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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뜨거워진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 정치권·후손 가세해 ‘갑론을박’

    더 뜨거워진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 정치권·후손 가세해 ‘갑론을박’

    육군사관학교(육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현 정부의 지난 정부 지우기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과 후손들까지 가세하면서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밤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홍범도 장군(1868~1943)은 광복되기 전에 돌아가신 분이다”며 해방 이후 김일성의 북한 공산당, 6·25전쟁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지적했다. 또 “공산주의 역사(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나오는 인물인 레닌을 방문해서 약소국인 대한민국 독립을 도와줄 수 있느냐, 항일무장 독립을 도와줄 수 있냐 이런 논의를 했던 상대방이다”며 “그분이 소련 제복을 입게 된 것도 항일 독립투쟁의 효과적인 진전을 위해서 했던 것”임을 강조했다.이어 이 전 의원은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도 1962년 홍범도 장군을 서훈하는 독립훈장(독립장)을 수여하게 됐다”며 “인제 와서 분단, 북한이 생기기도 전에 소련 공산주의의 제복을 입었다는 것이 이념전쟁의 근거가 된다는 건 정말 소가 봐도 웃을 일이다”고 했다. 이회영 선생의 증손자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5인의 흉상을 이전하겠다는 육사의 계획에 대해 후손으로서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위하여 그런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를 이해사회학적으로 해석하려 한다”면서 “우당의 역사적 동지로서 부당한 사상검열의 표적이 된 홍범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들로, 우당 선생의 증손자다. 윤석열 대통령의 죽마고우로도 알려져 있다.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29일 페이스북에 “국군의 뿌리를 흔든 것은 바로 당신이었다. 조용히 사시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오늘도 큰소리로 사실을 왜곡하는 주장을 했다”고 했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과 관련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신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8월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홍범도 등 독립군을 국군의 뿌리로 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개편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는 독립운동을 핑계로 종북 주사파의 세계관을 군 장교단에 심기 위함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래 군의 주축이 될 육사 생도에게 가장 중요한 필수과목인 6·25 전쟁사, 북한 이해, 군사 전략을 선택과목으로 바꿨다. 70%의 생도가 세 과목을 배우지 않고 졸업하게 했다”고 했다. 신 의원은 “문재인 정권은 6·25 전쟁 지우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8년 3월 1일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소련군 복장을 한 홍범도 흉상을 생도들이 매일 볼 수 있는 장소에 설치했다”며 “6·25 전쟁은 소련의 지원으로 북한이 일으켰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소련 공산당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앞서 육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은 그가 생존했을 당시 소련의 ‘붉은 군대’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재연했다. 그 때문에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태어난 육사에 공산당 군대의 군복을 착용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설치된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견이 안팎에서 제기됐다. 군은 애초 육사에 설치된 5인(홍범도·지청천·이범석·김좌진·이회영)의 흉상 철거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만 이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그런데도 여당 측에서조차 비판이 나오면서 고민이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8일 KBS라디오에서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 관련한 이번 논란은, 뉴라이트 사관(자유시장·보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역사관) 문제가 불거진 건국절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라면서 “이번 것은 헌법 전문에 정의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너무 좁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7일 페이스북에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하려고 하는 것은 오버 해도 너무 오버”라며 “6·25전쟁을 일으켰던 북한군 출신도 아니고 그 전쟁에 가담했던 중공군 출신도 아닌데 왜 인제 와서 논란이 되냐”고 했다.
  • 103년 만의 해후… 최재형 선생 부부 함께 잠든다

    103년 만의 해후… 최재형 선생 부부 함께 잠든다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가 최 선생 순국 103년 만에 넋이나마 고국에서 함께 잠들 수 있게 됐다. 국가보훈부는 최 선생의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구해 온 흙과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최 여사의 유해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합장한다고 1일 밝혔다. 최 여사 유해는 오는 7일, 최 선생 생가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은 오는 11일 각각 국내로 돌아온다. 보훈부는 12~13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국민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광복절 하루 전인 14일에는 ‘백년 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부부 합장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최 선생은 연해주에서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모은 재산을 독립운동과 연해주 동포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아 연해주 동포들의 은인으로 존경받았지만 1920년 4월 연해주를 침공한 일본군에 붙잡혀 순국했다. 최 선생과 1897년 결혼했던 최 여사는 최 선생이 순국한 뒤 자녀들과 힘겹게 생활하다가 1952년 사망해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정부는 1962년 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후손의 요청에 따라 1970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가묘를 조성했다. 하지만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뒤 유족들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후손을 자처했던 사람이 사실은 유족연금을 노린 가짜였음이 드러났으며 108번 묘역은 지금까지 빈터로 남아 있다. 최 선생은 일본군에 살해당하는 바람에 현재까지 유해를 찾을 수 없어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길이 없었다. 이에 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올해 1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가 지난 6월 30일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최 선생 부부를 합장할 수 있게 됐다.
  • 연해주 독립운동 큰 별 최재형 순국 103년 만에 부부 함께 잠든다

