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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대 할머니의 삼·일절(사설)

    상처가 너무 깊고 너무 생생해서 입에 담기도 진저리가 쳐지던 일이 우리에게 있어 「정신대문제」였다.이제 겨우 조금씩 석회화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그 수렁속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할 수 있게 된 한많은 「조선녀인」들.우리의 왕고모이기도 하고 이모할머니이기도한 그들을 생각하며 맞게되는 3·1절아침은 새삼스럽게 신열이 나게 한다. 딸과 누이와 아내까지 빼앗겨 짓밟히고 더렵혀지는 굴욕을 당해온 이땅의 남성들은 탱천하는 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세의 현실에만 결박당해 왔다.『정신대문제는 한국측이 논의에서 회피했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그들의 입장을 우리는 이해한다.이제는 우리 민족에게 강요되어온 이 시궁창 같은 고통을 토해버릴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고모할머니거나 이모할머니」였을 그들 한서린 정신대세대들의 증언을,그들의 피맺힌 육성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그리고 위로할 수 있는 모든 방책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심미자할머니의 증언(서울신문 2월29일자보도)은 바로 그런 육성이다.심할머니도 정신대의 전력이 부끄러워 숨어살다가 오늘에야 말하기 시작했다.그의 정신대행도 누구나 그랬듯이 그의 의지나 허물과는 아무 관계가 없이 주어진 부당한 형벌이었다.16살의 소학생이 「일본」을 욕되게 했다고 보내진 가혹한 형벌이었다.일제가 얼마나 잔혹했는가를 보여주는 실증이다.그런데도 그는 「일인의 여자노릇」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독립운동에 헌금했고 우리의 레지스 탕스 활동들을 지원도 했다.그리고 그렇게 했던 시절에 대한 자부심으로 숨어사는 70평생을 지탱해온 할머니다. 포악하고 무도한 손에 끌려가 찢기고 짓눌려 속절없이 녹아없어져 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속에서도 정신의 비수를 갈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모험했던 효녀들.그분들이 그런 분들이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구원해준다.그들의 증언은 침략국 일본의 만행을 되살려주기보다 그들이 지녔던 반듯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딸」로서의 자존심을 복원시켜 준다. 3·1운동은 손수건만한 태극기 하나에 목숨을 걸고 총칼앞에 맨가슴을 들이댄 치열한 민족운동이다.우리에게 3·1운동이 없었다면 나라를 되찾아 가질만한 「자격」에 결격되었을지도 모른다. 애국부인회를 이끌던 김마리아여사는 당시의 독립운동지도자들이 『남녀 합쳐서 김마리아 같은 이가 10명만 되어도 조선독립운동은 진작 성취했을 것이다』라고 칭송했던 분이다.심할머니는 피눈물 맺힌 돈을 모아 그분의 독립자금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민족 개체에게 질곡과 설움만 안겨주고 보잘것없이 스러져가는 듯하던 조국을 위해서도 그토록 애처로운 사랑을 쏟을 수 있었던 정신대여성들은 우리의 떳떳한 육친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수모를 일본에 따져야 하고 할 수 있다면 사죄는 물론 보상도 물려야 한다.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된다.그들의 가족이고 후손인 우리가 빛나고 당당하고 능력있는 민족이 되어 당당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요리조리 말재주나 피워가며 이기주의로만 살쪄가는 일본에게 떳떳하게 금도를 보이는 당당한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이다.3·1운동정신도 그래야만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 각 종교단체 3·1절 메시지

    ◎불교 조계종 “선조의 이상 받들어 정신적 개혁을”/천도교/“3·1정신 지주삼아 통일로 이어가야” 제73주년 3·1절을 맞아 불교·기독교·천도교 등 각 종교단체는 기념메시지를 발표했다. ▲서의현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사회전반에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와 무질서,과소비풍조가 만연하고 있다.우리선조들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생사를 초월하여 일제와 싸운 높은 이상을 받들어 정신적 개혁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우백암 태고종 종정=민족선각자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민족대각성운동을 전개하여 건전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일본정부는 정신대문제에 대한 사과와 배상 등을 통해 한일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근린국가로서의 우의를 구축,동북아시아의 평화달성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오익제 천도교 교령=3·1운동은 두터운 종교의 벽을 넘어 천도교와 불교,기독교가 하나가 되고 당시 2천만 동포가 한마음이 됐던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민족자주독립운동이었다.이 정신을 지주로 삼아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권호경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조선사람이 자주민임을 선언했던 선열들의 목소리는 전세계의 민족이 서로 지배하고 수탈하는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구현돼야 한다. ▲정진경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그동안 교회가 빛된 삶을 통하여 국가·사회에 공헌하지 못해왔다.선인들이 남긴 순수하고 숭고한 3·1정신을 계승하여 교회가 본질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 “「정신대의 한」 뭘로 보상 받나요”

