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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軍 학병서 광복군까지(항일독립군 장정따라 6천리:上)

    ◎臨泉 軍訓地서 ‘광복꿈’ 회상/銅山路 日 부대터에 中軍병영/연병장·단층막사 ‘옛 그대로’/끌려간 日 병영탈출 감행 뿌듯 한국 독립유공자협회 회원들이 조국 광복을 꿈꾸며 젊은 날 이역만리에서 피 흘렸던 중국땅을 찾았다.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韓光班) 출신 광복군 초급장교들로 흔히 광복군 마지막 세대로 분류된다. 일본군의 학병으로 끌려왔다가 탈출,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이 항일투쟁의 족적을 찾아 나선 것은 광복의 참뜻을 지금의 시대 정신으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중국 중부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에서 쓰촨(四川)성의 충칭(重慶)까지 장장 6,000리길. 일본군 탈출부터 광복군 훈련장,항일 지하공작 거점 등 열하루간 동행했던 이들의 답사 행로를 3회에 나눠 소개한다. ‘마지막 독립군’들의 첫 현장 답사는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시작됐다. 베이징(北京)서 814㎞. 기차로 8시간. 54년전에 거쳐온 길을 더듬기 위해 1시간 남짓한 비행기편도 마다했다. 1944년 2월초. 평양을 출발,기차에 강제로 실려 닿은 곳은 일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던 최전방 쉬저우. 7월까지 쉬저우와 슈저우(宿州),푸양(阜陽)일대 전선에 배치됐던 이들은 그해 3월부터 7월까지 하나둘 일본병영을 탈출했다. “일본군이 되어 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겨누느니 차라리 탈출하다 죽기로 했다”고 50여년전 결의를 회상했다. “상당수는 우선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가기로 했었습니다” 회고담은 이어졌다. 당시 쉬저우 주변에선 일본군이 밀집해 있었고 중국으로 끌려온 ‘조선학병’ 3,000여명의 대부분도 부근에 배치됐다. 때마침 텐진(天津)에서 시작된 진푸선(津浦線)철로가 쉬저우를 지나 상하이(上海),푸둥(浦東)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노 광복군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일본군은 철도와 주변을 점령,광대한 중국대륙을 ‘선’과 ‘점’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끌려갔던 학병들은 대부분 철도역 주변에 주둔해 있었단다. 밤을 틈타 3m가 넘는 철책을 넘었다. 짧게는 2∼3일에서 일주일이상을 풀잎이나 과일로 연명하며 낮에는 수수밭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들판을 달렸다. 대개는 중국 유격대와 조우했고 당당한 광복군이 되었다. 44년 6월 ‘宿縣부대’ 제4중대에서 탈출했던 金柔吉 부회장과 全履鎬 회원은 슈저우역에서 2㎞쯤 떨어진 곳을 찾아 헤맨끝에 당시의 탈출지점을 찾아냈다. 지금은 ‘宿縣 付小樓 村庄’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3층의 주택들이 병영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5월에 같은 부대 보병중대에서 津浦線을 넘어 탈출했던 石根永 회원도 슈저우에서 50㎞ 떨어진 구쩐(固鎭)역부근에서 병영터를 찾아냈다. 일본군은 철도가 파괴되거나 공격받으면 주변의 중국인을 몰살시켜 보복했다고 악몽같은 50년전을 떠올렸다. 중국 유격대원이 생포되기라도 하면 총검술 연습의 표적으로 삼아 살해하기도 했단다고 치를 떨었다. 대부분의 병영들은 푯말하나 남지않고 촌락 등으로 바뀌는 등 사라졌지만 尹慶彬 회장과 金永錄 회원이 탈출했던 쉬저우시 통산로(銅山路)의 부대터는 지금도 ‘중국 인민해방군’ 주둔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부대안을 돌아본 尹慶彬 회장 등은 연병장앞의 3층 본부 건물,검은 벽돌과 돌로 지어진 단층 막사가 옛 그대로라며 회상에 젖었다. 높은 천정의 막사안에는 시멘트바닥에 철로 만든 2층 침대 10여개와 간단한 사물함이 눈에 띄었다. 張俊河 선생 등과 함께 尹회장 일행 4명이 44년 7월7일. 일본군의 이른바 ‘중국침략 기념일’로 경계가 느슨해 틈을 타 ‘취침전 15분의 자유시간’을 이용했다. 일본군을 벗어난 이들은 이틀밤을 앞만 보고 달리다 먼저 탈출해 중국 유격대에 와 있던 金俊燁(전 고대 총장)씨와 해후했다. “중국의 여러 유격대에 흩어져 있던 탈출자들은 린촨(臨泉)로 모였지요. 린촨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광복의 꿈을 키워 대일항전의 장정(長征)을 시작했습니다” 노 독립군의 회고는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어느새 50년전의 린촨에 닿고 있었다. ◎독립유공자협회/항일전 참가 175명이 결성… 현 회원 220명 한국독립유공자협회는 광복회와 함께 항일투쟁의 일선에 섰던 독립운동가들의 양대 산맥. 81년 독립운동가 175명에 의해 발족됐다. 초대회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趙擎韓 선생. 한국전력 사장을 지낸 朴英俊 회장에 이어 尹慶彬 회장이 3대 협회를 이끌고 있다. 회원은 220명. 광복회가 독립지사의 유가족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비해 항일투쟁을 벌였던 본인만이 가입할 수 있다. 회원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다. 일제말기 학병 등으로 중국전선에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에 합류했던 독립운동의 마지막 세대가 협회의 주축. 金九 선생을 보좌,충칭(重慶) 임시정부서 일했던 마지막 생존자들이기도 하다. 대부분 70대후반에서 80대초반. 색이 바라가는 독립정신을 드높이기위한 연구,탐사 등 학술사업과 사회사업,독립운동 사적에 대한 복원운동을 벌여왔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이 되는 내년 충칭시 광복군 총사령부건물 표지석 건립작업 등 후세에게 민족애국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중이다. ◎광복군/임정 정규군… 美와 對日 공동작전 활약 광복군이 정규군으로 발족한 것은 40년 9월. 무력으로 조국을 되찾겠다며 중국으로 온 젊은이와 일본군에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이 주축이 됐다. 총사령관은 李靑天 장군이었고 참모장 李範奭 장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지하활동 등 갖가지 군사활동을 감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였다. 3개의 직할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李範奭 장군이 지휘하는 2지대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을 거점으로 일본군 전력을 교란시키는 활동에 주력했다. 최전방에서 일본군과 필사의 전투는 3지대의 몫. 안후이성 푸양에 본부를 두고 산둥성(山東省) 등 화북지역에서 지하공작 활동도 병행했다. 44년부터는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들이 합류하면서 미국 첩보기구인 전략사무국(O.S.S)과 함께 일본군에 결정타를 가하기 위해 한반도침투 등 특수공작을 준비하기도 했다.해방직전 광복군은 700여명. 광복이 될 무렵에 중국에 거주하는 교포들로 30만여 군병력을 조직하는 계획에 착수하기도 했다. ◎임천사관학교/日軍 탈출한 한국인 광복군 간부 양성소 안후이성(安徽省) 린촨(臨泉)에 있던 ‘광복군 사관학교’. 더 정확히 말하면 44년 7월 린촨 중국 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안에 설치됐던‘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일명 한광반(韓光班)’. 중국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군서 탈출한 한국인을 광복군 간부로 양성하던 곳이다. 44년 7월에 들어온 첫 입학생들은 48명. 33명은 대학졸업후 일본군으로 징병돼 중국전선까지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 15명은 조국광복을 꿈꾸며 중국으로 건너왔던 애국청년들. 5개월 과정을 마친뒤 白正甲 등 25명은 6,000리 길을 걸어서 쓰촨성(四川省)충칭(重慶)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본류에 합류한다. 나머지 8명은 최전방 안후성에 남아 정보수집 등 대일투쟁을 벌인다. 25명중 尹慶彬은 임시정부 경위대장으로,鮮于鎭은 金九 선생비서로 白凡 선생을 최후까지 보좌하게 된다. 또 張俊河,金俊燁,金柔吉 등 일부는 한·미군사협력으로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가 한반도진입을 위한 특수훈련을 받는다. 현재 한광반 첫 수료생 가운데 국내엔 11명이 생존해 있다.
  • 독립기념관 朴維徹 관장·梁俊子 교수 부부

    ◎“선조魂 담긴 ‘대한매일’ 부활 감회 새로워”/朴殷植·梁起鐸 선생 손자·손녀로 ‘인연’/“구국 항일정신 계승 국민 선도하는 신문 되길” “선조의 혼(魂)이 담긴 신문이 다시 부활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독립기념관 朴維徹 관장(60)과 부인 梁俊子 교수(55·안양대 피아노학과)는 ‘대한매일’의 재창간을 보는 느낌이 남다르다. 朴관장 부부에게는 ‘대한매일신보사’와 남다른 인연의 끈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朴관장은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하면서 항일 구국운동을 이끌었던 백암(白巖) 朴殷植 선생의 친손자이며 부인 梁교수는 1904년 영국인 배설(裵說)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우강(雩岡) 梁起鐸 선생의 친손녀다. 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朴관장 부부는 어린시절 전해들은 친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하나 둘 꺼냈다. 광복군 사령관을 지낸 朴始昌 선생의 큰아들인 朴관장은 “할아버지는 중국 등에서 항일운동을 하면서도 항상 손에 책을 놓지 않으셨으며 논설과 역사 저술을 통해 민족사상을 고취한 독립운동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梁교수는 “무장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셨던 할아버지는 고종의 영어통역관을 맡았던 증조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영어에 능통하셨고 최초의 한영 사전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처음 만나 결혼한 것은 지난 67년.같은 시기에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이었지만 서로 알지 못했다. 朴관장은 “서울고 동창인 처 외사촌 오빠의 소개로 만났는데 교제를 하면서도 梁起鐸 선생의 후손인 줄 몰랐다”면서 “부모님께 소개하는 자리에서 梁起鐸 선생의 종손녀라는 것을 알게 됐고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결혼을 승락하셨다”고 말했다. 朴관장은 “특히 아버님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 梁起鐸 선생을 자주 만났었고 존경하는 분이었다며 크게 기뻐하셨다”면서 “두분 할아버지께서 우리의 인연을 점지해 주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朴관장은 미국 MIT와 영국 헐(HULL)대학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으며 지난 74년 국방과학연구소에 영어 요원으로 특채된뒤 건설부에서 20여년 동안 공무원생활을 했다. 지난 95년 독립유공자들의 추천으로 4대 독립기념관장으로 취임했으며 올해 5대 관장으로 재취임했다. 梁교수는 영국의 리딩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뒤 89년부터 안양대학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슬하에는 2남1녀.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막내딸은 독립운동을 공부하고 싶다며 이화여대 역사학과에 지원,특차에 합격했다. 朴관장 부부는 “뿌리를 찾은 ‘대한매일’은 항일 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대한매일신보’의 정
  • 安元奎·安顯景·金鉉九·金東寓·姜相湖/독립투사 5위 유해 봉환