    연해주 독립운동 큰 별 최재형 순국 103년 만에 부부 함께 잠든다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가 최 선생 순국 103년 만에 고국에서 넋이나마 함께 잠들 수 있게 됐다. 국가보훈부는 최 선생의 순국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구해온 흙과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최 여사의 유해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합장한다고 1일 밝혔다. 최 여사 유해는 오는 7일, 최 선생 생가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은 오는 11일 각각 국내로 돌아온다. 보훈부는 12~13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국민추모공간을 마련하고 광복절 하루 전인 14일에는 ‘백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부부 합장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최 선생은 연해주에서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모은 재산을 독립운동과 연해주 동포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아 연해주 동포들의 은인으로 존경받았지만 1920년 4월 연해주를 침공한 일본군에 붙잡혀 순국했다. 최 선생과 1897년 결혼했던 최 여사는 최 선생이 순국한 뒤 자녀들과 힘겹게 생활하다가 1952년 사망해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정부는 1962년 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후손의 요청에 따라 1970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가묘를 조성했다. 하지만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뒤 유족들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후손을 자처했던 사람이 사실은 유족연금을 노린 가짜였다는 게 드러났으며 108번 묘역은 지금까지 빈터로 남아있다. 최 선생은 일본군에 살해당하는 바람에 현재까지 유해를 찾을 수 없어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길이 없었다. 이에 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올해 1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가 지난 6월 30일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최 선생 부부를 합장할 수 있게 됐다.
  • 영화 ‘놈·놈·놈’ 모티브 주역, 8월의 독립운동가에

    영화 ‘놈·놈·놈’ 모티브 주역, 8월의 독립운동가에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군 자금을 운반하는 호송대를 습격했던 이른바 ‘간도(間島) 15만원 사건’의 주역인 윤준희·임국정·한상호 선생과 김강 선생 등 4명의 독립유공자가 ‘2023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31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윤준희·임국정·한상호 선생은 1920년 1월 4일 북간도 용정촌 부근 골짜기에서 군자금 15만원을 운반하는 일본군 호송대를 습격해 자금을 탈취했다. 당시 15만원은 소총 5000정과 탄환 50만발을 구매할 수 있는 거금이었다. 이들은 탈취한 자금으로 러시아군이 보유한 소총과 기관총, 탄약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사전에 정보가 유출되면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 후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받아 1921년 8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들과 함께 선정된 김강 선생도 이 사건에 연루돼 일본군에 체포된 뒤 피살됐다. 정부는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한 공훈을 기려 1963년 윤준희·임국정·한상호 선생에게, 1995년에는 김강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간도 15만원 사건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보훈부는 또 ‘8월의 6·25전쟁영웅’으로 해병대에서 활약했던 고(故) 김성은 중장을 선정했다. 김 중장은 1946년 4월 해군 소위로 임관한 뒤 1949년 4월 해병대 창설 후 해병대 참모장을 맡았다. 1950년 8월 경남 진해·마산 일대 방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를 미국 종군기자가 ‘귀신 잡는 한국 해병’이라는 기사로 타전하면서 해병대 명성을 떨친 것으로 유명하다.
  • ‘일본군 자금 탈취’ 4인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일본군 자금 탈취’ 4인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군 자금을 운반하는 호송대를 습격했던 이른바 ‘간도(間島) 15만원 사건’의 주역인 윤준희·임국정·한상호 선생과 김강 선생 등 4명의 독립유공자가 ‘2023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31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윤준희·임국정·한상호 선생은 1920년 1월 4일 북간도 용정촌 부근 골짜기에서 군자금 15만원을 운반하는 일본군 호송대를 습격해 자금을 탈취했다. 당시 15만원은 소총 5000정과 탄환 50만발을 구매할 수 있는 거금이었다. 이들은 탈취한 자금으로 러시아군이 보유한 소총과 기관총, 탄약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정보가 유출되면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받아 1921년 8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들과 함께 선정된 김강 선생도 이 사건에 연루돼 일본군에 체포된 뒤 피살됐다. 정부는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한 공훈을 기려 1963년 윤준희·임국정·한상호 선생에게, 1995년 김강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간도 15만원 사건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보훈부는 또 ‘8월의 6·25전쟁영웅’으로 해병대에서 활약했던 고(故) 김성은 중장을 선정했다. 김 중장은 1946년 4월 해군 소위로 임관한 뒤 1949년 4월 해병대 창설 후 해병대 참모장을 맡았다. 1950년 8월 경남 진해·마산 일대 방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를 미국 종군기자가 ‘귀신 잡는 한국 해병’이라는 기사로 타전하면서 해병대 명성을 떨친 것으로 유명하다.
  • [서울포토] ‘3천t급 두 번째 잠수함’ 안무함 인도·인수식

