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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가정의 달 5월이 가고,국가와 민족을 떠올리게 하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이 다가오고 있다.가정은 가족 상호간의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유지된다.범위를 넓혀 국가나 사회가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도 구성원간에 신뢰와 헌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모신 묘역과 위패봉안관,그리고 각종 현충시설물들이 자리잡고 있다.위패봉안관에는 6·25전쟁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여 용사들을 위패로 봉안하고 있고,지하 납골당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6,000여 무명용사들의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그리고 애국지사 묘역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였으나 유해를 찾지 못하고 후손도 없는 순국선열 132분을 위패로 모시고 있는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이 있다. 이분들에게 있어 개인의 삶과 조국이라는 존재는 무엇이었던가,곰곰이 생각해 본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병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전상 군경과 사랑하는남편과 자식을 잃고 외롭게살아가는 유족들이 있다.그러나갈수록 공동체를 위한 희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약해지고단순히 잊혀져 가는 과거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가를 위한 희생을 제대로 평가해 주는 사회가 진정으로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이다.국가에 대한 공훈과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과 국민적 예우가 뒤따를 때,사회지도층의 병역비리 등 도덕적 해이현상도 줄어들고 국가공동체는 계속 발전할 수 있다.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보상하고 예우하는국가보훈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사회는 지역·계층·세대간 갈등과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하여 국가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제도나 구조적인 문제에도 원인이 있겠으나,건전한국민정신과 공동체의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데 더 큰 원인이 있다.국민 모두가 자신의 이익보다 남을 배려하는 공동체의식을 키워 나갈 때 우리 사회는 한단계 도약할 수 있다. 국민역량의 결집과 공동체 규범의 밑바탕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난위국헌신의정신이다.안중근 의사께서 좌우명으로 삼았던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見利思義 見危授命)”라는 말씀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때이다. 오는 6월에는 국민 모두가 국립묘지의 위패봉안관이나 무후선열제단에 가서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이재달 국가보훈처장
  • 美, 中에 잇따른 강공

    미·중관계가 계속 엇박자다.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이 미국을 방문,뉴욕에서 환대를 받은데 이어 티베트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라마가 2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만난다.중국의 티베트 점령 50주년에 맞춰서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22일 미국을 방문중인 달라이 라마가 23일에는 부시 대통령,22일에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리처드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폴라 도브리안스키 티베트 담당 특별보좌관(차관)을 만난다고 밝혔다.달라이 라마는 3주 일정으로 미국내 3개 도시를 순회중이다. 미국은 전에도 티베트 문제를 다루는 관리를 임명했지만도브리안스키 차관처럼 국무부 내 핵심인물이거나 고위직은아니었다. 중국은 도브리안스키 차관이 티베트를 담당하는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었다. 특히 백악관은 이번 회동에서 “중국과 티베트 망명정부간의 대화 재개 방안과 티베트의 문화적·종교적 정체성 유지문제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CNN방송이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이번 회동은미국이 타이완 문제에서 중국에 강경입장을 취한 것이 티베트에도 적용됨을 의미한다.클린턴 전 대통령은달라이 라마와 몇번 만났지만 비공식이라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의 주방자오(朱邦造) 수석 대변인은22일 “미국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미국관리들과 만나도록 허용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달라이 라마가 분열주의적인 활동에 관여하지 않고,미국 관리들과 만나지 않겠다는 것을 보장하라고 미국측에 촉구했다”고 밝혔다. 또한 주 대변인은 미국이 천수이볜 타이완 총통의 방미를허용한 것에 대해 “중국이 타이완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있다는 ‘1개 중국 정책’을 미국이 지키겠다고 한 약속들을 위배한 것”이라며 “이번 행동은 중·미관계에 반드시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경하기자 lark3@
  • 2001 길섶에서/ ‘교육월보’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근인(根因)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그 나라 안에 사는 백성의 지식이 있고 없는데 있으며 백성의 지식이 있고 없는 것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교육이 발달되고 못되느냐에 있나니 그러한즉 교육이라 하는 것은 나라를 문명케 하고 부강케 하는 큰 기관이라 하리로다” 독립운동가로 언론인이요 교육자이기도 했던 남궁억(南宮檍) 선생의 ‘나라를 문명케 하고 부강케 하는 것은 교육이다’는 제목의 ‘교육월보’ 창간문 서두다.1863년 서울에 태어난 선생은 35세인 1898년 황성신문을 창간해 나라의 위급을 알리는 한편,청소년들의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1908년 봄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청소년을 깨우치는 잡지로 ‘교육월보’를 창간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요즘 우리 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를 다잡으려는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선생이 글을 맺은 ‘동포여 힘쓸지어다’라는 외침이 왠지 크게 들린다. 정인학 논설위원
  • 유가협 ‘민주열사묘역’ 두목소리

