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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병ㆍ정신대등 일제의 악랄한 죄상/일왕,무조건 사과해야”

    ◎광복회서 성명 광복회(회장 이강훈ㆍ89)는 22일 『일왕은 우리의 조국독립을 위해 몸바친 순국선열과 독립운동가 및 7천만겨레앞에 무조건 사죄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광복회는 이날 성명에서 『일왕이 수백만 우리민족을 학도병징병ㆍ정신대 등으로 내몰아 살상한 죄과를 외교거래로 대두시켜 불의를 정당화 하려 한다』면서 『일본은 지금이라도 허심탄회하게 천인공로할 죄상을 뉘우치고 우리겨레앞에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광복회회원 3백여명은 이날 하오2시 종로2가 파고다공원에서 일왕의 사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뒤 일본대사관 근처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 부시ㆍ고르바초프에 독립선언 인정 호소/발트3국 지도자 서신

    【빌나 AP UPI 연합】 발트해 연안 3국 최고 지도자들은 13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이들 3국의 독립문제 해결을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발트해 연안 3국 최고 지도자 협의체인 「발트위원회」를 부활키로 합의한지 하룻만인 이날 3국 지도자들은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각각 서신을 보내 3국의 독립선언을 인정해 줄 것을 호소했다고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최고회의 의장(대통령)이 밝혔다. 한편 서방 5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온 카지미에라 프룬스키에네 리투아니아 총리는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리투아니아는 탈소 독립운동을 한단계 늦춰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방문한 서방 5개국 정부가 독립에 대한 리투아니아의 권리를 인정하는 한편 소련 정부와의 협상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리투아니아 최고회의에 대해 지난 3월11일 천명한 독립선언을 구체화하는 법안의 제정을 유예토록 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외언내언

    국제정치의 역사를 보면 「밀약」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국가간에 남몰래 이루어지는 비밀의 약속이요 조약이다. 강대국들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며 제3자인 약소국ㆍ약소민족의 운명이나 이익을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 멋대로 처리하는 떳떳지 못한 내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밀약을 하는 강대국들에게 있어서 약소국이나 약소민족의 운명같은 것은 대수로울 것이 못된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의 약소국ㆍ약소민족의 통분과 비애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권리를 몰래 인정한 미일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라든가 영일 동맹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시련과 수난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쉽게 짐작이 가는 것이다. ◆악전고투의 대소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최근의 발트3국과 그에 대한 미ㆍ유럽의 대응을 보면 바로 그러한 강대국밀약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그동안 발트3국의 소 병합을 인정하지 않아온 미국과 서유럽이 이젠 발트3국의 독립을 저지하는 소련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를 지키기 위해선 발트3국의 희생쯤 어쩔수 없다는 자세다. 발트3국의 소 병합을 유도한 독소 밀약의 독일이 이번에는 통일이라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 소련의 발트3국 탄압을 외면 내지는 방조하고 있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밀약까지는 아니더라도 묵계정도는 이루어진 인상이다. 미ㆍ유럽의 국제정치적 최우선과제는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그의 민주화 개혁을 지키는 것이며 그것을 위태롭게 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인 것 같다. 그것은 부시미대통령등 지도자들은 물론 많은 일반인들의 여론이기도 한 것 같다. 고르바초프는 서방의 이런 자제를 어렵게 할 조치만은 취하지 않는다는 묵계가 있을 수 있다. ◆발트3국은 고르바초프의 출현으로 절호의 독립기회를 얻었으나 그 고르바초프때문에 그 기회를 놓칠지 모르는 묘한 운명의 장난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정치적 도덕성이란 것이 국익 우선주의 앞에선 한조각의 휴지만도 못하다는 국제정치현실의 냉혹성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발트3국 평의회」50년만에 부활/3국정상,정치협력 선언