    ◎미·일서 활동… 대전국립묘지 안장 일제 때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미주지역 독립운동가 安元奎 安顯景 金鉉九 金東寓 선생과 일본지역 姜相湖 선생 등 순국선열 5명의 유해가 28일 국내로 봉환됐다. 유해는 이날 오후 4시30분 김포공항에 도착,서울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29일 오후 2시 대전국립묘지 현충관으로 옮겨져 金義在 국가보훈처장과 安椿生 광복회장,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애국지사 제2묘역에 안장된다. 이로써 해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179명 중 62명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왔고 49위의 묘소는 현지에서 단장됐으며 68위는 소재가 확인되지 않아 묘소확인작업이 진행중이다. 安元奎(1880∼1947),安顯景(1881∼1957),金顯九 선생(1889∼1967)은 각각 대한제국 말기 미국으로 건너가 군자금 조달 등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金東寓 선생(1896∼1988)은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1943년에는 미주지역 ‘맹호군’ 대원으로 활동했다. 姜相湖 선생(1919∼1945)은 1941년 요코하마 전문대 재학중 창씨개명 및 한글폐지 반대운동에 앞장서는 등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정부는 安元奎,安顯景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金顯九,姜相湖 선생은 건국훈장 애국장을,金東寓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 민주열사 추모주간 토론회 주제발표/韓忠穆 열사 범추위 집행위원장

    ◎독재가 씌운 범법자 굴레 벗겨야 민족민주열사 추모주간을 맞아 韓忠穆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은 14일 강연을 통해 열사·희생자의 호칭 구분과 명예회복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했다. 60년대 이래 지금까지 4·19,5·18 열사를 제외하고 331분이 민주화투쟁을 위해 몸을 바쳤다.이 분들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동료와 조직,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숭고한 죽음을 맞았다. 우리는 이 분들을 통칭하여 열사·희생자로 불러왔으나 이 호칭이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민족민주운동 내에서나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의 선조들을 살펴볼 때 열사와 의사를 구분하는 기준이 죽음의 형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열사라는 호칭을 통용하게 된 계기는 4·19였다.그로부터 10년후 청계천에서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1970년부터 지금까지 큰 흐름을 만들어 내면서 열사의 호칭이 사회 저변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이어 朴正熙,全斗煥,盧泰愚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과 金泳三 정권에 이르기까지 가장 치열한 항거인 분신·할복 등의 투쟁이 잇따르면서 열사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었다.이와 함께 호칭상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호칭 구분을 시도할 수 있다. ▲열사(烈士)=동료와 조직,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분신·투신·할복 등으로 자살하거나 투쟁 과정에 운명한 경우.또 민족민주운동 과정에서서 독재와 자본 등에 의해 살해된 것이 명백한 경우. ○죽음의 과정으로 호칭 구분 ▲지사(志士)=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지만 한 평생 운동에 매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분이 병이나 사고로 운명한 경우. ▲투사(鬪士)=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지만 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운명할 때까지 운동에 매진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경우. ▲의사(疑士)=운동 과정 중에 안기부,대공분실,기무사 등 독재정권의 공권력기관이나 자본에 의해 살해된 뒤 자살이나 사고사,병사로 은폐되어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경우. 민족민주 열사·희생자들의 명예회복 방향은 다음 네가지 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열사·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여 목숨을 바쳐가며 이루고자했던 염원들을 살아남은 우리들이 실현하는 일로서,명예회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둘째,지난 시기에 외세와 독재정권,악덕 자본가 등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이 씌워 놓은 범법자의 굴레를 벗겨 내고 국민들에게 숭앙받도록 해야 한다. ○국가차원 기념사업 펼때 셋째,독재 정권의 공안기관과 악덕 자본가들에 의해서 살해된 뒤 자살이나 사고사로 은폐된 의문의 죽음들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넷째,열사·희생자들의 숭고한 삶과 죽음을 길이 후손에게 전하는 국가 차원의 기념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현재의 보훈 법령인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과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서 볼 때도,독재정권에 항거하면서 온몸을 던져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해 몸을 바친 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과 이에 어울리는 예우는 마땅하다.
  • 정기국회 처리예정 법안 256건 내용

    정부는 10일 개회되는 정기국회에 256건의 법률 제·개정 및 폐지안을 제출한다고 7일 열린 고위 당정회의에서 밝혔다. 정부가 제출하는 법안은 구조조정,실업대책 등 경제위기 극복과 관련한 법안이 88건,각종 규제를 혁파하기 위한 법안이 56건,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법안이 66건,기타 46건 등이다.각 부처별로 정기국회에 제출하는 법안은 다음과 같다.(제정·폐지 등 특별한 표기가 없으면 개정안,괄호 안은 법안 주요 내용) ▷재정경제부◁ ▲부가가치세법(변호사 공인회계사 용역에 부가가치세 과세)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제정안 ▲국세기본법 ▲조세감면규제법 ▲소득세법 ▲법인세법(기업의 합병·분할 등 조직변경에 대한 과세체계 정비) ▲상속세 및 증여세법 ▲세무사법 ▲예산회계법 ▲조세체계 간소화에 따른 세법 등의 조정에 관한 임시특례조치법제정안 ▲관세법 ▲관세사법 ▲통계법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등의 효율적 처리 및 성업공사의 설립에 관한 법 ▲은행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종합금융회사법 ▲신용협동조합법 ▲상호신용금고법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법 ▲증권거래법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 ▲공인회계사법 ▲상품권법 ▲선물거래법 ▷통일부◁ ▲귀환자 지원법 ▷외교통상부◁ ▲여권법 ▲외무공무원법 ▷법무부◁ ▲상법 ▲부동산등기법 ▲변호사법(비리로 퇴직한 판·검사의 변호사개업 제한,사건브로커 처벌강화) ▲해외뇌물거래방지법제정안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 ▲공증인법 ▲형사소송비용법 ▲민법 ▲민사조정법 ▲인권법제정안(인권침해와 차별행위 규제) ▲주택임대차보호법 ▷국방부◁ ▲군사법원법(국외도피사범의 공소시효 정지,피고인의 항소심출석권 보장) ▲군사형법 ▲국군조직법(해병대사령관에게 해군참모총장의 권한 일부를 위임) ▲병역법(신체조건에 의한 병역면제범위 축소,선출직 및 고위공직자의 병역사항 공개 의무화,병역복무기간의 사회근무경력 인정 대상 및 범위 확대) ▲군인사법 ▲향토예비군설치법 ▲방위산업특별조치법 ▲군복 및 군용장구 단속법 ▲국방과학연구소법 ▲한국국방연구원법 ▲국군포로지원법 제정안 ▲군무원인사법 ▷행정자치부◁ ▲행정사법 ▲농어촌주택개량촉진법 ▲재난관리법 ▲중앙권한의 지방이양 촉진법제정안 ▲국가기록보존법제정안 ▲도로교통법 ▲지방재정법 ▲지방공기업법 ▲지방세법 ▲소방법 ▲책임경영 행정기관의 설치운영법제정안 ▲지방자치법 ▲공무원교육훈련법 ▲자연재해대책법 ▲상훈법 ▲정부조직법(기획예산위와 예산청 통합,대통령 직속의 중앙인사위 설치) ▲유선 및 도선 사업법 ▲지방공무원교육훈련법 ▲정부출연연구기관설립운영법제정안 ▲감사원법(감사원장 정년을 70세로 연장) ▷교육부◁ ▲학교보건법 ▲교원지위향상특례법 ▲교육기본법 등 시행에 따른 건설산업기본법 등의 정비에 관한 법제정안 ▲고등교육법 ▲평생학습법제정안 ▲교원단체설립운영법제정안 ▲서울대병원설치법 ▲국립대병원설치법 ▲교육공무원법 ▲국립대특별회계법제정안 ▲문닫은 학교 재산관리특례법제정안 ▲학원설립운영법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제정안 ▲학술진흥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한국사학진흥재단법 ▲사립학교법▲한국교육방송원법 ▷과학기술부◁ ▲원자력법 ▲한국원자력연구소법 ▲과학기술혁신특례법 ▲대덕연구단지관리법 ▲엔지니어링기술진흥법 ▲과학관육성법 ▷문화관광부◁ ▲관광진흥법 ▲청소년기본법 ▲체육시설설치 이용법 ▲경륜·경정법 ▲국민체육진흥법 ▲출판사 및 인쇄소 등록법 ▲향교재산법 ▲전통사찰보존법 ▲지방문화진흥원법 ▷농림부◁ ▲농수산물품질관리법제정안 ▲양곡증권법 ▲인삼산업법 ▲축산법 개정안 ▲농업농촌기본법제정안 ▲농업기반공사법제정안 ▲가축전염병예방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비료관리법 ▲사료관리법 ▲수의사법 ▲양곡관리법 ▲종자산업법 ▲초지법 ▲진돗개보호육성법 ▲잠업법폐지안 ▲산림법 ▲화전정리법폐지안 ▷산업자원부◁ ▲고압가스안전관리법 ▲도시가스사업법 ▲액화석유가스 안전 및 사업관리법 ▲한국석유개발공사법 ▲환경친화적 산업구조로의 전환촉진법 ▲전기사업법 ▲전기공사업법 ▲집단에너지사업법 ▲유통산업발전법 ▲지역기술혁신촉진법제정안 ▲전자상거래기본법제정안 ▲전기용품안전관리법 ▲공업배치 및 공장건설법 ▲공업발전법 ▲반도체집적회로 배치설계법 ▲부정경쟁방지법 ▲에너지자원사업특별회계법 ▲광업법 ▲광산보안법 ▲석탄산업법 ▲에너지이용합리화법 ▲군납법폐지안 ▲공업 및 에너지기술기반 조성법 ▲벤처기업육성특별조치법 ▲송유관사업법 ▷정보통신부◁ ▲정보화촉진기본법 ▲전산망보급확장과 이용촉진법 ▲소프트웨어 개발촉진법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우정사업운영특례법 ▲전자서명법제정안 ▲전파법 ▲별정우체국법 ▲체신창구업무위탁법 ▷보건복지부◁ ▲국민연금법 ▲장기이식법제정안 ▲혈액관리법 ▲의료분쟁조정법제정안 ▲검역법 ▲공중위생법 ▲농어촌보건의료특별조치법 ▲약사법 ▲아동복지법 ▲국민건강보험법제정안 ▲사회복지사업법 ▲외국민간원조단체법 ▲생활보호법 ▲대한적십자사조직법 ▲노인복지법 ▲영유아보육법 ▲입양촉진 및 절차특례법 ▲모자복지법 ▲윤락행위방지법 ▲의료보험법 ▲의료보호법 ▲의료법 ▲의료기사법 ▲시체해부 및 보존법 ▲마약법 ▲식품위생법 ▲국민건강증진법 ▲위생사법 ▲기생충질환예방법 ▲모자보건법 ▲지역보건법 ▲전염병예방법 ▲결핵예방법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매장묘지법 ▲보건의료산업진흥법제정안 ▷환경부◁ ▲대기환경보전법 ▲소음진동규제법 ▲하수도법 ▲오수분뇨 및 축산폐수처리법 ▲폐기물관리법 ▲환경개선비용부담법 ▲자원절약과 재활용촉진법 ▲환경영향평가법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 ▷노동부◁ ▲직업훈련촉진기본법폐지안 ▲산업안전보건법 ▲진폐예방과 진폐노동자보건법 ▲직업안정법 ▷건설교통부◁ ▲교통안전공단법 ▲건설기계관리법 ▲시설물안전관리특례법 ▲항공법 ▲하천법 ▲도로법 ▲건축법 ▲도시개발법제정안 ▲자동차관리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교통체계효율화법제정안 ▲국유철도운영특례법 ▲주택저당금융주식회사법제정안 ▲도시교통정비촉진법 ▲인천국제공사법제정안 ▷해양수산부◁ ▲선박안전법 ▲연안관리법제정안 ▲선박법 ▲항로표지법 ▲수로업무법 ▲해난심판법 ▲개항질서법 ▲수상레저안전법제정안 ▲공유수면관리법 ▲해양개발기본법 ▲해양오염방지법 ▲한국선주책임상호보험조합법제정안 ▲해상교통안전법 ▲어선법 ▲낚시어선업법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 ▲공유수면매립법 ▲선원법 ▲항만법 ▲항만운송사업법 ▲도선법 ▲신항만건설촉진법 ▲수산물검사법 ▲어항법 ▲수산업법 ▷법제처◁ ▲행정심판법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예우법 ▲국가유공자예우지원법 ▲보훈복지공단법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 ▲표시광고 공정화법제정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적용제외제도의 정리 등에 관한 법제정안
  • 親日의 군상:3/3·1문화상과 皇國예술인(정직한 역사 되찾기)

