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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맞서 지킨 독립史, 세상 빛 보다

    일제 맞서 지킨 독립史, 세상 빛 보다

    독립운동가 희산 김승학 선생의 증손자 김병기씨가 10일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이배용)에서 열린 독립운동 관련 자료 기탁식에서 ‘삼의사 국민장 행사요령’을 비롯해 ‘봉오동전투도’, ‘순국의사명부초’, ‘한국독립운동혈사재료 초안’, ‘광복군 국내 제2지대장 위임장’ 등을 기탁했다. 이 중 ‘봉오동전투도’는 봉오동전투에 참가한 박승길 선생이 작성한 것으로 해방 후 처음 공개됐다. 봉오동 마을을 둘러싼 사방의 산줄기에 의군부, 홍범도부대, 독군부, 신민부 등이 어떻게 배치돼 일본군과 싸웠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또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일본에서 유해를 모셔온 삼의사(三義士)의 국민장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수 있는 ‘삼의사 국민장 행사요령’도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김승학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학무국장,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사장 발행인, 임시정부 주만 육군참의부 참의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김병기씨는 “할아버지가 투옥됐을 당시 일제의 집요한 추궁에도 끝까지 지킨 자료”라면서 “독립운동사 연구에 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배용 원장은 “삼의사 국민장 행사요령 등은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귀한 자료”라면서 “독립운동사의 지평을 넓히고 후손들이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단독] [생각나눔] “50년 독립운동… 증손까지 보상을” “국가유공자는 자녀까지만 주는데…”

    [단독] [생각나눔] “50년 독립운동… 증손까지 보상을” “국가유공자는 자녀까지만 주는데…”

    “제 고조할아버지가 그 유명한 남강 선생입니다. 우리나라가 제일 어려울 때 가진 재산 다 털어서 오산학교 세웠던…. 그게 1907년이니까 100년도 넘었네요.” 이기대(61)씨의 목소리엔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은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명 중 한 명이자 1만 3000여명 독립유공자 중 단 30명만 추서받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후손인 이씨는 국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관련 법이 보상 및 지원 대상 유족의 범위를 ‘독립유공자의 손자·손녀까지’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가장 아래 후손인 남강 선생의 손자, 즉 이씨의 할아버지는 이미 50여년 전인 1960년대 초에 별세했다. 1961년 국가보훈처의 전신인 군사원호청이 세워진 이후인 1965년부터 독립유공자 지원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남강 선생의 후손들은 사실상 보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셈이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보상 내용을 담은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유족의 범위를 손자·손녀까지로 제한해 후손들에 대한 예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훈처는 ‘독립운동 기간’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년)을 기점으로 1945년 8월 14일까지 50년으로 본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경우 현재는 거의 증손 혹은 고손까지 대(代)가 내려온 상황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임예환 선생의 증손자 임종선(55)씨도 후손 지원이 끊긴 사례다. 임씨는 “198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보상이 뚝 끊겼다”면서 “한창 나라가 힘들 때는 힘들다고 보상을 못 받았고 지금은 자격이 안 돼 못 받는다”고 말했다. 민족대표 33인유족회에 따르면 현재 손자녀로서 보상을 받고 있는 민족대표의 후손은 6~7명에 불과하다.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3년 유족 범위를 증손자녀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 내에서 계류 중이다. 다른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은 국가유공자의 유족 범위를 자녀로 한정하고 있는데, 독립유공자의 경우 이미 ‘예외적’으로 손자녀까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 인정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유족 지원은 본인이 생존했다고 볼 때 부양해야 할 가족에 대한 것인데 통상 이는 손자녀까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국가유공자 유족의 범위를 최대 손자까지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증손자녀까지 유족 범위를 확대할 경우 수급 대상자가 급증할 수 있고 재정 소요가 커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제기도 나온다. 실제 홍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증손자녀가 유족에 포함될 경우 2014~2018년 추가적으로 48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됐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단독] [광복 70주년] 여성 독립운동가 260여명 인명사전 11월 출간

