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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임 보훈처장 박유철씨

    노무현 대통령은 20일 신임 국가보훈처장(장관급)에 박유철(66·평택대 겸임교수) 전 독립기념관장을 임명했다. 박 신임 처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의 손자로 지난 61년 보훈처 창설 이래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보훈처장으로 기용된 것은 처음이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박 처장은 제4·5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낼 당시 광복회 부회장을 겸임하면서 광복회로부터 지급되는 일체의 활동비를 받지 않는 등 매우 강직하고 원칙에 충실했다.”면서 “건설교통부에 재직할 때도 강직하고 청렴한 공직 생활로 주변의 신망이 두터웠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박 처장의 부친인 박시창 선생도 광복군 사령관과 광복회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며, 부인 양준자 여사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양기탁 선생의 친손녀다. 그의 기용은 “좌·우 대립에 묻혀 있는 독립운동사를 밝혀야 한다.”고 밝힌 노 대통령의 언급과 맞물리면서 국가보훈처가 올 연말쯤 본격화할 좌파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선정작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박 처장은 “사회 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며 좌파계열을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서훈을 내릴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 수석은 “국가보훈처의 부처 위상이 격상되면서 부처 업무도 보훈 대상자와 관련단체를 관리하는 것보다는 보훈대상자를 위한 예우와 복지환경 개선 등 실질적인 ‘보훈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보여 박 처장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열린세상] ‘장군의 손녀’ 와 친일진상 규명/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

    지금 월간조선과 김희선 의원간의 논쟁이 뜨겁다.월간조선측은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가 만주 경찰 출신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김 의원측은 자신의 아버지는 한독당 비밀당원이었으며,독립운동을 비밀리에 지원하던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월간조선측은 녹취록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희선 의원측은 친척을 동원해서 월간조선측이 거짓말을 한다며 맞서고 있다.여기에다 당시 재가한다는 것은 어떠느니 하면서 여성 모독적인 공방까지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과연 과거청산이란 이런 것이어야 하나 탄식을 금할 수 없다.우선 여권 인사 조상들의 친일 행적을 파헤치는 언론기관의 모습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과거사를 캐내는 것과 특정인의 가족사를 들춰내는 것은 과연 어떻게 다를까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즉,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그 방법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과거사는 사회구조와 역사적 상황하에서 파악해야 할 문제이지,특정인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파헤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가족사의 한 부분이 당시의 사회구조를 반영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지만,그렇게 될 경우 그것은 한 개인의 가족사가 아닌 당시의 역사적 구조물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특정인을 중심으로 놓고 접근하면 가족사에 관한 문제이지만,만일 다른 요소에 의해 친일 행적이 드러난다면 이는 한 개인의 가족사라기보다는 역사적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무엇에 의해 문제제기가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인데,예를 들어 친일 행위를 규명하다 보니까,그 후손이 누구 누구더라라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역으로 누구의 조상을 파헤치니까 과거 일제 시대때 어떠한 ‘직위’ 혹은 ‘직업’을 갖고 있더라,그러니까 그 사람은 후손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천지차이다.즉,친일 진상규명은 ‘친일 행위’로부터 비롯되어야지,‘특정 개인’의 족보로부터 비롯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조상의 공적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인정받으려 하는 모습도 과연 소망스러운 모습인가 하는 점도 생각해보아야 한다.자신은 자신일 뿐이다.이 말은 우리의 뿌리가 필요없다거나 혹은 과거 없는 현재만이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과거도 중요하고 또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의 자기 조상들의 행위를 후손이 그대로 답습한다는 등식이 성립될 수도 없거니와,혹은 과거 조상들의 행적을 등에 업고 자신을 치장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가 만주 경찰이 아니고,김 의원측의 주장대로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사람이었고,또 김학규 장군의 ‘후손’이 김희선 의원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김 의원에게 그러한 사실이 어떠한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만일 김 의원이 자신의 가계(家系)가 독립운동 가문이어서 역사청산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면,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다면 이는 동기 자체가 잘못됐다. 역사 청산은 개인적 동기,즉 자신의 가계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나 혹은 자신의 가족들의 과거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과거사 청산 혹은 과거사 규명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가문의 사람들이 어렵고 불우한 세월을 보낸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이들에 대한 보상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청산 과정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이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하에 주관적 감정들이 섞여있고,그렇기 때문에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관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의 ‘과거사 규명’은 결국 세월이 흐르면 또 한번 ‘과거사 규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만들어낼 뿐이다.‘역사의 규명’은 그렇기 때문에 어렵지만,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역사적 책무’인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3) 물질로 기른 탐라여성의 강인한 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3) 물질로 기른 탐라여성의 강인한 힘

