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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 ‘독립운동가의 명패’ 전달합니다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인 서울신문과 대한광복회가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독립유공자에게 ‘독립운동가의 명패’를 제작, 전달하기 위해 성금을 모금합니다. 국민들의 소중한 성금으로 제작되는 이 명패는 전체 1만 5052명의 독립유공자 중 주소지가 파악된 7647가구에 내년 초부터 먼저 전달됩니다. 명패는 광복군으로 활동한 김우전·김국주 지사 등 42명뿐인 국내 생존 독립유공자와 7379명의 후손에게는 물론 의병장 최재형 선생의 후손(카자흐스탄), 대한매일신보 초대 사장인 어니스트 베델의 후손(영국) 등 해외에도 전달됩니다. 현재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인 광주일고,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여고 등 각급 학교, 대기업 등에서도 이 명패 운동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6월 국가유공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명패 사업 추진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성금은 은행 계좌(우리은행 1005-403-489363·예금주 광복회)나 온라인 크라우드펀딩(www.ohmycompany.com→광복회 배너 클릭)으로 보내면 되며, 모금 기간은 오는 12월 31일까지입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김남현 자치경찰추진단장 등 439명 경찰의 날 포상

    김남현 자치경찰추진단장 등 439명 경찰의 날 포상

    2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73주년 경찰의 날 행사’에서 김남현(54) 경찰청 자치경찰추진단장(경무관)을 비롯한 경찰관 439명이 정부 포상의 영광을 안았다. 훈장 29명, 포장 30명, 대통령 표창 187명, 총리 표창 193명이다. 대표 수상자로 선정된 김 단장은 광역 단위 자치경찰제 도입과 관련해 주요 선진 경찰 운영 사례를 연구하고 시범 운영을 통해 우리 현실에 적합한 제도 마련에 기여한 공로로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근정포장의 주인공은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고 처리 중 2차 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는 등 상해를 입은 이태건(52) 충북경찰청 경비교통과 경위에게 돌아갔다. 김완근(41) 전주완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감은 성폭력, 불법 촬영, 가정폭력 등 여성 대상 범죄 단속 및 예방 관련해 지역 사회와 연계한 맞춤형 치안 정책을 시행하면서 사회 약자 보호에 앞장섰다는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박운대(58) 부산경찰청장(치안정감)과 김흥수(60) 인천삼산경찰서 중앙지구대 경감도 공동체 치안 구현 등의 공로로 대통령표창(단체)을 대표 수상했다. 이날 행사에는 임시정부 경찰 제3대 경무과장 권준 선생의 외손자인 최재황 경사, 독립유공자 박동희 선생의 손자인 독도경비대장 박연호 경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딸이자 독립운동가 출신인 안맥결 제3대 서울여자경찰서장의 아들인 김선영씨도 참석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인사말을 통해 “15만 경찰이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전통을 되살려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진정한 국민의 경찰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안창호 조카딸 등 5명…경찰, 독립유공자 추진

    안창호 조카딸 등 5명…경찰, 독립유공자 추진

    경찰이 독립유공 서훈을 받지 못한 경찰관들의 유공자 등재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경찰청은 문형순(1897~1966) 경감 등 독립운동을 한 경찰관 5명의 독립유공자 심사를 국가보훈처에 요청했다고 3일 밝혔다. 여성 3명이 포함됐다.일제강점기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문 경감은 1929년 4월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 ‘국민부’에서 중앙호위대장을 맡는 등 독립군으로 적극 활동했다. 광복 후 경찰에 투신한 그는 1949년부터 제주 모슬포, 성산포경찰서장을 잇따라 맡아 제주 4·3사건과 6·25전쟁 당시 약 400명을 학살 위험에서 보호해 훗날 ‘제주판 쉰들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딸인 안맥결(1901~1976) 총경도 심사를 신청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을 담당한 여성 독립운동단체 ‘결백단’ 임원이었던 그는 1937년수양동우회 사건 때문에 만삭의 몸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 이듬해 1기 여자경찰간부로 임용돼 제3대 서울여자경찰서장 등을 지냈다. 5·16 군사정변 당시 합류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을 지낸 양한나(1893~1976) 경감은 1919년 3·1 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상하이와 부산을 오가며 군자금을 모금해 전달했다. 1기 여자경찰간부였던 그는 약 1년간 짧게 경찰에 몸담았으며 이후 사회 복지 분야에 헌신했다. 본명이 양귀념이었으나 안창호 선생이 새로 이름을 지어 줘 개명했다. 제3대 부산여자경찰서장을 지낸 이양전(1911~?) 경감은 1919년 3월 1일 경성여고보 동료들과 비밀단체를 만들어 3·1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 밖에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돼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복역했으며 해방 직후 경무부 수사국장 등을 맡았던 최능진(1899~1951) 경감도 독립유공자 심사를 요청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안창호 조카딸 등 ‘독립운동가 경찰관’ 5명 유공자 서훈 추진

