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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가 비하’ 글 쓴 윤서인에 802억원 소송?

    ‘독립운동가 비하’ 글 쓴 윤서인에 802억원 소송?

    웹툰 작가 윤서인(47)씨의 ‘독립운동가 비하’ 글과 관련해 광복회가 집단소송을 예고한 가운데 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윤서인 소송 금액 802억원’이라는 글이 확산됐다. ‘본안사건 인지 및 송달료 계산 결과’라는 제목의 글은 소송물가액(청구 금액)을 802억원으로 명시하고, 소송에 필요한 인지대만 2억 8125만원이라고 언급해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 게시글은 ‘가짜뉴스’로 확인됐다. 27일 광복회에 따르면 윤씨를 상대로 한 소송은 아직 제기되지 않았다. 광복회는 다음달 설 연휴 이후 광복회원 200~300명을 모아 명예훼손과 모욕에 따른 위자료 청구소송에 들어갈 계획이다. 위자료 청구 금액은 1인당 100만원이다. 참여 인원이 많아지면 2차, 3차 등 추가 소송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광복회가 승소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청구 금액을 모두 받아 내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씨가 특정 독립운동가를 지칭하지 않아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특정성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제약에도 소송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광복회 측은 독립운동가를 모욕하는 행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소송을 대리하는 정철승 변호사는 “독립 투쟁의 역사를 깎아내리는 행동에 그동안 사회가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며 “소송을 통해 만연했던 독립운동 폄하 문화를 청산하고 단호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광복회 측은 ‘소송액 802억원’ 글의 반향이 컸던 것도 윤씨 행동에 분노하는 시민이 그만큼 많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정 변호사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을 봐 온 일반인들이 오히려 독립운동가 후손들보다 더 크게 분노하고 가슴 아파한다”며 “해선 안 될 말로 이목을 끌고 돈을 버는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씨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 사진을 비교해 올리고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사는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 한 걸까.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글을 게시해 논란이 일자 사과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독립유공자 1500명 중 ‘가짜’ 검증…김원웅 부모도 대상

    독립유공자 1500명 중 ‘가짜’ 검증…김원웅 부모도 대상

    정부가 독립유공자 1500여명의 공적을 올해 다시 검증해 ‘가짜 유공자’로 드러날 경우 서훈을 박탈할 예정이다. 국가보훈처는 27일 청와대 서면 업무보고에서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 1차 대상자인 초기 서훈자(1949∼1976년)와 언론에서 적절성 문제가 제기된 유공자 등에 대해 연말까지 검증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검증 대상자는 모두 1500여명에 이른다. ‘밀정 의혹’ 인사들도 대거 전수조사 대상 이 중에는 김원웅 광복회장의 부모인 김근수(1912∼1992년)·전월순(1923∼2009년)씨도 포함됐다. 부친 김근수씨는 1966년 서훈을 받았고, 전월순씨는 1990년대 포상을 받아 초기 서훈자는 아니지만, 언론과 국회 등에서 문제가 제기돼 1차 대상자에 포함했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일제강점기 독립군 부대 대한군무도독부와 대한북로독군부 사령관을 지낸 최진동(1882∼1945) 장군을 비롯해 ‘밀정 혐의자’라는 의혹이 불거진 인사들도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동 장군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유공자로 초기 서훈자여서 포함됐다. 손혜원 부친·강경화 시부 등은 검증 대상 제외 일각에서는 보훈처가 ‘언론을 통해 문제가 제기된 유공자’도 조사한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손혜원 전 의원의 아버지 손용우(1923∼1999년)씨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시아버지 이기을 전 연세대 명예교수(1923∼2020년)도 검증 대상자에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제외됐다. 보훈처 관계자는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할 당시 이미 문제가 제기됐던 인사만 대상”이라며 “손혜원 전 의원의 부친과 강경화 장관 시부의 경우 초기 서훈자가 아니고, 처음엔 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했다가 나중에 포상 기준이 달라지면서 서훈된 사례여서 1차 조사 대상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훈처는 특히 기존에 심사하던 공적검증위원회 외에 최근 특별자문위원회를 추가로 구성해 심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자문위는 20여명 규모로, 원로학자 등 각계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 사료 위주로 판단하는 공적검증위에 더해 특별자문위를 통해 여론까지 두루 살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 시비가 일부 언론 등을 통해 잇달아 제기되자 갑자기 검증 절차 강화에 나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선 친일, 후 독립운동’ 처리 방안 고민 이남우 보훈처 차장은 전날 사전브리핑에서 “국가가 포상했던 분들의 서훈을 취소하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여서 포상보다 훨씬 더 신중한 절차를 거쳐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적 전수조사는 친일 행적 등이 있으면서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2019년부터 추진 중인 사업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보훈처가 아닌 문교부와 총무처 등에서 중복 포상이나 부실한 심사 등으로 ‘부적격자’가 서훈을 받은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수조사 결과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관련 법에 따라 공적심사위 및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서훈이 취소된다. 다만 기존에 없던 특별자문위가 생기면서 전수조사 작업이 계획보다 더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훈처는 초기 서훈자 등에 대한 1차 조사를 2019년 7월까지 완료하겠다던 당초 시한도 이미 한참 넘긴 상황이다. 보훈처는 ‘가짜 유공자’와 달리 독립운동을 하고도 그간 국가로부터 예우받지 못한 ‘숨은 유공자’를 발굴하고 포상은 더 적극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심사기준 개선안을 마련해 올해 광복절 계기 포상 시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숨은 유공자 발굴’ 방침으로 사실상 심사 기준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훈처는 ‘선 친일, 후 독립운동’ 등의 경우에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외 독립유공자 유해 국내 봉환사업 계속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해 현충원에 안장하기 위한 사업도 계속 진행된다. 보훈처는 상반기 중 3위의 대상자를 선정해 하반기 봉환한다는 계획이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의 경우 양국 정상 간 합의대로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과 연계해 재추진할 계획이다.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해선 계속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은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중국이 대북관계 등을 고려해 적극 호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앞서 남북은 참여정부 시절 공동으로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한 적이 있지만, 이후엔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이 차장은 안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이 “(남북간) 관계 개선을 위한 물꼬 트는 사업으로도 할 수 있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사업”이라면서 “북한과의 협조도 계속 노력하되, 중국과의 개별적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온 국민이 분노”…윤서인 ‘802억 소송액’이 담은 뜻은

