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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연말까지 금리 두 번 올릴 듯… 이사회 개혁으로 밸류업 성공”[경제의 창]

    “日 연말까지 금리 두 번 올릴 듯… 이사회 개혁으로 밸류업 성공”[경제의 창]

    日기업들 경영이사·감시이사 분리‘제2 재벌 해체’ 정책으로 독립 경영이르면 7월, 늦어도 9월 금리 인상연말 한 번 더 올려 0.2~0.3% 전망아베노믹스로 엔고·투자 문제 해결국민들 장기 불황에 ‘디플레 마인드’ 일본 경제를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어떤 이는 장기 불황에서 탈출했다고 말하지만 다른 이는 불황은 진행형이라고 외친다. 실제 경제지표와 실물경제 사이의 괴리는 크다.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본은 38년 만에 ‘슈퍼 엔저’ 시대를 맞았다. 이달 들어 엔·달러 환율은 161.73엔까지 올랐는데 엔 환율이 달러당 160엔을 웃돈 건 1986년 이후 처음이다. 역대급 엔화 약세는 기업 실적과 증시도 역대급으로 끌어올렸다. 지난주 닛케이지수는 장중 4만 2426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요 170개 사의 지난해 총이익은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하지만 일본인들은 호황을 체감하지 못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기록적인 엔저 현상이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26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일본 경제는 지금 어디로 향하는 걸까. 36년간 일본 경제를 분석해 온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교수에게 일본 경제의 현주소와 한국 경제에 주는 교훈을 들었다.-‘슈퍼 엔저’가 이례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이유는. “2012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한 없이 통화량을 늘리는 ‘아베노믹스’를 펼쳤다. 여기에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이 왔다. 0% 금리에 물가가 오르니 실제로는 마이너스 금리다. 일본 국민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저축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셈이다.” -환율이 떨어지는데 왜 수출은 늘지 않나. “해외 자산 소득 수지가 흑자를 기록했지만 일본 기업들이 국내로 송금하지 않고 해외에서만 재투자하는 게 문제다.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에서 관세를 올렸으니까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은 일본 밖으로 나가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나가는 사업이 있으면 새로 국내에도 성장하는 산업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 기업의 국내 투자가 그걸 뒷받침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반도체나 인공지능(AI), 그린 이노베이션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닛케이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일본은 증시 ‘밸류업’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나. “일본의 밸류업은 이사회 개혁이 중심이다. 일본은 대기업끼리 모인 기업집단이 재벌과 같은 역할을 했는데 아베가 그걸 거의 해체하다시피 했다. ‘제2의 재벌 해체’ 정책으로 독립 경영을 도입했고, 일본 주가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경영을 하는 이사와 감시하는 이사도 분리돼 있다. 일본 회사에서 가장 높은 지위는 사외이사다. 사외이사에서 경영진이나 사장 지명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경영이사와 감시이사를 분리해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외부 투자자의 의견을 듣는 구조가 필요하다.” -일본 주식이 오를수록 일본 국민은 가난해진다는 진단도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물경제가 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맞지만 국민의 숨은 자산인 연금도 무시할 수 없다. 주식이 오르면 연금도 탄탄해진다. 일본공적연금(GPIF) 수익률이 증시 호황을 입고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22.7%를 기록했다. 연금 혜택은 전 국민이 받는다. 일본 정부도 서민의 자산 형성을 위해 기업 주가가 오르면 배당을 늘리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언제쯤 기준금리를 올릴까. “빠르면 7월, 늦어도 9월엔 인상될 걸로 본다. 일본이 지금 한 달에 6조엔 정도 양적 완화를 하고 있는데 다음달에는 이를 2조엔 정도 감축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7월에 금리까지 올리기는 어려울 걸로 보지만 엔저가 너무 부담되면 7월에도 금리를 올릴 수 있다. 현재로선 미국이 9월에 기준금리를 내리면 그때 맞춰 9월에 올릴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연말에 한 번 더 올려 기준금리가 0.2~0.3% 정도 될 걸로 본다.” -‘트럼프리스크 2.0’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 중국에 60%, 기타 국가에 10%의 관세율을 부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정권 1기 때는 중국 관세를 피하려 베트남, 멕시코로 우회 수출도 많이 했는데 이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중 수출도 많이 하는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막다른 골목이다. 트럼프 집권 후 엔화가 너무 급격하게 오르면 지금 빠르게 불어나는 일본 기업 투자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은. “장기 불황에는 국민 마인드 문제도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이후 엔고에서 탈출하고 투자가 늘어났으며 인력 부족 문제도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엔 ‘디플레이션 마인드’가 있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국가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한 점도 문제다. 우리 정부도 선진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할지 국가가 국민에게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 이지평 특임교수 이지평 교수는 일본 도쿄 출신의 한국 국적 재일교포다. 일본 호세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해 33년 동안 미래연구팀장, 에너지연구팀장, 수석연구위원 등으로 일했다. 2020년부터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직을 맡고 있다. 일본 경제 연구 전문지 ‘Japan Insight’(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의 공동 저자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 ‘볼륨 존 전략’, ‘일본식 파워경영’, ‘주5일 트렌드’ 등이 있다.
  • 트럼프노믹스 2.0 ‘월가 황제’ 합류 가능성… 시장 반발 ‘극약처방’

    트럼프노믹스 2.0 ‘월가 황제’ 합류 가능성… 시장 반발 ‘극약처방’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노믹스 2.0’의 선봉장으로 ‘월가 황제’라고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를 지목했다. 저금리와 재정지출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장 반발 등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해선 안 될 일”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선거 전 금리 인하를 할 경우 자칫 공이 민주당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막겠다는 포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9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두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금리 인하 대신 공급 확대를 통한 인플레이션 완화와 경제 살리기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연준의 독립성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 나온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지적이 나올 것을 예견한 듯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임기는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승기를 잡은 대권 레이스에서 금리 인하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는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노믹스 2.0이 저금리를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음에도 대선 전 금리 인하를 경계한 것은 ‘반칙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며 “하지만 여러 지표를 고려할 때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여전히 높고 시장의 기대 역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다이먼 CEO를 존경한다며 그를 차기 재무부 장관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때 자신이 ‘과대평가된 글로벌리스트’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던 인물을 새로운 정부의 경제 선봉장으로 앉히는 ‘파격 인사’를 예고한 셈이다. 다이먼 CEO는 ‘월가의 황제’라고 불릴 정도로 시장 파급력이 큰 인물이다. JP모건체이스를 세계 1위 규모의 투자은행으로 키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인다. 그는 미국 경제상황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이먼 CEO가 시장과 정부 간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해 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럼프노믹스 1기 때에도 월가 출신의 스티븐 므누신 전 재무장관을 등용하고 오랜 기간 신임한 바 있다. 트럼프노믹스 2.0의 핵심은 낮은 금리다. 하지만 시장에선 법인세 인하 등으로 인한 세수 감소와 재정지출 확대가 오히려 금리 상방 압력으로 작용해 시장의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시장의 우려와 불만을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다이먼 CEO를 통해 해소해 나가겠다는 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안이란 설명이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노믹스의 관세 장벽과 감세 정책은 금리를 끌어올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목표와는 반대로 시장에 굉장한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장과의 충돌을 다이먼 CEO를 통해 조화롭게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 美, CIA 출신 수미 테리 기소… “금품 받고 한국 정부 위해 활동”