    ◎「탈소」공동전선구축 합의/소군징집 통제방안도 논의 【탈린(소 에스토니아공) AFP AP 연합 특약】 소련 발트해연안 3개공화국의 최고회의의장(대통령)들은 12일 정치협력선언에 서명,발트3국 최고지도자협의체인 발트평의회를 50년만에 부활시켰다. 지난 34년 창설됐던 발트평의회는 40년 소련에의 합병과 함께 해산됐었다. 발트평의회는 3개공화국의 대통령과 총리,외무장관들로 구성되며 정기적으로 회합을 갖고 탈소 독립운동실현을 위한 공동전선을 모색,각 공화국 정부에 대해 구속력을 띠지 않는 경고 등을 하게 된다. 이번 정상회담을 주도한 아르놀드 루펠에스토니아 최고회의의장은 회담에 앞서 발트해 3국 지도자들이 이번 회담을 통해 정치협력선언,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부시 미국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공동성명 등 4가지 문서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식통들은 또 이들 3개국 최고회의의장들이 발트해 공화국주민들의 춘계 소련군징집을 통제하기 위한 공동노력방안을 논의할 것 같다고 전했다.
  • 외언내언

    1ㆍ4후퇴때 월남해 온 인사가 이런 말을 한다. 『내려와서 가관이다 싶은게 하나 있더군. 북에서 망나니 파렴치범이 남에 와서 반공투사로 저명인사가 돼 있더란 말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 「반공투사」더러 말하라 한다면 반공운동 하다보니 망나니 파렴치 행위도 더러 있었던 것 아니냐 할 수 있겠고. 그건 일제와 광복된 조국 사이에도 해당되는 것이 세상사다. 일제 때 그 앞잡이 노릇 하던 사람들이 광복된 조국에서도 현달하여 떵떵거린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아닌가. 독립유공자도 그렇다. 꼭 끼여야 할 사람이 빠진 대신 끼이지 않아도 될 사람이 혹 끼였을지도 모르는 일. ◆얼마전 프랑스 낭트시에서 발견된 독립운동 사료는 그 점에서 뜻이 깊다. 빠진 곳을 보충하는 한편 새로운 사실도 알려 줄 것이기 때문. 더구나 그것은 내국인의 기술이나 일본 관헌의 보고서 혹은 그밖의 문서가 아닌 객관적 자료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임정 요원들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받아 썼다,감리교의 웰치목사는 친일파였다... 등등의 사실이 중간검토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건 그것에 「전폭적」 신뢰를 보낼 일만은 아니다. 가령 홍범화장군의 사망지가 소련이냐 중국이냐 하는 논쟁이 왜 일어나는가. 전봉준장군의 태생지가 전주냐 태인이냐 정읍이냐 고창이냐 하는 논의가 왜 일어나는가. 기술이나 고증에 주관ㆍ오류가 개재하기 때문이다. 또 똑같은 하나의 사상도 그를 대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시각의 차이에서 달라질 수 있는 법. 이 문서에는 여운형이 『한국인 사이에 인기 없는 인물』로 돼 있다는데 그 표현에 과연 주관은 개재 안됐던 것일까. ◆어쨌든 낭트문서의 전모는 기다려진다.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바른 고증과 취사선택. 「웰치목사 친일파」 같은 충격적 내용이 또 있을지 모르는데 그런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 독립유공자 송창석옹

    독립유공자 송창석옹이 29일 0시20분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광복아파트 10동106호 자택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1918년 인천에서 태어난 송옹은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활동했으며 한미합작훈련인 ΟSS훈련 정보파괴반에서 훈련을 받는등 독립운동에 힘쓴 공로로 77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인희여사와 2남3녀. 발인은 1일 상오10시,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 683­3759
  • 불 낭트보관소의 문서 임시연구 새사료 확인