    ‘해녀’가 아니라 ‘잠수(潛嫂)’다.단일 마을로는 이 잠수가 가장 많아 108명에 이르는 서귀포 법환리의 조계화(65) 잠수회장은 “어릴 적에도 해녀보다는 잠수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고 증언한다.더러 ‘잠녀’라는 말도 쓰지만 잠수가 본딧말.일본에서 건너온 ‘해녀’라는 용어가 지배하고 있으나,‘확실히’ 잠수가 맞다.왜 그런가. 문헌을 살피면 ‘나잠(裸潛)’이라는 말이 보인다.나잠은 남녀를 포함한다.여성 전업은 아니어서 남자들도 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가거도 같은 오지에도 남자 잠수가 많았으며,요마적에는 동해안에도 남자 잠수가 늘고 있다.이런 사정인데도 근래 ‘해녀’라는 말이 두루 쓰인다.하지만 역사적으로 해남(海男)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해녀가 모든 잠수의 대표 명칭은 될 수 없다.교과서부터 고칠 일이다. 천대받던 잠수가 ‘뜨고’ 있다.공민왕 시절 최영 장군이 몽골의 묵호들을 토벌한 마지막 격전지 법환리를 찾아드니 문화관광부에서 아예 역사문화마을로 지정했다는 입간판까지 서있다.지난 여름에는 이곳에서 잠수축제도 열렸다.그러나 잠수로 먹고 살려는 이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어리석게도 ‘잠녀잡녀(潛女雜女)’라고 경멸했던 전근대적 풍조가 잔존하는 데다 같은 제주도에서도 반가(班家)를 표방하는 이들은 물일을 피했다.험한 물일을 하지만 잠수하는 이들도 여자다.늘상 소금물에 몸을 담그니 아무리 가꾼들 피부가 어찌 거칠지 않으랴.요즈음 젊은 여성에게 매일 소금물에 몸을 담그라면,아마 억만금을 줘도 못할 일이리라. ●우는 아기 구덕에 실어두고 바다로 조선 정종 때 신광수(申光洙)는 석북집(石北集)에서 이 잠수의 광경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했다.“일시에 긴 파람으로 숨을 토해내니,그 소리 비장하게 움직여서 수궁 깊이 스민다.”잠수의 한이 가히 용궁까지 미칠 듯하다.풍덩풍덩 물로 뛰어드는 모습이 마치 필사의 돌격대같다.숨쉬러 올라오면서 고요했던 바다는 갑자기 숨비소리로 충만해진다.매서운 엄동설한에도 우는 애기를 애기구덕에 실어두고 한숨 들이마신 뒤 뛰어드는 바다물질. 세종조 때 기건(奇虔) 목사가 눈보라가 하늬바람에 얹혀 매섭게 휘몰아치던 날,순력에 나섰다.그런데 엄동설한에 발가벗은 여인들이 무리지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목사는 질려버렸고,그로부터 염치지심(廉恥之心)이 용납하지 않아 그네들 손으로 잡아올리는 전복이나 소라 따위를 일절 먹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세월은 바뀌었지만,지금도 전복 따위를 먹을 때는 한번쯤 잠수들을 떠올려 볼 일이다. 법환리에서도 예전에는 16∼17세가 되면 물질에 나섰다.꼬마들은 연습삼아서 얕은 ‘갓’(물가)에서 보말을 잡거나 우뭇가사리를 뜯었다.같이 배운 물질이지만 능력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헤엄 잘치고,채취 잘하고,신체 건장한 여자를 ‘상군’이라고 하고 그 밑으로 ‘중군’과 ‘하군’이 층을 이루고 있다.상군과 하군의 격차는 생각보다 커서 ‘내려갈 땐 한빗,올라올 땐 천칭만칭 구만칭’이란 속담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범섬 주변은 배를 타고 나가 물질을 하고,‘갓’에서는 헤엄치면서 채취한다.주로 전복 소라 오분재기 보말 성게 해삼 톳 감태 갈래곰보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하는데,역시나 해중 보물은 전복.봄이 오면 해경(解警),혹은 허채(許採)라 하여 금지했던 작업이 일제히 풀린다.미역은 2∼3월에 베어내며,봄철이 지나면 녹음이 짙어 뻣뻣해지므로 식용이 불가능하다.감태는 여름철에 종괴호미로 베어내 거름으로 쓰는데,이 거름을 한번 뿌리면 삼 년은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땅이 걸어진다. ●백화현상으로 해초 사라져 환경이 변하면서 전복은 눈을 씻어도 찾아보기 어렵다.소라도 수십 년을 살아 날카로운 돌기가 떨어져 나간 탓에 ‘둥구쟁이’라고 불리는 놈들은 찾아볼 수 없다.5년여 전부터 이 바다에도 백화현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해초들도 대거 사라지고 말았다.바다가 하얗게 변하는 이른바 ‘갯녹음’이 시작된 것이다. 잠수들은 한달에 10∼12일 정도 물질을 나간다.물질은 물때에 맞춰 시작되는데,법환리 속담에 ‘물싼때랑 나비잠자당 물들어사 돔바리 잡나’란 말이 있다.썰물때는 그럭저럭 지내다가 밀물에 바다에 뛰어들어 일을 한다는 뜻이다.특히나 물이 움직이지 않는 한조금날에는 물질을 피한다.여기에다 파도까지 치면 더욱 힘들다.보통 2m의 파도라도 이런 날에는 2배 즉,수심 4m까지 영향이 미친다.너울이 심하면 전복이 눈앞에 있어도 울렁거려서 잡을 수가 없다. 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잠수병.머리가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뇌신이나 감기약 같은 것을 무턱대고 먹는다.잠수 복지정책이라며 이곳 종합병원에서 특수진료를 시작했지만 언감생심 완치는 꿈도 못꾼다.이들에게 연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천차만별이지요.수 천만원에서 수 백만원,지금도 상군 잠수가 일본에 나가서 석달만 뛰면 1000만원은 거뜬하지요.”라고 말한다.그야말로 ‘언더우먼’이다.가사노동에다 물질까지 해서 어렵사리 번 돈으로 밭도 사고 자녀들 대학까지 공부도 시킨다.이곳에서 자란 저명인사 중 잠수 어머니의 손길로 키워낸 사람들이 많다.김계담 서귀포문화원장이 농담삼아 거든다.“그 뿐인가.남편 술값도 보태지.” 70년대부터 잠수복 다운 잠수복이 나왔지 그 전에는 추운 겨울에도 반나체로 바다에 들었다.작가 현기영은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해촌의 포작진상은 수량이 월등히 많아 일년 열두달 바닷속 열명길을 들락날락 자멱질하여야 했다.노적가리만큼 큼직큼직한 진상꾸러미를 만들어 전복·미역·청각·우뭇가사리·산호·대모 외에 해중 귀물인 진주와 앵무조개 진상은 나중에 면제되었지만 그 대신 전복의 수량이 엄청 불어났으니 포작인의 고역은 말이 아니었다.남정네 근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마누라와 딸자식까지 벌거벗겨 물질을 시키건만….’이라며 옛적 잠수 수탈의 역사를 고발하고 있다. ●中·러·日로 원정 잠수도 이들의 행동반경이 제주 바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부산 울릉도 독도 흑산도 등지로 나가는 이가 많았고,심지어는 중국이나 러시아,일본 등 동북아시아 전역으로까지 ‘출가’하였다.봄이면 객지로 떠나 반년 여를 물질만 하다가 가을이면 돌아오는 원정잠수도 있었다.심지어 며칠씩 배를 저어 중국 칭다오(靑島)나 다롄(大連)까지 진출하기도 했다.현지에서는 이들에 대한 착취가 비일비재해 ‘부산 영도 일대에서 (제주 잠수가)짓밟혔다.’는 일제시대의 신문기사가 이를 잘 말해 준다.심지어 선금을 제대로 못갚으면 현지에서 볼모로 잡혀 불귀의 객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한 끼 밥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좁쌀 따위의 양곡을 갖고 다녔으며,근검절약으로 돈을 모았다.아기엄마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면서 물질을 다녔다.우도의 신화적인 잠수였던 조완아는 황해도로 물질 나갔다가 뱃전에서 아기를 낳았다.배에서 낳은 배선이,항에서 낳은 축항동이,길에서 낳은 길동이 등 자녀들의 이름을 보면 만삭의 잠수들이 출산 직전까지 물질을 했음을 알 수 있다.그 애환을 지금의 우리가 어찌 다 알 것인가. ●‘바다가 집이요,배 밑창이 칠성판’ 물질은 헤엄쳐 나가서 행하는 갓물질,15∼20명쯤이 함께 배를 타고 나가서 치르는 뱃물질이 있다.가까운 ‘앞바르’를 벗어나 외국까지 가서 오로지 배에서 먹고자면서 떠도는 ‘난바르’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바다가 집이요,배 밑창이 칠성판’이란 노래가 실감난다.용궁을 다녀온 우도 만행이할머니의 전설같은 실화는 죽음이 늘 이들 곁에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례다.그렇게 억척같이 돈을 모아 살림을 키웠으니 ‘위대한 어머니,장한 딸’이 아닐 수 없다. 그녀들은 독립운동사에서도 혁혁한 기록을 남겼다.이야기는 일제시대로 올라간다.잠수들의 권익옹호라는 미명 아래 어업조합이 발족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조합장을 도사(島司)가 겸임한 탓에 제주도내에서 잠수의 권익은 애당초 고려되지 않았다.1931년,구좌면 일대 잠수들이 9개 조항의 진정서를 도사에게 제출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이들의 불만은 1932년 1월24일 세화리 잠수사건으로 폭발하고 만다.하도리의 부춘화(夫春花·당시 22세)라는 여성의 지휘 하에 1000여명이 세화리 주재소 앞에 모여든다. 당시 인구로 볼 때 1000명은 보통 숫자가 아니다.마침 도사가 이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에 양손에 비창,호미 등을 들고,머리에 흰 물수건을 동여맨 채 행진가를 높게 부르면서 거리에 운집하였다.도로를 가로막고 항의를 시작하였으나 도사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분노의 불길은 더욱 높아져 급기야 관용차를 대파했으며,결국 긴급 출동한 경찰과 충돌하기에 이른다. 그 장거(壯擧)는 지금까지 잠수의 역사로 길이 남았거니와 당시에 불려지던 노래말을 들어 보자.‘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잠녀/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추운날 무더운날 비가 오는날/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아침 일찍 집을 떠나 어두우면 돌아와/어린 아기 젖멕이멍 저녁밥 진자/하루종일 해봤으나 번 것이 없어/살자하니 한숨으로 잠못이룬다.’ 노령의 잠수들은 지금도 이 노래를 기억한다.제주 여성의 강인한 힘은 이같은 고통의 산물이리라.최대 20여m 이상의 물속을 헤집는 잠수들의 노역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니,오죽하면 미국무부에서 심해 공사와 해군력 증강을 위해 제주잠수들을 연구하기까지 했을까.잠수를 말하지 않고는 제주바다의 삶에 관한 논의는 애당초 불가능하다.제주민의 바다삶에서 잠수는 알파요,오메가이기 때문이다.
  • 김희선 의원 “부친 만주서 독립운동” 공개