    美, CIA 출신 수미 테리 기소… “금품 받고 한국 정부 위해 활동”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으로 활동한 수미 테리(52)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기소됐다. 한국 국가정보원과 연계해 활동한 점을 문제 삼았는데 미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중요한 정보 수집 활동을 위축시키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뉴욕 남부지검이 2013년부터 약 10년간 워싱턴DC와 뉴욕에서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며 고가의 식사 대접과 명품, 연구활동비 등을 받은 혐의로 테리를 재판에 넘겼다고 전했다. 해외 정부의 정치 로비 활동을 하려면 미 법무부에 등록해야 하는데 테리는 이 절차를 따르지 않아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도 받는다. 1938년 발효된 외국대리인등록법에 따라 미 사법당국은 로비스트와 사업가, 정치인 등을 수사해 미국 내정에 관여하는 해외 영향력을 차단하고 있다. 로버트 메넨데즈 연방상원의원은 외국대리인등록 없이 이집트 정부에 이익을 준 혐의로 이날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테리는 2001~2008년 CIA 동아시아 분석가로 근무했다. 2008~2009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국·일본·오세아니아 과장 및 동아시아 국가정보 담당 부차관보도 지냈다. 검찰은 테리가 CIA에서 퇴직한 지 5년이 지나 국정원 요원과 접촉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이 기간 국정원과 전현직 미 정부 관리와 만남을 주선하거나 한국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글을 기고하면서 대가를 받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예컨대 2022년에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참석한 대북 정책에 관한 비공개회의에 참석한 뒤 국정원 요원에게 회의 관련 메모를 건넸다. 2023년 3월에는 ‘일본과의 화해를 향한 한국의 용감한 걸음’이라는 글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하고 국정원 직원에게 “마음에 드셨길 바란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 대가로 보테가 베네타 가방, 돌체앤가바나 코트, 루이비통 핸드백 등과 지원금 3만 7000달러(약 5100만원)를 받았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지난해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에선 그가 CIA를 나온 것도 국정원 직원과 접촉한 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테리의 변호인은 “독립성을 갖고 미국에 봉사해 온 학자이자 뉴스 분석가의 업적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한국계가 미국에서 북한 관련 기밀을 넘긴 간첩 혐의로 수감된 사례는 해군 정보국 분석관이었던 로버트 김, 국무부 선임보좌관으로 일했던 스티븐 김 등으로 각각 1997년부터 9년, 2014년부터 1년간 수감됐다. 두 사건은 한미관계가 껄끄러울 때 발생했지만 이번 일은 훈풍이 부는 사이에 불거져 워싱턴 현지에선 다소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테리는 선물과 현금을 받았다는 점에서 단순 법 집행 사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1만 484페이지, 항일역사 오롯이… 민족정론지 소명 잊지 말아야

    1만 484페이지, 항일역사 오롯이… 민족정론지 소명 잊지 말아야

    ‘우리 대한매일신보의 목적은 대한의 안녕 질서에 관한 모든 덕목에 대해 공평한 민론을 주장함이어라.’(1904년 8월 4일 목요일 지령16호 사고) 여든을 훌쩍 넘긴 노교수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서울신문의 뿌리인 대한매일신보가 디지털 파일로 120년 전의 모습을 드러냈다. 제호는 90도로 뉘어진 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쓰기를, 사설과 기사는 세로쓰기를 해 현재의 서울신문은 물론 당시의 신문과도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원로 언론학자인 정진석(85)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배설(본명 어니스트 베델) 선생이 ‘코리아데일리뉴스’란 영자신문과 함께 합간으로 창간해 초기엔 이런 형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7월 18일이 대한매일신보의 생일이니 탄생한 첫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만, 창간 후 16번째로 발간된 이 신문이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지면”이라고 아쉬워했다. 배설 선생 연구에 일생을 바친 정 교수는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6862페이지, 한글판 3622페이지 등 총 1만 484페이지를 영인(원본을 사진 촬영해 복제)해 보관하고 있다. 옛 신문엔 ‘항일’의 기운이 가득했다. 대한매일신보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 특히 정 교수는 대한매일신보가 일제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민족의 긍지를 일깨운 장면을 몇 가지 더 설명하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장인환·전명운 열사가 19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제국 친일 외교관 스티븐스를 암살한 사건입니다. 스티븐스가 일제의 한국 지배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의기를 보인 것이죠. 이 사건은 미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고 두 열사의 변호사비 모금 운동이 일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우리가 주머니를 털어 두 열사를 구해야 한다’는 기사를 게재했죠. 대한매일신보는 이토 히로부미를 오스트리아의 독재자 메테르니히에 비유하면서 ‘100명의 메테르니히도 이탈리아를 압제하지 못했다’며 항일 기운을 북돋기도 했습니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있는 배설 선생은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해 동포를 구하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정 교수는 “선생은 대한매일신보의 영속을 눈을 감으면서까지 기원했다”며 “창간 120주년을 맞은 서울신문이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신문은 건국기와 한국전쟁 당시 우리 민족의 진로를 제시하는 정론지 역할을 했다”며 “대한매일신보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지난 8일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정 교수와 만나 배설 선생과 120년 전의 서울신문인 대한매일신보를 되돌아봤다.“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해 동포를 구하라”영국인 배설 선생치외법권 방패 삼아일제의 탄압에 저항120년 된 참언론으로중심 잡아 주었으면… -배설 선생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1976년 대한매일신보 영인본을 만들면서 신문에 실린 선생의 공판기록을 발견했다. 일제는 선생에게 ‘치안 방해’라는 죄명을 뒤집어씌우고 영국 사법당국에 고소해 재판을 받게 했다. 선생이 한국으로 와 신문을 발간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해 파고들게 됐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그의 업적과 일제가 가한 탄압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었다.” -배설 선생의 일화를 소개해 달라. “선생은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과 기사 ‘오건조약 청체전말’을 영문과 한문으로 번역한 호외를 발행했다. 코리아데일리뉴스 1905년 11월 27일자를 통해서다. 이 호외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채 대한제국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됐다. 일제의 침략 실상을 널리 알리고 독립정신을 고취한 것은 무력투쟁 못지않은 공로다.” -대한매일신보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선생은 영국인의 치외법권을 방패 삼아 일제에 저항했다. 그래서 당시 다른 한국 언론인들과는 다른 위치에서 신문을 만들 수 있었다. 대한매일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고 신민회 비밀 본거지가 됐던 것도 선생이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서였다. 여기에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 민족진영 언론인들이 참여해 신문을 만들었기에 민족지의 위상을 지녔다.” -대한매일신보를 계승한 서울신문이 창간 120주년을 맞았다. 신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언해 달라.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일제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돼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던 때에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됐다. 지금은 구한말과는 언론 환경이 달라졌다. 전파매체인 방송과 인터넷이 일상화된 시대다.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은 신문이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정보가 넘쳐나면서 혼란스러운 환경이다. 서울신문이 120년간 이어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참언론으로서 혼탁한 시대의 중심을 잡아 줘야 한다.”
  • 1904년, 민족정신 횃불 밝히며… 대한민국 언론의 역사 시작됐다

