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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현충일 추념사 “한미동맹은 핵기반 동맹”

    尹, 현충일 추념사 “한미동맹은 핵기반 동맹”

    “워싱턴선언 발표…철통같은 안보태세 구축”“대한민국, 공산주의 맞선 희생·헌신 위에 서…보훈부 출범, 영웅들 더욱 예우할 것” 윤석열 대통령은 6일 “우리 정부와 군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철통같은 안보 태세를 구축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 추념사에서 “저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미 핵 자산의 확장억제 실행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워싱턴선언’을 공동발표했다. 한미동맹은 이제 ‘핵기반 동맹’으로 격상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우리 국군 16만명이 전사했지만, 12만 명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며 “정부는 호국영웅들께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선열들의 유해를 모셔오기 위한 노력도 계속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국가의 품격은 국가가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있다”며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독립과 건국에 헌신하신 분들,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 자유를 지켜내신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다”고도 강조했다. 또 전날 국가보훈부가 출범했음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영웅들을 더 잘 살피고 예우할 것”이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추념식 참석에 앞서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6·25전쟁 전사자 고 김봉학 육군 일병 유해 안장식에 참석했다.
  • [씨줄날줄] 대통령의 소품/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의 소품/황비웅 논설위원

    대통령들이라 할지라도 애지중지했던 소품들은 있었다. 지난 1일부터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전시되고 있는 대통령의 소품들이 화제다. 우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영문 타자기’다. 이 전 대통령은 옥색으로 된 이 타자기를 독립운동 시절부터 항상 가방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1953년 7월 6·25전쟁 휴전 당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마주한 자리에서도 직접 타자기를 두들기며 협상을 했다고 한다. 무려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독수리타법’으로 직접 타자를 치며 외교문서를 작성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그린 ‘반려견 스케치’도 화제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군인이 되기 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늘 드로잉 수첩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키운 반려견 ‘방울이’도 스케치의 주인공이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도 방울이는 본관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맞이하러 달려 나가곤 했다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퉁소를 즐겨 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일곱 살 때 여읜 부친의 유품으로, ‘타향살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가수 겸 영화기획자 고복수가 부친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징인 조깅화도 전시됐다. 재임 5년간 새벽마다 청와대 녹지원에서 조깅을 했던 그는 1993년 금융실명제를 발표한 날에도 새벽 조깅으로 긴장감을 풀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원예가위’도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인동초’(忍冬草)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1980년 신군부에 체포된 뒤에도 독서와 함께 꽃 가꾸기를 통해 감옥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뎠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발명한 독서대도 있다. 그는 1974년 사법시험 준비 시절 누워서도 책을 볼 수 있는 독서대를 만들어 실용신안 특허까지 받았다. “대통령을 안 했으면 컨설턴트나 발명가였을 것”이라고 했던 그의 돌파 본능을 짐작게 한다. 오는 8월 2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소품을 통해 굴곡진 현대 정치사를 간접적으로나마 조망해 보는 것은 어떨까.
  • [세종로의 아침] 드라이빙 미스 안경란/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드라이빙 미스 안경란/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경남 의령의 백산 안희제(1885~1943) 생가 앞. 차 한 대가 천천히 굴러간다. 차 안엔 안경란(84) 여사와 반려견 쭉쭉이가 타고 있다. 둘은 내심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집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더운 날씨에 무거운 다리로 걷기엔 적잖이 힘이 드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안 여사는 독립지사 백산의 친손녀다. 오늘따라 할아버지 백산과 아버지 생각이 더 간절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살았던 백산고가에 한참을 머물다 해거름에야 집으로 돌아가는 참이다. 그의 할아버지 백산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지사다.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의 자금줄이었던 백산상회를 부산에서 일궜다. 당시 임정의 운영자금 중 60% 정도를 백산상회가 책임졌다니, 보기 드문 기업가형 독립투사였던 셈이다. 김구는 자신의 호 백범과 백산을 합쳐 ‘양백’이라 부르기도 했단다. 부끄럽게도 그런 위대한 인물을 안 건 지난해였다. 부산 출장 중 우연히 백산기념관을 둘러보게 됐고, 거기서 망개떡 상자가 독립운동 자금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쓰였다는 걸 알게 됐다. 망개떡은 익히 알던 의령의 대표 음식이다. 주전부리 정도로 여겼던 망개떡이 독립운동사에 등장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의령의 다른 집들처럼 백산의 집에서도 종종 망개떡을 만들어 먹었다. 안 여사의 기억에 따르면 변장을 하고 몇 달에 한 번씩 생가를 찾은 백산은 그때마다 망개떡을 바리바리 싸갔다고 한다. 좋아하던 망개떡을 동지들과 나눠 먹은 백산이 망개떡 상자를 곰곰이 보다 그 안에 독립자금을 숨겨 운반하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건 아닐까.(서울신문 2019년 4월 23일자 27면을 참조하시라. 백산의 일대기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이후 백산의 후손이 의령에서 망개떡을 만들어 판다는 걸 알게 됐다. 서둘러 의령을 찾은 건 당연한 수순. 한데 아쉽게도 백산가의 망개떡은 맛볼 수 없었다. 안 여사가 운영하던 백산식품이 오래전 문을 닫은 거다. 망개떡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산에서 망개잎을 따는 것부터, 팥소를 만들기까지 보통 품이 드는 게 아니다. 당신의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할머니가 후계자도 없이 혼자 망개떡을 만든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하얀 빛깔의 망개떡은 달고 쫀득하다. 찹쌀떡처럼 차져 ‘일본 모찌’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불성설이지 싶다. 항일 독립투사가 일본의 주전부리를 즐겨 먹었을 리 없으려니와 형태가 비슷하다고 일본의 영향을 받은 거라면 우리 고유 음식인 송편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산과 그 가족의 일대기는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그렇다면 ‘안네의 일기’와 같은 영화도 한 편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소녀 안경란의 시선에서 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차는 백산생가를 나와 큰길에서 좌회전한 뒤 수백m를 굴러가 멈춰 섰다. 안 여사의 집이다. 요양보호사가 식사 준비를 위해 찾아올 때를 제외하면 집은 늘 조용한 편이다. 대문에 ‘독립유공자 후손의 집’이란 문패가 있지만, 워낙 낡아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다. 비록 서울신문 취재차량이었지만, 내가 운전하는 차로 잠시나마 순국선열의 후손을 모실 수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자랑스러웠다. 언제 다시 이런 값진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안 여사의 건강을 기원한다. 그리고 노년기의 반려견 쭉쭉이가 오래도록 여사의 곁을 지켜 주길 더불어 빈다.
  • 눈물의 이민길 훑은 요트원정대… 고국 환대 받다