    김희선 의원 “부친 만주서 독립운동” 공개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이 17일 부친의 친일 의혹 등을 제기한 월간조선 보도를 정면 반박하면서 그의 가족사를 둘러싼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부 김성범과 독립군 김학규 장군이 호적상 남남이고,부친 김일련이 만주국 경찰이었다는 월간조선 보도는 터무니 없는 음해이고 중상모략”이라고 반박했다.김 의원은 “의성 김씨인 증조부 김순옥이 사망한 뒤 증조모 선우순이 두 아들 김성범과 김학규를 데리고 안동 김씨인 김기섭과 같이 살게 됐고,이 과정에서 큰아들과 달리 나이 어린 둘째 김학규를 안동 김씨 호적에 올린 것”이라며 김학규 장군이 자신의 작은할아버지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의성 김씨 족보에 따르면 김순옥의 사망 시기가 1897년이고,김학규의 출생은 호적상 1900년’이라는 월간조선 보도에 대해서는 “당시 족보와 호적이 정확하겠느냐.김학규의 자서전에 장형인 김성범과 15년 터울로 돼 있고,김성범이 1882년 생이므로 김학규는 1897년께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다. 부친의 만주국 경찰 전력 논란에 대해서는 “부친은 조부 뒤를 이어 만주 봉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작은 아버지 김학규의 독립운동을 지원했고,본인도 한국독립당 특별당원으로 활동하다 소련군에 체포됐다.”고 말했다. 회견에는 월간조선측과 인터뷰한 김학규 장군의 며느리 전봉애씨 등 친척과 지인 10명이 참석했다.전씨는 “김 의원의 부친이 만주국 경찰이었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고 월간조선 기자에게 진술했다는 내용을 부인했다.김 의원 부친 김일련의 동지라고 밝힌 김은석씨는 “광복 후 만주에서 김학규 장군 비서로부터 김일련씨를 ‘김 장군의 조카’로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김학규 장군의 제적 등본과 장례식 사진,의성 김씨 족보,김성범의 장남 일선을 김학규 장군의 조카로 보도한 1931년 10월31일자 조선일보 신문 사본 등을 증거자료로 공개했다.김 의원측은 “월간조선 10월호가 발간되는 대로 법적 대응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월간조선측은 “김 장군의 며느리 전씨와 5차례 인터뷰한 내용은 전부 녹취됐다.”며 “전씨는 ‘(김 의원이) 이 사실이 알려지면 친일청산 작업에 지장이 온다.도와달라고 호소했다.’고 취재 기자에게 밝혔다.”고 반박했다. 진경호 김준석기자 jade@seoul.co.kr
  • “김희선의원 부친 만주국 경찰” 보도 논란

