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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운찬 “어릴적 꿈은 국회의원”

    정운찬 “어릴적 꿈은 국회의원”

    대선 출마 등 정치 참여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정운찬(얼굴) 전 서울대 총장이 자신이 직접 쓴 책에 어린 시절 꿈이 국회의원이었다고 기술한 것이 25일 드러나 화제다. 이는 수필집 ‘아버지의 추억’(따뜻한손 펴냄) 가운데 정 전 총장의 ‘나를 만든 네 분의 아버지’라는 자서전식 수기에 고스란히 적혀 있다. 이 책은 신경림 시인 등 유명 인사들이 아버지에 대해 쓴 글을 모아 지난해 2월 출판됐다. 정 전 총장의 글은 이 책의 공동저자가 33인이나 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 내용 가운데 정 전 총장의 꿈은 그가 친부, 양부에 이어 세 번째 아버지라고 칭한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와의 대화에서 확인된다. 그는 수기에서 “중학교 2학년 어느날,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우리 집안에 3대째 정승이 끊겼다.’는 어머니의 한탄을 들으며 자란 나는 막연히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답했다.”고 적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민족대표 33인에 이어 34번째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로 꼽히는 인물. 정 전 총장과는 경기중 시절 등록금을 지원해 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는 꿈 얘기를 듣고 “정치판은 기본적으로 그리 깨끗한 데가 못된다.”고 고개를 저었다고 정 전 총장은 회상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사회가 어려움에 처할 때는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도 가르쳤다. 정 전 총장은 “나에게 그 가르침은 1986년 장충단 체육관 선거를 종식하고 국민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내용의 교수들 서명 운동을 주도하도록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돌아봤다. 정 전 총장은 수기 가운데 스코필드 박사와의 인연을 담은 부분을 “그분의 말씀은 내게 삶의 지침이 되어, 정치와 거리를 두는, 그러나 사회 속에 몸담은 지식인의 길을 가게 만들었다.”라고 마무리 지었다. 범여권의 유력 카드로 부상하면서 대선 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정 전 총장의 선택이 끝까지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일지 주목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민주 성지’ 광주 민·관 유치 앞장

    ‘민주 성지’ 광주 민·관 유치 앞장

    광주시의 민·관이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민주주의 전당’과 ‘민주공원’을 유치하기 위해 손을 잡고 나섰다.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기념사업의 하나로 정부가 추진중인 ‘한국민주주의 전당’과 ‘민주공원’ 조성사업은 공원을 ‘묘지’로 인식한 서울 등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유가족간 불협화음으로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유치의 당위성 설파 광주시는 22일 유치위 위원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국회 등을 차례로 방문, 이들 시설의 광주 유치 당위성을 설명했다. 위원들은 이날 광주는 항일의병, 광주학생독립운동,5·18민주화운동 등을 통해 민주·인권도시로서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또 유치를 위한 시민 공감대가 어느 지역 보다 높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희생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민주주의 전당은 유일하게 유치를 신청했고, 민주공원은 경기도 이천시와 경합하고 있다. 시는 이들 시설을 유치하면 국립5·18묘지 등과 함께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할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따라 5·18묘지 인근(북구 장등동)에 12만5000여평의 후보 부지를 마련했다. ●한국민주주의전당 2001년 출범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는 해방이후 민주화운동을 총망라한 전당을 짓기로하고 7만 7000여명의 범국민추진위를 발족시켰다. 추진위는 1400억원(부지 매입비 제외)을 들여 연건평 1만 2000평 규모의 기념관을 2011년∼2012년 완공할 계획이다.5월쯤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최종 후보지를 결정하고 빠르면 내년말쯤 착공에 들어간다. 역사성·상징성·편의성(접근성) 등이 후보지 선정에 결정적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이 곳엔 문화관·사료관·연구소·교육센터·민주테마공원 등이 들어선다. ●민주공원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하경철)는 2002년부터 부지선정에 나섰으나 주민 반대로 수차례 무산됐다. 당시 서울 수유리 일대에 공원 조성을 추진했으나 강북구와 주민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어 2005년 인천시 남구가 유치를 신청했다가 주민 반대에 부딪치자 1년여만에 이를 철회했다. 주민들은 “‘민주공원’이 사실상 ‘묘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공원은 2만 7000여평의 부지에 500여억원을 들여 조성된다. 보상심의위는 착공일로부터 5∼6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으나 수년째 부지 선정 조차 못하고 있다. 민주공원에는 1960년대∼현재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열사’의 주검을 한데 모아 안장한다. 이들 열사 묘는 5·18 구묘역 38기와 전국 각지에 141기가 흩어져 있다. 상당수 유가족들은 접근성 등을 이유로 수도권 입지를 희망하고 있으나 부지선정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가짜 미술품 판친다] (상) 사례별 유통 실태