    ◎심미자… 이 할머니 오늘에야 말하다/16살때 끌려가 일 헌병 첩노릇 수모/그 질곡서도 독립자금 모아 전하기도/“한맺힌 삶 3·1절 앞두고 털어놓으니 가슴후련”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잔혹했던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3월이 온다.말로만 들어온 3·1독립만세의 평화적 시위 앞에 총칼을 들이댄 일제의 만행과 여기에 맞선 독립운동가들.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2동의 심미자할머니(69·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에 1월24일 신고)는 일제에 의한 피해자로 역사의 질곡속에서 누구보다 한맺힌 삶을 살아왔지만 3·1운동의 주역들을 도왔다는 뿌듯한 감회 속에 살고있다. 『정신대로 끌려갔다는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모든 것을 숨기고 살았습니다.그런 가운데도 푼푼이 모은 돈으로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던 시절도 있었습니다.세상에 알리고 싶었지만 과거를 떠올리면 진저리치고 부끄럽기도 해서 묻어 두었던 일들입니다』 황해도 봉산군 덕제면 적성리가 고향인 그는 1940년 3월 중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연행돼 정신대라는 기구한 운명을 산 현대사의 증인이다.봉산소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담임인 나카무라선생이 우리집에 와서 무궁화 꽃수가 놓인 지도를 보고 예쁘다고 칭찬하며 자기네 일본지도에도 꽃수를 놓아 달라고 부탁해 나팔꽃 수를 정성껏 놓아 주었습니다.그것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일 인줄도 모르고…. 그로부터 며칠후 일본순사에 의해 경찰서로 끌려가 『일본땅을 그린 지도에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놓지 않고 나팔꽃을 수놓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심문을 받게됐다.어린 나이였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던대로 『아침이면 지는 나팔꽃처럼 일본도 빨리 망하라고 나팔꽃을 수놓았다』고 홧김에 내뱉어버렸다. 그 말에 화가 난 일경으로부터 대꼬챙이로 왼손 엄지손톱 밑이 찔리고 불에 익은 인두로 어깨와 목을 지지는등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곧 정신대로 보내져 16살의 어린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 근처 군부대 위안소에 도착했다.그후 오카야마·오사카·고베를 유전하는동안의 호칭은 「7번」이었다.1년반동안 일군의 위안부로 치욕의 삶을 살던 그는 헌병대장 스즈키의 눈에 들어 위안소를 빠져나왔다. 「하루코」라는 이름으로 헌병대장의 첩살이가 시작된 것이다.운신의 폭이 넓어진 그는 오사카에서 일본인 행세를 하며 지하조직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부대앞 팥죽장사 아주머니를 만났다.그리고 부대에 채소를 납품하던 그 팥죽장사 아주머니의 남편 김상길씨를 통해 독립운동 조직도 알게 됐다. 『스즈키의 소개로 여러 군인들의 빨래와 자수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습니다.그 대가로 받은 돈 3백원씩을 매달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하구요.그 돈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김마리아와 만해 한용운등 각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여러분들에게 보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하루코」,그가 도운 일은 금전뿐이 아니었다.헌병대장 처라는 직분을 이용,일본을 거쳐가는 독립운동가들의 통행증도 발급받을 수 있었고 옥고를 치르는 항일투사들에게는 김밥속에 종이를 말아 넣어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22살에 해방을 맞기까지 3년 반동안 계속해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 주었지만 일본인의 첩살이를 한것 때문에 선뜻 조국땅을 밟지도 못했다.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다 54년에야 귀국,생활보호대상자로 혼자 살고 있다. 『나의 한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습니까.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제야 한 많은 사연을 세상에 털어놓게 되어 가슴이 후련합니다』 그는 3·1절날 오키나와에서 베풀어지는 정신대 위령제에 참석하고 일본사람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정신대 발자취를 따라서」팀과 함께 28일 출국했다.
  • 독립유공자 2백명 새로 선정

    ◎3·1절 73돌 맞아… 만세 운동 주도 선열 대상/순국 최항진선생등에 훈·포장/보훈처,연내 5백여명 추가 서훈키로 정부는 3·1절 제73주년을 맞아 기미년 3월1일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독립유공자 2백명을 새로 선정,포상한다. 3월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제73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포상을 받게될 독립유공자들은 만세운동을 주도했거나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다 순국한 선열및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지만 형량이 낮거나 증빙자료가 없어 포상에서 제외됐던 사람들이다. 국가보훈처가 새로 선정한 독립유공자 2백명 가운데 1919년 4월 독립만세를 부르다 순국한 최항진선생(1881∼1919·경기도 안성)등 7명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김두오선생(1898·황해도 평산)등 44명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서훈되며 김중석선생(1883·함남 함흥)등 8명은 건국포장,강재식선생(1895·경북 청도)등 1백41명은 대통령표창을 받게된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건국포장을 받는 김중석선생등 8명과 대통령표창을 받는 강재식선생등 1백41명에게는 보훈연금은지급하지 않더라도 독립유공자와 그 후예들이 명예와 긍지를 갖도록 정신적 예우를 하기위해 보훈체계를 개선,선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4·13임시정부수립기념일과 8·15광복절행사를 통해 올해 5백여명의 독립유공자를 새로 서훈할 계획이다. ◎훈­포장·표창받는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애국장(7명)=구수암 김홍록 박로영 이맹삼 인한수 최항진 허경두 ◇건국훈장 애족장(44명)=김동하 김두오 김명규 김성복 김약준 김윤규 김충성 김치경 김태규 김필선 김화원 나상준 노윤길 목치숙 박두업 박장래 서승대 송병기 송지환 안은 여규병 오명근 유인수 유희탁 윤영주 이기육 이억근 이영화 이종국 이준용 이태학 이회리 임헌규 장문환 장영규 장원심 정공로 정제신 차철수 최경현 최덕용 최한두 허찬 홍세표 ◇건국포장(8명)=강락원 김상집 김유곤 김중석 백응선 송영찬 이봉철 전성철 ◇대통령표창(141명)=강기준 강재식 강태섭 구남회 구재균 구판돈 구판진 권석인 권석호 권석효 권세원 권오규 권점동 권종필 김기삼 김락원 김두영 김봉수 김봉준 김봉추 김삼도 김상직 김소지 김영옥 김용섭 김원술 김윤선 김응진 김이환 김일곤 김일봉 김종만 김종옥 김종태 김진봉 김찬선 김치만 김형렬 김호원 남경명 남병작 남병하 남호연 남호정 문명근 박도문 박명방 박명출 박문찬 박봉석 박수병 박수석 박수영 박순교 박재식 박재호 박중훈 배익조 백성흠 변희조 빈영섭 서진냉 손한조 송덕빈 승일상 신종환 신동개 신암우 안덕환 안도용 안만순 안상종 안화종 안효중 안희문 양일표 엄창권 여왕연 오창섭 윤강규 윤병관 윤상만 이근오 이길선 이두연 이만희 이범호 이상욱 이상호 이순근 이순철 이영섭 이영호 이원춘 이윤약 이린수 이인하 이정구 이종우 이주근 이준영 이중식 이중열 이창순 이홍근 임봉수 임삼선 임용섭 임정석 장영창 장재만 장정수 장형관 전병겸 전병항 전정길 정낙영 정백용 정 기 정세기 정재옥 정종호 조삼준 조쌍동 지도원 채송대 채희각 최기호 최무길 최봉용 최용문 최종하 최중모 하영규 하은호 한갑개 한용발 허 현 황인규
  •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방송

