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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밀한 역사왜곡… 후손인 우리가 수치심 느껴야”

    “치밀한 역사왜곡… 후손인 우리가 수치심 느껴야”

    “후손인 우리가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니냐.” 한나라당 노철래 의원은 동북공정의 현장과 마주한 기분을 이렇게 밝혔다. 노 의원뿐 아니라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고 29명의 국회의원들은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온 반응은 “듣던 것보다 훨씬 치밀하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다” 지난 4일 이른 오전, 의원들은 백두산 장백폭포의 멋진 경관에 한껏 들떴다가 일순 표정이 어두워졌다. 입구에 놓여진 간이지도 표지판 때문이었다. 백두산 봉우리들을 그려놓고 양 옆에 압록강과 투먼(圖們)강으로 영토 경계를 표시해 놓았다. 국사학을 전공한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이 “간도 분쟁을 피하기 위해 우리 영토를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1712년 조선과 청나라가 세운 백두산 정계비에는 우리 영토의 경계로 표시된 ‘토문강(土門江)’을 우리나라는 송화강의 발원지로 보고 있다.”면서 “그런데 중국은 이를 의도적으로 ‘투먼강’으로 해석해 간도 일대가 조선령이 된다는 역사적 해석을 미리 막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은 “그동안 동북공정이 진행된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진복 의원은 “중국의 이토록 체계적인 접근에 더욱 경악했다.”면서 “이러한 상황이 더 오래가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후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노 의원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을 겪고 정치적으로 격동기를 경험하면서 동북 3성에 대한 관심을 가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너무 소홀했다.”면서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한 데 대해 후손으로서 부끄러움을 갖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中, 독립운동사 부각 ‘부담’ 비단 고대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중국은 큰 틀에서 우리의 민족성과 역사에 대한 흔적이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5일 청산리대첩 승전 90주년을 맞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이린(海林)시 싼스(山市)진에 있는 김좌진 장군 순국지에 개관한 ‘백야광장’도 정작 중국 땅에서는 제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다. 국가보훈처에서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에 예산을 지원해 조성했지만, 정작 중국 당국은 성역화 사업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다. 그래서 ‘한·중 우의광장’이라고 이름을 짓고 마을에 광장을 조성해 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역시 하이린시에 있는 김좌진장군 기념관(2001년 개관)도 중국에서는 ‘한·중우의공원’일 뿐이다. 이러한 기념 사업도 대부분 개인이 추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김을동 의원은 “중국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유공자를 기리는 사업에 대해 시각 자체가 너무 날카로워 이를 이겨내는 데 한계점이 많았다.”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나마 뒷전이었다.”고 토로했다. 김 의원은 중국땅에서 기념사업들을 진행하기 위해 살던 집을 팔면서 사비를 털었다. 아들인 배우 송일국씨가 힘을 보태는 정도다. 이경재 의원은 “역사를 기리는 일을 이렇게 개인의 힘으로 힘겹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면서 “그러나 당분간은 기념사업회나 역사재단 등에 지원을 더 하면서 중국에 보다 유연하게 다가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갈등 피하려 ‘대접’ 스스로 포기 6일 오전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서 의원들은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가 당시 이토 히로부미 통감을 저격한 거사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5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도착한 현장이었다. 그런데 의원들의 등장에 중국 공안들은 당황하며 출입을 막았다. 의원들의 몸을 막으며 강하게 제지했다. 다시 역 밖으로 나가서 표를 사서 들어오라는 등 갖가지 핑계를 댔다. 한참의 승강이 끝에 결국 4~5명씩 짝을 지어 조용히 현장을 보기로 하고서야 의원들은 발을 뗄 수 있었다. 이번 일정이 국회의원 신분으로 방문한 게 아니라 철저히 민간인, 일반 해외 여행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 3월에도 김을동 의원이 주최해 15명의 의원이 하얼빈역을 방문했지만 그때에는 아예 역 안으로도 발을 들여놓을 수조차 없었다. 겨우 눈으로 보게 된 거사 현장이라고 해봤자 플랫폼 바닥 안 의사가 서 있던 곳에 삼각형,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을 당한 곳에 사각형으로 각각 표시를 해둔 것이 전부였다. 어디에도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라는 글자는 없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당초 표지판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일본의 견제로 중국에서 부정적 의사를 밝혀 도형으로 표시만 할 수 있게 승인해 준 것”이라면서 “중국에서 우리의 역사현장을 보존하는 것에 계속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정치인이나 정부에서 외교적 채널을 통해 양국의 양해를 얻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중·일 3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동북 3성이 현재는 외교적으로 첨예한 지역이 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애국지사 제대로 평가해야” 특히 일본이 얽혀 있는 일제시대를 비롯한 근대사의 현장은 더욱 민감한 부분이다. 그런 만큼 더욱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게 의원들의 지적이다. 이진복 의원은 앞서 개인 일정으로 중국 연변(延邊) 용정(龍井)에 있는 시인 윤동주 선생의 생가와 그가 다녔던 용정중학교 등을 둘러보고 왔다. 이 의원은 “정부가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인지, 하지 않는 건지 너무 심각하게 방치돼 있었다.”고 비판했다. 김광림 의원도 “그 당시 재산과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위인들을 우리 스스로가 너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바탕으로 역사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하얼빈·하이린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자살특공대 된 조선인의 이야기

    자살특공대 된 조선인의 이야기

    동아시아 반도의 땅에 불어닥친 변화의 20세기 초.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시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참혹한 절망의 시기였으며, 누군가는 회의와 냉소로 몸부림치던 폐허의 시간이었다. 무너진 반상 질서의 틈바구니는 백정 집안의 협잡꾼에게는 한없는 기회였다. 돈으로 뭐든지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음을 직감하고 온갖 비굴함으로 무장한 채 친일파로 생존하고, 군국주의자로 빌붙으며 부를 늘려간다. 그리고 족보도 사들이고, 몰락한 양반 집안의 항일독립운동가 여식을 아내로 삼는다. 거기에서 나온 자식 중 얼굴 번듯하고 공부 잘하는 첫째 아들은 ‘주의자’로 커서 감옥소를 거쳐 뒤늦게 ‘부끄러운 집안 내력’에 절망하며 전향해 친일의 길을 전전한다. 둘째 아들은 열일곱 살에 일찌감치 ‘모든 것이 다 귀찮고 허무하고 재미없는’ 지경을 체험하는, 난잡하고 허랑방탕한 파락호로 큰다. 그리고 뒤늦은 순정과 사랑을 가르쳐준 한 여인을 위해, 형을 대신해 가미가제 특공대에 지원한다. 김별아(41)의 새 장편소설 ‘가미가제 독고다이’(해냄 펴냄)는 너무나도 섬세한 감성을 지녀 타락하며 염세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가미가제 특공대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조선인 조종사의 유장한 이야기다. 또한 일제 강점기 역사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한계를 펼치는 이야기다. 비루할지언정 끓어오르는 삶에 대한 욕망과 끝끝내 피하고 싶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함께 지닌 우리네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그동안 김별아는 베스트셀러 ‘미실’을 비롯해 ‘논개’, ‘백범’, ‘열애’ 등 역사 속 실존 인물과 실재 사건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그에 비해 ‘가미가제’는 시대와 개인의 관계에 집중하며 보편성을 획득한 인물을 창조해 역사의 실체 속으로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갔다. 일본 규슈 최남단 가고시마의 ‘지란특공평화회관’ 기록에도 조선인 조종사들의 이름이 남아 있다. 원래 부대 명칭은 ‘신푸(神風) 도쿠베쓰-고게키타이’. 줄임말로 ‘신푸 도고다이’였으나 미군의 일본인 2세들이 ‘가미가제’라 부르며 더욱 유명해진 이 부대의 자살특공대원 희생자 숫자는 조선인은 물론, 전체적으로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가미가제’에는 잔머리의 대가 ‘아키히로’가 나와 공분의 대상이 된다. 또한 다쓰시로(서정주의 창씨개명 이름)는 자살 공격을 칭송하는 시 ‘오장 마쓰이 송가’를 써서 천박한 친일파 아버지마저 핏줄의 단절을 걱정하게 한다. 황군의 병사가 될 것을 재촉하는 ‘조선문인보국회’의 마쓰무라 고이치(시인 주요한의 창씨개명 이름), 최재서, 노천명 등의 이름도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작품 곳곳에서 빛나는 해학적이며 눙치는 문장들은 처절한 비극조차도 희극처럼 읽을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짐짓 심각해지는 것보다 시대의 비극성과 역설적인 상황이 더욱 도드라진다. 마지막 결론까지도 유쾌하다. 김별아의 힘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20) 젊은이가 보는 양국관계 해법