    “김희선의원 부친 만주국 경찰” 보도 논란

    독립운동가 김학규(金學奎) 장군의 손녀라고 주장해온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족보상 김 장군과 남남이며,김 의원의 부친은 일제하 만주국 경찰이었다고 17일 발매되는 월간조선 10월호가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김 의원측은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고 나서 김 의원 가계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그동안 김 의원은 “증조모 선우순이 의성 김씨 김순옥과의 사이에 할아버지 김성범과 작은할아버지 김학규를 낳았고,이후 안동 김씨 집안에 재가(再嫁)하면서 두 아들을 데리고 갔다.이 때문에 김성범은 ‘의성 김씨’,김학규는 ‘안동 김씨’가 됐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1936년 발간된 ‘의성 김씨 태천공파’ 파보(派譜)와 1992년 제작된 ‘의성 김씨 대동보’에 따르면,김순옥은 1897년 사망했고 1900년생인 김학규 장군은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다고 월간조선은 보도했다. 이와 관련,김 장군의 큰며느리 전봉애(80)씨는 “김 의원의 증조할머니인 선우순 할머니가,희선이 할아버지인 김성범을 데리고 의사인 안동 김씨 김기섭한테 시집가서 김학규 장군을 낳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전씨는 “시할머니(선우순)가 우리 시어머니(김봉수 여사·김 장군의 처)에게 ‘남편이 죽고 혼자 되니 살 수가 없어 아들 하나를 데리고 안동 김씨 집안으로 시집왔다.’고 늘 말했다는 얘기를 시어머니에게서 들었다.”며 “두 사람(김성범과 김학규)은 친형제가 아니다.”고 말했다고 월간조선은 보도했다. 전봉애씨는 특히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이 광복 전 만주 유하(柳河)에서 경찰로 근무하면서,독립운동가를 색출해서 취조했다.’는 한 제보자의 주장에 대해 김일련씨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유하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한 사실을 확인해줬다고 월간조선은 보도했다.전씨는 “그건(만주국 경찰 근무 사실) 김희선 의원의 삼촌들도 다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희선 의원은 “확실한 증거 없이 나와 내 가족을 음해하는 세력의 일방적인 진술만을 근거로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 마치 사실인 양 보도한 비열한 월간조선의 보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나와 가족의 명예를 지극히 훼손한 월간조선과 해당기자의 악의적 보도에 대해 법적대응할 것임을 밝힌다.”고 반박했다.이어 “17일 내 가족의 독립운동사에 대해 가족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상연 김준석기자 carlos@seoul.co.kr
  • 테러리즘·김선일 ‘참혹한 시간’ 해부

    인문사회 계간지 ‘당대비평’이 ‘탈영자들의 기념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특별호를 냈다.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은 ‘아부 그라이브,미국식 유토피아의 감옥’‘국가의 무책임성과 국제연대­이라크 일본인 인질 석방의 의미’‘참혹한 시간­김선일이 한국사회에 던진 물음들’‘전쟁,테러리즘,거래되는 인간의 고통’등 모두 4부로 이뤄졌다. 월터 데이비스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는 미국사회의 심리적 문제와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미군의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학대가 어떻게 연관돼 있는가를 파헤친다.데이비스 교수는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영화 관객들과 아부 그라이브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했던 미국 병사들은 공통된 심리가 있는데,그것은 이들 모두 난폭한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 내면의 공허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인천대 강사인 이승원씨는 “미디어가 테러로 발생하는 스펙터클에만 관심을 보일 뿐 테러가 어째서 발생했는지,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또 ‘당대비평’ 편집위원인 김두식 한동대 교수는 테러리즘을 이슬람 배타주의로 확대시키는 오류에 대해 반박하는 한편 김선일의 죽음을 희화화한 일부 목사들의 연설을 인용하면서 한국 기독교 사회에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 교수의 ‘한국사와 테러리즘:개화기의 테러의식’이란 글도 눈길을 끈다.그는 한국의 근대사를 더듬으며 한국인들이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들의 테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살핀다. 책에는 이밖에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정신분석 이론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슬라보예 지젝(슬로베니아 류블라대 연구원),프랑스의 지성 장 보드리야르,팔레스타인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 자카리아 모하메드,문학평론가인 도정일 경희대 인문학연구원장 등의 글이 실려 있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연해주 고려인기념관 이달말 첫삽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상임위원장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발족식 및 후원의 밤 행사가 10일 오후 6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발족식에서는 기념관 설립 배경,경과 보고,건립 청사진 등이 발표됐다.오는 26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첫 삽을 뜨는 기념관 착공식이 거행된다.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과 한러 수교 120주년을 맞아 시작되는 고려인 기념관 건립사업은 고려인들의 정착과 재활을 돕고,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며,동북아에 흩어져살고 있는 한민족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날 행사에는 김수환 추기경,서영훈 전 적십자사총재,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장치혁 전 고합 회장(이상 추진위원회 고문),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열린우리당 김재홍 백원우 이은영 의원,한나라당 박계동 고진화 의원,이경형 서울신문 이사 등이 참석해 격려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좌파 독립운동가 서훈 연말께 대상선정 착수”

    안주섭 국가보훈처장은 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좌파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서훈과 관련해 대상 선정작업을 연말쯤에 전문가들과 함께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안 처장은 “그동안 많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1년에 한번 서훈하는데다 만장일치라서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내년이 광복 60돌인 만큼 전체적으로 스크린을 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처장은 “독립운동가 선정은 위원회를 구성해 1,2차로 나눠 심사하는데 1차에서 위원 13명이 먼저 검토해서 올리면 2차 심사를 하는데 의견이 엇갈리면 27명 전원이 다시 모여 심사를 한다.”면서 “단순히 서훈을 하는 문제가 아니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존경의 대상이 되는 분들이므로 나중에 잘못된 게 나오면 안 된다.”며 신중을 기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與 “과거사조사委에 동행명령권” 野와 대치