    안창호 조카딸 등 ‘독립운동가 경찰관’ 5명 유공자 서훈 추진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고도 독립유공 서훈을 받지 못한 경찰관들의 유공자 등재가 추진된다. 경찰청은 과거 독립운동을 한 경찰관 5명의 독립유공자 심사를 국가보훈처에 요청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이 이번에 심사를 요청한 경찰관 5명 중 3명은 여성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딸인 안맥결 전 서울여자경찰서장은 1919년 평양 3·1 운동과 숭의여학교 10·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구금된 독립운동가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을 담당한 여성 독립운동단체 ‘결백단’ 임원이었고, 만삭의 몸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최근 국가보훈처에서 한 전 서장이 수감 기간 기준을 못 채웠다며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이었던 양한나 전 서장은 1919년 3·1 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상하이와 부산을 오가며 군자금을 모집해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1923년 임시정부 의정원 회의에서 경상도 대의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양 전 서장의 본명은 ‘양귀념’이었지만 안창호 선생이 양한나라는 이름을 지어줘 개명했다고 한다.이양전 전 부산여자경찰서장은 1919년 3월 1일 경성여고보(현 경기여고) 동료들과 비밀단체를 조직해 3·1 선언서와 전단을 찍어 배부하는 등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 3월1일 도쿄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1주년 축하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일제 경찰의 감시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경찰청은 문형순 전 성산포경찰서장의 독립유공 재심사도 요청했다. 문 전 서장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4월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 ‘국민부’에서 중앙호위대장을 맡는 등 만주 일대 항일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또 한국전쟁 발발 이후인 1950년 8월 제주에서 ‘예비검속자를 총살하라’는 계엄군 명령을 거부해 200여명의 목숨을 구했다.이외에도 1937년 6월 ‘흥사단’(안창호 선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민족운동 단체) 산하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돼 안창호·조병옥 등과 복역한 최능진 전 경무부 수사국장에 대해서도 독립유공자 심사를 요청했다. 경찰이 최근까지 새로 발굴한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은 모두 14명이다. 이들 가운데 조병옥 초대 경무부장 등 9명은 이미 독립유공자로 등록돼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민화협 “남북 민간연락사무소 열자” 비정부 단체 첫 상설 대화기구 제안

    통일 운동 상설협의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민간연락사무소’를 개설할 것을 정부에 공식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개성에 문을 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남북 당국 간의 소통 채널이라면, 민간연락사무소는 남북 민간 교류를 위한 소통 채널을 의미한다. 사상 첫 남북 간 민간 상설 대화 창구가 생길지 주목된다.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은 지난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민화협 출장소 개설을 요청하는 내용의 공문을 오늘(28일) 통일부에 정식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김 상임의장은 “북측과 신속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협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는 취지”라면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활성화되면 우리도 그곳에 사무소를 열고 민간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남북 민간연락사무소 추진은 몇 달 전부터 해 왔던 작업”이라면서 “공간 마련을 위해 통일부와는 이미 논의를 진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화협은 4층 규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별도 사무실을 제공받아 남측 인원 2~3명과 함께 북한 민화협 소속 인원을 상주시키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7일 북한 민화협에도 민간연락사무소 설치와 관련한 내용의 통지문을 보냈다. 남북 민간연락사무소 개설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이시종 민화협 정책실장은 “북한과 교류하고 싶다며 연락해 오는 민간단체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실장은 “하루에 2~3곳은 꾸준히 문의를 해 온다”면서 “교원단체, 게임업계, 축산업계, 문화예술단체 등 단체의 종류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대북 교류를 희망하는 이유도 ‘북한 교사와 교류하고 싶다’, ‘북한에 생존해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아 달라’, ‘김일성종합대학 학자를 초청해 달라’, ‘남북한 공동 그림대회를 열고 싶다’ 등 각양각색인 것으로 전해졌다. 1998년 9월 설립된 민화협은 200여개의 정당, 종교, 시민사회단체 협의체로 출범해 20년 동안 북측과 교류 협력을 위한 대화 창구 역할을 해 왔다. 지난 14일 민화협 공동의장인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권에 영향받지 않고 남북 교류 활동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도록 민화협을 법정단체로 지정하는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공문은 접수했고 장관과 차관에게 보고한 뒤 유관 부서와 함께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김종필 훈장 추서’ 사후 의결한 정부, 공적조서 비공개 논란

    정부가 김종필(1926~2018) 전 국무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서 사후 의결하고도 훈장 추서 이유를 적은 ‘공적조서’를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16일 국무조정실이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등에 따르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6월 25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김 전 총리 측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전달했다. 당시 국무조정실은 “이영덕·남덕우 전 총리도 별세 뒤 국무회의 의결 없이 무궁화장을 먼저 추서받고 사후 절차를 밟았다”며 김 전 총리에 대한 ‘선 추서’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주역이자 국무총리를 두 차례나 역임한 분이기에 무궁화장을 받아 마땅하다”고 찬성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군사 쿠데타와 유신 체제 옹호 등 대한민국 적폐 체제에 책임이 큰 역사적 범죄자에게 줘선 안 된다”며 반대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7월 13일 자체 공적심사를 통해 그에게 무궁화장을 수여하기로 하고, 같은 달 31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제33회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8월 1일 재가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 등에 제공된 국무회의 사전·사후 안건 목록에는 ‘영예수여안’(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포상 등)으로만 표기돼 있어 김 전 총리 훈장 추서안의 상정·의결 사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독립운동 남편 옥바라지한 부인도 유공자입니다”