    “온 국민이 분노”…윤서인 ‘802억 소송액’이 담은 뜻은

    ‘802억 소송액’은 아니지만...“독립투쟁 역사 깎는 행위 근절되길”웹툰 작가 윤서인씨가 ‘독립운동가 비하’ 글을 게시해 논란이 일자 광복회가 집단 소송을 예고한 가운데, 지난 25일 온라인 상에서는 ‘윤서인 소송 금액 802억원’이라는 글이 확산됐다. ‘본안사건 인지 및 송달료 계산 결과’라는 제목의 글에는 소송물가액(청구금액)이 802억원이라고 적혀 있었고, 소송에 필요한 인지대도 2억 8125만원에 달하는 큰 금액이 명시됐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대부분 “반드시 그대로 재판이 이뤄져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소송은 아직 법적 준비를 거치고 있는 단계로 게시글은 사실이 아니다. 아직 소송 참여 인원을 확정하지 않아 소송 비용을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 누군가가 해당 글을 만들어 올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실 여부를 떠나 게시글이 큰 관심을 끈 것은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과 관심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설 이후 소송 진행…1인당 100만원 위자료 청구 26일 광복회에 따르면 다음 달 설 연휴 이후로 200~300명이 1차 소송에 들어갈 계획이다. 위자료 청구 금액은 1인당 100만원 수준이다. 광복회원 8300명이 모두 소송에 참여하면 83억원에 달한다. 참여 인원에 따라 2차, 3차 등 추가적인 소송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씨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을 비교한 사진을 올렸다. 이와 함께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사는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 걸까”,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글을 게시해 논란이 일었다. 광복회는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를 상대로 명예훼손과 모욕죄 두 가지 사안으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소송에서는 윤씨가 게시물에서 인물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점 등 단순 개인의견으로 판단될 수 있어 법적 다툼이 예상된다. “독립투쟁 역사 깎아내리는 행위 멈추는 계기 되길” 이번 소송은 재판 결과를 떠나 윤씨를 처벌하는 목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설명이다. 소송이 그동안 만연했던 독립운동 폄하 문화를 반드시 청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을 대리하는 정철승 변호사는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독립투쟁의 역사를 깎아내리는 행동에 그동안 사회가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며 “이번 소송을 통해 이런 행동을 앞으로 단호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일반 시민들이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정 변호사는 “국가가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보상해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꼈던 일반인들이 오히려 독립유공자 후손들보다 더 크게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1인당 100만원이라는 위자료 액수도 윤씨와 같은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상징적인 면이 크다. 정 변호사는 “차마 아무도 할 수 없는 말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돈을 버는 행위가 더는 이뤄질 수 없도록 이제는 자정 노력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대구 조선은행에 폭탄… 일제 손에 죽는 치욕 대신 ‘옥중 자결’

    대구 조선은행에 폭탄… 일제 손에 죽는 치욕 대신 ‘옥중 자결’