    열린우리당이 과거사 진상규명과 관련해 진상조사 기구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반면 한나라당은 진상규명 대상에 광복 이후 좌익활동까지도 포함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하고 나서는 등 과거사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심화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7일 과거사 진상규명과 관련해 진상규명 기구에 동행명령권과 수사의뢰권,자료제출요구권 등을 부여하는 내용의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안’을 마련했다. 당내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이 마련한 이 법안은 진상규명 기구가 광복 이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포괄적으로 조사토록 하고,이를 위해 동행명령권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진상규명 기구에 자료제출 요구권을 부여,국가기관은 의무적으로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장관급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5명 등 모두 15명 안팎으로 구성하고,위원들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현직 공무원과 국회의원,피해자나 가해자의 친척 등은 위원이 될 수 없도록 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항일 독립운동은 물론 북한 정권 및 좌익세력의 테러행위 등 현대사를 포괄적으로 조사하는 내용의 ‘현대사 기본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은 진상규명 대상에 ▲항일 독립운동 ▲북한정권 및 좌익세력 테러행위 ▲인권유린 ▲민주화 운동을 가장한 이적활동 등을 포함하는 한편 정치적 중립성과 학술적 전문성을 갖춘 ‘현대사정리위원회’를 구성,조사활동을 벌이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열린우리당 천정배·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친일진상규명법 개정과 국회내 언론발전위원회 구성 문제를 논의했으나,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천 대표는 “친일진상규명법은 오는 23일 발효 전에 개정돼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협조를 요청했으나,김 대표는 별도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러 인질극 배후 오리무중

    300여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러시아 북오세티야 베슬란 인질참사 배후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인질범 숫자도 불분명한 가운데 이번 사태로 20여개 민족이 친러시아와 반러시아로 나눠져 제각각 독립을 추구하는 카프카스지역의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러시아는 체첸의 독립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이지만 일부 공화국의 독립은 지원하는 이중정책을 쓰고 있다. ●러, 보안부서·군기관 대대적 개혁 인질극은 치밀하게 준비된 반면 러시아 정부측의 대응은 엉성했다는 점에서 러시아 정부는 보안부서와 군 기관의 대대적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입장이다.인질범 일부를 여름방학 동안 진행된 학교의 증축공사 현장에서 봤다는 증언이 나왔다.이 기간을 이용,폭탄이 사건 발생 전에 학교로 반입됐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지역보안관을 인용해 보도했다.현지 경찰이 테러범들에게 매수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러시아 정부는 인질범들이 체첸 반군과 아랍계가 연합된 국제적 조직이라고 주장했다.체첸분쟁은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테러와의 전쟁’ 일부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발레리 안드레예프 연방보안국 북오세티야 지부장은 인질범 중 흑인이 1명 있었으며,테러단체 알카에다가 조직원을 충원해온 수단이나 예멘 출신이라고 덧붙였다.배후인물은 체첸 반군 사령관 샤밀 바사예프 휘하의 마고메트 예브로예프,자금 지원은 체첸내 알카에다 지도자인 아부 오마르 아스 셰프가 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인질범 중 아랍계를 보지 못했다는 증언이 나왔다.대신 생존자들은 인질범 일부는 인근 자치공화국인 잉구셰티야 억양을 사용했다고 증언했다.잉구셰티야는 한때 체첸과 합병됐던 곳으로 지난 6월 내무장관을 겨냥한 테러가 일어난 바 있다. 베슬란 인질사건을 계기로 러시아 당국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종족간 충돌’로 비화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화약고,카프카스 카프카스 지역에서는 물고 물리는 소규모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남오세티야는 러시아내 북오세티야와 합병,러시아에 귀속되길 원하고 있다.그루지야 내 아브하지야 지역도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중앙정부와 싸우고 있는 반군들끼리의 연대도 활발해 아브하지야 반군들이 체첸 반군들과 연대,양측에서 활동하고 있다.옛소련에서 독립한 몰도바공화국의 친러 자치공화국인 트란스드네스트르의 반군들도 체첸 반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열린세상] 정당한 처벌과 포상 필요하다/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과거사 청산은 학자들에게 맡기자고 했다.같은 당 여의도연구소도 대응책을 공식적으로 공개했는데,그 내용도 겨우 ‘학술단체가 정리하는 수준’이다.또 수사권부여도 반대하면서,현재 의문사조사위원회가 가진 조사권도 인정하지 않겠단다.과거사를 청산할 의지가 없는 셈이다.이제까지 비민주적인 정치권력이 역사해석의 방향뿐 아니라 실정법의 적용조차 왜곡해왔는데,연구 차원의 역사청산을 논한다면 위선일 것이다.당시 법에 따라 처리되었기에 청산은 필요 없다는 말도 구차한 변명이다. 중요한 관건은 악법의 적용이 아니라,죄에 걸맞은 처벌이다.개혁의 실마리를 놓친 듯했던 대통령이 이 문제는 제대로 짚었다.“프랑스는 불과 4∼5년 동안 30만명이 정부로부터 레지스탕스로 공식 인정받고 포상을 받았는데,우리는 일제 36년,의병시기까지 합치면 50∼60년이 훌쩍 넘는 침탈의 역사를 겪어왔는데 아직 1만명밖에 포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독립운동하면 대대로 패가망신당하는 세월속에 국가는 손을 놓고 있었으니,그 손은 ‘더러운 손’이었다. 포상을 하지 못한 과거는 처벌을 하지 못한 과거와 표리관계에 있다.1949년부터 활동에 나설 때 반민특위는 반민족자 7000여명을 파악했으나,실제로 취급한 건수는 682건에 그쳤다.영장발부 408건,체포 305건이었으며,검찰에 송치된 559건 중에서도 기소는 221건에 지나지 않았다.결과도 대부분 무죄 혹은 가벼운 자격정지로 끝났다.그 결과를,침탈 기간이 우리의 10분의1에 지나지 않았던 프랑스의 부역자처벌 결과와 비교해 보자.법원에서 조사받은 사건만 16만 827건에 이르렀고,최종적으로 7037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1500명에 대해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었다.그리고 3000명 정도가 중노동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공적으로 나라를 위해 선행을 하고도 포상을 받기는커녕 억울한 피해자가 된다면,얼마나 참담한가.근대 이후 처벌권을 독점한 국가가 공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광복 후 법과 정의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과 태도가 온전할 수 없었다.좋은 일 해 봐야 억울한 피해자만 된다면,사람들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사람들은 공적인 책임을 신뢰하지 않고,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서로 ‘몰래 가해자’가 될 것이다. 피해자가 되면 피곤하기만 하다는 인식이 널리 깔려있을 때,사람들은 공적으로 죄가 될 만한 사건에 대해 신고도 하지 않는다.형사사건의 범죄 신고율은 1998년에 22.7%로,독일의 48.0%,영국의 58.7%,프랑스의 60.8%와 비교해 매우 낮다.신고해 보았자 범죄가 법대로 처벌되지도 않고 또 재판 과정에서도 이차적인 피해만 입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작 사람들의 피해의식이 줄어들거나 사라졌느냐 하면,오히려 거꾸로다.1997년부터 2002년까지 평균 고소·고발 사건 수는 80만 1893건으로,일본의 1만 2174건에 대해 66배이며 인구를 감안할 때는 무려 170배에 달한다.고소사건의 73.5%가 불기소 처분될 정도로 죄가 되지 않는 민사사건이라고 하니,시민들은 재판을 통한 공적 처벌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해 사적인 원한만 키우고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그 결과 사회의 구조적 폭력성은 더욱 심화된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이제라도 청산을 해야 한다.민족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보수를 자처할 수도 없다.지금 처벌하자는 것도 아니다.최소한 기록이나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더구나 지금 제대로 해보았자,이류 청산밖에 안 된다.그것도 안 하면 역사는 삼류·사류로 더러워질 것인데,그 경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까.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 보훈처, 국제협력 전담부서 신설

