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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박사·전의사 유해 고향도착/선열추모 행렬 줄이어

    【광주·보성=최치봉·남기창기자】 독립운동가 서재필박사의 유해가 5일 하오 6시 10분쯤 전남 보성군 문덕면 가내마을 서박사의 생가에 도착,안치됐다. 서선생의 유해봉송단은 이에 앞서 이날 하오 4시 서광주 톨게이트에 도착,중외공원∼광주역∼유동3거리∼금남로에 이르는 20㎞의 구간에서 1시간여동안 시가행진을 벌인뒤 전남도청앞 광장에서 구용상전남지사와 강영기광주시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과 광복회 회원등 1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출영행사를 가졌다. 한편 전명운의사의 유해는 6일 낮 12시부터 광주에서 시가행진을 갖고 하오 1시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 시조선산을 들른뒤 이날 국립묘지로 돌아와 안치된다.
  • 「임정 법통잇기」 문민정부 의지/서재필·전명운선생 유해봉환 의미

    ◎우리민족 자존심 회복에도 큰 도움 유해가 4일 미국에서 봉환된 서재필박사와 전명운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뒤 이역만리에 묻혔던 독립운동가들이다. 서박사는 조선말 위기에 처한 민족의 현실을 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처음으로 순한글 민간신문 「독립신문」을 발행한 언론인이자 정치가·독립운동가로,전의사는 친일 미국외교관의 저격을 기도한 항일투사로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독립신문은 개화기에 독립운동과 자주근대화의 기폭제가 된 독립협회의 창설을 이끌었다는 점이 높이 평가돼 후세에는 독립신문이 발행된 1896년 4월7일을 기념,매년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해놓고 있다. 지난해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선생등 상해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가 봉환된데 이어 이번에 다시 두 독립운동가의 유해가 봉환된 것은 유족과 민족의 오랜 염원에 의한 것이다. 현정부는 상해임시정부의 문민전통을 잇고 있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국선열의 유해 국내봉환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같은 정부의의지는 김영삼대통령이 지난해 박은식선생등을 봉환할 당시 『이들 선열을 모시는 것은 새정부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데서도 엿보인다. 정부는 이에 따라 지난해 처음으로 중국정부에 협조를 촉구,중국이 유해봉환요청을 수락하자 지난해 6월 선열봉환국민제전 계획을 확정함으로써 선열유해봉환을 국민적 행사로 끌어올렸다. 따라서 두분 유해의 환국은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40여년간을 이역만리에 방치해 왔던 독립유공자들의 유해를 모국에 모시게 됐다는 점에서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커다란 계기가 됐다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864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송재 서박사는 1882년 과거에 급제,김옥균·서광범·박영효등 개화파인사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서박사는 1884년 갑신정변에 적극 가담했으나 정변이 「3일천하」로 끝나자 미국으로 망명,컬럼비아의과대(현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한뒤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국적을 취득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개화파에 대해 무죄가 선언되자 귀국,중추원고문으로 임명된 그는 국민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그뒤 미국으로 건너간 서박사는 현지에서 광복운동을 펼쳤으며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한편 전의사는 19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이던 미국인 스티븐스가 친일언행을 일삼자 그를 암살하려한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 서울에서 태어나 16세때 하와이로 이민간 전의사는 철로공사장등지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미국내 항일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그는 당시 미국내의 반일감정을 무마키 위해 미국에 돌아온 스티븐스가 「일본의 한국지배가 한국에 유익하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자 이에 격분,1908년 3월23일 샌프란시스코 페링역에서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쏘았다. 전의사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처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1947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서·전선생 유해 봉환하던 날/이 부총리는 3백여명 경건한 환영 ○…서재필박사와 전명운의사의 유해는 4일 하오 2시30분 대한항공 061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반세기만에 그리던 고국 품에안겼다. 선열들의 유해와 영정은 이란 승객들이 내리고 난뒤 비행기안에서부터 국방부 의장대에 의해 운구돼 일반 입국장을 거쳐 공항청사 밖에 대기중이던 6대의 운구용무개차에 영정과 훈장,유골순으로 옮겨진뒤 국립묘지로 봉송됐다. ○…선열들의 유해 봉송에는 미국 현지에서 서박사의 종증손인 서동성씨(59·미국 변호사)와 전의사의 둘째 딸 전경련씨(71),사위 표한규씨(53)등 유족과 봉환단장인 김시복국가보훈처 차장,서박사의 고향인 전남 보성의 유준상의원(민주당),오세응의원등 20여명이 동행했다. 또 유해 봉환위원장인 이영덕부총리와 이충길국가보훈처장,김승곤광복회장이 공항에 나와 유해 봉환식에 참석했으며 서박사의 종손인 서희원 전 이화여대 교수(70),전의사의 종손인 전의식씨(49·서울신문 TV가이드부 부국장)등 유족과 각계인사등 3백여명이 유해를 맞았다. ○…서박사의 유해 환국이 성사된 데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사업을 하는 재미교포 장익태씨(58)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서박사의 종손인 동성씨와 선후배관계인장씨는 지난 59년 미국으로 건너가 서박사의 유해가 방치되다시피 한 것을 보고 지난 68년부터 지금까지 납골당을 관리해 왔다는 것. 10년 전에도 서박사의 유해를 봉환하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무산됐다고 밝힌 장씨는 『이제야 유해가 환국하게 돼 한편 섭섭하면서도 감사하다』면서 『84년 작고한 서박사의 둘째딸 서 뮤리얼씨가 겨울에 난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 내가 유골을 돌보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는 서박사의 유해가 처음 안치됐던 챌튼힐의 납골당이 비가 새는 등 관리가 부실해지자 지난 83년 유해를 필라델피아 웨스트로렐힐로 옮겨 관리해 왔다.
  • 서재필·전명운 선열의 환국(사설)

    평생을 두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친 서재필박사와 전명운의사의 유해가 4일 미국으로부터 서울에 도착한다.지난해 8월 중국 상해로부터 임정요인 다섯분 영령의 봉환에 이어 두번째로 이루어진 애국선열 영령의 환국이다.내년이면 벌써 광복 50주년,이제야 멀고먼 이국땅에서 숨진 선열들의 유해를 고국에 모셔 안장함은 때늦은 송구함이 없지않으나 그나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재필박사는 개화기의 독립운동가로,사상가로,언론인으로 우뚝한 자취를 남겼다.국운이 기울어가는 시기에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문을 세우는등 애국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18 9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한국언론사의 새장을 열었다.우리 언론이 제정한 「신문의 날」4월7일은 바로 독립신문 창간기념일이다.서박사는 일제때 미국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힘쓰다 19 51년 영면하였다.구한말 개화기부터 광복을 맞기까지 그는 현대사에 불멸의 자취를 남긴 거목이다. 일반에겐 다소 생소한 전명운의사는 19 08년 미 샌프란시스코부두에서 대한제국의 미국인 외교고문이던 친일파 스티븐스를 저격했던 독립운동가.『일본의 한국통치는 한국인 모두가 바라는 바』란 망언을 거침없이 해댄 스티븐스는 당시 한국인의 공적이었다.전의사의 권총은 불행히 불발에 그쳤으나 또 한사람의 한국인 장인환의사의 저격으로 스티븐스는 목숨을 잃는다.대한남아의 통쾌한 기개가 미국땅을 뒤흔드는 순간이었다.이 사건은 일본의 침략성과 우리의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전의사 역시 47년 이역에서 눈을 감았다. 서박사의 유해는 필라델피아의 한 공동묘지 납골당에서,전의사는 LA 갈보리 천주교공동묘지에서 각각 모셔오게 된다.타계한지 40여년이 훨씬 지난 시점이다. 정부는 이영덕부총리를 위원장으로 「봉환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따로 집행위원회를 조직하여 범정부적으로 유해봉안행사를 갖기로 했다.두분의 안장식은 8일 하오2시 국립묘지 광장에서 엄숙하게 거행된다.이역땅에서 외롭게 숨진 순국선열들의 유해 환국은 민족정기를 선양한다는 점에서 그 뜻이 크다.또한 현대사의 복원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될만한 일이다.우리 민족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이들 선열들의 수난과 희생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새 문민정부는 해외에 묻혀있는 선열들의 유해찾기 조사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내년 광복절까지 복원되는 중경임시정부청사의 복원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서재필박사,전명운의사 두분의 환국을 맞으면서 다시한번 우리 모두 역사앞에 한점 부끄러움 없는 국민이 되기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 불 법정에 선 나치일가/파리=박정현(특파원코너)