    ◎M­TV 「…부재 이상설」 K­1TV 「팔렬중학교…」/잊혀진 독립투사·독립만세 운동을 다뤄 KBS1TV와 MBCTV는 3월1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투사와 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1편씩을 각각 특집으로 엮어 방송할 예정이다. KBS1TV가 1일 상오8시10분부터 9시까지 선보일 「팔렬중학교의 3월」과 MBCTV가 이날 낮12시부터 하오1시40분까지 내보낼 「이역에 뿌린 망국한 보재 이상설(박재 이상설)」이 그것. 이 가운데 K­1TV의 「팔렬중학교의 3월」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한달뒤인 4월3일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서 수천명이 참가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나 주민 8명이 일본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고 20여명이 부상한 사건을 다룬 특집이다.「팔렬중학교」는 이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3·1운동시위도중 숨진 8명의 열사를 기리기 위해 지난 1963년 설립된 학교. 따라서 「팔렬중학교…」은 팔렬중학교 설립배경과 함께,강원도 산간지방이면서 오지인 물걸리에서 이처럼 큰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유와 과정을 생존자인박상기(당시 17세),변성환(당시 13세)씨의 증언을 통해 추적해간다. 한편 MTV의 「이역에 뿌린 망국한 보재 이상설」은 19 00년대와 19 10년대에 걸쳐 해외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활동내용과 흔적이 거의 조명되지 않고 있는 이상설의 파란만장한 구국활동을 부각시킨 다큐멘터리. 이상설은 역사적인 「헤이그밀행」에서 대표로 활약하며 국권강제침탈사실을 만국에 알렸지만 당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대표였던 이준의 빛에 가려 드러나지 않고 있는 인물로 남아있다. MTV의 「이역에 뿌린…」은 충북 진천출신인 이상설의 어린시절과 구국독립운동가로 나서는 과정에서부터 만국평화회의 참석,미국 이민동포를 규합한 국민회 조직,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독립운동기지 한흥동 건설,상해 신한혁명당조직이후 소련 니콜리스크에서 48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역정을 구체적으로 엮는다.
  • 리쿠드당수 재선/샤미르/「대이스라엘」꿈꾸는 강경파 건국 1세대

    ◎반영독립운동·「모사드」지도자로 활동 건국 1세대에 속하는 원로정치지도자로 강경파의 대표주자. 35년 폴란드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그는 거의 평생을 영국과 아랍에 대항해 싸우는 게릴라요원및 첩보기관 「모사드」의 지도자로 활약했다.83년 당시 메나헴 베긴총리의 뒤를 이어 우익 리쿠드당의 당수로서 총리직에 오른후 지금까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경한 보수내각을 이끌어오고 있다. 그의 정치철학은 「대이스라엘 건설」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67년 3차 중동전때 아랍국들로부터 빼앗은 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동예루살렘·골란고원등 점령지에 유태인정착촌을 건설,위대한 유태인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그의 야심이며 이를 실행에 옮겨왔다. 지난해 10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중동평화회의는 샤미르의 굳은 의지를 여실히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바라는 세계여론에 찬물이라도 끼얹듯이 그는 『아무런 보장없는 평화약속과 영토를 교환할수 없다』며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 인도령 카슈미르서/파키스탄 월경 선언

    【스리나가르(인도) AFP 연합】 카슈미르 독립을 요구하는 파키스탄영 카슈미르주민의 유혈 월경 행진이 일단락된 가운데 이번에는 인도령 카슈미르쪽에서 파키스탄 국경을 넘는 「독립 행진」을 감행할 것임을 선언,카슈미르 사태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카슈미르 독립운동을 주도해온 잠무카슈미르해방전선(JKLF)측은 18일 인도령 (아자드)카슈미르소재 스리나가르시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파키스탄영 (잠무)카슈미르 주민들이 「독립 행진」을 재개하는 내달 30일 인도쪽에서도 월경 행진을 벌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 독립유공자 김하진씨

    독립유공자 김하진씨(68)가 7일 상오2시 서울보훈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씨는 경기도 평택출신으로 광복군제3지대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며 77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발인 10일 상오8시30분 장지 대전국립묘지.471­9299
  • 독립운동자료집 2권 발간