    [가짜 미술품 판친다] (상) 사례별 유통 실태

    국내 미술시장이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만에 활황을 맞아 들썩거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구조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해 미술 애호가들을 울리고 있다. 거래되는 미술품에 제대로 된 보증서나 출처정보(provenance·작품 소유주에 대한 역사정보)가 없을 뿐더러, 위작으로 인한 피해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위작은 화랑 뿐아니라 경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게다가 위작인지, 진품인지 가려야 하는 전문감정기구와 전문인력의 신뢰도도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술품의 가짜 유통실태에 대해 세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10년만에 호황 속 피해 속출 미술품 10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한모(44)씨는 지난 2001년 지금은 사라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서양화가 권옥연(84) 화백의 6호크기 소녀 그림을 구입했다. 권 화백은 첫사랑의 애잔한 기억을 연상시키는 청회색조의 미인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림은 위작으로 판명돼 한씨는 일주일 뒤 그림값 1000만원을 환불받았다. 그러나 당시 화랑 주인은 “내가 볼 때는 진짜가 맞다.”고 강변했다. 한씨는 “가짜 그림을 팔고 나서도 환불만 해주면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A화랑에서 조각가 헨리 무어의 소품을,B화랑은 백남준 작품을 지하실에서 제작해 팔았다.”며 위작품 제작에 화랑들이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필홍(53)씨는 19세기 개화기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있으며 개화공정미술(開化工程美術) 대표로 있다. 그도 서울옥션에서 구입한 서예 글씨를 환불 조치받았다. 황씨는 지난해 4월 실시된 서울옥션 101회 경매에서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선생이 ‘同智相謀(동지상모)’라고 쓴 휘호를 420만원에 낙찰받았다. 하지만 미술품 소장가 협회원들과의 논의 끝에 위작이라고 결론지었다. 여러차례 고미술협회와 서울옥션 간의 소견서에 대한 진위 공방이 있은 뒤 결국 낙찰금을 돌려받았다. 그는 서울옥션에 이 작품이 진품일 수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해 보내주었다. 서울옥션 심미성 부장은 “신익희 선생의 글씨가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7∼8개월 이상 문제가 길어지다 보니 결국 경매를 의뢰한 원 소장자에게 돌려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옥션측은 위작 논쟁으로 낙찰금을 돌려주는 경우는 1∼2년에 한번 있는 희귀한 사례라고 밝힌다. 특히 해공 작품은 소장자와 구매자 모두 가짜라고 확실히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환불해 주면 그만” 의식 사기판매 부채질 황필홍씨는 “위작 문제를 제기하자 경매사에서 양주를 가져와서 진위와 상관없이 돈은 돌려주고, 신익희 선생의 작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그는 “가짜를 팔 수 있고, 문제가 되면 환불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매사의 직무유기이자 사기극”이라며 “위작 문제를 환불로 덮는 것은 사기 판매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황씨는 2005년 서울옥션 97회 경매에서 900만원에 낙찰받은 초의대사의 글씨도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 후기의 대선사로 추사 김정희와 친구로 지낸 초의대사가 예서(隸書)체로 쓴 오언율시(五言律詩)와 흡사한 작품이 나타난 것. 황씨가 낙찰받은 작품과 필체, 크기, 내용 등이 거의 동일한 작품을 소장한 편영우(67) 중화문화연구원 대표. 초의대사의 글씨를 20년전 전남 순천에서 여학교를 세운 한 갑부로부터 구입했다고 밝혔다. 편씨는 서울옥션에 소장품의 실물 복사본과 두 작품 가운데 어느 것이 진품인지를 묻는 통지서를 보냈으나, 오히려 다른 제3의 작품에 대한 소견서가 왔다고 분개했다. ●감정 능력도 부실 서울옥션은 외부 감정위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작품 판매 이후에는 옥션이 진품임을 보장한다는 보증서를 구매자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근·현대 미술품을 독점적으로 감정하고 있는 한국화랑협회 산하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의 공신력은 국내 유일의 미술품 감정기관이란 위상에 못 미친다.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초기 석고 데생작품을 구입한 황필홍씨는 미술품감정연구소에 진위를 의뢰했으나 위작이라고 판명받았다. 오 화백이 본명인 ‘吳占壽’를 한자로 쓴 서명을 감정위원들이 알지 못했다고 판단한 황씨는 오 화백의 아들 오승우 화백에게 감정을 다시 의뢰했다. 이에 오승우 화백은 데생작품 뒤에 진품이 맞다고 자필서명을 해주었다. 결국 미술품감정연구소는 위작이라 판정했던 본래 입장을 바꿔 감정불가란 소견서를 재차 보내왔으며, 감정수수료 33만원도 반환했다. 초빙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명석(60) 우림갤러리 대표의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최근 그림값이 급등한 천경자 화백의 작품에 대한 감정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있으며, 박수근·이중섭의 작품은 절반 정도가 위작으로 판명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화랑협회의 1982년부터 2001년까지 20년간 미술품 감정결과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같은 가짜 작품의 유통량이 평균 29.5%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친일 반민족행위’ 2기 조사대상 83명 확정