    “독립운동 남편 옥바라지한 부인도 유공자입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202명 발굴 사업 주관 투옥된 가족 보살핀 박애신 여사 찾아 “부족한 기록·증언으로 인정 쉽지 않아”“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을 위해 옥바라지를 하며 평생 희생한 부인은 어떤 포상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한 겁니다.”정부는 지난 15일 202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찾아내 이 중 26명에 대해 서훈을 수여했다. 발굴 사업을 주관한 이정은(64) 사단법인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이사장은 28일 “남편이나 시아버지를 포함한 독립운동가를 위해 밥을 하고 옷을 기웠으며, 독립운동을 떠난 남편 대신 만주땅을 개간한 여성의 노력이 독립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한평생 희생한 여성을 독립운동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면 ‘위대한 여성상’을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굴을 넘어 독립운동을 지원하느라 희생한 여성도 사각지대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이사장은 이번 발굴 작업에서 찾아낸 박애신(1900년생) 여사를 대표 사례로 들었다. 박 여사는 1919년 3월 9일 독립운동가 김태규 선생과 혼인했다. 파리평화회의에 기미독립선언서를 전달하는 데 관여한 시아버지 김병농 목사와 남편이 서대문 형무소에 연이어 갇히면서 옥바라지를 했다. 출옥한 남편은 몇 개월 후 상하이 임시정부의 안동교통부(국내 거점과 비밀 연락 업무)에 들어갔다. 의열단 등에서 활약하면서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이 이사장은 “부부의 마지막 만남은 김태규 선생이 갓난아이가 보고 싶으니 미상의 역 플랫폼에 아기를 안고 서 있으라고 기별을 했던 것”이라며 “김 선생이 기차를 타고 가며 먼발치에서 부인과 아기를 바라봤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여사는 독립운동가 인정 기준을 충족하지는 못한다. 그는 정부가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나선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이사장은 보훈처의 용역공모사업에 따라 연구진을 꾸려 지난 1월 12일부터 4개월간 발굴을 진행했고 202명을 찾아냈다. 정부는 지난 15일에 훈장과 포장을 받은 26명 외에도 향후 검증을 통해 오는 11월 순국선열의 날, 내년 3·1절 등에 차례로 서훈을 수여할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발굴 과정에서 애로사항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 독립운동 기록을 들었다. 그는 “문헌이나 증언을 찾고자 4개월 발굴 기간에 2개월은 족히 헤맨 것 같다”며 “전체 독립 유공자 중 여성이 2%에 불과했던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보훈처가 3개월 옥고를 치러야 한다는 독립유공자 기준을 ‘실질적인 독립활동 여부’로 변경하면서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빛을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독립기념관 내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에서 수석 연구위원을 지낸 이 이사장은 2012년 퇴임을 하면서 대한민국역사문화원을 설립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효창공원,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탈바꿈

    효창공원,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탈바꿈

    김구 선생, 이봉창 열사 등이 안치되어 있는 서울 효창공원이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탈바꿈한다. 16일 국가보훈처는 내년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보훈처는 연내 효창공원 성역화를 위한 세부 계획을 수립하고, 내년에 관련 연구용역 의뢰 등 독립공원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보훈혁신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어 “효창공원은 김구 선생을 비롯한 여덟분의 독립유공자가 안장되어 있으나, 독립유공자의 정신이 깃든 공간이 아닌 한낱 공원으로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재조성하라”고 권고했다. 보훈처는 “혁신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성역화하기로 했다”면서 “효창공원내 독립유공자 묘역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성역화하는 것을 골자로 사업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 255번지 일대의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과 삼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 묘소를 비롯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이동녕·차이석·조성환 선생 등 임정요인 묘역도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사설] 광복 73년에도 아직 갈 길 먼 독립유공자 발굴과 예우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묻힌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완전한 발굴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마지막 한 분까지 최선을 다해서 찾아내고, 그 공적을 기리는 일은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에도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9월 독립운동 사료에 대한 국가 입증 책임을 강화하고, 포상 심사 기준 재검토 등을 담은 ‘독립유공자 발굴·포상 확대 계획안’을 내놓았다. 지난 6월엔 ‘수형(옥고) 3개월 이상’이라는 기준 조항을 없애고, 당시 사회 구조상 관련 공식 기록이 많지 않은 여성은 일기, 회고록, 수기 등 직간접 자료도 폭넓게 인정하는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인 고(故) 안맥결 여사의 사례에서 보듯 현실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만삭의 몸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안 여사는 한 달여 만에 가석방됐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탈락해 이번 광복절 독립유공자 포상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조선혁명군으로 활약한 조부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했더니 70년이 넘은 중국 법원의 재판 서류를 가져오라고 했다는 어느 후손의 한탄은 보훈처가 누구를 위한 기관인지 되묻게 한다. 그동안 소외됐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평가도 시급하다. 지난 1년간 여성 독립운동가 202명이 발굴돼 이 중 26명이 이번에 서훈을 받은 건 다행이다. 하지만 전체 포상자 1만 5000여명 중에 2%에 불과해 갈 길이 멀다. 차별을 딛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여성 애국지사들의 항일 역사가 온전히 복원될 때 광복의 의미가 더욱 빛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애국지사 김산의 아들 “지금 한민족, 새 발자취 만들어”

    애국지사 김산의 아들 “지금 한민족, 새 발자취 만들어”