    ◎“전범” 투비에 부인·자녀도 증인 신세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재판소에는 한 가족이 법정에 섰다. 그것도 중죄재판소에서다.2차대전의 나치 협력자인 올해 79세의 폴 투비에가 종전49년만에 법정에 선 것이다.그의 부인 베프테(69)와 아들 피에르(44),딸(46)은 증인 자격으로 나왔다. 투비에는 나치독일하의 괴뢰정권인 비시정부가 1943년 만든 민간보안대의 리옹지역 대장을 지내면서 독립운동가와 유태계 프랑스인 탄압에 앞장선 인물이다.전쟁이 끝나자 투비에는 자취를 감췄으나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은둔생활을 해오던 투비에는 지난 89년 니스의 한 수도원에서 검거 됐고 64년 제정된「반인류범죄 불말소법」에 의해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투비에는 동료의 죽음에 보복하기 위해 리옹의 거리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시민7명이 목숨을 잃게하는등 잔학상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그의 재판도 이같은 피해자 친지들과 인권단체등의 숱한 진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사형을 촉구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그의 가족들은 전후50년가까운 투비에의 도피생활때문에 자신들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진술했다.투비에의 부인은 21살이던 지난46년 당시 오빠를 찾아온 투비에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며 71년 퐁피두대통령이 사면을 내린 직후의 6개월이 결혼생활 가운데 가장 행복했었다고 회고했다.그의 아들과 딸들은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해야만 했고 이름과 주소등 신원이 공개되는 바람에 학업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면서 「가족의 미래는 아버지의 석방여부에 달려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온갖 고생을 한 가족들의 처절한 진술이 계속되는 동안 당사자인 투비에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듣기만 했다.투비에 공판이 속개될 오는 6월6일엔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고 작전에 참가했던 퇴역군인등 8백여만명이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동시에 유럽에서는 아직도 전범과 투비에같은 나치 협력자들에 대한 조사와 심판이 한창이다.역사의 심판은 50년이란 세월의 흐름에 상관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김 대통령 북경대 연설문 요지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북경대학을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방문하여 여러분께 말씀드릴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나는 이번 방문을 통해 상해의 거대한 포동개발지구에서 고도 북경에 이르까지 약동하는 중국의 발전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중국국민의 근면과 성실,그리고 중국 지도자들의 탁월한 영도력이 오늘의 중국을 있게 했다고 믿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수천년에 걸친 두터운 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한자를 사용하고 유교문화적 전통을 공유해 왔습니다.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습니다. 1919년 한국의 3·1 독립운동과 북경대학 중심의 5·4운동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20세기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나라 관계가 일시적으로 단절되었을 뿐입니다. 한국은 산업화를 시작한지 30년이 지났습니다.한국은 국민총생산이나 무역면에서 세계유수의 산업국가가 되었습니다. 중국국민이 위대한 저력을 발휘하여 현대화를 성공시키고 있듯이 한국국민도 세계사에 유래없는 기적을 창출했습니다.이런 점에서 한국과 중국은 양국의 공동번영과 아태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계는 지금 21세기를 앞두고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아시아의 경제적 역동성이 세계 경제지도를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평화적으로 그리고 원만히 해결되어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나는 중국의 능동적인 역할을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우리는 결코 북한의 고립을 원치 않으며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서는데 필요한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서해안지역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북한이 개방·개혁의 조류에 동참하게 된다면,「황해경제권」이 급속히 부상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하여 황해는 「평화와 번영의 호수」가 될 것이며 동북아는 더욱 활력이 넘치는 지역이 될 것입니다.한반도 통일은 중국의 국익에 부합될 것입니다.동북아의 긴장을 완화시켜 지역발전을 더욱 촉진시킬 것입니다.나아가서 통일은 동북아 질서에 참된 균형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손을 맞잡고 「상생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특히 한·중간의 상생관계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기본축이 될 것입니다. 한·중양국은 문화적 동질성,지리적 근접성,오랜 역사적 유대라는 유리한 조건은 물론 높은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양국은 인력과 자원,자본과 기술,발전경험 등 모든 면에서 서로 주고 받을 부분이 많습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국가의 하나가 되었습니다.한국 또한 세계속의 주요국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한·중양국은 긴밀한 협력으로,21세기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는 데 책임있는 역할을 다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나의 이번 방문이 한·중간 「상생의 시대」를 활짝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중국에 대한 우리의 기대(사설)

    일·중순방의 김영삼대통령은 도쿄에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새 한·일관계를 다진데 이어 휴식의 틈도 없이 26일 곧바로 상해에 도착,중국방문에 들어갔다.선렬의 독립투혼이 서린 임시정부청사등을 찾아보며 독립운동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확인한 후 27일 북경으로 들어가 강택민주석등 중국지도자들과 회담을 갖고 공동관심사를 논의한다. 당초 김대통령 방중의 중요관심사는 그동안 양적 팽창을 거듭해온 양국관계를 질적이고 화학적인 결합단계로 차원을 높이는 데 있었다.한·중산업협력위를 구성하고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하며 항공협정도 완결시켜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 상호보완적인 양국의 경제협력파트너관계를 확대발전시켜 그러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관계발전을 통해 군사·안보 등 기타 한·중관계일반의 긴밀화도 촉진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한 관심사엔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다.다만 최근의 사태로 또하나의 시급한 괌심사가 추가되었다.북핵문제인 것이다.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대북영향력이 막강한 중국이다.북핵개발은 반대하나 대화해결만 강조하고 있다.때마침 그러한 중국을 우리대통령이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북핵문제에 대한 논의가 비상한 관심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여러차례 촉구한 바 있다.중국은 대화해결의 원칙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방법을 제시하고 관철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협력적인 중재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그것은 개방·개혁의 아시아대국이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이 다해야 할 국제적 책임이자 의무일 것이다.그동안의 중국은 북핵에 관한 한 무책임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한·일정상이 중국의 역할을 특히 강조한 사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핵문제외도 북한과 관련해 중국에 기대하는 바는 많다.특히 중요한 것은 북한의 개방·개혁 유도다.북한의 개방·개혁지체로 동북아의 안보와 경제적 발전이 큰 지장을 받고 있는 사실은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북한의 개방·개혁은 한·중·일·러로 이어지는 동북아·태평양경제발전및 번영의 결정적인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우리대통령은 이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고 있다.중국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 또 한가지 우리는 북탈란민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북한과의 관계등을 감안한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나 보다 인도적인 차원의 대응을 바라는 것이다.기아를 못이겨 국경을 넘는 그들을 단순월경자로 체포해 사형이 확실한 북한으로 송환하는 것은 대국 중국의 체면에 관계되는 비인도적 처사다.한·중양국과 유엔관계기관도 참여하는 관심과 대책마련이 있기를 기대하는 바다.
  • 「임정 구지」 현판 만지며 감회 젖어(김대통령 방중여로)

