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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숙 여사는 극한 상황 견디고 산 영특하고 의식 있는 분이셨다”

    “이은숙 여사는 극한 상황 견디고 산 영특하고 의식 있는 분이셨다”

    “우당상·영석상 제정해 올 11월 시상 임정기념관 김원봉 기록도 남길 것”11~14대 국회의원, 국가정보원 원장을 지낸 이종찬 우당기념관장은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이회영·이은숙의 손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도 맡고 있다. 우당기념관이 있는 서울 종로구 신교동은 우당의 선조 이항복이 살았던 서울 배화여고 뒤 필운대와 지척에 있다. 이 전 의원은 “‘우당상’과 ‘영석상’을 새로 제정해 독립운동 연구에 매진하고 사회공헌에 공로가 많은 인물에게 오는 11월에 시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석(潁石)은 독립운동 자금의 대부분을 댄 우당의 형 이석영의 호다. -우당은 어떤 인물인가. “우당의 삶 자체가 기성에 대한 저항이었다. 성리학에 저항해서 양명학을 했고 과거시험을 안 보고 신학문을 공부했으며 독립운동을 하면서 아나키스트 운동을 했다. 시대 조류와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 -이은숙 할머니는 어떻게 기억하는가. “영특하고 의식이 있는 분이셨다. 갓 낳은 젖먹이 고모(이규숙)를 안고 망명을 가 극한 상황을 견디고 살았다. 마적 떼에 습격당하는 등의 변을 겪으면서도 남편이 하는 모든 것을 뒷바라지했다. 북경에서 ‘새우젓 보내라’, ‘어리굴젓 보내라’는 등의 암호 편지를 보내곤 했는데 그대로 다 해냈다.” -6형제의 삶은 어땠는가. “넷째 우당은 만주 망명 후 국내에 다시 들어와 종로구 통인동 제자 윤복영(교육부 장관과 서울신문 사장을 지낸 윤형섭의 부친)의 집에서 숨어 지내며 고종 망명 사건을 모의했다. 그 정보가 새서 고종이 독살당한 것으로 믿고 있다. 둘째 석영은 영의정 이유원에게 양자로 가 재산을 다 물려받았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이유원은 경기 양주에서 서울까지 남의 땅을 밟지 않고 올 수 있을 정도로 땅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 상하이에 있던 석영은 윤봉길 사건 이후 고립돼 있다 굶어 죽었다. 어머니(조계진) 말씀이 당시 아버지(우당의 전처 소생 이규학)는 전차매표원으로 근근이 살며 40원을 받으면 10원씩 석영을 위해 내놓았다고 한다. 그것이 끊겨 죽은 것이다. 첫째 건영은 맏형으로서 선영을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1924년 귀국했다. 신흥무관학교장을 지낸 철영은 병사했고 호영은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마적 떼의 짓 아니면 배후가 일제일 것이다.” -아버지 이규학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인데. “아버지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김달하를 처단한 다물단원이었다. 어머니는 대원군의 외손녀로 외가는 중국에 가서도 남은 재산으로 우당 뒷바라지를 했다(이 전 의원의 외조부 조정구는 일제의 자작 수여를 거부하고 베이징으로 망명해 있었다). 외숙이 우당과 가까운 동지적 관계였다. 딸 둘을 병으로 잃는 등 어머니의 고생이 극심해 국내로 들어왔다가 다시 상하이로 가서 아버지와 살았다. 나도 거기서 태어났다. 일제에 붙잡혀 고문을 몹시 당해 청력을 잃고 폐인이 되다시피했다. 어머니 삶을 정정화 여사의 ‘장강일기’처럼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다.” -고모 이규숙과 숙부 이규창은. “숙부 이규창(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은 친일 앞잡이 이용로를 사살하고 13년 형을 받아 마포형무소에서 복역했다. 같이 복역하던 정이형씨에게 면회 오던 그의 딸과 광복 후에 결혼하고 반민특위 검찰관으로 일했다. 고모도 사실은 독립운동을 했는데 훈장 신청을 하지 않았다.” -임시정부기념관 건립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나. “서대문 독립공원 옆에 2021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이승만부터 김원봉까지 임정에 참여한 분들의 역사를 다 담으려 한다. 김원봉도 월북했지만, 임정에 참여한 분이니 기록을 남겨둬야 한다. 역사를 묻어버리면 안 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198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바로 제작 자유화 물결 그리고 할리우드 직배(직접배급) 영화의 상륙이다. 1985년 7월 제5차 개정영화법 시행으로 자유롭게 영화사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됐지만, 그 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86년 12월 제6차 개정영화법의 공포로, 외국영화사의 국내 진출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추석 시즌에 개봉한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 에이드리언 라인, 1987)가 할리우드 영화사의 첫 직배 영화였다. 영화인들은 격렬한 직배 저지 투쟁에 나섰고, 이는 청년 영화인들의 영화계 민주화 투쟁, 또 스크린쿼터 투쟁으로 이어졌다.이 시기 한국영화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충무로에서는 이장호와 배창호의 후예들이자 영화운동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박광수, 장선우, 정지영, 이명세 등이 등장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일련의 사회비판적 영화들을 내놓았다. 바로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로 명명된 작품 경향이다. 또 대학과 사회운동단체 등 제도권 영화계 밖에서는 한국 특유의 영화운동이라고 할 ‘독립영화’가 등장했다. 이번 연재에서는 1990년대의 르네상스를 예비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포착해 본다.●제작 자유화 그리고 직배 저지 운동 제5공화국 정권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혹은 올림픽이라는 정권 차원의 과업 때문인지 문화예술 영역을 강조했고, 예산 지원과 규제 검열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가동했다. 1984년 영화시책부터 반영된 영화예술 및 영화산업 활성화 방안도 당시 문화정책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었다. 1962년 1월 제정부터 1973년 제4차 개정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영화법이 국가의 통제를 위해 존재했다면 1984년 12월 공포된 제5차 영화법은 개방 영화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다. 영화제작업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됐고, 전격적인 독립제작제도까지 신설됐다. 영화업자가 아니더라도 영화제작 신고만 하면 누구나 연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1986년 하명중영화제작소를 시작으로 그해 27곳이 신고한 독립제작사는 1980년대 후반 100여곳에 달할 정도로 영화계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남프로덕션(대표 정지영), 파랑새(윤명오), 새빛영화제작소(주경중), 흙바람(장경기), 장산곶매(이은) 등이 충무로 시스템의 안팎에서 독립제작에 열중했다. 문화공보부의 영화 검열 업무도 심의제로 이름을 바꿨고, 주관자 역시 반관반민 기구인 공연윤리위원회로 이관됐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 같은 한국영화 육성 및 자율화 정책이 추진된 배경에는 1985년부터 시작된 한미 영화협상이 있었다. 미국영화수출협회(MPEAA)의 끊임없는 압력 끝에 한국영화는 전면적인 시장 개방이 예고된 상태였다. 결국 제6차 영화법 개정(1986년 12월 31일)으로 1987년 7월 미국 영화사들이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올림픽 기간인 1988년 9월 추석 프로그램으로 UIP(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 미국 메이저영화사의 연합배급사) 직배 1호 ‘위험한 정사’가 개봉했다.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존립 기반이 무너졌다며 격렬히 저항했다. 대부분의 영화사는 여전히 한국영화 제작보다 외화 흥행 수익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9일 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 철야농성으로 시작된 미국영화 직배 반대 운동은 9월 24일 수백명의 영화인이 ‘위험한 정사’를 개봉한 신영극장과 코리아극장에서 점거농성을 하며 더욱 격앙됐다. 직배 저지 투쟁은 해를 넘기면서 더욱 과격해졌다. UIP 직배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 관람석에서 암모니아 통과 뱀 자루가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고, 극장 안에 최루가스를 살포하거나 불을 지르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1990년까지 영화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결국 직배 반대 운동은 한계를 드러내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화 창작자, 제작자, 영화관 소유주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너무나도 이해관계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6년, UIP 직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 이면에 직배 영화 배급권을 둘러싼 극장주들의 암투가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도전·실험 기반한 ‘코리안 뉴웨이브’ 등장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8년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박광수, ‘성공시대’의 장선우,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명세 그리고 1988년 직배 반대 운동을 통해 영화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남부군’(1990)의 정지영 등 다소 유화적인 사회 분위기에 등장한 새로운 감독군과 작품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코리안 뉴웨이브의 등장은 제작, 검열 등에 관한 영화정책의 변화와 맞물린 결과였고,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성취한 사회변혁의 기운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뉴웨이브의 선두주자는 박광수였다. 그는 데뷔작 ‘칠수와 만수’에서 장기수 아버지를 둔 만수(안성기 분)를 통해 연좌제 문제를 언급했고, ‘그들도 우리처럼’(1990)에서는 탄광촌으로 도피한 운동권 대학생을 다루며 주제 의식에서도, 영화 미학에서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장선우는 영화적 화두와 미학적 스타일을 고정하지 않은 채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선우완과 공동 연출한 ‘서울황제’(원제 서울예수, 1986)로 검열의 수난을 겪은 그는 실질적인 데뷔작 ‘성공시대’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우화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우묵배미의 사랑’(1990)과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에서 물러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연출 방향을 전환했다.박광수와 장선우가 예민한 사회적 이슈들을 건드리면서도 영화언어에 대한 실험을 놓치지 않았다면, 정지영은 전통적인 영화 화법을 기반으로 한국 현대사의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는 쪽이었다. 그는 3년 동안 매달린 ‘남부군’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 남한에서 활동한 빨치산을 정면으로 다뤘고, ‘하얀전쟁’(1992)에서는 베트남전이 어떻게 개인들을 파멸해 갔는지 그려 내며 사회파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두 작품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을 한국영화에서 가장 먼저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정지영의 과감한 행보는 이후 한국영화가 소재와 검열의 한계를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한편 이명세는 사회 비판의 장에서 물러나 영화 매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열중했다. 데뷔작 ‘개그맨’(1989년 개봉)은 갱스터와 코미디 장르의 관습을 흥미롭게 비트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특별한 구성을 축조해 냈다. 이후 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1), ‘첫사랑’(1993) 등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미장센(감독의 화면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이처럼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은 단일한 범주로 묶기 힘든 다양한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한국영화 세대교체이자 르네상스의 가교 사실 코리안 뉴웨이브가 공식적인 운동이나 영화 사조로서의 집단적인 흐름을 이룬 것은 아니다. 이장호, 이원세, 배창호 등으로부터 비판적 리얼리즘 시각을 계승하며 영화언어의 자각을 통한 미학적 실험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1980년대 전체 혹은 1990년대 중반까지로 범위를 더 넓힐 수도 있다.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의 이장호, ‘꼬방동네 사람들’(1982)의 배창호, ‘만다라’(1981)의 임권택부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의 배용균까지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발간한 영문 자료집 ‘Korean New Wave’에서 대상 작품들의 시기를 1980년에서 1995년까지로 설정한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크게 보면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0년대 한국영화가 이룬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1980년에 활동을 재개한 이장호를 비롯해 배창호, 정지영, 신승수, 장길수, 박철수 등이 충무로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은 것과 영화운동 세대인 장선우, 박광수, 박종원, 이정국 등이 1980년대 후반 충무로에 입성한 것을 아우르는 것이다. 또한 이장호의 조감독 출신이 배창호, 장선우, 박광수 등이고 배창호의 조감독 출신이 신승수, 이명세 등이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형성되는 흐름을 엿볼 수 있다.시대정신을 새기며 새로운 영화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았던 1980년대의 새로운 물결은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예감하게 한 것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장미빛 인생’(1994)의 김홍준, ‘세상 밖으로’(1994)의 여균동, ‘세 친구’(1996)의 임순례, ‘넘버3’(1997)의 송능한, ‘초록물고기’(1997)의 이창동 등이 등장했고, 이들 작품은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주제 의식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포스트 뉴웨이브’로 명명됐다. 물론 장선우를 위시해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역시 1990년대 내내 진가를 발휘했다. 그들의 작업은 1990년대 한국영화가 작가주의 미학과 대중적 감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데 모범이 되는 것이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권력에 맞선 독립영화, 그들에겐 ‘투쟁’이었다