    [단독] [광복 70주년] 여성 독립운동가 260여명 인명사전 11월 출간

    광복 70주년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 260여명의 생애와 업적을 집대성한 인명사전이 발간된다.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 248명 외에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 여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지사 등이 포함된다.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오는 11월 ‘여성독립운동가 인명사전’을 출간한다고 9일 밝혔다. 이 사전에는 정부에서 공인한 독립유공 서훈자 248명을 포함해 총 260여명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수록될 예정이다. 기존에 136명이 다뤄진 ‘여성독립유공자’(김승일, 1998년)가 발간된 적은 있지만, 이번 인명사전은 표제 인물의 수나 방대한 내용 등 측면에서 완전히 새롭게 쓰여진다. 기존 서훈자 외의 인물 중에서는 현재까지 7명의 등재가 확정됐다. 항일 무장투쟁의 본산인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자 우당 선생의 부인으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할머니인 이은숙(1888~1979) 여사, 재봉틀로 직접 태극기를 만들어 3·1운동을 지원했던 김예진 목사의 부인 한도신(1895~1986) 여사, 상하이 임시정부 비서장을 지낸 차리석 선생의 부인 홍매영(1913~1979) 여사 등이다. 광주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임진실(당시 20세) 지사, 충남 천안에서 유관순 열사보다 열흘 먼저 만세운동을 이끈 황금순(당시 18세) 지사 등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여성들도 포함됐다. 화가 나혜석(1896~1948) 지사나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비서로 활동했던 이화림(1906~1996) 지사처럼 이름은 알려져 있었지만 서훈을 받지 못한 여성들도 이름을 올린다. 사업회 측은 “나 지사의 경우 부친과 남편의 친일 행적 때문에 ‘친일’ 딱지가 붙었지만 실제로는 만주에서 일제에 쫓기는 우국지사들을 숨겨 주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여야 의원 자전거 국토순례 출발

    여야 의원 자전거 국토순례 출발

    여야 의원들이 9일 광주 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8·15 자전거 국토순례단’ 출정식을 마친 뒤 주먹을 불끈 쥔 채 결의를 다지고 있다. 왼쪽부터 문병호·임내현·권은희·박혜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윤장현 광주시장, 장병완·신정훈 새정치연합 의원. 광주 연합뉴스
  • 무궁화 큰잔치 14일 독립기념관서 열려

    ‘광복 70년 기념 나라꽃 무궁화 큰잔치’가 14~16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다. 올해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무궁화 알리기에 헌신한 한서 남궁억 선생의 작품과 무궁화 콘텐츠 등을 통해 우리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자료가 전시된다. 14일 개막에 앞서 10일부터 1300여 그루의 무궁화 우수분화 및 무궁화 콘텐츠(시화전·그림·공예품)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무궁화 우수분화 품평회에서는 국민이 현장에서 직접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단독] [광복 70주년] “대한민국은 어머니를 알지 못합니다”

    [단독] [광복 70주년] “대한민국은 어머니를 알지 못합니다”

    “백범 선생이 제 어머니에게 ‘독립운동하는 사람을 돕는 것도 독립운동’이라면서 아버지와의 결혼을 중매하셨대요. 그 말에 홀몸으로 이국 땅에 와 있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셨고 절 낳으셨지요.” 오래전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는 아들의 얼굴에도 주름이 깊게 패어 있다. 9일 서울신문과 만난 차영조(71)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비서장을 지냈던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 홍매영(1913~1979) 여사는 남편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오는 11월 발간될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의 ‘여성독립운동가 인명사전’에 등재될 예정이다. 차씨가 태어난 이듬해 일제가 패망했지만 동암 선생은 1945년 9월 광복 24일 만에 과로로 생을 마감했다. 이듬해 4월 고국으로 돌아온 홍 여사는 서울 충무로 등지의 노점에서 양담배를 몰래 팔아 생계를 꾸려야 했다. 차씨는 “부모님께 죄인 같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선열들은 처자식 다 버리고 목숨 내놓고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광복 70주년이 됐지만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요. 국가보훈처에서 ‘한국독립당(1930년쯤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만든 정당) 당원’이라고 적힌 어머니 신분증만 가지고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없다는데, 집에서 바깥사람 뒷바라지만 하던 부녀자한테 어떤 증빙 자료가 있을까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광복 70주년 태극기 플래시몹...탑골공원