    대통령 직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강만길)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와 순사, 법조인, 언론인 등이 포함된 친일·반민족 행위 제2기 1차 조사대상자 83명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친일 진상규명위가 공개한 조사대상자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위원과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김영택씨, 제암리 학살사건 당시 발안주재소 순사보로 근무했던 조희창씨, 갑신정변 당시 행동대원으로 참여했다가 이후 귀국해 중추원 참의를 지낸 신응희씨 등이 포함됐다. 위원회는 대상자 선정 사실을 알릴 후손이 확인되지 않은 41명을 관보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연고가 파악된 나머지 42명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직계 비속 및 이해 관계인에게 선정 사실을 통보했다. 실명 공개 대상 41명에는 일진회 기관지 국민신보 기자 출신으로 친일신문 시사평론 주필이었던 언론인 김환씨, 영등포경찰서 경부였던 김윤복씨, 한일합방에 협조한 뒤 남작 지위를 받은 김영철씨와 대구공소원 판사 김응준씨, 경성지방재판소 판사 박만서씨 등이 포함됐다. 위원회는 조사 대상 시기를 3개 시기(제1기 1904∼1919년, 제2기 1919∼1937년, 제3기 1937∼1945년)로 나눠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제1기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확정해 발표했다. 위원회는 제2기 대상 시기인 3·1운동 이후 중일전쟁까지는 강점 초기 일제에 협력해 귀족 작위나 중추원 관직을 받은 인물들의 활동이 이어지고, 국내외 독립운동의 탄압이 심해지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정운현 친일진상규명위 사무처장은 “거물급 매국노들이 포함됐던 제1기나 전체·군국주의자들이 나타나는 제3기와 달리, 제2기엔 유명세는 덜하지만 직업적으로 친일을 했던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된 조사대상자 선정 결과에 이의가 있는 직계 비속이나 이해관계인은 통지일로부터 60일 또는 관보 공고일로부터 74일 이내에 이의 신청서와 소명 자료를 친일규명위에 제출해야 한다. ■ 공개 대상 41명 명단 강인수(전남 광주경찰서 순사), 강필성(중추원 참의), 권중익(경북 고령·영양군수), 김광현(황해도 서흥경찰서 순사), 김기영(함경남도 북청·이원 군수), 김명규(중추원 참의), 김석윤(전북 자성회 발기인), 김영철(남작), 김영택(동약척식주식회사 설립위원), 김윤복(서울 영등포경찰서 경부), 김응준(대구 공소원 판사), 김재곤(자위단원호회 위원장), 김제하(중추원 참의), 김준용(중추원 참의), 김해룡(내부 경시, 서기관), 김현수(중추원 참의), 김환(시사평론 주필), 남규희(중추원 참의), 박만서(경성지방재판소 판사), 박인재(청도 자위회 지부장), 박정순(경북 문경군수), 백낙삼(평안북도 선천군수), 백덕수(내부 순사), 신응희(중추원 참의), 신태유(중추원 참의), 심의진(헌병 보조원), 오재풍(중추원 참의), 유맹(중추원 참의), 유재기(전북 자성회 유세원), 이만규(중추원 참의), 이승칠(황해도 재령군수), 이용원(헌병 보조원), 정동식(중추원 참의), 정인하(고부경찰서 경부), 조동윤(남작), 조성엽(헌병 보조원), 조진호(제2순사대 경시), 조희붕(일진회 총무원), 조희창(발안주재소 순사보), 허진(중추원 부찬의)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인터넷검열 확산

    인터넷검열 확산

    이집트 카이로 시내에 거주하는 모하메드 알 사르카위는 지난 주말 친구를 만나러 외출했다 집에 돌아와 깜짝 놀랐다.3시간가량 집을 비운 사이 누군가 문의 잠금 장치를 부수고 들어와 노트북을 가져간 것. 다른 물건은 그대로인 걸 확인한 그는 침입자가 국가정보국 요원일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노트북에는 그가 블로그에 올리려던 경찰의 고문장면 비디오가 저장돼 있었다. 사르카위는 얼마전 회사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보 요원으로부터 자신의 블로그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경고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인터넷 활동을 검열하는 사례는 비단 이집트 뿐이 아니다. 터키는 최근 터키 건국자를 모독하는 비디오를 올렸다는 이유로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대한 접속 금지 명령을 내려 논란을 일으켰다. 인터넷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국제적으로 인터넷 검열도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미국 하버드 법대와 캐나다 토론토대, 영국 케임브리지·옥스퍼드대가 합동으로 최근 6개월간 40개국을 조사한 결과 20여개국이 광범위한 범위에서 검열과 통제를 실시 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5일 보도했다. 로널드 데이버트 토론토대 정치학 부교수는 “특히 10개 국가에서 인터넷 검열이 매우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을 비롯해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국가로 꼽혔다. 이번 조사는 해당 대상국들의 국제뉴스 분야와 관련한 사이트 1000개, 현지어 사이트들을 수시로 반복해 접속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인터넷 인구가 1억 3700만명인 중국은 인권단체와 야당, 타이완과 티베트 독립운동, 파룬궁 등과 관련된 사이트와 일부 국제뉴스 사이트를 검열하고 있으며, 웹사이트에 글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50여명이 투옥된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 840만명이 활동 중인 태국은 지난해 쿠데타 발발 이후 BBC·CNN 등 뉴스 사이트를 검열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무려 1000만개의 사이트가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검열을 받고 있다. 인터넷 인구가 30만명에 불과한 미얀마에서는 정부가 인터넷 카페 활동을 5분 단위로 감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 접속 자체가 어려운 쿠바에서는 사회불만적인 용어를 사용할 경우 네티즌에게 경고 메시지가 뜬다. 이번 조사에서 북한은 국가 도메인(.nk)이 사용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인터넷 사용자가 없는 국가로 분류됐다. 검열과 통제 수법도 다양하다. 중국이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봉쇄하거나, 파키스탄이 구글의 블로그 서비스를 차단하는 사례처럼 정기적으로 웹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방법과 ‘검색어 여과’ 같은 첨단 장치가 활용되고 있다. 켄 버먼 미 국무부 기술국장은 “짐바브웨 등 인터넷 후발 국가들이 중국처럼 인터넷 검열이 성행하는 국가로부터 검열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에 대해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행정플러스] 보훈처 “중국내 항일유적지 실사”