    1929년 12월 28일자 신문 1면에 “근래에 보지 못한 대음모”, “미증유의 대사건” 등의 부정적인 수식어를 단 큰 사건이 대서특필됐다. 바로 장진홍 의사의 대구 폭탄 투척 의거이다. 일제는 사건이 발생한 뒤 2년 2개월이 넘도록 보도를 통제하다 장 의사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을 검거한 뒤에야 공개했다. 폭탄을 던져 일제 기관들을 폭파하기로 계획한 장 의사는 1927년 6월 일본인 고바야시로부터 다이너마이트 30개와 뇌관 30개, 도화선 등을 15원을 주고 구입해 폭탄을 만들기로 했다. 폭탄 투척 대상으로 삼은 곳은 경북도청, 경북경찰부, 조선은행 대구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등이었다. 의사는 냄비와 솥 등 쇠붙이를 부수어 파편을 만들고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폭탄을 제조했다. 동지를 규합하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단독으로 거사를 치르기로 하고 경북 칠곡군 봉화산 골짜기에서 폭탄 성능 실험에 성공했다.1927년 10월 18일 아침. 대구 덕흥여관에 투숙한 의사는 나무상자 4개에 폭탄을 넣어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신문지로 포장했다. 11시 30분쯤 여관 종업원에게 소포 4개를 주면서 “나는 몸을 다쳐 걸을 수 없으니 이 벌꿀 선물 상자를 조선은행, 도청, 식산은행의 순서대로 급히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종업원은 친절한 의사의 말에 의심하지 않고 소포를 받아 먼저 조선은행으로 가서 4개 중 1개를 전달했다. ●안동·영천경찰서 폭파 제2 거사는 실행 못 해 바로 이때 포병 출신 일본인 은행원이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나무 상자를 열었다. 은행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두려움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벌꿀 선물이라던 상자 속에는 불이 붙은 도화선이 2㎝밖에 남지 않은 폭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은행원들은 상자의 도화선을 끊고 다른 상자 3개는 건물 앞 공터에 갖다 놓고는 경찰에 연락했다. 대구경찰서 일경 10여명이 출동해 폭탄 3개를 은행 옆 길에 옮겨 놓았다. 채 2분이 지나지 않은 11시 50분쯤 폭탄이 굉음과 함께 잇따라 폭발했다. 현장에 있던 은행원과 일경 등 5명이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은행 창문 70여개가 부서졌다. 유리 파편이 대구역까지 날아갈 정도로 폭탄의 위력은 엄청났다. 장 의사는 1895년 6월 6일 칠곡군 인동면 문림리(현 구미시 인동)에서 태어났다. ‘충효’를 가훈으로 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의사는 애국심과 효심을 중히 여기며 성장했다. 1907년 인명학교(현 인동초등학교)에 입학해 의사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장지필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졸업했다. 장지필은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심어 주는 애국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는 인명, 협성 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제자들에게 민족의식을 깨우쳐 준 우국지사였다. 의사는 1914년 3월 조선보병대에 들어갔다. 1910년 한일병합 후 대한제국 친위대를 개편한 부대였다. 조선보병대 입대는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중도에 보병대를 그만두고 광복단에서 활동하던 의사는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1918년 만주 봉천(현 선양)으로 갔다. 만주에서 의사는 조선광복단 이국필, 김정묵 등을 만나 과감한 무장투쟁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넘어간 의사는 한인 100여명을 규합해 조선보병대 경험을 살려 ‘보병조전’(步兵操典)을 설치하고 군사훈련을 시켰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적군(赤軍)과 백군(白軍)의 내전이 격화되고 있었는데 하바롭스크가 백군에 점령되고 일본 관동군이 출병하자 귀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국 후 의사가 착수한 일은 3·1운동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다. 집안의 전 재산인 전답 5두락(약 1000평)을 몽땅 팔아 조사 비용을 마련했다. 의사는 서적 행상으로 가장,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가 자행한 학살, 방화, 고문 등을 상세히 조사해 문건으로 만들었다. 마침 1919년 7월 미국 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했는데 함대에는 경북 출신 승무원 하사관 김상철이 있었다. 의사는 김상철에게 조사서를 전달하고 세계 각국에 배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일제에 항거할 최종 수단으로 폭탄 투척을 생각하고 있었다. 1927년 4월 무렵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폭탄 전문가 호리키리를 만난 것은 의사의 의지를 불태우게 된 계기가 됐다. 호리키리는 의사에게 다이너마이트와 철편 등을 이용한 폭탄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도 동지 이름 발설 안 해 의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후 인상착의를 바꾸고 도피해 경북 선산에 은신했다. 폭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의사는 경북 안동과 영천에서 경찰서 등 주요 기관을 폭파하는 제2의 거사를 계획했지만 일경의 감시망이 좁혀지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신변의 위험을 느끼자 의사는 1928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경시청과 중의원에 폭탄을 던질 계획을 세우면서 오사카에서 안경점을 하는 동생집에 머물렀다. 한편 일제는 의사의 폭탄 투척을 중대 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망을 좁혀 갔다. 수사 과정에서 관련이 없는 이정기 등 8명을 검거해 악독한 고문으로 자백하게 만든 뒤 진범으로 꾸며 재판에 넘기기도 했고, 폭탄 상자에 쓰인 글씨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민족저항 시인인 이육사를 투옥시키기도 했다. 일경은 이런 엉뚱한 수사 끝에 마침내 의사가 벌인 일임을 알아내고는 체포에 혈안이 됐다. 그러다 일본에서 귀국한 노동자로부터 의사를 오사카에서 본 적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결국 동생집에 숨어 있던 의사는 일본으로 급파된 일제 형사들의 간교한 계략에 체포되고 말았다. 1928년 2월 19일 의사는 대구로 압송됐다. 의사는 “일본이 멸망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며 이번 거사는 야만 일본을 타도하기 위하여 정의의 폭탄을 던진 것인데 성공하지 못하고 너희들의 손에 붙들린 것이 천추의 유한이다”라고 일경들을 호통쳤다. 또 조선인 경관들에게는 “한민족의 피를 받고도 일제 경찰의 주구가 되어 동족의 해방운동을 이다지도 방해하는 악질 조선인 경관의 죄상이야말로 나의 죽은 혼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일제는 공범을 대라며 혹독한 고문을 했지만, 의사는 어느 누구의 이름도 대지 않고 혼자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30년 2월 17일 1심에 이어 4월 24일 복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됐다. 의사는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웃은 다음 주먹만 한 돌을 주머니에서 꺼내 재판장에게 던지고 큰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한 다음 다시 의자를 집어던지며 항거했다. ●張의사 자결에 재소자 1300명 만세·단식투쟁 최종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되자 의사는 일제의 손에 치욕스런 죽음을 당하느니 깨끗이 죽기로 결심했다. 1930년 6월 5일(음) 무더운 밤 11시쯤 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했다. 의사의 나이 35세였다. 의사의 자결 사실을 안 대구형무소 재소자 1300여명은 만세를 부르고 단식투쟁을 하며 농성을 벌였다. 의사의 부모는 충격을 받고 세상을 떴다. 일경은 의사의 장례도 방해했다. 의사의 시신은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지도 못하고 칠곡 석적면 남율의 언덕에 쓸쓸히 묻혔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의사는 순국하기 전 옥중에서 간수를 통해 조선 총독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너희들 일본제국이 한국을 빨리 독립시켜 주지 않으면 멸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내 육체는 네놈들의 손에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위하여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고야 말겠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추미애, 일부 반발 속 광복회 ‘최재형상’ 직접 수상

    추미애, 일부 반발 속 광복회 ‘최재형상’ 직접 수상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광복회가 수여하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상’을 일부 단체의 반발 속에서 25일 직접 수상했다. 광복회에 따르면 추미애 장관은 이날 오후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해 김원웅 광복회장으로부터 최재형상을 수상했다. 광복회는 추미애 장관이 일제 후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해승의 땅 등 공시지가 520억원(시가 3000억원) 상당의 친일재산 171필지의 국가귀속을 위해 재임기간 중 노력한 점을 인정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이에 사단법인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최재형상을 후손과 본 사업회의 승인 없이 수여하는 것은 최재형 선생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미 자신들이 ‘최재형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복회가 별도로 협의도 없이 상을 만들고, 특정 정치권 인사 등에게 상을 줘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고 독립운동 정신도 퇴색시키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사업회는 “여야를 초월해 국민적 존경을 받는 최재형 선생의 이름을 빌려 상을 수여하는 것은 광복회 정관에 금지된 정치활동”이라며 “김원웅 광복회장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문영숙 이사장은 이날 오전 여의도 광복회를 직접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고 최재형(1860~1920) 선생은 러시아 한인사회 독립운동의 대부로 재산 대부분을 항일 투쟁 지원에 쓴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지원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광복회는 최재형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자 지난해 이 상을 만들었다. 같은 해 5월 첫 수상자인 고 김상현 의원에 이어 12월에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처장이 상을 받았고, 추미애 장관이 세 번째 수상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포토]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수상한 추미애 장관

    [포토]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수상한 추미애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왼쪽)으로부터 ‘독립운동가 최재형상’을 받은 뒤 임시의정원 태극기를 들고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1.1.25 연합뉴스
  • 광복회 ‘최재형상’ 받는 추미애… 기념사업회 반발