    정부가 ‘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따라 추진중인 ‘민주열사 묘역 조성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회장 朴正基) 회원들이 묘역후보지 선정을 놓고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올해로 5·18광주민주화운동 21주년을 맞은 광주시와 시민단체들은 5·18묘지 인근에 ‘열사묘역’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반면 일부 유가협 회원들은 서울 인근을 선호하고있다. [정부 입장] 행정자치부 ‘민주화운동 보상지원단’은 후보지 결정을 위해 수도권 6곳,광주 1곳 등 모두 7곳을 대상으로 지난 4월 성공회대학에 ‘후보지 기초조사 용역’을 의뢰했다. 대상지는 ▲서울 내곡동 국정원 주변 ▲서울남산 옛 안기부 터 ▲마석 모란공원 일대 ▲4·19묘역 주변 ▲광주 장등동 5·18묘지 주변 등이다.최근 용역기관의 현지 실사 결과 서울 내곡동과 광주 장등동 등 2곳이 지형·풍수·접근성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상지원단은 용역결과가 나오는 다음달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 복수로 후보지를 추천한다.민간인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최종 후보지를 결정한 뒤 사업주체를 선정하면 정부는 오는 11월쯤 묘역 조성사업에 착수할예정이다. 정부는 최종 후보지에 국비 500여억원을 들여 묘지공원을조성한 뒤 연차적으로 기념관·자료관 등을 추가로 설치해‘민주공원’으로 가꿀 게획이다다. 보상지원단 관계자는“관련법 제정을 주도한 ‘유가협’ 의견을 최대한 존중할계획”이라고 밝혔다. [유가협 움직임] 회원은 105명으로 희생자들은 5·18구묘역에 37기,모란공원 59기,경남 양산군 솔밭공원 9기 등이안장돼 있다. 유가협은 전국에 지회를 두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수도권 묘역 조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총회에서 ‘서울 내곡동’을 적정 후보지로 꼽고 이같은 의견을 용역기관인 성공회대에 제시했다. 그러나 호남지회 일부 회원들은 광주권 유치를 희망하고있다.명지대생 고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姜珉祚·59)씨는 “묘역을 5·18묘지 인근에 조성하는 게 역사성·상징성 등에서 바람직하다”며 “최근 수도권지회를 중심으로 결정한 사항은 대표성이 부족해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도권 지역 회원들은 묘역의 광주유치에 반대 입장이다.이들은 광주에 묘역을 조성할 경우 자칫 5·18에가려 민주화운동의 독자성이 희석된다는 점을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또 통일에 대비하고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수도권이 적지라는 판단이다.이밖에 5·18묘지 조성 과정에서 ‘민주열사’ 안치문제를 놓고 빚어진 5월 단체와의 ‘불편한 관계’가 앙금으로 남아 있다. [광주시 유치활동] 광주시는 지난달 ‘민주열사 묘역 유치제안서’를 만들어 행자부에 제출했다.또 유가협 회원 설득에 나서는 등 공식 유치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가 제안한 후보지는 북구 장등동 산 167의1 일대 임야12만여평이다.이곳은 국유림으로 5·18묘지와 3㎞쯤 떨어져 있다.인근 주민들도 묘역유치에 크게 반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시는 이곳 묘역을 ‘민주·인권 생명공원’으로 이름짓기로 했다.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5·18묘지와 연계해 세계적인 민주·인권·역사 탐방도시로 가꿀 계획이다.시는 유가협이 희망하는 서울 내곡동이 문화재 보존·군사보호시설지역이라 민원발생 우려가 높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광주시의회도 최근 시의 이같은 방침에 동의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또 지역 시민·재야단체들도 ‘민주·인권공원 조성을 위한 추진위’를 구성하는 등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유가협과 충분히 협의하되 유가협측이 일치된 의견으로 광주 유치를 반대할 경우 무리한 유치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5월 공포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관련자 1차 접수결과 총 8,446건이 신고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인 뒤 민주화 과정에서희생된 것으로 밝혀지면 조성될 ‘민주열사 묘역’에 안치하고 이곳을 역사교육장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장세윤 성균관대 교수 “”독립기념관 예산·사업 독립을””

    지난 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을 계기로 민족·역사교육을 위해 국민성금을 모아 87년 개관한 독립기념관(관장 박유철)이 정부의 무관심과 과도한 인력·예산감축 등으로 인한 위상·역할축소로 제기능을 다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장세윤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최근 한국민족운동사학회가간행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27집에 기고한 ‘독립기념관의 자료수집 현황과 과제’라는 글에서 “국민적 사회교육기관인 독립기념관이 설립초기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못한채 극도로 위상이 축소됐다”고 지적했다.장 교수는 독립기념관 개관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독립기념관은 120만평의 부지와 세계적규모의 전시관 등 하드웨어는 국제적이나,자료수집·관리·전시 및 연구,대중화 작업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극도로 빈약하다는 것이다.이중 장 교수가 가장 크게 지적하는부분은 전문인력 부족이다.개관 당시 연구직은 정원 171명중 32명에 이르렀으나 그동안 8차례의 직제개편,구조조정으로 현재는 8명(독립운동사연구소4,전시부3,교육사업추진단1)뿐이다.독립기념관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얘기가 나올때마다 연구소 폐쇄나 연구인력 축소가 제일 먼저 나온다”고 말했다. 예산축소도 큰 문제로 지적됐다.87년 개관 당시에는 자료수집비로 1억2,000여만원이 책정돼 있었으나,해마다 줄어 98년의 경우 1,960만원으로 연간 2,000∼3,000만원대 정도다.장 교수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성균관대 박물관의 99년도 유물구입비가 1억7,500만원이었다고 소개했다.한 현직연구원은 “규모는 국제적으로 세워놓고도 당국은 독립기념관을 마치 천안소재 지방기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면서“‘적자’ 운운하며 일반관공서식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기념관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웃 일본의 경우 지난 70년대 세계화 추진과정에서도쿄와 오사카에 국립역사민속박물관,세계민족학박물관을각각 건립하면서 직원의 절반 이상을 연구인력으로 구성하고, 지속적인 자료수집과 연구활동으로 학술적 성과는 물론일반국민 교육에도 큰 성과를 거둬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독립기념관의 경우 조직이 점차 관료화된데다 전문인력·예산부족으로 자료수집은 물론 소장자료에대한 정리(내용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 예로87년 개관 당시 4만3,412점이던 소장자료가 개관 13년이 지난 작년말 현재 6만9,020점에 그치고 있다.소장자료중 독립운동가들의 수기·일기류 100여점은 아직 정리조차 제대로하지못한 상태다. 장 교수는 “현재의 인력·예산상태로는 기념관이 제기능을 다하기 어렵다”며 “위상제고와 함께 예산·사업계획편성의 자율권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한 역사학자는 “독립기념관은 국민통합적 기능을 가진 국가차원의 교육·전시기관인만큼 전문인력 주도의 문화공간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오늘의 눈] 日 왜곡 교과서 전시는 당연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사 왜곡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이독립기념관 주최로 15일 서울 광화문 갤러리와 독립기념관에서 동시에 개막됐다.매우 뜻깊은 행사다.전시물 중에는 문제가 된 검정본 8종 등 일본의 역사왜곡 실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들이 많다.1870년대의 교과서를 보면 임나일본부설등 역사왜곡이 오래전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행사는 당초 10일 개막될 예정이었다.