    권력에 맞선 독립영화, 그들에겐 ‘투쟁’이었다

    1980년대는 ‘운동’으로서의 영화가 발화하고 실천된 시기다. 충무로의 자본과 배급구조를 벗어난 비제도권 영화들이 현실사회의 참여와 정치적인 목적으로 제작되고 상영돼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독립영화의 정의가 자본뿐만 아니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까지 포함돼야 하는 이유다. 소형영화, 단편영화, 작은영화, 열린영화, 민중영화, 비제도권 영화 등으로 불리며 대안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을 펼친 1980년대의 영화운동은 1990년 1월 30일 ‘한국독립영화협의회’ 결성을 계기로 ‘독립영화’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한국 영화운동의 역사를 보려면 1979년 최초의 대학 영화단체로 결성된 서울대 영화연구회 ‘얄라셩’부터 거론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1982년 최초의 진보적 영화단체 ‘서울영화집단’의 설립에 주축으로 나서 1980년대 영화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박광수, 문원립, 홍기선, 송능한, 황규덕, 김홍준 등이 성원으로 활동했다. 제3세계 영화운동에 주목한 서울영화집단은 ‘민중영화론’을 주창하며 ‘수리세’(1984) 등의 소형영화를 만들었고, 1983년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를 출간하는 등 이론 작업도 진행했다. 1986년 서울영화집단을 비롯해 영화운동을 해 온 소규모 영화집단들이 발전적으로 해체, 통합하면서 ‘서울영상집단’이 결성됐다. 단체명은 영화운동을 필름 매체로만 한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홍기선, 이효인이 ‘파랑새’(8밀리, 40분, 1986) 사건으로 구속된 후 서울영상집단은 UIP 직배 저지 투쟁 등 충무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민족영화연구소’와 민족문화운동연합 산하의 서울영상집단으로 조직이 분리된다. 1989년 서울영상집단은 ‘들풀’, ‘새힘’과 함께 ‘노동자뉴스제작단’을 결성, 노동운동 현장을 기록한 ‘노동자뉴스’로 독립영화의 안정적인 배급 시스템을 확보하는 값진 성과를 이룬다. 1987년에는 ‘작은영화제’ 이후 활발하게 결성됐던 대학 영화패 중 총 13개 대학이 모여 ‘대학영화연합’이 탄생했고, 그해 7월 서울예전, 중앙대, 한양대 영화패의 청년 영화인들이 ‘장산곶매’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장산곶매가 만든 최초의 16밀리 장편 ‘오! 꿈의 나라’(이은·장동홍·장윤현, 1989)는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언급한 최초의 극영화다. 이 영화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국 150개 공간에서 500회 이상 상영하며 1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대안적인 상영망 구축의 훌륭한 선례를 남겼다.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작품 ‘파업전야’(이은·장동홍·장윤현·이재구, 1990)는 동시 상영 투쟁을 전개하고 관객들이 스스로 공권력에 대항해 상영을 성공시키는 등 1980년대 영화운동을 대표하는 귀중한 성과로 기록된다. 1980년대 충무로의 변방에서 대안 진영을 구축했던 대학 영화동아리 혹은 문화운동 출신의 청년들은 이후 대거 상업영화계로 이동해 199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전을 주도했다.
  • 조국 “檢에 적절한 인사권 행사”… 4분 취임사서 ‘개혁’ 10번 언급

