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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 나눔, 행복 두 배] LG, 소방관·경찰·일반 시민 등 44명에 ‘LG 의인상’… 치료비·위로금 전달

    [희망 나눔, 행복 두 배] LG, 소방관·경찰·일반 시민 등 44명에 ‘LG 의인상’… 치료비·위로금 전달

    게임 전문 매체 ‘데일리게임’ 편집부장인 곽경배씨는 지난 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개찰구 부근을 지나가던 중 한 여성이 노숙인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맨몸으로 이를 제지했다. 곽씨는 노숙인 김모씨가 휘두른 칼에 오른팔을 찔리고도 도주하는 김씨를 쫓아가 몸싸움 끝에 김씨를 붙잡았다. 오른팔 동맥과 신경이 절단돼 향후 2년간 재활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됐지만, 피의자가 노숙인인 데다 가족이 없고, 아직 의상자(義傷者)로 인정받은 것도 아니어서 수술과 입원, 치료비 등을 보상받을 방법이 없었다.‘낙성대역 의인(義人)’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진 뒤 곽씨를 도운 것은 LG복지재단이었다. LG가 운영하는 LG복지재단은 곽씨에게 ‘LG 의인상’을 수여하고 치료비 등을 포함한 상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 조업 중 생업이 걸린 그물을 끊고 달려가 조난 선원을 구조한 김국관 선장, 가족같이 자신을 보살펴준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불길로 뛰어든 외국인 근로자 니말 등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을 구한 의인들에게 LG복지재단은 조용히 표창과 상금을 전달하고 치료 등을 지원하며 박수를 보내왔다. LG 의인상은 2015년부터 최근까지 총 44명의 의인에게 수여됐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소방관과 경찰, 군인 등부터 굴착기 기사와 버스 기사, 어민 등의 의로운 행동과 희생이 LG 의인상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LG 의인상 수상자 중 일부는 상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해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에서 발생한 여객선 표류 사고현장에서 선원 6명을 구해 LG 의인상을 받은 여수해경 122구조대 소속 신승용 구조대장 등 해경 5명은 해양경찰 유가족 자녀 장학재단 ‘해성장학회’와 지역 사회복지관 등에 5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해 12월 서울역에서 기도가 막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시민을 응급처치로 구조한 해군작전사령부 소속 반휘민 중위도 상금을 노숙자 보호시설에 기부했다. LG는 LG 의인상 외에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사회의 귀감이 된 의인들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LG는 2015년 8월 경기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폭발로 다리를 잃은 군 장병 2명에게 각각 5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2014년에는 전남 진도 팽목항 세월호 사고 현장의 지원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소방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소방관 5명의 유가족에게 1억원씩 총 5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구인회 LG 창업회장은 1942년 중국 충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찾아온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에게 1만원을 희사했다. LG는 창업회장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해 계열사의 사업 역량을 활용해 독립운동 관련 시설 개·보수 및 유공자 지원 사업 등에 앞장서고 있다. LG하우시스는 2015년 충칭 임시정부 청사와 서재필 기념관 등의 개·보수 사업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독립유공자 주거환경 개선’ 지원 사업도 새롭게 시작했다. 광복회의 추천을 통해 매년 5가구를 선정해 개·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매헌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매헌기념관과 우당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우당 기념관 재개관을 위한 시설 개선 지원을 완료했다.
  • 경찰 ‘댓글 알바 논란’ 유명 역사강사 설민석 조사

    경찰 ‘댓글 알바 논란’ 유명 역사강사 설민석 조사

    이른바 ‘댓글 알바 논란’에 휩싸인, 유명 역사강사 설민석씨가 최근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설씨를 지난 24일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26일 밝혔다. 앞서 시민사회단체 ‘사교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학부모 모임’(사정모)은 설씨와 함께,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의 유명 강사인 최진기씨를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 고발 사건을 경찰에 넘겼다. 사정모는 최씨가 인터넷강의 업체 ‘이투스’와 자신이 대표로 있는 또다른 인터넷강의 업체 ‘오마이스쿨’, 그리고 댓글홍보 업체 A사와 회의를 열고 자신을 홍보하는 한편 특정 강사에 대해 부정적인 댓글을 게시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씨는 이투스 내 다른 강사들과 함께 댓글 알바 관련 회의에 참석하거나 회의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경찰은 사정모의 법률대리인으로 선임된 강용석 변호사를 지난달 14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또 다른 피고발인인 최씨도 곧 조사할 예정”이라면서 “혐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관련 증거와 관계자 조사 등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투스는 사정모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 반박하며 사정모의 대표 우모씨 등 5명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맞고발한 상태다. 앞서 설씨는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장소인 태화관을 ‘룸살롱’이라 말하고, 독립운동가 손병희의 셋째 부인이었던 주옥경을 태화관 마담으로 표현, ‘마담과 손병희가 사귀었기 때문에 장소를 그리 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1920년대 민족대표 33인 대부분이 스스로 자수해 친일로 돌아섰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사단법인 ‘민족대표 33인 유족회’는 지난 3일 설씨를 허위사실에 의한 사자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사]

    ■중소기업청 ◇국장급 승진△이준희 ■사학연금 ◇승진 <1급>△연금운영실장 김용준<2급>△퇴직자총괄팀장 권준용△재무예산팀 김창수◇전보△호남지부장 김욱경△강원지부장 류광주△연금홍보팀장 김창호△재직자총괄팀장 박형수△서비스기획팀장 이기범△고객소통팀장 장철호△재무예산팀장 강태위△경영개선팀장 이동환△성과분석팀장 김근중△행정지원팀장 박용진△국내대체팀장 김영철△해외증권팀장 정형종△해외대체팀장 정영신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 이승렬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대외협력단장 김홍민△교육홍보단장 김병헌
  •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년 기념우표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년 기념우표