    1904년, 민족정신 횃불 밝히며… 대한민국 언론의 역사 시작됐다

    대한민국 최고(最古) 신문인 서울신문이 18일로 창간 120주년을 맞았다. 서울신문은 일제가 국권을 침탈해 오던 1904년 7월 18일 창간호를 발행한 대한매일신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대한매일신보는 구한말 암흑기 민족의 운명을 밝힌 횃불 같은 존재였다. 당시 조선 민중들은 날짜가 지난 신문까지 구해 돌려 가며 읽을 정도로 대한매일신보를 신뢰했다. 한글판, 국한문판, 영문판 등 3종류로 발행되던 1908년 5월 27일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부수가 1만 3256부에 이르렀다는 일제 통감부의 기록이 이를 방증한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두 주역은 영국 신문 데일리 크로니클지 서울특파원(통신원)이있던 배설(본명 어니스트 베델)과 독립운동가 양기탁이다. 일제의 야욕을 국외로 알리고 싶었던 고종의 물밑 후원과 배설의 정의로운 기자정신, 양기탁의 항일민족주의 정신이 대한매일신보 탄생의 밑거름이었다.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영국 출신 사장 배설은 신보의 든든한 울타리가 됐고, 총무(전무 겸 편집국장) 양기탁은 신문의 대들보였다.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 등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자 독립운동가들이 주필로 참여했다. 조선 민중이 신뢰했던 신문기사·논설 통해 을사조약 비판‘국채보상운동’ 이끌며 전성기 “(을사)조약은 이토(伊藤)가 우리 대신들을 공갈·협박하여 강압적으로 체결하였으며,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글을 쓴 이유로 황성신문 사장 장지연을 구속하고 신문을 정간시킨 것은 언어도단이다.” 대한매일신보 1905년 11월 21일자 논설의 일부분이다. 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체결을 전후해 일본을 매섭게 비판하는 기사와 논설을 끊임없이 실었다. 일제가 황성신문 발행을 금지하자 대한매일신보는 ‘시일야방성대곡’을 한문과 영어로 번역해 호외를 만들어 국내외에 뿌렸다. ‘을사조약에 동의하거나 서면에 조인하지 않았다’는 고종의 밀서가 영국 트리뷴지에 폭로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은 이가 배설이었고 대한매일신보는 트리뷴지의 보도 내용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했다. 을사조약 반대운동으로 항일애국 신문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한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을 이끌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진 빚 1300만원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은 대한매일신보 대구지사장을 겸했던 광문출판사 사장 김광제 등이 대구에서 처음 불을 지폈다. 1907년 2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를 보면 “이천만 민중이 3개월 기한으로 금연하고, 그 대금으로 매인(每人)에게서 매월 20전씩 거둔다면 1300만원이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고종도 이때 “우리 백성들이 국채를 보상하기 위해 단연(금연)하고 그 값을 모은다고 하는데, 짐도 담배를 피울 수 없다”고 선언할 정도로 국채보상운동은 온 나라를 휩쓸었다.대한매일신보는 의병들의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들의 활약상을 ‘처처의병’(處處義兵)이라는 코너를 두고 소개했다. 주필 박은식은 “한민족은 본래 충의가 탁월하고 두터워 삼국시대 이래로 외환을 만날 때마다 의병의 전공이 가장 탁월하였다…병역의무의 징집에 의거한 바 없이 오직 충의로 모여들어 적이 물러갈 때까지 싸우고야 말았다…의병은 이 나라의 국수(國粹)이다”라고 썼다. 일제 통감부가 “많은 폭도들이 대한매일신보의 격문을 읽고 분개하여 일어나고 있다”는 보고서를 작정해 본국에 보낼 정도였다. 한국 고유 언론 시스템 정착인맥 관행 깨고 기자 공채 도입1920년 첫 여기자 이각경 합격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이를 특호 활자 제목으로 대서특필하며 “이토 암살은 독립투쟁의 일부”라고 정의했다.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위해 삼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 끝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사(死)하노니…이천만 형제자매가 나의 유지를 이어받아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사자무감(死者無憾)일 것이다”라는 안중근의 유언은 대한매일신보 1910년 3월 25일자에 또렷이 박혀 있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끝내 국권을 상실했다. 일제는 경술국치 바로 다음날 눈엣가시였던 대한매일신보를 인수해 버렸다. 국가를 상징하던 ‘대한’을 떼어 내고 매일신보로 제호를 바꿨다. 제호뿐만 아니라 대한매일신보의 정신까지 모조리 개조해 총독부의 기관지로 만들었다. 당시 일제는 매일신보와 일어로 발행되는 경성일보, 영자신문 서울프레스 등 3개 관변지만 남기고 모든 민족언론을 해체했다. 매일신보는 우리나라 신문 역사에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지만, 일제강점기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1차 사료(史料)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일제 무단통치로 민족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1910~20년, 1940~45년 두 시기에 유일하게 발간된 신문이 매일신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1945년 8월 해방 직전 일본의 패망 조짐과 해방 직후 건국을 둘러싼 지도자들의 움직임 및 좌우 대립 상황을 기록한 언론은 매일신보뿐이다. 매일신보의 또 다른 역할은 한국 고유의 언론 시스템을 개발해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1918년에는 아는 사람을 기자로 채용하던 관행을 깨고 국내 최초로 기자 공개채용을 실시했다. 홍난파, 유지영 등이 이때 공채에 합격해 기자가 됐다. 1920년에는 최초의 여기자 이각경이 공채에 합격했는데, 이 기자의 입사의 변이 지면에 실리기도 했다. 일제가 우리말을 말살하던 시기 매일신보는 작가 겸 기자들이 한글로 작품을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인직, 조중환, 이해조, 이상협, 민태원, 윤백남 등이 매일신보에 소설을 연재했다. 특히 이광수는 1917년 1월 1일 신년호부터 6월 14일까지 126회에 걸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인 ‘무정’을 연재했다. 매일신보는 1919년 8월 소설 현상공모를 최초로 실시했는데, 이는 신춘문예의 효시로 평가된다. 해방의 감격과 함께 매일신보도 1945년 11월 22일 서울신문으로 재탄생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위창 오세창이 사장을 맡았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와 애당 권동진은 고문으로 합류했다. 민족지도자들로 구성된 경영진은 서울신문의 새 출발을 ‘창간’ 대신 대한매일신보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혁신 속간’이라고 정의했다. 23일자 혁신 속간호 사설에서 서울신문은 “일당일파에 기울어지지 않는 공정한 언론보도에 충실할 것을 천명한다”고 다짐했다. 근현대사와 함께해 온 신문6·25전쟁 ‘진중신문’ 언론사 신화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등 건립 서울신문은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발행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신문사가 모두 회사 문을 닫고 해산했지만 서울신문은 전쟁 발발 당일은 물론 26일과 27일까지 모두 12차례의 호외를 찍어 냈다. 1951년 1월부터 3월까지 50일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부산 피란지에서 신문의 명맥을 겨우 이었지만, 1951년 4월 6일부터는 포성이 울리는 서울로 돌아와 ‘진중(陣中)신문’을 찍었다. 19일 동안의 진중신문 발행은 한국 언론사와 6·25 전사에 신화로 남아 있다. 한국전쟁 기간에 순직한 종군기자 18명 중 한국 기자는 서울신문 소속 한규호가 유일하다. 1985년 1월 1일은 한국 신문제작 역사에서 일대 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서울신문이 새 사옥(한국프레스센터) 준공에 맞춰 국내 최초로 컴퓨터 조판 시스템(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을 도입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납 활자로 신문을 제작하던 전통 방식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디지털 미디어의 출발도 서울신문에서 이뤄졌다. 서울신문은 1995년 11월 22일 국내 최초 인터넷 뉴스 서비스인 ‘뉴스넷’을 개통했다. 뉴스넷은 서울신문, 스포츠서울, TV가이드, 뉴스피플 등 서울신문사가 발행하는 모든 매체의 콘텐츠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전달하는 시스템으로, 인터넷 신문의 효시였다.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누가 세운 것일까. 서울신문은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애국선열 조상 건립사업’을 벌여 모두 15기의 동상을 세웠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서울신문 120년은 영욕이 굽이친 대한민국 근현대사 그 자체이다. 앞으로의 120년에도 무수한 굴곡이 서울신문 앞에 닥칠 것이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불편부당한 정론직필의 펜을 놓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순신 장군처럼.
  • 역사의 퍼즐, 120년의 기록…새 희망의 조각을 맞춥니다