    광복회 ‘최재형상’ 받는 추미애… 기념사업회 반발

    독립운동가 후손 단체인 광복회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딴 상을 수여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4일 광복회에 따르면 추 장관은 25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리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시상식에 참석해 해당 상을 받을 예정이다. 광복회는 “(장관 재임 기간)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이혜승의 친일재산 등 총 171필지 공시지가 520억원(시가 3000억원)의 국가귀속 노력이 인정된다”며 추 장관의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광복회는 지난해 러시아 한인사회 독립운동의 대부인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정신을 기린다는 취지로 해당 상을 만들었으며 그해 5월 첫 수상자로 고 김상현 의원을, 12월에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사단법인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는 입장문을 통해 “최재형상을 후손과 본 사업회 승인 없이 수여하는 것은 최 선생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이미 자신들이 같은 이름의 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협의 없이 상을 만든 데다 특정 정치권 인사 등에게 상을 줘 독립운동 정신을 퇴색되고 있다는 취지다. 이에 광복회는 “최재형상뿐만 아니라 ‘단재 신채호상’, ‘이육사상’ 등을 만들어 독립운동가들을 더 잘 알리고 선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상의) 남발이나 정치적 목적을 노린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광복회, 추미애에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수여키로…다른 단체 반발

    광복회, 추미애에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수여키로…다른 단체 반발

    “법무장관 재임 중 친일재산 국가귀속 노력 인정”최재형사업회 “광복회장 정치활동…불필요한 혼란” 독립운동가 후손 단체이자 김원운 회장이 이끄는 광복회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독립운동가 이름을 딴 상을 수여하기로 하면서 해당 독립운동가 관련 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광복회는 25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독립운동가 최재형 상’ 시상식을 연다. 광복회는 지난 22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 받은 이해승의 친일재산 등 총 171필지 공시지가 520억 원(시가 3000억원)에 대해 (추미애 장관 재임기간 법무부의) 국가귀속 노력이 인정된다”고 수상자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광복회에 따르면 추미애 장관은 직접 시상식에 참여해 수상할 예정이다.고 최재형(1860~1920) 선생은 러시아 한인사회 독립운동의 대부로 재산 대부분을 항일 투쟁 지원에 쓴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지원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광복회는 지난해 고인의 이런 정신을 기린다는 취지에서 ‘최재형 상’을 만들어 같은 해 5월 첫 수상자로 고 김상현 의원을, 12월에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처장에게 각각 수여했다. 이후 한 달 만에 추미애 장관을 세 번째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식에 사단법인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는 입장문을 내고 “‘최재형상’을 후손과 본 사업회 승인없이 수여한다는 것은 최재형 선생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이미 자신들이 ‘최재형 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복회가 별도로 협의도 없이 상을 만들고, 특정 정치권 인사 등에게 상을 줘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고 독립운동 정신도 퇴색시키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사업회는 “여야를 초월해 국민적 존경을 받는 최재형 선생의 이름을 빌려 상을 수여하는 것은 광복회 정관에 금지된 정치활동”이라며 “김원웅 광복회장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광복회 관계자는 “최재형 상 뿐만 아니라 ‘단재 신채호 상’, ‘이육사 상’ 등을 만들어 독립운동가들을 더 잘 알리고 선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엄정하게 내부 심사 기준에 의해 시상하고 있으며 남발이나 어떤 정치적 목적을 노리고 수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훈장 거부한 전쟁영웅 ‘김영옥’을 아십니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훈장 거부한 전쟁영웅 ‘김영옥’을 아십니까