    ◎독립운동사연구 5집/도산 안창호자료집 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소장 조동걸 국민대교수)는 최근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제5집과 「한국 독립운동사 자료총서」제5집:도산안창호자료집(2)를 발간했다.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제5집에는 19 20년대 전반기의 민족지도론이라는 기획주제아래 쓰인 4편의 논문을 포함,모두 14편의 논문과 3편의 부록자료가 실려 있다. 한편 「독립 운동사 자료총서」제5집에는 도산 안창호선생이 중국 관내 만주 유럽지역 애국지사들과 교환한 서신류를 영인본으로 묶어 놓은 것으로 신민회의 독립군 기지 개척사업을 비롯,1910∼1917년까지의 해외 독립운동 기지건설과 독립전쟁 준비실상들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이와함께 신해혁명에 가담한 한국인의 명단과 활동 및 애국지사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주고 받았던 암호가 처음으로 공개돼 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편강열의사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의성단 조직,만주벌 항일무장투쟁/장춘 일 영사관 습격,7명이 일경 60명 사살/하얼빈역 광장서 포위된채 치열한 총격전/중과부적으로 피체… 옥중고문 후유증으로 37세에 순국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애사 편강열의사가 선정됐다.황해도 연백에서 출생,2일로 탄신 1백주년을 맞은 편강열열사는 만주에서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 의성단을 조직,장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등 항일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 일제의 고문으로 얻은 척수염으로 29년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편의사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일제하인 1924년8월 만주 하얼빈역 광장에서 완전무장한 일본경찰들이 무장항일독립운동가 편강렬의사를 체포하기 위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만주일대에서 3백여명의 조선청년들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하던 편의사는 군자금과 무기를 조달한뒤 길림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하얼빈역으로 왔다가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의 포위망에 들게 되었다. 편의사는 길가 상점에 뛰어들어 장시간 총격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왜경에 체포됐다. ○만철병원도 습격 편의사는 1924년 대원 5명을 데리고 봉천의 만철병원을 습격한뒤 같은해 대원 6명과 함께 장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7시간에 걸친 격전끝에 적 60여명을 사살해 일본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일경에 체포된 편의사는 25년 평양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중 고문으로 인해 생긴 지병으로 29년1월16일 안동현 적십자병원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편의사는 병상에서 『내가 죽거든 유골을 내가 활동하던 만주땅에 묻고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겼다. 편의사는 1892년 2월2일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씨의 4남중 3남으로 태어났다. 편의사는 어려서부터 애국심과 충의심이 깊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14세의 어린 나이에도 의분에 떨어 1주일간 항의 금식했다. 1907년 전국 각지에서 일본에 복수를 주장하며 의병이 봉기하자 경상·충청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대장 이강년대장을 방문,이대장 휘하에 들어가 소집장 및 선봉장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의병을 인솔하고 경기도 양주에서 3일간 격전을 벌이다 부상을 입은 편의사는 190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편의사는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항일운동에 정진하다 1911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5년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뒤에는 의병동지들과 무장결사대 광복회를 조직,친일파·민족반역자·일본경찰을 처단하는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일대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동생 덕렬씨를 상해임시정부에 파견,국내조직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했다. 그해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최명식이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를 조달한뒤 항일무장투쟁을 할 거점을 마련키위해 군사준비단을 조직하자 편의사는 황해도 대표로 활동했다. ○밀고자 즉결처분 1919년 9월 다시 일본경찰에 체포된 편의사는 징역1년을 선고받고 21년에 출옥했다. 23년1월 편의사는 동지 김경배·김태규·조종호등과 함께 중국의 독립운동상황을 살피기위해 북경으로 가 상해·만주등지를 전전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편의사의 눈에는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뉘어 논쟁만 일삼던 임시정부의 무력함이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23년 10월 만주로 돌아와 강진지·양기탁·남정동지들과 무장항일투쟁비밀결사인 의성단을 조직,단장에 피선됐다. 의성단의 활동무대는 길림성과 장춘일대의 넓은 평야지역이었다. 편의사는 이 지역에 이주한 동포들에게 『조선인단체를 조직해 이민족에게 억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민족적 공감대를 넓혀갔다. 재만동포들의 물적 인적지원을 받은 편의사는 2백50명의 의성단원을 무장시켜 장춘·봉천일대의 일본인 병원·영사관·우체국·경찰서·철도·군수기지를 습격,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은 경찰력과 헌병·밀정등을 총동원해 편의사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신출귀몰하는 그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편의사는 의성단활동을 하는 한편 만주지방의 각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전만통일의회를 조직했다. 편의사는 만주지역의 비밀항일무장단체들을 통합해서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만드는 공작을 하던중 24년8월 하얼빈역에서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포위됐다. 당시 이범석장군은 비분함을 참을 수 없어 밀고자 김을 즉결처분했다. 편의사가 체포되자 의성단활동은 위축되고 2∼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원들도 뿔뿔이 헤어져 소멸됐다. 옥고를 치르는동안 편의사는 일제의 악랄한 고문으로 척수염을 얻어 불구의 몸이 됐다. ○왜놈치료는 싫다 혼자 일어설 수도,앉을 수도 없는 지경이된 편의사는 병보석을 얻어 28년 선천의 미동병원에 입원했으나 별효과가 없었다. 친지와 가족들이 의료시설이 구비된 일본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으나 『죽어도 왜놈에게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28년9월 동생이 있는 만주의 안동으로 옮겼으나 4개월만인 1929년1월16일 순국했다. 편의사의 묘소는 중국 요령성 단동시 원보구 인충가 진강산 장군봉 뒤편에 있었으나매장후 6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지역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비석은 커녕 묘소의 흔적조차 남지않게 됐다. 지난해 가을 국가보훈처와 편강렬의사 탄신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편의사유해봉환반」을 구성,현지답사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편의사는 후사가 없어 동생 덕렬씨의 2남인 충무씨를 양자로 입양했으나 충무씨도 지난 80년대초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부에서는 62년 편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마지막 의병장” 불굴의 절개 빛나/17세때 13도창의군의 서울탈환대작전 참가 편강렬의사에게는 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편의사의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고 역사적 평가도 높지 못한 실정이다. 구한말의 의병전쟁에서 20연대 중반의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큰 운동에 참가해 청춘을 불살라버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책에서는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이때문에 편의사는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고 무덤마저 정확한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편의사는 중국단동 공동묘지 어디인가에서 압록강과 강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며 조국통일을 애타게 염원하고 있을 것이다. 편의사가 13도 창의군의 서울대탈환 작전에 참가한 것은 17세때이다.여기서 그는 부상을 입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독립운동가로 치부될 수 있다.그러나 이 부상은 37세로 순국할때까지 20여년간의 항일투쟁의 시작일 뿐이었다.1910년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던 사내총독암살음모사건으로 연루되어 최초의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은 나머지 그의 투쟁사와 기묘한 일치를 보여준다. 「양양한 압록강물은 흘러서 어드메로 가는가」라는 그의 옥중시에서 보듯 편의사의 일생은 압록강과 숙명의 관계를 맺고있다. 3·1운동후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 압록강을 건넜을 뿐아니라 세번째 마지막 옥고를 치를때도 압록강을 건느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한국인의 성품 가운데 끈기를 제일로 드는 이가 많다. 편의사야말로 독립운동 하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끈기의 대명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는 것은 불요불굴의 절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마지막 재판정에서 7년 징역형이 내려졌을때 파안대소했는데 이는 그가 의병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의병정신이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하고야 마는 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의사는 한국의 마지막 의병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편의사의 탄신 1백주년이기도한 2월을 맞아 새삼 조국통일로서 망국한을 달래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 음악평론가 박용구의 풍기(명사의 고향:23)