    우정사업본부는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을 맞아 21일부터 기념우표 56만장을 전국 우체국에서 판매한다. 우표에는 우당 선생의 옆모습과 여섯 형제가 회의하는 모습을 태극기와 함께 담았다. 우당 선생은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이주 동포 정착과 농업 지도를 위한 경학사를 조직한 인물이다. 또 독립지도자 양성을 위한 신흥무관학교도 설립했다. 우정사업본부 제공
  • [자치단체장 25시] 어르신의 날 제정·어린이종합타운 건설…용산, 미래를 키운다

    [자치단체장 25시] 어르신의 날 제정·어린이종합타운 건설…용산, 미래를 키운다

    “두발자전거는 서 있으면 넘어집니다. 잘 굴러갈 때 페달을 더 힘차게 밟아야지요.” 성장현(62) 서울 용산구청장은 용산의 구정을 두발자전거에 빗대어 말했다. 최근 몇년 새 서울에서 가장 떠오른 자치구지만 방심한 순간 언제든 뒤처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엿보인다. 그는 “주목받는 지역이다 보니 구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행정 수준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스트레스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지역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고민을 6년째 하는데 여전히 재밌다”고 말했다. 그런 열정이 10년 전만 해도 ‘미군부대의 음습한 문화가 흘러나와 고인 동네’ 정도로 인식됐던 이태원 등 용산 전역을 바꿔놨다. 성 구청장은 19일 구청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구학적으로 볼 때 노인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야 미래가 있다”면서 “이들이 살 만한 동네를 만들기 위해 남은 임기 동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성 구청장으로부터 ‘잘나가는 동네’ 용산의 비결을 들어봤다. “우리 구청 앞에서는 장기간 하는 천막농성을 볼 수 없어요.” 성 구청장에게 “임기 동안 가장 자랑할 만한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용산에 분쟁이 없다니 의외였다. 용산은 면적의 5%(101만 5859㎡)가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 중인 ‘개발의 도시’다. 돈이 모이면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고 보통 다툼이 생긴다. 성 구청장은 “행정 처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관계자나 구민과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가려 한다”면서 “각자 불만이 있겠지만 이런 이유 때문인지 많이 참고 양보한다”고 말했다.●“개발 속도보다 상생할 방법 찾는게 우선” 사실 용산은 개발 과정에서 악몽을 겪었다. 용산참사다. 2009년 1월, 재개발을 위한 철거에 반대하던 입주민과 경찰이 대치하다 불이 나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숨졌다. 이후 트라우마 속에 수년간 개발이 멈췄다. 참사 2년여 뒤 취임한 성 구청장은 “개발 속도도 중요하지만 각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들어보고 상생할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런 깨달음 속에 성 구청장은 지역 분쟁의 중재자로 여러번 나섰다. 2012년 용산역 앞 집창촌 철거 당시 인근 포장마차들과 협의했던 게 대표적이다. 성 구청장은 “포장마차들은 무허가라 철거에 따른 보상을 해줄 근거가 없었다”면서 “대신 당장 공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부지에서 포장마차 25개가 3년간 영업할 수 있도록 해줘 분쟁을 막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각에서는 ‘포장마차 상인들이 약속과 달리 3년 뒤에도 안 나가고 버티면 어떡할 것이냐’고 우려했지만 상인들이 약속을 지켰다”면서 “신뢰한 덕에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산은 ‘청춘의 핫플레이스’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정주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노년층이 많다. 용산 구민 중 노인(65세 이상) 비율은 14.7%(3만 5900명)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4위다. 성 구청장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어르신들의 편한 노후를 돕는 건 지방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2014년 실버세대를 위해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어르신의 날’을 만들었다. 이듬해부터 매년 5월 용산가족공원에서 기념행사를 연다. 올해도 다음달 13일 행사를 연다. 성 구청장은 “어르신들이 1년 중 이날 하루만큼은 주인공이 돼 아무 걱정 없이 즐겁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념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행사에서는 식사는 물론 치과·안과 등 건강검진, 미용 서비스 등 노인들이 바라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용산구는 미래 주역인 아동·청소년을 위한 정책 마련에도 적극적이다. 120억원을 투입해 원효로 옛 구청사 터에 짓는 어린이청소년종합타운이 대표적이다. 청소년상담지원센터와 원어민외국어교실, 도서관, 청소년문화의 집은 물론 육아종합지원센터와 장난감도서관 등을 갖추며 올해 11월 완공된다.공공 보육시설 늘리기도 성 구청장의 역점 사업이다. 그는 “수년 내 ‘인구절벽’(저출산 탓에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이 예상되는 만큼 저출산 대책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말했다. 용산구의 전체 어린이집 대비 국공립어린이집 비율은 19.4%(2016년 기준)다. 이를 3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문제는 돈이다. 구립어린이집 1곳을 새로 짓는데 20억~30억원이 든다. 성 구청장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용산구는 지난해 9월 성심여고 내 공간을 활용해 8억원만 들여 구립어린이집을 만들었다. 올해에는 민간어린이집을 사들여 구립어린이집으로 바꾸는 등 5곳을 새로 문 열 계획이다.성 구청장은 매년 1월 간부급 공무원과 함께 효창원 의열사를 참배한다. 백범 김구 등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요인 7명의 영정이 안치된 곳이다. 그는 “용산 하면 ‘외국인이 많이 사는 이국적 동네’쯤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아픔이 서린 시련의 땅”이라고 말했다. 성 구청장이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꾸준히 벌여온 이유다. 용산구는 내년 말까지 ‘이봉창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이 의사의 옛집 터인 효창동 118 인근에 조성되는 역사공원에 60㎡ 규모의 작은 기념관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성 구청장은 “이 의사가 자손이 없는 까닭에 다른 독립운동가처럼 추모사업이 활발하지 않았다”면서 “그의 고향인 용산에서라도 나서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15년 9월에는 유관순추모비를 건립하고 유관순길을 조성했다.●전국 첫 국가유공자 우선주차제 도입 추진 성 구청장은 또 전국 최초로 ‘국가유공자 우선주차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는 “나라를 위해 팔다리를 바치기도 한 유공자를 일상에서 예우할 다양한 제도가 필요하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용산구는 조례를 만들어 오는 7월부터 주차규모 100대 이상인 공영·부설주차장의 주차공간 중 1%를 유공자 우선주차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이태원 축제 등 활용… 동남아 관광객 유치 총력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용산은 올해 호재와 악재를 두루 안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객실(1730개)을 갖춘 용산관광호텔이 9월 문 여는 건 호재다. 하지만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노골화하면서 관광시장 큰손인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사라져 고민이 커졌다. 성 구청장은 대신 무슬림·동남아 관광객을 매혹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을 짰다. 그는 “한남동 이슬람사원에는 금요예배 때마다 무슬림 1500명이 모여든다. 자연스럽게 음식점과 여행사, 무역사무실 등이 밀집한 이슬람거리도 생겼다”면서 “이곳을 찾는 무슬림들이 불편하지 않게 해 재방문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원 지구촌축제와 베트남 퀴논거리, 세계음식거리 등을 활용해 동남아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성 구청장은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정치인이다. 25세 때 신민당에 가입한 뒤 1991년부터 8년간 용산구의회 의원을 거쳐 3선 구청장이 됐다. 30년 가까이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이기에 올해 초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지켜보며 생각이 복잡했을 법했다. 그는 “기초지자체를 이끌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치적이나 명예를 위해 조급증을 내며 억지 부리면 반드시 탈이 나고, 일 처리할 때 반드시 주권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대통령 탄핵 탓에 중앙정부가 흔들렸는데도 시민들의 삶에는 큰 영향이 없었던 건 지방정부가 튼튼하게 뿌리내린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 개헌 논의할 때 무늬만 지방자치가 아닌 실질적 자치가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선생 48주기 추모재, 12일 현충원에서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선생 48주기 추모재, 12일 현충원에서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선생의 추모재가 1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대한민국 민족사에서 치욕이었던 일제강점기속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운암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1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운암 김성숙선생 서거 제48주기 추모재’를 개최한다. 이번 추모재에서는 유족, 관련단체장,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하며 개식, 국민의례, 운암 김성숙 선생 약사보고, 내빈추모사, 합창단 추모곡, 헌화 및 분향, 조총발사 및 묵념, 그리고 운암 김성숙 선생 묘소 참배 순서로 진행되며 부천 석왕사합창단, 역사어린이합창단,국방부의장대, 국방부 군악대가 참여한다. 특히 정세균 국회의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정동영 국민의당 국회의원, 이경근 서울보훈지청장,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기식 상산김씨대종회장 등이 자리를 함께 할 예정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기념사업회에 전달한 추도사에서 “운암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최전선에서 싸우던 분열된 독립운동 통합을 위해 애썼고 해방 후 좌우 대립과 독재를 극복하고 통일국가의 초석을 놓으셨다”라고 밝혔다. 한편 운암 김성숙 선생은 1898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났으며 19세에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서 출가했으며, 1919년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의 격문을 뿌려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운암선생은 조선의용대, 의열단 투쟁을 조정하시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도 활동한 선생은 광복 이후에는 정치인으로서 통일을 위해 헌신했으며, 신민당 창당의 주축으로 지도위원을 맡아 활동하시다 1969년 4월 12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가보훈처는 2008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민성진 기념사업회 회장은“ 조선의용대, 의열단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하시며 항일독립운동을 앞장서시고, 해방 후 정치가로서 민주화투쟁에 앞장서며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하셨던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되는 인물이시다”라면서 “운암 선생의 재평가와 함께 2017년에는 선생께서 주창하시던 평화통일의 초석을 다지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깃든 민족혼 <서울남부보훈지청 보상팀장 강현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깃든 민족혼 <서울남부보훈지청 보상팀장 강현주>