    한국·유럽·미국서 훈장받은 유일한 군인과감한 결단력으로 독일군 포로 생포장군이 부관 계급장 떼어내 달아주기도6·25전쟁 휴전선 60㎞ 북상시킨 주역 한국 고아 돌보고 美한인 권익 위해 애써세상엔 수많은 영웅이 있습니다. 특히 치열한 전투 속에선 영웅이 더 많이 탄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영웅은 많지 않습니다. 부풀려진 전공에 도취해 높은 자리에 앉고,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들이 더 흔합니다. 그런데 이 군인은 좀 달랐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했고 한국과 미국, 유럽에서 모두 훈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 전투에선 누구보다 용맹했지만, 권력을 쥐기보다 사회봉사에 앞장섰던 휴머니스트. 고(故) 김영옥(1919~2005) 대령입니다. ●피사의 사탑에 처음 오른 연합군 24일 김영옥 평화센터와 일대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저자 한우성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 따르면 김영옥은 독립운동가 김순권씨의 아들로, 1919년 1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병사로 입대했다가 장교가 됐지만, 그가 배치된 곳은 일본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100보병대대였습니다.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군은 이들을 ‘일본놈’이라고 공공연하게 멸시하고 조롱했지만 김영옥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일본계 부대원들도 그를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우리는 같은 미국인으로, 같은 목표를 위해 싸운다”고 감쌌습니다. 1943년 100대대는 유럽을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상륙했습니다. 독일군은 이탈리아 중남부 지역에 방어선인 ‘구스타프 라인’을 치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은 적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포로가 절실했습니다. 대대 작전참모인 김영옥 중위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계가 느슨한 아침에 적진을 돌파해 포로를 잡아오겠다”고 나섰습니다. 실제로 부대원 1명만 데리고 갈대밭을 기어가 적 2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탈리아 주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중장은 그의 초인적인 성과와 낮은 계급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특별무공훈장 수여식에서 부관의 대위 계급장을 떼어내 김영옥에게 전달하고 직접 진급을 지시했습니다. 그는 피사와 로마 해방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피사의 사탑에 처음 오른 연합군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이어 프랑스로 건너가 브뤼에르, 비퐁텐느 지역을 해방시켰습니다. 비퐁텐느 마을 성당 동판에는 지금도 ‘김 대위’를 칭송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동판에는 “100대대 영웅들중 1명인 김영옥 대위, 이 성당 문 앞 왼쪽에서 부상했으나 치넨(의무병 이름)과 함께 성공적으로 탈출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는 기관총탄 3발을 맞고 사경을 헤매다 항생제 처치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프랑스·한국에서도…수많은 공적 쌓아 박갑룡 송원대 교수가 쓴 ‘휴머니스트 전쟁영웅 김영옥 대령의 리더십 연구’ 논문에 따르면 100대대 부대원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리더십을 잊지 못해 그를 따랐습니다. 직접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며 달리는 등 늘 선봉에 섰기 때문입니다. 나베 다카시게는 “그는 항상 전선에 있었고, 선봉에 있었다”며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환준 김영옥 평화센터 사무국장은 “일본계 미국인들이 훗날 그의 휠체어를 끌며 존중하고 따랐다.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겸손·헌신·용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리처드 윈터스 예비역 소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이런 공로로 이탈리아에서 ‘동성무공훈장’과 최고훈장인 ‘십자무공훈장’을, 프랑스에서 십자무공훈장과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한국군은 물론 미군 중에서도 이렇게 많은 훈장을 받은 이는 없습니다. 그는 강력한 포병 화력을 바탕으로 한 전술을 자주 써 미군 전술 교본 변화에도 공헌했습니다.더 놀라운 사실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예비역 대위로 자원입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정보 수집 업무를 맡으며 ‘한국인 유격대’를 조직했습니다. 1951년 5월 중공군 2차 춘계공세 때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서 참전해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고, 북상한 유엔군 부대 중 가장 빠른 진격으로 ‘캔자스선’(38도선 인근의 전술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끈 부대는 휴전선을 60㎞ 위로 밀어올리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부하에게 주라” 훈장 거부한 군인 진격이 너무 빠른 나머지 미군의 오폭을 받고 부상했지만 일본 오키나와에서 치료받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공로로 미국에서 동성무공훈장, 은성무공훈장 등을 받았고, 한국·유럽에서 받은 훈장까지 합하면 주요 무공훈장만 19개나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적을 뽐내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 당시 특별무공훈장을 주려는 연대장에게 “훈장은 받을만큼 받았다. 부하들에게 주라”며 거부했습니다. 일대기를 쓴 한 전 이사장이 취재차 무공훈장을 몇 개나 받았는지 물어보자 “잊어버리고 세어보지도 못했다”며 차고 구석 종이상자에 넣어둔 은성무공훈장을 꺼내 보여줄 정도였습니다.그는 수많은 고아들을 도운 ‘휴머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도착한 부산역에서 1000명이나 되는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이에 그는 미군 장교들에게 “나는 한국인 2세다. 여기 굶주린 아이들이 우리만 보고 있다. 우리는 미 육군 장교다. 한두끼쯤 안 먹어도 굶어죽지 않는다”며 전투식량을 나눠주도록 했습니다. 전투 중에도 장병 1인당 50센트씩을 모아 ‘경천애인사’라는 고아원에 전달했습니다. 유엔군 중 특정 고아원에 지원금을 준 부대는 김영옥의 부대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美 한인 동포 돕는데 여생을 바치다 1972년 대령으로 전역한 그는 정치권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을 돕는데 여생을 바쳤습니다. 미국 최대 소수인종 비영리 보건기관인 ‘한인건강정보센터’와 ‘한미연합회’를 설립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을 설득해 미 캘리포니아주 의회 위안부 결의를 돕고,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조사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늘 “나는 100%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렇게 원했던 ‘참군인’이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광복회, ‘최재형상’에 추미애 장관 선정… “친일재산 귀속에 노력”

    광복회, ‘최재형상’에 추미애 장관 선정… “친일재산 귀속에 노력”

    광복회가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수상자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선정했다고 22일 밝혔다. 광복회는 “추 장관이 재임 동안 이명박 정부가 중단시킨 친일 재산 국가 귀속을 다시 시작했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광복회는 추 장관이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이해승의 재산 등 공시지가 520억원(시가 3000억원)에 달하는 총 171필지를 국가에 귀속시켰다고 전했다. 광복회는 지난해 5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기리는 ‘최재형상’을 제정하고 1회 수상자로 김상현 전 의원을 선정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처장이 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독립운동가 후손의 일침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일침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 사진을 올리며 “대충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비하해 논란이 된 웹툰 작가 윤서인. 독립운동가 후손은 “허름한 시골집을 가지고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를 둔 후손으로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일침했다. 윤서인은 사건 초기 “논란이 된 글은 너무 짧게 쓴 게 실수”라고 사과하는 듯 했지만 광복회의 위자료 소송 예고에 “정말 이게 법원에서 인용이 될 거라고 생각하심? 이게 인용된다면 법원 문 닫아야지. 소송비 수십억은 그 가난하다는 독립운동가 후손들한테 걷으시는지 궁금?”이라며 본래의 태도를 유지했다. 더 나아가 광복회 소송을 대리하는 정철승 변호사가 자신을 ‘하찮은 자’라 표현했다며 모욕·명예훼손·협박을 주장하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윤서인이 올린 사진에서 친일파 후손의 집은 으리으리했다. 그에 비해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은 허름한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친일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씁쓸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허름한 시골집은 조병진 애국지사의 딸이 살았던 곳이었다. 조병진 선생은 경북 영천에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과 태극기를 제작하고 1919년 3·1 운동 당시 1000여명의 사람들과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주도했다. 일본 경찰에게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태형 90대와 고문을 받고 불구의 몸이 됐고 1961년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헌을 기려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조병진 선생은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고, 현재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가 조병진 선생의 증손자는 20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윤서인이 비하한 독립운동가 조병진 님의 손자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최근의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조병진 선생의 손자는 “할아버지가 생활하신 시골 생가는 지금 저의 어머니가 혼자 지키고 있다”라며 “대한민국의 서민들이라면 모두가 겪었을 일제강점기 암울하고 힘든 시기를 저희 집안도 함께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장남 즉 저의 할아버지는 일제 징용에 징집되어 중국 산둥성 부근에서 징집된 지 한 달도 안 되어 전사하시는 슬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에 부역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조그마한 힘이라도 함께 한 할아버지의 인생을 대충 살았다고 폄하한 윤서인 씨에게 묻고 싶다. 과연 잘살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은 그 조상들이 자랑스러울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가슴 한구석에는 부끄러움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꼭 그러기를 바란다”고 일갈했다.손자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3·1절이나 광복절 기념식에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초대되어 다녀오시며 자랑스러워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며 “약주 한잔하시면 독립운동을 하셨던 할아버지를 자랑하시던 아버지를 저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손자는 “잘못된 시선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하려 한다.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나 그 후손들은 결코 이 시대를 대충 살지 않았으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이 시대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비록 경제적으로 친일파 후손들보다 어려울지라도 정서적으로,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를 둔 후손으로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은평역사한옥博 ‘백범 김구 쓰다’ 기획전