    눈물의 이민길 훑은 요트원정대… 고국 환대 받다

    미국 시민권자 등 4명이 120여년 된 한국 이민사의 뿌리를 찾아 요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인천에 도착해 인천시민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5일 오전 송도 센트럴파크 유엔(UN)광장에서 열린 ‘재외동포청 개청 기념행사’에서 남진우(63·미주한인요트클럽 회장) 대장을 비롯해 유도열(69)·박상희(54)·조셉 장(49) 대원 등 모두 4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유 시장은 “한인 이민 120년을 기념하고 인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 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패를 드린다”고 말했다. 전날 인천 중구 왕산마리나항에 입항한 태평양 요트원정대의 주인공들은 지난 3월 4일 로스앤젤레스(LA) 마리나 델 레이 항에서 요트 ‘이그나텔라’호를 타고 인천행 여정에 올랐다. 인천 제물포는 한국인들이 1902년 미국 하와이로 최초 이민을 떠난 출발지다. 하와이~사이판~통영을 거쳐 LA 출발 93일 만에 인천에 도착한 남 대장 등은 이날 재외동포청의 개청을 기념하기 위해 길이 37피트 중량 3만 2000파운드 재원의 요트에 의지한 채 1만 5000마일(약 2만 4000㎞)을 항해했다. 요트원정대원 4명 중 3명은 미국 시민권자인 교포다. 남 대장은 1960년 부산에서 출생해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 대원은 1954년 인천에서 출생해 인천 제물포고 졸업 후 미국으로, 조셉 장 대원은 인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간 이라크 파병군 출신이다. 박 대원은 한국 국적이지만 요트 횡단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떠나 이번 횡단에 동참했다. 하와이는 우리 민족의 첫 공식 이민 정착지다. 따뜻한 날씨와 힘들지 않게 일하고 금화로 품삯을 받는다는 그럴듯한 소문에 이민을 결심한 121명이 제물포항 잔교에서 작은 배에 몸을 실은 때가 1902년 12월 22일이다. 121명 중 8할이 넘는 수가 제물포·강화·부평·교동 출신의 인천 사람들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1905년까지 64회에 걸쳐 7415명의 선조가 하와이로 이주해 대부분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겹게 일하며 살아갔다. 이민자들은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에서 한 달 15~17달러를 받으며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하와이 곳곳에 학교를 설립해 국어 교육에 힘썼다. 여러 단체를 설립해 민족 정체성을 유지했고, 독립운동에도 발 벗고 나서 훗날 이곳은 해외 민족운동의 거점이자 독립운동의 지원본부가 됐다.
  • 삼버들협동조합, 대전 현충원서 국가유공자 대상 금혼례 실시

    삼버들협동조합, 대전 현충원서 국가유공자 대상 금혼례 실시

    삼버들협동조합은 대전 현충원에서 국가보훈처를 통해 추천받은 국가유공자를 대상으로 금혼례를 실시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금혼례는 삼버들협동조합이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국립대전현충원이 후원한 가운데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우리 삶의 터전을 위해 노력해주신 6.25참전 용사분들의 전통혼례를 진행했다. 혼례에는 ▶한창교, 성순영 어르신 ▶조을선, 박성원 어르신 ▶진태길, 박영자 어르신을 대상으로 전안례, 관수집건, 상면례, 서배우례, 근배례, 성혼선언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혼례와 함께 유공자 스토리 영상 등을 선물로 제공했다. 영상에서는 어릴적 부모님 이야기, 청소년 시절, 마지막으로 함께 인생의 끝을 이야기하는 배우자에 대한 인사로 한사람의 인생을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르신 분들은 당시 낙후된 농촌지역에서 농사만 지으셨다. 과거 힘든 시기를 보내는 와중에 중매를 통한 결혼, 자식들 이야기 등을 통해 인생을 엿볼 수 있었고 6.25 전쟁에 대한 이야기들을 각 지역에서 어떻게 진행됐는지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한편, 삼버들협동조합은 지역내 삼버들작은도서관도 함께 운영되는데 마을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꾸준히 기록, 보존 중에 있다. 또한 지역의 독립유공자서훈을 받은 일본인 가네코후미코가 바로 부강지역에서 거주한 것을 토대로 독립운동가와 국가유공자에 대한 관심을 높게 사, 얼마 남지 않으신 독립운동가 및 유공자들을 위해 그때 당시 생생한 일들을 영상으로 기록 중에 있다. 삼버들협동조합 이규상 대표는 “추후 영상들을 모아 후손들이 볼수 있게 영상기록관을 만들어 독립운동가 및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온라인 추모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 “민족영웅 발굴” 보조금 받아 ‘尹퇴진 강의료’…민간단체 부정·비리