    조국 “檢에 적절한 인사권 행사”… 4분 취임사서 ‘개혁’ 10번 언급

    曺 “감독기능 실질화해 개혁 완수할 것” 檢지휘부 초청 없이 서울고검장만 참석 1시간반 전에 열린 박상기 前장관 이임식 대검차장·서울중앙지검장 참석과 대조조국 법무부 장관은 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검찰개혁 의지를 재확인했다. 4분 남짓한 취임사에서 ‘개혁’이라는 단어를 모두 10차례 사용했다. 가족을 향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몸을 낮췄지만,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에 대한 감독 권한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 장관은 “우리나라 검찰은 많은 권한을 통제장치 없이 보유하고 있다”며 “누구도 함부로 되돌릴 수 없는 검찰개혁을 시민들, 전문가들, 여러분과 함께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 검찰개혁의 법제화, 국민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통제 등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감독 기능을 실질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조직 자체는 법무부의 외청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데, 앞으로는 소속 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날 취임식에는 검찰에서 김영대 서울고검장만 참석했다. 1시간 30분 전에 열린 박상기 전 장관 이임식에는 김 고검장을 포함해 강남일 대검찰청 차장,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참석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통상 법무부 장관 이취임식에 검찰총장은 참석하지 않고, 대검에서는 차장 이하 부장(검사장)과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참석한다. 조 장관의 가족이 수사를 받는 점을 고려해 법무부가 수사 지휘 라인은 초청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장관이 ‘참석자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총장은 취임식과 별도로 장관을 인사차 따로 만나는 게 관례지만, 수사 중인 만큼 이마저도 생략할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은 취임식장을 나서며 “장관 취임이 검찰 수사에 무언의 압박이 된다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을 받자 “공정하게 처리되리라 생각한다”고 짧게 답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04년 서울대 법대 부교수로 임용된 조 장관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 학자로 꼽힌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검찰개혁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을 거쳤다. 2010년 저서 ‘진보집권플랜’을 펴내며 진보 이미지를 굳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비검찰 출신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돼 검찰개혁을 이끌었다. 장관 후보자 지명 후 딸과 부인 등 가족 관련 의혹이 불거지면서 낙마 위기를 맞았지만 이날 임명됐다. 한편 이날 이임식에서 박 전 장관은 “피의사실 공표, 포토라인 설정, 심야 조사 등의 문제점은 하루속히 개선돼야 한다”며 “검찰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공소권 행사기관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남편을 스승처럼’… 빈곤과 싸우며 독립운동 헌신한 사대부 집 여인

    ‘남편을 스승처럼’… 빈곤과 싸우며 독립운동 헌신한 사대부 집 여인

    1920년대 초 심산(心山) 김창숙이 중국 베이징 우당(友堂) 이회영 집에 찾아갔더니 그의 얼굴이 매우 초췌해 보였다. 심산이 “공원에 나가서 바람이나 쐬자”고 했더니 우당은 거절했다. 우당의 아들 규학이 말했다. “이틀 동안 밥을 짓지 못하였고 의복도 모두 전당포에 잡혔습니다. 아버지께서 문밖에 나서지 않으려는 것은 입고 나갈 옷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가치로 600억원대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우당은 죽는 날까지 빈곤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았다. 그런 우당을 평생 뒷바라지한 사람이 부인 이은숙 여사다.이은숙은 1889년 8월 8일 충남 공주에서 고려 말 충신 이색의 후손인 한산 이씨 진규공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달성 서씨와 사별한 우당과 1908년 10월 상동예배당에서 혼례를 치렀다. 백사(白沙) 이항복의 10대손인 우당은 노비를 풀어주고 과부가 된 여동생들을 개가시키며 마흔 넘은 나이의 결혼식도 신식으로 치를 만큼 열린 사고의 소유자였다. “우리 형제가 당당한 호족의 명문으로서 차라리 대의가 있는 곳에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하게 도모한다면 어찌 짐승과 다르겠는가.”(이관직, ‘우당 이회영 실기’)우당 6형제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그해 1910년 12월 30일 모든 재산을 처분해 압록강을 건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선택한 고행의 시작이었다. 이은숙과 출가한 딸까지 일족이 마차 10여 대를 타고 만주 벌판을 달려 도착한 곳은 유하현 추지가였다. 우당 형제들은 먼저 동포들의 정착과 농업을 지도하기 위한 경학사를 조직했다. 1911년 5월에는 광복군 양성의 본산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몇 해 만에 그 많은 재산도 바닥이 드러났고 곤궁한 생활이 시작됐다. “농사는 강냉이와 좁쌀, 두태(콩팥)고 쌀은 2,3백 리나 나가 사오는데 제사에나 진미를 짓는다. 어찌 쌀이 귀한지 아이들이 이름 짓기를 ‘좋다밥’이라고 하더라.”(이은숙, ‘서간도 시종기’)독립운동의 터전을 다져 놓은 다음 우당은 1913년 조선으로 잠입했다. 자금 마련 말고도 우당은 고종 망명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만주에 남은 식구는 열셋이나 되었는데 양식은 강냉이밖에 없었다. “강냉이를 따서 3주가 되면 그걸 연자에 갈면 겨 나가고 쌀이 두 말도 못 되니 며칠이나 먹으리오.” 설상가상 마적 떼의 습격을 받았다. 이은숙도 왼쪽 어깨에 총탄을 맞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남았다. 우당이 조선에서 체포된 소식이 전해졌다. 이은숙은 전전긍긍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면서 혼자 몸으로 대식구의 생계를 보살피는 고난의 세월을 이어갔다. 와중에 홍역으로 우당의 형 이석영의 큰아들이 사망하고 이은숙까지 같은 병으로 죽을 고생을 하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이중고, 삼중고를 당했다. 우당이 돌아오지 않자 1917년 이은숙은 아들, 딸을 데리고 국내로 들어왔다. 그것도 잠시, 고종이 승하하자 우당은 중국 베이징으로 두 번째 망명길에 올랐다. 이은숙도 곧이어 아이들을 데리고 따라갔다. 고난의 베이징 생활이 시작됐다. 우당의 집은 독립운동 본부이자 사랑방이었다. 우국 지사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좁은 집에 함께 지냈다. 어려운 살림의 책임은 이은숙에게 있었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40여 명이 우당 집에서 먹고 자고 했으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집세가 싼 집을 찾아 이사한 것도 1년에 수십 번이었다. 그러면서도 독립운동가 남편을 스승처럼 극진히 섬겼다. 1~2년은 동지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그럭저럭 견뎠지만, 그 후 지원이 끊겨 먹을 양식이 없었다. 신분을 숨기고 지내야 하는 처지였기에 돈을 벌 수도 없었다. “하루 잘해야 일중식(日中食)이나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절화(絶火·밥을 짓지 못함)하기를 한 달이면 반이 넘으니 생불여사로다.” 만석꾼이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기아를 겪게 된 것이다. 이은숙은 굶주리는 남편을 보고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 마음이 아팠다.우당은 그즈음 아나키즘(무정부주의)에 심취해 이을규 형제, 백정기, 정화암 등과 먹으며 굶으며 함께 생활했다. 단재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들도 여전히 드나들었다. “짜도미라는 쌀은 사람이 먹는 곡식을 모두 한데 섞어 파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가장 하층민이나 사다 먹는 것으로…그도 없으면 강냉이를 사다가 죽을 멀겋게 쑤어 그것으로 연명하니…” 사정을 잘 아는 정화암 등은 약간의 돈을 주면서 “선생님 진지는 쌀을 사다 해 드리고 우리는 짜도미 밥도 좋으니 그것을 먹겠소”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에 김달하 사건이 터졌다. 김달하는 겉으로는 애국지사인 양 행동했지만, 사실은 밀정이었다. 그런데 김창숙이 우당을 김달하와 한패인 것으로 잘못 알고 절교 편지를 보냈다. 이은숙은 칼을 품고 찾아가 사실이 아니라고 항의했다. 남편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리겠다는 결기였다. 오해는 풀렸고 김달하는 항일 테러단체 다물단이 처단했다. 우당의 딸 규숙도 처단에 연루돼 근 1년 동안 중국 공안국에 구금당했다. 와중에 아들 규학의 딸 둘과 우당의 아들이 성홍열로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언제나 굶는 극한의 빈곤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당과 아들, 딸을 베이징에 남겨두고 이은숙은 궁여지책으로 돈을 마련하고자 귀국했다. 1925년 여름이었고 임신한 몸이었다. 그 길이 우당과 영영 이별하는 길이 될 줄은 몰랐다. 이은숙은 귀국하자마자 다소간의 돈을 변통해 우당에게 보내주었다. 출산한 작은아들 규동을 품에 안고 친척집을 떠돌며 베이징 가족의 생계부터 먼저 생각했다.우당은 만주에 재만조선민주주의자연맹을 결성했다. 또 톈진으로 가 아나키스트들과 파괴공작을 도모했다. 1926년 나석주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으로 일제의 추적이 심해지자 우당은 돈 한 푼 없이 걸어서 상하이로 갔다. 환갑이 지난 나이였다. 두 딸은 빈민구제원으로 보냈다. 그러나 도적을 만나 행장을 다 잃는 변을 당해 다시 톈진으로 돌아왔다. 우당은 딸 규숙의 옷까지 팔아 연명했지만, 끼니를 거르기는 다반사였다. 국내에 있던 이은숙도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고무공장에 취직해 다니고 삯바느질과, 심지어 사대부 집안 딸의 몸으로 유곽집 삯 빨래를 하며 자기 입에도 풀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돈을 버는 대로 우당에게 보냈다. 굶으면서도 우당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상하이로 가 남화한인연맹을 결성하고 남화통신을 발행하는 한편, 흑색공포단을 조직했다. 이어서 만주로 다시 가서 지하공작망을 조직하고자 했다. 여러 사람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다롄에서 배를 타고 가려다 해상에서 일경에게 붙잡혔다.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우당은 심한 고문을 받은 끝에 사망했다. 65세 노인의 몸이었다. 일제는 자살이라고 했지만 12일간의 혹독한 심문을 받은 끝의 명백한 고문사였다. 딸 규숙이 우당의 신체를 봤는데 눈을 뜨고 있었고 안면에 선혈이 낭자했으며 중국식 의복에도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일생의 몸을 광복운동에 바치시고 사람이 닿지 못하는 만고풍상을 무릅쓰고 다만 일편단심으로 ‘우리 조국, 우리 민족’ 하시고 지내시다가 반도 강산의 무궁화꽃 속에서 새 나라를 건설치 못하시고 중도에서 원통 억색히 운명이 되시니 슬프도다.” 비통한 심정을 이은숙은 축문에서 이렇게 썼다. 이은숙은 남편이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보고 1979년 12월 11일 90세에 서울에서 작고했다. 정부는 우당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이은숙에게 지난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또 촛불 든 서울대생들 “조국 장관 임명, 법 집행 공정성 불신 키워”

