비를 들여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한 날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평을 받는 반도체지만 출발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본지가 입수한 1992년 삼성그룹 비서실의 보고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에 따르면 사업 초기 삼성은 기술확보에 애를 먹다 해외업체에 지분을 양보하고서라도 기술을 도입하려 했었다. 이 보고서는 91년 4월 반도체 사업의 어제와 오늘, 문제점 등을 파악하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의해 작성됐다. 삼성반도체의 시련은 고 이병철 회장이 일본 NEC의 고바야시 사장을 초빙, 기술지원을 요청했지만 76년 방한한 NEC 엔지니어들이 기술이전을 기피하면서 시작됐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등으로 반도체가 적자를 면치 못하자 이번에는 이건희(당시 부회장)회장이 미 페어차일드 본사를 수차례 직접 방문, 기술이전을 요청했고 마침내 승낙을 받아냈다. 페어차일드의 요구조건은 삼성반도체 지분의 30%를 내놓으라는 것. 이 회장은 지분을 양보하더라도 기술 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협상을 위해 미국에 파견된 이모 상무 등 실무진은 “삼성의 기술수준으로는 신기술(당시 페어차일드는 64KD램 개발에 성공)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기술도입이 좌절됐다.79년 더 이상 반도체사업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병철 회장은 당시 가전·TV생산담당이었던 김광호(이후 삼성전자 회장을 역임)이사를 반도체로 보내 사업정상화 특명을 내렸다. 당시 강진구 반도체사장은 직원들에게 김 이사를 소개하면서 “만약 김 이사로도 삼성반도체를 살리지 못한다면 더 이상 반도체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강진구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73∼82년), 삼성전자 회장(88∼92년,93∼98년)은 물론 한국반도체 사장(75∼79년), 삼성반도체통신 사장(81∼88년), 삼성GTE통신 사장(77∼80년) 등을 역임하며 오늘날 삼성전자가 있기까지 많은 공헌을 했다. 김 이사는 대방동과 부천으로 나눠졌던 공장을 부천으로 통합하고 80년말 삼성반도체를 삼성전자에 인수합병시키는 한편 홍콩 시계칩 시장을 집중공략, 전세계 시계칩 시장의 50%를 차지하던 홍콩 시장 점유율을 60%로 끌어 올리며 흑자회사로 변신시켰다. 82년 2월8일 유명한 ‘도쿄선언’으로 반도체 사업 본격화를 선언한 이병철 회장은 부천공장을 대체할 대규모 반도체공장 부지를 물색했는데 후보지로 수원, 신갈저수지 부근, 관악골프장 부근, 판교 부근, 기흥이 선정됐다. 국내외 지질·수질 전문가들과 이 회장이 직접 헬기를 타고 조사한 끝에 12월18일 기흥지역이 최종 낙점됐다. 하지만 당시 기흥은 절대농지에다 산림보존지역으로 공장 설립이 불가능했다. 이에 이 회장과 내무부장관을 역임했던 최치환 반도체부문 사장 등이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1차로 10만평에 대한 허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수도권 공장 억제 정책과 땅값 문제 등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고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주가 17P 폭등 923…코스닥도 17P 올라 446

    주가 17P 폭등 923…코스닥도 17P 올라 446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 등 기술주 주도로 종합주가지수가 급등해 920선을 넘어섰다. 코스닥지수도 크게 올라 440선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17일 거래소시장에서 지수는 지난주말의 기세를 몰아 전날보다 10.12포인트 뛴 915.22로 출발한 뒤 상승 폭을 키워 17.98포인트(1.99%) 오른 923.08로 마감했다. 외국인은 정보기술(IT)주 중심으로 2777억원 순매수하며 이틀간 4690억원이나 사들였다. 삼성전자가 외국인 매수에 힘입어 4.45% 상승하며 49만원을 넘어섰다. 시가총액 5위인 LG필립스LCD도 상한가에 육박했다. 업종별로는 전기전자주가 5.55% 뛰며 독보적인 상승세를 과시했다. 의료정밀(4.11%), 운수장비(2.72%), 운수창고(2.68%), 증권(1.94%)도 크게 올랐다. 코스닥종합지수는 17.64포인트(4.12%) 오른 446.04로 장을 마쳤다. 이에 따라 코스닥지수는 지난해 5월4일의 458.80 이후 종가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주말 삼성전자의 분기 실적이 발표된 이후 IT부품 및 장비업체들이 일제히 강세를 보이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SCB 제일銀인수 파장과 전망

    SCB 제일銀인수 파장과 전망

    은행권의 판도가 외국계의 공세로 급변하고 있다.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이 제일은행을 인수키로 함에 따라 은행권 판도에 중대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물론 제일은행 인수 대상자로 SCB나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줄곧 거론돼오긴 했지만, 제일은행의 SCB로의 매각은 뉴브리지캐피탈의 펀드자금에서 금융기관 자금으로의 방향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토종은행과 외국계은행의 전면 대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시중에 매물로 나와 있는 외환은행 인수전이 한층 가열됨은 물론 이 과정에서 은행권에 ‘우수 인력 스카우트’바람도 몰아칠 전망이다. ●외국계은행, 삼각편대로 입성(?) 그동안 외국계은행으로는 한미은행을 인수한 한국씨티은행이 독보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SCB의 제일은행 인수로 외국계은행의 세력이 더 커지게 됐다.HSBC가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한다면 탄탄한 삼각편대의 ‘외인구단’을 구축하게 된다. 물론 국내 진출 30년 이력의 씨티은행이 주도권을 쥐겠지만, 큰손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종합자산관리)영업에 주력해온 SCB의 공격경영의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내에 진출한 SCB는 서울에 PB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은행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던 HSBC도 어떤 형태로든 국내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HSBC나 SCB가 금세 씨티은행의 경쟁 상대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펀드자금이 아닌 금융기관의 자금으로 은행을 소유할 경우 소매금융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씨티은행의 주된 경쟁 상대는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토종은행, 제2금융권 눈돌린다 은행권 주변에서는 시중은행들이 덩치키우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카드·증권·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란 얘기다. 유일하게 보험회사를 소유하지 않은 우리금융지주는 단독 보험사를 설립하거나 기존 보험사를 인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황영기 회장은 최근 LG카드 인수에 관심을 보여 ‘제2금융권’ 확보가 시급한 과제임을 내비치기도 했다. 외환은행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하나은행도 서울은행을 인수한 지 얼마 안 돼 내부정비가 필요한 데다 규모확대보다는 수익성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투자증권 인수는 사실상 마무리단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간의 인수·합병(M&A)은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 은행들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며 “제2금융권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데다 대우증권 등 매물로 나와 있는 회사가 많아 은행권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토종은행, 경쟁력 계기로 활용해야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은행의 주인이 외국계펀드에서 경쟁력을 갖춘 해외 유수 금융기관으로 ‘손바뀜’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며 “선진 금융기법을 전수받고 아시아 금융허브를 앞당길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HSBC보다 SCB가 국내 금융시장 진출이 늦기 때문에 국내은행 입장에서는 SCB가 제일은행을 인수한 것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면서 “SCB는 국내에서 수익성이 높은 프라이빗뱅킹(PB)과 모기지론, 카드영업 등을 통해 시장을 다진 뒤 기업금융 등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보다 앞서 경쟁체제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주병철 김미경기자 bc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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