    “민족영웅 발굴” 보조금 받아 ‘尹퇴진 강의료’…민간단체 부정·비리

    정부가 최근 3년간 국고보조금을 받은 29개 민간단체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 1조 1000억원 규모의 사업에서 1865건의 부정·비리를 확인했다. 확인된 부정 사용액 규모는 314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국무조정실이 총괄해 지난 1~4월 일제감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4일 밝혔다. 감사 대상은 민간단체 1만 2000여개에 6조 8000억원 규모의 국고보조금이 지급된 사업이다. 구체적인 부정·비리 유형은 횡령, 리베이트 수수, 허위 수령, 사적 사용, 서류 조작, 내부 거래 등이었다. 정부는 부정이 확인된 사업에 대해 보조금 환수, 형사고발,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하기로 했다. 부부끼리 일감 몰아주기 등 비리 천태만상 한 통일운동단체는 민족의 영웅을 발굴하겠다며 6260만원을 정부로부터 받았는데,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에 나서겠다는 정치적 내용이 포함된 강의에 211만원을 강사비로 지출했다. 이 단체는 원고 작성자가 아닌데도 지급한도를 3배 가까이 초과한 100만원의 원고료를 지급한 사항도 드러나 수사 의뢰 대상이 됐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사단법인 A협회는 지난 2020∼2021년 이산가족 교류 촉진 사업을 명목으로 2400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이 중 2000여만원을 유용했다. 전·현직 임원과 임원 가족의 휴대전화 구매와 통신비에 541만원을, 협회장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중국 내 사무실 임차비로 1500만원을 지출해 수사 의뢰 대상이 됐다. 울산의 한 지역아동센터장은 지난 2020∼2022년 보조금으로 받은 센터 운영비를 개인 계좌에 입금한 뒤 강사료나 소모품비로 업체에 지불한 것처럼 이체 증명서를 포토샵으로 위조하는 식으로 225만원을 횡령한 경우도 있었다. B 기념사업회는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전시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비로 5300만원을 업체에 지급한 뒤 500만원을 돌려받는 등 거래처 4곳에서 3300만원을 챙겼다. 직원 2명의 5개월분 급여 2100만원 중 523만원을 기부금 명목으로 돌려받기도 했다. C 사회적협동조합과 D 교육은 지난 2021년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창출 사업에 참여해 보조금을 수령한 뒤 친족 간 내부 거래로 3150만원을 부당 집행했다. C 조합이 D 교육에 1900만원 상당의 노트북 PC 42개를 빌려줬는데, 두 단체 대표가 부부 사이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E 시민단체는 보조금 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일종의 무자격 페이퍼컴퍼니였다. 공동대표 중 1인이 이사장인 사설학원의 시설, 기자재를 단체 소유로 기재해 일자리 사업 보조금 3110만원을 부정 수령했다. F 협회는 지난 2020∼2022년 벤처기업 일자리 지원 사업 계약 12건 중 5건(3억 6000만원 상당)에서 기술 능력 평가 기준에 미달하는 무자격 업체를 최종 낙찰자로 선정했다. 한 연합회가 통일 분야 가족단체 지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1800만원에 달하는 업무추진비로 술을 사거나 유흥업소를 방문한 경우도 있었다. 주말이나 심야 사용도 적발됐다. 부정사용 보조금 환수…외부검증 강화 정부는 이렇게 부정 사용한 국고보조금을 전액 또는 일부 환수하기로 했다. 보조금 신청 과정에서 허위 사실과 같은 부정이 드러난 경우 해당 단체에 지급된 보조금 전액을 환수한다. 선정 절차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집행·사용 과정에서 부정·비리가 드러난 경우는 해당 금액을 돌려받기로 했다. 비위 수위가 심각한 86건은 사법기관에 형사고발 또는 수사 의뢰하고, 목적 외 사용이나 내부거래 등 300여건에 대해서는 감사원에 추가 감사를 의뢰키로 했다. 정부는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사용의 부정·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관리를 강화키로 했다. 이에 따라 보조금을 수령한 단체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위탁·재위탁을 받아 실제 예산을 집행한 하위 단체들도 국고보조금 관리시스템인 ‘e나라도움’에 전부 등록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회계서류, 정산보고서, 각종 증빙 등도 빠짐없이 올려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할 방침이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보조금 관리에 대한 전용시스템 없이 종이 영수증으로 증빙을 받고 수기로 장부를 관리했지만, 이를 전산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1월부터 광역단체에 우선 도입한 지방보조금관리시스템 ‘보탬e’를 금년 하반기부터 기초단체에도 확대 도입해 보조금 전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 시스템에서 보조금 사업자의 납세 이력을 포함한 금융·신용정보를 관계 기관에서 실시간 공유받아 선정 단계부터 부적격자를 걸러내고 중복수급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사업 결과에 대한 외부 검증도 대폭 강화해 보조금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 대상을 현행 3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회계법인 감사 대상을 기존 1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 사업으로 확대키로 했다. 또 기획재정부 총괄하에 44개 전 부처가 참여하는 ‘보조금 집행점검 추진단’을 통해 분기별로 집행 상황을 점검하고, 보조금 부정 발생 시 사업 참여 배제 기간을 5년으로 명시한다. 이 밖에 국민의 신고 활성화를 위해 권익위, 부처, 수사기관에 한정된 신고 창구를 정부 서비스 민원과 정책 등을 제공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정부24’까지 확대하고, 포상금도 확대할 방침이다. [알려왔습니다] 본지는 대통령실 보도자료에 따라 한 통일운동단체가 묻혀진 영웅을 발견하겠다며 6260만원을 받아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에 나서겠다는 내용을 강의하였다는 보도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통일문화연합은 “사실 확인 결과 2022년 확정된 보조금은 4800만원(자부담 1460만원 포함 전체 사업비가 6260만원)인데, 1차 보조금으로 현재까지 1500만원을 지원받은 것이고 정치 관련 강사비 211만원은 심사위원 수당으로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강진 6·25 민간인 희생자 113명 증언 책 출간