    또 촛불 든 서울대생들 “조국 장관 임명, 법 집행 공정성 불신 키워”

    서울대 학생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하라”임명된 상황에서 집회 참가자 500명 참석학생회, “검찰 독립성 불신 낳는 결정” 비판조국(54)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임명된 가운데 이날 오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조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관악 캠퍼스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번 집회는 조 장관의 임명과 서울대 개강 이후 첫 촛불 집회다. 이날 오후 6시30분 서울대 아크로 광장에서 열린 ‘제3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에는 5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1차 집회 500여명, 2차 집회 700여명로 참여 인원이 늘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다시 참석자가 줄었다. 참석한 재학생과 졸업생 등은 촛불과 피켓을 들고 “법무 장관 자격 없다. 지금 당장 사퇴하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도정근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검사의 입장에서 피고인의 남편이 법무부 장관이라면 공정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겠느냐”면서 “조국 교수의 가족들과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모두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조 장관이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인 법무부 장관이 되는 건 검찰 독립성과 법 집행의 공정성에 불신을 키운다”고 주장했다. 김다민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오늘 대한민국의 정의와 공정은 죽었다”면서 “정부가 지켜야 할 원칙과 일관성은 평등, 공정, 정의였는데 이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결정을 내리고야 말았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짓을 당장 중단하고 책임 있는 모습으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자유발언 기회를 얻은 김근태 재료공학부 박사과정 재학생은 “정치판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이 낯설지 않다”며 “새롭게 권력을 잡은 이들의 행태도, 분열된 국민의 모습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2년 전에 든 촛불과 지금 든 촛불은 다르지 않다”면서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타락시키는 불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총학은 이날도 역시 집회가 정치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들은 지난 1·2차 집회와 마찬가지로 집회 참석자의 학생증 및 졸업증명서를 확인했다. 재학생 또는 졸업생 여부가 확인된 학생에게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이날 촛불집회는 중앙도서관부터 정문까지 행진을 끝으로 해산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슬쩍 아파트 들어가던 82세 노인... 알고 보니

    슬쩍 아파트 들어가던 82세 노인... 알고 보니

    美 ‘홀리데이 절도범’ 검거2014년부터 약5억원어치82세, 플로리다-뉴욕 운전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에서 검은 가방을 든 노인이 한 건물에 들어가려다 보안 직원의 제지를 받았다. 노인은 “사촌 수아레즈를 방문하러 왔다”고 말했지만 직원은 이 건물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노인은 “아마 건물을 잘못 찾은 모양이다”라며 빈 검은색 가방을 든 채 건물 밖으로 나왔다. 잠시 뒤 경찰은 그를 붙잡았다. CNN은 8일(현지시간) 뉴욕 고급 아파트에서 빈집을 돌며 5년간 40만 달러(약 4억 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82세 사무엘 사바티노가 붙잡혀 수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사바티노는 주로 현충일, 독립기념일, 노동절 등 휴일에 범행을 저질러 ‘홀리데이 절도범’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범행을 위해 휴일이나 주말에 플로리다에서 맨해튼까지 손수 차를 몰고 ‘대장정’을 떠났다. 뉴욕에 도착한 그는 휴식을 취하는 대신 경비요원이 경계를 소홀히 한 틈을 타 고급 아파트에 슬쩍 들어갔다. 그는 문 앞에 신문이나 우편물 꾸러미가 쌓인 집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런 집에 몰래 들어가 시계, 결혼반지, 다이아몬드, 금 장신구 등을 훔쳤다. 검찰은 그가 올해에만 아파트 단 3곳에서 무려 10만 달러어치 물건을 훔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뉴욕 경찰국은 2014년부터 사바티노가 벌인 일련의 절도 사건을 수사해 왔다. 경찰은 사바티노가 12건의 미결 절도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관들은 ‘내니캠’(아기 관찰용 카메라)에 찍힌 그의 모습을 공개하며 신원 확인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오랜 절도 전력이 있으며 2001년에도 기소된 적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이름과 캘리포니아주 자동차 운전면허증, 차량 등록증, 은행 계좌를 갖고 가짜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 사바티노라는 실명 역시 그가 가명과 섞어 쓰는 여러 이름 중 하나였다. 사바티노는 지난달 말 체포 당시 사복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경찰은 플로리다에서 뉴욕시로 향하는 그의 차량을 추적한 것이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사바티노의 보석금은 현금 25만 달러나 채권 50만 달러로 책정됐다. 그는 유죄가 확정되면 1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2000년 전 흉노족 여인 유골 발견…스마트폰처럼 생긴 벨트 차

    2000년 전 흉노족 여인 유골 발견…스마트폰처럼 생긴 벨트 차

    러시아 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의 알라타이 저수지에서 스마트폰처럼 생긴 벨트를 찬 유골이 발견됐다. 시베리아타임즈와 러시아타임즈는 8일(현지시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가장 좋아하는 휴양지 중 한 곳으로도 유명한 투바공화국에서 약 21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됐다고 전했다. 발굴 지역은 러시아 최대 수력발전소인 사야노-슈셴스카야댐 상류에 위치한 알라테이 저수지로, 이 인공저수지의 배수작업을 벌이던 중 고대 무덤이 드러났다.무덤의 주인은 약 2100년 전 흉노족 여성으로, 110여 점의 유물과 함께 묻혀있었다. 고고학자들은 특히 유골의 허리춤에 있던 특이한 모양의 벨트에 주목하고 있다. 파벨 레우스 박사는 “가로 18㎝, 세로 9㎝로 현대의 스마트폰이 연상되는 검은색 옥원석 재질의 벨트가 허리춤에 있었다”면서 “중국의 옛 동전인 ‘오수전’ 장식으로 유골이 묻힌 시기를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벨트에 장식으로 사용된 중국 동전은 약 2137년 전 주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레우스 박사는 또 “유골은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하던 흉노족 여성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투바 공화국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까지 흉노족이 지배했으며 6세기 돌궐족, 8세기 위구르족, 13세기 몽골족, 18세기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1912년 청 왕조가 붕괴되면서 독립이냐 몽골 편입이냐, 러시아 편입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다 결국 1914년부터 러시아의 보호를 받게 됐다. 이에 대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사문화연구소의 마리나 킬루노프스카야 소장은 “투바는 고대부터 우랄계, 알타이계, 튀르크계, 몽골계, 사모에드계, 케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아온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부유한 흉노족 유목민의 무덤은 강도에 의해 파헤쳐지기 일쑤”라면서 “이 때문에 흉노족 유적이 이처럼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굴된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황교안 “문 대통령 정권 몰락해도 좋다면 조국 임명 강행하라”