    광복 70주년 태극기 플래시몹...탑골공원

    10일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참가 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단독] [광복 70주년] “폭탄 던지고 손가락 자르고… 항일투쟁엔 여자가 더 치열했다”

    [단독] [광복 70주년] “폭탄 던지고 손가락 자르고… 항일투쟁엔 여자가 더 치열했다”

    “그때는 남자, 여자라는 게 없었지. 나라 찾는 게 한시가 급한데, 그런 거 따질 여유가 어딨어. 그때는 남자보다 더 용감한 여자도 얼마나 많았는데.” 오희옥(89) 지사는 지난 7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보훈복지타운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 지사는 국가보훈처가 인정한 여성 독립유공자 248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4명 중 한 명이다. 1939년 중국 류저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한국광복군의 전신)에서 활동했다. 할아버지인 오인수 선생은 경기 용인의 의병장, 아버지 오광선 선생은 독립군 장군이었다. 항일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외손녀이자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비서를 지낸 민필호 선생의 차녀인 민영주(94·여) 지사, 박기은(미국 체류) 지사, 유순희 지사 등도 생존해 있지만 3명 모두 고령으로 병석에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오 지사와 민 지사의 아들 김홍규(69)씨를 통해 항일 여성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집에서 만난 김씨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나오던 시대이긴 했지만 나라를 잃은 비상시국에 남녀가 어디 있었겠느냐”며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로 여성들의 참여가 적었다기보다 후대 사람들이 그만큼 발굴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부친, 즉 민 지사의 남편은 ‘학병(일본군) 탈출 1호’ 독립운동가인 김준엽(2011년 별세) 전 고려대 총장이다. 신규식 선생의 부친인 의병장 신용우 선생부터 4대째 이어진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체 독립유공자 수는 1만 3940명이다. 이 중 여성은 248명으로 1.8%에 그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여성의 삶은 어느 때보다 진취적이었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온다. 올 1월 보훈처가 발굴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1931명이다. 그중 12.8%에 해당하는 248명만이 포상을 받았다. 입증 자료 부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최고훈장을 받은 여성은 단 1명인데 그나마도 외국인이다. 전 대만 총통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다. 하지만 생존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은 다르다. 최근 8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처럼 저격수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실제로 역사에 존재한다. 오 지사는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는 남자현(1873~1933) 지사를 지칭하며 “여자들도 손가락 잘라서 천에다 혈서를 쓸 정도로 용감했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독립을 염원하며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고 단지의 붉은 결의를 새겼다. 의병 전투로 남편을 잃은 남 지사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유복자를 데리고 만주로 건너갔다. 1933년 일제 만주국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처단하려고 탄약을 품었지만 미행하던 일본 형사에게 체포됐다. 혹독한 고문에도 단식투쟁을 벌이다 그해 8월 순국했다. 남 지사는 국내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유일하게 대통령장을 받은 인물이다. 안경신(1888~미상) 선생은 1920년 임신부의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투척했다. 함흥으로 피신했으나 이듬해 일본 경찰에 체포돼 최초로 사형선고를 받은 여성이다. 3·1운동 때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해 애국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광복군(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에 가담한 여성 독립운동가도 적지 않다. 오 지사는 “여성들도 나이가 차면 광복군에 들어가 활동했다”고 증언했다. 광복군은 국방부의 모태다. 민영주 지사는 광복군 제2지대 이범석 장군의 비서 및 경리로 활동했다. 민 지사 아들 김씨는 “외조부(민필호 선생)와 막역한 사이였던 이범석 장군이 ‘자네 자식이 내 자식이니 한 명을 빌려다오’ 해서 어머니가 제2지대 재무 담당으로 일하셨다”고 설명했다. 무장투쟁에 앞장선 여성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후방을 책임진 여성들도 지금껏 가려져 있었다. 오 지사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아버지가 상하이 임시정부의 암살 요원으로 베이징에 파견되면서 어머니 홀로 평생 우리 3남매를 돌봤다”며 “하루에 12가마의 밥을 지어 독립군들을 먹여 살렸다”고 했다. 이 밖에 1919년 2월 만주의 지린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1335자, 도산 안창호 선생 미국 자택에서 발견, 독립기념관 보존), 1913년 평양에서 결성된 송죽회(독립군 자금 지원 등) 등 다양한 항일 독립 활동에서 주축은 여성들이 담당했다. 하지만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우리 여성 독립운동의 뜨거웠고 맹렬했던 역사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단독] “내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습니다”