    강진 6·25 민간인 희생자 113명 증언 책 출간

    한국전쟁 당시 전남 강진군민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기술한 한국전쟁 증언록 ‘강진군 한국전쟁 기억의 비망록’이 출간됐다. 강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준비위원회 이름으로 발간된 이 책에는 6·25 당시 상황을 직접 목격하거나 부모들에게 전해 들은 후손들의 증언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책은 총 390여 페이지 다섯 챕터로 구성됐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일제강점기 강진군 항일독립운동 활동과 해방 이후 미군정시절 건준위 및 인민위원회 활동, 여순사건 파장 등을 다뤘다. 4장 해방 이후 한국전쟁 시기 피해 관계인 구술에서는 좌·우익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을 대상으로 현장 증언을 채록해 가슴 아픈 비망록을 완성했다. 특히 4장 피해 관계인 구술에는 총 113명의 증언자들이 증언한 332명에 대한 희생자들의 피해 상황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는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알렸다. ‘기억의 비망록’은 자료를 토대로 한 재구성에서 그치지 않고, 필진들이 발품을 팔았다. 강진군 11개 읍면과 광주·서울 등 출향인을 찾아 직접 면담하고 유가족을 수차례 방문하는 등 증언 채록과 현장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같은 노력끝에 강진 사람들이 겪은 6·25의 아픔을 절절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강진 역사의 사료로 평가된다. 취재에서 나타난 강진군의 6·25는 내전적 성격이 강한 전쟁으로 규명된다. 좌익과 우익은 마을 내부에서 서로 다른 신분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향반과 천민, 지주와 소작인, 친족과 마을, 기독교인과 공산주의자 간의 계급 갈등이 촉발됐다. 이념이 뭔지 모르는 민초들이 오직 생명부지를 위해 부역자로 몰려 수많은 희생들이 인민군 점령 시기와 맞물려 서로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지역의 수많은 생채기의 사례들이 수록돼 있다. 책에는 윤순상(98·성전면)씨가 작천면에서 의사로 지내던 형님이 당시 인민위 부위원장을 맡아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는 주민들의 부탁에 따라 부위원장직을 수락했다가 경찰 수복 후 경찰에 끌려가 마대 자루 2개를 두고 목숨하고 바꾼 사연 등 증언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이밖에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면장을 역임한 면장들의 수난사, 산기슭에 조성된 좌익마을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좌익에 숨진 우익 열사들을 기리는 의순비, 좌익척결 성명서와 보도연맹, 전쟁터에서 보낸 어느 병사의 사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되새기는 그 이름… ‘참 부자’ 가슴에 담다

    되새기는 그 이름… ‘참 부자’ 가슴에 담다

    재물복을 나눠 준다는 경남 의령의 솥바위를 이야기할 때 정작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은 따로 있다. 백산 안희제(1885~1943)다. 치열한 독립투사이자 ‘참부자의 본보기’라 할 인물이다. 그의 생가 인근에 홍의장군 곽재우 생가 등 볼거리가 꽤 많다. 함께 돌아보길 권한다.백산은 일제강점기에 백산무역주식회사를 통해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한 독립지사다. 당시 상하이 임정의 운영 자금 60% 정도를 감당할 만큼 든든한 자금줄이었다. 김구 선생이 훗날 “상하이 임정의 운영 자금 6할을 담당한 곳은 백산상회(백산무역주식회사의 전신)”라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 백산상회를 부산에서 일구고 키운 이가 백산이다. 백산은 의령 북쪽 부림면 입산리의 천석꾼 가문에서 출생했다. 유학을 공부하다 나라가 일제에 병탄된 스무살 무렵 신학문을 공부하겠다며 상경했다. 스스로 실력을 기르고 국민을 계몽하는 것이 독립의 기초를 닦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1909년 부산 구포에 구명학교, 의령에 의신학교와 창남학교를 세운 건 이런 이유에서다.●논 2000마지기 팔아 백산상회 세워 1911년 러시아와 중국 만주 일대를 돌며 독립운동가들과 교유하다가 3년 뒤 귀국한 그는 고향 논 2000마지기를 팔아 부산에 백산상회를 세웠다. 논 2000마지기는 40만평(133만㎡)으로, 축구장 182개 크기다. 당시 기준으로 5000석(섬·1석은 70㎏ 두 가마니 정도)의 쌀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흔히 백산 생가를 천석꾼 집안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만석꾼에 가까웠다. 1919년엔 경북 경주 최부자 등의 투자를 받아 백산주식회사로 확대했다.외형은 기업이었지만 백산상회는 사실상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다. 부산 백산기념관의 안내판은 “망개떡 상자에 독립운동 자금을 숨겨 운반했다”고 적고 있다. 백산의 친손녀인 안경란(84) 여사에 따르면 백산은 의령 본가에 들를 때마다 망개떡을 바리바리 싸 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인(안 여사의 할머니)에겐 배고픈 독립운동가들과 나눠 먹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져간 망개떡 상자에 독립운동 자금을 숨겨 중국 등으로 운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망개떡은 이름 그대로 망개나무잎으로 싼 떡이다. 망개잎은 한여름에 난 걸 쓴다. 망개잎으로 싼 것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는데, 여름철 방부제 구실을 했다는 설이 꽤 그럴듯해 보인다. 안 여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망개떡을 팔았다고 한다. 당시 ‘백산식품’이라는 가내수공업 형식의 공장을 차려 망개떡을 만들었다.●“망개떡 상자에 자금 숨겨 운반” 이번 여정의 가장 중요한 목적도 사실 안 여사가 만든 망개떡을 맛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더이상 망개떡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망개떡은 쌀을 빻아 빚어낼 때까지 여러 손을 거쳐야 하는 정성의 결과물이다. 쌀은 기계로 빻는다 쳐도 팥은 7~8시간 끓이는 동안 계속 저어야 한다. 떡도 일일이 빚어야 하고 잎도 채취해 염장을 해 둬야 한다. 이 과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마당에 안 여사 혼자 감당하기엔 벅찬 일이다. 의령 시장 일대에서 파는 망개떡으로 요기는 했지만 전통의 백산가 망개떡을 먹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과장 좀 보태 백산상회는 당시 ‘삼성물산’과 다름없는 회사였다. 독립에 대한 의지만 없었다면 백산은 평생 요족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만석꾼 집안의 장남 아닌가.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던 백산은 독립을 위해 일신의 안위를 버렸다. 조국 광복을 불과 두 해 앞두고 끝내 외지에서 숨을 거뒀다. 만주의 일본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 석방된 지 몇 시간 만의 일이다. 우리가 의령 여정에서 반드시 백산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백산이 태어난 입산마을은 탐진 안씨 집성촌이다. 초대 문교부(교육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의 생가 등 볼 만한 고택이 많다. 입산 생가에서 200m쯤 떨어진 산자락에 백산의 묘역이 조성돼 있다. 그가 공부했다는 고산재 등의 볼거리도 인근에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생가도 입산마을에서 지척이다. 의령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이니 부러 찾을 만하다.
  • “남북, 기술협력으로 신뢰 쌓을 전략 모색”