    ◎박국사편찬위원장 【낭트(프랑스) 연합】 1920년대 상해 임시정부및 기타 독립운동단체들의 활동을 기록한 당시 프랑스 영사관의 기록문서가 박영석 국사편찬위원장 등 한국관계자들에 의해 27일 낭트소재 프랑스 외무부 문서보관소에서 확인됐다. 상해주재 프랑스 영사관의 보관문서로 1919년부터 1930년사이 프랑스 조계내 한국인들의 활동상황및 관찰보고서 등이 포함된 2백13페이지 분량의 이 관련문서는 제3국인 프랑스 당국의 한국관련 기록문서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일본및 독립운동 관련 개인자료에 주로 의존해온 임시정부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부여해 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날 낭트 문서보관소의 관련 문서를 검토한 박위원장은 『정확한 평가는 검토가 끝나야 알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임시정부 활동과 관련한 프랑스측 기록문서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또 비교적 한국 독립운동 단체들에 우호적이었던 프랑스 당국의 「시각」이라는 점에서 검토결과가 크게 주목된다고 말했다. 49년 중국공산정권 수립후 스위스 영사관(상해)으로 옮겨졌다 62년 프랑스로 이송된 이 문서에는 또 김구 이승만 김원봉 등 이미 독립운동사에서 알려진 인물외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인명들이 상당수 등장,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박위원장은 당시 독립운동관련 인물들의 행적에 관한 새로운 자료가 나타남에 따라 학계에 논란이 돼온 독립,친일인사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한국인을 둘러싼 프랑스및 일본 영사관간의 「경찰관할권」분야가 대부분으로 한국인및 단체에 대한 실태,관찰보고및 「한국인 범죄자」 처벌과 관련한 일본영사관과의 교신 등으로 구성돼 있어 임시정부 및 조선공산당 관계자 등 당시 프랑스 조계내 한국인의 움직임이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조선공산당 간부였던 김원봉및 윤해,상해 국민대표회의 의장 김동삼등에 대한 동태와 함께 첩자로 몰려 암살한 왕선빈에 대한 일본측의 부검기록 등이나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왕상빈이 형인 왕선빈에 보낸 편지에는 『첩자인 김창수(김구의 별명)를 믿지 말라. 김에게 폭탄을 준 적이 없다』는 대목도 포함돼 있다.
  • 독립유공자 계지풍씨

    독립유공자 계지풍옹이 26일 하오9시 서울대병원에서 뇌졸증으로 사망했다. 향년82세. 계옹은 황해도 해주태생으로 중국 남경의 중앙대학에 재학중 안휘성 무호지방에서 일본군의 동태조사및 군자금모집등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지난77년 대통령표창을 받았었다. 유족으로는 맏딸 계광숙씨등 2명이 있다. 발인은 28일 상오10시. 계옹은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다.
  • 임정활동기록 불서 발견/박 국사편찬위장,“곧 사적가치 확인”

    【파리=김진천특파원】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사연구에 크게 보탬이 될만한 역사자료가 프랑스에서 발견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불 한국인 학자인 파리 7대학의 이옥교수(61ㆍ한국학과주임)가 최근 낭트시에 있는 프랑스 외무부문서보관소에서 찾아 낸 이 자료에는 상해임정활동기간인 1918년부터 1938년까지 15년간 상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한국인들에 관한 각종 정보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상해임정시절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자료는 당시 상해주재 프랑스영사관이 본국에 보고한 상해관련자료중에 포함되어 있는데 한국관계는 5백여 페이지 분량으로 한국인에 대한 재판기록 경찰조서 한국인문제 처리를 위한 일본측과의 협상 내용등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이교수는 현재 바르샤바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학대회에 참석중인 박영석국사편찬위원장과 함께 오는 26일 다시 현지에 가 이 자료를 재검토,지난 77년 프랑스 정부가 공개한 한국관련외교문서 중에 포함된 것인지의 여부와 사료로서의 가치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 소수민족 독립운동/사전에 철저분쇄를

    【홍콩=우홍제특파원】 중국의 양상곤국가주석겸 당중앙군사위 제1부주석은 최근 인민해방군 간부들에게 티베트ㆍ신강ㆍ내몽고등 3개소수민족자치구의 분리독립운동을 사전에 철저히 분쇄토록 긴급지시했다고 18일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양이 인민해방군 간부회의를 소집,티베트 지구를 담당하는 성도 군구와 신강관할의 난주군구 및 내몽고담당인 북경군구지휘관들에게 이같이 강조했으며 지난 6일 신강지역의 인종폭동때 10만의 병력이 파견됐다고 밝혔다.
  • 미에 긴급 지원요청/란츠베르기스