    [단독] “내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습니다”

    1940년 3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 한 청소년이 있었다. 외동아들로 평범한 10대였던 그는 일본 유학 생활 1년 만에 애국지사가 됐다. 생존 애국지사인 조성인(93)옹은 9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업학교에 들어간 그는 1941년 2월 정덕수 등 뜻이 맞는 유학생들과 항일결사 ‘개진대’를 결성했다. 조 지사는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며 “우리 동포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보다 못해 독립 쟁취를 마음먹었다”고 동기를 밝혔다. 개진대는 미국과 영국 등이 참전하면 일본의 패망은 필연적이라 보고, 때를 기다려 일제히 봉기해 독립을 달성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8월에는 명칭을 ‘조선독립청년당’으로 바꾸고 당칙과 행동강령 등도 정했다. 조 지사는 “일본에 강제 노역을 온 동포와 유학생들을 계몽하고, 폭탄을 제조하는 등 무장봉기를 대비했다”며 “하부 조직으로 우유 및 신문 배달 모임 등을 만들어 동지를 포섭하는 데도 힘썼다”고 회고했다. 시련이 닥쳤다. 누군가의 밀고로 같은 해 10월 경찰에 끌려간 것이다. 일본 경찰은 배후를 알아내려고 1년 가까이 혹독하게 고문했다. 조 지사는 “매일같이 몽둥이로 얻어맞았다”며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오사카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힘겨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당시 조 지사의 아내는 셋째를 임신 중이었다. 조 지사는 “일제의 검열 때문에 수감 이유는 밝히지 못하고 편지로 감옥에 있다는 얘기만 전했다”며 “영문도 모르고 애태웠을 아내가 걱정됐다”고 전했다. ‘걱정 마시오, 건강하게 살아 나가 만날 것이니’. 자택에 보관 중인 편지 위의 눈물 자국이 아직도 생생했다. 연필 하나를 훔쳐 휴지에 글을 적으며 버티기를 1년 반. 출소 후 고향인 전라남도 광주로 돌아온 그는 동네 젊은이들을 모아 몰래 밤마다 계몽 활동을 했다. 고국 땅을 밟은 지 1년 3개월 만에 마침내 조국 해방을 맞았다. 조 지사는 1990년에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조 지사는 오는 14일 ‘서대문 독립민주축제’ 풋프린팅 행사에서 올해의 애국지사로 첫 발자국을 남긴다. 그는 “나라가 힘이 없어 일본의 핍박을 받았는데 국가가 부강해져 이런 예우도 받으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조 지사는 후대에 다시는 나라를 잃는 수모가 없어야 한다며 젊은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다른 선진국을 부러워하거나 의지하려 하지 말고 각자 힘을 기르세요. ‘내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는 겁니다.” 글 사진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독자의 소리] 독립 유공자 발굴에 정부가 앞장서야/정병기 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올해는 광복 제70주년이다. 뜻깊은 해이지만 미발굴 독립유공자 명예추대 문제 등 그 후손들의 한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민족의 암흑기에 목숨 바친 선열들의 공과 업적을 기리는 일은 국가의 기본이며 당연지사다. 그래야만 민족의 정통성이 확립될 것이다. 아직도 가짜 독립운동가가 판치고 있다니 안타깝고 통탄스럽다. 일제 땐 독립운동가 가족이란 이유로 모진 박해에 시달렸던 자손들은 해방 이후 상당수가 배움의 길에서 멀어졌고, 오늘날 가난 때문에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야 하는 형편이다. 그렇다 보니 대개는 선조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 일부 자손들이 관련 자료 발굴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많은 자료들이 소실 또는 소각 처리돼 찾기 어렵다. 자손들이 자력으로 찾을 수 있는 자료는 전해 오는 말이거나 호적에 형무소 수형 기록이 있는 옥사 기록이 전부다. 그러나 해당 부처인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수형인 명부나 당시의 재판 서류 등 무리한 상세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독립유공자 가족이 아니라는 자료를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반문하고 싶다. 3·1 독립 정신과 광복의 기쁨을 계승하고 진정한 민족의 광복절이 되려면 친일 역사 청산과 독립유공자 발굴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부가 앞장서 국내외에 흩어진 관련 자료 발굴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마포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도 서둘러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시켜야 한다. 정병기 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 “한류 퍼지는 쿠바… 30시간 거리도 좁혀졌으면”