    국가보훈처는 5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등 중국 내 항일유적지에 대한 정밀 실사작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훈처 관계자는 “첫 조사 당시 교통사정과 자료 접근의 어려움 등으로 일부 유적지의 위치가 잘못 지정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전문가로 이뤄진 조사단을 현지에 보내 사실관계를 엄밀하게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훈처는 우선 독립운동가와 역사학자 등 관련 전문가 회의를 통해 재조사가 필요한 유적지를 결정한 뒤 6∼8월쯤 실사단을 파견할 계획이다.
  • 경희대 ‘고 최덕휴 교수 기증 작품전’

    경희대(총장 조인원)는 5일부터 오는 29일까지 미술관에서 ‘고 최덕휴 교수 기증 작품전’을 개최한다.1998년 타계한 고 최덕휴 교수는 한국광복군 항일전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자 서양화가로 국전 초대 작가, 국제미술교육협회 이사 및 아시아 회장, 국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유가족의 기증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6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유화 및 수채화 작품 100점이 전시된다.
  • [서울광장] 국경일엔 축제를 열자/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서울광장] 국경일엔 축제를 열자/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우리 국경일은 밝지 않다. 색깔로 치면 회색에 가깝지 않을까. 온 국민이 국가적 경사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인데 축제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3·1절이나 광복절은 더욱 그런 것 같다.36년 동안 일제 치하에 있었다는 자책감과 심리적 억압 탓인지 차분하기만 하다. 그제 3·1절도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기념식을 비롯, 독립유공자·시민사회·지방자치 단체들의 기념행사가 있었지만, 대부분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 삼창을 하고, 행진을 하는 데 그쳤다. 그런 가운데 국경일만 되면 태극기를 게양하는 가정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자탄이 단골 뉴스로 흘러나온다.SBS는 이번에도 8시 뉴스 첫머리에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은 3·1절이 독립운동 기념일이라는 걸 모른다고 보도했다.MBC도 10가구 중 1,2가구만 태극기를 게양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국경일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느는 것이 그들만의 책임일까. 교과서에서 국경일의 의미를 주입식으로만 가르치고, 기념식도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 행사로 치르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에서 7월4일 독립기념일은 각별하다. 전국적으로 기념식과 옛 선조들이 입었던 복장을 한 화려한 퍼레이드, 성대한 불꽃놀이 행사가 펼쳐진다. 가정마다 성조기를 내걸고 친지들과 산과 들로 피크닉을 가거나 파티를 연다. 주한 미군들도 불꽃놀이를 하고 댄스파티를 한다. 그들에게 국경일은 축제의 날이다. 눈으로 보는 행사가 아니라 몸으로 즐기고 느끼면서 의미를 되새기는 축제다. 지난해 미국 시카고대 전국여론조사센터가 34개 민주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국민의 ‘애국심과 자부심’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31위, 일본은 18위였다.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평일인데도 정원이나 현관에 성조기를 꽂아두는 집을 많이 목격한다. 이는 건국 역사가 230년밖에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독립기념일 같은 국경일을 온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꾸민 덕분은 아닐까. 그런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조국의 정체성을 알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이번 3·1절 새벽에도 서울 도심엔 폭주족이 등장했다. 태극기를 몸에 두른 오토바이 행렬이 굉음을 내며 중앙선과 신호를 무시하고, 택시와 충돌 일보 직전에 이르는 아슬아슬한 곡예 주행을 했다. 폭주족들의 최대 행사는 ‘광복절 출정’이다. 지난 광복절에도 3·1절보다 더 많은 폭주족들이 대형 태극기를 몸과 오토바이에 두르고 시내 도로를 무법지대로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는 축제다운 축제가 거의 없다.5월에 대학들이 축제를 열기는 하지만 그들만의 축제일 뿐이다. 해마다 1000여개의 지역 축제가 열리지만 대부분이 상품화 전략에 따른 전시성 행사여서 축제는 없고 관광만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제 우리도 국경일에 축제다운 축제를 열자. 성탄절이나 새해를 맞는 제야의 종 행사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국경일에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젊은이들의 애국심이 엷어진다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자치단체별로 불꽃놀이도 하고 댄스·맥주파티도 열자. 축제의 장이 만들어지면 폭주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단체들이 몰려나와 정치 구호만 외치는 3·1절 행사는 국경일의 의미만 퇴색시킬 뿐이다. 누구나 몸과 가슴으로 즐기면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한바탕 잔치로 만들어 나가자. 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jshwang@seoul.co.kr
  • ‘핍박의 현장’ 축제로 물들다