    다가오는 4월 13일은 지금으로부터 98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암흑과도 같았던 일제 강점기, 1919년 3월 1일 민족지도자들은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천명하였고, 우리 국민들은 방방곡곡에서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 후 독립운동가들은 독립국으로서의 우리 정부를 세우기 위해 국내․외에 흩어져있던 여러 임시정부들을 통합하고, 대동단결의 정신으로 결집해 4월 13일 상하이에서 역사적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했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조직으로서 미국, 중국 등 외국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전개하는 한 편 각종 교육, 문화 활동을 전개해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 광복군 창설 등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또한 우리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주인이 되고 의회가 중심이 되는 민주공화제 정부를 천명한 바,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큰 나무의 씨앗이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광복을 쟁취하기까지 27년간이나 정부조직을 유지한 채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펼쳤고, 이는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27년이라는 그 긴 시간동안 애국지사들은 일본의 억압을 피해 중국, 러시아 등 해외로 옮겨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가지 못하고 타지를 떠돌면서도 애국지사들의 염원은 오직 하나였을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님의 나의 소원은 첫째도 독립이요, 둘째도 독립이요, 셋째도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말씀은 그 당시 모든 애국지사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국권을 빼앗긴 후 40년간의 항일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선열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조국의 제단에 바쳤는지, 지금도 만주나 연해주의 이름 모를 산야에 몇 분이나 묻혀 계신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 분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본받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의무가 아닐까. 현재 전국에 계신 60여분의 생존 애국지사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정성을 다해 예우하는 것 또한 우리 국민의 도리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 [관가 블로그] ‘박정희 탄생 100돌’ 우표 발행 논란