    ◎「한민족 독립운동의 성전」 기념휘호 남겨/연도의 중국인,김대통령 알아보고 박수 ▷상해시장 접견및 만찬◁ ○…김영삼대통령내외는 상해도착직후 임정청사를 둘러본뒤 숙소인 신금강호텔 4층 백옥란청에서 황국상해시장 일행을 접견,10여분간 환담한뒤 황시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 김대통령은 황시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처음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지만 공항에서 오면서 1천3백만 인구의 상해시가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다고 느꼈다』며 『특히 우리나라 주요기업들의 간판이 거리 곳곳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대단히 반가웠다』고 상해방문 소감을 피력. 김대통령은 『우리나라와 중국은 수교역사가 불과 1년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도 놀라운 교역량 증가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상해시는 중국 발전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큰 희망이 있다』고 언급. 김대통령은 또 『우리나라의 임시정부청사를 돌아보면서 선조들이 그 좁은 장소에서 독립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감회가 깊은 표정. 김대통령은『상해시는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을 잇는 큰 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임정청사를 잘 보관해온데 대해 매우 감사하다』고 사의를 표명. 황시장은 이에앞서 『대통령의 상해시 방문은 한국기업의 중국진출등 양국간의 경제협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인사. ▷임정청사방문◁ ○…상해의 숙소인 신금강호텔에서 한시간의 휴식을 취한 김대통령내외는 승용차편으로 상해시 노만구 306동4호에 있는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30여분 방문. 김대통령은 청사건물 골목을 걸어들어가 건물입구의 흰대리석에 새겨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란 현판을 손으로 만져보며 잠시 감회어린 표정을 지은뒤 건물관리소장인 장명목씨의 안내를 받으며 3층 건물내부를 돌아봤다. 김대통령은 장소장으로부터 임시정부 원년인 1919년 첫 임정국무원 요원들이 기념촬영한 사진설명을 듣고는 『너무 젊을때 사진이라 잘 알 아 볼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시. 김대통령은 특히 신익희선생의 모습을 보고는 『어제도 와세다대학에서 선생님 얘기를 했었는데…』라며 『그분을 모시고 정치를 처음 시작했었다』고 회고. 이어 3층에 올라가 요인숙소를 둘러본후 『이렇게 좁은집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지냈으니 얼마나 어려웠겠느냐』고 임정요인들의 애국심을 되새기기도. 이어 숙소옆방에 마련된 전시실로 자리를 옮긴 김대통령은 임정수립당시의 활동상황이 실린 당시 신문기사·사진·그리고 도산 안창호선생의 친필휘호 「애기 애타」등을 어루만지며 관심을 표명. 김대통령은 장관리소장에게 『귀중한 자료들을 잘 보관해주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1층회의실에 내려와 회의용 탁자에 준비된 방명록에 「한민주 독립운동의 성전」이라고 기념휘호. 임정청사는 건평 44평에 3층연립주택형 벽돌건물로 현재 상해시가 「노만구 문물보호」건물로 지정,관리하고 있는데 비교적 깨끗이 관리되고 있는 상태. 한편 김대통령 내외가 청사방문을 마치고 나오자 큰길 양편에 몰려있던 수백명의 중국인들이 김대통령을 알아보고 박수를 보냈고 이에 김대통령은 특유의 제스처로 손을 흔들어 답례. ▷상해도착◁ ○…김영삼대통령은 26일 하오 도쿄를 출발한 지 3시간만에 상해에 도착,4박5일의 중국 공식방문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윤해중상해주재총영사와 중국의 전차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오며 태극기와 오성홍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민 1백여명에게 손을 들어 답례. 이어 트랩을 내려와 영접나온 황국상해시장과 장정연주한중국대사내외등 중국측 인사와 반갑게 악수를 교환하고 상해시 남녀화동 2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서는 이들의 뺨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 김대통령은 이어 「선진조국의 영도자 김영삼대통령」「성공적인 중국방문을 기원합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걸고 환호하는 교민들에게 다가가 특히 앞줄에 선 어린이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숙소인 신금강호텔로 출발. ▷현지반응◁ 중국의 각 신문들은 이날 일제히 김대통령의 약력과 치적등을 중심으로 방중관련기사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 당이론지 광명일보는 「김영삼,누적된 폐해(적폐)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여론조사결과 대다수 한국인들이 김대통령의 지난 1년간의 정치개혁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 이 기사는 김대통령이 그동안 한국병의 근원적인 치료를 위해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등을 추진해왔고 계속적인 개혁을 통해 문민통치하의 「청렴정치」를 실현해가고 있다고 소개. 당기관지 인민일보도 이날 1면에 김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약력등을 소개하고 2면과 3면에서도 한국관련 특집기사를 게재. 인민일보는 이어 2면에서 「합작을 확대,공동발전한다」는 제목으로 서울주재특파원이 쓴 특집에서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해외투자대상국이자 세번째로 큰 파트너가 됐다고 지적.이 기사는 또 요즘 한국에서는 중국붐이 일어나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가 하면 도로표지판에 한자가 등장하고 한자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등 사그러들던 한자들이 다시 부활되고 있다고 소개.
  • 서인도제도 소국 엔티가바부다/총선거쳐 부자간 정권세습

    ◎버드총리,“야 공세차단” 아들에 물려줘 서인도제도 인구8만명의 섬나라 앤티가바부다.이 섬나라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대물림해 화제가 되고있다. 이번 정권교체는 앤티가노동당 당수인 비어 버드총리가 총선에서 승리하자 승리주역이며 노동당의원인 아들 레스터에게 배턴을 넘겨주면서 이뤄졌다. 올해 84세의 버드총리는 지난43년부터 앤티가와 이웃 바부다섬에 대해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주도,지금까지 사실상의「가족통치」를 해왔다.이번 대물림에 따라 버드일가는 지금까지 50년동안의 앤티가바부다에 대한 통치를 자연스레 연장하게 됐다. 이번 총선결과 앤티가노동당은 전체 17개 의석가운데 11개의석을 차지했으며 레스터 버드 신임총리는『이번 승리로 나의 가족에 대한 여러 혐의점들을 말끔히 씻게 됐다』며 흡족해했다. 한편으로 이번 총선은 야당이 6개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지난 76년이래 처음으로 소국에 양당정치가 부활된 의미도 갖고 있다.지난89년 총선에서 야당은 1개의석 밖에 차지하지 못했었다. 야당의 2인자인 팀 헥터의원은『이번 선거는 야당에 정권교체에 대한 청신호를 보여준 것』이라면서『앤티가바부다의 경제위기로 보아 오는 96년 선거는 승리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지역전문가들도 이들의 가족통치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있다. 인구8만명의 소국에 외채가 4억달러에 이른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 일본관련 책들 서점가 “강타”