    [한·일 100년 대기획] (20) 젊은이가 보는 양국관계 해법

    ■韓-과거사 청산이 먼저 우리 대학생들은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과거 청산’을 꼽았다. 양국의 뒤얽힌 과거사 문제가 정리되지 않고서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믿음의 관계로 발돋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경(25·여·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씨는 ‘일본통’을 자처한다. 어려서부터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했고, 현지 여행도 자주 다녔다. 중학교 때부터는 일본 학생과 펜팔을 계속해 오면서 속을 다 털어놓을 정도로 친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김씨는 “민감한 문제이지만 ‘과거사 청산’이란 화두를 일본 친구들에게 꺼낸 적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때마다 결론은 ‘일본에서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친구들은 과거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아예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면서 “윗세대와 아랫세대 모두 과거에 대해 반성하는 의식 없이 무작정 덮어두고 넘어가려 한다거나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한·일관계를 계속 후퇴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생각하면 늘 불편 송하원(24·성공회대 사회학과 4학년)씨는 “일본의 과오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보상이라는 역사의 수순이 완료되지 않아 우리가 일본을 생각하면 늘 불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씨는 “매듭짓지 못한 과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내리지 못한다.”면서 “그 때문에 일본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폄훼하는데 이는 한·일 양국의 손해”라고 덧붙였다. 정다혜(23·여·연세대 총학생회장·사학과 4학년)씨는 “한·일관계 문제의 근원에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서로를 믿기 위해선 역사적 사건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반성,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사회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런 것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친일파 잘살고 독립운동가 후손 시달려 젊은이들은 우리의 과거사 문제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환(22·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경제학과 3학년)씨는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안 돼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친일파 후손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받은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송씨도 “친일파들이 버젓이 국가적 위인으로 숭상받고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잘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잘못을 지은 것처럼 가난에 시달리면서 조국땅에도 못 들어오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씨는 “양국의 상호 발전과 관계개선을 위해서라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씨도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갈등의 원인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서로 평가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와 연대해 日사과 받아야 아울러 일본의 사과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연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일본의 역사의식이 잘못됐다고 감정적으로 교역을 끊기보다는 일제 강점기의 만행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인류적으로도 참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에게 피해를 본 다른 나라들과 이념과 정치체제는 달라도 함께 연대해 일본의 죄과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조건 일본이나 일본인을 배척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무조건 일본 사람이 싫다고 해서는 일본인을 설득할 수도 없고 우리땅을 불합리하게 불법적으로 강점한 일본인과 형식적으로 같은 모습을 띨 수 있다.”고 경계했다. ●양국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 부족 오히려 양국의 문화·사회적 교류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씨는 “양국에 대한 이해도 더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친구들은 한국의 아이돌 가수, 영화배우 등 연예인에게만 관심이 있지 한국문화나 한국인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국 연예인을 매우 좋아한다고 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우리 학생들도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일본 연예인, 만화를 좋아하는게 대부분”이라면서 “문화를 음악, 만화, 공연 같은 작은 범주가 아니라 생활습관과 생각하는 방식 등에까지 서로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효섭·윤샘이나·김양진기자 newworld@seoul.co.kr ■日-서로를 인정해줘야 일본 젊은이들이 지난 18일 한국 상점들이 몰려 있는 도쿄 신주쿠구 신오쿠보 도리(거리)에 모였다. 직장인과 대학원생들인 이들은 평소에도 한국에 관심을 가진 터라 새로운 100년을 맞는 한·일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앞으로 일본을 짊어져 나갈 이들이 보는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해법을 들어봤다. 몇 달만에 신오쿠보 도리에 왔다는 다야 모리(27·일본어 예비학교 교사)는 “일본의 유명 번화가에서 한국 식당이 많아져 일본 사람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며 “해가 거듭될수록 가까워지는 한·일관계를 이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한국인 김주임(29)씨와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고바야시 가즈토(27)는 “몇 년 새 일본 남성과 한국 여성 커플뿐만 아니라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이 결혼하는 사례를 주위에서 자주 보고 있다.”며 “한국이 그만큼 경제·문화적으로 일본과 대등해진 게 아니냐.”고 반문하며 최근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 기업의 선전을 꺼냈다. ●한국기업 장점 진지한 연구 시작 그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이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 5개사를 합친 매출액보다 많은 것에 일본 젊은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30년 전에 일본이 강했던 산업이 잇따라 한국에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강한 게 결단력이 빠르고 국가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관·민체제가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일본에서도 한국의 장점을 각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일본 중·고등학교 예비교사 교사인 와타누키 아이미(26·여)는 “최근 외무성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제3세계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국기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일본 기업도 좀 더 위기감을 갖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한국기업의 최근 활약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일본선 한국어, 한국선 일본어 교육을 그는 “앞으로 일본과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서로를 필요로 할 텐데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며 “일본은 중학교 때부터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에서도 좀더 일본어 교육을 늘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한번 다녀온 적이 있다는 후지마쓰 겐스케(24·도쿄외대 대학원생)는 양 국민 간의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을 잘 모를 때는 그들의 엄격한 상하관계에 무척 답답한 느낌을 가졌다.”면서 “하지만 같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들과 같이 술도 마시면서 대화를 자주 하다 보니 유교문화의 장점이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공동 역사교과서 만드는 일 중요 물류회사에 다니는 미야타 다케히토(27)는 “일본인이 한·일 간의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며 “일본과 한국의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서로를 객관적으로 아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에 두 번 갔는데 정말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며 “거리는 가까운데 서로 동떨어진 교육을 통해 양국을 먼나라로 만드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가진다.”고 전했다. 예비 교사로서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다야는 “얼마전에 NHK가 일본과 한국 간의 역사에 대해 방송했는데 과거처럼 일본이 한국보다 우수하다는 시각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방송해 일본 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며 “한국에서도 그런 방송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류의 바탕은 한국의 도전정신 고바야시는 “두 나라 국민 간에 서로를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객관적인 사실도 안 보이고 역사적으로도 서로 겉돌 수밖에 없다.”며 양 국민 간의 진지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인이 한국을 이해하는 데 한류의 열풍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방신기, 빅뱅에 이어 최근에는 카라, 티아라, 소녀시대 등 여성 그룹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평가한 그는 “일본 연예인들은 일본말만 하지만 한국 그룹은 한국말뿐만 아니라 일본어, 영어까지 배워 아시아를 비롯해 해외진출에 나서고 있다.”며 일본도 연예계까지 퍼진 한국의 도전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서울 구청장 새꿈 새구정] 박겸수 강북구청장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시행 목표”