    “남북, 기술협력으로 신뢰 쌓을 전략 모색”

    “비전 새롭게 바꾸고 역할 확대”2~4일 파주에서 통일문화축제 “25년 차를 맞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경제를 기반으로 남북이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전략을 모색하겠다.” 지난 4월 21일 새로 선출된 손명원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31일 서울 마포구 민화협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민화협의 비전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손 의장은 “경영인의 경험을 살려 기술협력 차원으로 민족 화해에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다”며 “남과 북을 넘어 해외동포까지 아우르는 경제협력사업들까지 민화협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민화협은 1998년 통일 준비를 위해 정당, 종교, 시민단체 200여개가 모여 만든 협의체다. 손 의장은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건설 설계 관련 사업을 하다가 1980년 귀국해 현대건설 이사와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거쳐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쌍용자동차 대표이사를 역임한 경영인이다. 특히 손 의장의 할아버지인 항일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열다섯 살이던 때 만주에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당시 쌍용차 회장이던 손 의장은 1993년 북한에 방문해 김 주석을 면담하기도 했다. 손정도 목사의 이름을 딴 남북 연구자들 간 학술대회도 2003년 평양에서 열렸다. 민화협은 2~4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와 캠프예그리나에서 통일문화축제를 개최한다.
  • 손명원 민화협 의장 “남북, 기술협력으로 신뢰 쌓을 전략 모색”

    손명원 민화협 의장 “남북, 기술협력으로 신뢰 쌓을 전략 모색”

    “25년 차를 맞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경제를 기반으로 남북이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전략을 모색하겠다.” 지난 4월 21일 새로 선출된 손명원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31일 서울 마포구 민화협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민화협의 비전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손 의장은 “경영인의 경험을 살려 기술협력 차원으로 민족 화해에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다”며 “남과 북을 넘어 해외동포까지 아우르는 경제협력사업들까지 민화협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민화협은 1998년 통일 준비를 위해 정당, 종교, 시민단체 200여개가 모여 만든 협의체다.손 의장은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건설 설계 관련 사업을 하다가 1980년 귀국해 현대건설 이사와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거쳐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쌍용자동차 대표이사를 역임한 경영인이다. 특히 손 의장의 할아버지인 항일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열다섯 살이던 때 만주에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당시 쌍용차 회장이던 손 의장은 1993년 북한에 방문해 김 주석을 면담하기도 했다. 손정도 목사의 이름을 딴 남북 연구자들 간 학술대회도 2003년 평양에서 열렸다. 손 의장은 “당시 김 주석이 ‘손정도 목사는 생명의 은인’이라고 했다”며 “민화협 의장으로서 ‘제2회 손정도 학술대회’를 열 수 있다면 남북 간 대화가 이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다만 남북 간 경색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민화협도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와 소통 창구가 막혀 있는 상황이다. 민화협은 2~4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와 캠프예그리나에서 통일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쓰레기를 주우며 비무장지대(DMZ)를 걷는 DMZ플로깅과 평화캠핑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손 의장은 “통일이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교류하고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가 있으니 당장은 어렵더라도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이번 행사가 통일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세계사적 위상 갖춘 동학농민혁명,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세계사적 위상 갖춘 동학농민혁명,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29일 전북도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최종 결정됐다.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혁명이 세계사적 위상을 갖게 된 만큼 국권 침탈에 맞서 싸운 농민군 참여자를 독립 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수년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을미의병 서훈이 합당하다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서훈해야 한다는 논리다. 학계는 1차 동학농민혁명(1894년 3월 20일 무장 봉기)은 신분제 철폐와 같은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이었지만 2차 동학농민혁명(1894년 9월 10일 삼례 봉기)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항일 독립운동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내규로 독립운동의 시작을 명성황후 시해에 항거한 ‘을미의병’(1895년)으로 정해 이보다 앞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서훈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국가보훈처는 을미의병 참여자에 대해서는 1962년부터 최근까지 145명을 서훈했다. 그러나 똑같은 항일 독립운동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한 명도 서훈하지 않았다. 이에 정치권이 관련 법 제정과 개정에 나섰으나 2개 법안 모두 상임위에 묶여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정읍·고창) 의원은 지난 2월 1894년 9월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할 수 있도록 하는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법’을 대표 발의했다. 앞서 지난해 4월 민주당 이정문(충남 천안병) 의원도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총 60명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발의에 참여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관계자는 “현재 3700여명(유족 1만 2000명)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가 확인됐다”며 “관련 법안이 제·개정되거나 보훈처가 내규를 바꾸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이 하루빨리 독립유공자로 서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홍콩서 실종’ 위구르족 유학생 “한국서 무사히 지내”

    ‘홍콩서 실종’ 위구르족 유학생 “한국서 무사히 지내”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가 “홍콩에서 실종됐다”고 밝힌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출신 유학생 압두왈리 아부두레헤만(38)이 한국에서 무사히 체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엠네스티는 그가 위구르족 독립운동에 연루돼 중국 본토로 강제 압송된 것으로 판단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다. 아부두레헤만의 지도교수인 조욱연 국민대 체육대학장은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앰네스티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조 학장은 “그는 홍콩에 출국한 사실 자체가 없고 한국에 무사히 체류하고 있다”며 “각국 언론에 아부두레헤만이 실종됐다는 뉴스가 나와 본인이 크게 놀란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박사 학위 지도를 위해 아부두레헤만과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다”며 “한국에 있는 것이 맞다”고 거듭 확인했다. 그러면서 “앰네스티가 왜 한국에 있는 그를 두고 ‘홍콩에서 실종됐다’고 발표했는지 알 수 없다”며 “앰네스티와 접촉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앰네스티는 아부두레헤만이 지난 10일 친구를 만나러 홍콩에 갔다가 ‘공항에서 중국 경찰에 체포돼 심문당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고 연락이 끊겼다고 밝혔다. 이에 홍콩 정부는 “그런 사람이 홍콩에 입국하거나 입국이 거절된 적이 없다“며 앰네스티에 사과를 요구했다. 현 추세대로면 이번 사건은 앰네스티의 실수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 ‘홍콩 실종설’ 위구르 유학생 지도교수 “무사히 한국 체류중”