    ◎월 10여종씩 나와 서점마다 20∼30종 진열/「일본은 없다」/1백일만에 9만부 판매 “베스트 셀러”/「청산못한 역사」/이병도 등 60명 친일파 지목,행적 추적/국내 첫 연구서 「창씨개명」·「…근대인물사」도 눈길 일본의 현실을 다루거나 한일관계를 파헤친 책들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관련 서적은 지난해부터 출판량이 대폭 늘면서 한달에 10여종씩 나와 웬만한 서점에는 20∼30종이 진열돼 있을 정도. 이 가운데서 현재 출판계가 주목하는 책들은 「일본은 없다」「청산하지 못한 역사」「창씨개명」등이다. 「일본은 없다」(지식공작소 간·전여옥 지음)는 지난해 11월 중순 처음 서점에 나온 뒤 보름여만에 교보문고·종로서적등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12주동안 연속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주 순위는 교보문고에서 종합3위·수필1위였으며 종로서적 순위에서도 종합4위·수필2위에 올랐다. 출판사에서는 그동안 9만부를 찍어 서점가에 돌렸으나 요즘 작은 서점에서는 책을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일본은 없다」가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데 대해 출판계에서는 『지은이의 시각이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달라 독자들이 산뜻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고 밝힌다.일본을 해부했다는 책들이 대부분 「일본은 밉지만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데 비해 지은이 전여옥씨는『일본은 배울 점이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고 단정한다. 모방송국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했던 그는 흔히 일본인의 특성으로 일컬어지는「단결」「질서」「집단에의 복종」등이 사실은 타율적으로 파생한 「정신적인 후진성」임을 사례를 들어 입증한다.따라서 『일본을 뒤쫓기 보다는 우리의 활달한 기질과 창의성을 세워 일본에 앞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은 없다」에 못지 않게 잘 팔리는 책이 「청산하지 못한 역사」1·2·3권(청년사 간·반민족문제연구소 지음)이다.「청산하지…」1권은 나온지 1주일만인 지난주에 교보문고의 인문과학부문 베스트셀러 3위,종로서적의 같은 부문 9위에 성큼 뛰어올라 서점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3권으로 구성된 이책은 광복이후 사회 각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가운데 박정희·최규하·정일권·민복기·이병도등 60명을 「친일파」로 지목,그들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을 펴낸 반민족문제연구소의 김봉우소장은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각개인의 친일행각을 자세히 밝힌 책은 이것이 처음』이라면서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고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들 책만은 못하지만 「창씨개명」(학민사 간·정운혁 엮음),「우리나라 근대인물사」(새문사 간·이현희 지음)도 서서히 독서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창씨개명」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한민족말살 정책인 창씨개명을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연구서로,창씨개명의 제도·실시과정·사상적 배경들을 다룬 한일 양국 학자·언론인들의 논문과 대담,관계서식등의 자료를 한데 묶었다. 성신여대 이현희교수(사학과)가 쓴 「우리나라 근대인물사」는 개항 무렵부터 광복을 맞을 때까지 우리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1백15명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한 교양서적.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평범한」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발굴한 점이 돋보인다.
  • 정치인의 생존전략(정치판 달라진다:2)

    ◎「발로 뛰는 표밭가꾸기」 주력/시간쪼개 현지 방문… 교회·양로원 등 공략/후원회 구성… 깨끗한 선진국형 모금 확산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국회의원 회관은 텅 비어 있었다.임시국회가 마감된 바로 다음날이어서 그렇겠지만 빈 정도가 다른 때보다 훨씬 심했다. 이웃에 있는 민자당 당사도 마찬가지였다.김종필대표와 문정수사무총장등 3역을 빼고는 중간당직자들 대부분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거의 모두가 지역구에 내려갔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및 선거부정방지법」등 정치관계법안의 완전타결로 정치환경이 혁명적으로 변화되면서 의원들에게는 「지역구만이 살 길」이 됐다.이제는 돈으로는 조직을 관리할 수도,표를 살 수도 없어 평소부터 표밭 다지기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민자당 의원들은 더욱 급해졌다.상반기까지 지구당 위원장들을 개혁인사로 물갈이 한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교체의 폭은 50∼60명까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문총장은 평상시 지구당 정비작업의 차원이므로 현체제를 뒤흔들만큼 큰 폭은 아닐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그럼에도 지구당 위원장들 사이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게 현실이다.여기에는 민주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새로운 정치환경은 검은 돈의 정치권 유입을 차단해 의원들의 주머니를 압박하고 있지만 떳떳한 정치자금의 조달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후원회의 회원수는 2백명에서 3백명으로 늘어났고,1년에 두번만 허용되던 모금횟수는 4번까지 할 수 있게 됐다.선거 때는 6번까지 가능하다.1억원이던 후원금의 상한액도 1억5천만원으로 늘어났다. 의원들은 이처럼 새로운 정치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선진국형 모금을 시도하고 있다.무작정 초청장을 보내 『한푼 냅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관리도 하고 의정활동의 밑천도 충당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이들은 지지자들의 참여폭을 넓히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스스로를 「상품」으로 내놓고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서는 사례들은 이같은 생존전략에서 나온 결과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신문광고를 통해 1억2천만원을 모금했던 민자당의 박범진의원은 이달 중순 다시 한번 신문광고를 내기로 했다.민주당의 이철의원은 지난해말 문화,연예계 인사들을 불러놓고 디너쇼를 열어 짭짤한 수입을 올리자 「올해도 다시 한번」을 생각하고 있다.민주당의 홍사덕의원은 특유의 재담을 내걸고 토크쇼를 개최해 1억원을 거둔 바 있다. 같은 당의 이부영의원은 오는 4월부터 한길사의 책 광고모델로 TV에 나온다.이의원은 모델료를 받지 않는데 돈보다는 유권자에게 이미지를 심어주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역시 같은 당의 김원웅의원은 지난해 이완용재산의 국고환수등에 주력했던 의정활동을 부각시키기 위해 독립운동관계자들로 후원회를 구성했다. 민주당의 정대철의원은 오는 6월 2일 5천명규모의 지지자 모임을 만들 계획이다.정치자금 조달창구가 아니라 「싱크탱크」인 정책자문그룹을 구성하고 지지자 계층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정의원과 김원기민주당 최고위원은 후원회를 미국에까지 이어놓고 있다. 이밖에 임채정 박석무 유인태 제정외 장영달 박계동 신계륜 이철의원등 민주당의 개혁정치모임 회원들도 후원회의 활성화를 통해 깨끗한 정치를 시도하고 있다. 민자당의 정필근의원은 지역구인 경남 진양이 농촌지역인데도 농산물 개방의 불가피함을 강조하는등의 소신과 초선의원답지 않게 돋보이는 의정활동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파고들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다소 간접적인 표밭 가꾸기라면 시간을 쪼개 직접 지역구를 누비는 적극적인 「맨투맨」전략도 부쩍 늘고 있다.지난해 보궐선거를 통해 의사당에 입성한 민자당의 박종웅의원은 주말이면 빠지지 않고 지역구인 부산의 사하구에 내려간다.박의원은 시장 사찰 교회 양로원등을 분야별로 공략하고 있는데 7일까지 이틀동안 병원을 돌 예정이다.제정구의원은 시흥·군포지구당 사무실에서 주로 문제되는 쌀,야채류등 우리 농산물의 중개및 대리판매운동을 펴오면서 이익금을 남기지 않는 대가로 자신을 알리고 있다.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의원들도 상당수다.정치개혁을 가져올 장치는 마련됐지만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이를 뒷받침하기에는 아직 미흡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개혁의 대세를 거스를 수도 없고,그저 속으로끙끙앓으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돈·조직보다 정책” 변신 안간힘/중앙·지구당 대대적 정비… 의정활동 역점/민자/“맞대결 할만하다”… 「대안야당」 이미지 부각/민주/여야 정치환경변화 대응 부심 정치관계법의 국회통과에 따라 선거풍토 변혁의 일선 책임자로 나서게 된 여야의원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묘책을 마련하느라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야 정당도 중앙당과 지구당의 대폭적인 개편,공천기준의 전면 재검토등 체질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민자당은 이제 여권 프리미엄이 없어진만큼 당운영이나 선거,정치자금등 모든 문제를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하고 있다. 특히 지난날처럼 중앙당과 지구당을 방만하게 운영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한 최우선적 과제가 인적 구조의 틀을 바꾸는 것이라는데도 공감하고 있다.이것은 지구당위원장의 과감한 물갈이를 통한 세대교체를 의미한다.이른바 관록이나 경력만을 앞세우고 선거 때는 돈과 조직으로 표를얻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당지도부도 이같은 인식아래 대폭적인 지구당 정비를 실천에 옮길 방침이다.이와 관련,재력은 더이상 공천 기준이 아니라는 말이 공식화돼버렸다. 의원들도 혁명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겠다는 모습이다.『지구당 관리만이 살길』이라고 굳게 마음먹고 있는 것이다.우려와 탄식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주로 여권 프리미엄에 익숙해진 민정·공화계의원들이다.그렇다고 민주계의원들도 걱정을 안하는 것은 아니다.지난 총선을 여당소속으로 치러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앞으로 지역구만 잘 다지면 어떤 정치외풍에도 끄덕하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박정수의원은 『이제는 충실한 의정활동으로 평가받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김영구의원도 『중진이라고 명성 하나만 믿고 안일하게 대처해서는 큰코 다칠 것』이라면서 『지역별·직능별 간담회를 수시로 개최,민의를 기민하게 수렴하고 여당의원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해 정책으로 잘 반영한다면 오히려 이득이 될 수있다』고 희망 섞인 전망을 했다.박희태의원은 『여당 프리미엄이 없어졌다는 말은 여야 후보간 조건이 같아졌다는 것이지 조직이 없어졌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면서 『조직관리에 보다 많은 신경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민주당은 여당과의 이해득실을 저울질할 때 별로 밑지는 것이 없다는 반응.예전처럼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없는데다 선거범죄에 대한 재정신청의 주체가 검찰에서 후보와 정당으로 확대돼 관권개입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이기택대표는 『앞으로는 돈없고 힘없는 야당도 여당과 한번 맞대결해 볼만 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앞으로 정책 개발 없이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판단아래 당의 정책기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정책정당으로서의 이미지 제고만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라는 인식에서다. 정책위는 지금까지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로 열리던 정책토론회와 공청회등을 외부에서 확대 개최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또 전 지구당에 개정된 정치관계법의 내용과지침을 시달하는 한편 유명무실한 당무감사를 강화해 달라진 선거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의원들은 중앙당차원의 정책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유권자들과 부단히 접촉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권한이 강화된 선관위의 철저한 중립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한다.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수십년간 내려온 불법관행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 “한용운선생딸 친자 아니다”/“손녀딸”주장 70대확인소송(조약돌)