    【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대통령)은 17일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에 대해 보다 강경노선을 취해 소련의 리투아니아독립 저지움직임을 봉쇄해 달라고 촉구했다. 란츠베르기스대통령은 이날 리투아니아 수도 빌나로부터 미국의 뉴스전문 CNN방송과 가진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이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을 반대하고 있는 소련의 처사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해주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 네팔,민주화의 구심” 가네시 만 싱

    ◎비폭력 저항운동에 앞장…15년간 옥고/75세 노구로 야연합 결성,민주화결실 네팔의회당(NCP)의 지도자 가네시 만 싱은 네팔의 민주화대장정을 선도하고 있는 최고 반체제인사. 15년간 옥고를 치른 싱은 75세라는 고령과 병으로 쇠약한 몸이지만 히말라야 산록을 휘몰아친 민주화바람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네팔의 호메이니옹이자 국민들로부터 「철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싱은 요즘 자신의 몸을 던져 네팔의회당과 7개 좌파공산세력을 연합,국왕을 헌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비렌드라의 절대왕정에 도전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대대로 총리자리를 세습해오던 라나족의 한 아들을 구타해 퇴학당한 일도 있긴하지만 싱은 비폭력 저항운동을 민주화투쟁의 기조로 하고 있다. 그는 인도에서 대학시절 인도의 독립운동을 체험하며 『악에 대해서 싸워 이길 수 있으며 평화적 저항을 통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과 영감을 깨달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싱은 1940년 방학을 이용,카트만두로 돌아와 라나족의 족벌통치체제에 저항하는 운동에 가담했으나 곧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는 4년간의 감옥생활후 극적으로 탈출,인도로 건너가 네팔의 반체제운동 영웅 코이랄라가 이끄는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 코이랄라와 함께 47년 네팔의회당을 창설한 싱은 50년부터 59년까지 네팔의회당이 연정에 참여하자 한때 각료직을 맡기도 했다. 싱은 79년 정당정치가 중단되고 왕정이 실시되면서 지난 10년간 야인의 길을 걸아왔으나 네팔의 민주화운동이 점화되면서 노구를 무릅쓰고 그 선봉에 나서고 있다. 그는 한국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이룩한 민주정치의 발전이 네팔의 다당제 민주주의 실현에 자극과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야세력을 대표하는 싱은 지난 13일 비렌드라 네팔국왕과 단독회담을 갖고 과도정부수립 등의 많은 양보를 받아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해온 비렌드라국왕이 진정한 다당제 허용,국왕의 정치권력 포기 등 획기적 개혁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네팔의 민주화와 그의 투쟁 전도는 매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 “파키스탄군 이동… 전쟁준비”/인,국경에 적색경계령

    ◎통금령 카슈미르서 경관 5명 사상 【뉴델리ㆍ잠무 AP AFP 연합】 잠무 카슈미르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비슈나와트 프라탑 싱 인도총리는 14일 파키스탄이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인도는 어떠한 우발적 사태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 총리는 기자들에게 파키스탄이 레이다 부대와 기갑연대를 인도 국경지역 근방으로 이동시켰으며 공군기지를 사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인도북부 국경지역에는 전쟁 대비 태세중 마지막 단계인 적색경계령이 내려져 있다고 말했다. 【잠무 AFP 연합】 인도당국은 14일 회교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3명이 숨진 바데르와와 키스티와르등 카슈미르주의 두개 마을에 무기한 통금령을 내리고 군병력을 배치했다고 관리들이 전했다. 한편 13일 통금령이 발효중인 카슈미르주의 하도 스리나가르에서 순찰중이던 민병경찰대가 회교 지하단체의 수류탄 공격을 받아 5명이 사상했으며 인도당국은 카슈미르주 독립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피랍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에 나서 5백여명의 반정부 용의자들을 체포했다.
  • 임정수립 71주년 기념식/광복후 처음 정부주관 행사