    역사의 퍼즐, 120년의 기록…새 희망의 조각을 맞춥니다

    120년 전 오늘 풍전등화처럼 위태롭던 조선에 민족사에 길이 남을 신문이 탄생했다. 그 이름은 대한매일신보. 영국 기자 배설(어니스트 베델)과 민족지도자 양기탁이 주도했고 박은식, 신채호 등이 힘을 보탰다.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서릿발처럼 비판하고 국채보상운동에 불을 지펴 민족의 기상을 일깨운 대한매일신보는 독립을 바라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신문이었다. 서울신문이 한국 최고(最古) 신문인 것은 대한매일신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1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서울신문은 수많은 역사의 퍼즐을 맞추고 기록해 왔다. 뜻깊은 창간 120주년 기념일 아침, 서울신문은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정론직필의 역사를 써 갈 것을 다짐한다.
  • 우크라 전쟁 이후 러시아인 65만 명 국외 탈출…가장 많이 간 국가는?

    우크라 전쟁 이후 러시아인 65만 명 국외 탈출…가장 많이 간 국가는?

    러시아 국민 최소 65만 명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다른 나라로 떠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반체제 성향 독립 매체 ‘더 벨’은 러시아인을 받아들인 국가들의 이민자 통계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이 밝혔다. 더 벨은 이들 러시아 국민의 대다수가 아르메니아(11만 명), 카자흐스탄(8만 명), 조지아(7만 4000명) 등 러시아와 무비자 체제 협정을 맺은 국가로 갔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각각 8만 명과 4만 8000명의 러시아 국민을 받아들였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가장 인기 있는 데 약 3만 6000명의 러시아인이 이 나라로 향했다. 이어 세르비아가 약 3만 명의 러시아인을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미국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의 분석가들은 더 벨이 태국, 인도네시아, 아제르바이잔, 그리스, 키프로스와 같은 국가가 러시아 이민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포르투갈과 같은 일부 국가가 2022년 이후 러시아 이민 통계의 최신 정보가 없다고 보고한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를 떠난 러시아인의 실제 수는 70만 명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이 시작됐던 2022년 9월 21일 이후 첫 2주 동안 약 70만 명의 러시아인이 국외로 떠났다고 포브스가 러시아 행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러시아 관리들은 개전 이후 출국했던 러시아인 대다수가 이듬해부터 귀국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ISW는 러시아 인구의 이 같은 영구적 손실은 러시아 경제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 美검찰, 국정원 루이뷔통백 CCTV 증거까지…수미 테리 공소장 보니

    美검찰, 국정원 루이뷔통백 CCTV 증거까지…수미 테리 공소장 보니

    미국 연방 검찰이 16일(현지시간)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대북 전문가인 한국계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외국 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수미 테리가 한국 국가정보원(NIS) 간부들과 고급 식당에서 여러 차례 식사하고, 돌체앤가바나·루이뷔통·보테가 베네타·크리스챤 디올 등 명품 브랜드 제품과 연구활동비를 제공받았다고 적시했다. 수미 테리는 그 대가로 한국 정부의 대리인처럼 활동했으나, 미 법무부에 관련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 “국정원서 식사 접대와 사치품·연구비 받아”● 국정원 간부 카드 결제내역 및 CCTV 증거 제시 ● “수미 테리 주거지 압수수색, 명품백과 코트 확보” 미국 뉴욕 남부지검이 이날 공개한 31페이지 분량의 공소장을 보면, 검찰은 수미 테리가 CIA에서 퇴직한지 5년 뒤인 2013년부터 최근까지 외교관으로 신분을 등록한 한국 국가정보원 요원과 접촉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이 기간 수미 테리는 국정원 간부의 요청으로 전·현직 미 정부 관리와의 만남을 주선하거나 한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기고하는 등 한국정부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검찰은 그 대가로 수미 테리가 2019년 11월 국정원에서 파견된 워싱턴DC 한국대사관의 공사참사관으로부터 2845달러(약 392만원) 상당의 돌체앤가바나 명품 코트와 2950달러(약 407만원) 상당의 보테가 베네타 명품 핸드백을 선물 받은 것에 주목했다. 검찰은 수미 테리가 며칠 뒤 매장에서 해당 코트를 4100달러(약 566만원) 상당의 크리스챤 디올 코트로 바꿔 간 사실도 포착했다. 또한 2021년 4월 역시 국정원 파견 간부인 주미대사관의 후임 공사참사관으로부터 3450달러(약 476만원) 상당의 루이뷔통 핸드백을 선물 받은 사실도 수미 테리가 외국인등록법을 위반해 한국 정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는 증거로 제시됐다. 미 검찰은 이 같은 명품 구매 관련 사실을 해당 국정원 간부의 신용카드 결제 내역과 매장 CCTV 화면을 통해 파악했다. 또한 추후 이뤄진 수미 테리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통해 해당 코트와 명품백을 증거로 확보했다. 검찰은 범죄 사실에 수미 테리가 국정원 간부와의 만남 과정에 미슐랭 스타 인증 레스토랑을 비롯한 고급 식당과 바에서 여러 차례 식사를 한 사실도 포함했다. 미 검찰은 특히 2020년 8월 12일쯤 국정원 파견 공사참사관 전·후임 2명이 인수인계 차원에서 수미 테리와 함께 뉴욕 맨해튼의 한 그리스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사진을 수미 테리가 국정원 간부와 밀착해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일했다는 정황의 증거 사진으로 첨부하기도 했다. 2022년 수미 테리가 몸담은 싱크탱크 기관의 프로그램에 수미 테리가 자유롭게 연구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금 3만 7000달러(약 5100만원) 이상을 국정원이 전달한 것도 그가 한국 정부의 대리인 역할을 한 대가로 판단했다. ● “블링컨 참석 비공개 회의 직후 국정원 차량 탑승”● “국정원 측, 수미 테리 제공 회의 메모 사진 촬영”● “수미 테리, FARA 위반 가능성 인지하고 위법 행위” 미 검찰이 특히 엄중하게 본 부분은 수미 테리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참석한 대북 전문가 초청 비공개 간담회 내용을 회의가 끝나자마자 국정원 간부에게 흘렸다는 의혹 부분이다. 2022년 6월 워싱턴D.C. 미 국무부 건물에서 1시간가량 열린 이 회의는 블링컨 장관을 비롯한 국무부 고위 간부들 외 5명의 한반도 전문가만 참석한 비공개 회의였다. 간담회 논의 내용은 외부 유출이 금지됐지만 수미 테리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외교관 번호판이 붙은 국정원 파견 공사참사관의 차량에 탑승했고, 공사참사관은 수미 테리가 적은 2페이지 분량의 회의 메모를 사진으로 촬영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은 수미 테리가 조사과정에서 메모를 건넨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히면서 해당 메모 사진을 확보해 공소장에 증거 자료로 첨부했다. 수미 테리는 또한 3차례에 걸쳐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했는데, 청문회 출석에 앞서 본인이 등록된 외국 정부의 대리인이 아니라고 확인하는 문서에 서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수미 테리가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가능성을 인지하고서 위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라고 검찰은 판단했다.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은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외국 정부나 외국 기관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경우 스스로 그 사실을 미 당국에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직자는 외국을 위해 일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지만, 일반 시민은 직업의 자유 차원에서 외국 정부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데 제한이 없다. 다만, 해당 사실을 미리 신고해야 한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에 설치한 ‘비밀경찰서’와 관련해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2명이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인정된 바 있다.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기소돼 이날 유죄 평결을 받은 미국 민주당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뉴저지)도 이집트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해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위반한 혐의를 함께 받았다. ● 수미 테리는 누구? “CIA 분석가 출신 지한파 학자·대북 전문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수미 테리는 12살에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하와이와 버지니아에서 성장한 수미 테리는 뉴욕대에서 정치학으로 학사 학위를, 보스턴 터프츠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북한 출신 조부모 덕분에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01년부터 CIA에서 동아시아 분석가로 근무했고, 2008~2009년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한국·일본 및 오세아니아 과장을 지냈으며, 동아시아 국가정보 담당 부차관보까지 역임했다. 이후에는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 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국장 등 다양한 싱크탱크에서 일하며 대북전문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5월에는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포럼에 참석해 기자들과 간담회 자리를 갖기도 했다. 6월에는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CNN 방송에 논평가로 출연하기도 했다.수미 테리 측은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수미 테리의 변호인인 리 월러스키 변호사는 “이들 의혹은 근거가 없고, 독립성을 갖고 수년 간 미국에 봉사해온 것으론 알려진 학자이자 뉴스 분석가의 업적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를 대변해 활동했다는 의혹을 사는 기간 수미 테리는 한국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외교가에서는 학자인 수미 테리가 ‘로비스트’로 등록하지 않고 벌써 10년 넘게 학계 활동을 해왔는데 이제와 기소된 것이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단 민간인 신분의 수미 테리가 미국 정부로부터 정확히 어떤 비공개 정보를 얻어 한국 정부에 제공했는지는 향후 이어질 재판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 국가등록문화유산 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 국가등록문화유산 된다