    김산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린 혁명가 항일군정대학서 물리학·수학 등 가르쳐 아들 고영광씨 “내 성은 고려에서 따와”“내 성 ‘고’는 ‘고려’에서 따온 것이라오.” 혁명가의 늙은 아들은 비록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고려의 영원한 빛이라는 뜻처럼 빛났다.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리는 애국지사 김산(1905~1938년)의 아들 고영광(81)씨는 성의 유래를 설명하며 자랑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15일 중국 베이징 한국대사관에서는 중국 인민군해방가를 작곡한 정율성 지사의 딸 정소제씨,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로 일한 김동진 지사의 딸 김연령씨 등 독립유공자 후손 7명을 초청한 광복절 경축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고씨는 “광복 73주년이라는 것 자체가 한민족에게 매우 크고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한 살 때 처형당한 아버지 김산(본명 장지락)은 미국 여성 언론인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노래’를 통해 불멸의 혁명가로 남게 됐다. 평안북도 용천 출신인 김산은 3·1 만세시위운동 이후 중국 대륙을 누비며 전 생애를 혁명에 바쳤으나 일본 스파이로 몰려 극비리에 처형되었고 이후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1983년 누명을 벗고 복권됐다. 김산은 1920년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학을 배운 뒤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교정원 및 인쇄공으로 일했다. 1925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고, 베이징에서 1·29 학생운동이 일어나자 허베이성 스자좡에서 4000여명의 학생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다. 공산당의 요청으로 옌안 항일군정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수학, 일본어, 한국어를 강의하다 님 웨일스를 만나 ‘아리랑의 노래’를 구술하게 된다. 고씨는 웨일스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편지를 교환했으며 “김산의 희생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희생이었다”란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웨일스는 “아들을 한 명 두었으니 김산은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다”며 ‘아리랑의 노래’ 영문 초판을 보내줬다고 소개했다. 김산의 불꽃 같은 삶은 여러 차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다. 고씨는 “아버지의 생애가 영화화된다면 ‘아리랑의 노래’에 따라 만들어지고 다른 이야기를 창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73년 동안 남과 북이 모두 아름다운 국가를 건설했으며 이제 한민족이 새로운 발자취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남북 정상이 이미 두 번 악수했고, 오는 9월에 제3차 정상회담을 하는데 73년간의 노력이 오늘 이 뜻깊은 자리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文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이 광복의 완성”… 강주룡·제주 해녀 언급

    文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이 광복의 완성”… 강주룡·제주 해녀 언급

    “남녀 차별 없이 독립운동 역사 쓸 것” 정부, 5월 여성독립운동가 202명 발굴 그중 26명에게 서훈·유공자 표창 수여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깊이 묻힌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굴이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5월 202명의 여성 독립유공자를 발굴했고 이날 이 중 26명에게 서훈과 유공자 표창을 했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 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 낼 것”이라며 “묻혀진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완전한 발굴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평원고무공장의 여성 노동자였던 강주룡 선생과 제주 해녀 항일운동의 시발점이었던 5명의 해녀를 대표적인 여성독립운동가로 언급했다. 노동계의 여장부로 불리던 강주룡 선생은 14세에 서간도로 이주해 혼인했지만 독립운동가였던 남편과 사별하고 평양 평원고무공장에서 일했다. 세계경제공황으로 타격을 입은 평양고무공업조합이 1930년 노동자 측에 임금의 17% 삭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자 그는 일제와 결탁한 자본가를 비판하며 투쟁했다. 특히 1931년 5월 평원고무공장의 파업을 주도하던 중 일본 경찰의 개입으로 공장에서 쫓겨나자 을밀대 지붕으로 올라가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치며 단식투쟁을 펼쳤다. 투옥된 그는 건강이상으로 보석 출감됐지만 병세가 악화돼 두 달 만에 숨을 거뒀다. 정부는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등 5명의 해녀는 1931년 일본 관리들이 전복 등 해녀의 수확물을 헐값에 매수하고 제주도해녀조합을 어용화하려 하자 이듬해 1월 7일과 12일에 제주도 구좌면에서 항일 시위를 일으켰다. 시위가 제주 각지로 확산되면서 참여인원은 800여명으로 늘었고 3개월간 연인원 1만 7000명이 238회의 집회시위를 열었다. 결국 이들 5명은 당시 도사(島司)였던 다구치 데이키와 담판을 지었고 ‘지정판매 반대’ 등 해녀들의 8대 요구조건을 관철했다. 하지만 이후 일제의 민족운동가 검거를 저지하려다 체포돼 3개월가량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03년 이들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으며 현재 구좌읍에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이런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에도 발굴은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독립운동가 포상자 1만 4830명 중에 여성은 296명으로 2%에 불과했다. 최소 3개월의 수형·옥고 등 획일적인 포상 기준에다 남성에 비해 독립운동기록도 많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4월 3개월 기준을 폐지하고 학생 독립운동가의 경우 정학 및 퇴학도 인정했다. 또 실형 여부보다 실질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포상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 결과 이날 포상자 177명 중 여성이 14.7%(26명)였다. 문 대통령이 이날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직접 포상한 5명의 독립유공자 중에는 허은 선생도 포함됐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광복절 #독립운동 #아빠’ 홍지민, 광복절 애국가 제창 태극기 인증샷

    ‘#광복절 #독립운동 #아빠’ 홍지민, 광복절 애국가 제창 태극기 인증샷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 국가유공자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15일 홍지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광복절날 난 애국가 부르고 엄마는 참석하시고. 아빠도 함께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운 아버지. #광복절 #독립운동 #아빠”라는 글을 올렸다. 이와 함께 공개된 사진에서 홍지민은 어머니와 다정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특히 홍지민이 한 손으로 꼭 잡고 있는 태극기가 눈길을 끈다. 앞서 홍지민은 광복절인 오늘(15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독립유공자 유족들과 무대에 올라 애국가를 제창했다. 그는 19세 때 항일 투쟁을 펼치며 독립운동을 한 故홍창식 씨의 후손이다. 홍지민은 “역사적인 날 광복 73주년. 정부 수립 70주년. 잊지 않겠습니다. 숭고한 희생정신. 오늘따라 아버지가 더더욱 그립습니다”라는 글과, 자신이 애국가를 제창하는 TV 화면도 게재하기도 했다. 한편, 홍지민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출연 중이다. 스포츠서울
  •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 기리는 장소 둘로 갈라지나