    [서울 구청장 새꿈 새구정] 박겸수 강북구청장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시행 목표”

    약속시간에 맞추느라 부랴부랴 달려온 기자에게 구청장이 대뜸 땀을 좀 식히고 인터뷰를 시작하자고 배려한다. 박겸수(50) 서울 강북구청장은 1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글서글한 눈매에 솔직한 말투로 “찾아오느라 힘들었죠.”라고 말하고 “그렇잖아도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이름을 강북구청역과 함께 표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민망해하는 상대를 보듬었다. 그는 ‘사람 대하기를 하늘처럼 하라.’는 뜻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생활철학이 몸에 뱄으니 부담 갖지 말라며 웃었다. “구청에 와서도 구민이 주인이 되는 행정, 구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행정을 펼치겠다는 각오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구민이 주인이 되는 행정 펼칠 것” 그가 8년 전부터 꿈꿔온,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친환경 무상급식 시행.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의 완성이자 평등교육의 시작입니다. 내년 초·중학교에 전면 실시하고 2012년에는 고등학교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준비기구를 만들고 무상급식을 위한 조례도 제정할 것입니다.” 일부 지방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는 곳도 있는데 자치구 재정이 넉넉해서 밀어붙이는 건 아닐 거라고 말했다. 강북구도 마찬가지다. 부자동네인 강남 같은 곳은 사실 천천히 해도 되지만 서민이 사는 동네는 불가항력적인 소원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생활복지에 있어서만큼은 혜택이 많아야 구민들이 떠나지 않고 정 붙이고 오래 살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서울시가 예산편성을 할 때도 단순히 인구수에 비례한 편성보다는 생활환경이 취약한 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 예산을 우선 고려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가장 큰 문제인 예산확보를 위해 교육청, 시와 정책 협의를 통해 국비·시비지원을 받아내겠다.”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주민 참여형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한다. 개발이익이 서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설명회를 갖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재산권 행사를 재대로 할 수 있게 도울 계획이다. 이를테면 민간 건설업체 대신 주민과 서울 SH공사가 함께하는 공영개발이다. 박 구청장은 “재건축한다고 하면 서민들이 쫓겨날 거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요. 넓은 평수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도금도 못내고 결국 깡통을 차는 신세가 된다.”고 한탄했다. 북한산 주변 고도제한 완화도 반드시 해낼 작정이다. 같은 고도제한 구역이었는데 도로 하나를 경계로 어느 곳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어떤 곳은 아예 제한에 묶이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고도제한 해제를 위한 입법청원도 불사할 계획이며 주민 의견을 모아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조망권 침해 등을 이유로 고도제한 완화가 성사되지않을 경우에는 20년 동안 재산권 침해를 받아온 주민들을 위해 재산세 감면 등 실질적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내년에 구청장 직속 추진위원회도 구성한다. ●풀뿌리 도서관 등 문화공간 확층 집에서 10분 거리의 ‘풀뿌리도서관’ 20개를 만들 계획이다. 열악한 문화 공간 확충을 위해서다. 신축보다는 기존 마을문고나 구청사를 활용할 계획이다. 3·1운동의 시발지인 봉황각을 비롯해 손병희, 이준 열사 묘역 등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가 서린 우이동~4·19묘지~구민회관을 잇는 L자형 문화관광웰빙 벨트도 조성한다. 여기에는 한국현대사박물관이 들어서고 북한산 올레길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그는 또 한국기원에 들어가 프로바둑기사를 꿈꾸던 아들이 중도에 꿈을 포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녀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질계발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재능이나 소질을 키우지 못하는 저소득층 자녀를 선발해 꾸준히 지원하는 장학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는 구청장이 되어 받는 월급의 일부를 매달 기부한다. 좌우명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처럼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따를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박겸수 강북구청장 광주 출신으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시의원으로 활동했으며 고(故) 김대중 대통령후보 강북갑 선대본부장, 민주당 중앙당 기획조정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민주당 서울시당 공교육정상화특별위원장, 사단법인 다산연구소 기획위원 등을 맡고 있다. 취임사에서 밝혔듯 그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복지구청장’을 꿈꾸고 있다.
  • 경주 최부잣집 엿보세요

    서울시는 17∼18일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리는 ‘종가 이야기’ 행사에서 경주 최씨 사성공파 최의기 선생 종손이 ‘경주 최부잣집’의 전통을 소개한다고 16일 밝혔다. 행사에는 ‘명문 종가이야기’의 저자 이연자씨도 함께한다. 행사 프로그램에는 종가 사진과 종부의 요리법이 포함돼 있고, 종손 최염(77)씨와 종부 강희숙(72)씨가 일반인과 대화의 시간도 가진다. ‘경주 최부잣집’은 최치원의 17세손으로 병자호란 당시 영웅인 최진립 장군이 기틀을 세웠다. 최국선(1631∼1682) 대에 만석꾼의 반열에 올랐고, 그의 둘째 아들 최의기(1653∼1722)가 부와 가문의 전통을 확립했다. 특히 최국선의 10세 손인 최준은 전 재산을 독립운동과 교육 사업에 투자해 오늘날 영남대학의 전신을 일구기도 했다. ‘최부잣집’이 지금도 세인의 존경을 받는 데는 나눔과 절제의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만석 이상 재산을 모으면 사회에 환원하고, 흉년기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내용의 최부잣집 가훈은 지금도 많은 깨우침을 준다. ‘최부잣집’이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 전형으로 꼽히는 것도 이런 종가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씨줄날줄] 친일파의 은사금(恩賜金) /최광숙 논설위원