    ◎죽령 넘어서면 눈아래 확투인 들판/할아버지대에 십자거리에 터잡아/희방사 스님졸라 훈민정음 탁본도/구한말 이강년·신돌석등 의병의 본거지… 척박했던 땅이 이젠 인삼·능금의 명산지로 나의 고향 풍기를 가려면 죽령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기야 남으로 봉현고개,동으로 단산고개,북으로 잠뱅이고개를 넘어갈 수도 있지만 서울과 직통하는 국도나 중앙선이 모두 죽령고개를 넘게 마련이다. 해발 1천3백14m의 도솔봉과 희방사를 품에 안은 비로봉,그리고 풍기군수시절의 이퇴계가 나라일을 근심해서 축지법(축지법)으로 한달음에 올랐었다는 1천4백21m의 거봉­그래서 이름이 국망봉인 웅장한 소백산줄기 중에서 그나마 서산에 지는 해를 안고 넘을 수 있는 길이 죽령고개다. 옛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이어서 고구려의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의 설화로 유명한 온달장군은 한강이남의 고구려땅을 수복하겠다고 죽령을 묵표로 진격하다가 아단성에서 전사했다고 삼국사기 온달조에 있다. 죽령고개를 38선으로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해서 밀고 당기던 국경마을,그 시절에는 기목진으로 불리던 풍기만이 고구려에 저항해서 신라의 국경을 지켰다고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은 풍기사람들을 평해서 이 고장은 기질이 강하고 사납다고 기록했다. 어쩌면 풍기사람의 억센 기질은 삼국시대부터 비롯된 저항정신의 전통일는지 모른다. 무엇이고 해내는 억센 기질,청량리의 왕초도 풍기사람이라지 않는가. ○억센 저항의 고장 이왕조의 실정으로 나라가 기울고 군대마저 침략국의 강요로 해산 당하자 전국에서 의병들의 무장투쟁이 전개 되었을 때 소백산의 깊은 골짜기들을 근거지로 삼아 풍기 사람의 저항정신에는 또다시 불이 붙는다. 영주 순흥 봉화 등 인근 고을과 힘을 모아 게릴라전을 군대해산에서 망국까지 3년동안이나 전개했던 것이다. 일본제국의 조선군 사령부가 1913년 3월에 발행한 비밀문서 「조선폭도토벌지」에는 1907년 8월부터 1910년 12월까지의 전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지도를 곁들여 기록하고 있다(우리 의병을 폭도로 지칭한 것으로 보면 된다). 「토벌지」는 1907년 8월27일 약3백명의 우리게릴라부대가 경찰지서를 습격,일경 1명을 참살하고 29일에는 순흥,31일에는 봉화의 경찰지서를 습격,불태워 승리의 개가를 올리는데서 시작한다. 그 게릴라부대의 리더­즉,의병장은 이강년,신돌석. 그러나 그 세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지만 그들의 무장봉기는 소백산을 근거지로 3년을 견디어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본의 학정이 시작된 1910년 일인이 임명한 조선인 군수들의 행위로 종말을 맞는다. 「토벌지」에 기록된 게릴라대장의 이름을 「열사」로 모시기 위해 기록해보면 최성천 한명만 김상태 정경태 윤국범 문성조 김성운 유시영.그 중에서 조선인 군수들의 밀고로 4월에는 최성천 한명만이 체포,처형되고 12월에는 윤국범 문성조가 역시 잡혀서 처형당했다. 다행히 이 무렵까지 저항운동을 계속한 이강년 신돌석의 체포기록은 없다.아마 그뒤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의 선봉장이 되지 않았을는지. 「조선 폭도 토벌지」는 경상북도의 부장봉기에 대해서(비밀문서인 탓일까)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안동에는 약 50명의 진위대가있었으나 군기가 해이하여 거의 토벌의 임무를 못했음』 ○국립천문대 위치 서울에서 경기·강원·충청의 3도를 지나 죽령재마루에 오르면 질펀한 들판이 확 트여 경상도의 첫 고을은 우선 시원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산을 내려가기에는 그 경관이 너무 아깝다. 오른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천문대가 있고,왼편으로는 희방사와 희방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고장이 낳은 인물로 세종때의 김담은 일영대라는 그당시 천문대의 대장을 지낸바 있으니 천문학과는 일찍부터 인연이 깊다 하겠고 주위의 아늑함이 속세를 잠시 잊게 하는 희방폭포와 희방사는 1568년에 개판된 훈민정음과 월인석보의 판본 2백개가 있던 곳이어서 더구나 잊을 길없는 곳이다. 일본이 패망하던해 7월,나는 병요양을 위해 이 절에 머물면서 사고에 판목을 발견하고 주지를 설득해서 「훈민정음」과 「월인천강지곡」만의 탁본을 했었는데 6·25가 터진 이듬해 1월13일,유엔군이 작전상의 이유로 휘발유를 뿌려 이 절을 불태워 버리는 바람에 귀중한 문화재는 재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가곡 「성불사의 밤」의 노래말처럼 노승은 어디로 갔더란 말인고! 글깨나 하는 늙은이라면 예언서로 믿었던 「정감록」에는 삼재­즉,흉년 악질 병화가 없는 십승지지의 첫째로 「풍기」를 꼽았건만,동족끼리 살륙전을 벌인 6·25는 깊은 산속의 문화재마저 불태웠으니 그 황당무계를 알만하다. ○6·25 동란중 소실 그러나 죽령재에서 구곡량장의 고갯길을 내려오면 밋밋한 언덕에는 능금밭,그 자락에는 인삼밭들이 타관사람의 눈을 끌게 마련이다. 뚜렷한 4계절과 낮과 밤의 기온격차,그리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토질탓으로 예부터 풍기인삼은 개성인삼과 쌍벽을 이루었다. 38선으로 「개성인삼」을 맛볼수 없게된 오늘,「풍기인삼」은 6연근의 홍삼재배구역으로 지정되고 해마다 9월에 5년근을 채취하는 유일한 명산지가 된 셈이다. 아마도 6·25의 실향 월남민으로 개발이 시작된 능금재배는 66년의 7만그루가 76년에는 1백75만그루를 기록했으니 「풍기능금」의 시장점유율을 짐작할만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풍다 석다 황다의 「삼다」로 황폐했던 풍기가 지금엔 산나물 인삼 능금의 「삼다」로 넉넉하고 윤기가 흐르는 고을이 되었으니 그 까닭은 어디서 찾을수 있을까. 그 황폐했던 「삼다」로부터 풍기를 탈바꿈시킨 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황당한 「정감록」에 있었다.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뒤숭숭할 무렵,『풍기읍내 십자거리에 5분만 서있으면 조선팔도의 사투리를 들을수 있다』는 속담이 유행했다. 「십자거리 박약국」으로 알려졌던 우리집도 사실은 월남민이요,나는 3세인 셈이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억센 저항기질과 월남민들의 실향의식이 오늘의 풍기를 있게한 것이 아닐까. 죽령을 요람으로 자란 내게 반골정신같은 것이 바닥에 있다면 아마도 「자랑스러운 풍기사람의 기질」탓이리라. ▷약력◁ ▲1914년7월2일 경북풍기출생 ▲1946년 중앙방송국 음악계장 ▲1950년 동경소목발레단 문예부장 ▲1966∼70년 예그린 악단장 ▲1981년 예술평론가 협의회장 ▲1986년 88올림픽개폐회식 기획단장 ▲1989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이달의 독립운동가」의 조명(사설)