    제88주년 3·1절을 맞아 서울시와 서대문구가 서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개최한 각종 행사에는 수만명의 시민이 몰려 그 날의 의미를 되새겼다.●기미독립선언서 완성하기 3·1독립만세운동 퍼포먼스, 대형 독립선언서 만들기, 유관순 열사 영정 공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이날 오전부터 가족단위의 시민들로 붐볐다.아이들은 ‘자주독립 대한민국’이라고 붓글씨를 쓰고, 가로 세로 8×2m의 대형 기미독립선언서에 미리 써논 글씨에 색칠을 하며 신기해 했다. 서울 왕십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아빠, 남동생과 함께 역사관을 찾은 전은진(10·마장초 4년)양은 “오늘이 우리나라가 독립만세를 부른 날이래요. 감옥을 봤는데 너무 무서워서 잊혀지지가 않아요. 얼른 가서 태극기 들고 만세를 외칠래요.”하며 마냥 즐거워했다. 그러나 기미독립선언서에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써넣거나, 포토존에 만들어 놓은 독립운동가의 패널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 인기짱 이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가장 인기를 끈 사람은 단연 김구 선생과 유관순 열사였다. 이들 주변에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유관순 열사 ‘역할’을 한 이장미(25모델)씨는 “역사적으로 뜻깊고, 개인적으로는 생일인데 의미있는 역할을 맡게돼 너무 기쁘다.”면서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다독여주실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반면 가장 ‘혼란에 빠진’ 사람은 일본순사 복장을 한 행사요원. 관람객들은 사진을 찍자며 몰려들었지만, 이내 아이들은 “우리를 괴롭힌 나쁜 사람”이라며 돌아섰다. 역사관 정문에서 순사 복장으로 서있던 김대희(26·자영업)씨는 “장난으로 받아들이지만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면서 “한 할머니께서 한참을 쳐다보고는 무엇인가 생각나셨는지 눈물을 흘리실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행사 참가 시민 역대 최고 박경목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역사관팀장은 “오전부터 관람객이 모여들기 시작해 올해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역사관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3만 6000여명이 입장한 것으로 집계됐다.2004년 3·1절에는 3만 5000여명이 다녀갔다. 이어 2005년 1만 5321명,2006년 1만 3633명 등으로 점차 관람객 수가 줄어들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도슨트(안내인)를 맡고 있는 유덕웅(63)씨는 “독도영유권 문제로 역사 의식이 강해져 올해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면서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시민들이 몰리는 3·1절에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할 것”이라면서 “평소에 여유를 가지고 관람하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고 덧붙였다.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1919년 英화가에 비친 한국

    일제때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땠을까. 3·1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 여류화가가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전 ‘푸른 눈에 비친 옛 한국, 엘리자베스 키스전’이 경남 창원시 경남도립미술관에서 2일 개막된다.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는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살다 1915년 여동생 부부와 함께 일본으로 갔다가 1919년 한국을 방문, 우리의 일상을 그렸다. 같은 동양이지만 일본과는 확연히 다른 식민지 한국의 풍경에 매료된 키스는 독립을 갈망하면서 일상을 분주히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진솔함을 주로 표현했다. 농부와 아낙네, 노인, 무인 등 평민과 왕실의 공주와 양반댁 규수, 음악연주자 등 다양한 인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가 한국에서 그린 수채화는 대부분 일본에서 목판화로 다시 제작됐고, 이 작품들을 일본과 미국, 유럽 등에서 순회전시해 당시 한국의 현실과 생활문화, 예의와 풍습 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일해공원 추진 역사 배반행위”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이 국회에 경남 합천군의 일해공원 추진에 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1일 합천군 새천년 생명의 숲에서 열린 ‘3·1독립운동기념행사 및 순국선열 위령제’에 참석한 정 전 의장은 이같이 밝히고 극회 진상 조사에 앞서 당 차원에서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정 전 의장은 “무고한 광주시민을 짓밟은 학살자의 아호를 공원명칭에 붙이는 것은 역사에 대한 배반행위이며,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행위”라며 “정부는 학살자를 기념하는 합천군에 이같은 결정을 철회하고, 국민 앞에 사과토록 촉구하라.”고 요구했다. 새천년 생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운동본부와 전두환(일해)공원 반대 경남대책위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일해공원을 반대하는 합천군민 등 100여명이 참석,3·1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반역사적인 ‘전두환(일해)공원’ 명칭을 철회시키기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합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李통일, 김정일도 만나나

    李통일, 김정일도 만나나

    1일 남북장관급회담 양측 대표단은 하루종일 연쇄접촉을 갖고 공동보도문 합의도출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특히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북측 2인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동하는 등 남북대화의 진전을 위한 걸음을 재촉했다. ●이재정·김영남 회동 관심 집중 당초 이번 회담 일정에 없었던 이 장관의 김 상임위원장 예방은 지난달 27일 평앙에 도착한 남측의 요청에 따라 이날 오전 남북 연락관 접촉을 통해 전격 일정이 합의됐다. 김 상임위원장이 장관급회담 남측 수석대표를 만난 것은 박재규·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 이어 세번째며, 북한 핵실험 이후로는 남측 인사와의 첫 면담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김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2000년 8월 2차 회담때 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이 김 상임위원장에 이어 김 국방위원장을 만났으며,2005년 정동영 당시 장관도 6·15행사때 당국 대표단장으로 평양을 방문, 김 상임위원장과 면담한 뒤 그 다음날 김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인 셈이다. 그러나 양창석 통일부 대변인은 “남측 수석대표가 교체되면 관례적으로 김 상임위원장을 만나왔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장관도 면담 이후 기자브리핑에서 김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장관과 김 상임위원장의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남북관계 정상화 및 6자회담 2·13합의 이행에 따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관측된다. 이 장관은 “양측이 솔직한 입장과 의견을 표명하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인사말에서 “북남이 자주 만나 민족 공동의 염원인 통일 성업을 성취하는 데 이바지하자.”고 강조했다. ●남측,3·1절 첫 단독 행사 남측 대표단은 이날 오전 고려호텔 극장에서 3·1절 88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남측 요청으로 열린 이번 행사는 평양에서 처음 열린 남측 정부의 단독 공식행사로 기록됐다. 이 장관은 기념사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열들의 정신이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가슴에 이어져 그 어느 때보다 뜻깊고 감동적인 날”이라며 “내일까지 좋은 결론을 만들어야 독립선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날 63번째 생일을 맞은 이 장관은 북측으로부터 축하 꽃다발과 함께 미역국 등 깜짝 생일상을 받았다. 양측 대표단은 지난 7개월간 진행된 공사로 새롭게 단장한 옥류관에서 오찬을 한 뒤 오후 5시 모란봉극장에서 국립교향악단 공연을 참관했다. 이어 저녁에는 북측 권호웅 대표단장 주최로 열린 환송만찬에 참석했다. 양측은 이날 밤 실무접촉에서 공동보도문을 최종 조율하고 2일 오전 종결회의에서 이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어 남측 대표단은 오후 3시 비행기로 평양을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공동취재단·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나라 살리려던 사람 죽고 꾀부린 사람만 살아남아”