    [관가 블로그] ‘박정희 탄생 100돌’ 우표 발행 논란

    우정사업본부가 오는 9월 15일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우표를 발행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검토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보통 우본은 한 해 전, 다음해 발행될 기념우표 소재를 법인이나 공공단체에서 신청을 받은 뒤 우표발행 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합니다. 박 전 대통령 우표의 경우 구미시가 지난해 4월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본 측은 지난해 5월 23일 심의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만큼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하지만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세칙’에 따르면 정치적·종교적·학술적 논쟁의 소지가 있으면 우표 소재로 삼을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현재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의 친일 행적을 밝혔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상황에서 굳이 박 전 대통령을 소재로 삼은 이유에 대해 우본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논란이 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대통령과 관련된 우표는 취임 기념밖에 없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기념우표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이미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우표는 대통령 취임 기념 5회, 해외순방 기념 1회, 해외 대통령의 국내 방한 기념 11회, 새마을운동 특별 1회, 추모 특별 1회 등 19차례나 발행됐습니다. 지난해 우표발행 심의위원회 회의록에서 발견된 의문점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회의록 어디에도 박 전 대통령 우표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심의위원의 자질을 의심할 만한 발언도 등장합니다. 한 위원은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에 대해 “좌익과 무정부주의자 논란이 있으며 정치적·종교적 문제가 있는 경우 우표를 발행하지 않는 불문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나라에서 독립운동가로 인정한 이회영 선생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정작 박 전 대통령 기념우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130여년 전 우리나라에 최초 우표가 등장했을 때부터 우표는 시대의 기록을 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본이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며 뒷짐만 질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에 명쾌한 대답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민족대표33인 유족들, ‘손병희 룸살롱 발언’ 설민석 고소

    민족대표33인 유족들, ‘손병희 룸살롱 발언’ 설민석 고소

    민족대표 33인 유족회는 유족들이 ‘손병희 룸살롱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유명 한국사 강사 설민석씨를 3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설씨는 최근 강의와 저서 ‘무도한국사’에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룸살롱’인 태화관에서 낮술을 먹고, 손병희 선생이 태화관 마담 주옥경과 사귀었다고 언급해 유족들의 공분을 샀다. 유족들은 설씨의 이 같은 발언은 손병희 선생과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고 사실을 왜곡해 사자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며 이날 오전 서울남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유족회는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보냈는데도 설민석 강사의 답변이나 사과 의사가 없어 부득이 고소장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해당 발언은 독립운동을 하신 선열에 대한 너무도 모독적인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손병희 선생 후손들이 역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설씨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고소했다. 설씨는 논란이 일자 자신의 SNS에 “저는 학계의 비판적 견해를 수용하여 도서 및 강연에 반영하였으며, 그 날, 그 장소, 그 현장에서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은 그 날 그 사건에 대한 견해일 뿐이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저 때문에 상처받으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김영옥 대령과 혼다 의원/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김영옥 대령과 혼다 의원/최광숙 논설위원

    일본계 미국인 마이크 혼다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처음으로 미국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들고나온 것은 1999년 캘리포니아 주의원 시절이다. 그러자 혼다에게 영향력 있는 재미 일본계 지도자들로부터 결의안 철회 압박이 가해졌다. 결국 결의안 표결이 연기됐다. 그가 이때 도움을 청했던 이가 다름 아닌 ‘전쟁 영웅’ 고(故)김영옥 대령이다.김영옥은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다. 2차대전과 6·25 전쟁에 참여해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등 가는 곳마다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적을 격퇴했다. 그 공로로 이들 3개국으로부터 최고무공훈장을 받았다. 워싱턴 대통령, 아이젠하워 대통령, 맥아더 장군 등과 함께 미국 전쟁 영웅 16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아시아인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혼다가 김영옥에게 손을 내민 것은 김영옥이 2차대전에 참전한 일본계 군인회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더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미국은 일본계 이민자 12만명을 격리 수용했다. 혼다도 어린 시절 일본계 강제수용소에서 지낸 아픔이 있다고 한다. 일본계 2세들이 미국에 충성심을 보여 주기 위해 만든 것이 100대대이고, 김영옥이 이 부대의 장교였다. 그는 군화 끈도 못 매던 오합지졸의 이 부대를 이끌어 격전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인들은 처음에는 한국인 김영옥을 우습게 알았지만 그의 뛰어난 리더십과 헌신하는 군인 정신에 감동을 받았고, 그는 지금까지도 재미 일본 사회에서 전설로 남게 됐다. 혼다로부터 위안부 결의안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들은 김영옥은 즉각 자신의 일본계 부하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전쟁터에서 같이 피를 흘렸는지를 상기시키면서 결의안 지지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결의안 지지서 초안을 만들어 자신이 먼저 서명하고 이들로부터 서명을 받아 혼다에게 보냈다. 일본계 참전용사회 멤버들이 지지서에 서명하면서 재미 일본 사회의 반발도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김영옥 덕분에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캘리포니아주 상하원을 통과하게 됐다. 혼다가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2007년 연방 하원에서도 결의안이 채택됐다. 외교부가 혼다 전 의원에게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한 공로를 인정해 수교훈장을 수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8선 의원을 지낸 그는 지난해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지금은 미국 내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적극적이다. 그의 가슴에 단 훈장을 보고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이서진, 600억 재벌설 진실은? “수발들면서 방송 했겠냐”

    이서진, 600억 재벌설 진실은? “수발들면서 방송 했겠냐”