    서울신문은 올해부터 국가보훈처와 함께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그 생애와 사상·업적 등을 재조명해 나가기로 했다.수많은 독립운동가 중에서 그 달에 탄생·사망했거나 의거일이 들어있는 분을 가려 소개해 갈 것인데 이 기획의 첫번째 92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는 김상옥의사가 뽑혀 소개·평가되었다(22일자 15면). 안온하고 평탄하며 고란이 없는 생활은 이승을 사는 누구나가 바라고 있는 인생길이다.우리의 수많은 유명·무명 독립운동가라 해서 근본적으로 그 생각의 예외자일 수는 없다.그러나 그들은 나라를 잃은 서러웠던 시절,그 평범한 생각을 뛰어넘어 대의에의 길을 스스로 택했던 사람들이다.그 결과 갖은 신산고초를 겪는다.그러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하고 혹은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아무도 모르게 숨을 거두기도 했다. 왜 그랬던가.그들은 죽음보다도 나라 잃은 굴욕이 싫었다.나라를 사랑했고 겨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그래서 누구에게나 소중한 목숨을 걸고 구국애족하는 형극의 길을 걸은 것이다.그랬건만 나라를 되찾은오늘의 겨레는 그들의 그 성스러운 정신과 업적을 잊어간다.그들의 핏자국 위에 오늘의 번영이 꽃피어 있음을 잊어간다.서울신문이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특집보도하는 뜻은 잊어선 안될 선렬들의 그 피어린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오늘의 우리들 삶을 보다 값지고 보람있는 것으로 만들어 나가자는 데에 있다.올바른 새 정신을 일깨우자는 데에 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오늘의 우리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해야 한다.우리의 선열들은 나를 버리고 나라와 겨레를 위했던 것이 아닌가.특히 오늘의 정치인 가운데 나를 위하면서 애국애족을 내세우는 경우는 없는 것인가 가슴에 손을 얹어 봐야 한다.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구국의 선열들을 현창함에 있어 부족했던 점을 아프게 채찍질해야 한다.독립운동사의 발굴·조사에 모자란점은 없지 않았던가에 대한 반성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는 멸망했다.그러나 패전한 일본은 지금 지구촌의 강자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그러면서 제국주의의 망령을 연상케 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본다.그들은 차츰차츰 오만해져 간다.관방장관이란 공인이 우리에게 반일 역사 교육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 것도 그것이다.자신들의 지난날을 진률하게 사과·반성하고 그 바탕에서 새 출발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아픈 마음으로 피해사실을 돌이키며 교훈으로 삼고자하는 일을 오히려 타매하려든다.정신대 문제에 임하는 그들의 언행 또한 맥락은 같다. 「이달의 독립운동가」시리즈는 그와 같은 일본의 모습을 바로보게 하는 계기도 지어줄 것이다.그렇게나 악랄했던 과거에 대해 65년의 쩨쩨한 「청구권 일괄타결」로 「해결」되었다고 손을 털 수 있는 그들의 정체를 바로 보아야 한다.그들은 입으로만 사과하지 마음으로는 않는다.그것이 여러가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이달의 독립운동가」가 우리의 정신적 구심점 형성에 각성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정신대 규탄” 반일시위 확산/일 총리 방한 맞춰

    ◎보상 요구… 일왕 화형식도 미야자와 일본총리가 방한한 16일 「정신대」문제 등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 등이 잇따랐다.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유족회」등 40개 단체로 구성된 「대일본국침략청산촉구 한민족회」소속회원 1백여명은 이날 상오11시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앞에 모여 『미야자와 총리는 애국지사를 탄압한 서대문감옥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고 일본국왕의 화형식을 가졌다. 이들은 이어 일본대사관 앞으로 가두행진을 벌이려다 이를 막는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가 연맹회장 이옥동씨(72)가 땅바닥에 넘어져 머리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6·3동지회」「태평양전쟁유족회」「사할린조선인이산가족회」「고려노인회」등의 회원 4백여명도 이날 상오9시30분쯤 탑골공원과 주한일본대사관으로 옮겨다니며 미야자와 총리의 정신대문제 사죄와 충분한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국여성정치연맹」소속회원 4백여명은 이날 서울 중구 남대문로 프레스센터 20층 기자회견장에서 「정신대문제실상과 대처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일제만행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벌였다. 한편 재야의 이른바 「전국연합」과 백기완씨 등 재야인사 18명은 성명을 통해 『일본총리는 정신대 등 과거 일제의 죄상에 대해 엎드려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춘천 등 전국 각지에서도 같은 종류의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다.
  • 독립유공자 장낙수옹

    독립유공자 장낙수옹(78)이 15일 서울 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 서울출신인 장옹은 지난 29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한국민족혁명당에 입당,군사부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37년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발인은 17일 상오10시.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
  • 고르비의 부와 침/역사의 아이러니

    ◎「개혁」 외쳐 권좌 오르고 「개혁」 못해 밀릴판/전제통치 했더라면 연방해체 막았을것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16일 『나는 여전히 대통령』이라며 사임설을 일축했다.그러나 모스크바에는 『빠르면 이번주중에 그가 물러나게 될것』이라는 설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처럼 그가 물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르바초프의 집권 7년동안 두가지 커다란 역설적인 사실을 꼽을 수 있다.그 하나는 그 자신이 추진한 「글라스노스트」(개방),「페레스트로이카」(개혁),「데모크라티자치야」(민주화)등 개혁조치에 의해 권력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개혁을 거부하고 과거와 같이 전체주의 통치를 했더라면 소연방의 해체를 막고 자신도 권력을 계속 장악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르바초프의 몰락은 그의 최대 업적일지 모른다.글라스노스트는 반정부인사를 허용했고 자유언론을 대두시켰다.한때 고르바초프는 소련지식인과 작가·예술가들의 영웅이었다.그러나 찬양의 합창소리는 너무 커진 나머지 지휘자를쫓아내 버리고 말았다. 지난 85년 고로바초프가 공산당 지도자가 되었을때 처음으로 그에 대한 비판이 신문과 라디오 TV에서 거론됐다.86년 당시만 해도 그에 대한 비판은 교묘한 암시에 불과했으나 금년에는 그의 서기장 재임기간중 공산당에 의한 김의 해외유출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이 가해지기에 이르렀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자유기업을 장려했고 그 결과 소련국민들은 손쉽게 수입상품을 접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불가피하게 국민들의 경제적 기대치가 개혁의 속도를 앞지르게 됐고 광범위한 불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데모크라티자치야로 모든 선거는 공정하고 복수후보가 경쟁할 수 있게 됐는데 그결과 고르바초프의 정책과 권위에 도전하는 대중 정치인들이 무더기로 출현했다. 이들중에는 러시아공화국의 보리스 옐친과 같은 전 공산당원과 그루지야공화국의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야나 체첸 잉그슈자치공화국의 조하르 두다예프장군과 같은 민족주의 지도자등이 포함됐다.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키고 KGB(국가보안위원회)활동에 제재를 가하고 정치범을 석방시킴으로써 고르바초프는 개방사회를 향해 거보를 내디뎠다.그러나 공포의 대상이 됐던 국가기관들에 대해 「휴업조치」를 내린 것은 동시에 자신의 권력에도 상처를 입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소련제국의 붕괴요인으로 작용했다.소수민족들은 글라스노스트를 틈타 수십년간 계속된 무자비한 러시아화 정책으로 부터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였다.여기에다 민족주의 대두까지 겹쳐 인종분쟁의 긴장이 야기됐고 경제적 불만과 선동주의적 지도자들에 의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 결과는 독립운동과 영토분쟁,분리주의,폭력이 뒤엉키는 혼란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고르바초프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국가정책에 자신의 의지를 부여하고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 무력사용을 거부한 것일지 모른다.
  • 독립유공자 최기복씨