그러나 관계당국이 “일본정부와 대화를 하는 중인데 괜히 국민들을 흥분시키기보다는 관망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만류’하는 바람에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독립기념관측은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고,독립기념관마저 이 일을 안하면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에게 할 도리가 아니며,우리 자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안타까운 일이다. 상대방이 있는 외교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나 매사를 그런 시각으로 접근하다 보면 자칫 국가위신을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독립기념관은 지난 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당시국민적 공분에서 태동됐다.온 국민의 참여로 4년여에 걸쳐모인 성금 500여억원을 토대로 87년 8월15일 문을 열었고 4개월 동안 400만명이 관람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개관 당시 연구직이 32명이었고 자료수집예산은 1억2,000여만원이었다.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 연구직은 8명,자료구입예산은 1,960만원으로 줄어들었다.독립운동사를 연구하기에는 담당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반면 일본은 82년 교과서 왜곡 파동 당시 주변국들의 비난을 무마한 뒤 최고액권인 1만엔짜리 지폐의 인물을 쇼토쿠 태자에서 제국주의침략이론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로 바꾸는 등 의뭉스러운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한반도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됐던 19세기 말을,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는 요즘에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대비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될수 있다.“거짓역사를 가르치는 나라는 망한다”지만 역사를 경시하는 나라도 어찌 흥할 리가 있겠는가. 김주혁 문화팀 차장 jhkm@
  • 독립운동가 조문기옹 박정희관 반대 1인시위

    독립운동가가 ‘박정희기념관반대’ 1인시위에 참가해 이 운동이 독립운동가 진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독립운동가이자 친일문제 전문연구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조문기(趙文紀·74)이사장은 14일 낮 12시부터 1시간동안 서울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펼쳤다. 박정희기념관반대 국민연대(상임공동대표 이관복) 주최로 지난 2월 13일부터 시작된 이번 1인시위에는 교수,대학생,일반시민 등이 참석했는데 독립운동가가 참여하기는 처음이다.국민연대측은 “조 이사장에 이어 고광돈,이대성,최도균 선생 등 생존해 있는 독운동가들이 잇따라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정운현기자 jwh59@
  • 백범 김구 영문편지 첫 공개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이듬해 미국과의 통상관계 수립을위해 한독당 관계자를 미국에 파견,당시 미 상무장관에게 보낸 편지(영문)가 새로 발견됐다.당시 임정세력과 미국 정부간에 정식 외교라인이 없었던 상황에서 백범이 미국정부 각료에게 통상 관련 서한을 보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946년 8월 31일자로 작성된 이 편지는 발신지가 당시 한독당 본부가 자리잡은 운현궁으로 돼 있다.편지의 발신자는 한독당 위원장(Chairman Independence Party)인 백범,수신자는 미 상무장관 아브렐 해리먼(1891∼1986)이다.또 이 편지를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은 전경무(田耕武·1900∼1947)당시 재미한족국내파견대표단 외교위원이었다.백범은 편지에서 전씨를 워싱턴 주재 한독당 특별대표로 소개하고 전씨가미국정부에 한미 양국의 통상관계 수립을 요청할 것이라고밝히고 있다. 노경채 수원대(사학과) 교수는 “46년 2월 백범이 미군정자문기구인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의 총리를 맞고 있어서 미국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백범이 한독당위원장 자격으로 특사를 통해 미국측에 편지를 전달한 것은이승만과의 정치적 역학관계 등을 감안,미국과 독자적인 유대관계를 맺기위한 시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편지 수신자인 해리먼은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냉전기간 동안 외교관으로서 미소간의 외교관계를 주도한 인물로 루스벨트 대통령시절 소련대사,영국대사를 지냈으며 케네디 대통령시절 국동문제담당 국무차관을 지낸 인물이다. 한편 이 편지는 재미사학자 안형주씨(安炯柱·65)가 미국 LA에 거주하는 전씨의 사촌여동생으로부터 입수한 것으로,편지 하단에는 백범의 한문 서명,낙관과 함께 ‘K.Kim’이라는 영문서명이 부기된 점이 이채롭다.백범의 비서를 지낸 선우진 백범기념사업회 상임감사는 “미군정초기 백범이 미국정부 각료에게 편지를 보낸 경우는 희귀한 사례”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백범편지 전달 전경무씨는. 백범의 편지를 휴대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전경무씨는 1906년 사탕농장 노동자로 하와이로 건너간 재미한인 이민1세대의 후손이다.미 본토로 건너가 미국인에게 입양돼 미시건대를 졸업한 전씨는 임시정부 후원단체에서 외교·선전활동을 벌였다.1941년 재미한인들의 통합단체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1944년 임정에서 새로 구성한 주미외교위원부의 외교위원장 비서로 활동하였다. 해방후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된 그는 한국올림픽위원회의 IOC가입을 위해 다양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1947년 5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IOC총회 한국대표로 참석차미 군용기를 타고가던 그는 일본 후지산 부근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타계했다. 지난 95년 정부는 뒤늦게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건국훈장 애국장(4등급)를 추서했다.그의 묘소는 서울 도봉구 우이동에 있었는데 돌보는 이가 없어 도시개발 과정에서 유실된것으로 알려졌다.
  • 2001 길섶에서/ 솔제니친의 망발

    러시아의 세계적인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최근 그답지 않는 말을 하여 국제사회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솔제니친이 누구인가. ‘암병동’‘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고 반체제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린 사람이 아닌가.그는 조국 소련에서 추방되어 한때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솔제니친 하면 여전히 양심과 정의의 작가로기억할 것이다.그런 사람이 ‘망언’을 했다.체첸분리주의자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러시아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사형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현재 러시아는 실질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상태다. 체첸공화국의 독립운동을 탄압해온 러시아 정부에 독립운동가들을 처형하라는 저명한 문인의 발언은 아무래도 82세노인의 치매로 들린다.식민지시대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처형한 일제의 만행을 상기할 때 솔제니친의 망언은 남의 일같지가 않다.체첸 애국자들의 처지가 애처롭다. 김삼웅 주필 kimsu@