    은평역사한옥博 ‘백범 김구 쓰다’ 기획전

    서울 은평구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3월 28일까지 ‘백범 김구 쓰다’ 기획전을 연다고 20일 밝혔다. 은평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조망하고 김구 선생의 삶과 글씨를 통해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경무국장을 시작으로 주석에 이르기까지 27년간 독립운동가로서 임시정부를 지켜냈다. 해방 이후 마지막 4년간 민족의 분열을 막기 위해 통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유묵을 남겼다. 은평구 관계자는 “중후한 글맵시와 강직한 기세가 돋보이는 대자 현판 글씨에는 단순히 필획의 형식미를 뛰어넘어 민족주의자가 지닌 신념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가슴에 맞은 총탄으로 수전증을 얻어 손 떨림이 붓끝에 전해졌으나 정신의 웅장한 기세는 그대로 살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은평구는 김구 선생이 해방 이후 1947년 쓴 ‘독립만세’와 1948년 ‘광복조국’ 등을 완전한 독립과 광복을 웅변하는 걸작이라고 소개했다. 은평구 관계자는 “김구 선생에게 민족의 완전한 통일국가 수립은 1919년의 3·1운동에 이은 제2의 독립운동이었다”면서 “남·북한의 분단정부 수립과 함께 실패로 끝난 김구의 꿈은 마지막 내면세계가 진하게 밴 유묵과 함께 이제 우리 앞에 남겨져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구체적 활약상도 소개한다. 임시의정원의 임시헌장을 비롯해 광복군 자료와 미주 동포의 의연금 영수증 등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3·1독립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 대한국민의회 선언서가 함께 공개된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서울시의회 반민특위, 독립운동가 능멸·대한민국 헌법 부정한 윤서인 엄벌 촉구

    서울시의회 반민특위, 독립운동가 능멸·대한민국 헌법 부정한 윤서인 엄벌 촉구

    최근 웹툰 작가 윤서인씨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조롱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회 친일반민족행위청산 특별위원회(이하 ‘반민특위’, 위원장 홍성룡)는 “윤씨의 막말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의 극치”라고 규탄하고, “독립운동가를 능멸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한 윤씨를 엄벌에 처하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앞서 윤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걸까?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며 친일파 후손의 집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을 비교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에 대해 반민특위 홍성룡 위원장(더불어민주당·송파3)은 “광복 직후 구성된 ‘반민특위’가 제대로 가동돼 친일청산이 이루어졌더라면 이러한 반민족적인 언동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며 ”친일한 사람들은 부를 대물림 받아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삶은 피폐했고, 후손들은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윤씨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독립유공자와 후손들께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홍 위원장은 “언론 보도 등을 보면 윤씨가 올린 친일파 후손의 집은 친일파 이해승 손자의 집으로 추정된다”며 “2009년 11월에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보면, 이해승은 일제강점 직후인 1910년 10월 일본 정부로부터 당시 조선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작위인 후작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조선귀족관광단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 귀족을 대표해 일왕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안중근 의사가 저격했던 이토 히로부미의 묘소도 참배했다. 1911년에 일제로부터 고액(당시 16만8000엔)의 은사공채를 수령했으며, 1912년에는 ‘종전(한일병합 전) 한·일관계의 공적이 있는 자’로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총독부 최대 외곽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과 1940∼1941년 전시체제 최대 민간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참여하는가 하면 1942년에는 조선귀족회 회장 자격으로 일제 육·해군에 각각 1만원씩의 국방헌금을 조선총독을 직접 방문해 전달하는 등 수많은 매국행위를 일삼은 친일파의 거물이다”라고 설명했다. 홍 위원장은 “우리민족과 독립운동가를 핍박하고 친일과 매국으로 축적한 부를 대물림 받아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친일파의 후손을 두고 소위 ‘열심히 산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하고, “이는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친일·매국행위나 다름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윤씨의 언동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공표한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반드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요즘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막말을 일삼으면서 돈을 버는 유튜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윤씨도 노이즈 마케팅으로 인한 후원금을 자랑하고 있는데, 윤씨 같은 사람에게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놀랍기까지 하다”고 말하고, “후원금의 출처가 친일반민족단체 또는 일본 자금이 아닌지를 명백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홍 위원장은 끝으로 “이렇듯 친일반민족행위는 비단 일제 강점기에만 행해졌던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범죄행위를 묵인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제2, 제3의 윤서인이 나오지 않도록 조속히 ‘친일반민족행위청산’ 관련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서울시의회 반민특위가 국회 차원의 특위 구성과 관련 법안 입안에 마중물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난한 후손들” 독립운동 비하한 윤서인 광복회 역고소(종합)

    “가난한 후손들” 독립운동 비하한 윤서인 광복회 역고소(종합)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 사진을 올리며 “대충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비하해 논란이 된 웹툰 작가 윤서인이 소송을 예고한 광복회 변호사를 역고소했다. 윤서인은 사건 초기 “논란이 된 글은 너무 짧게 쓴 게 실수”라고 사과하는 듯 했지만 광복회의 위자료 소송 예고에 “정말 이게 법원에서 인용이 될 거라고 생각하심? 이게 인용된다면 법원 문 닫아야지. 소송비 수십억은 그 가난하다는 독립운동가 후손들한테 걷으시는지 궁금?”이라며 본래의 태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19일 광복회 소송을 대리하는 정철승 변호사를 고소했다고 밝혔다. 윤서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저를 ‘하찮은 자’라 말하며 로펌 신입 변호사들을 트레이닝하는 용도로 윤서인에 대한 소송을 맡겨보겠다는 글을 썼다”며 “모욕·명예훼손·협박”이라고 주장했다.윤서인은 2019년에도 조두순 사건을 희화화했다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소송을 당해 2000만 원을 배상했고,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故) 백남기 씨 딸을 비방했다가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럴 때마다 유튜브 수익과 계좌 후원을 통해 벌금보다 더 큰 돈을 벌었다. 윤서인은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제주 4·3평화공원, 제주 강정마을, 광주 5·18묘역 등을 방문하면서 혐오와 조롱의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이번 독립운동가 후손 비하에도 여전히 후원금이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정철승 변호사는 연합뉴스에 “윤서인이 사과글이란 것을 올리면서도 적반하장의 고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고소는 윤씨의 죄질이 나쁜 점을 입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행위라 오히려 반갑다”고 환영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독립운동·조두순 사건 조롱…윤서인 뒤엔 후원금 있었다