    ◎문창범선생등 18명에 훈장 추서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제71주년 기념식이 13일 상오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재경광복회원,3부요인,정당대표,전직주요인사,각계대표등 2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렸다. 올해 처음으로 정부행사로 열리는 이날 기념식에서 상해임시정부 교통부총장을 지낸 문창범선생에게 건국훈장대통령장,정인보선생등 납북인사 5명을 포함한 17명에게 건국훈장 국민장이 각각 추서됐다. 이날 훈장이 추서된 독립 유공자는 그동안 공적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분단국가로서의 제약때문에 포상을 받지 못하다가 민족동질성회복,국민대화합,민족정기고양을 목적으로 하는 첫번째 임정수립 기념행사에서 그 유족들이 포상을 받게 된 것이다. 강영훈국무총리는 이날 기념사를 통해 『3·1독립운동의 결정체로서 71년전 오늘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가 패퇴하는 날까지 나라잃은 겨레의 유일한 정통정부로서 민족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다』고 지적하고 『임시정부는 민족사상 처음으로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정을 선언함으로써 우리나라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기틀을 확립했다』고 말했다. □건국훈장 포상자 공적 ▲문창범(1870∼1934,건국훈장 대통령장)=1908년 만주 노령에서 광동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실시. 1917년 전로한족중앙총회 회장피선. 1919년 대한국민회의 회장으로 선출,해삼위에서 3·1독립만세운동 주도. 같은해 상해 임시정부 교통부총장피선. ▲정인보(1885∼납북,건국훈장 국민장)=1910년 상해에서 신규식·박은식·신채호등과 동제사조직,조국광복운동. 1919년 귀국,연희전문대 교수로 재직중 1926년 「6·10만세운동」과 중앙고보학생들의 「5인독서회」등 학생운동 지원. ▲김의한(1900∼납북,〃)=1919년 국내에서 비밀결사 대동단에 가입,중국으로 망명. 1928년 한국청년동맹 재정위원으로 활동. 1932년 임정 항주로 이전시 김구등과 강소성 가흥으로 피신,임정활동참가. ▲오영선(1896∼1939,〃)=1919년 상해임정 임시의정원 의원. 1931년11월까지 임정국무원비서장·국무원·법무총장·군무부장·외무부장역임. ▲이관식(1883∼1972,〃)=1907년 육군부위로 근무중 군대가 해산되자 유인식·김동등과 경북안동에 협동학교를 설립,구국계몽활동. ▲김일곤(1912∼1943,〃)=1938년 조선의용대 입대후 각지에서 항일전에 참전. 1943년 중국 호북성에서 일본군 탱크 2대를 파괴하는등 활약하다 순국. ▲김상덕(1891∼납북,〃)=1919년 도쿄에서 조선청년독립단회원과 2·8독립선언후 체포돼 7개월의 금고형받음. 1920년 중국으로 망명,28년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통합추진. 42년 임시의정원의원·임정선전위원으로 활동. ▲이광민(1900∼1945,〃)=1915년 만주 신흥학교수료. 1924년 전만통일회주비회 발기회에 군정서 대표로 활동. ▲이병화(1906∼1952,〃)=1921년 통의부에 가입,의주군 청성진 경찰주재소 습격,순사살해. ▲이종건(1887∼1958,〃)=1923년 재만독립운동단체의 재통일을위해 10개단체를 통합,정의부를 조직,중앙행정위원 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일경에 체포,징역 7년. ▲최이붕(1897∼1973,〃)=1919년 간도에서 철혈광복단 청년단조직, 조선은행자금 15만원탈취해 무기구입,북로군정서에제공. ▲윤 해(1888∼미상,〃)=1915년 만주에서 간민회조직,활동. 1918년 전로한족회중앙총회창립,부회장으로 활동. ▲명제세(1885∼납북,〃)=1919년 이동령 주도로 상해서 불변단조직시 총무로 활동. 박은식 등과 함께 제2독립선언문 발표. ▲장철호(1892∼1945,〃)=1928년 국민부중대장. 1919년 조선혁명군 소대장으로 일군과 항전. ▲김형빈(1894∼1943,〃)=1919년 독립단에 입단,친일파 김하룡처단,군자금모집활동. ▲박건웅(1906∼납북,〃)=1932년 조선의열단대표로 한국대일전선 통일동맹결성,조선인군관학교에서 혁명투사양성. ▲장도빈(1888∼1963,〃)=1908년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취임,애국 계몽운동 전개. ▲조지영(1916∼1950,〃)=1937년 중국군에 배속돼 대일전에 참전. 1942년 임정군무부 비서·군사과장 역임.
  • “공화국 탈소땐 내전초래”/고르바초프,독립운동에 재경고