    ‘홍콩 실종설’ 위구르 유학생 지도교수 “무사히 한국 체류중”

    국제 앰네스티가 홍콩에서 실종됐다고 주장한 중국 신장 위구르 출신 유학생 압두왈리 아부두레헤만(38)씨가 한국에 무사히 체류 중이라고 지도교수가 전했다. 아부두레헤만씨의 지도교수인 조욱연 국민대 체육대학장은 29일 연합뉴스에 “앰네스티의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엠네스티 “홍콩 도착 후 연락두절” 앞서 앰네스티는 아부두레헤만씨가 지난 10일 친구를 만나기 위해 홍콩에 도착한 뒤 ‘공항에서 중국 경찰에 심문당하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두절됐다고 밝혔다. 앰네스티는 “그가 중국으로 불법 송환됐거나 (홍콩 모처에) 감금돼 고문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구르족 독립운동 혐의로) 중국 정부의 해외 위구르족 블랙리스트에 등록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中·홍콩 “입국 안해…앰네스티에 사과 요구” 반면 중국 당국은 이러한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홍콩 정부는 “출입국 기록을 확인한 결과 그런 사람이 홍콩에 입국한 적이 없다”며 “앰네스티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홍콩을 비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중국 외교부도 “홍콩 인권 상황을 왜곡했다”며 앰네스티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아부두레헤만은 중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2009년 한국에 입국해 석사 학위를 이수했다. 지금은 국민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인문·사회과학전공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국회에서 열린 프로축구 관련 정책토론회 참가와 K리그 관계자·축구 팬들과의 만남 등 자신의 활동을 알린 바 있다. 국내 한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해 고향인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문화를 설명했다. 지도교수 “홍콩 간 적 없어…본인도 놀라” 지도교수인 조 학장은 “아부두레헤만은 홍콩에 출국한 사실 자체가 없다. 한국에 무사히 체류하고 있다”면서 “각국 언론에 아부두레헤만이 실종됐다는 뉴스가 나와 본인이 크게 놀란 상태”라고 전했다. 조 학장은 박사학위 지도를 위해 일상적으로 아부두레헤만씨와 접촉해 왔다면서 “한국에 있는 것이 맞다”고 거듭 확인했다. 이어 “앰네스티가 왜 한국에 있는 아부두레헤만이 홍콩에서 실종됐다고 발표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조 학장은 앰네스티와 접촉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 유학 온 中위구르족 대학원생 홍콩서 실종… 中 압송?

    한국 유학 온 中위구르족 대학원생 홍콩서 실종… 中 압송?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출신 유학생이 홍콩에서 사라졌다. 국제 인권단체는 그가 위구르족 독립운동에 연루돼 중국 본토로 강제 압송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독립운동 연루… “공항서 체포” 문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압두왈리 아부두레헤만(38)이 친구를 만나러 홍콩을 방문했다가 지난 10일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보도했다. 그가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는 “홍콩 공항에 도착한 뒤 중국 경찰에 붙잡혀 심문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이 그를 체포해 중국 본토로 데려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는 “아부두레헤만은 신장 커라마이 출신으로 중국 여권으로 홍콩을 여행했다”며 “그가 중국으로 불법 송환됐거나 (홍콩 모처에) 감금돼 고문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구르족 독립운동 혐의로) 중국 정부의 해외 위구르족 블랙리스트에 등록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중국 당국은 아부두레헤만이 체포됐다는 앰네스티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홍콩 정부는 “출입국 기록을 확인한 결과 그런 사람이 홍콩에 입국한 적이 없다”며 “앰네스티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홍콩을 비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중국 외교부도 “홍콩 인권 상황을 왜곡했다”며 앰네스티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아부두레헤만은 중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2009년 한국에 입국해 석사 학위를 이수했다. 지금은 국민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인문·사회과학전공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국회에서 열린 프로축구 관련 정책토론회 참가와 K리그 관계자·축구 팬들과의 만남 등 자신의 활동을 알린 바 있다. 국내 한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해 고향인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문화를 설명했다. ●中당국 “그런 사람 입국기록 없다” 위구르족 단체들은 현재 ‘동투르키스탄 망명정부’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당’ 등 50여개가 해외에서 분리·독립 운동을 펼치고 있다. WSJ는 “인권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아부두레헤만의 실종을 계기로 홍콩이 중국 신장 탄압의 도구가 돼 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2017년 이래 중국 정부가 최소 80만명 이상 위구르족과 카자크족, 우즈베크족 등 이슬람 소수민족을 구금했다. 강제노동과 고문, 낙태, 학살 등이 자행됐다”며 이를 ‘반인권 범죄’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반중국 세력이 꾸며 낸 거짓말”이라고 부인해 왔다.
  • 韓 유학온 위구르족 대학원생 홍콩서 실종…中 압송 가능성