    독립운동가 장태수(張泰秀·1841~1910)는 1910년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 “개와 말도 주인의 은덕을 생각하는데, 역적 신하들은 어찌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팔 수 있는가.”라며 통곡했다. 그는 일제가 회유책으로 권한 은사금(恩賜)을 거부했다. 24일간 식음을 전폐하다 결국 그해 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장태수가 비난한 역적들은 일왕으로부터 거액의 은사금을 받아 호사롭게 살았다. 일왕은 친일파 귀족들이 한일합방에 협조한 대가로 은사금 3000만엔을 하사했다고 한다. 최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은사금을 가장 많이 받은 친일 인사는 병합조약 체결에 직접 참여한 궁내부 대신 이재면으로 83만엔(현재 화폐가치로 약 166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순종 장인인 후작 윤택영은 50만 4000엔(100억 8000만원), 매국노 백작 이완용은 15만엔(30억원), 을사오적 송병준은 10만엔(20억원)을 각각 받았다. 은사금의 시혜를 받은 의외의 인물도 있는데 박영효다. 그는 태극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개화사상의 중심 인물로 28만엔(56억원)을 받았다. 은사금으로 친일파들은 전국의 토지를 사들였다. 이완용만 보더라도 일제 초기 소유한 땅이 여의도의 1.9배나 되는 1573만㎡에 이르렀다. 1925년 경성 최대의 현금 부호인 그는 갖고 있는 현금만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600억원에 이를 정도였다. 은사금은 친일파 귀족 외에도 효자 및 효부, 홀아비와 과부, 노인, 고아, 정신병자의 구제금 등으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민심 수습용으로 복지사업에도 은사금을 뿌린 셈이다. 은사금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일왕과 관련된 단어이다 보니 일본 귀족층 등에서 한정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도쿄 근교의 우거진 숲을 다니다 보면 은사림(恩賜林)을 볼 수 있는데 일왕이 내려준 돈으로 숲을 조성해 붙여진 이름이다. 올해는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다. 민족정기 회복과 과거사 청산을 위해 친일파들의 재산을 국가가 환수할 수 있도록 특별법이 시행된 지도 벌써 5년째다. 지난해 기준으로 친일파 77명의 소유이던 여의도 면적의 70%에 달하는 토지 554만㎡를 국가로 귀속시켰다. 하지만 그 후손들은 재산을 되찾으려는 소송을 계속 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 하지만 친일파 후손들은 다른 것 같다. ‘못난 조상도 다 내 복(福)’이라고 우기는 것 같아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부고]

    ●김유진(전 국회의원)씨 모친상 14일 서대문 적십자병원, 발인 16일 오전 10시 (02)2002-8477 ●이상록(나래나노텍 부장)상주(매거진플러스 퀸 광고팀장)씨 부친상 14일 고대 안암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30분 (02)923-4442 ●양광수(전 유림상사 전무)광웅(사업)윤모(MBC플러스미디어 방송이사)씨 모친상 14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 (02)2650-2751 ●유재만(이라랑명품관 대표이사)씨 부친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3410-6914 ●송호분(한국수력원자력 부장)씨 부친상 김복희(서울 경수초 교사)씨 시부상 이갑우(르호봇홀딩스 회장)씨 장인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 (02)3010-2631 ●조재형(사업)씨 모친상 김영천(서울시립대 교수)조경목(재료연구소장·부산대 교수)김형섭(피러스 부사장)씨 장모상 14일 서울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5시 (02)2072-2022 ●김종인(HOG 명예회장·전 영진약품공업 대표이사 사장)씨 별세 일수(GVG 대표이사 부회장)씨 부친상 김한수(리릭오페라오브시카고 성악가)씨 장인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7시 (02)3410-6903 ●민병민(전 경남기업 부사장)씨 별세 혜경(파디아코리아 관리약사)씨 부친상 강시호(숙명여대 교수)김준(고려대 〃)씨 장인상 14일 고대 안암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30분 (02)923-4442 ●나상인(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기획실장)씨 별세 광선(수호시스템)씨 부친상 14일 광주 조선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11시 (062)231-8902 ●박신진(우산감리교회 목사)경진(국방기술품질원 선임연구원)혜경(장자중 교사)미경(영남대 교육학과 교수)씨 부친상 이명근(LIG건설 이사)김명배(대구가톨릭대 교수)씨 장인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후 1시30분 (02)3010-2231
  • [열린세상] ‘옌볜’이 아니라 ‘연변’이었다/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열린세상] ‘옌볜’이 아니라 ‘연변’이었다/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얼마 전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연길, 용정, 도문, 왕청 지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동북부는 예전 우리 조상이 누비던 땅이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우리 민족이 여전히 살고 있기에 호기심도 많았습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먹고 살기 위해, 또는 이주를 강요당해 살기 시작한 땅이었지만 그곳은 독립운동을 하던 본거지였고, 수많은 애국지사를 길러 낸 땅이었기에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퍽이나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쓰는 말과 글을 관심 있게 살펴봤습니다. 연변자치주에 달린 영업용 간판, 교통 이정표, 각종 안내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표기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간판에 글을 두 줄로 쓸 때에는 위에 한글을 적고 아랫줄에 한자로 적습니다. 그리고 한 줄로 적을 때에는 왼쪽에 한글을 적고 그 다음에 한자어를 적습니다. 그러니까 각종 표시물을 적을 때에는 단연 한글이 우선입니다. 제가 묵었던 호텔의 큰 돌에도 ‘국제호텔+國際飯店’이라고 적혔고 아래에 영어 이름이 쓰였습니다. 우리나라 호텔이 이름을 표시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경이롭지 않습니까? 한자에 대응하여 한글을 쓸 때에도 중국어 발음과 상관없이 여지없이 우리 소리로 명쾌히 적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한글로 ‘연변대학 구강병원’이라고 적고 있지 ‘옌볜대학 구강병원’이라고 적지 않더군요. 우리나라에서 모택동이라 할 것인지 마오쩌둥이라 적을 것인지 오락가락하고 있다 해도 연변에서는 태도가 단호하고 분명했습니다. 한자로 된 이름이나 지명은 우리글로 적을 때에는 우리가 읽는 소리로 적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어쨌건 현지 조선족이 ‘연변’이라고 쓰고 있는데도 우리가 ‘옌볜’이라고 쓰는 것은 곤란하겠습니다. 현지에서 우리 글로 쓰인 책을 몇 권 샀습니다. 우리 글로 쓰인 책이어서 별 불편 없이 읽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글을 쓰는 민족의 장점이겠지요. 그런데 책들에서는 몇 가지 우리와 다른 점도 보입니다.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첫소리에 ㄴ, ㄹ이 나올 때 ㅇ, ㄴ으로 바꿔 적는 것인데 우리는 ‘여자, 이해, 내일, 임시정부’라 적지만 연변에서는 ‘녀자, 리해, 래일, 림시정부’등과 같이 적더군요. 두음법칙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상당히 어색합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뜻을 생각하면 원래 정해진 소리로 적는 게 더 적절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소리가 글자 처음에 나오더라도 소리를 내는 데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류’씨와 같이 일부 성씨에서 원래 소리를 쓰는 것을 허용하고 있어서 영 어색한 것도 아닙니다. 표기의 혼선을 피하려면 원래 소리를 지키는 게 옳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책에서 보면 띄어쓰기는 우리와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곳 책에서는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격살한것’은 ‘력사적사건’이었다.”와 같이 붙여 쓰더군요. 이외에도 ‘폭발한후, 알아볼수, 책을 사는데’와 같이 붙여 씁니다. 연변자치주에서 쓰는 국문법을 따로 확인하지 않아 제대로 쓴 것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띄어쓰기 기준이 우리와 상당히 다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어미변화나 사이시옷 사용법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의 땅에 살면서도 우리말과 글을 우선하고 우리식 소리로 적는 것을 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의 거리 모습이며 신문, 방송들을 생각하니 낯이 뜨겁습니다. 한글의 표준은 어느 세계에서든 널리 통하도록 하나로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우리말과 글의 표준을 정할 때에는 연변의 몇 가지를 참고하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좌진 장군은 동족 손에 죽고, 구한말 권력자들은 나라를 위해 싸우기는커녕 자기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바람에 백성은 만주 벌판에 내몰렸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독립운동도, 선진화도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깁니다. 연변자치주 조선족의 삶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 [미술플러스]