    국가보훈처(처장 안주섭)는 6·25 참전국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해외 독립운동 관련 업무 추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국제협력 업무를 전담할 국제협력팀을 신설했다고 1일 밝혔다. 서기관급 팀장을 비롯해 6명으로 구성된 국제협력팀은 앞으로 해외 거주 독립유공자 지원,25개 6·25 참전국과 교류·협력사업,해외 독립운동 사료수집,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및 기념시설 건립 등을 전담하게 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9월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국가보훈처는 31일 러시아 지역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다 순국한 항일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했다.함경북도 경원 태생인 선생은 러·일전쟁 이후 안중근 선생 등과 함께 동의회를 조직,의병들의 무장투쟁을 지원했다.1917년 러시아 혁명 후 전로한족중앙총회의 의원과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등을 역임했으며,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 [서울광장] “나에게도 과거는 있다”/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나에게도 과거는 있다”/이목희 논설위원

    요즘 정치권에서는 과거괴담이 난무한다.○○○의원,△△△장관 부친이 일제시대 때 뭘 했다더라는 식이다.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된 것도 있다.신기남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장직에서 낙마하고,이미경 의원이 곤욕을 치렀다.정치인이라면 신경이 안 쓰일 리 없다. 주변 사람들의 과거와 관련,한때 떨었던 적이 있다.1990년대 중반까지 청와대 취재기자가 되려면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쳐야 했다.2개월여 동안 시쳇말로 사돈의 팔촌까지 조사한 뒤 출입기자증이 나왔다.신원조회 후 출입을 거부당한 기자가 꽤 있었다. 95년 회사의 명으로 청와대 출입을 신청해 놓고,기분이 찜찜했다.친가와 처가모임에서 “과거가 있으면 다 나올 것”이라고 엄포성 언급을 했다.그때 실감했다.우리의 전(前)세대가 얼마나 험한 인생을 살아 왔는지를.“이런 정도도 문제되느냐.”면서 과거사를 공개한 집안어른이 있었다.문제될 것 같기도 하고,안 될 것 같기도 하고,얼마동안 고민하며 지냈다.결국 출입증이 나옴으로써 ‘큰 과거’는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그때는 친일이 아니고 주로 사상쪽이었다.친일 과거를 뒤지기로 한다면 다시 챙겨봐야 할 것이다. 청와대 출입을 거부당한 언론사 선배들을 보면 친가뿐 아니라,외가·처가가 문제된 경우도 많았다.본인이 전혀 알 수 없는 과거가 있었던 셈이다. 신기남 의원은 지금 아르헨티나에 가 있다.한국도서관협회장 자격의 방문이라지만,아픈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외유일 것이다.신 의원측 관계자는 “부친이 일본 헌병을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보다 거짓말을 했다는 비판을 더 마음 아파한다.”고 전했다.개인적으로 신 의원을 조금 안다.붙임성은 없지만,태연히 남을 속이는 성격은 아니다.그는 부친 관련 폭로를 처음 터뜨린 월간지의 해명요구에 응하지도 않았다.부친이 일본군 출신이란 사실은 알았으나,심각한 친일행위가 있었으리란 생각은 안 한 듯싶다. 그러나 살벌한 정치판에선 “몰랐다.”는 “속였다.”로 바로 이어진다.과거사에 관한 한 “모르는 X이 용감하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아버지,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외할아버지,외증조할아버지,그리도 처가쪽 조상들….그 분들의 삶의 역정을 다 아는가.모든 조상의 과거사를 알지 못하면서 먼 친척 한 분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자랑하지 말라.아버지,할아버지 세대의 역사를 새로 쓰는 작업은 그만큼 민감하다.여야 정치인들이 “나에게도 과거는 있다.”는 자세를 가지는 순간 정쟁은 비켜간다. 신중함은 여권쪽에 더 요구된다.정녕 한 시대를 털고간다는 역사의식에서 접근해야 한다.다른 정파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지금 야당은 마지못해 따라오는 형국이다.설령 무언가 나와도 여권보다는 타격이 덜하다.친일 족보를 뒤져서 야당 인사 7할,여당 인사 3할이 나오면 일반인들이 “야당만 친일집단”이라고 할 것 같은가.과거사규명법에서 연좌제적 피해가 없도록 2중,3중의 장치를 해놓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보면 한나라당이 오히려 친일규명에 앞장서야 할 판이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면 박근혜 대표의 지지도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는 정치를 모르는 얘기다.매국노 이완용에 버금가는 행적이 새로 발굴된다면 모를까,지금 수준이라면 박 대표의 정치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사 규명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어느 칼에 누가 다칠지 모른다.개인적 고백을 강요해선 안 되지만,드러난 사실에는 솔직해야 한다.정치권은 겸손한 마음으로,옥석을 가릴 준비를 해야 한다.그래야 진실한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고,정치·경제적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좌익계열 서훈 보류자 113명 보훈처 국회제출 자료