    韓 유학온 위구르족 대학원생 홍콩서 실종…中 압송 가능성

    한국에서 박사 과정 중인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출신 유학생이 홍콩에서 사라졌다. 국제 인권단체는 그가 위구르족 독립운동에 연루돼 중국 본토로 강제 압송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압두왈리 아부두레헤만(38)이 친구를 만나러 홍콩을 방문했다가 지난 10일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보도했다. 그가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는 “홍콩 공항에 도착한 뒤 중국 경찰에 붙잡혀 심문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이 그를 체포해 중국 본토로 데려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는 “아부두레헤만은 신장 카라마이 출신으로 중국 여권으로 홍콩을 여행했다”며 “그가 중국으로 불법 송환됐거나 (홍콩 모처에) 감금돼 고문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구르족 독립운동 혐의로) 중국 정부의 해외 위구르족 블랙리스트에 등록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중국 당국은 아부두레헤만이 체포됐다는 앰네스티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홍콩 정부는 “출입국 기록을 확인한 결과 그런 사람이 홍콩에 입국한 적이 없다”며 “앰네스티가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홍콩을 비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중국 외교부도 “홍콩 인권 상황을 왜곡했다”며 앰네스티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아부두레헤만은 중국에서 대학에 다녔고 2009년 한국에 입국해 석사 학위를 이수했다. 지금은 국민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인문·사회과학전공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국회에서 열린 프로축구 관련 정책토론회 참가와 K리그 관계자·축구 팬들과의 만남 등 자신의 활동을 알린 바 있다. 국내 한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해 고향인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문화를 설명했다. 위구르족 단체들은 현재 ‘동투르키스탄 망명정부’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당’ 등 50여개가 해외에서 분리·독립 운동을 펼치고 있다. WSJ는 “인권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아부두레헤만의 실종을 계기로 홍콩이 중국 신장 탄압의 도구가 되가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2017년 이래 중국 정부가 최소 80만명 이상 위구르족과 카자크족, 우즈베크족 등 이슬람 소수민족을 구금했다. 강제노동과 고문, 낙태, 학살 등이 자행됐다”며 이를 ‘반인권 범죄’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반중국 세력이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부인해 왔다.
  • 석재 서병오기념사업회, ‘칼보다 푸른 기개’ 천석 박근술 회고전

    석재 서병오기념사업회, ‘칼보다 푸른 기개’ 천석 박근술 회고전

    석재 서병오기념사업회는 대구미술전람회 100주년을 맞아 DAC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오는 28일까지 2023 석재 문화상수상작가인 ‘칼보다 푸른 기개’ 천석 박근술 회고전과 석재 서병오를 비롯한 교남시서화회작가들, 그리고 중국·일본 근대작가전을 연다고 26일 밝혔다. 1·2·3전시관에서 열리는 천석 박근술(1937-1993) 문인화가는 석재 서병오의 제자인 죽농 서동균에게 사사하면서 청년 시절인 20대에 국전으로 등단했다. 대구고등학교 미술교사 시절인 1976년 국전에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천석의 대나무를 표현한 사군자 작품이 전국에 알려졌다. 이후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며 한국의 대표 문인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200여점의 사군자에서는 국전의 국무총리상 수상작인 ‘대나무’를 비롯해 대작인 높이 4m의 대나무 작품 등 8폭 병풍 등 대표작들로 구성됐다. 20대 시절부터 작고하기 전 50대 후반까지의 약 40여년 걸친 전 생애의 작업인 매, 난, 국, 죽, 비파 등의 주옥같은 작품이 전시된다. 그가 남긴 논문, 수필과 함께 평소 사용하던 벼루, 붓, 등과 수장품인 석재 서병오, 죽농 서동균, 고암 이응로, 남농 허건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4·5전시실은 평소 천석 박근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석재 서병오의 미공개 작품인 예서 대련과 10폭 병풍인 문인화 매·난·국·죽이 전시된다. 1934년에 석재 서병오와 경재 서상하가 금심여사와 함께 합작을 한 길이 5m의 두루마리도 처음 공개된다. 100년 전 전국의 서화가들에 의해 대구에서 수묵으로 우리정신을 보여준 교남시서화회 작가인 독립운동가 긍석 김진만, 경재 서상하, 태당 서병주, 회산 박기돈, 죽농 서동균, 해강 김규진, 백련 지운영, 의재 허백련 등 100여점과 함께 당대의 중국, 일본의 근대 작가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 광복회장에 이종찬 전 국정원장

    광복회장에 이종찬 전 국정원장

    독립유공자 후손단체인 제23대 광복회 회장으로 이종찬(87) 전 국가정보원장이 당선됐다. 광복회는 25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제50차 정기총회를 열고 회장 선거를 실시한 결과 이 전 국정원장이 209표 중 98표를 얻어 새 광복회장에 당선됐다고 밝혔다. 이 신임 회장의 임기는 다음달 1일부터 2027년 5월 31일까지 4년이다. 이 회장은 당선 인사말을 통해 “광복회는 현재 설립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에 있다”면서 “당장 시급한 발등의 불을 끄고 자구책을 마련해 특단의 각오로 운영 쇄신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 회장은 제11~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정원장,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우당이회영선생교육문화재단 이사장과 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 23대 광복회장에 이종찬 전 국정원장

    23대 광복회장에 이종찬 전 국정원장

    독립유공자 후손단체인 제23대 광복회 회장으로 이종찬(87) 전 국가정보원장이 당선됐다. 광복회는 25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제50차 정기총회를 열고 회장 선거를 실시한 결과, 이 전 원장이 209표 중 98표를 얻어 새 광복회장에 당선됐다고 밝혔다. 이 신임 회장의 임기는 내달 1일부터 2027년 5월 31일까지 4년이다. 이 회장은 당선 인사말을 통해 “광복회는 현재 설립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에 있다”면서 “당장 시급한 발등의 불을 끄고 자구책을 마련해 특단의 각오로 운영쇄신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 회장은 제11~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가정보원장,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우당이회영선생교육문화재단 이사장과 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 첫 해외여행… 설레는 강진 중학생들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어요. 친구들도 아주 신이 나 있고 부모님들도 좋겠다고 말씀해 주시고요.” 김모(14·강진중)군은 24일 “어제 강진여중생들이 제일 먼저 출발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우리도 곧 떠나겠구나 하는 설렘이 가득하다”며 “너무 들떠서 가만히 있어도 배가 부르다”고 활짝 웃었다. 전남 강진군이 학생들의 해외 견문을 넓히고 국제 감각을 키우기 위해 지역 중학교 2학년생 전체를 대상으로 해외 역사문화탐방을 추진, 관심을 끌고 있다. 군이 2억원을 책정해 1인당 100만원을 지원하고 부족분 20만원은 교육청에서 수학여행 경비로 지원해 학생들은 전액 무료다. 대부분 지자체가 대상 학생들을 선발하는데 강진군은 9개교 학생 211명 모두를 대상으로 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3박 4일 일정으로 김해공항에서 출발, 일본 오사카와 교토 지역의 역사, 문화 등을 체험하고 돌아온다. 지난 23일 강진여중 2학년 72명이 오사카로 떠났다. 다음달 13일 강진중 69명이 순차적으로 일정을 소화한다. 군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춘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지난 2018년부터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지역의 꿈나무들이 해외에서 견문을 넓혀 창의성과 미래 역량을 두루 갖춘 인재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그동안 교과서로만 배웠던 독립운동의 현장과 역사 문화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동학농민혁명의 흔적을 찾아…‘혁명의 발상지’ 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의 흔적을 찾아…‘혁명의 발상지’ 전북 정읍