    독립운동·조두순 사건 조롱…윤서인 뒤엔 후원금 있었다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사는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 걸까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웹툰 작가 윤서인이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라며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은 평소 그의 역사관을 여실히 드러냈다. 윤서인은 2019년에도 조두순 사건을 희화화했다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소송을 당해 2000만 원을 배상했고,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故) 백남기 씨 딸을 비방했다가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럴 때마다 후원금이 있었다. 윤서인은 2018년 故 백남기 선생의 유족들에 대한 명예훼손죄 1심 판결 직후 진행한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벌금보다 더 큰 돈을 벌었다. 당시 윤 씨는 “목표액이 700만원이었는데 순식간에 훌쩍 넘었다. 수퍼챗(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이 보내는 후원금)에만 천만 원이 넘는 돈이 쌓였고 계좌에도 역시 많은 후원이 들어왔다”고 밝혔다.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광복회가 윤씨에 대한 소송을 예고하고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오자 윤서인에게는 후원금이 왔다. 윤서인은 18일 “저런 말도 안 되는 소송으로 제가 돈을 내야 할 일은 결코 없을 거다. 감사하지만 돈을 보내주시지 않아도 된다”며 자신에게 온 후원금을 공개했다. 계좌에는 ‘응원합니다’라며 1만 원부터 100만 원까지 입금된 내역이 담겼다. 광복회의 위자료 소송 예고에 윤서인은 “정말 이게 법원에서 인용이 될 거라고 생각하심? 이게 인용된다면 법원 문 닫아야지”라며 “소송비 수십억은 그 가난하다는 독립운동가 후손들한테 걷으시는지 궁금?. 야만의 시대 한복판에 내가 서 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윤서인은 “논란이 된 글은 너무 짧게 쓴 게 실수”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결코 짧지 않게 이어지고 있다. ‘백남기 유족 명예훼손’ 혐의로 2심 판결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은 윤서인은 최근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제주 4·3평화공원, 제주 강정마을, 광주 5·18묘역 등을 방문하면서 혐오와 조롱의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독립운동가 대충 살았나” 윤서인, 83억원 소송당할 처지(종합)

    “독립운동가 대충 살았나” 윤서인, 83억원 소송당할 처지(종합)

    웹툰작가 윤서인씨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조롱한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부른 데 대해 사과했지만 이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자신이 글을 짧게 쓰는 바람에 비판의 빌미를 만들었다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이에 독립운동가와 유족·후손 단체인 광복회는 윤서인씨를 상대로 80억원 규모의 위자료 지급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윤서인씨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의 으리으리한 집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낡은 집을 비교해 놓은 사진과 함께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 걸까? 사실 알고 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글을 올렸다.이 글이 논란이 되자 윤서인씨는 몇 차례 반박글을 올리다 18일 “논란이 된 글은 너무 짧게 쓴 게 실수였다”며 “표현이 부족해서 오해를 부른 점, 그래서 저들에게 빌미가 된 점은 인정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퍼온 사진의 양극단 이분법이 진짜로 맞다면 친일파 후손들은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뜻이 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대충 산 사람들이라는 뜻이 된다”며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독립운동가 후손 중에도 얼마든지 부자가 있고 친일파 후손 중에도 얼마든지 가난한 자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도 안 되는 비교 따위는 하지 말란 것이 글을 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저는 기본적으로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윤서인씨의 이날 해명은 지난 16일 이 문제로 소송 움직임까지 나왔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입법학회 회장인 정철승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윤서인씨에 대한 소송을 예고한 바 있다. 광복회 김원웅 회장도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광복회 독립유공자 후손들 8300명이 1인당 100만원씩 위자료를 요구하면 83억원이 된다. 7만 2000명의 유족까지 합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면서 “이번주 내에 법적 대응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윤서인씨는 지난해 12월 고 백남기씨의 유족들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대법원에서 벌금 700만원을 확정받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독립운동가 후손 뭐한걸까” 만화가 윤서인 사과

    “독립운동가 후손 뭐한걸까” 만화가 윤서인 사과

    시사만화가 윤서인씨가 18일 “이번에 논란이 된 제 글은 너무 짧게 쓴 게 실수였다”면서 독립운동가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윤씨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걸까? 사실 알고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고 썼다. 이에 대해 윤씨는 글의 의도를 모두 풀어쓰면 “만약에 퍼온 사진의 양극단 이분법이 진짜로 맞다면 친일파 후손들은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뜻이 되고 독립운동가들 후손들은 대충 산 사람들이라는 뜻이 된다”고 설명했다. 친일파 후손의 저택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슬레이트 지붕의 집 사진은 직접 올린 것이 아니라 복사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씨는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독립운동가 후손 중에도 얼마든지 부자가 있고 친일파 후손 중에도 얼마든지 가난한 자가 있을 것”이라며 말도 안 되는 비교 따위는 하지말란 것이 글을 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전쟁으로 초기화까지 됐던 한반도에서 100년 전 조상의 빈부가 지금 후손의 자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사진의 극단적인 비교처럼 100년 전에도 소위 지금 친일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100년 이상을 끄떡없이 물려줄 재산을 쌓을 정도로 열심히 산 사람들이고 지금 독립운동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충 산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글을 쓴 의도라고 소개했다. 이어 “표현이 부족해서 오해를 부른 점, 그래서 저들에게 빌미가 된 점은 인정하고 사과드린다”면서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이승만처럼 아주 열심히 살았던 독립운동가도 있었지만 술과 도박에 찌들어 살거나 도둑질을 하다가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역사는 다양한 면을 갖고 있기에 후손들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딱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언론들이 정해놓고 압박하는 그 ‘도’ 밑에 제가 계속 눌려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표현의 폭을 지키고 넓히는 것이 인생의 사명 같다면서 앞으로는 표현에 더 신중하겠다고 다짐했다. 윤씨는 2016년 시위 도중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 백남기씨 딸이 아버지가 위중한 와중에 외국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겼다는 내용의 글과 그림을 온라인상에 올린 혐의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독립운동가 대충 살아” 윤서인 막말에 與 분노…“자괴감과 부끄러움”