    1919년 10월 31일 발행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가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17일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한 축하문과 선언서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문서들은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국내의 ‘한성정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등과 통합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출범한 것을 기념하고, 제2차 독립시위운동을 촉구하고자 제작됐다. 축하문과 선언서에는 김구, 박은식 등 ‘대한민족 대표’ 30명의 이름과 ‘대한민국 원년 10월 31일’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다이쇼 일왕의 생일에 맞춰 문서를 발표해 3·1운동과 같은 전국적 시위운동의 전개와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를 드러냈다.이 자료들은 문헌을 통해서만 존재가 알려져 오다 장로교 목사이자 고고학자인 고 김양선(1907~1970) 숭실대 교수가 1967년 학교에 기증하면서 실체가 확인됐다. 실물 전단 형태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료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당시 독립운동 전개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 “이렇게 하는 나라, 전 세계에 없다”…축구협회, 문체부 조사에 반발

    “이렇게 하는 나라, 전 세계에 없다”…축구협회, 문체부 조사에 반발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으로 축구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는 대한축구협회를 직접 조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대한축구협회가 반발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연합뉴스에 “회장이나 임원의 자격을 심사할 수는 있어도 스포츠나 기술적인 부분을 (정부 기관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며 “그렇게 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없다”고 항변했다. 축구협회의 입장은 국가협회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정관과 닿아 있다. 각국 축구협회의 연합체인 FIFA는 산하 협회의 독립적인 운영을 중시하는 만큼 정관에도 이와 관련한 조항을 여러 개 넣어뒀다. 정관 14조 1항에는 “회원 협회는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제삼자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각 협회의 독립성을 규정하는 19조도 따로 마련돼있따. 15조에도 ‘정치적 중립’을 명시하며 각 협회가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FIFA는 이를 위반한 협회에 대해 자격정지 등의 징계를 내린다.앞서 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결별한 뒤 5개월간 새 감독을 물색하다가 지난 7일 프로축구 울산 HD 홍명보 감독을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그러나 애초 외국인 감독을 알아보다가 국내파 감독을 선임한 점,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에 생각이 없는 듯한 태도를 취하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점 등을 들어 팬들은 물론 국가대표 출신 축구인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박주호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은 홍 감독 선임이 제대로 된 절차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이영표 전 축구협회 부회장과 이천수,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 이동국 등 축구계 레전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문체부는 축구협회를 직접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난 15일 “그간 축구협회의 자율성을 존중해 언론에 기사가 나와도 지켜봤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이라며 “축구협회의 운영과 관련해 부적절한 부분이 있는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하자가 없는지 들여다보겠다”고 전했다. 이어 “문제가 있으면 문체부의 권한 내에서 조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축구협회의 문제를 발견했을 때 문체부가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조처로는 감사 등이 거론된다. 축구협회가 올해부터 정부 유관 기관에 포함되면서 문체부가 일반 감사를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 ‘꾸준한 선행’ 송혜교, 파리에 韓독립운동 안내서 기증

    ‘꾸준한 선행’ 송혜교, 파리에 韓독립운동 안내서 기증

    배우 송혜교가 프랑스 파리에 한국 독립운동 안내서 1만부를 기증했다. 17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에 따르면 송혜교는 주프랑스한국교육원과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에 한국·프랑스어로 제작된 독립운동 안내서 1만부를 기증했다. 안내서는 한국의 역사 사이트에서도 내려받을 수 있으며 독립운동가 서영해, 고려통신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구지, 파리 한국 친우회 창립지 등을 소개했다. 이번 일을 기획한 서 교수는 “다가오는 파리 올림픽을 맞아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파리를 방문할 예정인데, 이들에게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를 널리 소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이 해외에 방치돼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알리고 보존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송혜교는 지난 2011년부터 13년간 서 교수와 함께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그는 해외에 남은 독립운동 유적지 36곳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독립운동가 부조작품 등을 기증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이름만 남은 헝가리 청년, 목숨 걸고 항일 의열단 폭탄 만들었다[대한외국인]

    이름만 남은 헝가리 청년, 목숨 걸고 항일 의열단 폭탄 만들었다[대한외국인]