    ○…만해 한용운선생의 손녀딸이라고 주장하는 한귀례씨(70·전남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가 최근 만해선생의 외동딸 한영숙씨(69·서울 성북구 성북동)를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제기. 한씨는 소장에서 『만해선생의 본래 이름은 한원권이며 본래 천도교신자였다가 승려로 독립운동을 하면서 용운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며 『현재 만해선생의 외동딸로 알려져 있는 영숙씨는 만해선생이 죽은 뒤 군정법령에 의해 한용운을 아버지로,유모씨를 어머니로 하여 허위로 호적신고한 것』이라고 주장. 한씨는 또 『청주한씨 족보에도 만해선생의 호적상 이름이 원권으로 올라있고 제적등본에 나타난 생년월일도 만해와 같은 1868년 4월8일』이라며 청주한씨 족보와 자신과 원권씨의 관계를 증명하는 호적등본을 증거물로 제출하고 만해선생과 함께 강진군과 보성군 일대에서 생활한 한모씨(90)등 주민 4명으로부터 연대보증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
  • 일에 전후처리 요구/태평양전쟁 유족회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소속 회원 3백여명은 2일 하오1시 탑골공원에서 「3·1절 75주년 기념대회」를 갖고 한·일정상회담에서 태평양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공식사죄와 대책을 발표할 것을 촉구했다. 유족회는 이날 성명에서 『3·1독립운동정신의 계승은 하루 빨리 태평양전쟁 전후처리를 하는데 있다』면서 종군위안부문제해결등 6개항을 요구했다.
  • “친일파 묻힌 애국자묘역 싫다”/국립묘지 안장 조경한선생 유언

    ◎25일 효창공원 구정묘역에 이장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 안장됐던 임시정부 국무위원 백강 조경한선생의 유택이 오는 25일 임정요인 묘역으로 이장된다. 미망인 최운영여사(79)등 유족들과 국가보훈처가 추진하는 묘지이장은 백강선생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선생은 지난해 1월 타계하기전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혀있는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며『백범 김구선생이 모셔진 효창공원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고인의 유언과 유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의전절차에 따라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 안장됐다. 유족들과 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그뒤 각계에 청원을 내 효창공원으로 이장을 추진했으나 관계당국이 난색을 보여오다 지난해 8월 박은식선생등 임정요인의 유해가 봉환되면서 임정요인묘역이 마련되자 국가보훈처가 『선생의 유택을 이곳으로 모시자』고 유족들을 설득해 이장이 성사된 것이다. 1900년 전남 승주에서 태어난 백강선생은 24세때 중국으로 망명,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항일무력투쟁에 참가하다 43년부터 임정 국무위원으로 일했다.
  • UR 국회비준 저지/범대위 7백명 집회/수원서 가두행진