  • 박은식선생 호적 발굴

    사학자·독립운동가이자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을 지낸 백암 박은식(朴殷植·1859∼1925)선생의 대한제국 당시의 호적이 처음 발굴됐다. 이 당시의 호적자료가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는 데다 대표적인 민족지사 가운데 한사람인백암의 가계·가족사항·생활상태 등을 소상히 보여주는 자료여서 사료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이 호적은 대한매일신보사가 지난 99년 간행한 ‘백범김구전집’에 이어 ‘박은식·양기탁전집’(전10권) 간행을 위한 자료수집 과정에서 전집편찬위원회(위원장 윤병석)가 발굴,공개한 것이다. 이번에 발굴된 호적은 광무10년(1904년) 6월 한성부(현 서울시) 북서(北署)에서 작성한 것으로,당시 백암의 집주소는가회방(嘉會坊·현 가회동)이나 통(統)·호(戶)는 상태불량으로 확인이 어렵다. 당시 백암은 호주로 나이는 48세,본(本·본관)은 밀양,부인은 연안 차씨 44세로 나와 있다.또 직업을 쓰는 칸에 백암의 직업을 전교관(前敎官)으로 적고 있다.백암은 1900년부터 경학원 강사와 한성사범학교 교수를 지냈다.호적에 직업을 적은 것은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호적에 신분을 명기할 수 없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선조의 가계란에는 부(父·用浩)·조(祖·宗錄)·증조(鳳儀)·외조(外祖·盧允儉) 등은 물론 생부(生父)란까지 두고있는데 이는 당시 입양이 흔한 일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윤병석 전집편찬위원장(인하대 명예교수)은 “백암 선생의부인·증조부·외조부에 대한 신상은 이번 호적에서 처음확인됐다”면서 “백암이 남긴 이력자료가 거의 없는 데다이번에 발굴된 호적은 공문서라는 점에서 사료가치가 매우크다”고 말했다.‘전집’은 대한매일신보사와 ㈜동방미디어가 공동주관으로 발행하며,올 가을 전10권(박은식 7,양기탁 3) 규모로 출간될 예정이다. 한편 전집편찬위원회는 백암의 저서 가운데 ‘한국통사’등 11종은 입수했으나 ‘동명성왕실기’‘발해태조건국지’‘명림답부전’‘대동민족사’‘이순신전’‘이준전(李儁傳)’‘발해사’‘금사(金史)’ 등 8종의 행방은 수소문 중이다.(02)2000-9008정운현기자 jwh59@
  • 국가보훈처, 美 첩보전략국 ‘냅코작전’자료집 출간

    일제말 미 첩보전략국(OSS)의 한반도 침투계획인 ‘냅코작전(Napko Project)’ 관련자료가 집대성돼 출간됐다. 국가보훈처는 최근 미국에서 새로 입수된 자료 등을 모아‘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시리즈 제24권으로 발행했다. 대모험을 꾀한다는 ‘nap’과 ‘Korea’를 합쳐 만든 용어로 보이는 ‘냅코작전’은 1944∼45년 당시 미국의 특수공작기관인 OSS가 잠수함과 낙하산으로 한반도에 특수요원을 침투시켜 정보수집,거점확보,태업 등의 활동을 벌이려했던 작전이다. 이는 중국에서 광복군과 협동해서 추진했던 ‘독수리작전’과 함께 OSS의 가장 대표적인 대일 특수작전으로 불리고 있다.이 작전은 미국이 태평양전쟁을 조속히 끝내기 위하여 추진한 것으로,재미한인들이 출기차게 요구한 한인 게릴라부대 창설요구와 그에 따른 특수부대 운용경험과 항일운동에 몸바치려는 미주지역의 애국동포들이 존재했기에가능한 것이었다. 재미한인들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발발직후 중국 중경의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과 결합하거나 아니면 재미한인만으로 독립적인 한인부대 또는 게릴라부대를 창설,대일특수전·정규전에 자신들을 투입시켜 달라고 미군당국에 끊임없이 요청했다.당시 미국은 CIA의 전신인 COI(정보조정국,1941년7월 창설)를 통해 중국에서 대일정보를 수집하는 계획을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승만(李承晩)을 통해한인들과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한편 냅코작전은 1944년 중반 이후 장석윤(張錫潤·97·전 내무장관·경기 일산)이 위스콘신주 맥코이 포로수용소에 들어가 한인공작원의 명단을 확보하고 대강의 계획을수립하면서 본격화됐다.이 작전에는 장석윤·유일한(柳一韓·유한양행 설립자) 등 재미한인 10명,김현일 등 한인포로 6명,박순동(朴順東) 등 학도병 출신 3명 등 총19명의한인요원들이 참가하였다.이번 자료집에는 학도병 출신 3인이 버마에서 일본군을 탈출,이 작전에 참가하는 과정을보여주는 자료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냅코작전에 참가한 한인들을 연령별로 보면 20대 3명,30대 8명,40대 6명,50대 2명 등이며,이들은 안정된 삶을 추구할 수 있음에도 위험한 임무에 자원했다.특히 재미한인출신 변일서(邊日曙)의 경우 대일전 참전을 위해 합의이혼을 했으며,이근성(李根成)은 공작원으로 침투하기 위해 미간의 사마귀 제거 성형수술을 받기도 했다.이들은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한 섬에서 3∼4개월간 유격훈련·무선훈련·폭파훈련 등은 물론 침투용 잠수정을 제작,가상훈련까지 마친 상태였다.그러나 아깝게도 일제의 패망으로 이들의한반도침투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자료집의 해제를 쓴 정병준(鄭秉峻)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이들이 실제 전쟁에서 미친 영향은 미미했으나,태평양전쟁 말기 재미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 찬란히 빛날 공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이들의 항일투쟁활동은 재미사학자 방선주(方善柱) 박사의 자료발굴로 90년대 들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이들 가운데 독립유공 포상을 받은 사람은 유일한 등 5명에 불과하다. 정운현기자 jwh59@. * 냅코작전 참여 장석윤은. ‘냅코작전’의 핵심인물로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장석윤(張錫潤·97·경기도 고양시 거주)전내무장관은 “원폭투하로 일본이 항복하면서 한반도침투계획이 수포로돌아갔다”고 아직도 아쉬워했다. 1904년 강원도 횡성 출생인 장씨는 1923년 도미,밴더빌트대에서 수학·지질학을 전공한 뒤 LA한인사회 등에서 활동했다. 1942년 5월 미 육군에 입대하여 미군 첩보전략국(OSS) 1기생으로 졸업한 장씨는 1944년 7월까지 중국,버마,인도전구(戰區)에서 이승만 박사와 중경 임시정부,미군 사이의 연락관을 지냈다. 이후 OSS가 추진한 ‘냅코작전’에 참가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각종 특수훈련을 받았으며,나중엔 교관으로 근무했다. 해방후 귀국,미24군단 G2(정보처)에서 3년간 근무한 그는 이승만 정권 하에서 내무부 치안국장,내무부장관을 거쳐3·4대 민의원을 역임했다.그와 함께 ‘냅코작전’에 참가했던 인사 가운데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작고)은 지난 95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았으나 그는 아직 미포상 상태다. 그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9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조금 불편한 것 이외에는 건강도 좋은 편이다. 슬하에 딸만 넷을두었는데 심상필 홍익대 총장이 둘째,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가 세째사위다. 정운현기자
  • 5월의 독립운동가 ‘안규홍 선생’