    ◎민족 짓밟고 해방후 민족상까지 받아 ‘3·1문화상’이라는 상이 있다.1960년에 제정돼 올해로 39회째 수상자를 냈다.3·1문화재단(이사장 文仁龜)에서 주관하는 이 상은 대한유화 창업자 李庭林(작고)씨가 제정한 것으로 시상분야는 학술·예술·기술 등 세 분야.재단측이 밝힌 이 상의 제정취지는 “조국광복을 지향하여 거족적으로 발양된 위대한 3·1정신을 영원히 기념하여……”다.상 이름에도 ‘3·1’이 들어가고 또 매년 3·1절 당일 시상식을 갖는 것으로 봐 이 상은 3·1정신을 길이 계승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분명하다.그런데 이 상의 역대 수상자·심사위원 중에는 일제 당시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거나 친일 작품을 남긴 예술가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예술분야 수상자중 13명,심사위원 중에는 20여명(일부 수상자와 중복됨)이 이에 해당된다.그들의 면면과 구체적인 일제시대 행적을 살펴보자. ◎상받은 예술인 13명의 친일행적은…/문인·화가 등 30여명 ‘위대한 3·1정신’ 왜곡/식민정책 전위대 역할… 청년 징병 내몰아 우선 예술분야 수상자가운데 문학가는 趙演鉉(13회)·安壽吉(14회)·白鐵(17회)·毛允淑(21회)·崔貞熙(24회)·李周洪(28회)등 6명,미술가는 李象範(4회)·金景承(5회)·金殷鎬(6회)·金仁承(9회)·朴泳善(10회)·金基昶(12회)등 6명,음악가는 金聖泰(22회) 1명이다. 문학 분야의 趙演鉉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동양에의 향수’(1942년 5월),‘아세아부흥론 서설’(42년 6월)등 친일성향의 평론을 썼다.이중 아세아부흥론 서설은 ‘동양지광’이 현상공모한 ‘지상(紙上)결전 학생웅변대회’에서 3등으로 입선한 작품으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고 이 땅의 청년학도들이 아시아부흥의 투사로 나설 것을 부추긴 내용이다.‘북간도’로 유명한 소설가 安壽吉은 친일 문학잡지 ‘국민문학’(42년 2월)에 발표한 ‘원각촌’ 이외에도 ‘벼’,‘북향보’등의 친일성향의 작품을 쓴 바 있다. 평론가 白鐵은 작품보다는 친일단체에서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는 친일 문인단체인 조선문인협회(회장 李光洙) 상무간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를 지냈으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학예부장 시절 친일 미술가 沈亨求(해방후 반민특위에 의해 구속됨)와 함께 조선미술가협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여류문인으로 이 상을 수상한 사람은 毛允淑,崔貞熙 두 사람이다.이들은 모두 조선문인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41년 2월27일 부민관(현재 서울시 의회 건물)에서 개최된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했다.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李周洪 역시 상당수의 친일 작품을 남겼다.그는 친일 잡지인 ‘동양지광’에 수필 ‘청년과 도의’(43년 7월)를 비롯해 단편소설·시 등도 남겼다.그는 유일하게 사후에 이 상을 수상했다. 미술계의 친일논쟁은 해방직후부터 시작됐다.문화예술인의 최초 조직이었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조선미술건설본부는 金殷鎬·金基昶·金景承·沈亨求·李象範·尹孝重 등을 친일 미술가로 규정,회원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이들의 대다수는 41년 2월21일 결성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황민문화’ 건설을 목적으로 조선문인협회·보도사진협회 등 11개예술단체와 더불어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단체로 활동하면서 전람회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기도 했다.43년 1월9일∼17일 정자옥(丁子屋·일제 당시 현 미도파백화점 자리에 있던 백화점)에서 ‘애국백인일수(愛國百人一首) 전람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은 것이 그 예다. 미술가로서 첫 수상자인 李象範(4회)은 沈亨求와 더불어 국민총력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지냈으며,金景承·金仁承 형제는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평의원을 지냈다. 특히 金仁承은 朴泳善과 함께 선일(鮮日)합작 미술단체인 단광회(丹光會)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단광회는 43년 3월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회원 21명이 4개월에 걸쳐 공동으로 ‘조선징병제 실시’(100호 규모)를 제작,제1회 단광회 유화전에 출품하였는데 나중에 이 그림은 조선군 애국부를 경유하여 군에 헌납되었다. 순종(純宗)의 초상화를 그린 金殷鎬 역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37년 중일전쟁 무렵에는 조선여성들이 당시 용산 사단사령부 모 일본군 장성에게 금비녀·금반지 등을 바치는내용의 ‘금채봉납도(金釵奉納圖)’를 그리기도 했다.金基昶은 최근까지도 친일논쟁이 있었던 인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등의 친일성향의 그림을 그린 바 있다. 음악가로는 金聖泰가 유일하다.그는 玄濟明 등과 함께 ‘가창지도대’,‘경성후생실내악단’등 친일 음악단체에서 활동하였다.이 단체들은 ‘음악보국음악회’,‘비행기헌납 음악대연주회’등을 개최,황민음악을 보급하였다. ◎‘역사의 심사’받아야 할 심사위원은… 3·1문화상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도 20여 명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들이 포함돼 있다.이들중 申奭鎬와 李丙燾는 총독부·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하면서 조선역사를 왜곡하고 식민사관을 뿌리내린 장본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의료계의 鄭求忠과 尹日善도 학병권유 논설을 쓰고 시국강연회에 참석했다. 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경제학자 高承濟는 ‘국민문학’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등에 수많은 친일 평론을 남겼다.언론인 高在旭은 경성배영(排英)동지회와 전조선배영동지회연맹에서 상무이사를 지냈으며 여류 교육가 高凰京은 金活蘭·毛允淑 등과 같이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문인중에서는 金八峰·朴鍾和·兪鎭午·郭鍾元 등도 다소 차이는 있으나 모두 친일 논설·작품을 남겼고 극작가 柳致眞·徐恒錫,음악가 金元福(피아니스트) 등도 모두 친일 예술활동을 한 적이 있다.柳致眞의 경우 친일 행적이 문제가 돼 고향 충무에 세워졌던 그의 흉상이 95년 주민들에 의해 철거됐다. ◎“아니! 이럴수가…” 독립유공자 심사까지/‘식민학자’ 등 10여명 18년간 활동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포상은 지난 62년 군사정부가 6·25 전상자를 위한 ‘군사원호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정부는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우고 독립유공자들의 공로를 후세에까지 전한다는 취지에서 매년 광복절 등 역사적 기념일에 이들에 대한 포상을 실시해 왔다. 현재까지 독립유공 공로로 포상을 받은 국가유공자는 모두 8,514명(외국인 40명 포함)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역대 독립유공 서훈자 가운데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사람이 포함돼 있다거나 ▲가짜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서훈자가 서로 뒤바뀐 경우 ▲형평에 어긋난 포상 등의 논란이 있어 왔다.또 이들중 일부 친일 경력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역대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중에도 친일 단체나 기관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일부 포함됐었다는 지적도 있다. 첫 포상이 실시된 62년도 이후 80년까지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는 10여명(일부 중복자 포함)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가 포함돼 있다. 1962년 문교부 산하 독립유공 공적조사위원회의 위원 7명(위원장 포함)가운데 申奭鎬·李丙燾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申奭鎬는 1930년∼37년의 총독부수사관보(修史官補)를 거쳐 37년부터 수사관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으며,李丙燾는 1925년∼27년에 총독부 수사관보,이후는 촉탁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다. 1963년에는 내각사무처 독립운동유공자 상훈심의회에서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2명 중에는 4명의 친일인사가 들어 있다.高在旭·申奭鎬·柳光烈·李甲成 등이 그들이다.高在旭은 1937년 7월 12일 결성된 경성배영동지회와 같은 해 8월5일 결성된 전조선배영동지회에서 상무이사를 지냈다.柳光烈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편집국장과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조선언론보국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친일논설 및 친일 시국해설 다수를 발표한 언론인이다.李甲成은 상해서 밀정노릇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1968년에는 총무처 독립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1명중 高在旭·白樂濬·申奭鎬·柳光烈·李丙燾·李瑄根·洪鍾仁·金聲均 등 8명의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들어 있다.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을,李瑄根은 만주국 협화회의 협의원을,洪鍾仁은 ‘매일신보’의 사회부장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를 지낸 사람이다.金聲均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언론·출판 검열담당)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다. 1977년 원호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 11명 가운데도 柳光烈·李殷相 등 2명이 포함돼 있는데 李殷相은 만주에서 발행되던 친일지 ‘만선일보’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에 포함된 친일 경력자 논란은 1980년까지 계속됐다.이 해 원호처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 11명 중에는 申奭鎬가 ‘끈질기게’ 포함돼 있다.그는 62년 첫 심사부터 63년,68년,80년도에 걸쳐 독립유공자 심사에 참여했었다. 친일파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故)林鍾國씨는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논하는 자리나 대일(對日)외교 무대 등에는 친일파들이 나서서는 안될 자리”라고 강조한 바 있다.
  • 재외국민 선거권 준다/재외동포 법적지위 특레법안 확정