    황교안 “문 대통령 정권 몰락해도 좋다면 조국 임명 강행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비록 가까스로 인사청문회는 마쳤지만 부인이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할지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정권이 몰락해도 좋다면 임명을 강행하라”고 밝혔다. 황교안 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 여당이 모두 나서서 검찰 물어뜯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조 후보자 부인인) 정경심 교수를 기소한 검찰을 ‘정치검찰’이라고 공격을 퍼붓는데, 이런 행태야말로 검찰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무너뜨리고 검찰을 정치검찰로 만드는 악습”이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이어 “조국 한 사람 때문에 온 나라가 혼란과 갈등에 빠져 있는데, 끝내 임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단순히 대통령의 고집이라고만 볼 수 있겠느냐”면서 “문재인 정권이 검찰 수사를 계속 방해하고 끝내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특검(특별검사)과 국정조사를 하더라도 불법을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최고위원회의가 끝나고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 뜻에 반해 조 후보자를 장관에 임명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 당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강력한 투쟁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연휴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추석 연휴 기간에) 지역에서도 정부의 폭정을 막아내기 위한 총력 투쟁을 하는 등 강력한 투쟁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경우 즉시 긴급 의원총회가 소집될 예정”이라면서 “긴급 의원총회에 한 분도 빠짐없이 신속히 참석할 수 있도록 오늘 오전부터 국회에서 비상대기 해주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정경심 교수는 2012년 9월 딸에게 동양대 총장 명의의 표창장을 허위로 만들어준 혐의(사문서 위조)로 공소시효(7년) 만료 직전인 지난 6일 기소됐다. 이날은 조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피의자 조사 없이 기소가 이뤄져 논란이 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캐릭터 힘빼고 살도 빼고 ‘담백 청년’으로 돌아오다

    캐릭터 힘빼고 살도 빼고 ‘담백 청년’으로 돌아오다

    “굳이 살아남아야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등장하는데 굳이. 배우가 자꾸 크게 뭘 하려고 하면 보는 사람이 파고들 틈이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옆에 너무 훌륭한 캐릭터들이 많으니까, 너무 과욕부리지 말자고 마음먹었죠.” 캐릭터 전쟁인 ‘타짜’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정민(33)은 어떻게 관객의 눈에 들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공시생 ‘일출’ 역을 맡았다. 평범한 청년의 성장을 그렸던 그간 ‘타짜’의 주연과 비교해보면, 일출은 밤에 포커판에서 눈이 반짝인다는 것만 빼곤 더욱 평범하고 담백하다. 이는 태생적으로 자기 드러내기를 꺼리는, ‘담백한 사람’ 박정민에 힘입은 바가 커 보인다. 이번 ‘타짜’의 세 번째 시리즈는 박정민의 필모그래피에서 꽤나 튄다. 독립영화 ‘파수꾼’(2011)으로 데뷔한 그는 이후 ‘동주’(2016), ‘변산’(2017) 등 예술성이 두드러지는 영화들에 주로 나왔다. ‘타짜2’에 ‘짜리’ 역으로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는 박정민은 중학교 때부터 케이퍼무비(강탈·절도하는 행위와 그 과정을 보여주는 범죄영화 장르)의 광팬이었다. “‘오션스’ 시리즈, ‘나우 유 씨 미’ 같은 영화들 보면 참 신나거든요. 사람들이 나와서 사기 치고, 복수하고….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잖아요.” ‘담백한 정민씨’이지만, 장르물이기 때문에 평소보다는 더욱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자연스러움에 기대서 ‘인간 박정민’을 편하게 그리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곧게 자리잡고 서서 정확하게 전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 덕에 ‘애꾸’(류승범 분), ‘마귀’(윤제문 분) 같은 ‘센 캐릭터’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냈다.박정민이 ‘타짜’를 대하는 자세에는 매서운 데가 있다. 일단 몸무게를 20㎏ 이상 뺐다. 복수를 도모하는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58㎏의 ‘버석버석한’ 일출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신조어 ‘급짜식’을 언급했다. ‘급하게 차게 식는다’는 변형한 말이다. “‘나중에 두고 봐’라는 건 사실 무섭지 않죠. 너무 화날 때 되려 싸늘해지는 사람,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일출이 초반에는 빨강·초록색이 들어간 옷을 입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무채색이 되는 것도 “모노톤의 인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이라는 의도였다. 현란한 카드 기술도 직접 구사했다.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7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적절히 연습했어요. 남이 해줘도 대세에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배우가 하는 걸 보면 (관객들) 몸이 앞으로 한 번은 더 가니까요.” 지난달 28일 열린 시사회에서는 뜻밖에 박정민이 류승범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가 됐다. 류승범은 “시나리오와 함께 받은 그 편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최근 에세이 개정판(‘쓸 만한 인간’)을 내기도 한 그다.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후배가 누구인지 알려 드려야 할 거 같았어요. 선배를 보면서 꿈을 키웠던, 제 소개를 하는 차원의 편지고 팬레터인거죠. 감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는 못 적었고요.” 어릴 적 우상인 류승범과의 촬영과 함께, 영화 현장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도 ‘타짜’가 준 소득이다. “자기 연기만 신경 쓰던 배우가 영화를 생각하게 됐어요. ‘파수꾼’ 때 만났던 촬영·조명 감독님이었고, 미술 감독님도 영화판에서 같이 성장한 형들이죠. 그래서 아이디어도 계속 공유하고, 같이 영화를 빚어나가는 느낌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일출’과 ‘인간 박정민’은 닮은 부분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열등감”을 꺼내 들었다. 그에게 일출은 ‘포커는 금수저나 흙수저나 카드 7장 들고 치는 건 똑같다’는 대사처럼, 열등감이 많은 캐릭터다. “저도 저 자신에 대해 만족을 잘 못하고, 열등감이 있는데 그래서 자꾸 잘하는 게 뭘까 고민하면서 움직입니다.” 항상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보면, 실수한 부분이 눈에 띄어서 기분이 안 좋다는 박정민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새 작품에서 그의 더 치열한 연기를 볼 수 있는 게 아닐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상가 권리금보호신용보험 상품은 권리금 못 받아 발생하는 손해 보상”

    “상가 권리금보호신용보험 상품은 권리금 못 받아 발생하는 손해 보상”