    “나라 잃은 슬픔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 죽어가면서 옥살이 하면서 나라 살리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고, 꾀부린 사람들만 살아 남았어.”경기도 양평군 용수사에는 3·1 운동에 참여했던 독립투사인 유정(여·104·속명 임엽) 스님이 초고령의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생존해 있다. 유정 스님은 1999년 사찰땅 1만여평을 송두리째 사기당했다며 청와대와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6년여 동안의 억울한 소송사건에 휘말려 마음고생이 가시지 않은 상태지만 그러나 3·1절을 앞두면 모든 것이 숙연해진다고 한다. 유정 스님은 “지금도 일본 소리만 들으면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라면서 “요즘 친구들은 나라 잃은 슬픔을 잘 모른다.”고 젊은이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용수사 주지스님인 유정 스님은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서 자신보다 한 살 많았던 유관순 열사와 함께 죽을 힘을 다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1903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집성촌이 있는 천안에 머물다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사람들이 ‘동천 마당에서 난리났다.’고 그러더라고. 그 때는 거기(아우내)를 동천이라 불렀거든. 가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 내가 그 나이에 무슨 혁명투사, 독립투사였겠어. 아무 것도 모르고 끼게 된 거지.” 유정 스님은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친다.”면서 “일본 사람들 횡포가 말도 못했지. 순사들이 우리한테 장총을 겨누더니 막 쐈어. 죽어나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어. 애 어른 할 것 없이 죄다 쏴 죽였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유정 스님은 스무살 무렵이던 1920년대 중반 첩자로 오인받아 고문을 받은 뒤 산사에서 휴양을 하던 중 승려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어느덧 불가에 귀의한 지 80년을 훌쩍 넘겼고 100세가 넘었지만 아직도 산에서 나물을 캘 정도로 정정하다. 유정 스님은 3·1운동 당시 일본 헌병에게 잡혀가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유관순이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만세삼창을 하는데 가슴쪽 천에는 ‘내 나라 내놔라.’라고 씌어 있었어. 일본 순사들이 ‘주동자다.’그러면서 잡아갔지….” 유정 스님은 올 3·1절에는 서울에 올라가 젊은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다. 한민족운동단체연합과 불교조계종대각사, 독립유공자유족회 등의 주관으로 열리는 ‘3·1문화대제전’에 참석해 젊은 친구들에게 1919년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줄 계획이다. “그 때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은 다들 힘들게 살다 갔어. 백성들도 고쳐야 할 것이 많아. 세상이 못 됐다고 욕만 하면서 뒷짐을 지고 있으면 어떡해. 좋은 세상이 오도록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야지.”양평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일제 제암리학살 은폐 증거 찾아

    |도쿄 이춘규특파원|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일본군 헌병들이 경기도 화성 제암리 양민 23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을 조선주둔군사령부가 철저히 은폐했음을 보여주는 당시 조선군사령관의 일기가 발견됐다. 또 3·1운동을 계기로 일제가 민족운동가,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집요한 회유책을 구사한 것으로 밝혀져 3·1운동을 전후한 일제 식민통치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일기의 주인공은 3·1운동 당시 조선군사령관이었던 우쓰노미야 다로(1861∼1922) 대장이다. 이번에 공개된 사료는 15년분의 일기와 편지 5000통, 서류 2000점 등 모두 7000점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아사히신문이 28일 보도했다.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진 1919년 4월15일 발생한 제암리 사건에 대해 그의 일기는 일본군이 서울 남쪽에서 30여명을 교회에 가둬놓고 학살, 방화했지만 조선주둔군이 발표를 통해 이를 부인했음을 증명하고 있다.4월18일자 일기는 “사실을 사실대로 하고 처분을 하면 간단하겠지만 학살, 방화를 자인하는 것이 돼 제국의 입장에 심대한 불이익이 되기 때문에” 간부회의에서 “저항을 해 살육한 것으로 꾸민 뒤 학살 방화 등은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밤 12시 회의를 끝냈다.”고 적었다. 또 다음날 일기에서는 학살사건에 관여한 일본군 중위에 대해 “진압 방법에 적당하지 않은 점이 있어 30일간의 중근신 처분을 내리기로 결심했다.”고 기록했다. 해당 중위에 대해서는 30일간의 근신처분이 내려졌다. 우쓰노미야는 당초 독립운동에 대해 종래의 ‘무단통치’를 비판하며 조선인들의 “원망과 한탄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이후 ‘문화정치’를 도입하며 집요한 회유공작을 펼쳤으며, 조선인 민족운동가 및 종교지도자, 언론인 등과 만나 정보수집과 의견 교환 등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20년 2월20일,4월9일 등 일기에는 ‘배일파(排日派)’로 비쳐진 조선인들과의 접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일본을 비판하는 언론활동을 했던 민족운동가와 수차례 만나 의견교환을 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아울러 3·1운동이 절정기였던 3월20일 천도교에 대한 회유를 제언, 조선에 부·현(府·縣)제나 ‘자치권’을 부여하는 ‘자치식민지’와 같이할 수밖에 없다고 제안했다는 내용의 육군대신에게 보낸 편지(5월1일)도 함께 공개됐다고 신문은 전했다.사가현립대 강덕상 명예교수(조선근현대사)는 이번 사료에 대해 “3·1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유혈진압사건인 제암리 사건의 은폐 과정과 민족운동가들에 대한 일본의 회유공작 기록이 밝혀지기는 처음으로, 기존 연구에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메워주는 일본근대사의 제1급 사료”라고 평가했다.taein@seoul.co.kr
  • [씨줄날줄] 3·1절과 우쓰노미야/황성기 논설위원