    ◎내년 7월부터/공직취임·재산권 행사 허용 앞으로 외국 국적이 없는 교포가 일정기간 국내에 체류하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또 정부의 초청으로 과학기술직이나 경제관련 공직에 근무하는 교포는 병역의무가 면제된다. 법무부는 2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재외동포의 법적지위에 관한 특례법’을 확정,입법예고했다.특례법은 오는 9월 정기국회를 통과하면 예고기간을 거쳐 99년 7월1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이 발급한 ‘재외동포 등록증’을 가진 재외동포에 대해서는 사회·경제적 제재 조치를 완전히 풀어 내국인과 거의 똑같은 법적 지위와 혜택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피선거권과 외교·국방·정보·수사·재판 등의 공직 취임은 여전히 제한된다. 병역의무의 경우,예외적으로 정부의 초청에 의해 기업체와 공직에 근무하는 과학기술자 및 경제 관련자에 대해서는 병역법을 개정,병역특례를 준다. 사실상 재외동포에 대한 이중국적을 허용한 셈이다. 재외동포는 영주권자 및 영주목적으로 외국에 사는 한국 국민인 ‘재외국민’과 한민족의 혈통을 지닌 외국인 즉 ‘한국계 외국인’을 합친 개념이다. 재외동포는 모두 520만여명으로 이중 재외국민이 213만여명,한국계 외국인이 307만여명으로 추산된다. 특례법안에는 재외동포는 한번에 2년 동안 국내에 체류하면서 자유롭게 출입국을 보장받고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취업도 사행행위 등 풍속을 해치는 경우나 단순 기능직을 제외하고는 제한을 없앴다.외교·국방 등 일부 공직을 빼고는 모든 공직의 취임이 가능하다. 선거권은 선거인명부 작성기준일을 시점으로 30일 이상 국내 거주하면 선거인 명부에 올라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부동산 매각대금은 연간 100만달러내에서 해외 반출이 허용된다. 또 의료보험의 가입이 허용되는데다 국내 금융거래의 제한도 철폐된다.외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도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원연금 등의 연금은 물론 국가·독립유공자의 보상금도 받을 수 있다.
  • 오늘 정부수립 50돌 경축식

    ◎경복궁서 개최… 광복회원 등 6,000여명 참석 정부수립 50주년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중앙경축식이 15일 경복궁안 옛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다. 정부는 金大中 대통령이 참석하는 이날 행사에 제헌의원과 광복회원,주한외교사절,해외동포,시민 등 6,000여명을 초청해 정부수립 50주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했다. 경축행사는 성악가 김상곤씨가 ‘희망의 나라로’,국악인 안숙선씨가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가수 인순이씨가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고,지난달 17일부터 전국을 일주한 태극기가 입장하는 식전행사로 시작된다. 이어 金鍾泌 국무총리서리가 개식을 선언하고 金擎天 장군 등 4명의 독립유공자와 3명의 교육발전 유공자에 대한 포상,경축사가 끝나면 무용단이 등장해 ‘제2의 건국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경축공연을 펼친뒤 만세삼창으로 행사를 마무리한다. 한편 이날 비가 내리면 경축행사는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으로 옮겨 치러진다.
  • 3·1운동 기념탑 세운다/남산 기슭에 민족자주의 혼 ‘우뚝’

    ◎장충동 국립극장 입구… 내년 3·1절 준공/金 총리서리·유공자 등 참석 어제 기공식 ‘3·1독립운동 기념탑’이 남산 기슭에 세워진다. ‘3·1독립운동기념탑 건립위원회(위원장 李壽成)’는 14일 상오 9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국립극장 입구 공원에서 3·1독립운동기념탑 건립 기공식을 가졌다. 기념탑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이날 착공됐으며 3·1절 80주년을 맞는 내년 3월1일 준공식을 갖는다. 이날 행사에는 金鍾泌 국무총리 서리,金正吉 행정자치부장관,金義在 보훈처장,李萬燮 국민신당 총재,柳在乾 국민회의 부총재,金龍煥 자민련 부총재,吳榮祐 마사회장,車一錫 서울신문 사장 등 관계자와 독립유공자 및 애국지사,광복회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金총리서리는 축사에서 “3·1운동은 민족 독립을 위해 온 겨레가 하나가 됐던 위대한 민족 자주운동”이라면서 “당시 선열들이 대동단결해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것처럼 이곳이 지금의 국난을 이겨내고 통일 조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민족의 성지가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車一錫 상임부위원장은 식사에서 “3·1독립운동 정신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지만 부끄럽게도 이를 기리는 변변한 상징물 하나 없었다”면서 “3·1독립운동 80주기를 한 해 앞두고 운동의 진원지였던 서울 중심부에 기념탑을 건립,선열들의 고귀한 이상을 기릴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기념탑은 독립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을 의미하는 높이 1919㎝의 석조물로 홍익대 金永元 교수(조각과)가 작품 제작을 맡았다.
  • 故 金始顯 선생 외아들 峰年씨의 착잡한 ‘8·15’

    ◎3代 걸쳐 항일투쟁/훈장없는 독립투사/金九 암살배후 李承晩 지목… 저격 미수/‘나라 위한 외길’ 불구 유공자 지정 못받아 □金始顯 선생 공적 독립군 군자금 조성 5차례 16년간 투옥 상해서 의열단 조직 비밀군관학교 설립 “3대가 독립운동을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부친의 단호한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8·15 광복절 쉰세돌을 맞는 金峰年씨(76·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감회는 착잡하기만 하다. 독립운동가 집안인 金씨의 일가족 가운데 모친 權愛羅씨(작고)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자신과 부친 金始顯선생(1883∼1966)은 아직까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金씨 일가의 이력은 조부인 金澤東 선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한말 고향인 안동에서 의병을 모집,맹렬하게 활동했다. 金始顯 선생이 독립운동에 뛰어든 데는 이처럼 부친의 영향이 컸다. 1917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대를 졸업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체포되면서부터 가시밭길을 걸었다. 1920년에는 군자금을 조성하려다 붙잡히는 등 일제 치하에서 모두 5차례에 걸쳐 16년동안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어떠한 탄압도 선생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부인 權씨는 1921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의열단을 조직해 무장항쟁을 주도하다 만났다. 이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 세계 약소민족대표자대회’에 임시정부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하면서 독립운동의 평생 반려자로 같은 길을 걷게 됐다. 선생은 1923년에는 폭탄 밀반입사건(일명 黃鈺 사건),1925년에는 난징(南京)에서 비밀군관학교를 설립,독립군을 양성한 혐의 등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외아들 金씨는 1942년 상하이에서 독립군에 편성돼 무장항쟁에 참여했다. 金씨는 “만주에서 모친과 함께 비밀 감옥소에 수용됐을 때 ‘봉년아 잘 있느냐. 어미도 잘 있다’는 모친의 친필을 화장실 기둥에서 발견하고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새롭다”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부친 金始顯 선생은 그러나 2대 민의원(안동)을 지낼 때 金九 선생의 암살배후자로 李承晩 대통령을 지목,6·25 발발 얼마 후 李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1952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4·19혁명으로 석방되면서 복권돼 5대 민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金씨는 “저격 미수 전력 때문에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金九 선생의 암살로부터 나라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게 부친의 확고한 신념이었다”고 말했다.
  • 親日의 군상:1­1/시리즈를 시작하며(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파 청산 ‘참된 역사’의 출발/日帝 앞잡이 기득권층 형성… 反통일세력화/민족자존 위해 더 미룰수 없는 ‘금세기 숙제’ 20세기 우리 현대사에 등장한 용어중 ‘친일파’만큼 불명예스런 것도 없다.‘친일파’로 한번 낙인찍히면 씻을 수 없는 오욕으로 영원히 남아 왔다. ‘친일파=매국노=반민족행위자’라는 등식으로 인식되는 친일파문제는 지금에 와서도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 있다.이 문제는 그동안 쉽게 손대기가 어려웠고 학계에서조차 ‘쓰이지 않은 역사’로 방치돼 왔다. ○‘쓰이지 않은 역사’로 방치 친일파문제는 그 죄상(罪狀)에 대해 단죄는 물론 역사적 평가도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간헐적으로 친일논쟁이 터질 때마다 우리사회에서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다는 증거다.수 년전 매국노 李完用 후손의 ‘땅찾기 소동’은 친일파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이슈인가를 잘 보여주었다. 민감한 이슈를 이 시점에서 다시 거론하는 것은 왜인가?그 이유는 해방 반세기가 지나서도 마치 ‘역사의 미라’처럼 온존해 있는 친일파문제를 금세기내에 매듭짖고 정의가 살아있는 정직한 역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그동안 우리 사회는 해방후 친일잔재를 척결하지 못한 탓으로 민족정기가 땅에 떨어지고 가치관의 혼란도 극심했었다.일부 친일파들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훈장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독립유공자들의 공적을 심사하기도 했다. 친일 문인의 작품이 최근까지 교과서에 버젓이 실렸는가 하면 국립묘지에는 아직도 친일 경력자가 묻혀있다.친일파연구가 고(故) 林鍾國 선생은 친일파청산의 의의를 “철저하게 짓밟혀 버린 민족자존을 회복하고 자손만대에 민족정기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親日 논리·행적 기록 남겨야 일제 앞잡이 친일파들은 해방후 이승만 정권의 비호아래 신생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변신하였고 다시 군사 독재정권에 와서는 ‘영원한 기득권층’으로 자리잡았다.이들중 대다수는 극우·반공논리로 무장하여 반(反)통일세력을 형성해왔고 또 독재권력옹호자,매판자본가,어용지식인,심지어 한·일 외교무대에서 굴욕외교에 앞장서기도 했다.이런 상황에서는 통일과 민족정기를 논할 수 없다. 이제 친일파 청산문제는 더이상 다음 세기로 미룰 수 없다.이제라도 역사학계와 연구자들은 그들의 친일논리와 행적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그러나 이같은 작업은 개인에 대한 단죄차원보다는 과거사 청산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동국대 법학과 韓相範(64) 교수는 “우리사회의 부패·모순구조는 해방후 친일파 척결을 하지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금세기가 가기전에 우리사회가 친일파 청산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일파의 정의와 범주/매국노·식민정책 협력자 통칭/독립신문 7개 부류 첫 거론/제헌국회 反民法 구체 규정 보통명사‘친일파’의 사전적 의미는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개인이나 무리’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친일파’의 경우 그들이 활동한 시기와 일본과 친하게 지낸 정도 면에서 차이가 있다.후자의 경우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해방전까지 일본제국주의와 가깝게 지내면서 매국(賣國)에 가담했거나 또는 일제강점하에서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협력한 자’들을 통칭한 것이다.따라서 이 경우 ‘친일파’는 매국노,반민족행위자,민족반역자 등과 같은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20세기 전반 외세지배를 겪은 나라들은 대개 우리의 ‘친일파’와 유사한 의미의 용어를 가지고 있다.중국은 일제에 협력한 자들을 ‘한간(漢奸)’이라고 부른다.‘중국인으로서 적과 통모(通謀)하여 반역죄를 범한 매국노’라는 뜻이다.프랑스는 나치정권에 협력한 반역자를 ‘나치협력자’로 부르고 있다.이같은 용어들은 ‘민족반역자’라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데 전쟁범죄자인 ‘전범(戰犯)’과는 의미가 다르다. ‘친일파’는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을 가리키는가.친일파의 범주에 대한 첫 거론은 1920년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이 보도한 ‘칠가살(七可殺)’이다.이는 당시 독립진영에서 처단대상자로 지목했던 매국적(賣國賊)·친일관료·밀고자 등으로 7개 부류로 대단히 포괄적인 내용이었다.친일파의 범주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해방후의 일이다.미군정하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원은 1947년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법’을 만들면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이 법은 민족반역자와 부일협력자를 따로 구분하고 있으며 8·15 이후의 간상배까지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부일협력자의 경우 악질적인 친일파는 물론 일본인과 결혼한 자,일본말을 상용한 자,또 민족반역자의 경우 만주에서 활동한 경찰관까지 포함하고 있다. 한편 제헌국회가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은 친일파의 범주를 보다 구체적이고 한정적으로 규정하였다.이 법은 제1조∼5조에 걸쳐 친일파의‘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매국노·수작자·고급관료·악질분자 등을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愼鏞厦) 교수는 “반민법에서 규정한 친일파는 제한된 직위와 악질적인 반민족행위자만을 대상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제헌국회 제정 반민족행위처벌법 조 항 반민족행위자 분류 현 황 제1조 ①일본과 통모(通謀)하여 ①사형또는 무기징역 한일병합에 적극 협력한자 ②그 재산과 유산의 ②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전부 혹은 2분의1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하거나 이상 몰수 모의한 자 제2조 ①일본정부로부터 작위(爵位)를 ①무기징역 또는 5년 받은자 이상의 징역 ②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된 자 ②그 재산의 전부 혹은 2분의 1이상 몰수 제3조 ①독립유공자나 그 가족을 ①사형,무기징역 또는 악의적으로 살해,박해한 자 5년 이상의 징역 ②또는 이를 지휘한 자 제4조 ①습작(襲爵)한자 ①10년 이상의 징역 ②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를 ②또는 15년 이하의 지낸 자 공민권 정지 ③칙임관 이상의 관리를 지낸 자 ③그 재산의 전부 ④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혹은 일부 몰수 ⑤독립운동을 방행할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간부로 활동한 자 ⑥군,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를 한 자 ⑦비행기,병기,탄약 등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자 ⑧도(道),부(府)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을 지낸 자 ⑨관공리로서 직위를 이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분자 ⑩각종 친일단체의 수뇌간부를 지낸 자 ⑪친일 언론·저작활동을 한 문화계 인사 ⑫개인으로서 일제에 적극 협력한 자 제5조 ①고등관 3등급 이상,혹은 ①반민법 공소시효 훈5등급 이상을 받은 관리 결과전까지 공무원 ②헌병,헌병보,고등경찰을 지낸 자임용금지(단,기술관 은 제외) ◎‘친일의 군상’ 자문위원 12명 위촉/객관·공정성 검증… 반론권 보장합니다 서울신문사는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친일파 청산을 위해 기획한 ‘친일의 군상’시리즈를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기 위해 12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했습니다. 자문위원은 역사학자·변호사·종교가·언론인 등 관계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로 구성됐습니다.모든 글은 자문위원들의 검증과 명예훼손 등 법적 검토를 거쳐 게재됩니다.자문위원은 인물 선정에도 참여하며 정기적으로 만나 시리즈의 내용을 종합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할 것입니다. 서울신문사는 특히 보도된 내용에 대한 반론권을 보장합니다. 자문위원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金祐銓 전 광복회 부회장 ▲姜萬吉 고려대 교수(한국사) ▲韓相範 동국대 교수(법학) ▲李炫熙 성신여대 교수(한국사)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 ▲李泰鎭 서울대 교수(한국사) ▲姜昌一 배재대 교수(한일관계사)▲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 ▲朴은慶 광운대 강사(정치학) ▲林大植 외국어대 강사(한국사) ▲金三雄 서울신문 주필(친일문제연구가) ▲崔光一 서울신문 제작이사
  • 여름 山寺에 문화향기 ‘솔솔’/아산 인취사 白蓮詩社