    ●이정웅·이재효 2인전 새달 8일까지 붓을 극사실적으로 그리는 이정웅과 나무, 못, 돌 등을 활용해 독창적인 추상 조각 작업을 하는 이재효의 2인전이 8월8일까지 서울 용산 비컨갤러리에서 열린다. 평면과 입체의 다른 장르지만 간결미와 세련미가 돋보이는 두 중견 작가의 최신작 20여점을 ‘예술가의 힘’이란 주제로 한곳에 모았다. (02)567-1652. ●정관 김복진 생애·작품 집대성 책 출간 일제 강점기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를 이룬 작가이자 미술비평가, 문예운동가로 이름 높은 정관 김복진(1901~1940)의 생애와 작품을 집대성한 책이 나왔다. 윤범모 경원대 교수가 30년 작업 끝에 완성한 ‘김복진 연구’(동국대출판부)는 청년예술가 김복진의 진면목과 진보적 민족독립운동가로서의 실상을 꼼꼼히 다뤘다. 김복진은 1920년대 카프의 실질적 지도자이자 1940년 5월 제19회 조선미전에서 ‘소년’이란 조소 작품으로 조선총독상을 받고 ‘추천작가’ 칭호를 얻었으나 39세 나이에 요절했다.
  • 中 김좌진장군 순국지에 ‘백야광장’ 개관

    中 김좌진장군 순국지에 ‘백야광장’ 개관

    여야 국회의원 29명이 5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이린(海林)시에 모였다. 이곳 산시(山市)진에 위치한 백야 김좌진 장군 순국지의 ‘백야광장’(한중우의광장)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청산리대첩 승전 90주념을 기념하며 김좌진 장군의 손녀인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의원을 비롯한 29명의 의원이 참배단을 꾸렸다. 역대 최대 규모로 단장은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이 맡았다. 그러나 의원들의 중국 방문은 이례적인 절차로 진행됐다. 일반적으로 해외를 방문할 때 사용하는 관용 여권 대신 일반 여권을 이용, 민간인 신분으로 중국 땅을 밟았다. 중국 정부에서 의원들의 대규모 독립운동 관련 역사탐방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중국 측에 등록한 광장의 정식 명칭도 ‘한중우의광장’이다. 같은 하이린시에 위치한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관 역시 ‘한중우의공원’으로 명칭을 바꿔야만 했다. 김을동 의원은 “중국에서 김좌진 장군에 대한 성역화 작업에 부담을 가져 한국과 중국의 우의를 다지는 방식으로 접근을 달리해 그나마 호응을 얻어 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날 개관식 인사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을 세계 제일의 강국으로 만드는 것”이라면서 “나라가 강하고 약함은 비단 경제력의 문제뿐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보통 국외 현충시설을 설치할 때에는 현지 정부로부터 부지를 제공받고 보훈처에서 국고를 보조하는 형식이지만, 백야광장은 중국 쪽으로부터 아무것도 제공받지 못했다.”면서 “백야광장이 국외 현충시설 가운데 최대 규모지만 중국과의 외교적 문제 등으로 인해 우리 손으로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하이린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동료 정치인 詩로 말하다

    동료 정치인 詩로 말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앞으로 김성순 의원의 눈빛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김 의원이 요즘 동료 의원들을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원총회처럼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으면 김 의원은 동료들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뚫어지게 쳐다본다. 의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시상(詩想)을 떠올리기 위해서다. ●민주 김성순의원 11월 시집 발간 이미 4권의 시집을 내 ‘중견 시인’의 반열에 오른 김 의원이 특별한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제로 시를 쓴다. ‘정세균’, ‘박지원’, ‘이미경’ 등이 시 제목이다. 11월 출간이 목표인 시집 이름은 ‘은하수로 흐르는 별’이다. 귀한 동료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말고 행복한 미래를 향해 함께 가길 바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미 54명의 시를 썼다. 현재 민주당 의원은 84명이지만 시집에는 90명 이상이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장상, 김민석 등 ‘금배지’가 없는 최고위원이나 송영길, 이시종 등 ‘금배지’를 반납하고 광역단체장이 된 이들까지 포함된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처럼 친분이 두터운 다른 당 정치인들도 주인공이 된다. 김성순 본인에 대해서도 쓸 생각이다. 김 의원은 당내 ‘비주류 중의 비주류’다. 4대강 사업 반대를 누구보다 강하게 외치지만, 무상급식 당론에는 반대하는 소신파다. 올해 칠순으로 국회에서 손꼽히는 시니어 의원이다.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젊은 의원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다. ●“의원들 장점만 끄집어냈죠” 이런 그가 어떻게 40대 의원들까지 시로 평가할 수 있을까. 김 의원은 “후배 의원들의 경력을 공부하고, 그들의 얼굴과 눈빛, 행동을 보며 시를 구상한다.”면서 “장점만 끄집어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전남대 ‘삼민투 위원장’으로 광주에서 6월 항쟁을 이끈 강기정 의원을 보며 ‘학도병’ 이미지를 떠올리고,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을 ‘독립군’과 오버랩시키는 것이다. “최재성 의원이 젊은 나이에도 구두닦이 등 안 해 본 일 없다는 걸 알았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의원들이 이렇게 많은 줄 새삼 느껴요. 그에 비하면 저는 참 편하게 살았답니다.” 그는 젊은 날 대부분을 송파구청에서 보냈고, 송파구를 한국의 대표 ‘복지 지자체’로 가꿨다. 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다니며 소신껏 일했던 그의 삶도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조용하기만 했던 시니어 의원이 별안간 내놓은 시집에 동료 의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김봉영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김봉영 선생 별세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 김봉영 선생이 19일 오후 별세했다. 94세. 1916년 황해도 은율군에서 출생해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인사들을 도왔다. 지하 공작 활동을 하던 중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섰다. 김구 선생의 지휘 아래 만주와 상하이, 일본 등을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유족으로 이상금 여사와 딸 경애씨가 있다. 빈소는 경기도 광명성애병원, 발인은 21일 오전 6시30분. 장지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4묘역. (02)2689-9152.
  •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중랑 ‘사색의 길’, ‘장미터널’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중랑 ‘사색의 길’, ‘장미터널’