    [서울포토] ‘3천t급 두 번째 잠수함’ 안무함 인도·인수식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해군의 두 번째 3천t급 잠수함인 ‘안무함’이 900일 가까운 인수평가를 마치고 20일 군에 인도돼 조만간 임무 수행에 나선다. 장보고-Ⅲ급 배치(Batch)-Ⅰ 2번함인 안무함은 2020년 11월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진수한 이후 대우조선해양이 시운전하며 군의 인수평가를 거쳤다. ‘배치’는 같은 종류로 건조되는 함정들의 묶음을 뜻하며, 장보고-Ⅲ급 배치-Ⅰ의 1번함은 2021년 8월 취역한 도산안창호함이다. 안무함은 잠수함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장비인 전투체계와 소나(음파탐지기) 등 다수의 국내 개발 장비를 탑재해 전체 국산화 비율이 76%에 달한다. 길이 83.3m, 폭 9.6m로 잠항 시간을 늘려주는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 공기불요추진) 체계를 갖춘 디젤 잠수함이다. AIP 체계가 있으면 구형 잠수함과 달리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고도 최대 수 주 동안 수중 작전이 가능해 잠수함의 생명과도 같은 은밀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수중 최대 속력은 20kts(시속 37㎞) 이상으로 탑승 인원은 50여 명이며, 도산안창호함과 마찬가지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쏠 수 있는 수직발사대를 6개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수직발사대는 대부분 원자력추진 잠수함에 탑재되는 것으로 디젤 잠수함에 갖추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3천t급 잠수함이 기존의 1천200t급 및 1천800t급 잠수함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군은 과거 3천t급 잠수함의 수직발사대 장착 여부는 물론 SLBM 개발 여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1년 9월 군은 도산안창호함에서 SLBM ‘현무 4-4’를 수중 발사하는 데 성공했음을 확인했다. 안무함이라는 함명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주역인 안무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안무 장군은 대한제국 진위대 출신으로 1920년에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에 참가해 큰 공을 세웠으나, 1924년 일본 경찰의 습격으로 총상을 입고 체포돼 같은 해 순국했다. 정부는 1980년 안무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안무함의 진수식에는 안무 장군의 후손이 참석했다.
  • 최재형 선생 등 독립유공자 훈격 재평가한다

    최재형 선생 등 독립유공자 훈격 재평가한다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공적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최재형 선생과 이상룡 선생, 김상옥 의사 등 독립유공자들의 훈격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포상이 본격 실시된 1962년 이후 처음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훈격 재평가 작업에 착수한다고 5일 밝혔다. 이를 위해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구성하고 6개월가량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쳐 정책 방향을 마련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유영렬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이 위원장을 맡고 김명섭 연세대 교수, 김종민 변호사, 최완근 전 보훈처 차장, 김능진 전 독립기념관장, 언론인 등 17명으로 구성됐다. 첫 회의는 7일 열린다. 정부는 1949년 처음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시작했으며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대규모 포상이 이뤄졌다. 하지만 포상 이후 새로운 자료와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일부 독립유공자들의 훈격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훈격이 상향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대표적인 독립유공자는 김상옥(1962년 대통령장), 나철(1962년 독립장), 박상진(1963년 독립장), 이상룡(1962년 독립장), 이회영(1962년 독립장), 최재형(1962년 독립장), 호머 헐버트(1950년 독립장) 등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과거 포상된 분들은 당시 확인된 자료만으로 훈격이 부여됨에 따라 사료가 추가 발굴되는 시점에서 억울한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포상 이후 추가 확인된 공적까지 종합적으로 다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 보훈처, 최재형 등 독립운동 훈격 재평가한다