    좌익계열이란 이유로 서훈이 보류된 독립운동가가 지금까지 모두 113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27일 국가보훈처가 국회 정무위 소속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좌익계열 서훈 보류자는 113명으로 총 서훈 보류자 1만 8818명의 0.6%를 차지했다.좌익계열 서훈 보류자 명단에는 임시정부 수립 요인인 몽양 여운형,유정 조동호 등이 포함돼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여권, 과거사 규명 혼선 “갈피잡기 힘드네”

    여권, 과거사 규명 혼선 “갈피잡기 힘드네”

    여권의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이 혼란스럽다.스스로도 갈피를 못잡는 인상이다.조사기구의 성격을 둘러싼 한나라당과의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규명대상과 범위,조사방식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조차 엇갈린 목소리가 나온다. 열린우리당은 이같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금명간 청와대측과 회동을 갖고 이견 조율에 들어갈 예정이다. 혼란은 1차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제공하는 양상이다.노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권력기관에 의한 억울한 피해를 포함한,포괄적 과거사 규명을 ‘원칙’으로 제시했다.그러면서 “국회가 올바른 진상 규명이라는 원칙에만 동의하면 구체적 방법은 국민 의견을 수렴해 충분히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구체적 규명작업 논의를 국회에 넘겼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25일 독립유공자 청와대 오찬에서 과거사 규명 대상을 추가했다.좌익 독립운동 재조명 방침을 제시한 것이다.이는 그동안 노 대통령은 물론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사항이다.청와대측은 이를 ‘포괄적 과거사’라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열린우리당은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내 ‘과거사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원혜영 의원은 노 대통령의 25일 발언에 하루 앞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가 통합적이고 전면적이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었다.“친일문제는 친일진상규명법을 개정함으로써 사실상 광복 이전은 다 끝났고,현대사의 각종 의문사 및 인권침해도 의문사위를 통해 대부분 밝혀져 과거사 특위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도 했다.한 고위당직자도 조사방식에 대해 “당사자나 관련자가 제보하면 조사기구가 규명에 나서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수사기관과 같은 전면적 조사에 부정적인 뜻을 피력했다.그러나 노 대통령의 25일 발언으로 열린우리당은 이를 상당부분 재조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26일 “독립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질 때 남북협력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어느 쪽 이념에 섰다고 해서 독립운동을 없던 것으로 치부하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된다.”고 노 대통령의 언급에 화답했다.그러나 이 의장의 발빠른 입장 정리에도 불구,당내에선 “짐만 늘었다.”“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느냐.”며 당혹해 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한 고위당직자는 “솔직히 어떻게 풀어야 할 지,어디까지 규명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청와대의 의중을 잘 모르겠다.”고도 했다. 진상규명 범위와 밀접한 규명기간에 대해서도 편차가 크다.이 의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최소한 1년’을 제시했다.그러나 앞서 고위당직자는 “5년은 필요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경제살리기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도 떨쳐버리기 어려워 이래저래 열린우리당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제

    국가보훈처는 27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국립 현충원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에서 광복회 주관으로 대한독립군 무명용사들에 대한 위령제를 연다. 위령제는 독립운동관련 단체장,광복회원,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우전 광복회장의 개식사,안주섭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독립군가 제창,헌화,분양,조총 및 묵념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은 이름없는 애국 선열들의 혼백을 위무하고,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광복회가 5억원의 국비를 들여 지난 2002년 5월 건립했다.
  • [사설] 대통령의 좌파 독립운동 평가 언급

    노무현 대통령은 엊그제 독립유공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좌우대립의 비극적 역사 때문에 독립운동사 한쪽은 일부러 알면서도 묻어두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좌파 독립운동도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념과 사상을 떠나 독립운동의 실체를 재조명하자는 제안은 방향에 있어 옳다.좌익이건 우익이건,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객관적 역사 기술은 후손을 위한 우리의 책무이다.냉전 시절 독립운동의 한쪽이 등한시됐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학술 차원에서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사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어 있다.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추가로 연구해 미비점을 보완하면 될 것이다.문제는 개인의 공과에 대한 평가다.독립운동가로 인정받으면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고,서훈도 준다.노 대통령의 언급이 있자 국가보훈처는 즉각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적극 발굴해 포상하겠다고 밝혔다.널리 알려진 이동휘 선생조차 1995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새로운 기준으로 심사를 한다면 추가로 유공자가 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많을 것이다.그동안 심사가 보류된 인사만 해도 200여명에 이른다.좌파 독립운동 재조명이 본격화되면 대상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했다고 모두가 훈장을 받고,유공자가 될 수는 없다.역사의 발굴과 포상은 성격이 다르다.광복 후 북한 정권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하거나,자유민주체제 전복활동을 한 경우는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항일운동을 하다가 변절해 친일활동을 한 이를 독립유공자로 추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되,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활동을 한 인사들은 서훈대상에 넣지 말아야 한다.
  • 조봉암·여운형 선생 독립운동 서훈 될듯