    “한류 퍼지는 쿠바… 30시간 거리도 좁혀졌으면”

    “쿠바에서 한국에 오기 위해 30시간 이상을 하늘에서 보냈어요. 제 마음속 한국은 고향처럼 가까운 곳인데, 아직 쿠바와 한국은 멀리 있네요. 어서 그 30시간의 거리가 좁혀지길 소망합니다.” 지난 3월부터 충남 천안 남서울대 국제문화교류원 한국어학당에서 6개월간의 한국어 연수과정을 밟고 있는 국내 1호 쿠바인 유학생 카레림 로레나(25·여)와 베르무데스 마리스베예(19·여). 6일 남서울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쿠바 젊은이들에게 한국은 매력적이고 너무나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라고 입을 모았다. 로레나와 마리스베예가 한국을 알게 된 계기는 서로 다르다. 한국계 쿠바인인 로레나는 일제 강점기 때 쿠바에 이주한 ‘애니깽 1세대’로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한 독립운동가 고(故) 임천택씨의 증손녀다. 로레나는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는 등 어릴 때부터 한국 문화에 익숙했다”며 “지난 6월 현충일에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진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했을 때 자랑스럽고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마리스베예는 자신을 ‘한드(한국드라마) 마니아’라고 소개한다. 쿠바에 있을 때부터 한국 드라마와 프로그램에 푹 빠져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마리스베예는 “쿠바에는 한류 문화가 굉장히 전파된 상황”이라며 “쿠바의 TV마다 매일 한국 드라마가 방송되고, 개당 25페소(약 3100원) 정도인 DVD도 불티나게 거리에서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쿠바에서 한국어 배우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 한국에 와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두 사람은 한국인과 쿠바인 사이에 마음의 벽은 허물어진 것 같다고 느낌을 전했다. 하지만 물리적 벽은 높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한국과 쿠바는 국교가 단절된 상황이다. 반세기 넘게 비행기 직항 노선이 없고, 쿠바 국민들의 한국 관광도 제한되고 있다. 전 세계에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와 한국이 함께 걷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까. 둘은 자신이 넘쳐 보였다. “모든 사회엔 장단점이 있어요. 두 나라는 많이 다르지만 그렇기에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한국과 쿠바가 각자의 매력을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믿어요.” 로레나와 마리스베예는 “하루빨리 두 나라가 자유롭게 교류를 해서 한국과의 인연을 미래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암살’ 영화상영회서 “만세” 삼창