    김산 증언·정화암 회고록에 등장헝가리 출신 폭탄 전문가 알려져영화 ‘밀정’ 의열단 도운 실존 인물목숨 위험해 베일 속 활동했는데신원 확인할 자료 조사 안 이뤄져 일본 제국주의 만행에 맞서 대한독립운동을 함께한 외국인들이 있었다. ‘파란 눈’의 이방인과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기꺼이 조선인 편에 선 일본인, 대한민국임시정부 활약에 힘을 보탠 중국인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독립운동가를 우리는 잊고 살아왔다. 2018년부터 새롭게 발굴한 독립운동가 2980명 중 외국인은 262명이나 된다. 항일 언론이자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를 계승한 서울신문이 창간 12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와 손잡고 공동 기획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대한외국인’을 10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1923년 5월 국내로 몰래 반입된 폭탄 수백발을 무더기로 압수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경찰은 폭탄 성능이 강력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폭탄 제조 책임자가 ‘마자르’라는 사실은 끝내 알지 못했다. 마자르는 당시 식민지 조선과 전혀 관계없는 미지의 외국인 독립운동가였다. 의열단에서 활동했다는 것 외에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존재가 드러나면 언제라도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염려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다만 마자르가 헝가리를 뜻하는 단어여서 헝가리 출신의 폭탄 전문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자르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러시아군 포로가 됐다. 이후 몽골까지 흘러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태준 선생의 운전기사가 됐다. 그를 통해 의열단의 존재를 알게 됐고 당시 의열단이 있던 중국 베이징까지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약산 김원봉을 아느냐?”고 수소문하고 다닌 끝에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났다. 김원봉과 의기투합한 마자르는 상하이에서 폭탄 제조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마자르는 차원이 다른 폭탄을 다량 제조했다. 300개가 넘는 폭탄을 국내로 밀반입하는 데 동참하기도 했다. 영화 ‘밀정’에는 의열단원인 연계순(한지민 분)과 부부로 위장해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는 루비크라는 유럽 출신 남성이 등장하는데 마자르의 실제 행적을 모델로 삼았다. 1920년대 베이징과 상하이 등에서 의열단원으로 활동했던 유럽 출신 청년에 관한 증언이 여럿 등장한다. 미국 작가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인 김산은 ‘마르틴’이라는 독일인 폭탄 제조 기술자를 언급했고, 의열단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정화암 역시 비밀리에 폭탄을 만들던 마챌이라는 유대계 독일인을 회고록에 남겼다. 이에 대해 마자르 관련 논문을 발표한 양지선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연구사는 16일 “마르틴과 마챌이 각각 마자르의 독일어와 영어식 발음이고, 활동 시기와 행적 역시 동일하다”면서 “마르틴, 마챌 모두 마자르와 동일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 노래를 흥얼거리며 폭탄을 제작했던 마자르, 멋쟁이 신사 차림으로 중국과 일본 경찰을 대담하게 속이며 의열단 활동에 참여했던 마자르의 추후 행적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헝가리 국가기록원 동아시아센터 김보국 센터장은 “1920년대 자료를 살펴봤지만 마자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면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 총리를 지냈던 라코시 마차시 사례를 보면 개연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라코시 총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극동 지역에서 몇 년간 러시아군 포로로 생활했고 이 당시 조선에서 건너온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다. 그는 “1920년대 베이징과 상하이에는 헝가리공사관이 있었다. 이 기관이 보유한 여권 자료 등을 확인해 본다면 마자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 학예연구사는 “마자르는 외국인으로서 목숨 걸고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했는데도 정당한 평가는커녕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자료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독립운동의 가치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마자르에 대한 많은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단독] 해리슨, 랜들, 켄들, 샬레… ‘대한외국인’을 아십니까[대한외국인]

    [단독] 해리슨, 랜들, 켄들, 샬레… ‘대한외국인’을 아십니까[대한외국인]

    美서 한국인 신분 등록 힘 보태고3·1운동 日만행 국제사회에 알려독립운동가 발굴 자료서 첫 확인 새로 찾은 2980명 중 8.8% 외국인 “미국 법무부 외국인등록 부장인 얼 해리슨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8월 재미 한인 독립운동단체는 활동보고를 통해 한 미국인에게 감사 편지 보내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해리슨 부장의 노력으로 규정이 바뀌면서 더이상 미국 내 외국인 등록 때 일본 국적을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미국인의 존재가 16일 서울신문이 단독 입수한 한국독립운동사 발굴자료를 통해 최초로 드러났다.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은 2018년부터 ‘독립운동가 자료발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왔다. 법원 판결문과 신문기사, 각종 고문서 등을 통해 이달 1일 기준 총 2980명의 독립운동가를 새로 찾았다. 2021년부터 외국인 독립운동가도 조사해 262명(8.8%)을 새로 발굴했다. 김은지 TF 팀장은 “조사하다 보니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외국인 비중이 상당해서 놀랐다”며 “TF를 2026년까지 운영할 계획이어서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 독립유공자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전혀 연관이 없는 외국인이 왜 (우리를) 도와줬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며 “달리 보면 그렇게까지 도와줬으니 우리가 이들을 기억하고 더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TF 관계자들이 발굴한 자료는 다양한 국적과 직업, 경력을 가진 외국인들이 우리의 독립운동 대의에 동참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국제사회에 독립운동을 알리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부의 지원 기관인 ‘한국친우회’에 참여한 외국인들을 다수 확인했다고 김 팀장은 소개했다.TF가 발굴한 자료 중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이었던 C H 랜들이 1919년 2월 미국 정부 명령에 따라 한국에 파견돼 3·1운동 상황을 국제사회에 호소한 자료도 있다. 중국 단둥 주재 일본영사관이 작성한 정보보고서에는 랜들이 “조선독립운동을 돕고자 하여… 독립선언서를 조선어로 번역해 몰래 각지에 배포했으며…”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1차 세계대전 때 미국 공군으로 복무했던 칼턴 켄들은 작가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진상’이라는 책을 통해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을 소개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다. 프랑스 파리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펠리시앙 로베르 샬레는 3·1운동의 비폭력 정신과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한국근대사 전공인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던 어니스트 베델(영국),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윌리엄 스코필드(캐나다), 독립운동가들을 변론하는 데 힘을 쏟았던 후세 다쓰지(일본) 등 독립운동가로 불러도 손색없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면서 “그동안 독립운동사 연구는 외국인 독립운동 유공자들의 활동과 공헌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 독립운동을 좀더 넓은 세계사 차원에서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의사들 “36주 낙태, 거짓이어도 법정 최고형” 촉구

    의사들 “36주 낙태, 거짓이어도 법정 최고형” 촉구

    36주 된 태아를 낙태(임신중단)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황규석)가 경찰의 철저한 사실관계 확인을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시의사회는 16일 성명에서 “‘태아 살인’이란 국민적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안이기에 철저한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며 “만일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임신중절수술을 실시한 의료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문가평가단 등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자체적으로 강력한 징계 조치를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의사회는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가 있었음이 밝혀지는 경우, 신속하고 강력한 징계 조치 등 전문가 윤리 준수와 자율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의혹이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이는 “유튜브를 이용한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거짓사실로 국민을 호도하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국민의 생명까지 위협한 심각한 범죄 행위”라며 “법정 최고형으로 다스려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서울시의사회는 밝혔다. ● ‘36주 낙태’ 태아 살인 논란…살인죄 수사 의뢰● 서울청장 “무게 있게 수사”…형사기동대 배당 앞서 자신을 20대 여성이라고 소개한 A씨는 임신 36주차에 중절 수술을 받은 과정을 ‘브이로그’의 형식으로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올렸다. 영상에서 A씨는 지난 3월 월경이 끊긴 뒤 병원에서 다낭성 난소 증후군과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생리 불순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임신 36주차가 돼서야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병원 3곳을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했고 다른 병원도 찾아봤지만 전부 다 불가능하다고 했다”면서 중절 수술을 해주는 병원을 찾은 A씨는 약 900만원을 들여 중절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영상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되자 네티즌들은 임신 24주 이후의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자모건법을 근거로 들며 “태아 살인”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보건복지부는 형법상 낙태죄가 사라진 점을 고려해, 영상을 올린 A씨와 수술 의사 B씨를 살인죄로 경찰에 수사 의뢰(진정)했다. 이와 관련해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15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36주면 (태아가) 자궁 밖으로 나와 독립생활이 가능한 정도라는 전문가 의견이 있다”며 “다른 일반적인 낙태 사건과는 다르게 무게 있게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 청장은 “낙태 관련 전통적인 학설과 판례는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지만 구체적인 경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자궁 안 또는 자궁 밖 사망 등 여러 태양(형태)에 대한 종합적 사실 확인을 거쳐 적용 법조와 죄명을 보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서울경찰청은 16일 해당 사건을 형사기동대에 배당해 엄정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5년째 ‘법 밖의 낙태죄’…대체 입법 마련 시급 이번 논란 이후 일각에서는 5년째 입법 공백이 지속되고 있는 낙태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린 만큼, 의료계 혼란을 막고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의 권리 보장을 위해 국회가 서둘러 대체 입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헌재는 2019년 4월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 불합치란 위헌 판단을 하면서도 혼란을 피하기 위해 국회가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당시 헌재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라며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낙태는 국가가 생명보호 수단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2020년 말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21대 국회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헌재의 취지를 반영한 형법 개정안을 냈지만 대부분 상임위원회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일선 법원은 낙태 시술을 한 의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2021년 887회에 걸쳐 낙태를 시술한 산부인과 전문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헌법 불합치 결정된 법률 조항은 소급해 효력을 상실하므로 공소사실이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수사 대상에 오른 ‘36주 태아 낙태’ 영상은 수사 결과에 따라 처벌이 가능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 女 42명 토막 살인한 남성…시민들이 직접 시신 수색, 왜?[핫이슈]