    “지난해 말 기준 상가 임대차 계약 가운데 70%가 권리금이 존재하는데 자영업자들이 많이 창업하는 숙박, 음식 분야는 88%에 이릅니다. 전국 평균 4535만원, 서울 평균 5472만원으로 집계되는데도 권리금이 있는 상가의 20% 정도만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어 보호받지 못할 위험이 상당합니다. 해서 법령 및 제도가 정비되는 것과 발맞춰 권리금보호신용보험을 출시하게 됐습니다.” 보증업계의 선두주자 SGI서울보증이 지난 2일 상가 권리금을 보호하는 상품을 내놓는다고 해 김상택(58) 대표와 마주 앉았다. 1988년 입사해 영업 일선을 두루 경험하고 회사 설립 50년 만에 처음 내부 승진을 통해 2017년 12월 대표에 취임했다. 복잡한 사안을 설명하는 데 막힌 구석이 없다. ●임대인 방해 여부 조정되면 손해배상액 지급 김 대표는 새로 선보인 상품에 대해 “임대인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서 규정된 방해 행위를 해서 임차인이 권리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보증보험이 그 손해를 보상하게 된다”면서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임차인들이 소송이나 강제 집행을 통해 보상받으려면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법원 판결 전 상가건물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임대인의 방해 행위 여부가 조정되면 손해배상액을 산정해 지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회사의) 보상액은 신규 임차인으로부터 받기로 했던 권리금과 임대차 계약 종료 때의 권리금 가액 가운데 낮은 쪽이 된다. 또 손해액이 결정되지 않으면 회사가 별도의 감정 평가를 통해 보상액을 결정한다. 김 대표는 또 1만원부터 많게는 10만원 정도 드는 조정 신청 수수료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상가보증금보장신용보험도 출시했는데 임대인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하는 임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보증금 전액을 보상하는 상품이다. 이제는 제법 알려진 전세금반환보증상품의 상가용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임차 보증금 전액 보상하는 상품도 출시 김 대표는 “임차인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도록 우선변제권을 회사가 승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서울은 보증금과 월세의 100배를 합한 금액이 9억원을 초과하지 않아야만 가입이 가능하며 과밀억제권역, 광역시 여부 등에 따라 상한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회사 소개를 부탁하자 “채무자에게는 부족한 신용을 보완해 주고, 채권자에게는 담보를 제공해 신용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보증보험 제도다. 국내 보증시장 규모는 70여개 업체 1200조원으로 추정되는데 SGI서울보증이 25%를 차지하며 국제신용보증보험협회(ICISA)로부터 2017년 원수보험료 기준 세계 3위로 뽑혔다. ●“베트남 지점 모델 亞시장 선도 역할 할 것” 지난 2월 창립 50주년을 맞아 고객, 파트너십 경영, 디지털, SGI 프라이드 등 4대 경영 비전을 선포한 김 대표는 “베트남 하노이 지점을 통해 8500건 5400억원을 공급했고 지금은 시장 확대를 위해 베트남 입찰법 개정에 집중하고 있다. 매년 베트남에 해비탯 자원봉사를 다닌다. 중국 기업들과 합작 회사를 설립하는데 연말 예비인가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 나라를 모델로 아시아 보증보험 시장을 선도하도록 더욱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사옥이 들어선 곳의 의미가 간단치 않다고 강조했다. 김상옥로 29번지는 정신여고 터이기도 하다. 김상옥 의사는 일제 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한당사령부장을 역임했으며 일본 경찰의 추적과 미행을 따돌리며 종로 일대를 누빈 활약상이 전해진다.  김마리아 선생은 1910년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 유학을 마치고 2·8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국해 독립 사상을 고취하다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5개월 옥고를 치렀다. 정신여고 옛터에 자리한 SGI서울보증 야외정원에는 일경의 수색을 피해 3·1운동 관련 비밀문서와 태극기, 역사책을 숨겼던 55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오롯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립 50주년을 맞으면서 사옥 뒤편에 김마리아 흉상을 세운 이유다. 지금도 정신여중고 학생들이 이따금 찾아와 오래 전 선배의 뜻을 기리는데 김 대표나 임직원들이 커피도 대접하고 얘기도 주고받는다고 했다. 사옥 4층에는 조그마한 사내 박물관이 꾸며져 있다. 1982년에 국민카드로 양도된 국내 최초의 신용카드 견본도 어렵사리 구해 전시하고 있고, 대한뉘우스의 영상 자료를 뒤져 찾아낸 대한보증보험 출범식 때 사진도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많은 분들이 서울보증 하면 낯설게만 느끼시는데 사실 1980년대 마이카붐이 일었을 때 전국 자동차의 80~90%는 우리 회사의 보증이 있었기에 달릴 수 있었고, 2000년대 핸드폰이 보급되는 데 단말기 할부 보증이 뒷받침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새롭게 꾸민 컨퍼런스룸에 ‘다다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합의에 이른다’라고 적힌 액자를 걸어두었는데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고령자가 낸 사고 10년 새 2.5배… 아버님, 이제 운전대 놓을 때입니다

    고령자가 낸 사고 10년 새 2.5배… 아버님, 이제 운전대 놓을 때입니다

    일반인 비해 출발 반응시간 17% 지연 도심 돌발상황 대응 땐 0.71초 더 걸려 “노인 대다수가 면허증 반납에 소극적 가족들이 신체 능력·운전 패턴 살펴야”지난달 5일 오후 4시 30분 대구 동구 진인동 팔공로에서 A(81)씨가 운전하던 오피러스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의 B(55·여)씨가 운전하던 아우디 승용차와 충돌했다. 이후 A씨의 승용차는 도로변 고압선 전봇대에 부딪혀 A씨와 옆에 타고 있던 부인 C(78)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맞은편 차에 탔던 B씨 등 여성 2명은 손목 등에 골절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운전면허증을 보유한 65세 이상 고령자가 늘어나며 고령 운전자의 미숙한 운전에 따른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추석 명절을 계기로 집안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 패턴을 집중 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8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인 운전면허 소지자는 2009년 118만 4941명이었으나 지난해 307만 650명으로 2.6배(연평균 11.17%) 늘었다. 같은 시기 고령 인구가 517만 6886명에서 738만 510명으로 1.4배(연평균 4.02%) 늘어난 것에 비하면 증가세가 가파르다. 전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09년 23만 1990건에서 지난해 21만 7148건으로 6.4%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1만 1998건에서 지난해 3만 12건으로 10년 새 2.5배 늘었다. 사고 유형별로 보면 고령 운전자가 유발한 교통사고의 75%가 차량 간 충돌 사고로 나타났다. 이 밖에 자동차가 사람을 친 사고가 19.4%, 차량이 단독으로 구조물과 충돌하거나 전복된 사고가 5.6%로 나타났다. 조성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은 “차간거리나 속도 등에 대한 인지 반응 능력이 신체 노화에 따라 저하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차선 변경, 추월, 끼어들기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일반 운전자가 자동차를 출발시킬 때 반응시간이 0.63초인 반면 고령 운전자는 0.73초로 17% 느리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심에서 반응하는 시간은 일반 운전자가 0.70초, 고령 운전자는 1.41초다.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돌발 상황의 경우 일반 운전자가 1.07초, 고령 운전자는 1.26초가 걸린다. 고령 운전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망자를 유발한 사고는 운전 미숙이나 전방 주시 태만과 같은 안전 의무 불이행에 의한 것이 69%로 가장 많았다. 중앙선 침범(9.7%), 신호 위반(8.2%), 교차로 통행 위반(2.3%) 등이 뒤를 이었다. 고령 운전자의 평균 운전 속도가 일반 운전자보다 21% 느리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체적 능력의 차이가 결정적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정부는 고령 운전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올해부터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75세 이상 운전자의 경우 5년 주기로 돼 있던 면허 갱신 주기를 3년 주기로 단축하고 2시간의 교통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했다. 2016년부터 고령 버스운전자에 대한 자격 유지 검사를 시행해 온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올해 2월부터 택시업종으로 대상을 넓혔고, 내년 1월부터는 화물업종도 자격 유지 검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도적 보완책만큼이나 고령 운전자 본인이 신체 능력이나 운전 행태 변화를 잘 살피고 가족들도 이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 연구원은 “고령 운전자 대다수가 운전을 자신의 독립성이나 자존심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에 다소 방어적이 될 수 있다”며 “가족들은 인지, 관찰, 대화, 장려, 지원 등 5가지 권고 사항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가족들은 고령 운전자에게 이동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운전 중에 정지하는 사례가 없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후 고령 운전자들에게 솔직히 고민을 털어놓고 의학 전문가에 의한 평가를 장려해야 한다. 진단 결과 고령자가 운전을 그만두는 것이 타당하면 운전을 대체할 다른 대중교통수단 등을 활용하라고 설득해야 한다. 교통안전공단의 주미정 박사는 “고령 운전자에게 익숙하던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지, 차량에 손상이 난 것을 알아차렸는지, 교통신호를 지나쳐 버린 적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고 하나라도 해당되면 진지한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면서 “교통안전공단의 운전 적성 정밀 검사장을 방문하면 검사를 받고 자신의 운전 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경실련 “檢개혁 동력 상실 우려…조국, 자진 사퇴해야”