    보훈처, 최재형 등 독립운동 훈격 재평가한다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공적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최재형(사진) 선생과 이상룡 선생, 김상옥 의사 등 독립유공자들의 훈격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포상이 본격 실시된 1962년 이후 처음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훈격 재평가 작업에 착수한다고 5일 밝혔다. 이를 위해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구성하고 6개월 가량 공적 재평가 필요성과 공감대 형성 등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쳐 정책 방향을 마련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유영렬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이 위원장을 맡고 김명섭 연세대 교수, 김종민 변호사, 최완근 전 보훈처 차장, 김능진 전 독립기념관장, 언론인 등 17명으로 구성했다. 첫 회의는 오는 7일 열린다. 정부는 1949년 처음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시작했으며,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대규모 포상이 이뤄졌다. 하지만 포상 이후 새로운 자료와 연구성과가 축적되면서 일부 독립유공자들의 훈격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훈격 상향 주장이 제기된 대표적인 독립유공자는 김상옥(1962년 대통령장), 나철(1962년 독립장), 박상진(1963년 독립장), 이상룡(1962년 독립장), 이회영(1962년 독립장), 최재형(1962년 독립장), 호머 헐버트(1950년 독립장) 등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과거 포상된 분들은 당시 확인된 자료만으로 훈격이 부여됨에 따라 사료가 추가 발굴되는 시점에서 억울한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포상 이후 추가 확인된 공적까지 종합적으로 다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 독립유공자 32명 대한민국 호적 되찾았다

    독립유공자 32명 대한민국 호적 되찾았다

    그동안 무국적자로 돼 있던 독립유공자 32명이 대한민국 호적을 되찾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개성지역 3·1 만세 시위를 주도한 신관빈(2011년 애족장) 선생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32명에게 가족관계등록을 창설하고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로 1’을 등록기준지로 하는 방식으로 대한민국 적(籍)을 부여했다고 1일 밝혔다. 이들 32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에게 적용된 민사법률인 조선민사령이 제정되기 전에 국외로 이주하는 등의 이유로 그동안 대한민국 공적서류에 등재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이번에 대한민국 적이 부여된 독립유공자는 신 선생을 비롯해 김강(1995년 독립장)·강진해(1995년 독립장)·김창균(1995년 독립장)·이덕삼(1995년 독립장)·김경희(1995년 애국장)·김명세(1991년 애국장) 선생 등이다. 신 선생은 1919년 3월 1일 개성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다음날 체포돼 그해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는 당시 유관순 열사와 여옥사(8호)에서 함께 옥고를 치렀다. 김강 선생은 1920년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간도로 가던 현금수송 차량을 습격해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에 연루돼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순국했고, 강진해 선생은 한국독립군 별동대장으로 중국 동녕현전투에서 순국했다. 김명세 선생은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독립운동단체 활동 중 순국했고, 김경희 선생은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로서 비밀결사(송죽회)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보훈처는 지난해 7월에는 윤동주와 송몽규 등 156명, 지난해 말에는 이용담과 김천 등 11명 등 지금까지 199명에 이르는 무호적 독립유공자에게 가족관계등록을 창설했다. 보훈처는 “올해 순국 100주년을 맞는 황기환 지사도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신관빈 선생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32명에 대한민국 호적 생겼다

    신관빈 선생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32명에 대한민국 호적 생겼다

    그동안 무국적자로 돼 있던 독립유공자 32명이 대한민국 호적을 되찾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개성지역 3·1 만세시위를 주도한 신관빈(2011년 애족장) 선생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32명에게 가족관계등록을 창설하고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로 1’을 등록기준지로 하는 방식으로 대한민국 적(籍)을 부여했다고 1일 밝혔다. 이들 32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적용한 민사법률인 조선민사령 제정 전 국외로 이주하는 등 이유로 그동안 대한민국 공적서류에 등재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이번에 대한민국 적이 부여된 독립유공자는 신관빈 선생을 비롯해 김강(1995년 독립장)·강진해(1995년 독립장)·김창균(1995년 독립장)·이덕삼(1995년 독립장)·김경희(1995년 애국장)·김명세(1991년 애국장) 선생 등이다. 신 선생은 1919년 3월 1일 개성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다음날 체포돼 그 해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는 당시 유관순 열사와 여옥사(8호)에서 함께 옥고를 치렀다. 김강 선생은 1920년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간도로 가던 현금수송 차량을 습격해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에 연루돼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순국했고, 강진해 선생은 한국독립군 별동대장으로 중국 동녕현 전투에서 순국했다. 김명세 선생은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독립운동단체 활동 중 순국했고, 김경희 선생은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로서 비밀결사(송죽회)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보훈처는 지난해 7월에는 윤동주와 송몽규 등 156명, 지난해 말에는 이용담과 김천 등 11명 등 지금까지 199명에 이르는 무호적 독립유공자에게 가족관계등록을 창설했다. 보훈처는 “올해 순국 100주년을 맞는 황기환 지사도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묘 복원 길 열린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묘 복원 길 열린다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최 선생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데 사용했던 권총을 구해 줬던 인물이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정부는 17일 국무회의에서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 영정이나 위패를 배우자 유골과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다음주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 유골을 찾지 못해 서울현충원에 위패로만 봉안돼 있는 최 선생을 배우자와 함께 합장묘에 안장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는 이름을 석판 등에 기록해 보관하거나(위패 봉안), 영정이나 위패를 배우자 유골과 함께 봉안시설에만 안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유골을 찾을 수 없는 최 선생은 묘를 쓸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70년에는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했지만 시신도 엉뚱한 사람인 데다 가짜 유족이 후손을 자처하며 보상금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나 지금은 최 선생의 손자 최발렌틴의 신청에 따라 부부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 이토 저격 안중근 권총 구해줬던 독립유공자 최재형 선생 묘 복원 길 열린다