    女 42명 토막 살인한 남성…시민들이 직접 시신 수색, 왜?[핫이슈]

    케냐에서 심하게 훼손된 여성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된 가운데, 해당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사회적 분노가 폭발했다. 더네이션 등 현지매체와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의 15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날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콜린스 주마이샤(33)는 경찰 조사에서 “2022년부터 지난 11일까지 여성 42명을 살해해 시신을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케냐 경찰은 최근 수도 나이로비의 빈민가에 있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토막 시신이 잇따라 발견돼 수사에 착수했다. 현장에서는 버려진 가방들에 나뉘어져 담겨 있던 여성의 신체 부위가 발견됐으며, 시신의 훼손 정도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지난 12일 이후 해당 쓰레기 매립장에서 발견된 여성 시신은 총 9구에 달한다.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체포된 용의자는 자신이 살해한 여성 일부와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는 이날 새벽 희생자 중 한 명의 전화번호를 이용해 모바일 현금 거래를 하던 중 체포됐다. 경찰은 “체포 당시 용의자가 다음 희생자를 유인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케냐 범죄수사국(DCI)의 무함마드 아민 국장은 “용의자의 첫 번째 희생자는 자신의 아내로, 목 졸라 죽인 뒤 시신을 토막 내 같은 장소에 버렸다고 자백했다”면서 “그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고 강조했다. 부패한 경찰 및 정부에 분노한 케냐 국민들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현지 주민들은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 공권력에 분노를 토해냈다. 현장 감식을 위해 출동한 형사와 법의학 전문가로 구성된 팀은 “흥분한 시민들이 사건 현장을 가로막고 있어 접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현장 조사 당시 경찰이 분노한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공중으로 총을 쏘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최근 케냐에서는 경찰이 증세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대를 강경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39명이 목숨을 잃는 등 공권력과 시민간의 충돌이 이어져왔다. 이 과정에서 시위에 참여한 시민 일부가 납치 또는 살해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불과 2년 새 약 50명이 희생되는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공권력이 끔찍한 살인을 예방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일부 시민은 경찰에 대한 불신으로 직접 쓰레기매립장을 뒤져 시신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AFP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매립장에서 끌어올린 가방을 경찰서로 가져가려 했고, 경찰은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최루탄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토막 시신 버려진 매립지와 경찰서 거리 100m도 되지 않아” 케냐의 독립경찰감독청(IPOA)은 해당 사건의 용의자와 발견된 시신, 경찰 사이에 관련이 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으며, 토막 난 시신이 버려진 매립지는 경찰서의 거리는 100m도 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지 시민단체와 인권단체 연합은 이번 연쇄 토막 살해 사건이 증세 반대 시위 과정에서 미스터리한 실종 및 납치 사건이 증가한 가운데 발생했다며 “이는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케냐의 법치주의와 안보에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케냐의 증세 법안은 윌리엄 루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철회됐다. 루토 대통령은 시위 과정에서 시민 수십 명이 사망하고 실종자가 발생하자 유혈 사태의 책임을 물어 경찰청장을 경질하는 등 민심을 다독이려 애쓰고 있지만, 대중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시신이 발견된) 매립지에 모인 시민들이 루토 대통령의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 “美 경찰, 트럼프 피격 26분 전 수상한 거동 파악”...경호 실패 논란

    “美 경찰, 트럼프 피격 26분 전 수상한 거동 파악”...경호 실패 논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총격범을 현지 경찰이 사건 전 발견한 정황이 포착됐다. 경호 실패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지역 방송인 WPXI는 피격 사건 발생 약 26분 전인 13일(현지시간) 오후 5시 45분쯤 지역 구조대원 한 명이 지붕 위에 있는 수상한 남성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15일 보도했다. 구조대원은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 수상한 남성의 사진도 찍은 것으로 파악했다. 해당 남성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토머스 매슈 크룩스(21)로 밝혀졌다. 크룩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연설을 시작한 6시 11분쯤 유세장 근처 건물 지붕 위에서 총격을 시도하다가 현지 경찰 저격수의 총에 맞아 숨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크룩스가 쏜 총알이 오른쪽 귀 윗부분을 관통해 상처를 입었다. 현지 경찰이 크룩스의 수상한 행태를 사건 26분 전에 알고 있었다는 정황은 경호 실패론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회와 국토안보부는 이번 사태를 전례없는 경호 실패로 규정하고 미 비밀경호국(USSS)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비밀경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 때 연방수사국(FBI), 현지 경찰을 끌어들여 경호를 조직했으나 제대로 공조하지 못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WPXI는 또 다른 경찰관 한 명도 총격 이전에 지상에서 크룩스를 확인했으며 그를 수상한 인물로 보고했다고 전했다. 당시 현지 경찰들은 이러한 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서기는 했지만 총격을 막지는 못했다. 당시 경찰관이 크룩스가 있던 지붕으로 올라서고자 양손을 짚는 순간 크룩스는 방향을 틀어 경찰에 총을 겨눴다. 이 경찰관은 피격 위협을 벗어나기 위해 지붕에서 손을 뗐다. 총격범은 직후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경호 과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미 연방의회에서는 하원 감독위원회를 비롯한 3개 위원회가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 비밀경호국 “트럼프 총격범 있던 옥상 수색 안 했다” 인정…경호 실패 이유는?[핫이슈]

    비밀경호국 “트럼프 총격범 있던 옥상 수색 안 했다” 인정…경호 실패 이유는?[핫이슈]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대선 연설 중 피격을 당한 사건과 관련해 비밀경호국(SS)의 경호 실패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미 NBC 방송의 15일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인 토머스 매슈 크룩스(20)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총을 발사한 건물 옥상은 이미 비밀경호국이 잠재적 경호 취약 장소로 지목한 곳이었다. 유리연구회사 소유인 이 건물은 경호 반경 외에 있었지만, 경호 당국은 해당 장소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경호국은 해당 건물을 직접 수색하지 않고 현지 경찰에 수색 및 보안책임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CNN은 “두 개의 현지 저격 대응팀 가운데 한 팀이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기도가 벌어진 건물을 담당하기로 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장소가 경호 취약 시설로 분류돼 있었는데, 비밀경호국이 전담해 해당 건물을 책임진 것이 아니라 현지 경찰과 경호 업무를 나누어 관장하는 과정에서 허점을 노출했다는 의미다. 비밀경호국을 관할하는 국토안보부의 알레한드르 마요르카스 장관도 이번 일을 “경호 실패”라고 인정했다. 마요르카스 장관은 CNN에 “이런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서 “독립적 조사를 통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규명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범행 동기 여전히 오리무중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한 크룩스에 대한 단서가 하나 둘 공개되고 있지만, 범행 동기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그는 총기 애호가였으며 이번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전날인 12일에는 집 인근 사격장을 찾아 아버지와 함께 사격연습을 하기도 했다.범행 당일 아침에는 동네 매장에서 각각 탄약 50발과 사다리 등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들을 구매했다. 자신의 차량인 현대 쏘나타를 몰고 유세 현장으로 간 그는 유세장 밖에 주차해 둔 트렁크에 사제 폭발물을 설치했으며, 원격 기폭장치는 자신이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크룩스가 범행 전 48시간 동안의 행적에는 치밀하게 계획된 암살 시도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수사 당국은 여전히 동기를 추정할 단서는 찾지 못한 상태다.
  •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극우 인사’ 구성…2년째 제자리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극우 인사’ 구성…2년째 제자리