    3·1 독립만세로 점화된 비폭력 저항운동이 조선 강토에서 불같이 번져가던 1919년 4월초. 우쓰노미야 다로(1861∼1922) 조선군사령관은 “군대는 강압수단을 사용해 (조선인들이)두려워서 복종하고 꼼짝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조선통치에 위기감을 느낀 일제의 피비린내 나는 조기 진압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제암리 학살사건은 우쓰노미야의 지시 직후 일어난다.4월15일 일본 군경은 수원 남쪽 제암리 주민 약 30명을 교회에 몰아넣고 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렀다.24명이 숨졌다. 제암리뿐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다.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운동 3개월간 7509명이 숨지고 1만 5961명이 다쳤다고 썼다. 우쓰노미야의 15년치 일기가 발견됐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이 일기의 일부를 보도했다. 일기에는 제암리 사건의 뒤처리에 관한 협의 내용이 등장한다. 학살과 방화를 인정하면 “제국의 입장이 불리하게 되므로 저항을 받아 살륙하게 됐다.”는 날조 경위를 적어놓았다. 제암리사건을 은폐하려던 일제의 비열한 속셈이 88년이 지나서야 드러난 것이다. 참상을 목격한 영국인 선교사 스코필드에 의해 일제의 잔인무도한 살륙이 알려지긴 했지만 일본군 간부의 육성과도 같은 생생한 기록은 처음이다. 권태억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제 고위층의 속내와 식민현실을 파악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우쓰노미야는 육군사관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보병 제1연대장,7사단장을 거쳐 대장으로 예편한 골수 군인이다. 그런 그의 장남이 일본의 반전·반핵·군축운동의 대부가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쓰노미야 도쿠마(1906∼2000)는 중의원 10선, 참의원 2선의 거물 정치인이었다. 와다 하루키는 회고록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때 “리버럴한 아시아주의자인 우쓰노미야씨는 친구로서 김씨를 돕는 데 적극 움직였다.”고 적고 있다.85년에는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기도 했다. 자민당 내 좌파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한국, 북한, 중국과의 우호관계에도 앞장섰다. 일제가 침략해 깊은 상처를 낸 나라들이다. 아버지가 진 빚을 갚겠다고 한 것일까. 한반도에 얽힌 우쓰노미야 부자를 3·1절 아침 생각해본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행정플러스] 미공개 일제항거 기록물 일반공개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3·1절’을 맞아 우리 선조들이 일제에 항거한 내용을 담은 기록물을 정부대전청사내 국가기록전시관에서 일반에 공개한다고 28일 밝혔다. 전시관은 일제 침탈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작성된 심훈 선생의 시 ‘그날이 오면’, 안중근 의사의 다짐, 김구 선생이 활동했던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사무실의 축소판 조형물 등이 체험공간 형식으로 꾸며졌다.또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조선물산장려운동’ 및 ‘우리말지키기운동’의 일환으로 편찬된 당시 ‘우리말 큰사전’도 확인할 수 있다.이와 함께 기록원은 3·1절 기념식에서 정부가 수집한 일제 항거 기록물 가운데 일반에 공개하지 않은 기록물을 동영상으로 제작, 공개할 예정이다.
  • 3·1절 日극우파 시선과 아픈 역사 조명