    ◎백담사 만해시인학교/영천 은해사 22일 음악회 한여름 산사(山寺)가 지역주민과 불자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7월4일부터 1일까지 한달동안 부산 동명선원,계룡산 동학사,팔공산 동화사,양양 낙산사 등을 돌며 ‘일본군 위안부 기념관 건립을 위한 김영동의 산중음악회’가 펼쳐진데 이어 아산 인취사와 설악산 백담사,영천 은해사,성남 정토사 등도 이달에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인취사(주지 혜민)는 9일 하얀 연꽃이 만발한 연못가에서 광복군과 독립유공자,위안부할머니 등을 초청한 가운데 백련시사(白蓮詩社)를 연다. 시낭송회,서예 및 그림전시,국악연주회,헌공다례,풍물놀이 등의 순으로 진행되며 주지스님이 직접 만든 연꽃차를 달여 마시는 연꽃차회도 마련된다.(0418)42­6441. 만해 한용운 스님이 ‘님의 침묵’을 집필한 내설악 백담사(주지 마근)에서는 만해시인학교(7∼10일,교장 고은)가 열린다. 시창작강의,시인 및 평론가와의 대화,시백일장,시낭송회,참선실수,국악공연 등 행사가 펼쳐지고 고은시인의 특강도있다.(0365)462­3244. 또 은해사(주지 법타)에서는 일연선사 열반 709주기를 맞아 22일 하오 5시 대웅전앞에서 음악회를 개최한다. 경북도립교향악단의 협연으로 소프라노 윤현숙씨가 ‘그리운 금강산’과 찬불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를 들려주며 클래식 팝송 가요 등도 공연될 예정.(0563)35­3318. 정토사(주지 보광)에서는 29일 개산 16주년기념 연꽃축제를 연다. ‘온누리에 연꽃향기 가득히’란 주제로 국악과 불교무용이 선보인다.(0342)723­9797.
  • 이사해도 보험료 변함없어/지역의보 가입자 10월부터(입법예고)

    보건복지부는 통합의료보험이 실시되는 오는 10월부터 지역보험 가입자는 거주지를 옮겨도 같은 보험료를 내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의료보험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현재는 지역조합별로 소득과 재산이 같아도 다른 의료보험료를 냈다. 또 지역가입자가 같은 진료기관에 낸 본인부담금이 두달 동안 100만원이 넘으면 초과액의 절반을 돌려받고,도서 벽지 농어촌 접적지역의 교통 의료가 불편한 곳은 복지부장관의 고시에 따라 보험료를 감면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외국인 유학생과 선교사도 1년 이상 체류하면 지역의보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및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국적을 상실한 독립유공자 및 국가유공자 등과 그 유족에게도 기본 연금 월액의 1년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시불로 지급한다. 국가보훈처 행정복무당담관실 (02)780­9485. ▲시 군 및 자치구의 교육경비 보조에 관한 규정(개정)=각급학교에 경비를 지원할 수 있는 사업 가운데 급식시설 설비사업에 대하여만은 초등학교 및 중학교로 제한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교육부 학교보건환경과 (02)720­4312. ▲식물방역법 시행규칙(개정)=유해성이 큰 병해충의 분포지역이 새로 발견됨에 따라 이들 지역을 수입금지지역에 추가하는 반면 병해충 미분포 지역으로 확인된 곳은 해제한다. 농림부 환경농업과 (02)500­2648. ▲임대주택법 시행령(개정)=임대주택 임차권의 양도나 전대사유에 결혼 취학 등을 포함하여 임차인의 편의를 도모한다. 건설교통부 주택정책과 (02)504­9133.
  • 白凡 기념사업협회 신임회장 李壽成씨

    ◎白凡 민족사랑 널리 알리겠다”/南北 화해는 白凡 평화통일론의 구현/국민 모금운동 벌여 기념관 건립 계획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새 회장으로 선출된 李壽成 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2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의 방북과 금강산개발 협정체결 등 남북화해 움직임은 金九 선생의 자주적 평화통일론이 반세기만에 다시 구현되는 것으로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주요 과제는. ▲金九 선생의 사상과 생활철학을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그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시대에 뒤떨어진 말처럼 들리는 잘못된 오늘의 현실에서 백범의 헌신적 민족사랑 정신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세속적인 자신의 이익보다 언제나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 백범의 생활철학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교훈이다. ­백범기념협회 운영 방안은. ▲백범 관련 사업과 협회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회원수를 늘리고 정부와도 긴밀한 협조를 하겠다. 백범기념협회 회원은 독립유공자 자녀,백범 흠모자 등을 포함,현재 14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백범기념관 건립문제는. ▲기념관은 전국민의 모금운동을 통한 국민의 이름으로 지어져야 한다. 장소는 경교장(京橋莊) 등 金九 선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장소는 관계자 및 정부와도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념관은 백범사상과 민족사랑 정신을 배우는 훌륭한 교육장소가 될 것이다. ­金九 선생 등 독립투사들이 안장돼 있는 효창원의 성역화 작업은. ▲金九 선생 묘역등은 국립묘지 수준으로 성역화돼야 한다. 효창원을 독립운동이나 민족의 성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범 재평가에 대해서는. ▲백범은 현대사에 가장 위대한 영웅이다. 세계의 영웅중 일부는 과대 평가된 인물도 있으나 金九 선생은 진정한 민족의 영웅이다. 과거의 정권은 백범을 국민으로부터 유리시키려고 시도했다. 국민은 백범을 존경했으나 집권세력은 그를 의도적으로 평가절하 했다. 그러나 새정부는 백범을 다시 국민의 편으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 ­회장을맡게 된 동기는. ▲처음에는 여러번 고사했다. 부회장은 몰라도 감히 회장은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6월18일 회장에 선출됐다. 金九 선생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아버님과 함께 경교장을 방문,金九 선생을 처음 만났다. 金九 선생은 ‘李壽成 學仁’이라고 쓴 백범일지를 주셨다. 그후 백범일지를 100번이상 읽었다.
  • 과거 청산과 미래 개척(대한민국 50년:21·끝)