    조봉암·여운형 선생 독립운동 서훈 될듯

    노무현 대통령이 이념을 떠난 독립운동사 규명 필요성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국가 서훈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거론되는 좌파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또 서훈을 신청했다가 보류됐거나 사실상 거부된 면면은 누구인지,신청서에 나타난 그들의 활동상은 어떤지도 관심사항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처리됐나 좌파계열 독립운동가들은 1980년 이후부터 약간씩 정부의 서훈대상으로 올랐다.올해 광복절에는 고려공산당과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결성 등에 참여한 윤자영이 독립 유공자에 선정됐다. 좌파계열 포상자의 경우 북한정권과 무관하고 광복 이전에 사망해 좌우투쟁에 개입하지 않은 인물이 대부분이다.윤자영은 나중에 소련 정부에 의해 총살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좌파활동의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가 유보 또는 거부판정을 받거나 이를 예상하고 아예 신청을 포기한 좌파계열 독립운동가는 200명 선으로 추산되고 있다.대부분 독립운동 이후 친일이나 6·25 때 부역활동이 드러나는 등 불투명한 사후 행적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여운형의 경우 2002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서훈을 신청했으나 탈락하자,기념사업회 관계자가 보훈처에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국회에도 선정협조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선정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연해주에서 한인사회당을 조직,공산주의 단체결성을 도운 이동휘는 김영삼 정부 시절 뒤늦게 독립유공자에 포함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주요 대상 인물 해방 이후 진보당 당수를 지낸 죽산 조봉암과 몽양 여운형,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낸 김철수 등이 꼽힌다. 3·1운동 뒤 만주 등에서 항일무장운동을 벌였던 김시현,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장재성,1920년대 국내 공산주의 거물인 김재봉과 권오설,1930년대 이후 중국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벌인 김두봉,김무정,최창익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조봉암은 3·1운동 때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돼 1년간 옥살이를 하고 공산당 계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또다시 잡혀 8년간 옥고를 치렀다.해방 뒤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 부의장,대통령후보(무소속),진보당 위원장 등을 지냈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인 1959년 간첩 혐의로 사형됐다. 여운형은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장과 민주주의 민족전선 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좌우 합작운동을 벌였으나 극좌·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1947년 7월 암살됐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열린세상] 친일이란 판도라상자를 열려면/이덕일 역사평론가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로 시작하는 ‘목포는 항구’는 ‘목포의 눈물’과 함께 이난영의 대표곡으로서 목포를 넘어 전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이 노래의 작사자 조명암(趙鳴岩,1913∼1993)은 2003년에야 시 전집이 발간되었는데,이는 그가 광복 이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에 참여했다가 월북한 좌익 시인이기 때문이다.월북 부친 때문에 고생했을 남한의 유일한 혈육인 딸은 1992년 그가 해금되자 500여곡의 저작권을 되찾고 ‘꿈꾸는 백마강’,‘선창’ 등의 저작권자가 부친이라며 서울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조명암의 시선집을 편저한 대학교수는 “조명암의 민족주의 성향은 만해 한용운에게서 배운 영향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민족주의 인사로 포장되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일제시대 지은 ‘지원병의 어머니’라는 가사는 ‘민족주의’ 운운하는 평가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웅변해준다.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을/ 빛나는 싸움터로 배웅을 할 제/ 눈물을 흘릴소냐 웃는 얼굴로/ 깃발을 흔들었다 새벽정거장/···/ 살아서 돌아오는 네 얼굴보다/ 죽어서 돌아오는 너를 반기며/ 용감한 내 아들의 충의 충성을/ 지원병의 어머니는 자랑해주마.’ 이 가사는 1941년 7월 오케레코드에서 간판급 여가수로 활동하던 장세정(張世貞,1921∼2003)의 노래로 음반 발매되었는데,음반 제목은 ‘애국가’였다.조명암이 작사한 친일 가사는 이뿐만이 아니다.1943년의 ‘혈서지원’에서는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네.’라고 노래하고 있다.친일파 조명암은 북한에서 평양가무단장,문화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부위원장,교육문화성 부상(차관) 등의 고위직을 역임하면서 죽을 때까지 김일성상(賞)계관인이란 영예스러운 칭호를 누렸는데,이는 적극적 친일파의 공통된 특성 중 하나인 ‘현실 권력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탁월한 능력’이 ‘친일파 하나는 확실히 청산했다.’는 북한에서도 괴력을 발휘했음을 말해준다. 시게미쓰 구니오라고 개명했던 신기남 열린우리당 전 의장의 부친 신상묵이 광복 후 경찰간부로 특채된 것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을 수사했던 경력 덕분이었을 것이다.수사대상만 독립운동가에서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반대자로 바꾸면 되었던 그는 ‘현실권력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친일파의 탁월한 능력’때문인지 서남(西南)지구 전투경찰 사령관을 거쳐 자유당 시절 젊은 도경국장으로 승진한다. 신상묵이 멀쩡한 소학교 교사를 때려치우고 일본군 졸병으로 지원한 1940년,천여명 뽑는 졸병 모집에 8만여 명의 조선인이 지원했다는 ‘매일신보’의 보도는 이 무렵 친일이 권력추구 수단으로 구조화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일제가 적어도 100년은 갈 줄 알았다는 서정주의 친일의 변처럼 독립에의 전망이 부재한 시대였기 때문에 친일은 옳고 그른 윤리적 차원을 넘어 인생역전의 키워드로 구조화한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후세대의 친일문제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어렵고 전문성을 요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신기남 의원이 의장직 사퇴의 변에서 “인자함과 덕망,주변에 도움을 주며 사셨던 분을 하루아침에 일제의 앞잡이로 매도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라고 말한 것은 그가 ‘친일이라는 불행한 시대의 판도라 상자’를 열 자격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상자를 열 때 ‘가난,질병,전쟁,거짓말,고통,슬픔,미움,사기’ 등이 상대방에게만 붙으리라고 예상했다면 그 시대에 대한 공부를 한참 더 해야 한다.그런 후 판도라 상자를 열어야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그것 때문에 모든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뚜껑을 열어야 하는 ‘미래를 향한 희망’을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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