    광복절을 맞아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장소가 둘로 갈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4일 구미시에 따르면 시내 상모동 새마을운동테마공원 시설 일부를 ‘경북민족독립운동기념관’(가칭)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새마을운동테마공원은 경북도와 구미시가 지난해 말까지 국비 등 모두 907억원을 들여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옆 24만 7349㎡ 터에 조성했지만 활용도는 크게 떨어지는 반면 연간 60억원(추정)의 운영비가 드는 문제 등으로 개관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올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장세용 구미시장은 이런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마을공원 내에 경북민족독립운동기념관 설립을 공약했다. 새마을공원에 독립운동기념관을 마련해 허위(1855∼1908), 장진홍(1895~1930), 허형식(1909~1942), 박희광(1901∼1970), 권쾌복(1921~2009) 선생 등 구미 출신 독립운동가 50여명을 기리기 위한 장소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추모 및 유물·유적 전시 공간을 함께 만든다는 복안도 내놨다. 여기엔 새마을공원 건물 35채 가운데 일부 용도 변경이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 시는 곧 경북도, 구미시의회 등 관련 기관과 협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둘러싼 논란도 적잖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장 시장이 사실상 ‘박정희 전 대통령 흔적 지우기’라는 얘기가 많아서다. 실제로 구미지역에 독립운동기념관이 들어서면 경북에는 중복되는 셈이다. 경북도는 지난해 7월까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사업비 296억원을 들여 조성한 ‘경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을 개관했다. 도 단위로는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기념관이다. 부지 5만 7538㎡, 건물 연면적 7050㎡(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다. 전시관과 연수원, 강당, 체험지구 등을 갖췄다. 경북 출신 독립유공자 2125명(전국 1만 4574명 중 14.6%)을 기리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박수원 구미시 새마을과장은 “새마을공원의 활용도를 높이고 구미에서 배출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한데 모시고 추모하기 위해 일부 시설을 독립운동기념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 관계자는 “새마을공원을 법규에 명시한 국비 보조사업의 목적을 떠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려면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안동·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전문] 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남북평화 정착이 진정한 광복”