    ◎이데올로기·개발독재 넘어 통일로/反民특위 “실종”… 건국 최초 과거청산 실패/‘제주 4·3’ ‘거창사건’ 아직도 어둠 속에/지역할거 정경유착 파당정치 악습 깨고 군사정권 시대 숱한 의문사도 밝혀내야 1948년 8월15일 신생정부 출범 당시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약소국이었다.한반도 면적 22만1,487㎢ 가운데 3·8선 이남인 9만9,221㎢만 확보했고 인구도 2,002만명(48년 미군정청 추정치)에 불과했다.또 국민 가운데 80%가량이 농업 등 1차산업에 종사했고,그해 수출액이 2,230만달러에 그칠만큼 경제력도 볼품없었다. 정부수립 50돌을 눈앞에 둔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어떠한가.97년 말 현재 인구는 4,666만명,수출액은 1,361억6,430만달러,1인당 GNP는 9,511달러에 이른다. ○‘삶의 질’ 향상되지 않아 지난 50년동안 인구는 2.3배,수출규모는 6,106배로 급증했다.1인당 GNP는,가장 이른 통계치인 53년의 67달러에 비교해도 142배나 늘었다.가히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비약적인 성장’이라는 찬사가 부끄럽지 않은 양적 팽창이었다.그러면 이같은 성장이 우리 사회의 내적(內的) 발전이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그대로 동반한 것일까.여기서 한국에 대한 외국의 시각을 잠깐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이 펴낸 책자 ‘South Korea’(92년 간)는 한국의 기본사항을 소개한 데 이어 ‘재벌 중심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독재정권 시대에 고착된 퇴행적인 정치질서에,통제받는 사회구조를 가진 나라’라고 덧붙였다.또 65만의 군대와 한해 100억달러(89년 기준)에 이르는 군사비도 주요항목으로 들었다.다른 나라의 일반적인 한국관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 의회도서관 책자의 표현이 비록 유쾌하지는 않지만,우리 현실을 상당히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대한민국 성장의 뒤안길에는 필히 청산해야 할 역사적 잔재가 누적돼 있기 때문이다.이는 정치·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구조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특정사건의 진상을 은폐·왜곡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치 분야에서의 청산대상은 분단체제에서 파생한 반공이데올로기의 악용과 개발독재 논리이다.해방이후 정치의 흐름을 살펴보자.3년동안의 극심한 좌우대립 끝에 남과 북에는 상호 배타적인 정부가 들어선다.2년이 채 못돼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져 분단체제는 더욱 굳어진다.이후 한국에서는 李承晩 정부가 장기집권하고 그에 따른 부정부패가 만연한다. 4·19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가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곧바로 5·16쿠데타로 무너진다.朴正熙 정권은 개발논리를 앞세워 독재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른다.군사정권은 全斗煥­盧泰愚 시대까지 이어졌지만 80년의 5·18광주민중항쟁,87년의 6월항쟁 등 국민의 극심한 저항에 부딪쳤고 그 결과 93년에 문민정부가,그리고 50주년이 되는 올해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다. 대한민국 50년 정치사를 일별하면,그것은 정치적 억압과 이에 맞서 민주사회를 추구한 국민의 대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그 과정에서 억압적 정권이 양손에 든 무기가 반공이데올로기와 경제개발 논리였다. ○가치관 대혼란 초래 남북이 체제의 존립을 걸고 대립하는데다 6·25라는 비극을 겪은 마당에 반공이데올로기는 필연적인 역사의 부산물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문제는 권력이 이를 정치적 대항세력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악용한 점에 있다. 멀게는 한국전쟁 전의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에서 가깝게는 지난 대선의 ‘吳益濟 월북 및 편지사건’‘흑금성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집권세력은 늘 ‘용공조작’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려고 시도했고 대부분 목적을 달성했다. 朴正熙 정권이 들어서서는 경제성장을 내세운 개발독재 논리가 못잖게 위력을 발휘했다.국민 대다수가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잘 먹고 잘 살려면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추상적 가치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쉽게 먹혀들어갔다.시민의식이 어느정도 성숙하기 전까지 ‘중단없는 전진’과 ‘잘 살아 보세’는 국민적 합의처럼 보였다. 이같은 정치적 적폐(積弊)는 지금도 파당정치·지역할거주의·정경유착 등 여러 유형의 악습으로 고착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의식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전통을 잇는 문화와 사상은 ‘전근대적’이거나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외면받는 대신 출세지상주의·이기주의가 넘쳐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재벌의 소유 집중,극심한 빈부격차 등 경제 분야의 해묵은 과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정치사의 굴절이 가져온 또다른 폐해는 역사적 진실의 은폐·왜곡이라 할 수 있다.대한민국 최초의 ‘과거청산 실패’사례로는 48∼49년에 걸친 ‘반민특위 사건’이 꼽힌다.일제강점기에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고자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한 제헌국회는 곧이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한다.위원회는 반민족행위자 305명을 검거하지만 참다운 활동을 벌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만다.친일파에 권력기반을 둔 李承晩 행정부의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나쁜 선례는 길이 남게 마련인가.해방정국에서 수차례 벌어진 정치지도자 암살사건,6·25를 전후해 빚어진 ‘제주 4·3’이나 거창사건을 비롯한 양민학살,군사정권에서 발생한 민주인사·학생들의 숱한 의문사와 실종들이 아직껏 그 실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어둠에 묻혀 있다. 사건 발생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예컨대 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군에서 일어난 국군의 양민학살 건이다.미국 국립공문서 보존관리청(NARA)에서 최근 발굴한 주한미군 군사고문단 보고서에 나타난 실상은 이렇다. 육군 25연대 7중대 병력이 석달이라는 산간벽지 마을에 들어가 주민들을 모은 다음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무차별 살해한다.보고서는 “(주민들이) 도발하지도 않았는데 카빈 소총·수류탄·바주카포 등으로 공격해 성인 86명,학생 9명,어린이 3명이 숨졌다.또 집 27채 가운데 23채를 불태웠다”고 밝혔다.이 사건이 세상에는 빨치산의 만행으로 알려졌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민족의 성지’국립묘지에도 존재한다.문민정부 출범 초기인 93년 7월 국가보훈처가 金性洙·李甲成·尹致暎·李殷相·徐椿·李鍾郁·尹益善·全協 등 8명에 대한 친일행각을 조사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이들은 모두 독립유공자로서 각종 훈·포장을 받았고 사회의 지도층인사로 행세했다.이 조사 역시 결말없이 끝났고 뒤이은 문민정부의 ‘역사바로 세우기’도 정치적인 의도라는 오해만 샀을 뿐 결실을 맺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특별한 책무 한민족이 빛나는 21세기를 향해 전진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이뤄져야 한다.하나는 물론 통일이요,또 하나는 역사에 덕지덕지 낀 찌꺼기를 걷어내는 일이다.통일은 북한이라는 상대와 더불어 장기간에 해결해야 할 민족의 숙원이지만 잔재 청산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국민의 정부는 우리 현대사를 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특별한 책무를 안고 있다.
  • ‘민주화 재조명’ 학술회의 姜萬吉 교수 기조연설

    ◎“抗日 열사­민주희생자 역사성 동일”/개인 투쟁이 釜馬­光州­6월 항쟁 잇는 고리역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의장 李昌馥)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회장 裵恩深)는 22일 서울 종로성당에서 ‘민족민주열사·희생자정신계승과 명예회복을 위한 학술회의’를 가졌다.‘한국현대사에서의 열사·희생자들의 지위와 역할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명예회복의 원칙과 방향’을 주제로한 고려대 姜萬吉 교수(한국사)의 기조연설을 요약 소개한다. 朴正熙 정권에서 全斗煥·盧泰愚 정권까지로 이어지는 30여년간의 군사독재시대에는 釜·馬 항쟁과 광주민중항쟁,그리고 87년 6월항쟁과 같은 대규모 민중항쟁이 일어났다.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의 가혹한 탄압 아래 이들 대규모 민중저항이 계속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이들 대규모 민중저항이 일어나기까지에는 수많은 개인차원의 의열투쟁이 계속되었고,이같은 개인차원의 투쟁이 계속 공백을 메워줄 수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민중항쟁이 가능했다. 이 개인차원의 의열투쟁은 첫째,윤봉길·이봉창·나석주 등 일제 강점시대 개인차원 항일열사들과 그 역사적 역할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둘째,李承晩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4·19 희생자나 군사독재정권의 재등장에 대항했던 5·18 희생자와도 그 역사적 역할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다만 그들이 희생된 경위가 다를 뿐이다. 4·19 희생자나 5·18 희생자들은 시위와 ‘전투’의 현장에서 희생되었다.개인차원의 민주열사들은 시위현장에서 희생된 경우도 있지만 혹은 고문실에서 희생되거나 희생된 장소가 분명치않은 의문사의 경우도 있다.사인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는 더 조사해야겠지만 분명한 경우는 그 역사성이 4·19 희생자나 5·18 희생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일제 강점시대의 독립유공자와 마찬가지로 해방후 민주열사의 경우도 집단적 희생과 개인차원의 희생 사이에 차별을 둘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역사적·민주주의적 정통성이 강한 정권일수록 양심수 및 민주열사에 대한 정책이 강화되기 마련이라 생각해보면,양심수정책이 거의 답보상태였고 개인 차원 의열투쟁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가 없는 점은 金泳三 문민정권의 민주정권으로서의 한계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5·16 세력 일부와의 연합정권임에도 불구하고 金大中 정권이 짊어진 역사적 과제의 중요한 부분은 역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민주주의의 획기적 발전과 평화적 통일에의 적극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획기적 발전문제 속에는 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金泳三 정권이 군사정권 집권자들을 사법처리하고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정당성을 회복한 후에 성립된 金大中 정권으로서는 이제 개인 차원에서 활동한 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사업,그리고 양심수 석방의 과감한 확대를 통해서 金泳三 정권과의 또하나의 중요한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침통한 분위기… 질문없이 회의 진행/국무회의 28일

    ◎주 전 장관 관련 언급 자제… 각의엔 차관이 참석/김 대통령 국민연금 관리공단 경영혁신 등 당부 28일 상오 9시부터 과천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같은 국무위원인 朱良子 보건복지부장관이 金鍾泌 국무총리서리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공기가 더욱 가라앉았다는 게 배석인사들의 전언이다.이날 국무회의도 지난번 회의때와 마찬가지로 1시간 가량 金총리서리가 주재하다 李舜臣 장군 탄신기념일 행사로 일찍 자리를 뜨는 바람에 30분 동안 金大中 대통령이 주재했다. ○…무거운 분위기 탓인지 활발한 논의보다는 해당장관들이 법안 제안설명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맨먼저 사의를 표명한 朱장관을 대신해 참석한 崔善政 차관이 국민연금법 및 의료보험법개정안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했다.그러나 별다른 질문이나 이견은 없었다. 다른 국무위원들도 이 때문인지 법안개정 이유와 취지 등을 설명했으며,모두 원안대로 의결했다.金총리서리는 물론 다른 국무위원들도 朱장관에 대해일체의 보고나 질문은 없었다. ○…법안 심의가 끝나자 金대통령은 전국무위원들에게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심기일전과 노사정 2기 출범 및 공정한 지방선거 실시 등 4가지 현안에 솔선해 줄 것을 당부했다.金대통령은 먼저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경영혁신에 만전을 기해달라”면서 “지금까지 가입자들이 너무 큰 불이익을 보고있는만큼 올바른 경영으로 국민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또 “노사정 2기를 바로 출범시켜야 한다”면서 “기업과 근로자 모두 노사정 합의사항에 불만이므로 노사정 1기에서 합의된 40여건 중 실천사항을 정리,제시토록 할 것”을 李起浩 노동부장관에게 지시했다 ▷의결안건◁ △의료보험법 개정안 △국민연금법 개정안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벌률시행령 개정안 △교통세법시행령 개정안 △여권법시행령 개정안 △교육부직제 개정안 △국가기술자격법시행령 개정안 △국가유공자 등 예우 지원에 관한 법률시행령 개정안 △독립유공자예우법률 시행령 개정안 △해외전시를 위한 문화재 국외반출 △98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 △순직소방공무원 국립묘지 안장안 △영예수여 △개발제한구역내 행위허가승인 △98년 정부입법계획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개정안 공포안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시행령 개정안 △정부인사발령안 △통상업무 추진체계조정방안 △17회 스승의 날 기념행사계획
  • 정부 올 입법계획 190건 확정