    국가보훈처는 30일 전라도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벌인머슴 출신 의병장 담산(澹山) 안규홍(安圭洪) 선생을 광복회·독립기념관 등과 공동으로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했다. 선생은 1879년 전남 보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살때부터 20년간 머슴생활을 하다 러·일전쟁 이후 토지약탈등 일제의 침략을 절감,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고 농민을 살리겠다는 결의를 다졌다.이후 전남 순천의 강용언 의병부대에 투신,활동하던 중 의병장이 민폐를 끼치자 그를제거한 뒤 1908년 전남 보성군 동소산에서 토착농민과 해산군인 등을 모아 대규모 의병을 일으켰다. 일제와 친일세력,탐관오리를 제거하겠다는 기치를 내건 선생의 의병부대는 보성과 순천 등 전남 중동부지역에서 활동하며 세금 징수원을 공격하거나 탐욕스러운 토호의 소작료를 빼앗아 농민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1909년 10월까지 1년6개월동안 일본수비대·토벌대·순사대와 26차례 전투를 벌여 파청대첩과 진산대첩 등 숱한 전과를 올렸다. 1909년 일제가 전남지역 의병을 상대로 대토벌 작전을 전개하자 선생은 훗날을 기약하며 의병부대를 해산,고향으로돌아가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광주감옥에 수감됐다.이후 대구감옥으로 옮겨져 1911년 5월5일 교수형으로 순국했다.정부는 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발언대] 홍구공원 의거 되새기자

    오는 29일은 매헌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이른바 일본인들의 천장절 겸 중국과의 전쟁승리 축하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한 장거가 있은 지 69주년이 되는날이다.일본군 현지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다 일본거류민단장 등이 현장에서 폭사하고 일본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제9사단장 우에다,주중공사 시게미쓰 등을 비롯한 많은 일제의 주구들에게 중상을 입힌 쾌거였다.윤 의사는 우리 민족의 혼백을 지키고자 약관의 나이로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과 농촌부흥운동에 뛰어들었으며,일경의 감시로 더이상 국내에서 항일투쟁이 불가능하자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이라는 글을 남긴 채단신으로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국무령 김구 선생이지휘하는 한인애국단에 들어가 국제사회에 이같이 독립의지를 알렸던 것이다.윤 의사의 의열투쟁은 당시 국제도시상하이를 점령한 일본의 침략을 주시하고 있던 전 세계에한민족의 불굴의 독립정신을 알리고,국내외 항일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윤 의사의장거에대해 당시 중국군 총사령관 장제스(蔣介石)는 “중국의 백만대병도 불가능한 거사를 한국 용사가 단행했다”고 평가했고,이에 따라 중국에서 한국 민족이 독립운동을 활발히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윤 의사의 의거가 있은 지 70년가까이 흘렀지만 윤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민족정신의 귀감으로 남아 있다. 일본은 최근 역사의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는 행동을 자행하고 있어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우리 국민들은 이런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감정폭발에 그치지 말고, 범국민적인 민족정기 선양 운동에 나서야 한다.이를 위해 2세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가르치는 역사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또 민족의 수난과 한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고 선열의 애국혼을 느낄 수 있는 학습 프로그램의 개발도 시급하다. 주영원 [부산지방보훈청]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나라위한 헌신의 역사 바라알기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있다.하나는 자기와 가족 중심의 평범한 삶이요,다른 하나는 범위를 넓혀 타인이나 국가와 민족 등 사회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의로운 삶이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적 경험과 전통을 오랫동안 공유해왔다.그 결과 어느 나라보다도 민족적 정체성이 강하다.민족적 정체성은 국가위기 때나 달성해야 할 공동의 목표가 설정되었을 때 놀라운 응집력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발현된다.일제치하 국권상실기나 6·25전쟁과 같은 국난시에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많은 것도이에 연유한다. 국가보훈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과 그 유가족에 대한정신적·물질적 예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타인과 공익을위한 삶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인가를 인식케 하는 성스러운영역이다. 2주 전 국가보훈처장에 부임하면서 개인적 영예에 앞서 국민통합의 정신적 기반을 제공하는 보훈업무의 중책을 맡게된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꼈다. 필자는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의예우시책을 펴나가면서 나라 위한 희생이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도록 우리 사회에 보훈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조직의 모든 역량을 투입할 생각이다. 토인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는 숱한 시련과 반성,그리고 성찰의 교훈이 누적되면서 발전한다.우리 민족은 외세의 침략 등과 같은 수많은 도전과 위기에 맞서 강인하게성장해 왔으며,한민족공동체의 맥을 반만년 동안 이어낸 자랑스러운 응전과 진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82돌을 맞는 날이다.20세기초 식민지배하에 있던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우리 민족처럼 임시정부를 수립해 27년 동안이나 체계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헌법은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대한민국이 계승한다고 명시,단절된 민족사가 아닌 정통성을 이어지게 한 존재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을 평가하고 있다. 요즘 과거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던 아시아국가들 사이에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비난여론이 비등하다.이러한 때일수록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선열들의 위국헌신의 정신을 기림으로써 이러한 정신이 단순히 잊혀져 가는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되살아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갈 수있는 기본가치로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수많은 국난을 극복해냈던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도리이고, 우리의 역사와 정신적 자산을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물려주는 길이 될 것이다. 이재달 국가보훈처장