    ‘풍문쇼’에서 배우 이서진 집안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27일 방송된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서는 학벌과 스펙, 집안의 재력이 남다른 스타로 배우 이서진, 김지석, 슈퍼주니어 최시원이 소개됐다. 특히 이서진은 ‘초특급 로얄패밀리’의 일원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이서진의 조부는 1960년대 은행장을 지낸 故이보형 씨로 명실상부한 ‘금융계의 대부’였다. 또한 부친인 故이재응 씨는 A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서진은 한 방송에서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일하는 도우미 분들이 매우 많았다”는 발언으로 조부의 재력을 입증한 바 있다. 또 이서진의 증조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故이상룡 선생. 구한말 퇴계 학통의 안동지역 유학자인 故이상룡 선생은 독립운동에 투신,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다. 이런 가문의 내력 때문인지 이서진은 ‘재벌설’,‘600억 자산가설’등 각종 풍문에 시달려 왔다. 이에 대해 이서진은 “나에게 600억이 있었다면 (꽃보다 할배 촬영 당시)유럽 가서 수발들면서 방송을 했겠느냐”며 재벌설을 간접적으로 부인한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풍문쇼’ 김지석 가문의 독특한 작명법 ‘태어난 지명이 곧 이름’

    ‘풍문쇼’ 김지석 가문의 독특한 작명법 ‘태어난 지명이 곧 이름’

    배우 김지석 가문의 남다른 작명법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7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서는 김지석 가문의 독특한 이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졌다. 패널 김묘성 기자는 “김지석 씨 가문이 독립운동가였던 고(故) 김성일의 후손인 만큼 이름도 남다르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기자는 “고 김성일 씨께서 일제 강점기 당시 만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자식들을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 지명의 이름을 따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지석의 큰아버지 이름은 김북경, 둘째 큰아버지 이름은 김장춘, 아버지 이름은 김온양이다. 고모들 이름 또한 김상해, 김통료, 김개로, 김한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듣던 패널 개그우먼 김지민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국을 위해 싸우던 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이름을 짓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지역명을 따 이름을 짓는 방법은 김지석 가문에까지 내려왔다. 김지석의 형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김신사’라는 이름을 얻게 됐지만 이후 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과 같이 신사동에서 태어난 김지석은 어머니의 만류로 ‘김신사’라는 이름 대신 본명 ‘김보석’을 얻게 됐다. 부활절에 태어나 ‘김부활’이라는 이름을 얻을 뻔했다는 김지석의 에피소드는 스튜디오를 웃음 짓게 했다. 사진=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선의 시간, 그대로 멈추다…순천 낙안읍성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선의 시간, 그대로 멈추다…순천 낙안읍성

    영화 ‘태극기 휘날리다’, ‘다물’, ‘천군’, ‘광해’ 그리고 드라마 ‘다모’, ‘대장금’, ‘장길산’, ‘토지’, ‘불멸의 이순신’, ‘구암 허준’ 등의 촬영장소는 어딜까? 순천의 낙안읍성이다. 낙안읍성은 진짜다. 현재를 과거처럼 만든 것이 아니라 과거 그대로 현재에 멈추어 있다. 방문객들이 옛 시간을 따라 담벼락을 돌면, 또 다른 옛 시간이 그들을 맞이한다. 발걸음이 처음으로 초가지붕 아래에서 돈독하게 움직인다. 샛길로, 고샅길로, 한길로 넘어가면 누구나 시간의 경계를 온몸으로 느낀다. 살아있는 옛날이다. 낙안읍성이 관광지로 가지는 매력은 바로, 이것저것 내세우지 않고 오직 고즈넉한 예전 시간 한 가지만 얼굴로 낸다는 것이다. 시멘트 덕지덕지 바른 담 위에 찰흙으로 세련되게 단장한 요사이 다른 ‘옛날’ 관광지에 내심 시큰둥하였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연 일품의 여행지이자 방문지다. 지금의 낙안읍성을 에워싸고 있는 성곽의 길이는 총 1410m에 이른다. 높이 역시 고르지는 않으나 옛 마을 성곽으로는 제법 높은 4m에 이르고, 넓이 역시 우마차가 넉넉히 지나갈 정도의 성곽길을 지니고 있다. 현재 총 면적이 예전 셈법으로 4만 1018평으로 현재도 여전히 100세대 조금 못 미치는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사람 살고 있는 동네다. 원래 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6년(1397)에 왜구들의 잦은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토성으로 쌓았다. 이후 세종 9년(1426)에 석성으로 다시 개축하였고, 유명한 임경업 장군이 낙안 군수로 재직하던 시기(1626)에 다시금 석성(石城)을 중수했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현재의 낙안읍성이 있는 지역명은 낙안군(樂安郡)이 아니라 순천시 낙안면이라는 사실이다. 원래 지금 보성의 벌교읍, 고흥의 동강면, 대서면, 순천의 외서면 등은 1908년 일제가 일부러 낙안군(樂安郡)을 폐군시키면서 인위적으로 세 도시에 강제로 편입시킨 낙안의 마을들이다. 당시 안규홍(1879~1911) 의병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항일 의병들이 현재의 벌교 지역, 옛 낙안군을 중심으로 결성되자 일제는 무자비하게 탄압하였고 아예 이 지역을 찢어 놓았던 것이다. 낙안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무장독립투쟁이 일제로서도 쉬 대응하기 힘들 정도로 극렬했던 탓이었다. 흔히들 ‘벌교에서 힘 자랑하지 마라’라는 말은 지금은 주먹질로 곡해되어 와전되었지만, 원래 옛 낙안 지역이었던 벌교에서 일제 순사에 항거하던 거친 젊음과 독립운동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보면 소설의 배경인 벌교 역시 역사적으로는 낙안지역이었기에 자연스레 등장인물에 낙안댁, 외서댁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그러하기에 오히려 현재의 낙안면이 속한 순천시보다는 보성에서 낙안읍성이 더 가까운 연유가 이런 사연에서 나오는 것이다. 원래 낙안읍성에는 동서남북으로 총 4개의 성문이 있었지만, 현재는 낙풍루라고 불리는 동문, 진남루라고 일컫는 서문, 쌍청루인 남문이 제 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있다. 읍성 안으로 들어가면 예전의 조선 동리가 그대로 성 안에 담겨 있는데, 물레방아, 옥사, 장터, 우물, 빨래터, 대장간, 객사와 동헌, 서당, 임경업 군수 비각 등이 옛 풍경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성곽 너머에는 낙안벌 멀리 장광산, 백이산이 보이며 이 산들을 지난 먼 거리에 조계산도 어렴풋이 짐작된다. 조계산 너머가 바로 지리산이고 섬진강이니 남도 중에서 아랫마을이 바로 낙안읍성이다. 낙안읍성은 CNN 선정 ‘한국 최고 여행지 50선’에 당당히 이름 올릴 정도이자 한국관광공사 선정 주요 방문지 순위에도 윗길에 앉아있을 정도이니, 올 봄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은 따뜻한 봄햇내 가득한 낙안읍성으로 가보는 것도 좋다. <낙안읍성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순천이나 벌교, 고흥, 여수 지역을 방문한다면 필수 코스다. 2. 누구와 함께? -가족 단위 여행지. 3. 가는 방법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0/ (061)749-8831/ 순천 시내버스로 63, 68, 61, 16, 670번이 있다. 4. 감탄하는 점은? -진짜다. 일부러 만든 옛날 동네가 아니라 진짜 옛날의 시간이 남아 있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최근 코레일의 내일로 여행 코스로 여수, 순천이 이름 얻으면서 관광객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옥사, 한지체험관, 동헌, 성곽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가성비 끝판왕 한정식, 3인 이상 ‘대원식당’(744~3582), 남도의 제대로 된 한정식 한상을 원한다면 ‘명궁관’(741-2020), 돼지고기 김치찜 ‘진일 기사식당’(754-5320), 마늘통닭 ‘풍미통닭’(744-7041), 짱뚱어탕 ‘대대선창집’(741-3157), 찹쌀떡 ‘화월당 과자점’(752-2016)/ 지역번호 (061) 8. 홈페이지 주소는? -www.suncheon.go.kr/nagan/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뿌리깊은나무박물관, 태백산맥 문학관, 순천만 정원, 선암사 10. 총평 및 당부사항 -낙안읍성은 제대로 보존된 민속마을이다. 남도 여행을 간다면 낙안읍성과 더불어 옛 낙안군 지역이던 벌교 지역도 같이 둘러보자.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이재명 “안희정, 문재인 ‘전두환 표창’ 말 비난 자격 없다”