    ◎소득세법­자유직업 원천세율 3%로/증권거래법­적대적 인수·합병을 허용/고용보험법­실직근로자 생계지원 확충/관광진흥법­관광지 개발 절차 간소화/고등교육법­가상대학 설립기준 마련/장식이식법­매매목적 적출·이식 금지 정부는 28일 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과천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올해 정부 부처들이 추진하려는 법률안 190건의 제정 및 개정 계획을 심의,통과시켰다. 입법추진 법률안 가운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법안들이 4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규제완화 및 기업의 자율성 보장을 위한 법안은 35건 등이다. 金弘大 법제처장은 회의에서 “경제난 극복을 위한 개혁입법을 우선적으로 신속히 처리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올해 제정 또는 개정될 법률안 및 내용요지는 다음과 같다.(개=개정 제=제정 폐=폐지) ▷경쟁력 지원·육성◁ ▲금융산업이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개)=부실금융기관은 근로자에 대해 제한적인 범위내에서 고용조정 ▲조세감면규제법(개)=수출손실준비금 등 각종투자세액 공제의 공제율을 균등화 ▲소득세법(개)=자유직업소득자에 대한 원천세율을 실제 세부담 수준에 맞게 1%에서 3%로 인상 ▲부가가치세법(개)=변호사 등이 제공하는 인적용역을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으로 함 ▲국세기본법(개)=출자자의 제2차 납세의무 범위조정 ▲국세징수법(개)=납세증명서 제출제도 적용범위 조정 ▲조세감면규제법(개)=조세감면 시한부제 확대도입 ▲법인세법(개)=합병·분할 등 조직변경에 대한 과세체계 변경 ▲부가가치세법(개)=부가가치세 수정신고시 신고·납부가산제 경감 ▲외국환관리법(개)=외환거래 자유화 ▲외국인투자 및 외자도입에 관한 법률(개)=외국인의 기존주식 취득절차 간소화 ▲증권거래법(개)=적대적 인수·합병(M&A) 허용 ▲은행법(개)=외국인의 금융기관 임원선임 허용 ▲한국수출입은행법(개)=수출입금융 활성화 ▲외국인투자촉진법(제)=외국인투자 전면 자유화 ▲회사정리법(개)=회사정리 담당기관인 법원의 전문성 보완 ▲파산법(개)=파산사건의 관할을 회사정리 사건의 경우와 동일하게 함 ▲화의법(개)=합리적이고 신속한 구조조정유도 ▲상법(개)=주식분할제도 도입 ▲방위산업에 관한 특별조치법(개)=방산업체의 긴급수출 물량부족시 군보유분 물량지원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개)=대통령이 주재하는 과학기술위원회 설치 ▲농업·농촌기본법(제)=농업의 경쟁력강화,농촌의 생활환경 개선 ▲농수산물가공산업육성 및 품질관리에 관한 법률(개)=산지가공산업 육성 ▲한국전력공사법(개)=사채발행한도액증액 ▲지방기술혁신촉진법(제)=지방특성에 맞는 산업기술의 발굴 ▲중소기업창업지원법(개)=제조업위주로 돼 있는 적용범위 확대 ▲중소기업기본법(개)=중소기업의 범위 축소 및 특례업종제도 변경 ▲지역신용보증조합법(제)=지역신용보증조합 설립 근거마련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개)=지역별 경제여건에 따른 정부지원근거 마련 ▲전기통신사업법(개)=전기통신사업의 양도·양수 관련제도 개선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개)=소프트웨어 창업지원단체에 대한 국유재산 무상사용 허가 ▲환경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개)=환경신기술 평가사업의 평가근거 마련 ▲근로기준법(개)=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시행유예기간 조정 ▲고용보험법(개)=실직근로자의 생계안정 지원확충 ▲고용정책기본법(개)=실업자의 취업촉진을 위한 실업대책사업 실시 ▲중소기업근로자 복지진흥법(개)=근로복지진흥기금을 재원으로 실업대책사업 실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개)=단체협약 해지통고기간을 3월에서 6월로 연장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근로자파견제를 도입 ▲임금채권보장법(제)=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일정범위의 체불임금 지원 ▲토지수용법(개)=토지수용제도 개선 ▲연안역관리법(제)=연안역관리계획을 통한 장기정책방향 제시 ▲항만법(개)=항만공사의 민자유치 활성화 ▲해양개발기본법(개)=개발 시기·절차조정 ▲항로표지법(개)=우수 제작업체 지정근거 마련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개)=경영난을겪고 있는 업종의 국가유공자 의무고용 감면 ▲독점규제·공정거래에 관한법률(개)=공정거래법 적용범위 확대 ▷규제완화 및 삶의 질 향상◁ ▲소득세법(개)=납세절차 간소화 ▲부당이득세법(폐)=부당이득세 폐지 ▲공증인법(개)=공증보조자 인가를 신고로 변경 ▲대덕연구단지 관리법(개)=복지시설의 입주를 신고사항으로 변경 ▲문화예술 진흥법(개)=건축물의 미술장식 사용분담액 비율인하 ▲공연법(개)=공연자등록제 폐지 ▲관광진흥법(개)=관광휴양지 개발의 절차간소화 ▲체육시설 설치·이용법(개)=직장체육시설설치의무를 권장사항으로 변경 ▲경륜·경정법(개)=승인사항 축소 ▲인삼사업법(개)=사전신고제 폐지 ▲축산법(개)=등록·허가제 폐지 ▲석유사업법(개)=승인제를 신고제로 전환 ▲한국석유개발공사법(개)=석유비축사업 실시계획 승인 일원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개)=등록제 전환 ▲전기사업법(개)=자가용발전사업자 잉여인력 판매허용 ▲전기공사업법(개)=등록제전환 ▲유통산업발전법(개)=대규모점포 등록시 등록의제 처리대상 확대 ▲한국종합화학공업주식회사법(폐)=민영화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개)=인·허가사항 확대 ▲체신예금·보험법(개)=이자율 결정 자율화 ▲우정사업운영 특례법(개)=요금결정 자율성강화 ▲하수도법(개)=폐수 직접방류신청제도 도입▲교통안전공단법(개)=해상화물운송사업자 등을 교통안전기금분담금 납부의무자에서 제외 ▲하천법(개)=도로사업 절차간소화 ▲도로법(개)=절차간소화▲외국인의 토지취득·관리법(개)=외국인 취득 토지확대 ▲건축법(개)=용도변경절차 간소화 ▲건설기계관리법(개)=경미한 사항을 신고대상에서 제외 ▲자동차관리법(개)=제작사의 자체품질검사 인정 ▲항공법(개)=국내 요금 자유화 ▲수산업협동조합법(개)=조합가입자유 보장 ▲해난심판법(개)=경미한 해난사고에 교육처분 명령제 도입 ▲개항질서법(개)=자율안전관리제도 도입 ▲독점규제·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적용제외제도의 정리 등에 관한 법률(제)=국제수준에 맞지 않는 국내 카르텔 일제정비 ▷정보화 사회 지향◁ ▲부동산 등기법(개)=부동산 사무처리 서식정비 ▲고등교육법(개)=가상대학 설립기준 마련 ▲저작권법(개)=전송권,쌍방향 송신권보장 ▲산업기술 등영업비밀보호법(제)=영업비밀의 범위확대 ▲방문판매법(개)=텔레마케팅 미비점 보완 ▲전자상거래 기본법(제)=전자상거래 기반조성▲전자서명제(제)=공신력제고 방안마련 ▲정보화촉진기본법(개)=정보화추진 시책 내실화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개)=개인 정보보호 규정보완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제)=허위·과장광고 억제 ▷세계질서에 능동적 대응◁ ▲법인세법(개)=손비로 인정되는 범위 조정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개)=조세제도 보완 ▲남극환경보호법(제)=환경보호 의지표명 ▲한국국제협력단법(개)=무상협력사업 조정 ▲해외뇌물거래방지법(제)=뇌물공여 처벌 ▲재난관리법(개)=해외재난대책 마련 ▲농수산물 품질관리법(제)=품질관리체계구축 ▲집단에너지 사업법(개)=온실가스 저감노력 ▲환경친화적 산업구조로의 전환촉진법(개)=기후협약에 대응 ▲전기용품 안전관리법(개)=상호인증체제 구축 ▲변리사법(개)=전문·대형화 유도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법(개)=전송권 신설 ▲검역법(개)=규정정비 ▲폐기물관리법(개)=분류기준을 정비 ▲건축사법(개)=상호인정제 도입 ▲수로업무법(개)=수로조사 대상수역을 명시 ▲해운법(개)=국제해운규범 수용▷건전사회 및 삶의 질 향상◁ ▲상속세 및 증여세법(개)=합리적 과세방안 마련 ▲세무사법(개)=세무법인화 추진 ▲근로자의 주거안정과 목돈마련지원에 관한 법(개)=공공차관을 주택금융 신용보증기금으로 활용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제)=건전발전 유도▲여권법(개)=발급제한 실효성 제고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개)=선도보호위원으로 변경 ▲군사법원법(개)=구속전 피의자심문제도 도입 ▲군행형법(개)=청원권보장 ▲병역법(개)=병역면제범위 축소 ▲향토예비군설치법(개)=신고제도 폐지 ▲공무원직장협의회 설립·운영법(제)=협의회설치 ▲공직자윤리법(개)=심사기간연장 ▲행정사법(개)=표준계약서 작성의무화 ▲농어촌 주택개량 촉진법(개)=범위조정 ▲도로교통법(개)=응용학과시험 폐지 ▲자동차교통관리개선 특별회계법(개) ▲학교보건법(개)=당구장 설치제한구역 조정 ▲유아교육 진흥법(개) ▲초·증등교육법(개)=취학율 제고 ▲한국정신문화원육성법(개) ▲교육공무원법(개) ▲학교용지확보 특례법(개) ▲평생학습법()=학습유급휴가제 도입 ▲교원지위향상 특별볍(개) ▲사립학교 교원연금법(개) ▲교원단체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개) ▲청소년기본법(개) ▲음반 및비디오물에 관한 법률(개) ▲도시가스사업법(개)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개) ▲전력기술관리법(개) ▲중소기업협동조합법(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제)=장기 매매행위 근절 ▲의료분쟁 조정법(제)=조정제도 마련▲재해구호법(개)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개)=묘지면적 축소 ▲공중위생법(개) ▲혈액관리법(개) ▲농어촌보건의료 특별조치법(개) ▲약사법(개)▲아동보호법(개) ▲국민건강보험법(제)=새 보험료 부과체계 신설 ▲국민연금법(개) ▲한국암병원 설치법(제) ▲환경위해사고 예방법(제) ▲오수·분뇨 및 축산폐수처리법(개) ▲대기환경 오염법(개) ▲대기환경 보전법(개) ▲소음·진동 규제법(개) ▲공공용지의 취득 및 손실 특별법(개) ▲주택건설 촉진법(개) ▲도시개발법(제) ▲해양안전기본법(제) ▲해양오염방지법(개) ▲연안어장 정화·정비법(개) ▲수상레저 기구 관리·수상레저 활동의 안전법(제) ▲독립유공자예우법(개) ▲국가유공자 등 예우·지원법(개) ▷행정능률 향상◁ ▲조당사업법(개) ▲행사소송 비용법(개) ▲호적법(개) ▲국군조직법(개)▲군인사법(개) ▲지방공무원법(개) ▲소방공무원법(개) ▲국가안전보장회의법(개) ▲지방이양촉진법(제) ▲국가기록보존법(제) ▲지방교육자치법(개)▲교육기본법 등의 시행에 따른 건설산업 기본법 정비법(제) ▲학교시설사업촉진법(개) ▲사울대학교 병원 설치법(개) ▲국립대학교 병원 설치법(개)▲원자력법(개) ▲한국원자력연구소법(개) ▲관광진흥개발기금법(개) ▲국민체욱진흥법(개)=부과금징수 의무자 명시 ▲양곡증권법(개) ▲직업훈련촉진기금법(폐) ▲공유수면관리법(개)=벌칙현실화 ▲선박법(개)=과태료제도 도입
  • 20년대 美洲 한인 독립자금 기부록 발굴/총10만7천달러 모금