    독립유공자 최기복옹(91)이 12일상오 서울보훈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부산출신인 최옹은 1919년 4월5일 경남 양산 기장읍 장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부산감옥에서 1년6월의 옥고를 치르는등 독립운동에 헌신해왔다. 발인 14일 상오9시 장지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연락처 483­3320
  • 중국,신강에 군 증파/소 사태 영향… 독립시위 빈발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 당국은 최근 소련의 우크라이나공화국독립과 연방해체를 전후해서 신섭위구르자치구내 각 지역에 분리독립운동 확산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이 지역에 군대를 증강배치했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1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내 소식통들을 인용,이곳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와 몇몇 도시에서는 최근 분리독립운동가들과 한주들간에 상당히 큰 규모의 인종분규가 발생했다고 전하고 그뒤 이곳 주요 도시와 국경지역에 군대배치가 늘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우루무치에서는 수백명의 분리독립운동가들이 사흘동안이나 시위를 벌였다고 전한 이 신문은 중국당국이 경고메시지를 통해 『소련의 혼란을 보고 분리주의자들이 행동을 취할 호기로 생각할지 모른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했다.
  • 20세기 최대 공산국가 부침의 드라마

    ◎“중심추 상실”… 핵 수반한 유고식 내전 우려/「슬라브 우월의식」에 약소공들 반발할듯/소 연방 와해의 파장과 전망 소련을 대체할 새로운 「독립국가공동체」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돼갈 것인가.3대 슬라브공화국 지도자들이 8일 독립국가공동체 결성을 선언함에 따라 갈래가 잡힌 소련재편의 향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독립국가공동체선언은 아직 형태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외교·핵통제·국방·관세·이민·수송·통신등 일부분야에서만 협조할 뿐 상호내정간섭은 배제하고 연방정부나 의회 같은 전권통합기구를 두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소련산하 여타공화국 뿐 아니라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를 공유하는 다른 국가들에까지도 문호를 개방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번 독립국가공동체 합의는 현재의 소련위기를 타개하는데 연방정부와 고르바초프체제가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독립국가공동체는 어떻게 보면 독립열기로 가득찬 소련의 각공화국들을 더이상 중앙통제하에 묶어둘 수 없을 뿐 아니라 12개공화국이 모두 참여하는복잡한 협상을 거쳐 합의점을 도출해 내기도 어려운 현상황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지도 모른다.그러나 방법론적으로 3개공화국만 뭉치면 두려울 것이 없으며 약소공화국들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다는 식의 슬라브주 우월주의적 발상을 깔고있기 때문에 심한 반발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번 독립국가공동체선언을 대하는 각공화국들의 태도는 분분하다. 우선 카자흐를 비롯한 5개 중앙아시아 공화국은 경제가 워낙 낙후돼있고 러시아등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느슨하더라도 연방정부가 존재하는 주권국연방 형태를 선호하고 있다.그래야만 경제적으로 지원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슬라브족의 「지배」가 아닌 연방정부의 조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연방조약에 반대한 나머지 4개공화국들은 주권국연방보다는 상대적으로 독립국가공동체쪽을 선호하지만 슬라브족이 주도하는 체제에 참여할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경제적 고립의 엄청난 부담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분리독립해나간다면 그 가능성은 루마니아 영토였다가 지난 40년 소련에 합병된 몰도바,경제공동체조약과 집단안전보장조약 모두를 거부한 아제르바이잔,경제공동체조약만을 거부한 그루지야,경제공동체조약에 참여한 아르메니아의 순으로 높다. 발트3국도 독립국가공동체 참여를 고려해볼 수 있겠으나 소련이 당분간 엄청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불참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동구권국가들의 참여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제 3개슬라브공화국이 독립국가공동체선언을 철회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그렇다고 5개중앙아시아공화국등 여타 공화국들이 별도의 연방을 구성하기도 쉽지않다.소련은 공동체와 몇개의 독립국으로 쪼개질 수 밖에 없게된 것이다. 아무튼 베이커 미국무장관도 지적했듯이 과거의 소련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핵무기가 추가된 유고슬라비아식 내전의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공화국이기주의 또는 민족주의가 활개치고있는 현상황에서 독립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각공화국은 또다시 소수민족독립국의 공동체로 연쇄분할되는홍역을 치를 수 밖에 없으며 그과정에서 중심추가 될 중앙정부가 없어짐으로써 끝없는 내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서방국들은 소련의 해체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카자흐와 함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3개슬라브공화국이 이번에 핵공동통제및 기존협정준수를 약속,서방세계를 안심시키려하고는 있으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조차 소수민족의 독립열병이 확산되고 있어 무력충돌의 와중에서 핵관리상의 문제점이 드러날 일말의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대소지원에도 더욱 신중을 기해 소련의 위기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곳곳에서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소련인들의 식량폭동이 빈발하고 있고 이같은 불만분위기를 등에 업은 보수적인 군부의 쿠데타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소련의 현상황은 한마디로 혼돈 그자체다.독립국가공동체가 결성된다고 해서 이러한 흉흉한 분위기가 일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소련의 해체는 분명해졌지만 그앞날은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치닫고있다. ◎「슬라브 공동체」 3국 개황/인구 1억4천의 자원대국/러시아공/산업·노동생산 전체의 25%/우크라공/「4월 파업」 후 크렘린에 도전/벨로루스 소연방 전체 2억9천만명의 인구중 72%에 해당하는 모두 2억1천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3개공화국의 개황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유럽의 발트해에서 시베리아 동부 베링해까지의 광활한 영토를 갖고 있는 소연방내 최대 공화국으로 인구는 1억4천7백40만명. 금·다이아몬드·석유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지난 8월 쿠데타 실패사건 이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국 정부는 연방정부로부터 권력을 이양받고 있으나 현재 고물가,식량 부족,체체노 잉구슈및 타타르등지서의 분리 독립운동등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다. ▲우크라이나=지난 1일 국민투표에서 90% 이상의 지지로 독립을 선언했으며 인구는 5천2백만명.소연방에서 산업및 농업 생산력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투표 이후 폴란드·캐나다·헝가리및 다른 여러 나라들로부터 국가 승인을 받았으며 신임 레오니트 크라프추크 대통령은 지난주 다른 슬라브계 공화국들과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는 모습이 아닌 「협력기구」의 형태를 띠는 경제·군사동맹체의 결성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벨로루스=인구 1천20만명으로 한때 크렘린 당국의 충실한 동맹자였으나 지난 4월 전국적인 물가 상승에 항의하며 20만의 노동자가 파업에 돌입한 이후 연방정부에 대해 도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3개공 지도자 프로필/러공 초대대통령… 입지 탄탄/옐친/8월 정변뒤 독립노선 선회/크라프추크/핵 물리학자 출신… 자치론자/슈슈케비치 ▲보리스 옐친(60)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시베리아 출신으로 지난 88년까지 당정치국원으로 활약하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속도 지체에 비난을 가한 뒤 해임됨.이듬해인 89년 인민대표대회 선거를 통해 정치일선에 복귀한 뒤 올해 러시아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 ▲레오니트 크라프추크(57) 우크라이나공화국 대통령=농민의 아들로 우크라이나 공산당에 투신,이념담당 제2서기까지 서열 부상. 지난 88년말과 89년초 TV에방영된 루흐독립운동 지도자들과의 논쟁에서 뛰어난 능력을 과시. 공산당 관료로서 30년간 활약하다 올해 정치노선을 전면적으로 수정했으며 지난 8월의 불발 쿠데타 뒤 당적을 버리고 분리독립운동에 가담했다.지난 1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 ▲스타니슬라프 슈슈케비치(57) 벨로루스 대통령=핵물리학자 출신으로 인민대표대회 대의원을 거쳐 최고회의 부의장에 재직하다 지난 9월 최고회의 의장으로 피선. 의장취임 당시 시장 경제와 사유재산,공화국 완전주권을 주장했으나 소연방이 4개 공화국으로 구성된다면 이에 가담하겠다는 의사 표명.
  • “소 연방 붕괴·고르비 실각 가속화 될듯”