    이재명 “안희정, 문재인 ‘전두환 표창’ 말 비난 자격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21일 “문재인 전 대표의 ‘전두환 표창’ 발언에 대해 안희정 지사는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날 광주 서구 화정동 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참배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 후보의 안보관을 강조하다 생긴 해프닝같은 말실수”라며 “상처받은 사람이 있지만, 학살세력과 손을 잡고 권력을 나누겠다는 분이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안희정 충남지사를 겨냥했다. 그는 “그보다 수천배 큰 잘못은 학살세력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안희정 충남지사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선 캠페인이 네거티브로 흐르지 않도록 품격과 절제 있게 말하고 상대를 존중하자”면서 “문재인 전 대표의 ‘전두환 장군 표창’ 발언은 군 복무를 성실히 했다는 애국심을 강조한 끝에 나온 발언이었다. 5·18 광주 정신을 훼손하려고 한 발언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안 지사는 “나는 그가 하고자 했던 발언의 취지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9일 민주당 대선주자 합동 토론회에서 특전사 복무 사진을 보여주며 “당시 전두환 제1공수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문 전 대표는 이 발언으로 당내 경쟁 후보들과 국민의당으로부터 맹공을 받았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는 “저는 5·18 때는 전두환 군부에 의해 구속됐다”며 “시민으로 있을 때는 민주화운동에 온몸을 바쳤고 군 복무할 때는 충실히 복무했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탄생 100주년, 윤동주의 현재적 가치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탄생 100주년, 윤동주의 현재적 가치