    ◎기부자 1,652명 기록 국가보훈처는 지난 1920년 미주 한인단체인 ‘대한인 국민회’가 조국의 독립자금을 모금한 내용 및 사용내역 등이 담긴 ‘대한인 국민회 중앙총회 독립운동 의연록’을 발굴,12일 공개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安炯柱씨(61·UCLA 재미 한인연구소 연구위원)가 최근 UCLA 사료관에서 찾아낸 이 명부는 1918년 11월24일부터 1920년 6월 말까지 독립자금 모금에 참여한 1천652명의 명단과 금액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자금 모금에는 어린 아이부터 농장노동자 사업가 등이 참여,1달러에서 1천달러 이상까지 기부해 총 10만7천792달러를 모았다.
  • 수능 과목 줄여 수험부담 최소화/99학년도 대입 어떻게 치러지나

    ◎수리탐구Ⅱ 영역에 선택과목제 도입/점수 반영 않는 형식적 면접고사 생략/학생부 국·공립대 필수 전형자료 활용 99학년도 대학입학 전형 기본계획은 수능시험 과목의 축소,특차·정시모집 기간의 연장 등을 통해 수험생들의 부담을 최소화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입제도의 기본틀을 거의 바꾸지 않아 혼란의 소지도 없앴다. 하지만 대학마다 전형요소를 다양하게 채택할 움직임을 보여 수험생들은 대학별 입시요강을 면밀히 검토,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형자료◁ 98학년도 입시와 같이 학교생활기록부와 수능시험성적,대학별 고사 성적을 기본 전형자료로 쓴다.반영 여부와 비율,방법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한다. 대학별로 자기소개서 지원동기서 봉사활동자료,업적과 경력,학교장 추천서 등도 전형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학생부=사립대는 학생부의 반영 여부는 물론 비율 및 방법도 완전히 자율적으로 정한다.하지만 국·공립대는 반드시 필수전형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교육부는 학생부 성적 반영에서 전공별 계열별 학과별로 특성에 맞게과목별 가중치 등을 적용,반영비율을 달리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대학은 활용방안을 미리 알려야 한다. 학생부 작성기준일은 98학년도처럼 12월10일로 했다. ▲수능시험=시험일은 11월18일로 지난 해보다 하루 빨라졌다. 수능시험의 출제 원칙과 방법,영역,배점,시험시간은 98학년도와 같다.인문·자연·예체능 등 계열별로 과목수가 4개씩 줄었다. ○시험일 하루 빨라져 수리탐구Ⅱ는 사회탐구 과학탐구로 구분해 표기한다. 특히 수리탐구Ⅱ 영역에 선택과목제가 도입되면서 선택과목간 난이도 차이를 반영할 수 있는 표준점수제가 시행된다. 대학은 수능시험 총점,영역별 점수,계열별·영역별 백분위 점수,표준점수 등을 다양하게 전형에 활용할 수 있다.교육부는 전공과 관련이 많은 영역은 가중치를 부여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대학별 고사=논술 등 필답고사와 면접 구술고사,실기·실험고사,신체검사,교직적성·인성검사 등이 대학별로 실시된다. ○본고사식 시험 금지 국·공립대는 필답고사로 논술고사만 시행할 수 있다.국어 영어 수학 위주로본고사와 같은 유형의 시험은 금지된다. 사립대학은 필답고사 실시 여부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필답고사를 치를 때 대부분 대학은 98학년도의 유형처럼 통합교과적인 논술고사를 출제할 가능성이 높다. 점수에 반영하지 않는 형식적인 면접고사는 과감히 생략토록 했다. ▷전형유형◁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보편적 기준에 따라 치르는 일반전형과 특별한 소질이나 경력을 토대로 하는 특별전형이 있다. 지난번 입시와 달리 일반전형에 포함됐던 취업자와 특기자 선발,대학 독자적 기준에 의한 전형 등을 본래 취지에 맞게 특별전형에 넣었다. ▲일반전형=정원내에서만 선발할 수 있다.학생들의 전공 선택폭을 넓히기 위해 원칙적으로 모집단위를 복수의 학과 또는 학부별로 실시토록 했다. ○모집인원 유동제 실시 다만 의·약학계 등 학문의 특성이나 교육과정 운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학과모집도 가능하다. 종교·성별·재산 등 균등한 교육기회를 침해하는 부적절한 기준에 의해 선발자격을 설정할 수 없다. 동점자가 생기면 정원을 초과해서합격시킨 뒤 다음 학년 및 학기의 모집인원을 대신 감축해야 한다.모집인원 유동제가 그대로 실시되는 것이다. ▲특별전형=특기자 취업자 농어촌학생 특수교육대상자 재외국민과 외국인(북한귀순동포 포함) 등의 국가권장 특별전형과 선효행자 학교장추천자 소년·소녀가장 독립유공자 손·자녀 등을 대상으로 한 대학별 독자적 기준에 의한 특별전형이 있다. 특기자 전형은 특기 분야와 동일한 계열·학과에 한해 지원이 가능하다.하지만 체육 특기자는 99학년도까지 동일 계열·학과가 아닌 다른 계열·학과에도 지원할 수 있다. 농어촌학생 전형은 입학정원의 3%이내 범위에서 모집 가능하다. 재외국민과 외국인 특별전형은 입학정원의 2%(모집단위 정원의 10%)내에서 정원외로 실시된다.올해 2월 시행된 ‘해외유학생 유인대책’에 따라 귀국한 학생에 대해서는 재외국민 등의 특별전형을 실시한 뒤 미달 인원에 한해 추가모집할 수 있다. ▷전형일정◁ 수시­특차­정시­추가모집으로 이어지는 입시 일정에서 전형별 기간이 98학년도보다 크게 늘었다.지난번 입시의 일정이 너무 빠듯해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수시모집=98학년도에는 대부분 대학이 재외국민과 외국인을 수시모집을 통해 선발했다.서울대는 학교장추천자 전형을 실시했다. 모집 기간은 오는 9월1일부터 11월22일까지로 전년도에 비해 49일이나 늘어났다. ▲특차모집=선발 방법은 대학 자율이나 모집인원은 모집단위 정원의 50%로 제한했다.특차모집 인원이 많으면 정시모집 인원이 줄고 지원기회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특차모집 기간은 11월23일부터 12월27까지 35일간이다.98학년도에는 9일간이었다. 수능 성적발표가 12월18일인 점을 감안하면 성적 발표전에도 특차모집을 실시할 수 있다. ▲정시모집=‘가’군 99년 1월4일∼9일,‘나’군 1월10일∼15일,‘다’군 1월16일∼21일,‘라’군 1월22일∼27일 등 4개 군으로 나뉘어 치러진다.기간은 각 군별로 지난 입시보다 하루 늘어난 6일이다. 대학별 시험기간군은 교육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자율 협의 또는 추첨을 통해 분산 조정된다. ○추가모집 대학 자율로 ▲추가모집및 등록=정시모집 등의 미달,미등록 인원을 충원하기 위한 추가모집은 99년 2월7일부터 28일까지 대학의 자율로 치러진다. 최초합격자 등록일은 99년 2월3일∼5일이며 1차 추가합격자 등록일은 2월7일∼8일이다.추가합격자는 2월24일까지 통보해야 하며 등록은 26일까지 마쳐야 한다. ▷복수지원제◁ 정시모집에서는 시험기간군이 다른 대학간이나 동일 대학내 다른 모집단위간 복수지원이 가능하다.수시·추가모집에서는 시험기간이 같아도 복수지원이 가능하다. 특차모집에서는 대학간 복수지원이 금지된다.한 대학만 지원해야 한다.특차모집 합격자는 정시모집 대학에 지원할 수 없고 반드시 특차에 합격한 대학에 등록해야 한다.이를 어기면 합격이 취소된다. ◎표준점수제/선택과목 난이도·응시집단 차이 점수 매겨/상대적 불이익 없어 토플·토익시험에 사용 99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 처음으로 수리탐구Ⅱ에 선택과목제가 시행되면서 표준점수제도 도입된다.특정과목을 선택한 데 따른 이익·불이익을 없애기 위해서다. 표준점수제는 선택과목마다 다른 문제의 난이도와 응시 집단간의 점수 차이를 따져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 점수를 매기는 방식을 일컫는다.토플이나 토익 시험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자연계열의 A학생이 물리Ⅱ를 선택해 100점 만점에 50점,B학생이 생물Ⅱ를 선택해 100점 만점에 70점을 받았다고 하자.그리고 물리Ⅱ의 전체평균은 40점 표준편차는 8,생물Ⅱ의 전체평균은 60점 표준편차는 12라고 치자. 이들 점수를 평균 50점,표준편차 10인 표준점수 척도에 따라 {(원점수-전체평균)÷표준편차}×10+50이라는 표준점수 산출공식에 대입하면 A학생은 62.50점,B학생은 58.33점이 된다. 따라서 A학생의 성적이 원점수는 낮지만 자연계열 전체로 보면 B학생보다 높고 물리Ⅱ가 생물Ⅱ 시험보다 어렵게 출제됐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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