    이토 저격 안중근 권총 구해줬던 독립유공자 최재형 선생 묘 복원 길 열린다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묘를 복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최 선생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데 사용했던 권총을 구해줬던 인물이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정부는 17일 국무회의에서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 영정이나 위패를 배우자 유골과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다음주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 유골을 찾지 못해 서울현충원에 위패로만 봉안돼 있는 최 선생을 배우자와 함께 합장묘에 안장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는 이름을 석판 등에 기록해 보관하거나(위패 봉안), 영정이나 위패를 배우자 유골과 함께 봉안시설에만 안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유골을 찾을 수 없는 최재형 선생은 묘를 쓸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1860년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어나 어릴 때 기근을 피해 가족과 함께 연해주로 이주한 최 선생은 러시아 군대 군납상인으로 축적한 막대한 재산을 아낌없이 독립운동과 연해주 이주 동포를 위해 썼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권총도 최 선생이 전해줬다. 그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출됐으며 같은 해 11월 블라디보스토크에 독립단을 조직하고 단장으로서 무력 항쟁을 주도했다. 이듬해 4월 연해주를 침공한 일본군에게 붙잡혀 살해됐다. 정부는 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70년에는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했지만, 시신도 엉뚱한 사람인 데다 가짜 유족이 후손을 자처하며 보상금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나 지금은 최 선생의 손자 최발렌틴의 신청에 따라 부부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 유골은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매장돼 있다.
  • 국가보훈처, 하와이 독립운동 사적지에 표지판 세워

    국가보훈처, 하와이 독립운동 사적지에 표지판 세워

    미국 하와이에서 독립운동가 36명을 배출한 해외 첫 한인교회를 기리는 독립운동사적지 표지판이 세워졌다. 국가보훈처는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기념해 에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서 독립운동사적지를 알리는 표지판을 제막한다고 13일 밝혔다.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사적지 표지판을 설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해외 최초의 한인교회다. 낯선 하와이로 이주한 이들의 적응을 돕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윤병구(1977년 독립장), 이교담(1999년 애국장), 문또라(2019년 건국포장) 등 독립운동가 36명을 배출했다. 보훈처는 이곳을 시작으로 한인기숙학교 터,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터, 합성협회회관 터, 대한인동지회 회관, 한인기독교회, 올리브연합감리교회, 오하우 묘지 등 하와이 독립운동사적지 14곳에 표지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미주한인재단과 함께 표지판 설치 장소를 설명하는 안내서도 제작한다.박민식 보훈처장은 “하와이 이민 선조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독립운동이 보인다는 말이 있는 정도로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과 생활고에도 조국 독립을 향한 하와이 한인의 염원은 뜨거웠다”고 설명했다.
  • 1000년을 건너 전하는 신라인들의 위로… 경주박물관 불교조각실 재개관