    ◎에스토니아,고르비에 독립 탄원 【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11일 『소련내 여러 공화국들이 분리될 경우 엄청난 내전과 대살육이 벌어질 것이며 소련인들은 여기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TV로 방영된 콤소몰(공산당 청년동맹)대회에서 일문일답을 통해 『소련의 경계선을 재조정할 경우 모든 국민과 모든 민족이 서로 싸우게 될 것이며 이는 지금까지 소련이나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소련전체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리투아니아의 분리 독립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고르바초프는 이와함께 최근 분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공산당내 급진 개혁파에 대해 이들이 자본주의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모스크바 AFP 연합】 탈소 독립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 최고회의(의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에게 「정의」가 실현돼 에스토니아가 다시 독립을 회복할 수 있도록 탄원했다고 에스토니아 신문들이 12일 밝혔다. 한편 에스토니아 최고회의는 지방 행정당국에 소련군의 에스토니아인 징집에 협조하지 말도록 촉구했는데 크렘린 당국은 오는 15일 소련전역에 걸쳐 군징집을 강행할 예정이다.
  • 정치국 능가하는 「권력의 핵」으로/급부상하는 소대통령 자문위

    ◎경제ㆍ민족문제등 중요정책 결정/고르바초프의 개혁작업 “산실”로 지난 3월의 개정헌법에 따라 신설된 소련의 16인 대통령자문위가최근 리투아니아사태 처리과정에서 기존의 최고정책기구인 당정치국을 제치고 전면에 나섬으로써 주목을 끌고 있다. 크렘린 당국은 지난 9일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리투아니아공화국에 대한 경고를 이례적으로 이 대통령자문위 명의로 발표했다. 이 경고의 내용은 리투아니아 정부가 독립선언을 철회하고 크렘린과의 협상에 즉시 응하지 않을 경우 소당국은 연방의 결속을 위해 정치ㆍ경제를 비롯,기타 여러 방면에서 추가 제재조치를 취하겠다는 매우 엄중한 것이었다. 자문위의 이러한 경고는 이튿날인 10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리투아니아에 대한 비상통치권행사 운운 발언을 통해 뒷받침됨으로써 자문위가 소련정부의 공식 정책결정기구로 자리잡고 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개정된 소련헌법은 대통령 자문위의 임무와 권한에 대해 『소련의 내정과 대외정책의 주요원칙을 실현키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임무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소 애매하지만 「막대한」 권한을 부여받았음에도 그동안 최고 정책결정기구였던 당정치국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상문제가 여전히 불명확했던 게 사실이다. 현재 소련이 처한 핵심 당면과제인 리투아니아사태에 대해 당정치국은 지난달 헌법개정 이후 아직 한번도 소집조차 되지않고 있다. 반면 자문위는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따라서 과거 수십년 동안 소련사회에서 실제 권력 기반이 되어온 당정치국을 제치고 자문위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란 추측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또다른 움직임은 현재 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 경제개혁방안이 바로 이 자문위 소속 인사들의 주도로 짜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4월중 마무리를 목표로 진행중인 이 개혁작업의 실무책임자는 자문위 소속인 레오니드 아발킨부총리. 이번에 마련될 경제개혁안은 민족문제해결 못지않게 소련 대내외의 중요 관심사가 될 게분명하다. 그런데 이 개혁안의 기본골격에 대한 설명이 중간중간에 자문위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지난 5일 자문위의 한 멤버인 스타니슬라프 샤탈린은 외국회사의 소련내 설립과 과실송금에 대한 허용방침이 이번 개혁안에 들어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그리고 개혁안의 발효시기도 오는 6월 인민대회(의회)까지 기다리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먼저 발효시킨 다음 추후 의회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을 해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국은 계속 「노코멘트」로 일관, 정치국이 이미 주요 권한의 상당부문을 자문위로 넘겨준게 아니냐는 의문을 짙게 하고 있다. 물론 자문위원회 상당수가 현정치국 정ㆍ후보위원으로 채워져 있어 권한 이양상의 마찰 소지가 상당부문 희석된 건 사실이다. 당이 헌법에 명시된 「권력 독점권한」을 포기한 마당에 당정치국의 권한이 전과 같지 않을 것임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구성된지 불과 보름여만인 자문위가 민족문제와 경제개혁 등 핵심 국정현안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헌법개정 이후 예상되던당내 보수세력의 반발이 쉽게 「진압」됐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끈다.
  • 서재필선생 동상제막/어제 신문의 날 맞아