    올해는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탄생 100주년’이라는 표현은 가혹하기 짝이 없는 근대사를 살아온 우리에게 어떤 숙연함을 가지게 한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100년 전에 태어난 그 문학인이 우리 문학사의 긍정적 모형으로 남은 인물이건 반면교사로 남은 인물이건 우리는 그들의 시대와 언어에 대해 먹먹한 눈길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이 일정하게 민족주의적 감상성을 동반할 위험을 내포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새삼 정중하게 불러들여 우리의 문학사를 다시 한번 응시하는 일은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부실한지에 대해 서늘한 자각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전문학교를 마치고 일본 도쿄와 교토에서 짧은 유학 생활을 하다가 독립운동 죄목으로 체포돼 차가운 감옥에서 1945년 2월 16일 젊은 날을 마감했다. 불과 27년 1개월 남짓의 삶이었다. 이러한 짧은 생애를 산 윤동주는 우리 문학사에서 시와 삶이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뚜렷이 증명해 준 실례일 것이다. 그의 순결한 언어와 비극적 죽음이 이러한 결과를 선명하게 증언하고 있고, 그는 이렇듯 불멸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것의 결정(結晶)인 시편들을 남기고 그의 ‘또 다른 고향’으로 서둘러 떠났다. 윤동주가 나고 자란 북간도는 우리 근대사에서 수난과 저항의 이미지를 동시에 거느린 채 존재한다. 증조부 윤재옥이 북간도로 건너갔을 때는 우리 민족의 이주 초창기였는데, 그 초기 이주 세력 가운데 하나인 윤하현 장로의 외아들 윤영석과 동만(東滿)의 대통령이라 불렸던 김약연 목사의 누이 김용 사이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둘도 없는 ‘북간도 시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영혼 안쪽에는 해란강과 일송정으로 대표되는 북간도 풍경이 짙게 담겨 있었는데, 그 점에서 북간도는 윤동주를 낳고 길러 낸, 양도할 수 없는 우리의 땅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그는 지금의 중국 땅에서 태어나, 지금의 북한(숭실중학)과 남한(연희전문)에서 공부하고, 일본(릿쿄대학, 도시샤대학)에서 유학 중 죽음을 맞아, 동아시아 전체에 걸친 공간 편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한·중·일(韓中日)에 모두 시비(詩碑)가 세워진 유일한 사례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윤동주를 통해 ‘북간도-평양-서울-일본’이라는 공간 확장의 기억 단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의 현재성은 먼저 이러한 동아시아적 공간 확장성에서 온다. 이런 시인 흔치 않다.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온 지도 어느새 70년이 됐다. 일본에서도 윤동주 시 읽기 모임이 성행하고 있고, 오무라 마쓰오(大村益夫) 같은 학자가 윤동주에 대한 사료들을 발굴하고 체계화하고 있을 정도로 윤동주는 가해국이었던 일본에서도 깊이 기억되고 있다. 그야말로 적국(敵國)에서 역사의 ‘기념비’로 남는 거의 유일한 경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선배 시인 정지용이 시집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라고 기억했던 그 오롯한 고독이 윤동주를 이처럼 불멸의 시인으로 남게 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와 상황을 초월해 우리로 하여금 잃어버린 ‘하늘’과 ‘바람’과 ‘별’을 탈환하게끔 해 주고 있다. 도시샤대학 교정에는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어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두 시인을 한꺼번에 만나게 해 준다. 윤동주가 경험했을 망국과 유학과 죽음의 흐름이 한순간 압축적으로 전해져 온다. 이처럼 오랜 젊음으로 살아남은 그만의 특권은 비극적 생애를 불멸의 기억으로 바꾸어 내는 예술사의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의 시를 우리 문학사의 정전으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그렇게 윤동주는 좁은 의미의 저항 텍스트를 뛰어넘어 더욱 넓은 예술적 차원에서 항구적인 매혹의 텍스트로 기억돼 갈 것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는 그의 시가 여전히 생생한 현재형인 까닭이다.
  • 경찰 간부 된 독립 투사 증손 “韓 - 외국인 잇는 교량 될 것”

    경찰 간부 된 독립 투사 증손 “韓 - 외국인 잇는 교량 될 것”

    “‘너는 반드시 고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위해 일하라’는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늘 기억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외증조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으라는 의미였죠. 이제 대한민국 경찰이 됐으니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겠습니다.”지난 1년간 경찰 간부후보생 교육을 마치고 16일 임용된 이동빈(36) 경위는 2009년 귀화해 경찰이 됐으니, 이제야 조상을 뜻을 기리게 됐다고 밝혔다. 이 경위는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 톈진 외국어대 일본어학과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제주자치경찰단 경찰기마대에서 순경으로 근무했고 2012년에는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고 2009년 늘 그리던 한국 국적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의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고 일용직, 여행가이드를 전전해야 했다. 하지만 2011년 경찰기마대 순경 공채 공고를 보고 도전하면서 그의 삶은 바뀌었다. “기마대는 수사 권한이 없는 게 아쉽죠.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를 구사하는 장점을 살려 외사국에서 근무하고 싶었는데 자치경찰단에는 외사국이 없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꿈을 접을 수 없어 간부후보생에 도전했습니다.” 이 경위는 앞으로 제주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여러 경험을 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인과 외국인이 서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특히 중국동포와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시련이 닥쳐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라. 그러면 이룰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날 오후 2시 충남 아산 경찰대 대강당에서 열린 합동임용식에서는 33기 경찰대 학생 117명과 65기 간부후보생 50명 등 총 167명이 경위 계급장을 달았다. 이철성 경찰청장을 비롯해 경찰 지휘부와 임용자 가족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LG하우시스, 독립운동가 이회영 기념관 개·보수 지원

    LG하우시스, 독립운동가 이회영 기념관 개·보수 지원

    LG하우시스는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우당기념관’ 시설을 개·보수하고 14일 재개관식을 가졌다. 서울 종로구 신교동의 우당기념관은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신민회 창립을 주도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이회영 선생의 생애 기록과 유물 등이 전시된 곳이다. LG하우시스는 2주에 걸쳐 기념관 내부의 노후한 바닥과 출입문을 교체하고 전시관 전체 벽면을 도색했다. 기념식에는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구남신 서울북부보훈지청장, 김장성 LG하우시스 상무 등이 참석했다. LG하우시스는 현충시설 개·보수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중국 충칭 임시정부 청사, 서재필기념관, 윤봉길기념관 등의 시설 개선을 지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서울시의회 성중기의원 도산 안창호 순국 79주기 추모식 참석