    ◎“핵 공동관리” 주자에 재래무기 감축 난관/공화국내 소수민족 독립운동 불 당길듯/우크라이나공 독립결정의 파장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독립이 국내외로부터 의외로 신속한 승인을 얻어 기정사실화돼감에 따라 소련연방의 해체와 고르바초프연방대통령의 실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있다.우선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지난 1654년 제정러시아에 합병된 이래 숱한 저항이 실패로 돌아간 끝에 얻어낸 3백37년만의 값진 독립이다.같은 슬라브인이면서도 러시아인들로부터 지배를 받아온 설움에서 마침내 해방된 것이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연방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상실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일찌기 레닌이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우리는 머리를 잃는다』고 지적했듯이 산업·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가 소련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기 때문이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빠진 소련연방은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한 가운데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공 독립을 즉각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사회에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인구와 면적이 프랑스와 엇비슷하고 핵무기까지 보유한 유럽 강대국의 출현을 의미한다. 이같은 의미와 함께 상당한 문제점도 안고있다.핵무기 통제와 군축상의 어려움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러시아 카자흐 백러시아와 함께 소련내 4개 핵보유 공화국인 우크라이나에는 1백76기의 대륙간 탄도탄(ICBM)과 1천여기의 전술핵이 배치돼있다.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대통령은 한때 비핵국으로 남겠다고 공언했으나 점차 태도를 바꿔 핵무기를 러시아공화국에 인도하기 보다는 국제기구 감시하에 파괴하기를 원한다고 했다가 또다시 4개 핵배치공화국 공동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이미 조인됐으나 아직 실행에 옮겨지지 않은 유럽배치재래식무기 감축협정(CFE)등 군축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나토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외채 상환 및 신규차관 도입에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느슨한 형태의 「주권국연방」조약에도 불참하겠다는 우크라이나의 방침은 또다시 러시아인 우월주의의 희생이 되지않겠다는 민족감정에서 비롯된 역사적 배경을 깔고있어 번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그럴 경우 러시아를 비롯한 여타공화국도 무의미한 연방유지노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현재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추진중인 「주권국연방」조약은 러시아 백러시아와 중앙아시아 5개공 등 7개공화국만이 참여의사를 밝힌 가운데 그나마 이견이 많아 가조인마저 이뤄지지않고있는 상태다.경제공동체조약에는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를 제외한 10개공화국이,집단안전보장조약에는 아제르바이잔만을 뺀 11개공화국이 참여하고 있다. 소련은 결국 연방형태에서 탈피,각공화국이 정치적으로 독립의 길을 걸으면서 협조가 필요한 경제·안보분야에서만 공동체를 이룰 전망이다.그속에서 소수민족 독립의 연쇄반응이란 홍역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 같다. ◎각국서 잇따라 “지지”·“환영”/“독립” 결정… 세계의 반응/미·가등 6개국 “국가승인 준비”/옐친도 즉각 승인… 고르비는 “연방잔류 촉구” 【키예프·도쿄·캔버라 로이터 AFP 연합】 소련 우크라이나공화국이 지난 2일 국민투표로 독립을 가결한 뒤 러시아공화국을 비롯,외국으로서는 폴란드가 최초로 승인한데 뒤이어 세계 각국이 잇따라 우크라이나를 승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캐나다,유럽공동체(EC)등의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승인을 준비중이며 스웨덴과 체코슬로바키아도 승인 용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말린 피츠워터 미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승인하기에 앞서 조만간 특별사절단을 우크라이나로 파견,소수민족과 인권문제,핵무기 처리,소연방의 부채문제 등을 우선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총리실은 『캐나다가 우크라이나와 외교관계 수립 협상을 곧 가질 예정』이라고 밝히고 우선 양국간 국교수립 이전에 우크라이나내 인권문제,핵무기와 군축문제 등이 먼저 해결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승인하기 전에 다른 국가들의 반응을 우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일본 외상이 3일 말했다. 호주도 당분간 국제반응을 지켜볼 것이라고 외무부의 한 대변인이 말했다. 한편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승인에 대한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보리스 옐친 소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2일 우크라이나공화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소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압도적으로 가결한뒤 이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러시아공화국 TV는 이날 저녁 뉴스 시간을 통해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공화국 국민의 민주적인 의사 표시에 따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다고 발표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1일 새로 선출된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각각 축하의 뜻을 전하고 소연방의 붕괴 보다는 권력을 재배분할 것을 촉구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 우크라이나대통령 당선 크라프추크/30여년간 골수공산당원 활동

    ◎「쿠데타」이후 독립운동에 투신 1일 실시된 소련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는 레오니드 크라프추크(57) 후보는 지난해 7월 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공산당 최고위 지도자 출신. 하얀 머리에 위엄을 갖춘 크라프추크 최고회의 의장은 지난 30년 동안 공산당원으로 활동했으며 공화국에서 공산당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고조됨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에 대한 우호적인 자세를 유지해왔었다. 그러나 지난 8월 소련에서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그는 공화국 공산당 정치국원자리를 사임하고 과거 명목상으로 지지해왔던 공화국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공화국 독립운동에 전념한 이후 쿠데타 실패 전까지 충성을 다했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으며 대중연설의 대상을 러시아인에서 우크라이나인으로 바꿨다. 크라프추크 의장의 반대자들은 그가 뒤늦게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민족주의 및 독립운동으로 자세를 바꾼 진의를 의문시 하고 있으며 이같은 의문은 이번 대통령선거운동에서 주요 쟁점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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