    송재 서재필박사의 동상제막식이 제34회 신문의 날을 맞아 7일 상오 10시30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현저공원에서 한국신문인협회 회원등 언론관계자 1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서재필박사 동상건립위원회(위원장 서기원)가 1억8천여만원을 들여 세운 이 동상은 높이 3.25m의 전신입상이며 조각가 김경승씨가 조각했다. 독립운동가이며 독립신문 창간발행인인 서박사의 동상이 세워진 현저공원은 94년전 서박사가 독립문을 건립해 한민족의 자주성을 국내외에 보여준 곳이다.
  • 고르바초프 지지/부시정책 급선회

    【워싱턴 연합】 조지부시미대통령은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을 희생시켜서라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살아남기를 바라고 있으며 미의회 지도자들도 부시의 이같은 입장을 양해했다고 미국신문들이 29일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와 워싱턴 타임스지등은 28일 하오 백악관에서 부시대통령으로부터 리투아니아사태에 대한 미정부 입장을 설명받은 의회인사들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 리투아니아 사태 평화적 타결 기미

    ◎고르바초프 자진귀대 탈영병에 사면령/란츠베르기스 수비대 창설 보류… 유화조치/군은 계속 증파 낙하… 연습도 【빌나ㆍ모스크바 AP AFP 연합 특약】 소련 중앙정부와 빌나당국이 독립운동으로 발생한 리투아니아 사태의 해결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소련 국방부가 29일 리투아니아 출신 탈영병들에 대해 사면령을 발표,사태타결 전망을 한층 밝게 했다. 타스통신은 이날 소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리투아니아 국적을 가진 탈영병들에 대한 형법상 범법행위를 규정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탈영병들이 자진귀대할 경우 처벌은 받지않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타스는 그러나 탈영병들이 자발적으로 귀대해야 할 최종 시한이나 현재 이들 가운데 몇명이 소연방군에 체포 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리투아니아 정부는 크렘린을 향한 또다른 유화제스처로 앞서의 탈소선언과 함께 구체적인 실행방안의 하나로 내놓은 자체 국경수비대 창설 계획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최고회의 의장은『현 시점에서 국경초소를 설치하는 것은 대립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주민투표를 포함한 어떠한 문제에 관해서도 모스크바측과 의견을 교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투표실시 방침이 결정될 경우 지난해 11월 리투아니아 최고평의회(의회)가 통과시킨 공화국법에 따라 주민 30만명이 이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갖는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측통들은 고르바초프가 지난 11일 리투아니아의 탈소선언이 주민의사 결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 결정이라는 주장과 함께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한데 대해 공화국 지도부가 소헌법 절차를 따를 이유가 없다는 주장으로 맞서 왔음을 상기 시키면서 란츠베르기스가 일단 크게 양보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같은 긴장완화 분위기에도 불구,리투아니아에 소련군의 수가 현재 늘어나고 있으며 리투아니아 주둔 소련군 사령관들은 소련군이 이번주 리투아니아 내에서 벌인 군사훈련이 일상적인 것이라고 말했으나 병력과 장비의 양은 리투아니아 독립분쇄를 위한 힘을 과시하는데 충분한 시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련 기자들은 이번주 초부터 수백명의 공정대원들이 수십대의 일루신 수송기에 분승,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나주변에서 낙하연습을 했다고 보도했다.
  • “고르비의 딜레마” 발트3국 독립 요구