    [전문] 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남북평화 정착이 진정한 광복”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제70주년 정부수립 기념 경축식에 경축사를 통해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경축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오늘은 광복 73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매우 뜻깊고 기쁜 날입니다. 독립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는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독립유공자와 유가족께도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구한말 의병운동으로부터 시작한 우리의 독립운동은 3·1운동을 거치며 국민주권을 찾는 치열한 항전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우리의 나라를 우리의 힘으로 건설하자는 불굴의 투쟁을 벌였습니다. 친일의 역사는 결코 우리 역사의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독립투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습니다.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이겨낸 결과였습니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힘을 모아 이룬 광복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광복의 그날 우리는 모두가 어울려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에 높은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이곳은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의 땅이 된 서울의 심장부 용산입니다. 일제강점기 용산은 일본의 군사기지였으며 조선을 착취하고 지배했던 핵심이었습니다. 광복과 함께 용산에서 한미동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용산은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온 기반이었습니다.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의 평택 이전으로 한미동맹은 더 굳건하게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용산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생태자연공원으로 조성될 것입니다. 2005년 선포된 국가공원 조성계획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허파역할을 할 거대한 생태자연공원을 상상하면 가슴이 뜁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아픈 역사와 평화의 의지, 아름다운 미래가 함께 담겨있는 이곳 용산에서 오늘 광복절 기념식을 갖게 되어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용산이 오래도록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처럼 발굴하지 못하고 찾아내지 못한 독립운동의 역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독립운동은 더 깊숙이 묻혀왔습니다.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평양 평원고무공장의 여성노동자였던 강주룡은 1931년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삭감에 반대해 높이 12미터의 을밀대 지붕에 올라 농성하며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쳤습니다. 당시 조선의 남성 노동자 임금은 일본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조선 여성노동자는 그의 절반도 되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저항으로 지사는 출감 두 달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지만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1932년 제주 구좌읍에서는 일제의 착취에 맞서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다섯 분의 해녀로 시작된 해녀 항일운동이 제주 각지 800명으로 확산되었고 3개월 동안 연인원 1만7천명이 238회에 달하는 집회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지금 구좌에는 제주해녀 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광복절 이후 1년 간 여성 독립운동가 이백 두 분을 찾아 광복의 역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 중 스물여섯 분에게 이번 광복절에 서훈과 유공자 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분들도 계속 포상할 예정입니다. 광복을 위한 모든 노력에 반드시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게 하겠습니다.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낼 것입니다. 묻혀진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완전한 발굴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라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 함께 만든 나라입니다.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함께 성공한 나라는 없습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에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살려 전 세계를 경탄시킨 나라, 그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분단과 참혹한 전쟁, 첨예한 남북대치 상황, 절대빈곤, 군부독재 등의 온갖 역경을 헤치고 이룬 위대한 성과입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전 세계에서 우리만큼 역동적인 발전을 이룬 나라가 많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대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세대가 함께 이뤄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상과 역량을 스스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보면 누구나 느끼듯이 한국은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나라이고 배우고자 하는 나라입니다. 그 사실에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자부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70년의 발전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길입니다. 분단은 전쟁 이후에도 국민들의 삶속에서 전쟁의 공포를 일상화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막대한 경제적 비용과 역량소모를 가져왔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북부지역은 개발이 제한되었고 서해 5도의 주민들은 풍요의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조업할 수 없었습니다. 분단은 대한민국을 대륙으로부터 단절된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분단은 우리의 사고까지 분단시켰습니다. 많은 금기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막았습니다. 분단은 안보를 내세운 군부독재의 명분이 되었고 국민을 편 가르는 이념갈등과 색깔론 정치, 지역주의 정치의 빌미가 되었으며 특권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분단을 극복해야 합니다.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입니다. 저는 국민들과 함께 그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국민들의 힘 덕분입니다. 제가 취임 후 방문한 11개 나라, 17개 도시의 세계인들은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되살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우리 국민들에게 깊은 경의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국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한미동맹을 ‘위대한 동맹’으로 발전시킬 것을 합의했습니다. 평화적 방식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G20의 정상들도 우리 정부의 노력에 전폭적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아세안 국가들과도 ‘더불어 잘사는 평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시진핑 주석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로 했고 지금 중국은 한반도 평화에 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과는 남북러 3각 협력을 함께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아베 총리와도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그 협력은 결국 북일관계 정상화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은 그와 같은 국제적지지 속에서 남북 공동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남과 북은 우리가 사는 땅, 하늘, 바다 어디에서도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남북은 군사당국간 상시 연락채널을 복원해 일일단위로 연락하고 있습니다. ‘분쟁의 바다’ 서해는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평화의 바다’로 바뀌고 있고 공동번영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 비무장지대의 시범적 감시초소 철수도 원칙적으로 합의를 이뤘습니다. 남북 공동의 유해발굴도 이뤄질 것입니다. 이산가족 상봉도 재개되었습니다. 앞으로 상호대표부로 발전하게 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사상 최초로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뜻깊은 일입니다. 며칠 후면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북미 정상회담 또한 함께 평화와 번영으로 가겠다는 북미 양국의 의지로 성사되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양 정상이 세계와 나눈 약속입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틀 전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판문점 회담’에서 약속한 가을 정상회담이 합의되었습니다. 다음 달 저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평양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정상 간에 확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딛을 것입니다. 남북과 북미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이 걷힐 때 서로 간의 합의가 진정성 있게 이행될 수 있습니다. 남북 간에 더 깊은 신뢰관계를 구축하겠습니다. 북미 간의 비핵화 대화를 촉진하는 주도적인 노력도 함께 해 나가겠습니다. 저는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입니다.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북핵 위협이 줄어들고 비핵화 합의에까지 이를 수 있던 역사적 경험이 그 사실을 뒷받침 합니다.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평화경제, 경제공동체의 꿈을 실현시킬 때 우리 경제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날도 앞당겨질 것입니다. 국책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향후 30년 간 남북 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한 1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합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철도연결과 일부 지하자원 개발사업을 더한 효과입니다. 남북 간에 전면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때 그 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 이미 금강산 관광으로 8천9백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고 강원도 고성의 경제를 비약시켰던 경험이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협력업체를 포함해 10만 명에 이르는 일자리의 보고였습니다. 지금 파주 일대의 상전벽해와 같은 눈부신 발전도 남북이 평화로웠을 때 이뤄졌습니다. 평화가 경제입니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정착되면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할 것입니다. 많은 일자리와 함께 지역과 중소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철도, 도로 연결은 올해 안에 착공식을 갖는 것이 목표입니다. 철도와 도로의 연결은 한반도 공동번영의 시작입니다. 1951년 전쟁방지, 평화구축, 경제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유럽 6개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창설했습니다. 이 공동체가 이후 유럽연합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경의선과 경원선의 출발지였던 용산에서 저는 오늘,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합니다. 이 공동체는 우리의 경제지평을 북방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되어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식민지로부터 광복, 전쟁을 이겨내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뤄내기까지 우리 국민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국민들이 기적을 만들었고 대한민국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가고 있습니다. 독립의 선열들과 국민들은 반드시 광복이 올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경제 살리기라는 순탄하지 않은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까지처럼 서로의 손을 꽉 잡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달렸습니다. 낙관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광복을 만든 용기와 의지가 우리에게 분단을 넘어선, 평화와 번영이라는 진정한 광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산들부터 이정현까지, 광복절 기념행사 눈길 끈 스타들