  • [다가오는 시베리아] (7.끝)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오키안스키아 거리의 극동 국립대학.아무르만의 해안선이 바라다 보이는 구릉 위의 교정 북쪽편에 ‘한국학대학’이란 한글 표지판이 있는 5층 건물이 한 눈에들어온다. 1층 원형 강의실에선 러시아 학생 60여명이 한국의 경제사정을 설명하는 알렉세이 유리비치 교수의 한국말 강의에 귀기울이고 있었다.3학년생 데마너바 안겔리나양은 학교생활을 묻자 “사물놀이 부채춤 전통음악을 배우는 동아리도 있다”고 우리말로 깜찍하게 대답했다.그녀는 정치상황 등 한국사정을 꿰뚫고 있었다. 옆자리의 유레녹 발렌티나 양도 “인터넷으로 한국 신문도 보고 한국 친구들과 편지도 주고 받는다”고 싱긋 웃었다. “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우등생들”이라며 “한국학 단과대학 체제를 갖춘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발레리 디카레브 부총장은 자랑했다.5년제로 해마다 50명씩 입학,250여명이 재학하고 있다. 이곳서 만든 한국어 교재는 극동 러시아 전체에서 사용중이고 최근엔 빅토르 코세미야코 교수팀이 한국어 학습 CD를개발중인 한국학연구·교육의 메카다.90년 한·소 수교 전에는 북한식 교재에 북한말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남한말이표준어가 됐다. 극동 국립대를 비롯,극동 러시아에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은 6곳.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이 대표적이다.임 발레티나교수의 소설강독 시간에 4·5학년 20명이 하근찬의 ‘수난2대’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49살의 임 발렌티나의 아버지는 연해주에 와 일하던 북한인.원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뒤 러시아인인 어머니를 따라 하바로프스크로 돌아와 대학을 마치고 교수로 남았다. 임 교수는 “읽고 쓰는 능력은 우수한데 시청각교재를 구하기 어려워 말하는 연습이 부족하다”고 걱정했지만 사샤푸카체프군 등 학생들은 한국진출 러시아 기업이나 한국기업에 취직할 생각이라며 즐거운 표정이다.제주도와 경주 석굴암 등을 돌아봤다는 타냐 푸리마코바 양은 “극동에 살면한국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며 일반 러시아인들도 한국에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어의 인기는 한국과의 경제·문화 협력 활성화 전망때문.나홋카 한국공단·한국종단철도와시베리아횡단철도(TSR)연결·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사업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인기도 치솟고 있다. 연해주에서 서울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30분∼2시간 거리. 광대한 러시아 대륙에 비할 때 지척에 불과한 근접지역이다.역사적으로도 한국인이 낯설지 않다.20세기 초 일제 강점기에 블라디보스토크 등 연해주 일대는 무장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한국인 20여만명의 삶의 터전이었다.그만큼 한국과한국인에 대해 역사적·지리적으로 익숙해 있다.한국을 왕래하는 러시아인 중 70∼80%가 연해주·하바로프스크 지역사람들이다. 지난 2월 초 들어온 한국영화 ‘쉬리’가 블라디보스토크뉴웨이브 극장 등 이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한국붐과 무관치 않다는 현지인들의 설명이다.이고루 보스트리코프 극동상공회의소 부회장은 “극동 러시아는 남북한과러시아의 삼각 협력이 꽃피는 지역이 될 것”이라며 “이같은 기대감으로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대한 인기와 교류가급속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로프스크(러시아) 이석우특파원 swlee@. * 하바로프스크 한국교육원. 아무르강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셰르셰바거리 60번지10층 상가건물.‘하바로프스크 한국교육원’이 세들어 있다. 현지 동포 2·3세의 언어·문화교육과 한국 문화의 확산을위해 교육부가 세운 세계 33곳 ‘거점’의 하나다. 40명과 24명 정원의 두 개의 작은 강의실엔 오후 4시부터두 차례 한국말 수업이 진행됐다.동포 교육이 우선이지만금발에 파란눈의 러시아인들이 더 많다.양형렬(梁亨烈)원장은 “다달이 16∼35세의 250여명이 무료로 한국어를 배운다”고 설명했다. 교육원은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사할린 등 3곳에 있고이곳은 지난 97년 세워졌다.20평 남짓한 사무실 한구석에는한국영화 비디오, 어학 교재들을 비치한 ‘간이 도서실’도있다. 모스크바방송 기자출신의 고려인 이주학(李柱鶴)씨는“교육원이 하바로프스크 1만여 고려인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면서 “다른 외국 교육원처럼 어학실습실, 도서관 시설및 활동공간이 있었으면 보다 많은 고려인들이 모일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고려인 3세 이타티아나 양은 40세 이하의 고려인 2·3세들이 대부분 한국어를 하지 못해 교육원의 역할이 기대되지만 교육원이 세들어 있다보니 저녁 일찍 문을 닫고 공휴일에도 열지 않아 불편하다”고 말했다.교육원측은 “단독건물 구입예산을 확보해 놓았지만 외교통상부가 보증동의를하지 않아 부득이 세들어 있는 상태”라며 교육부와 외교부의 힘겨루기를 꼬집었다. 하바로프스크 이석우특파원. * 극동국립대 한국학대학장 블라디미르 베르호랴크. 러시아 극동국립대학교의 블라디미르 베르호랴크 한국학대학 학장은 “러시아는 전통적인 유럽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 아시아·태평양지역과 동북아 경제권 진출을 모색하고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동북아 정책은. 균형있는 세력균형과 평화체제 수립이 목표다.한국은 동북아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협력 파트너다.지난 2월 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한도 협력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과의 협력 방향은. 러시아 극동지역 경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스크바보다한국 중국 일본과의 교류가 더 많다.한국은 극동지역 전체대외무역의 30%를 차지하는 주요 ‘고객’이다.단순 무역에서 나아가 천연자원과 첨단 과학 기술 협력의 활성화로 이어져야 한다.러시아는 경의선 복선화·현대화 사업 등 남북경협사업에 참여의사를 다양한 경로로 남북한 당국에 전달해 오고 있다. ▲남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구상은. 북한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남한과 러시아는 자본,에너지,기술,부품 등을 분담하면된다. 북한에는 옛 소련이 건설한적지 않은 산업시설이 방치돼 있다.이를 ‘3각 협력’을 통해 재가동시킬 수 있다. 철도복구,자원개발,농업투자도 3국협력이 가능하다. ‘3각 협력’은 남북한 경제체제·발전단계의 차이를 보완하고 한반도 안정,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에기여할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이석우특파원
  • [대한광장] 우리의 혼은 살아 있는가

    “국학(國學)과 국사(國史)는 혼(魂)이며, 경제(錢穀)와군대는 넋(魄)이다.국학과 국사가 망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도 망하지 않는다.오호라! 한국의 넋(경제와 군대)은 이미 죽었으나,혼(국학과 국사)은 살아 있느냐,죽었느냐.”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며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었던 독립운동가 박은식(朴殷植,1859∼1926) 선생의 저서,‘한국통사(韓國痛史,1915,上海)’ 결론편의 절규이다.민족혼의 정수(精髓)인 국사만 제대로 살아 있으면,어느 날인가 반드시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에 찬이 책이 요원의 불길처럼 보급되어 마침내 1919년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조선총독부는 어용사학자들을 동원하여1922년 이른바 ‘조선사 편수회(편찬위원회)’를 창설하였고 일제의 한국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선사(37책)’와 ‘조선사료총간(20종)’을 편찬 간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 축소하며 4색당쟁등 부정적인 측면은 크게 부각시키는 등 이른바 ‘조센징’으로서의 수치심과 환멸을 북돋았다.사대주의가 마치 우리나라의 국시(國是)이었던양 소개하며 한민족 구성원들에게 자조 자학적인 “쇼가나이닌겐(할 수 없는 인간)”들이라는 ‘엽전의식’을 심기에 혈안이었다.