    경실련 “檢개혁 동력 상실 우려…조국, 자진 사퇴해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조국 후보자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하는 법무부 장관직에 적절하지 않다며 자진해서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실련은 8일 입장문을 내고 “엄격하게 법 집행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법무부 장관직에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임명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조 후보자에게 자진해서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많은 의혹이 제기됐으나 2일 기자회견, 6일 청문회 등 2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제기된 의혹들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검찰 수사와 향후 재판을 통해 밝혀져야 할 과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후보자를 정치적으로 성장시킨 ‘정의’와 ‘공정’이 후보자 지명 이후 드러난 언행 불일치로 국민과 청년들에게 많은 허탈감과 실망을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꼭 조 후보자만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지난 20여일간 조 후보자에 대한 의혹의 진실 공방과 소모적인 진영대결로 국민들은 갈라져 있다”며 “앞으로 사법 독립, 검찰 개혁의 많은 부분이 법·제도 개선이 필요함을 고려할 때 이미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은 조 후보자가 개혁의 동력을 얻기 쉽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국민들의 정서와 정치적 환경을 심각히 고려하지 않은 채 조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직 임명을 강행한다면 진보 개혁 진영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개혁 동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며 “조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개혁 추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사퇴를 결단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모스크바 국제도서전에 한국관 설치

    모스크바 국제도서전에 한국관 설치

    2019 모스크바 국제도서전에 한국관이 설치됐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 4일(현지시간) 개막해 오는 8일까지 러시아 모스크바 VDNH 전시장에서 열리는 ‘2019 모스크바 국제도서전’에 한국관을 운영 중이라고 6일 밝혔다. 모스크바 국제도서전은 러시아 및 구소련 독립국가연합(CIS) 지역 최대 규모 도서전이다. 35개국 600여개 회사가 참가하며 10만여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출판문화협회가 운영하는 올해 한국관에는 교문사, 김영사, 문학동네, 사계절출판사, 시공사, 은행나무 등 17개사의 출판사가 위탁한 77종의 도서가 전시된다. 이와 함께 ‘일상의 아름다움’이란 제목의 특별전을 통해 27종 그림책을 선보인다.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으로 러시아에서 번역 출간된 한국도서 70종도 소개된다. 한국-러시아 수교 30주년인 내년에 한국이 모스크바 국제도서전 주빈국이 되고, 러시아는 서울 국제도서전 주빈국이 된다. 출판문화협회는 모스크바 국제도서전 이후 오는 26일 개막하는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주빈국관을, 새달 16일 개막하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관을 운영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청와대 거듭 검찰 비난…“내란음모 수준” 이어 “미쳐 날뛰는 늑대”

    청와대 거듭 검찰 비난…“내란음모 수준” 이어 “미쳐 날뛰는 늑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러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청와대 관계자들이 거듭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익명의 한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내란음모 수준”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고,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미쳐 날뛰는 늑대”, “이기주의에 기반한 칼춤”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검찰 수사를 맹비난했다. 대통령비서실 소속 조모 선임행정관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검란’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미쳐 날뛰는 늑대마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물어뜯겠다고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다”면서 “검찰개혁이 싫다는 속내는 애써 감춘다. 제 버릇 개주나. 그냥 검찰왕국을 만들겠다고 노골적으로 협박한다”고 검찰을 비난했다. 조 선임행정관은 또 “토끼몰이식의 압수수색을 통해 공직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권을 침해하고, 인사권자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면서 “작금의 상황은 임명직 검찰이 헌법의 국민주권주의를 부정하고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하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란은 바로 잡아야 한다. 정의구현을 위한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아닌 조직 이기주의에 기반한 칼춤은 강제로 멈추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글이 논란이 되자 조 선임행정관은 글을 쓴 페이스북 계정을 나중에 폐쇄했다. 앞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조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오는 게 두려운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면서 “20~30군데를 압수수색하는 것은 내란음모 수준”이라고 맹비난했다고 연합뉴스가 이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한마디로 사회 정의를 바로 잡자는 게 아니라 조 후보자를 무조건 낙마시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라면서 “조 후보자에게 약점이 없으니 가족을 치는 아주 저열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청와대와 정부는 검찰 수사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이 광범위한 압수수색에 들어가서 국회가 가지고 있는 인사청문 절차와 인사검증 권한·의무에 영향을 준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검찰의 압수수색을 사후에 알았다며 “검찰이 사전에 보고를 했어야 했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대검찰청 관계자는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검찰총장을 지휘하는 것은 검찰총장의 일선 검사에 대한 지휘와는 달리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면서 “이와 같은 이례적 지휘권 발동을 전제로 모든 수사기밀 사항을 사전에 보고하지는 않는 것이 통상”이라고 맞섰다. 이어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수시로 수사지휘를 하고 이를 위해 수사계획을 사전에 보고받는다면 청와대는 장관에게, 장관은 검찰총장에게, 검찰총장은 일선 검찰에 지시를 하달해 검찰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현저히 훼손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37년 철권 통치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 95세 일기로 사망

    37년 철권 통치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 95세 일기로 사망

    37년 동안 독재 권력을 휘둘렀던 로베르트 무가베 짐바브웨 전 대통령이 95세 일기로 눈을 감았다. 무가베 전 대통령 가족들이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6일 영국 BBC에 털어놓았다. 파드자이 마헤레 짐바브웨 교육부 장관이 트위터에 “로베르트 무가베여 영원한 안식을”이라고 적었다. 1924년 2월 21일 지금의 로디지아에서 태어난 그는 1964년 로디지아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재판 없이 수감돼 10년 이상 복무했다. 수감 중이던 1973년 짐바브웨 아프리칸 내셔널 유니언(ZANU) 의장으로 선출됐는데 창당 발기인이기도 했다. 그는 독립 이후 처음 치러진 1980년 선거를 통해 총리로 선출됐으나 스스로 총리 직을 없애고 1987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집권 초기에는 흑인들의 건강과 교육 접근권을 넓혀 좋은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토지 개혁 프로그램 때문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말년에는 권한 남용과 부패로 이름을 더럽혔다. 짐바브웨 독립 후 첫 대통령에 취임했던 그는 지난 2017년 11월에 군사 쿠테타에 의해 쫓겨났다. 무가베는 퇴임하기 얼마 전까지도 여러 나라를 치료 차 찾은 적이 많았으며 최근 두 달 동안은 싱가포르에 머물러왔다. 그의 재임 중 정부 관리들은 그가 눈이 좋지 않아 치료가 필요하며 암에 걸렸다는 소문을 부인했다. 에머슨 음낭가그와(76) 현 대통령은 지난 7월 부정 논란으로 얼룩진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무가베의 권력을 승계했는데 “지극한 슬픔”을 느낀다며 고인을 “짐바브웨 건국의 아버지”와 “해방의 아이콘”이라고 적었다. 사실 음낭가그와 대통령은 무가베를 축출한 쿠데타 주역이었으며 중국 정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있는 것으로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무가베의 젊은 부인 그레이스(54)와는 후계자 싸움을 벌였는데 그레이스는 사치벽으로 국민감정이 좋지 않아 밀렸다. 무가베 부부는 지난해 7월 대선 투표소에 나란히 나타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현직 검사 “조국 검증, 채동욱 총장 떠오르게 한다”

    현직 검사 “조국 검증, 채동욱 총장 떠오르게 한다”