    산들부터 이정현까지, 광복절 기념행사 눈길 끈 스타들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이 거행됐다. 15일 오전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독립유공자와 유족, 주한외교단, 시민 등 2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절 경축식이 진행됐다. 이날 독립유공자 후손 배우 박환희가 유공자 김화영 선생의 증손자 신기정 씨와 함께 태극기를 게양했다. 이어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일본인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정현과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 애국가를 제창했다. 이어 그룹 B1A4 산들이 테너 신상근과 ‘향수’를 불렀다. 이는 지상파 3사 MBC, KBS1, SBS를 통해 생중계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70년 전 中서류 찾아와라”… 머나먼 독립유공자 서훈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70년 전 中서류 찾아와라”… 머나먼 독립유공자 서훈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나라를 위해 모든 재산을 내놓았던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독립유공자 예우법을 제정해 후손들의 생활을 돕고 있다. 애국지사들을 유공에 따라 건국훈장 1~5급, 건국포장, 대통령표창 등으로 나눠 유족들에게 매달 58만~244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후손들이 조상의 독립운동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국가보훈처는 1895년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항거한 사실이 있어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받은 자에 한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나눠 독립유공자를 지정한다. 서훈 사실이 없을 때는 후손이 공적서와 평생이력서를 구비해 보훈처에 제출하면 국가보훈처는 제출 서류를 바탕으로 공적심사위원회 심의를 통해 포상 부여 여부를 결정한다. 보훈처는 심사 과정에 필요한 일제 치하 재판 기록 등 일반인들이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후손들에게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증명 자료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심사 과정에서 독립운동 여부를 인정하는 기준이 모호해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보훈처의 현행 독립유공자 지정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 탓에 독립운동가들이 독립투쟁 역사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는 6개월 이상 독립운동을 하거나 3개월 이상 옥고를 치른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선정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서훈 논란이 매년 끊이지 않는다. 최근 여성 독립운동가 안맥결(1901~1976) 여사에 대한 서훈 불인정이 논란이 됐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이자 서울 여자경찰서장을 지낸 안 여사는 3·1 운동에 참여하고 임시정부 선전원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펼치다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됐다. 1937년 6월 28일부터 11월 9일까지 종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으며 고문을 당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1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20일 만삭이라는 이유로 가석방됐다. 문제는 안 여사가 최소 ‘옥고 3개월 이상’이라는 조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포상에서 탈락했다는 점이다. 안 여사의 포상을 추진한 흥사단과 유족들의 반발이 거세자 보훈처는 지난 4월 옥고 기준 3개월 조항 폐지 등 포상 기준을 완화해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기준을 서둘러 바꿨다. 조선혁명군 부사령 박대호의 손자 박홍민씨도 할아버지의 포상 근거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그는 “1992년부터 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신청을 위해 보훈처가 요구한 할아버지 재판 서류와 석방 서류를 찾으려고 5년간 헤맸지만 중국에서 서류를 찾지 못했다”면서 “여러 독립운동 자료에 할아버지의 독립 유공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는데도 보훈처는 70년이 넘은 중국의 법원 서류를 가져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본군 비행기를 몰고 중국을 탈출해 항일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임도현 선생의 조카 임정범(63)씨도 마찬가지다. 큰아버지가 1931년 12월 동료 6명과 함께 일본군 비행기를 몰고 중국 상하이로 탈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서는 일제의 공출과 징병에 대한 거부 운동을 벌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43세에 생을 마쳤다. 임씨는 2004년부터 큰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심사를 8차례나 했지만 매번 탈락했다. 임 선생의 독립운동 관련 기록은 모두 기록 문건뿐이라 공신력 있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펼치고도 수감 기록 등 증빙 자료가 부족하거나 소속 단체의 성격 등을 이유로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3·1 운동 당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200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2017년 말 기준 독립유공자는 1만 4830명에 불과하다.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지정 절차가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난해 9월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독립유공자 발굴 및 포상 확대 계획안’을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정운현 상지대 초빙교수는 “해방 이후 친일을 청산하지 못해 1994년에서야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그동안 독립유공자 서훈에 필요한 사료와 자료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면서 “독립투쟁 역사에 비해 독립유공자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은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상 문턱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대우에도 소홀함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과 전 재산을 팔아 독립군을 양성한 이회영 선생은 독립유공자 3등급이다. 3·1 운동의 상장인 유관순 열사도 3등급이다. 반면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를 역임한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는 임병직은 1등급이다. 등급 기준에 원칙이 없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이 각각 발의한 상훈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개정안은 서훈을 재조정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했다. 현행 상훈법은 서훈의 추천, 확정, 취소에 대한 규정만 명시돼 있고 사후에 서훈을 재조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염원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jrlee@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독립운동가 11명 배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상룡…독립군 양성 ‘신흥무관학교’ 등 수백억 기부한 이회영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독립운동가 11명 배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상룡…독립군 양성 ‘신흥무관학교’ 등 수백억 기부한 이회영

    독립운동 명문가는 대표적으로 ‘5대 항일 가문’을 꼽는다. 안중근 의사, 석주 이상룡 선생, 우당 이회영 선생,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 일송 김동삼 선생 가문 등이다.안중근 의사 가문은 직계, 방계를 포함해 총 15명이 건국훈장을 받았다. 안 의사의 삼촌인 안태순 선생을 비롯해 안 의사와 동생 정근·공근, 사촌동생 명근·경근·홍근, 조카 원생·낙생·춘생·봉생·우생 등이다. 안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와 여동생 성녀, 조카 미생, 조카며느리 조순옥·오항선 등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지금의 대통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가문은 고성 이씨 종손 집안으로 경북 안동의 99칸 종택 ‘임청각’으로 상징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집안”이라고 언급한 가문이다. 3000석 재산을 독립운동에 기부했다. 이 집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배출되자 일제는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아예 임청각을 없애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문중과 안동 시민들이 반발하자 집 일부를 허물고 마당 한가운데 철길을 내버렸다. 직계 및 방계를 포함해 총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석주 선생의 당숙 이승화 선생을 비롯해 상동·봉희 형제, 아들 주형, 손자 병화, 조카 형국·운형·광민, 매부 박경종, 처남 김대락, 처제 김락 등이다.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은 1910년 한일병합 후 일가족이 만주로 망명했다. 전 재산 40만원(1969년 물가 기준 600억원대)을 처분해 독립군 양성을 위한 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짓는 등 항일투쟁 전선에 바쳤다. 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등 6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김대중 정부 때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손자들이다.●대법원장 지낸 의병대장 왕산 허위 선생 왕산 허위 선생 가문은 왕산 4형제들(허훈·허신·허겸·허위)과 직계 후손들, 왕산의 사촌인 허형 선생의 형제들과 후손들, 항일 시인 이육사 선생의 집안까지 아울러 10여명이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낸 허위 선생은 1908년 1월엔 전국 13도 연합 의병부대 군사장으로서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하며 일본군을 격퇴하기도 했다. 허위 선생은 같은 해 6월 일제에 체포돼 경성감옥(서대문 형무소) 제1호 사형수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시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청량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도로를 ‘왕산로’라고 명명했다. 연해주에 살던 허위 선생의 후손들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옮겨졌다. 선생의 6대손이자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인 한 대니스(8)군이 지난 13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만주벌의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동삼 선생 가문 역시 다수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일송 선생을 비롯해 숙부뻘인 김대락 선생, 아우 동만, 형 장식, 사돈 이원일 등 총 5명이 독립유공 서훈을 받았다. ●하와이 청년 운동가 강영각 등 속속 공개 새로운 명문가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하와이 한인 사회의 청년 운동가였던 강영각(1896~1946) 애국지사 가문도 독립유공자를 6명이나 배출했다. 강영각 지사의 부친인 강명화 지사와 손위 형들인 영대·영소·영문·영상 지사도 모두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에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강명화 지사 부자(父子) 6명은 모두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포상을 받았다. 강영각 지사의 누나인 강영실의 남편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장을 지낸 양우조 지사다. 두 집안이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강영각 지사의 딸인 수잔 강 여사는 지난 13일 1920~30년대 강영각 지사와 하와이 한인 청년 단체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첩 2권과 그가 발행한 영자 신문인 ‘더 영 코리안’(The Young Korean), ‘디 아메리칸 코리안’(The American Korean) 등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며 부친의 미국에서의 항일 운동을 공개했다. jrlee@seoul.co.kr
  • [73주년 광복절] 文대통령, 임시정부 요인 후손과 함께