    1000년을 건너 전하는 신라인들의 위로… 경주박물관 불교조각실 재개관

    무언가를 간절히 믿는 힘은 찬란한 예술로 핀다. 신라인들은 불교가 세상을 구해준다고 믿었고, 자신들의 생을 지키고 싶은 열망을 조각상에 담았다. 지금처럼 기술이 발전한 시대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돌과 금속을 붙잡고 불상을 제작하는 불사(佛事)를 통해 구원을 추구했다. 1000년의 세월을 지나 1500년에 가까워가는 신라인들의 조각 솜씨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1층 불교조각실이 1년 정도의 재단장을 거쳐 12일 문을 열었다. 국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등 신라 불교조각의 정수를 볼 수 있는 57건 70점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움직이기 어려운 석불이 많았던 데다 상설 전시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가치의 전시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고민이 많았던 만큼 이번 전시는 들어가자마자 쉽게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이 곳곳에 가득하다.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입체성이다. 대개 앞면만 공개됐던 불상의 고정관념은 뒷면까지 시원하게 공개한 이번 전시에서 완전히 깨진다. 잘 꾸며진 앞이 아니라 꾸미지 않은 뒤까지 공개되자 아무런 표정도 새기지 않을 돌의 뒷면을 붙잡고 부처의 얼굴을 고민했을 신라 장인들의 고뇌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전시관 입구에선 불교 국가 신라를 시작하게 한 이차돈의 순교비가 관람객을 맞는다. 자신을 희생해 한반도에 불교를 꽃피게 한 이차돈의 생이 디지털 맵핑 영상으로 아름답게 소개된다.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정착하자 신라인들은 마음을 부처에게 마음껏 의지했다. 나라에 위기가 찾아오면 불상을 하나라도 더 새겨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믿었다. 혹여나 솜씨가 부족하면 서운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1000년도 더 지난 조각상에 깃든 장인혼이 생생하다.1부 ‘신장(神將), 신라와 불법(佛法)을 보호하다’에서는 불교가 나라를 지켜준다는 신라 사람들의 믿음을 반영한 ‘신장상’을 볼 수 있다. 금강역사, 사천왕, 팔부중 등 다양한 신장상은 강렬한 표정과 근육질의 몸, 역동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력을 통해 불법을 옹호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이들답게 조각상의 크기 자체는 크지 않지만 힘이 넘친다. 박아연 학예연구사는 “다양한 신장상을 통해 신라인들이 불교를 어떻게 믿었고, 불교가 어떻게 나라를 지키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소개했다. 2부는 이번 개편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공간 중 하나다. 본래 기둥 하나만 있고 관람객들이 지나가는 공간이었는데, 이번에 기둥과 같은 크기의 독립장을 6개 세워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6개의 주제도 위대한 탄생과 사유, 보석으로 장엄한 부처,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 소망을 들어주는 부처, 진리의부처 비로자나, 치유하는 부처 약사여래로 의미가 있다. 통일신라 9세기에 제작된 금동여래입상은 불상에 빛바랜 보석이 박혀 있어 찬란했을 옛모습을 상상하게 한다.전시관의 유일한 국보인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1200년 전의 불상을 통해 오롯이 나를 만나는 시간을 선사한다. 불상에 집중하도록 설명을 과감히 생략했고,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간접조명이 불상을 은은하게 빛낸다. 박 학예사는 “신라인들의 마음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위로와 안식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면서 “우리의 바람과 부처님이 위안을 주는 것이 서로 닿기를 바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을 비롯해 3부에선 보다 많은 불상의 뒷모습을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어 관람객에게 사유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각 유물마다 맞춤형으로 준비한 조명이나 이차돈 순교비에 흐른 영상을 비롯한 5편의 영상 역시 관람의 풍성함을 더한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마치 숲속을 걸어가듯 신라 불교조각 사이를 누비며 힘차고 온화하고 아름다움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전시 공간”이라며 “신라 문화유산 중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불교미술을 새로 개편했다. 경주박물관의 큰 성과”라고 말했다.
  • 우당 이회영 순국 90주기 추모식 열려

    우당 이회영 순국 90주기 추모식 열려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 90주기 추모식이 17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다.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가 ‘아흔 번째 난잎’을 주제로 여는 행사에는 이회영 선생 후손인 이종걸 기념사업회장과 이종찬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사장,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회영 선생은 구한말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넷째 아들로 18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하자 1910년 12월 6형제(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와 가족들 50여명이 전재산을 처분하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만주로 망명했다. 6형제 가운데 가장 많은 재산을 내놨던 이석영 선생은 1934년 중국 상하이에서 굶어 죽었을 정도로 6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6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온 이시영 선생은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이회영 선생은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한 1898년 민중계몽 운동, 1905년 을사오적 규탄, 1906년 안창호·전덕기·양기탁·이동녕·신채호·노백린 등과 함께 설립한 비밀결사 신민회 활동 등에 참여했다. 민족 교육과 독립운동 인재 양성을 위한 1907년 서전서숙 및 1908년 상동청년학원 개설, 청산리전투의 주역들을 배출한 1912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931년 항일구국연맹 조직 등도 전해진다. 이회영 선생은 1932년 만주에 연락 근거지를 확보하고 지하 공작망을 조직할 목적으로 상하이에서 다롄으로 배를 타고 가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당한 끝에 11월 17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 처장은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던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혼을 엄숙한 마음으로 되새기며 우리 국민이 선생의 숭고한 뜻과 정신을 언제나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박건병 등 3명… 전쟁영웅에는 이창환·한규택 선정