    동학혁명이 19일(한국시간) 새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전북 정읍 고부에서 첫 불꽃이 타오른 이후 129년 만의 일이다. 동학혁명이 4·19혁명과 더불어 세계의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던 날, 정읍 덕천면의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을 다녀왔다. 전국에 산재한 동학 관련 시설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기념관, 박물관, 기념탑 등 시차를 두고 조성된 다양한 시설들이 일종의 ‘혁명 기념물 콤플렉스’를 이루고 있다. ‘혁명의 발상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읍엔 전봉준 유적, 갑오농민혁명100주년기념탑 등 관련 시설이 많다. 묶어 돌아보는 게 좋겠다.1893년 11월, 정읍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녹두 장군’ 전봉준 등 20여명이 모여 사발통문을 돌리고 있다. 모든 사람은 하늘처럼 소중하고 평등하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세상을 꿈꾸던 이들이다. 사발통문은 표현 그대로 둥근 사발을 덮어 놓고 그 위에 돌아가며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을 말한다. 오른쪽부터 참가자 이름을 적는 일반적인 통문과 달리 사발통문은 주모자를 파악할 수 없다. 참가자 모두가 공평하게 책임을 나눠 진다는 의미도 내포됐다.이듬해 1월. 고부에서 최초의 혁명의 불꽃이 타올랐다. 피지배 계층인 농민이 중심이 돼 아래로부터 시작된 민중항쟁이었다. 농민들이 쏘아올린 불꽃은 3월 고창 무장에서 본격적인 혁명으로 확대됐다.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부패 척결과 반외세를 기치로 내건 대규모 민중항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1년 동안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다. 일제의 야욕과 무능한 조선 봉건 지배층의 외세 의존, 보수 유생의 체제 수호 벽에 좌절됐지만, 이후 의병항쟁과 3·1독립운동, 항일 무장 투쟁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한국의 근대화와 민중운동의 근간이 됐다.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은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맞아 최초로 대승을 거둔 황토현전적(사적) 일대에 지난해 조성됐다. 약 30만㎡ 부지에 추모관, 전시관, 연수동, 캠핑장 등을 갖췄다.들머리엔 사발통문 광장이 있다. 사발처럼 둥그런 형태다. 광장 둘레에 죽창을 상징하는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의 뾰족한 타원형은 횃불을 상징한다. 황토현의 자연 환경을 되살린 ‘기억의 들판’, ‘동학농민 혁명의 길’ 등을 지나면 ‘울림의 기둥’이 나온다. 당시 농민군이 봉기했던 전국 90개 지역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기둥의 흰 빛은 무명옷을 입은 농민군과 혁명의 순수성을 상징한다.‘농민의 벽’은 전시관 외벽 경사면에 조성된 조형물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군을 몰아내겠다는 농민군의 결연한 의지를 돌망태 형태의 예술로 형상화했다.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황톳빛의 박물관(추모관+전시관)이다. 전시관은 치열했던 동학농민의 삶과 혁명을 다섯가지 테마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추모관엔 ‘1894 그날의 기억’과 희생된 농민군 이름표 조형물 등이 전시됐다. 건물 밖의 야트막한 잔디 언덕엔 ‘죽창결의’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동학농민들이 무기로 사용했던 죽창을 금속재질로 형상화한 것이다. 대나무가 차음 굳세고 단단한 스틸로 변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안내판은 “대지에 뿌리를 둔 순박한 농민들이 강인한 혁명가로 변해가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라 적고 있다. 바로 이웃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2005년 조성됐다. 상설전시관, 어린이전시관,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됐다.박물관 건너는 황토현 전적지(사적)다. 동학 농민혁명 자료를 전시한 제민당, 농민군의 위패를 모신 구민사 등으로 이뤄졌다. 끝자락엔 ‘불멸, 바람길’ 조각 작품이 서 있다. 동학농민군의 행렬을 부조, 투조, 환조 등의 기법을 활용해 제작했다. 작품의 전체적인 형태는 ‘사람 인’(人) 자 모양이다. 행렬의 선두에 전봉준을 세우고 뒤로 다양한 연령대의 농민군을 배치했다. 전적지 뒤의 야트막한 언덕 위엔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있다. 동학 농민전쟁 최초의 기념물이다. 1963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주도로 건립됐다. 황토현 전적지 역시 박정희 의장 시절 첫 삽을 뜨고 전두환이 정비한 곳이다. 이 탓에 최초의 기념물인데도 다소 떨떠름한 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동학난’이라 불리던 것이 ‘혁명’으로 처음 격상됐고, 동학에 대한 국민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내장산 국립공원 초입의 내장호 앞엔 ‘갑오동학농민혁명 100주년기념탑’이 있다. 2005년 작품으로 4각뿔 형태로 솟은 주탑과 4개의 원기둥 부탑으로 이뤄졌다. 주변에 조각공원, 전봉준 공원, 솔티마을 생태숲 등도 조성돼 있다. 차분하게 돌아볼 만하다.이평면 조소마을엔 전봉준 고택(사적)이 있다. 전봉준이 살던 집으로 1890년대 당시 농가의 모습을 재현했다. 전봉준은 이곳에서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봉준이 28세 때인 1878년에 지어진 고택은 1894년 일부 소실됐다가 1974년 보수했다. 수탈의 상징이었던 만석보 터, 고부관아 터 등도 인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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