    3·1절, 우리 역사의 아픔을 돌아보는 다양한 특집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MBC는 이날 오전 10시50분 ‘극우파 후쿠모토의 약속’을 방송한다. 극우단체의 논리와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생각을 대비, 날로 우경화하는 일본의 현실을 분석한다. 일본의 한 극우단체 간부인 후쿠모토 요시다카는 지난해 9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라 협박장과 함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보냈다. 협박장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납치 문제 등을 비난하며 ‘천벌’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작진은 이 사건을 우경화하는 일본의 현주소를 생생히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 후쿠모토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KBS는 오후 10시 1TV를 통해 특집 다큐멘터리 ‘잊혀진 독립운동-단파방송 수신사건’을 방송한다. 단파방송 수신사건은 일제 통치하에 있던 1942년 12월 단파방송 수신혐의로 일본 헌병대에 의해 350여명이 체포되고 그 중 75명이 실형을 받고 6명이 옥사한 사건이다. 신문은 모두 폐간되고 방송마저 엄격히 통제된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지사들은 외국의 소식을 들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경성방송국의 한 기술직 사원에 의해 제작된 낡은 단파수신기를 통해 전해진 해외 애국지사들의 활약과 일본의 패전소식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탄로나면서 애국지사들과 방송인들은 고문과 실형 등 수난을 당했다. 제작진은 “단파방송 수신사건은 일제의 의도대로 철저히 은폐돼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방송인들의 항일의거”라며 “역사적 재조명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베트남전 기록 되찾는다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파병했던 한국군 관련 기록물을 직접 현지 조사를 거쳐 찾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특히 올해부터 베트남을 비롯, 러시아와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한국 관련 비공개 기록물 수집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오는 10월 베트남 국립문서보존소와 ‘기록물 교류협력 협정’을 체결한다고 27일 밝혔다. 조윤명 국가기록원장은 “협정이 체결되면 베트남 현지에 있는 한국 관련 기록물을 수집·조사할 수 있다.”면서 “특히 한국군 파병이 이뤄진 베트남전 관련 기록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인 탓에 그동안 우리나라와 기록물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년 동안 5만여명의 한국군이 파병됐지만, 우리나라가 확보하고 있는 현지 자료는 전무하다시피하다. 조 원장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희생은 물론, 가해자로서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자료의 파급력은 클 것”이라면서 “균형적, 체계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국가기록원은 지난 2005년부터 해외에 흩어져 있는 한국 관련 기록물 수집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말까지 37만 5000여점의 자료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국가기록원은 올해부터 국내 연구기관이 접근하기 어려운 러시아·중국·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의 비공개 기록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러시아의 경우 러시아국립문서보존소가 소장하고 있는 비공개 기록, 중국에서는 현지에서 이뤄진 독립운동 및 한인 관련 기록 등이 주요 대상이다. 조 원장은 “올 한 해 동안 구한말 이후 최근까지 생산된 한국 관련 기록물 12만여점을 확보하는 게 목표”라면서 “해외에 산재해 있는 한국 관련 기록물 현황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도 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서재필박사 동상 워싱턴에

    미국 워싱턴DC 한국대사관(대사 이태식) 부지에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의 동상 건립이 추진된다.25일(현지시간) 권태면 워싱턴 총영사와 워싱턴 한인회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대사관 정문 앞 잔디밭에 서 박사 동상을 세우기로 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건립 기금 10만달러는 한국 정부 예산과 동포들의 모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권 총영사는 “워싱턴 시내 300여개 동상 가운데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보성의 서 박사 동상을 복제해 들여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워싱턴 연합뉴스
  • 애국지사에까지 ‘악플’ 화살

    ‘윤봉길 의사가 테러리스트라고?’네티즌들의 악성 댓글(악플)이 위험수위를 넘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연예인들에 대해 쏟아지던 악플의 화살이 이번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애국 지사인 매헌(梅軒) 윤봉길(1908∼1932) 의사를 겨냥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26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 따르면 1932년 4월 ‘훙커우 의거’ 직후 일본 군경에 끌려가는 윤 의사의 사진이 진위논란에 휩싸이면서 한 출판사의 국사 교과서에서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25일부터 각 포털 사이트와 뉴스 게시판 등에는 윤 의사를 비하하는 글이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자신을 희생하며 나라를 구한 애국지사를 겨냥한 악플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다. 게시판에는 “요즘으로 치면 그저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한데 무슨 애국자냐?”,“당시 중국에서만 그를 ‘의사’로 치켜세웠을 뿐 전 세계는 그저 테러리스트로밖에 여기지 않았다.”,“봉건적 조선왕조에 충성하던 사람에게 무슨 애국자냐?”는 등의 댓글이 적지 않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이러한 악플러(악플을 일삼는 네티즌)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인터넷 세계에 아예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전쟁에 책임이 있는 전범만을 겨냥한 ‘의거’와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테러’도 구별하지 못하냐?”,“우리가 이 정도라도 살고 있는 것이 다 윤 의사를 비롯한 열사들의 희생 덕분인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가진 네티즌을 보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등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한 네티즌은 “자신을 희생해 나라를 구한 위인들까지도 댓글 조회수를 높이는 데 이용하려는 일부 악플러들의 생각없는 행동은 우려의 수준을 넘어 매국노와 같은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또 다른 네티즌은 “악플 화면을 통째로 다운받아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겠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에서 사회심리학을 강의하는 차운아(31) 박사는 “그동안 인터넷 실명제 등 사이버 공간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다보니 악플러들에게 ‘사이버공간은 상대방을 늘 일탈이 허용된다.’라는 규범이 성립된 상태”면서 “이들은 윤 의사에 대한 명확한 가치판단 없이 그저 ‘어떻게든 내 자신이 이슈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에 큰 희열을 느끼게 된다.”고 분석했다.서울대 국사학과 권태억 교수는 “한 인물을 놓고 개인의 평가가 엇갈릴 수는 있지만 윤 의사를 수백명의 무고한 미국인을 희생시킨 오사마 빈 라덴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한국인으로서의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한 관계자는 “고인에 대한 악플의 경우 가족 등 법정 대리인이 고소를 할 경우 사자 명예훼손에 대해 수사할 수 있다.”면서 “김형은, 유니, 정다빈 등 고인에 대한 악플 자정노력이 거센 가운데 또 다시 고인에 대한 악플논란이 이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류지영기자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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