    이달의 독립운동가 박건병 등 3명… 전쟁영웅에는 이창환·한규택 선정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해병대 이창환·한규택 하사를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박건병·강경선·배천택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각각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이 하사와 한 하사는 각각 해병대 제1연대 제11중대 제2분대장과 소대 기관총 사수였으며, 1950년 11월 평양~원산 도로 요충지인 평안남도 양덕군 일대에서 전투에 참여했다. 이 하사는 분대원들을 이끌고 적진에 접근하던 중 중화기로 무장한 북한군 200여명의 기습 공격을 받아 전투 도중 전사했다. 한 하사는 부상을 당한 속에서도 중대원들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끝까지 엄호하다가 쓰러졌다. 해병대는 경북 포항시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흉상을 건립해 이들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박건병·강경선·배천택 선생은 1920년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통합한 단체였던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 결성에 참여했다. 박 선생은 1892년 강원도 김화 출생으로 1920년 1월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강원도 의원으로 선출됐다. 임시의정원은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기구였다. 1891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강 선생은 1924년 6월 임시의정원 평안도 의원으로 선출됐다. 배 선생은 1892년 대구 출생으로 촉성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1993년 박건병 선생, 1995년 강경선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배천택 선생에게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보훈처 이달의 6·25 전쟁영웅과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보훈처 이달의 6·25 전쟁영웅과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해병대 이창환·한규택 하사를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박건병·강경선·배천택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각각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이 하사와 한 하사는 각각 해병대 제1연대 제11중대 제2분대장과 소대 기관총 사수였으며, 1950년 11월 평양~원산 도로 요충지인 평안남도 양덕군 일대에서 전투에 참여했다. 이 하사는 분대원들을 이끌고 적진에 접근하던 중 중화기로 무장한 북한군 200여명의 기습 공격을 받아 전투 도중 전사했다. 한 하사는 부상을 당한 속에서도 중대원들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끝까지 엄호하다가 쓰러졌다. 해병대는 경북 포항시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흉상을 건립해 이들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박건병·강경선·배천택 선생은 1920년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통합한 단체였던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 결성에 참여했다. 박 선생은 1892년 강원도 김화 출생으로 1920년 1월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강원도 의원으로 선출됐다. 임시의정원은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기구였다. 1891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강 선생은 1924년 6월 임시의정원 평안도 의원으로 선출됐다. 배 선생은 1892년 대구 출생으로 촉성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1993년 박건병 선생, 1995년 강경선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배천택 선생에게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서울신문’ 모체 대한매일신보 창간 배설 선생 기념우표 나온다

    ‘서울신문’ 모체 대한매일신보 창간 배설 선생 기념우표 나온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대한독립에 헌신한 ‘대한 외국인’을 주제로 기념우표가 발행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호머 베잘렐 헐버트(1863~1949·한국명 헐벗)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 선생의 모습이 담긴 기념우표 64만장을 발행했다고 12일 밝혔다. 헐버트는 1886년 조선에 들어와 근대식 공립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활동했으며 1891년 한국 최초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썼다. 또 한국 첫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을 돕고 영문판 편집 업무도 했다.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된 1905년 고종 황제의 밀사로 미국을 방문해 무효임을 호소하고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일본 침략주의를 규탄하고 한일 협약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이후 미국에서도 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38년 동안 투쟁한 헐버트는 1949년 “나는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는 유언을 남겨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 1950년 건국훈장 독립장(당시 태극장)에 추서돼 대한민국 독립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았고, 2014년에는 한글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영국인인 베델은 1904년 러일전쟁 직후 데일리 클로니클 특파원으로 한국에 들어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해 강력한 항일 논조로 일제 만행을 규탄했다. 대한매일신보는 현재 서울신문으로 이어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118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베델은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반대를 시작으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고종이 을사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친서를 게재하는 등 일제 침략의 문제점들을 폭로했다. 1909년 베델은 양기탁의 손을 잡고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치된 베델에게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됐다.이번에 발행된 기념우표 변지(우표가 인쇄되지 않은 가장자리)에는 헐버트의 업적인 사민필지와 아리랑 악보, 베델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와 유품인 태극기를 담았다. 이번에 나온 기념우표는 가까운 우체국이나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에서 구매할 수 있다.
  • 일본군 참여·국방헌금 의혹… 가짜 독립유공자 검증 4년째 ‘감감’