    여순 10·19사건의 본질을 규명할 ‘여순사건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이 극우 인사로 구성됐다는 논란이 2년째 계속되면서 유족들의 비통함이 커지고 있다. 16일 여순사건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대책 범도민연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기획단의 대부분은 뉴라이트 활동을 했거나, 국민 비하 막말도 서슴지 않던 논란의 인물들이 선정됐다. 범도민연대는 “뉴라이트 한국현대사학회 발기인,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철거를 주도했던 인물, 제주 4·3 사건을 부정한 극우인사 등이 포함됐다”며 “편향된 이념으로 역사를 왜곡해온 사람들을 배제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들로 교체해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4일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공식 출범하고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의 역사 왜곡 및 폄훼 논란에 대응에 본격 나섰다. 여순사건 특별위원회는 주철현(여수시갑) 위원장과 김문수(순천광양곡성구례갑) 부위원장, 권향엽·문금주 의원, 유족 대표 등 10여명으로 구성됐다.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여순사건특위 위원장은 최근 정부 여순사건위원회에 여수·순천 10·19 사건 진상 규명과 희생자·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요구사항을 전달하면서 진상보고서 작성기획단장을 포함해 극우적 역사관과 망언 이력으로 문제를 일으킨 단원들을 새로 임명하라고 주장했다. 작성기획단이 결정한 진상조사 과제들을 전면 재설정하고, 진상조사 과제 대부분을 외부 연구용역에 맡기는 무책임한 ‘외주화’ 중단도 촉구했다. 주 위원장은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은 총체적 부실에 놓여 있다”며 “특히 이들이 결정한 20가지 진상조사 과제들 가운데에는 여순사건에 대한 편향된 역사 기술과 왜곡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질타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한 준비 완료 기한이 3개월도 남지 않아 신속한 실무 인력 보강도 요구되고 있다. 진상보고서 작성을 위한 지원 및 실무조직인 ‘진상조사팀’은 제주 4·3 사건의 경우 수석전문위원 1명, 전문위원 4명, 조사요원 15명 등 20명으로 구성됐다. 이와반면 여순사건 작성기획단의 ‘진상규명팀’은 정부와 지자체 파견 3명, 전문임기제 2명, 기간제 1명 등 6명으로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 尹 “한미동맹, 핵 기반 동맹으로 확고하게 격상”

    尹 “한미동맹, 핵 기반 동맹으로 확고하게 격상”

    “광복80년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기념사업”“첨단기술 활용해 재난예방 패러다임 바꿔야”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한미동맹은 명실상부한 핵 기반 동맹으로 확고하게 격상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난주 미국 순방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을 채택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렇게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미국의 핵 자산에 한반도 임무를 특별 배정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어떤 종류의 북핵 위협에도 기민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구축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또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 방문, 13차례 양자 회담 등 성과를 언급하며 “각 부처는 이번 열세 차례 양자회담의 후속 조치들을 세심하게 챙겨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내년이 광복 80주년인 점을 언급하면서 “모든 국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대한민국 광복 80년의 역사와 글로벌 중추 국가의 비전을 보여줄 기념사업들을 함께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무회의에는 광복 80년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대통령령인 ‘광복 8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안’이 상정됐다. 윤 대통령은 “자유의 회복을 넘어 자유의 확장으로 이어진 독립운동의 정신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며 “아직 끝나지 않은 ‘자유를 향한 전진’이 더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집중호우 피해의 신속한 복구와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에는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이어지며 안타까운 피해가 발생해서 마음이 무겁다”며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피해를 보신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처럼 예측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재난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는 종래의 데이터 예측을 넘어서는 조치와 대응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첨단 과학 기술을 적극 활용해 재난 예방과 대응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며 “모든 부처와 지자체는 훨씬 세밀하고 한 걸음 앞선 정책들을 수립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길 바란다”고 했다.
  • 조혜련 “아들 나 말고 재혼남편에 전화, 돈 필요하면 아빠라 불러”

    조혜련 “아들 나 말고 재혼남편에 전화, 돈 필요하면 아빠라 불러”

    조혜련이 남편과 아들을 향한 사랑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식탁’에서는 개그우먼 조혜련이 출연해 절친 문희경, 서지오, 신봉선을 초대했다. 조혜련은 아들딸이 모두 독립하며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었고 “걔네가 나가 사니 둘이 사는 게 편하다. 완전 신혼”이라고 말했다. 일정 때문에 여행을 못 다니지만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9월 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문희경은 조혜련 남편이 외조를 잘한다고 칭찬했고, 조혜련은 남편이 자신이 한 공연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봐서 대사를 모두 외울 지경이며 사과를 잘 깎지 못하는데도 조혜련을 위한 과일 도시락을 만들어 준다고 자랑했다. 남편을 그렇게 만든 비법을 묻자 조혜련은 “내가 그렇게 좋다고 한다”고 말했지만, 문희경은 조혜련이 “애교가 많다”고 했다. 조헤련은 남편을 애기, 까꿍이라고 부른다며 혀 짧은 소리로 애교 폭발했다. 조혜련은 남편에 대해 “원래 중국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나랑 결혼해서 살면서 내가 하는 분야 일을 하게 됐다. 기획 일도 하고 요즘은 노래 작사, 작곡도 한다. ‘빠나나날라’도 제작했다. 유튜브, 공연도 한다”고 했다. 서지오는 “재혼이 제일 두려운 게 내 자식을 다른 사람과 키우는 게 그랬다. 넌 재혼할 때 그런 두려움 같은 게 없었냐”고 질문했다. 조혜련은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남편을 사귀었다. 엄마랑 일하는 분이라고 했는데 엄마 남자친구 갔어? 다 아는 거다. 과정이 있었다. 낯설기도 하고. 남편이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마음을 헤아려 주고 하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또 조혜련은 “(아들) 우주가 나한테 전화 안 한다. 아저씨한테 전화한다.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급전이 필요할 때는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디 가면 우리 아빠가요, 아빠라고 이야기한다”며 “사이가 좋고 편하다. 심지어 여자친구 사귈 때도 조언을 많이 받더라. 두세 번 성공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신뢰가 더 쌓였다”고 했다. 문희경은 “보기 좋은 게 지금 신랑 만나기 전과 후가 다르다. 그전에는 방송을 통해 보면 짜증과 힘듦이 있었다. 편함과 행복함이 보여 누구를 만나니 달라지는구나. 너무 사랑스럽다”며 조혜련의 변화를 반색했다. 조혜련은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 애정결핍이 있었나 보다. 진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면 만족감이 느껴진다. 한쪽이 비면 뭐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지금 남편이 정말 고맙다. 채워주니까 내가 편안하게 일할 수 있고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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