    서울과 경기 구리시를 연결하고 있는 망우리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우측에 숲이 무성한 공원묘지를 만난다. 묘역을 끼고 있어 왠지 을씨년스러울 것만 같지만 막상 공원에 들어서면 그런 편견은 오간데 없어진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울창한 숲에 가려진 무덤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녹음 짙은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1933년부터 1977년까지 40년간 2만 8000여기(基)의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꾸준한 이장으로 1만여기만 망우산 자락 곳곳에 흩어져 있다. 중랑구가 1997~98년 순환도로 5.2㎞를 정비해 만든 산책로 ‘사색의 길’은 지금 초록세상이다. 더위를 피해, 뜨거운 태양을 피해 홀로 산책해도 전혀 외롭지 않은 길이다. 산책길에 박인환(1926~56) 시인의 묘소를 만나 ‘목마와 숙녀’를 음미할 수 있다. 또 중간중간에 방정환(1899~1931), 지석영(1855~1935), 계용묵(1904~61), 이중섭(1916~56) 선생 등 독립운동가나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들의 연보비가 찬란한 스펙트럼의 빛줄기 속에 가르침을 준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엄숙한 송가로, 안식과 평화를 주는 희망의 노래로 다가오기도 한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연보비에서 발길이 멈춘다. ‘한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서, 이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망우리공원은 지난해 10월 서울시설관리공단에서 서울의 아름다운 가을 산책길 명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꽃향기에 흠뻑 취하고 싶다면 발길을 중랑천으로 돌리는 것도 좋다. 묵동교에서 장안교까지 5.2㎞에 이르는 구간에 백만송이 장미가 터널을 만들고 있다. ‘사색의 길’이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산책로라면 이 ‘장미터널’은 ‘너’와 함께 걷는 길이다. 디카는 필수 지참물. 터널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20여종 4500그루가 향기를 뿜는 장미정원이 반기고, 터널 중간중간에는 포토존이 기다린다. 절정을 막 지나 안타깝게 꽃잎들이 바래고 있지만 무려 5만여그루에 이르는 사계절장미, 넝쿨장미가 곳곳에 아직도 자태를 뽐낸다. 지하철 7호선 먹골역에 내려 장미터널을 먼저 만난 후 사색의 길을 찾는 이라면 이화디지털여고 골목길에 즐비한 분식집에서 허기를 채워도 좋다. 홍이네분식(439-5831) 등 대부분 음식점은 4인 가족이 가서 떡볶이, 튀김, 순대 등 골고루 시켜도 만원을 안 넘긴다. 학창시절 주전부리하던 추억의 골목길에서 아련한 향수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너를 위해… 이 한마디에 안중근역 맡았죠”

    “너를 위해… 이 한마디에 안중근역 맡았죠”

    “겨레와 나라가 뭐기에 가족들을 왜 다 버렸냐는 아들 준생의 물음에 안중근이 ‘너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어요. 그 대사 한마디에 꽂혀서 하게 됐습니다.”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 송일국이 안중근 의사를 다룬 연극 ‘나는 너다’에 출연한다. 뮤지컬 ‘영웅’이 영웅으로서 안중근을 조명한다면, 연극은 인간 안중근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송일국이 안중근과 그의 둘째 아들 준생 1인 2역을 맡았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안 의사의 가족 얘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 의사의 장남 분도는 7살 때 죽었다. 일제의 독살설이 나돌았다. 둘째 준생은 더 비극적이다. 1939년 총독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어렵게 살던 준생을 불러들여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행동은 잘못이었다.”고 사과하도록 했다. 배신자 낙인이 찍힌 것. 광복 직후 김구 선생이 중국 정부에 아비 이름을 더럽힌 준생을 죽여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준생은 1952년 사망할 때까지 ‘호부견자’(虎父犬子·호랑이 아비 밑에 태어난 개 같은 자식)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살아온 송일국이 ‘너를 위해서’라는 대사에 꽂힌 이유다. 지난 9일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송일국은 “극 중 대사에는 준생을 친일파, 배신자라 부르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나 역시, 그리고 누구라도 그 시대를 살았다면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저는 그렇지 않았지만, 독립운동 때문에 되레 집안은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고, 그런 얘기들을 쭉 듣고 보면서 자랐다.”면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떤 꼬리표가 달라붙을지 뻔히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준생을 이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안 의사가 더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게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송일국 개인으로서는 연극 무대 첫 도전이다. 첫 도전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을 넘어서게 한 것도 작품의 이런 성격 덕분이다. 연출을 맡은 윤석화의 협박(?)도 통했다. 윤석화는 “처음 출연을 제안했을 때 연극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얘기했지만, 네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니 이런 역할을 맡을 책임도 있다고 설득했다.”면서 “가난한 연극판의 적은 개런티에도 흔쾌히 출연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너다’는 새달 2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배우 박정자가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을 맡고, 한명구·배해선 등이 출연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한국 학자가 본 한국전쟁]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한국 학자가 본 한국전쟁]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전 세계적으로 한국전쟁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6·25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60년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6·25와 직접 연관이 있는 옛 소련의 비밀문서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사건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우방국 전문가는 물론 러시아와 중국 전문가도 초청했다. 공정하게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려는 태도때문에 국제적인 공신력을 높이고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안함 사건 조사처럼 6·25도 이제 스탈린과 김일성에 관한 자료가 완전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천안함 사고원인 조사에서 보인 국제공조와 권위 있는 결론을 내릴수 있다. 이제까지 6·25에 관한 연구는 국내자료나 서방측의 자료에 의존해 왔다. 공정성이 결여돼 있다. 6·25는 공산진영의 종주국 소련과 스탈린이 직접 관련돼 무기를 지원하고, 공군과 군사고문관을 파견하여 작전을 총괄했다. 게다가 마오쩌둥의 해방군까지 끌어들였던 것이다. 러시아연방 외무성 문서 보관소 자료와 크렘린 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 이들 문서가 빠짐없이 공개돼야 지금까지 한국이 주장해 왔던 북한의 남침설이 확정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와 다른 주장을 펴왔다. 그 주장이 무엇이든 한국은 참이냐 거짓이냐를 가리려 하지도 않고 무조건 거부해 왔다. 6·25는 스탈린의 승인과 마오쩌둥의 지원약속이 없었다면 발발이 불가능했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러시아 측 자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도 1994년 러시아 초대 대통령 옐친이 한국정부에 전달한 6·25 스탈린 관련문서가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많은 진실이 일반인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못한 채 의문으로 남아있다. 천안함 조사의 핵심이 공정성에 있다면 6·25는 역사적 진실에 있다. 진실이 올바로 밝혀지지 않거나 왜곡될 때 혼란이 야기되고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에 6·25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을 통해 러시아 측 자료가 일반독자에게 공개되는 것은 큰 의미 있는 일이다. 광복 이후 일부 역사학자들은 민족주의 사관을 내세우면서 과거 식민지 사관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자신들은 일본 측이나 미국 측 사료에 의존하는 한계를 보였다. 스스로의 연구역량을 저하시켜 민족사관을 정립하지 못한 모순을 반복했다. 그러므로 이제 6·25는 물론 해방 이후 미소 냉전시기 및 남북관계와 기타 국제관계를 밝히는데도 러시아 사료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6·25 발생에 대한 책임이 북한 측에만 있다는 주장이 옳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6·25가 단순히 김일성의 요구로 스탈린이 승인을 하고 모택동의 후원약속으로 발생하게 된 것은 아닌 것이다. 멀리는 일제가 1910년 한국을 합병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시작하던 초기에 마침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그 영향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 극동지방을 무대로 한 항일애국단체와 중국 상해 및 동북지방에서 활동하던 항일애국단체들이 서로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주의진영으로 분열돼 투쟁하기 시작했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남북을 미소가 분할해 군정을 실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 진영은 서울로, 공산주의 진영은 평양으로 집결했다. 미소 냉전이 시작되면서 서울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신탁통치문제를 놓고 충돌하기 시작한 뿌리가 있다. 결국 광복이 되면서 남북으로 귀국한 양대 세력이 각각 미소 군정의 비호 하에 정부를 구성하고 김일성은 스탈린의 공산주의 확장정책에 힘을 얻고 마오쩌둥이 중국 본토장악에 고무돼 미군이 한국에서 철군을 시작하자 통일의 기회로 보고 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러시아 측의 자료없이는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는 물론 6·25에 대한 진실을 가려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 송일국 “일제시대 친일파, 시대적 아픔 이해해”