    “독립운동가 대충 살아” 윤서인 막말에 與 분노…“자괴감과 부끄러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대충 살았던 사람’이라고 폄훼한 만화가 윤서인씨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당 소속인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씨의 발언을 거론하며 “어이없는 막말에 분노에 앞서 저런 자들과 동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함께 밀려온다”며 “저 자의 망언에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찢길런지”라고 개탄했다. 송 위원장은 “우리가 제대로 된 친일 청산을 했다면 어찌 저런 반민족적이고 반사회적인 언동을 버젓히 해댈 수 있겠냐”며 “나라와 민족을 팔고 배신한 자들을 단죄하지 못한 채 그 후손에게 부와 명예가 이어지는데 도대체 그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또다시 희생을 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어 “친일 청산과 친일파의 재산을 환수하는 것이 이 나라에 민족정기와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며 “다시 새해를 맞이했지만 친일 청산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자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의 외손자인 민주당 우원식 의원도 페이스북에 “독립운동가에 대한 막말에 분노가 치민다”며 “친일부역자들이 떵떵거리고 살 때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어 살아야만 했고 그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이런 처지는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 의원은 “그의 왜곡된 가치관은 결국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이런 토착왜구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가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이다”라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앞서 윤씨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의 집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을 비교한 사진을 올리고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사는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 것일까”라며 “사실 알고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글을 올려 공분을 샀다. 논란이 일자 윤씨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앞서 윤씨는 고(故) 백남기 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지난해 벌금 700만원형을 선고 받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조롱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으며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를 희화화한 만화를 그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태극기 4괘 응용한 국외소재문화재 BI 개발

    태극기 4괘 응용한 국외소재문화재 BI 개발

    문화재청은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상징화한 브랜드 정체성(BI)을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재 BI는 태극기의 4괘인 ‘건곤감리’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한 모양이다. 국외문화재가 과거와 미래, 우리나라와 소재국을 이어주는 역사·문화 교류의 상징이라는 점을 이미지화했다. 영문 상표명은 ‘Heritage of Korea’(헤리티지 오브 코리아)로 정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BI를 책자, 답사지도, 홍보 배너, 초청장 등의 자료에 활용하고, 외교공관 및 독립운동 사적지, 이민사 관련 건물 등에 부착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BI 개발을 계기로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국외문화재 사업의 통일된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 외교부, 국가보훈처, 교육부 등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지 소장자나 소장기관이 국외문화재를 잘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안내서를 배포하고, 보수·복원 및 홍보·활용 지원 방안도 단계별로 추진할 방침이다. 올 1월 기준 국외소재 동산문화재는 21개국에 19만 3136점, 부동산문화재는 19개국에 987개소가 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20일 한국 뜨는 해리스 대사 “한국은 일하기 좋은곳”

    20일 한국 뜨는 해리스 대사 “한국은 일하기 좋은곳”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작별인사를 올렸다. 주한미국대사관 측은 해리스 대사의 마지막 근무일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리는 오는 20일이라고 밝혔다. 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대사들은 관례대로 일괄 사임하며, 새 대사가 부임할 때까지 로버트 랩슨 부대사가 대사 대리를 맡을 예정이다. 해리스 대사는 트위터에 “한국에서 (아내) 브루니와 저의 삶은 정말 즐거웠다.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던 대로 미국 대사로 일하기에 한국보다 더 좋은 곳은 없으며 한국은 가장 좋은 친구이자 동맹”이라고 밝혔다. 또 눈이 소담스럽게 쌓인 서울 중구 덕수궁 근처 미국대사관저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도 첨부했다. 해리스 대사는 미국대사관을 통한 별도의 입장에서 “미국 대사로 근무한 지난 2년 반 동안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을 목격했다”며 “우리의 파트너이자 동맹인 한국과 긴밀한 조율을 통해 한미 양국은 사상 처음으로 북한과 지도자급에서 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비핵화를 향한 중요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으며 이 여정이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2018년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대로 끝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또 “나는 코로나19와 투쟁에서 한국인들의 헌신, 기발함과 너그러움을 보았으며 이는 모두에게 영감이었다”면서 “한국은 ‘혁신적인 국가’이며 과학과 규칙을 따르는 게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양대 수단임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한미동맹이) ‘굳건하다’고 하는 이유가 있다”며 “우리는 친구이자 파트너, 동맹이자 가족이다. 우리는 오랜 기간 함께 해왔으며 미래에도 같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8년 7월 부임한 해리스 대사는 부임 직전까지 미군 인도태평양사령관을 맡았던 해군 4성 장군 출신으로, 직설적인 화법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작년 1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는 한국의 남북협력 추진 구상을 두고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해 청와대에서 이례적으로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해군에서 외교관으로 전직하는 기념으로 기른 콧수염이 일부 오해를 사서 미국 CNN과 뉴욕타임스 등이 지난해 여름 그가 면도를 하자 “해리스 대사가 외교적 긴장을 일으킬 수 있는 위협요소였음에도 2년간 유지해온 콧수염을 잘랐다”는 보도를 했다.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을 두고 친북 성향의 단체들은 “해리스 대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종북 좌파라 하고, 주한 미군 지원금 5배 인상을 강요하며, 내정간섭 총독 행세를 한다”면서 2019년 12월 미국대사관 인근에서 ‘해리스 참수(斬首·목을 자름) 경연대회’를 열기도 했다. 해리스 대사는 자신의 콧수염에 대해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한국 언론,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비판받고 있다”면서 “20세기 일제에 저항한 한국의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콧수염을 길렀던 사람들이 있다. 주한 일본 대사가 아니라 미국 대사인 내게 식민지 역사를 내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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