    [73주년 광복절] 文대통령, 임시정부 요인 후손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 앞서 임시정부 주요 요인의 후손 10명과 임시정부 때 사용된 태극기를 배경으로 독립유공자의 인물사진이 든 액자를 든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73주년 광복절] “누명 벗은 조봉암 선생, 독립유공자 서훈 더 늦으면 안 돼”

    [73주년 광복절] “누명 벗은 조봉암 선생, 독립유공자 서훈 더 늦으면 안 돼”

    3·1운동 선봉장… 현실 진보정치 선구자1959년 간첩죄 사형 2011년 무죄 판결 동명의 국방헌금 내역에 심사 3번 탈락‘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이는 1956년 진보당을 창당하고 3대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등 ‘현실주의적 진보정치’의 선구자로 불리는 조봉암(위)의 어록에 있는 글귀로, 그가 묻혀 있는 서울 중랑구 망우리 묘의 비석에도 새겨져 있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곽정근(아래·85) 회장은 “조봉암 선생은 항일독립운동과 근로 대중을 위해 한평생을 살았던 분이다”면서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곽 회장은 “조봉암 선생은 20살 때인 1919년 3·1운동 선봉에 서다 징역 1년을 살았다”면서 “당시에는 독립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던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다 1933년 상하이에서 체포돼 신의주형무소에서도 7년을 옥살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일제 치하에 있던 시기인 1941년 12월 23일자 ‘매일신보’에 “인천 서경정에 사는 조봉암씨가 국방헌금 150원을 냈다”는 단신 기사를 문제 삼아 조봉암의 서훈을 거부하고 있다. 이를 이유로 조봉암은 2011년, 2015년, 2018년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곽 회장은 “기사에 나온 장소는 조봉암 선생과 살던 곳도 다르고 선생은 그만큼의 돈도 없었다”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정치적인 적들이 친일을 했다며 이용했을 텐데 그런 기록도 없다”고 반박했다.고향인 충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인천으로 올라와 고학을 하던 곽 회장은 신문사에서 진보당 당원들이 토론하던 모습을 보고 조봉암의 사상에 매료돼 1956년 대선 선거운동에 뛰어든다. 곽 회장은 “당시에는 선거운동만 해도 잡아가는 시기라 운동원도 5~6명 정도였다”면서 “인천부두노동자들이 조봉암 선거 운동 차량에 손을 흔들며 따라오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돌이켰다. 초대 농림부 장관과 2대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조봉암은 간첩죄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59년 7월 3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곽 회장은 “선생이 주장한 ‘진정한 민주주의’, ‘서민경제’, ‘평화통일’이라는 시대정신은 미래지향적이었다”면서 “대선이 끝나고 위협을 느낀 이승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법살’(법에 의한 살인)을 당했다”고 아쉬워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조봉암이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복역한 사실이 있으므로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했다. 2011년 대법원 무죄 판결로 명예도 되찾았다. 곽 회장은 “내년이면 조봉암 선생 탄생 120주년, 서거 60주년”이라면서 “늦었지만 건국훈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뉴스 분석] 위안부 문제 ‘외교협상 불가’ 못박았다

    [뉴스 분석] 위안부 문제 ‘외교협상 불가’ 못박았다

    “日, 깊이 반성하고 각성해야 해결될 것” 외교 아닌 보편적 정의 차원 해법 강조 北과 안중근 의사 유해 공동 발굴 추진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 간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 자신과 일본을 포함, 전 세계가 성폭력과 여성의 인권 문제를 깊이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성과 교훈으로 삼을 때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충남 천안 국립망향의동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이 문제가 한·일 간 외교분쟁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으로 쟁점화하는 대신 보편적 정의의 원칙에 입각한 해결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1월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졸속으로 이뤄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지 않되, 그대로 수용하거나 이행하지는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1월의 정부 방침에 대한 논리적 완결로 볼 수 있다. 즉 위안부 문제를 단순한 외교적 협상의 차원이 아니라 보편적 여성 인권의 차원으로 규정한 것이다. 주고받는 외교적 협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반성해야 할 문제로 규정하면 한·일 위안부 합의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지고 일본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외교적 전략 차원에서 보면,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는 원활히 유지하면서도 위안부 문제의 중대성은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위안부 문제를 외교 차원보다 훨씬 높은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데 지향점이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이 8·15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한 것 자체가 일본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애국지사 13명과 국내외 독립유공자 후손 22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며 “북한과 공동사업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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