    송일국 “일제시대 친일파, 시대적 아픔 이해해”

    배우 송일국이 “일제 시대 때 힘에 무릎을 꿇은 이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배우 송일국은 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열린 연극 ‘나는 너다’(윤석화 연출)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시대적 힘에 무릎을 꿇은 이들을 이해한다.”고 전했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의 삶과 그의 아들 안준생을 재해석해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송일국은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중생 1인2역을 맡았다. 그는 “안중근보다 안중생이 제게 더 어울린다.”고 운을 뗐다. 송일국은 “안중생을 친일파 배신자 변절자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생각 안 한다.”며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누구나 그랬을 거다. 나도 아마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랬을 것”이라며 시대적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어 “일제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의거한 영웅들의 가족들이 당시 시대에서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 역시 이해한다.”고 언급했다. 송일국은 독립운동가의 백야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로서 안중근역을 맡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할아버지가 떳떳해서 현재를 자랑스럽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송일국의 이같은 발언 사실을 접한 네티즌들은 “본인 배역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서인진 모르겠지만 너무 경솔한 말이다.”, “장군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냐?”며 강하게 분노하고 있다. 한편 연극 ‘나는 너다’는 안중근의 영웅적인 모습이 아닌 그의 삶과 거사의 의미,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되짚어 보기 위해 제작됐다. 다음달 27일부터 8월 29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 사진=현성준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6월의 독립운동가 김익상선생-6월 호국인물 윤영준 해병소장

    6월의 독립운동가 김익상선생-6월 호국인물 윤영준 해병소장

    전쟁기념관은 31일 6·25전쟁 당시 도솔산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윤영준(오른쪽·1924~1984) 해병 소장을 6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태어난 윤 소장은 1941년 만주 제3고급중학교를 졸업한 뒤 1946년 2월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에 입대, 이듬해 6월 소위로 임관했다. 소령이던 1951년 1월 해병대로 전입해 6월 해병 제1연대 2대대장으로 도솔산지구 전투에 참가했다. 17일간의 혈전 끝에 국군이 도솔산지구를 완전히 탈환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국가보훈처는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 처단을 시도하는 등 독립투쟁을 하다 20여년의 옥고를 치른 김익상(왼쪽·1895~?)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은 비행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갔다가 베이징에서 김원봉 의열단장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게 된다. 일제 군부의 거물 다나카 기이치가 상하이(上海)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독립운동가와 함께 거사를 계획해 실행했지만 사살하는데 실패했다. 의거가 실패한 후 피신했던 선생은 중국 순경에게 붙잡혀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 수감됐다가 나가사키공소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감형으로 20여년의 옥고를 치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일본인 고등경찰에 다시 연행됐으며 이 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내고장 인재 산실]울산 애니원고등학교

    [내고장 인재 산실]울산 애니원고등학교

    우리나라 영상문화산업을 이끌 차세대 인재들이 울산애니원고에서 창작의 꽃망울을 싹틔우고 있다. 울산애니원고는 학생수 291명으로 2003년 개교했다. 만화창착·애니메이션·컴퓨터게임개발과를 두고 있다. 2000년 문을 연 한국애니메이션고에 이어 전국 두번째 영상문화 전문계고교다. ●타지역 학생 70%… 전국적 관심 애니원고는 울산 30%, 타 지역 70%의 학생들로 구성될 만큼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전교생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창작활동에 열정을 쏟는다. 다른 전문계고교와 달리 인문 60%, 전공 40%의 교과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 인문학이 돼야 창작도 가능하다.’는 학교장의 교육정책에서 비롯됐다. 학교는 또 학생의 영상문화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실습과 창작 등 실기분야도 강화하고 있다. 만화창작과 컴퓨터게임개발, 애니메이션 등 3개 분야에는 4명의 전문산학 겸임교사를 두었다. 이 학교는 봄·가을 소풍이 없다. 대신 콘서트 관람, 등반대회, 미술관 관람, 유니버셜 스튜디오 방문, 전문가와 함께 하는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송만윤 교장은 “학생들의 창작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문과목의 기초를 다지는 게 중요하다.”면서 “기술분야에만 치중할 경우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않아 인문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매년 작품전을 열어 1인 1작품 이상의 애니메이션을 제작·발표해야 한다. 전공분야에서는 이미 대학 2~3학년 수준에 이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졸업생 80% 이상이 국내·외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나머지 학생들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나 게임개발업체에 스카우트되고 있다. ●실력, 대학 2~3학년 수준 졸업생 12명은 일본 교토조형대학, 영국 노팅엄대학, 미국 아카데미오브아트유니버시티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에 진학했다. 최성현(3년)군은 “매년 1~2편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선배들처럼 미국이나 일본 대학에서 공부를 한 뒤 월트디즈니사에 입사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울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 의사를 주제로 한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3D 애니메이션) 작품 제작에 들어갔다. 앞으로 9편의 애니메이션을 학교 이름으로 제작·발표할 예정이다. 송 교장은 “학생들의 작품 가운데 캐릭터 등 일부는 지적재산으로 보호해야 할 만큼 아주 뛰어나다.”면서 “우리 학생들이 영상문화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20일 TV 하이라이트]