그 잔재가 아직도살아 있어 오늘날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를 불러들였다고 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박은식은 국사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이토록 역사의식과 조국광복운동에 투철했던 박은식도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향년 67세로 통한의 한평생을 마감할 때는 임시정부의 장래만 걱정했지 자기 사후(死後) 준비는제대로 못했던가 보다.상해 정안길로(靜安吉路)의 만국공동묘지에 묻힌 약 4분의1평 규모의 평판 무덤 위에 자기이름 석자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신문지 반 조각만한 시멘트 평판에는 단지 영문으로 ‘PAH EUM SIK’이라는 세글자만 새겨 있어서 철자법과 발음을 보아서는 도저히 박은식 대통령의 무덤으로 식별해낼 수 없었다.그가 타계한지 60여년이 지나도록 공동묘지의 한구석에 버림받아 온것이다.지난 89년 8월 필자와 연세대 안병준 교수 등이 은밀히 그의 묘지를 찾아,우여곡절 끝에 ‘朴殷植’이란 한문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태를 보는 우려에 찬 국민들의시각은 일차적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지만,더 깊이파고들면 우리나라에 과연 국사교육이 있는가라는 자성(自省)이 싹트고 있다.구한말까지는 사대주의에 밀려,그리고일제 치하에서는 식민사관과 반도사관에 찌들려,조국광복이후 군사 독재 정권시기 동안은 이데올로기 냉전체제에억눌려 우리는 ‘국사와 국혼’을 잃어버려 온 세월의 연속이었다. 민주화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세계화’ 드라이브에 가리어 우리 겨레의 혼인 국사의 중요성이 더욱 바래지고 작아지고 있으니 웬일인가.민족문화의 외연(外延)을 더 넓히고경제를 세계화하려고 한다면,그럴수록 민족중상론(中傷論)에 찌든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혼과 넋을 넉넉하게 길러주어야 한다. 역사가 짧은 구미제국의 세계화 사관에 연연하다가 민족의 혼을 손상시키는 우(愚)를 범해서는 곤란하다.민족의넋인 경제와 국방을보강하기 위해서 세계화가 필요할수록,민족의 혼을 불어 넣어 줄 국사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한다.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global)이라 하지않는가. 우리 스스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소홀히 할 때 진정한 세계화는 불가능하다.한때 일제(日帝)의 침탈로 고통받은 바 있던 중국,북한 등 동아시아 각국과 연대하여 일본 정부에 대하여 당당히 역사교과서 재검정을 요구하고,세계 여론에 제국주의적 군국사관의 재등장을 경고하여야한다. 우리 스스로는 제7차 교육과정상의 잘못된 국사교육시간단축과 도처에 만연한 국사 홀대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한다.무엇보다도 우리 정치,경제,사회,문화 곳곳에 찌들어있는 식민사관과 반도사관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청산작업이 계속돼야 한다.그 길만이 “우리의 혼은 살아 있는가,죽었는가”라고 묻는 박은식 선생에 대한 대답이라고본다.(임시정부 수립 82주년에 부쳐) [김성훈 중앙대교수·전 농림부장관]
  • 미·중 군용기 충돌과 양국 현안

    군용기 충돌을 둘러싼 미·중 대치상황은 무역 및 군사문제,타이완 문제 등 양국 현안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무역관계] 중국이 수세입장이다. 최대 이슈는 중국이 지난15년간 노력해온 세계무역기구(WTO)가입. 중국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 중국 유화정책에 힘입어 올해 말 가입을 기대해왔다.전문가들은 지난 99년 5월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폭격사건 이후 WTO협상이 한동안 냉각됐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중국의 WTO가입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분석한다.이를 입증하듯 미 하원의원 30명은 지난 4일 중국의 WTO가입을 전제로 지난해 말 통과시킨 항구적인 정상무역관계(PNTR)지위를 이전으로 복귀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타이완 및 군사문제]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우려,거부해온 타이완의 이지스급 구축함 4척 등첨단 무기 판매요구에 대해 이달 말 결정을 내릴 예정. 중국은 이지스 구축함의 타이완배치는 미국의 전역미사일방어망(TMD)체제 전진기지화라며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중 대치가 계속되면서지난 주 82명의 민주·공화 의원들이 부시대통령에게 이지스구축함 판매를 촉구하는 서한을발송했다. [인권문제] 미국은 중국의 파룬궁(法輪功)탄압및 티벳 자치지구 독립운동 탄압 등 인권현안을 모든 주요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특히 부시행정부는 UN인권고등판무관실에 중국의 인권탄압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미하원에서는 인권문제를 이유로 중국이 강력히 추진중인 2008년 올림픽 유치에도 제동을 걸겠다는 움직임을보이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70년전 백범 자취 그대로

    백범 김구(金九) 선생의 피난처였던 중국 자싱(嘉興)시영안정(永安亭)이 경기도 성남시 모란민속시장 상인회가주도한 복원사업으로 보수,재건됐다. 5일 성남시에 따르면 모란시장 상인회(회장 전성배·50)는 중국 저장(浙江)성 자싱시의 영안정 개·보수공사에 바자회 수익금과 시민성금 등 1,400만원을 들여 복원공사를마치고 이날 중국 현지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영안정은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 사건이후 일본군에 쫓기던 김구선생이 자싱시에서 도피생활을하며 자주 들러 조국의 독립과 미래를 숙고하던 정자이다.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에 사는 독립운동가인 이용상씨(78)는 96년 김구 선생의 도피길을 답사하다 영안정의 존재를확인,전성배 상인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상인회는 97년 이후 여러차례 바자회를 열고 담배자판기수익금 등을 모아 복원기금을 마련했다. 성남시도 성남여고·효성고 등 청소년사물놀이 축하공연단 등 준공식 참가자들의 여비 등을 지원했다. 준공식에는 이씨와 전 회장,김병량(金炳亮) 성남시장 등30여명이참석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역사왜곡 日교과서 검정통과 파장/ 신용하교수가 본 ‘우익교과서’

    일본 극우파들이 채택운동 전국조직을 만들어놓고 모리정권이 이번에 검정통과시킨 후쇼사(扶桑社·새역사교과서를만드는 모임편)의 2002년도용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한국관련 부문을 재침략 책동에 맞추어 다시 날조 왜곡한 것이 큰문제이다. 우선 고대사부터 보면,일본은 야요이시대부터 7세기 야마토 정권의 고대국가 수립 때까지 한반도 국가들의 선진 문명·기술·지식 전수와 한자와 기술자의 파견까지 간청,한민족 국가들이 이에 응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어 일본 고대국가와 문화의 기초를 만들었다.이것이 역사적 진실이어서,20년 전 한국 대통령 방일 때에 일본왕은 ‘귀국이 특히 5∼6세기에 우리 일본에 준 원조에 깊은 감사의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는 요지의 환영사를 한 바도 있다. 그런데 1890년대∼1900년대 초기에 걸쳐 일본 황국사관 주창자들은 하야시(林泰輔)를 선두로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한국침략 식민지 강점을 준비 지원하기 위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날조해내었다.