    서울시의회 성중기의원 도산 안창호 순국 79주기 추모식 참석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성중기의원(무소속, 강남1)은 금일 오전 11시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도산공원 도산묘소에서 치러진 도산 안창호선생 순국 79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여 서울시의원을 대표하여 애국가를 제창했다. 도산 안창호선생은 독립운동가·사상가. 독립협회(獨立協會), 신민회(新民會), 흥사단(興士團) 등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활동을 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와 흥사단의 주관으로 최완근 국가보훈처 차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 및 시민 300여명과 신연희 강남구청장, 성중기 서울시의원이 참석했다. 성중기 서울시의원의 애국가제창에 이어 윤경로 도산학회 회장의 도산말씀과, 김재실 도신가념사업회 회장의 추모사 등 추념사와 후배가 도산안창호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추모가 등의 식순으로 진행됐다. 성중기 의원은 추모식자리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신 도산 안창호선생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며 “우리는 순국선열 및 도산안창호 선생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진정한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성 의원은 “현재 대통령 탄핵 등으로 시국이 혼란스러운 만큼 이러한 행사를 통해 순국선열과 독립운동가들의 얼을 이어받고 애국가를 통해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키워야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세계에 알리려 뛰었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세계에 알리려 뛰었죠”

    정년을 1년 앞둔 경기 부천시 공무원이 동경마라톤에 참가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홍보대사로 활약했다. 신동훈(59) 중동행정복지센터 재난안전팀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2017 일본 동경마라톤대회에 출전, 완주했다. 신 팀장은 “동경마라톤대회에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코리아’를 외치며 달렸다”며 “조부님의 항일독립운동 발자취를 느끼고 고귀한 정신과 얼을 마음 속 깊이 새겨본 소중한 대회였다”고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또 그는 “세계 6대 메이저대회 중 2개대회는 이미 참가했고 향후 나머지 4개대회에도 모두 참가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며 “제2, 제3의 홍보대사를 자임하는 마라토너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해 ‘대한민국 부천시’를 널리 알리기도 했다. 동경마라톤대회는 보스턴과 런던, 베를린, 뉴욕, 시카고마라톤대회와 함께 세계 6대 메이저대회로 꼽힌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열린세상] 분열의 끝에서 본 대한민국의 미래/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분열의 끝에서 본 대한민국의 미래/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올해로 아흔여덟 번째 맞은 3·1절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은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탄핵 기각에 동참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란다. 일본에 빼앗겼던 나라를 순국선열의 피로써 되찾아 비로소 태극기를 다시 세상에 펄럭이게 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태극기를 들까 말까 우물쭈물한다니….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대대로 물려받은 이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두 쪽이 된 것도 모자라 탄핵으로 또 둘로 나뉘어 세 쪽이 돼 간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조차 흥분한 국민을 달래기는커녕 내란이니 혁명이니 하면서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고 헌법재판소를 위협한다. 남들 눈이 있으니 마지못해 헌재 결정에 승복한다고 하지만 글쎄, 정작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결정이 나와도 과연 그럴까. 그런데도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아무 잘못이 없단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400억원이 넘는 돈을 빼앗긴(?) 기업들이 있는데도 자발적으로 낸 것이고, 재단을 만들어 최순실에게 송두리째 맡겨 놓고도 나라를 위해 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최순실, 정유라와 관련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을 했으면서도 국민이 듣고 싶은 진실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명도 없이 대통령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결국 스스로 탄핵의 문턱에 섰다. 결자해지라고 대통령만이 두 편으로 갈라진 이 나라를 봉합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그에겐 자신의 입장만 중요할 뿐 분열의 끝에 선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는가 보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은 참으로 대단한 나라다. 5000년 역사 속에서 오늘날 같은 힘을 가져 본 적이 있었는가.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 조선왕조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에 터를 잡은 우리 조상은 온갖 고난을 겪으며 힘들게 이 나라를 지켜 왔다. 한때 요동 땅을 호령했고 만주를 공략하려 했으며 대마도를 정벌하는 등 국력을 떨친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시기에 우리의 국력은 자신을 외세로부터 지키기에도 버거웠다. 하지만 60년 넘게 침략에 저항하면서도 몽골에 국권을 빼앗기지는 않았었다. 그랬던 우리가 거친 제국주의적 팽창 속에 결국 일본에 국권을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좌절 속에서도 학교를 설립해 후세 교육에 힘썼고, 3·1 운동을 계기로 임시정부를 수립해 끊임없이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했다. 국내에서는 뜻있는 사람들의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 지원이 끊이지 않았고, 하와이 국민회는 본토 수복을 위해 사관학교까지 만들어 군사훈련을 했으며,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은 공군을 양성하기까지 했다. 세상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국권을 잃고도 이처럼 수십 년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을까.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에 따르면 모든 강대국의 등장에는 경제성장이 선행됐다. 6·25 동란을 거치며 국가 안보를 위해 성장한 군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인권침해의 논란 속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산업화를 성공시키는 배경이 됐다. 경제성장은 교육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고등교육의 확산을 통해 성장한 중산층은 산업화와 동시에 정치적 민주화의 기반이 돼 21세기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주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이제 역사로부터의 교훈을 생각해 보자. 고구려가 망한 것은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연개소문 사후 자식들이 분열됐기 때문이었고, 1억 인구의 명나라가 100만 인구의 여진족 후금에 의해 망한 것도 지배 세력의 분열 때문이었다.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멸하고 돌아왔을 때 당태종이 물었다고 한다. 기왕에 갔으면 신라도 정벌하고 오지 그랬느냐고. 소정방의 대답은 이러했다. 신라는 비록 작은 나라지만 위로 임금과 신하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아래로 백성이 지배층을 존경하고 신뢰하여 상하가 모두 하나가 돼 있으니 비록 작은 나라지만 함부로 도모할 수가 없었다고. 분열된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안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체된 경제, 희망을 잃어 가는 청년들, 안보 문제를 두고도 극도로 분열된 사회, 서로 생각이 다르면 타협은커녕 대화조차 거부하는 정치권…. 우리의 미래는 고구려를 닮을 것인가, 아니면 신라를 닮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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