    ‘암살’ 영화상영회서 “만세” 삼창

    김무성(왼쪽) 새누리당 대표와 김을동 최고위원이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화 ‘암살’ 특별상영회에 참석해 ‘대한독립 만세’ 삼창을 한 뒤 활짝 웃고 있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 ‘암살’ 상영회는 두 의원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공동 주최했다. 김명국 전문기자 dounso@seoul.co.kr
  • 캐나다 국회의사당 잔디광장서 동포 300명 광복 70년 기념행사

    캐나다 주재 한국대사관은 오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300여명의 한인 동포를 초청해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 국회의사당 잔디광장에서 광복 7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고 6일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캐나다 국회의장대의 교대식을 비롯해 광복절 만세 삼창, 태권도시범, 사물놀이 공연, 줄다리기 등 전통놀이 행사도 함께 열린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토론토대학 출신으로 3·1만세운동 당시 외국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적극 가담했던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손녀인 리사 스코필드와 손자 딘 스코필드도 참여한다고 대사관은 덧붙였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에 대해 일제가 무차별 학살을 벌인 제암리 등을 직접 찾아 현장을 촬영하고 이를 보고서로 만들어 해외에 널리 알렸다. 이로 인해 스코필드 박사는 민족대표 49인으로 불리며 국립현충원에 독립유공자로 묻힌 유일한 외국인이 됐다. 대사관 관계자는 “일제의 통치에 대해 대체로 중립적 자세를 지키던 다른 나라 선교사와 달리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며 “캐나다 연방의 상징인 국회 앞 잔디광장에서 광복 70주년을 만방에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독립운동가 모습 담은 ‘광복 70주년 기념 메달’

    독립운동가 모습 담은 ‘광복 70주년 기념 메달’

    6일 서울 마포구 한국조폐공사 서울사업본부에서 모델들이 ‘광복 70주년 기념 메달’을 선보이고 있다. 금·은 등으로 제작된 기념 메달에는 유관순, 김구, 김좌진, 안중근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오는 10일부터 21일까지 풍산화동양행과 국민은행, 농협은행 전 지점에서 선착순으로 예약 판매한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순국선열 헌신적 활동에 믿음의 법치로 보답합니다”

    “순국선열 헌신적 활동에 믿음의 법치로 보답합니다”

    법무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김경천 장군 등 독립유공자의 후손 11명에게 특별 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한다고 5일 밝혔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만나 “순국선열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믿음의 법치로 보답하겠다”며 “후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특별 귀화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를 위해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재외동포들의 국적 취득 수수료를 면제하는 한편 공익신탁을 활용해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생계비와 교육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오는 1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국적 증서를 받는 대상자는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이끈 김경천 장군의 손녀 옐레나(54·러시아), 1907년 이준 열사와 함께 제2차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된 이위종 지사의 외손녀 류드밀라(79·러시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무료 변론을 지원한 이인 초대 법무부 장관의 손자 이준(50·프랑스)씨 등 11명이다. 법무부는 2006년부터 매년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특별귀화를 허가해 지금까지 932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해 왔다. 법무부는 아울러 을사늑약에 반대해 의병을 일으킨 허겸 선생의 외현손 김대유(22·중국)씨, 중국에서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한 음성국 선생의 외현손 박하영(25·중국)씨, 김경천 장군의 외증손 블라지미르(13·러시아)군에게 이날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제11회 독립기념관학술상에 박환 수원대 교수

    제11회 독립기념관 학술상 수상자로 수원대 사학과 박환 교수가 선정됐다. 독립기념관 학술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는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을 새롭게 조명한 저서 ‘만주지역 한인민족운동의 재발견(국학자료원, 2014)’을 펴낸 박환 교수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올해의 수상자로 결정하고, 오는 7일 오전 11시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 강당에서 시상식을 한다고 6일 밝혔다. 독립기념관 학술상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를 장려·촉진하고 연구자들에 대한 사기 진작을 위해 2005년 제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청산리전투에선 어떤 무기를 썼을까