    일본군 참여·국방헌금 의혹… 가짜 독립유공자 검증 4년째 ‘감감’

    정부가 ‘적폐청산’을 내걸고 2018년 개시한 ‘가짜 독립유공자 검증 작업’이 4년이 다 돼 가는 이번 광복절에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 눈치보기’와 후손들의 반발 때문에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지체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국가보훈처와 한중 역사학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11월 “공적 전수조사를 통해 가짜 독립유공자를 모두 가려 내겠다”고 선언했다. 이듬해 보훈처는 “7월까지 1차 조사 결과를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약속한 시한보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당초 보훈처는 2020년 7월 21일 국무회의에서 봉오동 전투의 주역 최진동(1883~1945) 장군 등 16명에 대한 서훈 취소를 의결하려다가 회의 직전 안건을 보류했다. 그해 현충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최 장군이 이끈 독립군 연합부대가 봉오동에서 대승을 거뒀다”고 말한 것이 걸림돌이 됐다는 추측이 나왔다. 당시 백 의원 측은 “보훈처가 광복절에 맞춰 가짜 유공자들의 서훈을 취소하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독립 영웅으로 직접 언급한 인사가 친일파 명단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논란이 됐다”고 주장했다. 보훈처는 2021년 업무 보고에서도 “연말까지 최 장군 등 1500여명에 대한 검증을 마치겠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수집·분석해야 할 유공자 자료가 방대하고 친일 행적을 입증할 증거 확보에도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최진동은 함경북도 온성 출생으로 만주와 시베리아 일대에서 활동했다.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5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하지만 그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친일파로 전향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일본군 토벌대에 참여해 항일무장세력을 진압했고 일제에 거액의 국방헌금을 냈다는 혐의도 있다.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중국 조선족 학계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그가 봉오동 전투 최고의 영웅임은 분명하지만 친일파로 활동한 과오도 인정해야 한다”며 “2000년대 중반 한국 내 관련자와 유관 단체에 해당 사실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B씨는 “최 장군의 친일 행적 증언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있다”며 “그가 활동하던 당시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친일파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국내 학계에서는 보훈처가 중국 측 자료뿐 아니라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 기록, 일본 외무성·경시청 밀정 정보 등을 모두 확보한 만큼 이미 최 장군 등에 대한 검증을 끝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후손 및 독립유공자단체들의 반발을 우려해 발표를 끝없이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서훈이 취소되면 선조의 명예가 실추될 뿐 아니라 그간 받아 온 경제적 지원도 끊어져 저항이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가짜 유공자들이 누리던 영예와 혜택을 걷어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며 정부의 조속한 발표를 촉구했다.
  • 국가보훈처, 7월의 ‘독립운동가’로 김갑·한흥교·민제호 선생 선정

    국가보훈처, 7월의 ‘독립운동가’로 김갑·한흥교·민제호 선생 선정

    국가보훈처는 30일 일제강점기 항일독립단체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해 독립에 헌신한 김갑·한흥교·민제호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동제사는 1912년 신규식 선생이 중심이 돼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최초의 독립운동 단체로, 상하이 한인들의 단결과 젊은 독립운동가들의 교육을 위해 박달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1889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김갑 선생은 1909년 영남의 첫 비밀결사 조직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1917년 5월 상하이로 건너가 동제사에 합류했다. 한홍교 선생은 1885년 동래에서 출생해 1910년 오카야마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 중국 신해혁명 참여를 위해 상하이로 간 뒤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동제사 결성 때부터 활동했고 항저우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동제사 동지들의 의료 지원을 맡았다. 1890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민제호 선생은 1913년 상하이로 망명해 동제사에 가입했다. 1919년 4월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된 후 1929년까지 임시정부 대외 업무를 수행했다. 정부는 김갑 선생에게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 한홍교·민제호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보훈처는 또 6·25전쟁 중 최전방 기지에서 다수 전과를 올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를 ‘7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이 부대는 6·25전쟁 당시 부산 수영, 평양, 수원, 진해, 여의도, 횡성, 오산 비행장 등에 배치돼 작전했고, 연 병력 826명이 참전해 총 1만2405회 출격했다. 적군 전차 40여대, 야포 220여문, 대공포 147문, 보급품 보급소 500여 곳 등을 파괴·파손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36명이 전사하고 8명이 포로가 됐다. 남아공 제2전투비행대대는 6·25전쟁 참전에 따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무공훈장 11개, 미국 은성훈장 2개를 비롯한 각종 훈장 1109개, 유엔 훈장 797개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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