    현직 부장검사 ‘조국 사퇴’ 내부글 우회 비판“조국 자녀 생기부 공개, 채동욱 총장 떠올라”“검사가 정치행위 관여하는 것은 자제해야”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당일 현직 검사가 조 후보자에 대한 검증 과정을 놓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떠오른다”고 밝혔다. 나아가 조 후보자에 대해 ‘법무부 장관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린 임무영 서울고검 부장검사의 글을 놓고선 “검사가 정치행위에 관여하는 것은 자제하는 게 맞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병규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9시쯤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적법절차, 검사의 독립, 의사표현의 자유를 생각하며”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1시간 전이다. 앞서 임 부장검사는 지난 4일 이프로스를 통해 “적어도 수사에 영향을 줄 권한을 가진 자리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앉은 공무원이라면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의혹이 제기된 경우 일단 사퇴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조 후보자에 대한 사퇴를 주장했다. 박 부장검사는 이를 언급하며 “2019년 9월 4일자 임 부장검사께서 올리신 글 중 ‘이렇게 아무 언급이 없을 줄은 몰랐네요. 어차피 조국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될 테니, 장관에게 밉보여서 괜히 손해를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러는 거라면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라는 말을 보고 나서 부족하나마 생각을 정리해서 올린다”고 운을 뗐다. 박 부장검사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언급하며 조 후보자에 대한 지나친 ‘사생활 캐기’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국회의원이 조국 후보자 자녀의 생활기록부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채동욱 총장님이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돼 사퇴한 사건이 떠올랐다”면서 “두 사건 모두 공직자(후보) 본인이 아닌 가족의 개인정보를 취득해 공직자의 부도덕성을 부각시켰다는 측면에서 같은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2013년 박근혜 정권 초기에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던 채 총장은 혼외자 정보 유출 사건으로 문제가 불거져 자진 사퇴했다. 당시 혼외자로 지목된 초등학생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국정원 관계자 등 3명은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어 “후보자 본인이 억울함을 토로하며 사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그의 의사를 반하여 계속하여 사퇴를 압박하는 언론기사를 보면서 마치 밤샘수사를 하며 계속 자백을 강요하며 추궁하는 오래전 수사기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며 “이런 상황이면 사퇴 의사가 없는 후보자가 아닌 임명권한을 가진 대통령을 설득하여 임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적법절차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부장검사는 검찰, 검사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법부 스스로 입법, 행정, 정치의 영역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표방하고 정치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며 “검사가 입법부, 행정부, 정당 등 외부 국가기관과 세력에 대한 정치적 독립을 표방한다면 정치행위에 관여하는 것은 매우 특수한 경우 이외에는 자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검사게시판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상급자에게 불려다니고 감찰도 받아 본 입장에서 앞으로 는 어떠한 글을 올리더라도 누구에게도 그러한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한겨레 평기자들 “조국 감싸는 한겨레… ‘50대 진보 기득권 남성’ 대변지 전락”

    한겨레 평기자들 “조국 감싸는 한겨레… ‘50대 진보 기득권 남성’ 대변지 전락”

    “편집국장 지시로 조국 비판 칼럼 삭제” 폭로문 정권 1기 내각 후 인사청문회 검증팀 없어“현 정권 감싸기 급급”… 국장단 사퇴 촉구한겨레 일선 평기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보도에 한겨레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국장단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입사 7년차 이하 한겨레 기자 31명은 6일 사내 메일로 전체 구성원에게 보낸 연명 성명을 통해 “조국 후보자 관련 보도는 한겨레의 보도 참사”라며 국장단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은 조국 후보자를 비판하는 지난 5일 칼럼 ‘강희철의 법조외전’이 편집국장의 지시로 출고 이후 일방적으로 삭제된 사실을 폭로하면서 “현재 한겨레 편집국이 곪을 대로 곪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기자들은 이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뒤 한겨레는 도대체 뭘 했는지 묻고 싶다”며 “조 후보자의 사모펀드가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그의 딸이 의전원에 두 번을 낙제하고도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됐을 때도 한겨레는 침묵했다”고 꼬집었다. 또 “2017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한겨레의 칼날은 한없이 무뎌졌다”며 “인사청문회 검증팀은 문재인 정권 1기 내각 이후 단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취재가 아닌 ‘감싸기’에 급급했다. 장관이 지명되면 TF를 꾸리고 검증에 나섰던 과거 정부와는 전혀 달랐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법조팀의 선후배들은 의혹 제기 기사를 쓸 때마다 기사가 일방적으로 톤 다운되고 제목이 바뀐다고 호소한다. 디지털 부문에는 심심찮게 ‘현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는 공식 SNS 계정으로 바이럴하지 말라’, ‘특정 기사는 한겨레 프론트 페이지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구체적인 보도 통제 사례도 밝혔다. 기자들은 정치, 경제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천명한 30년 전 한겨레의 창간사를 되새기면서 “정권에 따라,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검증 기준과 수위가 변하는 것이 바로 한겨레의 논조인가. 일부 ‘50대 진보 기득권 남성’의 목소리만이 한겨레가 말하는 ‘국민’인가”라고 질타했다. 끝으로 이들은 “검찰개혁에 대한 보도도, 공정한 인사 검증도 한겨레가 할 일이다. 어설픈 변명으로 ‘조국 지키기’에 나서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국장단 사퇴, 투명한 편집회의 등 제도 마련을 요구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구미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광장 명칭 변경 논란

    구미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광장 명칭 변경 논란

    경북 구미시와 지역 시민단체가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1855~1908) 선생의 이름을 따 조성한 광장과 누각 등의 명칭을 갑자기 지역명으로 변경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5일 구미시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가 2016년부터 구미국가4산업단지 확장단지(산동면) 3만 60000㎡에 58억원을 들여 조성 중인 ‘산동물빛공원’ 내 광장·누각의 명칭을 산동광장·산동루로 변경하기로 했다. 애초 시와 수자원공사는 2016년 1~9월 주민공청회·설문조사 등을 통해 공원 명칭과 광장·누각의 명칭(왕산광장·왕산루)을 정했다. 또 1억 5000만원을 들여 광장에 허위 선생 가문 독립운동가 14인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구미 출신 허위 선생의 가문은 3대에 걸쳐 14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대한민국 최고의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수자원공사는 공원이 준공되면 구미시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의 이 같은 명칭 변경은 장세용 구미시장이 지난해 취임 이후 “인물 기념사업을 태생지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공원 사용 주체인 산동면 주민들이 명칭을 지명으로 변경해 달라는 민원을 접수해 변경했고, 이를 한국수자원공사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산동면 주민들은 광장 내 허위 가문 14인 동상을 왕산 허위 기념관(임은동)으로 이전·설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지역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구미를 상징하는 인물인 허위 선생의 호를 따 왕산광장·왕산루로 결정한 것”이라며 “주민공청회로 결정한 사안을 일부 주민 의견을 이유로 바꾼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왕산광장은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6435㎡)보다 크고, 왕산루는 안동의 병산서원 만대루보다 크다”며 “광장과 누각이 어우러진 공간에 열네분의 독립운동가 동상이 들어서는데 명칭을 바꾸면 역사와 전통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왕산 허위 선생은 구한 말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1897년과 1907년 의병을 일으켰다. 한때 ‘13도 연합 의병부대’를 결성해 서울 진공작전을 강행, 성문 밖 30리까지 진격하기도 했으나 일본군에 분패했다. 허위 선생은 작전이 실패한 뒤에도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에서 항일전을 벌이다가 1908년 결국 체포됐고, 9월 27일 교수대에 올라 51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왕선허위선생기념사업회는 1962년 10월대구 중구 달성공원에 왕산 허위 선생 순국기념비를 세웠다. 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최중경 “CPA 부정 출제 용납될 수 없는 일”

    최중경 “CPA 부정 출제 용납될 수 없는 일”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이 올해 공인회계사(CPA) 시험 부정 출제 의혹과 관련해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잘못된 점이 확인되면 형사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지난 5일 공인회계사회 기자 세미나에서 “학자적 양심 측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올해 CPA 2차 시험 중 회계감사 과목 문제 중 2개 문항이 서울의 한 사립대 모의고사·특강 내용과 비슷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험을 주관하는 금융감독원은 문제가 된 2개 문항을 전원 정답 처리하고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출제위원 A교수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최 회장은 오는 11월부터 시작되는 주기적 지정감사제도로 인해 감사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독립성 강화는 전문성 강화로 이어진다”면서 “제도 초기의 품질 하락을 추정해 비판하는 것은 회계 개혁의 정확한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최 회장은 “독립성 강화를 통해 전문성을 발휘할 의욕을 갖게 하겠다는 것이 주기적 지정감사제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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