    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의 일기 원본과 지청천 장군의 딸이자 여성광복군 대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지복영 선생의 육필 회고록이 처음 공개된다. 전쟁기념관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독립전쟁, 그 위대한 여정’을 오는 7일부터 11월15일까지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 기획전은 ‘독립전쟁의 서막’, ‘만주에서의 독립전쟁’, ‘조국의 새벽을 연 광복군’, ‘독립군의 주역들’이라는 4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전쟁기념관이 소장하는 유물은 물론 독립기념관, 육군박물관 등의 유물 110여 점도 선보인다. 청산리·봉오동전투에서 사용했던 ‘러시안 맥심 기관총’, ‘의병 화승총’, 도검류 등 당시 독립군이 사용한 무기를 비롯한 광복군 복장과 배지, 태극기, 대한군정서 사령부 일지, 청산리전투 보고서, 영친왕이 무관학교 학생과 찍은 사진 등 다양한 유물이 그래픽, 영상과 함께 전시된다. 서로군정서가 발행한 군자금 영수증, 한국광복군 대원증 등 흥미로운 유물도 선보인다. 이영계 전쟁기념관장은 “최근 영화 ‘암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의 실제 모습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청소년들이 전시장을 찾아 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깊이 새겨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쟁기념관 2층 기획전실에서 열리는 이번 특별기획전은 무료다. 문의 02-709-3081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암살’로 보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스페셜 영상 공개

    ‘암살’로 보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스페셜 영상 공개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주연의 영화 ‘암살’(배급 쇼박스)이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 강사와 함께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스페셜 영상’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암살’ 스페셜 영상에는 일제강점기, 가장 암울했던 1930년대 소개와 함께 극중 인물 ‘속사포’(조진웅)가 졸업한 1910년대 독립군 양성기지인 ‘신흥무관학교’, ‘안옥윤’(전지현)이 어머니를 잃은 ‘간도참변’ 사건, 김구와 함께 친일파 암살 작전을 지시한 약산 ‘김원봉’(조승우)이 단장이었던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대한 소개 등이 담겨 있다. 이번 스페셜 영상 제작에 참여한 설민석 강사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우리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담은 ‘암살’을 통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분의 노고를 우리 가슴 속에 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히며 ‘암살’ 속에 그려진 독립운동사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암살’은 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 38만 5367명을 동원했다. 현재 암살은 개봉 15일 만에 누적 관객 737만 7683명을 기록했으며, 스크린수는 1094개, 상영횟수는 4864회이다.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까지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영상=쇼박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광복 70주년 유감/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광복 70주년 유감/이지운 정치부 차장