    【수원=조덕현기자】 쌀과 기초농산물 수입개방 저지를 위한 범국민 비상대책위 경기본부(공동대표 민경학)소속 농민·학생등 7백여명은 1일 하오2시부터 수원역광장에서 「3·1 독립정신계승과 기초농산물 수입개방 저지를 위한 국회비준거부와 UR재협상촉구 경기도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이날 『3·1독립만세의 외침은 민족생존의 위기를 가져온 수입개방저지라는 제2의 독립운동의 함성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며 국회비준거부와 UR재협상쟁취등을 결의했다. 이들은 또 3·1독립정신계승을 위한 진혼굿과 수입농산물에 대한 화형식을 가진뒤 수원 남문까지 2㎞구간에서 가두행진을 벌였다. 또 부천연합소속 회원 1백30여명도 이날 하오2시쯤부터 부천로얄백화점 앞에서 「쌀개방 국회비준거부와 민족자주권 실현을 위한 3·1절 기념식」을 가진뒤 부천역에서 시청까지 1.5㎞의 시가행진을 벌였다.
  • 한용운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3·1운동 주도한 저항시인/불교대표로 참여… 선언문 배포 지휘/출옥후 신간회·비밀결사 만당 결성/「님의 침묵」등 시 3백편·소설 「죽음」「흑풍」 남겨 만해 한용운선생(1879∼1944)은 토지·조세·신분문제등에 대한 불만으로 전국에서 민란의 불길이 일던 봉건왕조말기에 태어났다.선생은 청년시절 날로 기울어가는 국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동학혁명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24세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끝에 출가했다. ○동학혁명에 가담 입산한 지 10년만인 1913년 선생은 자유·평등사상에 기초한 「조선불교유신론」을 발간,부패가 만연한 당시의 불교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선생은 이 유신론에서 번잡한 각종 의식을 없애고 직접 생산에 종사하자는 혁신적 주장을 펼쳤다. 선생은 같은해 10월 친일승들이 모여 한국의 원종과 일본의 조동종을 통합하자 이를 친일매불행위로 규정한 뒤 승광사에서 전국승려궐기대회를 열고 임제종을 창립,큰 호응을 얻어냈다. 선생은 이후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방대한 고려대장경을 현대적으로 정리,불교대전을 펴냈으며 처음으로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계몽활동에 뛰어들었다.당시 지식인으로 명망이 높던 최린·최남선·현상윤등도 이 잡지발간에 적극참여,암울한 식민무단통치시대에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횃불역할을 했다. 선생이 독립운동가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1919년 3·1독립운동을 추진하면서부터다. 3·1운동에 초기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 선생은 당시 유림과 불교계의 포섭을 맡았다.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 뒤 독립선언 하루전인 2월28일에는 독립선언문 3천장을 인쇄소인 보성사사장 이종일로부터 넘겨받아 중앙학림 학생들에게 전달,다음날인 3월1일 시내에 배포하도록 했다.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에 대해서는 선생이 지은 독립선언서를 수정해 삽입했다는 설과 최남선이 작성했다는 설이 나누어 있다. ○옥중에서도 태연 1919년 3월1일 하오2시 종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돌려보는 것으로 낭독을 대신해 독립운동의 서막을 열었다.선생은 이 자리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게 돼 책임이 막중하다』며 일제에 체포되더라도 변호사를 대지 말고 사식과 보석을 요구하지 않는등 당당한 대응을 하자고 행동강령을 제시했다.민족대표들은 모임이 끝나자마자 일경에 모두 체포됐으며 선생은 옥중에서도 수도승답게 태연한 모습을 지켰다. 선생은 옥중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라는 논설을 통해 『자유·평등·평화는 민족의 자존과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대강령이며 이번의 조선독립선언은 국가를 창설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때 치욕을 겪고 있는 고유의 독립국이 다시 복구되는 것임』을 설명했다. 3년여 옥고를 마치고 가출옥한 선생은 청년교육과 훈련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1924년 불교청년회회장으로 취임,대중불교건설에 앞장섰으며 「유심」등 신문잡지를 통해 『청년들에게 역경은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이 땅의 젊은이들은 나라가 없다고 좌절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선생은 1927년 좌우합작 민족유일당운동인 신간회결성에 참가했으나 2년 뒤 이 단체가 광주학생의거 진상보고민중대회를 가지려다강제해산됨에 따라 1930년 청년불교도들이 결성한 비밀항일독립운동단체인 만당의 당수로 취임,와해되기 전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대학설립 수포로 이와 함께 1926년 이상재·이승훈·조만식선생등 30여명과 조선민립대학설립 기성회를 구성,대학을 세우려 했으나 일제가 이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경성제대를 설립하는 바람에 대학설립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국문학사에서 3·1운동세대가 낳은 최대의 저항시인으로 꼽히는 선생은 1926년 발간한 「님의 침묵」에 모두 3백여편의 시를 실었다.또 소설로는 「죽음」「흑풍」「철혈미인」「박명」등을 남겼다. 선생이 시와 소설에서 쓴 「님」은 일제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을 갈구하는 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55세인 1933년 재혼한 선생은 방응모등의 후원으로 성북동에 심오장이란 택호의 집을 짓고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집을 지을 때 사람들이 남향으로 터를 잡을 것을 권했으나 마주보이는 총독부건물이 보기 싫다고 끝내 북향으로 집을 틀어버리고 말았다. ○변절자 면담거부 선생은 뜻을 끝까지 같이 한 동지에 대해서는 깊은 의리를 간직했으나 변절자에게는 단호히 단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만주에서 대한통의부총장을 역임한 김동삼선생이 일경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서 순국하자 유해를 심우장에 모시고 5일장을 치르며 눈물을 아끼지 않았으나 3·1운동당시 동지이던 최린이 변절,창씨개명을 하고 믿아오자 끝내 만나지 않았다. 일제치하에서 조선 전국이 감옥이라고 여긴 선생은 추운 겨울에도 심우장 냉방에서 꼿꼿이 앉아 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민족이 배출한 위대한 시인이자 독립투사이며 여성해방론자이기도 한 선생은 44년6월 입적,망우리묘지에 안장됐다. 근대사의 여명기에 태어나 선각자적 삶을 통해 민족정신의 새벽을 연 선생에게 정부는 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만해 한용운(외언내언)

    님은 갔습니다./아 아,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난 작은길을 길어서/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대표작 「님의 침묵」의 첫구절.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서정시이지만 그 내면에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절절한 한이 서리서리 맺혀 있다.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중의 한분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쓴 만해는 당대의 민족시인이자 「불교 유신론」을 제창한 스님. 까까중머리에 검정 무명두루마기를 입고 검정고무신만 신던 그는 3·1운동 거사후 감옥에 갇혔을 때 「옥중투쟁 3대원칙」을 철저히 지켰다.첫째 변호사를 대지 말 것.둘째 사식을 먹지 말 것.셋째 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 서울 성북동에 「심오장」이란 옥호를 붙이고 살던 조그마한 그의 기와집은 북향이었다.일제의 총독부쪽은 바라보기도 싫다는 고집 때문.그 집에서 한겨울에도 장작불을 지피지 않고 살았다. 어느날 지조를 꺾은 육당 최남선이 길거리에서 그를 보고 반가워하자 『육당은 벌써 죽었어』라면서 침을 탁 뱉고돌아서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민족대표 33인중 많은 사람들이 변절했지만 그만은 대쪽같은 기개로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온 진정한 애국지사였다.한평생을 독립운동에만 몸바친 만해는 광복을 한해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1944년5월9일,그의 나이 65세였다. 국가보훈처는 만해를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각종 행사를 갖기로 했다고 한다.반가운 일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 박철부락.이곳에 만해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만해기념관·사당·시비등이 건립되어 있다.그러나 이곳을 찾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우리는 선각자들을 기리고 그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오늘날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은 그의 도도한 기개와 투철한 애국정신이다.
  • 온천욕/“5∼20분씩” 하루 2회정도 바람직

