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길회기자의 세상속으로] 사형수와 보낸 3시간
1000번쯤 했을까. 남자를 만나러 나갈 때도 하지 않는 ‘첫 만남 예행연습’을 거울 앞에서 반복했다. 혐오하거나 혹은 동정하는 눈빛을 보이게 되지는 않을까, 평소 입버릇처럼 쓰는 ‘아이고 힘들어 죽겠어요.’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밤을 하얗게 새웠다.
●빨간색 수형번호의 무게
“조금 전부터 기다리고 있어요. 여깁니다.”
종교 교정위원들과 재소자들이 만나는 장소인 서울구치소 교회(敎誨)건물 복도를 따라 걷다 어느 방 앞에 섰다. 문이 열리고 하늘색 재소복에 빨간색 수형번호를 단 사형수 2명이 눈에 들어왔다. 최고수들만 단다는 빨간색 번호표. 알고 갔지만, 영화에서도 봤지만 그 무게는 생각보다 컸다. 결국 연습했던 인사는커녕 어색한 웃음만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잘 있었어요? 지난달에 못 와서 미안해요.”
법무부 위촉 사형수 불교 교정위원으로 7년째 활동 중인 김필연(51·여)씨가 인사를 건네는 동안 방을 둘러봤다.5평 남짓 되는 공간의 한쪽에는 불상이 있고 남은 공간에 소파, 탁자, 책장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간단한 종교의식을 마친 뒤 김씨가 가져온 김밥, 떡, 만두, 전 등 음식들을 꺼내놓자 사형수들이 부지런히 탁자 위에 차려낸다.
하지만 낯선 이, 그것도 기자와 한 방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먹는 게 시원찮다. 주로 교정위원이 말을 하고 두 사람은 거의 듣기만 했다. 이곳을 찾아온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교정위원 “내가 배워가는 것 더 많다”
사형수들이 교정위원을 만나는 시간은 소설이자 영화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우행시)’처럼 로맨스가 없어도 진정 행복한 시간이다.1주일에 단 한 번 외부 사람, 그것도 자신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이해해주는 교정위원을 만나 얘길 할 수 있는 기회이고 가족조차 넣어줄 수 없는 사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어 있는 그들을 보니 ‘그들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기자가 찾아온다는 얘기를 듣고 괜찮았느냐고 묻자 “교정위원님을 믿으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랬다. 그들에게 교정위원은 단순히 한 주에 한 번씩 자유시간을 허락해주는 사람 이상의 의미였다.“우린 서로 속에 있는 얘기를 이미 다 한 사이예요. 나도 고민 있으면 여기 와서 털어놓고. 그러면 이 사람들이 해결해주고. 내가 뭔가를 해주고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받고 가요.” 김필연씨의 얘기다.
●웃어도 슬픈 사람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어색함이 가시자 한 사형수가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며 말을 꺼낸다. 그는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범죄 방법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가르쳐주는 것 같다. 무슨 대책이나 방법이 없겠느냐.”고 했다.
비록 자기는 최고수로 구치소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바깥 사회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심각한 얘기를 꺼낸 게 멋쩍었는지 “에이, 우리 같은 사람들만 없으면 세상이 좋아지겠지.”라며 웃는다.
웃는 눈매가 선해 보이지만 슬퍼 보인다. 문득 구치소 오기 전 교정위원이 한 얘기가 떠올랐다.“그 사람들 자기가 잘못한 것 너무나 잘 알아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거둔다고 해도 정작 그들 자신들은 영원히 지은 죄를 잊지 못할 거예요.”
사형수들은 보통 미결수 5∼6명과 함께 지낸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독방을 쓰기도 한다. 유영철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유를 묻자 옆에 있던 교도관이 “아직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기에는 위험하다.”고 알려준다. 그러자 한 사형수가 말한다.“몇년 지나면 그 독기 다 빠져요. 저도 그랬고 처음에는 다 그렇지만 결국 바뀔 겁니다.”
●‘그들의 행복한 시간’은 언제까지…
그곳에서의 생활은 다른 미결수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운동하고 드라마에 목숨을 건다. 인터넷이 없어도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외부 소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밖에서 보내주는 책도 자유롭게 읽는다. 하지만 단 한 권, 작가 공지영이 서울 구치소의 모든 사형수에게 선물했다는 ‘우행시’는 읽지 않았다.“왠지 읽을 수가 없더군요. 그냥 그랬어요.”
이때 책장에 꽂혀 있는 다른 책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의 변호사 스콧 터로의 ‘극단의 형벌’이라는 책이었다. 저 책은 읽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못했다.
예정된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각, 교도관은 급해진 마음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악수를 청하자 부끄러운 듯 손을 내밀었다. 자신 없는 손이었다.
교정위원처럼 ‘잘 지내요.’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사형 존치론자들이 늘상 환기시키는 피해자들이 머리에 스쳤기 때문이다.“머리 속이 복잡하지요? 저도 처음에 그랬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교정위원이 말했다. 사형수 두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날 역시, 잠을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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