    명절이나 기념일은 딱 그날을 쇠기까지다. 설이나 추석, 무슨 기념일이든 그 전후가 다른 법이다. 그런 점에서 올 8·15는 대단히 유감이다. 광복 70주년이 열흘 뒤인데, 분위기랄 게 없다. 오는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논의를 4일 국무회의에서 할 것이라는데, 늦은 감이 있다. ‘국민 사기 진작방안’의 하나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식적으로 50개 사업을 진행한다는 말에 놀랐다.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들이 준비하고 벌인 행사와는 별도다. 굳이 주변을 돌아보니 ‘태극기 선양운동’, ‘유라시아 친선특급’에 기념 뮤지컬 ‘아리랑’ 정도가 눈에 띈다.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가 ‘광복 70년 주제어 및 엠블럼 선포식’을 가진 게 지난 5월이다. 주제어는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 낯설기도 하지만 설명을 보니 70주년이 더욱 민망해진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민의 노력으로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달성해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세계 8대 무역강국, 동·하계 올림픽 유치와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 한류 수출 문화강국이자 세계 일곱 번째의 30-50클럽(3만 달러-5000만 국민) 가입을 눈앞에 둔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약은 “이런 성취를 이뤄 낸 민족적 역량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국민이 하나 되어 선진사회와 광복 이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통일 국가의 전기를 마련해 나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 70주년이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됐다. 기본적으로는 메르스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메르스 외에는 뭐든 도저히 주목받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느냐”고 한 관계자는 볼멘소리를 했다.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인 국무총리가 오랜 기간 공석이거나, 공석에 준하는 상황이었던 것도 영향을 끼쳤을 듯싶다. 그래도 정부는, 공무원들은 좀 각성할 필요가 있겠다. 국무총리실을 포함해 기재·교육·행자·외교·통일·미래·문체·산업·국토·해수·여가부에 보훈처와 문화재청까지 행사 주관만 14곳이다. 저마다 부지런히 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민간의 어지간한 공연 기획도 이보다는 나을 듯싶다. ‘정권’도 크게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다. 역사를 되새기는 데 이만한 기회가 또 있을까.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는 데 이만한 때를 따로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올해는 기념일을 넘겨도 할 일은 적지 않을 것 같다. 70년 전 일본의 패전을 둘러싼 오늘날의 전쟁이 오는 15일부터 새로 시작되려 하고 있어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가 무엇을 담느냐가 새로운 각축전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들 보고 있다. 아베는 9월 초 중국을 방문하고 내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을 기다리는 외교 일정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9월 3일 ‘항일전쟁 승전 70주년 기념’에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세계 각국 정상급 지도자를 초청해 놓았고, 천안문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 2부제가 부활하고 또다시 스모그와의 전쟁을 먼저 치르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과 일본 등 주변을 향한 메시지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광복 70주년과 관련해 청와대도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시동을 걸 것 같다. 우선 남은 기간 열심을 쏟을 일이다. jj@seoul.co.kr
  • 을사늑약 치욕 넘어 새로운 미래를 향해

    을사늑약 치욕 넘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이 을사늑약이 체결된 치욕의 공간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자주성을 지키고 근대국가로 도약하고자 했던 상징적인 공간으로 되살아난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문화재청과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8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중명전에서 공동 개최하는 특별전 ‘중명전, 고난을 넘어 미래로’를 통해서다. ●헤이그특사 파견 결정한 역사의 현장 중명전은 1897년 황실 도서관으로 건립됐다. 당시 명칭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로 재건됐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대화재가 발생해 고종이 이곳을 편전으로 사용하면서 중명전으로 불리게 됐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파견을 결정했던 곳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근대국가 도약 꿈꿨던 공간 이번 전시는 단순한 유물 진열 방식에서 벗어나 첨단 장비를 활용해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 게 특징이다. 전시는 4개 부문으로 꾸며진다. ‘도입부’에선 일제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 체결 현장을 영상과 음성으로 연출해 보여준다. ‘고종황제의 고뇌, 그리고 헤이그’에선 일제 침탈에 맞서 자주 의지를 보여 주고자 했던 대한제국 선포 모습 등을 삽화와 그래픽으로 소개한다. 이어 ‘독립을 위한 우리 민족의 노력’에선 관객 움직임에 반응해 가상현실을 연출하는 ‘키네틱 영상 시스템’을 활용해 관람객이 3·1 만세 운동 현장에 함께 참여하는 듯한 장면을 선보이고 독립운동 관련 유물 등도 영상으로 소개한다. ‘종결부’에선 광복 이후 모습과 남북 분단의 시련 등을 ‘렌티큘러 기법’(화면을 보는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이 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보여준다. ●첨단장비 활용 3·1운동 현장에 온 듯 문화재청은 “항일독립 운동과 관련된 등록문화재와 유품 등을 활용한 참여형·체험형 전시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독립을 위한 선인들의 헌신과 노고를 되돌아보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펼쳐 나가기 위해 그 뜻과 정신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를 숙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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