    ◎온양·유성 등 관광겸 유적답사 코스로도 각광/고혈압·당뇨병환자 몸을 덥힌후 입욕/끝나면 물기는 닦지말고 말려야 좋아/공복·음주후는 피하고 현기증·구토땐 탕에서 나와야 학생들의 봄방학이 계속되고 화요일이 3·1절로 공휴일이 된다.모처럼 가족이 함께 쉴수 있는 이런때 따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면 추위는 물론 피로와 일상의 스트레스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온천 주변에는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유적지등이나 전통민속마을등도 있어 교육의 시간으로 활용할수 있다.온천 요령및 온천을 겸해 가족이 가볼만한 나들이코스를 알아본다. ▷온천요령◁ 온천욕은 먼저 얼굴과 손발을 씻으면서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 탕속에 들어가는게 순서이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병환자들은 갑자기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충격을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여유있는 목욕법을 취해야 한다. 탕속에 머무르는 시간은 수온이 체온보다 휠씬 높아 뜨거울 경우는 5∼10분,미지근한 물에서는 15∼20분 정도가 알맞다.목욕 횟수도 보통하루에 1∼2회 정도가 바람직하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횟수를 이보다 늘려도 좋겠지만 그렇더라도 3∼4회를 넘기면 몸의 수분을 지나치게 빼앗기게 되고 피부건강에도 좋지 않다. 또 목욕이 끝난 뒤에는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말끔히 닦아내기보다는 20∼30분 정도 누워 안정을 취하면서 물기가 자연히 마르도록 하는게 온천욕의 요령이다. 공복이나 음주후 입욕은 되도록 피해야하며 목욕중 현기증이나 구토증세를 느낄 때는 즉시 탕에서 나와야한다. ■온양온천=섭씨54∼57도의 약알칼리성 라듐온천으로 유명하다.칼륨·나트륨·칼슘등을 함유,피부병·류머티즘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서울과 불과 1시간여거리인데다 인근에는 현충사·외암리 민속마을·온양민속박물관·독립기념관등이 있다. 온천후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정신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고취시킬수 있는 독립기념관을 역사공부삼아 찾아볼만하다.이 독립기념관에서부터 8㎞거리에 유관순기념 사당이 있어 더욱 뜻깊은 방문이 될수 있다.또 2만5천평규모로 꾸며진 온양민속박물관은 계몽사 김원대회장이 20년을모아온 자료로 만든곳으로 우리선조들의 생활상과 풍습을 알수 있다.외암리 민속마은 격조높은 옛조상들의 체취를 느끼게하는 곳이다. ■유성=알칼리성 라듐온천으로 나트륨·규산등이 풍부,위장과 피부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서울과 유성간 고속도로가 8차선으로 확장된데다 숙박시설이 정비돼 교통과 숙박측면에서 전국 제1의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인근에는 계룡산국립공원과 보문산공원등이 있어 산행을 즐길 수있고 1시간거리의 공주·부여등 백제문화 유적지를 모처럼 탐방하며 우리역사를 새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질수 있다. ■수안보=서울에서 버스로 2시간30분정도가 소요되는등 전국 어느곳에서나 3∼4시간이면 갈수있고 근처에 스키장까지 있어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온천수는 섭씨 51∼53도의 무색·무취하고 매끄러운 유황라듐천으로 위장병·신경통·피부병등 치료에 효능이 있다.부근에 월악산·조령산과 문경새재·송계계곡·수옥정폭포등 수려한 관광지가 있어 산행을 곁들여도 좋겠다.인근에 보물 96호인 미륵리 석불입상, 5층석탑등을 볼수 있다. ■덕산=충남 예산군,수덕사 가는 길목 매헌 윤봉길의사의 사당 사이 들판에 자리잡고 있는 덕산온천은 유일하게 충남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윤봉길의사는 19 32년 중국 상해홍구공원에서 열린 천장절기념식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을 죽인 인물.윤의사 사당을 참배하고 섭씨52도의 수온에 온천을 하면서 피로를 풀수 있다.칼슘·나트륨·불소등이 고루 함유돼 신경통·류머티즘등 노인성 질병과 위장병·피부병등에 좋다는 소문이 나있다.덕산온천∼아산방조제∼온양온천 드라이브 코스도 좋고 수덕사∼태안해안국립공원∼예당저수지등으로도 연결된다. ■백암=수온 섭씨46도로 라듐이 많이 함유된 국내 유일의 알칼리성 방사성온천.8㎞떨어진 곳에 백암산(해발 1천4㎞)이 있어 겨울 산행도 즐길 수있고 성류굴·망향정·월송정등의 볼거리도 풍성하다. ■부곡=경남 창녕군의 국내최대 유황온천.섭씨 최고78도까지 올라가는 온천욕이 그만이다.유황외에 규소·칼슘·철분등 20여종의 무기질이 포함돼 호흡기및 피부질환에 특히 효험이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게다가 부곡하와이 등 주변의 위락시설이 잘 갖춰져 각종 레저를 함께 즐길 수있다.
  • 주택 55만가구 건설,보급률 81%로/이 총리 국회보고 요지

    ◎정수시설 사업비 50% 국고서 보조/정부부문 연구개발투자 30% 증액 이회창국무총리가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밝힌 올해 정부 주요시책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치·통일·외교·안보분야=현재 마련중인 통합선거법이 선거문화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내년에 치러질 지방의회 의원선거와 자치단체장 선거가 조기에 과열되지 않도록 하겠다.북한 핵문제를 안보·외교정책의 최우선 현안과제로 삼겠다.북한이 오늘 새벽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락한 것을 환영한다.북한이 핵 사찰을 성실히 받고 남북간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대화에 응해 올 것을 기대한다. 이산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인도적인 사업들을 하루 빨리 추진하겠다.군은 과학적인 자원관리와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21세기 통일시대에 대비한 미래지향적인 군이 되도록 하겠다.인권·환경등 범세계적인 문제해결은 물론 무역과 투자·기술협력 증진을 위한 경제와 통상분야의 외교역량 강화에도 힘을 기울일 것이다. ▲경제분야=경제제도와 관행을 국제화시대에 맞도록 쇄신하고 제도및 구조개혁을 가속화해 나가겠다.국내산업 지원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고 수입제한제도,산업피해구제제도등 무역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외국인 투자 자유화 폭을 넓히고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해 별도의 종합대책을 수립해 교육·금융·사회간접자본 확충등 지방의 발전여건을 개선할 것이다. 임금,금리,땅값등 생산비용의 안정화에 노력하고 민간의 기술개발 지원등 과학기술개발을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올해 정부부문 연구개발투자를 93년보다 30% 늘어난 1조5천억원 규모로 늘리고 차세대 반도체등 11개 선도기술개발사업등 정부주도 기술개발사업의 규모를 확대하겠다.30개 기초생필품 가격을 평균 4% 수준에서 안정되도록 특별관리하고 1백40개 독과점품목의 담합인상등 불공정거래행위를 단속하겠다.농어촌 종합대책을 올 상반기안에 확정하려 한다. ▲환경·복지·사회분야=낙동강 수계보호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하수처리장 건설비등을 장기저리로 융자지원하겠다.전액 지방비사업이던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사업비의 50%를 국고에서 보조토록 했다.낙동강이외의 다른 수계의 수질개선을 위해 투자사업의 세부계획을 곧 확정하고 물관리 행정의 근본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자동차 증가등에 따른 대도시 대기오염개선대책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그린라운드에 대비해 환경문제와 관련된 무역협상 동향등에 적극 대응하겠다. 농어민연금 조기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올해안에 수립하고 의료보장제도의 개선방안도 추진할 것이다.식품및 약품의 위생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위해물질 허용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고 감시·단속을 철저히 하겠다.장애인의 사회활동을 위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기준」을 제정,도로 교통 통신시설과 공공건물등에 적용하겠다.의약품 부작용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피해구제기금」도 설치 운영할 것이다. 올해안에 주택 55만가구를 건설해 주택보급률을 81%로 높이고 7조8천억원의 주택자금을 지원하겠다.올해를 노사협력의 해로 정하는 한편 근로자 복지진흥기금을 확대조성하고 95년 실시예정인 고용보험제 도입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 ▲교육·문화분야=신학기부터 전교조관련 해직교사의 교단복귀를 추진하겠다.국립중앙박물관 신축,경복궁 복원등을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해외에 안장된 선열의 유해봉환과 독립운동사의 재조명등 민족정기 선양사업을 추진하겠다. 기초적인 외국어교육을 조기실시하고 의사소통 중심의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겠다.청소년들을 위해 수련시설등 제반환경의 조성과 함께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겠다. ▲행정쇄신·민생치안·공직사회분야=국민들이 범죄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경찰의 방범인력과 장비를 보강하여 민생치안 활동에 주력하고 유해환경정비등 범죄예방에 노력을 기울이겠다.사회의 각종 병폐와 부조리를 지속적으로 제거하고 일상생활의 불안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생활개혁」을 꾸준히 추진할 것이다.공직사회의 낡은 행태와 관행을 바로 잡고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깨끗한 정부,봉사하는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 설 연휴 고향길 함께 타고갑시다/「귀성 카풀운동」 큰 호응