    ●KBS 특선<초월의 비장(秘藏) 진관사 태극기>(KBS1 밤 12시40분) 2009년 5월, 진관사 칠성각 해체 복원 작업 중 불단 밑에서 비밀스러운 물건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했던 태극기와 독립운동계 신문 16점이었다. 이것들이 왜 여기에 90년 동안 묻혀 있었는지, 누가 왜 이곳에 숨겨둔 것인지 역사 속으로 다가가 본다. ●엄마도 예쁘다(KBS2 오전 9시20분) 정수와 우진은 갤러리 업무 차 1박 2일 지방 출장을 가게 되는데, 두 사람의 하룻밤이 불안한 제니는 출장지를 따라가려다 명숙에게 한소리 듣는다. 출장지에서 일과 데이트를 병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정수와 우진을 지켜보는 또 한 사람의 시선. 그리고 정수와 우진의 출장지에도 어느덧 밤이 찾아오는데…. ●볼수록 애교만점(MBC 오후 7시45분) 하룡이 없는 동안 집안을 지켜온 거북이 용용이가 사체로 발견이 되고, 그 현장에 있던 옥숙은 하룡에게 용용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고 만다. 하지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옥숙,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져든다. 유나와 헤어질 것을 결심한 준이는 희순이와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때 아닌 춤바람이 벌어졌다. 요상한 복장에 내 마음대로 막춤 무아지경에 빠진 별난 막춤 아저씨를 만나본다. 망사 스타킹에, 알록달록 오색 아이섀도, 화려한 염색머리를 한 아주머니. 홍어집을 운영하면서 좀 더 튀고 반짝반짝한 옷만 골라 입게 되었다는 이순오씨도 만나본다.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자동차, 선박 등의 산업용 제품에 들어가는 고무 부품을 생산하는 부산의 한 공장. 생고무에 화공 약품을 배합하여 고무판을 만든 뒤, 고온·고압의 프레스에 넣어 다양한 부품을 찍어낸다. 프레스기의 온도와 제품 성형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야만 좋은 고무 부품이 나오기 때문에 작업자들은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토크 황금마이크(OBS 오후 11시) 고영욱은 녹화에서 이별을 주제로 한 토크 중에 “유학을 떠난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 선물을 들고 무작정 미국 뉴욕으로 찾아 갔지만 선물을 전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에게 이미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던 것. 고영욱은 “어떤 선물을 가져갔느냐.”는 질문에 “개 밥그릇”이라고 답해 출연진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8) 청주 우암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8) 청주 우암산

    ●소처럼 착하고 순한 청주의 진산 5월 중순 우암산(353m)은 연초록빛으로 부풀어 올랐다. 청주의 진산 우암산은 도심에 자리 잡은 산치고 뜻밖에 숲이 좋은 산이다. 우점종인 상수리나무는 쭉쭉 하늘을 찌르고 소나무, 전나무, 낙엽송, 산초나무, 팽나무 등이 어울려 풍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산 서쪽 벽화 마을로 유명한 수동 수암골과 연결한 코스는 아이들과 함께 숲 공부를 겸한 가벼운 산행으로 좋다. ●전국 명소로 떠오른 수암골 벽화 마을 청주대 입구에서 가까운 우암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면 남북 방향으로 길게 몸을 누인 우암산이 눈에 들어온다. 부드러운 산세가 도시를 품는 형상이라 포근해 보인다. 우암산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곧 수암골이다. ‘카인과 아벨 촬영지’를 알리는 간판이 군데군데 붙어 길 안내를 한다. 언덕에 올라서면 수암골의 입구인 삼충상회. 여기서부터 담벼락을 따라 ‘숨바꼭질’, ‘꽃을 사랑하는 호랑이’ 등의 그림들이 나타난다. 골목 앞에 그려진 마을 지도도 예쁘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자 ‘먹보’, ‘감나무집’, ‘울보 영지’ 등이 나타나는데, 꼭 동화 속 마을에 들어선 기분이다. 세 아이가 함박웃음을 짓는 ‘웃는 아이 삼남매’ 앞에 서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애들이 우리 마을의 유일한 아이들이에요.” 사진 찍는 필자에게 이영순(68) 할머니가 다가와 일러준다. 이 할머니가 수암골에 들어온 것이 벌써 45년여 전이다. 미원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4남매를 낳아 모두 출가시켰다고 한다. “전쟁 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이 마을이 만들어졌어요. 흙벽돌을 찍어 방 두 칸, 부엌 한 칸을 만들어 살았지요.” 세월이 흐르며 쇠락한 수암골 달동네는 2007년에 획기적인 변화를 맞는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이홍원 화백을 비롯한 충북 민예총 회원들과 청주대, 서원대 학생들이 ‘추억의 골목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를 그린 것이다. 덕분에 ‘카인과 아벨’ TV 드라마도 이곳에서 촬영해 더욱 유명세를 탔다. ●삼일공원 들머리로 우암산 산행 “우리 마을이 인심 하나는 좋지. 또 놀러 와요.” 할머니의 넉넉한 미소를 뒤로하고 마을을 빠져나오면 우암산 순환도로를 만난다. 그 길을 따르면 청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여기서 크게 기지개를 켜고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삼일공원이다.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이 지방 출신인 손병희, 신석구, 권병덕 등 5인의 동상에 인사를 올리고, 본격적으로 우암산 산행을 시작한다. 초입의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갑자기 울창한 숲이 펼쳐지고 알록달록 철쭉이 피어 화사하다. 온갖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한동안 상수리나무 터널을 오르면 능선에 올라붙는다. 휘파람이 절로 나는 순한 능선에서는 나무들을 주의 깊게 보자. 팽나무, 상수리나무, 청미래덩굴, 때죽나무…. 나무들의 간단한 특징이 적힌 안내판이 붙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걷기 좋다. 열심히 나무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방송국 송신탑에 이르고, 이곳에서 시내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삭막해 보이는 빽빽한 빌딩을 바라보면, 시내 가까이 이렇게 숲이 우거진 산이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송신탑을 지나면 ‘우암골 자연테마학습 공원’이 나온다. 능선에서 나무들과 눈을 맞췄다면 이곳에서는 풀 공부하기에 좋다. ●나무와 풀 공부하기 좋은 숲 “이게 우산나물이야. 잎이 꼭 우산을 닮았지.” “하하~ 정말 우산 같네. 얘들은 비 와도 우산 필요 없겠다.” 마침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풀 공부에 한창이다. 길섶에는 꿩고비, 비비추, 하늘매발톱, 산비장이, 벌개미취, 돌단풍 등이 가득하다. 학습 공원을 지나면 ‘숲속 교실’이 나오는데, 우암산을 통틀어 가장 숲이 좋은 곳이다. 상수리나무와 낙엽송들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미끈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천천히 나무와 길을 음미하며 오르면 체육 시설이 들어선 삼거리. 여기서 오른쪽으로 300m쯤 가면 우암산 정상이다. 하산은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지점에서 청주대 방향을 따른다. 그 길을 30분쯤 내려오면 청주대 예술대학이 나오면서 짧지만 알찬 산행이 마무리된다. 깔깔거리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계절의 여왕 5월과 잘 어울린다. 산길 가이드 수암골을 들머리로 삼일공원, 우암산 정상을 거쳐 청주대 예술대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약 6㎞, 2시간 30분쯤 걸린다. 수암골은 우암초등학교 뒤편으로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가는 길과 맛집 서울에서는 동서울터미널과 남부터미널에서 약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북청주행 버스를 탄다. 북부터미널에 내리면 청주대가 지척이고, 5분 거리의 우암초등학교를 찾아 수암골로 들어간다. 청주 시내에서 수암골로 가려면 방아다리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하산 지점인 청주대 후문 쪽은 파전의 명소다. 그중 삼미파전(043-259-9496)은 가격이 저렴하면서 양이 풍부하다. 파전과 오징어볶음 5000원. 북청주터미널 앞의 청주왕호두과자도 별미다. (043)224-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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