야마토 정권이 4∼6세기에 한반도 가라 지방을 식민지화하여 ‘임나일본부’라는 총독부를두고 직할식민지로 통치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1910년 일본의 한국점령은 ‘침략’이 아니라 고대의 성취를 ‘복구’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완전한 날조였다. 1982년 일본교과서 왜곡사건 때 다수 교과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이 아니라고 뺐고,일부는 수록했었다.이에 분개한 한국 국민과 정부의 규탄으로 결국 모든 일본 교과서는 ‘임나일본부설’은 뺐고,전문가들이 황국사관의 지나간한 주장으로 검토하기로 낙착되었다. 이번 문제의 일본교과서는 이를 다시 부활시켜 교과서에넣고,나아가서 고구려·백제·신라가 야마토 정권에 조공을했다고 기술하였다. 수정을 요구받고는 백제·신라가 야마토 정권에 조공을 했고,고구려는 유사하게 접근했다고 고쳐썼다.완전히 역사 날조인 것이다.야마토 정권의 간청에 응해서 스승·학자·기술자·선진 문명을 보내어 가르쳐준 ‘은혜’를 ‘조공’을 했다고 배은망덕하여 날조하고,직할식민지까지 두어 통치했다고 21세기의 일본 중학생들(미래 전국민)에게 교육하겠다니,또 재침략 정신과 의지를 배양하려획책하는 것이다. 다음 근대사 부분에서 일본은 ‘정한론’ 실행의 단계로‘불평등 조약’(치외법권 등)에 의한 ‘개항’을 강요하기 위해 ‘운양호 사건’을 조작했다.강화도 조약은 일본 군함 5척의 함포사격 소리를 들어가며 일본이 작성해 온 ‘불평등 조약’문에 서명해준 것에 불과했다.개항후 일본은 단계적 침투와 침략을 감행하여 1910년 결국 ‘정한’의 목적을 달성해서 한국을 식민지로 병탄 강점하였다.1982년 일본교과서 사건 때, 일본 교과서들은 이 침략사실들은 대체로인정기술하고 한반도 ‘진출’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이에격분한 한국 국민의 규탄으로 ‘진출’을 ‘침략’이나 그에 준하는 용어로 수정했었다. 이번 2002년도용 문제의 일본 역사교과서는 아예 일본이개항후 한국의 군제개혁을 도와주는 등 원조했다고 날조했다.갑오개혁 때에 잘 증명된 바와 같이 일제가 가장 방해했던 것이 조선의 근대적 군제개혁과 자주국방능력의 증강이었다.또한 이번 교과서는 한국 병탄은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권익’을 지키기 위해 국제열강의 동의 아래 합법적으로 수행된 병합이라고 한국식민지화 강점을 정당화했다.한반도는 일본을 향해 뻗은 흉기(팔뚝)와 같은 것이어서 일본이 점령해야 일본이 안전하다는 것이다.도대체 이런 엉터리침략논리가 어디 있는가. 열본 열도가 한국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방해하는 흉기와 같은 곳이니 폭파하여 없애버리려고 점령해야 한다면 일본 국민과 세계 인류가 납득하겠는가. 일본을 침략 강점하는 것이 한국과 중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납득하겠는가.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요할때부터, 강박에 의한 조약은 국제법상 모두 무효라고 이미1906년부터 국제법학계는 이를 무효 선언했고,1927년 미국국제법학회,1960년의 유엔 국제법위원회가 강박에 의한 무효화의 대표적 사례로 일제의 한국침략 조약을 들었다.일제는 한국을 불법 강점하기 위해 한국을 침략했으며,청·일전쟁,러·일전쟁까지 도발해가면서 한국을 불법 강점한 것이었다. 이번 문제의 교과서는 일제의 36년간 식민지통치가 철도·관개시설 등 한국을‘개발’시켜 주었다고 하여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개발’ ‘근대화’ ‘시혜’의 논리로 정당화하였다.한국인·애국자들 수만명의 체포·투옥·학살,관동대지진 때의 수천명 재일한국인 학살,한국인 기본권 완전박탈, 식량·자원·광물약탈, 산업발흥 저지·탄압,한국어말살,한글 말살,성명 말살(창씨개명),한국민족문화유산 파괴, 민족문화 말살, 강제공출,강제연행,강제징병,종군위안부… 등 한국민족 말살정책과 수탈정책을 어느것 하나도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 식민지 강점과 정책이 스스로 발전과 근대화할 능력이 없는 조선사람에게 ‘개발’ ‘근대화’ ‘혜택’을 준 것이니 일본이 한국 강점과 식민지 정책은 잘된 정책이라고 일본 중학생들에게 교육하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도된 역사의 가치관으로 교육받은 일본 중학생들이자라면서 한국 재침략을 고취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문제의 교과서는 또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소위 15년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영·불·미의 지배하에 있는아시아 민족들에 대한 ‘해방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정지시를 받고는 ‘해방전쟁’의 용어는 빼고 해방을 위한 ‘용기’ ‘계기’를 준 전쟁이라고 긍정적으로 기술하였다.‘난징(南京)대학살’은 사실이 아니며 오직 패전했기때문에 도쿄(전범)재판에서 (강요당해)인정했을 뿐이라고,‘난징 학살 사건’의 실재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현재 난징에는 일본군의 대학살 전시관이 있고 무수한 증거물이 전시되어 있다.문제의 교과서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용어인 ‘대동아전쟁’ ‘대동아공영권’의 용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면서 이것이 아시아 공동번영을 목적으로한 훌륭한 정책이었다고 시사하였다.실제로는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의 ‘아시아점령책’이었고 침략정책이었기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독립운동세력은 영 ·불 ·미 세력에대항하다가 다시 일본 침략군에 맞서 이중의 더 무거운 침략에 대항,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종전후 해방·독립하게된 것이 진실이다.이 때문에 일본은 모든 침략 점령지역에대해 전후 배상하게 된 것이었다. 이번 문제의 교과서는 광복 전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국정교과서 내용을 부활시키고 황국사관을 부활시킨 것이다.이 문제 교과서 검정통과 때문에 82년에 한국·중국·동남아 각국 국민들이 투쟁하여 고친 7종의 교과서까지 ‘침략’용어를 빼고,‘종군위안부’,한국민족말살정책을 빼는 등 개악되어 버렸다.이런 교과서로 의무교육인 일본 중학생(미래일본국민)이 교육받으면,일본인들은 한국과 모든 아시아 민족들을 깔보고 재침략을 죄의식 없이 시도하게 되어 있다. 한국 국민과 정부,북한은 물론 중국·동남아 각국 등과 연대하여 82년도 이상으로 대사 소환은 물론이요 모든 가능한방법을 동원, 단호하게 강력 대응하여 조국과 아시아 및 세계 평화와 진실을 지켜야 할 것이다. 신용하 서울대교수·사회사상사
  • 4월의 독립운동가 유림 선생 선정

    국가보훈처는 2일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단주(旦洲)유림(柳林) 선생을 광복회,독립기념관 등과 공동으로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했다. 189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1911년 대구와 안동을 오가며 한편으로는 계몽운동을,다른 한편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항일운동을 했으며 3·1운동이 일어나자 안동 임동면 장터에서 협동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1920년 상하이(上海)에서 신한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하다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신채호 선생을 도와 잡지 ‘천고’(天鼓)를 발행했다.이 때 선생은 무정부주의를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수용했다.1931년 ‘원산 흑색사건’으로 붙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2년 10월 충칭(重慶) 임시정부에 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 대표로 참여했고 임시 의정원의원,외교위원회 연구위원,선전위원회 선전위원,무임소 국무위원 등을 지냈다.1945년귀국한 선생은 ‘독립노동당’을 결성하고 ‘노동신문’을창간,노농대중의 계몽과 권익보호에 힘쓰다 1961년 4월1일68세를 일기로세상을 떠났다.정부는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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