    ◎확산되는 민족문제 어떻게 처리될까/「무력사용」 근본적인 해결책 안돼 전전긍긍/미소 정상회담 영향 우려,서방여론에 신경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요구로 발전한 소련의 민족문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지난 11일 리투아니아 공화국이 소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뒤 무력대결이라는 「위험수위」까지 갔던 양측의 대치상황은 2주여만에 일단 고비는 넘겼으나 수도 빌나 일원에는 여전히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리투아니아와 함께 같은 발트해 연안국인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가 분리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법적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함으로써 이 지역의 독립 무드는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에스토니아 공화국 공산당은 25일 특별당대회를 개최하고 중앙당과의 결별과 독자정당 설립을 선언했고 라트비아는 오는 5월 공화국 최고회의에서 소연방으로부터의 분리여부를 결정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앞으로 2∼3개월 내 발트해 3개국 모두가 독립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번 리투아니아사태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듯이 소련 당국의 입장은 이런 식의 일방적인 독립요구는 절대 허용치 않겠다는 것이다. 리투아니아 정부가 자체 통화도입과 국경세관의 관할권 인수,연방군대 복무거부 등 독립에 따른 구체적인 조치에 들어갈 움직임을 보이자 소련 당국은 즉각 비상포고령을 발동하는 외에 수도 빌나 일원에서 대대적인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이에 당황한 리투아니아 공화국 정부는 연방정부의 무력위협에 대해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한편 무력대결 불원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요구했다. 소련 당국도 무력시위는 하면서도 구체적인 무력사용 의사는 좀처럼 내비치지를 않았다.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비롯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측근참모들은 이 가운데서도 오히려 무력 불사용원칙을 계속 천명해 무력시위는 어디까지나 심리전용임을 짐작케했다. 계속되는 독립요구로 연방체제 자체가 위협받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력진압을 쓸 수도 없는 입장,이것이 바로 민족문제에 대해 크렘린이 처한 딜레마이다. 지난 15일 개정된 헌법에 따라 고르바초프는 각 연방공화국에 대해 해당 최고회의의 기능을 일시 정지시키고 직접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비상조치권 등 종전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무력동원 등 강경대응이 사태를 일시 진정시킬 수는 있겠지만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는데 크렘린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첫째 미국 등 서방국들의 반응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번 리투아니아 무력시위때도 미상원의 항의결의문 채택 등 서방국들은 신속한 대응을 했고 리투아니아 정부도 즉시 세계 여론에 호소하고 나섰다.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키 위해 무엇보다 서방의 원조가 긴요한 소련으로서는 이를 무시하고 무력사용을 강행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특히 소련은 오는 6월로 예정된 미소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략핵무기감축협상(START)ㆍ재래병력감축협상 등 서방의 이해를 구해야 할 과제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발트해 연안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요구가 무력으로 진압될 단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역설적이지만 고르바초프가 취한 개방정책 덕분에 합병과정을 둘러싼 과거 역사의 재조명 작업 등이 활발해져 이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소련은 「이민족」 「점령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민족전선」(사주디스) 등 일부 민족주의 단체 주도로 이루어지던 독립운동이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 구성된 공화국 최고회의 등으로 통합,보다 단합된 함을 갖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이다. 지금까지 소련 당국이 내놓은 최종방안은 21일 최고회의에서 채택된 연방탈퇴법안이다. 독립에 관한 모든 논의와 절차는 이 법안의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해당 공화국들로 부터 사실상 독립의 길을 막아놓은 악법으로 비난받고 있어 앞으로 크렘린의 양보없이 민족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 되는 이번 연방공화국과 크렘린의 정면대결이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 것인지에 일단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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