    ◎“짜증길 해소 큰몫”… 「사랑의 차태우기」/문의전화 하루 1천5백건/탈서울 5천여대 참여할듯/“5만대만 되면 혼잡 크게 덜텐데…” 「고향길을 고향사람들과 함께」 설날을 앞두고 귀성길 카풀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울 성북구 동선동 「사랑의 차태우기 운동본부」(대표 한충희·44)에는 요즘 하루 평균 1천5백여통의 문의·접수전화(922­9700)가 쇄도하고 있다. 명절때만 되면 저마다 승용차를 몰고 나와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다시피하고 귀향길이 고생길이 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한씨는 사재를 털어가면서 5년전부터 「고향에 함께가기」운동을 조용히 벌여 폭넓은 호응을 받고있다. 특히 이번 설날은 9일부터 13일까지 5일동안 연휴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전국적으로 사상최대 인파인 2천6백여만명의 귀성객이 이동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또 서울을 빠져나가는 귀성객만해도 3백73만명에 이를 전망이어서 어느때보다 심각한 교통체증이 예상돼 자가용 함께타기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다. 한씨와 자원봉사단 10여명은 30평남짓한 임대사무실에서 귀성길에 승용차를 「태워줄 사람」과 「탈 사람」을 전화로 접수받아 무료로 연결시켜 주고있다. ○만남의 장소 풀가동 운동본부측은 귀성인파가 크게 몰릴 8일 하오 3시부터 남부시외버스터미널 입구와 중부고속도로 진입로근처에 차표를 구하지못한 귀성객들을 위해 「카풀 만남의 장소」를 24시간동안 운영할 계획이다. 또 고속도로 주변의 쓰레기정리를 위해 쓰레기팩 10만개를 만들어 카풀에 동참하는 차량에 나눠준다. 한씨는 『올 설날의 경우 8일 하오부터 9일까지 서울을 빠져나가는 50여만대의 승용차 가운데 1%정도인 5천대 가량이 카풀에 참여할 것』이라며 『참여율이 10%만 되어도 귀성길이 짜증스럽지 않을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쓰레기 봉지도 배포 89년부터 귀성 및 출·퇴근길 카풀운동을 벌여 온 한씨는 75년부터 9년동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 원양어선 선장 출신. 한씨는 『6·25때 전사한 아버지와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무언가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고싶던차에 선진 외국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카풀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고 발벗고 나섰다』고 말했다. 한씨는 지금까지 5년동안 이 운동을 하면서 선장때 모았던 사재 8천여만원을 털어넣었으나 처음 이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주위로부터 『회비가 얼마냐』,『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등의 비아냥도 많이 받았다.그러나 차츰 카풀운동의 참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12만명이나 동참하고 있다. 한씨는 뜻있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올해 수도권 일대에 2천여개의 「사랑의 정류장」을 만들고 3년안에 전국에 3만여개의 정류장을 설치,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게획이다.
  • 임병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미완의 의병조직 독립의군부 이끌어/12년 고종밀서 받고 대규모 전쟁준비/착수 2년만에 일경에 발각… 수포로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돈헌 임병찬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독립을 되믿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의병이 조직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무장세력인 「독립의군부」의 결성을 추진하다 일제에 붙잡혀 유배중 숨진 애국선열이다. 선생은 44세때인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선비로서 지냈다. 그러나 명성황후가 일제 불량배들에게 시해되는 치욕스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복수하기 위해 66세를 일기로 숨질 때까지 의병활동에 온 힘을 쏟았다. 선생은 1851년 2월 전북 옥구군 서면 상평리에서 태어났다. 세살때에 천자문을 읽을 만큼 총명을 타고난 선생은 15세때 전주부 감시에 장원으로 합격,관직에 나섰으며 38세때 도내 유림의 천거로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겸 오위장의 직첩을 받았다. 다음해 낙안군수에 임명됐으나 벼슬보다는 학문에 힘을 쏟기로 하고 곧 관직을 청산,귀향해 회문산 북쪽 종성리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러나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일제를 물리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일제를 물리칠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집안의 남녀종복을 풀어주는등 가산을 정리한 선생은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기 1년전인 1904년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각지에 통문을 보냈으나 정부 대신들이 『시기가 이르다』고 만류하자 거사를 일단 중단하기도 했다. 1906년 면암 최익현 선생을 만나고는 즉시 의기투합,서로 사제의 의를 맺고 본격적인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경기 포천에 살고 있던 면암은 같은해 정월무렵 영호남 사람들과 함께 일어설 것을 도모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문인들이 『호남의 한 선비가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자 선생을 믿아왔던 것이다. 선생은 이에 따라 그해 6월4일 의병 80여명을 모아 전북 정읍군 칠보면 무성서원에서 창의의 기치를 높게 들고 일어났다. 이 의병들은 사방에 격문을 돌리고 그날로 태인지방을 휩쓸어 군기와 군량을 확보한데 이어 정읍·순창을 차례로 격파,욱일승천의 기세를 떨쳤다. 거사 5일만인 6월8일에는 순창에서 마주친왜군을 단숨에 물리쳐 곡성을 점령하는등 기염을 토했으며 의병수도 9백여명으로 처음보다 10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면암과 선생은 6월12일 전주와 남원 진위대군사가 반격작전에 돌입하자 동포간의 살상을 피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조직한 의병부대를 자진 해산하고 말았다. 전주진위대는 해산과정의 의병들을 공격,중군장 정시해가 전사했으며 선생과 면암등 13명이 전주진위대를 거쳐 일본군사령부에 잡혀가 7월9일 대마도 위수영에 감금됐다. 그뒤 면암이 옥중단식으로 순국하자 선생은 1907년 첫 유배에서 풀려나 귀국했다. 귀국한 이후에도 불매동맹·국채보상운동등을 전개하다가 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12년 9월에는 독립의군부 전라북도 순무대장으로 임명됐다.선생이 순무대장으로 지명된 것은 1906년의 의병활동 때문이었다. 선생은 이 막중한 임무를 감당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 수차례에 걸쳐 이 책임을 면해달라는 내용의 상소를 광무황제에게 올려보냈으나 황제는 다시 밀소를 내려보내 그를 신임했다. 선생은 1914년2월 독립의군부를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대한독립의군부 편제를 구성했다.독립의군부의 활동목표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과 조선총독및 주요 관리들에게 한국 강점의 부당성을 깨우쳐주고 대규모 의병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독립의군부의 이같은 계획은 그해 5월 일경에게 발각돼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 일경이 6월3일 총사령인 선생을 체포하고 독립의군부 간부들을 투옥시키자 선생은 자결을 결심하고 칼로 목을 찔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6월12일 금고 1년을 선고받은뒤 거문도에 다시 유배됐다.선생은 2년뒤인 1916년 5월 유배지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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